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우파'와 대형교회, 여섯 번째[각주:1]


교회건축과 대형교회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1990년대’라는 시대성, 그 반영으로서의 교회의 캐릭터화


    앞의 글들에서 나는, 1990년대 중반 이후 개신교 교세의 정체 상황에서 성장을 거듭하여 대형교회의 대열에 진입한 교회들 중 사랑의교회와 온누리교회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였다. 그것은 이 교회들의 빠른 성장이 ‘1990년대’라는 변화된 시대성을 두 가지 다른 방식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것을 ‘이성의 기획으로서의 제자훈련’과 ‘감성의 기획으로서의 귀족영성’이라고 요약하였다. 

    그 변화된 시대성에 대해 좀더 살펴보자. 권위주의 시대는 절대권력의 영웅주의적 통치자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오직 충성이라는 덕목으로 무장한 수동적 국민이어야 했다. 이 시대에 사회와 함께 동반성장을 이룩한 교회들도 카리스마적 지도자라는 절대일인에 대한 충성심으로 결속된 종교집단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정치에서 영웅주의는 퇴출되었고 ‘주권적 존재’로서의 시민이 민주주의를 위한 주역으로 부상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변화의 직접적 계기는 대통령 직선제의 도입이었다. 이제 정치인은 주권적 시민의 선택을 받기 위해 자신과 자신의 세력을 캐릭터화해야 했다. 여전히 대통령은 ‘제왕적 권력’을 장악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주권적 시민의 선택을 받기 위한 노력이 절대 필요한 시대에 돌입한 것이다. ‘보통사람들의 국가’,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같은 캐치프레이즈(catch phrase)들은 대통령과 집권세력이 시민에게 어필하기 위해 새 정부를 캐릭터화 하려 했던 대표적 흔적들이다. 

    한데 이러한 캐릭터 정부의 출현에서 중요한 전제조건은 주권적 시민의 대두에 있다. 이때는 국민의 생활수준이 한결 높아졌고 고학력층도 비약적으로 늘어난 시기다. 그 무렵 사회에는 민주국가를 설계하기 위한 무수한 강좌와 공부모임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수많은 저작들이 출간되었다. 인문・사회 비평적 계간잡지의 전성시대이기도 했고, 무수한 논쟁이 벌어지던 때이기도 했다. 전례 없는 광범위한 지적 탐구 붐이 일어난 것이다. 주권적 시민의 대두는 대안적 사회 설계를 위한 이와 같은 활발한 이성적 탐구의 과정에서 나타났다. 

   한편 이 시대는 민주주의의 시대인 동시에 자본주의의 시대이기도 했다. 독재권력의 손아귀에서, 국민만이 아니라, 기업도 벗어난 것이다. 아니 실은 기업들은 거의 방임에 가까울 만큼 무분별한 자율공간으로 풀려났다. 고삐 풀린 기업들은 어떠한 공공적 책임의식도 없이 게걸스런 욕구를 무한히 발산하는 시장을 만들어 시민을 유혹했고, 시민은 그곳에서 탐욕의 노예가 되어 자본주의적 경쟁의 시스템 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그런데 한번 들어가면 헤어 나오기 어려운 그 무한경쟁의 질서 속에서 사람들은 몸과 정신이 병들어 갔다. 그 시스템에서 경쟁력을 지닌 이들도 예외 없다. 하여 자본주의에서 벗어날 수는 없어도 그 체제가 일으키는 질병에서 벗어나려는 이들은 온갖 치료(therapy)와 치유(healing) 프로그램의 열광적 소비자가 되었다. 이때 치료가 이성의 프로그램이라면 치유는 감성 프로그램의 성격이 강하다. 특히 종교적 치유는 감성의 기획으로서 질병으로부터의 해방을 다룬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개신교 일각에서 각각 이성과 감성 부문의 종교적 상품으로 캐릭터화된 신앙 프로그램들이 제시되었다. 그리고 수많은 주권교인들은 그것을 열렬히 소비하였다. 이 두 교회의 빠른 성장은 바로 이렇게 1990년대라는 시대성을 반영한 결과였다.  


1980년대, 교회건축과 대형교회의 탄생


   시간을 조금 앞으로 돌려보자. 캐릭터화된 대형교회가 탄생하게 되는 1990년대, 교회의 위기가 엄습해오던 그 시기와는 달리, 한국교회가 승승장구하던 1980년대에 그 교회들은 이미 대형교회로 급성장하고 있었다. 즉 그 시대는 캐릭터화된 교회들이 대형교회로서 탄생하던 때였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대형교회의 탄생이 특정 지역에 몰려 있다는 점이다. 강남, 강동, 분당이 그곳이다. 왜 이곳인가?

    이향순과 이광순의 공동연구인 〈도시 구조의 변동과 대형교회의 성장〉(《선교와 신학》 10집. 2002.12)은 이에 대한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한다. 이 지역들에서 대형교회가 집중된 것은, 근대도시로 서울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국가 정책의 효과로 발생하게 된 도시구조 변동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강북의 사대문 인근과 영등포 지역에 한정된 근대도시 서울의 첫 번째 발전 단계는 과잉도시화(over-urbanization)다. ‘과잉도시화’란 도시의 수용능력을 크게 초과하는 인구 밀집 현상을 뜻한다. 이에 정부는 인구 분산을 위해 도시를 확장하는 정책을 취하는데 이것이 두 번째 발전 단계다. 이때 영동(영등포 동쪽 지역을 가리키는 용어인데, 오늘의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지역 일대를 가리킨다.) 지구가 개발되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그 옆의 강동지역까지 확장된다.(이때 강서, 강북 지역도 대대적인 개발이 이루어지지만 강남과 가까운 강동지역이 과잉발전 하였다.) 또 인근 지역에 신도시들을 개발하여 서울의 부속도시화하는 일련의 단계를 통해 메트로폴리탄(Metropolitan) 서울이 완성된다. 여기서도 강남과 인접한 분당이 다른 신도시들보다 월등히 발전한다. 이 두 번째 단계는 1970년대부터 시작되지만, 1980년대에 와서 본격화되고 1990년대에 절정에 이른다. 

