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창공원앞역

 

  중학교 때 가족을 떠나 서울에서 유학(?)을 했다. 당시 그리움으로 가족들과 살던 집을 일기장에 그렸다. 당시 가족들이 사는 집은 그림과 달리 3층 양옥집이었다. 놀랍게도, 그림 속 집은 새 집을 짓기 위해서 헐어버린 옛 단층집이었다. 어린 마음에 ‘우리 집’은 새로 지은 집이 아니라 추억이 많이 쌓인 옛 집이었던 것이다.


  2013년 까지만 해도 효창공원앞역 2번 출구를 빠져나오면 2~3층짜리 집들이 아기자기하게 모여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철거가 한창 진행 중인 을씨년스러운 풍경이다. 3번 출구는 보도블록과 인공 석으로 새 공원을 조성 중이다. 오래된 도시는 기억이 쌓여있는 곳인데, 때가 타지 않은 인공 석과 보도블록에 누구의 기억도 남아 있을 리 없다. 기억의 장소는 없어지면 다시 되돌릴 수 없다.


  사람은 사신이 잘 아는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새 건물에는 기억이 없다. 멸균 처리된 장소다. 기억이 없는 장소에서 산다는 것은 뿌리를 내리고 산다기보다 부유하는 삶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전면적인 개발은 폭력이다. 때문에, 설령 현실적인 이유에서 개발이 필요하다 할지라도 기억으로써의 도시를 배려하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http://youtu.be/GrJan-49_Xk
백정기_효창공원앞역_비디오_3분58초, 2013



 

 


 


백정기 作 (미디어작가)


- 작가소개

홍대 회화과를 중퇴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을 졸업했다. 2008년 개인전 를 시작으로 5회의 개인전을 했고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2012년 홍은예술창작센터, 2013년 경기창작센터 입주작가로 레지던시 활동을 한바 있다. 음악적 청각화를 주제로 “Walking alone on a clear night: Musical sonification based on cityscape”외 1편을 등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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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MP_b 멀미를 회복하다. 

미디어 발전과 주체성에 관하여





RMP-b_나무바퀴 자전거와 영상_ 가변크기_15분_2008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은 설렘과 기대를 갖게 하지만 항상 불안도 공존해왔다. 도구의 발전과 불안에 관한 극적인 알레고리는 스텐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잘 표현 되어있다. 한 유인원이 뼛조각을 휘둘러 자신보다 강한 적을 제압한다. 흥분한 유인원이 뼛조각을 하늘 높이 던져 올리자 그 뼛조각은 우주로 날아가 우주 탐사선으로 변한다. 자연을 제압한 도구는 거꾸로 인간을 지배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같은 영화에서, 인공지능 HAL은 우주 탐사선에 있는 승무원을 살해한다. 인간에 의해 발전한 도구가 거꾸로 인간을 지배하는 순간이다.   


   도구와 인간의 역전은 비단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이해할 수 없는 수로 인간 대표를 물리치는 인공지능 알파고의 등장은 그야말로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생경한 인공지능이 아니라 친숙한 미디어 환경일 지도 모른다.  


   요즘은 보통 여가시간이나 지하철, 심지어 대화 중에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낸다. 눈이 아프고 머리가 멍해질 때까지 tv를 보다가 잠자리에 들기도 다반사다. 디지털 미디어는 이제 그 자체로 우리 삶의 환경이며, 우리는 하루도 빠짐없이 미디어와 상호작용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서 얻은 체험은 신체활동과 무관하다. 눈과 귀만 인터넷 세상을 떠돌아다니고 있는 셈이다. 발 없는 “눈귀(鬼)”는 시공간을 초월해 어디든지 갈 수 있다. 반면 몸뚱이는 별로 할 일이 없다. 가끔 버튼을 누를 뿐. 이런 현상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다. 1888년 코닥 사진기 최초의 광고 문구가 "You press the button, we do the rest"였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부지불식간에 신체활동 심지어 사고의 영역까지 디지털 미디어에 내맡겨져 있는 상황이다. 사용자가 미디어로부터 주체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미디어의 몰입으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 고도화된 미디어 장치가 요구하는 몰입을 거부하고 온몸으로 세계와 대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RMP는 ‘탈 수 있는 멀티미디어 플레이어(ridable multimedia player)'의 약자로 미디어의 기능을 조작해 메스미디어의 압도적인 발전으로부터 자아감을 지키기 위한 대안미디어다. RMP는 바퀴와 안장이 나무와 철로 되어있어서 주행 충격이 고스란히 온몸에 전달된다. 자전거에 올라타서 페달을 밟는 순간 변화무쌍한 땅의 변화들이 온몸으로 감지된다. RMP는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장치가 아니다. 오히려 엉덩이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린다. 반성과 실천에 있어서 신체적 고통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적어도 고통과 멀미작용이 미디어에 정신이 팔리는 것을 방지한다. 미디어로부터 비평적 거리를 확보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RMP의 핵심작용이다.

   보편적인 환경이 되어버린 미디어를 거부하고 온몸으로 세계와 대응하는 것은 언제나 주체성을 회복하는 실천운동이었다. RMP 시리즈가 비록 상징적인 대안 미디어 장치이지만 기술 진보를 반성하고 미디어와 인간이 어떻게 건강한 조화를 이루며 주체적으로 살아갈지 깊이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백정기 作 (미디어작가)


- 작가소개

홍대 회화과를 중퇴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을 졸업했다. 2008년 개인전 를 시작으로 5회의 개인전을 했고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2012년 홍은예술창작센터, 2013년 경기창작센터 입주작가로 레지던시 활동을 한바 있다. 음악적 청각화를 주제로 “Walking alone on a clear night: Musical sonification based on cityscape”외 1편을 등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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