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평화와 안보를 위한 기독교인의 발걸음

 

배근주
(Denison University 종교 윤리 교수, 성공회 사제)


 

    미국의 여성 윤리학자 샤론 웰치 (Sharon Welch)의 책 ‘진정한 평화, 진정한 안보Real Peace, Real Security: The Challenges of Global Citizenship (Fortress Press, 2008)’는 평화에 관한 다양한 이론과 실천을 간략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웰치는 특정 국가에 속한 시민이면서 동시에 세계 시민인 우리들에게, “어떻게 하면 종교적, 윤리적 전통을 가지고 있는 국제 사회가 인류에 대한 범죄를 막거나 벌할 수 있을까 (1)”라는 신학적, 윤리적 화두로, 이 작지만 힘있는 책의 서문을 연다. 쉬운 화두가 아니다. 특히 이 화두는 단순히 지적인 활동으로써의 평화에 대한, 신학적, 윤리적 사색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의 변화, 생각의 변화, 그리고 영성의 변화와 함께, 타성에 젖어 생각해 왔던 종교의 가르침과 하느님에 대한 생각까지도 비판적으로 돌아보게 만든다. 


    여기에서 이야기 하는 인류에 대한 범죄란, 넓게 보면 인간에 대한 폭력이고, 구체적으로 보면, 전쟁과 인종 학살, 집단적 성폭행이나 군위안부 같은 전쟁 범죄를 가르킨다. 구체적인 전쟁 범죄들은 인간의 폭력성이 환경에 따라 집단화, 광폭화되어 나타나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인간의 집단적 폭력성을 해결하지 않는 이상, 평화를 위한 근본적인 문제들 또한 해결할 수 없다. “전쟁을 일으키는 것”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사이의 제3의 길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불가능한 일또한 아니다. 웰치는 이 제3의 길이, “우리 인간이 잔혹한 일을 저지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자비심과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놀라울 정도의 공감력을 가지고 있는 피조물”이란 사실을 묵상하는 데서 시작한다고 이야기한다 (2). 윤리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 잔인함의 DNA를 지니고 있는 피조물이라 하더라도, 선과 악을 구별하거나, 선을 택할 수 있는 능력이 결핍된 존재는 아니란 것이다. 충분히 선을 선택하고, 선을 만들어갈 능력이 있는 존재이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약자와 타인에 대한 폭력과 잔인함은 “절대선”과 “절대악”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인간의 착각에서 시작된다. 제3의 길의 여정은, 아군을 절대선으로 포장하고, 적군을 절대악으로 규정하며, 선과 악의 이분법적 구조를 진리삼아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내재하고 있는 폭력성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다른 이들과 함께, 구조적인 폭력과 인류에 대한 폭력적 범죄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아가는 과정이다 (100).


    웰치는 국제 사회에서 분쟁을 해결하고 평화를 만들어 가기 위한 세가지 노력을 소개한다: 평화 유지 (peacekeeping), 평화 만들기 (peacemaking), 평화 건설 (peacebuilding)이다 (8). 평화 유지는 인종청소나 대규모 전쟁에 국제 사회가 즉각적으로 개입하여, 인류에 대한 폭력 범죄를 막는 것이다. 평화만들기는 전쟁이나 분쟁에 개입된 두 국가나 집단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내, 평화조약이나 협상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8). 여기서 UN이나, 미국, 러시아와 같은 강대국이 중재자가 되는 경우가 종종있다. 평화건설은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개선하고, 진행중인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장기적인 구조를 만들어 가려는 노력이다. 이 노력은 평화를 위협하는 근본적인 사회구조, 즉 무력분쟁, 경제적 착취, 그리고 정치적 소외계층 등의 문제들을 분석하고 해결해 나가려는 의지와 노력을 담고 있다.


