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레니즘의 Sex & Sexuality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송민원

(시카고 대학 고대근동학과 Ph.D. Candidate)


   6. 헬레니즘의 Sex & Sexuality –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로마서 1:26-27 개역개정) 


      고대 그리스와 로마로부터 시작하여,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를 거쳐 가나안에 이르는 우리의 여정은 사실 바울의 이 단 한 문장을 이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현대 기독교인들에게는 무척이나 익숙한 이 문장이 실은 얼마나 이상한 문장인지, 그리고 이 한 문장 뒤에 숨겨진 세계는 얼마나 복잡한지 설명을 시작하겠습니다.


[Hellenistic World]


       헬레니즘은 단순히 고대 그리스의 문화가 유럽과 고대근동 전역에 퍼져나간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각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이 엄청난 문화적 도전에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켜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으며,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사상을 새로운 언어-문화적 틀 안에서 이해하고 설명해내려 애썼습니다. 유럽의 서쪽 끝으로부터 인도에 이르는 드넓은 지역 어느 한 곳도 고대 그리스의 문화를 얌전히 수용한 지역은 없습니다. 따라서 헬레니즘 시대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사실 거의 불가능한 작업입니다. 이 방대한 지역의 각기 독특한 전통문화가 그리스의 문화와 서로 어떻게 얽히고 설키는지는 한 명의 학자가 평생을 바쳐도 다 연구할 수 없습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살펴본 “얄팍한” 수준에서나마 전반적인 그림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보자면, 우선 그리스 성인 남자가 어린 소년과 성행위하는 것을 보며 “그리스 병”이라고 끔찍해 하는 로마인이 있습니다. 그 로마인이 남녀를 가리지 않고 하층민이나 외국인들과 성행위하는 것을 보며 “야만적”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그리스인이 있습니다. 이런 로마인과 그리스인들의 행위를 보며 싸잡아 “가증스러운 일”이라며 그 “병”이 옮을까 두려움에 떨고 있는 유대인이 있습니다. 그 세 사람을 보며 별 것도 아닌 일에 호들갑을 떤다며 혀를 차는 이집트인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한 데 모여 사는 곳이 바로 헬레니즘이라는 동네입니다.

       이 중에 우리는, 구약시대로부터 내려온 오래된 전통을 가진 유대인들이 이 헬레니즘의 도전에 어떻게 응전했는지에 집중하기로 하겠습니다. 이들이 헬레니즘에 반응하여 자신의 전통을 어떻게 새롭게 이해했는지, 그리고 이것을 어떠한 언어로 표현해냈는지, 그 중 우리의 주제인 Sex & Sexuality라는 한 단면을 살펴보겠습니다. 이를 위한 좋은 예는 바로 창세기 19장의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성적인 이미지와 연결시킨 예 1, 2]


       이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가 언제부터 “동성 간의 성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의 이야기로 읽히기 시작했을까요? 적어도 구약시대까지는 아닙니다.


“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의 딸에게 교만함과 음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아니하며” (에스겔 16:49)  


        에스겔은 풍족한 삶에도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인색한 점에서 소돔의 죄를 찾습니다. 에스겔이 말하는 “가증한 일”(에스겔 16:47, 50, 51, 52)은 동성 간이든 이성 간이든 성적인 관계와는 무관합니다. 이사야가 말하는 소돔의 죄 역시 사람이 자기 민족, 자기 이웃을 학대하는 것입니다(이사야 3:5-9). 유일하게 예레미야만 소돔과 고모라를 성적인 것과 연결합니다만, 이 역시 동성 간의 관계를 의미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내가 예루살렘의 선지자들 가운데서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그들은 간음을 행하며 거짓을 말하며 악을 행하는 자의 손을 강하게 하여 사람으로 그 악에서 돌이킴이 없게 하였은즉 그들은 다 내 앞에서 소돔과 다름이 없고 그 주민은 고모라와 다름이 없느니라.” (예레미야 23:14)  


       이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를 순전히 “손님 환대”라는 고대근동의 풍습의 관점에서만 읽어내려는 성서학자들이 있는데, 위의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의 예만 보아도 고대로부터 이 소돔과 고모라는 상당히 다양한 시각으로 읽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동성 간의 성행위에 대한 징벌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한 것은 없습니다.

