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밖의 정의

바울의 메시아적 정치론에 대한 짧은 소개서

 

한수현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박사 과정)

 

몇 년 전 하바드 대학의 한 교수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책을 펴들고 쏟아지는 질문 공세에 무장해제되어 정의가 가지는 복잡함에 주눅이 들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저자가 슬쩍 끼워 놓은 답안에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른바 공동체주의라는 살짝 매력적인 단어를 꺼내놓고 결국 정의의 실현을 국가 정치의 장으로 제한하고, 열린 토론에서 최선이나 차선의 선택이 바로 정의라고 하는 결론에 쉽게 수긍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저자는 그것이 자신의 완전하지 않은 의견이라고 밝히기는 하였다.)

물론 내용 중에는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도 있었다. 종교적 가치가 정치정의를 논함에 분리되기 어렵다는 부분이다. 하지만 종교적 가치가 갖는 편향성을 말하며 이내 화들짝 물러선다. ‘정의를 말함에 종교가 빠질 수 없다고는 하지만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말일까? 오히려 필자에게는 정의를 말함에 있어서 서양 종교의 뿌리가 된 유대교와 기독교를 논하지 않고는 서구 정치에서 정의를 말하기는 힘들다는 주장으로 들렸다. 근대 사회에서 전통적으로 추구되어 오던 정교분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아야한다는 말일까? 그렇다면 과연 종교, 또는 기독교가 우월한 인종주의나 전투적인 선교주의에 목숨을 거는 공동체만이 아니라 현대 정치사회에 대안이 되는 정치론이나 정의론을 생산할 수 있을까?

철학과 종교, 그리고 정치에 관한 담론들이 분리되기 이전에, 로마제국의 엄청난 패도 앞에 유대교의 한 지식인이 제국의 정의에 대항하여 새로운 정의를 외치며 나타났고, 그가 쓴 글이 아직까지 남아있다. 우리가 신약성서라고 부르고, 또한 그 안에 로마서라고 부르는, 바울이라는 쓴 사람이 쓴 서신. 바로 그 서신이 진정한 정의를 말하는 책이라고 테오도르 제닝스(Theodore W. Jennings Jr.) 교수는 말한다. 바로 이 글이 소개할 책, Outlaw Justice: The Messianic Politics of Paul (Stanford University Press, 2013)의 저자인 제닝스는 바울의 편지 중 하나인 로마서가 정의란 무엇이며 어떻게 구현해 낼 수 있는가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말한다.

제닝스 교수는 바울 텍스트의 다양한 해석의 층위를 인정하면서도 정의론적 관점에서 읽는 것이 로마서를 바르게 접근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흔히 이신칭의(以信稱儀, justification by faith)라고 말하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의를 설파하는 교리적 근거로 사용되는 로마서가 제닝스 교수의 손에서 메시아에 대한 충성으로 구현하는 정의로 탈바꿈 되는 것이다.

바울 서신을 정치적 관점에서 읽는 것은 철학과 성서신학 내에 소위 트랜드를 형성하고 있다. 지젝, 바디우, 아감벤 등이 바울의 서신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고 있고, 탈식민주의나 맑스주의 성서신학자들도 새롭게 바울을 읽는다. 그 핵심에 메시아 정치학에 대한 담론이 있다. 서구 지식인들과 신학자들에게 새롭게 일어나고 있는 바울 새롭게 읽기는 크게 두 가지 즉, 기독교신학 외적인 흐름과 신학 내적인 흐름이 있고, 제닝스 교수는 정확히 그 두 흐름이 만나는 지점에서 이 책을 썼다. 그 두 흐름을 살펴보자.

