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작은 도시 공동체 이야기 3]



사람은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사람을 만든다.


 

최규창[각주:1]


삶의 일부가 되어 버리는 집


       <건축학 개론>이라는 영화를 보면 주인공 승민(엄태웅)이 유학을 가기 전, 달동네 집에서 홀로 사는 어머니에 대한 걱정과 연민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짜증을 내는 장면이 나온다. “엄마, 아파트 같은 깨끗한 집으로 이사 좀 가! 이런 구질구질한 집이 지겹지도 않아?” 그러자 어머니는 냉장고에서 검은 비닐에 싸인 반찬통을 꺼내면서 무심히 대답한다. “얘는... 집이 지겨운게 어딨니. 집은 그냥 집이지...” 마지막 남은 가족인 아들마저 외국으로 떠나는 상황에 처한 어머니에게 가족이 생활하고 자랐던 집이라는 ‘장소성'은 마치 몸의 일부처럼 작동하고, 말을 걸어오고, 편안하고 깊은 잠을 잘 수 있게 해주는 공기와도 같은 자연스러운 공간이었을 것이다. 현대적 건축물을 설계하는 건축가인 아들에게는 어린 시절의 상처와 가난의 표상 같은 달동네 집의 의미가 아련한 추억 이상의 것이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어머니에게는 그 집이 곧 자기자신의 삶 자체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가 성년 시절의 대부분을 보냈을 그 마을과 시장 사람들은 모두 그 집을 중심으로 네크워킹 되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익숙해진 공간으로부터의 탈주는 꽤 큰 용기와 분명한 목적의식을 필요로 한다.  

       13년간 마포구 서교동의 작은 골목에서 빌라를 짓고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온 우리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공동체 주택이라는 공간 자체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간과하면서 살아왔다는 것을 점점 더 깊이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에서인데, 먼저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공간이 협소해지고 불편해지기 시작했다는 점, 그리고 우리들 스스로가 협소함 외에도 공간 자체에 제약되어 자신의 내면의 개혁과 미래에 대한 상상, 계획, 그리고 그 실행이 매우 힘들어졌다는 점에서 였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에 도달하는데는 많은 민감성이 필요했다. 사실 주거공간은 하나의 생존 조건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그것을 객관적으로 사유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거 공간을 거주보다는 자산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비싸고 넓은 집을 소유하는 것을 목표로 스스로를 공간에 맞춰가는 삶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넓은 집을 소유해도 정작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면 우리는 심한 부조화를 느끼게 될 것이다. 자신만의 공간이 없으면 시간도 의미가 없어진다. 시공간의 여유가 생겨도 아무 일도 할 수 없고, 마치 마비증상이 있는 것처럼 생산성 없이 그것을 소모해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삶이 반복된다면 우리는 자신이 처한 공간을 비판적으로 검증할 필요가 있다.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공간'을 찾아다니는 존재이기 때문에, 분명히 우리는 하루 중 어떤 자투리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나름의 생존 방식을 만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결국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우리가 어떤 존재로 살아가는가가 자신의 공간 좌표를 정확히 보여주는 시금석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적 공간의 한계


      근대의 공간은 그런 면에서 우리에게 그리 많은 선택지를 주지 않는다. 근대적 삶은 지난 수 백 년간 과학이라는 신을 영접하기 위해 모든 시간과 공간을 측정 가능한 단위로 분절시키고 운동과 에너지의 공식을 만들어 냈다. 최근 백 여 년간은 효율성이라는 목표 하에 철저하게 ‘구획화’된 시공간 속에 인간을 투입했고, 우리의 삶을 그 속에 안착시켰다. 갈릴레오는 자연에 존재하는 중력, 가속도 등의 개념을 인지하고 말로 서술하였지만, 뉴튼은 구체적인 시간(t)의 단위를 상정하여 이를 공식화했다. 그의 공로는 모든 운동을 시간으로 환원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절대시간’이 우주 공간의 중심에 기준으로 자리잡고 있어야 하는데, 이 확신 속에 이제 우주의 시간과 공간은 리듬이 제거된 채 동질화되어 버렸다. (이 동질화에 이의를 제기하는 작업이 앙리 르페브르의 <리듬 분석>이다) 이와 같이 과학은 측정단위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출발조차 할 수 없다. 과학은 결국 '자연의 수학화’가 아니던가. 이런 점에서 신학자 월터 윙크의 표현대로 뉴튼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발명한’ 것이다. 누군가가 시간과 공간에 기준을 세우고 나머지를 재배열하는 식으로 과학을 시작했고, 그것으로 우리의 시공간을 분절시켜 삶을 통제하게 된 것이다. 공간을 대수적인 수로 환원시킨 기하학이 오래 전부터 존재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우리의 일상에 밀접하게 대입되기 시작한 것은 근대에 와서다. 앙리 베르그손의 말대로, 우리가 지각하는 시간의 관념은 (이미 어떤 측정 단위로 양화(量化)되어 버렸기 때문에) 사실 시간이 아니라, (시계바늘의 거리처럼) 공간적 속성으로 치환된 시간에 불과하다(여기서 베르그손은 자신의 고유한 사유인 ‘지속’ 개념을 주장한다). 우리는 어김없이 아침에 일어나 오전 9시에 출근하고, 오후 6시가 지나야 퇴근할 수 있다. 동일한 점심시간에 쏟아져 나와 식사를 하고, 다시 시계에 의해 통제되는 오후 근무시간으로 투입된다. 집에서 아무리 달래도 밥을 먹지 않는 아이도 학교에 가면 얌전히 급식대에서 밥을 받아 시간 내에 식사를 잘 마친다. 우리는 공간과 시간에 순응하고 적응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것이 애초에 왜 정해졌는지를 아무도 묻지 않은채 말이다. 

