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최종)
: 자살공화국, 대한민국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과정)

지난 6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을 계기로 시작된 졸고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는 자살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되었다. 필자는 글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자살에 대한 물음은 죽음 그 자체에 대한 논의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함을 느꼈고, 이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중세의 죽음관, 근대철학, 하이데거를 중심으로 한 실존주의 철학에서 나타난 죽음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하였다. 지난 호에 하이데거를 넘어가는 레비나스의 죽음이해를 다루었고, 이번 호에 한국 사회의 자살현상(학)에 대한 내용을 언급하면서 글을 마무리 짓는다. 글을 연재하면서 죽음의 계보학을 거슬러올라가며 죽음이 무엇인지에 대해 내 나름대로 정리도 해보고, 어설프게나마 자살의 원인을 추적하면서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는 당사자들이 느꼈을 절망의 깊이에 대해 가늠해보지만 여전히 그 결론은 지난하여 길을 잃고 있다.

자살공화국, 대한민국
통계에 의하면 작년(2008년)에 12,027명의 한국인이 자살했다고 한다. 하루 평균 33명이 바위에서 떨어지고, 목을 매고, 약을 마신다.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대통령, 스타, 재벌에서부터 비정규직 노동자, 장가 못간 시골총각, 어린 중고등 학생들까지 우리사회는 거의 무방비 상태로 자살에 노출되어 있다. 이는 인구 10만명 중 24.8명에 해당되는 수치로 OECD 국가 중 부동의 1위이고, 전 세계적으로도 거의 1~2위를 다투는 수치라고 한다. 자살은 한국인의 사망원인 중에서도 암, 뇌혈관질환, 심장질환에 이어 네 번째 순위에 위치한다.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보다 더 많은 숫자라고 하니, 외출하는 식구들에게 ‘차 조심하라’는 말보다 ‘자살 하지마’라는 경구가 더 필요한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왜 자살을 할까? 어리석은 질문이지만 문제 해결의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으리라 본다. 무엇이 우리를 기꺼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도 될 만큼 모질게 만드는가? 혹자들은 살기 힘들어서 죽는다고 한다. 물론 살기 힘들어서 죽는다. 하지만 세계에서 제일 가난하다는 방글라데시나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자살율이 높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오히려 삶에 대한 만족도 부분에서는 우리보다 상위에 랭크되어 있는 것을 보면, 단순히 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자살한다고 둘러대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통계를 분석한 사람들에 의하면 한국의 자살율은 매우 독특한 그래프를 그리고 있다고 한다. 1995년 통계에 의하면 4,840명이 자살하여 인구 10만 명당 11.8명 꼴이었는데, IMF를 겪은 1998년에 10만 명당 자살율은 19.9명으로 거의 배로 급성장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2005년 인구 10만 명당 26.1명으로 세계 최고로 등극하였고, 작년 2008년 다소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인구 10만 명당 24.8명이라는 세계정상급의 자살율을 자랑하고 있다. 이상의 분석에서 보듯이 IMF로 대변되는 지금의 (금융)자본주의가 한국사회의 자살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포인트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늘어나는 수명과 반비례하여 줄어드는 정년,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그토록 고무 찬양하는 노동시장의 유연성, 인간의 욕망을 저당잡고 팽창하는 암세포 같은 금융 자본. 이렇듯 현재의 자본주의는 아무런 저항과 대응논리 없이 민중들이 짜낸 기름을 동력으로 활활 타오르고, 더 짜낼 기름이 없는 민중들은 어쩔 수 없이 자본이라는 제단 위로 몸을 던져 스스로 자본의 불쏘시개가 되는 것으로 생을 마감한다. 

