고대 로마의 Sex & Sexuality – 계급(Class)과 성적 역할



송민원
(시카고 대학 고대근동학과 Ph.D. Candidate)


 

  2. 고대 로마의 Sex & Sexuality – 계급(Class)과 성적 역할

  

      지난 시간 살펴본 고대 그리스의 Sex & Sexuality를 이해하는 키워드는 “사회적 신분(Social Status)”과 “교육”이었습니다. 어린 남성이 사회의 주체인 성인이 되기 위한 과정의 각 단계 속에서 그에 걸맞는 성적 역할이 주어지고, 한 명의 개체에게 있어 그 역할은 나이에 따라 변화합니다. 오로지 그리스 시민사회의 남성에게만 이 역동적이고 주체적인 성적 역할이 주어지고, 그 외 여성이나 외국인에게는 고정되고 수동적인 성역할이 주어집니다. 물론 이러한 규정은 고대 그리스의 여러 도시국가들의 차별성을 간과한 지나친 단순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수천년에 이르는, 거리로 따져도 수천킬로에 다다르는 엄청나게 복잡한 고대 근동 전체의 전반적인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단순화의 오류를 범할 수 밖에 없음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고대 폼페이의 사창가>


    고대 로마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는 제목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계급(Class)”입니다. 로마에서는 출신계급이 자유시민이냐 아니냐가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즉, 자유시민만이 능동적인 성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뿐, 그 외의 계급은 수동적인 성 역할을 부여받습니다. 사실 고대 로마의 계급은 근대사회의 유산계급, 무산계급 등에서 말하는 계급과는 많은 차이가 있고, 오히려 그리스의 “사회적 신분”에 많은 부분이 겹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여기서 계급이란 용어를 쓰는 것은 그리스의 “사회적 신분”이란 용어와의 약간의 뉘앙스 차이를 보다 극명히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리스의 “사회적 신분”과 로마의 “계급”이 성적 역할에 있어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예를 들어 설명해볼까요? 고대 그리스의 성인남성은 자신보다 아래의 신분을 가진 남성 혹은 여성과 성적 관계를 갖는 것이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았습니다. 즉, 하층민이나 외국인과의 성적 접촉은 자신의 신분을 낮추는 행위로서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반면에, 로마에서는 자유시민(free-born)계급이 아닌 어떠한 대상도 성적인 상대로서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특히 노예는 자유시민의 “소유물”이기 때문에 주인 마음대로 언제든 성적 대상물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각주:1] 물론 다른 사람의 노예의 경우 함부로 다룰 수는 없었습니다. 다른 자유시민의 사유재산을 침해하는 것이니까요.  


    가장 초기의 로마 극작가 중의 한명인 플라우투스(Titus Maccius Plautus, c. 254-184 BC)의 “쿠르쿨리오(Curculio)”라는 작품을 보면 이런 점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포주 카파독스에게는 플라네지움이라는 아리따운 여자노예가 있었는데, 자유시민인 파에드로무스가 그녀를 보고 사랑에 빠집니다. 다른 사람의 노예이기 때문에 합법적인 댓가를 지불해야 해서 파에드로무스는 돈을 빌리려고 합니다. 하인 쿠르쿨리오의 기지로 돈을 빌리게 된 파에드로무스는 포주 카파독스와 노예매매 계약서를 작성하는데, 이 계약서의 조항은 “만약 플라네지움이 자유시민으로 판명이 되면 계약은 취소되고 돈은 원래 주인에게 돌려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연극의 결말은, 결국 플라네지움이 자유시민 출신임을 알게 되어, 파에드로무스는 플라네지움과 주인과 노예 관계가 아닌 남편과 아내로서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는 해피엔딩입니다.[각주:2]