       예레미야의 이 구절은 예루살렘의 선지자들이 벌이는 악행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도 소돔과 고모라처럼 망하고 말 것이라는 비판으로서, 하나의 도시(국가)가 멸망하는 것의 예로 소돔과 고모라를 든 것이지, 소돔과 고모라에서 행해진 악행을 묘사하고 판단하려는 의도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 때의 “선지자”라는 표현이 “무자격 비정규직 자칭 신의 대리인”을 뜻하는 좁은 의미로 사용되었는지, 아니면 제사장이라는 정규직 성직자들까지 다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는 불분명합니다만, 출산과 재생산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모든 성행위를 죄악시하는, 따라서 임신시킬 능력이 없는 “고환이 상한 자나 음경이 잘린 자”(신명기 23:1)마저도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는 이스라엘(= 범 가나안) 사회에서 선지자들 사이에 동성 간의 성행위가 있었다고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가치관을 그대로 지금 사회에 옮겨 오자면, 정관수술을 받은 사람은 목사는커녕 교인도 될 수 없겠습니다). 


       문화적 정체성이 뚜렷하여 사회적 금기가 아주 강하게 작용하는 곳에서는 그 금기에 대해 자주 말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전통적 가치관이 외부의 영향으로 심하게 흔들리는 자리에서야 그 이전에는 문제되지 않았던 지점들이 도드라지게 됩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죄를 동성 간의 성행위로 보기 시작한 시점은 고대 이스라엘의 문화적 정체성이 크게 도전 받은 바로 이 헬레니즘 시대부터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이스라엘은 외세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적이 있습니다.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는 이스라엘 민족 자체가 소멸될 극도의 위기를 겪게 만들어서, 고대 이스라엘의 문화적 뿌리 (종교, 언어, 가치관 등)를 통째로 흔들었습니다만, Sex & Sexuality의 문제에 있어서만은 크게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가나안과 메소포타미아의 성 이해가 근본적으로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점은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에 대한 예언서들의 비판에서 동성행위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헬레니즘 문화의 도전을 받기 시작한 신구약 중간기 시대에 헬라화된 유대인들이 작성한 문헌들을 몇 가지 살펴보겠습니다. 성 개념을 다루는 본 주제와 별 상관은 없습니다만 당시의 유대인들이 얼마나 “헬라적”인 언어로 자신들의 전통을 해석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가 있습니다. “시빌의 신탁(Oracula Sibyllina)” 3권에서 최초의 인간 아담을 묘사하면서, “네 문자로된 아담, 그 이름은 동서남북을 아우른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히브리어로 세 글자(’-d-m)로 된 아담은 그리스어로 넘어와서 a-d-a-m이라는 네 글자로 표시되고, 각 글자는 동(아나톨레), 서(두시스), 북(알크토스), 남(메셈브리아)의 두음이라는 것입니다.[각주:1]


[Sibyls by Raphael, 1514]


       “시빌의 신탁”은 헬레니즘 시대의 유대인(그리고 후에 기독교인)이 그리스와 로마의 성 풍속에 어떻게 반응했는지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입니다. 대략 기원전 2세기 경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시빌의 신탁 3권은 남자아이들에 대한 성적 착취나 매춘에 대해 강력히 비판합니다. 이것은 로마인들과 합세하여 그리스의 성 풍속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원후 1세기(말)에 쓰인 4권과 2세기 초에 쓰인 5권에 나타난 성 풍속에 대한 비판은 동성행위 전체로 확장됩니다. 아마도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이 멸망한 후 그리스만이 아니라 그리스와 로마의 성풍속 모두에게 비판의 화살을 돌린 게 아닐까 합니다.

