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의 환대와 방문의 환대

 


김혜령[각주:1]
(이화여대)


 

          얼마 전 우연히 EBS <다문화 고부열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캄보디아에서 시집온 며느리와 함께 살고 있는 한 시어머니의 곤란한 이야기를 보았다. 며느리의 아버지인 사돈어른이 한국에 일을 찾아오게 되었는데, 몇 달 되지 않아 공장이 문을 닫게 되었다. 그러자 시어머니는 오갈 데가 없는 신세가 된 사돈어른을 아들과 며느리, 손주와 함께 사는 자기 집에서 지낼 수 있도록 호의를 베풀었다. 그러나 안타까운 마음에 사돈어른의 동거를 허락한 첫 마음은 날이 지날수록 점점 더 불편한 마음으로 변하게 되었다. 더운 기후를 갖고 있는 캄보디아 문화를 따라 사돈어른이 유난히도 더운 올 여름 장소를 가리지 않고 웃통을 훌러덩 벗어버리고 거실 한가운데를 떡 하니 차지한 채 TV 삼매경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집주인 시어머니는 아들 며느리 모두 일하러간 낮이면 웃통 벗은 사돈어른이 민망하여 자기 방에서 나오지도 못한 채 땀을 뻘뻘 흘리며 속앓이를 하게 되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사돈어른의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 불편했던 시어머니의 20대 딸은 아예 견디지 못하고 당분간 친구 집에서 지내겠다며 짐까지 싸서 나가고 말았다.  

          이 이야기에 마음이 끌린 것은 눈치 없이 거실 한 가운데에서 웃통을 벗도 TV를 보는 캄보디아 사돈어른을 보며 나도 모르게 ‘뻔뻔함’이라는 느낌과 ‘못마땅함’이라고 불러야 하는 감정이 본능처럼 솟아올랐기 때문이다. 평소 스스로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졌다 자부했던 윤리적 자만 때문이었을까? 아무도 모르게 일어나는 거친 마음결을 다시금 확인하며 여전히 내 자신이 진보 코스프레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우리는 어려운 형편에 처한 사람, 고아, 과부, 외국인 등 약자라 불릴 만한 이들에게 따뜻한 호의와 나눔을 베풀라는 사랑의 명령이 그리스도인 모두를 향한 예수의 명령임을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신약학자 바이런은 이러한 사랑의 명령이야 말로 사회적 기피대상으로 취급받던 약자들에 대한 예수의 ‘환대 선교’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는 이방인과 약자들을 공동체의 울타리 밖으로 내치고 그들과 더불어 살기를 거부하는 반(反)환대주의자인 것이다.  

         낯선 이방인, 과부, 어린이, 병자, 몸 파는 여인 등 다양한 이유에서 사회적으로 주류 공동체의 외부에 있을 수밖에 없는 약자들에 대한 무한 ‘환대’가 예수 선교의 중요한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캄보디아 사돈어른의 예에서처럼 우리는 예수를 따라 현실에서 타자를 환대하는 일이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열매 맺지 못한다는 것을 종종 경험하고는 당혹감에 휩싸이게 된다. 그래서 처음에는 좋은 마음으로 호의를 베풀었으나 자신에게 제공된 은혜를 당연한 것처럼 누리는 이들을 마주하게 될 때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결을 거칠게 만드는 못된 감정들의 발생원인을 금세 ‘배은망덕’이라는 사자성어로 아주 자연스럽게 합리화한다. 

          선한 마음을 그릇이라고 비유한다면, 우리의 선한 마음은 바닥이 그리 깊지 못한 그릇인가보다. 시원한 물을 퍼주다가도, 계속 상대방이 요청을 하게 되면, 금세 아... 이거 내가 먹을 물까지 다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생기게 되고, 눈치 없이 물을 더 달라고 요구하는 상대방이 야속해 지기도 한다. 선한 마음으로 분명히 다가간 것이지만, 받아들이는 이가 요청을 계속해서 더 하거나, 고마운 마음을 내가 충분히 만족할 만큼 표하지 않을 때, 어느새 우리는 그를 환대한 것에, 그에게 나의 것을 나누어 준 것에 후회를 하게 되고 만다.  