       결국 우리의 삶은 공간 어딘가에 좌표로 존재하는 대상일 뿐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근대적 주체를 발명한 데카르트가 바로 수학적 좌표를 생각해낸 사람이 아니던가) 그리고 시공간은 기계화된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건축가의 한 명인 르 코르뷔제는 ‘집이란 그 속에 들어가 사는 기계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20세기 초 대부분의 건축가들이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근대란 인간의 삶을 효율성이 지배하는 거대한 기계로 환원시키는 작업이었고, 건축물이란 그 연장선상에서 공간을 구획시키는 기계화 과정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들뢰즈와 가타리 역시 근대의 모든 산물은 ‘기계와 기계의 이항접속’의 결과물이라고 해석한다. 예컨데 밥을 먹는 일은 수저-기계와 입-기계의 접속이고, 자동차 역시 사람들의 흐름을 절단하고 채취하는 기계인 셈이다. 인간은 가정, 회사, 거리, 술집, 교회을 전전하면서 자신의 공간을 ‘탈영토화’하고 ‘재영토화’ 한다. 이러한 배치가 안정화되면 그 사회는 다시 커다란 기계로서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몸은 ‘공간적 신체’(르페브르)이며, 공간의 생산물이 된다. 선생/학생, 의사/환자, 목사/성도는 학교, 병원, 교회라는 거대한 기계적 공간에 부합하는 신체로 가공되고 변형되어야 한다. 그리고 기계는 그 본질상 불가사리처럼 계속 커지고 비슷한 기능을 가진 주변의 사물들을 통합해 가게 되는 것이다. 한국 대형교회의 탄생은 결국 효율성과 시스템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어두움에 거하라"


       사실 시간과 공간의 구획화가 불완전했던 전근대 시대에는 자기 나이가 얼마인지 모르는 사람도 많았고, 국가와 민족의 개념도 선명하지 않았다. 근대는 ‘해가 뜨면 일어나 일하고 해가 지면 집에 가서 쉬던’ 시대에서, ‘분, 초 단위까지 관리되며 노동하는’ 시대로의 전환을 의미했다. 르 코르뷔제의 말대로 집이 거대한 기계라면, 인간의 의식 역시 기계화, 시스템화 되어 가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집의 개념은 이와 달라야 한다. 집은 인간이 안식하는 곳이고, 기계의 전원을 꺼야 하는 곳이다. 너무나 오랫동안 기독교는 ‘빛에 거하라’는 말을, 어둠을 악으로 규정하고 그 억압을 정당화하는 목적으로 사용해 왔다. 그리고 근대는 그 ‘빛'을 기계, 과학, 효율성으로 재해석했다. 그러나 인간은 불을 끈 어둠 속에서서만 쉴 수 있다. 효율성과 이유를 떠나, 우리는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받아주는 존재를 필요로 하고(그래서 신이 우리에게 부모를 주셨다), 불을 끄고 마음 속에 있는 어떤 이야기든 할 수 있는 공간을 필요로 한다. (인간 내면에 학문적인(위상학) 공간성을 최초로 부여한 프로이트가 전기충격요법이나 최면을 거부하고, ‘자유연상법’(조명을 줄이고 편하게 누워 이야기하게 하는 것)을 정신분석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도입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만약 가정이 그 역할을 하지 못하면 우리는 의식과 무의식의 균형을 잃어버리고, 효율성의 세계에서 무의식의 원형에 사로잡혀 자신의 의식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계산 가능성’을 신봉하는 근대의 기획은 인간의 상상력이나 직관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고, 형이상학이나 종교는 그것들과 함께 외부로 내몰려 버렸다. 그러나 인간은 이와 같은 기계의 시대를 얼마나 견딜 수 있었는가. 극단적 방식(자살)의 탈주가 급증하고 있고, 기계의 부속으로 자녀를 대하던 부모에 대한 반발이 인류 역사상 가장 거센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근대적 공간이 형성한 근대적 ‘의식’은 이제 그 이면의 무의식의 반발과 그로 인한 부조화로 자신의 좌표를 상실해 가고 있다. 근대적 주체가 실재가 아니라, 담론의 한 형식에 불과하다는 구조주의자들의 분석 이면에는, 그 주체를 존재하게 하는 의식의 불완전성과 편파성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의식은 다분히 공간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직선이 아닌 공간(삐뚤어진 액자, 굽어진 방)을 견디지 못하는 근대 인간의 의식은 분명 기하학적 산물 그 이상으로 평가받기는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가정, 그리고 그 집합인 주거 공동체 공간의 의미는 이와 같은 반(反)기계적 성향을 지닐 수 밖에 없다. 미셸 세르토는 공간의 감시로부터 탈주하여 도시를 가로질러 사는 삶을 이야기한다. 공간은 직선으로 이루어진 동선을 만들고 우리의 일상을 그 라인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훈육한다. 공간은 우리의 움직임을 이미 파악하고 있고, 매 단계마다 이항접속을 실행한다. 이 동선으로부터의 탈주는 용기를 필요로 하며, 전혀 예측되지 않은 방향으로의 전개가 요구된다. 공간의 질서와 법칙을 발견하고 체계화하는 사람을 우리는 천재라고 부르며(그래서 천재들은 어쨌거나 우리의 언어 체계 안에 존재한다), 공간에 새로운 경로를 개척하고, 가로지르고, 사각지대를 찾고, 허를 찌르는 사람을 선지자라고 부른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제 전혀 새로운 경로, 허를 찌르는 상상력, 어떤 무조건적이 것, 효율적이지 않은 것, 외부로부터의 은혜, 어두움에 속한 것이어야 한다. 흥미롭게도 시간의 구획화를 무시한 채 출퇴근 시간, 휴가 일정을 자유롭게 하고, 오후 일과 중 몇 시간을 사무실 불을 소등하고 자유시간을 가지도록 하는 외국의 일부 기업들의 생산성이 우리보다 훨씬 높고, 아이디어 개발과 특허 출원이 급증하는 것은 무의식으로부터 이런 직관의 힘을 꺼내는 방식을 시도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기독교의 가르침은 이런 ‘어두움’의 관점에서 다시 조명되어야 한다. 어찌보면 우리의 구원은 이 영역에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구현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바로 가정, 그리고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교회와 공동체를 허용하신 가장 큰 이유는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두움 속의 안식’을 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우리 인생의 궁극적 목표는 더 많은 사람을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성품을 담는 참된 인간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간 생산의 시급성