    대표적인 19금 추천미드인 “스파르타쿠스”를 보면, 검투사들의 주인인 바티아투스와 그의 아내 루크레티아가 노예와 검투사들과 자유로이 성행위를 하는 장면들이 (자주!) 나옵니다. 물론 아내의 경우 남편 몰래 검투사와 바람을 피웁니다만. 이런 장면들은 꽤나 역사적인 고증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와 비슷하게 로마에서도 사회의 주체는 자유시민 남성입니다. 자유시민 남성의 몸은 침해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때려서도, 육체적인 징벌이 가해져서도 안 됩니다. 만약 자유시민 남성이 강간을 당할 경우 살인에 해당하는 범죄로 여겨져서 가해자에게는 사형선고가 내려졌습니다. 이것은 자유시민 아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동에 대한 성범죄를 금지하는 고대 로마의 법인 lex Scantinia에 따르면, 자유시민 남자아이와 성관계를 가질 경우 사형에 처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 경우 상대방이 로마의 자유시민인 경우 실제 사형이 언도되지는 않았던 듯 합니다. 이 lex Scantinia라는 법의 존재 때문에 고대 로마는 그리스와 다르게 동성애를 엄격히 금지했다는 식으로 잘못 이해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이 법은 동성애 금지법이 아니라, 자유시민 남성 (아동) 보호법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합니다. 자유시민이 아닌 노예나 외국인과의 동성관계에 대해서는 아무런 금지조항이 없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그리스와 로마는 크게 갈라집니다. 교육 차원에서 (서로 나이 차이가 있는) 동성간의 성적 관계를 장려하던 그리스와는 달리, 로마의 남자아이들은 자신의 몸이 침범당할 수 없다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배웠습니다. 또한 노예나 외국인과의 성관계를 바람직하지 않게 보던 그리스의 관습과는 다르게, 로마의 자유시민에게는 노예나 외국인을 마음대로 처분할 권리가 있었습니다. 또한 동성간의 관계를 보자면, 로마 자유시민 남성이 성행위에 있어서 수동적인 입장을 보이는 경우만을 제외한 나머지 경우는 사회적으로 문제시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자유시민 여성들은 어떠했을까요?


    자유시민 여성의 경우 노예와 마찬가지로 수동적인 성적 역할만을 부여받았습니다. 하지만 타인의 아내에 대한 강간이나 불륜은 철저히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여성의 몸을 사회적으로 보호한다기 보다는 남자의 “재산/소유물”을 보호하려는 것이었죠. 미혼 여성의 경우 소유권은 아버지에게 있고, 기혼인 경우 남편에게 있었습니다. 기원 전 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최초의 로마법인 leges duodecim에 따르면, 여성이 불륜을 저지르는 경우 불륜상대자 두 명 모두 사형에 처하는데, 이 때 사형집행은 여자쪽 집안사람들에 의해 행해집니다. 일종의 “명예살인”인 셈이죠. 나중에 이 법은 많이 완화되는데, 기원전 1세기의 아우구스투스가 제정한 법에는 불륜이 발생할 시 경우에 따라 다른 형벌이 주어집니다. 유배나 재산압류, 혹은 이혼. 물론 사형에 처해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만약 불륜이 벌어진 장소가 미혼여성의 아버지 집이거나 기혼여성의 남편 집일 경우, 로마 자유시민 남성의 사유재산에 대한 심각한 침해로 여겨져서 사형을 언도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여성들 사이에서 동성간이든 이성간이든 자유로운 성관계가 이뤄졌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드라마 스파르타쿠스의 루크레티아처럼 남편 몰래나 가능했을 듯 합니다.


    방만한 그리스문화와는 다르게 로마는 훨씬 검소하고 엄격한 이미지가 있긴 합니다. 세네카 같은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이 자기절제를 주장하면서 결혼제도 내에서만의 성행위를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갈레누스(Claudius Galenus, 129-216 AD)나 소라누스(Soranus of Ephesus) 같은 의사들은 극단적인 금욕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금욕이 남자를 더 강하게 만들어준다는 믿음에서요. 하지만 이러한 일부 문헌들로부터 고대 로마의 성풍속을 금욕적이었다고 규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대중적인 문화를 잘 드러내 보여주는 고고학적 유물들로 살펴보자면 고대 로마는 성을 아주 자연스런 삶의 한 부분으로 여겼음에 분명합니다. 일단 사창가가 상당히 발달했습니다. 국가에 의해 경영되는 공창제도로까지 보기는 어렵지만 여러가지 법률적 규정에다 세금까지 부여한 것을 보면 말입니다.[각주:3] 사창가 벽에는 로마의 포르노에 해당하는 아주 노골적으로 성행위를 묘사한 벽화들이 있었습니다. 또한 “스핀트리아(spintria)”라 불리는 동전들이 서기 1세기 경을 중심으로 많이 발굴되었는데, 각 동전의 뒷면에는 1부터 16까지의 숫자가 새겨져 있고, 앞면에는 각기 다른 체위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이 동전이 사창가에서 통용되던 화폐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황제의 얼굴이 새겨진 화폐를 가지고 사창가에서 매음을 하려다 사형당한 경우도 있었거든요. 하지만 이 학설은 좀 문제가 있는 게 이 스핀트리아라는 동전이 사창가에서 발견된 게 아니라 주로 공중목욕탕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여 이 동전들이 아마도 당시 어떤 종류의 게임에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암튼 이 동전들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동전 : 스핀트리아(Spintria)>


