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을 바라보는 세 가지 시퀀스



이상철
(한백교회 담임목사 / 본지 편집인)

 


    2016년 가을,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논단이 불러온 파국의 정치는 한국사회를 급속도로 촛불정국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게 하였다. 2016년 10월 29일(토) 1차 촛불집회부터 2017년 4월 29일(토) 23차 마지막 촛불집회까지 1600만이 넘는 시민들이 촛불광장에 참여하였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2016년 12월 9일 대통령 박근혜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었고,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 재판관 8명 전원일치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인용처리 하였다. 그로부터 2개월 후 2017년 5월9일에 치루어진 대통령선거에서 대한민국 국민은 문재인 민주당 후보를 새로운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도 현 정부를 촛불집회로 이룬 혁명의 정부로 자리매김하는 것을 보면 촛불은 새로운 정치적 해석과 상상을 가능하게 했던 원동력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촛불의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을까? 촛불정국이 일단락이 된 현 상황에서 촛불이 지닌 의미를 다시한번 복기하는 것이 본고의 목적이고, 그 과정에서 21세기 대한민국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지녀야 할 정치적 상상과 윤리적 결단의 지점을 역으로 추적해 보는 기회가 된다면 글의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한 셈이다.


1. 촛불, 비정상적인 민주주의에 대한 고발


   현대국가의 대의제 민주주의는 비정상이다. 국민투표를 통해 형성된 국가 권력 아래서 국민 개개인이 지니는 차이는 선거를 통해 결정된 권력 앞에서 무기력하고 무시된다. 서로 다른 개인과 우리는 국민이라는 집합명사 안에서 하나가 된다. 차이가 국가권력이라는 동일성 안으로 스며드는 밀도가 현대의 민주주의는 고.중세의 봉건제 보다 오히려 세고 견고하다. 이런 이유로 대의제 민주주의를‘동일성의 정치(Politcs of Identity)’라 부른다. 일찍이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그들이 공저한 『계몽의 변증법』에서“근대 부르주아 사회는 동일성에 의해 지배받는 사회”[각주:1]라 지적하면서, 이를 가능하게 했던 근대적 (도구적)이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있다:“이성은 스스로를 보편적 주체로 서게 함과 동시에...이성은 자기 보존을 위해 세계를 제어하는 계산적인 측면도 갖는다.”[각주:2] 근대성이 지닌 전체주의적인 면모를 꼬집는 날카로운 비판이라 할 수 있다.

   근대 이후 정치적 보편주의로 자리매김한 대의제 민주주의는 근대성의 대표적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동일성에 기초한다. 동일성의 정치는 모든 국민에게 한 표가 있다는 평등성, 다수의 결정을 존중하는 원칙성, 그리고 소수인 우리가 내일의 다수가 되어 권력을 잡을 수 있다는 낙관성을 축으로 작동하는 환상의 이데올로기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현실의 민주주의에서 평등성은 형식상의 평등성이고, 다수가 지니는 정당성은 한국 국정원 댓글 조작사건에서 보듯이 모략과 음모의 결과물이며, 내일 태양이 뜬다는 희망과 가능성은 오늘을 살아가는 인민들에게는 절대로 실현되지 않는 불가능한 가능성이다.

   서구 시민사회의 발전은 대의제 민주제의 등장과 그로 인해 등장한 문제점을 치유해나갔던 역사였다. 서구의 경우와 다르게 한국의 민주주의는 이러한 과정을 제대로 밟지 않았다. 촛불이 요구했던 것은 이런 비정상적인 민주주의의 정상화였다. 물론, 촛불의 요구는 국가의 입장에서 볼 때 실현 불가능한 요구였다. 국가는 새로운 주체의 등장과 그들의 출몰로부터 야기되는 새로운 질서의 출현을 원치 않는다. 어쩌면 국가는 기득권세력의 부와 권력의 유지를 보장하는 기능과 새로운 질서의 등장을 억제하는 기능을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닐까. 이러한 민주주의가 지녔던 문제점을 지적하고 직접적인 시민 민주주의를 외쳤던 것이 촛불이다. 촛불은 대의에 묻혀왔던 개개인의 목소리와 색깔을 드러내는 작업이었다. 국가에 의해 정리되고 관리되고 배제되어 왔던 개별자들을 셈하여 줄 것을 국가에 당당히 요청했던 사건이 촛불이었다는 말이다.

    문득 지난 촛불집회 기간 중 불렀던 노래 가사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물론 이 말은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권력을 강조하는 말이겠지만, 한편으로 문장의 주어가 대한민국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대한민국에게 잃어버린 민주와 공화를 찾아 돌려주자는 것이다. 국민이 주인이 되는 대한민국, 모든 사회 구성원들끼리 원활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져 서로 조화를 이루는 대한민국을 되찾는 것, 이것이 바로 촛불의 대의였다.


2.  촛불, 비정치적인 것의 정치화


    매주 토요일마다 23차례에 걸쳐 1600만명이 넘는 시민을 광장으로 모이게 했던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촛불은 과거 정치적이지 않았던 일상들이 정치의 모습으로 소환된 사건이었다. 일상의 정치화가 진행되었기에 촛불은 계속 광장에서 꺼지지 않고 불을 밝힐 수 있었다. 중고등학생 연합이 자기네들끼리 목소리를 내면서 어른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면서 그들의 언어로 시국에 대해 발언하고, 페미니즘 진영에서는 촛불현장에서 벌어지는 가부장제적인 현상을 비판한다. 광장으로 유모차를 대거 끌고 나오는가 하면, 시민들은 각자의 기억 속 인물들을 불러내서 광장에서 만났다.

    광장에는 수없이 많은 깃발들이 휘날렸는데 과거와 같이 웅장한 거대서사의 메시지가 깃발에 적혀있지는 않았다. 소소한 개인들의 치기와 풍자가 어린 작품들이 깃발의 형태로 전시된 케이스라고 해야 옳다. 장수하늘소 연구소, 91학번 별 보이는 모임, 끝나고 치맥한잔 등 소소한 일상들이 깃발로 등장하면서 촛불 광장은 예전의 피끓는 투쟁, 강철같은 투쟁을 연호하며 치열하게 싸웠던 전선이 아니라, 일종의 퍼포먼스가 이루어지는 무대이자 마당이되었다. 과거 1980년대식 운동권 투쟁방식에 익숙해 있던 필자로서는 분명 촛불은 낯선 풍경이었다. 10년(2004~2014) 동안 유학을 핑계로 한국을 비웠던 지라 그동안 한국사회의 변화상을 내가 따라잡지 못하고 있구나, 라는 자조 섞인 탄식도 내안에서는 분출하였다.

    시위의 풍경이 예전과 달랐다는 점은 지도부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서도 여실히 증명된다. 누가 23차례 집회를 주도하는지, 누가 1600만명을 조직했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혹 누군가 과거처럼 큰 목소리로 가열차게 선동적으로 구호를 외치거나 자극적인 발언을 남발하면 광장의 촛불은 그들을 외면하였다. 연차를 거듭하면서 촛불집회가 청와대 인근까지만 행진하고 돌아가는 무력한 시위로 전락하지 않을까, 라는 위기감이 잠시 돌았다. 그래서 비폭력적인 집회방식에 대한 논쟁이 잠시 있었다. 청와대까지 진출해야하고 청와대를 넘어야 되는 것 아닌가, 라는 문제제기 말이다. 그 말은 경찰과의 대치와 폭력까지 감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익숙한 변증법적 논리학의 문법, 양적 축적에 따른 질적 승화의 단계가 무르익었고 지금이 바로 행동을 해야하는 그때이다, 라는 주장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하지만 2016~17 촛불광장에서 그 목소리는 더 이상 울려 퍼지지 않았다. 촛불은 과거와 같은 방식의 정세분석과 인정투쟁을 허락하지 않았다.

    촛불광장은 이념적인 구호를 외치면서 거대한 대의를 실천하는 슈퍼에고(Super ego)의 집결지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각각의 개인들이 그동안 상실했던 본인들의 쾌락을 찾아 몰려드는 이드(Id)의 각축장이었다. 광장으로 몰려든 개인들은 자신들과 소통하지 않는 권위적인 정부에 대해, 자기들을 집합명사 취급하면서 관리하고 제어하려 했던 정부를 향해 난장을 피웠던 것이다. 그러면서 신화화 되어있고 이데올로기화 되어있었던 제도로서의 정치는 깨어졌고, 비정치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던 일상이 정치의 역역으로 출현하였다. 촛불은 이렇듯 비정치적인 것의 정치화라는 새로운 환타지를 우리에게 선사하였다.


3. 촛불, 법 밖의 정의를 향하다


   비정상적인 민주주의를 고발하고, 비정치적인 것의 정치화를 실현시켰던 촛불이 최종적으로 겨냥한 목표점은 정의로운 대한민국이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대한민국에서 정의란 법의 테두리 안에 존재하지 않았다. 정치의 영역에서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이, 경제적으로는 뿌리깊은 정경유착이, 사회적으로는 세월호에 대한 은폐와 조작이, 문화적으로는 블랙리스트 작성으로 대변되는 획일주의와 검열이 한국사회를 지배하였다. 그 안에 정의는 없었다. 정의는“법 밖의 정의”[각주:3]다. 촛불은 바로 그 점을 지적하면서 법 밖에 위치했던 정의를 다시 현실의 법 테두리 안으로 정상화시키려고 했던 몸부림이었다.

    “법 밖의 정의”를 말하고 있는 이 순간에 유대 사회의 법이었던 ‘안식일 법’을 어기면서까지 파국을 향해 달려갔던 예수가 생각나는 것은 당연하다. 예수는 타자를 향한 ‘무조건적인 환대’라는 ‘법 밖의 정의’를 끝까지 주장하며 행동했던 인물이었다. 배고픈 사람들이 밀 이삭을 좀 뜯어먹었다고 안식법 위반을 운운하고, 병자들을 안식일에 고쳤다는 이유로 도덕적 규범을 어겼다고 몰아붙이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예수는 분노하였다. 그들을 향해 예수는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느냐?(마15:3)”라는 독설을 퍼붓는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나 ‘최후의 심판 비유’에서도 예수는 같은 이야기를 한다. 예수는 ‘누가 나의 이웃입니까’라는 율법교사의 질문에 대해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이야기 한다. 사마리아인과 유대인은 서로 만날 수 없는 타자이다. 역사적으로 양자 간에는 회복할 수 없는 깊은 골이 패여 있는 관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마리아인은 길에서 강도를 만나 가진 모든 것을 빼앗기고 얻어맞아 초죽음이 된 유대사람을 섬김을 받아 마땅한 이웃으로 대접한다. 타자의 신음에 무조건적인 환대로 반응하면서‘법 밖의 정의’를 실현한 것이다.

    예수의 윤리에서 법 밖에 위치하는 타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가장 도르라지는 대목은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최후의 심판’비유이다. 최후 심판 날 인자는 양을 자기 오른쪽에 염소를 자기 왼편에 세운다. 양과 염소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상징한다. 이 심판은 지켜보는 청중이나 오른쪽에 있는 사람, 왼쪽에 있는 사람 모두에게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었다. 그 이유는 다음의 판정 기준 떄문이었다:“너희는 내가 주렸을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 주었다” 할 것이다 (마 25:35-36).

    마지막 날 판정기준이 유대교의 법을 잘 지킨 순서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법 밖에 위치한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이 된다. 예수가 추구했던‘법 밖의 정의’는 유대율법에 대한 해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하여 율법 안에 숨어있는 진정한 의미, 즉 널리 인간을 복되게 하고 자유하게 하고, 인간 사회에 공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라, 는 율법 본연의 정신을 회복시켰다. 이렇듯 예수는 성서 안에 숨겨져 있는 명백한 진리를 다시 조명하면서 정도(正道)를 따라 정직하게 걸어간 인물이었다.

    촛불은 ‘법 밖의 정의’를 갈망했던 예수의 정신과 공명한다. 촛불은 자본의 법칙 안으로 함몰되어버린 법질서를 고발하고, 탐욕과 아집에 사로잡힌 정부 여당의 독선에 당당히 맞섰다. 또한 촛불은 진도 앞바다에서 싸늘하게 죽어간 세월호의 어린 생명들에 대한 애도를 불허하는 부도덕한 정권을 소환하였고, 자신들의 구미에 맞지 않는 세력과 집단을 검열하고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배제하려 했던 후안무치한 정부를 법정에 세웠다. 그렇게 23주간 광장을 밝힌 촛불로 인해 마른 뼈와 같이 앙상했던 대한민국에 혈기와 온기가 돌기 시작했고, 붕괴되었던 민주주의는 회복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촛불의 윤리는 상징적 체계, 즉 법을 위해 봉사하는 수동적 윤리일 수 없다. 촛불은 상징적 법칙이 지배하는 현실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법 너머의 행위까지를 겨냥한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21세기 법이라 할 수 있는 자본의 법칙에서 배제된 자들을 향하는 윤리이고, 우리시대 악법이라 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혐오주의로 부터 차별받고 억압받는 타자들, 즉 난민, 여성, 동성애자, 비정규직 노동자, 외국인 노동자들을 향해 달려가는 윤리이다. 이렇듯 2016-17년 대한민국을 밝힌 촛불은‘법 밖의 정의’를 여전히 믿고 꿈꾸는 사람들에게 그 불가능했던 것들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시켜준 사건이었고, 현실을 강제하는 체제와 시스템과 도그마를 향해 절단선을 그을 수 있는 용기를 선사하였다. 그리하여 촛불은 대한민국의 실추된 존엄과 명예를 회복시켰고, 이러한 촛불의 기억은 대한민국이 정의와 민주주의를 새롭게 상상해야하는 그때마다 귀환하여 우리의 귓전에서 그날의 추억을 들려주며 우리를 깨어있게 할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M. Horkheimer and T.Adorno, Dislectics of Enlightment (New York: Herder and Herder,1972), 7 [본문으로]
  2. Ibid., 83-84. [본문으로]
  3. Theodore Jennings, Outlaw Justice: The Messianic Politcis of Paul (California: Stanford University Press, 2013); 올해 오랫동안 제직했던 시카고 신학교(Chicago Theological Seminary)에서 은퇴한 테드 제닝스 교수는 예수의 메시아 운동을 재해석한 바울신학의 핵심을“법 밖의 정의(Outlaw Justice)”라 정의하면서 요즘 급격하게 일고 있는 바울에 대한 현대철학의 해석과 대화를 시도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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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과 주체 7]


유령과 함께 살아가기



 

허석헌

(미국 샌프란시스코 GTU 박사과정, 조직신학)



후기구조주의와 해체


      ‘인간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자율적 주체’라는 믿음을 깨뜨리고, 인간의 주체성은 구조에 의해 구성된 결과일 뿐이라는 사실을 철저히 파헤친 것은 구조주의의 성과이다. 구조주의는 소쉬르의 언어학에서 시작되는데, 그는 ‘언어는 사물의 이름이 아니며, 기의란 기표의 차이에 의해서만 드러나는 것’이라 말한다.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은 언어가 지시하는 대상이 아니라, 언어가 실체와 조우할 수 없는 한계내에서 발생하는 언어들의 차이라는 것이다. 소쉬르는 언어의 구조[각주:1]를 분석함으로서 실체를 로고스에서 발견해왔던 기존의 형이상학적 전통을 거부하는 대신, 언어의 차이와 관계에 주목한 것이다. 이를 통해, 명증한 사실로 여겨진 자아 혹은 의식을 실재의 출발로 보았던 자아중심주의에 균열을 가하였다.이같은 구조주의적 관심은 20세기 후반 프랑스 철학사에서 실존주의가 봉착했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대안으로 부상하였다.

    그러면 후기구조주의는 구조주의와 어떤 차별성을 갖는가? 후기구조주의자라고 불리는 푸코, 라캉, 들뢰즈, 알튀세르, 데리다와 같은 이들은 구조주의의 업적을 고스란히 계승하면서도, 한편으로 구조주의가 간과하였던 문제를 니체, 프로이트, 맑스주의에 대한 그들 나름대로의 해석에 기반하여 전개한다. 말하자면, 라캉은 프로이트를, 알튀세르는 맑스주의를, 푸코와 들뢰즈는 니체에 대한 다시읽기를 주장하는데, 물론 이들의 시도 조차도 소쉬르의 언어학으로 시작된 구조주의의 기여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비록 그들은 실체적 형이상학의 철학사를 뒤집기 위해 다른 경로를 채택했지만, 지향했던 지점은 다르지 않다. 데리다의 표현대로 하자면, 기원과 중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다. 중심이나 기원 따위는 없다는 것이다. 당위적인 것으로 여겨진 시뮬라르크에 대한 위계질서와 그에 대한 차별과 억압도 일시에 무효화 된다. 그러나 그들은 한발 더나아가 구조주의의 노력으로 그나마 밝혀진 차이의 구조마저 의미관계의 본질은 아니라고 부정한다.


    영화 매트릭스는 후기구조주의를 이해하는데 좋은 예가 된다. 구조주의는 영화에서처럼 매트릭스라는 거대한 컴퓨터 가상 인식체계가 지배하는 구조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인간은 자율적으로 살아가는 존재처럼 보이지만 매트릭스라는 완벽한 통제시스템에 의해 컨트롤 당하고 있음을 구조주의는 드러냈다. 그러나, 후기구조주의는 매트릭스의 실체를 밝혀낸 구조주의의 성과를 인정하지만, 매트릭스가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로 한 발 더 나간다. 말하자면, 매트릭스 조차도 가상적인 조작물일 뿐이지, 인간은 매트릭스에 의해 구조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매트릭스에 장악되지 않는 '네오(키아누 리브스)' 같은 자들이 있다는 것이며, 그들이 살아가는 시온이라는 구역이야말로 매트릭스의 구조가 지배하는 세상을 이해하는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후기구조주의자들은 인간을 일정한 규칙성과 폐쇄적 구조에 의해 규정되는 존재로 인정하는 순간, 철학은 형이상학적 로고스 중심의 철학사가 걸어온 길로 되돌아갈 위험에 빠질 수 있게 된다는 점에 유의하였다. 따라서, 모든 중심과 기원에 대한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매트릭스의 존재를 직시하는 것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네오와 같이 매트릭스의 감시를 빠져나오는 탈주하고 해체하는 것이야말로 현상을 바로 인식하는 길이라고 보는 것이다.