기독교 내에서 오랜 세월동안 루터와 칼빈 식의 바울 서신 읽기는 개신교신학의 근거로서 받아들여졌고, 이후의 바울 신학의 역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인에서 의인으로 칭함을 받는 사실성에 대한 연구와 논쟁으로 점철되어 왔다. 과연 믿음으로 구원이 끝나는 것인가, 행함은 의미가 없는가, 율법적인 신앙은 의미가 없는가 등의 기독교가 인간 구원에 대한 단 하나의 유일한 대책이라는 식의 기독교 우월론을 생산하는 데 중요한 해석의 근거가 되어온 것이 바울 서신이었다. 정작 예수는 반()율법주의를 주장한 적이 없는데 말이다. 이러한 해석은 필연적으로 반유대주의적 신학을 기독교에 불어 넣었다. 기독교는 율법적인 유대교를 뛰어넘는 고등종교이고 유교, 이슬람교, 불교 등도 이에 다르지 않다는, 그래서 오직 예수로만 구원받는다는 말이 바울에게서 힘을 얻게 된 것이다.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이러한 해석들을 극복하는 흐름들이 성서신학계에서 일어났다. 물론 아시아신학이나 민중신학에서 이미 있었던 흐름들이지만 서구사회는 2차 세계대전의 유대인들에 대한 대학살로부터 정신을 차린 이후에야 반유대주의적이고 종교우월주의적 해석에서 벗어나 바울 서신을 다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로부터 도출된 성과들은 다음과 같다. 바울은 유대교적 전통에서 벗어나려고 한 것이 아니다. , 바울은 반유대적인 가치로 기독교를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울이 그토록 혹독하게 비판하는 율법적 신앙 또는 율법적 정의는 무엇을 지칭하는 것일까? 최근에 이르러서야 바울이 공격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유대교가 아니라 로마제국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는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바울이 말하는 율법이라는 것은 모세의 율법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로마의 법도 포함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울은 예수의 부활을 보고 이를 새로운 시대의 시작으로 보았고 그의 유대교적 전통에서 이를 새롭게 해석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는 작금의 경제 제국이 등장하는 시대에 새로운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신학 외적인 흐름에서 바울의 서신이 중요해진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자본주의의 끝도 없는 질주를 민주정치체제가 막아낼 수 없으리라는 의심이 확신이 되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레닌주의의 재조명이 이에 대한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라 필자는 생각한다. 자본주의 안에 살면서 자본의 힘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비전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이 어려운 질문에 레닌은 형식(form)이 내용(content)에 선행한다는, 당이 당의 정신과 목표보다 먼저라는, 다른 의미로 말하면, 새로운 비전이 먼저가 아니라 희망을 생산할 수 있는 형식(form), 집단, 또는 공동체의 창설이 먼저라는 해답을 내어 놓았다. 이에 착안해 루카치와 지젝은 바울은 예수의 가르침을 하나의 당의 형태로 만드는 것에 집중했다고 보았다. , 바울이 제국에 대한 대안적 정치학으로 새 정치를 생산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데 필생의 노력을 기울였는데, 이것이 바로 에클레시아, 소위 현재 우리가 교회라고 부르는 집단이었다.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만이 제국의 정치학을 벗어난 형태의 정치적 비전, 정의에 대한 인식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바울의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엥겔스와 맑스가 바울의 서신을 읽으면서 초기 공산당의 조직에 대한 영감을 얻었고, 바디우와 아감벤이 국민의 삶 자체를 통제하는 국가 형태에 유일한 탈출구를 바울에게서 찾는 것은 그래서 공감할 만하다.

이러한 연구의 연장선상에서 제닝스 교수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어거스틴부터 근대의 바르트, 현대의 지젝과 같은 철학자들과 브리짓드 칼과 같은 성서신학자들의 연구결과를 소개하며 로마서를 새롭게 읽어야 함을 제안한다. 아마 독자들은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예수를 여호수아로, (righteousness)를 정의(justice)로 읽는 독해에 놀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히브리어 메시아의 희랍어 번역이고, 예수는 아람어로써 히브리식 이름인 여호수아를 말하는 것으로, 약속의 땅으로 신민들을 이끌 지도자를 의미한다. 또한, ‘라는 표현은 영어식 번역의 오류이며 이보다는 정의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는 생각에 익숙해지면, 로마서야 말로 바울의 새로운 정의론이라는 것에 고개를 끄덕이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서론에서 제닝스는 바울의 시대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바울해석의 역사와 정치론적 해석의 역사를 쉽고도 깊게 서술한다. 간단한 서론이 끝나면, 그야말로 로마서11절로부터 마지막까지 독자에게 친절한 설명을 곁들이며, 과연 새로운 정의와 그 정의에 기반을 둔 공동체가 어떤 것인가를 생생한 바울의 증언으로 들려준다. 제닝스의 글의 장점은 쉽다는 것인데, 그가 사용하는 일차자료들의 고급정보에 독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제닝스의 설명과 함께 새로운 정의의 공동체에 대한 바울의 신념을 듣다보면 로마서가 현대의 새 정치를 갈구하는 독자들에게 보내는 바울의 외침임을 알게 된다.