'영동' 신시가지 조감도 (1971)


    그런데 강남 개발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정부는 안정계층을 이 지역으로 유치하는 조치들을 노골적으로 밀어붙인다. 특히 이곳에 현대화된 아파트 대단지가 조성됨으로써 자산능력이 있는 젊은층이 대대적으로 이주하게 된다. 그리고 이 지역에 대한 다양한 특혜조치가 마련된다. 여기에 토건세력들이 이러한 정책기조에 기생하여 활개 치면서 지대가 다른 지역들보다 놀라울 정도로 크게 상승한다. 즉 이곳으로 이주한 젊은 중산층 이주민들은 지대 상승으로 인해 보다 안정된 중상위계층으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강남과 그 주변의 지역들에서 대형교회로의 성장이 집중되었다는 점을 상기하자. 그것은 무엇보다도 대단지 아파트로 인구집중이 빠르게 일어난 덕이다. 강남의 인구 증가는 1970년대 빠르게 증가하다 1980년경부터 급가속화되기 시작해서 1990년경 절정에 달하고, 이후 거의 큰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다. 즉 강남으로의 인구 유입의 급격히 일어난 시기는 1980년대이고, 바로 이때에 인구가 많이 유입된 지역들에서 대형교회들이 탄생했다. 그것은 1980년대는 인구 유입 현상과 대형교회 현상이 서로 정비례 관계였음을 뜻한다.  

    담임목사들이 카리스마적 리더십으로 교인들의 총화를 이룩했고 그것을 성장에 집중 투여함으로써 대형교회로의 성장이 이룩되었다는 공식은 이때에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다만 이 시기의 특이점은 그 리더십이 ‘교회 건축’과 긴밀히 결합되어 있다는 점에 있다. 그들은 교인들을 총동원하여 대규모 교회 건축에 성공하였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교회의 비약적 성장의 기폭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즉 강남, 강동, 분당이라는 지역의 특성과 교회의 독점적 리더십이 결합된 결과 대규모의 교회 건축이 실현되었다는 얘기다.  

    대규모의 교회 건축은 막대한 비용을 조달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이때 수완 있는 목사들은 교인들을 설득하여 발 빠르게 개발 초기에 큰 땅을 비교적 저렴하게 매입하거나 대단지 아파트의 종교부지 입주권을 획득하는 데 성공한다. 이것은 비용 절감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하지만 교회당 건축은 일반 건조물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 게 상례다. 하여 교인 규모에 비해 월등히 큰 교회당 건축을 시도하는 것은 무모한 계획일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교인들을 설득하는 것은 카리스마적 리더십의 특별한 능력에 속한다.  


광림교회 담임목사인 김선도는 신동아 그룹의 회장으로부터 3억 원을 빌렸고 교인들로부터 2억 원을 기부받아 1976년부터 강남구 서초동에 대규모의 교회당 건축을 시작하여 1978년 완공한다.


    물론 그것은 교인들이 그럴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강남, 강동, 분당이 서울과 인근 신도시의 다른 곳들과 명확히 대비되는 점은 대규모의 중상위계층이 유입되어 들어오고 지대의 급격한 상승으로 그들의 자산이 빠르게 증가했다는 사실에 있다. 그들은 지대로 인한 초과이윤의 상당부분을 건축헌금으로 교회에 기부했다. 그 결과 대규모의 교회당이 건축되었고, 많은 이들이 이 교회들로 몰려들어왔다. 

    오늘날 강남 못지않은 중상위계층의 밀집지역이고 지대가 급격히 상승한 곳인 목동과 과천의 경우에는 대형교회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그것은 이 지역의 중상위계층의 규모가 강남보다 훨씬 적었기 때문이다. 그 인근지역은 여전히 중하위계층이 많고 지대상승이 상대적으로 지체된 곳들이기에 대규모 교회당 건축을 위한 재원 마련이 여의치 않았던 것이다.  



요약


    이것을 글 서두에 언급한 교회의 캐릭터화와 연결시켜 정리해보자. 강남의 교회들은 1980년 어간부터 빠르게 증가하는 젊은 중상위층을 교회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함으로써 신흥교회들임에도 급격한 성장을 이룩하였다. 그 성공의 주된 요인은 대규모 교회당의 건축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교회 건축은 지대의 상승과 밀접히 관련된다. 이때 지대로 인한 초과이윤을 건축헌금으로 기부하도록 이끈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교회 건축과 대형교회로의 부상 이후 얼마 되지 않아 많은 교회들은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은퇴 혹은 사망의 국면에 도달하게 된다. 이것은 흥미롭게도 교회 권력구조가 변화하는 기반이 되었다. 

    가뜩이나 이들 교회의 교인들인 젊은 중상위계층은 고등고육을 받은 데다 민주화와 소비사회화를 겪으면서 선행세대보다 더 주권의식이 강했다. 반면 신학대학은 퇴조하고 있었고, 목회자들의 수준은 퇴화했다. 교인들의 의식에서 이러한 지적 역전 현상이 뚜렷이 각인된 시기가 1990년대 이후다. 바로 이 시기에 많은 엘리트 교인들이 교회를 떠도는 현상이 심화되었고 그들이 교회에 정착하는 과정은 주체의식의 차원에서 그들이 주권교인이 되는 것과 겹친다. 이러한 상황의 초기에, 떠돌이 교인을 정착시키는 데 성공한 대표적 교회가 사랑의교회와 온누리교회다. 시대성과 부합하는 캐릭터화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이러한 양적인 성공뿐 아니라, 수많은 교회들이 이 두 교회의 캐릭터를 벤치마킹하여 모방하는 붐이 일어났다는 점에서도 이 두 교회는 1990년대 한국의 대형교회 현상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교회의 모델은 2천 년대에 오면 그 위상이 격하되거나 좌초해버렸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좀더 자세히 이야기하겠다.) 하지만 그것이 대형교회의 캐리터화 현상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더 많은 교회들이 다른 방식으로 다양하게 캐릭터화를 모색하는 시대가 이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주권교인의 신앙적 정치문화가 새롭게 형성되어 갔다. 한국사회의 보수주의는 1990년대 이후 이렇게 변모하면서 발전하고 있었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주간경향>에서 연재하고 있는 '김진호의 웰빙-우파와 대형교회'의 다섯번째 글입니다.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606271603271&code=11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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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우파'와 대형교회, 세 번째[각주:1]


'주권교인'의 탄생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카리스마적 리더십


    여의도순복음교회 부설 교회성장연구소 소장이던 홍영기의 책 《한국 초대형 교회와 카리스마 리더십》은 한국의 대형교회에 대한 기념비적 연구서다. 이 책은 한국의 초대형교회(Giga-Church, 일요일 대예배에 출석한 성인교인이 1만 명 이상인 교회) 13개를 분석한 것인데, 이 책의 핵심 논지는 담임목사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이 교회 성장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데 있다. 저자는 초대형교회로 한정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지난 연재글에서 보았듯이, 나는 한국의 모든 교회들이 대형교회(일요일 대예배에 출석한 성인교인이 2천명 이상인 교회), 나아가 초대형교회로 성장하게 되는 데 있어 이 요소는 매우 중요한 전제조건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다음 글들에서 이야기하겠지만 대형교회로 성장하는 데 있어 카리스마적 리더십만큼이나 중요한 다른 요소를 언급할 수 있다. 그것은 교회 건축과 관련된다.)

