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신학가이드15]



지젝과 바울(II)




한수현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박사 과정)


    지난번 지젝과 바울에서 주제는 지젝의 라깡 읽기였다. 라깡의 욕망의 도식을 바탕으로 판타지가 어떤 역할을 하며 주체는 어떻게 상징계(심볼릭 월드)에서 빗금쳐지는지, 케보이(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으로 주체는 상징계 안에서 언제나 불안한 상태로 남을 수 밖에 없는지 살펴보았다. 이러한 라깡에 대한 이해가 진정으로 힘을 발휘하게 되는 지점은 라깡을 바탕으로 한 지젝의 칸트와 헤겔, 그리고 맑스 (후기 맑스주의를 포함한) 읽기이다. 이번 장에서 주된 텍스트는 물론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을 중심으로 출발하겠지만 이것만으로는 지젝과 바울을 연결시키는 것은 어렵다. 처음 이 책이 나온 이후 지젝은 왕성한 필력으로 수십권의 책과 아티클들을 출판하였고, 그만큼 그의 사상과 현 시대에 대한 해법도 변화 발전되었다. 특히 지젝의 기독교에 대한 이해는 그 이후에 나타난 것이므로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몇가지 지젝에 대해 나온 수많은 학자들의 저서들중에 도움을 받은 몇권과 지젝의 다른 저작들을 바탕으로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글을 진행해보려한다. 지젝을 쉽게 설명하기는 어려우며, 특히나 철학이나 정신분석학에 전문성이 부족한 필자에게는 지젝에 대한 오해의 가능성이 쉬울 것이나, 필자의 경험으로 어려운 학자를 대할때는 먼저 최대한 쉽게 그의 사상을 오려내고 그 간단한 그림안에서 계속적으로 그 학자의 저서를 만나면서 자신의 생각을 변형시켜 가는 것이 코끼리 다리 더듬듯 방대한 저작 속에서 몇개의 편린을 붙잡는 것보다 효과적이었다.  

   지젝의 출세작인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만이 아니라, 지젝의 처음 학문에 대한 계기는 그의 특이한 콘텍스트에서 비롯되었다. 그것은 하나의 단순한 질문, “왜 나름 성공한 공산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공산주의적으로 살아가지 않는가?”이다. 이 질문을 바꾸어 말하면, “왜 타락한 공산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진정한 공산주의적 혁명 정신으로 그 사회를 바꾸어 놓으려 하지 않는가?”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지젝은 자신의 담론을 펼치면서 빈번히 정치적 사건과 예들을 비유로 사용한다. 그러한 예들을 바탕으로 글을 진행하는 것이 좋겠으나 필자 또한 여러 배경지식의 부족으로 지젝이 말하고자 하는 예를 잘 이해하지 못한 적이 많았고, 그 예를 이해하기 위해 여러번 웹검색에 의지해야 했다. 그래서 조금 때로는 맞지 않은 예일수도 있고 복잡한 현상을 단순화 시킬수도 있지만 본 글에서는 ‘교회’를 예로 들어 지젝의 담론을 설명해 보겠다. 물론 지젝이 데드락 (교착상태)을 해석하기 위해, 희망적 정치를 시작하기 위해 기독교를 예로 들기도 하니 그리 나쁜 시도는 아닐 것이다.


지젝으로 교회 보기


    처음 지젝의 질문을 교회를 바탕으로 바꾸어보자. ‘왜 사람들은 교회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냥 교회를 다닐까?’ 이것은 교회를 심각하게 비판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에 다니는 일반적인 신앙인들은 자신들이 읽는 성경의 나오는 신앙인의 삶이 자신이 사는 삶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연봉 오천만원이 넘는 사례비에 고급 자가용을 타고 다니며, 자녀들을 미국에서 유학시키는 대형 교회 담임목회자의 삶이 성서에 나오는 영적 리더들의 삶은 아님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좌우당간에 신앙생활을 해가며 큰 갈등없이 살아간다. 이것이 지젝이 말하는 이데올로기의 힘이다. 원래 맑스가 말한 이데올로기에 대한 기본적인 정의는 ‘거짓 믿음’ 즉 쉽게 말하면 ‘거짓말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으면 만사가 행복해진다.’라는 거짓말로 시작하여 ‘목사는 거룩한 존재다.’라는 구라로 끝나는 기독교는 시민들이 현실의 부조리와 거짓을 보지 못하게 하여 사회 정의와 혁명을 방해하는 아편적 조직이라는 것이었다.[각주:1] 그렇다면 이 거짓 믿음은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 지젝은 파스칼을 인용하여 믿음은 앎(Knowledge)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관습(Custom)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각주:2] 재미있게도 이런 가정이 가능한데, 백일기도의 효과를 믿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백일기도를 하게 하는 것이다. 아담 카스코(Adam Kotsko)는 지젝의 말을 응용하여 현대 미국 대형교회의 성공을 해석했는데, 윌로우 크릭 교회와 같이 열린 예배 형식이 성공을 거둔 가장 큰 이유는 교회 예배에 지루함을 느낀 사람들에게 새로운 예배 관습을 제공했는데, 재미있는 것은 교회의 구성원들이 그들의 전통적인 예배에 대한 믿음을 바꾸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팝음악과 강연형식의 순서를 교회적 예배라고 정의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각주:3] 알튀세르는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믿음에 대한 이해를 더욱 발전시켜 그 유명한 ISP(Ideological State Apparatuses)에 의해 이데올로기가 하나의 사회적, 정치적 문화의 영역으로 확장되어 있음을 말했다. 이데올로기를 받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어떤 거짓-믿음이라는 비물질적 요소가 아니라 경제, 교육, 문화를 이끌어가는 물질적 조직과 기구들이란 것이다. 결국 이데올로기의 힘은 강제적이라기 보다는 ‘자연적’이고 ‘부드러운’것이다.[각주:4]