‘불가리스~’를 기억하시나요?
십 여년전 “불가리스~”하면서 경쾌하게 시작되던 광고가 떠오른다. 화면은 어느 유럽 촌동네를 비추면서 그 동네에 유독 장수하는 노인들이 많다는 사실, 그리고 장수의 원인을 추적하였더니 그 지방 특유의 발효식품 ‘불가리스’가 장수의 원인이었음이 밝혀졌다는 사실을 전하며, 광고는 다시 경쾌하게 “불가리스~” 를 외치며 끝이난다. 기능성 요구르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불가리스’를 세상에 처음 알린 이 광고는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있다.  
광고의 배경이 되었던 지역은 터키와 그리스 위쪽에 위치하고 있는 불가리아에 속해있는 마을이다. 불가리아 남쪽에는 해발 천 미터 이상 되는 고산지역을 따라 장수촌이 분포하는데,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곳이 ‘스몰랸’ 지방의 ‘바니테’라는 마을이다. 이 지역은 인구 1000명당 38명이 100살이 넘는다고 한다 (1990년 이전 통계에 의하면). 장수의 원인을 분석했는데 공기 좋은 고산지대에 살면서 적당한 노동과 운동, 채식 위주로 조금씩 자주 먹는 식습관, 그리고 이 지방 특유의 발효유, 즉 요구르트를 주식과 함께 자주 먹는다고 한다. 이것이 기능성 요구르트 ‘불가리스’의 탄생 배경이다.
그러나 지금 그 지역은 장수촌이 아니다. 요구르트의 효험이 다한 것인가? 1990년대 소련붕괴 이후 사회주의 경제원칙을 근간으로 하던 동구 유럽은 하나씩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급박하게 자본주의 내지 자본주의 색채가 강한 경제 시스템으로 그 체질을 전환한다. 불가리아는 다른 동구유럽 국가에 비해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으로 전환이 늦었지만 자본의 원칙은 어김 없이 그곳을 비껴가지 않았다. Global Capitalism이라 불리는 새로운 자본주의는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만들어 놓고, 노동, 자본, 재화, 정보의 흐름과 교환을 100% 시장에 맡겨버렸다. ‘무한경쟁’, ‘2등은 기억되지 않습니다’ 등 당시 등장했던 광고 문구들은 난장판이 되어버린 시장, 상도가 무너져 개판이 되어 버린 세상을 향한 찬미 내지는 진혼곡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인간을 무한 경쟁의 약육강식의 논리로 재편하려 하는가? 기억되는 않는 2등, 3등, 4등…꼴등은 어찌 살란 말인가?
하지만, 자본에 의한 전 지구적 재편은 신속하게 진행되었고, 그 경과에 맞추어 불가리아에 있었던 장수촌도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한다. 90년대 이후 진행되었던 동구 유럽의 자본주의화와 발맞추어 노인들의 사망률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이제는 예전 불가리아 장수촌지역과 다른 지역의 장수노인의 비율이 별 차이가 없다고 한다. 왜 불가리아의 장수마을은 사라졌을까? 그래도 예전에는 부족하지만 일정량의 양식이 인민들에게 정기적으로 분배되어 가슴을 졸이지 않아도 살아 갈 수 있었는데, 새로운 경제체제하에서는 날고 뛰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먹을 것이 전보다 많아지고 다국적 유명 브랜드들이 거리를 메우면서 우리에게 많은 기회를 선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잠시라도 정지하는 순간 우리는 금방 도태된다. 이 강압을 자본의 원칙에 노출이 적었던 순박한 불가리아 산골 사람들은 견뎌내지 못했던 것이다. 굳이 실패한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향수를 들먹이는 것은 아니지만, 위의 예가 한국 사회의 자살현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으리라 본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 !
IMF이후 지난 10년간 한국 사회는 진정한 계급사회로 진입하였다. 더 철저하고 완고해진 부와 지식의 대물림!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라는 속담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실례로, 필자가 유학하고 있는 시카고에 있는 유명한 사립대학인 Northwestern 대학과 Chicago 대학에 있는 한국 유학생들의 부모들은 거의 대부분은 대학교수, 의사, 변호사, 대기업 임원, 정부 관료의 자식들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곳에서 오랫동안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 교수들의 증언에 의하면 IMF이전에는 그래도 장학금 받고 아르바이트 하면서 열심히 공부하는 한국 유학생들이 많이 있었는데, IMF 이후 달러강세, 미국 경제 악화로 인한 미국 대학의 인터내셔널 학생들에 대한 장학금 축소 정책 이후 이른 바 미국 내 명문대학 (명문 대학들은 대부분 비싼 학비를 자랑한다) 에 있는 한국 유학생들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우선 학비와 생활비를 감당할 재력이 있어야 미국유학을 올 수 있다. 당연히 있는 집 자제분들 아니면 꿈도 못꾼다. 이렇게 세습된 부와 지식의 혜택을 받은 젊은이들은 해외유학 이후 유망한 직장에서 자리를 잡고 강남 아파트에 살면서 외제차를 굴린다.
반면에 평범한 집에서 태어나 그럭저럭 지방대학 나온 청년들은 취직도 잘 안 될뿐 아니라, 설사 취직이 되었다 하더라도 비정규직으로 88만원 세대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힘겨운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 더 이상 한국 사회에서의 교육은 전인교육을 목표로 하고, 시골의 야심 찬 어린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통로가 아니라, 부모의 계급과 재산과 지식을 대물림하는 확고한 계급재생산의 도구로 변질되었다. 심지어는 교회조차 아버지 목사에서 유학 갔다 온 아들목사에게로 대물림되어 유전된다. 한국 사회는 이렇듯 성(聖)과 속(俗), 모든 영역에서 급진적인 양극화 단계로 진입하였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버거움
미국 진보신학의 성취라 평가되는Womanist Theology와 Queer Theology는 서구 사회에서 오랫동안 배제와 억압의 대상으로 여겨져 왔던 인종(Race)과 성(Sexuality)의 정체성, 그리고 그로 인한 폭력의 (철학적, 신학적, 정치적, 사회학적)구조와 연쇄고리에 대한 폭로를 시도한다. ‘나의 피부색깔과 내가 지닌 성적 정체성은 (나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다분히 태생적이고 존재론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태어나 눈을 뜨자 마자, 평생을 살아갈 이 세상에서 내가 어느 특정한 곳에 위치되어져야 함을 본능적으로 직감했을 때 느꼈던 서늘함과 분노와 좌절을 그대들은 아는지? 흑인으로 그것도 흑인 여성으로 살아왔던 내 삶을, 동성애자 신학자로 목회자로 내가 교계와 신학계에서 받았던 ‘특별한 관심(?)’을 이해하겠느냐?’는 질문들을 접하면서 내가 들었던 생각은, 성격과 강도가 다르긴 하지만, 2009년 현재 한국사회의 고착화된 계층구조 역시 한국이라는 틀 안에서 이미 확고한 존재론적인 함의와 법칙을 띄고 있다는 사실이다.
노무현 전대통령은 상고 나와서 고시 공부해서 나중에는 대통령까지 되었다는데, 이명박도 노가다 뛰고, 노점상 하다가 대통령 되었다며,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껄껄거리며 희망을 가지라고 말하지만, 그 희망은 이미 부와 지식을 대물림한 사람들의 것이다. 옛날에는 소 팔고 논 팔아서 자식 교육 시키면 가난한 필부의 자식들도 판검사, 의사 되고, 배 나온 사장님도 될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희망이 없다. 존재론적으로 태생적으로 한국사회의 판이 전보다 더 (운명결정론적으로) 촘촘히 빽빽하게 짜여진 까닭에 초등학교 6학년이면 삶의 윤곽이 대충 판가름난다. 역전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렇게 쭉 가는 거다. 그래서 인생은 버겁다.
‘무한 경쟁’의 시대에서 승부는 이미 정해져있다. 예정된 패배를 경험하고 난 후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낙오자라는 낙인, 가난을 혹은 좌절과 실패를 오직 그(녀)의 무능과 책임탓으로 돌려버리는 사회풍토, 돈이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유일한 잣대가 되어 그 절정을 구가하는 사회가 지금의 한국사회이다.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은 단순히 가난하고 남루한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존엄을 스스로 불신하고 혐오하기에 이른다.
이 대목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가난하고 앞으로 잘 될 가능성과 희망이 없다손 치더라도 옛날 사람들은 꾸역꾸역 자신들의 삶을 그럭저럭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지금은 그렇지 못하는 거지?  가난한 사람들끼리, 못난 사람들끼리,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끼리 막걸리 한 사발, 소주 한 잔에 취해 육두문자 섞어가며 한바탕 걸하게 놀다 보면 어느새 날이 밝아오곤 했는데, 그래도 세상은 별 달라질 것은 없었지만 말이다. 사람들끼리 부딪쳐 사는 맛에 현실의 고통과 모욕을 겨우겨우 버티어 낼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 공동체(성)도 사라졌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희망도 없고, 자신에 대한 존엄성도 없는 개인, 이런 개인들끼리의 아픔을 공유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공동체) 조차 확보하고 있지 못하는 현실이 2009년 자살율 1위를 자랑하는 한국 사회의 자화상인 셈이다.  

에필로그: 레비나스의 제안, 그리고…
죽음의 수용소에서 삶에 대한 의지와 희망을 발견했다는 레비나스는 자살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표명하였다. 그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유대민족 특유의 메시아사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죽음이 인간 실존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에 근거하고 있는 한, 죽음의 압제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그것은 기독교 전통에서 메시아의 구원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 날이 오면 우리를 짓눌러온 모든 폭압의 구조들이 심판을 받게 될 것이고, 그 날이 오면 지금까지 불확실했고 불확정적이었던 사건과 역사의 진리들이 낱낱이 밝혀질 것이다. 진리와 심판의 순간과 더불어 시작되는 새로운 나라에서는 더 이상 죽음이 우리를 삼키지 못한다. 
레비나스는 이 메시아적 도래를 현실에서의 ‘타자의 얼굴’로 치환한다. 우리의 동심원적 의식의 범주안으로 포획되지 않는 타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 그것을 ‘책임’이라 부르든, ‘제1철학’이라 부르든, 그것이 바로 메시아적 도래를 체득하고 경험하는 것이기에 우리는 죽을 수 없고 죽어서도 안 된다. 그러기에 살아남아서 인간을 무한경쟁의 난장판으로 내모는 신자유주의의 야만성과 싸워야하고, ‘2등은 기억되지 않는다’는 원칙 하에서 정글의 법칙을 습득해가는 우리의 아이들을 구해내야 한다. 그것을 이루어가는 하나 하나의 과정과 사건의 연속이 메시아적 도래이고 죽음의 극복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또 한 해가 저물어 간다. 누구 말처럼 올 한해 대한민국은 1년 내내 상중이었다는 말이 과장만은 아닌 것 같다. 김수환 추기경, 노무현 김대중 대통령의 죽음은 그 이름이 곧 시대였고, 당대 의식을 규정했던 별들이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는 큰 상실이고 슬픔이었다. 그 밖에 용산참사로 돌아가신 여섯 분의 죽음과 배우 장자연의 죽음은 2009년 한국 사회의 단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상징적인 죽음이라는 측면에서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어떻게 죽었는가?’는 ‘어떻게 살았는가?’에 대한 반증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노무현의 죽음에서 그가 지녔던 삶의 치열함과 비장함을 보았고, 용산의 죽음에서는 민중들이 지니는 한과 울분을 다시금 깨닫는다. 이렇듯 우리가 그들의 죽음을 삶만큼이나 주목하는 이유는 죽음이 가장 그들의 삶을 가장 정제된 언어와 압축된 밀도로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하고, 이러한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그들의 죽음이 우리의 삶으로 이어진다는 믿음을 형성케한다. 어쩌면 역사는 이 진리를 계속 증언하여 왔는지도 모르겠다. 예수의 죽음이 그랬고, 전태일의 죽음이 그랬으며, 문익환 목사의 이름이 그렇다. 그렇게 죽음은 부활하여 우리를 깨어있게 하고 지금 우리와 함께 맞물려 살아있다.  <메멘토모리-죽음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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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4)
: 누가 ‘주체의 죽음’을 말하는가?