   평화유지, 평화 만들기, 평화 건설은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다. 주로 UN 평화 유지군이 개입하는 “평화 유지 (peacekeeping)”는 강대국의 이익이나, 분쟁 주변국들 사이의 복잡한 이해 관계 때문에, 분쟁 초기 개입이 늦어져 많은 희생자들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보스니아 전쟁이나, 르완다 학살, 수단 다푸르의 인종청소, 시리아 전쟁은 모두 초기 개입이 늦어서 일반 시민들의 희생이 많았고,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특히 현대전은 내전이나 시민전이 아니라, 다국의 이익이 개입된 국제전임에도 불구하고, 분쟁이 일어 나고 있는 지역의 국가 자주성을 이유로, 국제사회는 초기 개입을 꺼린다. 국제 사회의 군사적 개입을 위한 윤리적 가이드 라인은 R2P로 알려진 “Responsibility to Protect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의무)”이다. 대량 학살이나, 대규모의 전쟁이 임박했을 때, 즉각적인 군사 행동을 통해서, 인류에 대한 범죄를 최소화하거나 막는 것이다. 그러나 분쟁 지역의 정부가 개입을 반대하거나, 인종 청소나 대량 살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때, 국제 사회의 개입은 어렵다. 또한 국제 사회의 군사적 개입은 서구 국가들의 신식민주의와 윤리적 우월감의 남용이란 비난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더불어 기아와 인종차별, 종교적 박해, 성차별 등등 서서히 진행되는 학살적 폭력을 막는 국제 사회의 물리적 개입은 거의 불가능하다. 평화 유지는 분쟁을 해결한다기 보다는, 물리적 분쟁을 일시적으로 막아서 분쟁 당사자들이 대화하고, 장기적인 평화를 위해 노력하기 위한 공간을 만든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 (40).

  
   21세기에 들어 평화 만들기는 단순히 국가간의 평화 협정 뿐만 아니라, Track 2 Diplomacy (민간 외교)로 알려진, 다양한 시민, 종교 단체 간의 평화 운동과 대화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사회 각 분야의 시민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교류는, 문화적 이해와 종교의 다양성에 관한 이해, 서로의 고통에 대한 진실성 있는 공감의 장을 형성하기 때문에, 정부 차원의 평화 협정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 의사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각 국의 정부 지도자들이 다양한 시민 단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경우가 많고, 또한 민간 외교는 여러면에서 정치적 구속력을 갖기가 힘들다. 비근한 예로, 한-일 정부 사이에 비밀리에 추진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10억엔 배상은, 두 정부가 힘으로 밀어붙여 정치적 구속력을 갖게 된 비윤리적 행위이다. 한-일 민간 단체들과 종교단체들이 그동안 원폭피해와 군위안부 문제 등을 포함하여, 일본의 전쟁과 식민지배에 대한 책임을 묻고,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함께 노력해온 역사를 철저히 무시한 정치적 결정이다. 하지만 한-일 협정이 의식있는 많은 시민 단체를 결속시켜, 반대 운동을 전개시키게 만든 것처럼, 현대 사회에서 민간 외교를 무시하고는 진정한 평화를 기대할 수 없다.


    평화 건설은 장기적인 노력을 요구하는 평화실천 운동이다. 사회 불평등과 불만 등, 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경고를 미리 알아채고, 해결하려는 노력과 더불어, 비폭력적 방법으로 분쟁에 대항하는 사회적 힘을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 장기적인 평화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반목과 분열 관계에 있는 사회 구성원들과 국제 사회 구성원들의 관계를 변화 시키려는 제도적 장치와 실천이 요구되며, 과거의 실패를 분석하여 새로운 전략과 실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평화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 차례의 실패를 경험한다고 하더라도, 다시 일어나 평화 운동을 시작하는 강한 정신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서로를 믿어주고 격려하는 공동체 형성이 크게 도움이 된다. 평화란 전쟁이나 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정의가 실현된 사회, 분쟁이 폭력이 아닌 대화와 비폭력으로 해결되는 사회를 의미하며, 그러한 과정으로 나아가는 것이 평화 운동이다.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 세가지 실천들이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여러가지 사회/평화 운동들을 통해 유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다양한 종교들이 축적하고 있는 평화에 대한 지혜, 인내와 함께 적극적으로 용감하게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희망, 그리고 구조적 폭력과 전쟁에 고통받고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과 같은 덕목이 평화를 위한 제3의 길을 비춰줄 수 있는 빛이 될 수 있다. 이 제3의 길은 또한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통해 “자기의 (self-righteousness)”에서 해방되고, 적군이나 힘을 가진 억압자들을 “악”으로 규정하는 행위에서 벗어나는 과정이다.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사회적 갈등과 반목, 국제 사회의 폭력 행위와 전쟁 등을 보며, 웰치의 책이 갖는 무게감을 느끼게 된다. 예를 들면 사드 (THAAD)배치에 비폭력적으로 반대 운동을 전개하는 성주 군민들을 어떻게 하면 기독교인들이 적극적으로 지지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강정 마을 해군 기지 반대 운동 때에도, 대추리 미군기지 이전 반대 운동 때도,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 때에도, 세월호 진실 규명 운동 때에도 던졌던 질문이다. 우선 웰치의 입장에서 사드 배치만을 놓고 보았을 때, 한국 정부와 미국의 결정은 한반도의 평화와 동아시아, 세계 평화에 위해를 가할 비윤리적인 결정이다. 왜냐하면 북한을 절대악으로 규정하여, 한국 정부가 가지고 있는 오만함,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불평등과 사회 불만을 어설프게 숨김과 동시에, 미국이 가지고 있는 세계 패권주의와 우월감을 평화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드 배치는 국제 사회에서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미국과 경쟁 관계에 있는 중국, 러시아의 불만을 고조시켜, 대화와 공감을 통해 평화를 만들려는 세계 시민들의 노력을 억압하고 있다. 북한이 일으키는 공포감이 적극적인 비폭력 운동을 통해, 대화와 공감을 통해 평화를 이루려는 노력과 희망보다 더 큰 것일까? 더구나, 사드 배치를 통해 고통받을 사람들과 계속된 군비 경쟁으로 인해 고통 받는 세계 민중들의 목소리를 듣고, 공감하려는 평화의 정치보다, 군사 무기를 통해 이루려는 평화가 더 값진 것일까?