       중간기 문헌인 지혜서(Book of Wisdom)와 12족장의 서(Testaments of the Twelve Patriarchs)[각주:2] 등은 죄와 우상숭배를 연결짓는 구약적 전통을 동성행위에 끌어옵니다. 우상숭배는 죄이고, 동성행위도 죄이므로 동성행위는 곧 우상숭배이다라는 삼단논법입니다. 이것은 당시의 유대인에게서 볼 수 있는 아주 독특한 발상입니다. 그리스와 로마, 고대근동 전역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동성행위 금지법 어디에도 그것이 “우상숭배”이기 때문에 금지된다는 논리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헬레니즘 시대의 유대인들에게 동성행위는 “외래 풍습”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이러한 외세의 “사악한” 풍습으로부터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켜야만 했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위경 중 하나인 Pseudo-Phocylides(기원전후)는 “간음하지 말라”는 십계명의 의미를 동성행위 금지까지 확장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각주:3]

[Philo of Alexandria by André Thévet, 1584]


       플라톤과 모세, 그리스와 유대의 사상과 풍습을 연결지으려 했던 알렉산드리아의 필로(25 BC - 50 AD 경)가 동성행위를 어떠한 시각에서 바라보았는지 살펴보는 것은 로마서 1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상당히 중요합니다. 후에 로마에게 전수되는 그리스의 방만한 음주문화에서 필로는 동성행위의 원인을 찾습니다.[각주:4] 절제하기 힘든 인간의 성적 욕망이 술에 의해 과도히 발현된 것이 바로 동성행위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리스의 흥청망청한 유흥문화는 필로의 머리 속에서 술에 취해 벌거벗고 잠이 든 노아의 이야기(창세기 9:21)와 오버랩 되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 노아 이야기 자체는 동성행위와 아무런 관련이 없음에도 말입니다.

       여기서 아주 흥미로운 것은, 필로가 (히브리 사상에서는 상당히 낯선) “이성과 감정의 이분법”을 그리스 철학에서 가져온 뒤, 그 이분법을 이용하여 그리스 문화를 비판한다는 것입니다. 감정의 통제는 이성이 할 수 있는데, 음주는 이성의 활동을 약화시키고, 그로 인해 고삐 풀린 감정이 사람으로 하여금, 동성이든 이성이든, 성인이든 어린이든 상관없이 그 욕망을 투사한다는 주장입니다. 필로의 동시대 유대인들, 특히 헬레니즘 문화의 한가운데 있는 요제푸스나 바울 같은 사람들은 이 필로의 주장과 궤를 같이 합니다. 바울이 “비정상적” 성적 행위를 “부끄러운 욕심”, “음욕이 불일 듯”한다는 표현으로 “통제되지 못한 감정의 발산”으로 이해하는 뒷배경에는 이러한 사상사적 흐름이 있습니다. 

       바울은 이 고삐풀린 욕망의 원인을 우상숭배에서 찾습니다: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로마서 1:23). 바울은 필로와는 다르게 통제불능의 욕망은 음주와 향락에 있지 않고, 하나님이 우상숭배자들을 정욕에 사로잡히도록 내버려 두었기 때문으로 이해합니다 (로마서 1:26). 지혜서 등에서 연결된 “죄=동성행위=우상숭배”의 등식에 바울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덧붙입니다.

       사실 좀 더 생각해보면, 바울이 이렇게 복잡하고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었을까 궁금해집니다.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결국 3장 23절의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이니까요. 굳이 어떤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만 꼬집어 비판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저는 이 구절이 동성행위를 하는 자에 국한한 비판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 근거는 이렇습니다. 1장과 3장 사이에 2장의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2:1)라는 구절이 놓여 있습니다. 바울이 아주 길게 우상숭배자들의 특징들(동성행위,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교만 등 도무지 우리 시대의 동성애자들을 묘사한다고는 볼 수 없는)을 나열하는 이유는, 이것이 어떤 특정한 사람들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 그 시대의 “헬라인이나 야만인”(로마서 1:14) 전체를 언급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헬라인과 야만인들을 “판단”하는 “유대인”도 마찬가지로 그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논지입니다. 이 물샐 틈 없는 그물망에서 헬라인이자 유대인인 바울 자신 역시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결국 모두가 죄인입니다.

