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 단상



김난영

(한백교회 교인)

 


1. 

       한달 전, 뉴딜 청년 일자리사업에 지원하였다. 서울시가 공공서비스 일자리를 일정기간 제공하고 이를 통해 민간 일자리 취업 연계를 목적으로 하는 프로그램으로, 특별히 만18세부터 39세까지의 청년을 대상으로 하기에 취업준비생부터 나 같은 경력단절여성 지원자들이 많다.

        운 좋게 합격을 하고, 같은 기관에 배속된 각기 다른 부서의 동료들과 1박2일 워크숍을 가게 되었다. 동료라고는 하지만, 많게는 열여섯 차이가 나는 친구부터, 대부분 대학을 갓 졸업한 스물넷에서 일곱 사이의 친구들, 아니 한참 아래의 동생들이다. 물론 기혼자에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은 내가 유일했고, 게다가 최고령자로 기관에서 함께 따라온 직원들과 비슷한 또래였다.


2. 

      어디가서 웬만해서는 잘 쫄지 않는 성격이지만, 동료들의 자기소개를 다 듣고 나니 뭔가 계속 움츠러드는 느낌이다. 입을 열면 꼰대 소리 들을까 겁나서 가능한 조용히 동료들 이야기 듣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생소한 신조어, 줄임말을 들을 때면 조용히 휴대폰을 꺼내 들고 검색창을 열었다. 마치 낯선 시간여행자가 된 기분이었다.

       동료들의 이야기는 다양했다. "난 대안교육을 받았다. 스스로 대학을 선택하지 않았다. 아직까지 후회는 없다"는 패기 넘친 목소리를 내는 친구도 있고, "갑작스레 찾아온 엄마의 투병생활로 2년제 대학을 선택했고 조금 빨리 사회에 나오게 되었다"는 스물두 살 친구도 있었다. "알 수 없는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을 시도했었다"는 누군가의 고백에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난감하기도 했다. 남 이야기하듯 "그땐 세상이 너무 싫었다"는 생기 가득한 그의 얼굴은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또 한 친구는 축구장 한 켠에 수많은 후보선수를 그려놓고는 "나는 일터에서 이 많은 후보선수 중 한 명에 지나지 않는다. 뛰어난 후보들이 가득하고 감독은 짧은 경기시간 동안 선수교체를 수없이 반복한다. 난 언제 벤치로 돌아갈지 모르는 신세다"라고 이야기한다. 곳곳에서 박수가 나오길래, 나도 덩달아 박수를 쳤다.


3. 

        전시를 위해 작가와 미팅을 했다. 기획안에 대한 이야기를 실컷 하고 나니, 그가 "그러면 제가 얻는 것은 뭐죠?"라고 묻는다. 전시를 통해 작가가 얻을 수 있는 게 뭘까.. 잠시 고민하다 아티스트 피(fee)를 이야기했다. 내가 일하는 곳의 사정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고, 빠듯한 예산에 몇 번의 협의를 거쳐 최대한 작가를 배려한 거라 생각했던 금액을 이야기했다. "저는 받은 만큼만 일해요. 제시하신 금액은 제겐 딱 열정페이 수준이네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내부적으로 다시 한번 협의 후 연락 드리겠다"하고 성급히 그를 보냈다. 내가 그의 질문을 잘못 이해한 건가? 오후 내내 체기가 가시질 않았다. 


4. 

        십여 년 전, 공공미술관에서 일급 8천원을 받고 일했던 적이 있다. 보통은 대학원 석사과정 이상이 지원하고 그것도 치열한 경쟁을 통과해야만 할 수 있는 인턴쉽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미술관 인력이 너무 부족해서 비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뽑혀 일을 하게 되었다. 나보고 일을 해보라 권했던 담당 직원은, 하루 8천원을 주면서도 나에게 세상에 다신 없을 기회를 준 것 마냥 당당했다. 그리고 나도 그 직원에게 "정말 감사하다. 열심히 일 해 보겠다"고 꾸벅 인사를 했었다. 나는 정말 감사한 일로 알았다.


