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우파'와 대형교회, 두 번째[각주:1]


대형교회는 왜 보수주의적인가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지난 글에서 나는 대형교회들에 관한 학계의 분류법들을 간략히 소개하면서 어느 분류법으로 보든 한국의 대형교회들이 거의 모두 ‘보수주의적’이라고 단언했다. 그리고 이 단언은 이 연재를 꿰뚫는 핵심적 문제제기인 ‘1990년 어간 이후 한국사회에서 웰빙-우파가 형성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장소로서 대형교회를 주목해야 한다는 것’의 기저에 깔린 전제다. 웰빙우파와 대형교회에 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먼저 대형교회는 ‘보수주의적’이라는 전제에 대해 좀더 이야기해보자.


서북주의와 보수주의


대형교회들은, 범주를 어떻게 나누든, 거의 예외 없이 보수주의적이다. 그것은 한국개신교의 성장 과정에서 근본주의와 반공주의가 거의 모든 교회들의 신앙의 모태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지난 글에서 ‘대형교회의 보수주의’에 대하여 나는 이렇게 썼다. 얼핏 보면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한다. 근본주의와 반공주의는 당연히 보수주의적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한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국개신교의 성장 과정에서”라는 말에 있다. 역사적 과정에서 이러한 조합이 타당성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대형교회와 보수주의


    한국의 개신교 전례과정을 살피면 초기 개신교는 오늘의 한국교회처럼 근본주의 일색은 아니었다. 물론 반공주의도 그리 강한 신앙적 기조가 아니었다. 그런데 20세기 전반기를 거치면서 개신교는 근본주의를 모태로 하는 종교로 빠르게 탈바꿈하기 시작했고, 한국전쟁을 전후로 하는 10여년의 시간을 거치면서 근본주의는 반공주의와 뗄 수 없이 결합되어 한국개신교 신앙의 모태가 되었다. 즉 오늘 우리가 ‘한국교회는 본래부터 당연히 그랬어’라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1940~50년대에 조성된 ‘만들어진 역사’에 다름 아니었다는 얘기다.

   근본주의와 관련해서는 서북지역의 개신교가 그 뿌리라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서북(혹은 관서) 지역이라 함은, 조선시대 지역명칭에 따르면 평안도, 황해도, 함경도 전역을 포함한다. 한데 1893년 이후 서양의 개신교 선교부들 간에 맺은 수차례에 걸친 ‘한반도 선교지 분할협정’에서 평안도와 황해도가 미국 북장로회의 배타적 선교영역이 되고, 함경도는 간도지역을 할당받은 캐나다 연합교회의 영역에 포함되었다. 이후, 함경도 지역은 간도를 가리키는 명칭이던 동북 혹은 관북 지방의 일부로 간주되었다.

    이런 개신교적인 표현이 월남자 지식인들이 대종을 이루던 평안도와 황해도 출신 개신교도들에 의해 일상화되면서 서북지역은 이 두 지방을 한정해서 가리키는 명칭된 것으로 보인다.

   한데 서북지역 개신교도들이 처음부터 근본주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아니 실은 이곳의 개신교도들 가운데는 한반도 전체에서 가장 진취적인 사람들이 많았다. 잘 알다시피 애국계몽운동은 서북지역의 개신교도들이 중심이 된 운동이었다. 특히 이승훈의 오산학교, 안창호의 대성학교 등으로 대표되는 교육운동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반면 서북지역의 미국 북장로회 출신 선교사들은 이와는 매우 다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한반도는 물론이고 당대 전 세계에서 가장 강성의 근본주의자들이었다. 물론 미국 북장로회가 근본주의 일색의 교파는 아니었다. 단지 한반도의 선교사로 파송된 이들이 그랬다. 

    그런데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은 이들의 서북지역에서의 입지를 크게 강화시켰을 뿐 아니라 한반도 전체를 주도하게 했다. 이 부흥운동의 효과로 북한지역 개신교 신자의 80%에 가까운 이들이 미국 북장로회의 영향권 아래 있는 장로교도가 되었고 한반도 전체 개신교도의 40% 이상이 이들 서북계 장로교도였다. 


    서북계 선교사들의 근본주의 신앙은, 정치적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문화, 종교적 배타주의에 가까웠다. 한데 해방 이후 북한의 개신교도들이 대거 남하하면서 서북계 개신교도들의 근본주의는 극우 반공주의라는 공격적 정치와 결합되었다. 일종의 정치적 망명자로서 남한으로 이주한 이들 중 다수는 막막한 이민자의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회의 하나를 발견했는데, 반공투쟁을 벌이던 이들에게 고용되는 것이다. 당시 남한의 자산가들과 미군에 고용된 고위층 경찰관리, 그리고 미군 정보당국 등이 그들을 고용한 자들이었다. 이 과정에서 서북계 개신교의 근본주의 신앙과 공격적 극우반공주의는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논리처럼 결합되었다. 나는 다른 글에서 이러한 정치화된 극우주의적 신앙을 ‘서북주의’라고 부른 바 있다. 서북주의는 이렇게 해방정국 남한의 월남자들 사이에서 탄생했다.

    그런데 이들이 깊이 개입한 이념갈등은 반공국가로서의 남한 단독정부의 탄생, 그리고 이념과잉의 전면전으로서의 한국전쟁을 야기했다. 이것은 민족에게는 대재앙이었지만 서북주의적 개신교에게는 엄청난 기회였다. 이 개신교 분파는 한국개신교의 주도세력이 되었을 뿐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에서 가장 막강한 자원을 가진 세력으로 부상했다. 이렇게 서북주의적 신앙, 곧 근본주의와 극우반공주의가 결합된 신앙은 한국개신교 신앙의 모태가 되었다. 그리고 이상에서 본 것처럼 서북주의 신앙의 생성과 발전 과정은 반공국가로서의 남한정부, 그리고 반공규율체제로서의 남한사회가 구축되는 과정과 밀접히 연관된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한국개신교는 반공주의적 한국사회를 지탱하는 보수주의로서 자리잡게 되었다. 


성장지상주의와 보수주의


    서북주의의 정치적 헤게모니는 1960년대 이후 약화되고, 새로운 세대가 교회를 주도한다. 한국 최초의 대형교회인 영락교회가 서북주의적 신앙의 주축이었다면, 1960~1990년 사이, 그러니까 개신교 대부흥시대를 이끈 주역은 서북주의와 거의 연관이 없는 조용기와 (여의도)순복음교회를 필두로 하는 성장주의적 개신교 부흥사들이었다. 이때 한국개신교에는 새로운 신앙의 기조가 형성된다. 

    이른바 ‘성장지상주의’다. 디테일하게 이야기하면 성장지상주의와 서북주의는 서로 모순적이다. 전자는 성장을 위해 모든 것을 도구화하는 신앙이라면, 후자는 결코 도구화될 수 없는 이념이라는 근본원리를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한국 개신교 역사에서 양자는 서로 긴밀히 결합되었다. 

    이는 반공국가로서의 제1공화국과 성장지상주의적 발전국가체제로서의 유신체제 사이의 순접관계와 유사하다. 반공국가가 추구하는 체제는 공산주의라는 적에 대한 ‘증오’를 통해 사회를 통합하는 것이었다. 한데 성장지상주의적 발전국가체제는 그 적에 대한 증오를 ‘성장에 대한 동력’으로 재활용했다. 적을 압도하기 위해서는 적보다 더 발전해야만 하며, 그것을 위해 전 국민이 일치단결하여 성장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장지상주의적 개신교는 절대적 이단인 공산주의를 무찌르기 위해 복음화가 절대적이라고 주장했다. 그 적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하고, 이 지긋지긋한 가난의 질곡을 만들어 놓았기에, 적과의 싸움은 물리적인 것인 동시에 영적인 것이기도 하다. 그것이 개신교 성장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복음화의 내용이다.

    여기에 하나 더 이야기하면, 이렇게 서북주의와 성장지상주의가 신앙을 물리적이고 영적인 전쟁으로 해석하였기에, 그러한 전쟁의 신앙을 구현하는 신앙제도는 ‘비상한 체제’여야 했다. 그것은 바로 절대적 1인의 카리스마적 지배를 통한 교회제도로 나타났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한국개신교회에서 대형교회는 예외 없이 1인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이 관철되었다는 사실이다. 반면 중소형교회는 카리스마적 1인의 지배가 구현된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문제는 거의 모든 한국의 개신교회들을 지배하는 신앙담론은 1인의 카리스마적 지도자에 의한 교회적 권위주의를 지지하고 있다는 데 있다. 즉 권위주의를 구현하지 못한 교회는 스스로를 실패한 혹은 아직 성공하지 못한 교회로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제1공화국에서 민주화 이전까지 한국사회의 지배적 체제 논리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한국개신교, 특히 대형교회적 신앙은 이런 권위주의 체제를 향한 보수주의와 친화적이다.


탈성장시대의 대형교회와 보수주의


    여기서 다시 앞의 글에서 대형교회에 관한 대목을 상기해보자. 나는 대형교회를 두 범주로 나누었다. 국가와 교회가 공히 성장일로에 있던 시기인 1980년대까지 대형교회로 부상한 교회들(A)과 저성장 혹은 역성장 시기인 1990년 어간 이후의 교회들(B)이 그것이다. 한데 서북주의적 신앙이나 성장지상주의적 신앙은 A 범주의 대형교회들에서 거의 예외 없이 나타난다.

    1990년대, 특히 2천 년대에 오면 대형교회를 이룩했던 카리스마적 1인은 은퇴하거나 사망하는 일이 잦아졌다. 세대교체국면이 된 것이다. 문제는 시대가 달라졌다는 데 있다. 1990년 어간에는 알다시피 한국사회에서 권위주의가 점차 쇠락하게 되었다. 하여 그 속도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본격화되었다. 대개 제도는 좀더 느린 데 반해, 대중의 인식은 좀 더 빠른 변화를 추구한다. 세대교체국면에 진입한 대형교회들도 예외가 아니다.

    A 범주의 교회들은 권위주의 시대에 성공을 이룩한 교회이니 만큼 제도나 인식에서 더 권위주의적이다. 하지만 이 범주의 많은 교회들에서 거의 모든 가용자원을 독점한 카리스마적 1인은 실재하지 않는다. 창립자는 사망했거나 은퇴목사가 되었다. 하여 이 범주의 교회들은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심지어는 시대착오적인 행보들로 사회의 따가운 시선의 대상으로 전락하곤 한다.

    B 범주의 경우는 좀더 복잡하다. 세대교체가 성장지상주의로 회귀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도 있다.(사랑의교회) 그런 경우 교회는 더 권력화되면서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성장 잠재력이 소진되어 버린다. 또 세대교체가 개혁을 둘러싼 극심한 갈등을 야기하게 될 수도 있다.(소망교회) 하지만 권위주의의 후퇴로 인한 갈등을 덜 경험하면서 퇴행성을 덜 드러내기도 한다.(온누리교회) 한편 이 범주의 교회들에는 아직 은퇴하지 않은 이들이 많은데, 그들 중에는 권위주의적 제도에도 불구하고 강한 독재자이기보다는 부드러운 독재를 통해 계몽적 리더십을 구현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는 강한 시대적응력과 함께 성장 잠재력을 유지한다.