       이런 의미에서, 두 번째 건축을 시도하면서 우리 공동체가 가장 주안점을 두었던 것은 바로 설계였다. 13년 전에는 설계의 중요성에 대해 아무런 인식이 없었다. 우리가 경험했던 공간은 아파트 형태(넓은 거실, 방3, 화장실2, 베란다)의 구조뿐이었고, 그 이상을 상상할 능력이 우리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한국인의 59%가 살고 있는(비슷한 구조의 빌라를 포함하면 80%) 아파트는 사실 가장 전체주의적이며 가부장적인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에 대해 아무런 문제점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파트에서는 개인의 삶은 보장받기 어려우며, 불을 끌 수 있는 어둠의 자유 역시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안식할 수 없는 공간에서 우리의 무의식은 더 깊이 억압되고, 그로 인해 외부의 기계적 삶에 억압된 의식은 가정에서조차 안식을 얻을 수 없게 된다. 더구나 아파트는 동일한 형태의 가옥 구조 속에서 늘 집 값을 걱정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익공동체가 아닌가. 그 허위적 소속감과 만족감, 자괴감이 안식을 줄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서로를 위로하는 대화, 자기를 성찰하는 기도, 의식과 무의식의 통합을 통해 내면을 정돈하는 독서가 가정 내의 어떤 공간에서 가능한가. 가정이 어렵다면 공동체 내의 어떤 공간이 만들어져야 하는가. 우리의 ‘정신승리’로는 가능하지 않은 더 큰 원인이 존재한다면 이것을 어떻게 극복해낼 수 있겠는가. 해가 거듭될 수록 우리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그래서 2015년 봄에 우리는 다시 서울을 벗어난 외곽에서 땅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장소가 정해지자 6개월에 가까운 기간동안 우리는 모두 각자의 필요를 쏟아 놓고 설계에 집중하였다.   

       르페브르는 공간이 절대적인 것이라는 칸트, 뉴튼의 생각을 거부하고, 공간이 바로 '사회적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 생산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공간 생산의 방향을 몇 가지로 설정하였다. 우선 구성원 각자의 사적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러자면 가족이라해도 서로 방해할 수 없는 공간을 확보해야 했다. 우선 가정 내에서 전시용으로 불필요하게 확장된 큰 거실을 포기할 필요가 있었다. 큰 거실은 대형 TV를 멀리서 보는 즐거움과, 외부 손님들이 가정의 경제력과 화목함을 느끼게 할 미장센을 연출하는 용도 외에는 실제적인 목적이 없는 장소로, 주로 가부장적 존재가 TV리모콘을 들고 혼자 소파에 누워있기 일수인, 그리고 가족들이 각자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것을 한없이 지연시키는 죽은 공간이기도 하다. 사실 우리나라 외에는 전체 집의 면적 대비 이렇게 거실이 큰 집은 찾아보기 어렵다. 두 번째는 이와 반대로 공유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것은 각 가정 바깥에 존재해야 하는데, 이것은 첫 번째 방향(사적 공간의 확보)과 상충되지 않기 위해서다. 공유공간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지만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곳이며, 외부에 개방하고 타인을 환대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사적공간에서 일어나기 힘든 환대가 공적 공간에서는 가능해진다. 이것은 공적 영역이 사라져가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우리에게 주어진 중요한 투쟁의 지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건축물의 지하에 넓게 땅을 파고 다용도 공간을 조성하기로 했다. 이것이 근린생활시설로 신고가 되어 준공허가를 받는데 많은 고생을 하기는 했고, 생각보다 과도한 비용을 지불하기도 했지만, 이 공간이 공동체와 마을을 위해 사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하면 얻는 것이 훨씬 많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탈주 과정


       각 가정의 설계에 구성원들이 모두 참여한 것은 좋은 경험이었다. 가정마다 모든 공간의 타일, 벽지, 가구, 부엌, 전기등, 블라인드, 바닥재, 소품을 직접 선택했고, 외부에서 조달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아이들도 예외가 아니었고, 우리는 그들의 의사를 가능하면 존중해 주기로 했다. 특히 사적 공간의 확보와 가정 간의 선호 공간점유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설계를 수 차례 변경하면서 결국 우리는 2층~5층까지 한 가정이 사용하는 ‘땅콩집’ 형태의 건축물을 세우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복층의 답답함을 없애기 위해 반(半)층씩 공간을 조성하는 스킵플로어(skip floor)방식을 도입해서 독특한 공간을 만들었다. 오르내리기 힘든 점도 있지만, 모두가 방해받지 않는 각자의 안정된 공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장점이 더욱 중요했다. 이웃과의 층간 소음 갈등을 걱정할 필요도 없게 되었다. 특히 설계하는 과정에서 각자에게 필요한 공간의 필요성이 모두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큰 수확이었다.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공간설계 아이디어들이 쏟아졌고, 우리 집에서는 전혀 필요없다고 느꼈지만 다른 집에서는 반드시 만들기를 원하는 공간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건물을 같이 세우는 과정에서 서로의 차이점과 성향에 대해 보다 분명하게 알게 되는 소득도 있었다. 이것은 앞의 글에서 강조한 공동체의 ‘임의적 특이성’ 또는 ‘다중성’을 구현하는데 필수적인 정보들이라고 할 수 있다. 공동체는 획일화, 전체주의화 되어서는 안된다. 구성원들의 개성과 요구가 살아 있고, 그것을 서로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우정이란 서로의 다름을 수용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핵심을 리더십, 규약, 목표의식, 비전이라고 흔히 말하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차이를 수용하는 성숙함이다. 우정은 자선이나 환대를 넘어서는 가장 성숙한 사랑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또한 차이에 대한 인식은 향후 공동체의 성격을 결정짓는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공동체는 '원래 그래야만 하는’ 형식이나 원칙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구성원들의 개별적 차이가 융합되어 형성된다. 그 차이를 무시하는 것은 공동체의 생명력을 소멸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각자의 삶의 방식을 수용하는 다중의 공동체였다.

