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신학가이드8]

바울신학과 탈식민주의III

- 탈식민주의, 바울, 그리고 여성

한수현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박사 과정)

 

   필자가 다니는 CTS (Chicago Theological Seminary)에서 해방신학과 여성신학을 가르치는 수잔 띠쓸트웨잇 (Susan Thistlethwaite) 교수는 신학교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학자중의 한명이다. UN이나 각종 세계 평화회의에 주요 패널로 참석하기도하고 정치권이나 각종 TV 토론 프로그램에도 얼굴을 비친다. 교회의 각종 강연에서 진보적 신학의 필요성과 여성의 관점에서 교회의 복음등이 재해석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그녀가 이야기 해준 여러 재미있고도 의미심장한 에피소드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를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해본다. 어느날 교회에서 강연하던 중 어느 한 화난 여성의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뜨쓸트웨잇 교수의 강의에 화가 났는디 일어나서 열심히 성서는 그런식으로 읽혀져서는 안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인간의 방식으로 그렇게 재단하면 안된다는 흔하다면 흔한 그러나 쉽지 않은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그녀에게 답한 띠쓸트웨잇 교수의 말 “그래요? 그럼 제가 당신이 원하는 방식인 성경적인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거기 여성분! 입 다무시고 앉으세요! 고린도전서 14장의 말씀입니다.” 좀 심하다 싶지만 어쩌면 오늘의 우리가 성스럽게 생각하는 성서가 얼마나 여성차별적인 시각에서 쓰여졌는지 가르쳐 주는 이야기이다. 필자는 오늘 탈식민주의와 바울이라는 주제를 마치면서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한다. 여성신학과 탈식민주의의 관계, 그리고 여성의 관점으로 본 성서와 탈식민주의에 대한 문제를 간단하게나마 소개할 것이다. 어렵지 않은 표현과 정보들로 되도록이면 독자들이 간단하게나마 탈식민주의와 여성신학이란 주제에 익숙해 지게 하기 위한 글이 될 것이니,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면 아래에 소개하는 몇가지 텍스트로부터 시작해도 좋을 것이다.
   흔히들 여성을 이해하기 위해 남성들에게 권하는 책들이 있다. 대표적으로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등이 있고, 유튜브에 찾다보면 여성을 어떻게 이해할지에 대한 유머와 위트가 있는 동영상들도 있다. <화성에서…>라는 책을 전체 일독한 것은 아니지만 몇페이지를 넘기며 내가 생각한 것은 여성이라는 존재에 대해 우리가 어쩌면 당연한 듯 생각하는 지식이라 불리우는 것들은 마치 푸코의 담론이론처럼, 그리고 사이드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연구에서 서구인들이 중동과 아시아에 대해 가진 생각들과 비슷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방법은 이러하다. 현대의 여성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들의 특징을 조사한다. 그 특징들에서 여성과 남성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의 원인을 찾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언뜻 합리적인 방법인것 같지만 여성을 어떻게 연구하고, 묘사할 것이냐의 문제는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여성에 대한 연구 자체에 대해 심도있게 공부해보진 않았으나, 여성이란 누구이고, 어떤 존재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사실 꽤나 근대적인 관심일 것이다. 물론 그 연구를 시작한 것은 남성일 것이다. 여기서 남성이란 생물학적 남자만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생물한적 여자또한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꽤나 남성적 가치나 판단등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결국 마치 서구인들이 동양인들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려 노력했다 하더라도 자신의 가치관에서 열등한 존재로 치부할 수 밖에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성이란 존재는 연구를 통해 여러가지 관점에서 열등한 존재로 보이게 된다. 여성의 감정적이고도 섬세한 성격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데 아주 제한적인 능력으로 보여질 수 있다. 그런데 누가 여성은 감정적이고 섬세하다고 하였나? 오히려 여성은 그런 존재라는 사회적 통념을 충실하게 흡수하여 자라난 존재들이 여성들이 되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질문은 여성에 대해 이야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상황과 담론들에 나타난 여성의 모습을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성서가 쓰여진 시대의 여성관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리 풍부한 자료들은 없으나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등의 저작을 보면 남성과 여성은 절대 두 극을 형성하는 대등한 존재들이거나 상하관계의 두 개채를 뜻하지는 않는다. 생물학적 남성과 여성이라는 눈에 보이는 차이는 존재하지만 고대 헬라 사회의 유일한 판단의 기준은 남성성(Masculinity)의 유무이다. 얼마나 마초적이냐를 기준으로 남성성의 상징인 영웅과 전사가 가장 상위이고 가장 남성성이 없는 여자가 최하위이다. 이는 만약에 여자라 할지라도 남성성을 많이 가졌다면 여성적 남자보다 상위에 설수 있음을 뜻한다. 즉 여성은 남성성의 부재를 뜻하며,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인식체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한 상황이다 보니 바울이 여성의 인권을 위해 싸웠다라고 하거나 예수가 여성의 인권을 위해 노력했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논증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여권주의신장이라는 말은 여성이라는 의미에 대한 확인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이미 우리는 여성을 바라볼때 탈식민주의에서 말해왔던 ‘타자화’라든가 ‘재현’의 문제가 여전히 존재하고 탈식민주의의 쟁점들을 활용하여 여성을 라볼때 더욱 심도있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스피박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Can the Subaltern Speak?

