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미술 이야기(1)]

'만만한' 예술가

김현화
(연구소 회원, 영국 Emerson College에서 설치미술 전공)

 

얼마 전 끝난 대선 이후에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할 말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내가 찾아 읽는 몇몇 신문에는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인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다는 인터뷰 내용으로 시작해 민심을 잘못 이해한 것이었나, 시대정신을 오독한 것이었나, 또 누구의 책임인가 하는 분석의 말들로 이어졌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영화 <레미제라블>을 찾아보며 스스로 위로하고 다독이기에 바쁘다.
이런 와중에 나는 다소 뜬금없이 내가 아는 예술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는 직업적 예술가도 아니고, 게다가 누군가가 자신을 예술가라고 부르는지도 모르며, 예술가가 되고자 하는 마음도 없는 평범한 이이다. 그런데도 이런 이를 굳이 예술가라고 부르는 것은 소소한 일상의 사건 속에서 요셉 보이스에 동의해 왔던 내가 나의 친구들을 기억하고 호명하는 특별한 방식이다. 보이스가 “모든 사람은 조각가(예술가)이다”라는 한마디 말로 모든 이의 깊은 영혼 속에 잠들어 있는 예술성을 불러 깨우고 있듯이 말이다.

너의 두상은 나의 초상이다

소개하려는 이 예술가는 늦은 나이에 다시 시작한 나의 유학길에서 만난 친구이다. 지난 석 달간 우리는 함께 조소 과목을 수강했는데, 두 사람씩 짝을 지어 일대일로 마주보며 서로의 두상을 진흙으로 빚는 작업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수업에서 두세 명을 제외한 나머지 수강자들은 진흙으로 작업을 해본 경험이 전혀 없었고, 이런 이들에게 실제 크기의 두상작업은 부담과 무리가 아닐 수 없었다. 눈앞에 모델이 있어 계속 바라보고 관찰하지만, 그래서 이제 자신의 모델에 대해 눈감고도 떠올릴 수 있을 정도가 되었지만 정작 그대로 빚어내는 일에선 문제가 달랐던 것이다. 결국, 바로 앞에 모델이 있고 손으로 만져보기도 하고 측정도 하면서 작업했건만 많은 두상들은 실상과 점점 더 멀어져가기만 했다. 그런데 그렇게 실상과 멀어져 갈수록 웬일인지 이들의 작품에 대한 몰입은 놀랍도록 깊어져 갔다.
그러던 중 개인적인 사정으로 한 주 수업을 못하게 된 교수가 내게 수업을 맡기게 되었다.  사실 조각을 공부했던 나는 조금은 답답한 마음으로 이들의 작업을 지켜보고 있던 차였다. “모델을 과학자처럼 잘 관찰하고 충실히 표현하라. 너희는 다른 사람의 두상을 만들고 있으나 결국은 자신의 초상이 될 것이다”는 말 이외에 수업이 진행되는 2-3 시간가량 이렇다 할 조언을 주지 않던 노장의 교수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고 있던 참이었다.
드디어 시간이 되었고, 기다렸다는 듯이 조각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대상을 보고, 관찰해야하는가에 대한 충분하고도 화려한 설명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먼저 조각이란 수십 수백의 다른 각도, 다른 관점에서 보지 않으면 완성할 수 없으니 작품을 돌려가며 작업을 하든지 아니면 작업자 본인이 작품 주위를 계속 돌면서 작업할 것, 또 이때 특히 주의를 기울여서 두상에서 보이는 갖가지 작은 산(convex)과 웅덩이(concave)를 찾아낼 것을 주문했다. 이와 더불어 조각과 공간의 관계, 조각이 위치한 공간 속에서 조각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조각적 공간에 대한 설명까지 덧붙였다. 이들이 두상의 기본 구조를 이해하고, 회화적 관점을 극복하여 3차원적 조각을 해나가길 바랬던 것이다.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렇게 나의 짧은 강의가 끝났고, 각자 작업이 이어져 한 시간 가량이 지났다. 이제 좀더 정확하게 대상을 보며 작업하고 있는지 궁금했던 나는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지 나의 설명에 모두 동의하고 귀 기울이고 이해한 듯 보였던 이들이 이전과 조금도 변함없이 자신이 하던 그대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콜롬비아에서 온 어떤 이는 자신의 모델이 웃을 때마다 드러내는 얼굴 주름을 포기할 수 없다며 그것에 매달렸는데, 그 결과 젊은 모델의 두상은 할아버지가 되어가고 있었고, 모델이 되어준 이는 불만이 가득해 두상에 눈을 돌리려 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저쪽 각도에서 보면 이 주름이 조금 다르게 보이니 이러저러하게 고치면 좋지 않겠는가 설명을 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수정된 주름을 좋아하지 않았다. 자신이 보고 느끼는 모델의 주름은 이와 다르다는 이유였다. 작업실 전체가 대충 이런 분위기였다.
이러는 중에 나의 친구도 한 쪽 구석에서 작업으로 고심하고 있었는데 얼마나 작업에 몰입했는지 주변 세상을 잊은 듯한 그의 모습은 사뭇 진지하여 성스러움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나 그가 만들고 있는 두상은 충격적이었는데, 그것이 실제 모델의 두상 크기보다 많이 작은데다 뒷머리와 이마 부분이 함몰되어 있었고, 두 눈 사이는 너무 멀었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누가 봐도 코와 입이 많이 비틀려있어 얼굴 전체가 균형 잡힌 모양새를 갖추지 못하고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다는 점이었다. 사실 그의 모델은 아름다운 일본인 바이올리니스트였다.
옆으로 다가간 내게 자신의 작품이 “실제 모델의 모습이나 분위기와 많이 다르고 뭔가 이상한데 어디가 이상한 건지 도저히 모르겠다”고 한다. 한 발짝 뒤에서 보자고 했으나 그래도 모르겠단다. 동의를 구하고 오른쪽 입꼬리를 조금 올리고 볼에 소량의 흙을 살짝 덧대어주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이 “보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보지 못하고 있었다”며 탄성을 내더니 연이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다른 부분들까지 찾아내며 고쳐가기 시작했다. 한 달 후 완성된 두상은 바이올리니스트의 편안한 미소가  드러나는 그만의 독특한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실상을 제대로 보는데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지낸다. 그런데 보는 것에 실패를 거듭했던 우리가 ‘본다’는 행위를 조금씩 수정하며 그것을 차곡차곡 쌓아 간다면 실상을 보는 일에 더 가까워지게 되지 않을까. 그러니 어쩌면 ‘본다’는 것이 짧은 눈깜빡임처럼 한 순간에 완성되는 일이 아니며 오히려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겠다. 