이상철
(시카고 신학교 / 윤리학 박사과정)

누가 ‘주체의 죽음’을 말하는가?

’주체의 죽음’으로 대변되는 현대 철학계의 흐름속에서 주체에 대한 분석은 다양한 스펙트럼상에 존재한다. 주체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오디세이처럼 험한 여정을 마감하여 자기 자신에게로 귀환하는, 그래서 자아의 존재를 기어코 발견하고야 마는 가열찬 의지를 지닌 반성적인 주체이고, 또한 주체는 하이데거적인 의미로는 자기 자신에게 현존하는 주체, 그리하여 현실을 완전히 독점하는 주체이며, 이는 또한 세계사를 신의 자기 인식, 자기 생성으로 파악한 헤겔류의 역사철학에 등장하는 무한 진보 신화에 빠져있는 주체이기도 하다.
위에서 거론된 주체는 하나의 개별적 주체가 아니라, 근대성 혹은 근대적 프로그램에 의해 조성되고, 근대(성) 일반이라는 담론의 틀 안에서 주조된 주체라는 성격이 강하다. 이에 반해 ‘주체의 죽음’을 선언하는 후기 구조주의 계열의 학자들은 근대적 프로젝트 일반에 대한 폐기를 선언하면서, 인간의 계몽, 근대적 인식론, 근대적 주체론 등 이른바 근대성의 신화에 입각한 주체에 대한 무효와 해체를 주장한다.
임마누엘 레비나스는 주체의 존재를 절대화한 독일 관념론의 전통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지만, ‘주체의 죽음’을 운운하는 프랑스 후기 구조주의자들과도 선을 긋는다. 주체의 죽음을 선언하는 무리들 역시, 그보다 앞섰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인격성과 타자성, 인간 존재의 윤리적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이다.[각주:1]

레비나스의 죽음 이해

레비나스의 죽음에 대한 이해에서 중요한 사실은 (하이데거와는 달리) 죽음이 알 수 없는 실재, 즉 삶의 타자라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레비나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는) 죽음과의 관계가 빛을 통해서 맺어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주체가 자신으로부터 유래하지 않는 것과 관계 맺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주체가 신비와 관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각주:2] 죽음은 빛의 영역(인식, 경험, 지식) 밖에서 일어나는 경험, 주체가 더 이상 주체가 아닌 관계로부터 도래하는 사건이다: “주체는 이제까지 능동적이었다. 나는 ‘수동성의 경험’이라 말한다. 왜냐하면 경험은 항상 이미 인식, 빛, 주도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신비로서의 죽음은 그렇게 이해된 경험과는 구별된다. 내가 만나는 대상은 파악되고, 간단히 말해서 나를 통해 구성된다. 그런데 죽음은 주체가 그 주인이 될 수 없는 사건, 그것과 관련해서 더 이상 주체가 아닌 그런 사건을 알려준다.”[각주:3] 
하이데거에게 죽음은 내가 주인이 되는, 내가 주도권을 갖고 끝까지 밀어 부치는 그것이었지만, 레비나스에게 있어 죽음은 절대적으로 알려질 수 없는 상황, 다시 말해 빛의 명증성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어두움이고, 우리를 엄습하고 우리를 사로잡는 그 무엇(타자)이다. 그 상황은 <시간과 타자>를 비롯한 그의 저서들에서 ‘얼굴/미래/여성성/타인과의 만남’등 레비나스 특유의 레토릭으로 전개된다. 특별히 그의 주저라고 할 수 있는 <전체성과 무한>에서, 레비나스는 소위 ‘얼굴의 현상학’을 전개하면서, 타자는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온다고 말한다.[각주:4] 
얼굴은 레비나스에게 있어 현시가 아니다. 얼굴은 물리적 시.공간에 위치를 점하는 감각적인 상이 아니라는 말이다. 얼굴은 우리에게 깊이와 근거를 알 수 없는 흔적으로 남아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얼굴은 우리를 향해 침투하고 관여한다. 우리를 향해 손짓하고 아우성대며 우리의 응답을 촉구한다. 레비나스가 윤리학을 ‘제 1 철학’[각주:5]으로 놓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타자를 전통적인 인식론적 차원이 아니라, 응답의 차원, 책임의 차원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원리는 레비나스가 자살을 반대하는 이유를 설명하는데도 유용하다. 인간의 주체성을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자발성이다. 주체란 무엇인가를 자발적으로 한다는 의미에서 주체이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도 인간의 자발성의 영역이 아닐까?’라는 물음도 가능하다. 실제로 현대 철학자들 중에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들이 몇몇 있는데, 최후의 순간 자신의 존엄을 스스로 지켜내기 위해 자발적으로 죽음을 선택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레비나스는 이러한 선택에 대해 ‘아니!’라고 답한다. 레비나스에게 있어 인간의 주체성은 자발성과 비자발성에 있지 않다. 책임을 다하는 존재가 주체이다. 죽음은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라, 자기의 책무를 다 했을 때 맞이하는 사건이다.
     그렇다면, 책임의 근거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레비나스는 ‘희망’이라 말한다: “주체의 지배가 보장되는 현재에는 희망이 있다. 희망은 일종의 목숨을 건 모험이다”. 계속하여 레비나스는 빅토르 위고의 ‘노틀담의 꼽추’에 나오는 대사를 인용하며 “나는 숨쉰다, 나는 희망한다”라고 선포하는데,[각주:6] 이러한 고백은 전적으로 레비나스의 나치 치하 포로수용소에서의 체험에 기인한다.[각주:7] 

Episode:  아우슈비츠에서 들려온 희망의 근거

필자가 현재 재학중인 시카고 신학교에 올해 나이로 96세인 노학자가 있다. 시카고에 있는 대표적인 진보적 색채의 신학교라 할 수 있는 시카고 신학교와 Northwestern대학 안에 있는 Garrett 신학교에서 유대교를 가르치고 있는 Rabbi Schaalmann 교수이다. 마틴 부버의 제자이고 레비나스와도 교류를 가졌던 분으로 현재 유대교 학자중에는 최고 원로급이며, 그 자체가 교과서인 신화적인 인물이다. 실제로 강의실에 들어가면 text 없이 수업이 진행된다. 학생들이 질문하면 교수님이 대답하는 형식인데, 모든 질문과 어떠한 상상도 허락되는 시간이다. 교수님이 학생들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가끔씩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에서 경험했던 일들을 들려주신다; 수용소에서 죽어가는 형제, 자매, 친구들, 가스실, 삶을 차단해 버린 높은 담장과 철조망, 얼굴에 핏기가 없으면 노동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판단되어 끌려가 죽는다. 얼굴에 생기가 있게 비치기 위해 입술을 깨물어 피를 내어 얼굴에 바르는 사람들…
나치는 응징과 공포의 차원에서 몇몇 마음에 안 드는 유대인들을 골라 시범케이스로 교수대 위에 목을 메달아 공개적으로 죽였다고 한다. 그(녀)가 죽을 때까지 나머지 유대인들은 고개를 들고 그 죽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목도하면서 교수대 밑을 빙빙 돌아야 한다. 이렇듯 죽음이 선포되고, 집행되고, 확인되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우리가 어떻게 신을, 인간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라는 피맺힌 절규가 울려 퍼졌다고 Schaalmann 교수는 회고한다. 그때 누군가가 이렇게 외쳤다: “이번에는 우리가 신을 용서할 차례다. 이제 우리의 신을 놓아주자!”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몰랐는데, 계속 의미를 묻고 질문을 하면서 새로운 희망이 생겼다고 Rabbi Schaalmann은 고백한다. 신을 용서하고, 신을 놓아버리니까 (사실, 그 의미가 정확히 뭔지는 필자는 잘 모르겠다. 96살이 되면 그 경지에 이를 수 있을런지?), 그 전에는 몰랐던 수용소 하늘 만큼의 자유가, 그리고 희망이 여전히 내게 있다는 것이 전해져 왔고, 죽음의 가스실 담벼락을 비집고 난 풀 한 포기 혹은 감방 창살을 뚫고 들어오는 햇살 아래로 파랗게 낀 이끼들을 보며 여전한 생명에 대한 고귀함과 집착을 느꼈다고 그는 증언한다. 그 힘이 우리를 끝까지 살아남게 했다고 말이다.