    하지만 B 범주의 교회들도 기본적으로 제도나 담론에서 권위주의적 성격이 강하다. 계몽군주인지 독재자인지, 부드러운 독재인지 완고한 독재인지만 다를 뿐이다. 수천 혹은 수만의 교인들을 결속시키는 장치는 빈약한데, 대개의 교회들이 그런 것처럼 높은 수준의 통합을 유지하려면 권위주의가 제일 적합하다. 한데 그러려면 담임목사나 소수 특권적 장로 외에는 권리가 극도로 제약되어야 한다. 즉 대형교회의 신앙제도는 교인들의 주권의식을 제약함으로써만 존립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민주주의적 개혁은 근원적으로 어렵고, 보수주의적 제도와 담론이 재생산될 수밖에 없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주간경향>에서 연재하고 있는 '김진호의 웰빙-우파와 대형교회'의 첫번째 글로, [주간경향]에는 <대형교회는 강력한 웰빙 문화공간이다>(1183호. 2016. 07. 05)로 게재되었습니다.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606271603271&code=11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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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우파'와 대형교회, 첫 번째[각주:1]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웰빙-우파'


    이것은 한국사회의 웰빙-우파에 관한 이야기다. ‘웰빙-우파’란 1990년대 이후 한국사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보수주의의 한 양상을 크로키(croquis)하게 스케치한 나의 용어다. 즉 그 사회적 현상을 빠르게 포착하여 특징을 묘사한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보수주의는 격동의 역사 속에서 강한 반공주의 성향과 성장지상주의가 결합된 체제를 열렬히 옹호하는 사회적 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 그러한 체제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무너지고 사회는 다양한 실험 상황에 놓이게 된다. 특히 이 시기에는 문화 영역에서의 창조적 도전들이 속출했다. 그중에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중상위계층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문화적 현상으로서의 ‘웰빙’이다. 이것은 먹거리를 필두로 삶의 다층적인 영역에서 빠르게 확산된 문화적 고품격화(gentrification) 현상이다. 특히 중상위계층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는 점에서 이러한 고품격화를 나는 중상위계층적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of middle/upper class)라고 부른 바 있다.

    그런데 이러한 웰빙 현상은 1990년대 이후 격화된 ‘보수 대 진보’의 갈등과 엮이곤 하였다. 하여 웰빙 현상을 단순 양분하면 ‘웰빙-우파’와 ‘웰빙-좌파’ 현상으로 나뉜다. 그중 내가 주목하는 것은 웰빙-우파다.


대형교회와 보수주의


    미국적 개념인 ‘메가처치’(mega-church)는 단순히 양적인 정의라고 할 수 있다. 즉 일요일 대예배에 출석한 성인교인의 숫자가 2천 명 이상인 교회를 가리킨다. 최근에는 1만 명 이상의 교회들이 많아지면서 ‘기가처치’(giga-church)라는 용어도 등장했다. 이런 기준에 따르면 한국에는 대략 880여개의 개신교 메가처치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개념만으로 한국교회의 특징을 설명하기는 충분치 않다. 해서 ‘강남대형교회’와 ‘강북대형교회’, ‘중산층 대형교회’와 ‘혼합계층 대형교회’ 같은 공간적 범주로 대형교회를 나누거나, ‘선발대형교회’와 ‘후발대형교회’ 같은 시간적 범주로 분류하곤 했다.

    이러한 분류법은 모두 비슷한 현상을 다르게 포착한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개신교 대형교회들의 탄생은 두 범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는데, 1950년대 월남자교회인 영락교회를 필두로 해서 1990년 어간까지, 그러니까 한국 사회와 개신교가 공히 초고속으로 발전하던 시기에 등장한 대형교회들(A)과, 1990년 어간부터 지금까지, 그러니까 한국 사회와 교회가 공히 저성장 혹은 역성장 상황에 있던 시기에 성장한 대형교회들(B)이 그것이다.

    (A)는 서울에서 훨씬 많았지만 전국의 주요 도시들에서도 적지 아니 등장했다. 이때 서울의 경우는 당연히 강북 지역에 몰려 있다. 당시까지 한강 이남이란 여의도와 영등포 지역에 불과했다. 그리고 교인들의 계층 분포도 시골에서 이주한 도시빈민들에서부터 도시중상위층까지 다양했다.

    (B)는 서울의 강남지역(서초구, 강남구, 송파구 지역)과 강동지역, 그리고 분당에서 집중적으로 탄생한다. 이 지역들은 땅값이 빠른 속도로 상승한 곳이고 젊은 중상위계층이 집중적으로 이주한 곳이다. 물론 강북지역이나 일산, 산본, 부천 같은 다른 신도시들에도 대형교회들이 등장했지만, 그 숫자는 강남, 강동, 분당에 비해 매우 적었다.

    한편 대형교회들은, 범주를 어떻게 나누든, 거의 예외 없이 보수주의적이다. 그것은 한국개신교의 성장 과정에서 근본주의와 반공주의가 거의 모든 교회들의 신앙의 모태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근본주의’란 현실을 절체절명의 위기로 보고 그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현실과 극단적으로 대립하면서, 대신 근본 원리에로 돌아가려는 신앙운동이다. 한데 한국개신교가 신봉했던 근본 원리란 미국개신교 근본주의의 가치에 철저히 예속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개신교의 근본주의는 일종의 ‘친미적 식민주의’인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근본주의적 개신교가 반공국가 건설에 깊이 개입하면서 한국개신교에는 반공국가체제를 수호하는 보수주의 신앙이 대세를 이루게 되었다.


‘그 대형교회’, 웰빙-우파의 문화공간(champ, field)


    서울의 강남 지역 개발이 본격화된 것은 1970~80년대부터이고, 1990년대에 이르면 이 지역은 한국근대화를 상징하는 중심지역으로 부상한다. 그리고 2천 년대에 이르면 중심지역이 강동과 분당 지역으로 확장된다.

    1970~80년대에 강남으로 이주할 당시 나이가 10~20대인 청소년과 청년들이 1990년대에는 30~40대가 되고 2010년대에는 50~60대가 된다. 그러니까 1990년대에 그들은 핵가족의 중심 역할을 하는 세대이자 직장에서 현장업무를 책임지는 이들로 부상하고, 2010년대는 한국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지배층이 된다. 그런데 이 세대는 한국사회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제1차 베이비붐 세대다. 바로 이 세대를 중심으로 하는 강남의 중상위계층이, 앞에서 말한, 웰빙 현상의 주역이다.

    여기서 우리는 바로 그 시기, 즉 1990년 어간 이후에 강남, 강동, 분당 등에서 집중적으로 대두한 대형교회를 주목해보자. 이들 대형교회들이 강남지역에서 창립하거나 다른 데서 이곳으로 이주한 시기는 대체로 1970년대 말 이후다. 그러니까 2010년대가 되기까지 이 세대는 길게는 30~40년간 함께 예배를 드리고 여러 공식・비공식 행사들 속에서 서로 얽혀 왔다. 이른바 ‘신실한 신자’의 경우 최소한 주1회 이상의 만남을 몇십년 동안 나눈 이들이다. 그러니 이 지역의 대형교회들을 ‘그 대형교회’들이라고 한다면, ‘그 대형교회’들에서 신앙을 매개로 하는 삶의 스타일로서 웰빙이 자리잡게 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나는 이어지는 글들에서 ‘그 대형교회’들의 웰빙신앙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웰빙’ 현상에는 웰빙-좌파도 있고 웰빙-우파도 있다. 그렇다면 ‘그 대형교회’들에서 웰빙신앙은 어떤 이념 성향을 지닐까? 한국의 교회들의 신앙의 근간이 보수주의적이니 만큼 웰빙신앙도 우파적 성향을 지녔을 것이겠다.

    한데 웰빙적 삶의 양식이 사람들의 일상에서 형성되는 현장을 ‘웰빙 문화공간’이라고 한다면, 대형교회만큼 자주, 그리고 장기간 지속적으로 웰빙적 일상이 교차하는 문화공간이 또 있을까. 내가 여기서 주장하고자하는 것은 가장 강력한 웰빙적 문화공간은 다름 아닌 ‘그 대형교회’들이라는 얘기다. 요컨대 ‘그 대형교회’들의 웰빙적 문화공간은 우파적이다. 이 연재는 바로 그것을 탐사할 것이다.


‘웰빙-우파’에서 ‘계몽적 보수주의’로


    지난 4.13 총선에서 뚜렷하게 드러난 결과의 하나는 ‘중간범주의 등장’이다. 1990년대 이후 격화된 보수-진보의 갈등이 정치영역에서 양당제의 제도적 기반이 되어왔는데 시민들의 투표는 그것에 저항했다. 양당 모두 심하게 교란되었고 특히 거대 여당체제를 구축하고 있던 새누리당에는 대지진이 일어났다. 그 결과가, 그 왼편과 오른편 정치세력의 강화가 아닌, 중간범주의 뚜렷한 대두였다.

    중간범주가 정치세력으로 중요하게 부상한 첫 번째 사례는 아마도 2007년 대선 무렵이었다. 당시 보수 영역에는 ‘선진화’ 세력이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발휘했고, 진보 영역에는 ‘문국현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또 2012년에는 우파 영역에서 경제민주화 카드가 큰 힘을 펼쳤다. 하지만 이 시도들은 보수주의 정권에서 철저히 무력했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 약진한 중간범주의 정치운동은, 보수-진보의 의제에 흡수되지 않는, 독자적 의제를 부각시켰다. 그것은 기성 정치세력의 부패를 꾸짖는 ‘도덕적 의제’다. 심지어 기성 정치세력이 보수-진보의 의제보다 중간범주적인 도덕 프레임에 흡수되는 경향까지 나타나고 있다. 

   나는 이러한 중간범주적 차원의 ‘정치의 도덕화’를 일종의 ‘정치의 웰빙화’ 현상으로 해석한다. 즉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해서 웰빙 현상이 문화적 생활양식(아비투스)으로 빠르게 정착해왔는데, 그것이 최근 뚜렷이 정치 영역에서도 안착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한데 웰빙이라는 문화적 양식은 다분히 ‘쿨’한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했는데 정치의 웰빙화는 ‘쿨’하기보다는 ‘계몽적’이다. 그런 점에서 ‘문화적인 웰빙-우파’가 ‘정치적인 계몽적 보수주의’로 분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4.13 총선에서 기독자유당은 약진했지만 한 석도 얻지 못했다. 당초에 다섯 석을 예상했고 선거 당일 출구조사발표에서도 두 석을 기대했지만 결과는 그들에게 절망을 안겨주었다. 약진했다고 함은, 이제까지 기독정당들이 얻었던 표보다는 좀더 많은 지지를 받았고, 또 다른 기독정당인 기독민주당이 얻은 표와 산술적으로 합산하면 비례대표 한 석을 얻을 수도 있었다는 데 있다.