그럼 도대체 정의가 무엇이냐고? 친절하게도 제닝스는 책의 제목에 이미 그 결론을 주고 있다. 첫째는 밖에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율법으로, 또는 법치정치로 의롭다함을 받지 않는다는 뜻의 진의이다. 이른바 Law and Order, 법과 이를 실현하기 위해 만드는 질서의 정치는 결코 정의를 생산할 수 없다. 정치적 최선차선이 결코 정의라고 표현될 수 없는 이유다. 둘째로, ‘정의는 설명할 수 있고, 선택하는 무엇인가가 아니다. 그것은 정의를 살아내는 공동체가, 즉 메시아적 공동체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 그 공동체의 살아 숨쉼이 바로 정의이다. 이 공동체는 초법적인 기관이 아니다. 끊임없이 법과 인간의 정치로부터 소외되고 핍박받는 공동체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하나님의 정의를 구현하는 공동체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공동체를 만들고, 이끌어가야 할까? 이 질문에 관심이 생긴다면 다시 한 번 로마서를 읽을 준비가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바울이 일생을 통하여 하려고 한 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evangelism)이라기보다는 정의을 구현하는 공동체(planting the assembly embodying Justice)를 만드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기에 예루살렘 교회와의 끝없는 불화 속에서도 곳곳에서 쏟아지는 그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에서도 끊임없이 서신을 보내며 자신의 생각을 전하려 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 메시지를 듣는 오늘날의 교회들은 어떤 식으로 응답해야 할까? 이모든 해석의 가능성에 대한 눈뜨임이 제닝스의 법밖의 정의를 통해 한국에서도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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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분리 신학에는 복음이 없다
- 「로마서」 13장 1절, ‘권세에 복종하라’의 역사적 자리 찾기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도시 대중은 네로 황제(재위 54~68)에게 커다란 지지와 환호를 보냈다. 전임자들과는 달리 대중을 위한 여러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쳤던 덕이다.[각주:1] 옥타비아누스 때보다도 많은 공공건설사업을 벌임으로써 부를 재분배하는 데 힘썼고, 연극, 검투, 기타 축제 등 각종 대중문화 장려책을 통해 대중의 정치적 능동성을 강화하는 데 힘썼다. 또한 상인들의 농간에도 불구하고 곡물가격을 안정되게 낮은 가격으로 유지하기 위해 식민지로부터 들여오는 식량의 안정된 물류체계를 구축하는 데도 큰 노력을 쏟았다.

뿐만 아니라 대중에 대한 귀족의 횡포를 통제하는 데도 적지 않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에 의해 처형되거나 처벌된 귀족들의 수는 선대 통치자들 때보다 훨씬 많았다. 이것은 대중에게 귀족들의 행태를 비판하는 언어를 부여해 주는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로마서126~32절에 반영된 성적 방종, 탐욕, 폭력 등은 대중을 견딜 수 없게 하는 귀족들의 행동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선대 황제 클라우디우스(글라우디오, 재위 41~54) 때보다 거의 세 배나 되는 속주출신 인사를 로마의 원로원 의원에 위임했는데, 이는 귀족의 혈통적 연고로부터는 보다 자유롭고 통치자의 의도와 대중의 여론에 보다 의존적인 신흥귀족이 더 많아졌음을 의미한다. 나아가 그는 선대 황제 때에 소요혐의로 추방되었던 그리스도파 유대인들이 다시 로마로 되돌아오는 것을 허용했다. 이런 의미에서 황제의 공권력은 대중의 입장에서는 정당한 권력이고 복종할 만한 권력이었다.

클라우디우스 때에 추방되었던 프리스카(브리스가)-아퀼라스(아굴라) 부부와 절친한 바울은 그이들이 네로 때에 로마로 귀향하게 되었음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로마시의 사정을 꽤나 소상히 듣고 있었겠다. 전임과 현 황제의 도시 정책이 어땠으며, 이 도시의 이스라엘 디아스포라 공동체의 분위기와 그 속의 그리스도파의 성향이 어땠는지 등등.

로마시의 그리스도파는 제국의 다른 도시들과는 달리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엘리트 출신이 많았다. 그들은 좀더 부유했고 좀더 학식도 높았으며, 도시 문화에도 좀더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좀더 반체제적 활동에 적극적이었다. 하여 선대 황제인 클라우디우스 때에 소요를 일으킨 주역이 그들이었다. 황제는 주모자를 잡아 처형 등 실형에 처했다. 그리고 혐의가 깊지 않은 관련자들은 추방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각주:2]

하여 클라우디우스는 이스라엘 디아스포라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자 원망의 대상이었다. 한데 그가 죽었다. 사인이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의 아내 아그리피나가 독살했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다. 그리고 이 혼란의 와중에서 추방당했던 이들의 일부가 귀향했다. 이스라엘 디아스포라에는 하느님이 황비를 통해 복수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고, 이런 분위기를 등에 업고 그리스도파 사람들은 반체제 활동을 조심스럽게 재개하고 있었다.

학식이 높은 그리스도파 인사들은 이스라엘 디아스포라 회당 내에서 이스라엘 본토 중심의 기획은 실패했다고 설파했다. 바울이 자기가 공박하고 있는 상대편의 주장을 가지고 되묻고 있는 로마서1111절 이하의 구절은 저들 헬라주의적 그리스도파의 주장이 무엇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그러면 내가 묻습니다. 이스라엘이 걸려 넘어져서 완전히 쓰러져 망하게끔 되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들의 허물 때문에 구원이 이방 사람에게 이르렀는데, 이것은 이스라엘에게 질투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로마서11,11