    또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그리스 신화에서 그리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 않았던 풍요와 남근의 신인 프리아푸스(Priapus)가 로마시대에 굉장히 널리 숭배되었다는 점입니다. 프리아푸스에게 헌액된 성전 중에 현존하는 것은 없지만, 여러군데 있었다는 문헌기록은 남아 있습니다. 소아시아와 이탈리아 본토의 가정집, 특히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거대한 남근을 가진 프리아푸스의 상이 많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풍요의 상징으로서 프리아푸스가 고대 로마의 대중문화/민중종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듯 합니다. 고대로마가 멸망하고 기독교화된 한참 이후에도 이 프리아푸스의 거대한 남근은 여전히 대중들에게 사랑 받았습니다. 13세기 북영국과 스코틀랜드의 역사를 기록해놓은 “라너코스트 연대기(Lanercost Chronicle)”에는, 어느 농부가 소들이 떼죽음을 당하자 질병을 막기 위해 프리아푸스 신상을 세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각주:4] 캐나다의 몬트리올에는1980년대에 세워진 Église S. Priape (St. Priapus Church) 라는 교회가 있기도 합니다.



<프리아푸스>


    이렇듯 고대 로마는 그리스와 다른 자신만의 Sex & Sexuality를 발전시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 로마와는 또 다른 성개념이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발견됩니다. 다음 시간에는 고대근동지방의 Sex & Sexuality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문헌>

Bonnefoy, Y. (1992), Roman and European Mythologies, Chicago. 

Clarke, J. R. (1998), Looking at Lovemaking: Constructions of Sexuality in Roman Art, 100 BC – AD 250. Berkeley.. 

Gaca, K. L. (2003), The Making of Fornification: Eros, Ethics and Political Reform in Greek Philosophy and Early Christianity. Berkeley. . 

Kiefer, O. (2000), trans. G. & H. Highet, Sexual Life in Ancient Rome, New York. . 

Skinner, M. B. (2005), Sexuality in Greek and Roman Culture, Malden, MA. . 

Williams, C. A. (1999), Roman Homosexuality: Ideologies of Masculinity in Classical Antiquity. New York. . 



ⓒ 웹진 <제3시대>

  1. 노예들에 대한 처우는 하드리아누스(76-138 AD) 황제의 법률개정 때 좀 나아집니다. 그는 노예제도 자체는 인정했지만, 주인이 함부로 노예들을 죽이거나, 검투사나 창녀로 만들 수 없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아는 한, 주인이 노예를 성적 대상으로 삼는 것에 대한 금지는 없었던 듯 합니다. http://spartacus-educational.com/ROMhadrian.htm 참조. [본문으로]
  2. https://en.wikipedia.org/wiki/Curculio_(play) [본문으로]
  3. 사창가에 세금을 부여한 최초의 로마 황제는 그 유명한 칼리굴라(Gaius Julius Caesar Augustus Germanicus, 12-41 AD)입니다. [본문으로]
  4. Yves Bonnefoy, Roman and European Mythologies (139-142),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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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Sex & Sexuality – 사회적 신분과 성적 역할



송민원
(시카고 대학 고대근동학과 Ph.D. Candidate)


 




  머릿말 - 고대근동의 Sex & Sexuality 연재를 시작하며

  