    후기구조주의가 넘어서려 했던 지점이 여기에 있다. 푸코는 성(sexuality)이 구조적으로 억압되어 왔다는 가설을 깨고 성에 대한 지식과 담론은 오히려 확산되어왔음을, 들뢰즈는 영토화/코드화된 억압적 체계를 인정하지만 그 가운데에서 영토를 가로지르는 노마딕한 탈주선을 제시하였고, 라캉은 구조화된 무의식의 세계를 정신분석학의 주제로 등장시켰지만 동시에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주체로 한걸음 더 나아갔으며, 알튀세르는 자본의 착쥐구조를 넘어 이데올로기와 국가장치라는 중층적 관계를 인식론적 틀로 제시하였다. 이들과 마찬가지로, 데리다가 말하는 해체(deconstruction)는 실체론적 철학에 저항하기 위한 구조주의의 기초위에 세워졌지만 구조주의적 인식체계 마저 넘어서려는 탈구조적인 사유행위를 함축해 놓은 말로 이해할 수 있다. 매트릭스라는 형이상학의 시스템을 분석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완벽할 것 처럼 보이는 구조 안에서도 네오처럼 ‘뚫고 나오는 송곳 같은 놈이 반드시 하나쯤은 있다’는 사실에 의해 매트릭스조차 마침내 부정되고 해체될 수 있음을, 그리고 그렇게 치밀한 관계망을 비집고 모습을 드러내는 송곳 같은 현상이야말로 매트릭스로 구조화된 사회를 인식하는 본질로 대우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데리다가 주목하는 것은 메타적 구조가 아니라, 구조를 전복시키는 미시적인 차이와 차이들 사이의 관계들이다.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총체적으로 파악하려던 태도에서 벗어나서, 안정과 질서라는 이름의 경계를 넘어 일탈하는 작은 변화들이 인간의 삶에 어떠한 질적 변화를 가져다 주는지를 묻는다. 이렇게 데리다에게서 후기구조주의는 전통적 사유방식을 해체(deconstruction)하는 것 뿐만 아니라, 해체된 빈 공간 위에 아무것도 다시 구축하지 않으려는 탈-구조화(de-construction)라는 이중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그렇다면, 데리다는 무엇을 해체하려고 했으며, 해체 뒤에 남겨진 것은 무엇인가? 해체를 허무주의의 유포라고 비판하는 우려에 대한 반론은 무엇인가? 해체론 안에서 주체의 윤리적 실천의 계기는 여전히 살아남아 있는가? 이러한 문제들이 이글이 관심하는 주제인데, 그의 핵심적인 개념들 몇가지로 제한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텍스트


    데리다는 로고스중심주의 철학을 현존(presence)의 형이상학, 음성중심주의, 남근 중심주의로 파악하며, 이를 해체의 대상으로 파악한다. 전통적인 이성중심의 형이상학을 타겟으로 삼는 데리다는 전통적인 형이상학이 어떠한 기원이나 중심위에 세워진 사유체계도 아님을 증명하는데 초점을 둔다. 형이상학의 근거지가 부정될 때에 순수성의 신화는 궤멸하게 되고, 비로소 본질과 현상, 선과 악, 자본과 노동, 남성과 여성, 음성과 문자 등과 같이 이항대립의 관계로 놓고 전자가 후자를 억압하고 지배하는 것을 필연적인 결과로 정당화시켜왔던 근거들이 폭력적인 위계질서에 불가할 뿐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데리다는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Of Grammatology)’에서 ‘텍스트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선언한다. 이러한 데리다의 주장은 로고스 중심주의에 대한 전면전을 선포하였던 니체와 존재의 복구를 통해 근대로부터 벗어나고자 한 하이데거, 그리고 소쉬르의 반실체적인 구조주의적 언어학의 성과를 계승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데리다가 보기에 소쉬르의 구조주의는 차이의 논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모든 관계에 선행하는 원초적인 기원을 고수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구조를 유한하고 폐쇄된 총체성으로 이해했다고 보았다. 말하자면, 소쉬르에게서 문자에 대한 음성의 우월적 지위는 완전히 제거되지 못하였다는 것이 데리다의 진단이다. 그라마톨로지에서 데리다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나타난 음성우월주의는 소쉬르에게서도 유사하게 나타나는데, “문자는 언어를 표상하는 유일한 목적만을 위해 존재한다”는 그의 주장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텍스트에 대한 억압을 정당화시킴으로서 로고스중심주의의 근거를 제공해 주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데리다는 소쉬르적인 구조주의를 넘어서기 위해 음성 대신 텍스트의 우월성을 주장하려는 것일까? 열등한 것으로 여겨진 항목들을 복권시키는 것으로 충분한가? 그것으로 로고스중심주의로 파생된 폭력적인 위계질서는 해체될 수 있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데리다의 해체전략은 또다른 형태의 이항대립구조의 탄생에 의해 좌초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데리다가 의도한 것은 매트릭스를 대체할 다른 구조물이 아니라, 폐쇄적이고 총체적인 구조로 실체를 파악해야한다는 어떠한 형태의 시도도 출현하지 않을 만큼의 해체로 까지 밀고나가는 것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해체는 단순히 형이상학의 근거를 전복시키는 작업을 의미하지 않는다. 데리다에게, 해체란 부수고 무너뜨리는 과격한 파괴운동(destruction)이 아니라, 이를 넘어서 어떠한 위계지배질서의 출현도 용인하지 않으려는 탈-구조화(de-construction)에 대한 지향성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차연(difference)’이라는 개념은 탈-구조화를 위한 그의 의도안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차연


   데리다는 탈-구조화의 전략을 달성하기 위해서, 소쉬르가 주장했던 ‘기표 사이의 차이에 의해 기의가 구성된다’는 주장을 기원의 개념으로 확장시킴으로서 순수한 기원에 대한 신화를 완전히 제거하기에 나선다. 다시말해서, 기의는 기표의 차이에 의해 발생하는 것처럼, 기원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기표들의 차이가 반드시 기원보다 선행해야 하는 것이 논리적이다. 이렇게 기표와 기의의 관계구조 안에서 보면, 기원은 더 이상 실체적인 것, 본질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 없는데, 기원이라는 것 역시 기원에 선행하고 우선하는 다른 하위 기표들의 차이와 관계에서 파생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원보다 더 앞선 기원도 텍스트에 의해 차이화된 것에 불과하다. 데리다의 표현 그대로, ‘텍스트 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텍스트 중심주의는 기존의 사유체계를 철저하게 전복시킨다. 기표(문자)는 로고스철학에서 원본과는 무관한 열등한 것으로 배제되어 왔지만, 기표와 기의의 관계구조를 기원으로까지 확대적용시킬 때에 문자(기표)는 말(기의, 로고스)에 우선하는 반전이 일어난다. 이로써 기원의 기원으로서 적용된 기표들의 차이와 관계는 기원이 가지는 말의 모순성을 폭로하며 마침내 기원의 기원으로서의 자격을 박탈시킨다.

    기표들의 차이를 기원으로 확장시킴으로서 데리다는 순수한 기원이란 말 자체가 가지는 모순을 드러냄과 동시에 음성중심의 기원의 신화를 해체시킨다. 그러나, 이것이 곧 말에 대한 텍스트의 우월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오해한다면 탈-구조화(de-construction)는 재-구조화(re-construction)로 퇴색하고 말 것이다. 텍스트는 기원적이지만 결코 기원의 지위를 획득할 수 없다. 텍스트는 대상을 지시하는 ‘대리보충(supplement)’으로서의 기능으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문자는 그 자체로 대상을 의미하지 못하고 단지 대리적인 보충물로서 문자들간의 차이를 통해 대상의 존재를 흔적으로 남길 뿐이다. 그러므로 흔적은 이미 시간적으로 항상 뒤에서서 대상을 쫓아가는 지연된 관계에 놓여 있다. 흔적으로서 텍스트는 대상을 은유적으로 지시할 수는 있지만 대상과 동일성을 가질수는 없다. 대상은 텍스트에 의한 ‘차이’와 ‘지연’이라는 시공간적 방식을 통해서만 식별될 수 있는 어떤 것이다. 공간성의 차이와 함께, 시간성의 지연이라는 이중적인 운동을 통해서 기원은 파악될 수 없는 흔적으로만 남겨지게 된다. 이렇게 공간적 차이와 시간적인 지연을 통칭하는 ‘차연’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데리다는 우리가 대상을 인식한다고 여기게 만드는 의미의 효과가 사실은 무의미한 것임을 주장한다. 이렇게, ‘차연’은 소쉬르의 기표가 드러내는 공간성의 차이만으로는 형이상학의 인식구조를 벗어날 수 없는 구조주의 철학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시도이이면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믿게 하는 근거가 되어온 전통적인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뒤섞어 버림으로서 끊임없이 기원을 재생산해 내려는 모든 철학적 시도를 봉쇄해 버리려는 해체와 탈-구조화의 이중적인 전략을 수행하는 데리다의 핵심적인 개념이 된다.


유령


    데리다의 해체주의는 철학하기를 곤혹스럽게 만든다. 데리다가 말하는 차연에 따른다면, 철학이 무언가에 대해 설명하고 논증하기 위해 텍스트를 동원할수록 지시하려는 대상은 자꾸만 멀어져 갈 뿐이기 때문이다. 흔적으로서 글쓰기가 증명하는 것은 말해질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사실 뿐이다. 프랑스의 68혁명의 분위기에서 지식인들에게 보다 날카롭고 급진적인 정치철학의 태도가 요구되었던 것을 감안하자면, 데리다의 해체는 한가한 지식인의 말장난처럼 보이기도 하고, 비정치적인 것을 넘어서 투항주의적인 태도로 비춰진다. 데리다의 비판론자들이 그를 철학의 종말을 고하는 허무주의로, 심지어는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동력마저 무력화시키는 위선자로 낙인하는 이유는 이점에 있다. 그러나, 데리다의 초기에 거침없이 써내려간 해체적 입장이 의미하는 정치 윤리적 실천의 면모는 그의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전개된 유령론에서 드러난다.

   데리다에게 차연은 전통적 시공간에 대한 통념을 뒤집는개념인데, 전통적인 입장에서 현존하는 것은 과거로부터 단절되었으며 미래와는 연결되지 않은 ‘지금’이라는 정적이고 직선적인 시간안에서만 파악되는 것이지만, 차연의 운동은 현존의 대상을 끊임없이 과거로 밀어내고 다시 미래를 향해 달아나며 남기는 흔적을 추적해야 하는 통시적인 시간속에서 파악된다. 차연의 통시적 효과는 과거, 현재와 미래의 시간성들이 일직선상위에 차례로 나열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교집합을 이루는 새로운 공간을 창출한다. 이러한 시간과 공간안에서 현존은 과거에 의해 부정되며, 미래에 의해서만 유추될 수 있는 불확실성으로 남는다. 따라서 현존하는 것은 존재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또한 존재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는 모호한 것이다. 그는 이를 유령(specter)으로 표현한다. 유령은 현존하는 것도 부재하는 것도 아니기에, 존재의 부재와 더불어 부재의 존재를 지칭하기에 매우 적절한 은유로 채택된다. 유령과 결부된 과거와 미래는 지금, 여기의 현존을 일자의 동일성으로 파악하는 것을 거부한다. 유령은 그것과는 무관한 개방적이고 불투명한 절대적인 타자성이다. 데리다는, 철학이 당위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왔던 자아와 현존의 형이상학적인 존재론을 유령으로 존재하는 비현존의 존재론으로 뒤집어 놓는다. 인식의 근거는 자아의 의식, 혹은 기원이 아니라 유령과 같이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흔적으로 등장하는 타자일 수밖에 없다. 유령으로서 존재하는 타자는 자아의 이성과 판단에 의해 포섭되지 않으며 단지 무조건적으로 환대(hospitality)해야할 관계일 뿐이다.

    데리다에게서 해체의 정치적 급진성은 바로 이 유령의 존재에서 발견된다. 유령은 자아중심적인 시공간 구조에서 만들어지는 예측된 미래를 추구하는 일체의 목적론적 실천행위를 무의미하고 불가능한 것으로 만든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착취의 현실에 저항하는 정치적 행위 역시 공산주의의 필연성을 낙관하는 것으로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맑스의 공산주의라는 단선적이고 목적론적 구조위에서 공산주의는 ‘유럽 전역을 떠돌며 자본가를 위협하는 유령’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데리다는, 맑스를 넘어 계급, 국가, 제도의 경계를 허물고 도래하는 종말론적이고 메시아적인 새로운 형태의 타자들과의 연대를 요구한다. 경계를 넘어선 개방적인 연대 안에서 공산주의라는 유령은 오늘의 불의한 착취의 구조안에서 다시 소환될 수 있게 된다고 믿는다. 실체론적 존재론은 자본주의와의 공모관계안에서 세계를 이분법적이고 위계적인 질서로 계층화하고 차별과 억압을 정당화시켜 왔다면, 맑스의 공산주의는 같은 방식으로 가시적인 현존을 인간사회의 진보 가치로 삼아왔다. 그러나 데리다는 그 양쪽 모두가 믿어온 현존의 공간과 시간적인 경계를 넘어서 출몰하는 유령의 존재를 인식하고 유령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정치윤리를 제안한다.


유령과 함께 살아가기


    데리다는 전통적인 형이상학이 구축해 놓은 확고부동한 존재를 존재하지만 동시에 부재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유령으로 대체시켜 놓았다. 그러나 여전히 모호하다. 존재가 아닌 유령을 실재하는 것으로 수용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데리다는 주체의 구성 가능성 자체를 완전히 봉쇄하려는 것으로 보아야 할까? 데리다의 의도에 접근하기 위해서, 우리는 고정관념 하나를 지워버릴 필요가 있다. 데리다의 형이상학적 주체 개념에 대한 비판은 주체를 부정하느냐 긍정하느냐는 식의 양자택일의 문제로 추궁하는 것은 유령론이 지시하는 정치윤리적인 의미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데리다는 ‘주체는 존재하는가, 부재하는가’라는 질문에 익숙해 왔던 전통적인 접근법의 한계를 비판하기 위해 고흐의 그림 “끈이 달린 낡은 구두”를 소재로 사용한다. 데리다는 하이데거와 샤피로의 입장에서 이 그림에 대한 감상법을 재구성하는데, 샤피로는 구두 그림의 제작자인 화가가 누구인지를, 하이데거는 이 구두의 소유자에게 관심을 둔다고 본다. 두 사람의 감상법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 구두그림의 귀속관계가 그림을 그린 화가에 있든지, 아니면 실제 구두를 신었던 한 노동자로 보든지 간에 그들은 구두의 주체를 발견해 내려는 노력에 몰두한다는 점에서 만큼은 동일한 감상법을 취한다고 보았다. 반면, 이 그림을 보는 데리다는, 이 두 감상법이 모두 적절치 않다고 본다. 왜냐면, 이 구두의 그림은 신고 있는 상태가 아닐 뿐 아니라, 그림은 이미 화가의 화실에서 떠나 전람관에 전시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구두의 주인은 화가도, 실제 신었을 법한 누군가도 될 수 없는 것이다. 이 그림에서 구두의 주인는 부재할 뿐이다. 그러나 구두의 주인이 부재하다는 사실이, 구두는 누구에게도 소유될 수 없는 폐쇄적인 상태에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데리다가 주체의 부재를 통해 주장하려는 바는 대상을 특정 주체에 귀속시키는 것으로는 사물의 실재에 다가설 수 없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아야 하는 유령과 같이 존재와 부재의 경계를 자유롭게 가로지르는 방식으로만 실재는 드러날 수 있음을 말하려는 것이다. 데리다가 유령론을 통해서 말하려는 바는 자기 동일적인 주체를 해체하려는 것이며, 자기 동일성이 현존의 근거로 왜곡되어온 형이상학전통을 차이와 반복, 흔적으로 치환하려는 것에 있다. 존재에 대한 인식을 기반으로 하는 철학을 통해 인간의 책임과 윤리를 말해왔던 전통을 해체하고, 역으로 절대적인 타자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윤리적 태도를 통해서만 존재에 대해 말하려는 철학의 시도는 가능해 진다는 것을 주장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데리다가 유령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환대의 윤리는 소수자, 약자에 대한 인도주의적인 행동규범을 도덕적 감성에 기대어 호소하려는 것과 거리가 멀다. 유령론은 서양의 형이상학적 존재론에 대한 해체작업이며 차이와 흔적을 통해서 출현하게 될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에 대한 기다림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경계없이 예측불가능하게 도래하게 되는 선물과 같은 약속에 대한 기다림이며, 기존의 사고방식과 틀을 넘어서는 낯선 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기도 하다. 유령이 출몰하고 있다. 데리다는 묻는다. 유령과 함께 어울려 살아갈 것인가, 유령을 축출할 것인가? 윤리적 주체로 설 것인지 말것인지는 그 물음에 달려 있다.



ⓒ 웹진 <제3시대>

  1. 소쉬르는 언어가 ‘랑그’와 ‘빠롤’이라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고 설명한다. 랑그가 언어의 원리/체계라면 빠롤은 언어를 말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랑그는 빠롤을 통해 나타난다. 여기서, 그의 중요한 또다른 개념, 시니피앙(기표/기호)과 시니피에(기의/대상)가 있는데, 이 구분을 통해 소쉬르가 주장하려 한 것은, 시니피에는 시니피앙의 차이에 의해 드러난다는 것이다. 즉, 언어는 사물/대상을 직접적으로 지시할 수 없다는 것. 소쉬르는 서구의 로고스 중심의 형이상학적 언어학에 대해 반기를 들면서, 실체란 언어의 구조와 기표의 관계를 통해 형성되는 구조적 결과라는 사실을 증명해 낸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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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말] 이 원고는 이상철 선생님께서 11월 3일 보내주신 원고이고, 편집자의 사정으로 지난 달 웹진을 발송하지 못했습니다. 글에서 언급되는 '오늘'이 이미 많이 지났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애도(哀悼)의 문법


이상철
(한신대 외래교수)
 



“세월호 얘기, 혹시 지겨우십니까? 지겹다는 분들도 계시더군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직도 왜? 라는 질문은 넘친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 배가 왜 침몰했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오늘(9월 24일)이 벌써 162일 째인데도 말이지요. 지겨워도 직시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믿습니다. 다시, 세월호 사고 당일로 돌아가 봅니다…” – 손석희, JTBC 뉴스 9월 24일 오프닝 멘트 中



프롤로그


오늘은 종교개혁 497주기 되는 날이고, 위의 손석희 멘트가 있었던 날부터는 한 달이상이 지난 날이다. 내일은 세월호 침몰이 있었던 날로부터 200일째 되는 날이고..... 종교개혁일을 맞아 오늘 오후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의 아픔에 참여하는 이 땅의 신학자들’이란 슬로건으로 신학자 177명이 호소문을 발표하면서 기자회견도 열었고, 저녁에는 신학자들이 주관하는 기도회도 열렸다. 광화문뿐 아니라, 청운동에서, 안산에서, 그리고 팽목항에서 그 날을 잊지못하는 사람들이 오늘도 모이고, 내일도 모이겠지만, 이 싸움의 끝이 어떻게 그려질지, 그리고 그 결과가 가져올 파국이 어떠할런지에 대해서는 지금으로서는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 

어느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울부짖어야 이 원한이 들려질까? 얼마나 긴 세월이 흘러야 이 노래가 들려지고, 얼마나 먼 길을 헤매야 그곳에 우리는 닿을 수 있을까?” 이런 물음들에 대해 시인은 ‘바람만이 아는 대답’이라고 노래했지만, 진정 그것이 바람만이 아는 대답이라면, 그 현실은 얼마나 잔혹하고 희망이 없는 현실일까? 그래서 점점 오기가 생긴다. 글을 쓰는 사람이 오기로 글을 쓰는 것은 분명 불행한 일이겠지만, 그것이 오기든, 분노든, 죄책감이든, 감수성이든, 신학적 통찰이든 그것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언제까지 바람이 불어와 답을 일러줄 그날만을 기다릴 수 있는가? 그래서, 일단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마주하는 사건들과 잡다한 단편들을 마구 기록하고, 나중에 그것들을 복기하면서 지금의 사건을 다시 기억하고 의미화하는 작업을 계속 유전시키면서 post 세월호를 준비하다보면 어느새 바람이 불어와 우리 이마에 송송히 맺힌 땀방울을 식혀주지 않을까? 그러하리라. 