곧 저들은 이스라엘
, 특히 예루살렘이나 사마리아에서 메시아가 일어나야 하느님의 변혁이 일어날 거라는 이스라엘 중심적 구원의 기획은 실패했다고, 아니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로마시의 이스라엘 디아스포라에서 예루살렘 혹은 사마리아 운운하는 주장을 펴는 이들은 세계의 중심이 된 이 도시, 이곳에서 벌어지는 억압과 착취의 역사를 꿰뚫어 보지 못한 채 여전히 저 머나먼 변두리 도시에서나 가질 수 있는 시골뜨기 괴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마도 클라우디우스 때도 헬라주의적 그리스도계 급진파는 이런 주장으로 무장한 채 모종의 반체제적 소요를 일으켰던 듯하다. 그때도 구닥다리 랍비들은 아직 때가 아니라고 하면서 사람들을 진정시키려고 했을 것이다. 예루살렘 혹은 사마리아에서 메시아 소식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이다. 반면 그리스도파는 주장했다. 이미 그리스도는 나타났고, 지금 자신들과 함께 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클라우디우스가 죽은 직후, 로마시의 이스라엘 디아스포라 내에서는 다시 이런 반체제적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었던 것 같다.

로마시의 이러한 사정은 바울에게는 낯선 광경이었다. 이제까지 그가 경험했던 디아스포라 회당의 모습은, 갈라디아서326~28절처럼 소외된 이들이 그리스도파였다. 한데 로마시는 그 정반대다. 자기들이 지혜롭다고 허풍떨던 이들은 이스라엘계 랍비가 아니라 헬라주의적 그리스도파 지도자였던 것이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의인론을 얘기하면서 소외된 그리스도파 대중을 옹호했다. 한데 이번엔 의인론으로 스스로 현명하다고 생각하는(11,25) 그리스도파 지도자들을 비판하고 있다.

당시 로마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웃의 미움을 사고 있었다.[각주:3] 도시 축제에 참여를 꺼리고 자기들의 종교행사에만 몰두하는 폐쇄적인 집단이라는 평판에도 불구하고, 카이사르와 옥타비아누스에서 칼리굴라(재위 37~41)에 이르기까지 갖은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게 눈에 거슬렸다.

그러던 차에 클라우디우스가 그리스도파를 처형하고 추방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것은 주민들에게 이스라엘 디아스포라를 공격해도 된다는 신호처럼 보였다. 이런 분위기를 잘 알고 있던 귀족들은 대중의 환심을 사고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본보기로 못된 짓을 해댔던 듯하다.

그 무렵 네로가 즉위하고 그리스도파 인사들이 귀향하면서 회당 내에서 반체제적 발언을 하며 예루살렘의 기획이 아닌 로마의 기획을 주장하자 많은 이들이 그 말에 설득되었다. 한데 바울은 브라스가와 아굴라가 전해준 이런 소식에 접하자 로마로 가려던 자신의 계획을 전격 실행에 옮기고자 편지를 보낸다.

한데, 앞서 보았듯이, 그는 서신에서 그리스도파와 반대논지를 펴고 있다. 그는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기획을 폐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율법의 폐기가 아니라 완성을 주장한다(13,8~10). 이제까지의 그와는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바로 그 비밀이 저 유명한, 그리고 오랫동안 오독되어 온 로마서131절의 수수께기에서 드러난다.



사람은 누구나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해야 합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이미 있는 권세들도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것입니다― 「로마서13,1


여기서
그는 공권력을 지지하고 있다. 그것에 순종하라고 한다. 이 구절에 대해서 미국의 비판적 성서학 연구자 닐 엘리엇(Neil Elliott)은 다음과 같은 통찰력 있는 해석을 제안한다.


이 구절에서 바울 사도는 로마 정부 관료에게 순종하라고 명령한다. 이것은 바울 사도가 로마에 있는 유대인 공동체의 안전을 옹호하기 위해 호소하는 의도였다. ... 로마에서 유대인이 곤경을 당하는 위험한 역사적 상황을 재고하여야 한다. 그리고 헬라 지역과 로마 지방 도시들에서 유대인들은 이런 비슷한 상황을 맞고 있었다고 본다. 만약 로마의 군대가 유대인들을 보호하지 않았다면 유대인들은 지역 주민들의 적대행위로 말미암아 어려운 곤경에 빠질 수 있었다. 로마 도시에서 이방인들이 유대인을 반대하여 주도한 폭력 행위는 유대인과 이방인들 사이의 종교적인 차이에서가 아니라 로마의 사회적 압박 때문에 촉발되었고 이방인들은 로마인 대신 유대인을 공격했던 것이다. 특별히 헬라의 상류 사회층은 로마의 식민지 지배하의 착취와 압제, 압박의 부당함을 유대인들에게 대신 감정적으로 해소하였다. [각주:4]


여기서 로마제국 전역에서 유대인들이 이웃 족속들에게 린치를 당했다고 하는 것과 또 전역에서 로마군이 유대인을 보호했다는 주장은 근거가 희박하다
. 또한 헬라의 상류 사회층이 그러한 폭력의 주역이었다는 점도 근거가 희박하다. 그보다는 로마제국 초기의 역사가 수에토니우스(69~130)황제전(De vita Caesarum)에서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로마에서 유대인을 추방한 것은 크레스투스(Chrestus)의 선동으로 야기된 소요 때문이라고 한 것에 기초해서, 클라우디우스 당시 로마시에서 이스라엘 디아스포라가 당국에 의해 공격당하고 있었다는 점을 해석의 실마리로 하는 게 낫겠다.

