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화, 정경화

 



양권석

(본 연구소 소장 / 성공회대 신학과 교수)



1. 영원한 제국을 향한 꿈


    현재 사용하고 있는 한국사 교과서들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열거할 필요도 없고 세밀하게 분석해서 보여줄 필요도 없다. 사람들로하여금 진보좌파와 종북주의자들이 역사교과서와 역사 교육을 적화시켜 놓았다고 믿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일성 주체사상을 아이들이 이미 배우고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보지 않고도 그렇게 믿고 있던 사람들은 모든 비판세력을 향한 더 깊은 분노와 증오로 똘똘 뭉치게 만들고, 더하여, 자식 걱정하는 여린 부모들로 하여금 두려워 떨게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교과서 국정화 그것은 현재의 권력이 자신의 과거를 복권시키고 싶은 작은 욕심 정도가 아닐 것이다. 이 나라를 위해서 하나의 통일된 역사를 써야 한다는 사명감이 솟구치는 듯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역사를 토대 삼아 영원한 왕국을 가져보고 싶은 욕망도 주체 못하는 것 같다. 

    영원한 제국을 향한 욕망은 정치권력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사교과서 국정화를 앞장서 지지하는 무리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해서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숨기지 않는다. 한기총이나 "한국기독교역사교과서 공동대책위원회"라는 단체의 문서들을 살펴보아도 종교와 기독교 관련분야를 제외하고, 소위 말하는 이념적 편향과 관련된 내용들에 대해서는 앵무새처럼 정부 여당의 주장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한기총 대표회장 이영훈 목사가 한국사교과서 국정화를 지지하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진보주의, 자유주의 물결을 막고 한국교회의 복음, 보수신앙을 지켜나가야 하는 목적이 있으며, 한국사회와 가치를 무너뜨리는 이단, 동성애 등에 단호히 대처해 나가야 한다. 또한 기독교를 폄하하고 좌편향된 교과서로 우리의 자녀들을 가르치게 해서는 안된다”라고 하였다. 

    이 목사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지지하는 이유는 매우 뚜렷해 보인다. 그 이유는 한국기독교 안에서 이미 신앙의 차원이 되어버린 두 개의 뿌리깊은 증오심 혹은 적대감의 당연한 발로라고 숨김없이 말하고 있다. 이단과 종교를 향한 적대와 증오에 이제는 동성애자를 향한 혐오가 더해져 있고, 적대와 증오의 또 다른 축인 반공주의는 이제 모든 진보주의 모든 자유주의 그리고 자신을 향한 모든 비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자신들의 보수신앙과 그것에 기초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다시 한번 그 증오심과 적대감으로 무장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2. 어쩐지 익숙하다


    어쩐지 낯설기 보다는 익숙하다. 박근혜 정부와 여당 그리고 한기총이 한편이 되어 교과서 국정화를 획책하는 모습을 생각하다 보니, 국정화라는 것이 성서와 신학에서 결코 낯선 상황이 아닌듯하다. 역사가 하나의 해석만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 모든 역사의 기록은 하나의 전체적이고 보편적인 의미로 통일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기독교 역사 안에서 매우 익숙한 경험이다. 성서와 교리의 절대적 권위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같은 태도와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국가교회가 되는 과정, 신조와 교리를 만들어가던 과정, 그리고 성서의 정경화 과정에 작동했던 정신과 교과서 국정화 주장의 정신은 아마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들이 결코 종교적인 과정만은 아니었으며, 영원한 제국을 향한 이데올로기가 언제나 함께 해 왔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3. 정경화


    존 버퀴스트(John Berquist)는 탈식민적 관점에서 페르시아 시대 히브리성서의 초기 정경화과정을 해명하면서, 이 정경화의 목표는 페르시아 지배의 안정적 유지를 위한 제국주의 지배 이데올로기의 발전과 확산에 있었다고 보고 있다. (Jon L. Berquist, “Postcolonialism and Imperial Motives for Canonization,” Semeia 75, 1996, 15 – 35.)  

    제국은 끊임없는 물리적 정복과 억압으로만은 유지될 수 없다. 피식민지인들이 스스로 그 제국을 지배자로 받아들임으로써만 지속 가능하다. 때문에 식민지의 각 사람을 제국의 신민으로 사회화하고, 식민화된 사람들이 제국에 종속된 사람들로서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게 하는 이데올로기적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페르시아에 의해서 주도된 히브리 성서의 초기정경화는 바로 그와 같은 이데올로기적 목표를 가지고 수행되었다는 것이다.  

    존 버퀴스트의 설명 속에서 몇 가지 중요한 특징들을 발췌할 수 있는데, 첫재로 그 텍스트 안에서 직접 많은 분량을 언급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드러나는 한 가지가 유다의 외부 즉 제국의 중심으로부터 오는 메시아니즘이다. 페르시아 황제 다리우스는 법을 주는 자로, 고레스는 하느님의 메시아로서 그려진다.  

    둘째로는 제국의 이데올로기와 그 이데올로기적 장치로서 정경은 이미 존재하는 대중들의 믿음에 기초해서 효과를 발휘한다는 점이다. 정경은 페르시아 역사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역사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페르시아 역사로 대치하거나, 이스라엘의 종교를 페르시아의 종교로 대치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종교적인 것을 비종교적이고 정치적인 것으로 대치한다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들에 수정을 가하기도 하고 변경하기도 하면서도, 이미 존재하고 있는 종교와 이미 존재하고 있는 이해에 보다 명확한 표현을 주는 방향을 취한다.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에 따라 종교를 재구축하는 것이다.  