    한편, 저자의 호교론적 설명과는 다르지만,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내 식으로 이야기하면, 교회의 가용자원에 대한 독점적 지배능력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것을 성장에 집중 투여함으로써 성공한 교회들이 (초)대형교회들이었다는 얘기다. (물론 지난 글에서 얘기한 것처럼 카리스마적 리더로서 자원의 독점에 성공한 이들은 중・소형 교회에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카리스마적 리더십이 ‘장기간’ 유지되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대형교회들에선 담임목사는 20~40년간 교회의 절대적 권력자였고, 그 이후에도 은퇴목사로서 사실상의 지배력을 사망 때까지 유지했다.

    이와 같이 1인의 카리스마적 리더가 성장을 위해 가용자원을 장기간 집중 투여함으로써 성공을 실현해낸다는 것은 교회뿐 아니라 국가, 그리고 기업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특히 1960~1990년 사이에 성장지상주의와 카리스마적 리더십의 결합은 한국사회에서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주권교인'의 탄생


    한데 1990년 어간 이전까지 대형교회의 등장은 개신교 교세의 증가와 더불어 나타났다. 반면 그 어간 이후부터 교세의 증가 추세는 급격히 쇠락하게 되었고, 최근에는 마이너스 성장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바로 이런 시기에도 (초)대형교회로 빠르게 성장하는 교회들이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1990년 어간 이후에는 교인들의 ‘수평이동’이 여러 (초)대형교회를 탄생시키는 주된 요소였다는 사실이다. 즉 다른 교회에서 이동한 이들이 대대적으로 유입됨으로써 (초)대형교회로 성장한 교회들이 많다는 것이다.

   1992년의 《기독교대연감》에는 1991년의 한국개신교 인구가 일천이백만 명이 조금 넘는 것으로 나온다. 또 2013년 한국목회자협의회가 전문기관에 의뢰하여 조사한 바에 따르면 22.5%가 개신교도다. 이는 대략 113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한데 2005년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전수조사된 개신교 인구는 18.3%, 860여만 명에 불과하다. 거의 3~4백만 명이나 되는 통계상의 차이는 주로 중복교적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만큼 수평이동이 많다는 얘기다.

    타종교인 또는 비종교인에서 개신교 신자가 되는 이는 대개 교회를 잘 모르는 자이기 때문에 교회의 훈육 대상이 된다. 하여 이런 신자들이 많던 1990년 어간 이전에는 새신자 양육 프로그램이 많은 교회들로부터 각광을 받았다. 하지만 1990년 어간 이후에는 가정회복 프로그램이나 자기계발 프로그램 같은 가족과 사회생활을 위한 신앙적 주체형성 프로그램이 더 활발하다. (이에 대해서는 이후 게재될 글들에서 더 자세히 이야기할 것이다.) 이것은 새신자보다 수평이동한 교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교회들이 더 많이 활용한 결과다.

   이러한 수평이동 현상이 더 중요해졌다는 사실은 선교 상황의 변화를 의미한다. 도시의 인구집중이 많지 않고 사람들이 넓은 곳에 산개하여 살고 있으며 교통수단이 덜 발전하여 신속한 이동이 여의치 않은 사회는 교구 개념이 발전하기 마련이다. 이런 사회에서 수평이동 현상은 별 의미가 없다. 하지만 서울처럼 인구가 과잉 집중된 사회, 그리고 교통수단이 대단히 발달한 사회에서 교회는 일종의 종교시장의 상품처럼 선택되고 소비된다. 이때 디지털화된 콘텐츠가 무한 유통되는 정보사회의 매스미디어가 충분히 발달하면 선택될 상품의 가치는 더 다양화되고 더 세밀화되어 전시된다. 그러므로 수평이동 교인들은 교회들에 대해 더 많고 깊은 정보를 가지고 주체적으로 판단하여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주목할 것은 이러한 정보능력은 사회적 지식을 더 많이 활용할 수 있는 능력과 비례한다. 즉 사회적 엘리트일수록 수평교인일 가능성이 많다. 

    이런 교인들을 더 많이 끌어들임으로써 여러 (초)대형교회들이 탄생했다. 물론 이 교회들에서도 1인의 카리스마적 리더가 모든 가용자원을 독점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이의 성장전략이 성공하려면 수동적인 새신자를 훈육하는 데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더 주체적인 신자들을 위한 선택지를 확대하여야 한다. 

    이런 현상은 비단 이 시기에 (초)대형교회로 성장한 교회들만의 현상은 아니다. 교인들의 유출을 막아야 하는 교회들, 그리고 다른 수평이동 교인들을 유치하려는 교회들도 과거와는 다른 방식의 성장전략을 강구해야 했다. 하여 이러한 상황은 교인들의 주권이 한결 강화되는 상황과 겹쳐서 전개된다. 나는 이를 ‘주권교인의 탄생’이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것을 너무 과장해서는 안 된다. 아직 교회제도는 1인의 카리스마적 리더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고, 신학도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더욱이 대형교회들의 경우는 그 1인의 위상이 여전히 훨씬 더 중요하다. 요컨대 ‘주권교인’은 제도에 있어서는 그 맹아적 형태로만 존재할 뿐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런 표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주권교인들의 교회에서의 활동 영역은 제도가 보증하고 있지 않음에도 점점 확장되고 있고, 때로는 매우 중요한 위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연재에서 계속 이야기할 ‘웰빙-우파’의 등장은 바로 이 주권교인의 등장과 상당부분 겹친다. 그러므로 이어지는 글들에서 주권교인에 등장의 현상과 의미에 관한 이야기들이 다루어질 것이다.


'주의 종'들의 천민화


    선교 초기부터 개신교는 많은 학교들을 만들었다. 여기선 신분과 성별의 차이가 상대적으로 훨씬 적은 가운데 근대적 교육이 수행되었다.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 이후 미국계 장로교의 성공과 더불어 미국 유학생들 가운데 신학교육을 받은 이들의 비중이 대단히 높게 되었다. 1945년 이후 교회는 한국사회에서 가장 많은 자원을 가진 사회세력이 되었고, 교회의 엘리트가 된다는 것은 그 자원들에 대한 통제능력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1950~1980년대, 그러니까 대학생들의 수가 그리 많지 않던 시절에 목사들은 교회뿐 아니라 지역사회의 유력한 엘리트의 하나였다.  

    하지만 1980년대 어간에 개신교 교세가 초고속으로 성장하던 때에 많은 교단들은 편법을 쓰기 시작했다. 국가로부터 학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신학교와 신학생들을 양산했다. 이들은 교단 내에서 심학 차별대우를 받았기에, 성공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교회 성장을 추구하곤 했다. 그런 이들 중 일부가 중・대형교회를 만들어냈다.

