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 넘은 '악동' 마이클 무어의 진솔한 호소[각주:1]


 

권오윤[각주:2]



       사회의 어떤 부분이 문제라고 인식하게 되면, 우리는 대안을 모색하게 됩니다. 그때 찾게 되는 것이 다른 나라의 사례죠. 이 문제를 더 합리적이고도 올바른 방식으로 처리하는 나라가 있는지, 또 그들의 방식을 우리 사회에 어떻게 적용하면 좋을지 궁리해야 하니까요.

       재치 있고 신랄한 다큐멘터리로 미국의 사회 문제를 정면 비판해 온 마이클 무어가 신작 <다음 침공은 어디?>에서 취한 방식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미국에 없는 다른 나라의 좋은 사회 제도들을 훔쳐오기 위해 혼자서 '침공한다'는 설정을 만들고, 미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아홉 나라의 제도들을 취재하지요. 그 과정에서 미국이라는 나라가 가진 문제들이 낱낱이 파헤쳐집니다.

       처음에는 우리 피부에 와 닿는 문제들부터 시작합니다. 1년에 6주 유급 휴가가 기본이고 결혼하면 2주 추가에 다 못 쓰면 다음 해에 붙여서 쓸 수 있는 이탈리아, 지방의 작은 학교 급식에서도 셰프가 서빙하는 코스 요리가 나오는 프랑스, 숙제를 없애고 아이들이 스스로 하고 싶은 공부를 하도록 밀어주는 것만으로 세계 최고의 교육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핀란드, 대학 교육이 완전 무료라서 학자금 대출의 압박에 시달리는 미국 학생들도 많이 유학 가는 슬로베니아.

       이런 나라들의 이야기는 사회 통념이나 복지 제도의 측면에서 미국, 일본과 유사한 부분이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도 충분히 공감할 만한 것들입니다. 특히 개봉 전에 유튜브 영상으로도 많이 공유되었던 핀란드의 교육 이야기는 학교가 제시하는 커리큘럼과 과제에 찌든 학창 시절을 보내야만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 모두가 가슴 아프게 여길 만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마이클 무어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갑니다. 노동자가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환상적인 근무 여건을 가지고 있는 독일에서 결국 마이클 무어가 훔치기로 선택한 것은 다른 것이었습니다. 바로 과거의 역사를 반성하고 기억하는 자세였죠. 그들은 유대인 학살 책임을 사회 전체가 나뉘고 사과와 반성을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계속해 왔으니까요. 감독은 미국 역시 인종 차별과 학살로 얼룩진 과거의 역사를 끊임없이 되새기며 반성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저작권자: 판시네마(주))


       이때를 기점으로 영화는 본격적으로 미국 사회의 차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합니다. 마약 사용을 범죄로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마약 사용이 줄어든 포르투갈, 수감과 처벌이 아닌 진정한 교화를 목표로 하는 개방형 교도소를 운영하는 노르웨이. 이 두 나라의 모습을 통해 미국의 사법 제도와 교도 정책이 얼마나 많은 증오와 인종 차별을 부추겨 왔는지를 고발합니다.

       또한, 국가가 임신과 출산, 피임과 낙태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보장하고 있는 튀니지가 재스민 혁명에 성공하고 헌법에 여성의 권리를 명시하게 된 것, 1980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배출했을 정도로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한 아이슬란드가 2008년의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투자 은행의 책임자들을 제대로 사법 처리할 수 있었던 이유 등을 두루 살펴보며 미국의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한 행동을 촉구합니다.

      우리 사회에도 숱한 문제가 있습니다. 마이클 무어의 조국 미국보다 여러모로 심각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지금처럼 머리로만 문제를 생각하고 입으로만 되뇌기만 해서는 절대 변화가 불가능합니다. 문제 집단을 손가락질하고 욕하면 속은 후련할지 몰라도 그들이 바뀌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실질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법과 제도가 필요합니다. 물론 하루아침에 모든 걸 바꿀 수는 없겠지요. 무엇보다 기존 질서의 저항이 극심할 테니까요. 최근 시행된 부정청탁과 금품 수수 방지에 관한 법률만 봐도 그렇습니다. 많은 기득권자가 이것을 굳이 '김영란법'이라는 별명을 붙여 잘못된 프레임을 짜고, 제대로 된 시행을 막으려고 온갖 훼방을 놓았지요. 농어민의 수입 감소라는 얼토당토않은 이유까지 붙여 가면서요.

       이런 식의 방해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의 확고한 신념과 중단 없는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당장 눈에 띄는 큰 변화를 만들기는 어렵고, 변화의 효과를 우리 세대가 곧바로 누릴 수는 없을지라도 말입니다. 영화의 결말 부분에서 환갑을 넘은 감독이 전에 없이 진솔한 목소리로 작은 노력에서부터 시작하자고 호소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오마이뉴스의 9월 18일자 기사 <환갑 넘은 '악동' 마이클 무어, 그가 진솔하게 호소한다>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244393) 로 게재된 원고입니다. [본문으로]
  2. <발레교습소> <삼거리극장> <화차> 등의 영화에서 조감독으로 일했으며, 현재 연출 데뷔작을 준비 중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물 [권오윤의 더 리뷰]를 쓰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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