          이러한 현실적 경험들이 쌓이게 되면 사람들은 아무나 환대하기를 바라지 않게 된다. 우리가 환대하면 그 환대에 예의바르게 반응할 사람, 또 우리가 환대한 만큼 자신을 변화시켜서 가난이나 어려움에서 스스로 자립할 수 있을 만큼 매우 성실한 사람, 우리의 환대에 진심으로 고마워 할 줄 아는 사람... 이런 사람을 우리는 환대하기를 원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거리의 술 취한 노숙인들에게 호의적이지 않는 것은, 그들이 우리의 ‘선한’ 환대를 마땅히 받을 수 있는 요건에 부합하지 않은 사람들, 보다 야박하게 말해서 그러한 환대를 받을 가치나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이러한 현실적 환대의 아이러니를 정치적 영역으로까지 확대하며 설득력 있는 분석을 보여준다. 그는 앞의 예와 같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환대받을 만한 사람을 환대하는 것을 ‘초대의 환대’라 부른다. 즉 환대받을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 조건을 따져서 선별적으로 환대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선택된 환대, 즉 ‘초대의 환대’라는 것이다. 데리다는 한 공동체에서 누구를 선택하여 초대의 호의를 베풀 것인가라는 문제는 ‘우리 공동체에 이익이 될 것인가, 안될 것인가’를 따져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결국 정치적 문제이고, 환대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구별한 법적 절차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한다.  

          ‘현실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모든 이들을 환대할 만한 공간적, 물리적, 경제적 여유가 넉넉하지 않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초대의 환대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최근 몇 년간 유럽의 난민 유입과정에 있어서, 난민으로 수용될 수 있는 사람들의 자격을 따지는 것도 사실을 ‘초대의 환대’의 대표적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난민을 수용하되, 우리 공동체의 해가 되지 않는 이들만 수용할 것! 고마워 할 줄 아는 이들만 받아들일 것! 우리 공동체에 이익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수용할 것! 테러와 같은 위험 요소를 가진 이들은 철저하게 배제할 것! 이 모든 것이 결국 조건을 따져서 선택적으로 환대하는 ‘초대의 환대’의 정치적이고 법적인 조건인 것이다.  

          물론 데리다는 이렇게 초대의 환대라도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 매우 고무적이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실제로 난민 수용을 거의하지 않는 우리나라와 비교해 보자면, 까다로운 조건이나마 따져서 난민 수용을 할 수 있는 만큼 최대치로 하려는 일부 서유럽 국가들의 난민정책은 인류의 역사상 가장 진보한 것들 중에 하나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데리다는 환대가 이렇게 ‘초대의 환대’에만 머물게 될 때의 위험도 잘 짚어낸다. 초대의 환대는 결국 선택된 이방인이나 약자가 환대를 베푸는 사람이나 공동체의 규칙과 문화를 침해하지 않고, 그것을 아주 잘 따르겠다는 암묵적이고 심지어 법적인 동의 아래에서만 이루어지기에, 그 선택을 받는 이의 입장에서는 – 당장은 고마운 일일 수 있으나 – 결국 자신을 이제까지 구성하였던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존재방식을 일정부분 혹은 전체를 포기해야하는 것의 다름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선택적 환대는 정확히 말해 환대를 받는 이의 모든 다름을 인정하고 그가 내 집이나, 우리 공동체에서 완전히 동등하게 활동하게 하는 권리까진 주진 않는다. 그래서 데리다는 이러한 ‘초대의 환대’가 약자에 대한 강자의 ‘관용’(tolerance)에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우리가 현실 속에서 누구를 환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을 벌일 때, 성서와 예수의 복음은 우리의 논쟁을 근본부터 흔들어 놓는다. 레위기 19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외국인을 환대하라고 하시는데, 여기에는 어떠한 조건이 달려 있지 않다. 어떠한 종교를 가진 외국인인지, 어떠한 피부색을 가진 외국인인지, 어떠한 신분의 외국인인지 그 단서가 달려 있지 않다. 유일한 환대의 단서가 있다면, 그것은 환대받는 자에게 있지 않고 환대하는 자에게 있다. 곧 이스라엘 백성이 외국인으로 떠돌아 다녔던 경험이 환대의 단서가 될 뿐이다. 예수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헐벗은 자, 굶주린 자들을 환대하던 자들이 최후에 날에 복을 받을 것이라 말했다. 여기서 예수는 그들이 굶주리는 이유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그들이 게을러서이건, 병들어서이건, 부모를 잘못 만나서이건, 노력하지 않아서이건 가난의 이유가 언급되지 않았다. 그들이 헐벗고 굶주린다는 사실 하나만이 환대의 충분조건을 갖춘 것이다.  