핀란드인인 이 친구는 사실 어릴 적에 부모에게 버려져 양부모에게 입양되는 일을 겪어야 했다. 그의 친부는 일찍 사망했고, 친모 역시 알콜중독자로 어려운 삶을 살다가 2년 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종종 이 친구는 친모를 처음 만났던 날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그리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고 한다. 양부모는 그를 입양하기 전에 이미 두 자녀를 낳아 기르고 있었고, 그는 양부모뿐만 아니라 이 자매들과도 연락을 피하고 있는 상태였다.
여기서 그의 개인사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런 굴곡진 삶의 역사가 마치 그가 만들던 기이한 두상처럼 그로 하여금 실상을 왜곡된 상으로 보게 하고 그렇게 표현하도록 몰아갔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예술(행위)이 우리 삶에 어떻게 말을 걸고 파고드는지를 말하려고 한다.
두상 작업을 만족스럽게 마친 후에 이 친구는 수년간 소식이 끊겼던 양모를 어렵게 만나 몇 일간 밤을 새워가며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이 일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양모를 만나는 동안 웬일인지 내가 만든 두상이 계속 생각났어. 그런데 이상하지. 양모가 아주 다른 관점에서 보이더니 그녀의 말이 이해되기 시작하는 거야. 그리고는 내가 그토록 믿지 못했던 양모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지. 이제야 나는 진짜 엄마를 갖게 됐어.”