지젝의 이데올로기 이론


    그러나 이러한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해가 요즘과 같이 한국의 대형교회들의 수많은 타락과 문제점들이 공유된 상태에서도 가능한지 물어봐야 한다. 성서에 나타나는 초대교회는 몰라도 현대의 교회는 ‘구원’이나 ‘복’으로 포장된 거짓으로 가득찬 집단으로 보인다. 하루가 멀다하고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목회자들의 불법과 타락이 사탄의 장난이라 믿는 사람은 이제 극소수일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교회는 사람들로 가득 차있다. 지젝의 설명은 이런 것이다. “그러한 것들이 거짓이라는 것을 이미 그들도 알고 있다. 그러나 마치 모르는 것처럼 행동한다”[각주:5] 아주 소수의 운빨로 부자가 된 사람들을 예로 든다고 하더라도 현실은 준엄하며 냉정하다. 백일 기도를 한다고 자신의 자녀가 서울대를 합격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라도 하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는 기대심리가 존재할 뿐이다. 즉, 번영신학의 허울과 희생적 사랑이라는 선언 뒤에 숨겨진 교회의 이기심은 그 구성원들이 더 잘 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번영신학이 엉터리라는 것을 이해시키는 것으로 번영신학은 무너지지 않는다. 차세대 영적 지도자로 각광받던 목사가 성추문에 휩싸여도 교회의 공금을 횡령해도 논문 표절이란 구설수에 올라도 교회는 무너지지 않는다. 바로 이전 장에서 논했던 환상(Fantasy)가 등장하는 곳이 이 지점이다. 여기서 판타지의 역할과 현실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좀 길긴 하지만 지젝의 말을 직접 옮겨보자. 다음은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의 한부분을 필자가 번역 정리한 것이다.


    한 아버지가 병들어 죽어가는 아들의 곁을 오랜동안 지키다가 아들이 죽자 옆방으로 가서 잠깐 잠이 들었다. 그때 아들의 침대 옆에는 촛불이 켜져 있었고 한 노인이 아이를 지키며 기도를 읖조리고 있다. 그 때 그 아버지는 꿈을 꾸었다. 그의 아들이 그의 옆에 서서 그의 팔을 잡고 꾸짖듣이 말한다. “아버지 제가 불타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나요?” 그가 일어나자 아들이 죽어 있는 방에서 불길을 발견한다. 노인은 잠에 들어 있었고 촛불이 그의 죽은 아들의 팔에 떨어져 불타고 있었다. 

    전통적인 꿈에 대한 해석은 이렇다. 꿈은 잠든 이의 잠을 연장 시키는 역할을 한다. 잠자던 아버지에게 현실로부터의 방해가 일어난다. (타는 냄새) 그러자 꿈이 발동하여 그의 잠을 연장시킨다. 짧고 작은 이야기는 외부의 요소를 담는다 (불, 아이- 그 편이 더 자는 자를 안심시킬수도 있다.) 그러다가 현실의 방해요소가 강해지면 잠자던 이는 깨어나게 된다. 

    라깡은 이런 전통적인 해석과는 반대의 해석을 개진한다. “주체는 외부의 방해가 너무 강해질때 자신을 깨우지 않는다.” 외부의 방해가 강하기 때문에 깨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먼저 그는 꿈을 만든다, 물론 자신의 잠을 연장하기 위해서 그리고 현실로 깨어나지 않기 위해서. 그러나 그가 그 꿈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그의 욕망의 실재다. (Lacanian Real) 이 경우에는 아버지에 대한 아이의 꾸짖음이 바로 실재이다. “내가 불타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나요?” 이것은 아버지의 근원적인 죄책감이며 이것이야말로 외부의 실재 그 자체보다 더욱 두려운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가 깨어나게 되는 이유이다. 그의 욕망의 실재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꿈 안에서 그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그 실체로부터 소위 현실의 세계로 탈출한다. 계속 꿈을 꾸고, 그 자신을 속이고, 그의 욕망의 실체로 깨어나지 않기 위해 우리는 현실의 세계로 돌아온다. 결국 현실은 우리의 욕망의 실재를 가리우기 위한 하나의 판타지 만들기인 것이다.[각주:6] 