이 사실 위에서 엘리엇의 해석을 재해석하여, 당시 로마시로 몰려든 많은 대중은 권력자들에 의해 착취와 폭력에 시달렸다. 그것은 많은 이들에게 좌절과 분노감을 안겨 주었다. 하지만 로마에 적대하는 행위는 불가능하다. 그런 상황에서 당국에 의해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힌 이스라엘 이민자들은 그들의 분노의 대상이 될 법하다. 게다가 군중의 이런 분노를 이용하면서 여론정치를 하던 로마의 귀족들이 이런 집단 분풀이에 가세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네로 황제의 군대가 도시의 무분별한 폭력행위를 제압하는 것은 도시 치안을 위해서 있을 법한 일이다. 게다가 귀족과 경쟁관계에 있던 네로가 귀족의 여론정치를 방관하기는 만무하다. 해서 그는 도시의 집단 따돌림과 린치를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을 이스라엘 디아스포라의 관점에서는 하느님의 뜻을 받드는 제국의 황제의 모습으로 비추어졌을 것이고, 하여 그의 권세는 신이 부여한 것이니 복종하라는 주장이 나왔을 법하다. 그리고 바울은 이런 주장을 통해서, 급진파 헬라주의적 그리스도파의 무모한 과격성을 제어하려 하는 것이다.

한편 권력에 순종하라는 말에 이어지는 바울의 말 또한 우리의 주목을 끈다.


사람은 누구나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해야 합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이미 있는 권세들도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것입니다―「로마서13,1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공박하는 헬라주의적 그리스도파의 주장의 일면을 읽어낼 수 있다
. 그들은 필경 반로마 주장을 펴면서 조세거부 선동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로마시의 납세자는 이스라엘 사람들 개개인이 아니라 디아스포라 회당이었다. 인구 100만이나 되고, 특히 그중 적어도 80만이 넘는 이민자들[각주:5]에게 인두세를 거둬들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해서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었는데, 종족별 종교별 자치결사조직들 단위로 조세를 징수하는 방법도 그 중 하나였다. 이스라엘 디아스포라 회당은 전형적인 자치결사체로서, 이 결사체에 포함된 이스라엘인들과 개종자들은 로마 당국에 조세를 내는 것이 아니라 회당에 기부금을 내고, 회당이 로마 당국에 조세를 냈던 것이다.

한데 이스라엘인이든 개종자든 기부금을 낼 수 없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일종의 면세자들이다. 빈곤해서 아무것도 낼 수 없는 자들이다. 그런 이들을 가리키는 용어가 가난한 사람들(프토코스)이다. 이들은 기부금을 낼 형편이 못했지만 회당에 속해 있기 때문에 사실상 면세자가 될 수 있는 자들이다. 한데 그들이 면세자가 되는 대신에 그들은 멸시의 대상이었고 기부금을 내는, 사실상의 납세자들인 사람들의 통제와 관리를 받아야 했다. 한데 로마시 회당에서 사실상의 납세자의 다수는 그리스도파 인사들이었다. 그러니 그들이 세금거부 선동을 하면 사실상의 면세자들인 가난한 사람들은 납세자의 지도에 따르는 것이 마땅하다. 납세자들인 그리스도파는 그렇게 생각했다.

한데 바울은 저들 납세거부를 선동하는 그리스도파 인사들을 향해 말한다. 세금을 내라고. 그것은 조세거부운동의 중지를 말하며, 납세자가 아닌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선동의 중지를 말한다. 아마도 바울의 심중에는 이런 무모한 모험주의는 수많은 이들, 특히 저들의 선동의 대상이 되는 다수의 면세자들을 죽음으로 몰아갈 뿐이라는 문제의식이 들어 있었을 것이다.

하여 권세에 복종하라느니, 제국 당국에 세금을 내라느니 하는, 바울의 평소 주장과는 엇갈린 듯이 보이는 이런 주장의 이면에는, 그러나 일관된 그의 생각이 들어 있다. 그것은 복음이라는 것은 유대파 신앙이든 그리스도파 신앙이든 특정 계파를 위해 작동되는 것이 아니라 면세자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작동한다는 것이다.

한데 바울의 이 구절은 한국역사에서 정교분리를 논증하는 성서텍스트로 읽혀져 왔다. 문제는 정교분리는 힘의 논리를 반영해왔다는 데 있으며, 이 구절은 그런 힘의 논리의 관점에서 해석되었다는 데 있다. 식민지 시대나 군부귄위주의 정권 시대에 국가가 대중의 인권을 유린하던 때에는 그런 반인권적 체제를 비판하는 이들을 단죄하는 논리가 정교분리였다.