   스파박을 일약 스타덤에 올린 짧은 논문인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는 여성주의 탈식민주의 연구에 경종을 울린 기념비적 작품이다. 원래 서발턴 (Subaltern)은 그람시의 글에 나오는 ‘자신의 목소리를 가질 수 없는자들’을 뜻하는 것으로 the other(altern) 보다 더 아래 (sub)에 있는 자들을 뜻한다. 인도에는 서발턴 스터디 그룹들이 있는데 그들은 영국 아래의 식민지 생활동안 계속된 저항운동에서 나타난 서구의 근대적 담론에 대항하는 고유의 대항담론을 찾아내어 연구하는 자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스파박이 던진 질문은 식민지시대하에서 그리고 탈식민지시대하에서 진정한 서발턴들은 바로 여성들이며 그들의 정치적 행동이나 목소리들은 언제나 오해되고 이용된다는 것 이었다. 어쩌면 서발턴들은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들리워지지 않는다. 한국의 상황을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 짧다면 짧은 한국의 독립운동사에서 여성들은 국가의 독립이라는 대의 명분아래 그들의 삶을 희생했다. 광복 이후로 계속된 민주화 운동과 노동운동에서 여성들은 국가를 위해 희생한 자들로 기록되어졌다.  유관순은 그런 예에 대표적인 인물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태극기를 들고 일어선 젊은 여성이라는 아이콘은 민족애라는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장치이지만 거기에 내재한 여성성은 정치적 주체라기 보다는 민족적 감흥을 자극하기 위한 기폭제로만 사용되고 이내 사라진다. 노동운동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자신의 젊음을 바쳐 조국의 근대화에 기여하고 사라져간, 그리고 저항한 그들이 그려지는 것은 젊은 대학생의 혈기를 끌어올리거나 교과서의 한페이지를 장식하기 위해 사용될 뿐이다. 그들의 목소리, 그들이 참으로 원하는 것에 한국의 독립운동과 노동운동은 얼마나 관심이 있어왔을까?
   우리의 교회를 보자. 필자가 신학교에서 공부할 무렵, 필자보다 똑똑하고 열심인 많은 여학생들이 있었다. 그랬던 그들은 지금은 목사의 사모들로 조그만 교회의 목사들로 헌신한다. 그들은 자신의 정치적 목소리를 숨기고 교인들의 스트레스를 푸는 수단으로 목사를 돕는 도우미로 살아간다. 돈이 없다고 불평하면 믿음이 없는 사모가 되고 가정형편을 돕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구할려고 치면 사모가 바깥으로 돈다는 불평의 목소리를 각오해야 한다. 그러한 불평을 하는 사람들중의 많은 이들이 또한 같은 여성신도들이다. 수많은 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내며 자신의 시간을 들여 헌신한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남성 목회자들의 그림자를 자처해야하는 지금의 상황은 한국사회에서 여성문제를 들여다보는 작은 단편일 뿐이다. 근대화의 발전과 민주정치의 발전의 그림자에서 언제나 어둠속에 있어야 하는 인간의 개체수의 거의 반을 차지하는 여자들은 그러기에 진정한 서발턴 들이다. 물론 모든 여성들이 서발턴이라고 하는 것은 상징적인 표현이다. 여성들 중에서도 상위 3% 속하는 사람들이 있고, 유색인종들에 비해 언제나 상위를 차지한 백인 여성들도 있으며, 선진국에서 상대적으로 적은 차별과 많은 기회를 확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기에 탈식민주의는 여성의 문제를 정치, 경제, 사회, 문화등의 복잡한 고리들속에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제 이러한 생각의 방식이 성서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살펴보자.

 

   바울서신, 그 복잡한 여성과의 관계

   이제 신약성서로, 또한 바울서신으로 들어가보자. 먼저 바울 서신에서 여성에 대한 논쟁은 여성학적 성서해석이 시작된 이후로 계속 되었는데,  바울은 과연 여성을 어떻게 생각했는가? 또는 바울은 여성 차별주의자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혹자들은 바울의 서신에서 여성에게 침묵을 강요하고 출산을 담당하는 것으로 여성의 지위를 국한 시키는 것을 가르쳐 바울은 여성차별론자임을 강조하고, 또 다른편에서는 본문은 후대의 첨가를 가능성이 많고 바울이 서신에 여성 지도자들을 로마서와 빌립보서에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진보한 사상을 가진 남녀차별철패론자로 본다. 시대가 더함에 따라 논쟁은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에 왔다가도 변화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데, 연구들을 계속 읽다보면 바울에 대해 궁금한 것이라기 보다는 연구자들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하여 연구를 거듭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마치 슈바이쩌가 그의 유명한 역사적 예수 연구에서 역사적 예수를 발굴해내기 위해 지난한 노력을 하고 난후, 그려낸 예수는 바로 연구자 자신의 얼굴에 지나지 않음을 말한 것과 같이 말이다. 이에 반해 탈식민주의 성서읽기는 해석의 스포트라이트를 바울에 맞추기를 거부한다. 성서의 시대의 여성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성서라는 텍스트는 여성들을 바라보기 위한 통로의 구실을 한다. 당시의 여성들의 모습이 문자에 그대로 나타나 있는 것이 않고 여러 복잡다단한 거미줄과 같은 그물망으로 가려져 있기에 하나, 하나 그 그물망을 그러내어 그 안에서 여성을 재발견해내야 한다. 아마도 그러한 복잡다단한 연구를 하는 이유는 당시의 여성의 모습속에 드러난 기독교 신앙과 마주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왜 이러한 연구가 기독교 신학에 기여할 수 있는지 짧게 나마 논해보자.
   성서가 하나님의 직접적인 말씀이 문자화되어 기록된 것이라는 표현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이른바 축자영감을 따른다면 글자 하나하나에 하나님의 말씀이 계시되어 있으므로 성서 자체가 직접계시라는 말이 되지만, 좀 더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경험을 통해 여러 형태의 문명적 결과물과 조화되어, 언어를 통해 기록된 것이 성서라고 생각한다면 말씀에 대한 해석은 어떻게 그 안의 인간의 경험물들을 이해해 가느냐가 될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바울의 기록은 그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그 언어속에 들어있는 바울의 고뇌와 체험을 이해할 때만이 예수의 부활을 전하려 몸무림친 바울을 이해할 수 있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경륜을 간접적이나마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초기 1세기의 신앙인들의 기록이 신약성서에 담겨있고, 가장 예수와 지근 거리에 있었던 그들의 삶을 이해할때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는 삶에 대해서 다시금 결단할 수 있는 용기와 말씀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자, 이제 당시의 여성들에게 눈을 돌려보자. 인간 사회의 먹이사슬의 가장 밑바닥에 존재했던, 그저 한 집안이나 개인의 사유재산 정도로 존재했던 사람들이 바로 여성들이었다. 그들에게 기독교 신앙은 어떠한 의미로 다가왔을까? 사회의 불의를 온몸으로 감내해야 했던 사람들에게 구원은 어떤 의미였을까? 구약의 히브리 백성의 신앙의 시작이 노예생활로 부터의 탈출이었다면, 신약의 여성들에게는 예수의 부활이 어떤 의미였을까? 그 해답의 단초는 오로지 성서라는 텍스트 뿐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신약성서의 기록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이루어졌고, 성서의 기록자들 또한 그러한 현실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가깝게나마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여성학적 성서해석은 탈식민주의안에서 영근 이론들을 바탕으로 성서에 접근하게 된 것이다.