    쉽게 말하면 보통 우리는 꿈을 판타지라고 생각하고 꿈을 벗어나서 현실의 세계로 온다고 생각하지만 지젝의 라깡은 이를 역전시킨다. 바로 보통 우리가 말하는 현실세계가 판타지이다. 역으로 꿈은 우리가 판타지인 현실세계를 넘어서 만나는 리얼의 세계이다. 이를 지젝은 라깡의 현실(Lacanian Real)이라고 표현한다. 결국 현실이 판타지라면 과연 무엇이 우리가 판타지를 현실이라고 믿게 하는가? 바로 이데올로기이다. 이데올로기의 역할은 바로 이 판타지가 현실이라고 믿게 하는 것이다.[각주:7] 그러므로 이데올로기의 진짜 힘은 교회의 타락을 숨기고 ‘믿기만 하면 된다.’라는 거짓에 있지 않다. 오히려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교회 자체가 환상이라는 것을 숨기는 것에 있다. 우리가 교회의 타락과 문제점을 비판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타락과 문제점의 원인을 밝히고 고쳐 나가면 진정한 교회의 모습에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는 갱신과 개혁을 포기하고 ‘가나안’ 교인의 길을 걷는다.[각주:8] 둘 다 이데올로기를 더욱 강화하는 함정이 된다. 지젝에 따르면 이 둘의 상황에서 이데올로기의 기능은 진정한 교회의 핵(Kernel)을 만나지 않기 위해 환상적 현실을 제공하는 것이다.[각주:9] 왜냐하면 두가지 방법 모두 교회 자체가 이데올로기적 환상이라는 것을 밝히는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왜 바뀌지 않는가?


    약 40년전에 지나친 번영신학과 교회의 계급주의, 그리고 지나친 헌금강조등의 율법적 신앙을 바로잡고자 평신도 사역자를 강화하고 신유나 은사를 중심으로 한 예배를 금하고 세계선교의 희망을 불태운 교회가 있었다. 그것이 지금의 ‘구원파’교회이다. 현재의 교회가 거짓된 교리로 얼룩져 있다고 하여 모든 것을 바꾸고 새로운 교회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이내 그 곳은 이전보다 더욱 신비적이고 세속적인 집단으로 바뀌는 곳이 교회이다. 그렇다면 이 이데올로기는 도대체 왜? 어떻게? 인간을 이리도 쉽게 조종할 수 있는가? 사람은 누구나 강제로 어떤 것을 하게 되는 것을 싫어한다. 이러한 조종이 가능하려면 두 가지가 선행되어야 한다. 먼저, 자신이 자유로운 존재라고 착각하게 해야한다. 그리고 이성적으로 행동하고 있다고 믿게 만들어야한다. 이 두 가지를 가능하게 할 수있다면 그러면서도 인간을 조종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지젝이 말하는 이데올로기의 진정한 힘이다. 예를 들어보자.

    한 대형교회의 담임목사가 교회를 크게 건축하기 위해 헌금을 모으고자한다. 이 목회자는 교회를 크게 건축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과는 크게 상관이 없음을 이미 알고 있다. 그것이 성서의 뜻이나 신앙의 황금률이 아님을 알고있다. 그러나 교회의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서 더욱 큰 사업을 편하게 하기 위해 건물을 늘리고 신자를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헌금을 많이 하면 복을 받는다.’는 설교를 하기 시작한다. 여러 헌금을 많이 하여 사업에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건축헌금을 강조한다. 그 교회의 신자들은 굳이 헌금을 많이 한다고 해서 복을 받거나 삶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있다. 헌금을 많이 함으로 사업에 성공했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은 그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으며 그러한 신앙을 비판하는 목사들의 글이나 신학자들의 글도 넘쳐난다. 그러나 그들의 걱정은 다음과 같다. ‘그것을 아는 것이 나뿐이라면? 오직 나만이 그것을 알고 있고 나머지 대부분의 교인들은 목사의 말을 믿고 열심히 헌금을 한다고 한다면?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처음부터 교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삶이 곧 신앙의 중심이 되는 사람에게 (또한 이것이 교회의 기본 신앙이기다하다) 이것은 대단한 위기이다. 자신은 교회를 위해 희생하는 신앙인이어야하고 그러한 삶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 바로 헌금이 복과 직결되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교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삶의 형태 이외에는 자신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규정할 길이 없는 사람들은 알면서도 헌금에 목숨을 걸게 되는 것이다.[각주:10]
    다른 예를 들어 설명한다면, 학벌위주의 사회라는 것은 하나의 이데올로기이다. (지젝은 반유대주의를 가장 좋은 예로 드는데, 우리의 현실에서는 그리 와닿지 않는 것일 수 있다.) “좋은 대학을 나와야만 사회에서 대접받고 좋은 직장을 잡고 돈을 잘 벌고 행복하게 살수 있다.”라는 것이 학벌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이다. 처음에 이것은 하나의 루머일 수 있다. 아마도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자신들이 대접받기 위해 만들었을 수도 있다. 대학 간판이 좋지 않아도 자신의 노력과 특성으로 충분히 행복하고 돈을 잘 벌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정말로 이것을 믿고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가려고 할 수도 있다. 이와는 반대로 어떤 사람은 이것은 거짓말이며 현실은 실상 그렇지 않고 대학 간판없이도 충분히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하자. 그러나 이 똑똑한 사람은 다음과 같이 생각할 것이다. “만약에 바보처럼 순진하게 이것을 믿고 정말로 좋은 대학이 좋은 인생을 만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 게다가 그런 사람들이 사회 지도계층에 있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 그렇다면 나는 비록 이것이 거짓말이고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만 나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 좋은 대학을 가야겠다.” 결국 이것이 거짓이든 아니든 그것을 믿거나 믿지 않든 결과는 같다. 무슨 생각을 하든 좋은 대학을 목표로 살아가는 것은 같은 것이다.