데리다 사상의 변곡점


나는 지난 4월 16일 이후 웹진<제3시대>를 통해 세월호 관련 기사를 게재해왔다.[각주:1] 이번 웹진도 그 연장선에 서있고, 앞으로 ‘애도의 문법’이라는 제목으로 몇 차례에 걸쳐 데리다와 레비나스가 말하는 애도의 방식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그것이 세월호에 대한 애도의 문법을 놓고 고민하는 우리들에게 어떤 영감으로 작용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기로 하겠다. 

흔히 우리가 한 인물의 사상에 대해 전기사상과 후기사상으로 나누어 평가할 때가 있다. 니체 같은 경우는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전과 이후 작품의 성격이 다르다. 전기 작품인 <비극의 탄생>, <The Gay Science>에서는 근대성 일반에 대한 비판이 있고, <짜라투스투라...> 이후 등장하는 <도덕의 계보학>, <선과 악을 넘어서>, <The Anti-Christ>, <Ecce Homo> 를 통해 니체는 점점 기독교에 대한 비판의 강도를 더해간다. 프로이트 같은 경우도 <쾌락의 원칙을 넘어서>를 기준으로 전기 사상은 의식-무의식의 지형도를 그렸다면, 그 이후는 Id-Ego-Superego간의 무의식의 역동, dynamic으로 옮겨가는 사상적인 전이를 보인다. 

데리다도 마찬가지다. 데리다 연구자들은 90년대 현실 사회주의가 패망한 이후의 데리다와 그 이전 데리다를 구분한다. 데리다는 사회주의가 몰락한 이후에 절필을 선언하였다. 그리고 나서 1992년에 후쿠야마가 자본주의의 전 지구적 승리를 선언한 <역사의 종말>이라는 책을 썼고, 그로부터 1년 후에 데리다의 가장 문제적인 저작이라 할 수 있는 <맑스의 유령들>이 출판된다.[각주:2] 이 <맑스의 유령들>을 기점으로 해서 전기 데리다와 후기 데리다를 나눈다. 전기 데리다는 주로 서구 형이상학에 대한 해체에 주력하면서 그에 대한 전략으로 언어, 기호, 텍스트에 대한 천착을 그 특징으로 한다면, 후기 데리다는 정치, 윤리, 법, 정의 등 정치철학적인 부분으로까지 자신의 관심사를 확대하여 해체론을 적용하기에 이른다. <법의 힘> <우정의 정치학> <불량배들>이 이런 연속성에서 출간된 작품들이다.  

  

‘O my friends, there is no friend.’


위에 적혀있는 ‘O my friends, there is no friend. 오! 나의 친구들이여, 친구는 없다’는 데리다가 <우정의 정치학>에서 계속 반복적으로 사용했던 문구다. 이 문장에서 궁극적으로 데리다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친구란 없다”였다. 우정이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데리다의 본심은 ‘우정은 없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정이란 의미론적 범주가 아닌 빈공간이라는 사실을, 친구란 내안에 들어와 있는 빈공간이다’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던게다. 

데리다는 우정을 의미론적인 자질로, 친구를 우정을 입증하는 현실의 소여로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흔히 친구를 설명할 때, 혹은 그 친구와의 우정을 설명할 때, 나와 비슷한 입장과 처지와 상황과 배경을 공유하는 자를 친구라고, 그 친구와 맺는 관계를 우정이라 말한다. 여기에는 유사의 법칙과 등가의 법칙이 존재한다. 하지만, 데리다는 그런 친구는 없다고 말한다. 친구란 유사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틈이기 때문이다.  

결국, 데리다에 있어 의미란 완전히 설명할 수 있는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정과 사랑, 국가와 정의, 신과 믿음은 의미로 환원되지 않는 틈이다. 이것이 대체 무슨 뜻이고, 그것이 세월호를 둘러싼 애도와는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데리다를 평생 따라다녔던 기본 개념어라 할 수 있는 ‘차연’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리라 본다. 


‘차연’이란 무엇인가? 


데리다는 시종일관 ‘차연’라는 개념어를 가지고 자신의 이론적, 실천적 작업을 진행하였다. 데리다가 사용하는 differance는 우리나라에서 ‘차연’으로 번역되었는데, 어원적으로는 Differ(다르다) 와 defer(연기하다), 이 둘이 합쳐진 조합어다.[각주:3] 영어로 번역된 데리다의 저작을 보면 불어인 differance를 그냥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사실, 영어로 differance를 표현하는 단어는 없다. 새롭게 만들어내야 하는데, Differ와 defer의 의미가 다 들어간 단어를 만들어내기가 만만치 않은 까닭에 굳이 그것을 만드는 것보다는 불어인 differance를 그대로 쓰는 것일 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연’이라는 말 안에 들어있는 느낌을 영어로 표현하면 어떻게 될까? 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영어 단어 중에 낱말의 뒤에 붙어 명사화시키는 접미어 중 나중에 보면 동사의 느낌이 나는 접미어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단어 뒤에 -(a)tion을 붙이는 케이스이다. 예를 들어 像을 뜻하는 image에 –ation을 붙여 ‘이미지화하기’(imagination)라는 단어가 파생되고, ‘개념’을 뜻하는 concept에 –tion을 붙이면 ‘개념화하기’(conception)라는 뜻이 생긴다. 둘 다 형태는 명사형이나 동사 feel이 나는 단어들이다.  

그렇다면, ‘차이화 하기’라는 말도 있지 않을까? 영어로 차이를 뜻하는 difference에 –ation를 부치면 differentiation이라는 말이 파생되는데, 수학용어로는 미분이다. 미분이 무엇인가? 계속 잘게 쪼개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계속 무엇인가를 쪼개어나가지만 그 쪼개짐이 끝나지 않음을 전제한다. 이렇듯 Differntiation은 사전적으로는 ‘미분화하기’ 이지만, 의미론적으로는 ‘차이화 하기’로 치환할 수 있다고 본다. 미분했다는 말은 쪼개어져서 이전 형태와 다른 차이가 발생했다는 뜻이니 말이다. ‘차이화 하기’라는 말은 차이를 계속 생성한다는 의미에서 ‘차이’와 ‘연기’의 의미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말이고, 차이를 계속 생성한다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틈과 여백이 계속 생겨난다는 뜻이며, 해석학적으로 의미를 부여하자면 해석에 대한 독점없이 해석의 준거점들이 계속 바뀌는 것이다. 그 과정 일반을 데리다는 ‘deconstruction’이라 불렀다. 이를 우리말로는 ‘해체’라는 다소 흉칙한 말로 번역했는데, 이보다는 더 부드럽고 본래 의미를 잘 살리는 번역어가 등장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각주:4]

지금까지 우리는 ‘차연’에 대한 사전적 정의로부터 시작하여 그것이 지니는 해석학적 의미까지를 간단히 살펴보았고, 그것이 데리다의 해체주의가 시작되는 진앙이라는 사실 또한 확인하였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러한 데리다의 논의가 현실생활과 현실정치에서 어떤 포물선을 그려왔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차연’에 대한 오해와 변명


흔히 현대 사회를 설명하면서 제일 많이 쓰이는 단어가 포스트모더니즘과 신자유주의가 아닐까 싶다. 이 둘을 지목하는 이유는 양자는 단순히 한때 몰아닥쳤던 이론의 유행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읽어내는 묵직한 화두를 우리에게 제공하기 때문일 것이다. 각론으로 들어가 이 두 시대정신의 부각과 함께 등장했던 개념어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단어들이 아닐까 싶다: 차이, 다양성, 다름, 타자, 욕망, 해체 등 

인종적, 종교적, 문화적 다양성과 다름을 인정하고, 나와 입장과 생각이 다른 타자의 권리를 옹호하며, 신자유주의 시스템 속에서 억압된 욕망을 건강하게 승화시키는 일은 우리시대 중요한 과제다. 특별히 차이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상대방과 나와의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 간격을 유지한 채 나이스하게 서로의 다름을 넉넉히 바라볼 줄 아는 미덕, 이것이야 말로 바로 이 광명한 글로벌하고도 포스트모던한 사회를 살아가는 명법이라 우리는 훈육되어 왔다. 

하지만,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의 화법은 신자유주의로 요약되는 현대사회의 정치-경제적 현실을 왜곡하고 희석시킨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식자들에 의해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다. 특별히 맑스주의 계열의 학자들로부터 이런 비판은 드세었는데, 그 중에서도 지젝은 포스트모더니즘이 말하는 수평적 다양성이 혁명에 이르는 수직적 적대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라 지적하였다. 

데리다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런 포스트모더니즘을 상징하는 대표적 학자로 지목되었고, 그리하여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로부터 집중 포화의 대상이 되었다. <맑스의 유령들> 출판이후에 이런 오해들이 다소나마 풀리기는 했지만, 데리다를 향한 이런 편견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데리다에 대한 세인들의 평가에는 다소 곡해가 있다. 데리다의 차연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차이 자체에는 방점이 없다. 차연은 엄격히 말해 ‘차이가 생성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데리다의 본심


그렇다면, 자본에 의한 전 지구적 재편이 완성되고, 그 자본의 법칙만이 유일한 정언명법이 되어버린 이 세계속에서 ‘차이가 생성된다’는 말에는 어떤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 일까? 신자유주의로 상징되는 이 견고한 텍스트에 균열을 내고, 주름을 만들고, 틈을 내고, 그래서 이 시스템이 안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불안정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데리다의 차연, 즉 ‘차이가 생성된다’는 말 속에 담긴 정치적 함의가 아닐까? 그리하여 체제로 하여금 뭔가 불순한 세력과 음모가 이 사회를 감싸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들게 하고, 뭔가 상스럽지 못한 기운이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은 환상이 보이고, 거리에선 ‘아직 게임이 끝나지 않았다!’는 주문이 환청이 되어 들리면서, 이 사회가 결코 안정적이지 않음을 유포시키는 것! 그것이 데리다 말하는 차연, 즉 ‘차이생성’이라는 말 속에 들어있는 데리다식 정치적 음모라 한다면? 나는 그렇게 데리다를 읽고 싶은데...... 


에필로그: 이런 시각으로 세월호에 대한 애도를 바라보면 어떨까? 이제야 비로소 워밍업을 끝내고 세월호에 대한 ‘애도의 문법(文法)’으로 들어가는 문(門) 앞에 당도했다. (다음 웹진에 계속)


ⓒ 웹진 <제3시대>



  1. “The Day Before The Sewol”(웹진64호); “다시, 우리의 삶-정치를 묻다”(62호); “애도(Mourning), 그 불가능한 가능성에 관하여”(61호); “이것이 국가인가?: 세월호 침몰사건을 바라보는 지젝의 시선과 산자의 독백”(60호) [본문으로]
  2. [맑스의 유령들]출판은 소련 패망 이후 움츠려들었던 좌파논객들을 하나로 모아 다시 한번 좌파의 미래와 대안을 모색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들의 논의들을 편집해 출판된 책이 Ghostly Demarcation: A Symposium on Jacques Derrida’s Specters of Marx (Versro, 1999)이다. 이 책에는 안토니오 네그리의 The Specter’s Smile, 프레드릭 제임슨의 Marx’s Purloined Letter, 데리 이글튼의 Marxism without Marxism, 아이자드 아마드의 Reconciling Derrida: ‘Specters of Marx’ and Deconstructive Politics 등 내로라하는 논객들의 문제적 데리다 읽기 아홉 편이 실려있다. 이에 질세라 데리다도 꼼꼼히 그들의 지적과 비판에 맞서 대응을 하는데, 데리다의 반박은 Marx & Sons 이라는 제목으로 이 책 후반부에 실렸다. 한국에서는 2009년 도서출판 길에서 Ghostly Demarcation에 실려있는 3편의 논문과 데리다의 Marx & Sons를 묶어 [마르크스주의와 해체-불가능한 만남]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본문으로]
  3. 데리다는 크리스테바와의 인터뷰를 통해 본인 사상 초기에 거세게 일었던 ‘차연’에 대한 오해를 불식하고자 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기사가 “Semiology and Grammatology”라는 제목으로 『Positions』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1)에 실렸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책이 포스트모던 광풍이 일었던 1992년 『입장들』이라는 제목으로 솔 출판사에서 번역된바 있다. 거기에서 데리다는 자연 안에 내포된 두 가지 의미(difer와 defer)에 대해 다시 한번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차연은) 현전/부재의 대립을 토대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다. 차연은 차이들의 유기적인 놀이이고,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흔적들의 유기적 놀이이며, 타자와의 관계맺기를 통해 발생한 요소들의 공간화를 통해 발생하는 유기적 놀이다”(27) 데리다는 이것이 텍스트의 특징이라고 결론짓는다: “This interweaving is the text produced only in the transformation of another text. 이러한 섞임이 텍스트인데, 그 텍스트는 다른 텍스트와의 소통의 결과물이다.”(26) [본문으로]
  4. 철학자 진태원은 ‘해체’보다는 ‘탈구축’이라는 용어를 제안한다. 해체가 단지 부정적인 의미만을 갖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의미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내용은 『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철학』 (서울: 동녘, 2013) 중 “해체, 차이, 유령론으로 읽는 자크 데리다”(p.309-339)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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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민법을 바라보는 데리다의 시선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 과정)

 

지난 웹진46호에서 필자는 데리다의 ‘해체’에 대한 범박한 정리를 시도하였고, 이어서 데리다를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 진보. 보수 각 진영이 보이는 (데리다에 대한)입장의 차이와 의심의 근거를 잠시 설명한바 있다. 이번 웹진에서는 올해 미국 대선의 최대 이슈로 등장한 이민법에 대한 데리다의 입장을 따라가면서 데리다의 해체주의와 좀 더 친근하게 놀아보기로 하자.

 

프롤로그:  2012년 미국 대선의 관전포인트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도 올해 대선을 치룬다. 재선을 노리는 민주당의 오바마와 공화당의 룸니의 대결로 좁혀진 미 대선은 몇 가지 측면에서 보수와 진보진영 사이의 첨예한 논쟁을 예고하고 있다. 동성애, 이민법, 그리고 의료보험 논쟁이 그것이다. 우선 지난 5월 오바마가 동성애 결혼 지지선언을 미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하여 공화당에 먼저 싸움을 걸었다. 전통적으로 대선때마다 공화당은 낙태와 동성애 이슈를 물고 들어와 보수기독교세력의 표를 결집시키면서 상대적으로 진보적 의견을 피력하던 민주당 후보의 발목을 잡아왔었다. 특별히 2004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부시와 민주당의 케리가 맞붙었을 때, 부시의 이라크 침공에 대한 명백한 사기가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공화당이 승리할 수 있었던 원인은 소위 ‘도덕적 승리(moral victory)’를 모토로 미국 기독교 우파의 결집을 이끌어내는데 공화당이 성공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여기서 말하는 도덕이란 물론 낙태금지와 동성애 반대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양상이 다르다. 먼저 오바마가 공화당을 상대로 공격적으로 동성애 문제에 시비를 걸었다. ‘변화와 희망’으로 상징되었던 오바마의 개혁적 이미지를 다시 곧추세우고, 다소 느슨해져버린 진보진영 표심을 회복하려는 속셈이 깔려있다는 정치평론이 등장했고,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동성애 결혼을 찬성하는(47%) 비율이 반대하는(43%) 의견보다 높게 나타나 공화당을 경악시켰다. 앞으로 남은 대선 레이스에서 공화. 민주 양당에 동성애 이슈가 어떻게 작동될지 귀추가 주목되는 부분이다. 
동성애 이슈 못지않게 이번 미국 대선에서 쟁점이 되는 부분은 이민법에 대한 양당의 입장이다. 지난 2012년 6월 25일 미 연방대법원은 애리조나 이민법에 대해 위헌판결을 내렸다. 멕시코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어서 수시로 국경을 넘는 멕시코 불법이민자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애리조나 주정부는 지난 2010년 재정한 이민법에서 불법이민자들에 대한 반인권적 조항을 삽입하였고, 이에 대해 오바마 행정부는 애리조나 이민단속법이 연방정부의 권한을 침해한 것이라는 제소를 대법원에 제출한바 있다. 대법원 판결은 애리조나 이민법 가운데 문제가 되었던 4개 조항 중 3개가 위헌이라고 밝혔다. 위헌으로 판결된 3개의 조항은 다음과 같다: (1)이민자가 합법 체류신분 증명 서류를 소지하지 않을 경우 이를 범죄로 간주하는 것, (2)공공장소에서 불법체류자들의 구직행위를 불법화한 것, (3)추방 가능한 범죄가 의심되는 이민자를 경찰이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도록 한 것 등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교통법규 등 다른 위반으로 경찰의 검문을 받을 때 체류신분이 의심될 경우 합법 신분을 증명하는 서류 제시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에 대해서는 위헌 소지가 분명치 않다는 판결을 내려 많은 이민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실제로, 대법원 판결 직후 잰 브루어 애리조나 주지사는 “경찰 검문권 조항을 즉시 시행하도록 하겠다”고 밝혀 불법체류자 단속을 강하게 암시하였다. 애리조나 이민법 판결로부터 촉발된 이민법논의는 올 미국 대선을 좌우할 뜨거운 감자로 등장할 것이다. 