 

   신약성서의 여성들

   이 장에서는 간략하게나마 여성주의적 성서해석으로부터 탈식민주의 여성주의적 성서해석까지를 대표적인 몇몇의 학자들을 통해 소개 한다.

   엘리자벳 S. 피오렌자 (Elizabeth S. Fiorenza)는 불모의 성서신학계에서 여성주의적 해석의 씨를 뿌리고 거두기까지 한 대표적인 학자이다. 그녀의 대표작 ‘In Memory of Her’는 마가복음 14장 9절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각주:1]는 말씀을 연구의 시작점으로 놓는다. 예수에게 최고의 찬사를 받은 이름없는 여인의 행적이 왜 이후의 복음사역에서는 사라져 버렸을까? 피오렌자는 초기 기독교의 역사가 바로 기독교 공동체의 가부장제화(Patriarchalization)가 이루어진 시기라고 본다.[각주:2] 바로 예수의 시대에 복음의 중심이 되었던 여성들의 신앙들이 그 이후에 서서히 사라져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피오렌자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전통적인 양식비평의 방법으로 후기의 전승을 담고 있는 다른 복음서들의 같은 이야기들을 마가복음과 비교하여 어떻게 이 이름없는 여인의 이야기가 퇴색되고 사라져가는지 보여준다. 바로 전통적인 성서비평을 방법을 통하여 어떻게 여성들의 이야기를 재구성해낼 수 있는가를 보여주려 한 것이다. 피오렌자가 주장하는 바는 성서에 남아있는 비가부장적 전승의 흔적들을 통하여 초기기독교 공동체가 남녀평등의 공동체를 꿈꾸었음을, 적어도 남성과 여성 지도자들이 활발히 활동했던 공동체였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고 믿었다. 피오렌자는 성서를 통한 여성해방은 바로 기독교 공동체의 초기 모습을 발굴하고 어떻게 그 공동체가 남성과 제국중심의 종교로 변화되어 갔는지 밝힘으로 가능한 것이라 믿었다.[각주:3]
   탈식민주의 시각에서 최초의 여성학적 성서해석을 시도한 무사 두베 (Musa S. Dube)는 피오렌자의 업적은 인정하면서도 그녀의 방법론의 문제점이 결국 성과 제국주의 담론이 얽혀있음을 보지 못하는 실패를 낳아 결국 여성을 얽매고 있는 복잡다단한 제국의 논리를 밝혀내지 못했음을 지적하였다. 두베는 먼저 피오렌자의 방법론이 전통적인 편집비평과 양식비평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함으로 텍스트 밖의 이데올로기를 지배하고 있었던 제국과 식민담론을 읽어내는 데 실패했다고 비판한다.[각주:4] 여성에 촛점을 맞추다보니 오히려 더 큰 콘텍스트에 대한 시각에서 멀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필자는 두베의 이러한 비판을 인정하면서, 그러한 피오렌자의 방법론이 초기 기독교를 이상화하는 결과를 낳았고 식민지시대의 저항공동체였던 기독교 공동체가 남녀의 평등을 실현한 이상적 공동체로 읽히워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두베는 아울러 종래의 예수 대 제국의 담론을 비판한다. 예수 공동체와 제국을 대립관계로 놓고 예수의 복음에서 정치적 저항의 메세지를 찾아내는 연구는 저항의 한 축을 담당했던 여성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해왔다는 것이다. 성서 해석을 명확한 두축의 갈등 (지배자와 피지배자)으로 봄으로 여성에 대한 시각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한 해석은 현대 정치를 비판하는 윤리적인 해석으로 보일지는 모르나 바로 남성과 곁에 있는 여성의 문제들, 가정폭력, 이혼, 낙태, 임금 불평등, 인신매매, 성매매등과 같은 것들에 대한 하등의 비판적 능력을 상실한 비윤리적 해석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두베는 성서의 진정한 해방적 관점은 이 두가지를 아우르는 해석이어야 하며 성서에 여전히 존재하는 가부장제와 제국의 논리를 벗기고 성서를 탈식민화 (Decolonization) 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바로 성서의  중심에 내재하는 제국주의적 복음화에 대한 비판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때에야 비로소 성서는 여성과 남성의 평등과 우주적 하나님의 지혜 (Universal Sophia of God)를 말할 수 있는 텍스트로 읽히워 질 수 있다는 것이다.[각주:5]