지젝의 주체론(칸트와 헤겔)

    필자는 가끔 평신도이지만 상당히 높은 신학적 지식과 건전한 신앙관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스스로 성서를 공부하고 고민하며 참된 제자의 길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나름의 답을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들과 이야기하면서 자주 듣는 질문은 이런것이었다. “전도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물론 예외도 있겠지만 건전한 신앙관을 가진 신앙인이 제일 먼저 찾는 것은 자신의 생각에 동의하고 수긍해줄 목회자이다. 아무리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기독교라는 거대한 상징계 (Symbolic Order or The big Other)에 의지하지 않고는 자신을 위치시킬 수 없는 것이다.

    지젝의 이데올로기론에 따르면, 왜 대형교회가 수많은 문제들과 갈등에 시름하면서도 마치 그 교회에 맹종하는 사람들에 의해 유지되는 것 처럼 보이는지 알 수 있다. 그들도 알고있다 우리처럼. 다만 알면서도 계속 하던대로 할 뿐이다. 바로 그들의 정체성을 유지할 방법이 그것 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안다.’ 그러기에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느낀다. 안다는 것은 비판의식도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성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신앙은 변하지 않는다. 그들만이 아니다. 나와 이글을 읽는 여러분도 모두 마찬가지로 살아간다. 이 부분에서 지젝은 라깡을 데카르트, 칸트, 헤겔에 연결시키는 작업을 시작한다.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의 후반부가 ‘주체’(Subject)에 할애되어 있는 이유가 이것이다. 책의 초반부에 지젝은 알튀세르의 실패는 바로 어떻게 주체가 이데올로기의 물질적 토대에 의해 ‘이름 불리워지는가?’ (Interpellation)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것에 있다고 하였는데,[각주:11] 이를 설명해내기 위해 라깡을 데카르트, 칸트, 헤겔의 전통에 위치시킨다. 바로 지젝이 라깡은 후기구조주의자가 아니라고 했을때 이는 결국 구조주의를 넘어서 독일의 관념론에 라깡을 안착시키는 것을 의미한 것이다.[각주:12]


가정된 주체


    우리는 어떤 판단을 내리기 이전에 이미 어떤 것을 가정한다. 그 가정 뒤에는 또 다른 가정이있다. 이것을 끝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거기에는 가정된 주체(subject)가 있다. 이 가정된 주체를 만드는 것이 바로 이데올로기이며 이것을 이전 웹진 글에서 우리는 판타지라고 불렀다. 바로 맑스주의의 이데올로기와 라깡이 연결되는 지점이 이곳이다. 우리는 언제나 상징계(심볼릭 월드)안에서 이미 가정된 존재이며 (빗금쳐진 $) 불안한 상징계속에서 끊임없이 나를 안정시켜줄 거대한 존재(신)를 찾아나서지만 결국 텅빈 대타자(교회-신이 있다고 하는 장소)를 만나 그 비어있는 곳을 판타지로 채운다. 그곳은 바로 이데올로기가 작동하는 곳이며 바로 숭고한 대상 (무섭고도 장엄한 빈 물체)가 자리한 곳이다. 여기서 지젝이 숭고한 대상 (Sublime object)이라고 명명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데, 바로 칸트가 말하는 thing in itself (물자체)를 지칭한다. 그 이유는 이후에 이야기하겠지만 지젝이 보기에 헤겔의 철학의 사유의 시작은 칸트이며 칸트의 사유를 극복한 지점이 바로 이 물자체에 대한 헤겔의 칸트비판이기 때문이다.