    하지만 문제는 확장 가능성이 거의 안 보이는 ‘약진’이라는 데 있다. 왜냐면 기독자유당이 내걸은 아젠다가 가장 잘 먹힐 것으로 기대한 지역에서는 득표율이 매우 낮은 반면, 득표율이 높은 지역은 새누리당 이탈자 중 개신교 신자 일부가 이동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몇몇 대형교회들의 목사와 장로들이 기독자유당을 열렬히 지지했다는 점이다. 특히 수도권의 유력한 교계 지도자들이 그랬다. 하지만 그들의 교인들 대다수는 목사를 지지하지 않았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경제적이든 사회적이든 지적이든 매우 높은 수준의 엘리트 교인들이 새누리당보다 훨씬 더 극우적인 기독자유당의 이념에 동조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실제로 그들 중 다수는 극우적이라기보다는 중도적인 보수주의자였다. 그들은 증오의 정치보다는 관용의 정치를 선호했고, ‘적’에 대한 공포를 이용하는 이념 마케팅보다는 모든 것을 상품화하려는 실용적 마케팅을 좋아했다. 그런 이들이 과거 2007년 대선 때엔 MB를 지지하는 바이블 벨트에 결속되었고, 2012년에는 박근혜를 지지하는 선거연합에 동원되었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선 그 대열에서 이탈했을 뿐 아니라 중간범주의 정치세력을 등장시키는 데 일조한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대형교회적 웰빙보수주의 혹은 계몽적 보수주의는 중간범주의 정치를 어떻게 제도화하게 될까? 이 연재가 묻고자 하는 마지막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주간경향>에서 연재하고 있는 '김진호의 웰빙-우파와 대형교회'의 첫번째 글로, [주간경향]에는 <대형교회는 강력한 웰빙 문화공간이다>(1183호. 2016. 07. 05)로 게재되었습니다.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606271603271&code=11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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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와 개신교 극우주의 맺음글]


무엇을 추구할 것인가

- 지는 서북주의적 혐오동맹, 뜨는 반혐오주의적 상생동맹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이번 글은 이 연재의 두 번째 글이지만 전체 구성상 맺음글에 속함을 밝힙니다.


극우주의 정권 


    2012년 박근혜 씨가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극우적 신권위주의 정권이 재탄생하였다. 1인의 절대적(카리스마적[각주:1]) 지도자와 그이에게 충성경쟁을 하는 광범위한 범주의 테크노크라트의 존재, 그리고 대중의 광적인 지지 현상 등이 결합되어, 민주적 절차와 형식을 무시한 절대적 1인을 중심으로 하는 강권적 통치의 사회가 된 것이다.

    이 절대적 1인은 국민을 ‘우리 대 적’으로 양분하고, 다수의 국민을 ‘우리’의 일원으로 묶어내기 위해 ‘공포’의 감정을 적극 활용한다. 즉 ‘우리’를 파멸시키려는 ‘적’이 가공할 세력으로 우리 앞에 사납게 도사리고 있고, 심지어는 ‘우리’ 사이에 슬며시 잠입해 들어온 ‘(위장된) 내부의 적’이 준동하고 있으므로 경각심을 한시도 이완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른 글[각주:2]에서 내가 ‘공포마케팅’이라고 불렀던 이러한 정치를 박근혜 정부는 처음부터 거의 시종일관 지속해 왔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을 엄밀한 의미에서 (신)권위주의적 지도자라고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과거 유신통치 시대와는 달리 사회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해졌고, 테크노크라트 집단도 복잡하고 다층적인 계산의 주체들이라는 점에서 상명하복의 위계질서로 단순화시킬 수 없다. 가령 검찰조직을 구심점으로 하는 법조계의 계급적 충성심이 로펌회사들의 이익 카르텔을 구심점으로 하는 ‘전략적 충성심’으로 흡수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권력 집단들 간의 충성경쟁이 생각보다 견고하지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런 점에서 이 정부가 1인의 명확한 중심을 기반으로 하는 (신)권위주의적 체제라기보다는 차라리 탈중심적 권력집단 간에 이루어진 전략적 합의가 낳은 ‘유사’(신)권위주의 체제라고 보는 게 적합하다.

    나는 이 ‘유사’(신)권위주의 체제가 ‘탈중심적 권력집단의 (전략적) 중심화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일단 ‘포스트(신)권위주의 체제’라고 명명해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독특한 체제가 도래하게 될 가능성의 근저에는 ‘콘크리트 지지율’이라는 ‘비상한 대중적 지지 현상’이 있었다고 보았다. 나는 다른 저작[각주:3]에서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극우적 대중정치의 장소들의 활성화라고 보았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 실세들은 이 정권이 박정희 시대와 같은 (신)권위주의 체제의 ‘재구축’이라고 오인함으로써, 박근혜 정권의 등장과 더불어 시작된 체제적 실험은 성공할 수 없고 구조적으로 내파하고 말 운명에 놓여 있다고 예측한 바 있다.[각주:4] 실제로 2016년 4.13 총선은 그러한 내파의 순간이 극적으로 다가왔음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하여 ‘민주화 이후’ 사회에 대한 실험 중 권위적 극우주의 체제를 향한 실험은 이제 거의 종착지에 다다른 것 같다. 그것은 한마디로 실패였다. 민주주의는 현저히 후퇴했고, 부패와 비리, 그리고 도덕적 해이는 현저히 증가했다. 또 경제는 급격히 추락했으며, 양극화는 급격히 심화되었다. 그리고 남북한 관계는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악화되었고, 국제정치에서 한국은 세계적인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콘크리트 지지율 


    말했던 것처럼 박근혜 정권의 가장 중요한 권력 기반은 비상한 콘크리트 지지율이다. 그것을 좀 더 심층적으로 살펴보자. 이 정권의 지지자들은 크게 네 층위로 나뉜다. (1)서울의 강남 지역들과 그 인근 신도시들의 중상위계층, (2)TK(대구-경북) + PK(부산 경남) 지역주의로 포섭되는 이들, (3)극우주의자들(개신교계 + 비개신교계), (4)(빈곤)노년층.

    박정희 시대 이후 과잉 성장한 강남권과 인근 신도시들은 주로 토지로 인한 막대한 초과이윤으로 빠르게 중상위계층으로 부상한 이들의 집단 거주지로 발전하였다. 이후 이 지역은 성장지상주의 계보를 잇는 정권의 확고한 지지세력으로 자리잡았다. 이들이 바로 위에서 언급한 첫 번째 범주의 지지 세력이다. 한편 ‘TK + PK’ 지지 현상은 박정희 정권이 김대중을 견제하기 위해 활용한 선거 아젠다가 차등적 지역분할 정책으로 체계화되면서 나타난 지역주의의 산물이다. 그런 점에서 이 두 층위는 박근혜 정부만의 특별한 지지세력이 아니다. 즉 이 두 범주는 박근혜 현상의 ‘비상함’을 읽어내는 변수로 볼 수 없다.

    세 번째 층위인 극우주의 세력들은 거의 언제나 보수주의 정권들을 열렬히 지지해온 세력이라는 점에서 앞의 두 범주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1987년 체제’[각주:5] 이후 극우주의 세력은 항상 보수적 권력연합의 일원이었지만 언제나 중심적 위상에 있지 못하였다.

    한데 기업가적 실용성을 기치로 내걸며 탄생한 정부였던 ‘MB 정권’이 천안함 사건(2010년) 이후 이념프레임에 포박되어 집권기간 내내 강경 이념 성향의 정치에 몰두하게 되는 과정에서 군부와 국가정보원이 재정치화[각주:6]되었고, 종합편성 채널들이 생존경쟁을 위해 값싼 ‘종북 마케팅’에 열을 올리면서 극우주의적 세력들이 급부상하였다. 그리고 이보다 앞서서 1989년 결성된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필두로 하여 극우반공주의적 시민사회가 매우 활성화되었다. 특히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의 선거 전략으로 종북 프레임이 적극적으로 활용되었고, 이 과정에서 극우주의적 엘리트들이 권력연합을 추동하는 세력으로 부상하였다. 또한 박근혜 정부는 집권 내내 초강성의 종북 마케팅에 치중했고, 이것은 극우주의자들의 주도권이 계속 이어지게 하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하여 극우주의자들은 박근혜 정부를 더욱 열렬히 지지하는 세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빈곤)노년층의 지지는 거의 일방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박정희에 대한 메시아적 기대’가 기반이 되고 있는 것 같다. 노년층만큼은 아니더라도 저학력 저소득층에 대해서도 대체로 유사한 설명이 가능하다. 사회의 다른 어느 범주보다 더 깊은 절망의 수렁으로 떨어져 버린 이들에게 반전의 가능성은 거의 막혀버렸고, 그것은 상상 속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은 종교를 갈망하게 되는데, 이때 빈곤노년층이 그 세대 특유의 집단적 체험을 회상하게 되면서 박정희 메시아니즘이 불타오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1997년 김정렴, 조갑제, 이인화 등 극우주의적 예언자들에 의해 발명된 박정희 메시아니즘의 서사화다. 이후 이것은 박정희 메시아 담론으로 부상했고 박정희 시대를 체험하지 못한 세대에까지 박정희 메시아니즘이 뿌리 깊게 각인되는 효과를 가져왔다. 그러다 MB 정부를 거치면서 절망의 정도가 한계에 다다르게 되었을 때 가장 극한의 절망 속에 허덕이는 빈곤노년층과 저학력 저소득층 사이에서 메시아적 갈망의 대상으로, 너무나 아비를 닮은, 박정희의 딸이 메시아적 주인공으로 부각된 것이다.[각주:7]

    이렇게 세 번째와 네 번째 범주는 박근혜에 대한 비상한 대중적 지지 현상의 주된 분석 대상이다. 위에서 보았듯이 세 번째 범주는 이 정권의 극우주의적 정치와 관련이 있고, 네 번째 범주는 대중의 메시아적 갈망과 관련이 있다. 카리스마적 절대 1인에 의한 극우적이고 반민주적인 일방주의 정치는 바로 이러한 대중적 지지와 상호 관련되어 있고, 이것이 콘크리트 지지 현상을 추동하는 요소이며, 바로 이것이 권력연합을 구성하는 집단들이 본질적으로 탈중심적임에도 절대1인에 대한 충성경쟁처럼 보이는 ‘가짜’ (신)권위주의적 동맹이 작동되었던 이유다.


내파 


    2016년 4.13 총선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여소야대 정국을 만들어냈다. 박근혜 정권이 마치 (신)권위주의 체제처럼 다양한 권력집단의 구심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요소인 높은 ‘콘크리트 지지율’이 신기루처럼 무너진 것이다. 총선 결과는 그것의 회복을 시도할 틈도 없이 각 세력들이 우와좌왕하며 독자적 생존게임에 돌입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여기서는 앞에서 언급한 지지 범주들 중 특별히 개신교와 관련이 깊은 두 범주의 내파 양상과 맥락들을 살펴보겠다.


극우주의적 내파 - 기독자유당 


    2016년 4.13 총선에 참여한 25개 정당 가운데 개신교계 정당은 두 개인데, 두 당 모두 반공, 반동성애, 반이슬람 기조를 강하게 드러내었다. 특히 상대적 다수파인 기독자유당은 극우주의적 정당으로 반동성애 이슈에 사활을 걸고 있었다. 주요 관계자들 모두가 반동성애 관련 발언을 강도 높게 주장했고, 10명의 비례대표 명단에서 당의 강령들을 대변할 실무 전문가는 오직 반동성애적 의료단체의 전문위원으로 있는 3번 후보 한 명뿐이다.