   피오렌자가 치나치게 초기 기독교 공동체를 이상화하는 방식으로, 두베가 끝없이 성서의 제국담론을 벗기는 방법으로 여성과 식민해방의 가능성을 이야기했다면, 다비나 C. 로페즈 (Davina C. Lopez)는 그녀의 저서, The Apostle to the Conquered (정복당한 자들의 사도)에서 바울을 다시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여성에 대한 담론을 개진한다. 로페즈는 바울의 역사적 상황이 식민담론, 제국주의, 인종, 여성, 이원론등의 복잡다단한 거미줄 망으로 얽혀있었지만 그 중 가장 전면에 선명하게 대두되었던 이미지는 바로 남성과 여성의 이미지라고 주장한다. 그녀는 당시의 로마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자주 사용되었던 로마의 신전에 조각들중 클라우디어스 황제의 브리타니아(현재의 영국) 정복을 기록한 조각에서 로마의 황제는 남성으로 피정복민인 브라타니아는 여성으로 조각되어 있음에 주목한다. 반나의 여성으로 조각된 브리타니아는 그녀의 머리채를 로마의 남성전사에게 잡히워 진채 몸부림 치고 있다. 이에 로페즈는 여성이 피식민인과 피지배자로 형상화됨을 통해, 남성인 로마의 사유재산이 되고 그의 보호를 받아야 됨을 너무나 간단하게 이데올로기화 됨을 지적하였다. 결국 여성은 제국의 담론이 피지배자들에게 형상화 시켰던 이미지이고 이러한 이미지는 피지배자들의 마음에 아로새겨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남성적 이미지를 투사함으로 타민족에게 우월감을 형성하는 이데올로기는 유대민족에게도 존재했다. 이전의 웹진에서도 논했듯이 유대민족이 제국을 통해 내면화시켰던 제국의 이미지는 다웟왕국의 제건이나 정치적 메시아에 대한 소망하에서도 등장한다. 또한 끊임없이 복음안에서 제국주의적 복음주의로 나타난다.
   로페즈는 위와 같은 관점에서 바울의 회심사건을 남성적인 제국적, 유대적 이데올로기에서 예수의 부활을 토대로한 여성적, 이방인들을 (모든 다른 민족들) 위한 복음의 사도로의 전환으로 해석한다. 여타의 제국주의를 콘텍스트로한 성서신학 담론들이 로마제국이나 유대민족주의 속에 숨겨진 이데올로기에는 주목하였으나 정작 이방인 (Gentiles, pagans)의 정치, 사회적 콘텍스트를 읽어내지 못해온 것을 비판하면서, 로페즈는 할례에 대한 바울의 비판이나 바울 자신을 ‘어머니’ (갈 4:19)로 묘사하는 것을 새롭게 해석하여 바울의 복음은 남성적 제국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핍박받는 여성으로 묘사된 피식민인에게 향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고 주장한다. 바울의 박해자에서 박해받는자로의 역전은 종교적 영역을 벗어나 정치,사회적 영역에서 읽히워 질 수 있으며 여성학적 입장이 바울을 다시 봄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비록 로페즈가 로마제국의 이데올로기와 식민상황을 남성과 여성의 관계로 지나치게 환원시킨감이 있지만, 바울의 회심사건을 새롭게 해석하여 피지배자을 위한 복음에 재해석은 바울을 정치적인 관점과 종교적인 관점에서 함께 해석할 수 있는 탁월한 시각이라 할 수 있다.

 짧게나마 세번으로 나누어 탈식민주의와 바울의 관계에 대하여 약술해 보았다. 탈식민주의와 바울은 아직도 새롭게 조명되는 분야이므로 앞으로의 발전이 기대되는 학문의 장이 될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개역개정 막 14:9 [본문으로]
  2. Fiorenza, In Memory of Her, 35. [본문으로]
  3. Ibid. [본문으로]
  4. Dube Shomanah, Postcolonial Feminist Interpretation of the Bible, 39. [본문으로]
  5. Ibid., 4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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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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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1.05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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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신학가이드7]

바울신학과 탈식민주의II

- 바울과 제국

한수현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박사 과정)

    왜 주류신학에서 탈식민주의를 말하지 않는가?
    