    칸트는 물자체와 인간의 사유사이를 건널수 없는 강으로 구분지었다. 이 부분은 후기구조주의적 사유와 좀 닮아있는데, 칸트는 인간이 물체를 인식하는 방법이 이미 선험적으로 (태어날때부터) 결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붕어빵의 틀이 언제나 그 형틀의 빵만을 만들듯 인간의 이미 구조화된 인식의 방법 (시각, 청각, 미각, 길이, 무게…)으로 물체를 인식한다. 즉, 인간은 자신의 인식의 도구를 통해 이해된 방식으로만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다. 결국 물자체인 세계와 인간의 의식 속의 세계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기에 칸트는 머무르지 않고 그 사유화된 세계를 뛰어넘어 물자체의 세계를 인식하는 능력이 인간에게 있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숭고함(Sublime- 두렵고 떨리는 대상)을 만날때이다. 수백미터의 파도를 만났을때, 영혼마저 뒤흔들어 버리는 음악이나 그림을 만날을때, 인간은 자신의 사유의 깊이를 훌쩍 뛰어 넘어 사물자체가 가지고 있는 장엄함에 빠져들어간다. 바로 단순히 눈에 보이는 현상으로서의 물자체가 인간의 영혼마저 흔드는 경험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헤겔은 이러한 칸트의 사유의 방식이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물자체라는 외부적 요소를 이용하여 주체의 사유의 방식을 규정하려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칸트의 문제점은 주체가 물자체를 인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하려 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의 방식이 주체가 물자체를 인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박탈해 버렸다는 것에 있다는 것이 지젝이 보는 헤겔의 주장이다.[각주:13] 위에서 사용한 교회의 예를 들어 설명하면, 칸트식으로 교회는 하나님을 보고 인간 나름으로 만든 기구이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을 이해할수도 바로 볼 수도 없으며 다만 자기 나름의 방법으로 이해할 뿐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만든 하나님의 나라에 준하는 교회는 하나님 자체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득 문득 인간은 하나님의 장엄함을 그 숭고한 대상을 체험한다. 두렵고 떨림으로. 헤겔의 불만은 이것을 거꾸로 이해하면 인간이 자신의 방식으로 이해한 신은 언제나 틀릴수 밖에 없다가 된다. 숭고함을 통한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이미 인간이 자신의 방식으로 이해한 신이 틀렸음을 칸트는 확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헤겔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지젝이 보는 헤겔의 정수(essense)는 칸트가 말한 묘사할 수 없는 물자체의 경험, 즉 숭고함 (Sublime)에 대하여 칸트는 옳았지만 칸트의 실수는 그 이면에 여전히 물자체가 있다라고 생각한 것에 있다. 그 이면에는 아무것도 없다. 칸트는 여전히 무엇인가 주어져 있다고 생각했다.[각주:14] 그러나 헤겔에게 물자체 (Thing-in-itself)란 아무것도 없는것, 묘사할 수 없음 그 자체인 것이다. 지젝이 말하는 헤겔의 변증법은 ‘부정의 부정’ (negation of negation)인데, 바로 현세계(정)에서 묘사가 불가능한 숭고한 무엇(Sublime object)로 부정(반)을 거쳤다면, 마지막 변증법의 단계인 합은 그 부정이야 말로 실재 그 자체임을 말하는 것이다.[각주:15] 이 아무것도 없는 순수한 부정의 공간이 주체가 나타나는 곳이다. 데카르트가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을 하기 위해 생각하는 주체 자체를 상정하기 위해 모든 것을 부정했던 그 공간이 바로 이곳이다.[각주:16] 독자들은 이전 장에서 빗금쳐진 주체에 대해 논했을때, 이미 주체는 빗금쳐져 있었다라는 말을 기억할 것이다. 그 ‘이미’에 대한 설명이 여기에 있다. 지젝은 바로 절대 부정의 공간에서, 비어 있는 공간에서 주체는 나타났으며 주체의 자리와 생성은 정확하게 이데올로기적 환상의 나타남과 일치한다고 말한다. 이 문장을 좀 더 심도있게 살펴보면서 지젝이 제시하는 대안을 생각해 보도록 하자.


전기 지젝의 대안


    보통 지젝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지젝이 그의 이데올로기 이론에 대한 대안으로 두가지를 말했다고 한다. 초기의 지젝은 급진적 민주주의 (Radical Democracy)를 대안으로 제시했는데, 이는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에 언급되어 있다. 후기의 지젝은 그의 기독교 읽기를 통해 또 다른 대안을 제시했는데, 다음 웹진에서 다루게 될 것이다. 지젝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설명과 칸트,헤겔로 이어지는 설명에 지면을 할애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기 지젝이 말하는 급진적 민주주의라는 대안이 어떻게 대안이 될지에 대해 알아보자.

    만약에 주체가 언제나 쥬이상스속에서 판타지에 묶여 벗어날 수 없다고 한다면 어떻게 대안을 찾을 수 있을까? 지젝은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주체가 생성되는 지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데올로기의 시작점을 살핀다. 바로 독일 관념론적 전통의 주체론에 이미 그 주체에 대한 설명이 있었고 헤겔에 와서 주체론은 완성되어 라깡의 이데올로기 이론과 연결되었다는 것이 지젝의 생각이다.

    포이에르바하는 신(God)이란 인간이 스스로의 유한성과 반대되는 무한성을 투영한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포이에르바하는 외부적 신의 존재를 상정하지 않고 인간 주체의 개념의 부정성만으로 신에 대한 설명을 완성했다. 그래서 그는 무신론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러나 지젝은 포이에르바하의 시도가 주체를 중심으로 외부적 세계 또는 신을 설명하려 했으나 결정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보았다. 포이에르바하의 설명은 왜 인간이 굳이 신(God)을 상상해야 하는 필요성을 설명해 주지 못한다.[각주:17] 칸트가 물자체 (Thing-in-itself)를 상정하고 숭고함이란 개념으로 그 사이에 존재하는 비어있는 리얼에 다가서기를 포기한 것과 비슷한 논리로 포이에르바하는 주체의 속성에 신을 위치시킴으로 비어있는 리얼을 인간의 속성에 소외된 이질적인 어떤 것으로 채운다. 여기에는 특별한 대안이 없다. 기독교의 신이 인간의 약함의 부산물이라 선언한다 할지라도 이러한 신에 대한 지식이 믿음의 근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이데올로기의 부분에 언급되었다.

