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내가 함께 걷는 '내일을 위한 시간, 투 데이즈 원 나잇'




이희승*



  2016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무심한 마음으로 보자면 다른 날과 하나 다를 것 없는, 시계 태엽처럼 조용히 세상 첫 날부터 같은 궤도를 돌며 땅 위에 생명을 나눠 준 태양이지만 그래도 그 묵묵한 걸음에 새 날의 희망을 기대해보고 싶은 것은 저 혼자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라 믿습니다. 청년 실업, 비정규직, 고용 불안, 그리고 정부가 앞장 선 노동 개혁 혹은 개악으로 소란스러웠던 201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벼랑 끝에 서서, 소리 낮춰 신음하고 있는 이웃들을 향해 새해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왠지 조심스럽게 느껴지네요.




  2014년에 개봉한 <내일을 위한 시간 (원제: Deux jours, une nuit)> 을 만든 벨기에 출신의 형제 감독인 장피에르 다르덴과 뤽 다르덴 역시 이와 비슷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신자유주의의 횡포로 강팍해져 가는 유럽 노동 현실의 맨얼굴을 다룬 이 영화는 마치 온갖 맛집의 향연같은 헐리우드 대작들과 볼거리가 화려한 국내 흥행작들 사이에서 오랜만에 맛보는 담백한 동치미 같다고 하겠습니다. 젊은 시절, 영화라는 매체에 입문하면서부터 직접 카메라를 둘러 매고 줄곧 공장지대, 파업현장 등을 돌며 다큐멘타리를 찍었던 다르덴 형제의 저력과 노장으로써의 성숙함이 어우러져 가식없이 깊은 맛을 내는 명작이라고 꼽고 싶네요. 주연을 맡은 마리옹 코티야르가 화장기 없는 얼굴로 영화 상영 시간인 95분 내내 목이 타들어 가는 여름 햇볕 아래 마른 먼지가 흩날리는 거리를 하염없이 걷고 또 걷는 동안, 다르덴 형제의 카메라는 그녀의 뒤를 묵묵히 따를 뿐입니다.  


  주인공인 산드라는 참으로 절박한 상황에 처합니다. 공장 노동자였던 그녀는 심한 우울증으로 휴직을 할 수 밖에 없었고, 얼마간의 휴식 후에 복직을 준비하던 산드라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습니다. 산드라가 없는 동안 그녀의 일을 나누어 맡았던 동료 열 여섯명에게 회사가 거절하기 힘든 제안을 했던 것이지요. 각자에게 매월 천 유로의 보너스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산드라가 공장에서 해고 당하는 것에 찬성하도록 말입니다. 겨우 우울증의 그늘에서 벗어난 산드라는 이 절망적인 소식을 듣고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하지만, 그녀 또한 순순히 일자리를 포기할 만큼 여유로운 입장이 아니지요. 주말이 가기 전에 열 여섯명의 동료들을 찾아 다니며, 보너스를 포기하고 자신의 복직을 위해 재투표해 줄 것을 부탁하기로 결심합니다. 동료들의 넉넉치 않은 형편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산드라는 자신이 얼마나 무리한 부탁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대체 무슨 명분으로 천 유로라는 큰 돈을 포기해달라고 종용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한 산드라의 목소리는 미안함과 수치심으로 매순간 가늘게 떨리고, 한없이 작아진 존재감 앞에 산드라는 삶을 포기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하지요. 이렇게 산드라가 생의 가장 초라한 순간을 견디는 동안, 냉정하리 만큼 담담한 이 영화는 산드라와 독대하며 서로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야 하는 동료들을 악인으로 만들거나, 보너스를 포기하고라도 산드라의 손을 들어 주는 동료들을 의인으로 만드는 것에 주저합니다. 그저 조용히 산드라의 곁을 지키는 다르덴 형제의 시선은 양편의 노동자들이, 아픈 동료의 등에 칼을 꽂게 만든 회사의 소위 ‘효율적인’ 경영 시스템이 얼마나 비인간적인가를 서서히 깨닫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처럼 보입니다.    