    물론 높은 학력을 인정받는 신학대학 졸업자들의 경우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성장만을 위해 올인하던 많은 목회자들은 그만큼의 지성을 갖출 여유가 없었다. 한데 교회가 커갈수록 교인들 가운데 높은 학력을 보유한 이들이 많아졌고, 이는 ‘학력위조’에 대한 필요를 증가시켰다. 요컨대 1980년대를 전후로 하는 시기에 많은 목회자들의 성장지상주의적 전략들은 목회자들에 대한 사회적 위상을 격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하여 1990년대에 이르면 신학교의 위상은 급락한다. 성장이 둔화되면서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교권세력이 신학교에 대한 지원을 과거만큼 크게 확대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교육에 대한 통제를 본격화했다. 이것은 신학자들로 하여금 근대적 학문의 공론장에서 스스로를 유폐시키게 했다. 신학생들도, 교회 성장세의 급격한 둔화로 인해 취업시장이 얼어붙게 되자, 성장지상주의적 기능성 신학에 몰두했다. 그것은 인문학으로서의 신학이 외면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여기에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역할이 크게 둔화되면서 기독교의 국제적인 네트워크가 와해되자 신학대학은 근본주의 일색의 교회에 완벽히 포위되어 버렸다.

    교회 사역자들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중・소형교회의 많은 엘리트 교인들이 수평이동하여 몇몇 대형교회로 속속 옮겨가고 있었고, 새로운 신자의 유입은 거의 멈춰버렸다. 또 적잖은 이들이 다른 종교로 옮겨가거나 비종교인이 되었다. 교회성장의 새로운 비법으로 유행하는 각종 프로그램들은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최소한의 효과를 볼 수 있는 것들이어서 중・소형교회들에선 효용성이 매우 낮았다. 하여 매년 1천 개 이상의 교회들이 사라져갔고, 생존하고 있는 교회들도 점점 상황은 악화되거나 현상유지에 급급할 뿐이었다. 더구나 파행화된 신학교육으로 인해 신학적 소양이 매우 낮은 이들이 교회로 유입되었다. 악화된 선교환경을 해석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이들에 의해 운영되는 교회들이 난무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 도시교회에서, 특히 서울의 교회들에서 목회자나 신학생은 가장 지적 수준이 낮은 사람에 속한다. 교인들은 그것을 잘 알고 있고, 이것은 목사들의 주요사역의 하나인 설교를 경청하지 않게 했다. 이것은 목사에 대한 존경심의 붕괴를 의미했다. 하여 ‘주의 종’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했던 목사들은 실제로 천민적 존재로 추락했다.


'증오의 정치'와 주권교인의 이반


    최근 대외적으로 선교의 위기가 심화되고 대내적으로 존경심의 붕괴로 인한 지도력의 위기에 놓인 많은 목회자들을 결속시키는 교계의 기획들이 등장했다. 그중 하나가 ‘증오의 정치’의 활성화다. 자신들이 겪고 있는 위기를 직시하기보다는 다른 것에 투사하여 그것을 증오하고 공격적 행위를 조직해내고 수행하는 것이다. 공산주의자, 이단, 성소수자 등이 오늘날 교회에 의해 적으로 지목된 주요 표적들이다.

    목사 등, 교회사역자들이 적을 향한 증오를 위해 극우주의 정당을 만들었다. 또 교회의 설교의 자리에서 무수한 증오의 말들을 쏟아내었다. 그런데 그들은 정당을 만들 만한, 그리고 엘리트교인들을 설득할 만한 논리를 갖추지 못했다. 더욱이 약한 논리를 포장할, 존경의 위상도 거의 무너졌다. 하여 엘리트 교인들은 교회를 이탈하여 다른 곳으로 옮겨가거나 남아 있더라도 목사들의 정치에 동조하기를 그만 두었다. 그리고 차차 독자적인 행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들 중에는 진보적 행동주의 단체에 동조하는 활동을 개시한 이들도 있다. 하지만 더 많은 이들은 ‘다른 보수적 행동’을 시작했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주간경향>에서 연재하고 있는 '김진호의 웰빙-우파와 대형교회'의 첫번째 글로, [주간경향]에는 <대형교회는 강력한 웰빙 문화공간이다>(1183호. 2016. 07. 05)로 게재되었습니다.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606271603271&code=11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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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교회란 무엇인가?[각주:1]

- 한백교회 담임목사로 취임하며



이상철
(한백교회 담임목사 / 한신대 외래교수)

 

    우선, 주일 오후 바쁜 시간 가운데 한백교회 담임목사 취임예배에 참여해주신 여러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특별히 설교를 해주신 박종화 목사님, 권면을 해주신 채수일 총장님께 감사드립니다. 박종화 목사님은 저희 부부의 결혼식 주례자로써 결혼 이후 지금까지 저희 부부에게는 멘토 같은 분이십니다. 채수일 총장님은 제가 신학의 길에 들어섰을때부터 지금까지, 저에게 많은 용기와 격려를 보내주시면서, 신학이 얼마나 멋있는 학문인지를 맛보게 해주셨던 스승이십니다. 두 분이 이 자리에 함께 참여해 주셔서 너무나 기쁘고 감사합니다.  

    취임예배의 순서를 맡아주신 서울노회 박승렬 노회장님을 비롯한 서울노회 여러 선배 목사님들께 감사드립니다. 1995년 서울노회 목사후보생으로 시작하여, 2003년에 서울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오늘 저는 서울노회 서은시찰에 소속된 한백교회 담임목사로 취임합니다. 한마디로 저는 서울노회가 키운 목회자이고, 서울노회는 목회자의 道가 무엇인지를 저에게 가르쳐준 노회입니다. 여러 가지로 미숙한 저를 너그러운 인내심으로 감싸안고 지켜봐준 준 서울노회와 서울노회를 지켜온 모든 선배 목사님들께 고개숙여 존경의 마음을 표합니다. 

    14년 동안 한백교회를 담임하고 오늘 은퇴하시는 양미강 목사님, 양미강 목사님 이전에 오랜 기간 한백교회를 지켜온 김진호 목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당신들의 젊은 날을 한백교회를 위해 바친 두 분을 이어 제가 오늘 한백교회 담임목사로 취임합니다. 두 분의 한백을 향한 헌신과 노력에, 그리고 그런 두 분의 이름에 제가 누가 되지는 않을까 벌써부터 걱정이 됩니다.  