    지젝은 헤겔이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 주체를 설명했다고 했는데, 이를 간단히 말하면, 인간이, 또는 주체가 신의 이면에 자리한 진실이 아니라 주체는 주체이전에 신을 가정해야한다. 여기서 신을 실체(Substance)라 해도 좋다. 주체는 포이에르바하식으로 신을 자신의 주체 이후에 생성하는 것이 아니라 신을 먼저 가정하고 그 신이 인간, 즉 주체가 되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다.[각주:18] 이것이 이른바 헤겔식의 그리스도의 화육 ‘incarnation’에 대한 이해이다. 바로 절대 정신인 신이 인간이 되는 것이 주체가 나타나는 시작이 된다는 의미는 거꾸로 바로 그 신을 신의 자리에 세우는 것은 주체라는 말이 된다. 이를 라깡식으로 하면 바로 상징계 (the big Other)의 시작은 주체에 의해 전제된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각주:19] 지젝은 이러한 헤겔 읽기를 판타지를 가로지르는 것(Traversing Its Fantasy)이라 생각한 듯하다. 바로 전기 지젝의 대안은 헤겔의 변증법으로 라깡의 상징계 안에 자리한 주체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 상징계를 전제한 것이 바로 주체임을 인식하고 주체와 상징계를 묶는 이데올로기의 그 숭고한 대상의 자리가 비어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급진적 민주주의는 라클라우 (Ernst Laclau)에 착안한 것으로 민주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목표하는 평등, 자유, 평화등의 급진화된 형태가 이른바 타인의 개성을 평준화하고 수량화하는 ‘전체주의’로 흐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그러한 이데올로기의 비어있는 가치들과 거리를 유지하고 인권, 여성주의, 환경주의등의 가치들과 연대하면서 이른바 민주적 가치라는 평등 담론등을 통해 계속적인 투쟁의 영역을 넓혀 가는 것이다.[각주:20] 이를 교회적 상황에 비교한다면, 기독교의 신이라는 드러나 있는 기표와 가치들이 이데올로기임을 감안하고 그것이 비어있는 기표들의 상징계임을 전제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기독교적 신앙을 포기함을 뜻하지는 않는다. 기독교의 가치로 존재하는 사랑과 평화를 기반으로 좀 더 현실적인 층위에서 신앙의 방법들을 세워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에 대하여 후기 지젝은 스스로 의문을 표한다. 다음 웹진은 그 이유와 후기 지젝의 대안을 살펴볼 것이다.



<참고문헌> 

Kotsko, Adam. Zizek and Theology. 1 edition. London ; New York: Bloomsbury T&T Clark, 2008. 

Zizek, Slavoj. Tarrying with the Negative: Kant, Hegel, and the Critique of Ideology. First Edition edition.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Books, 1993.

———. 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 Second Edition edition. London; New York: Verso, 2009.


ⓒ 웹진 <제3시대>


  1. 이러한 맑스의 기독교에 대한 입장은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함께 읽어야 한다. 자본주의에 허상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 당시의 기독교에 대한 평가는 정당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본문으로]
  2. Slavoj Zizek, 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 Second Edition edition. (London; New York: Verso, 2009), 39. [본문으로]
  3. Adam Kotsko, Zizek and Theology, 1 edition. (London ; New York: Bloomsbury T&T Clark, 2008), 24. [본문으로]
  4. Ibid., 25. [본문으로]
  5. Zizek, 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 30. [본문으로]
  6. Ibid., 44–45. [본문으로]
  7. 지젝은 환상의 두가지 효과는 첫번째는 현실과 환상이 맺고 있는 관계를 보지 못하게하고 이 환상이 이데올로기적 판타지라는 것을 숨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Ibid., 30. [본문으로]
  8. Ibid., 24. 지젝의 냉소주의 (Cynicism)을 가나안교인들의 생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지젝은 변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냉소주의’를 비판하는데, 결국 이데올로기의 구조를 밝히기 보다는 구조를 지속시키는데 공헌하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근본주의 (fundamentalism)또한 냉소주의의 반대로서 같은 논리적 구조를 공유한다. [본문으로]
  9. Ibid., 45. [본문으로]
  10. 지젝은 이에 대한 몇가지 유명한 예들을 말했는데, 다음을 보라. Ibid., 210–211; ibid., 33. [본문으로]
  11. Zizek, 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 42. [본문으로]
  12. Kotsko, Zizek and Theology, 44. [본문으로]
  13. Zizek, 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 232. [본문으로]
  14. Ibid. [본문으로]
  15. Ibid., 233. [본문으로]
  16. Kotsko, Zizek and Theology, 51; Slavoj Zizek, Tarrying with the Negative: Kant, Hegel, and the Critique of Ideology, First Edition edition.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Books, 1993), 12–15. [본문으로]
  17. Zizek, 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 260. [본문으로]
  18. Ibid. [본문으로]
  19. Ibid., 262. [본문으로]
  20. Ibid., 9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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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신학가이드13]