5. 

        24시간을 끌고는 작가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는 "미안하다. 어쩔 수 없다"라는 말을 의미 없이 반복하는 내게 "그럴 줄로 알고 있었다. 괜찮다"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어제 그의 대답이 더 고마웠다. 나는 아티스트 피(血)를 먹고 살고 싶지 않다. 


6. 

        꼬박 6년만의 출근이다. 솔직히 며칠은 살림과 육아 걱정 없이 매일 외출하는 기분이었다. 내 생활 패턴이 바뀌었다는 생각에 기뻤지만, 오랜만에 돌아온 내 일터는 십여 년 전이나 별로 다를 게 없다. 

        웃는 모습이 마냥 내 아이들 같은 동료들에게 "젊음은 그런 거야. 무조건 부딪히고 견뎌보는 거야"라고 말 할 수 없다. 한번 잘못 부딪혔다간, 한 사람의 인생을 산산조각 낼 수 있는 시스템이 가득하고, 견디는 게 능사가 아닌 세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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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촛불집회는



김난영

(한백교회 교인)

 


       큰 맘 먹고 아이들과 집회에 참석하기로 했습니다. 며칠 전부터 촛불집회에 가보고 싶다는 여섯 살 첫째 녀석의 성화에 못 이겨 약속을 하긴 했는데, 갑자기 남편 일정에 변동이 생겨 저 혼자 아이 둘을 데리고 지하철로 광화문까지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환승하기 직전 잠이든 두 녀석들. 첫째는 겨우 깨워 손을 잡고, 깊이 잠든 십팔 킬로그램의 둘째는 어깨에 둘러업고 환승을 합니다. 헉헉 소리가 절로 나고, 대체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해야 하나, 내가 이러려고 집회가나 싶습니다. 

        그래도 무사히 약속 장소에 도착하고 남편과 일행을 만나 서대문에서 광화문, 광화문에서 효자동까지 걷고 다시 광화문으로 청계광장으로 두 시간 넘게 걸었습니다. 큰 아이는 곧잘 걸었지만, 낯선 분위기 때문인지 둘째 아이는 걸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남편과 저는 그런 아이들을 안고 업고 목마 태우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첫눈 오는 날 콧물 질질 흘리는 어린 아이들이 집회에 나온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지나가는 어른들이 초콜릿, 사탕, 귤도 주셨습니다. 그러다가 둘째가 LED 촛불을 얻었는데, 그걸 본 첫째 녀석이 자기는 왜 촛불이 없냐고, 촛불집회인데 촛불은 언제 주냐고 혼자만의 시위를 시작합니다. 아빠를 이리저리 끌고 동동거리며 '나에게도 촛불을 달라'는 촛불시위를 시작한 거죠. 한참을 아이를 어르고 달래다 지친 남편은 결국 광화문에서 천원을 주고 촛불을 삽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형님의 진짜 촛불이 갖고 싶은 아우가 또 울기 시작합니다. 어린 아이와 함께 하는 집회가 다 이런 거 아니겠냐며 저희 부부는 더 이상 힘이 들어가지 않는 팔을 어루만지며 따끈한 음식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큰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율아, 오늘 촛불집회 어땠어?" 아이는 언 몸이 녹는 중인지 그저 멍하니 아무 대답도 안합니다. 아이의 눈에 비친 집회가 어땠을까 궁금했는데 아이는 그저 촛불을 만지작거릴 뿐이었습니다. 기대보다 싱거운 반응에 좀 아쉽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며칠 전, 큰 아이의 친구네를 집으로 초대해 저녁식사를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방에서 노는 아이들이 조용하다 싶더니, 태극기를 그려 나와서는 흔들며“박근혜는 하야하라! 박근혜는 퇴진하라!”고 목청껏 외치며 밥상 주변을 뛰며 돕니다. 한창 어수선한 세상이야기를 하고 있던 어른들은 깜짝 놀랍니다. 어른들이 집회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고, 집회에서 본 건 있어서 참견하려면 뭐라도 적어 들고 해야겠는데 두 녀석 모두 까막눈이라 태극기라도 들고 나가보자 했나봅니다. 흥분한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물으니, 박근혜가 누군지도 ‘하야’가 무슨 뜻인지도 모른답니다. 한참을 소리 지르고 뛰느라 숨이 찬 목소리로 깔깔 웃으며, 묻는 말에 “몰라, 모르는데”라고 대답하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에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난감하기만 합니다. 