몸속에 흐르는 예술, 유익한 기억

흔히 일상의 경험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믿지 못할 것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과거의 경험이 왜곡되거나 과장되어 저장되기 일쑤이고 현재 시점에서 다시 불릴 때는 실재와 다소 다르게 재현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때로 ‘지난 경험에 대한 기억은 기억 주체로 하여금 새로운 것을 볼 수 있게 돕기도’ 한다. 바이올리니스트의 두상을 조각한 나의 친구는 ‘본다’는 행위의 필연적 착각 혹은 착오를 침묵의 관찰로, 관찰을 유연한 자기변화로 이어갔다. 이 순간 그에게 예술은 기억처럼 저장되어 그의 몸속에서 생명체처럼 이리저리 흐른다. 이때 ‘기억은 그에게 가장 유익한 것이 된다.’
예술이란 무엇인지, 예술가란 누구인지 고민했던 19세기 말엽 조각가 Hans Brandstetter는 비엔나에서 만난 당대의 사상가에게서 시를 한편 받게 된다. 이 시의 한 구절이다.

...... To bring life and spirit
 to dead and rigid matter
 is the aim of the artist...(중략)

죽은 듯 단단한 물질에 작가적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는 것은 굳어져서 좀처럼 그 흐름이 바뀌지 않는 우리의 사고에 생명의 온기와 유연함을 되찾아주는 일일 것이다. 이 관점에서 저 관점으로 넘어가는 작가의 유연한 발걸음은 고집스럽고 딱딱한 사고를 말랑말랑하게 만들고, 종국에는 쌓아올린 차가운 흙덩이를 온기 있는 예술품으로 만든다.
이쯤 되면 본다는 것이 더 이상 안구에 맺히는 이미지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처럼 끊임없이 자신이 보는 것을 수정하며 새로운 보기의 각도를 넓혀가는 모든 이들이 예술가로 불려야 하지 않겠는가.
대선 이후 분분한 말들 속에서 많은 이에게 필요한 건 경직되고 무딘 사고를 말랑하게 만드는 예술가가 되는 일일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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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의 예술적 <자기만의 방>

김현화
(연구소 회원, 영국 Emerson College에서 설치미술 전공)

20세기 초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을 내놓은 이후, 많은 여성들은 남성지배문화 내에서 살아남기 위해 혹은 넘어서고 탈출하기 위한 거점으로서 다양한 사적문화로 가득 채워진 많은 방들을 만들어내기에 분주했다. 이런 흐름은 지배문화에서 배제된 수많은 주변문화를 가진 이들에게로도 이어졌다. 그리하여 이제는 세상 모든 이에게 목소리를 낼 기회, 아니 적어도 자격이 주어진 듯 보이며, 중심과 주변이 있기나 한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그 전에는 들어보지 못했던 낯선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상황이 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중 많은 부분이 지배 문화가 내는 확성기 소리에 묻혀 사라져 버리지만 적어도 이들은 발설할 장소와 기회를 가졌고 들어줄 마음이 있는 청중들이 있음이 분명하다.

이쯤해서 내가 하려는 말을 꺼내보자. 나는 아동들이 ‘예술의 봉사’를 받으며 살아가기를 바라는 한 사람으로, 아이들에게 미술, 특히 조각의 기초재료인 진흙으로 무언가 빚어내는 시간 사이사이에서 그들 삶의 중요한 흔적들을 스스로 만들어 가도록 돕고 싶다. 여러 핑계로 현재는 아이들이 아니라 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에게 조각 수업을 소개하고 그 강한 영향력에 대해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지만 성인인 교사들 몸과 마음에 오롯이 살아있는 그들의 유년을 실감나게 만나는 중이기도 하다.

