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나 있는


'진짜 여성'에 대하여


- 장강명 소설 [댓글부대] 리뷰

 





(평범한 워킹맘, 페미니스트, 간간이 글쟁이로 변신)


0.


    이 글은 <댓글부대>에 다는 하나의 긴 댓글이다. 내 뒤엔 합포회도 없고, 수십만의 조작된 ‘좋아요’도 없다. 그러므로 이 글은 쏟아지는 다른 컨텐츠들에 금방 묻혀버릴 것이다. 그래도 구태여 이 글을 쓰는 건 <댓글부대>의 독자인 나, 불쾌하고 속상한 나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 대부분의 댓글이 그런 목적에서 쓰여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1.


   <댓글부대>의 주요 전선은 정치 성향이 아니라 젠더였다. 여초 커뮤니티를 붕괴시키는 것이 팀-알렙의 목적이어서만은 아니다. <댓글부대>에서 여성은 가장 하찮고 대상화된 존재인 동시에, 가장 중요하며 언제나 중심에 있다. 둘의 증오는 여성이 자의식을 가진 하나의 주체로 등장했다는 데에서 불꽃처럼 타오른다. 그들에게 여성의 주체성은 그 자체로 남성의 기득권 상실이다. 마음대로 가슴을 주무를 수 없고, 내키는대로 섹스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치 그들의 성욕을 반영하는 것처럼, <댓글부대>에서는 섹스가 매 챕터마다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룸살롱과 안마방에서 시작해 요정에 이르기까지 작품 내 등장하는 다양한 성매매 장소는 팀-알렙과 합포회의 남성성을 공고히 하기 위한 것이다. 이 남성성은 진보로 표방되는 여성(혹은 여성으로 표방되는 진보)에게 끊임없이 위협 받는데, 그래서 더욱 더, 팀-알렙과 합포회의 남자들은 본인들이 지배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성기로서의' 여성들 속으로 파묻힌다.


    팀-알렙과 합포회의 일원들은 성매매 업소에서만 쾌락과 안정감을 느낀다. 잠시동안 합포회의 일원이 미팅을 주선했던 ‘강연 카페'같은 곳들은, 그들이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될 트렌드이자 위협이다. SNS와 온라인을 지배하지 않으면, 지금의 돈도 권력도 깡그리 무력화될 것이라는 불안도 같은 방식으로 표출된다. 그들이 지배하지 못했고, 아직까지 알지 못하는 공간들은 그 자체로 그들에게 ‘위협'으로 다가선다. 그래서 합포회는 몇 천만 원의 돈을 투자하면서까지 ‘지능형 댓글 알바'인 팀 알렙-을 고용하는 것이다. 그들이 알지 못하는 공간을 붕괴시켜 이윽고 온라인을 지배하기 위해서. 


   이러한 맥락에서 합포회는 팀-알렙에게 진보적 정치 성향을 띤 여성 커뮤니티를 공격하라고 지시한다. 팀-알렙은 합포회에서 준비해 준 커뮤니티 아이디들을 활용하여 커뮤니티 안에서 논쟁의 불씨를 피우고 싸움을 부채질해가며 손쉽게 커뮤니티를 붕괴시킨다. 그들은 여성 커뮤니티에 내부 균열을 일으켜 회원 간 갈등을 촉발시켰을 뿐 아니라 그들의 이중성을 폭로하기도 했다. ‘사회의 폭력성’을 누구보다도 경계하는 이들이 조그마한 계기가 주어지자 내부에서 서로를 ‘폭력적’으로 몰아가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댓글부대>는 이렇게 주장하고 싶은 듯 했다. “온라인에서 제 아무리 여성/진보가 득세하는 것처럼 보인다해도 실제 세력은 남성/보수들의 손아귀에 있으며, 온라인도 그들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깨부술 수 있다”고. 그러나 <댓글부대>라는 작품을 통해서 우리가 들을 수 있는 다른 메세지는 이렇다. “아무리 온라인을 누군가 침입해서 깨부수더라도, 여성/진보의 위협은 사라지지 않는다.” 


   끝내 그들이 여성을 혐오하더라도 그들은 결국 커뮤니티를 부술 뿐이지, 여성을 부술 수 없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여초 커뮤니티 하나를 끝장낸다 하더라도, 그것이 진보의 ‘망조'를 불러낸 건 아니다. 손에 꼽는 국지전이고, 어차피 이들은 그들의 커뮤니티 하나를 잃었을 지언정 스스로의 정체성에 위협을 받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댓글부대>라는 작품 속에서 지속적으로 신변상의 위협을 느끼는 건 팀-알렙과 합포회다. 커뮤니티의 여성들은 기껏해야 고소에 대한 처벌을 두려워할 뿐이다.


2. 