        아이가 그린 태극기를 다시 봅니다. 순서가 뒤죽박죽이긴 합니다만 제법 건곤감리도 흉내 낸 모양입니다.(어쩌면 순서가 뒤바뀐 모양이 꼭 지금의 우리나라 같습니다.) 자세히 관찰하고 그린 흔적입니다. 집회 때 어른들의 모습도 그렇게 살폈겠지요. 어른들이 무엇을 외치는지 어떻게 행동하는지, 태극기의 색과 모양을 새기듯 마음에 새겼을 겁니다. 광장 곳곳에 나부꼈던 태극기. 태극기가 우리나라를 상징한다는 것은 여섯 살 꼬마도 압니다. 엄마, 아빠가, 그리고 많은 어른들이 나라를 위해 태극기를 흔들고 있었다고, 촛불을 들고 있었다고 짐작해주길 바랄뿐입니다. 

        어른의 상식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작금의 사태를 아이에게 나쁜 임금의 허튼 짓쯤으로 설명하기엔 저도 이제 더 이상 화가 나서 못 하겠습니다. 겨울 추위 속에 더 이상 많은 사람 고생 않게 하루 빨리 정신 차리고 방 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박근혜는 퇴진하라! 세월호 7시간! 박근혜를 구속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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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음'과 '불편함'에 대하여



김난영

(한백교회 교인)

 


       아이를 대할 때 매번 웃는 낯으로 대할 수 없다. 천사표 엄마의 유통기한은 고작해야 2-3년, 아이는 날이 갈수록 부모의 뜻과 통제를 벗어난 행동들을 시전함으로써 부모의 미간을 찌푸리게 하기 마련이다. 4세, 6세 형제를 키우는 요즘은 엄마도 희노애락을 가진 인간임을, 특히 격노할 수 있는 미약한 존재임을 아이에게 날마다 각인시키며 지낸다. 그 때마다 “정말 싫어! 하지마!”라고 감정을 쏟아놓곤 했는데, 매번 뒤끝이 남는 게 영 찝찝하고 ‘내가 정말 싫었을까? 그건 아닌데...’싶다.  

        지난 6개월 동안 아이를 함께 키우는 공동체 생활을 하며 익숙해진 표현을 소개할까한다. 이곳에서는 아이든 어른이든 ‘싫다’는 표현을 아주 조심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대신 ‘불편하다’는 말을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네다섯 살 아이들이 투닥거리며 “니가 공을 가져가니깐 불편하잖아!”라고 이야기하고, 울며 격분한 아이가 선생님 앞에서 “으앙~ ○○이가 자꾸 놀리니깐 불편했단 말이야!”라고 하소연한다. 어른이 아이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가 다른 친구들과 함께 하는 공간에서 큰소리로 떠드는 건 나도 불편하고 다른 친구들도 불편할거 같아”라고 아이를 타이른다. 아이와의 대화에서 ‘싫다’라는 말을 대신 할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 한 나로서는 ‘불편하다’라는 말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특히 눈물콧물 범벅이 되도록 흥분한 아이가 뚜렷이 발음하는 ‘불편하다’라는 고급진 단어는 생경하기까지 했다.   

      유아기의 언어발달 과정에 대한 학술적 견해는 잘 모르겠으나, 두 아이를 키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두세 돌이 갓 지난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전달할 때 ‘불편하다’는 어휘를 쓴다는 것은 매우 드문 경우다. 이 시기의 아이는 보통 ‘싫다’는 표현으로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전달한다. 물론 상황을 지켜보는 부모는 ‘싫다’고 외치는 아이의 말 외에도 몸짓이나 표정의 언어를 통해 보다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선을 읽겠지만, 아이의 입장에서는 답답한 마음을 표현할 길이 하나밖에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4세부터 7세까지 아이들이 함께 하는 이 공동체에서 누구나 ‘불편하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목표가 뚜렷한 훈련인 듯하다.   