    셋째로, 정경을 만드는 사료는 이스라엘의 과거사 중에서 억압과 지배의 역사만을 쓰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저항과 투쟁의 역사, 해방 경험의 역사도 쓴다. 오히려 그 모든 이야기들이 제국의 이데올로기에 따라서 재배치 될 뿐이다. 그래서 출애굽의 해방 역사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왕을 가질 수 없는 백성이 되고, 제국 에집트는 미워할 수 있지만, 페르시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하느님이 보낸 메시아적 제국이다. 결국, 이스라엘의 과거 이야기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섭리적 이유를 제공하는데 정경화의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넷째는, 정경의 권위, 또 정경으로서 성서의 의미의 통일성과 일관성, 달리 말하자면 페르시아가원하는 종교적 경전의 이데올로기적 작동은, 텍스트 내부에서 텍스트의 고유한 성격으로부터 오는 게 아니다. 외부 제국의 힘이 사라지면 정경의 일관성도 통일성도 유지될 수 없다. 정경의 절대적 권위는 오직 텍스트 외부의 압도적인 힘에 의해서만 유지된다.  

    마지막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지속적인 제국의 지배, 지속적인 자원의 착취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장치로서 정경화가 이루어지지만, 한번의 정경화 작업으로, 정경이 영원히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로 작동하기를 바랄 수 없다. 오히려 제국주의라는 외부의 힘이 사라지면 그 정경은 제국이 의도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기능을 하는 텍스트도 될 수 있다. 말하자면 정경이 오히려 제국주의의 민낯을 드러내게 하는 텍스트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4. 국정화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기도가 결코 페르시아 제국의 정경화 기도와 같은 수준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페르시아 제국의 식민지에 대한 관계와 그 안에서 정경화가 했던 역할을 생각하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기도하는 정권의 의도를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를 포함해서, 3.1운동, 임시정부, 해방정국, 이승만정권, 5.16과 유신 등등 그들이 재평가하고 재배치하기를 원하는 역사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메시아니즘이 있다. 그것을 어떻게 이름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디선가 김진호 목사가 박정희 메시아니즘이라 했는데, 어쩐지 그 보다는 더 복잡해야 할 것 같다. 세계경제질서가 그렇고, 우리를 둘러싼 동북아의 정치질서가 난해하다. 앞으로 더해가게 될 이 지역의 긴장과 갈등 그리고 우익 민족주의의 발호를 예상하면, 그 메시아니즘이 어떤 모습으로 얼굴을 드러낼지 예측불허다.  

    몇 번의 선거를 통해서 두 정권을 거쳐 오면서, 대중들의 의식 속에 일정하게 이 메시아니즘의 작동기제가 만들어져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우리 사회 안에 상당부분 이미 제도화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새마을 운동이나 보수단체를 향한 예산지원들을 보면 그런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다시 말해 단순히 역사 교과서 국정화의 문제로만 국한될 수 없다는 뜻이다. 메시아니즘의 이데올로기가 다양한 다른 요소들과 함께 결합되어 이미 깊이 구조화되어 가고 있는 모습이다.

    페르시아의 이데올로기가 출애굽의 이야기를 가장 강력한 해방의 기억으로 간직하게 하면서도, 동시에 페르시아에 종속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의 서사 안으로 그 해방 이야기를 흡수해 버렸던 것처럼, 교과서 국정화를 외치는 지배 이데올로기도 그와 같은 세련된 전략을 취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생명대 반생명 혹은 민주대 반민주의 구도를 남과 북, 종북과 반공, 그리고 국익대 반국익 등으로 구도 재편하여 그 안에서 민주화와 해방의 이야기들을 배치하려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려에도 불구하고 교과서 국정화는 원론 측면에서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일이다. 텍스트와 조직의 외부에서 그 텍스트와 조직들을 지켜주는 힘이 무너지면, 텍스트와 조직은 순식간에 얼굴을 달리할 수 밖에 없다. 어떤 텍스트에 의미를 한정해서 넣겠다는 생각 자체가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생각이다. 뿐만 아니다. 모든 언론, 모든 권력을 다 장악하고도 역사학자 90%를 좌파라고 몰아붙이는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제국의 세련된 이데올로기 전략이 그들에게 부재하다는 뜻이고, 그래서 그만큼 억지스럽다는 이야기다.   


5. 학생들의 손에 '삽'을 들게 해야 한다


    지난 9월 19일 저녘 시청 앞 광장에서는 70년만의 귀환이라는 이름으로 일본 홋카이도 지역으로 강제징용 갔다가 그곳에서 돌아가신 115분의 유골을 모시는 추모예식이 있었다. 이 날은 아베 정권이 집단자위권법안을 최종적으로 통과시킨 날이었다. 한국과 일본의 젊은이들과 함께 18년 동안 조선인 징용자들의 유골을 발굴해 온 한 일본 스님이 그 날 전한 추모사가 지금도 가슴을 울린다. “오늘 아베 정부는 일본 젊은이들의 손에 총을 들려주기 위한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젊은이들이 손에 들어야 할 것은 ‘삽’입니다.” 이어지는 말들을 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삽’을 들고 곳곳에 흩어지고 버려진 유골들을 되찾는 일은, 곧 할말을 못하고 누워있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과정이며, 그들의 가슴속에 한 맺힌 평화의 메시지를 듣는 과정이라는 뜻으로 들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문제는 우리들에게도 어쩌면 어쩌면 총과 삽 사이에서 선택하는 문제일지 모르겠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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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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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11.26 21:1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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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14세때 거주지에 따라 '학벌·임금·계층' 격차 발생 ... 일반 시·군 지역과 광역시 지역격차 천지차이 ... 일반 시·군 지역의 일부 우매한 부모들 http://president007.blog.me/22039125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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