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파기합니다. 나는 믿습니다.



김윤동
(본 연구소 행정연구원)

 


약해진 믿음을 강하게!


    최근 신도수가 줄어든 교회에서는 남아 있는 신도들을 향해 ‘믿음이 약해졌다, 믿음이 강해져야 한다’는 말을 외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믿음이란 게 무슨 단단한 고체와 같은 것이어서 근육처럼 그 힘의 정도가 약해졌다가 강해졌다가 할 수도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인 가보다. 발음 한 번으로도 입이 앙다물어지면서 힘껏 눈을 부릅뜨게 만드는 단어 ‘믿음’. 그 단어는 단지 듣거나 발음하기만 해도 너무나 단단하고 확고부동하여 토를 달거나 의문을 제기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즉, 적어도 개신교 내부에서는 약해진 믿음(신심)은 곧 열등한 믿음을 의미하며, 믿음이란 자고로 강해야만 그것으로서 제 기능을 발휘하고, ‘믿음’이라 불리울만 한 것으로 여긴다. 믿음은 그렇게 단단하고 확고하게 자리를 이탈하지 않으며 자태를 뽐내는 그런 것이어야 하나보다. 그 믿음이란 것이 어떻게 단단해지는지, 단단한 상태의 믿음이란 어떤 상태를 말하는 건지 어떤 합의도 없는 채로.


   최근 종교개혁 500주년이라 하여 각 처에서 ‘믿음’ 이 더욱 단단하고 확고해지기를 요구받고 있다. 그 사정은 이러하다.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시작했다(?)고 일컬어지는 마틴 루터가 로마서 1장 17절의 성서 구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 을 통해 회심을 얻었다고 알려진 것이 사건의 발단이다. 루터는 그리스도교의 종교적 핵심 곧 구원론을 교회나 교황 등의 외형적인 상징이나 표지로 획득할 수 있다고 믿지 않았고, 신도 개인이 가지는 그 ‘믿음’이 그리스도교 구원의 핵심이라 설파했다. 루터는 당시의 모진 괴롭힘과 박해를 뚫고 이 ‘오직 믿음(Sola Fide)’을 앞세운 이신칭의의 주장을 사수하여 프로테스탄트 혁명의 선두에 섰고 지금의 개신교 계통의 우두머리로 평가받고 있다. 이후 프로테스탄트라는 종파 속에 있는 사람들은 이신칭의 곧, ‘구원=믿음’이라는 이 공식은 프로테스탄트인가, 아닌가를 가르는 경계선이 되었고, 그 경계 밖을 나가는 교리는 소위 성서의 가르침을 벗어난 것이고, 거짓 이단사설 정도로 치부하기에 이르렀다.


   한데, 예수의 후예들이 예수가 행했던 실천과 선언들, 곧 역동적이고 ‘운동성’이 담긴 입체적인 ‘사건’으로서의 ‘예수’를 버리고, 안온한 의자에 앉아 사건성이 제거된 예수를 ‘숭배’만 하고 그 숭배의 파토스를 악용해 예수라는 브랜드의 장사치들로 변질되었듯이 루터와 그의 후예들인 프로테스탄트들도 루터가 당시에 ‘믿음’이라는 단어를 부여잡았던 저항의 정신과 당시 개혁운동의 사건성을 쏙 빼버리고 ‘믿음’ 이라는 단어 쭉정이를 숭배하며, 나아가 믿음이라는 이름의 ‘왕국’을 세워 루터와 개혁가들의 이름을 팔며 장사를 서슴치 않고 있다.


    그런 이들 중에 한국의 개신교인들을 빼놓을 수 없다. 올해는 믿음 장사꾼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기회로 여겨진다. 한국 개신교 내 최대 종파인 장로교 통합측의 경우, 101회 총회를 통해 ‘다시, 거룩한 교회로!’로, 102회 총회 주제를 ‘거룩한 교회, 다시 세상 속으로!’라는 주제를 2년동안 잇달아 내놓았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자신들의 모습을 돌아보며 거룩하지 못하였다고 진단하고, 거룩의 히브리어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구별’된 자들로서의 정체성을 다 잃어버려 세상의 신뢰마저도 잃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드러나는 차이가 아무 것도 없고 그렇기에 자기들을 다른 종류의 인간들과 식별(Identify)하여 동일화(identification)할 수 있는 표식을 강화해야만 우리의 믿음이 강해질 것이라고 집단적으로 강변한다. 짠 맛을 내는 소금의 주성분이 염화나트륨(Nacl)이라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그 실체적인 ‘성분’을 찾자는 게 요즘 주류 개신교 사회의 목소리다.


    9월 말경에 일괄적으로 열린 개신교 대형교단들의 총회에서는 이런 흐름을 극렬하게 반영한다. 이번 총회들은 그리스도인을 식별하는, 그리스도인을 확실하게 보증하는 그 신원 확인서의 요건을 강화하고 명문화(明文化)하는 작업의 향연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동성애자 뿐 아니라 동성애자 ‘옹호/지지자’의 교단 신학교 입학 금지 및 항존직 피택 금지, 이혼/재혼의 간음화(化) 등 기묘하고도 기괴한 상상력들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경쟁을 벌였다. 특히, 심지어 최근 한 교단 총회에서는 교단 산하 신학교 교수들에게 ‘이신칭의론’ 곧 행위와도 같은 다른 불순물 하나 포함되지 않는 ‘순수’ 믿음으로 구원을 완전히 이룬다는 그 사실을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지 그 견해를 일일이 확인해달라는 제언을 하기도 하였다.[각주:1] 마치 사상검증을 통하여 ‘마녀’라도 사냥해야 속이 풀리겠다는듯이…


프로테스탄트와 믿음


    그러나 루터가 자신의 손에 들었던 무기인 ‘믿음’은 지금의 많은 개신교인들이 기억하고 심폐소생시키려는 믿음제일주의,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이신칭의론 제창과 같은 강력한 프로파간다와 일치하는 것일까? 만약 아니라면 루터 당시의 교회가 잃어버렸다고 주장한 믿음, 그것은 어떤 것일까?


    최근 루터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출간된 책 ‘루터의 재발견’에서 저자인 최주훈 목사(중앙루터교회)는 루터파 등 일단의 개신교 진영이라고 불리는 무리들이 들고 일어난 개혁과 혁명의 기치를 높이든 16세기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그들의 특징을 설명한다.