    이전의 웹진의 글에서 원래는 식민주의 시대 이후의 정치적 텍스트 읽기의 한 방법인 탈식민주의가 어떻게 성서 해석의 장으로 들어왔고, 성서가 쓰여졌을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얼마나 잘 맞아떨어지는가를 논했다. 더 나아가 탈식민주의 이론의 발달로 인해 영미의 인문학과 신학이 자신의 오만을 반성하고 새로운 텍스트 읽기를 인정하는 중요한 단초가 되었음을 지적하였다. 이번 웹진은 그러한 탈식민주의적 성서읽기가 어떻게 신약성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 짧게나마 다루어 보고자 한다. 하지만 먼저 그 전에 이른바 진보적 성서읽기가 왜 신학교의 상아탑이나 학문적 차원에서만, 그것도 소수의 학자들에게서만 다루어지고 있는지를 이야기해보자.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탈식민주의만 논할 것이 아니라 이른바 탈근대의 시대에 태동되었던 성서해석의 흐름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근대와 탈근대의 장구한 성서해석의 흐름을 짧게 요약하는 것이기에 많은 한계가 있을 것이나 적어도 현대 성서해석학의 위치를 조감해볼 기회는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근대의 시대가 계몽주의와 종교개혁을 통해 교회에 현실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우리는 안다. 종교개혁을 통해서 카톨릭으로부터 개신교회가 독립하기도 하였지만 성서학에서 가장 큰 변화는 성서 이해에 대해 로마의 기독교화 이후부터 있었던 해석의 기준인 교황권이 약화되었다는 것이었다. 즉, 무엇인가 새로운 해석의 방법이나 관점을 발견하더라도 근대 이전에는 교황권의 인정을 받아야만 유통될 수 있는 담론이 바로 성서에 대한 해석이었다. 한마디로 신학과 성서학은 카톨릭의 권위 아래에서 검열되었고 유통되었던 것이다. 물론 그 안에서도 개혁을 꿈꾸며 혁명적 신학을 개진했던 인물들이 있었지만(둔스 스코투스 또는 보나벤투라 등) 거시적 지평에서는 정통과 이단의 기준은 교황권에 있었다. 그러나 종교개혁으로 인해 그 권위가 일거에 사라졌다.[각주:1] 게다가 이미 ‘이성주의’라는 거대한 물결이 세계를 덮고 있었다. 권위가 사라진 시대에서 라틴어로만 번역되어 존재하던 성서가 여러 언어들로(특히 독일어와 영어) 출판되고, 이성을 기반으로한 과학적 사고가 전통이라는 시대적 가치를 부수고 나오게 되자, 시대는 전통적인 것보다는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으로 뒤덮혔고 이제 학문은 전통을 인정하되 과학적 사고로 전통을 재정립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된 것이다.
    쉽게 바꿔 말하면, 근대 이전의 시대에서 농업에 종사하던 사람은 자신이 하고 있는 농작물을 키우는 일에 대해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그 아버지는 그의 아버지로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농업에 대한 지혜를 충실히 따르는 것이 최고의 덕목이었다. 바로 전통이 그의 직업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근대의 시대가 되면서 자연과학이 최고의 가치로 등장하게 되자, 제일 먼저 농부가 해야 할 일은 (그가 성공하고 싶다면) 과학적 방법으로 발달된 새로운 방법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바야흐로 몇백년, 아니 몇천년동안 내려오던 전통적 방법에 물음표가 붙으면서 과학적, 이성적 방식을 받아들여 변화의 시대에 발맞추는 것이 중요해진 것이다. 농업을 예로 들었지만, 이러한 변화에 가장 민감했던 것이 바로 예술과 인문학이었을 것이다. 신적 권위를 드러내고 그 권위를 이해하는 것에 바쁘던 학문들이 자신들의 전통에 괄호를 치고 이성에 빗대어 질문을 던지면서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더할 것은 더하면서 좀 더 새롭고 이성적인 담론을 산출하기에 온 정력을 쏟게 되었다. 신학과 성서학도 예외는 될 수 없었다.
    계몽주의적 성서학의 태동이 신화의 시대에 갇혀있던 인간을 계몽시키고 역사 속에서 거하시는 하나님의 계시를 새롭게 재조명하는 데 일조한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질문없이 권위에 복종하며 참복음의 묵상에는 어쩌면 게을렀던, 그래서 너무도 쉽게 정치와 권위의 신하이기를 자처했던 성서학이 그 틀을 깨고 나와서 여러 다양한 비평의 시대를 연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근대 성서학의 태동을 뒤집어서 보면, 이성이 지배하는 시대에서 성서의 생존을 위해서, 성서가 미신과 신화로 뒤범벅되었음을 인정하면서 어떻게 하면 이성의 시대에 성서를 구원해 낼 것이냐를 고민했던 결과가 바로 근대성서학이라고 할 수도 있다. 여기에 근대 성서학의 빛과 그림자가 있다. 신학교 신학생 시절 선배들과의 대화 속에서 중고등학교때까지 충실하게 믿었던 성서의 여러 기적이야기들이 한낱 신화적인 그리고 문학적인 문법으로 이루어진 이야기들임을 들었을 때 물론 성서를 새롭게 보는 지평 또한 열렸겠지만 이전의 신앙적 양태를 폄하하는 교만의 시각도 함께 열렸다고 한다면 심한 억측일까? 새로움을 추구하는 근대적 학문은 중세의 그늘을 여는 눈부신 햇살이 되어 잠들어 있는 인간됨이라는 아름다움을 깨우는 데 큰 역할을 하였지만 오로지 진보와 새로움의 추구는 자칫 잘못하면 다양성에 대한 지적유희로 빠져들 위험이 있다. 한 예로 근대의 성서학은 일세를 풍미했던 불트만이나 케제만과 같은 독일 성서학 시대와 사회학적 해석과 간문화적 연구를 필두로한 미국의 진보성서학의 시대를 넘게 되면, 구조주의적 비평과 신비평, 그리고 문학비평 등의 다양성의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하나의 텍스트에 하나의 의미란 없으며 텍스트는 오로지 열린 것으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으로서만 존재해야 한다는 주장의 시대가 바로 그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다양성에 대한 추구가 현실의 콘텍스트를 잃어버리고 학문의 상아탑 안에 갇히게 되면 성서는 믿음의 텍스트로서의 힘을 잃어버리고 학자들의 지적유희의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 물론 이는 현대 대학의 인문학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이지만, 특히나 성서학과 교회의 괴리, 성서학과 현시대 상황과의 괴리는 참으로 진보성서학에게는 아픈 부분이다. 교회는 보수화되었기에 자신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는다고들 하였다. 축자영감이나 주장하는 보수적 교회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성서학이, 바로 이스라엘의 해방, 예수 운동, 그리고 바울의 혁명적 교회론을 읽는 성서학이 현실에 귀기울이지 않고, 헬라어의 단어 하나, 몇개의 구절이 예수의 역사적 서술이냐 아니냐를 가지고 논쟁을 벌이는 것을 보면, 골로새서가 바울의 저작이냐 아니냐를 가지고 수백 편의 논문이 나오는 것을 보면 무엇인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 아닐까?
    그렇다면 탈식민주의란 것은 이러한 서구의 엘리트주의나 지적유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전 웹진에서도 설명했듯이 탈식민주의의 중요한 이론가들의 기반이 된 것은 데리다의 해체주의, 맑스주의, 라깡의 정신분석학, 그리고 푸코의 담론이론 등이다. 이러한 이론들은 인문학 전체에 걸쳐 영향을 미쳤으나 몇몇의 전문가 집단을 제외하고 쉽게 이해되기 힘든 담론들이며 성서학에서도 부분적으로 다루어지는 데 그치고 있다. 그러나 이론의 역사와 달리 탈식민주의는 서구의 식민주의 또는 제국주의 열강들에 대한 전세계적 저항의 역사를 담지하고 있는 민중들의 담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넓고도 복잡한 탈식민주의적 이론과 역사적 경험은 우리에게 어떤 성서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오늘 웹진에서는 성서의 가장 문제적인 주제인 ‘제국’을 가지고 탈식민주의가 어떻게 상아탑에 갇힌 성서를 탈경계화하고 성서해석의 역사만이 아니라 성서텍스트 자체에 대한 반성을 생산할 수 있는지 간단하게나마 살펴보고자 한다.