또 최근 기독교정당 옹호론자들은 교회의 정치참여를 정당화하는 맥락에서 정교분리를 폐기하거나 재해석하려 한다. 이들 역시 인권의 문제, 약자를 옹호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체제를 비판하기보다는 그 정반대의 맥락에서 정교분리의 재해석 혹은 폐지를 논한다. 요컨대 정교분리는 약자를 옹호하고 그들의 인권과 생존권을 지지하기보다는 종교권력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존속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로마서131절이 읽혀져 왔다.

하여 교회의 정교분리의 신학은 바울의 이 텍스트를 핵심 전거로 삼아왔지만 여기에는 바울이 실종되었고 바울이 옹호했던 민중이 망각되었다. 결국 교회의 정교분리 신학에는 복음이 유실되었다.



ⓒ 웹진 <제3시대>


  1. 네로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의 역사 만들기와 친평민적 정책을 편 황제로서 그를 재평가하는 수정주의적 연구에 대하여는 안희돈, 『네로황제연구』 (다락방, 2004), 2~3장 참조. [본문으로]
  2. 여기서 나는 하나의 가정을 하고 있다. 「로마서」에서 바울이 비판하고 있는 대상이 로마시의 이스라엘 디아스포라 내의 그리스도파라고 말이다. 「로마서」에 묘사된 그들은 이스라엘계 헬라주의자들로, 공동체의 다른 이들보다 지위가 좀더 나은 이들이고, 이방 종교의 제사음식 등에 대해 거리낌이 없을 만큼 로마의 문화에 대해 자신이 있는 이들이었다. 이들이 우월한 사회적 위치에 있는 이들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정승우, 『로마서의 예수와 바울』(이레서원, 2008)의 제1장 「로마의 크리스천 공동체의 기원과 형성」을 보라. 하지만 정승우는 이들 헬라주의자들이 헬라파 유대인이고, 보다 유대주의적인 ‘약한 자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보고 있다는 점에서는 나와는 정반대의 입장을 갖고 있다. 내가 이들을 ‘그리스도파’라고 본 것은 프리스카와 아퀼라 부부가 본래 이들의 일원이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들도 로마시의 이스라엘 디아스포라 출신의 헬라주의자였는데, 클라우디우스 때에 추방당한 사람들이었다. 한데 앞에서 보았듯이 그들이 추방당한 이유는 디아스포라 내에 ‘크레투스’의 사람들의 소요 때문이었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이 ‘크레투스’가 30년경 팔레스티나에서 처형당했던 크리스투스(그리스도)와 같은 존재를 가리킨다고 본다. 즉 로마시의 이스라엘 디아스포라 내에 반체제적인 헬라주의적 이스라엘인들이 그리스도를 추종하며 반체제적 활동을 벌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로마서」에서 바울이 비판하는 헬라주의자들은 이스라엘 디아스포라 공동체 내의 그리스도파 급진주의자들이었다고 보는 것이다. [본문으로]
  3. 이에 대하여는 제임스 던, 『로마서 9~16』 (솔로몬, 2005) 참조. [본문으로]
  4. 닐 엘리엇, 「십자가의 반제국주의 메시지」, 리처드 호슬리 엮음, 홍성철 옮김, 『바울과 로마제국』 (기독교문서선교회, 2007), 288쪽. [본문으로]
  5. 카이사르 이후 로마제국은 로마시의 시민들에게 무상으로 곡물을 나누어 주었다. 그 수혜자를 일컫는 용어가 '곡물평민'(Plebs frumentaria)인데, 문제는 이들이 도시의 주민 전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옥타비아누스는 곡물평민의 자격을 세 가지 원칙, (1)로마시민권자, (2)로마시 태생, (3)생래 자유인 여부에 따라 제한했다. 하여 그 수혜자의 수가 15만 명 정도였다. 이에 대하여는 안희돈, 『네로 황제 연구』 제7장 참조. 로마시의 인구에 대하여는 김상엽, 「제정기 로마의 곡물수급문제에서 나타난 제국과 속주의 관계―제정기 곡물수급지로서 이집트와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서양고대사연구』 5(1997.11), 39~42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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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유리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하느님을 알 만한 일이 사람에게 환히 드러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것을 환히 드러내 주셨습니다. ......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속성, 곧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은, 사람이 그 지으신 만물을 보고서 깨닫게 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1장 19~20절


“그룹들(Cherubim)은 주님의 성전으로 들어가는 동문에 머무르고, 이스라엘 ‘하느님의 영광’(하느님의 카보드)이 그들 위에 머물렀다.” 「에스겔서」 1장 19절입니다. 이 구절을 보면 마치 ‘하느님의 영광’이 존재처럼 움직여 어느 곳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곳은 성전입니다. 바벨로니아 유배시대 예언자의 말이지만, 이것은 훗날 성전종교가 탄생하는 하나의 계기가 됩니다. 그때까지 야훼종교는 왕실종교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야훼는 왕실과 더불어 존재했고, 왕실의 후견인으로 있었으며, 왕실의 몰락은 야훼의 몰락을 뜻했습니다. 그런데 그 왕실이 진짜로 몰락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야훼신학은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이때 바벨로니아 식민지 시대, 유배된 공동체 사이에서 활동했던 예언자 에스겔은 환상 속에서 야훼가 성전에 머무르는 것을 봅니다. 왕실이 없어도 성전만 있다면 그분은 존재하는 분입니다. 그런데 그때는 성전도 불타고 없었던 때입니다.  