    총선 결과에 따르면 기독자유당은 2.63%를 득표하였는데, 이는 역대 기독정당 중 가장 높은 수치다. 또 이번 선거에 참여한 25개 정당 중 다섯 번째로 많은 지지를 받았다. 여기에 0.54%를 득표한 기독민주당의 표를 산술적으로 합산하면 3.17%인데, 이 대로라면 비례대표 한 석을 얻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그다지 우려할 일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기독자유당 관계자들은 애초에 이번 선거만큼은 이제까지 어느 기독정당들보다 큰 성공을 이룩할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개신교계의 유력한 지도자들이 대거 적극적인 참여의사를 표명했다. 특히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가 적극 참여하기로 했고, 그가 총회장으로 있는 교단은 전국 소속교회들의 신도 160만 명의 지지를 위한 캠페인을 벌이기로 결의했다. 윤석전 목사 같은 교인들에 대한 장악력이 높은 대형교회 목사들, 장경동 목사 같은 전국적으로 영향력 있는 교회 지도자들도 적극적 참여 의사를 표했다. 여기에 더불어민주당의 현역국회의원이고 새천년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를 역임한 이윤석 씨가 소속 정당을 탈당하여 기독자유당에 입당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지역의원은 고사하고 비례대표 한 석도 얻지 못했고, 반동성애 이유가 가장 잘 통할 것 같았던 수도권의 득표율은 매우 저조했다. 가장 높은 득표를 한 곳은 경상북도인데, 필경 이것은 새누리당 이탈자 중 개신교 신자들 일부가 이 당을 선택한 결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것은 전국적인 현상일 것이다. 요컨대 이 당이 사활을 걸었던 이슈는 거의 먹혀들지 않았고, 새누리당 이탈표가 가장 중요한 득표 요인으로 보인다. 즉 기독자유당은 이전까지의 어떤 기독정당들보다 더 많은 지지를 얻어냈지만, 그것은 집권여당의 응집력이 극도로 이완된 특수한 정세에 따른 것으로, 확장 가능성이 없는 지지였다는 것이다.


동성애 혐오동맹 


    기독자유당은 극우정당이다. 박근혜 정부도 극우주의적 권력연합이다. 그렇다면 왜 기독자유당은 독자적인 정당을 만들고자 했을까? 이 정당은 2004년 조용기・김준곤 등이 주도한 한국기독당을 계승하고 있고, 2008년 기독사랑실천당, 2012년 기독자유민주당을 이끌었던 전광훈 목사가 주도하는 당이다. 즉 2004년 이래 기독정당을 추진하는 일단의 세력들은 독자정당을 향한 나름의 준비를 십여 년간 다듬어온 정치지향성이 강한 이들이었다. 필경 그들은 개신교적 이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자기들이 주도하는 당을 원했을 것이다.

   이전의 정당들이 공히 주장하는 핵심 논지는 강경 반북노선에 있었다. 이 점에서 기독자유당도 다르지 않다. 다만 기독자유당은 이전의 정당들이 전혀 혹은 거의 주목하지 않았던 반동성애 아젠다를 핵심 의제로 부각시켰다. 요컨대 2012년 이전과는 달리 2016년의 기독자유당이 기대한 것은 ‘동성애 혐오동맹’의 형성이었다. 이 동맹의 구성 범주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i)기독자유당 + (ii)개신교 교회들 + (iii)개신교계 반동성애 활동조직 + (iv)비개신교적 반동성애 성향의 시민사회. 그리고 반동성애 혐오동맹이 잘 형성된다면 이번 선거에서 비례대표 다섯 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개신교계 반동성애 세력들은 차별금지법, 학생인권보호조례, 동성애 관련 문화적 컨텐츠, 군대내 동성애 문제를 둘러싼 논쟁에서 보수적 정부나 지방자치체보다 훨씬 보수주의적 관점을 일관되게 표명해왔다. 심지어는 동성애자를 강제 구금하고 치료하며, 실형에 처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반동성애 문제에 관해서는 어떤 정치세력과도 구별되는, 나아가 극우주의적 정권과도 차별화되는 분리주의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개신교적 반동성애 혐오동맹의 논리야말로 가장 선명한 개신교 독자정당의 명분이 될 수 있다. 개신교의 독자정당 추진세력들을 늘 괴롭혀온 논리는, 양당체제로 분할된 현재의 정치 구도 아래서는 보수주의적 권력연합에 참여하는 것이 대의라는 것이었다. 장로대통령이 통치하는 정부나 극우주의 성향의 정부에서 그러한 대의는 더욱 강력한 흡인력을 지녔다. 그런 점에서 반이슬람과 반동성애는 어떤 보수주의적 정권의 흡인력에도 포괄될 수 없는 기독정당 만의 독자적인 상품일 수 있는데, 위의 혐오동맹의 구성범주들 중 ‘(ii) + (iii) + (iv)’의 차원에서 반이슬람 이슈는 어느 범주에서도 약한 대중적 기반을 지니는 데 반해 반동성애는 강력한 기반이 있다는 것, 그것이 기독정당들로 하여금 반동성애를 가장 중요한 아젠다로 부각시킨 결정적 이유라고 판단된다.

    나는 위에서 기독자유당의 반동성애적 아젠다는 독자정당을 위한 전략적 요소라고 주장했다. 물론 정당 추진 주체들은 전략적인 선택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본질주의적 신념의 소산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것은 진화발생학(Evolutionary Developmental Biology)적 개념인 ‘자기기만’(self-deception) 행위에 해당한다. 즉 그이들의 신앙이나 신념에서 동성애 문제는 그다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어떤 때에 갑자기 특정한 필요에 의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한데 그들은 마치 그것을 처음부터 심각하게 직시했었고 그럴 만큼 그것은 신앙의 본질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자기기만 함으로써 그들은 자기들이 추진하고 있는 독자정당의 신념이 정당하고 필연적이라는 확신에 차게 되는 것이다.


왜 하필 


    그렇다면 왜 하필 많은 것들 중에서 ‘동성애 혐오’가 자기기만의 도구로 선택된 것일까? 위에서 말한 바에 따르면, 동성애 이슈야말로 이명박 정부-한나라당이나 박근혜 정부-새누리당과 자신들을 차별화하기에 유용하고, 대중을 자신들의 특화된 논점의 장으로 유인하기 적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치 않다. 왜냐면 그러한 선택지가 이미 주어져 있고, 그것에 대한 논리적 서사가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즉 맨 땅에 머리받기 같은 밑도 끝도 없는 ‘너무나 창의적인 발명’이라면 자기기만은 거의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기만은 대개 그런 상상력이 가능한 환경과 문화의 기반 위에서 나타난다. 즉 기독자유당 추진 주체세력들의 상상력은 이미 활발한 반동성애 운동을 벌여온 기독교계 활동조직들과 교회의 대중들이 구축한 반동성애적 담론 환경의 토대 위에서 가능했다.

    그리고 그것이 미국 개신교 극우주의자들에게서 유래하였다는 사실은 이런 담론 환경에 강한 공신력을 부여했다. 이것은 기독정당 추진을 주도한 개신교 일부 지도자들이 미국의 개신교 극우주의자들에 대한 지나친 신뢰 혹은 예속의식과 관련이 있다.


극우주의적 내파의 한계 


    말했듯이 개신교 극우주의자들의 독자정당 세력이 거둔 성과는 주로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의 구심력이 약화된 상황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극우주의적 내파가 기독자유당으로 이어진다는 것, 그러한 극우주의적 내파의 한 경로가 기독자유당이라는 것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기독자유당은 박근혜 정부-새누리당의 극우주의적 내파를 동성애 혐오동맹의 시각에서 경로화했다. 그러니까 가령 기독자유당식 동성애 혐오주의에 동조하기를 꺼려하는 이는, 비록 극우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고 동성애에 우호적이지 않는 개신교도라고 하더라도, 기독자유당이 주도하는 동성애 혐오동맹에 참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때 대안적 기독정당이나 극우주의 정당이 없다면 그들은 다른 동맹에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 이것은 내가 앞에서 이야기한 기독자유당 지지율의 확장성의 한계에 관한 주장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이것은 다음 절에서 이야기할 내파의 다른 범주에 대한 논의와 연관이 있다.


중간범주로의 내파 


    2016년 4.13 총선에서 뚜렷하게 나타난 결과의 하나는 ‘중간범주의 등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제도는 양당제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구축되었는데, 국민들의 투표는 그것에 저항했다. 그리고 제도는 크게 흔들렸다. 이때 주목할 것은,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의 양당구조가 흔들린 결과가 그 왼편과 오른편 정치세력의 강화가 아닌 중간범주의 뚜렷한 대두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하여 극우주의로의 실험은 거의 좌초한 셈이다.

    지난 2008년 MB 정부가 출범했을 때 정권을 구성한 주요 요소 중 하나는 이른바 ‘선진화’라는 중간범주의 담론적 실체였다. 그리고 2013년 박근혜 정부가 출범할 당시 강력하게 작용했던 요소의 하나는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내걸은 ‘중간범주’적 문제틀이었다. 이것이 중간범주적 문제틀인 것은 박근혜 정부-새누리당 내에서 벌어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중간적 요소는 이 두 정권 내내 거의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다. 한데 2016년 새누리당의 내파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수도권 중심의 중간범주였다.

    산업화와 민주화, 이 두 요소는 1987년 이후 한국사회의 정치적 제도를 양분하는 이데올로기적 축이었다. 이후 어느 정치세력도 두 축을 전제하지 않고는 존립할 수 없었다. 또한 어느 정치세력도 이 두 축 밖에서 대두할 수 없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초강성의 반공주의를 내세우면서 1987년 이후의 이데올로기적 양축을 해체하고 그 이전으로 회귀하고자 했다. 그런 점에서 이 극우주의 정권은 합법적 체제라기보다는 ‘법 위의’ 카리스마적 체제, 그러니까 유신체제나 신군부체제 같은, 그런 체제에 가까웠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새누리당의 내파를 뚜렷이 보여준 2016년의 현상은 양당제 복권으로의 기조도 있었지만, 양당제의 해체를 향한 기조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때 중간범주를 반영하는 정치적 슬로건은 ‘정치의 도덕화’다.


정치의 도덕화와 '강남좌파' 


    서울 강남권과 인근 신도시들에서 중상위계층이 대두하게 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지대의 급격한 상승으로 인한 것이었다. 그런데 전후 한국에서 1961년을 정점으로 하는 1955년부터 1963년까지, 그리고 1972년을 정점으로 하는 1968년부터 1974년까지 두 번의 베이비붐이 있었고, 이 두 베이비붐 세대가 40대를 넘어서고 60대 초입에 들어선 현재, 인구 구성이나 보유 자본(경제적 자본과 사회적・상징적 자본)에서 이 세대는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연령대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제1차 베이비붐 세대의 가장 중요한 경제적 자본은 부동산과 관련이 있다. 이들 중 경제적이든 사회적이든 가장 우월한 자본 능력을 지닌 이들이 서울 강남권과 인근 신도시들에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이 세대는 공교육 체계가 체계적으로 작동하던 시기에 학창시절을 보냈고, 어린 시절부터 비약적인 경제적 성장을 체험하였으며,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기조가 가장 강력하던 시절에 청년기를 보냈다. 그리고 이들이 기성세대에 진입할 무렵 민주적인 정권교체의 체험을 하였다. 한편 이들은 청년기에 소비자본주의를 체험한 세대였고 지구화의 주역으로 소비자본주의적 문화와 제도를 현장에서 체계적으로 구축한 주역이다. 무엇보다도 초고속의 성장과 민주화의 체험은 이 세대 전체의 일생에 영향을 미치는 세대적인 집단 기억의 코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청소년과 청년기에 형성된 세대적인 집단 기억의 코드가 구체적인 삶의 스타일이나 문화적 양식, 정치적 태도에 대한 집단적 행위 양식으로 구체화되어 나타나는 데는 여러 변수들이 작용한다. 그 변수들 중 내가 주목하는 것은 ‘강남’이라는 사회문화적 삶들이 교차하고 실행되는 현장이다. 이 현장을 거치면서 세대적인 집단 기억의 코드가 사회적인 집단적 실천으로 나타나게 되는 하나의 경로가 노정된다. 가령, 강남에서의 막대한 토지 초과이윤에 주로 기반을 두고 등장한 중상위계층은 이후 한국사회에서 경제력뿐 아니라 각종의 사회적 자본과 상징자본을 독과점했다. 이때 ‘강남’은 ‘그들끼리’의 사회적 교류의 장이었다. 이 지역을 매개로 베이비붐 세대, 특히 첫 번째 베이비붐 세대는 양질의 교육, 결혼, 직업의 기회를 누리며 이른바 ‘품격 있는 시민’이 될 수 있었다.[각주:8] 또한 ‘강남’을 소비사회의 모던적 문화공간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할 때, ‘모던 공간 강남’은 한편에서는 게걸스럽게 소비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장소로서 소비되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성찰적 소비문화의 장소이기도 했다.[각주:9] 이때 부상한 삶의 스타일적 용어가 ‘웰빙’이다.