       사족을 하나 덧붙이고 싶습니다. 다시 맨 처음의 소돔과 고모라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예수님은 이 창세기 19장의 이야기를 어떻게 읽었을까요? 소돔과 고모라는 복음서에서 다음의 구절들에 나옵니다: 마태 10:15; 11:23-24; 누가 10:12; 17:29. 이 중 마태복음 11장과 누가복음 17장에서 소돔과 고모라는 예레미야 23장과 마찬가지로 단순히 멸망과 심판의 상징으로 나올 뿐입니다. 마태복음 10장과 그 평행본문인 누가복음 10장은 제자들이 마을에 들어가 그 곳 사람들에게 대접을 받느냐 못 받느냐에 관한 문맥 속에서 소돔과 고모라를 언급합니다. 즉, 이사야와 에스겔과 유사하게 예수님은 소돔과 고모라를 대접/영접/환대의 이야기로 읽어냅니다. 이 구절들에서 동성행위에 대한 조금의 힌트도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얘기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이해에는 필로나 바울과 같은 동시대의 헬라화된 유대인들의 사고방식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이해는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에 훨씬 가깝습니다. 복음서 전체에서 당대에 “그리스 병”이라 불리던 동성행위에 대한 언급 자체가 없는 것으로 보아, 예수님은 마치 헬레니즘의 파도에도 아랑곳 않는 몇 백년된 화석을 보는 듯 합니다. 그가 시골출신이라서 그럴까요?

       왜 바울은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단 한번도 인용하지 않았을까 항상 궁금했습니다. 바울 당시에 복음서가 없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왔다 갔다는 소식만 전해 듣고, 예수님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고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아무런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는 게 잘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예수님과 바울을 나란히 놓고 나니 한편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헬레니즘의 세례를 받고 자신의 유대전통을 헬라화된 시각으로 재구성한 뒤, 그것을 다시 헬라인들에게 설파한 바울이 듣기에, 이 예수님의 말씀이 얼마나 촌스러운 구닥다리로 들렸을까요. 오백년 묵은 화석을 보는 듯 하지 않았을까 하는 발칙한 상상을 해봅니다.


       (이것으로 총 6회에 걸쳐 고대근동의 Sex & Sexuality를 개괄하는 시리즈를 마치고자 합니다. 앞으로 계속 이 주제를 더 세분화해서 나갈 것인지, 아니면 좀 다른 주제를 건드릴 것인지는 잠시 쉬고 생각해보겠습니다. 제 거친 졸고를 시간을 들여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학위논문과는 거리가 있는 주제의 글을 쓰는 게 제게는 머리를 식히는 좋은 휴식이었습니다.)


ⓒ 웹진 <제3시대>



  1. 시빌의 신탁 영역본을 보시려면 http://www.sacred-texts.com/cla/sib/sib.pdf). [본문으로]
  2. 영역본을 보시려면 http://www.earlychristianwritings.com/text/patriarchs-charles.html; 혹은, http://www.sacred-texts.com/bib/fbe/fbe267.htm [본문으로]
  3. 불역본: http://remacle.org/bloodwolf/poetes/phocylide/sentences.htm [본문으로]
  4. “아브라함에 대하여” 133-14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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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의 Sex & Sexuality – "그들도 우리처럼"





송민원
(시카고 대학 고대근동학과 Ph.D. Candidate)


 

  3. 고대 이집트의 Sex & Sexuality – "그들도 우리처럼"

  