레비나스의 책을 읽다 보면 죽음과 자살, 그리고 희망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급격한 비상이 일어나는데, 이는 레비나스를 읽는 독자들에게 난제로 다가오는 대목이다. 이는 다분히 아우슈비츠에 대한 전이해 부족과 유대 신비주의에 대한 몰이해에 기인한 것이라고 Schaalmann교수는 지적한다. 아우슈비츠에서의 죽음 경험은 그것을 경험한 대부분의 유대 사상가들에게 그렇듯이, 레비나스에게도 절대적으로 영향을 끼쳐 그가 구사하는 문장 곳곳에 숨어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나온 레비나스는 이런 이유로 “주체의 지배가 보장되는 현재에는 희망이 있다. 희망은 죽음의 언저리에, 죽음의 순간에, 죽어가는 주체에게 주어진다”고 말한 후에 “자살은 모순적 개념”이라고 선언하기에 이른다.[각주:8] ⓒ 웹진 <제3시대>

  1. 데리다는 자신의 초기 저작인 Writing and Difference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8) 안에 있는 논문 ‘Violence and Metaphysis: An Essay on the Thought of Emmanuel Levinas’에서 레비나스를 신비적이라고 비판하면서, 레비나스의 타자인식에 대해 분명한 반대입장을 표명한다. 1995년 레비나스가 죽은 후에 데리다는 레비나스를 회상하며 ’아듀! 레비나스’라는 유명한 추모연설을 하는데, 그 내용이 Adieu to Emmanuel Levians(Stand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9)란 제목으로 책으로 엮어져 출판되었다. 그 대목에서 데리다는 레비나스적 타자 발상을 상당부분 수용한다. 레비나스와 데리다의 타자를 둘러싼 논쟁은 타자 담론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이 부분은 다음 기회에 ‘타자를 둘러싼 논쟁사: 레비나스와 데리다를 중심으로(가칭)’라는 주제로 차후에 제3시대 웹진을 통해 발표할 계획을 갖고 있다. [본문으로]
  2. 시간과 타자, 77쪽. [본문으로]
  3. Ibid., 77 쪽 [본문으로]
  4. Levinas, Emmanuel. Totality and Infinity: An Essay on Exteriority. Trans. Alphonso Lingis, Pittsburgh, PA: Duquesne&&#10;University Press, 1969; 레비나스는 ‘전체성과 무한’ 후반부 전체를 ‘얼굴의 현상학’을 테마로 하여 그의 타자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본문으로]
  5. Levinas, Emmanuel. Levinas Reader. Edited by Sean Hand, MA: B. Balckwell, 1989. p.75. [본문으로]
  6. 시간과 타자, 82쪽. [본문으로]
  7. 미국 철학계와 신학계에서 레비나스에 대한 연구는 보통 세 가지 측면에서 전개되고 있다. 하나는 후설-하이데거-레비나스로 이어지는 현상학적인 계보를 따라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레비나스에게 영향을 주었던 유대교 전통을 이해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레비나스가 직접 경험한 아우슈비츠에 대한 역사적 이해와 영향, 그리고 아우슈비츠 이후 신학에 대한 연구가 그것이다. [본문으로]
  8. 시간과 타자, 82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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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3)
: 죽음의 고고학 考古學

이상철
(시카고 신학교 / 윤리학 박사과정)

지난 요약, 그리고 방향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지난 6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로 기인한 죽음에 대한 단상에서 비롯되었다. 이 글이 쓰여지고 있던 기간에도 우리는 김대중 전대통령의 죽음, 구약학자 김찬국 교수의 죽음, 그리고 영화배우 장진영의 죽음을 경험했다. 처음에 글을 시작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톱스타 최진실의 자살, 좀 오래된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의 자살을 이야기하면서 대한민국 사회는 재벌, 스타, 심지어 대통령까지 자살에 대한 압제와 억압에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 그렇다면 크리스챤으로서 자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글을 시작한다고 밝힌바 있다.
필자는 자살에 대한 논의는 죽음 그 자체에 대한 논의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자살 역시 인간이 맞는 죽음의 방식(형태)이기 때문에 그러했다. 이런 이유로 지난 두 차례의 (웹진 9호, 11호) 글을 통해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중세의 세계관과 근대철학, 현대 실존주의 철학에 나타난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를 간략하게 진술하였고, 오늘 하이데거와 하이데거를 넘어가는 레비나스의 죽음이해에 이르렀다. 레비나스는 죽음에 대한 언급을 한 후에 자살에 대한 의견도 피력하는데 그 부분과 자살이 만연하는 한국사회의 자살현상학에 대한 부분은 다음달 마지막 주제를 위해 남겨둔다.


죽음에 대한 생각들 III: 하이데거

신적 디자인에 의해 움직여 가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현실을 향해 내던지면서 미래를 만들어간다는 실존주의적 인간유형은 하이데거에 와서 그 절정을 맞는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서구 형이상학의 역사는 ‘존재 망각의 역사’였다. 그는 인식주체가 인식대상을 향한 일방적 포획으로서의 서구 근대철학은 고전시대(그리스시대)가 지녔던 존재체험을 상실했다고 비판한 후, 고대 그리스인들이 지녔던 근원적 존재체험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한다: ”신전을 통해 신이 그 신전 안에 현전한다. 신이 이렇게 현전함 그 자체가 곧 그 구역을 하나의 성스러운 구역으로의 확장이자 경계지움이다.”[각주:1]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있어 신전과 신상, 그리고 신화는 그들의 삶과 떨어질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였다. 그들의 생활은 신전을 중심으로 형성되었고, 신화는 그들에게 있어 기억의 반복이자 현실의 원칙이었다. ‘신전을 세웠다’함은 근대적 의미로 궁극적 대상을 향한 인식론적 분투라 표현할 수 있겠지만, 고대 인들에게 있어서는 근대인의 그것과는 달랐다. 태초에 신이 먼저 있었고, 그 신이 임재하는 신전을 세움으로 대상과 의식의 합일을 도모했던 근대적 인식론이 아니라, 신전을 건축함으로써 비로소 신이 존재하게 되었고 신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이데거가 말한 ‘신전을 통해 신이 그 신전 안에 현전한다’는 구절의 의미이다. 신전을 건축함으로 신의 세계가 열린 것(개시 開示)이다. 고대 헬라스인들은 신전을 만들어 신을 그 안에 안치시켰고, 그 공간을 중심으로 그들의 삶의 세계, 하이데거적 의미로 ‘생활세계’를 건설하였다. 이렇듯 고대 그리스인들이 지녔던 생활세계는 실천적 해석을 전제로 하였고, 하이데거는 특별히 사물의 의미를 실천적으로 드러내는 실존적 주체를 ‘현존재 Dasein’라 불렀다. 