          오직 도움이 필요하다는 상황만이 환대의 조건이 되는 ‘무조건적 환대’에는 주도권이 환대받는 이에게 있다. 낯선 피부색과 언어를 사용하며 다가오는 이, 굶주림에 배를 움켜잡고 손을 내미는 이. 그들 자신이 우리에게 자신을 환대하라고 요청하고 명령한다. 그들이 우리의 호의에 배신하지 않고 우리 공동체에 이익을 줄 것인지, 배은망덕하지 않고 충분하게 우리에게 고마워 할 것인지 먼저 선별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도움을 요청하고, 우리는 그 요청에 조건 없이 환대하고 도와야 하는 명령만이 있을 뿐이다. 데리다는 이러한 무조건적 환대를 초대의 환대와 구별하여 ‘방문의 환대’라는 다른 이름을 붙여준다. 초대와 달리, 방문은 예기치 않게 다가올 때가 많다. 방문의 환대는 그들의 갑작스런 방문에 문고리를 쥐고 방범구멍으로 그 얼굴을 탐색하지 않는다. 방문의 환대는 조건 없이 문을 여는 것이다.  

          그러나 문을 두드리는 자에게 조건 없이 문을 열어 우리의 공간 안에 받아들이는 호의는 환대받는 자의 태도를 예상할 수 없기에 큰 두려움을 동반한다. 실제로 캄보디아 사돈어른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 아니 이러한 예 정도는 아직은 감당할 정도일지 모른다 -, 혹은 유럽에서 테러를 일으키는 소수의 이민자들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방문의 환대는 우리의 공간과 삶, 심지어 생명의 손해까지 감수해야하는 매우 어렵고 위험한 일일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데리다는 ‘방문의 환대’는 현실적이라기보다 ‘이념의 환대’에 불과하며, 법적으로도 명시화 할 수 없는 것임을 분명하게 밝힌다.  

          ‘방문의 환대’는 ‘이념의 환대’일 뿐이라는 데리다의 선언은 자칫 무조건적 환대의 전면적 포기로 보일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무조건적 환대의 현실적 불가능성에 대한 인정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환대를 끊임없이 이념적으로 생각하고 추구하는 인간의 무한한 윤리성에 매우 큰 의미를 둔다. 인간이 무조건적 환대의 현실적 어려움에 더 이상 그러한 환대를 논하고 생각하지 않을 때 발생하는 매우 심각한 문제는 ‘초대의 환대’의 대상과 범위마저 야박해지기 십상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이방인의 조건을 따지지 않고 굶주림이라는 단 한가지의 사실만으로도 그를 환대해야 한다는 성서의 명령을 하늘나라에서나 통하는 예외적 법쯤으로 외면할 때, 우리는 우리가 하는 야박하고 소심한 선택적 환대 행위에 스스로 만족하고 안도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현실적 최선이라고 자위하게 될 것이란 말이다.  

          어쩌면 환대받는 이의 배신이나 배은망덕은 우리가 타인에게 선택적으로 베풀고 있는 것이 “현실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호의이자 최고의 환대라는 우리의 윤리적 자만이자 자아도취에 기인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어찌 보면 우리의 호의와 친절에 더 큰 호의와 친절을 요구하고 감사한 마음을 충분히 표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도움을 받는 이가 사실은 그 나름의 존재 방식을 가지고 있는 ‘자유인’임을 증명하는 것일 수 있다. 친절한 환대에 대해 감사해야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지만, 그래도 그러한 도리가 의무로 강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 구속의 은혜에 대한 우리의 감사가 신앙의 자유에서 기인할 때에만 참된 의미가 있음을 유비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초대의 환대’와 ‘방문의 환대’, 다시 말해 ‘선택적 환대’와 ‘무조건적 환대’의 아이러니를 앞에, 우리는 ‘나는 베풀고 너는 고마워해야만 한다’ 식의 태도, 요즘말로 ‘답정너’(답은 정해져있고, 너는 대답만 하라는 뜻의 줄임말)의 태도가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한번 쯤 신중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 웹진 <제3시대>

  1. 이화여대 기독교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신학박사(윤리)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대 호크마교양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다. 서울 향연감리교회에서 점심봉사를 하며 가끔 설교를 맡기도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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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의 젊은이, 오해를 넘어서

밥상공동체를 만드는 작은 예수 운동의 부활

 


김혜령[각주:1]
(이화여대)


 

