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과 찜질방에 깃들은 인종차별과 편견





김나미

(미국 Spelman College 교수, 종교학)




    지난 8월 초 브라질의 리우 데 자네이루 (Rio de Janeiro)에서 열렸던 올림픽과 관련하여 미국의 주류 방송사에서 방영하지 않은 이야기들과 경기들이 있다. 리우올림픽이 열리기 전까지, 그리고 열리는 동안에도 계속 일어난 브라질 사람들의 올림픽 반대 시위와 그에 대한 경찰의 가혹한 진압은 방송에서 물론 보기 어려웠지만, 경기 자체가 미디아의 조명을 받지 못한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미국의 수영선수인 시몬 마뉴엘 (Simone Manuel)이 금메달을 딴 수영 개인종목 경기였다. 미국의 대부분의 주류 방송사들은 시몬 마뉴엘이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따는 순간은 물론이고 금메달을 받는 시상식 장면 또한 방영하지 않았다. 아무도 흑인여자 수영선수가 수영 개인 종목에서 금메달을 딸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뭐 그냥 그럴 수도 있겠지’ 하고 지나칠 수 있는 이 일을 그냥 지나칠 수 만은 없는 이유는 시몬 마뉴엘의 메달 획득이 수영과 미국의 인종차별주의 역사의 연관성에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1865년에 끝난 미국의 시민전쟁과 그 해에 비준된 미헌법 제 13조에 의해 약 400년간 이어져온 노예제도가 폐지 됬기는 했지만 그것이 곧 흑인들의 삶의 향상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노예제도 폐지후 얼마 되지 않아 남부지역에서 실행된 짐크로우 (Jim Crow) 법은 흑인과 백인의 ‘분리’ (segregation) 를 법으로 정한 반흑인 인종차별법으로써 1965년 까지 유효했다. 이 법에 따라 흑인들과 백인들의 생활의 모든 공간이 분리되어 졌고, 만약 이 법을 어길 경우는 법의 처벌을 받는 제도화된 인종차별법이었다. 군대[각주:1], 학교, 식당, 화장실, 엘리베이터, 버스, 열차, 극장내의 ‘분리’된 공간들은 물론이고, 아이들의 놀이기구, 수영장, 해변가에서도 ‘분리’는 분명했다. 백인들만의 공간에 흑인들이 들어 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고, 그것을 위반 했을 때에는 백인들에 의해 잔혹하게 폭행을 당하거나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시몬 마누엘(출처 : https://au.tv.yahoo.com)


    1950년대에 도로시 덴드리지라는(Dorothy Dandridge) 흑인 여배우가 발가락을 잠깐 담궜다 꺼냈다는 이유로 라스베가스 한 호텔의 수영장물 전체를 다버린 사건, 1964년 플로리다주의 한 모텔주인이 흑인들이 들어가 있는 모텔의 수영장에 염산을 뿌린 사건등은 전혀 정치적이지 않을 것 같은 수영장, 해변가, 사우나시설들이 어떻게 인종차별을 첨예하게 드러내는 공간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각주:2] 수영장의 이런 인종차별적 역사 속에서 많은 흑인들은 수영을 배울 기회를 갖지 못했고, 수영이란 운동과 가까와 지기 어려웠다. 이렇게 수영과 관련된 인종차별 역사 때문인지 미국의 주류 방송사들도 미국을 대표하는 흑인여자 수영 선수의 개인 종목 결승전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수영장에 깃들은 흑인들에 대한 인종차별과 동일시 될 수 는 없지만, 한인들의 흑인들에 대한 인종적 편견과 태도가 드러나는 장소들 중 하나가 바로 찜질방이다. 점점 늘어나는 미국내 한인들의 숫자를 보여주듯이 한인들이 밀집한 대도시에는 한인 사우나, 또는 찜질방이 있다. 애틀란타라는 남부의 큰 도시에도 한인들이 운영하는 사우나와 찜질방이 있다. 한국에 있는 찜질방에 비해서 훨씬 비싸지만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처음 찜질방이 문을 열었을 때는 한인들이 대다수 였지만, 지금은 흑인들이 많이 이용한다고 한다. 그런데, 바로 흑인들이 많이 가기 때문에 더이상 찜질방에 가지 않는 다거나, 가지 말라고 조언을 하는 한인들을 주위에서 종종 만나 볼 수 있다. 이유는 흑인들이 많아서 ‘더럽다’는 것이다.