   탈식민주의의 두 갈림길 – 제국과 성서, 그리고 탈식민주의 관점으로 본 제국

    제국(Empire) 과 제국주의(Imperialism)만큼 본 웹진에서 자주 언급된 주제도 드물 것이다. 이 주제는 이 웹진만이 아니라 전체 인문학과 성서학에 흔히 다뤄지는 주제인데, 때로는 전지구적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미국의 패권주의 등등의 다른 말들로 치환되기도 한다. 그만큼 제국이라는 말이 현대를 이해하는 하나의 좋은 단어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제국주의는 하나의 통치이념이다. 여기에서 Imperialism은 Imperator(임페라토르)라는 라틴어에서 온 것인데 이는 독재관(또는 황제)이라는 로마의 직책에서 유래한다. 공화정에서 황제정으로 넘어가는 시대에 로마는 전쟁으로 인한 위기 상황을 타개해 나갈 방법으로 독재관이라는 자리를 마련한다. 이전까지의 원로원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군지휘관의 개념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군사적 전권을 가지는 계급으로 로마가 황제정으로 가는 시발점이 된 직책이다. 대표적인 인물로 율리우스 시이저를 들 수 있는데, 당시의 로마의 군인들은 원로원이나 로마의 공적 기관으로부터 월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지휘관으로부터 봉급을 받았으므로 독재관이라는 것은 명실공히 금권과 군사력을 동시에 가지는 독재가 가능한 직책이었다. 이후 이른바 종신독재관이라는 직책이 만들어지면서 황제정의 길이 열리게 된다. 이러한 황제정과 식민정책을 기본정책으로 삼는 것이 로마의 제국주의였고 이를 계승하려 한 것이 근대국가 이전의 프랑스와 같은 나라들이었다. 블라디미르 레닌은 자본주의를 중심으로 한 근대국가들이 결국에는 제국주의 국가가 될 것이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자본의 팽창을 위해 끊임없이 식민지를 만들고 타국을 침략하여 군사인 힘과 경제적인 힘으로 정복하면서 다른 제국들과 경쟁하는 시대를 예상했기 때문이다. 이후, 네그리는 그의 저서 ‘제국’에서 전지구적인 하나의 제국을 상정한다. 국가간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등장하는 자본과 그들을 움직이는 힘들이 거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그 안에서 자본의 힘으로 세계를 관리 감독하는 체제가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모든 형태의 제국의 기본적인 체계가 바로 로마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로마가 공화정에서 황제정으로 넘어가던 시대에 신약성서가 형성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국가경영에 대한 정치이념에는 몇가지가 있을까? 깊게 생각해 보더라도 시민의 참여를 통해 국가의 경영을 결정하는 민주정치이념과 소수의 엘리트집단이나 개인에 의한 일당독재나 일인독재, 또는 황제정치(제국정치) 이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는듯하다.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민주정치는 근대 이전에는 불가능했었는데, 민주정치에 대해 무지했다기보다는 이를 가능하게 할 인프라가 없었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2013년의 우리나라의 대통령 선거를 예로 들더라도 초고속 인터넷과 엄청난 정보고속도로가 있음에도 무시하지 못할 만큼의 인력과 자금이 들어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에 개표에 대한 의문들이 생기기도 하였다. 하물며 근대 이전에서 모든 국민들의 생각을 모은다는 것이 가능했겠는가? 민주정치를 꽃피운 (비록 소수 남성 자유시민들의 정치였지만) 아테네 또한 조그만 도시에 지나지 않았다. 결국 어느 정도 크기 이상으로 팽창하게 되면 일인독재체제가 가장 효과적인 통치체제가 되는 것이다. 결국 제국주의가 기본 통치이념이 된 이후에 그리스 헬라 철학은 개인의 윤리와 덕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에피큐로스, 스토아학파) 정치에 대한 철학적 상상력은 그 종언을 고하게 된다.
    헬레니즘과는 다른 지역에서 발달하여, 헬레니즘의 거대한 물결에도 끈질기게 살아남았던, 헤브라이즘이라 후대에 불리우는 이스라엘의 종교와 정치는 출애굽의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성막중심 공동체로부터 시작하여 솔로몬 왕에 이르러 성전 중심의 종교국가로 발전한다. 그러나 성막공동체가 야웨 하나님과 억눌린 자의 해방을 통한 정의의 공동체를 목표로 했음에 반하여 성전중심의 국가가 된 이후 이스라엘은 솔로몬의 시대를 정점으로 남과 북왕국으로의 분열과 성전종교의 타락 등으로 쇠락의 시대를 걷다가 결국 나라를 잃고 식민통치의 시대로 들어가게 된다. 식민통치 시대에서 공동시대 70년쯤에 예루살렘성이 완전히 무너지기 전까지 남유다 멸망후 약 600년간 유대인들은 끊임없는 저항의 시대를 시작하게 되는데 이때에 그들의 중심이 된 사상이 바로 유대주의(Judaism)이다. 정치적 독립이 요원한 상태에서는 종교적인 담론으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하나로 모으고자 하였고, 로마의 감독을 받는 이집트와 시리아 제국이 잠깐 한눈을 팔기만 하면 정치적 독립을 위한 전쟁을 시작했던 것이 바로 유대의 역사였다. 자연스럽게 그리스 문화와 로마의 지배를 받아들이는 생각도 생겨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로마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열망도 있었다.(한 예로 쿰란 공동체를 들 수 있다.) 결국 제국과 성서에 대한 질문은 제국의 식민통치 아래에서 쓰여진 성서가 인간의 공동체와 국가를 경영하는 최종 모델인 제국이라는 이념을 넘어서는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 내고 있느냐라는 것으로 모아지게 된다.