       “너는 발기를 못할 것이야, 널 고자로 만들어 버리겠어, 오 아포피스여, 태양신 레의 적!” – 이집트 사자의 서


      여태껏 살펴본 그리스와 로마와는 전혀 다른 세계, 고대 이집트에 도착했습니다. 그리스와 로마에서 “사회적 신분”이나 “계급”에 따라 각 사회계층의 Sex & Sexuality가 달라졌다면, 이집트에서는 신분이나 계층에 따른 변화를 찾기 어렵습니다. 굳이 찾자면, 파라오를 비롯한 왕족 일가에 한한 근친혼의 풍습 정도 들 수 있겠습니다. 이 땅에서 신의 대리인을 자처하던 이집트의 왕족들이 신들을 모방하여 근친혼을 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태양신 라의 손주인 땅의 신 게브와 밤하늘의 여신 누트처럼, 여동생 네프티스와 결혼한 세트, 그리고 그를 질투한 오시리스처럼, 이집트 왕실의 계보 역시 복잡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이집트 18왕조 아흐모세 1세는 그의 누이 아흐모세 네페르티리와 결혼해 아이들을 낳았고, 여자 파라오인 하셉수트는 이복형제 투트모세 2세와 혼인하였습니다. 아멘호텝 3세와 그의 아들 아케나텐(아멘호텝 4세)은 둘 다 자신들의 딸들과 결혼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근친혼에 대한 금지나 비판이 이집트 문헌에서 발견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근친혼이 이집트 전체에 널리 퍼져있던 풍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일단 이집트 왕실에서 근친혼이 신화 속에서처럼 실제로 자주 일어난 일이 아니었고, 게다가 이집트의 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한 서구학자들의 무지가 사태를 더 악화시킨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집트어의 “자매”라는 말은 반드시 같은 부모 밑에 태어난 여자형제를 가리키지 않습니다. 아내나 애인을 부르는 호칭 역시 “자매”이고, 심지어 이모나 조카한테도 같은 호칭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라는 호칭 역시, 생물학적 부모 외에도 조부모나 그 위의 조상들에게도 적용되었습니다. 우리 문화에서 남편을 포함해 연상의 남자들을 “오빠”라고 부르는 것, 음식점 종업원을 이모라고 부르는 것처럼,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이에서도 형, 동생, 누나, 언니, 아저씨, 아줌마라 부르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렇게 “가족의 언어”로 사회적 관계를 표현하는 것에 익숙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동양적”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근대 서구학자들이 이러한 상징적인 가족의 언어를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서 근친혼이 이집트 왕실 혼례의 규범인 듯한 오해가 생겼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한 가지 더 고려해야할 것은 이집트 왕실에서 “결혼”의 의미는 남녀가 혼인하여 자녀를 낳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딸과 결혼한 파라오들의 경우, 아버지와 딸이 실제 부부관계를 갖는다는 것이 아니라, 딸들에게 “신의 아내”라는 호칭, 그리고 그 호칭에 걸맞는 대우를 내리기 위한 “정치적 행위”로 보는 게 더 타당합니다.   


<Mummy with a pennis>


    그러면, 고대 그리스나 로마, 다른 고대근동지역의 문화와는 다른 이집트만의 독특한 Sex & Sexuality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우선 죽은 사람들의 성생활까지 염려하던 고대 이집트인의 내세관을 들 수 있습니다. 사실 사람이 죽은 후에 현세의 삶과 비슷한 삶이 내세에도 계속된다는 믿음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이나 메소포타미아 등 고대근동 전역에서 발견됩니다. 제사 때 조상들에게 바치는 먹거리들은 내세에서도 사람들이 먹고 마셔야 한다는 믿음을 반영하죠. 하지만 죽은 후에도 성생활까지 계속된다는 내세관은, 제가 아는 한 이집트가 유일합니다. 이집트인들은 죽은 사람들을 장사지낼 때 이 부분까지 아주 세심하게 배려했습니다. 남성의 성기 모양이나 여성의 가슴 모양을 흉내낸 부속물을 미이라에 부착시키기도 했고, 무덤 안에 요즘의 섹스토이 같은 다산의 상징물들을 넣어놓기도 했습니다. 


<Egyptian Fertility doll>


    이렇게 “노골적인” 상징들 말고도 이집트의 무덤에서는 다양한 성적 상징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무덤에서 발견되는 가장 흔한 그림은 갈대로 뒤덮힌 늪에서 사냥하는 것이나 혹은 잔치상을 벌이는 장면입니다. 이런 그림들은 아마도 “(막대기를) 던지다”라는 이집트어 동사가 “창조하다, 자손을 낳다”라는 의미가 있고, “창을 던지다"라는 동사는 “사정하다, 임신시키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생겨난 일종의 언어유희일 것입니다. 또한 이집트어에서 “갈대 숲을 거닐다”라는 말은 우리나라의 “물레방앗간”에 담긴 성적 상상력과 맥이 닿는, 남녀상열지사를 뜻합니다. 잔치상이 묘사된 무덤 그림에서는 주로 다산의 상징인 거위나 오리, 푸른 수련 등의 그림이 그려져있고,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거나 나체인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이렇듯 “그들도 우리처럼” 죽어서도 성행위를 하며 자손을 낳는다는 믿음은 이집트를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발견되지 않은 이집트만의 독특한 발상입니다.