1520년 루터는 로마 교회로부터 파문 교서를 받고 이듬해 보름스 제국의회(1521)에서 실질적 제재 조치인 제국 추방령을 선고 받는다. (…) 당시 유럽은 오스만 튀르크 족의 유럽 침입으로 기독교 세계가 위기에 봉착한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에 로마 교황청은 모든 제후들의 힘을 빌려 이슬람에 대항하는 정치적 연합을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1526년 6월 25일 제 1차 슈파이어 제국의회에서 ‘지역의 종교는 그 지역의 통치자의 종교로 한다’는 종교 선택의 원칙을 결의하게 된다. 이 결의의 이면에는 보름스 제국의회(1521)에서의 루터에 대한 판결을 덮어 두겠다는 정치적 합의가 숨겨 있었다. 그러나 3년이 지나 이슬람 군대가 퇴각함에 따라 국제 정치 지형도가 급변하고 이슬람의 위협이 사라지자, 황제는 곧바로 개신교의 확산을 막기 위해 1529년 4월 19일 제2차 슈파이어 제국의회를 소집하게 된다. 이 회의가 열리기 직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칼 5세는 모든 루터파 제후들에게 경고장을 발송한다. 루터파를 떠나 모교회 품으로 돌아오라고 권고하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과 검이 루터파 제후와 영주들을 찾아갈 것이라고 경고장을 발송한다.[각주:2]


    이러한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루터와 루터파 제후들이 선택한 것은 항복이 아니었다. 아무리 뒤져 보아도 성서에 그렇게 적혀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많은 회유와 갖가지 협박에도 그는 자신의 생각을 고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읽어버리고 만 성서’, 그러나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읽을 수도 없고 해석할 수도 없게 라틴어로 쓰여 있는 그 성서 거기에는 당시 기독교 세계가 말하고 있던 셀 수도 없이 많은 그 종교적 장치들이 나와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루터는 수도사 생활을 하는 동안 참회와 형벌의 문제를 고민하였는데, 교회가 오랜 기간 동안 제작해 놓은 구체적이고 세밀한 ‘생명-정치’ 시스템, 그리고 그것을 통해 사람들의 삶을 뼛속 깊이 착취하는 행태는 성서의 이야기들과 전혀 부합하지 않았다. 그는 성서를 다시 읽었다. 최후의 심판과 구원의 주체는 사람이나 교회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읽고 말았다. 그리곤 그것에 올라타 소용돌이 속으로 기꺼이 휘말려 들어갔다.


    그 후 루터와 믿음의 동지들은 누구도 신앙을 강요할 수 없다는 ‘신앙의 자유’, 교회 공의회나 사제의 권위보다 높은 ‘성서의 권위’, 성서는 성서 자체가 해석한다는 ‘성서 해석의 원리’[각주:3] 이 원리들을 붙잡고 계속해서 자신의 고백의 길을 이어갔다. 무려 1천여년 가까이 이어온 역사의 전통과 관습도 성서에서 비롯된 그의 ‘믿음’보다 상위의 것이 아니었다. 그의 ‘믿음’은 저항하는 믿음이었고, 좋은 게 좋은 것, 하던 대로 하면 되는 것이란 주장에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가 말하는 ‘믿음’은 십계명의 제 1계명이 천명하는 것처럼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고 지탱하려고 하는 마음을 버리는 것, 즉 ‘오직(Sola)’이라는 태도로만 성립하는 것이었다. 개신교 신학의 다섯 가지 표제어인 ‘5대 솔라Sola’ – Sola Scriptura 오직 성서, Sola Fide 오직 믿음, Sola Gratia 오직 은총, Sola Christus 오직 그리스도, 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 영광 – 는 단독적인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강조를 뜻하며, 중세 로마 가톨릭 신학에 대한 반대 표제어라 할 수 있다.[각주:4] 루터가 주창한 ‘오직’과 ‘믿음’의 결합이란 신자들의 믿음의 대상을 교회 기득권층 마음대로 지정하고 조작하던 것에 질문하고 반대하는 ‘믿음’이었던 것이다. 번잡스럽게 헌금함을 채워야 연옥을 면하는 것도 아니고, 성찰, 통회, 정개, 고백, 사죄, 보속 이 여섯 단계로 이루어진 고해성사 ‘절차’ 또한 성서가 말하는 믿음이 아니었다. 믿음의 목적어들, 곧 믿음의 대상을 요리조리 자기 입맛에 맞게 귀에 걸고 코에 걸었던 관행을 정지시키고 오직 믿음 그 자체를 통해 구원으로 향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즉, ‘비어 있는 것’으로서 믿음, 곧 다른 것 아닌 ‘오직 믿음 그 자체’라는 사실에 루터와 프로테스탄트는 주목했던 것이다. 이제 루터 이후로는 믿음과 대상이 분리된 상태, 곧 주술적인 행위로서의 믿음에서 ‘믿는다’는 행위 자체로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었다.


믿음을 파기하는 '믿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시대에서 ‘믿음’은 어떤 식으로 해석되어야 할까? 새로운 저항과 변화의 신호탄으로서 믿음을 읽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성공회 신학자이며, 예수 세미나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역사적 예수’ 연구로 잘 알려진 마커스 보그(Marcus J. Borg)는 이 시대에 잃어버린 신앙 언어들의 역사적 연원을 살피면서 동시에 그 언어들이 지금 어떻게 우리 시대에 다시 새로운 의미로 새겨져야 할지를 설명하는 책 ‘그리스도교 신앙을 말하다 – ‘왜 신앙의 언어는 그 힘을 잃었는가?’를 썼다. 이 책 ‘믿음과 신앙’이라는 제목의 장에서 보그는 ‘믿음(Faith)’에 대한 여러 가지 사전적 정의를 설명하며 이들 간에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믿는다는 것은 확실성의 정도는 다르지만 무엇인가를 믿는다는 것, 어떤 진술을 믿는다는 것으로 정의되며, 실제로 믿는다는 것은 어느 정도 불확실성을 전제한다. 불확실성이 없다면 ‘믿다’가 아니라 ‘안다’라고 해야할 것이다.[각주:5]


    그렇다. 굳이 보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대체로 ‘믿는다’고 말할 때는 모두에게 자명하고 객관적인 사실에 대해서 믿는다고 하지 않는다. 불확실한 것, 어느 정도 ‘가능성’으로 존재하는 그것을 거짓이 아니라 ‘참’으로 받아들이고, 진실로 받아들이고자 ‘결단’하는 그 행위를 ‘믿는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 사실이 확률로 존재하고, 가능성으로만 존재하기에 ‘그렇다/아니다’라고 단정짓기 모호한 것들에 단호히 선을 ‘그어버림’으로써 그것에 형태를 주고, 형체로서 드러내는 일, 그것을 우리는 ‘믿는다’고 표현한다. 따라서 우리가 믿는 기독교 신앙이란 ‘하느님에 대한 충절로서의 신앙, 하느님을 더욱더 중심에 두는 삶의 결실’이며, 특히 ‘하느님의 부력(浮力, buoyancy)을 믿고 의지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그는 이야기한다. 이어서 보그는 이 ‘믿다’라는 동사는 신뢰하다(Believe in)라는 말의 의미와 가까우며, 이는 단순히 어떤 진술이나 누군가의 말을 진실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한다는 의미에까지 다다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부력을 의지하는 믿음’이란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다. 마태복음서 14장에서 풍랑 속에 베드로에게 다가가 “믿음이 적은 사람아, 왜 의심하였느냐?”라고 말했을 때처럼 부력을 의지하여 바람을 보고 무서워하지 않고(마 14:30), 이 액체와 같은 세상의 바다 위를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 발을 내딛는 것을 의미한다. 즉, 예수가 베드로에게 요구한 믿음이란 예수라는 것을 바라보고 그 사잇길이 어떠하든지, 무엇을 만나든지 ‘걸어오는 동작’을 멈춰서버리지 않는 것, 동작을 이어나가고 계속하기를 견뎌내는 것, 그 동작, 계속 움직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믿음은 어떤 거대하고 강건하여 유동하지 않는 단단한 그것을 부여잡아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는 명사적인 것으로서의 ‘상태’를 말하지 않는다. 믿음이 목적어로 취하고 있는 그 부여잡은 대상들, ‘물(物)’을 믿음과 일치시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믿음’ 은 진리와 진리라는 권위가 고정되어 있으며, 결코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기득권들의 허구적 현실을 ‘재구성, 재창조, 재설계’하는 언어다. 현실의 관행적인 ‘믿음들’을 부수고 ‘나는 이렇게 믿소!’하고 어깃장을 놓으며 연약하기만한 새로운 가능성에 철갑옷을 입히는 행위다. 루터가 말한 프로테스탄트의 핵심이 저항과 질문, 소통의 문제라는 점도 믿음의 이러한 특징들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지 않겠는가? 눈에 보이지 않고 계속해서 손에 잡히지 않는 하나님이라는 완전한 타자를 내 앞에 붙잡아 앞에 갖다 놓고 여기 저기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도록 형상화(形象化)하여 심지어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에 구원의 결정 여부를 갖다 붙이는 행위, 마녀라는 이름으로 눈이 감각할 수 있는 확실한 ‘적’을 생산하여 공포를 조장하는 알량한 정치전술을 펼치는 행위를 절단(切斷)하고 파쇄시키는 행위이지 않겠나 말이다.