    나는 현실과 허구의 영역이 모호할 정도로 세심하고 사실적으로 쓰여진 이 소설에서 유독 젠더 양상만 극단화되어 나타나고 있는 점에 주목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여성들 중에서도 그가 채택한 건 극단의 여성상이었다. 한 부류는 유흥업소에서 일하며 팀-알렙, 합포회 남성들에게 성적 쾌락을 주는 여성들이다. 그리고 다른 한 부류는 여초 사이트에서 정치적 성향을 뚜렷하게 내보이며 팀-알렙, 합포회를 은연 중에 비웃는다.(실제 비웃지 않았더라도, 팀-알렙과 합포회는 여초 커뮤니티의 회원들이 자신들을 비웃고 우습게 여긴다고 생각한다.)


   이 극단화된 여성상은 온라인의, 그것도 남초 커뮤니티의 상상적인 여성상을 그대로 베껴 놓은 듯 했다. 그에 비하면 그나마 작중의 남성들은 다양화된 편에 속한다. 여성이 사회적 약자임을 이해하고 있는 K신문 기자와 업소 여자에 대해 저속한 뒷담화를 나누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녀들과의 로맨스를 기대하는 찻탓캇, 여자는 그저 노리개로만 취급하는 합포회까지 나름의 스펙트럼을 갖추고 있다. 


   <댓글부대>는 온라인에서 과잉묘사된 여성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마치 정말 있는 여자처럼, 어딘가에서 본 사람처럼. 사실 이건 남초의 보수 커뮤니티에서 여성 혐오를 부풀리는 데에 자주 사용되는 방법이다. 사실이 아닌 사건을 자신이 직접 본 것처럼 날조하면서 ‘역시 김치녀 클라스’라는 식으로 여성을 매다는 것이다. 


3.


   <댓글부대>의 남성 캐릭터는 입체적이다. 특히 <댓글부대>의 주요 화자인 찻탓캇이 그렇다. 본인들의 일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는 한편 어떤 불안감을 직시하고, 성매매 여성을 ‘더럽게’ 보면서도 그녀들에게 어떤 연민과 애정을 가진다. 그러나 <댓글부대>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모두 단편적이다. 이중적이라는 의미와는 다르다. 작중에 여성 ‘캐릭터’는 없다. 이 작품에서 여성은 그저 ‘관찰된 객체’로서만 존재한다. 


   <댓글부대>가 지닌 리스크는 ‘여성’이라고 생각한다. 장강명은 <댓글부대>가 진보와 보수, 그리고 온라인의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작중에 설정된 여초 커뮤니티의 이미지와 성매매 업소들의 비중 때문에 사실 ‘정치적 성향’의 문제는 크게 보이지 않았다. 구태여 짚는다면 ‘역시 진보는 분열로 망하는군’이라는 뻔하디 뻔한 클리셰 정도. 오히려 읽혔던 건 이런 말이었다. “조작 가능한 건 ‘정치적 여론’이 아니라 ‘성별 간 적대감’이다.”


   나는 많은 온라인 커뮤니티들이 여성을 ‘된장녀/간장녀/생강녀’라는 식으로 개인들의 다양한 성질들을 과장하여 구분짓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 어째서 우리 사회의 성적 구도는 늘 한결같이 ‘극단적’인가. 우리에게 필요한 건 여혐도, 여혐혐도 아니다. 그저 우리가 쉽게 구분하고 판단 짓지 못하는 개인들이 다양하게 있을 뿐이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스타벅스를 좋아하면서(된장녀) 에코백을 메고 다니는(생강녀) 사람도 분명 있는 것처럼 말이다.


    



   소크라테스는 죽기 전 제자들과의 대화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는 ‘극단’과 ‘중간적인 것’에 대해 언급했는데, 그 문단만을 여기 옮겨 본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모든 극단에 적용될 것이네. 다시 말하면 매우 신속한 것과 매우 느린 것,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검은 것과 흰 것 등등. 이처럼 모든 것에 있어서 극단은 희귀한 데 비해 그 중간적인 것은 대단히 많은 법이네. 자넨 이와 같은 것에 대하여 관찰해 본 일이 한 번도 없었나?”[각주:1]  


   나는 이 질문을 그대로 장강명에게 돌리고 싶다. ‘자넨 중간적인 여성에 대하여 관찰해 본 일이 한 번도 없었나?’[각주:2] 정말로?  



ⓒ 웹진 <제3시대>

  1. 플라톤 저, <파이돈> 중 [본문으로]
  2. 이전에도 나는 장강명 작품에서 느껴지는 이러한 아쉬움에 대하여 쓴 적이 있다. <표백>, <삶어녀 죽이기>, <한국이 싫어서> 의 여자 주인공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비현실성과 마녀성이 주제였다. 해당 글 원문은 여기서 확인 가능하다. http://ichungeoram.com/9589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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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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