    이러한 웰빙적 문화는 그 영역을 점점 확대했고, 정치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러한 흔적들이 선진화니 경제민주화니 강남좌파니 하는 담론 현상으로 나타났고, 그것이 최근 제도정치화되는 과정에서 중간범주 정치의 이슈로 부상한 것이 ‘정치의 도덕화’다.


대형교회와 웰빙신앙 


    그런데 이러한 사회문화적 현장을 좀더 디테일하게 볼 때 ‘서울 강남권의 대형교회’가 주목된다. 한국사회에서 대형교회는 1980,90년대 서울 강남권과 인근 신도시들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또한 중소형교회가 대형교회로 성장하는 데 있어 교회당의 대대적인 (재)건축이 유효했다. 교회당을 초대형으로 (재)건축하려면 막대한 건축비가 소요되는데, 일반적으로 같은 규모의 건물보다 교회당은 훨씬 더 많은 비용을 필요로 한다. 여기서 1980,90년대 강남권과 신도시의 토지로 인한 막대한 초과이윤이 이 지역들에서 더 많은 대형교회를 탄생시키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그런데 강남권의 대형교회는 특정 지역의 특정 계층의 사람들이 어린 시절부터 수십 년 동안, 아니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주 1회 이상의 공식 비공식의 회합과 교류가 무수히 일어나는 장소다. 한국사회에서 이와 비견할 만한 다른 장소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그런데 대형교회를 더 주목하는 것은 중소형교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자주 그리고 깊게 문화적 사회적 자원의 교류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한데 이 사회문화적 자원의 교류가 일어나는 대형교회적 장의 담론들은 그리스도교적 신앙을 매개로 소통된다. 전후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된 사회, 거기서 무에서 유를 창출했던 세대에게서 그리스도교적 신앙은, 조용기식 삼박자 구원론처럼, 건강과 풍요와 구원이 하나로 만났다. 전시 그리고 전후에 서로가 서로를 물고 뜯어대는 갈등 가운데 몸과 정신이 무너질 대로 무너져버렸고 최소한의 끼니도 못 잇던 상황에서 건강이 회복되고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건 그야말로 복음 중의 복음이다. 교회는 이런 두 가지 축복의 언술과 영혼의 구원에 관한 언술이 합류한다는 삼박자 구원론을 회자시켰다.

    하지만 대형교회가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속속 등장하던 1980,90년대 교회에는 생존 목표 이상의 것을 생각할 여유를 누리며 성장한 세대가 대거 모여 있었다. 바로 그들 사이에서 성장지상주의와는 다르게 삶의 여유를 성찰하는 신앙이 대두한다. 나는 이러한 풍요를 기반으로 하는 성찰적 신앙 양식을 ‘웰빙신앙’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계몽적 보수주의와 동성애 


    교회 밖에서 ‘웰빙’이라는 삶의 양식은 보수에서 진보까지 다양하게 분포되었지만 기본적으로 교회의 웰빙신앙은 ‘보수주의적’이었다. 강남권에서 ‘386’이라는 세대효과가 구체적인 사회문화적 실천으로 발현되는 과정에서 대형교회가 경로화하는 양식은 보수주의였다는 얘기다. 그것은 그 장소가 한국의 교회이기 때문이다. 이 연재의 다른 부분들에서 길게 얘기하겠지만, 한국교회의 절대다수는 서북주의를 통해 신앙의 주체화가 노정되었다.[각주:10] 서북주의는 신앙적으로 근본주의적이며 정치적으로 극우주의와 친화적이다. 이것은 목회자 양성과정에서 가장 잘 나타나며, 특히 대형교회의 목회자에게서 더 잘 드러난다.

    좀 극단적으로 단순화시키 말하면 서북주의는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사회문화적 삶의 양식’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문제는 강남권 대형교회 신자들의 사회문화적 삶의 양식인 ‘웰빙신앙’과 목회자들의 ‘서북주의적 신앙’이 기본적으로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하지만 타협과 협상의 전문가들인 대형교회 목회자들과 중상위계층의 엘리트교인들은 교회에서 서로 충돌하고 이념투쟁을 벌기보다는 공존을 택했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잘 형성된 중상위계층의 사회문화적 교류의 장이자 목회자에게 있어 가장 양질의 사역지인 대형교회를 어느 누구도 투쟁의 장소로 만신창이가 되게 하고 싶지 않았겠다. 해서 그들은 서로를 간섭하지 않기로 했다. 마치 1970,80년대 민주화운동과 민중운동에 적극 참여했던 진보적 교회 사역자들이 정작 교회 안에서는 자신의 정치적 태도를 거의 드러내지 않았던 것처럼 대형교회 목회자들도 자신들의 공격적 극우주의 신앙을 교회 안에서는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그리고 엘리트교인들도 1980년대 말부터 부쩍 잦아진 목사들의 과잉 이념적 활동에 별로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교회 안은 대개 무정치적 공간이었고 사회문화적 자원의 교류가 수행되는 상생공간이었다. 그러는 가운데 2천 년대는 대형교회의 목회자들과 엘리트교인들이, 웰빙신앙이든 서북주의 신앙이든, 각자 교회 밖에서 자신의 이념을 정치화하기 위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사진출처 : 뉴스앤조이)


    바로 그런 맥락에서 2016년 4.13총선은 웰빙신앙의 정치화가 양적 질적으로 뚜렷한 성과를 이룩한 중요한 계기로 볼 수 있다. 나는 이러한, 웰빙신앙의 제도정치화의 아젠다를 ‘정치의 도덕화’라고 불렀고 이때 웰빙보수주의적 신앙의 주역은 ‘계몽적 보수주의’로 사회화되었다고 본 것이다. ‘웰빙신앙’이라는 말이 자기만족적인 개체주의적 뉘앙스가 강한 표현인데 반해, 그것이 정치화됨으로써 그러한 신앙 양식을 사회의 계몽적 규범으로 제도화하려는 것은 웰빙신앙이 ‘계몽적 보수주의’화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최근 부상하고 있는 한국정치의 중간범주적 주체인 계몽적 보수주의자들의 가장 중요한 매트릭스(모태)를 강남권 대형교회라고 보았다. 동시에 대형교회는 목회자들의 서북주의적 신앙의 매트릭스이기도 하다. 또 이 양자 간의 신사협정으로 교회 내부는 새누리당처럼 내파하지 않고 평온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데 최근 개신교회들의 위기는 점점 목사들, 그리고 비슷한 극우주의 성향의 장로들을 초조하게 만들고 있다. 시민사회는 점점 부정적 시각으로 개신교회들을 바라보고, 교회 당국과 목회자에 대한 교인들의 충성심은 크게 이완되었다. 이러한 신자공동체의 결속력의 위기와 사회적 공신력의 위기에 직면해서 그 초조함의 반영이 크게 세 가지 실천으로 나타났다. 내부의 위기를 외적 성장으로 전환시켜 위기를 돌파하려는 해외선교 열풍이 그 하나이고, 미국발 성장주의 신학인 번영신학적 가치를 수입하여 미국적인 중상위계층적 교회주의를 한국화하려는 시도들이 다른 하나다. 그리고 세 번째로 주목할 것이 신앙의 정치세력화다.

    이중 마지막 정치세력화 시도는 미국의 (신)복음주의 우파 세력의 모델을 차용하면서 나타났다. 1980,90년대 미국에서 레이건과 (아버지) 부시를 대통령으로 만들었고 2천 년대 다시 (아들) 부시를 대통령으로 만들어냈던 미국의 (신)복음주의 우파는 반낙태와 반동성애, 반이슬람이라는 혐오주의를 도덕주의로 둔갑시켜 정치적 이슈로 만들어냈다. 이것이 미국의 (신)복음주의 우파 류의 ‘정치의 도덕화’ 전략이었다. 바로 이런 극우주의적 ‘정치의 도덕화’를 한국의 개신교 서북주의 세력이 수입하였는데, 이들 종교수입상들은 이런 신상품을 마치 빈티지 컨셉으로 변모시켜 판매하고자 했다. 아니 실은 그들 자신이 자기기만에 빠져 자신들의 종교상품이 동시대적 극우주의의 산물이 아니라 태고 적부터, 신의 섭리에 따른 것이었다는 착각에 빠졌다. 단, 반낙태나 반이슬람은 한국적 현실에서 이슈로 부각시키기에 적절치 않았기에 반동성애가 핵심 빈티지 상품 품목으로 남아있게 된 것이다.

    많은 목사들이 기독교의 정치세력화를 도모하는 과정에서 신자들을 정치적으로 동원하고자 했다. MB 정권이 탄생하는 과정이나 박근혜 정부가 반공주의적 공포정치를 드라이브 하는 과정에서 많은 목사들이 신자들을 정치적으로 동원하려는 활동은 신자들의 공공연한 이반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는데, 2016년 4.13 총선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많은 목사들은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공공연히 지지하는 발언을 했고 다른 목사들은 독자정당을 지지하도록 공공연히 요청했으며, 그 맥락에서 반동성애 이슈를 적극적으로 주장했는데, 이번에는 그것이 거의 통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새누리당도 독자정당도 아닌 다른 제3의 지대로, 특히 중간범주를 향하여 대대적인 이동을 하였다.

    자신이 속한 대형교회에 대한 귀속의식이 강한 중년의 교인들 몇 사람은 한결같이 목사들 때문에 동성애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갑자기 목사들이 교회에서 소리 높여 반동성애 발언을 하는데, 고학력의 합리주의자들인 그들의 눈에는 그것이 너무 빈약한 무대포적 논리여서 수긍하기 어려웠고, 그런 탓에 동성애에 대한 뉴스나 그밖의 정보들이 눈에 뜨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차분히 살펴보면서 그들이 도달한 것은, 예외 없이, 동성애자라고 해서 차별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여기에 그들을 더욱 동요하게 한 것이 미국과 유럽에서의 도덕의 변화였다. 그들이 흠모하고 동경했던 그리스도교적 문화의 선진국들에서 동성애자를 포함한 성소수자에 대해 포용하고 있다는 것은 그들의 내면적 도덕의식의 갈등을 가져왔다. 또한 영화, 드라마, 소설, 광고, 기타 다양한 문화적 콘텐츠들에서 미학적으로 다루어진 성소수자의 이미지는 부정적 관념을 더욱 흔들어 놓은 것이다. 하여 내가 추정하는 것은 그들이 인지부조화 상황에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내면은 여전히 보수적이지만, 외면적 세계의 변화에 흔들리는 그들은 외적으로는 좀더 관용적인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4.13 총선을 기점으로 하여 그들은 이러한 태도를 정치적인 것으로 번안하는 데 훨씬 적극적이 되었다. 하여 이들 강남의 웰빙 보수주의자들은 동성애를 포함한 도덕적 가치에서 계몽적 보수주의자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서북주의적 혐오동맹을 넘어서는 상생동맹을 향하여 


   이렇게 극우주의적 가치의 구심력은 빠르게 와해되고 있다. 동시에 서북주의는 정치적 헤게모니를 상실했다. 하지만 서북주의라는 목회자들의 신앙의 매트릭스는 그렇게 쉽게 붕괴되지는 않을 것이다. 목회자 양성 시스템의 서북주의적 관성은 여전히 강력할 것이다. 그리고 많은 대형교회들에서 웰빙신앙적 엘리트교인들과 서북주의적 목회자들 사이의 신사협정은, 전보다는 약해지겠지만, 여전히 견고하여 그렇게 큰 균열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다. 하여 서북주의적 목회자들과 일부 극우적 장로들과 교인들은 여전히 많은 물질적 자원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고, 이것에 기초하여 교회 외부에서 벌이는 서북주의적 공격성은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예상되는 향후 얼마간은 자신들을 일방적으로 보호하는 정치권력을 갖게 되지는 못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힘을 가진 많은 정치적 사회적 동료들을 갖고 있으며 그들과 더불어 우리사회의 극우주의적 운동의 축으로 한동안 더 활동할 것이다.