      “고대근동의 Sex & Sexuality”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단순합니다. 구약과 고대근동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보수신학뿐 아니라 소위 진보신학이라 불리는 진영에서조차 무분별하게 고대근동의 자료들을 전용하는 게 불편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백인의 눈으로 성경을 읽어왔다는 사실을 충격적으로 알려준 해방신학의 기여에 무한한 경의를 표하면서도, “바알 = 맘몬 = 물질숭배 = 제국주의”로 이어지는 해방신학의 도식이, 우가릿어로 된 바알 숭배자들의 글을 읽은 사람의 눈엔 많이 불편해보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은 우리나라의 김제 평야나 남캘리포니아에 비하면 그야말로 척박하기 그지 없습니다. 바알의 “풍요”는 그저 제 때 비가 와 주고, 갓 태어난 아이들이 좀 덜 죽기를 바라는 부모의 간절하지만 소박한 바램에 지나지 않습니다. 바알의 “번영신학”을 20세기나 21세기로 그대로 끌고 올 수는 없습니다. 당시의 “제국”은 이 시대의 제국들의 동의어가 될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요즘 많이 논의되는 퀴어비평이나 동성결혼 합법화 논란 등에서 고대 그리스나 로마, 고대근동의 동성 간의 성적 행위를 21세기의 LGBTQI와 바로 연결시키는 것은 그 고리가 무척 빈약합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와는 시-공간적, 문화적 배경이 많이 다른 성서의 언표들을 지금 시대에 직접 적용할 수 없는 것처럼, 고대근동의 문헌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로부터 헬레니즘과 비잔틴에 이르는 씨줄과, 또한 고대근동과 고대 이스라엘로부터 유대교와 랍비문헌으로 이어지는 날줄 사이에서, 시대별로 얽히고 풀어지는 지점들을 잘 이해해야만 성경을 비롯한 고대 문헌들이 현재 우리에게 어떤 말을 들려주는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고대인들의 여러 다양한 삶의 측면들 중 특별히 “Sex & Sexuality”라는 주제를 정한 이유 역시 단순합니다. 자극적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교회와 신학계에서 진보와 보수의 전선이 (Homo-)Sexuality 문제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시사적”인 자극성에다,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의 삶과 문화 근간에 흐르는 어쩌면 가장 중요하고 보편적인 테마(중 하나)라는 “비시사적/몰시사적”인 형이하학적 자극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연재는 동성애, 여성성, 순결(처녀성), 남과 여 등 고대인들의 인간관을 전반적으로 살펴볼 계획입니다. 최대한 많은 일차자료들을 소개함으로써 앞으로의 신학논의를 좀 더 정교하고 풍성하게 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1. 고대 그리스의 Sex & Sexuality – 사회적 신분과 성적 역할  



“행복하여라, 나체로 운동을 한 후 집에 가서 아름다운 소년과 하루종일 잠을 자는 사람이여”
(메가라의 테오그니스, 기원전 6세기)



      역사의 어느 시대와 문화를 막론하고, “결혼” 혹은 그에 준하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공간 안에서의 성인 남녀 간의 성적 결합을 금기시하는 사회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재생산을 통한 그 사회의 존속과 유지를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이를 제외하고, 한 사회의 성개념에 있어서 사회적으로 혹은 도덕적으로 용인된 “정상”이라는 범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연 그 사회가 무엇에 “비정상”이라는 낙인을 찍었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럼, 다음의 예에 있는 사람들 간에 성적 결합이 있을 경우, 고대 그리스에서 “비정상적인” 성행위로 간주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1) 25세 미혼남성과 15세 소년
      2) 25세 미혼남성과 25세 미혼남성
      3) 35세 기혼남성과 25세 미혼남성
      4) 17세 소년과 13세 소년
      5) 여성과 여성
      6) 그리스 남성과 외국 여성 


      고대 그리스의 세계가 각 도시국가로 나뉘어져 있는데다 시간적으로도 천 년에 이르는 세월에 걸쳐있기 때문에 이 문제에 단순하게 답을 할 수는 없습니다만, 고대 아테네의 경우, 이 여섯가지의 예들 중 사회적 용인된 “정상적인” 관계는 1번뿐, 나머지는 “비정상적”입니다.
       현대적 개념의 소아성애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고대 그리스의 Sex & Sexuality를 이해하려면 두 가지를 알아야 하는데요, 하나는 그리스 남성의 나이에 따른 사회적 위치(status) 변화, 그리고 각 사회적 위치에 부여된 성적 역할입니다.[각주:1] 고대 그리스의 남자 아이는 대략 12세부터 18세까지 “소년”으로 분류되고, 그 이후 18세부터 30세까지는 “미혼 성인”입니다. 보통 서른에 결혼을 해서 “기혼 남성”으로서 그리스 시민사회의 당당한 한 주체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 “주체”로서의 자유시민은 성적 역할에서도 주체적입니다. 그리고 여성이나 소년은 비주체적인 사회적 신분으로, 성적 역할에서도 수동적입니다. 이것을 Kenneth Dover는 “에라테스(ἐραστής)”와 “에로메노스(ἐρώμενος)”라는 용어로 설명하고 있는데요, 에라테스는 우리말로 “사랑을 주는 자” 정도로 번역될 수 있겠고, 에로메노스는 수동형으로 “사랑을 받는 자” 정도 될 수 있겠습니다(K. J. Dover, 1978). 성 관계에서 에라테스는 “삽입하는 자”, 에로메노스는 “받아들이는 자”로 이해됩니다. 