 

데리다의 유로 2012 관전기

 

데리다 본인은 부인할 수도 있겠으나, 현대철학의 흐름속에서 데리다는 시종일관 해체를 자기 사유의 주제로 삼았던 인물로 기록된다. 하지만, 데리다를 읽는 필자는 늘 데리다가 말하는 ‘해체가 뭐지?’를 놓고 계속 고민해왔다. 데리다의 저서들을 하나씩 읽어가면서 뭔가 잡힐 듯 잡힐 듯 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는 데리다 특유의 사유와 레토릭을 경험하면서, 필자는 데리다의 해체는 해체의 대상, 그리고 해체 후에 도래할 또 다른 내용에 포커스가 있는 것이 아니라, 데리다가 취하는 태도와 방법이 오히려 해체를 이해하는 중핵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개념에 대한 신뢰와 개념은 미끈하게 설명되어져야 한다는 원칙에 충실했던 필자에게 데리다는 매혹적인 인물임과 동시에 위험한 인물이다.  
이렇듯 데리다에 대한 동경과 좌절이 마치 미친x 널뛰듯 오락가락하던 내게 얼마 전 끝난 유로 2012에서 스페인 축구팀이 선보인 ‘제로톱’ 전술은 데리다의 해체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새로운 통로가 될 법도 하다. 펠레나 마라도나, 호나우도가 차지했던 센터포드 자리를 텅 비게하는 스페인의 제로톱은 기존 축구 전술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낯선 사건이었다. 센터포드 자리는 비어있는 기표이고 그 자리에는 누구나 들어올 수 있다. 기존의4-3-3이니 4-4-2니 3-5-2니 하는 축구의 전술은 수비-허리-공격을 분할한 후 나름의 입장과 역할을 전제로 한 전술이었다. 사람들은1974년 독일 월드컵때부터 등장한 요한 크루이프로 상징되는 네델란드의 토털사커가 기존의 축구전술을 뒤엎는 세계 축구계의 혁명적 사건이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이는 엄격히 말해 공격과 수비수간의 간격을 30-40m 내외로 유지하는 현대 압박축구의 기원이라고는 할 수 있지만, 공격수와 수비수간의 경계를 허물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 유로 2012에서 선보인 스페인 축구는 <공격-허리-수비>라는 기존의 체제를 완전히 해체시켰다. 백넘버 상으로 공격수와 수비수를 구별할 수 있겠으나 수비수도 기존의 수비수 개념이 아니다. 양쪽 윙은 끊임없이 오버래핑에 가담하고, 중앙수비수들은 세트플레이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하거나 제공권 확보를 위해 센터포드 위치로 이동한다. 적절한 비유가 될런지는 모르겠으나 스페인 축구팀은 마치 영화 테미네이터 II에 나오는 은색 액체 괴물로봇 T-1000 같다. 그 놈은 팔이 녹아내리면 다시 합성이 될 때 팔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리가 되기도 하고, 머리는 계속 머리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녹았다가 다시 재생될 때 손이 되거나 배 부위가 되기도 한다. 정말 괴물이다. 스페인 축구가 그렇다. 역할해체, 영역해체를 통해 스페인 축구는 세계 축구계의 괴물로 진화하고 있다. 스페인 축구가 이런 모험을 감행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패스에 있다. 다른 세계적 수준의 팀에 비해서도 스페인 축구팀의 패스회수가 3배 이상 차이가 난다고 한다. 기존의 시스템에 입각한 축구는 수비에서는 쓰리백, 포백, 공격에서는 원톱, 투톱, 허리에는 중원을 지휘하는 지단 같은 플레이 메이커 등 선수 개개인의 역할과 전술이 주어져 있었고 그것이 얼마만큼 유기적으로 작동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렸다. 미리 약속된 패턴이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스페인은 다르다. 수없이 이어지는 패스와 그 패스를 통해 창출되는 순간적이고 무계획적이며 불특정한 공간에 불특정한 다수가 마치 벌집에 벌들이 드나들 듯 골대 주변에서 난장을 부리다 칼침을 놓는다.
지난 웹진(56호)에서 필자는 데리다의 사유의 궤적을 언급하면서 데리다 초기를 나타내는 키워드로 산종, 대체보충, 차이 등을 지목하였고, 후기 데리다는 유령, 정의, 법, 메시아성, 환대 등의 용어가 중심을 이룬다고 했었다. 이 모두가 ‘해체’라는 강력한 원톱을 중심으로 움직일만도 한데, 정작 데리다는 본인이 해체주의자라고 불리는 것조차 거북하게 생각했었다. 데리다는 ‘해체가 무엇이냐?’ 는 질문을 받을 때 마다, 장의논리에 입각하여 ‘산종’을 이야기 할 때도 있었고, ‘유령’을 언급할 때도 있었다. ‘차이’를 강조했다고는 하나, 어느 날에는 느닷없이 ‘법과 정의’를 끌어들이기도 했다. ‘해체’라는 말을 가급적 자제하며, 스페인 축구로 비유하자면 ‘제로톱’ 전술을 구사하면서, 데리다는 그 비어있는 해체의 중핵을 메우려하지 않았다. 스페인 축구팀이 굳이 센터포드를 두지 않고 제로톱 전술을 구사했던 것처럼 말이다.
해체의 철학자 데리다! 하지만, 해체는 제로톱이고 공갈이다. 그 공갈은 차이, 유령, 환대, 대체보충, 산종, 정의, 메시아성 등의 이름으로 옮겨다니면서 기존 지성계의 판을 어지럽힌다. 그렇다면, 데리다가 사람들로부터 오해와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노렸던 것은 무엇일까? 물론, 골을 넣는 것이겠지. 그 Goal은?

 

다시, 데리다를 생각하다.

 

데리다가 시종일관 그의 사상 전체를 관통하면서 집착했던 문제는 결국 ‘경계의 문제’가 아니었나 싶다. ‘경계의 문제’는 서구 철학의 전통에서 볼 때 안과 밖의 문제, 즉 경계의 이편과 저편, 내부와 외부, 주체와 객체를 분할하여 이편과 내부와 주체에게 권리와 자격을 부여한다는 측면에서 종국에는 정치적/윤리적 문제로 귀착된다. 데리다는 이 경계의 조건들이 무슨 장엄하고 숭고한 원칙과 대의가 아니라, 실상은 임의적인 땜질과 봉합, 그 권위의 원천이 다분히 자의적이고 우연스러운, 그래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던 게다. 그러니 제발, 앵글로 색슨이나 게르만이나 유대인이라고 목에 힘주지도 말고,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에 산다고 거드름 피지 말라는 말이다.
다시 서두에서 언급했던 미국 애리조나 이민법 문제로 돌아가 데리다식 국가관에 대해 생각해보자. 종교개혁과 산업혁명을 거치며 중세 봉건주의는 서서히 파국을 향해 치달았고, 새롭게 등장한 시민계급은 전시대의 강제와 규율이 아닌, 자신들의 이드와 이익을 존중하고 보장해줄 새로운 형태의 통치시스템을 요청하게 된다. 근대 국가 형성에 영향을 끼친 루소의 ‘사회계약설’에 의하면, 국가는 구성원 전체가 가진 공동의 힘으로 개인의 신체와 재산을 방어하고 보호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고, 개인은 국가란 이름으로 결합되나, 국가의, 국가에 대한 결속과 연대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국가관과는 비교가 안되는 느슨한 것이었다. 어쩌면 국가는 새롭게 분출되는 시민계급의 well-being(잘 먹고 살 사는 것)을 위한 도구가 아니었을까? 시민계급에 의한 (중세 봉건시대와는 다른) 권력의 사회적 재전유, 그것이 바로 근대국가의 탄생이었다고 말한다면 너무 지나친 억측일까?
내셔널리즘이라는 담론은 근대라는 시간과 공간, 즉 담론을 규정하는 새로운 프레임을 통해 그 권위가 확립되는 것이지, 국가 자체에 무엇인가 숭고하고 고유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의 자손, 다윗의 자손, 단군의 자손, 아리안의 후예 등 온갖 종류의 국가담론과 민족신화는 안과 밖을 대조시켜 안에 있는 나의 특권과 권리를 정당화하려고 설정된 기획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외국인 이민을 반대하거나, 불법외국인 노동자를 색출하려는 국가의 논리는 숭고한 국가질서와 전통을 전제하지만, 기실 그것은 자기의 이익에 방해가 되거나 위협을 가하는 이물질에 대한 응징 내지 박멸 그 이상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데리다는 우리 삶 도처에 세워진 기존의 경계들에 질문을 던지고 되묻는 작업을 감행한다. 우리의 습관과 관행, 우리의 익숙함과 안온함을 위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모든 코드들, 경계지어진 것들의 기원을 집요하게 캐물으며 데리다는 기존의 경계, 코드, 규칙, 법들을 해체하면서 확장한다. 그것이 바로 데리다식 정치이고 윤리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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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세론’ VS. 데리다 ‘유령론’ (I)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

 

프롤로그 1: 간략한 정세분석

 

지난 4.11 총선이 있기 전 많은 예측들이 있었다. 역시 가장 굵직했던 총선 이슈는 지난 4년간 MB정권의 실정에 대한 심판론이었다. 그 무렵에 터졌던 사정기관에 의한 불법민간인 사찰, 친인척, 측근비리 등 많은 호재들은 야권의 총선승리를 짐작케하였고, 야당 역시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고자 야권연대를 통해 최대한의 표를 흡입하고자 노력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예측과 다르게 야당은 박근혜 혼자 선거를 치루다시피 한 새누리당에게 완패하였다. 수도권에서 승리하였고, 부산.경남에서 득표율면에서 새누리당과 접전을 벌였다는 점, 통합진보당이 비례대표 득표에서 200만 표가 넘는 지지를 받았다는 점등 야권은 몇 가지 긍정적 지표를 들면서 애써 선거결과에 대해 자위를 해 보지만 그 변명은 궁색해 보인다.

반면,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총선의 승리도 고무적인 사실이지만, MB 정권에 대한 심판론과 박근혜의 대세론이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는 별개의 사안이라는 사실이 입증되었다는 점에서 이번 총선은 (박근혜 캠프입장에서) 연말 대선으로 나가는데 확실한 토대와 명분이 된 사건이었다. 총선 후 새누리당은 현재 당의 전 조직이 친박계 인사들로 채워졌고, 완성된 박근혜 대세론 앞에서 그 누구도 딴지를 걸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여기에다 천우신조인지, 통진당의 내분으로 인해 진보세력 전체가 매도당하는 사태가 현재 전개되고 있고, 이를 종북논쟁, 빨갱이 시비 등으로 쌍으로 엮으면 연말대선 때까지 충분히 야당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오히려 본 게임보다 ‘표정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새누리당의 입장에서는 더 고민해야 되는 현재 정국이다..

물론, 대한민국 선거의 특성상 대선까지 남은 6개월은 너무나 긴 시간이고, 노무현의 경우에서도 드러났듯이 한 번 바람이 일면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한국정치의 지형이라고는 하지만, 이미 10년 전에 한번 쓰라린 학습효과를 경험했던 새누리당은 다시금 그 악몽을 되새김질 안하려고 노력할 것이고, 10년 전 노무현이라는 극적인 감동드라마를 연출했던 야권은 노무현만한 내러티브를 갖추고 있는 인물이 없어 고민이다. 현재 잠재적 대항마로 하마평에 오르는 안철수는 정확한 실체가 없는 인물이고, 문재인은 노무현의 그림자를 넘지 못한다. 이러한 모든 점을 감안하고 종합해 봤을 때, 현재 스코어 누가 봐도 7회말 투아웃 7:0, 이제 아웃 카운트 하나면 박근혜의 7회 콜드게임승이다. 이것이 솔직한 지금까지 2012년 대선전광판이다.

 

프롤로그 2: 선린상고는 왜 졌을까?

 

서른 살 까지 다녔던 나의 모교회는 동대문운동장에서 한 블록 위 장충동 족발집이 시작되는 초입에 있었다. 덕분에 나는 가끔 교회땡땡이치고 혹은 교회 마치고, 아니면 교회핑계대고 동대문야구장(당시에는 서울야구장이었다)으로 부흥회가는 심정보다 더 간절하고 뜨거운 마음으로 발길을 옮겼었다. 정말이지 동대문운동장이 우리교회 근처에 있었던 것은 찬송가 가사처럼 ‘그 크신 하나님의 은혜’였다.

동대문운동장 개표소를 지나 구장으로 들어가기 전 긴 복도는 어딘가 구리고, 어둑어둑하고, 퀘퀘하고, 진한 마초성이 느껴지고, 음란했다. 내가 동대문운동장을 더 많이 갈 수 있었는데 안 갔던 이유는 그 복도를 걷는 것이 싫어서였다. 하지만, 눈 질끈감고 판도라상자 같았던 복도를 지나 야구장안으로 들어가는 문을 통과하면 파란잔디밭과 파란하늘이 펼쳐지는데… 내 생의 자유와 해방에 대한 가장 원초적 감각을 꼽으라면 단연 동대문운동장 복도를 지나 구장으로 통하는 입구에 서서 만났던 그 하늘과 잔디에 대한 기억이 아닐까 싶다. 정말 그렇다. ‘하나님은 교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분명 동대문 운동장안에도 있어!’라고 소년 상철은 분연히 소리치지는 않았지만, 나의 음험한 일탈에 난 떳떳했고, 오히려 사람들에게 ‘야구장에서 들려오는 기쁜소식, 복음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지?’를 놓고 한동안 전전긍긍 했었다.

지금은 고교야구의 열기가 프로야구의 등장으로 인해 시들해졌지만 내가 어렸을때까지만 해도 고교야구는 가히 국민스포츠라 할만 했다. 필자가 고교야구에 매료되었던 이유는 순전히 선린상고(현 선린인터넷고등학교)때문이었다. 당시 선린상고는 박노준, 김건우라는 불세출의 스타를 보유하고 있던 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해인가(81년 or 82년) 네 번이나 결승에 올랐지만 네 번 모두 준우승이라는 비운에 울었던 팀이기도 했다. 특히, 경북고와 선린상고와의 청룡기 결승전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세드무비다. 경북고에는 당시 빼어난 좌완투수 성준과 제2의 김재박으로 불리던, 지금 삼성라이온스의 감독이 된 유중일이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선린상고의 적수가 되지는 못했다. 초반부터 선린상고가 원사이드하게 앞서는 상황에서 박노준이 홈으로 쇄도하다가 그만 다리골절로 병원으로 호송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만다. 그때부터 김건우도 흔들리고, 잘하던 야수들은 실책을 하고, 결국 그 결승전에서 선린상고는 경북고에 역전패당해 또다시 준우승에 머물고 말았다.

박근혜 대세론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첫 꼭지에서 갑자기 필자의 잊혀졌던 동대문운동장과 선린상고에 대한 기억이 뗘오르는 이유는 왜일까? 막강한 전력을 자랑하던 선린상고! 하지만, 나는 늘 불안한 마음으로 그들의 게임을 지켜봤고,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도 뭔가 꺼림칙했으며, 패배가 확정이 되면 안타까운데도 불구하고 그 패배가 오히려 안심이 되고 안도가 되는 증상이 발생했었다. 앞서고 있고 이기고 있는 이 상황이 오히려 불안하고 불쾌한… 패배와 죽음이 확정되고 나서야 오히려 모든 갈등이 해소되는 이 황당한 시츄에이션! 나중에 안 사실인데, 이를 프로이트는 ‘죽음본능(타나토스)’으로 설명하더군. 프로이트를 알지 못했던 나는 선린상고 야구팀에게 뭔가 알 수 없는 액운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다분히 ‘전설의 고향’을 많이 본 탓이겠지만, 분명 그랬다. 선린상고 야구팀에게는 뭔가 설명이 불가능한 유령이 그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 유령이 이제 박근혜에게로 옮겨가고 있다면……흐흐흐(이것은 유령이 움직이는 소리임). 이제야 비로소 데리다로 넘어간다.


데리다가 수입되던 무렵 우리는…

 

1980년대 한국사회는 그야말로 화려한 내공을 뽐내는 각 정파의 무사들이 강호의 주도권을 놓고 필력을 휘날리던 시절이었다. 흔히 사회구성체논쟁(사구체논쟁)으로부터 시작된 한국사회의 진보논쟁은 민족해방(NL)과 민중민주(PD)로 나뉜 채 치열한 권력투쟁의 양상을 보였고, 물론 그 과정에서 가깝게는 요근래 발생한 통진당 사태에서부터 멀게는 민노당 분당까지 볼썽사나운 광경이 연출되기는 했지만, 진보진영내에서의 논쟁은 분명 한국 사회가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는데 중요한 동력의 역할을 하였다.

그런데 19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를 거치면서 연쇄적으로 발생한 소련과 동유럽 공산주의 의 붕괴는 20세기 세계체계의 한 축을 담당했던 거대 담론을 한 순식간에 무너뜨림과 동시에 진보논의의 틀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광풍이 몰아닥친 것이다. 그 무렵에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과 자유주의의 최종 승리를 선언하였고, 포스트모던 사상의 원조라고 평가되는 리오타르는 ‘더 이상 거대시사는 없다’고 소리쳤던 것으로 기억된다. 한국도 이러한 세계사적인 흐름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아니 가장 순식간에 이러한 시대적 조류에 함몰된 곳이 한국이 아닐까 싶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온갖 진보 사상이 넘쳐나던 한국의 변혁 운동은 1990년대가 되자 일제히 "거대 담론은 없다"면서 미시정치. 미시권력에 집중하는 시민운동의 시대로 전환된다. 김영삼 정권 때 등장한 경실련(초대사무총장: 서경석)과 김대중 정부 때 맹활약한 참여연대(초대사무총장: 박원순)같은 시민 단체는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창립되었다. 기한이 만료되고 용도가 폐기된 거대 담론보다는 삶의 작은 변화와 개선에 주력하자는 것이 그들의 모토였고, 이를 계기로 한국의 진보는 점차 전선이 다양해지기 시작한다. 풀뿌리 민주주의니, 소액주주운동이니, 대안학교/대안교육, 생명/환경 운동, 선거 때 등장했던 시민단체 주도의 낙선운동 등이 우리 귀를 스쳐갔던 이 무렵 등장했던 새로운 운동 형태들이었다. 어느 시인은 이러한 현상에 직면하고는 ‘잔치가 끝났다’며 이제 그만 손 털자고 허탈하게 속삭였고, 가열차고 숭고하게 ‘민주주의여 만세!’를 외쳤던 김지하는 도사가 되어 ‘생명, 율려’ 어쩌구 하면서 새로운 문명의 틀을 제안했다. 이 틈을 타서 사노맹사건으로 구속되었던 박노해가 슬그머니 전향을 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과거 혁명의 전사들은 하나씩 본인들의 이상을 현실정치에서 실현하겠다고 큰소리치며 국회로 들어갔다.