    성서가 인간의 제국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는 생각은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존 도미닉 크로산이 역사적 예수 연구의 결과물로 예수를 성전중심의 브로커 체제(신과 인간 사이의 중재적 역할로서의 종교)를 혁파하는 종교혁명가로 소개하였을 때, 닐 엘리엇이 ‘Liberating Paul’에서 바울을 로마 황제 숭배에 반해 그리스도를 주(Lord, kupios)로 고백함에 대한 정치성을 말할때, 당시의 학자들의 마음속에는 제국의 패도정치에 반하는 사랑과 정의의 화신으로써의 그리스도의 모습이 투영되었다. 복음서의 예수는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권위주의를 해체시키고 아래로부터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 인물로 그려진다. 이후 전미성서학회(SBL: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에 ‘예수와 제국’(Jesus and Empire)라는 분과가 따로 생겨날 정도로 신약성서의 배경을 로마제국의 이데올로기로 보고, 성서를 제국에 대한 저항문학의 관점에서 다시 읽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다.
    식민공간과 그 안에서 움직이는 담론들을 좀 더 깊이 살펴보기 위해, 잠시 눈길을 돌려 한국의 식민의 역사를 살펴보자. 대한 제국이 당시 일본제국과 한일합방의 치욕을 겪고 난 이후, 당시의 지식인들로부터 이후 민초들에 이르기까지 저항의 물결이 해방을 얻기까지 계속되었다. 당시 대한제국은 조선시대 이후로 근대적 국가를 건설하려는 정치적 변화의 일환이었으나 본격적인 근대화에 첫 발을 딛기도 전에 식민의 시대의 질고를 지게 되었다. 일본제국의 식민하에서 조선독립운동의 가장 중요한 동력이 된 것이 바로 첫째는 민족주의이고 다음은 맑스주의 또는 사회주의였다. 평등과 자유를 기본으로 하였던 맑스주의는 불평등과 자본주의를 중심으로한 식민통치에 저항담론이 되었고, ‘민족’이라는 단어는 저항의 구심점으로 조선민중들이 하나의 가치로 모여들게 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해방 이후, 이 ‘민족’이라는 단어는 위정자들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가 되기도 하였다. 아직도 필자는 아침마다 왼 가슴에다 손을 얹고 외우곤 했던 문장들이 기억난다. “난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모든 국민이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해야 할 민족이란 무엇일까? 바로 국민들이 아닌가? 자신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과연 말이 되는 것을까? 오히려 충성을 요구하는 어떤 집단이 자신들을 위해 ‘민족’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뿐인 것 아닐까?
    다시 신약성서로 눈을 돌려보면 로마제국의 이데올로기에 맞서서 저항의 구심점이 되었던 것 또한 민족이라는 개념이었다. 물론 근대 민족국가에서의 민족과 유대주의로 대변되는 유대민족주의는 다른 점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구약성서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의식으로부터 예루살렘 성전 멸망 이후에는 유대주의라는 이름으로 계속 이어져가는 이스라엘의 민족적 자의식은 제국의 지배와 함께 생성되어온 오랜 역사를 가진 것이었다. 그러나 유대의 민족주의 또한 민족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애매함과 폐쇄성 때문에 여러 새로운 민족에 대한 해석을 낳기 시작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따르는 모든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인가? 로마인들은 제국의 시민이라는 이유로 그러한 혜택을 얻을 수 없는가? 이미 요나서에서 제국의 수도 니느웨가 하나님께 참회하는 꿈같은 장면이 그려지고 소아시아의 여러 지방에 건설된 회당이 이방인들에게 이미 개방되어 있었다. 예수 운동이 일어난 것은 바로 그러한 시대였다.
    그것은 예수라는 인물을 따르는 자들로 인해 시작되었고 성전멸망 이후에 유대교 회당에서 배태된 집단이었고, 예수라는 인물의 부활에 대한 믿음을 중심으로 모인 공동체였다. 그들은 새로운 종류의 저항담론을 만들었다. 그것은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파괴력과 넓이를 보여주었고, 이방세계로 퍼져 나갔다. 그것은 새로운 이름의 제국(바실레이아)에 대한 열망이었고, 그 또한 여타의 제국이 가지고 있는 빛과 그림자를 지니고 있었다.
   