하지만 훗날 성전이 다시 지어졌을 때, 이 예언자의 환상은 하나의 종교를 탄생시키는 전거가 됩니다. 바야흐로 성전종교가 등장하게 됩니다. ‘유대교’라는 야훼신앙의 한 변종은 이렇게 해서 역사에 태동하였습니다.

한데 여기서 하나 더 언급해야 합니다. 에스겔은 하느님을 본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을 본 것입니다. 하느님은 너무 숭고하고 초월적이어서 볼 수 없습니다. 유대교는 이렇게 너무나 초월적인, 범접할 수 없는 이, 바로 그분을 숭배합니다. 그분은 성전 안에 계십니다. 아무도, 제사장만이, 아니 대제사장만이 1년에 단 하루 들어갈 수 있다는 성전 지성소 안에 계십니다. 아니, 아니, 성전 지성소 안에서 뵐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입니다. 이렇게 유대교는 성전 안에 지극히 초월적인 하느님의 영광이 머물고 계신다는 믿음 위에서 출발한 종교입니다.

한데 바울은 오늘 읽은 본문에서 그러한 유대교의 초월적 신성에 대해 반론을 폅니다.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속성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본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당신이 지은 만물 속에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지요.

유대교는 하느님을 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그분은 성전 속에, 아무도 볼 수 없는 곳에 있습니다. 더구나 그 안에는 하느님이 아닌, 그분의 영광이 있습니다. 그나마 그 영광을 볼 수 있는 것도 대제사장뿐입니다. 하여 유대교에서 ‘봄’은 권력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시선의 권력’에 의해 엄히 통제되는 종교인 것입니다.

반면 바울은 다른 패러다임으로 하느님이 당신을 드러낸다고 주장합니다. 하느님을 보고자 하는 이는 볼 수 없으나, 그분은 당신이 지은 존재들 속에 깃들어 있다는 것이지요. 더욱이 바울의 표현을 보십시오. 그분은 “‘환히’ 드러나 있습니다.”

또한 그분을 볼 수 있는 이는 대제사장만이 아닙니다. “그 지으신 만물을 보”는 이는 누구나 “깨닫게 되어 있습니다.” 초월자를 보고자 하는 이는, 권력의 시선에만 찔끔 드러낼 뿐, 아무것도 볼 수 없지만, 만물 속에 내재하는 신을 보고자 하는 이는 그분을 환히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의 존재들을 보고, 그 존재들의 고통과 신음 소리를 애틋하게 들을 줄 아는 이는 모두가 그분을 봅니다. “모든 피조물이 ...함께 신음하며 함께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서」 8,22)

하여 바울은 하느님을 보는 것에 관한 신학적 주장에서 ‘시선의 권력’을 해체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지성소를 가로막고 있는 장막 대신에 ‘투명유리’를 두었고, 그 유리를 통해서 하느님을 모두에게 환히 드러내고 있다고 강변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 내가 사는 지역의 구청 청사가 새로 지어졌습니다. 그 전면이 시멘트가 아니라 유리로 되어 있는 건물입니다. 옛날 청사는 8차선 도로에서 좁은 길을 따라 50미터는 올라가야 있습니다. 학교 운동장 절반만한 주차장 저편에 청사 건물들이 있습니다. 언덕에 위치한 청사 주위에는 높은 담장이 있고, 담장을 따라 나무가 또 하나의 담벼락처럼 줄지어 서 있으니, 흡사 하나의 작은 성채 같은 구조물입니다. 닫힌 구조, 왠지 중차대한 일이 있지 않는 한, 출입하지 않는 게 나을 법한 구조입니다.

과거에 성전도 그랬겠지요. 친근감보다는 경외감으로 둘러싸인 건조물일 테니 말입니다. 그곳에 높은 분이 있고, 그이를 만나려면 충분한 자격을 갖춰야만 할 것 같은, 그런 곳입니다. 유리가 아닌 벽으로 폐쇄된 둘러싸인 ‘막힘의 공간’입니다.

한데 새 청사는 언덕이 아니라 평지에 지어졌습니다. 같은 8차선 도로지만, 더 넓어 보이는 도로 한편에 담장도 없이, 모두에게 열린 문처럼 개방된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더욱이 그 전면이 유리이니, 마치 속이 다 들여다보이는 듯합니다. 투명한 행정, 누구에게나 공개되고 누구나 쉽게 드나들어도 될 것 같은, 들어가면 구청장이 환한 얼굴로 나를 반겨줄 것 같은, 하여 나의 민원에 귀 기울일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합니다.