    앞에서 ‘안다’는 것과 ‘믿다’는 것의 차이에서도 보았듯이 믿는다는 행위는 미완의 상태로 있는 것들에 경계를 주어 완전성을 부여하는 것이며, 이러저러한 가능성과 불온한 유언비어로만 치부되는 이야기에 숨을 불어넣고 그것을 이 땅에 뿌리내리게 하는 동적 행위다. 적어도 ‘믿음’은 어떤 대상을 부여 잡고 주워 섬기며 숭배하고 그것에 종속되어 타자화하는 데에 그쳐서는 될 일이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란 ‘사건’ 속에서 밀고 당기고, 들고 나는 호흡하는 동적인 유기체다. 단단하고 변하지 않는 정적인 완전성을 붙드는 것은 어리석다. 세계가 부단히 움직이며 상호작용하는 존재임을 깨달아야 바르다. 움직임을 멈추면 죽는다. 가라앉는다. 예수가 베드로에게 말한 그 믿음도 예수를 향해 계속해서 부력을 의지하여 걸음을 옮기는 ‘믿음-행위’ 때에만 성립한다. 예수를 봤다는 이유로, 바람이 분다는 등등의 이유로 멈추면 물 속으로 빠진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움직임이다.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하고 움직인다는 ‘섭리’란 어떤 고정된 스케쥴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사건의 결을 따라 동적 균형을 이룬 완전성을 의미하고,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의 섭리로서 신뢰해야 한다. 고로 믿음이란 ‘믿습니다’라는 행위로서만 존재할 뿐이며, 믿습니다’들’의 연속적 집합으로 이루어진다. 고로 믿음은 행위와 둘이 아니다. ‘믿습니다’로서 하나다.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만 이루어진다는 둥, 믿으면 행동이 자연스레 따라온다는 둥, 행위와 믿음을 언어 자체에서 구분하고 보는 자가 신앙의 적(敵)이다. 어떤 대상을 고착시켜 받드는 일로서의 신앙은 이제 그만할 때가 되었다. 정초하고 깊이 머무르되 또다시 박차고 일어나 의심하고 끊임없이 다시 고백하는 ‘믿습니다’의 여정, 그 속에 우리의 숨과 삶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 웹진 <제3시대>



  1.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13337 [본문으로]
  2. 최주훈, '루터의 재발견'(2017, 복 있는 사람), 48쪽. [본문으로]
  3. 위의 책, 50쪽. [본문으로]
  4. 위의 책, 50쪽. [본문으로]
  5. 마커스 J. 보그 지음, 김태현 옮김, ‘그리스도교 신앙을 말하다 – 왜 신앙의 언어는 그 힘을 잃었는가?’(2009, 비아), 158~159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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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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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여성혐오를 다루지 않고서는 


500주년 종교개혁을 논하지 말라





김나미

(미국 Spelman College 교수, 종교학)




     [작은 것들의 신] (The God of Small Things)의 저자로 잘 알려진 아룬다티 로이(Arundhati Roy)는 “전통”과 “시장 중심의 신자유주의”로 부터 동시에 공격을 받는 인도의 여성들이 어떻게 많은 투쟁을 이끌게 되었는지에 관한 인터뷰에서, 인도는 “여러 세기를 동시에 살고 있는 나라이다”라고 말한다.[각주:1] 인도란 나라에는 여성을 상대로 여러 형태의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은 반면에, 동시에 이런 폭력에 저항하는 강하고, 독립적이고, 급진적이며, 독창적인 생각을 하는 여성들도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 한국이란 나라도 지금 여러 세기를 동시에 살고 있다. 21세기에 살고 있지만 ‘과거’에나 행해졌을 법한 여성들에 대한 차별, 혐오, 비하, 희롱, 폭력, 살해를 도심지에서, 동네 골목길에서, 섬에서, 산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병원에서, 교회에서, 그리고 집안에서 서슴없이 행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물론, 이에 저항하는 여성들도 적지않다. 


    서른명의 학생들과 포르투갈에서 2주 단기 수업을 하는 동안 서울 강남역 근처의 공용화장실에서 일어난 여성살해 사건을 전해 들었다. 그 때 마침 포르투갈의 한 여성운동단체를 방문하여 포르투갈 여성들이 직면한 여러가지 이슈들에 관해서 듣고, 포르투갈에서도 ‘여성살해’ (femicide)가 얼마나 큰 사회적 문제인지, 또 여성들이 이에 어떻게 저항하는 지에 관해서 막 접한 터였다. 공용화장실에서 일어난 여성살해 사건이 너무나 끔직한 뉴스이긴 했지만, 사실 여성들에게 행해지는 폭력, 살인, 성폭행, 성희롱, 성차별이 사회 전반에 너무나 만연해 있었기에 그 뉴스가 새삼스럽지는 않았다.  


    ‘다르게’ 와 닿았던 것은 이번에 발생한 여성살해를 그저 ‘또 하나’의 ‘일상적’인 사건으로 지나쳐 버릴 수 없었던 여성들이 이 사건을 ‘여성혐오’ (misogyny) 사건으로 규정하고, 여성혐오의 심각성을 지적하면서 피해자를 공공장소에서 추모하기 시작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그 뿌리가 깊고 넓은지 알기 어려울 정도로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를 당연하게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없애야 할 사회악으로 보고 여성들이 그것에 저항했다는 것과, 그런 저항의 움직임을 받아 들일 수 없어하는 남성들이 그들을 비판하면서 공공연하게 여성혐오를 또 다시 드러냈다는 것이다. 한국도 인도처럼 여러 세기를 동시에 살고 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잘 지적했듯이 여성혐오란 용어가 한국에서 생소하다고 해서 여성혐오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여성혐오를 보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한다는 것은 오히려 그것이 얼마나 ‘일상화’ 되어져 있고, 개개인의 사고방식과 행동 및 사회구조에 ‘자연스럽게’ 내재되어 있는지를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여성혐오를 보지 못한다는 것은 여성혐오에 대한 해결책 또한 내놓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니, 감시 카메라를 늘리고, 치안을 강화하고, 가해자에 대한 형량을 높이거나 그들을 사회에서 격리 시키면, 몇 몇의 ‘이상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연관 없는 ‘사건들’이 사라지게 되면서 모두가 ‘안전’한 사회가 될 것이라는 실로 대책없고 공허한 방안을 내놓는 사람들도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성신학자 메리 헌트 (Mary Hunt)가 말하듯이, 폭력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각개의 개별적인 에피소드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 삶의 “상황” (context)이다.[각주:2] 여성혐오, 성차별, 여성을 상대로 행해지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은 그저 어쩌다 일어나는 개별적인 사건들이 아니라 기독교회와 신학이 외면해 온 여성들의 ‘치명적인 일상’인 것이다. 이렇듯 여성혐오를 인식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인식한다해도 해결할 노력이나 의지가 없어 보이는 곳 중의 하나는 교회이다. 교회내의 ‘여성혐오’는 그 사례들을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물론, 교회내에 깊이 뿌리 박혀 있는 여성혐오에 저항하는 목소리와 운동은 지속되어져 왔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소수의 저항으로 종종 무시 되어지거나, 저항의 주체들은 오히려 여성우월주의자들로, 또는 ‘남성혐오자’들로 매도되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교회도 여러 세기를 동시에 살고 있다. 