    ‘흰색은 순수하고 깨끗하다’, ‘검은색은 오염됬고 더럽다’라며 색깔과 인종을 연결시켜 우열을 나누는 것은 인종차별주의를 지탱하는 여러가지 이데올로기들 중의 하나이다. 한국사회에서도 흑인이나 ‘혼혈아’로 불리는 사람들을 상대로 쓰여지는 여러가지 용어들이 있는데, 여기서 일일히 나열할 필요도 없이 부정적이고, 혐오적이다. 도대체 흑인에 대한 이런 편견과 부정적인 태도가 언제부터 어떤 경로를 통해서 한국인들 사이에 퍼지게 된 것일까? ;


    한국 사회와 미국의 한인 공동체의 초국가적 (transnational) 연관성을 연구해온 한국계 미국학자 김나디아 (Nadia Y. Kim)는 자신의 책 [제국의 시민들] (Imperial Citizens)에서 한국 사람들이 흑백인종질서를 받아 들이는 것을 가능하게 한 여섯가지의 연관된 요인들을 논의하고 있다. 간략하게 요약을 하면, (1) 한국인들과 일본인들 사이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색깔사이의 위계, (2) 각 사회 구성 집단의 적합한 위치를 강조하는 유교관념, (3) 애국계몽운동이후에 (1895-1905) 형성된 ‘한핏줄’ 국가개념, (4) 엘리트 백인들과의 접촉, (5) 일본에 의해 소개된 미국-유럽의 인종 이데올로기들, (6) 한국에서 반인종차별운동의 역사와 담론의 결핍 등이다.[각주:3]


    김나디아는 이렇게 역사적으로 연관된 요인들이 다른 유색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가능하게 한 토양을 만들었고, 냉전시대 이후 부터 현재 한국사회에 만연한 유색인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미국의 흑백인종질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한다[각주:4]. 다시 말해서, 미국이 문화, 경제, 군사적으로 그 힘을 확장해 나갔던 냉전시대에 미국 사회의 흑백인종질서로 다른 나라들도 “인종적으로 ‘미국화’” 시켰다는 것이다. 흑백질서라는 미국의 인종 이데올로기, 좀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반흑인 인종차별주의가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미국의 영향아래에 있는 한국과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미국으로 이민을 간 한인들도 이민을 가기 전부터 이미 흑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과 태도를 형성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 사람들과 미국내 한인들 사이에 팽배해 있는 반흑인 편견과 태도는 미국의 인종차별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각주:5]


   미디아만 보더라도 미국의 인종차별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전세계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갔는지 알수 있다. 흑인들과 관련된 미디아 이미지는 ‘아프리카의 미개인’으로 부터, ‘무력한 노예’, 마약과 폭력을 일삼는 도심지의 ‘난폭한 갱’, 국가의 복지 혜택을 누리면서 세금을 축내는 ‘게으른 미혼모’등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두가 부정적이다.[각주:6] 한국 미디어에서 간혹 미국의 유명한 흑인 운동선수나 연예인들이 긍정적인 모습으로 조명되기도 하지만, 이것 또한 상당히 제한되어져 있고, 몇 몇의 ‘뛰어난’ 흑인들을 ‘예외’인 것으로 부각시키면서 오히려 흑인들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을 강화시키는 기제가 되기도 한다.


   물론 백인들의 유색인 차별과 한인들의 다른 유색인에 대한 인종적 편견과 태도를 동일 선상에 놓고서 얘기 할 수 없다. 왜냐하면 힘의 역학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한인들도 백인들과 똑같은 인종차별주의자들이다’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종차별주의는 개개인들의 차별적 언어, 행위와 편견이라는 중요한 측면이 있지만, 무엇보다 구조적 차원의 문제이다. 흑인들에 대한 인종차별을 포함하여 유색인에 대한 인종차별과 억압은 백인우월주의 (white supremacy)라는 큰 틀과 연결 시켜서 봐야 한다. 여성신학자 앤디 스미스 (Andy Smith)는 백인우월주의를 지탱해온 세가지의 각각 다르면서도 서로 연결된 “기둥”들을 논하는데, 그 세가지의 기둥은 다음과 같다: (1) 미국 노예제도와 자본주의, (2) 미 ‘원주민’ 학살과 미국에 정착했던 유럽인들의 정착형 식민주의, (3) 미국이 관여한 아시아에서의 전쟁과 오리엔탈리즘이다.