Episode:  개시開示 의 기억, 87년 6월

진리가 실존적 삶의 현장에서 개시되었던 사건은 역사상 무수히 많다. 문제는 그 이름없는 사건이 나의 사건이 되었느냐 하는 점이다. 하이데거가 말한 ‘신이 신전 안에 현전한다’는 의미는 기독교식으로 ‘말씀이 육화되었다’는 말의 다름 아니다. 돌이켜보면 내게도 그런 사건이 있었다. 너무나도 또렷하고 생생하게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궁극적 진리의 현전을 봐버린 개시의 사건 말이다.
87년 6월이 그러했다. 당시 나는 고3이었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가 신촌에 있었는데, 학교와 집을 오갈 때 맡았던 매캐한 췌루탄 가스와 버스 밖 풍경들, 예들 들어 푸른 옷의 전경들, 닭장차, 괴물 같았던 페퍼포그가 질서 있게 혹은 난잡하게 배치되어 있는 것을 보며 우리는 현재의 전황에 내기를 걸곤 했었다. 이한열의 장례식이 열리던 날이었는데 그날 나는 학교에 안갔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신촌 일대에서 어슬렁 거리다가 무슨 일이 생길까봐 그날 임시로 하루 가정학습이라는 명목으로 놀렸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내가 학교를 땡땡이 쳤던 것 같기도 하고, 고3은 학교에 나와 공부하라고 해서 공부하다 사라진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분명한 것은 나는 그날 이한열 장례식에 있었다.
장례식 도중에 문익환 목사님이 등장하셨다. 아버지의 대학시절 스승이셨다는데, 아버지는 문목사님이 엄격하고 학문에 열중하셨던 구약 선생님이었다고 회고하신다. 유년시절 수유리 고모네 집에 놀러갈때마다  아버지는 고모네 옆의 옆집이었던 문목사님 댁에 먼저 들르셨다. 그 집 대문은 항상 열려있었다. 나도 따라 들어가 인사를 드렸는데, 문목사님은 집에 계시던 때보다는 안 계셨을때가 훨씬 더 많았다. 아버지께 ‘목사님 어디 가셨어?’라고 물으면 아버지는 ‘감옥에 갔어’라고 말해주었다. 바로 그 문익환 목사님이 감옥에서 출소하자 마자 이한열 장례식 연사로 나오신 것이다.
단상에 오르시더니 문목사님은 사자후를 토하시며 “장준하 열사여!…박종철 열사여!, 이한열 열사여!” 독재정권하에서 죽어간 20여명의 이름을 하나씩 외치면서 그 넋을 하나씩 불러내기 시작하였다. 어렸을때 보았던 만화영화중 ‘이상한 나라의 폴’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폴이 4차원의 세계로 넘어갈 때 화면 전체가 빙글빙글 돌면서 폴이 무슨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 이상한 나라로 입성하게 되는데 마치 그와 같았다. 문목사님이 죽어간 열사들의 이름을 하나씩 외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나는 4차원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폴처럼 새로운 세계로 빙글 빙글 돌아 들어가고 있었다.
그곳에 모였던 수십 만 명의 사람들이 하나로 엮어지기 시작하면서 엄청난 에네르기가 그곳을 휩쓸기 시작하더니, 곳곳에서 사람들이 오열하고, 가슴을 치고, 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그러다가 탈진해 쓰러졌다. 내가 무엇을 알았을까?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바른 것 인지에 대한 이데아가 선재하고 있다가 우연히 87년 6월의 역사적 상황이 그것과 맞아떨어져 내가 그 진리를 깨달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민주와 정의와 자유라는 의미가 내 안에 각인되어 있다가 87년 6월에 불현듯 솟아올라 왔다고 말하는 것은 억지다. 87년 6월 한복판에 내가 우연치 않게 그곳에 서있었고 그 광경을 보고 그 외침과 울음과 노래를 듣고 하는 과정에서 진리가 확 내게 다가온 것이다. 그 사건 이후 나는 하이데거가 말하는 현존재니 현전이니 개시니 하는 암호와 같은 말들을 만날 때 마다 87년 6월의 사건을 회상하며 그 의미를 반추한다.    
 

하이데거의 죽음 이해

궁극적 진리의 현전에 참여하는 주체, 즉 실존론적인 주체개념 하에서 하이데거는 죽음조차 현실적삶이라는 것 안으로 끌어들여(선취하여) 사유한다. 인간은 태어나고 죽는 시간의 궤적을 따라 산다. 인간은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지만,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이러한 세계를 자신의 품 안에 받아들이고 나름의 이해를 통해 자신만의 세계 지평을 갖는다. 시간의 경과 속에서 사건이 발생하고 그 벌어진 사건에 맞서는 인간의 응전을 삶이라 부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이 던져진 세상과 맞짱 뜨는 적극적인 측면과 자신이 던져진 세상 속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되어져가는 수동적인 측면을 모두 갖는다. 이런 점이 바로 하이데거의 주저라 할 수 있는 『존재와 시간』의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이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스스로가 죽는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기가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죽음에 대한 불안을 자기 실존의 본질로 깨닫는다. 죽음에 대한 불안을 통해 인간은 “무”(Nichts) 앞에 서게 되며, 실존적 결단을 하고 깨어있는 본래적인 인간(존재)가 된다. 자신의 죽음을 앞질러 달려가 봄으로써 개시된 근원적 진리를 확인한 현존재가 비로소 전체로서의 진리(인간존재)와 대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은 인간이해의 근본조건이다. 
종합하면, 하이데거는 존재가 현존재 속에서 존재를 온전히 드러내는, 근원적 진리로서의 ‘개시開示’를 제시함으로써 대상과 사유의 일치라는 근대적 패러다임에서 성립하는 파생적 진리와는 다른 진리체험을 이야기하는데, 이는 죽음에 대한 그의 이해에도 영향을 끼친다. 인간의 존재가 인간의 현존재속에서 죽음을 선취함으로써 그 존재감을 온전히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인간은 온전한 주체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하이데거는 죽음을 가능한 것처럼, 경험할 수 있는 것처럼, 주체가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 한다.


죽음에 대한 생각들 IV: 임마누엘 레비나스, 하이데거를 넘어서

반면, 레비나스에게 있어 죽음은 하이데거와는 달리 주체가 주체로서 온전히 행사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전체성과 무한 Totality and Infinite>과 <시간과 타자 Time and Other>에서 하이데거와는 다른 죽음에 대한 접근을 시도한다. 레비나스에게 있어 하이데거의 죽음은 마치 빛의 인식구조 안에 놓여있는 무엇이다: “죽음으로 향한 존재는 하이데거의 본래적 실존에 있어서 최고의 밝음이며 그렇기 때문에 또한 최고의 남성다운 힘이다.”[각주:2]  레비나스는 하이데거가 죽음으로 향하는 존재의 양태를 설명하며 ‘최고의 밝음’, 즉 명증성(lucidity, lucid는 ‘빛나는, 밝은’을 의미)이라 표현을 썼다고 지적한 후, 하이데거 역시 서구 형이상학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빛의 현상학’안에 있음을 꼬집는다. 
태양(밝음, 이데아, 근원적 진리 등)을 중심으로 하는 서구형이상학의 동심원적 구조는 변방과 주변으로 갈수록 어두워지고 빛의 영향력을 점점 상실한다. 중심으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서구 역사의 전개과정에서 그 대상들은 타자로 설정되었고 빛의 영역이 미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복과 타도와 착취와 왜곡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것은 ‘여성/이교도/흑인/유대인/장애자/동성애자/이주노동자’ 등등의 이름으로 치환되어 당대의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리어왔지만 기본적으로 똑같은 논리이다.
중세를 마감하고 근대를 열었다고 평가되는 ‘계몽주의’의 영어 스펠링이Enlightenment인데, 가운데에 빛을 의미하는 단어 ‘light’가 배치되어 있는 것도 중세를 암흑(타자)이라 상정하고 그것을 비추고 밝히는 의미에서의 ‘빛’이다. 이렇듯 서구 형이상학 곳곳에는 빛에 대한 동경과 집착이 짙게 베어있다. 하이데거가 서구형이상학에 대한 근원적 문제제기를 하지만, 레비나스가 볼 때는 하이데거 역시 서구의 인식론적 방법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빛의 폭력’의 수혜자(or 피해자)인 셈이다. <계속>