       ‘싫음’과 ‘불편함’에 대해 한동안 생각해봤다. ‘싫다’는 매우 단정적인 표현이다. 면전에 대고 싫다고 말하는 사람은 일단 피하고 싶다. 선뜻 그 앞에 머물기가 민망해진다. 상대가 개입할 여지없이 관계를 단절해버리고자 하는 화자의 의지가 담긴 말이다. 대신 ‘불편하다’는 말은 부연이 필요하다. 꾸역꾸역이라도 뒤에 이어갈 말을 찾아야한다. 상대가 “왜?”라고 받아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완곡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억울함, 짜증, 분노 등 참을 수 없이 앞서가는 감정을 추스르고 내 이야기를 차분히 들려주겠다는 화자의 의지이며, 상대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유지하려는 배려와 정성이다. 

        아이들은 ‘불편하다’는 말을 시작으로 상대를 배려하며 자신의 감정에 대해 솔직하고 세밀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훈련한다. 어른 역시 같은 방법으로 아이의 감정을 이해하고 아이의 언어로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는 법을 배운다. 물론 현실은 따박따박 말대답하는 아들 두 마리와 포효하는 한 마리 짐승으로 밖에 묘사할 수 없는 못난 어미가 싸우는 정글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솔직한 감정을 인간의 언어로 주고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이에게 규율이나 규칙으로 예의범절을 가르치는 것보다 타인의 감정을 헤아리고 배려할 수 있는 언어를 훈련시키는 것이 동물의 세계보다 더 무섭고 끔찍한 혐오가 넘쳐나는 이 세상에 더욱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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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육아휴직을 결정했다



김난영

(한백교회 교인)

 


     남편이 육아휴직을 결정했다.

     매번 눈치보느라 외식메뉴도 결정 못하는 사람인지라, 설마 하는 맘으로 "그래 해봐"하고 던진 말이 "8월 1일부터 1년 동안 휴직이야. 내가 우리 회사 육아휴직 남성 1호야"하는 답변으로 돌아왔다.  

     부부가 막연히 생각해오던 1년의 휴식이 예상보다 빨라져 당황스럽기도 하다. 출산과 육아로 5년을 집안에만 있던 나는 부랴부랴 구직사이트를 기웃거리고 묵은 이력들을 끌어모은다. 남편의 휴직동안 가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될까 싶었지만 경단녀는 내게도 현실이었다. 며칠을 혼자 끙끙 앓고 있으니, 남편이 함께 놀잔다. 고마웠다. 그래, 기왕 노는 거 네 식구 똘똘 뭉쳐 놀아야지. 은행에 당당히 빚내고 일년을 지내보기로 했다. 

     밥줄인 일터에 매여 저녁조차 없는 남편의 삶에 아침, 점심, 저녁이 생겼다. 현관문 열림과 동시에 서로 다른 방향으로 질주하는 아이들의 등원길 내게 든든한 지원자가 생겼다. 한낮의 한적한 도서관을 이용할 수도 있고, 하루 한끼 정도는 아이들 눈치 안보고 부부가 먹고 싶은 메뉴를 고민할 수도 있다. 무작정 짐 싸서 여행길에 오를 수도 있겠다. 