    사드는 미국의 록히드 마틴 (Lockheed Martin)사가 개발한 미사일 방어 시스템이다. USA Today에 의하면 록히드 마틴은 2011년에만 약46.5 억 달러 어치의 무기를 전세계에 팔아치운, 전쟁을 통해 가장 큰 이익을 얻고 있는 무기회사다.[각주:1] 모든 전쟁은 자본가들의 이익이 걸린 사업이다. 미국의 전쟁 영웅 스메들리 버틀러 (Smedley Butler)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이미 1932년에 “전쟁은 사기다 (War Is a Racket)라는 책을 통해, 미국이 관여한 모든 전쟁이 소수의 자본가들의 이익을 위해, 가난한 이들의 생명을 지불하는 사기라고 했다. 안타깝게도 이 사기는 소위 말하는 소수의 내부자들이 공모하고, 각본을 짜서, 대중에게는 평화와 안보라는 이름으로 상영하는 사기극이라, 외부자들은 그 전말을 알기가 힘들다. 사드는 누구를 위한 평화이며, 누구를 위한 안보일까? 기독교에서 “항상 깨어있으라”는 가르침은, 소수의 내부자들이 주장하는 평화와 안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외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평화 운동은 끊임없는 자기 비판과 자기 성찰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노력은 자기의에서 벗어나고, 사드 배치와 같은 결정을 한 정치 지도자들까지도 악으로 규정하지 않고 보듬으려는 노력까지도 포함한다. 웰치의 책을 다시 읽으면서, 평화 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으로써, 한편으로는 억울한 마음이 생겼다. 강정에서, 밀양에서, 평택에서, 서울 시청 광장에서 만난 많은 일반 시민들과 평화 운동가들, 그리고 (아직 만나지 못한)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성주 군민들은, 정부의 결정을 규탄하지만, 그 결정을 한 정치가들을 ‘악’으로 규정하지 않고, 그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려는 성숙한 의식을 보여주고 있지만, 정치인들이나 경찰, 주요 언론사들은 이들 시민 운동가들을 ‘빨갱이들’, ‘전문 시위꾼들’, ‘북한 동조세력들’로 부르며,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집시법 위반으로 벌금을 물리는 것을 본 경험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전쟁이나 분쟁을 일으키는 것과,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사이의 제3의 길을 찾는 것은, 어쩌면 광야에서 ‘회개하라는 (정책 결정자들에게 자기비판과 성찰을 하라는)’, 정의와 평화를 외치는 세례 요한의 목소리가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세례 요한이 죽임을 당해도, 예수를 죽여도, 광야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지난 2000년 동안 끊어지지 않은 것이, 평화와 정의를 향한 기독교의 지혜이고, 힘이고, 열망이란 생각이 문득 든다.



ⓒ 웹진 <제3시대>

  1. (http://www.usatoday.com/story/money/business/2013/03/10/10-companies-profiting-most-from-war/197099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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