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아르바이트




김운영
(한동대학교)




      금요일과 어제인 토요일은 꽤나 정신이 없는 이틀이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4명의 사람들이 금요일 밤 11시부터 토요일 새벽 5시까지 연속 3편의 영화를 밤새도록 관람하는 모 영화관의 기획상영을 같이 관람하기로 예매해두었었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약속대로 밤에 만나 여름 더위를 날려버릴 기세의 세 편의 영화를 관람하였습니다. 영화관에 들기 전 문득 저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보다가 죽으면 어떡하지? 바깥에서 살인 또는 최근 중국 텐진의 화재사고와 같은 사고가 발생해도 속 편하게 영화만 보고 있을 제 모습을 상상하며, 흡사 ‘다른 세계로 입문’하는 듯한 영화관람의 행위가 사람이 잠을 자는 행위와도 유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보면 결국 영화관람을 포함한 나의 모든 행위는, 세상의 다른 무수한 일들과 동시에 실행될 따름이고, 이는 특정한 일과 관련한 나의 선행일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를 보든 보지 않든, 또는 사고나 재난을 예방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을 하든 하지 않든, 그 실천과 동시에 발생하는 세계의 또 다른 무수한 사건사고들에 대해서 나는 결국 한낱 잠을 자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저는 조금은 속 편히 영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거의 6시간 동안의 영화관람 마라톤이 끝난 토요일 이른 아침. 일행들은 모두 얼빠진 몰골로 잠을 청하러 집으로 향했지만, 저는 광화문 광장을 향했습니다. 오전 7시부터 오후 2시까지 광화문에서 열리는 ‘광복 70주년 기념행사’ 진행요원 일일 아르바이트에 지원했기 때문입니다. 일급 6만원. 오전만 잘 보내면 썩 짭짤한 편이었습니다. 생각보다 기운은 말짱했고 저는 청계천을 지나 광화문까지 가는 새벽길을 걸어가며 여러 노숙인분들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누워 주무시는 분들, 고개 숙인 채 빈 소주 병을 끼고 있는 모습 등등. 새삼 노숙인분들을 묘사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만큼 이미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지도 모르는 삶의 한 ‘풍경’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나는 그분들이라는 풍경을 감상에 젖기 위한 촉매제로 활용해왔나, 하는 의혹이 마음 속에서 재차 제기되고 있을 즈음에, 어떤 노숙자 한 분의 행동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분께선 제 앞으로 걸어가면서 공중전화 부스를 하나씩 하나씩 체크하고 계셨습니다. 공중전화 하단에 거스름돈 반환구를 하나하나 검지손가락으로 까딱까딱 건들이며 남겨진 동전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마치 초등학교 시절 오락실 기기 주변을 기웃거리며 떨어진 동전이 있나 확인하던 나와 내 친구들처럼 말입니다. 그 쏜살같은 검지손가락의 까딱거림이 다시 나를 한낱 감상에 젖도록 하는 촉매제가 됩니다. 온 몸을 덮은 누더기 같은 복장을 뚫고 나온 그 검지손가락의 거친 살결이 유독 눈에 들어왔던 것이었겠지요. 한편 저는 누더기가 아닌 깔끔한 바지와 티를 입고 정부가 주관하는 국가 행사의 진행요원이 되어 6만원의 생활비를 충당할 권리를 누리며 광화문으로 출근을 합니다. ‘나도 가난한 대학생이잖아. 생활비는 벌어야지.’ 라고 생각하며 말입니다. 조금은 속이 편해집니다.  


      그리고 그렇게 광화문에서의 광복절행사 아르바이트가 끝날 무렵입니다. 제 속엔 한 가지 단어가 떠오릅니다. ‘거짓말’…… 저편 광장 끄트머리에 분리된 채 잊혀진 ‘세월호’ 부스, 중앙광장을 내리쬐는 뙤약볕 아래 장시간의 기다림 속에서 여러 인파가 동원되어 만들어진 인간 태극기, 개그맨 출신 사회자에 의해 무수히 연습되고 반복되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이라는 구호. 인간 파도타기. 그리고 하이라이트. 광장 저편으로는 결코 다가온 적 없었던 현직 대통령의 서프라이즈 등장과 그의 인간 파도타기 속으로의 합류. 그 화려한 퍼포먼스에 환호하는 사람들의 함성. 그리고 때맞춰 하늘로 쏘아지는 풍선들. 그 풍선들에 적혀 있는 ‘창조경제’라는 말. 거짓말. 어쩌면 저 대통령의 눈엔, 아니 거기 있던 대부분 사람들의 눈엔, 태극기 인파에 가리워 보이지 않는 광장 끄트머리의 세월호 부스가 별다른 의미를 갖지 않는 한낱 감상을 불러 일으키는 풍경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가끔씩 애처로운 검지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옛 추억을 부활시키는 풍경 말입니다……


      대통령의 영화 같은 퍼포먼스가 펼쳐진 광화문 광장을 목도하며 앞서 가졌던 ‘영화 보다가 죽으면 어떡하지?’라는 의문을 다르게 변주해봅니다. ‘죽음의 자리마저 거짓말 같은 영화로 덮여 버리면 어떡하지……


      바깥 세계와 분리된 채 영화를 보는 것처럼, 우리의 실천의 한낱 ‘잠을 자는 것’과 같은 외피를 벗어내기란 결국 불가능한 일인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기에 영화 같은 자리에서 무력함은 너무나 쉽게 찾아옵니다. 그 노숙인의 까딱거리는 손가락처럼 시시때때로 나를 건드리는 무력함. 빈 반환구처럼 앞뒤로 흔들리다 이내 멈추는 그 무력함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 무력함을 견뎌 나갈 힘이 생기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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