     서른 넘은 우리 삶에 '쉼'이란 무엇일까? 어떤 이들은 1년에 한번 큰돈을 들여 휴양지에 몸을 늘어뜨려 놓는 것이 휴식과 충전이라고 말한다. 짧은 시간 알차게 놀아야 한다고 계획을 이리저리 세우다 머리가 빠질 것 같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반면, 눈 뜨자마자 놀 궁리를 시작하는 아이들은 신문지 한 장만 있어도 한 시간 넘도록 신나게 노는 신비로운 능력을 가졌다. 그건 우리 어른들도 갖고 있던 능력일텐데, 기껏 그 능력을 계발한다는게 어째 세상이 더 재미없어진 것 같다. 게다가 아이들은 하루 낮잠 한 시간이면 휴식 끝! 충분한 수면이면 종일 방방 뛰고 놀아도 아침이면 에너지로 가득 차 이불 위로 튕기듯 일어나 또 놀 궁리를 시작한다. 아이들보다 더 강한 면역체계를 갖춘 어른이라면 저녁이 있는 삶만 보장해줘도 몰아쳐서 쉬기 위해 애쓸 일도, 삶의 피로로 어깨가 무거울 일도 없지 않을까. 

     남편은 며칠 전부터 항공권 사이트를 들락거린다. 그가 자꾸 '마지막'이라는 수식을 붙여 1년을 너무 계획성 있게 쓰려고 하는데 말려봐야겠다. 이제 막 발맞춰 걷기 시작한 아이들, 세상 신기한 것들로 가득찬 아이들의 손잡고 실컷 걸어나 볼까 싶다. 아이에게 삶의 놀이는 무엇이고 행복은 무엇인지 좀 배워봐야겠다. 그리고 내 욕심 한번 부려서 라면물만 겨우 맞춰 끓이는 남편에게 감히 살림을 가르쳐볼까 한다. 마지막이 아닌 우리 인생 첫번째 쉼이 되도록 한껏 궁리하고 놀아보는 일년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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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말을 걸어보세요




김난영

(한백교회 교인)

 


     “음-마” 


     아이가 처음‘엄마’라고 불러주던 순간을 기억합니다. 이제 막 말문이 트인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짧은 단어에 ‘참 예쁘다’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이유는 미완의 발음이 주는 귀여움 때문은 아닐 겁니다. 말하는 아이의 눈과 얼굴근육의 움직임을 통해 한 자 한 자 얼마나 정성을 들인 발음인지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정성스럽게 쌓아가는 말소리가 모여 단어가 되고 문장이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요즘 ‘아이야말로 위대한 시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부부가 저녁식사 정리에 정신이 없는 중에 아이가 말을 걸어옵니다. 

     “아빠, ○○는 지금 뭐하고 있을까?” (○○는 며칠 전 제 아이 율이를 심하게 밀친 아이지요) 

     “○○는 지난 번에 율이 때린 친구아니야?? 율이는 ○○가 좋아?” 

     “그럼, 우린 친구잖아!”   


     3월부터 새로운 어린이집에 적응 중이었던 6살 첫째가 기존 어린이집 친구들의 텃세 속에 어떻게든 함께 어울리려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안쓰럽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저희 부부에게 아이의 한 마디가 가슴을 울립니다. ‘친구’라는 존재에 대한 아이의 강한 신뢰감, 이 보통명사에 담겨있는 묵직함이 아이의 적응과정을 지켜보는 내내 혼란스럽던 제 맘을 지그시 눌러 내리더군요. 친구 생각에 얼굴 가득 웃음을 짓는 아이의 한 마디 말이 흔들리는 부모의 맘을 다잡고 아이를 믿고 기다리게 해 준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아이는 몇 안되는 단어로 어떤 유려한 산문보다 정직하게 세상을 담아냅니다. 우리는 종종 그런 아이의 말을 ‘엉뚱함’이라고 웃고 지나치지만, 왠지 모르게 시간이 지나도 곱씹게 되는 낯설고 거침없는 표현들은 우리에게 분명 생각거리를 던져줍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제 아이는 물론 아이의 친구들에게 이것저것 묻거나 말을 거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미간에 힘을 주거나 눈을 굴리며 생각하고 입을 삐죽 내밀며 대답해주는 모습 자체가 사랑스럽기도 하지요. 

     돈은 혼자 열심히 벌어오는데 쓰는 사람(바로 저지요)은 따로 있어 아들에게 공로를 치하 받지 못해 억울한 남편이 묻습니다. 


     "율아, 너 맨날 맛난거 먹는거랑 장난감 누가 사줘?" 

     "엄마가." 