    내년에 종교개혁 500 주년 (1517-2017)을 맞이해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마틴 루터의 고향인 독일을 비롯하여 종교개혁과 관련이 있는 유럽국가들로 ‘순례’를 계획하고 있고, 개신교회들도 한국교회의 미래와 교회개혁을 논의하는 준비를 시작했다고 한다. 무엇을 준비하고 논의를 할 것인가? 주로 논의 되는 주제들은 “한국 교회에 만연한 물질 만능주의와 성장주의, 배타주의”[각주:3]라고 한다. 모두 중요하고 절실한 주제들이다. 그런데, 많은 교회를 비롯하여 사회 전반에 깔려있는 물질 만능주의, 성장주의, 그리고 배타주의의 원동력이 되어온 구조적 성차별과 여성혐오, 그리고 이와 관련된 여러 형태의 혐오들에 관한 논의는 누가, 어디서 할 것인가? 


    성차별과 여성혐오, 그리고 다른 형태의 차별과 혐오들을 진지하게 다루지 않고서는 “한국 교회에 만연한 물질 만능주의와 성장주의, 배타주의”를 제대로 논의 할 수 없다. 그러니 진정한 교회 개혁은 있을 수 없고, 일어나지도 않을 것이다. 여성혐오를 없앤다는 명목하에 다른 혐오를 정당화하는 과오를 저지르는 일 없이 한국 교회와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 성소수자혐오, 장애인혐오, 이주노동자혐오, 이슬람혐오를 ‘개혁’의 대상으로 삼는 ‘저항인’ (Protestant) 들이 되지 않는다면 500년을 또 기다려도 ‘개혁’은 없을 것이다. 교회는 그저 계속해서 여러 세기를 동시에 살게 될 뿐이다.  


    한국교회의 미래와 교회개혁을 진정으로 논의할 의지가 있다면, 500년 전 종교개혁을 주도했던 종교개혁가들의 사상과 행동에 깊이 뿌리 박혀 있었던 여성혐오와, 지금까지 지속되는 여성혐오적이고 차별적인 신학, 성서해석, 의례, 예배 형식, 언어, 교회 조직, 활동들을 먼저 인정해야 할 것이다.  


    500 여년 전, 당시의 부패했던 교회에 ‘저항’의 목소리를 내면서 시작된 ‘종교개혁’이었지만, 여성신학자들이 지적해 왔듯이 그 시대 그 공간에서 살았던 여성들의 삶과 그 이후 세대의 여성들에게 부정적으로 미친 종교개혁의 영향은 비판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조명되어져야 할 것이다. 가부장적 성서해석으로 가정과, 교회, 사회에서 여성들의 종속적인 위치를 확실하게 못박았고, 야곱의 딸 디나의 납치와 강간은 그녀가 자초한 일이라면서 피해자를 비난하는 성서해석을 내놓았으며, 성과 관련해서 남녀에게 적용된 이중잣대를 정당화 시켰던 마틴 루터나 존 칼빈의 남성중심적 성서해석과 신학이 아직도 어떻게 교회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지를 묻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각주:4] 동시에 여성혐오를 사회에서 견고히 하는 데 한국의 개신교회가 어떻게 앞장서 왔는지를 반성하면서, 같은 과오를 되풀이 하지 않도록 실천을 통해서 보여주는 방법 밖엔 없다.  

   

   교회의 진정한 개혁을 논의하고 변화를 가져오려면, 교회와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 성소수자혐오, 장애인혐오, 이주노동자혐오, 이슬람혐오에 저항하라. 그런 저항으로 말미암아 변하기를 거부하는 기존 교회와 사회로 부터 설사 ‘이단자’로 불린다 할지라도 말이다. 마치 500여년전 ‘이단자’로 불렸던 종교개혁가들처럼. 그러나, ‘이단자’로 불릴 각오와 결심이 없다면 500주년 종교개혁의 이름으로 교회의 미래와 개혁을 논하지 말라. 변화없는 교회의 ‘미래’란 과거와 과거가 되어 버렸을 지금의 현재가 여전히 뒤엉켜서 존재하는, 그래서 “여러 세기가 공존”하는 맞이 하고 싶지 않은 ‘미래’일 뿐이다.

  

ⓒ 웹진 <제3시대>



  1. http://www.outlookindia.com/magazine/story/i-dont-believe-there-are-only-two-genders-i-see-gender-as-a-spectrum-and-im/295061 (accessed 09/10/15). [본문으로]
  2. Carol J. Adams and Marie M. Fortune, “Preface,” in Violence against Women and Children: A Christian Theological Sourcebook, ed., Carol J. Adams and Marie M. Fortune (New York: The Continuum Publishing Company, 1995), 12. [본문으로]
  3.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10/22/0200000000AKR20151022143000005.HTML (accessed 11/30/2015); http://www.koreatimes.com/article/879912 (accessed 10/18/2014). [본문으로]
  4. Denise Lardner Carmody, Women and World Religions (Prentice Hall, 1989).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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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독일어 성서 번역에 깃든 해체성[각주:1]



이상철
(한백교회 담임목사 / 한신대 겸임교수)

 


 

    종교개혁은 신으로부터 독립한 인간을 선언한 사건이었을 뿐 아니라, 유럽이 국민국가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던 도화선이었습니다. 그 후 유럽은 국민국가의 틀 속에서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을 경쟁적으로 도입하게 됩니다. 즉, 근대의 가장 큰 외형적 특징은 국민국가와 자본주의의 확립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의 시작이 종교개혁이었다는 것이죠. 이것이 종교개혁이 갖는 정치-사회학적 의미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위에서 언급한 종교개혁을 둘러싼 해석은 사후적으로 구성된 종교개혁의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종교개혁자들이 실제로 이렇게 거창한 목적의식을 갖고 종교개혁을 진행시켰는지는 미지수입니다. 실제로 루터는 종교개혁을 기점으로 양분되는 종교개혁 이전의 유럽과 이후의 유럽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저 소박하게 교회의 개혁을 주장했을 뿐이죠. 이런 자기의 시도가 중세의 종말을 고하는 비약적 사태로 확대되는 것에 대해 루터는 적잖이 당혹스러워 하지 않았을까요? 