    3주전, 10월 18일에 한백교회는 창립28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양미강 목사님이 한백의 28년을 회고하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한백이 오늘날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한백 나름대로의 신앙적 색깔을 가지고 자기비판적인 반성에 기초한 열린 신앙적 태도를 유지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가능했던 기저는 끊임없이 전통적인 교리에 대항하여 신학과 신앙을 연결해낼 수 있는 민중신학적 성서읽기가 그 바탕이었고, 이와 연결된 참여적 신앙이야말로 한백신앙의 핵심일 것이다.”   

    28주년 기념예배를 드리면서 저는 여러 생각을 했습니다. 서로 다른 신앙의 색깔들, 사연들을 가진 사람들이 한백을 처음 만들고자 했을 때, 그리고 몇 차례의 과정을 거치면서 한백이 진화를 할 때, 모두가 뭐라고 뚜렷하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이심전심으로 꿈꾸고 공유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교회라는 이름으로 함께 할 수 있는 꿈 말입니다. 어떤 오만도 편견도 억압도 없는 세상에 대한 바람, 아마도 그것은 한백이 28년전에 꿈꿨던, 그리고 현재까지도 여전히 유효한 한백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합니다.  

    한백이 처음 탄생하던 87년 그해는, 혁명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던 그 해였고, 한편으로는 혁명의 헛헛함을 맛보기도 했던 그 날이었습니다. 거대하고 우람한 진리들이 광장을 메우던 그 시기에, 작지만 묻혀진 진실들을 발견하고, 누군가가 누구를 베는 목소리를 경계하면서 들리지 않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자는 생각, 폭풍과도 같았던 시절속에서 망각되어 왔던 것들을 늦었지만 이제부터는 제대로 환대하자는 성찰, 다른 어떤 조직, 기구, 이념이 아니라, 신학의 이름으로 교회의 이름으로 그렇게 해야된다는 막연함이 우리를 이곳으로 내몰았고, 한백은 그렇게 불안하고 불안정한 가운데 태어났습니다.  

    문득, 이 대목에서 김영승 선생님이 창립기념주일에 나눔의 기도를 드리면서 한백 초기에 함께 나누었던 기도문을 회상하던 대목이 떠오릅니다:“거친 세월 헛된 역사 무너뜨리며 닫힌 가슴들 다 열리고 쓰러진 이들 다 일어나 대동춤으로 어우러질 그 날을 기다립니다. 한라에서 백두까지 해방의 노래 통일의 노래 큰 강으로 흐를 그 날을 기다립니다. 우리의 작은 소리가 새 하늘 새 땅을 여는 우리 겨레의 큰 함성으로 하나되기를 기원합니다. 우리의 작은 몸짓이 사람의 세상을 만드는 작지만 굳센 손들의 하나된 염원이기를 기원합니다. 사람의 아들 예수의 길을 따르는 늘 새로운 시작이 되도록 이제 우리 모두의 마음을 나눕시다.”위의 기도문에서도 드러나듯이, 어떤 오만도 편견도 억압도 없는 세상에 대한 바람! 아마도 그것은 한백이 28년전에 꿈꿨던, 그리고 현재까지도 여전히 유효한 한백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가 또 하나의 교회를 세우고자 했을 때, 한국교회는 이미 고도성장의 궤도로 진입하여 무서운 속도로 배가를 하던 무렵이었습니다. 우리 앞에는 이미 무수한 교회의 샘플과 전통과 권위들이 존재했었습니다. 한국교회의 성장은 분명 눈부시고 박수를 받을만한 성령의 역사였지만, 그 이면에는 말 못할 아쉬움 또한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것은 물불을 안 가리는 교회성장주의 일 수 있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 무차별적이고 공격적인 선교의 패턴 일 수 있으며, 가부장적인 권위의식에 입각한 교회운영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기존 교회들의 관습과 법칙에 기대려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대상으로 의식적으로 우리의 도드라진 것을 자랑질 하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단지 전혀 새로운 방식과 율동으로 우리의 교회를, 그리고 우리만의 신학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한백은 지속적으로 물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28년 동안 다양한 방식과 실험으로, 우리는 스스로에게 계속 묻고 대답했드랬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 우리에게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입니다.

    무척이나 민망하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질문이지만, 지난 몇 년을 지나면서 기독교가 개독교가 되어버린 세상속에서, 청년들이 교회에 환멸을 느껴며 교회를 향해 저주를 퍼붓는 세태속에서, 이 질문은 오래된 새로운 질문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오히려 이런 급변하는 세상, 급락하는 교회의 위상속에서 ‘우리가 추구했던 교회의 가치, 한백의 가치가 부각된 것은 아닐까?’라는 자평도 해보게 됩니다. 현존하는 교회질서와 세상의 법칙에 불화하는 힘으로서의 교회에 대한 가치 말입니다.  

    물론 현실의 교회와 교회의 역사는 제도와 시스템을 흠모했고, 그 길을 따라 걸어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제도 밖의 제도라 해야 교회의 교회다움이 선포되는 것 아닐까요? 민중신학은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고, 마지막 날에 성만찬이라는 제도와 틀을 거부하고 제자들의 신발을 벗겨 발을 씻기는 요한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행동은 그것을 반증하는 행위라 우리는 믿습니다.  

    한백은 겁 없이 이런 믿음에 의지하여 우리의 교회를 실험해왔습니다. 평신도 위주의 교회 운영방식, 하늘 뜻을 나누는 방식, 목회자와 장로의 임기제, 평등과 소통을 지향하는 예배를 위한 공간의 재구성, 예배의 곳곳을 매우는 한백의 노래와 고백, 고난받는 사람들과 함께 드리는 예배, 시대에 맞게 복음을 재해석하는 신학적 작업 등이 대표적인 예일 것입니다.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예수가 모든 성전시스템, 교리시스템, 예전시스템을 해체하면서 신앙(학)의 의미와 가치가 누군가의 손에 독점되는 것을 경계하면서 그 진리를 우리들에게 돌려주었던 것처럼, 한백은 주께서 주신 그것을 잘 누리고 향유하려고 무던히도 고민하면서 몸부리쳤습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더 중요한 한백性은 그런 가시적인 것보다는, 이런 보이는 것을 언제든지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자유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한백의 신앙을 굳이 예수가 요한복음에서 니고데모의 질문을 받고 성령을 설명하면서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 그것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라고 한 선문답과도 같은 아포리즘과 연결시키고 싶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한백은 겉으로 보기에는 나이스하고 쿨한 것 같지만, 한꺼풀 벗기면 솜털같이 섬세해서, 타인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이 도드라지는 한백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한백은 ‘불고 싶은 대로 부는 바람’이지만, 불어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대지의 촉촉함와 대기의 훈훈함을 다 느끼는 바람입니다. 한백의 지난 28년은 남들처럼 급하게 어딘가를 향해 마구 불어갔던 바람이 아니라, 마지막 날 제자들의 발을 씻겼던 예수처럼, 내게 소중한 사람들과 이 땅에서 고난받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우리를 감싸는 허세와 권위와 위엄에 눈치보지 않고 마음과 정성을 모아갔던 바람이었고, 그런 공동체였기에 지금까지 한백으로 남아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렇게 멋있고, 분명한 자신의 신앙과 목소리가 있는 한백교회에 여러 가지로 부족하고, 비어있고, 흠이 많은 제가 담임목사로 취임합니다. 물론, 여러분들이 함께 하기에 별 어려움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설레고 떨리는 마음을 감출 수는 없습니다.  