       이제 다음 글에서는 새로 만들어진 공동체 공간에서의 삶과, 우리 공동체가 지향하는 가치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이것은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큰 숙제인 교회의 문제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서로의 차이와 다름을 묶어주고 지평융합을 이루는 힘은 바로 '공유된 가치’(shared values)에 있다. 이것은, 역사성에 매몰되어 어떤 지속적이고 일관된 의미도 생성해 내기 어려웠던 철학적 해석학에 반(反)하여 움베르토 에코가 주장했던 ‘의미론적 동위체(isotophy)’와도 같은 것이다. 시대마다 용어와 해석이 달라지더라도 궁극적으로 지향하고자 하는 가치는 있는 법이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항상 의미를 찾고자 하며, 시대적 언어를 초월해서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 공동체의 좌표는 동시대적 관계와 역사적 연계 속에 생성된다. 따라서 ‘공유된 가치’는 반드시 공동체 스스로의 노력으로 시대마다 다른 언어로 정의되어야 한다. 이것은 해석의 과제임과 동시에 실천적 책임이기도 하다.


ⓒ 웹진 <제3시대>

  1.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그 곳에 오래 매여 있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그 수치가 세상변혁이라는 불가능성에 대한 부담과 지나친 민감함에서 나온 혼란이었음을 깨달은 후에 나는 비로소 자연스럽게 세계를 움직이는 거대 톱니바퀴로부터 일탈하여 나의 공간을 만들어 가는 소박한 대안적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십여년간의 직장생활을 마친 후 시작된 법인사업과 생활대안운동은 아직 고전을 면치 못하는 과정 중에 있지만, 그 속에서 날마다 새로운 가치들을 생성해가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웹진을 통해 앞으로 4차례에 걸쳐 그 가치생성의 과정을 일부 나눌 예정이다. (주) 포리토리아 대표, <고통의 시대, 광기를 만나다> 저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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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 현대 기술 문명을 둘러싼 타락과 상승의 변증법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과정)

‘임청하’에 대한 추억

지금은 홍콩영화의 열기가 사그라졌지만, 90년대 내내 홍콩영화의 파워는 한류열풍의 원조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막강했었다. 쟝르상의 특성으로 홍콩영화를 분류할 때, 80년대 중,후반이 ‘영웅본색’류의 홍콩판 조폭영화들이 르네상스를 이뤘던 시대라면, 90년대 후반은 중국으로 할양되는 홍콩 젊은이들의 잿빛미래를 감각적 영상으로 담아냈던 왕가위 감독 시대라 할 만하다. 그 사이에 끼어있는 90년대 전반기의 홍콩 영화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쟝르가 바로 현란한 액션과 장대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무술사극이었다.

필자가 당시 중국무술 사극에 매료되었던 이유는 전적으로 배우 ‘임청하’때문이었다. 얼음장과 같은 차가움과 중성적 매력까지 지녔던 임청하는 80년대 학생운동권(주로 PD계열 남학생들)의 영웅이었던 로쟈룩셈베르그의 서늘한 관능미를 연상시키며 나로 하여금 그녀의 열열한 매니아가 되게 하였다. 내가 임청하를 처음 만났던 영화가 바로 ‘신용문객잔(이혜민 감독, 1992)’이다. 이 영화는 임청하, 장만옥, 양가휘 등 90년대 홍콩영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배우들이 함께 등장하여 화제를 모았던 영화였고, 이후 등장하는 무술사극 열기에 기름을 부었던 영화라는 측면에서 기억에 남을 만 하다.

사막가운데 위치한 용문여관을 무대로 극의 스토리가 전개되는 데,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강렬하게 남아 있는 이 영화에 대한 기억은 서로 다른 매력을 지녔던 임청하의 서늘함도 아니고, 장만옥의 농염했던 백치미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용문여관의 주방장이 지녔던 기술, 특별히 양의 각을 뜨던 얼치기 주방장의 현란한 칼솜씨이다.  

동양에서, ‘기술’은 어떻게 ‘도’로 상승하는가?

영화 ‘신용문객잔’을 보고 4년이 흐른 뒤에 나는 철학과에서 개설되었던  <장자>강독에 참여한 바 있다. 함께 책을 읽던 중에 <장자>, ‘양생주’에 등장하는 포정이 소 잡는 이야기를 접하고는, 불현듯 잊고 지냈던 용문여관의 주방장이 떠올라 나 혼자 비디오 가게에서 테잎을 빌려 주방장이 양을 잡는 장면만 몇 번이나 돌려봤던 기억이 있다.