너무나 아이러니컬했던 현상은 탈냉전과 탈이념이 선전되어지던 그 시절, 한국 사회는 여전히 너무나도 이념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이었다는 사실이다. 1989년에 문익환 목사님과 임수경의 방북이 있었고, 그 후로 한동안 통일에 대한 논의가 우리사회를 지배했었다. 당시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고 지리산을 종주하고,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I>을 읽고 남도로 달려갔던 청년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하루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들먹이며 유연하고 세련되게, 또 하루는 통일과 민족을 이야기하며 뜨겁고 가열차게… 그렇게 그 세대는 개념의 홍수 속에서 붕붕 떠다니면서 배회하고, 배회하다 좌초하고, 그러다가 지쳐갔다.

데리다가 본격적으로 한국 사회에 알려지고 소개되어지던 때가 바로 그 무렵이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쓰나미가 몰아치던 90년대 초, 하지만 여전히 이데올로기적인 한국땅에 데리다는 폼나는 포스트포더니즘 아바타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데리다 지도 그리기

 

통상 데리다를 읽다보면 데리다의 전기사상[각주:1]과 후기사상[각주:2]이 극명하게 나뉘는 것을 볼 수 있다. 데리다 전기를 지배했던 키워드들을 살펴보면 dissemination(산종), differance, supplement(대리보충), fold(주름), margin, trace(흔적), writing 등의 어휘들이고, 데리다 후기는 specters, gift(선물), law, hospitality(환대), pardon(애도), the messianic without messianism, justice 등 보다 실천적인 측면으로 이동했음을 알 수 있다.

기본적으로 데리다가 시종일관 문제를 제기했던 부분은 서구 정신사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원본(Origin)불변의 법칙’이다. 통상 ‘로고스중심주의(Logocntrism)’라 부르는 이것은 ‘개념이란 개인과 집단 사이에서 고정된 의미를 지닌 채 소통된다는 믿음’에 근거하고, ‘어떤 단어의 의미는 세상과 소통되기 이전에 우리의 마음속에 현전한다’는 전제에 기초한다. 데리다는 이런 사유를 ‘현전의 형이상학(the metaphysics of presence)’이라 불렀고, 서구 정신은 이 허상위에 존재한다고 보았다. 데리다는 바로 이러한 서구정신의 전통에 대한 해체(deconstruction)를 시도한다. 그러나 데리다의 해체는 서구철학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논리적으로 수미일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그를 읽는 독자로 하여금 종종(아니, 매번) 낭패감으로 빠지게 한다.

본디 개념이란 자고로 다른 개념이나 특정 대상을 자신과 구별짓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개념의 힘이고 미덕이다. 이러한 개념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의지가 발동이 되고, 운동이 발생하며, 그 과정을 되풀이 하면서 세상은 진보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구 정신사에서 나타났던 진리를 향한 온갖 종류의 개념적 정의들은 당대의 시대적 고민과 요청에 대한 치열했던 논리적 추론의 결과물들이며, 가장 적합하게 한 용어 안에 그 개념을 담지하고자 했던 몸부림들이었다는 점에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의미의 두께다. 
하지만, 데리다의  ‘해체’는 이러한 기존의 문법을 배반한다. 일차적으로 해체는 해체되어야 할 대상을 전제한다는 점에서는 개념과 개념을 구획지어 자신을 보호하는 서구철학의 패턴을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해체는 그 다음 단계에서 돌연변이한다. 해체는 앞으로 오게 될 또 다른 무언가를 향한 준비 내지 과정을 암시하는 것이지, 기존의 철학전통처럼 도래할 개념에 대한 지목이 없다. 이 부분이 바로 우리로 하여금 ‘해체’를 불안하고 위태롭게 바라보게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해체’를 개념이라 부를 수 있는가? 어찌보면, 데리다가 말하는 해체(deconstruction)란 하나의 사유체계가 아니라, 기존 서구철학이 만들어 놓은 토대와 우상에 흠집을 내고 딴지를 거는 하나의 전술적 실천이라 해야 맞지 않을까?
데리다 전기사상은 이러한 전술을 위한 이론적 terminology들이 마련되었던 시기였으며,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차연(differance)’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차연은 ‘다르다’(differ)와 ‘연기하다’(defer)를 동시에 의미하는 데리다의 신조어이다. ‘현존(presence)’과 ‘부재(absence)’라는 서구전통철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차연은 현존하는 것도 부재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현존의 효과를 발생시키는 부재이다. 현존은 ‘다름’을 통해 다가오고, 현존의 생명력은 ‘지연(or 연기)’을 통해 유지된다. 이러한 전술을 통해 데리다는 어떠한 개념도 자기 폐쇄적인 동일성안에 머무르지 못하도록 한다.
이 대목에서 데리다에 대한 일반적 비판이 대두된다. 기원과 로고스에 대한 지위와 권위가 상실하게 되면, 결국 회의주의와 상대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결국, 어디로 가자는 말인가? 데리다가 사람들에게 의심과 두려움의 대상이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수적 입장의 사람들은 데리다의 해체로 인해 기존의 삶의 질서와 법칙이 와해될지 모른다는 불안을 느꼈고, 진보적 인사들은 데리다의 입장이 거대담론에 입각한 혁명의 기운을 무화시키고 체제에 대한 전복의지를 감퇴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이유에서 그를 비판한다. 이들의 던지는 비판의 칼날들에 데리다는 어떻게 반응하고, 그것이 데리다 후기철학을 대변하는 ‘유령론’과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그리고, 데리다의 ‘유령론’은 박근혜 ‘대세론’의 잡귀가 될 수 있을까? 

<다음 달 웹진에 계속>

 

ⓒ 웹진 <제3시대>


  1. 1967년 동시에 출판된 세 권의 책들, Speech and Phenomena(1973) Of Grammatology (1997) Writing and Difference(2003), 1972년에 역시 나란히 출판된 세 권, Positions(1981) Dissemination(1981) Margins of Philosophy(1982)가 데리다의 전기사상을 대표하는 저서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괄호 안의 연도는 미국에서 번역되어 출판된 해임) [본문으로]
  2. 후기 데리다의 윤리학과 정치학, 그리고 메시아성을 다루고 있는 책으로는 Rogues(2005) Specters of Marx(1994) Deconstruction in a Nutshell(1997) 등이 있고, 데리다의 후기 작업의 키워드라 할 수 있는 애도, 선물, 환대, 타자성을 담고 있는 책으로는 Acts of Religion(2001) Adieu to Emmanuel Levinas(1999) For What Tomorrow … A Dialogue(2004) Of Hospitality(2000) The Work of Mourning(2001) Given Time(1992) 등이 있다. 데리다가 직접 쓴 책 이외에 데리다 후기사상을 다루는 두 권의 안내서를 소개한다. 한 권은 빛나는 데리다 해설가 John D.Caputo가 쓴 The Prayers and Tears of Jacques Derrida(1997)이다. 이 책은 데리다 철학에 대한 개설서로, 특별히 후기 데리다 철학에 관심하는 연구가들에게 미국내에서 매력적으로 읽히는 책이다. 시카고 신학교 Ted Jennings가 쓴 Reading Derrida/ Thinking Paul(2005)은 데리다와 바울을 연결하는 책으로, 요즘 한창 논의되는 좌파이론가인 아감벤, 바디우, 지젝이 시도하는 정치신학과 맥이 닿아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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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론적 성서읽기는 가능한가?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과정)


해체론에 대한 농담, 거짓말, 그리고 진실

데리다는 이런 질문에 항상 시달렸다고 한다: “해체 이후에는 무엇이 남는가?”, “해체 이후의 대안이 무엇인가?” 만나는 사람마다 이런 질문을 했을텐데… 정말 짜증났을 것 같다. 해체라고 했을 때 사람들은 흔히 파괴를 떠올린다. 그래서 불안한 것이고, 그러기에 불온한 것이다. 아마도 한국 사회에서 ‘빨갱이’라는 용어만큼이나 심한 주술적 위력을 보이는 개념과 집단을 꼽으라면 해체론과 동성애가 아닐까 싶다. 아니 오히려 이제는 빨갱이라는 말에는 워낙 익숙하고 내성이 강해진 터라 해체와 동성애가 현 시점에서는 더 진한 주홍글씨일 수 있겠다.
해체론을 언급할 때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부분이 바로 이러한 해체론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가라앉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데리다에게 있어 해체란 즉물적인 의미에서 무엇인가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관념 이면에 묻혀있었던 것을 발굴하여 원래 저자도 의도하지 못했던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다. 이는 데리다가 지니고 있었던 문헌학자로서의 특이한 이력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그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후설, 하이데거, 소쉬르 등의 책을 면밀히 분석하면서 기존의 관점이 아닌 새로운 시각으로 면밀한 독해를 시도한다.[각주:1]
 
예를 들어 플라톤의 <파이드로스>에 보면 발명의 신 테우스와 타무스 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테우스가 문자와 과학을 발명하고는 이것이 인간 삶의 질을 향상시킬 것이라 자신하며, 특별히 문자는 사람들의 지혜와 기억력을 높여줄 것이라 장담했다. 하지만 타무스왕은 사람들이 문자에 의존하게 되어 기억력이 쇠퇴하고, 지혜의 실체보다 지혜의 외관에 치중하는 결과를 가지고 올 것이라 반박했다. 이것이 데리다가 파악한 서구 정신사의 전개 과정에서 드러난 음성언어가 문자언어보다 우위에 있다는 소위 ‘음성중심주의(Logocentrism)’[각주:2]의 기원이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우리는 플라톤이 범하는 오류를 발견한다. 만일 문자가 타무스 왕이 말한 것처럼 해악한 것이라면, 왜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대화를 문자로 기록했는가? 혹 겉으로는 문자언어에 대해 폄하하면서도 속으로는 문자언어에 대한 동경의 마음 있었던 것은 아닌가? 
 
데리다가 플라톤의 저작에 등장하는 데미우르고스의 우주 창조시 물질의 역할을 했던 코라를 재발견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나는 플라톤을 연구하는 매 순간마다 그의 작품 안에 있는 이질성(heterogeneity)을 발견하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어, 티마이오스(Timaeus)에 등장하는  코라(Khora)가 어떻게 플라톤이 전제하고 있는 체제속에서 양립할 수 없는지 찾으려고 한다. 나는 플라톤에 대한 존경과 사랑, 그리고 플라톤에 충실히 이해하기 위해 그의 작품에 대한 작용과 반작용을 공히 분석한다.”[각주:3]
 
위의 인용구에서 보듯이 데리다는 이분법적인 구조에 입각한 위계적인 구조보다는 작품내 등장하는 요소들의 상호의존성에 주목한다. 플라톤에게 있어 코라는 이분법적인 구도속에서 하층부에 있는 억압당하는 물질을 상징한다. 하지만 데리다는 이러한 플라톤의 코라에 대한 이해를 해체하여, 생명을 담지하고 있는 가능성과 잠재태의 영역으로서의 코라를 다시 읽어낸다. 즉 동일성(이데아)의 법칙에 의해 ‘배제된 것’(코라)이 어떻게 실제로는 그 규범(동일성)을 유지하기 위한 내부적 요인으로 작용하는가? 이러한 데리다의 플라톤의 코라에 대한 해석은 우리가 어떤 사물의 ‘그것 됨’을 판단할 때 그 사물과 다른 대상과의 표면적 대립(차이)을 통해 그 사물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정설을 뒤엎는, 그 사물 안에 이미 외부적으로 대립해왔던 대상이 들어와 있음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텍스트 분석에 있어 새로운 상상력을 우리에게 제공한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데리다의 텍스트 독해방식을 성경읽기에도 적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글에서 나는 데리다의 코라에 대한 새로운 읽기 방식을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예수의 족보와 열왕기상에 나오는 솔로몬의 재판에 적용해보고자 한다.
 
 
‘빛나는’ 예수의 족보 안에 스며있는 ‘부정한’ 것들
 
신약성서의 첫 번째 책인 마태복음은 예수의 족보로 시작된다. 예수의 족보를 살펴보면 아브라함으로부터 다윗까지, 다윗에서 스룹바벨로 상징되는 바벨론시기까지, 바벨론에서 다시 그리스도까지 공히 열네 대씩을 지나 예수에게로 이스라엘 민족의 정통성이 흘러왔다고 밝히고 있다. 아브라함-이삭-야곱으로부터 시작하여 다윗을 거쳐 예수에게로 깨끗한 선민의 피가 유구한 세월을 거쳐 틀림없이 이어져 왔음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그럼으로써 예수의 족보에 흐르는 깨끗한 선민의 피는 이방신을 섬겼던 주변 오랑케의 족보와는 뚜렷한 외면적 차이와 대립을 보이면서 그 정통성을 인정받는다. 그런데 예수의 족보안에 그토록 경멸하고 외부적으로 대립해왔던 이물질이 들어와 살며시 숨어있다면?
 
실제로 예수의 족보에는 시아버지와 정사를 벌인 다말이, 이방인 기생 라합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경멸했던 오랑케였던 모압 여인 룻이, 다윗에게 겁탈당한 유부녀 밧세바가, 그리고 저주받은 땅, 갈릴리 처녀 마리아의 이름이 버젓이 올라있다. 예수의 족보에서 강조하고자 했던 아브라함-다윗-예수로 이어지는 이스라엘 상층부의 역사를 배반하는 정반대의 부정한 이름들이 예수의 족보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의 족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예수는 분명 ‘아브라함-이삭-야곱-다윗’ 거쳐 내려오는 선민 이스라엘의 정통성을 상징한다. 하지만, 예수는 또한 라합, 다말, 룻, 밧세바, 마리아로 상징되는 하층민들, 소수자들, 변방에 머물러 있는 타자들까지를 포함하는 그런 인물인 것이다. 이런 해체적 독법을 통하여 예수의 외연은 이스라엘 상층부의 역사에만 매몰되지 않고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었다. 이렇듯 외부적으로 대립하는 것이 자기 내부에서 발견될 때 그것을 데리다는 ‘차연’이라 불렀고, 해체론은 대상 속에 이미 내재하고 있는 그 차연을 발견하고 폭로하여 사물이 지녔던 본래의 의미에 틈을 내고 주름을 만들어 그것의 체적을 늘리고 연장시킨다.[각주:4]
 
데리다의 해체론은 기본적으로 텍스트에 대한 다시 읽기를 통해 숨겨져 있었던 의미를 발견해내고 그럼으로써 종전의 해석을 전복시켜 독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해석의 창에 이르게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솔로몬의 재판(왕상 3:16-28)’을 예로 다시 한번 데리다를 따라 가 보기로 하자.
 

칼의 왕, 솔로몬

두 여인이 한 아기를 놓고 저마다 자신이 낳은 아이라고 우기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점점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들어 가고 급기야는 솔로몬에게까지 이르게 되는데……자칫 미궁으로 빠질뻔한 이 사건은 솔로몬의 지혜로운 판결에 의해 해결이 되었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준 지혜를 이용하여 생모를 구별해냈다는 이 이야기는 솔로몬을 지혜의 왕으로 등극시킨 결정적인 본문이다. 교육열 높기로 유명한 우리나라의 학원 이름 혹은 학습지 제목을 훑어보면 아마도 하버드만큼이나 솔로몬이란 이름도 많을 것 이다. 이 모두가 ‘솔로몬 = 지혜’라는 잘못된 신화에 기인한 웃지 못할 진풍경이라 할 수 있다.
 
본격적으로 성서에 나와있는 솔로몬에 대한 재판을 해석하기에 앞서 피로 점철되었던 솔로몬 가계의 역사와 솔로몬의 권력투쟁에 대해 살펴볼 필요를 느낀다. 다윗은 헤브론에서 6명의 아들을 두었고, 이스라엘에서 13명의 아들을 낳았다. 성경에 나오는 굵직한 다윗의 자손은 암논, 압살롬, 다말, 아도니야, 그리고 솔로몬이다. 이중 솔로몬만 예루살렘 세대라 할 수 있고, 나머지 자식들은 헤브론 출신이다. 전체 족보상으로 다윗의 장남은 암논이다. 그런데 암논이 이복 여동생 다말을 겁탈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다말의 친오빠였던 압살롬은 이에 분노하여 암논을 살해하였고, 아버지 다윗에게까지 반란을 일으켰다가 군사령관 요압에게 죽임을 당한다. 솔로몬은 성장면서 이러한 피로 점철되었던 자기 가문의 현실을 목도하면서 권력의 생리를, 칼의 논리를 온몸으로 체득하며 자라났다.
 
솔로몬 권력투쟁의 절정은 다윗의 노쇠로 인한 레임덕 상황에서 발생하였다. 다윗 구파라고 할 수 있는 요압 장군, 아비아달 제사장의 비호를 받는 아도니야와 예언자 나단과 밧세바가 지원하는 솔로몬과의 마지막 대결에서 솔로몬은 최후의 승자가 된다. 족보상으로는 솔로몬보다 형인 아도니야가 왕이 되었어야 맞다. 하지만 권력을 향한 야망에 가득 찬 사람들에게 그런 족보 같은 것이 뭐 큰 대수이고, 삶의 도리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솔로몬은 권력에 오르자마자 자기 형인 아도니야와 자기 아버지의 평생 측근 요압장군을 처형하였고, 제사장 아비아달은 멀리 추방시켰다.  
 
이러한 역사를 종합해보면, 솔로몬은 참 불행한 사람이었다. 아비가 아들을 죽이고, 오라비가 여동생을 강간하고, 형제가 형제를 죽이는 모습을 다 지켜봤던 사람이 솔로몬이었고, 급기야는 자기 역시 (그 동안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배운대로) 자기 형을 죽이고 왕이 되었던 인물이 솔로몬이다. 솔로몬의 히브리어 뜻이 ‘평화롭다’라고 하니 얼마나 아이러니컬한 일인가? 그렇다면, 평생 평화롭지 못했던 솔로몬에게 있어 지혜란 무엇이었을까? 이제야 비로소 ‘솔로몬의 재판’을 이야기할 시점에 이른 것 같다.
 
 
그 재판장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두 여인이 한 아기를 두고 바락바락 우겨대는 사건이 솔로몬 눈앞에서 발생한다. 더군다나 두 여인은 천한 창녀였다. 각각의 변론을 들어보니 죽은 아기는 상대방의 아이이고, 살아있는 아기가 자기 아이란다. 이런 골치 아픈 일이 벌어졌을 때 어떻게 했었지? 살아오면서 대화와 타협, 화해와 용서의 경험이 없었던 솔로몬이다. 대화와 타협보다는 음모와 배신이, 화해와 용서보다는 처벌과 죽임이 솔로몬이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이었다. 솔로몬은 두 여인의 변론을 듣고 나서 본능적으로 칼을 갖고 오라고 명한다. 이 대목에서 주석가들은 솔로몬이 지혜를 발휘하여 두 여인의 속마음을 떠보려고 이처럼 말했다고 하지만, 과연 그랬을까?
 