     "엄마가 사주는 그 돈 어디서 난 줄 알아?” 

     "주.머.니." 


     아이에게 말을 걸어보세요. 아이의 예리한 통찰력이 웃을 일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미소를 선물하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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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적응기



김난영

(한백교회 교인)

 


       지난 가을 우리 부부는 아이 둘을 맡길 기관에 ‘합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했다. 대학입시도 아니고 얼마나 좋은 곳에 보내려고 유난을 떨었나 싶겠지만, 우리의 유별난 노력의 이유는 교사진이 우수하다는 구립 어린이집이나 병설 어린이집도, 다양한 특기활동이 있는 민간 어린이집도, 원어민 교사가 상주하는 영어 유치원에 보내기 위함이 아닌, 오로지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기관을 찾기 위함이었다. 그리하여 집근처 수락산 입구에 자리 잡은 공동육아어린이집을 선택하게 되었다. 등원을 위해 가족소개서를 써서 제출하고, 온 교사진과 부모면접관에 둘러싸여 30여분의 심층면접 끝에 그것도 2년에 걸친 두 번의 도전 끝에 입소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 주 아이들과 부모의 적응이 시작되었다. 부모가 조합원이 되어 운영주체가 되는 이곳에서 아마(엄마아빠의 줄임말로 공동육아에서 부모를 일컬을 때 쓰는 말)는 각자 다른 소위에 소속되어 첫 주에 한 번씩 모임을 갖고, ‘방모임’이라고 해서 아이가 소속된 방의 교사와 부모가 함께 둘째 주에 모임을 갖는다. 그리고 다른 방에 소속된 아이의 부모, 교사와의 교류를 목적으로 하는 ‘통합방모임’이 있고, 아이의 친구 집에 부모가 동원되어 왕래하는 마실문화도 활발하다. 두 아이를 보내는 우리 부부는 방모임도 두 번, 통합방모임도 두 번, 내가 어린이집을 다니는 것도 아닌데 어린이집 사람들을 왜 이렇게 자주 보나 싶다.   

      이번 주는 첫 주라 소위 모임에 다녀왔다. 하루 먼저 다녀온 남편은 고개를 살래살래 젓는다. 안건을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처리해나가는 회사식 회의에 익숙한 남편은 뭔 할 얘기들이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며 푸념을 한다. 중요한 일도 아니라 단순히 찬반의 결정만 해도 좋을 걸 너도 나도 꺼내놓는 이야기들이, 평일 퇴근 후 시간을 할애해 참석하는 그의 피로도를 높이는 듯하다. 두세 시간의 긴 회의 끝에는 한 잔 기울이는 뒤풀이 자리도 꼭 있으니, 소위 모임 첫날 남편은 평소 야근 때보다 더 늦은 시간에 귀가했다.   

       나는 아이들의 적응기를 위해 지난 사흘을 아이들과 함께 어린이집에서 보냈다. 아이들은 마냥 행복하다. 이곳의 별명문화가 낯간지럽고 교사와 어린이간의 평어문화가 낯선 나와는 달리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은가보다. 맨날 산에서 놀고 엄마가 말리는 흙놀이, 물놀이를 추운 계절에도 맘껏 할 수 있다는 게 제일 좋은가보다. 

        사흘의 짧은 경험을 통해 육아공동체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 생각해본다. 아이의 첫 기관 적응, 즉 사회활동의 시작은 ‘곁을 내어주는 것’이라고 한다. 아이의 곁에는 항상 엄마가 있는데 그 곁을 선생님 혹은 친구들에게 내어주는 것, 그게 첫 단계라고 한다. 아이는 엄마 품을 벗어나 사회 속으로의 도약을 위해 자신의 곁을 끊임없이 확인하며 짧으면 며칠 길면 몇 달을 울고불고, 애착자인 엄마가 아닌 다른 이에게 곁을 내어주기 위해 애를 쓴다.. 