    1517년 루터가 비텐베르크 대학 교회의 문에 붙여 놓은 95개 논제로 된 “면제부의 효력에 관한 반박문(Disputation)”에서 루터는 면죄부의 효력을 지적하는 95개 논제를 제시했습니다. 루터의 반박문이 파괴력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인쇄술의 발달이 한몫을 차지합니다. 1450년경부터 보급되기 시작한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루터의 반박문을 독일 전역으로 확장시키는 데 일조하였습니다. 원래 루터의 반박문은 라틴어였으나 독일어 번역으로도 인쇄되어 전파되면서 독일국민들에게 넓리 읽히면서 반향을 일으켰는데 아마도 루터는 그 파급력에 적잖이 놀랐을 것이고, 이를 계기로 독일어 성서번역에 대한 상상을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저는 비텐베르크 대학교회에 붙은 95개조 반박문은 종교개혁의 예고편이었고, 진정한 종교개혁은 루터의 독일어성서 번역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중세 천년을 지배했던 라틴어 성경, 라틴어 강론, 라틴어로 구성된 각종 교회언어들에 균열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즉 텍스트에 대한 해체가 루터의 독일어 성서 번역으로 도모되기 시작한 것이죠.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대타자의 목소리, ‘아버지의 이름으로’상징되는 교회의 권력은 일차적으로 경전이 갖는 권위와 숭고함으로부터 나옵니다. 하지만, 루터에게 있어 믿음이란 교회의 권력과 전통에서부터 기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믿음이란 성경의 믿음뿐입니다. 루터는 이 믿음을 기초로 교회와 사회와 문화 활동 전반이 운영되기를 기대했습니다. 따라서 성경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 급선무였고, 이러한 신념아래에서 루터는 성경번역에 착수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성경에 대한 번역은 당시로서는 그 자체로 교회 권력에 대한 도전을 의미했습니다. 언어란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사고의 방식과 삶의 태도를 결정합니다. 이런 이유로 역사에 등장했던 거의 모든 권력은 언어를 지배하고자 했습니다. 언어가 곧 정신이기에 그렇습니다. 루터 당시 라틴어는 1000년 가까이 전 유럽을 지배했던 삶의 조건이자 전제였습니다. 권력은 이에 대한 누수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루터의 독일어판 성경은 교황의 명령으로 독일 전역에서 소각되어졌고, 영어로 성경을 번역했던 윌리엄 틴텔(1484-1536)은 화형에 처해졌습니다. 언어가 단순한 담화의 도구가 아니라 그 이상의 가치와 의미가 담겨져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사건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루터에 의해 감행된 독일어 성서 번역은 신앙의 자유, 학문의 자유를 견인하면서 중세의 해체를 선언한 사건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루터가 외쳤던 Sola Scriptura! (오직 성서!)가 해체주의자 데리다의“텍스트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각주:2]라는 말과 상동성이 있다고 봅니다. 통상 해체주의는 파괴, 전복,폭력 등의 용어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어렵고 무거운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데리다를 옹호하는 학자들마다 제일 먼저 시도하는 것은 해체주의에 대한 선입견을 불식시키는 작업입니다. 데리다에게 있어 해체란 즉물적인 의미에서 무엇인가를 파괴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에게 있어 해체란 기존 텍스트 안에 묻혀있었던, 저자 조차도 의도하지 못했던 진실을 발굴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텍스트 해석의 지평을 확장하는 과정 혹은 절차 일반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데리다가 지니고 있었던 문헌학자로서의 특이한 이력의 소산이라 할 수 있는데, 그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후설, 하이데거, 소쉬르 등의 책을 면밀히 분석하면서 기존의 관점이 아닌 새로운 시각으로 그들의 텍스트를 읽어냅니다.[각주:3] 데리다가 플라톤의 『티마이오스 Timaeus』를 읽으며 플라톤조차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코라(Khora)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각주:4] ‘코라’는 조물주인 데미우르고스가 우주를 창조 할 때 물질의 역할을 담당합니다. 플라톤에 따르면 세상은 이데아의 모방(imitation)이고, 세상속에서 이데아가 구현되는 터, 질료, 대지가 바로 “코라”입니다. 이데아가 질서(Order)라면 코라는 혼돈(Chaos)을 상징합니다. 흔히 서양 철학의 오래된 질문이라 할 수 있는 형상과 질료, 주관과 객관의 조화란 범박하게 말하면 이데아를 코라에 이식함으로 코라의 혼동을 극복하고 현실가운데 안정과 질서, 그리고 통일을 가지고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데리다는 플라톤 스스로도 의도하지 못했던 코라의 의미를 찾아 집요하게 파고들었습니다. 그리하여 발견한 것이‘코라 없이는 이데아도 없다’는 것입니다. 코라는 지금까지 논외의 영역이었고, 단지 이데아가 발현되는 과정에서 소모되는 것으로 치부되었었는데, 데리다의 꼼꼼한 텍스트 분석에 의해 코라는 이데아 못지않은 위상을 부여받게 된것이죠. 코라에 이데아가 심겨져야 비로소 그것이 발현되는 것으로 말입니다. 이렇듯 그동안 묻혀있었던 텍스트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것, 혹은 그 과정 일반을 데리다는 ‘deconstruction’이라 불렀습니다.  

    데리다의 해체를 좀 더 해석학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존 재현의 형이상학은 텍스트 밖에 로고스로 상징되는 빛이 있어 텍스트 안으로 그 빛을 비추어 텍스트 속에 숨어있는 천상의 진리를 발견하는 시스템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자궁에 있는 태아가 탯줄에 의지해 산모와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천상의 진리인 이데아는 이성의 원리인 로고스에 의해 인도되어 텍스트로 들어와 진주처럼 박혀 있는 것이죠. 우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진리들을 우리의 언어로 다 설명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것을 로고스중심주의(Logocentrism)이라 부르는데, 데리다에게 있어 로고스중심주의는 플라톤이래로 서구철학을 근거짓는 지침이었습니다. 로고스중심주의 하에서는 ‘말하는 것’(시니피앙)과 ‘말하려는 의미’(시니피에)가 일치합니다. 이것이 대상과 인식의 일치, 주관과 객관의 통일을 매개하여 진리에 대한 확증을 보증하면서 서구 형이상학을 지탱하는 믿음으로 자리잡았던 것입니다. 데리다는 이러한 로고스중심주의가 이룩한 연쇄고리를 서구 정신사가 성취한 허상이라 지목하면서 그것에 대한 해체를 주장하였던 것입니다.[각주:5]