인생이 솔로몬에게 준 교훈이 무엇이었나? 골치 아픈 일이 발생했을 때,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솔로몬이 그 위기를 벗어나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은 칼이었다. 솔로몬에게 있어 지혜란 언제 누구에게 어느 시점에서 칼을 정확하게 쓸 것인가를 가늠하는 것이다. 그것이 솔로몬의 지금을 있게 했고, 앞으로도 당연히 그럴 것이다. 솔로몬은 이러한 칼의 논리에 아주 충실했던 사람이었고, 그것에 입각해 칼을 갖고 와서 아이를 잘라 반반씩 나누라고 한 것이라면 너무 불손한 해석인가?
 
극의 반전은 그 다음에 일어난다(왕상 3:26). 성경은 그 아이 어미의 마음이 “아들을 위하여 불붙는 것 같았다”(개역)고 적고 있고, “자기 아들에 대한 모정이 불타올랐다”(표준새번역)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는 진짜 어미가 “살아있는 아기를 저 여인에게 주어 죽이지 말라달라”고 솔로몬에게 애원했다고 전하고 있다. 이게 왠 황당한 시츄에이션? 솔로몬은 놀랐을 것이다. 다른 여인은 상식적으로 칼로 아이를 잘라 반씩 나누자고 말하는데, 그것이 내가 아는 선에서 최선의 선택이고 바른 판단인데, 저 여인의 행동과 말과 표정과 눈물은 무엇이지? 왜 오바하는 거야? 생전 처음 벌어진 칼의 논리가 아닌 다른 해법을 접하고 솔로몬은 당황해 한다. 세상에 뭐 이런 게 있어? 내가 그동안 뭔가를 놓치고 살아온 것이 아닐까?
 
그 다음 구절에서 표준 새벽역은 이렇게 적고있다: “그때에 드디어 왕이 명령을 내렸다”(왕상 3:27). 나는 이 구절을 이렇게 바꾸고 싶다: “그때에 드디어 왕에게 지혜가 임했다”고 말이다. 그리하여 솔로몬은 생의 최초로 칼의 논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른 기준으로 판정을 내린다: “산 아이를 저 여자에게 주고 결코 죽이지 말라 저가 그의 어머니이니라.” 칼과 죽임의 논리에 빠져 있던 솔로몬에게 살림과 생명의 논리가 최초로 선포되는 장면이다.
 
‘저 하늘에 별이 빛나듯 내 마음에는 도덕율이 빛난다’고 칸트가 그랬다지. 자고로 동서고금을 망론하고 지혜는 천상의 영역이었고 선택된 자들만이 닿을 수 있는 영역이었다. 플라톤에게 있어서 지혜와 진리는 정치학의 기초로 가장 선한 자, 즉 가장 우수한 자가 국가를 통치해야 했다. 중국에서도 국가 경영의 모델은 언제나 요순시대나 삼황오제 같은 성군들의 차지였다. 이렇듯, 인간의 마음에 있는 지혜와 도덕, 그리고 명석한 판단은 높이 있는 별을 따듯이 높은 양반들만이 그곳으로 올라가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솔로몬을 이러한 원칙에 부합하는 대표적 인물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해체론적인 읽기를 따라 다시 꼼꼼히 본문을 읽어보니 수상한 점이 보인다. 지혜의 출처가 솔로몬이 아닐 수 있다는 말이다. 본문에서 말하는 지혜란 생명의 논리이고 사랑의 언어이다. 그런데 그것이 솔로몬이 아니라 한 아이의 어미에게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지혜와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여인으로부터, 마치 이데아가 코라에 기대어 자기를 실현했던 것처럼, 지혜가 흘러나온다. 솔로몬은 그저 흘러나오는 지혜를 만졌을 뿐이다. 이처럼 해체론적인 읽기는 동일성의 윈칙에서 벗어난 것이 어떻게 실제로는 그 원칙을 성립시키기 위한 내부적 필수요건이 되는가를 보여준다. 그 결과 지혜는 솔로몬으로 상징되는 상층부의 전유물이 아닌 일반 민초들의 영역으로까지 직영을 넓히며 그 외연의 확장을 도모할 수 있었다.
 
 
에필로그: 해체론이 노리는 것
 
글의 서두에서도 밝혔듯이 해체는 파괴와 동일어도 아니고, 한국 보수주의자들이 빨갱이라는 말을 대할 때 보이는 공포와 적대감이 되어서도 안된다. 오히려 해체론은 우리 생각에 새로운 창을 내어 인식의 지평을 넓혀 오늘의 우리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 또한 해체론은 우리로 하여금 깨어서 (미쳐 돌아가는) 이 시대와의 불화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고, 그전에 그럴 수 있는 상상력을 제공한다. 그리고 해체론은 해체론이 타켓으로 삼는 대상의 조밀함과 견고함의 정도가 세면 셀수록 더 집요하고 파괴적으로 도전장을 내밀어 그것들이 지니고 있는 과다한 특권과 위압적인 체계를 흔들어 놓는다.
 
결국, 요약하면 해체론은 의미의 폐쇄와 무언가로부터 흘러나오는 억압된 권위에 대한 도전이다. 그 무엇은 민족(혹은 국가)일 수도 있고, 체제일 수도 있고, 이념일 수도 있고, 그리고 당연히 종교도 성서도 그 예외는 아니다.


ⓒ 웹진 <제3시대>


  1. “내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독해하고자 했던 방식은 이러한 유산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반복하고 보존하는 그런 방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떻게 그들의 사유가 작동하고 있는지 또는 작동하지 않는지를 발견하고자 하는, 그리고 그들이 남긴 언어 자료 안의 긴장, 모순, 이질성을 발견하고자 하는 그런 하나의 분석이다”- Jacques Derrida, Deconstruction in a Nutshell. Ed. John D. Caputo, (New York: Fordham University Press, 1997), 9. [본문으로]
  2. ‘형이상학이 무엇인가?’ 라고 물었을 때 우리는 두 가지 답변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세계 저편에 완전한 세계가 있을 것이라는 발상이다. 그것은 플라톤의 “이데아론’ 이래로, 칸트에 의하면 ‘물자체’로, 헤겔에 있어서는 ‘절대정신’으로 나타난다. 다른 하나는 이 진리(이데아)는 반드시 인간 언어(이성)에 의해 포획될 수 있다는 확신이다. 물론 우리의 공부가 부족해서 지식의 한계가 있을 수 있지만, 공부가 끝나는 그날 우리는 그 진리들을 몽땅 우리의 언어로 다 말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 그리하여 당당하게 하산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인간에게 있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 이성(언어)에 의해 세계를 모두 이해 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음성중심주의’라 부른다. [본문으로]
  3. Jacques Derrida, Deconstruction in a Nutshell. Ed. John D. Caputo, (New York: Fordham University Press,1997), 9.&#10;: 플라톤으로부터 시작된 서구철학은 “형상과 질료, 주체와 대상, 주관과 객관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 들 둘러싼 철인들의 투쟁의 역사였다고 할 수 있다. 특별히 플라톤은 우주의 창조를 설명하면서 형상(이데아)이 어떻게 질료위에 구현되어 사물들이 형성되는지에 관심하였고 그 과정에서 조물주(데미우르고스)가 개입한다고 보았다. 물론 플라톤에게 있어 주된 관심사는 이데아(형상)에 있었다. 현실은 이데아의 모방이고, 현실에서 이러한 이데아가 구현되는 질료, 터, 대지를 ‘코라’라 불렀다. 이데아는 질서(Order)이고 코라는 혼돈(Chaos)를 상징한다. 이데아를 코라에 이식함으로 코라는 혼동을 이겨내고 안정과 질서를 찾을 수 있다. 이렇듯, 플라톤의 우주론에 있어 이데아는 주인공, 코라는 이데아를 떠받이는 조연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데리다는 (플라톤 자신도 인식하지 못했던) 플라톤 텍스트 내에서 코라가 차지하는 비중을 새롭게 발견한다. 즉, 코라가 없이는 이데아가 발현되지 않더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사실을 외부에 있는 다른 문건이나 자료를 통해 찾아낸 것이 아니라, 플라톤의 텍스트내에 이미 그러한 요소가 있더라는 것이다. 코라는 논외의 영역이고, 중요하지 않은 단지 이데아를 빛나게 하는 엑스트라 역할을 하는 것 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꼼꼼히 플라톤을 읽어보니 코라 역시 이데아 못지 않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데리다는 지적해냈던 것이다. [본문으로]
  4. 데리다는 쥴리아 크리스테바와의 대담에서 차이과 텍스트의 관계에 대한 그녀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새로운 글쓰기의 개념을 산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차이(difference)로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차이들의 유희는 실제로 어떤 순간에, 어떤 의미에서도 어떤 단일한 요소가 그 자체로 현전하거나, 스스로만을 참조하는 것을 금지시키는 종합과 참조를 전제로 합니다. 말해진 담론의 영역이건 씌어진 담론의 영역이건간에 어떤 요소도 그 역시 단순히 현전하지 않는 또 다른 요소를 참조하지 않고서는 기호로서 기능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연쇄적 맞물림은 각 ‘요소가’ 그 자신 속에 체계의 다른 요소들의 흔적에 의거해 구성되게 합니다. 이러한 연쇄적 맞물림의 망의 구조가 텍스트이며 한 텍스트는 또 다른 텍스트의 변형 속에서만 산출됩니다 ………..(중략)………. 차이로서 문자는 그러므로 현전/부재의 대립에 의해 더 이상 사유될 수 없는 구조입니다. 차이는 요소들이 서로를 참조하는 차이들, 혹은 차이들의 흔적의 그리고 공간화의 체계적 유희입니다.” - 자크 데리다, 『입장들』, 박성찬 편역 (서울: 솔 , 1992), 49-5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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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종철
    2012.02.08 01:2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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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미진진하게 읽고 갑니다요. 그런데 logocentrism을 음성중심주의라고 번역하는 것은 약간 생소합니다요.. ^^
  2. hur
    2013.12.18 01:2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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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우 큰 Inspiration이었어요. 이제까지 해석학적인 측면에서 놓치고 있던 부분이 너무 많았던것 같아요 님의 천재성에 감탄하면어 퍼갈께요 ㅎㅎ~~

‘자크 데리다’ 특별기고[각주:1]
: 천안함 침몰을 둘러싼 해체론적 독법 (II)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과정)


(지난 호에 이어)

 

해체론, 비어있는 중심을 꿈꾸다

세상에는 우리가 뭐라고 꼭 집어서 말하거나 드러내보일 수는 없으나, 그 집단의 성원들이 모두 있는 것으로 암묵적으로 합의한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것이 광의적으로 인간일반 전체에 형성되어 있는 것을 고르라면 종교라고 할 수 있겠죠. 일정 지역, 일정 거민들에게 통용되는 그것을 분석하려면 그 지역의 역사와 사회, 문화 전반에 대한 공부가 필요합니다.

한국의 경우를 들어 설명하자면 한국 현대사에서 나타났던 일제식민지 시절, 광복, 분단, 한국전쟁, 군사독재, 민주화 운동, 반공, 빨갱이, 좌파……이런 격동 속에서 한 평생을 요동치며 살아온 한국보수층의 눈으로 볼 때, 북한이 천안함을 타격했다는 것은 그들이 확실히 물증을 제시할 수 없고 밝힐 수 없다손 치더라도 그것이(북한이) 거기에(천안함을 침몰시켰다는 것) 있었다는 것은 대부분의 한국 보수층들이 동의하는 사실입니다. 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문명충돌론, 이슬람 강경테러분자, 헤즈볼라, 9.11, 오사마 빈라텐, 사담 후세인……이런 기표들은 부시로 상징되는 미국 보수층들에게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없지만 진실은 그것이(대량살상무기) 그곳(이라크)에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과 미국이 설정하고 있는 천안함과 이라크를 둘러싼 그들의 진실은 미지의 무언가로부터 유래합니다. 결과와 양상은 다르지만 미지의 어떤 것에 의지한다는 점에서는 해체론의 그것과 너무나도 닮았습니다. 저는 그것을 메시아적인 것이라 표현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메시아로 상징되어져서 무엇인가를 정초하고 토대 지어 깃발을 펄럭이며 그 아래로 사람들을 줄 세우는 것은 배격합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존재론적 확신이 역사의 진행과정에서 수많은 메시아주의를 낳아 사람들을 광기로 몰아넣었기 때문입니다. 천안함 침몰을 둘러싼 한국사회의 논의과정, 이라크 침략을 둘러싼 미국의 그것은 해체론과 동일하게 알 수 없는 어떤 것’(저의 용어로는 메시아적인 것’)에 기인하나, 그것들은 해체론과는 반대로 너무나도 빠르고 확고하게 중심을 가득 채우는 기재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점이 바로 해체론에서 가장 경계하는 대목입니다.

저에게 있어 메시아적인 것이란 멈추지 않고 의혹에 휩싸여있는 그 무엇입니다. 그곳은 누구나 들어 올 수 있으나, 그 누구도 정착할 수 없는 탈영토화된 공간입니다. 설사 그곳에 일정 기간 동안 시대를 대표하는듯한 지배적 정서가 있어 호령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일시적 예외적 사건의 예로 기록되어진 후에 다시 괄호밖으로 미끄러지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부분이 바로 백악관이나 청와대와는 다른 해체론의 수사학입니다. 어떤 미지의 것에 기대어 이라크의 살상무기, 북한의 천안함 타격을 당연시하는 그들의 논리는 언뜻 해체론과 방법적인 면에서 공통점이 있는 듯 하나, 해체론에서 담론 너머의 가능성의 형태로 남기고자 하는 부분을 그들은 가득 채우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해체론과는 다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광기 안으로 미지의 타자를 끌어들이고 그 미지의 타자를 다시 투사하여 자신들의 논리를 정당화합니다. 하지만 해체론은 오히려 그와 반대로, 내 안에 도사리고 있으면서 호시탐탐 출몰을 꿈꾸는 광기의 욕동을 부단히 경계하면서 그 요소들을 미지의 타자에 기대어 밖으로 쫓아냅니다. 그리하여 오늘의 우리를 부단히 반성하고 수정도록 합니다. 바로 이점이 해체론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My Autobiography, 나는 왜 해체론으로 세상을 읽는가?

벌써 20년 전 일이네요. 레닌의 동상이 붉은광장에서 철거되는 것을 지켜보며 저는 적잖은 충격으로 빠져들었습니다.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는데……저에게 두 가지 질문이 생겼습니다. 하나는 현실 사회주의는 왜 좌절되었는가? 에 대한 부분입니다. 이 물음은 문제의 원인을 외부(자본주의의 발전과 승리)에서 찾기보다는 사회주의 내부의 문제, 즉 사회주의 혁명이 어떻게 전체주의적 폭압으로 전도되었는가? 에 대한 뼈아픈 자기반성과 관계된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다음 기회에 따로 시간을 내어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하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자본의, 자본에 의한 전 지구적 재편이 완료된 시점에서 어떻게 다시 혁명을 사유하고 실천할 수 있는가? 에 대한 과제가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 무렵 출판된 책이 Specters of Marx (1993)입니다. 이 책을 전환점으로 하여 저는 윤리적, 정치적 이슈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신자유주의가 양산한 문제들에 도전하기 시작했습니다. Gift of Death (1995), Of Hospitality (2000), Acts of Religion (2001), For What Tomorrow…(2004) 등이 그런 작품들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저의 후기 사상에서 우선 말하고자 했던 것은 전과 같은 강렬한 유토피아적인 열망도 아니고 그것을 위한 가열찬 투쟁의지도 아닙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런 유토피아적인 것들의 실현에 저는 솔직히 관심이 없습니다. 역사는 미래에 대한 확신을 제공해 주기보다 오히려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늘 우리에게 판단력을 요구하고, 기존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흔들어 놓습니다. 따라서 항상 자신을 새로운 실험적 상황에 던지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저의 요즘 관심사는 이와는 정반대로 진보에 대한 신화를 비신화화하는 것입니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의 무대처럼 쓸쓸하고 공허한 탈 중심화된 상태, 즉 기표가 사라진 혼돈을 사랑하고, 큰 타자의 부재를 인정하는 하는 것입니다. 부연하자면, 텅 비어 있는 실재의 공간에서 어떻게 하면 모든 하나 하나의 개체들이- (불법) 외국인 노동자라는 이유로,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3세계 민중이라는 이유로, 늙었다는(혹은 어리다는) 이유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여자라는 이유로,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무리에서 소외되지 않은 채 참된 민주적 소통을 할 수 있을까? 다시말해, 텅 빈 실재의 공간에 어떻게 하면 공적 자유의 바람을 흐르게 할 수 있을까? 입니다. 다시는 그 무엇에 의해 점거당하지 않은 채로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리를 갈구하던 니고데모를 향한 예수의 답변,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는 듣지만,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 ( 3:8)’라는 경구는 우리로 하여금 많은 상상을 하게 합니다. 또한 이 성전을 허물라시던 예수 자신의 외침과 후대 사람들이 했던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다라고 하는 예수에 대한 평가 또한 해체론이 추구하는 그것과 전략적 제휴의 가능성을 띄는 대목이라 하겠습니다. 신학과 해체론과의 대화는 현재 제가 하고픈 가장 매력 있는 작업이자 저의 최후 작업이 되지 않을까 싶군요.

에필로그: 오바마에 대한 추억……그리고 악몽 꾸다

합조단의 발표가 있은 지 며칠 후 (5 24), 이명박 대통령은 천안함과 관련하여 북한에 대한 경고를 내용으로 하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였습니다. 이에 미국은 한국정부의 대응에 대해 절대적 신뢰를 보냈다고 합니다. 반 백 년 넘게 이어온 온 한미간의 공조로 미루어 볼 때 별 놀랄만한 일은 아니지만…..개인적으로는 오바마 역시 다른 미국의 대통령들이 했던 보편적인 나쁜 짓을 어느 정도는 다 하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각주:2]

저는 꿈을 잘 꾸지 않지만, 그 날은(이명박의 대국민 담화가 있었던) 간만에 꿈자리가 사나왔습니다. 영화 의 마지막 장면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텔레비전 밖으로 악령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기어 나오는 장면과 유사한 꿈이었습니다. 화들짝 놀라 일어나 주방으로 나와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키고는 잠이 깼는데, 정신이 차려지면서 한동안 잊고 지냈던 과거 군사독재 시절 대한민국을 감싸고 있었던 음습하고 공포스런 기억들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더군요. 정말 기분 엿 같았습니다. 대한민국 구천을 떠도는 잡다한 유령들이 다시 출몰하는 겁니까? 어디서 용한 무당 한 분 모셔다가 푸닥거리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잡귀야 물러가라!’하면서 말입니다. <>

추신> 엊그제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월 말에 한국을 방문해 한기총(?)에서 주관하는 무슨 집회에 참석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대형운동장에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모여 미국을 찬양하고 북한의 도발을 규탄하는 집회였고 은혜롭게 행사가 마무리되었다는 기사였습니다. 이라크전을 일으켰던 유령과 천안함을 둘러싸고 있는 유령간의 극적인 회합이었겠군요. 재미 있었겠네요. 누가 후일담 좀 들려주십시오. 