앞서 지배문화에 저항하며 ‘자기’를 찾아나서는 많은 목소리들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러나 여기 저항문화의 내용에도 역시 ‘성인’이라는 지배적 입장이 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간혹 청소녀/소년 문화를 걱정하는 제스쳐들이 나오고, 각종 아동권리선언문이 쏟아져 나오지만 그 내용은 이들의 의식주를 채워주고 일상생활이 제대로 영위되도록 하기 위한, 그리고 아동들을 사회화할 교육을 위한 걱정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분명 성인들의 그것과는 크게 다를 아동들의 ‘자아 조우’(encountering the self), 자기만의 방 혹은 집짓기 같은 것에 대한 사유나 논쟁 등은 필자의 얕은 정보력 때문인지 그 시도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통상 아동들은 시간을 두고 자라나야 할 대상, 그리하여 미래에나 의미를 갖추게 될 존재로 취급되는 통에 성인의 문턱에 들어서기 전에는 이들이 현재 얼마나 섬세하고 드라마틱하게, 얼마나 깊고 심각하게 자아와 대면하며, 말하자면 예술의 서비스를 통해 자기만의 집 한 채를 스스로 지어낼 수 있는지 관심을 갖는 이가 소수에 불과한 것이 사실이다. 아동들의 권리 문제가 의식주와 돌봄, 미래의 삶과 사회를 위한 교육에만 집중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이들의 깊은 내면을 제대로 무시하는 길인데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예술에 대해 작지만 중요한 예를 하나 들어 이야기해 보자. 이것은 우리에게 사고 팔리는 상품으로 벽에 걸려 구경 당하는 죽은 미술이 아니라 살아있는 삶의 조력자로서의 미술이 가능한지, 아동과 청소년의 삶에 불가피한 예술 체험이 교실 내에서 실현될 수 있는지를 타진해보는 기회이기도 하다.

흙으로 지어 올리는 빈 방 혹은 집

교과 과정으로 진흙 조소(clay modelling)수업을 하는 학교가 있다. 1학년(만 7세)은 2차원 평면 위에서 손가락 한 마디만한 작은 진흙 조각들을 한 점 한 점 붙여가며 원형과 직선 형태를 만들어간다. 점차 이 형태를 발전시켜 집이나 성을 만들기도 하는데 이때 성의 문이나 집 창문은 진흙을 붙이지 않고 비워두어 비록 평면상이긴 하나 공간의 시작을 알리는 작업을 잊지 않고 하게 된다. 집이 무너지지 않도록 볼륨감 있는 기둥을 단단히 세우고, 만족할 만큼 두터운 벽을 만드는 동시에 아이들은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은 비어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며 채움과 비움 사이를 오가는 행복한 숨을 쉰다. 2학년이 끝날 때까지 이들은 평면위에서 채움과 비움을 반복해 창조한다. 그러다가 아홉 살, 3학년(만9세)이 되면 평면에 있던 공간에서 좌-우, 위-아래, 앞-뒤가 있는 3차원적 공간, 그러니까 진정한 의미의 공간을 만드는 작업으로 들어가게 된다. 평면 바닥에 누워있던 기둥들은 작은 발바닥을 굳게 땅에 대고 일어서야 한다. 그리고는 일어선 두 기둥사이에 아슬아슬하게 아치형 다리가 놓여진다. 조금만 균형을 잃어도 무너져 내릴 듯한 위기를 몇 고비 넘긴 후 문틀이 준비된다. 벽체는 더욱 단단하게 그러나 너무 두껍지도 얇지도 않게 두 기둥에 붙어있어야 한다. 그리고나서 드디어 돔 같은 지붕이 무겁게 내려앉으면서 가로질러 하늘을 잘라낸다. 드디어 진짜 공간, 내부와 외부가 생겨나는 순간이다. 아이들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다. 이때를 오랫동안 기다려 왔다는 듯이 아이들은 자신의 온 존재를 동굴 같은 그 집 안으로 들여 놓는다. 자신이 만들어낸 자기만의 공간 속으로 멜랑콜리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누워있던(horizontal) 기둥들을 일으켜 세우는(vertical) 일은 인간 직립의 역사를 상기시키며 ‘(만)아홉 살 인생’의 중요한 획을 긋는다. 실제 이 시기의 아동들은 신체적으로도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인다. 오랫동안 학교 주치의로 지내며 조사를 해온 이들의 보고에 의하면, 아이들은 유독 이 시기에 맥박이 갑작스럽게 증가하여 심장의 중요성이나 그 역할이 어느 시기보다도 올라가게 되며, 이와 함께 혈중 당의 양이 급감하는 현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아동들은 성장과 함께 서서히 혈당이 올라감에도 유독 이 나이가 되면 상승 곡선이 일시적으로 하강하게 된다. 이는 병적 증상이 아니라 치료가 필요치 않은 자연스런 감소로, 이 시기를 지나면 다시 자연 상승하게 된다. 그러나 아무튼 (이를 원인으로 혹은 그 결과로) 자주 우울감과 허약함, 고독감, 그리고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듯한 감정을 감출 수 없게 되며 급기야 죽음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는 것이 이 시기 아동들의 성향이다. 물론 다양하게 표출되고 (학교거부, 복통, 짧은 호흡, 어지럼증 호소 등), 때로는 잔인할 정도로 재미나게 시선을 빼앗아가는 게임과 TV 프로그램이 아이들의 표현을 막아서기도 하지만, 주의 깊은 귀와 눈을 잠시라도 그들에게 고정한다면 그들이 토해내는 급박한 단어와 몸짓들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때 아이들은 이러한 신체적 위기와 함께 자신이 누구누구의 딸, 아들이 아니며 오직 ‘자기 자신’임을 처음으로 직감하게 된다. 밥상에 같이 앉아 식사를 하는 그 누구도 자신을 도울 수 없는 그런 길에 자신이 외롭게 들어섰음을 감지한다. 아직까지는 유아기의 흔적이 남아있던 1, 2학년 시기에 보았던 것과는 무섭도록 다르고 낯설게 느껴지는 세상으로부터 몸을 숨기고 싶다. 혼자이고 싶다. 집을 짓고 싶다.