백정 포정이 문혜군을 위해 소를 잡은 일이 있었다. 손, 발, 무릎, 어깨를 모두 이용하여 소를 잡았는데, 뼈와 살을 발라낼 때의 칼쓰는 소리가 마치 옛 선인들의 음악소리 같았고, 그 동작 역시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절도에 맞았다고 한다. 이를 본 문혜군이 “소잡는 기술이 어떻게 해서 이런 경지에 이르렀는가?” 하고 물었더니, 포정이 대답하기를; “제가 즐기는 것은 ‘도”입니다. 도는 기술보다 위에 있습니다. 처음 제가 소를 잡을 때는 눈 앞에 놓여있는 소를 보는 데 급급했지만, 3년이 지나자 소의 전체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요즘 저는 마음으로 소를 만나지 눈으로 보지 않습니다. 마음의 눈으로 손을 놀립니다”  

위의 예는, 동양적 사유의 중요한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도’가 어떻게 기술에서 시작해서 ‘도’의 경지로 상승하는지를 보여준다. 처음에는 소를 봐도 보는 것이 아니었는데, 3년이 지나자 비로소 소 전체가 눈 안에 들어왔다고 포정은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소를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보고, 손을 놀릴 때도 눈의 감각이 아닌 마음으로 놀린다고 말한다. 확실히 서양의 영, 육 이원론과는 다른 사유다. 물론 물적 축적에 따른 질적 승화를 언급하는 변증법적 논리학이 영과 육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서양적 해법으로 제시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양적 사고는 몸이 점차 대상과 합일되는 과정에서 마음의 테두리(범주)를 해체하고, 사물을 향해 여과 없이 투신해 가는 동양적 합일의 개념과는 그 발상이 다른 듯 하다.

다시, 근대를 묻다

지금까지 동양적 전통에서 기술이 도의 경지로까지 승화되고 있음을, 우리는 <장자> ‘양생주’에 등장하는 포정의 이야기를 통해 확인하였다. 이에 반해, 서구 정신사에서 기술은 어떤 함의를 지니는가?

근대는 인간의 전 영역을 합리화하는데 성공한 시기였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합리화되면서 기술과 과학이 발전하였고, 인간과 사회의 관계가 합리화되면서는 봉건제가 물러가고 자유와 평등을 특징으로 하는 민주주의가 사회운영의 기본원리로 등장하였다. 인간은 최종적으로 신과 인간의 관계마저 합리화 시키는데 성공한다. 비신화화와 비종교화를 언급하고는 마침내 신의 죽음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자본주의는 이러한 근대가 선물한 명절 종합선물세트와 같다. 생산물의 확대를 위해 과학과 기술이 사용되고, 생산관계의 개선(노동력 확보)을 위해 근대는 봉건제로부터의 인간 해방을 선포하고 급하게 이를 앞당긴다. 자유와 평등의 이름으로. 자본주의의 생존방식인 소비의 미덕을 찬양하고 향락에 대한 동경을 부추기기 위해 자본은 신마저도 저 높은 곳에서 끌어내려 살과 땀냄새 나는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뒹굴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우리의 지상에서의 삶은 (신에 의해) 긍정이 되었고, 필요와 need를 추구하는 우리의 탐욕은 현대 시민사회의 덕목 중 하나로 변신하게 되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니 이 모두가 자본의, 자본에 의한, 자본을 위한 술책들이 아니었나 싶다. 

이러한 근대(성)의 프로젝트에 대해 조밀한 분석을 시도한 집단이 있었으니, 흔히 ‘비판이론’(Critical Theory)으로 알려진 프랑크푸르트 학파이다. 기본적으로 맑스의 세례를 받은 이 그룹의 대표적 인물들로는 <계몽의 변증법>으로 유명한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있고, 21세기 기술복제시대의 미학이론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발터 벤야민, 맑스와 정신분석을 연결하고자 했던 마르쿠제 등이 1세대를 대표하는 학자들이라 할만하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 비교적 덜 활동적이지만, 현존하는 철학자중 가장 잘 팔리는 위르겐 하버마스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2세대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서양에서, 기술은 어떻게 (근대와 맞물려) 타락하는가?

프랑크푸르트학파가 그들의 논지를 끌어오기 위해 사용했던 ‘비판이론’은 관념주의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자본주의 시대 물화의 원인이라 할 수 있는  ‘실증주의(positivism)’에 대한 비판이다.[각주:1]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은 이러한 분명한 목적의식을 갖고 기획되었다.

우선 그들은 두 종류의 이성에 대해 논한다. 하나는 봉건제의 압제와 굴레에서 인간을 해방시키는 역할을 담당하는 반성적 이성이고, 다른 하나는 도구적 이성으로 자연에 대한 기술적 조작과 통제를 그 목적으로 한다: “이성은 스스로를 보편적 주체로 서게 함과 동시에……이성은 자기 보존을 위해 세계를 제어하는 계산적 측면도 갖는다.”[각주:2] 도구적 이성의 견지에서 보자면, 자연(대상)은 오로지 ‘얼마만큼 인간에게 쓸모 있는가?’로 평가된다. 계몽의 변증법 저자들은 이를 전체주의적 논리라고 꼬집는다.[각주:3] 

도구적 이성이 말하는 전체주의적 논리는 타자를 전유함으로써 자기를 실현하는,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동일성의 논리이다. 이는 자본주의의 발생과 발전, 그리고 성숙의 과정을 지탱하는 뼈대와도 같은 역할을 하였다. 궁극적으로 자본주의는 대상에 대한 끝없는 착취를 통해 자기 존재가 증명되는 원칙이다. 그런데 대상에 대한 착취와 그 다음 착취의 대상으로의 이동은 환유적 연결고리로 이어져있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갛고, 빨간 것은 사과이고, 사과는 맛있고, 맛있는 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긴 건 기차, 기차는 빨라, 빠른 것은 비행기”이다. 이 문장에서 의미란 없다. 단지 문장이 끊이지 않고 대상이 바뀐 채 계속 이어지는 것이 의미라면 굳이 의미일까. 자본주의는, 맛있는 건 바나나-긴 건 기차-빠른 것은 비행기로 계속 (환유적 연결고리를 따라) 의미가 미끄러져 가듯, 그 착취의 대상이 자연이건, 인간의 노동력이건, 인간의 감정과 꿈까지도, 하물며 (반자본주의적이어서) 진보적이라고 불리는 것들까지도 자기증식의 욕망 안으로 빨아들이는 강력한 의지이며 삶의 방식이다.  