    또한 난자와 정자의 결합으로 생명이 잉태된다는 의학적 지식이 없었던 이집트인들은 생명의 탄생에는 남성의 정자만으로 충분하다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스스로 있는 자”인 창조신 아툼(아텐)은 자위행위를 통해 쌍둥이 자녀를 얻습니다.


    “오 아툼이여, 그는 온(헬리오폴리스)에서 자위행위를 하였다. 자신의 성기를 움켜쥐고서 절정을 맞이하였다. 그리하여 쌍둥이 슈와 테프누트가 탄생하였다.” 

(피라미드 텍스트 1248-1249)[각주:1]


    생명을 창조하는 힘이 정액에 있다고 믿는 고대 이집트에서는 따라서 남성의 성적 능력이 특히 강조됩니다. 기원전 4천년대부터 존재했던 가장 오래된 신들 중의 하나인 창조신 “민”의 상징은 거대한 남근입니다. 보통 이렇게 오래된 신들은 신화 속에서 사라지거나 이름만 남아 그야말로 유명무실하게 되는데 반해, 이 신은 다른 젊은 신들과 계속 융합하여 헬레니즘 시대까지 그 놀라운 생명력을 유지합니다.[각주:2] 이렇게 남성이 강조되는 사회에서는 발기불능이야말로 가장 큰 저주이겠습니다. 사후세계의 안내서인 이집트 사자의 서에 따르면, 죽은 자들은 이집트 버전의 지옥의 신인 아포피스(아펩, 혹은 아페피)를 만나면 그를 발기불능으로 만드는 주문을 외워야 합니다.[각주:3] 




<Egyptian deity Min>


    마찬가지로 여성들 역시 임신, 출산, 다산이 강조됩니다. 지혜와 용기로 죽은 아들 호루스를 살린 어머니 여신 이시스야말로 고대 이집트 여성들의 롤모델이었습니다. 반면 이시스의 자매이자 전쟁의 신 세트의 아내인 네프티스(네베트-헷)는 아이를 낳을 수 없었습니다. 이시스가 생명과 재생의 여신이라면 네프티스는 죽음과 사막의 여신이었습니다. 구약성서에서 많이 등장하는 장면들처럼, 이집트 사회에서도 자녀가 많은 여자들이 복받은 여성으로 여겨졌습니다.


    남성의 생산능력과 여성의 출산능력이 강조되는 사회에서 혼외정사는 당연히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두 형제의 이야기”라는 문헌을 보면, 간통을 저지르다 발각된 여인이 살해당하여 그 시체가 개에게 던져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람이 죽기 전에 자기 일생을 뒤돌아보며 적은 “고백문”들에는 “나는 혼인한 여성의 집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라는 대사들이 나오기도 하죠.[각주:4] 이 고백문들은 “부정적 고백(Negative Confessions)”라 불리는데, 그 내용이 “나는 무엇 무엇을 하지 않았습니다”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도둑질, 살인, 간통, 신성모독 등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 내세에서 더 나은 삶을 얻기 위한 전제조건이었던 듯 합니다. 하지만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라는 고백도 나오는 것을 보면, 고백자들이 반드시 사실대로 고백한 것만은 아닌 듯 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고대 이집트 문헌에서 혼외정사를 법적인 차원에서 다루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혼인예식이나 결혼생활 전반에 관한 법률적 문헌이 발견되지 않은 것을 보면, 이집트에서 결혼이란 법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 다루어지는 문제로 보여집니다. 결혼이란 두 남녀가 한 집에 같이 살게 되면서 시작되고, 둘 중 하나가 집을 떠나면 그 관계는 종료됩니다. 결혼이라는 것 자체가 법적인 문제가 아니므로, 혼외정사 역시 법적인 문제가 될 수 없었습니다. 후대의 신왕국 시대에 오면 혼외관계에 관한 법률적 문제를 다루는 파피루스들이 발견되긴 합니다만, 대부분 강간이라든가 강도 등 법률적 문제들과 연관된 경우들입니다.[각주:5]