누구도 도움이 되어주지 않을 듯한 상황, 모두에게 버려져 내동댕이쳐진 숨 막히는 상황에서 그러나 다행이도 예술은 아이들을 기억과 자유의 공간,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창조하는 공간으로 이끌며 사랑스런 조력자가 되어준다. 더 이상 ‘인간’이 어떤 도움이 되지 못할 때, 서서히 나타난 예술은 사마리아인처럼 아홉 살 인생들을 일으켜 세워준다. 그러다가 드디어 3학년이 끝날 무렵 문을 열고, 내/외를 가르는 문지방을 넘어 바깥으로 나오게 될 때, 혼자 들어가 침묵으로 세상을 맞으며 버티게 했던 자기만의 방은 당장은 빈 집 혹은 해체된 방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수년 후, 아이와 함께 같이 변하고 자라나 수많은 이웃들이 초대되는 공간으로 다시 살아날 것임이 분명하니 여기서 우리는 예술을 통해 아이들을 만나는 예수를 떠올려 봄직하지 않은가.

현란하게 눈속임하는 듯 펼쳐지는 미술교육에 제동을 걸고, 소리 없이 의미 없는 듯 무심히 다가와, 행하는 자가 예술가인지 예술이 예술가인지 모르는, 예술주체가 전복되는 드라마가 아무 일 아닌 듯 교실에서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래본다.

시끄러운 미술 교과서를 뒤로하고 소박한 나무판 하나와 진흙 한 덩이만 남겨놓으라. 그러면 그들이 모두 조각가 될 것이다. 아마도 요셉 보이스는 여전히 이렇게 외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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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초상
- 김현화 作 (영국 Emerson College에서 설치미술 전공)


그림을 그릴 때 나는 흔히 painter라기 보다는 viewer입장에서 그림이 진행되어가는 것을 지켜보게 된다. 붓을 쥐고 있으나 그림을 그리는 행위에 충분히 몰입하지 못하고, 외부의  시선으로 내 그림을 해석하며 구도와 색채 따위를 결정해간다. 너무 많은 그림을 보아왔고, 좋은 그림과 나쁜 그림을 구분할 줄 알아 한마디로 그림이 뭔지를 지나치게 알아버린 결과이겠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나를 해방시키는 그림을 그릴 때가 있다. 그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순간을 정확히 알 수 있을 때가 있다. 이런 때는 도화지도 붓도 시야에서 사라진다. 붓을 들고 춤추는 듯 오가는 내 몸짓만 느낄 뿐이다. 그림이 그려지는 화폭이 도화지 크기의 수배는 넘어선다. 도화지를 벗어나 넓은 공간을 휘저으며 그 공간에 안 보이는 그림을 그려간다. 남는 것은 물론 작은 도화지에 살짝 닿은 붓자국 뿐이다.

물에 적신 도화지에 이 렘브란트 초상을 그릴 때 처음으로 그런 해방감을 맛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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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예수

김현화
(영국에서 미술치료 공부 중)

일주일간의 무서운 고민을 끝내고 나를 포함한 8명의 졸업준비생들은 각자 계획한 프로젝트에 맞는 장소 결정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졸업작품 작업에 들어갔다. 우리들은 7주 후에 있을 전시를 앞두고 마지막 프로젝트 작품에 힘을 쏟아야 했다.
 