          「구별짓기」의 저자 피에르 부르디외에 의하면, 인간사회의 위계적 계급질서는 단순히 자본의 소유여부에 의해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집단에 속한 구성원들은 입는 옷에서부터 시작하여, 음악, 운동, 취미생활 등 비슷한 문화적 취향을 공유하며, 자기집단을 구별 짓는다. 이러한 취향의 차이야말로 인간사회의 복잡하고도 미시적인 사회적 계층들의 분화와 이들 간의 차별을 잘 설명해 내기에 부르디외는 이를 문화적 자본이라 부른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먹는 음식까지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음식을 볶을 때 버터를 사용하는지, 혹은 식용유나 마가린, 돼지기름을 대신 사용하는지, 곡물섭취는 빵을 주로 먹는지, 아니면 쌀과 파스타, 감자를 곁들이는지, 고기는 통조림이나 햄, 소시지와 같은 가공육을 주로 섭취하는지 아니면 고기를 직접 조리하여 먹는지, 고기 중에서도 소고기나 양고기, 말고기 혹은 생선과 같은 특정 고기를 주로 소비하는지, 조금 유치하리만큼 세세하게 조사가 펼쳐졌다. 어떠한 음식을 먹느냐가 한 사람의 계급과 신분, 직종 등을 구별하여 설명해 주는 매우 중요한 정보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 연구의 결과는 우리가 이미 상식적인 수준에서 공유하고 있는 경험이다. 점심시간, 누구와 무엇을 먹느냐가 이미 우리자신이 어떠한 사회적 존재인지를 설명해 주는 매우 신빙성 있는 자료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먹는 음식에 따라 나타나는 인간사회의 구별짓기는 내가 일하고 있는 대학 캠퍼스 안에서도 점점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혼밥(혼자 밥먹기)이란 말이 존재하지 않았던 90년대 중반, 나는 유치하게도 매일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점심을 먹곤 했다. 학생식당이나 학교 앞 분식점 등을 우르르 몰려다니며 같은 밥을 먹었다. 물론 우리 중에도 잘사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음식이 아니라 옷에서나 구분이 될 뿐이었다. 적어도 내 기억에서는 먹는 것으로 차이를 느껴본 적은 많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학교 안에 고급식당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또한 학생들 각자의 시간표가 점점 더 복잡해지면서, 혼밥은 요즘 대학생들의 일상을 설명하는 매우 중요한 키워드가 되었다. 이제 혼밥은 학생들 간의 전공의 구별짓기, 계층의 구별짓기 혹은 우정의 구별짓기 등의 원인이 되었고, 친구들이 무엇을 누구와 먹는지 관심을 갖는 것이 때때로 지나친 간섭처럼 여겨지는 시대가 된 듯하다.  


          문제는 이러한 혼밥 현상 이면에서 경제적 문제로 식사를 해결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부 학생들의 상황이 은폐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래전부터 내가 일하고 있는 대학의 대학교회에서는 장학금의 일환으로 10만원치의 식권을 매학기 100명의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있는데, 이를 원하는 학생이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비교적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계층의 학생들이 많이 다닌다고 소문(?)나 있는 우리대학 안에도 한 끼의 식사를 해결하는 데에 고민을 해야 하는 학생들이 다양한 이유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혼밥 현상은 이들의 존재를 감추며, 이들의 어려움에 무관심하게 만드는 위험이 있다.  


         다행인 것은 이러한 학우들의 문제를 함께 짊어지고 싶다는 학생들이 대학사회에 곳곳에서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바로 2년전부터 시작한 ‘십시일밥’이라는 대학생 비영리봉사단체다. ‘십시일밥’은 학생들 스스로가 학생식당에서 일주일에 한 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 돈을 모아 필요한 학우들에게 학생식당쿠폰으로 되돌려 주는 학생나눔자치활동으로서 한양대에서 시작하여 현재 전국적으로 십 여개의 대학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우리학교에서도 어린 여학생들이 십시일밥 로고가 새겨진 베이지색 유니폼을 입고 점심시간마다 생활관 학생식당의 까페와 한식코너, 교직원 식당에서 일을 한다. 사실 모두 집에서는 설거지 한 번 제대로 안하고 자란 귀한 딸들이기에 아직은 서툴고 힘들어 한다. 그래도 이번학기가 끝날 무렵에는 열 명이 넘는 학우들에게 ‘우리와 같은 밥을 먹자’며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 수 있게 된다는 기대 속에 땀을 흘리고 있다. 물론 이들의 봉사가 한 끼의 식사를 걱정 하는 학우들의 모두의 문제를 말끔히 해결해 주는 대단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은 교내의 다른 학생들과 교수님들, 가족들에게 화려한 대학 캠퍼스 안에도 여전히 따뜻한 관심과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매우 중요한 상징이 되고 있다. 또한 도움을 받게 될 학생들 역시 학점과 취업 경쟁에서 벗어나 그들의 삶을 함께 걱정해주고 지지해 주는 따뜻한 친구들이 같은 캠퍼스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삶의 작은 위로와 용기를 얻을 수도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학자 박재순은 ‘하나님 나라 운동’을 펼친 예수의 사역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이 가난으로 인해 이리저리 찢겨진 갈릴리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하나의 ‘밥상공동체’를 회복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가나안 혼인잔치의 포도주 기적, 오병이어의 기적, 최후의 만찬, 엠마오 도상에서의 식사 모두 이러한 나눔과 회복의 밥상공동체의 실행인 것이다. 가장 물질적이고 일상적인 밥을 나누어 먹는 일에서 인간은 서로의 아픔을 보듬으며 사랑을 가꾸어나간다. 그러한 면에서 볼 때, 나는 ‘십시일밥’이라는 대학생 나눔활동이 우리 대학사회의 가장 외로운 이들과 함께 하는 ‘성만찬’을 세속적으로 부활시킨 작은 예수운동이라고 라고 부르고 싶다.  