성서학에서 철학으로


- 바울 이해를 위해 다리놓기


한수현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박사 과정)

    베커를 마지막으로 성서학에서 논하는 바울에 대한 논의를 일단 마감하려 한다. 필자가 소개한 학자들 이외에도 바울에 관해 논할 가치가 있는 학자들은 많다. 여기에서 마감하는 이유는 앞으로 논의할 바울연구에 대한 글들에 대한 충분한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이후로 논할 학자들은 성서학의 외부에서 바울에 대하여 논의하는 바디우, 지젝, 아감벤 등이 될 것이다. 보통의 성서학자들에게 이들의 바울읽기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있는 현상은 당황스러울 것이다. 이전의 성서학의 결과물들을 완전히 무시한 결과물들이 인기리에 읽히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만약에 필자가 “자 지젝의 바울 읽기는…” 이라고 글을 시작한다면 이는 성서학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이러한 단절을 거부하고 필자는 이전까지의 웹진의 글들과 이후 철학적 바울읽기에 대한 다리를 놓는 작업을 이번 웹진에서 감행한다.  

   다리를 놓기 위해 필자가 데려올 학자는 스테판 무어 (Stephen Moore) 라는 학자이다. 미국 뉴저지의 드류(Drew)대학의 신약학자로서, 보통의 성서학자들과는 다르게 데리다, 포스트모던 철학, 탈식민주의등의 현대적 담론에 익숙하며 선구적으로 성서학과 비평이론들 사이에 간문학적 연구를 시도해온 학자이다. 그가 몇년전에 쓴 [The Invention of the Biblical Scholar] 라는 책은 부제인 ‘critical manifesto’(비판적 선언) 라는 말에도 볼 수 있듯이 작금의 성서학에 대한 혁명적인 비판을 담고 있다. 이 책의 중심주제는 성서학이나 성서학자들은 어떤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학문이자 학자들인데, 그 목적은 성서에 대한 불경스런 질문들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보통 보수적이라 불리는 성서학자들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성서학이라 불릴 수 있는 거의 모든 학문을 통틀어 지칭한다. 참으로 논쟁적이고 발칙한 생각을 던진 이유는 자신이 몸담고도 있는 성서학에 대한 자살적 충동때문은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주제는 “왜 성서학은 현대의 이론이나 철학적 담론과는 대화하지 않는가? 라는 질문을 고민하다가 생겨난 것이란다.

    한국의 주류 성서학은 아직도 전통적인 역사비평학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여기서 역사비평학이란 근대부터 발달한 성서를 연구하는 방법론을 뜻한다. 간단히 설명하면, 역사비평학은 성서 텍스트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 그 역사적 근원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역사비평에는 크게 본문 비평, 양식비평, 편집비평 등이 있는데, 텍스튜얼 비평은 텍스트의 원래 모습을 추적해 들어가는 비평을 말한다. 성서텍스트가 역사적 발전을 거친 것이라고 한다면, 실지로 그러한데, 가장 초기의 판본을 추적해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한 추적을 거듭한 결과 성서 텍스트는 여러 조각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란 것을 알게 되었고 (예를 들면 복음서는 예수의 기적이야기, 초대 교회의 신앙고백와 기도문, 예수의 구전 비유, 초대 교회 예배문 등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 그 조각들이 하나의 양식으로 그 양식들은 각기 신앙공동체의 삶의 자리를 보여준다. 이러한 양식들의 전승과 기능을 연구하는 것이 양식비평이며, 편집비평은 양식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편집의 결과로 나타난 복음서 등의 최종본의 편집의도를 살피는 것이 되겠다. 이러한 방법들의 공통점이 존재하는데 바로 성서 이면에 존재하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연구의 기본 목표로 삼는다. 무어는 이러한 성서학의 역사에 대한 관심 속에 사실 다른 목적이 숨겨져 있었다고 말한다.