ⓒ 웹진 <제3시대>

  1. 폰 헤르만,「예술작품의 근원」,『하이데거의 예술철학』이기상 옮김,(서울:문예출판사,1997), 583쪽. [본문으로]
  2. 임마누엘 레비나스, 『시간과 타자』강영안 옮김, (서울:문예출판사,1996), 77-78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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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2)
: 죽음의 고고학 考古學

이상철
(시카고 신학교 / 윤리학 박사과정)

죽음의 극복과 근대의 탄생

중세 말 ‘죽음의 무도’는 죽음의 일상성, 죽음의 편재라는 절망적 상황을 춤판이라는 상반된 이미지와 결합시켜 그 비극미를 극대화시킴과 동시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녀)가 비록 대단한 권력과 인기를 가진 왕이나 교황, 혹은 유명한 슈퍼스타라 할지라도 죽음을 피해갈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를 가리켜 사람들은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메멘토 모리’라는 짧은 경구로 대변되는 삶에 대한 허무와 죽음의 공포는 시대에 따라 그 모양새와 강도가 다르긴 했지만 인류역사의 발생과 더불어 끊임없이 이어져 내려왔다.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니체는 근대 이후 전통적 서구기독교 가치의 몰락이 사람들에게 삶에 대한 허무를 선물했다고 증언하지만, 서구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기독교의 가치가 팽배했던 시절에도 그러한 감정이 여전히 인간사회를 지배하고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중세 말이 그런 대표적인 경우가 아닐까 싶다.

죽음의 테마가 중세 말을 휩쓴 이유들 중 하나는 페스트의 창궐에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1437년에 발생한 페스트는 3년 만에 대륙전체를 휩쓸면서 유럽전체 인구의 1/3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이후에도 페스트는 10년 혹은 12년을 주기로 비록 소규모였지만 지속적, 국지적으로 발생하였다. 그 당시 유럽인들에게 있어 삶은 어쩌면 눈앞에 있는 죽음을 준비하는 기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푸닥거리를 필요로 했고, 그 푸닥거리에 쓰일 제물로 유대인들이 낙점되었다. 이는 유럽의 대다수 기독교인들에게 쌓여왔던 유대인들에 대한 앙심이 폭발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중세가 진행되면서 도시가 발생하고 수공업과 시장경제의 초기 형태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유대인들은 고리대금등 지금으로 따지면 악덕 기업주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며 막대한 이익을 챙긴다. 이러한 유대인들을 바라보는 유럽인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그러던 차에 일반 유럽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집에서 고양이를 많이 기르고 있었던 유대인들은 페스트로 인한 사망률이 적었다. 그 무렵 유대인들이 기독교 신자들의 우물에 독을 넣었다는 괴소문이 돌기 시작하면서 유대인들을 향한 학살이 자행되었다. 결국, 죽음에 대한 공포는 그 공포의 함량에 걸맞는 희생제의를 필요로 했고, 그 희생은 다시 누군가의 죽음을 부르는 광기의 연속이 중세 말 유럽을 휩쓸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교회는 급속히 그 영향력을 상실하고 만다. 전능한 하나님이 다스리는 합리적이고 질서있는 우주적 질서와 은총이 넘치는 신의 섭리는 죽음의 공포, 지옥의 공포로 전환되었고, 많은 사람들은 이제 곧 자신에게 닥칠 심판과 죽음에 대해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럴수록 로마교황청은 교회로부터 이탈되는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 더욱 죽음의 공포를 강조하면서 기독교 특유의 회개(고백, 고해성사)의 교리를 강요한다. 이는 종교개혁의 불씨가 되었던 면죄부 판매로 이어지면서 중세는 서서히 몰락의 수순을 밟아가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중세 말 유럽에 휘몰아친 죽음의 테마는 정반대에 놓여있는 이성주의를 앞당기는 계기가 된다. 존재론적으로 느끼는 삶에 대한 허무와 죽음의 공포를 인간들이 인식론적으로 회의하기 시작하면서 근대(성)가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중세 철학을 마감했다는 평가를 받는 ‘모든 것을 회의한다’고 외친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와, 후에 근대철학을 열었다는 칸트의 ‘주체 철학’은 결국 중세 말 죽음의 테마로부터 시작된, 존재에 대한 알 수 없는 허무와 보이지 않는 공포를 극복하려는 회의와 반성적 사유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죽음이라는 알 수 없는 세력을 뚫고 피어 오르는 인간정신의 합리성! 근대는 이렇게 우리의 무지와 그 무지로 인한 공포에 한 줄기 빛을 비추며 시작된다. 그렇다면 근대(성)는 죽음을 정복했는가?
아니, 더 근원적으로 인간 정신은 어떻게 죽음을 사유하여 왔는가?

죽음에 대한 생각들 I: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기독교의 부활사상과 맞물려 다루어지는 죽음 이외에 서양의 철학과 종교에서 죽음이 독자적인 관심과 논의의 대상이 되었던 적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현대 철학으로 넘어와서 주로 프로이트와 라깡으로 이어지는 정신분석학을 덕목으로 가져오는 학자들과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에서 번져나갔던 실존주의 철학자들에 의해 죽음이 다루어지고 있을 뿐, 서양철학사에서 죽음에 대한 해석이 이루어졌던 기억은 실로 미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이 도대체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직면했을 때 그 논의의 시작은 플라톤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플라톤에게 있어 죽음은 없다. 그는 영혼 불멸설을 주장하며  ‘육체는 영혼의 감옥’이라 말한다. 플라톤에게 있어 현실의 삶이란 영혼이 육신의 감옥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고, 죽음은 다시 영혼이 육신과 분리되어 원래의 자리, 즉 이데아의 세계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플라톤적 도식은 서구 형이상학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첫 번째 단계에서 ‘이데아의 세계’와 ‘물(物)의 세계’가 날카롭게 대립한다. 그 다음 단계에서 이데아의 세계는 자신의 속성을 물의 세계로 내어준다. 그것이 플라톤에게 있어 영혼개념이다. 마지막 단계에서 영혼을 물질에 구현한다. 그것이 현실의 삶이고, 현실의 삶 속에 구현되었던(갇혀있었던) 영혼이 다시 이데아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 죽음이다.

헬레니즘적인 사유와 기독교의 상관성에 주목하는 견해들은 플라톤적인 급격한 초월이 후에 서구 기독교의 발전과정에서 절묘한 대칭을 이루며 그리스도교 도그마 형성에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한다. 태초에 신이 있었다. 신이 인간세계 (피조세계)를 구원하려고 자신을 내어준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이고, 그는 철저히 인간이라는 물질 안에 구현되었다. 그리고 그는 사망과 권세를 물리치고 부활하여 하늘로 귀환한다. 그 과정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는 존재론적으로는 크리스챤을 하나님에게로 이어주는 탯줄과도 같은 역할을, 인식론적으로는 신의 세계를 가늠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플라톤의 영혼개념은 이와 너무나 닮았다. 영혼은 존재론적으로 인간이라는 물의 세계에 구현된 이데아의 역할을 하고, 인식론적으로 이데아를 밝히는 근거가 된다.          

그러나 플라톤의 제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죽음의 의미는 플라톤의 그것과는 달랐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현실적 삶 속에서 자기라는 것은 육신과 영혼이 현실적 시간과 공간안에 합치되어 하나가 되어있는 것이므로, 이것들이 분리된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 있어서는 파국이 되는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질문한다: “이데아의 세계로 돌아간 영혼이, 생물학적이고 물리적인 몸을 입고 있었던 자기가 자신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인식하고 그것의 정당성을 무슨 근거로 보장받을 수 있는가?” “나를 나라고 부를 수 있는 근거는 나의 개별적 영혼이 나의 생물학적(물리적) 신체와 하나가 될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 아닌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분명한 사실은 지금 여기에서 내가 나의 육신을 입고 개별적 나의 영혼을 감지하고 있다는 것이 생명이라는 사실, 그리고 이러한 합일이 깨어지는 죽음은 비록 영혼의 죽음이 아니라 할지라도, 내가 나로서 인지될 수 없기 때문에 그의 스승이었던 플라톤과는 달리 생물학적 죽음에 대해 자유로울 수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과 육체가 결합된 현실의 개체에 주목한다. 영혼은 자연과 단절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연속선상에 위치한다. 즉, 그는 영혼과 육체를 독자적 실체로 보지 않고 분리될 수 없는 두 측면으로 본 셈이다. 이렇듯 분명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보다는 전향적인 영혼에 대한 관념을 갖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신체와 결합한 영혼, 즉 개체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선까지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플라톤적인 영혼의 굴레로부터(예를 들어, 영혼의 선재성과 영혼의 독자적 가치를 인정하는 점)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다.