ⓒ 웹진 <제3시대>


  1. 데리다는 2004년 세상을 떴습니다. 물론, 졸고는 가상입니다. 필자가 이해한 데리다의 시선으로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북한의 천안함 침몰간의 상동성을 밝히는 것이 지난 호 웹진 내용이었다면, 이번 웹진에서는 실재에 대한, 아니 우리가 실재라고 믿고 있는 ‘어떤 것’에 대한 데리다의 해체론적 독법이 갖는 함의에 대해 다룹니다. [본문으로]
  2. 필자가 현재 재학중인 Chicago Theological Seminary(이하 CTS) 교수, 동문, 학생들이 느끼는 오바마에 대한 애정은 남다릅니다. 아시다시피 시카고는 오바마의 정치적 고향이고 삶과 사상의 근거지입니다. 오바마의 집이 CTS와 5분 거리이고, 오바마가 20년 동안 다니며 결혼하고 자녀들도 세례받고 선거운동 직전까지 출석했던 시카고 트리니티 UCC교회가 CTS가 속한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UCC 교단이라는 점. 지난 대선기간 중 ‘갓 뎀 아메리카’논쟁으로 선거초반 최대 정치적 이슈를 이끌어냈던 시카고 트리니티 UCC교회 담임목사이자 오바마의 멘토인 제레마이 라이트 목사와 오바마 정치적 후견인이라 할 수 있는 현존하는 흑인 인권의 상징이자 전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제시 잭슨 목사등이 모두 CTS 출신이라는 점, CTS교수님 중 몇 분은 오바마와 같은 교회에 출석하면서 직.간접적으로 몇 가지 이슈들(예: 동성애, 낙태문제등에 있어 기독교적 대응)에 있어 오바마캠프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CTS는 마치 집안 사람이 대통령이 된 듯한 착각과 황홀경에 빠져들었습니다. 이번 여름학기에도 제레마이 라이트 목사가 일주일간 ‘미국정치와 인권, 기독교’ 뭐 그런 내용으로 강의하고 있습니다. 새삼 그 모든 것들이 씁쓸하게 다가오는군요. 미국 진보세력의 희망이라 불리웠던 오바마 역시 미국의 국익에 충실한, 보통의 미국 대통령이었습니다. 물론 국내 정치에 있어서는 미국 진보진영의 숙원사업이었던 의보개혁안을 통과시키고, 동성애자의 군복무에 대한 평등권을 추진하는 등 전직 대통령들과는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는 하나, 외교부분에 있어서는 다른 미국의 대통령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프간 전쟁이나 이번 천안함 침몰을 둘러싼 입장 표명에서 보듯이) 미국의 정의와 이익을 위해서라면 물불 안 가리고 유령의 등장을 묵인하고 그것을 이용할 줄 아는 그런 대통령 말입니다. 어쩌면 미국의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미리 유령들이 짜놓은 판대로(매트릭스) 말판을 놓는 역할만을 담당하는 허수아비라는 생각이 드네요. 너무 오바마에게 큰 기대를 했었나 봅니다. 또 속았군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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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20 15:0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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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예수님은 결코 니고데모에게 '바람이 임의로 분다'는 말씀을 하신적이 없습니다. 이 말은 '그 영이 임의로 분다'에 대한 오역입니다. 이 책을 추전합니다. "하나님의 양으로 태어나라"


, 시대와 하라!
: 데리다로 신학하기를 위한 서론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과정)


시카고 통신: 여기는 시카고…


시카고는 전미 최대의 신학 인프라를 갖추고 있으며 단일지역으로는 가장 많은 신학생들이 배출되는 고장이다. 시카고 지역의 가장 큰 신학적 특색은 초교파적으로 구성된 11개의 신학교가 연합체(ACTS: The Association Of Chicago Theological Schools)[각주:1]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ACTS에 속한 신학교의 모든 학생들은 어느 학교에서든 수업을 들을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노스웨스턴대학, 로욜라대학, 드폴대학, 위튼대학, 시카고대학 등에 있는 종교학, 철학과와도 연관을 맺어 필요에 따라 언제든 수강이 가능하다.[각주:2]

ACTS에 소속된 학교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Mainline진영(진보적)의 학교와 Evangelical 진영(보수적)의 학교, 그리고 천주교 학교에 이르기까지 신학적 스펙트럼도 다양하다. ACTS에 소속된 전임 교수는 400여명, 학생은 3천 여명, 1년에 개설되는 강의는 총1000여 강좌에 육박한다. ACTS는 또한, 11개의 멤버 학교 외에 Zygon Center (Religion & Science), LGBT Center (Queer theology), Christian-Muslim Studies, Christian-Judaism Studies, Center for Study of Black theology, Center for Study of Korean Christianity 등 신학과 각 분야 연구를 위한 10여 개가 넘는 센터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 연구소들을 중심으로 쟝르와 주제를 넘나드는 신학적 대화와 공방이 일년 내내 현기증 날 정도로 펼쳐지고 있다. (갑자기 제가 시카고를 홍보하는 약장사가 된 느낌이네요)

그러나 이토록 풍부한 신학적 토양에도 불구하고 시카고 한인교회의 현실은 너무나도 척박하다. 대부분 70년대 말 80년대 초 중반에 이민 온 세대가 시카고 한인교회들의 주된 회중들이다. 본토보다 더 강한 반공의식, 더 철저한 가부장제도를 바탕으로 교회가 운영되고, 그러한 (한국) 전통의 고수가 한인교회의 identity가 되어버렸다. 70~80년대 한국교회의 정서가 그립다면 시카고 교회에 한 번 방문해 보기를...

특별히 요 근래 시카고를 대표하는 몇몇 대형(?) 교회들이 (30년 가까이 시카고 이민 1세대를 목양했던) 1대 목회자들의 은퇴 후, 2대 목회자로의 transition과정에서 혹독한 교회분쟁에 휘말려 있는데, 이 과정에서 시카고 한인이민교회의 고질적 문제들이 불어져 올라오고 있다. 필자도 그 교회 중 한곳에서 유학생 사역을 하고 있는데, 교회분쟁 과정에서 30년 이민 생활을 함께했던 교우와 친지들끼리 순식간에 편이 갈려 서로를 비방하고 저주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이러한 시카고 한인 교계의 현실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도모하는 기획 (인터뷰)기사를 시카고에 있는 한 기독언론사에서 시리즈로 연재하고 있다. 첫 회가 시카고 보수적 진영의 신학교를 대표하는 트리니티 신학교에서 공부하는 목사의 인터뷰였고, 두 번째 차례로 시카고 진보신학교에 속한 인물 중에 어쩌다 필자가 선정되었다. 인터뷰의 내용은 최근 진보 진영 기독교 윤리학의 동향과 시카고 한인 교회를 위한 기독교 윤리적 대안이 무엇인가에 대해 기자가 질문을 하면 이에 답하는 형식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인터뷰 기사 밑에 달린 보수진영 사람들의 댓글에서 발생하였다.[각주:3](아래에 댓글 일부를 소개한다.)

케리그마님: 목사님 말씀 중에 신의 다차원적인 존재방식에 대해서는 동의 할 수가 없군요
흠흠 님:  이상철 목사님은 동성애, 이슬람의 테러에 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
유일신자님: 타자의 윤리에 포커싱하다 보면 윤리적 기준이 상실된다는 점입니다.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을 말씀으로 바로 알고 경험으로 바로 믿자는 것이 기독교라고 할 수 있는데 혹시 이 의견에 코멘트가 있으신가요?

 
난 지금 이 댓글들에 댓글하기 위하여 30분이 넘게 노트북 앞에 앉아있다.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교회의 퇴행적 보수주의와 현실 세계에서 진행되는 자본과 테크놀로지의 결합,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탈경계/해체적 사유들이 서로 다른 포물선을 그리는 이 분열된 21세기 사회속에서 신학은/교회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이 글이 끝날 무렵 난 위에 있는 저 괴물같은 질문들에 대해 답을 달수 있을까?

혜자, 장자에게 길을 묻다.

지난 ‘웹진 22호’에서 ‘동양적 전통에서 기술이 어떻게 도의 경지로까지 상승하는가?’를 설명하면서, <장자> ‘양생주’에 등장하는 포정이 소를 잡는 이야기를 소개한바 있다. 이번 호에서는 <장자>의 첫번째 장인 ‘소요유’에 나오는, 대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혜자와 장자의 대화를 잠시 언급하고자 한다. 

혜자가 장자에게 말하였다.
"나 있는 곳에 큰 나무가 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개똥나무라 부르오, 그 줄기는 흙투성이어서 먹줄을 칠 수가 없고, 그 작은 가지들은 뒤틀려 있어서 자를 댈 수도 없소. 길가에 서 있지만 목수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소."

 장자가 말하였다.
 "지금 당신은 큰 나무를 가지고 그것이 쓸데가 없다고 근심하고 있소. 어째서 그 곁을 왔다 갔다 하거나 그 아래 노닐다가 드러누워 낮잠을 자지 않소? 쓸데가 없다고 하여 어찌 마음의 괴로움이 된단 말이오?

혜자는 전국시대의 사상가로 위나라의 재상까지 올랐던 실용주의 정치가였다. 그가 커다란 나무가 있는데 도대체 쓸모가 없다고 푸념하면서, 은근히 장자의 사유가 지닌 비현실성과 허황됨을 비판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장자는 ‘그 나무 아래서 노닐다가 드러누워 낮잠을 자라’는 말로 응수한다. 장자 특유의 무위자연에 입각한 현실논리를 비트는 답변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장자의 대답은 현실주의자인 혜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절대 수긍이 가는 답이 아니다.

혜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장자가 말하는 가치란 세상 안에서, 현실세계에서 운영되는 원리가 아닌, 세상 밖의 질서이다. 무한질주와 무한경쟁의 시대에서 느림을 이야기하고 탈속적인 이상을 언급하는 장자의 괴변에 혜자는 아마도 치를 떨었을 것이다. 그것은 장자도 마찬가지다. 왜 그렇게 스스로를 현실원칙에 매여 학대하느냐고, 왜 그렇게 갑갑하게 세상 속에 갇혀있냐고 하면서 혜자를 이해 못한다. 이상에서 보듯이 장자와 혜자는 서로 다른 대척점에 서있다. 장자에 의하면 혜자는 세상 안으로만 수렴되는 존재이고, 혜자에게 장자는 세상 밖으로만 발산되는 존재다. 혜자는 세상 안에 갇혀있다는 측면에서, 장자 역시 세상 밖에 갇혀있다는 측면에서 둘은 내용은 다르지만, 동일한 방식으로 운동을 한다는 점에서는 서로를 닮았다. 

둘의 대립은 기독교적으로는 초월과 내재의 갈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고, 철학적으로는 주관과 객관/ 내용과 형식이 어떻게 화해될 수 있는가에 대한 오랜 물음이기도 하다. 둘의 갈등은 또한 무속의 견지에서 보면 시간과 공간이 지니는 한계를 초월하지 못하는 육체와 이제는 육체를 벗어난 혼이 더 이상 육체에 스며들지 못해 구천을 떠돌며 육체와 대립하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으리라. 이렇듯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애초부터 소통보다는 불통이, 통일보다는 차이가 삶을 지배하였던 운영원리 아니었나싶다. 그렇다면 신학은 이런 불통과 차이에 대해 어떤 답변을 준비해야 하는 것일까?

시대에 답했던 신학의 대응들

20세기 신학자들이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은 ‘How to explain what happen to you?’, 즉 ‘신학적 대상(what)’과 ‘신학적 방법(How)’에 대한 문제였다. 지난 20세기는 실로 야만과 광기, 그것에 맞서는 투쟁과 싸움이 신학적 긴장의 원천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근대 계몽주의에 영향을 받은19세기 자유주의 신학에 반기를 들었던 신정통주의신학, 20세기 초반 발생한 미국의 경제공항은 자본주의의 패단에 대한 신학적 문제제기를 일으켜 Social Gospel운동으로 이어졌다. 2차 대전은 신학적으로 많은 물음과 고민을 던져주었던 사건이었다. 서구신학은 아우슈비츠 이전과 그 이후로 나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우슈비츠 이후의 신학은 악에 대한 문제, 인간의 고난에 대한 문제, 그리고 신에 대한 물음에 있어 전면적인 도전과 이에 걸맞는 새로운 답변을 신학자들에게 요구하였다.

2차 대전 이후 지속된 이데올로기적 대립은 정치신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기독교와 맑시즘과의 대화를 여는 계기가 되었으며, 인간해방과 자유, 사회정의를 위한 포괄적 물음으로 번져나갔다. 이는 구체적 context에 기반한 신학적 답변을 낳았는데, 흑인신학, 여성신학, 해방신학, 민중신학 등 소위 ‘눌린자들의 하나님’에 대한 서로 다른 경험들이 소중히 발굴되어 진지하게 이야기되기에 이른다. 20세기 말 불어 닥친 냉전의 종식과 신자유주의로 요약되는 자본의 전 지구적 승리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자본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이에 대한 신학적 응전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남겼다. 이상에서 잠시 살펴본 바와 같이 지난 세기는 사태와 진상에 대한 분명한 이슈와 선명한 대책을 요구하는 신학적 글쓰기를 요구했고, 이런 까닭에 당대의 문제의식들에 대해 (어느 입장에 서있든) 신학적으로 ‘무엇을(what)’ 과 ‘어떻게(how)’를 밝히는 것이 급선무였던 시대였다.

하지만 지금 세기는 그 어디에도 신학이 가야 할 바가 전시대처럼 분명히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21세기 (자본과 결합한)테크노피아 세계속에서 우리의 치열했던 신학은 점점 생기와 긴장을 잃어가고 있고, 테크노피아에 길들여져 그 안에서 기쁨을 얻는 ‘행복의 신학’ 만이 만개하고 있다. 그 결과 본래 신학이 붙들고 있었던 시대와의 대립과 긴장은 시대착오적 발상이 되어버렸고, 이러한 정황 속에서 신학하는 우리는 다시 신학함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으로 내몰리고 있는 형국이다. 

신학, 다시 답하라!

앞서 언급했던 시카고의 여러 연구기관 중 Religion & Science분야를 다루는Zagon Center가 있다. 매 학기 월요일 저녁Zagon에서 주관하는 세미나가 열린다. 2006년 봄학기 때 ‘Religion & Ethics’이란 과목이 개설되었는데, 리처드 도킨스와 같은 과학자(혹은 종교학자)들이 펼치는 종교무용론을 다루면서, 이러한 주장들을 오히려21세기 새롭게 등장한 ‘종교현상’이라 결론지으며 다음과 같은 과제를 남겼다: 과학과 종교의 활발한 통섭으로 인한 존재와 기원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통찰, 전 지구적으로 전개되는 자본의 일방적 전횡과 그로 인한 (이념적, 지역적, 문화적) 장벽의 제거는 21세기 삶의 지형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이렇게 변화된 종교상황 속에서 지금 시대 신학적 methodology의 문제는 ‘what’과 ‘how’ 가 아니라, ‘왜 (why)’의 문제, 즉 (21세기형) 신학함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로 전환되어야 한다.

교회 문을 열고 처음 들어섰을 때부터 신앙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였고, 신학교 입학부터 졸업까지 계속 그 물음을 갖고 씨름하였는데, 그래서 어느 정도 나름의 대답들이 확립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왠 새삼 정체성 타령인가? 라고 의아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 이는 신학자와 목회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왜 선포하는가?/쓰는가?’의 문제이고, 신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왜 읽는가?/듣는가?’이며, 일반인(크리스챤이 아닌)들에게 있어서는 ‘왜, 한국의 기독교가 개독교인가? / 그것은 정확한가?’ 의 문제이다. 총체적으로 ‘왜 우리는 신학하는가? 왜 우리가 신앙인인가?’에 대한 물음이라 할 수 있다.

‘최첨단의 테크놀로지와 합리성이 만개하는 시절에 이런 질문은 너무 나이브하고 신비적이지 않느냐?’고 반문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암흑의 시대였던 중세에나 가능했던 질문이라고 말이다. 맞는 말이다. 합리와 효용과 속도가 강조되는 시대에 왠 종교적 신비? 하지만 너무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종교적 신비에 대한 일반인들의 호기심은 시대와 문명이 발전하고 진보할수록 퇴색하는 것이 아니라 더 확고하게 그 가치가 빛을 발하고 있다.

신학, 데리다를 초대하다

이 대목에서 주의해야 할 사항은 신비주의를 전시대와 같은 현실로부터의 이월(도피) 내지 영적 황홀경에 대한 동경으로만 몰아가지 말자는 것이다. 지금 말하는 신비주의란 저 피안의 세계에 무엇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의 가치는 신학적 도그마와 신앙고백적 환상이 무엇이고, 그것이 과연 실재하는가에 대한 몰두가 아니라, 어떤 ‘메시아적인 것 a messianicity’[각주:4]이 나를 떠다니게 하고, 나를 한곳에 정주하지 않게 하며, 나를 체제에 순응하지 못하게 한다는 점이다.

그런 ‘메시아적인 것’에 휩싸인 우리는, 체제가 완성한 메트릭스(예: 신자유주의, 일방적 성공만을 추구하는 영광의 신학, 뉴타운, 빨갱이….등)를 향해 침 한번 “찍!” 뱉으며 딴지를 거는 우리이고, 혹은 그(것)들을 상대로 너무 격렬하지 않게 “놀고들 있네!” 혹은 “지랄하고 자빠졌네!!”라고 읊조리면서 살짝 비열하게 비웃어 주는 우리이며, 또는 절정을 구가하는 무소불위한 현 자본주의체제에 흠집을 내기 위한 위험하고 불온한 상상을 하고, 그것을 스멀스멀 감행하고 도발하는 우리이다. (데리다의 표현에 의하면) 마치 유령처럼 말이다. 이것이 데리다가 말하는 (지금까지 필자가 독해한) ‘a messianicity without messianism’[각주:5] 속에 숨겨진 음모이고, 그 음흉한 속삭임이 지금 우리를 유혹한다.