    데리다가 텍스트 밖에서 텍스트를 짓누르는 로고스 중심주의에 저항하면서 텍스트의 의미를 재조명했던 것처럼, 루터의 독일어 성서번역은 텍스트 밖에 존재하면서 텍스트를 강제하던 교회의 권력과 라틴어 중심주의에서 텍스트를 해방시켰던 사건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텍스트를 텍스트이게 끔 했던 사건, 즉 텍스트 스스로가 말하게끔 선언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갇혀 있었던 성서해석의 올무를 풀어줌으로써 말씀은 드디어 회중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각 사람들과 소통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각각의 이해와 반응과 행동이 첨가되면서 성서는 이전의 사물화되었던 경전이 아니라 비로소 살아 숨쉬는 말씀으로, 박제화된 관념이 아니라 이 땅을 변혁시키는 사건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루터의 독일어 성서 번역은 이러한 영감을 우리들에게 선사하면서 5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성서를 통해 이루어지는 이 땅의 변혁을 꿈꾸게 합니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감리교 기관지 <기독교세계> 4월호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본문으로]
  2. “There is nothing outside of the text”-Jacques Derrida, Of Grammatology. Corrected edition. Trans. Gayatri Chakravorty Spivak ,(Baltimore and London: Johns Hopkins Press, 1997), 158. [본문으로]
  3. “내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독해하고자 했던 방식은 이러한 유산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반복하고 보존하는 그런 방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떻게 그들의 사유가 작동하고 있는지 또는 작동하지 않는지를 발견하고자 하는, 그리고 그들이 남긴 언어 자료 안의 긴장, 모순, 이질성을 발견하고자 하는 그런 하나의 분석이다”- Jacques Derrida, Deconstruction in a Nutshell. Ed. John D. Caputo, (New York: Fordham University Press, 1997), 9. [본문으로]
  4. “나는 플라톤을 연구하는 매 순간마다 그의 작품 안에 있는 이질성(heterogeneity)을 발견하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어 티마이오스에 등장하는 코라가 어떻게 플라톤이 전제하고 있는 체제 속에서 양립할 수 없는지 찾으려고 한다. 나는 플라톤에 대한 존경과 사랑, 그리고 플라톤을 충실히 이해하기 위해 그의 작품에 대한 작용과 반작용을 공히 분석한다.”- Ibid. [본문으로]
  5. 자크 데리다, 『마르크스의 유령』,18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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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신학가이드1]

어거스틴을 벗고 루터를 넘어…

왜 바울신학에 다시 귀기울이는가?

 

한수현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박사 과정)

 

    여행을 계획할때 당신은 무엇을 제일 먼저 고민하는가? 장소인가? 아니면 날짜인가? 장소를 먼저 고민했다면 아마도 당신은 가고 싶은 어떤 곳이 먼저 생겼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소개를 받았거나, TV 프로그램에서 보았거나, 아니면 문득 옛날에 가보았던 어떤 곳이 참으로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날짜가 먼저라면? 아마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서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싶어서 가장 쉬기 쉬운 날짜를 고민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공부라는 길도 여행과 비슷한 면이 있다. 때로는 공부할 소재가 명확해서 마치 장소를 먼저 선택하는 여행과 같이 될때도 있고 이곳 저곳 마땅히 갈 장소를 고르다가 날짜에 맞는 좋은 장소를 발견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필자가 바울서신을 공부하게 된 것은 위의 두가지 상황이 차례로 생겼기 때문이다. 원래는 역사학이나 조직신학에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대학원을 가게되고 자연히 전공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오자 신약신학을 선택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성서를 잘 아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설교를 할때도, 목회를 할때도. 당시에는 대학원 이후 (필자는 학부 신학과 출신에 신학대학원까지 한국에서 공부했다.) 공부를 계속할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성서라도 잘 공부하는 것이 좋을것이라는 그야말로 막연한 생각으로 전공을 선택했다.

    대학원 생활이 반넘을쯤 다른 신학대학원을 다니던 학부 동기를 만나 우연히 책 한권을 소개 받게  되었다. 도서출판 시공사에서 출간된 E. P. 샌더스가 쓴 [바울]이라는 200 페이지 정도의 책이었는데, 이 책으로 인해 바울서신을 내 공부의 주제로 결정했고, 유학까지 결심하게 되었다. 단순한 생각으로 선택했던 대학원 전공이 평생의 학문에 대한 주제를 찾는 계기가 되었고 지루한 박사공부를 계속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된 것이다. 앞으로 연재하게 될 바울신학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 바울서신을 공부하기로 결정하고 난 후 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나의 학문적 수행을 차례로 소개하는 형식이 될 것이다.

    이야기의 방향을 돌려서, 그럼 왜 나는 이 웹진의 귀중한 지면의 몇 페이지를 차지하고 앉아서 이 길다면 긴 바울신학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이야기해 보자. 나는 바울신학이 앞으로 상당한 시기동안 현시대 사회와 상당한 연관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신학자들의 책이 출간되면 교회나 신학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그 책들을 사서 보고 토론하던 시절이 있었다. 불트만이나 틸리히등이 살았던 시대에는 신학이 사회의 통전적인 삶과 정치에 관심을 가졌고 그것에 귀기울이던 많은 시민들이 있었다. 하지만 소위 포스트 모던이라는 시대가 시작되면서 이모든 관심들이 한방에 사라졌다. 서점에서도 신학책들은 인문학중에서도 구석으로 밀려났고 자기개발도서나 유명설교자의 책들이 신학분과의 리더역할을 자처하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이제 신학이 다시 금의환양하는 시대가 되었다. (적어도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앞으로의 신학자들의 몫이다. 몇해전이었다. 필자가 공부하는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이웃에 위치한 Lutheran School of Theology라는 학교를 갔다가 시카고 인근의 에반스톤이라는 도시에 위치한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열리는 컨퍼런스에 대한 공고문 앞에 한참을 서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 컨퍼런스의 제목은 단 한단어 '루터'였다. 물론 그 밑에 여러 주제들이 나열되어 있었지만 미국의 종합대학의 인문학 컨퍼런스의 제목이 그저 '루터'라는 것은 현상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큰 것으로 느껴졌다. 첫째로, '루터'라는 이름만으로 몇일간의 컨퍼런스를 개최할 정도로 '루터'와 현시대의 상관성이 있다는 것이고, 둘째로는 그 이름 하나만으로 지식들이나 대학생들의 관심을 끌고 컨퍼런스에 참여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학회는 노스웨스턴 종교학과가 중심이 되어 이끄는 것이었지만 노스웨스턴의 국제규모의 학회중 하나로 개최되는 것이었기에 단순한 종교적 관심을 넘어서는 여러 이슈들을 다루고 있었다.

    왜 신학에 이리도 관심이 생긴것일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원인중 하나로 들수 있는 것은 자본주의와 리버럴리즘이 역사의 종언, 즉 더이상 진보할 수 없는 인류의 완성이라는 후쿠야마의 사자후가 완전한 구라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에 대한 승리를 공언하고 세계화에 박차를 가하게 된 그 순간에, 세계는 전쟁과 테러, 기아와 경제위기에 빠지게 된 것이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까? 마치 911 테러에 대한 청문회가 열렸을때 안보국 국장이 나와서 말한 "Sorry, we failed you." (죄송합니다. 다 우리 잘못입니다.-의역-) 라고 말한것 처럼 이제 세계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세계의 강대국에 왜 이시대가 이렇게 되었는가 질문하고 있다.

    만약에 현재의 자유시장경제체제 안에서 지금의 세계 위기에 대한 대안을 찾을 수 있다면 신학은 편안하게 뒷방에 앉아서 신앙서적이나 뒤적이면 되겠다. 그렇지 않다면 신학은 새롭게 대두되는 여러 대안들과 경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미래에 대한 청사진은 어려더라도 현대 사회에 대한 윤리적 가치정도는 구축해야한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역사의 흐름을 본다면 결과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기독교 담론이 정치화되거나 교회 밖에서 구체화 되었을때 얼마나 폭력적이고 몰상식할수 있는지는 가깝게는 미국의 부시행정부가 일으킨 소위 이라크 성전이나 멀게는 십자군 정쟁등에서 확실히 나타난 사실이다. 영국의 식민정책과 미국의 인종차별 정책의 사상적 뒷받침이 된 것도 성서와 신학이었다. 히틀러의 유대인 대학살의 뿌리가 실은 성서에도 나타나는 반유대주의였다. 과연 성서안에서 우리가 다른 종교나 사상과 차별될 수 있는 미래를 위한 비전을 생산할 수 있을까? 필자는 바울신학에 대한 재고를 통해서 신학이 생산할 수 있는 비전의 가능성을 모색할 것이고 그 여정을 이 글의 독자들과 함께 할 것이다.