<에라테스와 에로메노스>

      고대 그리스의 남자아이에게 에로메노스로부터 에라테스로 성장해 가는 과정은 사회의 주체가 되기 위한 교육의 과정입니다. 십대 소년은 에로메노스의 수동적 역할을 충실히 배움으로써, 그 이후 에라테스의 주체적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수동적 에로메노스 단계를 거친 십대 소년은 이십대가 되면 에라테스의 역할을 부여받게 되어, 그 자신의 에로메노스를 갖게 됩니다.[각주:2] 이십대 청년의 이 동성 간의 관계는 그 자신이 30대가 되어 결혼하게 될 때까지 지속됩니다. 즉, 고대 그리스의 소년과 청년시절의 동성 관계는 “진정한 남자”가 되기 위한 통과의례에 다름 아닙니다.
      그러므로 에로메노스의 단계를 벗어난 에라테스가 계속해서 에로메노스의 역할을 하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해서 “수동적인” 성적 역할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키나이도스(κίναιδος)”라고 불리웠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남성적 역할을 포기하고 “여성화”된 사람으로서,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별종” 혹은 “타자”로 이해되었습니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주체로서의 자유시민이 될 수 없던 여성은, 성적 역할에서도 결코 에라테스가 될 수 없는 영원한 에로메노스였습니다. 그러므로 여성 간의 관계는 사회적으로 인정 받는 정상적인 관계는 아니었습니다. 어느 누군가는 에라테스의 역할을 해야했기 때문입니다. [각주:3]

      또한 외국인의 경우, 상대가 남성이든 여성이든 바람직하게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에라테스-에로메노스는 그리스의 자유시민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과정이지, 결코 외국인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외국인을 “바바리안”이라 부르며, 그들을 태어나면서부터 열등한 민족으로 규정했기 때문에, 그들과의 동성 관계뿐 아니라 이성 간의 혼인마저도 용납될 수 없었습니다. 만약 그리스 자유시민에게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자신의 신분을 낮추는 일로 여겨졌습니다.
      이렇듯 고대 그리스 세계의 동성 간의 성적 관계는 지금 이 시대의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의 문제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뿐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의 Sex & Sexuality는 바로 다음 이어지는 로마 시대의 그것과도 세밀한 부분에서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고대 로마의 Sex & Sexuality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 문헌>
    Davidson, J. (2001) “Dover, Foucault and Greek Homosexuality: Penetration and the Truth of Sex,” in Past and Present 170: 3-51.
    Davidson, J. (2007), The Greeks and Greek Love: A Radical Reappraisal of Homosexuality in Ancient Greece, London.
    Devereux, G. (1967), “Greek Pseudo-Homosexuality and the ‘Greek Miracle’” in Symbolae Osloenses 42: 69-92.
    Dover, K. J. (1978), Greek Homosexuality. London.
    Foucault, M. (1985), The History of Sexuality, vol. 2: The Use of Pleasure, trans. R. Hurley, New York.
    B. Isaac, “Foreigners, Greece and Rome,” in The Encyclopedia of Ancient History, Ec-Ge: 2708-2710.
    Percy, W. A. (1998), Pederasty and Pedagogy in Archaic Greece.


ⓒ 웹진 <제3시대>

  1. 사회적 역할(status)과 sexuality를 연결하는 관점은 G. Devereux(1967)에서 시작해서 K. J. Dover(1978)를 거쳐 M. Foucault(1984)에 이르는 소위 “도버-푸코”모델에서 빌려왔습니다. 여기에 이 관점을 보다 정밀하게 세분화해서 고대 그리스 세계를 정리하려 한 D. M. Halperin까지도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 이 모델은 고대 그리스의 세계를 지나치게 단순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J. Davidson: 2001, 2007). [본문으로]
  2. 도리안들의 경우 대부분 한 명의 에로메노스를 갖는 반면, 그리스 동부 지역에서는 여러 명의 에로메노스를 갖는 게 보편적이었습니다 (W. A. Percy, 1998: 146-150). [본문으로]
  3. “레즈비언”이란 말을 탄생시킨 레스보스의 사포의 경우나, “삽입”을 전제하지 않은 여성 간의 성행위에 대해서는 이후에 따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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