이러한 근대의 프로젝트에서 기술은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자본주의의 맹아들이 싹틀 수 있도록 하는 토양을 제공하였고, 산업혁명 이후 자본의 급작스런 팽창을 위한 사회적 인프라 구축을 가능케 했으며, 현대에 이르러 기술은 인간이 욕망하는 모든 것을 구현하는 마법사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하여 현재의 기술은 급기야는 원본과 복제의 경계를 무너뜨렸고, 오히려 복제가 원본을 대신하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고 평가된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리틀리 스콧 감독, 1982)에서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replicant 생산을 모토로 탄생한 타이렐사의 복제인간 레이첼처럼 말이다 (그녀는 다른 복제인간과는 달리 어릴 때 기억이 입력되어 있어서 자신이 진짜 인간이라 믿는다). 이렇듯 기술이 발전할수록 진짜와 가짜의 구별이 더 모호해지고, 나를 나라고 부를 수 있는 근거 조차 검증 받아야 하는 시대, 이를 보드리야르는 ‘시뮬라크르’ 세계라 말한다.

에필로그: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문제는 인간의 행복(?)을 위해 발생한 기술이 (혹은 기술의 부산물들이) 이제는 인간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자신에게서 고안된 것들이 그 칼날을 우리에게로 향한 채 다가오는 전혀 새롭고 낯설고 불안한 경험을 인류는 최초로 하고 있다.[각주:4]

새의 깃털을 모아 밀랍으로 붙힌 뒤 날개를 만들어 태양을 향해 비상하는 이카루스처럼, 인간은 한쪽에는 최첨단의 테크놀로지로, 다른 한편은 자본의 논리로부터 흘러나오는 욕망이라는 날개를 달고 태양을 향해 비상하고 있다. 다이달로스가 너무 높이 날면 태양이 밀랍을 녹여 떨어질 것을 경고 했으나 이카루스는 계속 태양을 향해 고도를 높힌다. 신화에 의하면 이카루스는 태양을 향해 비상하는 것에 도취되었다고 말하지만…글쎄…, 점점 태양에 가까이 다가가면서 이카루스도 불안해하지 않았을까? 문제는 불안이 시작되고 그 불안으로 인해 영혼이 잠식되어 감에도 불구하고 비상을 멈출 수 없다는 점이다.

현대 기술문명의 현재와 미래가 이카루스의 그것과 같은 것이라면, 그냥 이 비상을 멈추고 추락해버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물론 자본의 달콤한 논리와 속삭임이 추락하는 우리를 그냥 놔두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에잇! 그냥 눈 질끈 감고 추락해버리자!! 그리고 나서 우리가 무엇을 다시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것이 더 빠른 선택이 아닐까? 이 불쾌와 고통의 반복강박을 계속 반복하는 것 보다는 말이다. 누가 알겠는가? 우리의 하강이 시작되는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새 하늘과 새 땅’이 펼쳐질런지….

ⓒ 웹진 <제3시대>

  1. “부르주아 사회는 동일성에 의해 지배된다. 그것은 다름을 추상적인 양으로 환원시킴으로써 비교 가능한 것으로 만든다. 계몽에 있어 수나 궁극적 일자로 환원될 수 없는 것은 환상이 된다. 근대 실증주의는 그것을 문학이라고 하여 지워해버린다”- M. Horkheimer and T. Adorno, Dialectic of Enlightenment (New York, 1972), 7. [본문으로]
  2. Ibid., 83-84. [본문으로]
  3. “계몽사상의 경우, 계산과 효용의 원칙에 들어맞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 의문시된다….그에 대한 정신적 저항은 단지 그 힘을 강화시킬 뿐이다. … 또한 이 같은 신화에 반박하기 위한 목적으로 저항세력이 어떤 신화를 제시할 경우, 이러한 신화조차 계몽적 이성의 용해적 합리성의 원칙에 굴복하고 만다. 계몽주의는 전체주의적인 것이다.”-Ibid., 6. [본문으로]
  4. 한스 요나스는 기술문명에 대한 윤리적 논의를 하면서 “공포의 발견술”을 언급한다: “완전히 새로운 양태의 권력과 이러한 권력을 창출할 수 있는 가능한 양식들을 예속시킬 수 있는 선과 악의 규범에 관해서 전통 윤리학은 아무것도 제시해 주지 못한다. 우리가 고도의 기술과 함께 들어서게 된 집단적 실천의 처녀지는 윤리 이론에 관점에서 보면 아직 아무도 살지 않는 미개지이다. …… 무엇이 윤리의 나침반으로 가능할 수 있는가? 미래에 있을 수 있는 심상치 않은 상황의 변화, 위험이 미칠 수 있는 전지구적 범위, 그리고 인간의 몰락 과정에 대한 징조를 통해서 새로운 윤리적 원리들이 발견될 수 있다. 나는 이것을 ‘공포의 발견술’이라고 명명한다.” – 한스 요나스, 『책임의 원칙』 (이진우 역, 서광사), 5-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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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2)
: 죽음의 고고학 考古學

이상철
(시카고 신학교 / 윤리학 박사과정)

죽음의 극복과 근대의 탄생

중세 말 ‘죽음의 무도’는 죽음의 일상성, 죽음의 편재라는 절망적 상황을 춤판이라는 상반된 이미지와 결합시켜 그 비극미를 극대화시킴과 동시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녀)가 비록 대단한 권력과 인기를 가진 왕이나 교황, 혹은 유명한 슈퍼스타라 할지라도 죽음을 피해갈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를 가리켜 사람들은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메멘토 모리’라는 짧은 경구로 대변되는 삶에 대한 허무와 죽음의 공포는 시대에 따라 그 모양새와 강도가 다르긴 했지만 인류역사의 발생과 더불어 끊임없이 이어져 내려왔다.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니체는 근대 이후 전통적 서구기독교 가치의 몰락이 사람들에게 삶에 대한 허무를 선물했다고 증언하지만, 서구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기독교의 가치가 팽배했던 시절에도 그러한 감정이 여전히 인간사회를 지배하고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중세 말이 그런 대표적인 경우가 아닐까 싶다.