    예수와 제국, 그리고 바울

    기독교제국(Christendom)을 비판할 때 콘스탄틴이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확정하면서 주변에 머물렀던 기독교가 제국의 힘을 가지게 되었고 결국 위정자의 정치적 수단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을 기독교 타락의 시작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신학과 교리는 기득권층의 이권을 위한 이데올로기로 변하여 제국의 시대가 계속되는 동안 그들의 우월성을 대변하고 식민치하의 민중들을 유혹하는 데 이용되기도 하였다. 탈식민주의적 관점이 이러한 기독교의 과거에 대해서 던지는 질문은 과연 기독교 제국의 타락과 악행이 기독교제국의 위정자들에게서 나온 독극물이고 원래의 기독교 공동체는 그와는 다른 순전한 사랑의 공동체였을까? 또는 신약성서는 그러한 권위주의와 기독교제국주의의 이데올로기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종래의 리처드 호슬리나 존 도미닉 크로산 등의 예수와 제국간의 갈등과 저항에 관심을 가진 학자들은 복음서의 공동체가 예수를 당시의 황제의 명칭이었던 주님(Kupios, the Lord)로 부른다거나 황제의 방문을 나타내는 용어인 파루시아가 예수의 재림을 의미한다는 것에 착안하여, 예수의 공동체는 제국에 대한 저항 공동체임을 천명하였다. 로마제국이 황제종교의 성격을 오리엔트 지방에서 강화하면서 예수를 부활한 메시아로 받아들이던 공동체는 극렬히 저항했을 것이고, 종교와 정치가 분리될 수 없었던 당시의 상황에서 그것은 정치적 저항으로 읽혔을 것이라고 보았다. 또한 예수가 복음서를 통해서 말했던, 바울을 통해서 알려졌던 세상의 평화가 아닌 평화의 의미는 바로 제국의 선전물에서 흔히들 나오던 평화의 메세지에 대한 선전포고이며 새로운 사회와 정치를 향한 염원이었다고 말한다. 이들에게는 바울의 서신들 또한 중요하다. 바울은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공동체를 예수를 믿는 공동체로 바꾸어버린 사람이었는가? 아니면 바울이야말로 제국에 대한 저항과 대안으로 예수를 붙잡은 사람이었는가?
    예수와 제국을 말하는 일군의 학자들과는 달리 탈식민주의 신약성서학자들은 유대의 민족주의 담론을 넘어서면서 초기의 기독교 공동체는 제국의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른바 호미 바바의 미미크리(mimicry)이론에 착안하여 식민지하의 상황에서 식민인들은 제국의 담론을 증오하면서도 제국의 코드들을 창조적으로 전유한다. 로마황제의 제국 대신에 예수의 제국(바실레이아, basileia)를 말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로마의 제국 이후에 도래할 예수의 제국을 말함으로 로마제국의 지배구조를 일거에 무너뜨리는 정신적 공간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가 지배계급으로 올라섰을 때 그러한 제국의 담론은 기독교 제국이 로마제국의 이데올로기를 답습하고, 혁명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지배계급을 만들어가는 원인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탈식민주의 성서학자들은 성서 내의 제국의 담론에 의문을 제시한다. 예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표현이 예수를 따르는 삶의 필요성을 말하기보다는 예수를 중심으로한 제국의 재편을 말하는 것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예수에 대한 믿음이 모든 것을 넘어서서 군림하는 하나의 진리가 되어버리면 그안에는 어떤 삶의 가치보다는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이라는 차이만 존재하고 그 차이는 계급의 차이 또는 우열의 차이가 되어버린다. 특히나 기독교 중심의 세계에서는. 한손에는 코란, 한손에는 검을 든 이슬람 제국의 그림처럼(물론 이러한 담론은 후대의 기독교 역사가가 만들어낸 오리엔탈리즘이다.) 기독교 제국의 그림은 한손에는 성서, 그리고 다른 한손에는 자본주의라는 떡을 들고 타인종이나 타종교, 타국의 사람들을 유혹하는 전투적 선교주의가 된다. 그리고 그 그림이 이미 성서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 탈식민주의 학자들의 논거라 하겠다. 제국에 대한 압제속의 저항의 몸짓이었던 성서가 지배계급의 도구가 되고만 가슴 아픈 현실을 비로서 직시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탈식민주의적 관점이 줄 수 있는 소중한 교훈일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교황권의 몰락은 단순히 인류의 정신사적 지평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정치의 지형과 경제적 변화가 가장 큰 이유가 되겠으나 여기에서는 단순화시켜 학문의 변화라는 관점으로 서술하고자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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