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당을 지지하는 '현실감각'



 

백승덕*


 

         이번 총선 출구조사 발표가 났을 때 ‘기타 정당’이 비례대표 2석 정도를 받을 수 있을 거란 기사를 보고 반가웠다. 녹색당이 드디어 원내진입을 하는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곧바로 ‘기타 정당’이 기독자유당이란 소식을 접하면서 기대가 경악으로 바뀌었다. 별다른 공약도 없이 ‘반동성애, 반이슬람, 간통죄 부활’을 내세우는 정당에 투표한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을 줄 몰랐다.  

          총선개표를 하는 동안 기독자유당 당사에서 당원들이 통성기도를 하던 장면은 두고두고 잊혀 지지 않을 것 같다. 정당득표율이 원내 진입을 위한 3%에 조금 못 미치는 2.7%에 머무르자 0.3%를 더 달라는 듯이 목소리 높여서 기도하는 정당을 보게 되다니. 2008년 총선 때도 통일교에서 당시 한나라당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전국 선거구에 빠짐없이 후보를 냈던 정당을 내놓았던 적이 있긴 했다. 기독자유당도 선거에 나왔다가 사라지는, 그렇고 그런 정당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아깝게(?) 원내진입에 실패했다. 기독자유당 세력과 교단이 달랐던 기독당이 표를 갈라서 망정이지, 자칫하면 한국판 도널드 트럼프들이 국회에 들어갈 뻔했다.  

         비례대표 2석을 챙길 뻔했던 ‘기타 정당’이 다름 아닌 기독자유당이었단 사실이 알려지자 주위에선 진보정당들에게 반성하라고 요구하는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나타났다. 특히 녹색당이나 노동당처럼 1% 득표도 하지 못한 정당 지지자들의 ‘현실감각’이 공격 대상이었다. 과학적이지 않다는 지적부터 더불어민주당에 들어가서 블록을 만드는 편이 훨씬 현실적이라는 주문까지 비판은 다양했다.

         녹색당 지지자로서, 이러한 비판은 곧 나의 ‘현실감각’을 돌아보라는 경고로 느껴진다. 비례대표 정당 득표율이 0.7%인 정당을 지지한 정치인식이니 100점 만점에 0.7점짜리인 셈인가? 그러나 나는 다시 찍는대도 녹색당이다. 거기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힘! 힘! 힘!’만 이야기했던 총선


         사실, 이번 총선에서 기독자유당이 국회의원을 내지는 못했지만 총선 기간 중에 ‘기독자유당스러운’ 분위기는 이미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 공식 선거기간이 시작도 되기 전부터 이런 경향이 보였다. 지난 2월 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비상대책위원이 개신교 기도회에 나가서 ‘동성애와 이슬람에 대한 차별금지법에 반대한다’라고 입을 모았던 것이 대표적이다. 이 자리에서 박영선 의원은 “동성애는 하나님의 섭리에 어긋나는 행동”이라고 말하며 성소수자들을 공개적으로 모욕했다. 그 정도로 노골적이진 않았지만 같은 당의 표창원, 진선미 후보 역시 개신교 극우세력이 공격을 해오자 “동성애 확산엔 반대한다”거나 “동성애를 권장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대응을 했다. 동성애를 전염병처럼 취급했다는 점에서, 개신교 극우세력의 거센 비난공세에 맞춰서 정치력을 발휘했다고 보기가 곤란할 만큼 모욕적인 발언들이었다.

         선거가 진행되면서 이렇듯 혐오발언이 켜켜이 쌓여가니 기독자유당이 굳이 국회의원을 내지 않아도 될 법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 국회에 나오기도 전에 사망선고부터 받은 셈이다. 이 정도 수준의 차별과 혐오가 우리 사회의 평균값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현실 감각’이라면 그런 감각은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현실을 상수처럼 마냥 받아들이지 않을 뿐이다.

         나는 병역거부자이다보니 성소수자들이 이번 선거를 통해 겪은 고립감이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남북한이 그 어느 때보다 날이 서서 대치하고 있던 와중에 열렸던 선거였던 만큼 새누리당뿐만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등의 거대 정당들이 ‘안보는 보수’라는 입장에선 매한가지였다. 야당들의 경우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내세우기도 했지만, 그 전제는 굳건한 한미동맹이나 자주국방처럼 강력한 힘이었다. 힘에 기초해서 강력한 대북제재를 밀어붙이겠다는 점에선 3당이 암묵적으로 합의한 모양새다. 2007년 말 노무현 정부가 발표했던 대체복무제와 같은 계획은 아예 설 자리를 잃었다.

         이처럼 선거가 온통 ‘힘! 힘! 힘!’으로 돌아가다 보니 성소수자나 병역거부자처럼 ‘약한 자’들은 모욕당하고 배제당하더라도 조용히 있기를 요구받았다. 총선이 끝나자마자 원외 진보정당 지지자들에게 현실감각이 없다고 비판하던 목소리가 바로 그러한 요구의 민낯이다.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든지, 어떤 말들이 오가든지 간에, 그들의 관점에선 힘없는 약한 것들이 대세를 조용히 따랐어야 했다. 마치 전투 중엔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이 허락되지 않듯이 말이다.