십시일밥 누리집 http://www.tenspoon.org/



          물론 개인의 봉사로 가려져서는 안 되는 부분도 있음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5년 전 프랑스 유학시절 대학생 학생식당의 식사 가격은 3유로가 조금 넘었다. 그런데 그 양과 질은 7유로 이상의 가치가 있는 음식이었다. 나머지 차액이 어디서 왔을까. 한 사회의 새로운 구성원들을 건강하게 길러내고자 하는 사회의 구조적 의지가 그 4유로의 차액을 채워 풍성하고 건강하며, 평등하고 행복한 밥상공동체의 잔치로 젊은이들을 초대하고 있었다.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 스스로가 연대하기 위해 자신의 시간과 노동을 쪼개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사회는.. 또 그 사회 구조의 중요한 결정권을 만들어 내는 기성세대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때다. 부끄럽게도 젊은이들 스스로가 어렵게 열어 초대한 잔치에 밭 갈러 간다고, 장가가서 가족을 돌보아야 한다고 핑계대기에는 이제 너무 진부하지 않은가.  



ⓒ 웹진 <제3시대>

  1. 이화여대 기독교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신학박사(윤리)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대 호크마교양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다. 서울 향연감리교회에서 점심봉사를 하며 가끔 설교를 맡기도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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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이 있는 교회[각주:1]

 


김혜령[각주:2]
(이화여대)


 

          “내가 꿈꾸는 교회”라는 타이틀로 글의 요청을 받았을 때, 정형화된 교회의 모습에서 벗어나 우리 각자가 원하는 교회를 꿈꿀 수 있다는 권리는 인정받은 것 같아 매우 감사한 마음이 먼저 들었습니다. ‘꿈꾼다’는 것은 곧 ‘불가능성의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일 겁니다. 현실적인 눈으로 볼 때, 가능하지도 않을 일을 꿈꾸는 일이야 말로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을까요? 그러나 저는 불가능한 것을 꿈꾸는 행위만큼 현실세계에 대한 비판과 진보에 대한 희망이 담겨 있는 것이 없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내가 꿈꾸는 교회”라는 제목아래 쓰인 모든 글들이 단순한 희망이 아니라, 필자들 각자가 진단한 현대 교회, 한국 교회의 문제를 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목사 딸로 태어나 평생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래도 참 무난하고 행복하게 목사 딸이라는 삶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교회와 목회자의 집은 붙어있으면 안 된다는 신념으로 늘 걸어서 30분 이상 되는 거리에 집을 두셨습니다. 공간의 분리로 인해 어머니와 자녀들의 사생활이 보장되다보니, 아무래도 저와 남동생은 여러 부족한 모습에도 교회 내에서 구설수로 오르는 일이 많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마도 이것이 한 교회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 자라면서도 성도님들에게 많은 사랑을 감사하게도 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비교적 편하게 목회자 자녀의 생활을 누릴 수 있었던 축복에도 불구하고 이십대 중반이 되어 유학가기 전까지 저를 가장 힘겹게 했던 것은 쏟아지는 교회 봉사 일이었습니다. 다행히 피아노에 소질이 없어서 교회반주를 못했는데, 목사딸로서 그러한 큰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저의 쓰임은 다채로웠습니다. 토요일 오후부터 시작되는 청년모임 준비와 예배, 저녁 친교모임 등... 임원이라도 맡은 시기에는 토요일 전체가 그렇게 교회 내에서 보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것이 20대 초반 제가 연애를 못했던 이유라고 하면 너무 구차한 변명일까요?  