    지금까지 앞으로 떠날 여행을 목적을 생각해 보았다. 목적지는 미래를 위한 비전이고, 그 과정중에 우리는 바울의 서신들과 1970년대부터의 바울신학의 한 귀퉁이에서 점점 크게 울려퍼지고 있는 목소리들을 살펴볼 것이다. 필자는 바울 서신에서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시대적 위기에 대한 상당히 적절한 해답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감히 덧붙이고 싶다.

 

스탠달이 바울신학에 미친 영향

    모든것에는 시작이 있다. 나는 바울신학 여정의 시작을 크리스턴 스탠달 (Krister Stendahl)이라는 학자로 시작하고 싶다. 하바드 대학의 교수로서 스웨디쉬 교단의 감독으로 깊은 신학적 통찰을 가졌던 그는 자신의 이전에 있었던 근대 바울신학의 흐름에 방점을 찍고, 새로운 바울이해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 젖었던 사람이었다. 

    한 평범한 사람이 있다. 이 사람에게 한 사람이 접근하여 대화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 사람은 불쌍한듯 평범한 이에게 말한다. "형제님 당신은 죄인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당신을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인간이라면 죄인임이 틀림없으니까. 아무도 피해갈 수 없는 심판에 잔뜩 겁을 먹은 이에게 전도자는 말한다.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그분께서는 우리를 참으로 사랑하셔서 구원의 길을 그의 아들 예수를 통해 이미 열어놓으셨습니다...." 이제 한순간에 죄인이 되었다가 살아난 평범한 이는 교회를 향해 발걸음을 돌린다. 필자는 이러한 구원론에 대해 통채로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오직 예수만이 구원이라면 그 이전에 살았던 기독교를 몰랐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복잡한 답안이 주어지기 시작한다. 연옥이라는 둥. 하나님의 뜻에 맡겨야 한다는 둥. 하지만 만약에 위의 이러한 구원에 대한 말들이 바울에 대한 오해라면?

    스탠달은 바울이 말하고자 했던 것에 조금이나마 접근하기 위해서는 바울서신을 읽기전에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론 그에게는 서구인이었지만) 하나의 거대한 전제를 벗겨버릴 필요가 있음을 역설하였다. 그것을 간단히 말하자면 바로 "죄의식"이다. 필자가 고등학교때 읽었던 바울에 대한 책중의 한 표현이 기억난다. "10할 타자는 없다.” 무결점의 야구선수가 없듯이 죄없는 인간은 없다. 인간은 하나님앞에 모두 죄인이다. 오직 우리의 죄인됨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뿐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예수 그리스도 이전에 율법으로 구원받을 것이 라고, 의롭다 칭함을 받을 수 있다고 믿은 것은 다 틀렸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으며 그를 통해 우리는 의인으로 하나님앞에 설 수 있는 것이다. 한걸음 더 나가면, 그리스도 이외에는 구원은 없으며, 교회 밖의 인간은 필연적으로 심판을 피할 수 없다. 바로 이러한 거대한 하나의 구원론이 기반하고 있는 것이 바울의 서신이다. 여기에 "바울은 예수를 따르는 공동체를 예수를 믿는 종교로 바꾸어 버렸다!"고 비판한 하르낙의 불만이 있고, 니체의 비판이 있다.

    인간은 죄인이며 바울은 “어떻게 죄를 용서받을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한 우리는 바울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거스틴과 루터를 읽고 있는 것이라고 스탠달은 말한다. 최초의 서구적인간인 어거스틴은 자신의 영적 기록(고백록)을 기독교적 시각에서 저술한 최초의 서구인이자 그리스도인이었는데, 어거스틴은 자신의 질문 “대체 어떠한 근거로 한 인간이 구원을 얻는가?”를 해결하기 위해 바울의 이신칭의를 인간 개인의 죄의식에 대한 해답으로 해석했다.[각주:1] 사실 어거스틴 이전의 기독교 기록들에서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얻는 구원에 대한 언급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럼 믿기만 하면 되는가? 믿음은 행위라는 것을 수반하지 않는가? 어거스틴 이전에 이러한 질문에 관심을 기울인 기록은 찾아보기 힘들다. 스탠달은 그 이유가 초대 교회시절에는 바울의 의미를 잘 이해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바울에게 칭의의 문제는 모든 인간 개개인의 구원의 문제가 아니라 이방인들에게 열린 구원의 가능성에 대한 바울의 의견이었음을 이해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탠달은 바울의 서신들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루터나 어거스틴의 콘텍스트에서 이해된 바울이 아니라 바울이 살았던 콘텍스트에서 바울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거스틴과 루터에게 해결해야할 문제는 인간 개인의 죄와 구원의 문제였다면 바울에게 중요한 문제는 이방인 선교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이었다. 정작 바울이 말하였던 율법을 행함에 대한 비판은 유대교의 할례와 음식법등의 문제였지 인간 개인의 노력을 통한 구원에 대한 존재론적 비판이 아니었다는 것이다.[각주:2]

    유대인들이 거절하고 로마인들이 십자가의 형틀에 죽여버린 예수가 부활하여 자신이 메시아임을 확증하였음을 믿은 바울. 그가 고민했던 것은 과연 이 부활한 메시아의 의미가 당시의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였다. 예수를 거절하였으니 유대인들은 심판받을 것인가? 로마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죽였으니 심판받을 것인가? 유대교를 모르는 이방인들에게 예수의 부활은 어떤 의미인가? 오랫동안 기독교는 하나님이 유대인을 버리고 이방인들중 예수를 믿는 이들에게 구원을 주실것이라고 바울이 믿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질문들이 바울이 고민했던 것이고, 바울 나름의 해답을 제시한 것이 그의 삶이자 저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나 스탠달은 개신교 핵심 교리의 뿌리인 로마서의 핵심은 3-5장이나 6장의 구원론이 아니라 9-11장이라고 말한다. 앞으로 유대인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바울의 생각이고, 미래에 대한 바울의 신앙을 드러낸 9-11장이 로마서를 이해하는 중심이 된다는 것이다. 선교사인 바울에게 당시 메시아 공동체와 유대 회당의 관계는 중요했는데, 9-11장에서 바울은 결국 이 두공동체가 하나님의 계획속에 함께 공존할 것이라고 말한다. 놀라운 것은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언급은 없다는 것인데 스탠달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바울은 이스라엘이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일때 하나님의 나라가 온다고 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때가 되면 모든 이스라엘이 구원받는다고 말할 뿐이다.”[각주:3] 바울에게는 하나님의 정의가 아브라함의 약속에서 부터 계속 유대백성과 함께 했고, 이제 이방세계로 메시아 예수를 통해 열려졌고 그 사건은 단순히 인간 개인의 의식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하나의 공동체로 변화시킬 것이다. 그러기에 이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고 선물이였던 것이다.