여기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서울과 인근 신도시에 건설된 구청과 시청 청사는 유리벽 전면인 경우가 유난히 많습니다. 필경 투명한 행정을 과시하려는 것이겠지요. 필경 모두에게 열린 개방된 공간임을 자부하려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실은 그 안으로 들어가면 밖이 훤히 보이지만 밖에서 안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 유리는 투명유리가 아니라 반(半)투명유리인 것입니다. 아예 투명함을 포기한 듯, 폐쇄 양식의 건조물은 안이든 밖이든 서로를 볼 수 없게 하는 구조입니다. 반면 투명한 듯 착각을 일으키지만 투명함을 거부하는 투명유리 아니 반투명유리 양식은 ‘보는 것이 권력인 사회’의 건조물을 뜻합니다. 그것은 두 가지 효과를 통해 지배를 실현하는 사회를 상징합니다. 하나는, 밖에 있는 자에게는 마치 투명하고 평등한 사회에 살고 있는 듯 착각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안에 있는 자는 밖을 훤히 응시할 수 있는 능력, 아니 권력을 부여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바로 그곳, 시청과 구청에서 수많은 재개발밀약이 맺어졌습니다. 건설에 살고 건설에 죽는 나라의 미친 재개발사업의 ‘밀실 삼각동맹’이라는 ‘행정관서-금융기관-건설주’의 밀약은 바로 이 투명건물 안에서 아무도 모르게 맺어졌습니다. 밖의 시민사회는 그 안을 모릅니다. 그리고 마치 법이 평등하다는 착각 아래서 그 재개발사업에 환호하고 욕망합니다.

한데 부패지수가 대단히 높은 우리사회에서 1990년부터 2006년까지 언론에 보도된 부패사건을 분석하면 전체 부패건수의 55% 이상이 건설과 주택 관련 분야에서 일어났다고 합니다. 실제로 수많은 건물들에는 소송이 걸려 있고, 또 정치자금이 은닉되는 가장 좋은 장소가 건축물들이라고 합니다. 시민사회의 각각은 그 부패양상이 너무나 일상화되어서 경각심조차 갖지 않고 건축 메커니즘에 일원으로 끼어들며, 시민의 무분별한 욕망이 가장 불꽃을 일으키는 분야가 바로 건축입니다.

도시재개발사업의 경우는 규모가 휄씬 커서 행정관서-금융기관-건축주의 삼각동맹은 합법적 틀을 따라 진행되곤 합니다. 건설 투자가 총투자액의 20%를 넘나들고, 건설업이 국민총생산의 20% 가까운 비중을 차지하는, 하여 OECD 평균의 두 배나 되는, 건설에 미친 사회에서 법은 이미 이들 재개발주체에게 유리하게 작용합니다.

그러니 법이 공평하다고 생각하면서 재개발에 환호하고 욕망을 나누었던 평범한 시민은, 그중 많은 이들은 치명적인 피해를 입고 몰락하곤 합니다. 특히 서울지역에서만 재개발지구가 96개나 되는 올해의 경우, 재개발사업으로 인한 피해자의 규모와 정도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광범위해지고 있는 형편입니다.

상업지구의 경우 그 피해가 더욱 심각하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 저 끔찍한 용산의 철거투쟁과 홍대 역 근처의 두리반 투쟁은 그 심각성에 시민사회적 경각심을 한층 높여놓았지만 정부는 밀실 삼각동맹에서 한 발짝도 빠져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며칠 전 만난 명동 철거지역의 한 카페주인은 억대를 훨씬 넘는 권리금과 시설투자비는 고사하고, 1,700만원의 보증금에서 단 1,000만원만 받아가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하소연하였습니다. 일부 중산층은 이렇게 재개발사업 과정에서 터무니없는 법 운용으로 인해 몰락의 위기에 몰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여 관공서의 투명유리는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더 높은 장벽을 상징할 뿐입니다. 적어도 현 정부는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곧 이 투명유리는 민주주의적 공공성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공공성, 곧 사회적 정의는 부재하며, 더 강하고 더 교묘해진 권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바울은 유대교의 폐쇄성과 싸움을 벌였습니다. 그 닫힌 신앙구조는 극소수의 엘리트에게만 드러내는 신에 관한 종교였습니다. 바울은 바로 이런 종교의 신의 폐쇄성을 해체하고, 신을 공공화하는 종교로 재탄생시킨 것입니다.

바울의 예수 따르기는 이러했습니다. 그는 반투명유리로 된 성전체제를 해체하고, 투명유리로 된 신을, 초월적인 닫힌 신을 대중에게 훤히 드러내주는 새 종교의 등장을 위해 열정을 다해 권력과 싸웠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바울에게서, 그의 「로마서」에서 얻어야 할 배움의 요체는 바로 이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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