이후 서구 정신사에서 영혼에 대한 논의는 플라톤적인 초월과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내재를 사유하는 경향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며 나타난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내재 역시 엄격히 말하면 초월적 요소를 상당부분 함축하고 있다. 다만 상대적으로 플라톤적인 과격한 초월보다 약하다는 의미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내재를 완만한 초월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결국, 근대가 도래하기 전까지 수 천년 동안 서구 역사에서 영혼에 대한 논의는 전체적으로 초월적 사유로 이어져 갔다고 볼 수 있다.      

죽음에 대한 생각들 II: 근대철학에서 실존주의로, 그리고 임마누엘 레비나스를 향하여

이 글의 초반부에 중세의 붕괴와 근대 탄생의 시나리오에 대해 언급한 바와 같이, 근대 이후에 철학자들 (예를 들어 영국의 경험주의, 칸트, 분석철학, 논리 실증주의 등)에게 있어 죽음은 더 이상 논의의 대상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근대 이후 철학에서는 경험이나 관찰을 통해서 증명해낼 수 없는 것들을 철학적 화두에서 배제시켰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신이나 죽음, 천국 등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이슈들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고, 우리 감각에 포획되는 확실한 것, 드러난 것, 자명한 것, 눈에 보이는 현상세계들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다가 20세기에 들어오면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경험하며 실존주의자들에 의해 철학 안에서 죽음의 테마는 다시 새롭게 사유된다.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리라 믿었던, 근대적 이성에 기반한 기술문명이 전체주의와 결합되면서 어떻게 인류를 재앙에 이르게 했는지? 역사상 유례가 없었던 한 민족을 향한 말살이 어뗳게 계몽의 시대를 거치며 진화를 거듭해온 인간 의식 안에서 허용될 수 있는지? 이러한 홀로코스트에 대한 트라우마는 단순히 유태인 혹은 게르만족에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20세기 후반 서구 철학, 신학, 사회학, 문학 등 인문학 전반에 원죄의식처럼 새겨져있다. 그래서 인간들은 다음의 문제들에 대해 다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집단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죽음은 무엇인가? 왜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전쟁터로 내몰리는가? 왜 우리는 우리의 의사와 관계없이 누구를 죽여야하고 누군가로부터 죽임을 당해야 하는가? 혹, 인간 삶의 형태와 내용이 다른 동물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창조한 고귀한(?) 존재로서의 인간의 삶은, 사실은 인류전체가 저질러 왔던 집단 사기극 아니었던가?

장 폴 샤르트르는 봇물터지듯 폭로되고 있는 인간 삶 전반에 대한 실존적 물음에 대해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라는 대답을 던지며 인간존재에 대한 새로운 해명을 시도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이어져오던 서구 전통의 존재론도 아니고, 칸트가 내세웠던 선험적 주체도 아닌, 신으로부터 어떤 선험성도 부여받지 않은 인간 ! 다시 말해 실존주의적 인간이란 신적 디자인에 의해 움직여 가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현실을 향해 내던지면서 그 궤적을 따라 미래를 만들어가는 그런 인간인 것이다. 이 부분은 레비나스와 겹치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후에 레비나스와 실존주의를 구분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  ⓒ 웹진 <제3시대>

<* 다음 호에는 ‘타자의 윤리학’으로 널리 알려진 레비나스의 죽음에 대한 논의들과 자살이 범람하는 사회에서의 자살(론)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글을 맺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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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문범
    2009.07.23 03:2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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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봤습니다.
    그런데 이 싸으트를 여니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는 군요. 트로이 목가 하이재커라는 바이러스가 감염됩니다.
    조사해보시기 바랍니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1)
: 죽음의 고고학 考古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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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철
(시카고 신학교 / 윤리학 박사과정)

살아남은 자의 슬픔, 당혹, 그리고 질문

고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식이 열리던 시간에 맞춰 시카고와 뉴욕에 거주하며 신학공부하고 있는 한인 유학생들도 추모예배를 드렸다. 뉴져지 드루 대학과 뉴욕 유니언 신학교의 유학생들이 함께 드루대학에 모여 문동환 목사님을 모시고 예배를 드렸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시카고의 경우는 감리교 신학교인 Garrett 신학교, 장로교 신학교인 McCormick, 시카고 루터란 신학교, 시카고 신학교에서 공부하는 한인 학생들이 시카고 신학교 채플실에 모여 추모예배를 드리고, 소찬을 나눈 후에 시국토론회도 개최하고, 성명서도 낭독하였다.

두 경우 모두 지역 언론의 보도를 타서 추모예배에 대한 기사가 신문에 실려 한인사회에 알려졌는데, 문제는 추모예배 기사 밑에 달린 댓글들에서 발생하였다.2) 노무현이 크리스챤이 아니었는데 왜 추모예배를 드리냐? 신학교에서 불교신자의 추모예배를 드렸다고 난리다. 노무현이 불교신자였나? 다른 쪽에서는 빨갱이를 걸고 넘어진다. 미국 이민사회에서 좌파와 빨갱이는 한국 본토에서보다 훨씬 더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다. 전체 미국사회에 있는 한인 이민자의 상당수가 박정희, 전두환 시절에 이민 온 경우라, 아직도 반공은 그들의 굳건한 실천이성이다. 이런 까닭에 이민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와 토론중에 좌파와 빨갱이가 뜨면 모든 상황은 종료된다. 노무현은 바로 그 좌파다. 그런데, 어떻게 좌파에 대한 추모가 가능하냐는 것이다. 사실 여기까지는 허허 웃으며 넘어갔는데, 죽음과 자살에 대한 물음 앞에서는 말문이 막혔다. 신앙인으로 죽음을, 그리고 그 죽음을 스스로 결정한 선택과 행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미국에 와서 생활하면서 나는 고국에서 들려온 몇 건의 굵직한 자살소식에 충격에 빠졌던 기억이 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오! 수정’에 나왔던 영화배우 이은주가 자신의 아파트에서 목을 매어 자살했다는 소식, 그 전에 현대그룹 회장 정몽헌이 자신의 사무실에서 투신하여 자살한 사건, 작년에 있었던 대스타 최진실의 자살,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까지....인기스타와 재벌, 그리고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죽음에 대한 유혹과 압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들을 죽음으로 이르게 했던 강압의 내용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 그들의 죽음은 살아남은 우리들의 일상적인 인식의 범주를 벗어나 존재론적으로 우리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만은 분명하다.