    몇 주 동안 이.취임식 준비 때문에 교회가 무척 분주했습니다. 취임식 순서 중에 취임하는 목사에게 꽃다발과 예물을 증정하는 순서가 있습니다. 다른 교회에서는 그 선물을 뭘 할지 교회와 목사가 서로 눈치보고 고민하고 그런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아주 심플하게 그리 비싸지 않은 구두를 한 켤레 사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한백교우들에게 지금 제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부끄럽지만 이것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 구두의 굽이 닳도록, 여러분들이 계신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 가겠습니다. 한백 식구들에게 기쁜 일이 생기면 누구보다 제가 제일 기뻐할 것이고, 우리들 중 누구에게 슬픈 일이 생기면 아마도 제가 제일 슬퍼하는 그 사람일 것입니다. 버스 타고 가다가, 지하철 타고 가다가 여러분들이 사는 집이나 일하고 있는 직장 근처를 지날 때, 갑자기 생각나서 전화 걸어 제가 “밥 먹자!”고 말해도 놀라지 마십시오. 그렇게 저는 여러분들이 사준 구두를 신고 여러분들을 만나러 갈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만나면서 제가 꿈구는 교회는 이런 교회입니다. “한 사람의 열 걸음이 아니라, 열 사람의 한 걸음을 더 소중히 여기는 교회”입니다. 지금까지 우리사회는 성의 차지, 세대 차이, 지역차이, 계급차이, 노선 차이 등 무수한 차이들이 자아내는 권력의 역학속에서 일정한 방식으로 엮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그 차이를 하나로 엮었던 방식, 강력한 대타자의 목소리는 이제 그 기능적인 면에 있어서 한계에 부딪치고 있습니다. 새로운 얼개에 대한 요구가 생겨나고 있다는 말입니다. 복수적이고 산만한 관계 속에서 얽혀지는 새로운 통합방식, 일사분란한 계획과 통제가 아니라, 각자가 지닌 차이를 그대로 인정하는 새로운 통합방식을 추구해야 한다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한 사람의 열 걸음이 아니라, 열 사람의 한 걸음을 더 소중히 여기는 교회!”는 이런 시대의 요청에 대응하는 구호 아닌 구호입니다. 복수적 개인들의 특수성을 지지하는 한백, 다양한 개인들의 우발적인 횡적 연대와 접속을 통해 늘 활발한 발언와 율동을 상상하는 교회, 그러는 가운데 진정한 쉼과 기쁨을 공유하는 공동체 한백이 되기를 저는 기원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그것은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지 않으면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 일입니다. 여러분들의 담임목사가 되는 저는, 그러한 성령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하기를 매일 기도할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함께 기도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이러한 꿈과 희망을 갖고,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여러분 바라보면서 여러분과 함께 묵묵히 걸어가겠습니다. 주께서 우리 모두와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 웹진 <제3시대>



  1. 지난 11월 8일에 있었던 한백교회 담임목사 취임예배에서 행한 취임사를 일부 수정하여 올립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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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제 개요

20세기는 두 번의 세계대전은 물론 많은 국지전을 통해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세기임을 입증했다. 그런데 전쟁은 국가라는 공적 집단의 행위요 그 배후에는 모든 집단주의의 가장 폭력적 형태라고 할 수 있는 제국주의라는 악이 존재하고 있다. 전쟁은 우리에게 악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하고 특히 원초적 죄악 또는 “원죄”의 문제를 재고하게 만든다.

원죄를 막연히 인류 시초로 부터 내려오는 악의 경향, 인간의 본성에 포함된 악의 경향, 또는 인간 개인의 악의 경향, 인간의 실존상황에 내포된 악의 경향으로 보는 것은 원죄의 형식적 보편성을 유지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그것은 동시에 원죄를 대단히 추상적으로 또 개인주의적으로 간주함으로서 원죄 내용의 심각성을 간과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원죄의 형식적 보편성과 내용의 심각성을 동시에 표현하면서 개인적 죄와 사회적 죄 모두의 원천이며 맥락으로서 원죄를 다시 개념할 수는 없을까?

여기서 원초적 죄악(original sin)으로서 원죄를 개인과 집단의 차별을 넘어서 인간의 상호의존적 실존 속에 내포된, 내적으로는 억압적이고 외적으로는 침략적인 집단주의적 경향으로 개념하고, 이에 대한 반대개념으로 원초적 은총(original grace), 즉 인간의 상호의존적 실존을 포용적, 건설적, 사회적 유대로 전개시킬 수 있는 은총의 개념을 상정하면서, 이 두 개념의 삼위일체적 신학적 측면, 상호의존의 존재론적 측면, 그 발전과정의 역사적, 윤리적, 또 정치적 측면을 분석해 본다. 원죄는 개인적 차원의 개인적 죄도 아니고 특정 집단의 사회적 죄도 아니면서 이 두 가지 종류의 죄에 선행하는, 인간의 상호의존성에 내포되어 있는 원초적 죄의 경향이다. 개인적 죄와 사회적 죄는 모두 이 원초적 죄의 경향을 구체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두 개념을 교회론에 적용하여 교회 안에는 억압적이고 침략적인 집단주의적 경향은 없는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가 긍정적 유대의 구현으로서 하느님의 원초적 은총의 집단적 표현이 될 수 있을까? 교회 성원 개개인의 자기반성을 떠나 공동체로서 교회의 집단적 자기반성의 가능성은 없는가? 등의 질문을 던져본다.

본 강연의 근본취지는 전쟁의 잔학성에서 출발하여 추상적이고 무규정적이고 개인주의적일 수 있는 전통적 원죄개념을 보다 인간실존의 현실에 맞게 구체화하고 거기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원초적 은총을 상정하면서 교회는 교회내의 원죄와 싸우면서 원초적 은총의 보다 구체적 표현으로 혁신돼야 함을 강조하고자 한다.