죽음의 테마가 중세 말을 휩쓴 이유들 중 하나는 페스트의 창궐에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1437년에 발생한 페스트는 3년 만에 대륙전체를 휩쓸면서 유럽전체 인구의 1/3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이후에도 페스트는 10년 혹은 12년을 주기로 비록 소규모였지만 지속적, 국지적으로 발생하였다. 그 당시 유럽인들에게 있어 삶은 어쩌면 눈앞에 있는 죽음을 준비하는 기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푸닥거리를 필요로 했고, 그 푸닥거리에 쓰일 제물로 유대인들이 낙점되었다. 이는 유럽의 대다수 기독교인들에게 쌓여왔던 유대인들에 대한 앙심이 폭발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중세가 진행되면서 도시가 발생하고 수공업과 시장경제의 초기 형태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유대인들은 고리대금등 지금으로 따지면 악덕 기업주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며 막대한 이익을 챙긴다. 이러한 유대인들을 바라보는 유럽인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그러던 차에 일반 유럽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집에서 고양이를 많이 기르고 있었던 유대인들은 페스트로 인한 사망률이 적었다. 그 무렵 유대인들이 기독교 신자들의 우물에 독을 넣었다는 괴소문이 돌기 시작하면서 유대인들을 향한 학살이 자행되었다. 결국, 죽음에 대한 공포는 그 공포의 함량에 걸맞는 희생제의를 필요로 했고, 그 희생은 다시 누군가의 죽음을 부르는 광기의 연속이 중세 말 유럽을 휩쓸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교회는 급속히 그 영향력을 상실하고 만다. 전능한 하나님이 다스리는 합리적이고 질서있는 우주적 질서와 은총이 넘치는 신의 섭리는 죽음의 공포, 지옥의 공포로 전환되었고, 많은 사람들은 이제 곧 자신에게 닥칠 심판과 죽음에 대해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럴수록 로마교황청은 교회로부터 이탈되는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 더욱 죽음의 공포를 강조하면서 기독교 특유의 회개(고백, 고해성사)의 교리를 강요한다. 이는 종교개혁의 불씨가 되었던 면죄부 판매로 이어지면서 중세는 서서히 몰락의 수순을 밟아가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중세 말 유럽에 휘몰아친 죽음의 테마는 정반대에 놓여있는 이성주의를 앞당기는 계기가 된다. 존재론적으로 느끼는 삶에 대한 허무와 죽음의 공포를 인간들이 인식론적으로 회의하기 시작하면서 근대(성)가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중세 철학을 마감했다는 평가를 받는 ‘모든 것을 회의한다’고 외친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와, 후에 근대철학을 열었다는 칸트의 ‘주체 철학’은 결국 중세 말 죽음의 테마로부터 시작된, 존재에 대한 알 수 없는 허무와 보이지 않는 공포를 극복하려는 회의와 반성적 사유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죽음이라는 알 수 없는 세력을 뚫고 피어 오르는 인간정신의 합리성! 근대는 이렇게 우리의 무지와 그 무지로 인한 공포에 한 줄기 빛을 비추며 시작된다. 그렇다면 근대(성)는 죽음을 정복했는가?
아니, 더 근원적으로 인간 정신은 어떻게 죽음을 사유하여 왔는가?

죽음에 대한 생각들 I: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기독교의 부활사상과 맞물려 다루어지는 죽음 이외에 서양의 철학과 종교에서 죽음이 독자적인 관심과 논의의 대상이 되었던 적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현대 철학으로 넘어와서 주로 프로이트와 라깡으로 이어지는 정신분석학을 덕목으로 가져오는 학자들과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에서 번져나갔던 실존주의 철학자들에 의해 죽음이 다루어지고 있을 뿐, 서양철학사에서 죽음에 대한 해석이 이루어졌던 기억은 실로 미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이 도대체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직면했을 때 그 논의의 시작은 플라톤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플라톤에게 있어 죽음은 없다. 그는 영혼 불멸설을 주장하며  ‘육체는 영혼의 감옥’이라 말한다. 플라톤에게 있어 현실의 삶이란 영혼이 육신의 감옥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고, 죽음은 다시 영혼이 육신과 분리되어 원래의 자리, 즉 이데아의 세계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플라톤적 도식은 서구 형이상학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첫 번째 단계에서 ‘이데아의 세계’와 ‘물(物)의 세계’가 날카롭게 대립한다. 그 다음 단계에서 이데아의 세계는 자신의 속성을 물의 세계로 내어준다. 그것이 플라톤에게 있어 영혼개념이다. 마지막 단계에서 영혼을 물질에 구현한다. 그것이 현실의 삶이고, 현실의 삶 속에 구현되었던(갇혀있었던) 영혼이 다시 이데아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 죽음이다.