    스탠달은 바울신학의 새로운 해석을 위해 다음과 같은 다섯가지의 기준을 제시했고, 이는 현재까지 학자들에게는 논쟁의 이슈로 또한 후학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여겨지고 있다.

    개종이라기보다는 부름 (Call rather than Conversion)
    사도행전의 바울의 체험은 개종사건이라기 보다는 이방인 사도로의 부름받음이다. 내러티브의 구조는 구약성서의 예언자들을 부르는 사건들과 비슷하며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한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면서도 유대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부정하지도 않는다. 바울의 이름이 사울에서 바울로 바뀌는 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는 있겠지만 사울의 이름이 헬라지방에서 바울로 발음되는 예는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즉 사울에서 바울로의 이름의 변화는 종교적 정체성의 변화를 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바울은 유대교전통의 선진자였고 그의 책무는 이방인들에게 예수의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의가 도래함을 알리는 것이었다. (유대인들이 이를 거절하기는 하였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거절하지 않고 구원의 약속을 이룰것이다.)

    용서라기보다는 의인됨 (Justification rather than Forgiveness)
    불트만의 유명한 명제인 ‘신학은 인간학’은 적어도 바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흔히 의인됨과 용서받음을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놀랍게도 바울서신에서 용서라는 단어는 단 한번 (롬 4:7)에서 발견되며 이또한 시편 32편의 인용이다. 용서라는 것은 용서받을 것이 있어야 성립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울은 자신이 용서받아야할 인간이라고 생각했을까? 언뜻 쉬운 질문인듯 하지만 실상 텍스트속에서는 그렇지 않다. 로마서 7장에서 바울이 말했듯이 ‘나’라고 표현되는 사람은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행한다. 그러한 자신을 보는것이 절박하고 괴롭다. 그러나 그러한 행위를 행하게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안의 죄이다. (롬 7:20) 바울이 인간을 상황이 죄아래 있다고 생각했을까? 그렇다. 바울은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용서를 받아야한다고 생각했을까? 그렇지 않다. 전통적으로 메시아의 도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의를 쟁취하거나 세상이 완전히 타락했을때 이루어진다고 묵시전통에 서술되어있다. 바울은 하나님의 분노가 예수 그리스도의 드러나심과 함께 시작됨을 말했는데 의인됨은 메시아에 대해 충성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이지 용서받음의 문제가 아니다. 바울의 죄악된 세상을 말할때 그는 세상의 만연한 죄악의 현실을 말하는 것이지 용서받아야할 개인의 죄를 말하는 것이 아닌것이다.

    죄라기보다는 약함 (Weakness rather than Sin)
    바울에게 죄가 큰 문제가 아니었다면 과연 왜 바울은 그의 많은 서술에서 자신의 괴로움과 부족함을 토로하며 힘들어 했을까? 서신들을 살펴보면 사도로서 바울은 자신의 과업을 충실히 행하지 못했다고 생각될때 즉, 자신의 소명을 완수하기 힘들때 자신의 부족함을 토로했다. 결국 죄에 대해 괴로워하기 보다는 자신의 약함을 고민했던 것이고 그 약함은 자신의 사역속에서 오는 여러 고난들이지 개인적인 차원의 성찰이나 영적인 죄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통합보다는 사랑 (Love rather than Integrity)
    바울의 칭의가 이방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맞춤형 계획이라고 해서 바울이 구원의 문제를 타인의 입맛에 맞게 생각했다면 오해이다. 여러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바울이 노력했을 지라도 바울에게 믿음보다 소망보다 사랑이 가장 중요했던 이유는 바로 사랑이 바울이 생각하는 기독교신앙의 정수였기 때문이다. 이때의 사랑은 감정적인 것이 아니다. 스탠달은 이때의 사랑이라는 것은 세금을 내는 행위와 비슷한 것이라고 보았다. 즉, 공공을 위해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것이지만 아주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행위가 바로 사랑인 것이다. (세금으로 정부가 뭘할지는 일단 예외로 해두자.) 이것이 바로 고린도전서 13장의 내용이며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는 것’이다.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닌 공공을 위한 삶, 그것을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래서 자신이 그 행위를 하는지도 잘 못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이는 감정도, 인식도, 판단과도 다른 하나의 삶의 방식이며 이것이 메시아에 대한 충성, 즉 신앙의 결정체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모든 타인을 향해 열려있어야 한다.

    보편적이라기보다는 독특한 (Unique rather than Universal)
    바울이 없었다면 기독교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바울의 공동체 이전에 수많은 이방인 공동체들이 있었다. 바울은 로마에 가보기도 전에 로마의 교회들에 편지를 보냈다. 바울의 생각이 당시 교회의 보편적인 생각이라고 보기 힘들다. 오히려 여러 다른 생각을 가진 독특한 공동체들이 있었을 것이다.


    짧게나마 스탠달의 다섯가지 기준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러한 스탠달의 기준들은 바울신학에 대한 이전까지의 연구들에 괄호를 치고 바울의 선교적 상황에서 바울서신을 새롭게 읽을 것을 학자들에게 종용했다. 그리고 이러한 시각에서 바울을 연구하는 운동이 일어났는데 이를 후대의 학자들은 New Perspective라고 명명하였다. 다음 웹진에서는 소위 뉴페스팩시브라 불리우는 연구에 학문적 엄밀성을 부여한 E. P. Sanders라는 학자를 소개할 계획이다. 샌더스나 제임스 던, N. T. 라이트, 나노스, 캠밸, 엘리엇등의 학자들이 이름이 이미 익숙한 독자들도 많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웹진의 글들을 통해서 개괄적으로 새관점주의를 정리하기 보다는 그들의 독특성을 살펴보고 나름의 비판적 해체와 수용이 함께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바울에 관심있는 분들의 열독을 기대해본다.

ⓒ 웹진 <제3시대>

 

  1. Krister Stendahl, Paul Among Jews and Gentiles (Fortress Press, 1976), 16. [본문으로]
  2. 스탠달은 소위 어거스틴과 루터의 introspective conscience(자아 성찰적 의식) 라는 것이 전형적인 서구적 생각이고 이는 바울과는 상관이 없는 인간관이라고 보았다. Ibid., 18. [본문으로]
  3. 로마서 20:25-26참조. Ibid., 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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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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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상철
    2013.07.04 21:01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많이 배우고 갑니다. 앞으로 진행되는 연재 기대하겠습니다.
  2. 한수현
    2013.07.06 08:02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몇번 글을 겹쳐서 씀으로 해서 여러 오타가 있음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 그리고 이상철목사님 격려 감사합니다....
  3. 꾸도리
    2016.10.19 07:05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그러니깐 스탠달의 제안(?!)에 기본적으로 동조하며 새로운 바울 읽기를 시도한 이들이 마지막 부분에 열거해주신 사람들이고, 이들을 묶어서 "새관점학파"로 부르는건가요?^-^
    혹 연재 가운데 논의가 허락하신다면 왜 요즘 많은 철학자들(예컨대, 아감벤이나 지젝)이 바울에 관심을 갖는지도 짚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좋은 글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 한스
      2016.10.28 17:01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새관점 학파를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새관점에 관한 글, 샌더스와 제임스 던에 다루었습니다.

      철학과의 연결은 스티븐 무어에 대한 웹진을 참고하시면 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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