지름이 족히 10미터는 됨직한 동그란 땅, 그 위에 세워진 원형 가건물이 내게 주어졌다. 프로젝트의 주제나 재료도 고민해야 할 일이었지만, 설치작품을 하려는 나에게 제일 중요한건 먼저 공간을 제대로 읽어내는 일이었다. 작품이 들어설 공간에 아름다운 작품이 놓여지건 보기 흉한 작품이 놓여지건 어쨌든 공간과 같은 울림을 내는 것이어야 한다. 골치 아픈 작품으로 20세기 미술가들을 울렸던 마르셀 뒤샹이나 화장실에서 남자들의 변기를 떼어다 전혀 다른 공간인 갤러리에 갖다 놓을 일이었다. 한 세기 지난 지금의 나는 다른 입장에서 공간을 이해하고, 공간과 작품을 말 그대로 동등하게 대하리라 부푼 꿈을 꾸며 몇일을 가건물 주변에서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건물 밖을 따라 뱅뱅 돌기를 수십 번, 안팎을 들락날락거리며 안테나를 세워 온갖 소리와 냄새를 감지해보기도 한다. 이 공간에는 어떤 작품이 필요한지, 내가 생각하는 주제와 어느 지점에서 공간이 만나게 될지, 서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진단하고 타협하기를 시도해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몽골리안의 양모 천막집을 닮은 이곳은 안에 서 있으면 어지럼증을 느끼게 할 뿐, 나를 편안히 작업으로 이끌기는커녕 오히려 밀어내는 것이었다. 너무 조용하고 둥글었으며, 한낮 햇빛은 불투명 플라스틱 지붕을 뚫고 한없이 쏟아져 내렸고, 땅바닥은 콩크리트 마냥 단단히 말라붙어 있었다.

어느 작가처럼 통째로 건물을 포장해버리지 않고선 수가 없겠다 생각하며 한숨을 내쉰다.
일주일 후, 이 공간은 학교와 마을 재활용 센터, 인근 농장에서 모아들인 작품 재료들로 넘쳐났다. 산더미 같은 헌옷과 쓰던 천들, 100그루가 넘는 긴 나무 더미들. 넓은 공간에 대한 부담감과 작업할 수 있는 날이 몇 주밖에 남지 않았다는 초조함에 좋은 작품을 하겠다는 욕심까지 보태져 밖에서 모아들이는 재료는 눈덩이처럼 불어만 갔다. 어쨌든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섰고 도와줄 수 있는 친구들도 불러 모았다. 공장 작업장같이 되어버린 둥근 건물은 날이 갈수록 사람과 재료와 작업에서 나오는 쓰레기로 뒤덮혀 갔다. 이전에 공간을 채웠던 부담스런 정적은 수다소리에 쫒겨 났고, 말라붙은 땅은 나뭇가지로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하루하루를 보내며 내 머리 속과 마음도 수많은 아이디어와 걱정, 피곤으로 범벅이 되었다. 어떻게든 생각의 가지를 쳐내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모든 일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할 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가에 힘 빠진 몸을 기대고 초점 없는 눈으로 헝클어진 작업장 안을 내려다보는데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결국 이런 게 예술이었단 말인가?’. 4년간 문학을 공부하고, 석사과정으로 현대미술사를 전공했고, 그걸로도 모자라 다시 대학원에 들어가 사진을 찍고 돌아다녔었다. 예술이 뭔지 그래도 모르겠어서 영국까지 와서 3년을 또 고생했는데 이 놈의 질문은 끝날 줄을 모른다. 바쁜 와중에 별 도움 안 되는 생각이라며, 그리고 원래 답도 없는 것이라며 혼자 속삭이고는 당장 급하게 작업을 해야 할 넓은 지붕으로 다시 눈을 돌린다. 저 지붕을 어느 세월에 검은 비닐로 다 덮어 씌워 이 공간을 어둡게 만든단 말인가. 너무 밝은 내부를 어둡게 만들고 싶었던 나는 지붕 전체에 검은 비닐을 씌우겠다는 만만치 않은 일거리를 두고 다시 힘이 빠진다.