    비록 고단한 일박 이일간의 수고는 해피엔딩을 맞지 못하지만, 산드라를 포함한 열 일곱명의 노동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은 자본주의적인 욕망을 미끼로 자신들을 모래알처럼 흩어 놓은 회사의 방침에 대한 분노를 함께 공유하는 신선한 연대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다르덴 형제는 죽은 듯 보이지만 단단히 버티고 선 늙은 나무의 밑둥같은 결말을 선사합니다. 모래 먼지가 흩날리는 공장지대의 신작로에 선 해고 노동자 산드라는 더이상 해고의 두려움에 떨지 않습니다. 작은 절망에도 쉬이 눈물을 떨구던 산드라가 이제 홀로 서서 망망한 허공을 응시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내일은 온다는 사실을 애써 기억해 내는 이 영화의 결론에, 그 무뚝뚝하고 뭉툭한 감동에 필자는 주착없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물론, 대학에서 비정규직 지식노동자 (시간 강사)로 근무하고 있는 필자의 기약없는 오늘과 희망없는 내일이, 쫓겨난 일터에서 남은 짐을 챙겨 나와 목적지 없이 황망히 길 위로 내몰린 산드라의 월요일 아침과 오버랩된 탓만은 아닐 것입니다. 고집스럽게 리얼리즘에 사명을 건 듯한 이 영화는 도무지 현실에서는 이룰 수 없는 환상 위에 진한 화장을 덧입힌 듯한 가식적인 승리감에 충만한 해피엔딩을 거부하고, 비관적인 오늘을 꿋꿋이 함께 버티는 이웃들이 꿈꾸는 좀 덜 비관적인 ‘내일’을 위한 시간을 관객들의 가슴에 남겨 놓고 끝을 맺으려는 듯 합니다. 


  사실, 산업 사회의 도래와 함께 새롭게 재편된 자본주의 구조의 척박한 가장자리를 차지하게 된 노동자들의 현실을 직시하는 영화는 그리 흔치 않습니다. 20세기가 만들어낸 꿈의 공장이라는 영화 산업의 붐을 가져 온 니켈오디언 (5센트 극장)의 주요 관객이 바로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 든 노동자들이었는데도 말입니다. 미국이 대공황의 철퇴에 휘청거리던 1930년대 초, 무성영화의 거장 찰리 채플린이 그린 이 시대 노동자의 자화상 <모던 타임즈>는 초기 영화 산업이 가지고 있던 이러한 내재적인 모순을 여과없이 드러낸 바 있습니다. 하지만 대중문화가 근원적으로 품고 있는, 현실과 환상의 괴리라는 이 아이러니한 현상은 우리가 바라보는 ‘꿈’ 혹은 ‘환상’의 본질과 관련이 있습니다. 즉, 인간은 누구나 현재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욕망한다는 아주 상식적인 욕망의 원리와 더불어, 내가 욕망하는 것은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이라는 욕망의 근본적인 모순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내면서도 이 모순을 이용해서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현대의 산업이 바로 영화 산업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우리는 눈 앞에 펼쳐진 거대한 스크린이 제공하는 이 가상의 공간에서 과연 무엇을 보고 싶은 것일까요? 이 물음에 얼른 대답할 수 없다고 해도, 아마 대부분의 관객들은 꿈의 공간이라고 불리는 스크린을 통해, 땀내가 후끈나는 어수선한 잠자리에서 부스스 일어나, 다니던 일터에서 해고를 당했다는 전화 한 통을 받는 공장 노동자 산드라의 단춧구멍만큼 작은 (그래도 그 집 사는데 빌린 대출을 갚으려면 한 삼십년은 더 걸릴 것 같은) 이층집 풍경을 들여다 보고 싶지는 않다는데 동의하실 것 같네요. 왜냐하면 이 후줄근한 산드라의 공간, 즉 다음 장면을 안 봐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내 손바닥 보듯 뻔히 알 수 있을 것 같은 산드라의 삶은 바로 우리가 살아 내고 있는 현실 그 자체이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관객으로 하여금 희망 혹은 꿈이라는 이름으로 더 나은 내일을 무턱대고 기대하게 하는 것이 예술가로써 과연 윤리적인 선택인가라는 질문에 끊임없이 답하고자 하는 다르덴 형제는 우리 이웃 산드라의 <내일을 위한 시간>을 통해, 새해 첫날 누구나 맘 속에 그려 보는 화사한 희망의 채도를 두어 단계쯤 낮춰야 비로소 볼 수 있는 현실을, 우리가 발딛은 초라한 세상을, 부조리와 결핍으로 고통받는 우리의 삶을, 영화라는 꿈의 공간에 오롯이 올려 놓습니다. 그리고 스크린 위에 불편하게 펼쳐지는 상처투성이의 자화상을 바라봄으로써, 이웃의 비루한 일상과 고민 그리고 갈등을 겹겹이 공유한 끝에야 얻어지는, 산드라와 그녀의 동료들이 어느 주말 오후에 느닷없이 경험한 그 단단한 연대를 욕망하게 합니다. 환상 혹은 신기루가 아닌,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말입니다. 


* 필자소개

뉴질랜드 오클랜드 대학 강사 및 정신분석가. 동 대학의 미디어 영화학과에서 각색영화에 관한 정신분석학적 고찰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현재 아시안학과에서 한국 영화와 텔레비젼 드라마에 관한 강의를 맡고 있다. 호주 정신분석학회의 정신분석가 과정을 수료하고, 국제 라캉 포럼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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