* 발제자

민경석(Anselm K. Min) 교수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클레어몬트 대학원 대학교 종교학과 석좌교수(Dean and Maguire Distinguished Professor)이다. 밴더빌트 대학교에서 종교학 박사, 포담 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1992년부터 클레어몬트대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헤겔과 아퀴나스, 해방 ․ 종교간 대화 ․ 다원주의 ․ 세계화의 문제, 현대 신학과 아시아 신학 등을 주제로 다양한 논문을 썼다. 현재는 세계화와 관련한 신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자문위원이기도 한 민경석 교수는 평신도 신학자로서 교회쇄신을 위한 연구와 활동도 적극적으로 해왔다. 20대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접하고, 1970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면서도 미국 가톨릭교회와 교포 공동체의 일에 관여했다. 1987년부터 4년 간은 미주 한인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으로서 매년 강습회를 열어 사회교리를 전파하는 데 힘썼고, 1992년에는 동료들과 함께 교포 평신도 전국조직인 ‘미주한인가톨릭평신도연합’을 창설하고, 연간지 <만민의 빛 Lumen Gentium>을 출간한 바도 있다. 국내 저서로는 ≪한국교회 2000: 권위주의와 교회중심주의를 넘어서≫(분도출판사, 2000)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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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문제를 주제로 신학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민경석 교수님(미국 클레어몬트대학원 종교학과)을 모시고 강연회를 진행합니다. 이번 강연회는 최근 민경석 교수님의 연구 주제인 세계화로 인한 교회의 총체적이고 근본적인 위기에 대해 함께 토론해 보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의 많은 참석 바랍니다.

* 민경석(Anselm K. Min) 교수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클레어몬트 대학원 대학교 종교학과 석좌교수(Dean and Maguire Distinguished Professor)이다. 밴더빌트 대학교에서 종교학 박사, 포담 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1992년부터 클레어몬트대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헤겔과 아퀴나스, 해방 ․ 종교간 대화 ․ 다원주의 ․ 세계화의 문제, 현대 신학과 아시아 신학 등을 주제로 다양한 논문과 저서를 집필했다. 현재는 세계화와 관련한 신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자문위원이기도 한 민경석 교수는 평신도 신학자로서 교회쇄신을 위한 연구와 활동도 적극적으로 해왔다. 20대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접하고, 1970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면서도 미국 가톨릭교회와 교포 공동체의 일에 관여했다. 1987년부터 4년 간은 미주 한인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으로서 매년 강습회를 열어 사회교리를 전파하는 데 힘썼고, 1992년에는 동료들과 함께 교포 평신도 전국조직인 ‘미주한인가톨릭평신도연합’을 창설하고, 연간지 <만민의 빛 Lumen Gentium>을 출간한 바도 있다. 국내 저서로는 ≪한국교회 2000: 권위주의와 교회중심주의를 넘어서≫(분도출판사, 2000)가 있다.

* 일시 : 2012년 7월 9일(월) 오후 7시~9시
* 장소 : 우리신학연구소(아래 약도 참조)
* 주최 : 우리신학연구소,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 참가비 : 5,000원 (발제자료, 간단한 다과 제공)
* 문의 :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실 (02-2672-8344)
* 연구소 찾아오시는 길
(150-042)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당산동2가 32-2 3층 우리신학연구소
☎ 02-2672-8342~4 / FAX 02-2672-8346 / E-mail: woorith@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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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넘어선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


조익표
(예가교회 담임목사 | yega.org)

여럿의 개체가 그물망과 같은 관계 속에 하나의 독특한 질서를 생성하고 하나의 집합체를 이룰 때, 이를 유기체라고 부른다. 인간은 60조가 넘는 엄청난 수의 세포들의 집합체이다. 이렇게, 엄청나게 많은 개체들이 하나의 독특한 질서를 유지하면서 하나의 집합체는 얼마나 복잡한 관계의 그물망을 이루겠는가? 이 관계의 복잡성과 다양성의 정도가 높은 유기체를 고등유기체라고 부른다. 정신현상으로 이해되고 있는 의식은 고등유기체에 이르러 생성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인간의 사회는 다양한 인간이 그물망과 같은 관계 속에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며 하나의 집단을 이룬다. 인간을 고등유기체라고 할 때, 인간사회는 고등유기체보다 한 차원 위의 유기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사회는 물리적인 관계도 있지만, 주로 의식을 사용하는 정신적인 관계를 사용하여 관계의 그물망을 형성한다. 그러므로 인간사회야 말로 고도의 정신현상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한 인간의 ‘나’라는 정신은 자신의 몸보다 하나 위의 차원에 존재한다. ‘나’는 ‘세포→기관→몸→나’ 로 이어지는 차원의 정점에 놓여있고, ‘나’에 이르러서 하위의 차원 모두를 하나로 묶는 ‘정체성’이 결정된다. 그러나 ‘나’는 또한 계속해서 ‘나→지역사회→지구적 사회→우주적 피조물’의 질서로 이어지는 차원의 최하위 차원에 위치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주적 피조물의 하위 차원 모두를 하나로 묶는 ‘정체성’을 결정한다.

‘나’는 정신을 통하여 ‘지역사회→지구적 사회→우주적 피조물→하나님’ 에 이르는 길을 의식할 수 있는 존재이다. 인간이 의식을 가지고 있음으로써, 하나님 안에서 모든 피조물들과 자신을 하나로 통합하는 길을 깨달을 수 있고, 그 길 안에서 살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길을 가고 하나의 길에서 살아가는 것이 평화의 구현이다. 평화란 분열과 갈등을 넘어서 하나됨을 통하여 얻어지는 것이다.

교회는 ‘나’로부터 ‘하나님’에 이르는 길을 가르치고 그 길에서 살게 한다. 그 뿐 아니라, 교회는 ‘나’ 를 넘어선 하나의 사회의 기능으로서 역할한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됨’을 생산하고 유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교회의 모든 성원들은 ‘나’를 넘어서야만 한다. 교회가 교회로서 기능하려면,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은 ‘나’를 넘어서 살아갈 수 있는 정신을 획득해야 한다. 성령은 ‘나’를 넘어서는 정신이다. 교회의 하나됨은 성령을 통한 하나됨이며, 성령 안에서의 하나됨이다. 교회는 ‘한’ 성령을 호흡함으로써 하나가 되는 것이다.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아직 ‘나’의 차원에 머물러 있다면, 교회는 단순한 교인들의 집합이며 교인들의 교인들을 향한 분열과 갈등의 영역일 뿐이다. 평화란 ‘나’의 차원에 머물러 있던 개개의 교인들이 ‘나’ 중심의 세계로부터 벗어나서, ‘교회’의 세계로 넘어섬으로써 이루어진다.