    그렇다면 생산-출산과 관련이 없는 동성 간의 성적 관계는 어땠을까요? 사실 이집트 문헌에서 이 부분에 관한 자료는 극히 적습니다. 일단 신화에서는 세트와 호루스의 일화가 유명한데요, 세트의 꾀임에 빠져 세트와 호루스 두 남신들 간에 성관계를 갖게 되는데, 이 때 호루스의 기지로 세트는 자신의 정액을 먹게 되어 임신하게 됩니다. 정액만으로 임신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계로 내려오면, 중왕국 시대의 문헌 “네페르카레와 사세네트 이야기”에서 네페르카레 왕은 그의 장군들 중 한명과 밤에 몰래 성적 관계를 갖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다른 사람들이 이 사건을 엄청난 스캔들로 여긴 것을 보면 이 시대에 동성 관계를 부정적으로 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앞에 언급한 “부정적 고백문”에서도 “나는 다른 남자와 성적 관계를 갖지 않았습니다”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여성들 간의 동성 관계에 관한 이집트 문헌은 거의 없습니다. 거의 유일한 문헌이라 할 수 있는 P.Carlsberg XIII는 꿈 해몽에 관한 텍스트인데, 여성이 다른 여성과 잠자리를 갖는 꿈은 불길한 징조라고 되어있습니다. 이렇듯 이집트 사회에서 동성 간의 성적 관계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이 역시 법적 처벌의 대상은 아니었습니다. 이집트의 Sex & Sexuality는 법률적 차원의 문제가 아님을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이불 속의 일을 국가가 처벌할 수 없다는 이유로 21세기나 되어서야 간통죄를 폐지한 대한민국에 비한다면, 반 만년 이상 고대 이집트가 앞서 있는 듯 보입니다.


<Niankhnum>


    고대 이집트의 동성애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두 사람이 바로 니앙크눔과 크문호텝입니다. 사카라에서 이 두 남자의 합동묘를 처음 발견한 고고학자들은 이 두 남성이 마치 부부처럼 묘사된 그림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곧 이 둘에 관한 다양한 이론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이 둘이 형제다, 쌍둥이다 등등 호모포빅한 해석들이 제기되었습니다. 이 둘은 이집트 왕실의 매니큐어 담당자들이었는데, 파라오의 손톱을 직접 손질하는 꽤나 고위직 공무원이었습니다. 이 무덤에 그려진 그림들과 상형문자들을 통해 이 둘 모두 각기 아내와 자녀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둘의 관계가 정말 무엇이었냐 하는 것은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무덤까지 함께 쓰는 두 동성의 친밀함을 묘사하는 것이 고대 이집트에서는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Turin Erotic Papyrus>


    이렇듯 고대 이집트는 신화나 일상생활에서 다양한 성적인 표현을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점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바로 튜린 파피루스라 불리는 파피루스 55001입니다. 기원전 12세기 람세스 시절에 만들어진 이 파피루스에는 각종 다양한 체위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이렇게 성적으로 개방적이고 노골적일 리가 없다고 믿었던 초기 이집트 학자들은 이 그림을 인간이 아닌 괴물들의 묘사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학자들의 오랜 노력 끝에 복원된 그림을 보면 아주 선명하게 남녀의 모습이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생명과 성, 죽음과 내세를 아주 자연스런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인 고대 이집트인들이 문화적으로는 현대인들보다 훨씬 앞서 있던 게 아닌가 라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 웹진 <제3시대>

  1. 출처: Ancient Egyptian Worldview Expressions: http://web.archive.org/web/20131116121410/http://www.albany.edu/faculty/lr618/we4.html [본문으로]
  2. 이집트 중왕기 때는 호루스와 융합하여 민-호루스가 되고, 신왕국 때는 아문과 융합합니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그리스신화의 목동의 신 판과 동일시되어 살아남게 됩니다. [본문으로]
  3. R. O. Faulker and O. Goelet (1994), The Egyptian Book of the Dead, 104. [본문으로]
  4. 이 부정적 고백문들의 예들을 보시려면, http://www.touregypt.net/negativeconfessions.htm. [본문으로]
  5. C. J. Eyre (1984), “Crime and Adultery in Ancient Egypt,” Journal of Egyptian Archaeology 70, 9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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