    바로 여기서 우리가 심각하게 직시해야 할 것이 있다. 신자유주의적 지구화가 여전히 기세등등하게 세계를 휩쓸고 있는 오늘, 수많은 몰락의 위협을 받고 있는 위기의 존재들, 특히 남성들 사이에서 마초적 극우주의에 대한 독성 강한 향수가 짙게 번져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서북주의적 개신교 지도자들은 ‘어버이연합’처럼 싼 값에 알바공격꾼들을 고용하여 테러리즘을 부추길 우려가 농후하다. ‘진리’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알바 고용과 무관하게 혐오범죄들을 자행할 가능성이 있다. 요즘 문제시되고 있지만 향후에는 더 많은 여성들과 성소수자들, 이민자들 등이 그런 혐오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럴 경우 서북주의와 신사협정을 깨지 못하는 중간범주의 웰빙 신자들은 저 테러리즘과 혐오범죄의 공모자인 셈이다. 점점 선택의 기로에 놓이고 있다. 아니 그렇게 선택하야 할 때가 임박했다.

    서북주의는 가능한 한 빨리 우리사회에서 사라져야 할 이념적 신앙 현상이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신학운동과 신앙운동이 필요하다. 그것은 이 사회의 평화와 공존, 편견과 혐오 없는 상생의 사회를 향한 것이고, 그리스도인은 그것을 바로 하느님나라를 향한 길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런 사회를 향한 반혐오주의적인 상생동맹이 바로 지금 우리가 직면한 과제다.


ⓒ 웹진 <제3시대>




  1. ‘카리스마적’이라고 한 것은 막스 베버의 어법을 따라 ‘합법적’인 것의 대응어로 사용하였다. 이것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전자가 법을 대하는 태도가 법의 제정자와 같다는 데 있다. 즉 그이는 법을 지키기보다는 자신을 ‘법의 제정자’로 위치시킨다는 것이다. [본문으로]
  2. 김진호, 〈한국 개신교 반공주의와 '증오의 정치학'〉, 이택광 외,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자음과 모음, 2014). [본문으로]
  3. 김진호, 《산당들을 폐하라―극우적 대중정치 장소들에 대한 정치비평적 성서읽기》 (동연, 2016). [본문으로]
  4. 주2)의 논문과 〈증오의 메시아 정치, 그 불온함―2012년 이후 한국사회의 종교심 비판〉, 《오늘의 문예비평》 93(2014 여름). [본문으로]
  5. ‘1987년 체제’라는 용어는 사회학자 박형준이 처음 명명하였고 《당대비평》 24(2003 겨울)호가 특집주제로 다루면서 널리 확산된 것으로, 민주주의 동맹이 주도한 시기 한국사회의 성격에 관한 가설적 개념어다. [본문으로]
  6.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집권하자마자 정치화된 군부의 핵심세력인 하나회를 해체하고 군 개혁을 시도함으로써 군부는 결정적으로 탈정치화되었다. [본문으로]
  7. 나의 글 〈메시아주의, 한국 정치의 어떤 열망〉, 《당신들의 대통령―선출된 왕과 민주주의, 그 이후》 (문주, 2012). [본문으로]
  8. 베이비붐 세대에게서, 특히 제1차 베이비붐 세대에게서 ‘강남’은 그 앞뒤의 세대들에 비해 이런 현상이 더 현저했다. [본문으로]
  9. 반면 과잉소비공간으로 부상한 일부 강북이나 지방의 특정 장소들은 강남보다 훨씬 더 강력한 소비주의적 욕망을 구현하곤 하였다. [본문으로]
  10. 이 연재의 처음 글인 〈한국사회와 개신교 극우주의. 서론〉을 보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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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와 개신교 극우주의 1 : 서론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극우주의? 


    극우주의는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권위주의와 독재 정치를 추구하며, 약한 타자를 향한 증오와 공격적 행위를 조장하는 대중정치 현상이다. 이러한 대중정치 현상이 불타오르는 출발점에는 대중의 집단적인 ‘절망과 좌절의 상황’이 있다. 하지만 절망과 좌절에 빠진 모든 대중이 언제나 극우주의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대중으로 하여금 절망과 좌절을 ‘공포’로 해석하게 하고 그것을 다시 누군가를 ‘증오’하고 ‘공격’하도록 선동하는 자를 통해 대중은 극우주의자들이 된다. 이때 증오와 공격의 대상은 근원적으로는 외부에 있지만 구체적으로는 내부에서 색출된다. 그리고 색출된 ‘내부의 적’은 ‘외부의 더 큰 적’에 연계된 자라고 지목된 자들이다.

   

    한데 대중의 이러한 해석에는 굉장한 비약이 있다. 일종의 집단적 환각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할 것 같은 그런 비약이다. 여기서 이러한 집단적 환각의 대표적인 예를 우리는 ‘종교적 열광주의’에서 본다. 이는 양자를 동일시한다는 뜻이 아니라, 종교적 열광주의는 대중의 집단적 환각작용을 가능하게 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극우주의를 해석하는 데 종교정치학적 분석이 유용하다는 뜻이다. 

    아무튼 종교적 열광주의는 ‘예언자’ 또는 ‘메시아’를 필요로 한다. 예언자는 집단적 해석을 촉발시키는 자라는 점을 강조한 표현이고, 공포에 사로잡힌 이들의 구원 감정을 주목할 때는 메시아가 적합하다. (이에 대하여는 이 연재의 뒷 부분에서 좀 더 상세히 다룰 것이다.)  



    한데 대중이 헤어 나올 수 없는 절망과 좌절 상황에 있고 예언자 혹은 메시아가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고 구원을 선포한다고 해도, 대중이 그것에 휩쓸린다는 보장은 없다. 다른 요소들이 필요하다. 하나의 요소는 메시아로 인한 구원의 기억이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오래된 것이든 비교적 최근의 것이든 상관없다. 가령 한국에서 1997년 이인화, 조갑제, 김정렴 같은 천재적인 해석자들이 박정희에 대한 기억을 구원에 관한 메시아적 기억으로 재해석하고, 그것이 그 해 대선국면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래 박정희 메시아니즘은 이후의 한국 정치사에 중요한 변수로서 자리잡았다.(이에 대하여는 이 연재의 뒷 부분에서 좀 더 상세히 다룰 것이다.)

    두 번째 요인은 예언자 혹은 메시아의 해석과 구원론을 열렬히 전달하고 다른 주장들을 왜곡 변조시켜 어떤 다른 가능성도 무의미한 것처럼 만들어 버리는 담론의 장치들이다. 이러한 담론의 장치들이 사회 구석구석에서 회자되고 소통되는 과정에서 대중은 정치적 주체가 되곤 한다. 이렇게 대중을 극우정치적 주체로 만들어내는 장소를 나는 ‘극우적 대중정치의 장소’라고 부르고자 한다. (이에 대하여는 이 연재 곳곳에서 좀 더 상세히 다룰 것이다.)




세계의 극우주의, 그리고 한국의 극우주의


    최근 이러한 극우주의가 전 지구적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 더욱이 그 현상이 두드러진 곳은 다름 아닌 유럽이다. 제 2차 세계대전을 경유하면서 나치즘과 파시즘이라는 극우주의 현상의 가공할 파괴력에 질려버린 유럽에서 극우주의는 발도 들여놓지 못할 정도로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한데 1990년대 이후 유럽의 이데올로기적 지형은 놀라울 정도로 달라지고 있다. 특히 2천년대 이후에는 극우주의의 약진이 유럽 전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2014년, 28개국의 3억 8,200만 명의 유권자가 참여하는 5년 주기의 유럽의회 선거 결과는 프랑스, 그리스, 이탈리아, 노르웨이, 핀란드,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헝가리, 덴마크, 영국, 체코 등 많은 나라들에서 극우주의 세력이 선전함으로써 유럽연합(EU)이 생기고 처음으로 극우주의 정당이 원내교섭단체가 되었다. 한편 미국 대선국면에서 거세게 불고 있는 트럼프(Donald Trump) 열풍은 미국에서도 극우주의의 망동이 위험 수위를 향해 치닫고 있음을 시사한다.

    유럽과 미국의 여러 매스미디어들은 이런 현상에 우려하면서, 세계 대전으로 이어졌던 1930년대와의 유사성을 지적하곤 했다. 이렇게 극우주의가 약진했다는 것 자체가 우려스러운 것은 비단 광기어린 지도자의 존재 때문만은 아니다. 보다 심각한 것은 그것이 대중현상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극우주의적 대중은 자신들이 겪고 있는 위기와 공포심을 타자에 대한 증오와 공격성으로 표현한다. 1930년대와 지금의 위기는 근원적으로 고삐 풀린 자본주의의 야만적 광풍이 불러일으킨 것이지만, 1930년대 극우주의자들은 유태인을 향해 증오심을 표출했고 오늘 유럽과 미국의 극우주의자들은 기본적으로 무슬림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1930년대 대중적 증오의 정치는 제 2차 세계대전이라는 모두를 공멸하게 하는 대재앙으로 귀결되었다. 만약 그렇다면 오늘의 극우주의는 어떤 재앙을 초래할지 걱정이다. 바로 그러한 재앙을 예방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극우주의를 문제제기하는 이유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폭력성에 괴로워하는 이들은 유럽인과 미국인들만이 아니다. 그리고 고통당하는 대중이 극우주의에 동화되는 현상은 다른 많은 곳에서도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 그중 한국과 일본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두 아시아의 소제국들은 극우주의 세력이 약진했다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집권 세력이 되었다. 반파시즘 기조의 시민적 합의가 견고했던 서구와는 달리 한국과 일본은 극우적 세력들이 정계, 군부, 법조계, 학계, 그리고 시민사회 내에 두루 강력한 세력을 구축하면서 오랜 기간 존속해 왔는데, 최근 이들이 결속하여 권력연합을 형성함으로써 집권에 성공하게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과 일본에서 대중의 극우화는 막대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극우적 엘리트들이 결속함으로써 일으키고 있는 저 극우주의적 소용돌이에 대중이 휘말려든 측면이 강하다.