         주일은 더 바빴습니다. 아침 7시 예배 성가대에 서기 위해서 6시면 교회에 도착하여 연습을 해야 했습니다. 소프라노였는데 아침부터 돼지 멱은 수 십 마리 딴 것 같습니다. 7시 예배가 끝나면 8시 반쯤 고등부실로 올라가 교사기도회를 했습니다. 그리고 9시 예배를 시작하지요. 10시가 되면 분반별로 흩어져 성경공부를 가르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장로교 공과공부 책이 매우 훌륭했는데, 그 책도 제대로 예습하고 가르치지 못한 것 같아 아이들에게 매우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을 보내고 나면 점심 먹기 전까지 교사회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11시 본당예배의 끝과 맞추어 식당에서 어울려 밥을 먹지요. 눅눅한 교회 지하 식당에서 먹는 밥, 그래도 아침부터 달려온 하루에 잠시 짬을 내니 그 시간에 제일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밥을 먹고 잠시 청년들과 수다를 떨다보면 1시가 됩니다. 오후 예배 찬양인도를 위해 찬양팀 연습을 해야 할 시간입니다. 그래도 믿음 좋은 후배들 덕에 찬양단 연습이 무사히 끝나게 되고, 어른들이 본당에 다시 모이실 때쯤 복음성가로 20-30분 찬양을 인도하지요. 부끄럽게도 오후예배는 꾸벅꾸벅 조는 시간입니다. 아무리 말씀을 잘하시는 부목사님, 외부 초청 목사님이 오셔도 웬만하면 이 졸음을 막아 내시지 못합니다. 깔끔한 성격으로 사모역할을 충실히 해내시는 우리 어머니 눈에 띄지 않게 잘 조려고 해도 당해낼 수 가 없어 여러 번 혼이 나났지만, 졸음에 설교말씀이 당하지 못하는 죄인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3시 반쯤 오후예배가 끝나면 해방입니다. 아침부터 달려온 주일봉사가 그렇게 끝이 나니까요. 그래도 일 년에 십 여 차례 주일이 쉽게 그렇게 끝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수련회 준비, 임원회 회식, 노인대학 봉사, 친목회 등등 저녁까지 교회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은혜로운 일들은 늘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스케줄은 수요예배와 철야예배, 새벽기도회를 열심히 독려하는 다른 교회 성도들에 비해 무척 가벼운 것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얼마나 신앙을 단련시키는 훈련이었나 하고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말 내내 멈추지 않고 성도의 봉사와 헌신의 기회를 만들어내는 교회의 선교방식은 유학이후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말할 때 기독교는 다 죽었다고 말하는 프랑스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 말이 틀리지 않을 만큼 프랑스의 교회는, 개신교뿐만 아니라 가톨릭교회까지 그 화려한 석조 건축물이 너무나도 아깝게 예배당을 텅텅 비워둔 채로 주일예배를 맞이합니다. 성도들이 무엇을 열심히 할 만큼 사람들이 모이지도 않고, 또 솔직히 많이 모이겠다는 의지도 없어 보입니다. 주일 오전 예배당에 입구에 들어서며 간단히 안내하시는 원로들과 목례를 나누고 교회당에 앉아 예배에 참여하게 되면, 목사님의 조용한 설교가 예배당을 채워나갑니다. 저는 칼뱅이 목회했다던 전통 있는 교회를 다녔는데 거기서도 주일 예배인원이 30-40명 내외였던 것 같습니다. 아동부 예배는 따로 드리지 않고 어른 예배 중에 아이들을 위한 설교를 잠시 짬을 내어 하기 때문에, 교사가 따로 헌신해야 하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그렇게 조용하게 예배가 끝나면 그래도 한 가지 중요한 일이 있기는 합니다. 예배당 입구를 빠져나갈 때 그 앞에 서 계시는 목사님과 악수를 하고 간단하게 안부를 묻는 일이 이루어지지요. 그 때 심방이나 중요한 소식을 목사님께 전달합니다. 그렇게 조용히 오전 예배가 끝나면, 모두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가족끼리 오붓한 점심을 먹습니다. 그것이 제가 경험한 프랑스 주일의 풍경이지요. 물론 한 달에 한번 교회 식당에서 성도들이 준비한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으며 친교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아동부, 청소년부도 방학 때면 2주씩 스키 캠프를 겸한 신앙 수련회를 다녀오기도 하지요. 그러나 전체적으로 주일은 그렇게 차분하게 보내집니다.  