죽음의 무도

국민 여동생이라 불리는 피겨 요정 김연아 선수가 검정색의(빨강이었나?) 드레스를 입고 연기를 펼치다가 급하게 턴을 돌더니 관객들에게 뇌살적인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연기를 마무리 짓는다. 언론에서는 여자 선수 최초로 200점이 넘은 피겨스케이팅 세계신기록이라고 호들갑이다. 김연아 선수가 연기할 때 흘러 나왔던 음악이 바로 생상의 ‘죽음의 무도’이다. 원래 이 곡은 중세말기에 유행했던 ‘죽음의 무도’ (dance macabre)에서 기원한다. 춤을 추고 추다가 죽음에 이른다는 경이적이고 낭만적인 모멘트, 그 안에 깃든 서글픔, 허무를 초극하려는 의지와 공포에 맞서는 몸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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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무도’는 중세 말과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서구 종교와 예술 전반의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위에 걸린 그림 Bernt Notke (1435-1508)의 <죽음의 춤>을 비롯한 많은 ‘죽음의 무도’를 그려내는 작품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면 일반 백성, 귀족, 사제, 심지어는 교황까지 해골과 손을 맞잡고 춤을 춘다. 마치 온 유럽이 죽음과 한판 대동의 춤판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문화사적 영향에서일까, 기독교에서 춤은 중요한 상징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내가 자라난 교회에서 즐겨 불렀던 노래 한 곡이 기억난다. 1960년대 미국 사회운동 전성기에 불리웠던 노래를 번역한 곡이라고 하는데 “춤의 왕”이라는 제목의 노래다. 예수의 일생을 짧게 요약하여 각 절의 가사를 만들고, 후렴구를 반복하는 형식이었는데, 그 후렴구 가사가 이렇다: “춤춰라 어디서든지, 신나게 멋있게 춤춰라. 나는 춤의 왕, 너 어디 있든지 나는 춤 속에 너 인도하련다.” 예수의 춤을 통해 (예수의 기억 속에) 우리가 새겨진다는 것, 우리의 춤을 통해 (우리의 기억 속에) 예수가 저장된다는 이 가사의 내용은 사춘기 시절 나에게 예수에 대한, 그리고 인간에 대한 한없는 울림으로 다가왔었다.

몇 해전 Karen Baker-Fletcher가 <Dancing with God>를 출판했다.3) 책 제목을 처음 접하는 순간 중.고등부 시절 자주 불렀던 ‘춤의 왕’이 생각났다. 이 책의 부제가 The Trinity from a Womanist Perspective 인 것으로 보아 삼위일체 교리를 흑인 신학, 특별히 흑인 여성의 관점에서 풀어내고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Baker-Fletcher는 Dance를 중요한 메타포로 사용한다. ‘그녀에게 있어 Dance는 폭력과 고난을 극복해 나가는 용기와 치유’라고 이 책의 서평에 참여한 GTU의 Archie Smiths는 말한다. 결국, Baker-Fletcher가 이 책에서 끌어온 Dance라는 상징도 중세 말 ‘죽음의 무도’이후 서구정신 깊숙이 저장된 춤에 대한 모티브에서 영감을 가져와 그녀 자신의 해석학으로 발전시킨 경우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기독교뿐 아니라 중세 말 유럽을 강타한 이슬람 신비주의 계열의 수피교도들에게도 춤은 신에 이르는 중요한 모티브이다. 시카고는 미국에서도 대표적인 다민족, 다문화, 다종교 사회이다. 이런 까닭에 신학교들마다 유대교와 이슬람에 대한 관심과 대화의 일환으로 이슬람권 학생을 장학생으로 선발하여 이슬람과 신학의 대화를 도모하기도 하고, 유대교 랍비를 교수로 초빙하여 유대교와 기독교간의 다리를 놓는 강의를 열기도 한다. 이러한 학문적 분위기 속에서 모스크와 유대교 회당을 방문하여 그들의 예전에 참여하고 이슬람 이맘(이슬람 종교 지도자)이나 유대교 랍비들과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궁금증에 대해 묻고 답을 할 기회가 종종 있다. 몇 해전 터키에서 온 이슬람 친구 덕분에 수피교도들이 신과의 만남을 갈망하면서 원색의 양탄자위에서 빙글빙글 춤을 추면서 입신(?)의 경지에 이르는 모습을 볼 기회가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면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겠구나. 이 춤을 추다가 이 춤을 추고 추다가 죽어도 괜찮겠다’라는 위험한(혹은 황홀한) 프로이트적 상상에 빠진 적이 있었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삶을 생동케하는 에너지를 언급하며 에로스(삶의 본능)와 타나토스(죽음 본능)를 거론한다. 프로이트를 전기와 후기로 나누는 계기가 된다는 <쾌락의 원칙을 넘어서>는 바로 이 삶과 죽음의 욕동을 해부하는 책이다. 궂이 프로이트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어쩌면 모든 종교는 삶과 죽음이 매양 하나임을 말하고 있지 않을까? 각 종교의 제도화된 종파에서는 교리적 잣대로 어느 정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엄격성을 유지하겠지만, 모든 종교의 신비주의 계열에서는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무화된다. 물론, 역사는 그들을 변방에 머물러 있었던 이단아로 적고 있지만 말이다.             

이렇듯, 중세 이후 서구사회 깊숙히 각인된 ‘죽음의 무도’라는 상징은 죽음의 일상성, 죽음의 편재라는 절망적 상황을 춤판이라는 상반된 이미지와 결합시켜 그 비극미를 극대화시킴과 동시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녀)가 비록 대단한 권력과 인기를 가진 왕이나 교황, 혹은 유명한 슈퍼스타라 할지라도 죽음을 피해갈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를 가리켜 사람들은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의 부제를 ‘죽음의 고고학考古學’이라 붙였다. 푸코의 개념을 차용한 것이다. ‘고고학’은 푸코가 그의 초기 저작들에서 관심했던 사항이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이었던 <광기의 역사>, 그를 세상에 알린 <말과 사물>, 그리고 <지식의 고고학>에서 푸코는 다양한 지식들을 둘러싼 관계들의 역학과 역사를 다룬다. 역사적 주류에 의해 정립된 지식이면에 가리워진, 침묵하는 소리를 발굴하고, 주류 담론학에서는 나오지 않는 잊혀진 과거를 드러내어 당대 지식에 시비를 걸고 흠집을 낸다는 측면에서 푸코의 ‘고고학’은 탈근대적 가치를 지닌다.
죽음이라는 테마는 다분히 종교적이다. 특별히 기독교에서 죽음은 부활과 한 쌍의 완벽한 조합을 이루어, ‘고난-죽음-부활-승천-재림-새하늘 새땅’으로 이루어지는 기독교 주류 담론의 기틀을 형성한다. 내가 이 글의 부제를 ‘죽음의 고고학’이라 명한 이유는 분명하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죽음 이외의 침묵하는 죽음에 대한 증언들, 예를 들어 미술, 역사, 철학 등 다양한 유물(?)을 통해 죽음과 결부된 묻혀있는 과거를 발굴한다는 점에서 ‘죽음의 고고학’이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죽음이 팽배하고 만연한 우리사회에서 죽음을 이해하는 또 다른 창과 약간의 틈을 낼 수 있다면, 그래서 죽음을 다시 사유하고 물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이 글의 의미는 족하다. ‘죽음의 시대’에 죽음과 맞서는 구체적 결단과 행위에 대한 부분은 다음 과제로 미룬다.

2) 시카고 신학교와 드루 대학에서 드렸던 고 노무현 대통령 추모예배 관련 신문기사와 반응을 아래에 링크시킵니다.
http://chi.christianitydaily.com/view.htm?id=183792&code=cg
http://www.usaamen.net/bbs/zboard.php?id=usa3&no=4588

3) Karen Baker-Fletcher, Dancing with God: The Trinity from a Womanist Perspective (Chalice Press,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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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25 21:56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이상철 목사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지난 5월 드루신학교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추모예식을 마친 후, 뉴욕, 뉴저지 교계의 반응이 무척 부정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뉴스앤조이 인터넷 언론을 통해 "예배와 예식에 대한 바른 이해"를 촉구하는 글을 올린 것이 있어 아래에 링크합니다. 참고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http://www.newsnjoy.us/news/articleView.html?idxno=1357

    그리고 아멘넷에 드루신학교에서 열린 추모예식과 관련해서 공개토론이 있었습니다. 아래에 링크합니다.

    http://www.usaamen.net/bbs/zboard.php?id=sss1&page=1&sn1=&divpage=1&sn=on&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46
  2. 이상철
    2009.06.25 23:00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김남중 목사님,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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