헬레니즘적인 사유와 기독교의 상관성에 주목하는 견해들은 플라톤적인 급격한 초월이 후에 서구 기독교의 발전과정에서 절묘한 대칭을 이루며 그리스도교 도그마 형성에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한다. 태초에 신이 있었다. 신이 인간세계 (피조세계)를 구원하려고 자신을 내어준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이고, 그는 철저히 인간이라는 물질 안에 구현되었다. 그리고 그는 사망과 권세를 물리치고 부활하여 하늘로 귀환한다. 그 과정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는 존재론적으로는 크리스챤을 하나님에게로 이어주는 탯줄과도 같은 역할을, 인식론적으로는 신의 세계를 가늠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플라톤의 영혼개념은 이와 너무나 닮았다. 영혼은 존재론적으로 인간이라는 물의 세계에 구현된 이데아의 역할을 하고, 인식론적으로 이데아를 밝히는 근거가 된다.          

그러나 플라톤의 제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죽음의 의미는 플라톤의 그것과는 달랐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현실적 삶 속에서 자기라는 것은 육신과 영혼이 현실적 시간과 공간안에 합치되어 하나가 되어있는 것이므로, 이것들이 분리된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 있어서는 파국이 되는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질문한다: “이데아의 세계로 돌아간 영혼이, 생물학적이고 물리적인 몸을 입고 있었던 자기가 자신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인식하고 그것의 정당성을 무슨 근거로 보장받을 수 있는가?” “나를 나라고 부를 수 있는 근거는 나의 개별적 영혼이 나의 생물학적(물리적) 신체와 하나가 될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 아닌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분명한 사실은 지금 여기에서 내가 나의 육신을 입고 개별적 나의 영혼을 감지하고 있다는 것이 생명이라는 사실, 그리고 이러한 합일이 깨어지는 죽음은 비록 영혼의 죽음이 아니라 할지라도, 내가 나로서 인지될 수 없기 때문에 그의 스승이었던 플라톤과는 달리 생물학적 죽음에 대해 자유로울 수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과 육체가 결합된 현실의 개체에 주목한다. 영혼은 자연과 단절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연속선상에 위치한다. 즉, 그는 영혼과 육체를 독자적 실체로 보지 않고 분리될 수 없는 두 측면으로 본 셈이다. 이렇듯 분명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보다는 전향적인 영혼에 대한 관념을 갖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신체와 결합한 영혼, 즉 개체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선까지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플라톤적인 영혼의 굴레로부터(예를 들어, 영혼의 선재성과 영혼의 독자적 가치를 인정하는 점)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다.

이후 서구 정신사에서 영혼에 대한 논의는 플라톤적인 초월과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내재를 사유하는 경향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며 나타난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내재 역시 엄격히 말하면 초월적 요소를 상당부분 함축하고 있다. 다만 상대적으로 플라톤적인 과격한 초월보다 약하다는 의미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내재를 완만한 초월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결국, 근대가 도래하기 전까지 수 천년 동안 서구 역사에서 영혼에 대한 논의는 전체적으로 초월적 사유로 이어져 갔다고 볼 수 있다.      

죽음에 대한 생각들 II: 근대철학에서 실존주의로, 그리고 임마누엘 레비나스를 향하여

이 글의 초반부에 중세의 붕괴와 근대 탄생의 시나리오에 대해 언급한 바와 같이, 근대 이후에 철학자들 (예를 들어 영국의 경험주의, 칸트, 분석철학, 논리 실증주의 등)에게 있어 죽음은 더 이상 논의의 대상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근대 이후 철학에서는 경험이나 관찰을 통해서 증명해낼 수 없는 것들을 철학적 화두에서 배제시켰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신이나 죽음, 천국 등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이슈들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고, 우리 감각에 포획되는 확실한 것, 드러난 것, 자명한 것, 눈에 보이는 현상세계들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다가 20세기에 들어오면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경험하며 실존주의자들에 의해 철학 안에서 죽음의 테마는 다시 새롭게 사유된다.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리라 믿었던, 근대적 이성에 기반한 기술문명이 전체주의와 결합되면서 어떻게 인류를 재앙에 이르게 했는지? 역사상 유례가 없었던 한 민족을 향한 말살이 어뗳게 계몽의 시대를 거치며 진화를 거듭해온 인간 의식 안에서 허용될 수 있는지? 이러한 홀로코스트에 대한 트라우마는 단순히 유태인 혹은 게르만족에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20세기 후반 서구 철학, 신학, 사회학, 문학 등 인문학 전반에 원죄의식처럼 새겨져있다. 그래서 인간들은 다음의 문제들에 대해 다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집단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죽음은 무엇인가? 왜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전쟁터로 내몰리는가? 왜 우리는 우리의 의사와 관계없이 누구를 죽여야하고 누군가로부터 죽임을 당해야 하는가? 혹, 인간 삶의 형태와 내용이 다른 동물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창조한 고귀한(?) 존재로서의 인간의 삶은, 사실은 인류전체가 저질러 왔던 집단 사기극 아니었던가?

장 폴 샤르트르는 봇물터지듯 폭로되고 있는 인간 삶 전반에 대한 실존적 물음에 대해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라는 대답을 던지며 인간존재에 대한 새로운 해명을 시도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이어져오던 서구 전통의 존재론도 아니고, 칸트가 내세웠던 선험적 주체도 아닌, 신으로부터 어떤 선험성도 부여받지 않은 인간 ! 다시 말해 실존주의적 인간이란 신적 디자인에 의해 움직여 가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현실을 향해 내던지면서 그 궤적을 따라 미래를 만들어가는 그런 인간인 것이다. 이 부분은 레비나스와 겹치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후에 레비나스와 실존주의를 구분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  ⓒ 웹진 <제3시대>

<* 다음 호에는 ‘타자의 윤리학’으로 널리 알려진 레비나스의 죽음에 대한 논의들과 자살이 범람하는 사회에서의 자살(론)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글을 맺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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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문범
    2009.07.23 03:22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잘봤습니다.
    그런데 이 싸으트를 여니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는 군요. 트로이 목가 하이재커라는 바이러스가 감염됩니다.
    조사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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