위기의 대중→극우적 대중정치→극우주의


    이렇게 대중으로 하여금 극우적 정치의 열광에 빠져들게 하는 장소들을 나는 앞에서 ‘극우적 대중정치의 장소들’이라고 불렀다. 여기서는 ‘적’(敵)’에 대한 공포와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담론들이 춤을 춘다. ‘우리’를 둘러싸고 점점 죄어오는 적들의 압박을 막아내기 위해 우리 일상 속에 스며들어와 암약하는 적들을 색출하고 제거하지 않으면 ‘우리’가 몰락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이런 극우적 담론들이 생성되고 유통되며 확산되는 대표적 장소들로는 대다수 종편 방송들과 극우신문들이 있다. 또 한국자유총연맹이나 대한민국어버이연합, 한국자유연합 등 극우적 시민단체들이 있으며, ‘일베저장소’ 같은 극우화된 인터넷커뮤니티 등도 최근 급부상한 극우주의 담론의 장소다. 하지만 다른 어느 곳보다도 한국을 대표하는 극우적 대중정치의 장소는 상당수의 극우성향의 개신교 교회들과, 한국기독교총연맹(한기총)을 필두로 하는 개신교 교회연합체들, 그리고 에스더기도운동본부나 선민네트워크 같은 개신교계 극우 시민단체들이다. 이들 극우적 대중정치의 장소들의 공통점은 극우주의의 ‘적’을 공산주의로 지목하고 있다는 데 있다. 최근 유럽의 극우주의가 이슬라모포비아를 축으로 한다면, 한국의 극우주의는 반공주의를 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즉 여기서는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심을 생산하고 ‘종북세력’에 대한 적개심을 확산시키며 그것이 행동으로 표출되도록 부추기는 담론들이 난무한다. 물론 동성애자나 무슬림에 대한 공포와 증오가 곁들여지곤 하는데 이 경우 저들은 ‘변종의 종북세력’(‘종북게이’ 같은 터무니없는 비난이 그 예다.)으로 해석된다. 즉 ‘빨갱이’가 독립변수로서의 ‘적’이라면, 동성애자나 무슬림 등은 종속변수로서의 ‘적’이라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대중을 극우화하는 전제조건 가운데 가장 일반적인 것은 대중의 ‘심각한 위기의식’이다. 평상시의 정치행위로는 도무지 헤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위기감이 극화될 무렵 대중 사이에서 극우주의가 싹트곤 한다. 여기서 주지할 것은 이런 위기의 대중이 다른 방식으로 주체화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가령 위기의 대중이 들고 일어나 성난 물결처럼 지배체제의 방파제를 향해 돌진하는 경우다. 이때는 ‘해방적 대중정치’가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반면 ‘해방적 대중정치’가 활기 있게 작동하는 대신 ‘극우적 대중정치’가 더 활기를 띠어서 극우적 담론들을 활기 있게 생산하고 증폭시키는 순간이 오면 성난 대중은 지배체제가 아닌, 극우적 담론들이 지목하는 ‘적’을 향해 분노를 뿜는다. 1930년대 유태인이 그런 대상이라면 오늘 한국에서는 이른바 종북세력이 극우주의적 대중정치에 의해 적으로 지목된 실체다. 요컨대 극우적 대중정치는 대중의 극대화된 위기의식을 극우주의로 표출되게 하는 경로를 지정해주는 역할을 한다.




'산당들'을 폐하라


    이 글은 이러한 극우적 대중정치가 작동하는 장소 가운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왔던 개신교의 로컬처치(local-church)들과 파라처치(para-church)들에 주목한다. 나는 얼마 전 출간한 책에서 이와 같은 대중적인 극우정치의 장소들에 대항하는 성서 속의 투쟁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고대 유다국 요시야 왕정 때에 ‘산당’을 둘러싼 싸움이 바로 그것이다. 

    요시야 정부는 증조부인 아하스 왕 이후 유다국에서 빠르게 진행되고 있던 양극화 현상을 억제하고 몰락한 소농을 복원하려는 대중적 개혁정책을 드라이브했다.



    그 무렵 아시리아 제국에 의해 멸망한 이스라엘국 유민들이 대대적으로 남하하여 유다국의 수도 예루살렘 인근 지역으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불가피하게 당시 예속농으로 추락하고 있던 유다의 농민들과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자들이 되었다. 하여 유다의 많은 토착 농민들 사이에서 이들 이민자들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이 싹트고 있었다.

    그러나 유다 농민 대중의 증오감의 근저에는 속속 몰락하고 있던 소농의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고대국가로 급성장하는 과정에서 지주세력들이 빠르게 강화되고 있던 권력을 남용하여 소농의 땅을 빼앗는 데 열을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요시야 왕실은 그렇게 해석했다. 하여 아하스 왕 이후 유다국의 성장지상주의가 초래한 사회 양극화를 중단시키지 않으면 사회의 몰락으로 치닫게 될 것이라고 본 요시야 정권은 소농을 보호하고 몰락농민의 복원 정책을 추진했다. 〈신명기〉는 바로 그러한 사회정책을 담은 왕실의 법률적 문서였다. 그리고 그런 기조의 선사 및 역사 문헌들을 편찬했다.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제1성서(구약성서) 최초형태의 문서군은 이렇게 탄생했다.

    특기할 것은 이 법률적, 선사・역사적 문서들 속에는 이스라엘의 유민들에 대한 적극적인 포용정책이 담겨 있었다는 사실이다. 하여 요시야 왕실이 편찬한 문헌들 속에는 유다국 부족들의 조상인 이삭과 이스라엘 부족들의 조상인 야곱이 부자관계로 엮이어 있다. 즉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 대중은 이삭의 후손인 유다족속들의 자녀뻘 되는 혈연관계로 묘사된다. 그러므로 유다국이, 멸망한 이스라엘의 대중을 포용하는 것은 부모국으로서 의당 해야 할 당연지사라는 주장이 담겨 있다. 그것은, 유민들의 포용만이 아니라, 멸망한 뒤 무주공산이 된 이스라엘국 영토의 병합까지를 염두에 둔 정책이다.

    한데 문제는 많은 유다의 농민들이 소농친화적인 요시야 정부를 지지하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그것은 지방의 농민들이 왕실의 친서민정책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 농민에게 전달된 정보는 왕실의 메시지가 아니라 왕실에 대해 비판적인 메시지였던 것이다. 그것은 대중이 중앙의 정치에 다가갈 수 있는 주된 소통의 장이 바로 ‘산당’이었기 때문이다. 산당에서는 제사장들이 제사 예전을 수행하면서 하느님의 신탁을 전달하였는데, 그들은 지역 대지주들인 토호들의 비호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하여 ‘산당’에서는 대중으로 하여금 대지주들의 편에 가담하여 요시야 왕의 편에 편입된 이스라엘계 유민들을 향해 증오를 쏟아 붓게 하는 담론이 생산 유포되었다. 이것이 요시야 정부가 ‘산당의 철폐’를 위한 싸움에 적극 나선 이유였다. 이렇게 제1성서 속의 산당 철폐론의 배후에는 지주친화적인 세력에 대항하는 소농친화적인 세력의 투쟁이 담겨 있다.


바알세불의 힘을 빌리다?


    제2성서(신약성서)에도 극우적 대중정치로 인한 기억의 왜곡과 편견 현상을 읽어낼 수 있는 텍스트들이 있다. 이 점에서 특히 〈누가복음〉 11,14~23이 눈에 띈다. 흔히 ‘예수와 바알세불’이라는 소제목으로 알려진 이 텍스트에서 예수가 귀신들린 이를 치유한 것을 두고 적대자들은 예수를 “바알세불(baalzeboul)의 힘을 빌려서 귀신을 내쫓는” 자라고 비난한다. 예수를 공격하는 이러한 어법은 병행하는 텍스트들인 〈마가복음〉 3,20~27과 〈마태복음〉 12,22~30에서도 똑 같이 나온다. 그리고 이 세 텍스트들은 바알세불을 “악령들의 우두머리”(archōn tōn daimoniōn)라고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일치한다. 즉 신적 존재이지만 악령들의 최고신이라는 뜻이다.

    이 신이 이스라엘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매우 오래 전이다. 아마도 기원전 12~11세기 경, 이스라엘이 부족동맹체였던 시절, 이스라엘의 가장 위협적인 적인 블레셋 부족동맹체 중 에크론 족의 수호신이었다. 〈열왕기하〉 1,2은 그 신의 이름을 ‘바알세붑’(Baal-zebub)이라는 히브리어로 표기하고 있다. 물론 에크론 족의 신명이 바알세붑은 아니었을 것이다. 비슷한 발음이었겠지만 이스라엘인들은 그 신에 대해서 조롱조의 말장난을 하여 ‘바알세붑’이라고 변형시켜 불렀던 것으로 보인다. 이 변형된 조롱조의 신명의 뜻은 ‘파리떼의 바알’이다. 죽은 시신이 있는 곳에 들끓는 파리떼를 적의 신과 동일시한 것이다. 해서 〈열왕기하〉 1,2에는 이스라엘국 군주인 아하시야(아합의 아들)가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을 때 야훼가 아닌 에크론의 신에 의지하여 몸의 회복을 꾀하다 죽었다는 얘기를 담고 있다. 즉 그 신은 ‘죽게 하는 신’이라는 의미가 담긴 것이다.

    그런데 이 바알세붑의 헬라어 번역어가 바로 바알세불이다. 그러니까 예수를 비난하는 이들은 예수가 살림의 신인 야훼가 아니라 죽음의 신 바알세불에 의지해서 병자의 악령을 쫓아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즉 세 복음서에서 예수의 적대자들은 병자를 고친 예수를 살림의 신이 아니라 죽임의 신이라고 폄훼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예수를 비난한 자들은 누구였는가? 〈누가복음〉에는 ‘시골마을의 대중’이 그들이다. 반면 〈마태복음〉에서는 ‘바리새파 사람들’이고, 이 두 텍스트의 원본으로 알려진 〈마가복음〉에서는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학자들”이었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학자들”은 예루살렘 중앙성전 만이 정통이라고 주장하는 이데올로기를 대표하는 율법 전문가들로, 중앙성전 이데올로기에 기초하지 않은 모든 종교행위, 특히 악령 들린 이들에 대한 구마행위를 죽음의 신의 파멸적 치유에 다름 아니라고 보았다. 여기에는 ‘예루살렘 성전 이데올로기를 지탱하는 야훼 대 죽음의 신 바알세불’이라는 이분법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바리새파 사람들’은 갈릴리 촌읍의 질서를 대변하는 마을 유지격되는 사람들로 예루살렘과 시골마을을 매개하는 존재들이었다. 즉 한편에서는 시골마을을 대변하는 자인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중앙의 율법해석을 번안해서 시골마을에서 실행에 옮기는 자였다. 그런 점에서 이들 시골마을의 대표자들이 예수를 적대하는 태도를 취하였다는 것은 예루살렘 중심 이데올로기가 갈릴리 촌락회당의 수호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뜻한다.

    문제는 시골의 ‘대중’이다. 모든 복음서들에는 공히 예수 주위엔 시골의 대중들이 있었다고 말한다. 예수는 그들과 더불어 먹고 마셨으며 그들에게 숱한 치유의 은사를 베풀었고 축복을 선포했다. 예수는 분명 편파적으로 시골 대중의 편에 선 예언자였으며 많은 대중은 그런 예수를 따랐다. 그럼에도 모든 대중이 예수를 따른 것은 아니다. 특히 〈누가복음〉의 텍스트는 어느 시골 마을에서 예수가 말 못하는 이를 치유했을 때 대중이 그이를 적대하였다고 전한다. 요컨대 그런 이분법의 생각을 하는 이들이 율법학자나 바리새파 사람만이 아니라 평범한 대중도 그랬다는 것이다. 다른 이들은 예루살렘 이데올로기의 수호자들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무지렁이 대중까지도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이 〈누가복음〉에는 전제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분법적 논리에 기반을 둔 비판에 대해 예수는 그 논리의 허점을 들추어낸다. 그 논리는 단지 이념을 위해 존재하는 세계를 대변할 뿐이다. 그 이분법적 세계 속에서 보지 못하고 말 못하는 대중의 고통은 묵살된다. 종말의 때에야 치유될 것이라는 허망한 약속 아래 끊임없이 구원은 유예되고 있다. 이에 예수는 그이에게 구원을 선사한다. 그 현실의 고통에서 탈출하는 구원이다. 즉 예수가 주목하는 것은 대중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고통이다.