          토요일부터 주일 저녁까지 빡빡한 봉사와 헌신으로 채워져 있는 한국교회 성도들의 눈으로 볼 때 프랑스 교회의 성도들은 한량처럼 보입니다. 껄렁 껄렁 교회 예배에만 참석하고 돌아가는 이들이니깐요. 도대체 이들은 왜 교회에 다닐까? 무슨 재미로 다닐까? 열심도 없는데 왜 교회에 나갈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의 주일 풍경이 자칫 생명력이 없고 차가운 신앙에 제자리를 맴도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몇 년의 교회 생활을 하며 제가 느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주일이, 그들의 예배가 창조 후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선포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모습일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세상의 모든 만물이 만드시는 육일 간의 역동적인 창조사역을 끝내시고, 하나님은 일곱째 날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안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날을 따로 구분하여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지요.  


          저는 주일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일주일 간 어쩔 수 없이 세상 속에서 힘들게 일하며, 살아남기 위해 품어야 했던 욕망과 탐욕, 시기심, 경쟁심, 분노, 좌절 등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모두 내려놓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질서, 맘몬의 권력이 우리의 삶을 쥐고 흔들 때, 주일은 질서의 거짓됨과 권력의 포악함을 우리 자신으로 하여금 대면하게 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창조주가 누구인지 다시금 고백하게 하며 자신을 성찰하게 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저는 그것이 주일의 쉼의 회복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새벽부터 소란하게, 정신없이 교회 온 곳을 누비며 뛰어다니는 봉사와 헌신에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 헌신의 결과물이야 물론 아름답겠지만, 저는 영혼이, 생명이 주일마다 오히려 조금씩 닳아 없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주일 교회헌신의 의무가 축복으로 주어진 주일날 쉼의 권리를 압도하게 될 때, 저의 신앙은 습관이 되었고 주일 설교시간은 낮잠에 포획되고 말았습니다.  


          제가 원하는 교회는 이렇습니다. 주일 쉼의 권리를 보장하는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교회 공동체입니다. 노동 시장이 점점 더 포악스러워지면서, 좋은 직장을 갖지 못한 성도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직장을 잡지 못한 청년들은 학원이나 고시원을 전전하며 일주일을 피곤에 절어있고, 직장을 다니는 이들도 정상 근무 이외의 야근에 시달립니다. 비정규직 일자리의 증가는 많은 성도들의 주일에 예배드릴 권리마저 박탈하였습니다. 세상이 돈 버는 일에 미쳐 돌아가면서 우리 모두의 주중의 생활이 맘몬의 세력에 붙들려 있습니다. 그런데 주일은 마치 그러한 우리 자신을 극도의 육체적 헌신으로 극기(克己)하기라도 하라는 것처럼, 새벽부터 오후 늦게까지 성도들에게 일거리를 몰아칩니다.  


          이러한 저의 확신은 최근 친구 이야기를 듣고 더 커졌습니다. 친구는 잘나가는 외국계 회사에 부장이어서 새벽6시에 출근하여 이미 7시에는 업무를 시작합니다. 일주일 내내 과한 노동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친구는 자신이 어릴 적부터 다니는 교회 재정 봉사를 맡게 되었습니다. 제법 큰 교회여서 재정 일은 오후 늦게까지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곧 재정의 쓰임에서 의심의 꺼리를 발견한 친구는 그러한 의심이 자신을 시험에 빠뜨리고 신앙을 잃게 할까봐 그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봉사를 맡게 되었답니다. 오전에는 유치부 교사를 하고 오후에는 교회에서 새롭게 오픈한 커피숍에서 바리스타를 맡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속으로 무척 화가 많이 났습니다. 일주일 내내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진이 다 빠진 성도를 교회봉사라는 성스러운 명목아래 교회까페의 바리스타로 일하게 하는 “한국교회의 과도한 헌신 구조”를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교회의 탐욕과 배려 없음에 쉽게 화를 삭일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그 친구는 그 일을 믿음으로 즐겁게 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 눈에는 그렇게 일하는 친구가 한없이 안쓰러워 보였습니다.  