전 지구적으로 움직이는 권력, 일국에 갇힌 대의제 정치


          이번 선거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약함에 대한 혐오가 두드러졌다. 김종인 대표의 컷오프나 안철수의 독자행보가 강단 있는 결단으로 주목 받을수록 정치에서 힘이 차지하는 비중은 더더욱 커졌다. 역설적이게도 그 힘의 방향은 너무도 모호했다. 4년 전 선거 때는 그래도 경제민주화 같은 정책철학이 공감을 얻었지만 이번 선거에는 뚜렷한 공약도 없이 너나없이 자신이 배신을 당했다며 상대를 심판하겠다고 나섰을 뿐이다. 야권연대 같은 것 고려하지 않고 잘라낼 것은 확실히 잘라내면서 어떻게든 이긴다는 식의 생존주의가 이번 선거의 유일한 대의였다. 무엇을 잘라내겠다는 것인지 어떤 가치가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이 천하삼분지계 같은 잔꾀만 넘쳐났다. 

         이처럼 공허하게 세력 과시만 했던 까닭은 역설적으로 대의제가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조금 더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국회에서 원내 다수당을 차지한다고 해도 국민국가 단위 안에서 할 수 있을 일에는 한계가 커서 그저 자신들끼리 밥그릇 싸움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더불어민주당이 원내 다수당이 되었다고 하자.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경제민주화를 얼마나 밀어붙일 수 있었을까? 법인세를 올려서 복지 예산을 늘리겠다고 하면 이미 초국적기업이 된 삼성과 현대 같은 재벌들은 회사를 해외로 이전하겠다며 협박하기 시작할 것이다. 당장 한진중공업만 해도 부산의 영도조선소를 대신해서 노동력이 훨씬 싼 필리핀의 수빅조선소로 일감을 몰아주려고 하지 않았나. 자본의 활동반경은 전지구적인데 비해 대의제 민주주의를 통해 만들 수 있는 법안의 영향력은 국가 단위를 넘어서지 못하는 한계가 역력하다.

         자본뿐만 아니라 군사적인 힘은 또한 어떠한가? 한쪽에는 미국이 전세계적인 패권전략의 일환으로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를 이야기하고 있는 반면에 다른 한쪽에는 G2로 급부상한 중국의 동아시아 전략이 자리를 잡고 있는 형국이다. 얼마 전 논란이 되었던 싸드(THAAD) 배치와 관련해서 박근혜 정부가 미중 간의 외교전에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던 사건이나 노무현 정부가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던 사건처럼 일국 단위를 넘어선 패권적 권력의 결정 앞에 정부뿐만 아니라 국회 역시도 속수무책인 경우가 허다하다.

         경제적‧군사적 권력이 초국적인 범위로 움직이는 동안 대의제 정치는 아직도 일국 단위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한국 국회가 보이는 무기력함은 여기에서 나온다. 자기들끼리 밥그릇 싸움을 하느라 정치를 책임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책임질 수 있을 정치에 한계가 있으니 밥그릇 싸움에만 더욱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국민들 역시 이러한 현실을 직감하고 있다. 그러니 성소수자나 병역거부자와 같은 약한 자들을 위한 정치는 차례를 기다려도 결코 오지 않는다. 일국 단위의 대의제 정치 안에서 정치는 너무도 무력하기 때문에 정치인들은 세력 과시에만 끝없이 몰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비록 1%도 안 되는 득표를 얻는 데 그친 녹색당을 계속 지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녹색당이 직접민주주의를 주장하는 것을 두고 고대 아테네 같은 소국에나 어울리는 소리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일국 단위에 갇혀서 좁은 시야를 가지고 있는 탓에 하는 소리다. 녹색당이 염두에 두고 있는 정치의 범위는 국민국가를 넘어서 최소한 동아시아 시민사회를 아우른다. 예컨대 정의당의 경우도 동북아 외교국방경제 협의체를 상설화하겠다는 정책을 내놓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국가 간의 외교를 정례화하겠다는 구상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에 녹색당의 경우는 ‘동아시아 지속가능전환 포럼’을 대표공약으로 내놓았는데, 정부 간의 외교가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의 시민사회 간의 연대를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초국적 권력을 견제할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다른 정당들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다. 이러한 구상대로라면 녹색당이 정권을 잡기 전에도 동아시아 지역의 시민사회가 단단한 기반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을 방법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약한 자들이 지역적 연대를 통해서 전지구적인 권력을 견제할 수 있을 실질적인 힘을 얻을 길이 열리는 것이다.

         1%도 안 되는 득표를 얻은 정당의 구상이니만큼 현실이라는 장벽이 높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직은 선언적인 구상들을 구현해나가기 위해선 전문가들도 많이 필요하고 세력도 어느 정도는 더 모아야 할 것이다. 얼마나 걸릴지 모를 일들이다. 하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녹색당에 대한 지지를 거둘 수가 없다. 비록 힘이 약하지만 약한 자로서 살면서 전지구적인 권력을 견제할 수 있을 가장 현실적인 방법을 내놓은 정당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의 ‘현실 감각’ 안에선 그렇다.



* 필자소개

         징병제 연구자.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에서 부의장과 교육위원장을 맡았다. 2009년 9월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용산참사, 쌍용차파업 진압에서 국가폭력이 맹위를 떨쳤던 해였다. 출소 후 징병제 연구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한양대 트랜스내셔널 인문학과에서 ‘이승만 정권기 국민개병 담론’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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