ⓒ 웹진 <제3시대>


 

  1. 아래주소를 클릭하면 ACTS 홈페이지로 연결됩니다. http://www.actschicago.org/ [본문으로]
  2. 특별히, 데리다와 레비나스에 관한 미국내 권위자들이 시카고에 몰려있다. How to read Derrida로 유명한 도이처 교수(노스웨스턴 철학과), 미국내에서 데리다의 후기 저작들을 번역하여 소개하고 있는 마이클 나스 (드폴대 철학과), 최고의 레비나스 권위자라 평가받는 페이퍼 젝(로욜라대 철학과), 그리고 미국내 인문학도들 사이에서 여신처럼 추앙받는 사회철학의 대가 누스바움(시카고대)까지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학자들이 시카고 시내에서 30분내 거리에 몰려있다. [본문으로]
  3. 기사에 대한 내용은 아래 주소를 클릭하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chi.christianitydaily.com/view.htm?id=184373&code=pd [본문으로]
  4. 시카고 신학교의 Ted Jennings 교수는 2005년 출판된 그의 저서 Reading Derrida/Thinking Pual (CA: Standford Univ, 2005))에서 데리다가 말하는 ‘메시아적인 것’을 전횡적 합리주의에 대한 의식적 ‘딴지 걸기’ 내지는 ‘무화 하기’로 읽어낸다; “데리다는 법의 테두리를 넘어선 정의와 경제적 원칙을 넘어선 선물, 그리고 환대와 호의에 대한 그의 해석에 있어 메시아주의가 아닌 메시아적인 것에 대한 해석의 중요성을 언급한다.”(163) 이에 대해 좀 더 상상하자면, 이는 현실 논리에 대한 장자식 대응과도 관련이 있다. 개똥나무를 둘러싼 서로 다른 장자와 혜자의 인식, 즉 합리주의를 대변하는 혜자는 개똥나무의 무용론을 주장하지만, 오히려 장자는 개똥나무가 제공하는 그늘에서 낮잠 자는 것을 유토피아(메시아적인것)라 받아치면서 자본의 현실적 실용 논리를 무너뜨린다. 이 대목에서 장자적 사유와 데리다의 해체가 만나는 접점을 가늠해 볼 수있는데, 김형효 선생의 ‘노장사상의 해체적 독법’(1999, 청계출판사)이 이에 대한 좋은 입문서가 될 것이다. [본문으로]
  5. Jacques. Derrida, Acts of Religion, Edited by anidjar (NY: Routledge,2002), 56 &#10;: 데리다의 전기사상이 언어적 전회를 통한 서구형이상학 전반에 대한 다시보기(해체)를 시도한다면, 후기 데리다는 이를 바탕으로 각론으로 들어가 종교적, 사회적, 윤리적 이슈들에 대한 적용을 감행한다. ‘a messianicity without messianism’은 데리다 후기철학을 대변하는 구절이다. 데리다의 해체(Deconstruction)에 대한 오해와 그것이 지니고 있는 신학적/윤리적 함의를 말하는 것은 녹녹치 않은 작업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데리다는 오랜 세월을 돌아 그의 생의 마지막 얼마를‘메시아적인 것’이 어느 때 도래하는가? 그리고 ‘메시아적인 (것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신학적 물음앞으로 나아간다. 그 과정에서 바울을 다시 독해하고, 죽은 맔스를 다시 되살리며, 레비나스와도 화해를 하게 되는데… 이상은 필자의 논문 주제이기도 하다. (아직은 배움이 짧아 변변하게 말할 것이 없지만, 차차 공부가 되어지는 것을 보며 이 공간을 통해 성과와 미흡한 부분들을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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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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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5.14 16:0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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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시카고의 교회. 신학담론장의 그 간극이
    아찔하게 느껴지네요.

    헌데 데리다를 전유한 '메시아적인 것'의 개념에는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게 합니다. 말씀하신 " ‘메시아적인 것’에 휩싸인 우리는, 체제가 완성한 메트릭스(예: 신자유주의, 일방적 성공만을 추구하는 영광의 신학, 뉴타운, 빨갱이….등)를 향해 침 한번 “찍!” 뱉으며 딴지를 거는 우리이고, 혹은 그(것)들을 상대로 너무 격렬하지 않게 “놀고들 있네!” 혹은 “지랄하고 자빠졌네!!”라고 읊조리면서 살짝 비열하게 비웃어 주는 우리이며, 또는 절정을 구가하는 무소불위한 현 자본주의체제에 흠집을 내기 위한 위험하고 불온한 상상을 하고, 그것을 스멀스멀 감행하고 도발하는 우리"

    라는 이야기는 오히려 오늘날의 후기자본주의의 명령인 "네 멋대로 해라"와 곧장 조응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사실상 체제를 오히려 유지하는 냉소적인하어떤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데리다에게 메시아적인 것이란 언제나 한 사회를 정초하고 있으면서 또한 파괴하는 어떤 사건이자 존재론적인 차원이 아닌지요. 그런면에서 그것의 도래, 혹은 유령의 귀환은 서술하신 것보다 훨씬 더 그 "존재에서부터" 위협적인 어떤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것은 존재이자 존재가 아니라는 점에서(유령) 더욱 무서운 것이겠지요.

    저도 벤야민을 요즘 공부중이라 앞으로 이어지는 연재가 무척 기대가 됩니다. 꼼꼼히 읽으면서 많이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2. 이상철
    2010.05.15 02:5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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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지적입니다. 그 이유는 흔히 우리가 말하는 후기구조주의 계열의 학자들(사실 그 누구도 자신이 후기구조주의학자라고 말한 사람은 없지만) 을 향한 비판의 주된 내용이 바로 기명님이 지금 거론하신 부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부분은 이성에 의한 이성의 자기비판 내지 자기 갱신의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하버마스 같은 사람들이 지니는 문제제기와도 일맥상통한 부분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버마스는 들끓는 이성애(理性愛)를 바탕으로 탈이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딴지를 걸지요. 기명님의 댓글은 현대사상계에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논쟁의 핵심을 잘 지적한 것이고, 이 문제는 앞으로도 우리들에게 계속 남아 유령(?)처럼 떠돌것입니다.

    푸코가 니체를 읽고 나서 단 하나의 니체주의, 정전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유력한 니체주의가 있다는 생각에 반대했다지요. 다종의, 다성의 니체를 상정할 수 밖에 없다는 고백일 것입니다. 데리다 역시 그런 인물이 아닐까 싶네요. 데리다는 (지금까지 제가 읽은 바로는) 단 한번도 메시아에 대해 말하지 않았습니다. 메시아로 상징되어져서 무언가를 정초지으려는 집단, 구호, 인물, 생각…등등을 완곡하게 거부합니다.

    ‘메시아적인 것’이란 기명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 (……)을 파괴하는 사건’이라는 지적은 옳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존재론적인 차원’이라는 지적에는 언뜻 동의할 수가 없네요. 데리다에 의하면 그 존재론적인 확신이 역사상 등장했던 수 많은 ‘메시아주의’로 환원되어 광기로 전환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기명씨의 지적처럼 이런 주장이 후기자본주의의 명령인 “네 멋대로 해라”와 조응될 수 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데리다는 본인의 후기철학으로 갈수록 실천적, 윤리적 덕목을 많이 드러내면서 적극적으로 후기자본주의가 양산한 모순들과 구체적으로 대결합니다.

    존재론적인 차원에서 데리다를 변호하자면 기존의 Ontology of Being의 관점에서 탈피하여, 베르그송, 들뢰즈로 이어지는 Ontology of Becoming, 즉 ‘사건의 존재론’ 계열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글쎄요, 데리다가 이 부분에 동의를 할 지는 모르겠네요. 워낙 Ontology에 대해 히스테리적 반응을 보였던 인물이라...

    결국, 문제는 So What? “데리다가 우리 삶에 갖는 효용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입니다. 천 개의 데리다가 등장을 합니다. 사람들마다 저마다 자기가 읽은 데리다를 말하는데, 솔직히 말해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자꾸 미끄러지네요. 하버마스는 이런 핑계로 답변을 유보하는 사람들에게 ‘언제까지 그렇게 유랑하며 살래? 그 따위로 살지 마!’라고 비난하는데......저 역시 당분간 그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좋은 지적에 감사드리며…또 뵙죠.
  3. 지나가는 과객
    2010.05.17 17:0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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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차적으로 이상철 님의 글보다는 기명님의 글이 좀 더 데리다의 종말의 개념을 더 잘 담지하고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많은 부분 데리다의 종말의 개념은 한편으로는 로젠쯔바이크 계열의 구속사 역사 철학에 대한 반대에 있지만,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후기 숄렘과 벤야민의 메시야적인 것을 따라 가지요. 제가 보기에는 데리다와 벤야민의 입장은 큰 차이가 없습니다. 결국 종말론적 역동성을 가지는 기표에서 역사의 체제와 모든 고착된 것을 찢고 갈라버리는 힘이 나온다는 점에서 둘은 모두 유사합니다. 로젠쯔바이크가 구원의 별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같이 상징 자체가 안정적으로 재해석을 거쳐 발전하는 소위 시오니즘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신적 폭력의 가능성이 열리는 그 어느 곳에서나 텍스트는 현실을 찢어 버리는 힘이 있지요.

    하지만 문제는 데리다와 벤야민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신비주의적 언어관에 있지요. 데리다에게서는 결국 여백에서 부터 우러나오는 사유의 무정형의 문체적인 힘 자체가 상징 자체의 메시야적 전개가 전혀 예측 불가능한 - 결국 부정신학적 역동성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벤야민에게서는 전혀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즉 순수 언어의 개념이 등장하는데 이 지점에서 벤야민은 이 지점에서 신의 창조물 자체가 모든 신의 정신적 언어로 이루어졌고 하기에 그 메시야적인 것은 실재로 신의 순수 언어가 드러나는 지점이지요. (벤야민의 미메시스에 대하여, 언어에 대하여)에 보면 많이 등장합니다.

    저는 이점에서 기명님이 말씀 하시는 것처럼 데리다의 입장을 존재론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풀이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기명님의 의도가 이것은 아니겠지요.
    정확히 표현하자면 진부하지만 언어 신비주의적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어떤 면에서 제가 보기에는 적어도 이상철 님께서 말씀 하시는 이죽 거림 보다는 점 더 강한 그 어떤 무엇- 즉 역사의 계기에서 스스로를 산종하다가 메시야적 계기를 불어넣고 다시 체계에 갇히지 않고 사라지는 그러한 역사의 새로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헤겔적인 새로움이 기실 변증법의 포로에 불과하다면, 데리다에게서 메시야적인 것이란 변증법을 넘어서서 그 여백에서 변증법을 조롱하고 그 예측불가능성 속에서 사라지는 것에 가깝습니다. 기표가 차연을 통해서 영원히 지연되는 의미의 껍데기만을 지속적으로 산출해내는 것 처럼, 역시 메시야적인 것은 하나의 기표일 뿐이고 이 지점에서 그 일어난 메시야적인 것 역시 단순히 껍데기로서 이후의 전혀 새로운 산종에 자신을 양도하는 것이죠.
  4. 이상철
    2010.05.20 20:4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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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서 제시한 과객님의(기명님도 포함) 발언에 동감을 표합니다. 데리다의 ‘메시아적인 것’ 에 대한 과객님의 해설은 제가 접했던 많은 ‘(데리다의) 메시아적인 것’에 대한 해설 중에서도 손꼽 을 정도로 이해하기 쉽고 분명한 언어로 쓰여진 글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의 종잡을 수 없는 ‘(데리다의) 메시아적인 것’에 대한 이해에 중요한 나침반이 될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과객님의 해석을 아래에 따라 적어봅니다.

    -‘역사의 계기에서 스스로를 산종하다가 메시아적 계기를 불어넣고 다시 체계에 갇히지 않고 사라지는 역사의 새로운 것’,
    -‘메시아적인 것이란 변증법을 넘어서서 그 여백에서 변증법을 조롱하고 그 예측 불가능속에서 사라지는 것’,
    -‘메시아적인 것은 하나의 기표일 뿐이고 이 지점에서 그 일어난 메시아적인 것 역시 단순히 껍데기로서 이후의 전혀 새로운 산종에 자신을 양도하는 것’


    우선, 제가 원글의 말미에 ‘메시아적인 것’에 대해 다소 거칠게 툭 던지며 글을 끝맺은 것에 대한 변명을 할 필요를 느낍니다. 두 분의 경우는 데리다의 ‘메시아적인 것’에 대한 방법론적인 측면을 강조한 반면, 저는 그 안에 깃들어 있는 해체적 태도(?)에 더 포커스를 두고 싶었습니다. 저에게 다가오는 데리다의 ‘메시아적인 것’은 운동의 매뉴얼이라기 보다는, 한 순간도 정주되지 않는 운동 지향성입니다. 그 지향성을 현실에서 드러내는 저의 태도를 과객님은 ‘이죽거림’ , 기명님은 ‘네 멋대로 해라’류의 냉소라고 지적하시며 그것보다는 ‘더 강한 그 어떤 무엇’이 있어야 된다고 말씀하셨데 일면 공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워지지 않는 갈증은 ‘메시아적인 것’을 설명하기 위해 끌어온, (과객님의) ‘더 강한 그 어떤 무엇’, ‘역사의 계기’, ‘변증법’ 등등의 용어가 일정의 시간과 공간을 거친 인간적인 大地를 항상 의식하고 전제하고 있지 않나 하는 의심입니다. 다시 말해 과객님이 전개한 내용의 근저에는 하이데거류의 인간, 즉 자기 스스로를 현실을 향해 내던지고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인간이 있고, 세계를 그 인간 중심으로 해석해 내려는 끈질긴 의지가 내재되어 있지 않나 하는 점이죠. 이 부분은 데리다가 항상 경계했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데리다의 ‘메시아적인 것’은 멈추지 않는 의문과 의심에 휩싸인 그 무엇이 아닐까요? 중심은 비어있어야 중심입니다. 누구나 그곳을 잠시 차지할 수 있지만, 그 누구도 그곳에 정착할 수 없는 헛헛함. ‘메시아적인 것’이란 그 헛헛함의 환유인 셈이죠. 저와 경로는 약간 달랐지만 과객님께서도 본인의 글에서 이러한 점을 강조하셨다고 봅니다: ‘다시 체계에 갇히지 않고 사라지는 역사의 새로운 것’, ‘그 예측 불가능속에서 사라지는 것’, ‘이후의 전혀 새로운 산종에 자신을 양도하는 것’.


    결론적으로, ‘메시아적인 것’이란 현실의 담론 너머 가능성의 형태(?)로 존재한다고 봅니다. 그것이 설사 어떠한 정의와 규격안으로 매몰되는 불상사가 발생한다해도, 그것은 단지 우발적 사건의 예로 기록되어진 후에 다시 괄호 밖의 가능성으로 퇴각하는 존재입니다. 현실의 논리와 법칙을 바탕으로 미래의 가능성을 타진하려는 의도, 내일에 대한 희망을 근거로 대지에 깃발을 꽂고 휘날리며 영토화하려는 음모...이 모두가 '메시아적인 것'이 취하는 영토화에 대한 히스테리한 반응의 덕목들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메시아적인 것'은 우리 인식밖의 알수 없는 영역이 있음을 또한 전제합니다. 그것은 우리 밖에 엄연히 존재하는 타자의 형태로 우리 현실을 향해 독설을 퍼붓고, 주문을 걸고, 용기를 주며, 다시 무소의 뿔처럼 가라고 속삭입니다. 그것을 데리다는 달리 표현할 분명한 말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다가 ‘메시아적인 것’이라 끄적이지 않았을까? 엉뚱한 상상해 봅니다. 이야기가 장황하게 흘렀내요.


    기본적으로 데리다의 글쓰기 스타일은 무척 독특하죠. 제가 한글 번역본, 영어본, 불어본을 비교하면서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불어본은 미국친구들의 도움을 받고). 마치 어렸을 때 했던 놀이 중 ‘말 전달하는 게임’을 연상시킵니다. 처음 읽고 전달했던 문장이 마지막 주자에 이르러서는 그 형태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왜곡이 되어 생산이 되죠. 데리다의 글들과 번역본들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농담처럼 천 개의 데리다가 존재한다고 허탈하게 웃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보통 데리다의 작품에는 철학적 글쓰기의 특징인 논리적인 면이 많이 생략되어 있고, 반대로 문학작품처럼 수사적이고 반복적이며 많은 아포리즘과 단편들이 글을 뒷바침합니다. 이런 이유로 데리다 읽기는 많은 오해와 오독을 동반합니다. 번역과정에서는 말 할 것도 없구요. 어쨌든 저의 데리다 오독에 대해 의견을 내주시고 제안을 해주신 기명님, 그리고 과객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5. 과객
    2010.05.21 05:1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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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답글 감사드립니다. 저는 딱히 진보 신학 진영에 속해 있다고 하기는 힘듭니다만, 많은 부분 소위 민중 신학 진영이 진정으로 민중 지향적이기를 기대해봅니다.
  6. 한수현
    2010.05.21 12:2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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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철님의 좋은 글과 댓글들에 감사를 드립니다.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몇자 더한다면,
    메시아니즘에 대한 관점에서만 본다면, 데리다는 벤야민과는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벤야민과 숄렘이 비슷하다면 그래도 데리다의 a messianicity without messianism은 이상철님의 의견과 같이 역사적 계시에 대한 기억이나 메시아적 형태를 반대하는 것 같습니다 (Marx & Sons). a messianic era라기 보다는 only the messianic interruption of the present (to come)만을 강조하는 데리다는 그런의미에서 벤야민의 revolutional messianism과 다르지 않나 봅니다. 오히려 벤야민은 아감벤에 가깝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며, 벤야민의 '순수 폭력'이나 메시아니즘은 아감벤이 더욱 가깝게 사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상철님의 '이죽거림'을 단순히 냉소나 후기자본주의의 주요경향인 'individualism'으로 해석하기 보다는 아감벤이 말했던 'a possibility not to be'의 통찰로 이해하는 것이 문맥에 더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현시대에서 메시아니즘을 말할때, '끊임없는 요청'(저에게 데리다는 이럴때가 많습니다.) 이나 '기다림'에서 벗어나 개인으로 부터 시작되는 현실에 대한 자발적 부정은 역사의 종말이나 변혁, 또는 혁명이 사라져 가는 시대에 또다른 대안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후기 자본주의의 '개인주의'가 문제인 가장 큰 이유는 이러한 개인주의는 커뮤니케이션의 단절을 의마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상철님의 이러한 '이죽거림'은 오히려 현실에 대한 타인과의 끊임없는 커뮤니케이션을 오히려 가능하게 하겠지요. 이러한 힘이 아감벤이 말한 community나 네그리가 말한 multitude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댓글을 쓰다보니 이상철님이 이미 다 말한 내용들이군요. 다음글도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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