새가 날아 들어왔는지 뒤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여기서 뭐하니?”... 할아버지 선생님이 나타나 묻는다. 나는 지붕을 다 덮어 버릴 거라며 검은 비닐 얘기를 꺼내고는 그런데 이 공간을 어둡게 만드는 게 과연 가능하겠느냐며 그간 쌓인 피로를 그에게 풀어낸다. 그러나 작품 때문에 복잡한 내 심경은 안중에도 없는지 그는 대형 비닐은 이러저러하게 구하면 되겠고, 지붕 밑둥은 이렇게 마감하고, 바람과 비가 자주 오니 그건 저렇게 처리하자는 둥 온통 비닐 얘기 뿐이다. 아, 예술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달픈 일인지 알아주는 이가 이렇게 없을까. 나는 속으로 한탄을 한다.

그새 말을 다 마친 할아버지는 뒤돌아 서기 전에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마지막 말을 던지고 사라진다. “언제든 필요하면 부르기만 해. ‘일’은 내가 할게. 그러니 너는 ‘예술’을 해.”

사실이 그랬다. 3년간 그에게 수업을 받아왔지만 한 번도 그가 작품하는 모습을 본 일이 없었다. 굽은 등으로 항상 돌을 나르거나 나무를 패고 있었고, 물건을 실어 나르느라 운전을 하거나 수레를 끌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도 그에게 묻지 않았었다. “왜 예술을 하시지 않나요?”

사람들이 내게 물어왔다. 어떤 작품을 만들 건지, 왜 이런 재료를 선택한 것인지. 그러나 대답하기 어려웠다. 처음부터 작품에 대한 선명한 구상이 있었지만, 그렇게 야심차게 시작했지만 그건 이 공간이 정해진 시간부터 계속 변했고, 나는 도통 그 끝이 어떻게 끝날지 예상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몇 주가 지나면 끝나리란 것만 알뿐, 난 이 공간과 함께 어디로 가는 건지, 작품을 하는 건지 놀이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고 그저 뭔가를 따라가고 있었다. 비가 내리면 플라스틱 지붕에 잔 나뭇가지와 잎들이 떨어져 우박소리를 냈고, 열린 문 사이로는 새들이 걸어 들어와 조용히 몇 분을 산책하다 돌아나가곤 했다. 어지럽게 동그랗던 원형 바닥과 벽은 묘한 기운을 내뿜으며 오브제를 위한 완벽한 무대가 되어갔다.

5주 후, 발에 치여 넘어질 정도로 쌓였던 나뭇가지들의 반은 버려졌다. 모아온 옷가지들 대부분은 다시 재활용센터에 넘겨졌고, 땅바닥에 누워있던 나무들은 헌옷과 천으로 옷을 해 입고 딱딱한 땅에 새로운 나무로 심겨졌다. 그리고 밖에서 날아 들어오는 새들이 이상한 나무들과 어울리며 이상한 숲을 만들어냈다. 불투명한 지붕에선 바닥 구석구석까지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두 주 지나면 있을 졸업식 때 졸업생들 각자가 생각하는 예술은 무엇인가를 말해달라는 주문이 들어왔다. 두 주가 지나기 전에 제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 웹진에 신학이 아닌 예술에 대한 글을 올리고 싶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예술에 대한 질문에 대해 운 좋게도 하나의 대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예술과 예수. 이 둘은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가.

끌어낼 수 있는 최대한의 인내로 자기를 침묵시키고, 대신 그 공간에 타자를 초대하여, 타자가 자기 목소리를 찾아 스스로 말하도록 하게 하는 일. 자신을 뒤로 물리고, 죽음에 가까운 침묵으로 소리를 낮추어 타자가 타자되도록 놓아버리는 일. 그렇게 해서 끝내는 자신이 타자가 되어버리는 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일.

나는 이제 예수를 빼고 예술을 생각하기 어렵게 되었다. ⓒ 웹진 <제3시대>



아래는 김현화 님의 프로젝트 작품과 작품이 있는 정경을 찍은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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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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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23 21:54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예술가 예수.

    자신을 침묵시키고 타자가 타자되게 하는 일... 끝내는 자신이 타자가 되어버리는 일....

    하아. 저도 그런 목회를 하고 싶은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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