극우주의를 넘어서


    이 연재에서 나는 박근혜 정권에 이르는 한국사회의 극우주의적 현상의 배후를 살피려 한다. 특히 내가 주목하는 것은 한국개신교다. 그것은 오늘 한국사회가 극우주의 드라이브를 하게 되는 것, 그것의 배후에는 지속적이고 강한 영향력을 지닌 사회적 단위로 한국개신교가 견고히 자리잡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개신교 서북주의’의 등장 및 헤게모니화의 문제다. 개신교 서북주의는 평안도와 황해도의 개신교운동이 하나의 신앙적, 사회적 주체로 부상한 것을 가리키는데, 다음 장에서 더 이야기하겠지만, 평안도-황해도의 근본주의적 장로교 신앙이 반공주의와 결합되고, 특히 이 이데올로기적 적개심이 공격적 행동주의로 재조직되는 일련의 과정에서 나타난 종교적 이데올로기를 가리키기 위해 사용한 나의 용어다. 이러한 ‘개신교 근본주의 신앙 + 행동주의적 반공주의’ 이데올로기의 형성은 한반도의 분단국가 형성 과정과 밀접히 연관된다. 즉 개신교 서북주의의 탄생 및 헤게모니화는 한국의 분단국가화와 얽히면서 서로를 강화하는 요소였다.

    그런데 1960년대 이후 분단국가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개신교 서북주의의 헤게모니는 크게 약화되었다. 개신교 근본주의는 여전히 반공주의적 성향을 지녔지만 공격적 행동주의는 더 이상 신앙의 핵심적 요소로서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이 연재를 쓰게 된 주된 동기는 최근 개신교 서북주의의 부활 및 재헤게모니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MB 정권의 탄생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이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들이며, 이 세력은 동시에 MB 정부의 정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고, 이는 극우주의 정부인 박근혜 정부의 등장과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MB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에 이르는 일련의 개신교 극우주의에 대한 이해는 최근 한국사회의 극우화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고 판단된다. 하여 이 연재는 한국개신교 서북주의의 전개를 따라 한국사회의 극우주의적 전개를 살펴봄으로써 극우주의가 우리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특히 그 폐해는 어떠할지를 이야기하려 한다.

    극우주의의 폐혜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를 ‘우리’와 ‘적’으로 양분하고 그 간격을 극대화하여 ‘적’에 대한 공격성을 드러내는 대중적인 이념의 프레임이다. 그것은 정치적으로 권위주의와 친화적이고 그 연장선상에서 파시즘으로 귀결되곤 한다. 현 한국정부는 파시즘적 정권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분명 극우적인 권위주의 정부다. 하여 집권 기간 내내 종북마케팅이라고 정리할 수 있는 공포와 증오의 정치를 통해 정권을 유지했으며 끊임없이 우리와 적이라는 이분법의 정치를 펴고 있다. 지난 2016년 4.13총선에서 활용된 ‘진실한 사람’ 마케팅도 그런 ‘우리 대 적’의 이분법의 일상화된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극우주의적 정치는 대중의 안전이나 대중의 행복에 별로 관심이 없다. ‘적’의 색출에 초점을 둔 정치는 안전이나 행복보다는 증오나 척결 등과 연계된 정치를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사회의 극우주의 정권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이 연재의 후반부에서 자세히 얘기하겠지만 박근혜 정부를 탄생시킨 권력연합의 이율배반적 성격이 그렇다. 하지만 극우주의 정부의 집권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상처를 남기고 사라져갈지 우려된다. 하여 조금이라도 그 상처에 대한 사회의 자가 .치유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우리사회의 극우주의에 대한 더 높은 경각심과 비판의식이 필요하다.

    또한 극우주의 정부는 끝나더라도 극우주의적 대중정치의 장소들은 더 오래 동안 우리의 일상에서 증오와 공격성을 부추기는 담론의 도가니로서 작동할 것이기에, 그러한 극우주의로부터 사회를 지켜내는 일 또한 오늘 우리가 짊어져야 할 주요 과제의 하나다. 이 연재는 그러한 생각을 나누고자 하는 작은 문제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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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임스강
    2016.05.31 16:04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생각을 갖게 하는 글이 되겠네요..^^ ... 앗시리아와 이집트, 바빌론과 이집트 .. 두 강대국들 틈바구니 속에서 양쪽을 잘 넘나들며 약소국 남쪽 유대를 무려 56년간 지켜냈던, 므낫세 왕, 이런 사람이 외교술의 명수가 아니겠는가? .... 한국에도 이런 술책을 주무르는 배짱 두둑한 선구자적 인물이 나와야 함!!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703379559920391&set=p.1703379559920391&type=3
  2. 개독교도
    2016.06.13 09:18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한국의 대표극우단체인 연세중앙교회에선 얼마전 김무성 에스더운동본부등 총동원되어 이슬람이나 동성애자퇴출운동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갈등을 부추기면서 결집을 하는 개신교 단체들은 종교의 세금 징수면제 법에의해 공짜로 돈벌이하면서 이미 거대한 세력으로 등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자잘한 사회일탈횅위들을 일삼는 개신교들 이모두가 종교와는 상관업없는 정치장악의도행위들이죠.
    예를들어 미스바 구국기도운동이란걸 하면서 청년들에게 위기의식을 고양시키고 진주만 폭격 그영화의 가미가제 그부분만을 편집해서 집중 보여주면서 충성을 맹세하는짓도 있었습니다.
    그명령의중심엔 윤석전이란 개신교 종교지도자가있습니다.
    정말 정치권에서 손을 보지않는다면 국가가 저런 일개종교단체에의해 통제하기 힘든 지경이 올수가있습니다.
    종교의 정치계장악은 절대로 있으면 안되겠습니다.



'알바데모'의 어제와 오늘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거리의 관제데모 중 단연 발군의 실력을 발휘해왔던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이 참가자에게 일당을 주는 ‘알바데모’를 벌여왔다는 게 밝혀졌다. 많은 이들이 추측해왔던 것이 사실임이 드러났다. 그들에게 용역을 준 곳들이 전국경제인연합회, 재향경우회, 심지어 국가정보원, 청와대 등이었다는 의혹도 점점 사실로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단체는 평균 한 해의 절반가량을 거리데모로 채웠으니, ‘동종업계’ 최고의 ‘수주 능력’을 자랑하는 단체였던 듯하다. 실제로 다양한 이슈들을 소화해내는 능력도 놀라웠고, 비교적 저렴한 일당임에도 알바 동원력에서 탁월한 실력을 보여 왔다. 심지어 좌파 단체들의 시위공간을 선점해서 벌이는 이른바 ‘알박기 데모’라는, 데모의 신상품을 활용해내는 창의력과 정보력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한데 여기서 나의 관심이 꽂힌 것은 이 단체가 아니라 이 단체에 고용된 ‘알바 참가자’다. 알려진 바로는 그들 중 상당수는 탈북자들이다. 비교적 저렴한 일당으로 고용할 수 있고 반공적 편향이 매우 강한 이들이니 대한민국어버이연합에 고용되기에 안성맞춤의 대상이겠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일년에 거의 절반을 이 단체가 주도한 데모에 참가해서 일당을 받아왔다면 그들의 직업을 ‘거리의 데모자’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1946년 말에 결성되고 그 이듬해에 가공할 족적을 남긴 서북청년단은 해방정국에서 활동한 가장 강력한 극우적 관제데모 단체였다. 이 단체가 주도한 데모의 참가자들 거의 대부분은 북한 공산주의자들에게 적개심을 품고 남한으로 월남한 서북(평안도와 황해도) 출신 청년들이었다. 이들은 공산주의에 대한 적개심이 매우 강했고, 혈기왕성한 청년들이었다. 또한 그들 대다수는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강성의 근본주의 신앙의 본거지였던 평안도와 황해도의 장로교도였다. 근본주의적 신앙은 편집증적인 신념으로 무장한 행동주의자를 만들어내기에 더없이 적합한 종교적 성향이다. 하여 그들은 제주 등지에서 거의 살인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무자비한 민간인 학살의 가해자로 둔갑했다. 그들이 처음부터 잔혹한 살인마는 아니었다. 물론 공산주의에 대한 적개심을 품고 월남을 선택한 자들이지만, 그렇다고 그 증오심이 그들의 잔혹한 살인마적 행동을 충분히 설명해주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들이 남한에서 처음 직면한 감정은 증오라기보다는 ‘막막함’이었다. 먹을 것, 입을 것, 잠잘 곳, 어느 하나도 갖지 못한 채 무인도로 떠밀려온 난파선 선원처럼 낯선 곳에 내던져진 유민에 다름 아니었다.

    그들이 하나둘씩 ‘월남자교회’로 찾아가고 서북청년단 같은 월남자 청년단체에 가담했을 때 그들은 비로소 임시거처가 생겼고 일당받는 일을 할 수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극우 관제데모였다. 이들을 고용한 자들은 미 군정에 소속된 경찰책임자인 조병옥과 장택상, 반공적 우익 지도자인 이승만, 그리고 친일경력의 기업가들 등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관제데모에 참가한 직업으로서의 데모자들은 얼마 안 가 증오의 사도로 주체화되어 갔고, 멸공주의 신념으로 무장한 잔혹한 극우 행동주의자가 되어갔다. 

    오늘의 탈북자들도 북한을 떠난 뒤 ‘막막한 유민’의 현실에 직면했다. 그런데 그들 중 많은 이들이 근본주의 성향의 개신교계 선교단체에 찾아가게 되면서 막막한 현실을 헤쳐 나가는 특정 경로로 초대된다. 그 경로에는 반북한, 반공주의적인 격한 언행을 드러냄으로써 일당을 받는 이른바 이념형 알바의 피고용자가 된 것도 포함된다. 또 그중에는 증오와 공격성이 가미되면 더 좋을 만한 일거리, 가령 반공적 거리데모 같은 것도 포함된다. 그런데 그런 증오와 공격성을 드러내는 강성 이념적 연기는 무수히 반복되면서 신념으로 돌변할 가능성이 많다. 하여 일용직 알바의 피고용자들이 벌이는 관제데모는 조금씩 그들을 오늘의 서북청년단으로 변신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불행한 체제의 이탈자들을 초대한 남한 사회는 1940년대나 오늘이나 이렇게 그들을 사회 속에 잘 정착한 행복한 존재가 되게 하기보다 사회의 위험분자로 살게 하고 또 사회를 위험하게 하는 자로 만들어 가고 있다. 

    최근 시민사회에는 탈북자들에 대해 편견과 배척의 담론들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우리 사회가 만들어낼 ‘괴물들’을 우리가 미워하고 배척하는 담론이다. 1940, 50년대에 그랬던 것처럼 또다시 우리는 그 괴물의 인큐베이터가 바로 우리 사회 자체임을 성찰하지 않는 담론이 번져나가는 것이다. 그런 괴물들은 탈북자들 사이에서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무성찰을 자양분 삼아 사회 도처에서 다양한 얼굴로 잉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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