        아이가 떠나갈 내 곁, 우리의 곁을 잠시 돌아본다. 지하철에서 잠시나마 편히 쉴 수 있는 내 자리, 밥벌이를 위해 지켜야하는 내 자리만 바라보지 옆에 누가 있는지는 관심이 없다. 지금의 척박한 삶은 곁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다. 고개를 살짝 돌리기 위해서는 내 시간을 내려놓아야하고 내 것의 일부를 포기해야 한다. 아이를 위해 모인 육아공동체의 낯설고 불편하고 귀찮은 모든 만남과 의사결정 과정은 내 아이가 아닌 그 곁의 다른 아이의 삶에 관심을 갖기 위함이 아닐까. 우리도, 우리의 아이들도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는 기꺼이 곁을 품고 가는 좋은 부모,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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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3.22 12:26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내 곁을 내어 준다는 것. 좋은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인생의 로또

 

김난영
(한백교회 교인)



출산일이 다가오며 본격적으로 출산용품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육아용품의 세계는 얼마나 깊고 넓던지요. 형편에 맞는 선에서 베스트 상품을 고르기란 그야말로 토나오는 검색질이 필수입니다. 이쯤되면 아기를 위한다고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상품 사느라 돈지랄하는게 유난이 아니라, 해외직구 싸이트까지 뒤적거리며 고품격최저가를 찾아 헤매는게 유난아닐까싶습니다.

알뜰히 준비한다고 주변 육아선배들에게 이것저것 물려받고 빌려쓰는 용품도 꽤 되지만, 한정된 재정 안에서 살림이 빠듯해지는건 어쩔수 없는 결과인지라, 신랑도 저도 새삼 가계지출에 대한 고민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고민 중에 연금복권 관련 기사를 보고는, 잠자리에 누워 복권에 당첨되면 그 큰 돈을 어디에 쓸까?하는 상상을 해봤습니다. 상상만해도 절로 입가에 웃음이 번집니다. 현금다발을 들고, 백화점 매장을 돌며 우리 아가에게 최고로 안전하고, 최고로 좋은, 유기농, 저자극 상품들로 장바구니를 채웁니다. 얼마나 편할까요? 두둑한지갑만 있다면, 몇날며칠 클릭질을 하며 고민할 필요도 없이, 육아용품 쇼핑도 백화점 한바퀴로 끝낼 수 있습니다.

마침 친정 근처에 유명한 복권 판매처가 생각납니다. 이른바 '로또명당'이라 불리며, TV에도 몇번 나왔던 그 집 간판은 몇번째 1등 당첨이라는 현수막이 수시로 바뀌며 걸립니다. 언젠가 친정 다녀올 때 복권 한번 사보자 다짐을 하고 잠을 청합니다.

드디어 기회가 왔습니다. 일이 있어 친정을 간 김에 복권 생각이 나 버스정류장으로 나갔습니다. 이거 '내가 너무 요행을 바라는게 아닐까' 싶어 망설이던 중 친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배란주사를 맞아가며 임신을 간절히 준비하고 있는 친구였습니다. 너무 감사하게도 임신이 확인되었는데, 아기집의 위치도 불안하고 게다가 자궁경부에 혹도 발견되어 대학병원으로 옮겨야겠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는 친구의 말에..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며 좋은 의사선생님 정보와 안심하라는 말을 전하고 통화를 겨우 마쳤습니다.

로또명당으로 향하는 버스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순간 임신초기에 육아선배인 친구가 수시로 전화해 주변에 임신초 유산되는 경우가 많다며 조심에 조심을 당부하던 일과 심심치 않게 들리던 신랑 친구 부인들의 슬픈 유산 소식이 생각이 났습니다. 별생각없이 제 임신소식을 전하려고 연락한 친구에게 본인은 임신이 잘 안된다는 뜻밖의 이야기에 머쓱해져 전화를 끊고 미안한 맘이 들었던 일도 생각이 났습니다.

버스를 그냥 보냈습니다. 새삼 저희 부부가 계획하지 않은, 뜻밖의, 그리고 선물같은 임신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아기와 제 건강을 지켜주심이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지 모르고,
일확천금의 요행만 바랐던 부끄러움에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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