   

   흑인들, 한인들을 포함한 아시아인들, 그리고 미국의 ‘원주민’들이 백인우월주의에 의해 억압을 받아온 경위와 역사가 동일 하지는 않지만, 각각의 그룹이 경험하는 억압은 백인우월주의와 연결되어져서 서로의 억압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렇게 다른 “기둥”들에 의해 억압받아온 사람들이 취해야 할 행동은 ‘우리는 저 사람들과 다르다’라는 인식론적 차원에서의 ‘분리’나, ‘우리는 저 사람들 보다 훨씬 낫다’라는 우월주의적 사고를 갖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서로가 “공유하는” 억압의 경험을 얘기하면서 누가 더 억압받았는지 경쟁하는 “억압 올림픽” (the oppression olympics)에 참가하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각주:7] 각각의 억압 경험이 다르지만, 서로의 억압을 강화시키는데 알게 모르게 참여해 온 것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백인우월주의와 그것을 지탱하는 “기둥”들을 무너뜨리는데 힘을 합할 수 밖에 없다.

  

    수영장에 깃든 미국의 기나긴 인종차별의 역사를 비인간적인 억압의 구조로 본다면 찜질방에 깃들은 한인들의 인종적 편견과 태도 역시 간과 할 수 없겠다. 나/우리의 인종차별적 편견과 태도가 흑인들을 억압하는 인종차별적 구조를 견고하게 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사실은 나/우리를 열등하게 여기고 차별하는 구조를 굳건히 하는데 내/우리가 오히려 앞장서는 이상한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다른 유색인들의 삶을 힘들게 하는 억압구조에 동조하면서 한인들만은 차별받지 않고 다양한 가능성을 실현 하면서 살 수 있는 사회란 있을 수도 없고 꿈을 꿀 수도 없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더 고달프게 하는 구조에 동참하면서 나/우리만 잘 살 수 있는 사회란 많은 이들에게는 깨어나고 싶은 악몽일 것이다. 미국의 인종차별주의에 맞서 싸웠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말을 기억하면서 나/우리의 삶이 다른 사람들의 삶과 어떻게 서로 떼어 질 수 없이 연결 되어있는 지 보도록 하자. 그러면 별 일 아닌 것 같이 보일 수 있는 수영장과 찜질방에 깃든 인종차별과 편견이 사실은 모두의 삶을 황폐하게 하고 위협하는 부정의라는 것을 알 수 있을테니 말이다: “어딘가에 있는 부정의는 곳곳에 있는 정의에 대한 위협이다. 우리는 하나의 운명에 묶인 채 피할 수 없는 상호관계성의 네트워크안에 있다. 무엇이든 한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것은 모두에게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각주:8]


ⓒ 웹진 <제3시대>



  1. 미군대내의 분리는 1948년에 폐지 되었다. [본문으로]
  2. http://www.sportingnews.com/athletics/news/simone-manuel-gold-medal-swimming-legacy-history-african-american-barred-pools-beaches/y6t5l0c7b55h166ovrc5ssxid; https://www.washingtonpost.com/sports/olympics/the-significance-of-simone-manuels-swim-is-clear-if-you-know-jim-crowe/2016/08/12/870e3bb6-60ad-11e6-af8e-54aa2e849447_story.html?tid=sm_fb [본문으로]
  3. Nadia Y. Kim, Imperial Citizens: Koreans and Race from Seoul to LA (Stanford, CA: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8), 37. [본문으로]
  4. Ibid. [본문으로]
  5. 여기에 관해서는 본인의 책에서 조금 더 자세히 논의하고 있다. Nami Kim, The Gendered Politics of the Korean Protestant Right: Hegemonic Masculinity (Palgrave Macmillan, forthcoming). [본문으로]
  6. 한국 사람들의 흑인들에 대한 인종차별에 관한 다음의 글을 참조하기 바람. Dave Hazzan, “Korea’s Black Racism Epidemic.” Groove (February 11, 2014). Available at http://groovekorea.com/article/koreas-black-racism-epidemic-0. [본문으로]
  7. Andy Smith, “Heteropatriarchy and the The Three Pillars of Oppression: Rethinking Women of Color Organizing.” In Color of Violence: The Incite! Anthology. Ed. Incite! Women of Color Against Violence (Cambridge, MA: South End Press, 2006). [본문으로]
  8. Martin Luther King Jr., "Letter from a Birmingham Jail” (16 April 1963).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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