          성도의 봉사와 헌신은 매우 중요합니다. 공동체의 약한 지체를 돌보고, 새 세대를 교육시키며, 복음을 전하는 일이 성도들의 참여 없이는 결코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안식일의 쉼의 권리가 박탈된 봉사와 헌신은 – 감히 과장되게 말하건대 – 성도들에 대한 노동력 착취일 수 있습니다. 우스갯소리로 저의 아버지께 반항하던 말을 하자면, 목회자야 월요일에 쉬지만 성도들은 월요일이면 다시 생계 현장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쉼을 박탈당한 신앙. 그것은 곧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그에 대한 감사함을 성찰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신앙인으로서의 매우 소중한 시간을 빼앗겨 버린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쉼 없이 봉사로 채워지는 주일 하루는 목회자의 설교를 흘려듣게 하고, 매주 반복되는 “행사”로 축소해 버립니다. 설교를 들으며 생각하는 능력은 사라지고, 헌신하는 몸만 남게 됩니다. 어찌 보면 쉼이 없이 달리기만하는 한국교회의 주일 풍경이, 신학자들이 그렇게도 비판해 왔던 이성적 성찰이 부족한 한국교회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쉼이 있는 교회 공동체는 어떻게 만들어 질 수 있을까요? 쓸데없이 일할 거리를 줄여야 합니다. 바리스타까지 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한 사람이 너무 많은 직분을 맡아서도 곤란합니다. 말씀을 듣는 귀를 열 수 없을 지경까지 고단해 지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모든 일이 가능하려면, 결국 교회 공동체 사이즈 자체가 줄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장도 커지면 커질수록 분업화가 되고, 그 안에 노동은 단순해지고 양은 증가합니다. 노동자들끼리의 관계도 단절되기 십상입니다. 교회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커지면 해야 할 일이 많아지고, 봉사 받아야 할 일도 늘게 됩니다. 성도의 수, 교회의 공간 크기, 재정의 크기 모두 줄어야 합니다. 교회는 생산성의 논리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래야 초대교회가 가르치는 디아코니아와 코이노니아에 해당하지 않는 일들이 한국교회에서 사라질 수 있습니다.  

          물론 쉼이 넘치는 교회에도 단점은 있습니다. 성도들의 열정이 쉽게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지요. 몸을 부딪치며 자신의 일거리를 찾아야 교회 안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찾는 성도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행위를 천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행위보다는 믿음을 강조하는 데에서 나옵니다. 그 믿음은 몸을 움직이는 데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자신을 돌아보며 성찰하는 고백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쉼을 주는 교회, 쉼이 있는 예배는 우리에게 신앙 고백 시간을 복원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조금 더 오래 걸리더라도, 그 방식이 진정으로 성도를 신앙 안에 성장시키고 교육시키는 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봉사의 열정은 그 이후에 오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예배가 끝나고 목회자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악수를 하며 안부를 물을 때 뒤에 줄을 선 성도들이 기다리다 지쳐서 짜증나지 않을 만큼의 성도가 모이는 교회에는 서로의 삶에 대한 관심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과 이름을 모를 수도 없고, 각자의 어려움들을 무시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 교회에는 재정이 크지 않기 때문에 크게 부패할 돈이 없고, 그러다 보니 엉뚱한 사역도 벌이지 않습니다. 모여서 예배하고, 성경공부하고, 간단히 식사하며 교제하고 각자의 삶의 자리로 흩어지는 일. 그 일이 전부이게 됩니다. 주일의 쉼의 권리를 회복하는 교회, 저는 의외로 이 일부터 한국교회의 많은 문제들이 함께 풀려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이자면 저는 단독목회를 시작한 남편을 도와 감히 “쉼과 성찰이 있는 교회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2년째 고군분투 중입니다. 예상대로 성도가 많이 모이지 않는 초미니 교회입니다. 여기서 제가 맡은 봉사는 점심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지난 2년간 ‘사람이 먹을 만한’ 음식을 꾸준히 마련해 가는 제 자신이 기특해 집니다. 그래도 힘이 들지 않는 것은 초미니 교회이니 한 끼를 준비하는 것이 육체적으로 그리 힘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주일날 넉넉히 준비한 반찬이 저희 집 식사의 일주일의 반을 먹여 살리기 때문에 맞벌이를 하고 있는 저의 입장에서는 1석 2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도가 늘어 그 일이 힘들게 될 때쯤에는 무한 헌신과 동격으로 취급되는 ‘사모’라는 이름에 순응하지 않고 차선의 방법을 성도들과 함께 찾자고 건의할 생각입니다. 저는 주일에 말씀을 들으며 참으로 쉼다운 쉼을 얻고 싶습니다. 시편에서 다윗이 노래한 쉴 만한 물가가 제가 다니는 교회가 되기 원하고, 거기서 저는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과 만나고 싶습니다.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가능해야만 하는 교회의 참된 모습이라고 믿습니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한국여신학자협의회에서 발간하는 <한국여성신학> 82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본문으로]
  2. 이화여대 기독교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신학박사(윤리)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대 호크마교양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다. 서울 향연감리교회에서 점심봉사를 하며 가끔 설교를 맡기도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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