문제는 이것이다. ‘세포’가 ‘몸’의 생각을 알지 못하듯이 ‘나’도 ‘교회’의 생각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나’의 정신성은 ‘세포’의 정신성보다 훨씬 더 차원이 높다는 것이다. ‘나’의 정신성은 ‘너’와 ‘우리’의 정신성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나’를 넘어서는 일이야 말로 ‘영적인 일’이며, 성령을 통하여 ‘나’를 넘어서는 것이야 말로 교회의 평화를 이루는 것이다.

성령을 통하여 ‘나’를 넘어서는 일은 ‘기도’를 통하여 얻어진다. ‘기도’ 란 ‘나’를 넘어서는 행위이다. ‘기도’는 ‘나’의 존재에 영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우리가 민감하다면, 매 순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시는 ‘나’의 존재를 볼 수 있고, ‘감사’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그렇게까지 민감하지 못하다. 그러나 분명 ‘기도’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새로운 ‘나’를 선물하시는 방식이다. ‘기도’를 통하여 나는 새로운 ‘나’로 새롭게 창조된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를 통하여 ‘현재의 나’를 모두 아낌없이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통하여 ‘새로운 나’를 모두 아낌없이 주시려고 하시기 때문이다. 단 한 번의 참된 기도는 한 인간의 ‘전부’를 바꿀 힘이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 때에 ‘나’는 나를 넘어선 존재로 변화할 것이고, ‘나’ 중심성에서 벗어나서 우주적 존재로 변화되며, 참된 자유를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이 성령 안에서의 삶이다.

예수께서 가르치신 사랑은 나를 넘어서는 강력한 행동이다. 하나님의 모든 진리는 사랑에서 구현된다. 나를 넘어서는 사랑이란, 나의 존재의 변화를 증거하는 유일한 표지이며, 성령의 증거이며,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표지이며,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능력이다. 뜨겁게 사랑하자. ⓒ 웹진 <제3시대>

* 예가교회 http://www.yeg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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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학교

도홍찬
(중학교 교사)


나에게 교회와 학교는 중요한 삶의 거점이다. 나는 고등학교 이후 군대기간을 빼곤 줄곧 교회를 다녔다. 그리고 의무교육기간을 포함해서 학사, 석사, 박사까지 소위 가방끈을 최대한 늘렸다. 나는 지금도 큰일 없으면 일요일 교회를 나가며, 평일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으로 생업을 삼고 있다. 20년 이상 지속적으로 교회와 학교에 관계를 맺어 온 것은 분명 나의 ‘선택’ 때문이다. 나는 기독교 문화에 소원한 가정에서 개신교를 선택하였고, 의무교육기간이 지나고서도 계속적인 진학을 선택하였다. 물론 이러한 선택은 순전한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이것을 추동한 무엇이 있었을 것이다. 나의 경우 교회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교회가 제공하는 문화, 관계망 같은 것 때문이다. 계속적인 진학 역시 그것에 부여하는 사회의 인습적 가치가 크다. 순전한 신앙심과 배움의 열정만으로는 한 사람의 지속적 행위를 설명하기 역부족이다. 나의 행위는 사회적 행위이며, 제도를 통해서 영속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번쯤 뒤집어 생각해본다. 나의 신앙은 교회가 없다면 정말 지속될 수 없는 것인가. 배움이 학교 바깥에서 일어날 수는 없었던가. 신앙과 배움이 꼭 제도를 통해서 보증받아야 하는가. 제도와 인습을 넘어선 신앙과 배움이란 낭만에 불과한 것인가. 일찍이 이반 일리히(Ivan Illich)가 비판한 것과 같이 근대 사회에서 모든 인간적 가치들이 제도화되면서, 나의 의식과 행위를 제도를 통해서 검증받고, 그것에 의존하는 것은 아닌가. 곧 나는 자발적으로 무엇을 찾고, 관계 맺고, 판단하고 행위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나는 진보적 교회에 다니지만 예배를 빼먹으면 여전히 찜찜하다. 하느님한테 기복적으로 기도하는 경우가 많다. 학생들한테 학교는 꼭 나오라고 명령한다. 내 아이가 학교가 싫어서 그만두겠다고 하면 쉽게 허락할지 의문이다.

제도를 넘어선 신앙과 배움을 상상하지 못하는 것은 두려움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징벌의 두려움, 사회적 배제의 공포감. 그리고 스스로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불안감. 이러한 두려움은 반대 감정인 즐거움을 통해서 상쇄될 수 있을 것이다. 받기보다 주었을 때의 기쁨, 욕망하였들 때보다 비웠을 때의 충만함, 많이 아는 것보다 간결하게 사는 것의 행복감...이런 것들을 어떻게 훈련하고 배울 수 있을까. 이것들은 체험하지 못하면 공염불인데, 이것의 실천 역시 또 다른 제도를 통해서나 가능한 것일까.

한국 교육 개혁 담론의 주류는 제도 개선의 담론이었다. 입시 제도, 고교 평준화, 학교 체제의 다양화, 교원 평가 등등 제도의 개선을 통한 교육의 정상화를 꿈꾸었다. 정부와 자본이 수월성과 경쟁의 논리로 제도 개선에 접근했다면, 진보 진영은 교육의 공공성과 평등주의를 지향하였다. 교육담론이 제도의 문제와 집요하게 대결하고 있는 동안, 학부모, 교사, 학생들은 오히려 제도를 심각하게 사고하지 않았다. 빈번한 제도의 부침 속에서는 공정한 사고가 들어서기 보다는 자기보존의 욕망이 득세하기 마련이다. 어떤 제도가 되든지, 나의 안정, 나의 상승이 보장되면 된다. 안되면 무리수를 사용해서도 되게 만들어라. 잠정적으로 타협된 제도가 이미 커질 대로 커진 모두의 욕망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제도는 다시 개선을 요청받는다. 욕망을 제어하지 못한 제도 개선 담론의 현실이다.

졸업시즌이다. 이제 빛나는 졸업장은 없다. 성적 좋은 아이 몇 명이 상을 타고, 사진 몇 장 찍고, 서둘러 학교를 빠져나간다. 학교에서 배움이 큰 축복이 될 때 졸업은 감개무량할 텐데, 다음 단계를 향한 의례적 요식 절차에 불과하니 졸업의 아쉬움과 기쁨은 사라졌다. 우리 시대에 과연 진정한 졸업이 있었던가. 한 단계 지나면, 또 다른 경쟁의 단계에 진입하지 않는가. 우리학교에 유일하게 고등학교 진학을 하지 않는(못하는) 아이가 있다. 지병으로 진학을 포기하였다고 한다. 신체 활동이 점점 퇴화하는 병이란다. 1학년 때에는 꽤 밝은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훨씬 힘들어하는 모습이다. 이 아이가 엄마와 함께 유일하게 식당에 와서 마지막 인사를 하고 갔다. 내가 이 아이만 진정한 졸업생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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