    이른바 근대의 시대에 이르러 계몽주의의 발달로 학자들은 성서에 대해 여러 이성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었는데, 가장 기본적인 질문은 바로 성서의 권위에 관한 문제였다. 원래 성서의 권위는 성서를 토대로 하는 교황의 권위를 뜻하고 성서가 계시하는 하나님의 권위에 의존했다. 즉, 하나님의 책이니 복종해야 한다는 식이었다. 근대의 시대에서 종교의 권위가 지배력을 상실하자 기독교는 문화를 통해서 자신의 지배력을 공고히 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문화적 주도권을 가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성서학이라는 학문을 필두로 기독교는 근대라는 거대한 파도를 넘으려 한 것이다. 무어의 성서학에 대한 비판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무어가 진단하기에 근대의 초기에 성서가 당면한 최대의 위협은 성서의 비도덕성에 대한 질문이었다. 여기서 근대의 도덕성(Morality)란 개인으로부터 시작하여 보편의 단계까지 확장되는 보편적인 도덕성(윤리)를 뜻한다. 즉, 인간이 지구에서 살건 화성에서 살건 기본적으로 지켜야할 보편적 삶의 도덕을 뜻한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성서의 여러 이야기들, 딸을 강간했다고 한 마을을 몰살시킨다거나 (야곱의 딸 디나, 창 24:1-41), 자신의 며느리와 동침하여 아이를 낳는다거나 (유다와 다말, 창 38:1-30), 이방인 민족을 가축과 아이까지 모두 죽이라고 하나님이 명령한다거나 (사무엘상 15장), 또한 그 명령을 어겼다고 역정을 내는 하나님의 이야기는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게다가 인간의 죄성이 최초의 나무열매 하나 먹은 것 부터라는 설명은 애매하기 그지 없다. 무어는 이러한 시대에 등장한 찰스 다윈의 진화론은 오히려 기독교에게는 구원이었다고 말한다. 즉, 차라리 그 이야기들은 역사적인 증명할 수 없는 실재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 성서의 권위를 지키기에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보통 성서학과 그 방법론을 이야기할때, 영어로는 biblical studies, biblical scholarship, 그리고 biblical criticism이라고 하는데, 무어는 ciriticism이란 표현을 쓰지 않는다. 무어가 보기에는 성서학은 역사비평에서 비평이란 의미의 수행을 제대로 한 적이 없다는 뜻일 것이다. 결국 주류성서학은 처음부터 끝까지 성서에 비도덕성에 대한 질문과 비평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움직이게 되었다고 무어는 말한다.[각주:1] 

    신학교에서 처음 오경이 여러 문서들의 조합이라는 말을 들으면 충격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무어에 따르면 차라리 문서설을 받아들이고 그에 대한 역사적 연구에 몰두하는 것이 그 이야기들속에 나타난 성서의 비도덕성에 대해 고민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은혜스러웠다는 말이다.[각주:2] 성서가 통일되고 보편적인 도덕적 기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고민하는 것보다 차라리 성서가 문학적으로 통일된 문서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 덜 고통스러웠다는 말이다.[각주:3] 옛날에는 은혜스럽던 기적 이야기들도 보편적 도덕과 종교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누구는 살려주고 누구는 내버려두는 신의 모습은 애매모호한 도덕일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기적이야기는 '역사적이지 않다'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솔직한 비평이기 보다는 기적에 대한 보편적 도덕의 모순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각주:4] 차라리 “그런 일 따윈 없었어!”라고 하는 것이 성서는 '도덕적이지 않다'라고 하는 것보다 덜 아프기 때문이다.

    보통의 그리스도인들은 흔히 성서의 창세기의 천지창조의 기록들은 실제의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이야기일 뿐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시험에 들곤 한다. 홍해가 두 쪽으로 갈라진 이야기가 실제로는 갈대바다라는 비교적 건너기 쉬운 바다를 잘못 표현한 것이라든가, 바다가 갈라지는 기적은 그저 이야기로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하면 충격을 받는다. 이것들은 이른바 성서학자들이 역사적 비평의 결과로 말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역사비평은 신실한 성도를 넘어뜨리는 자유주의적인 신학이라 욕을 먹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성서의 허구성을 밝혀주는 용감무쌍한 학문다운 학문이라는 평을 들어오기도 했다. 무어에게는 이러한 구도를 다시 뒤집어 그 용감무쌍한 학문의 숨겨진 의도를 파헤친다. 곧, 이렇게 이야기하는 진짜 의도는 하나님이 왜 홍해를 갈라서 이스라엘 백성은 구해주고 이집트인들은 죽였냐는 질문보다 대답하기 쉽기 때문라고 말한다. 오히려 성서의 역사성을 가지고 문제삼고 논하는 것이 성서가 가지는 비도덕성에 질문을 던지는 것보다 성서를 보호하기 쉽기 때문에 역사비평학적 연구가 근대에 생겨났다는 것이다. 다른 표현으로는 근대에 이르러 성서는 철학이 던지는 질문에 대답하기 보다는 회피하였는데 그 결과로 생겨난 것이 성서학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역사비평에서 성서에 대한 ‘역사’적 관심은 진리에 대한 추구에서 생겨난 것이기 보다는 근대의 역사적 상황속에 생겨난 필연적인 선택이 된다. 성서의 여러 문제성 있는 텍스트들은 비판과 비평의 대상이 아니라 연구의 대상이 된다. 그 연구의 무대에는 고대의 언어학, 철학, 고고학, 문헌학, 역사학, 문화학, 지리학등 수많은 전문분야들이 난무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그 연구 결과들은 전문성 없이는 읽기 어려운 것들이 되고 자연스럽게 보통의 신앙인들의 영역에서 분리되게 된다. 성서를 공부하고 싶은 사람은 구약이냐 신약이냐, 복음서냐 바울 서신이냐, 역사 비평학의 어떤 분야냐, 교회론이냐 그리스도론이냐, 복음주의냐 진보주의냐 등등 수없이 쪼개어진 분과 학문과 연구 주제 사이에서 선택해야 학위라도 하나 받을 수 있다.[각주:5] 그리고 마지막에는 어떤 논의의 끝자락에서 예수의 이런 말은 이런 의미가 있다거나, 바울의 이런 말은 이런 이런 신학적 의미가 있다는 식의 연구논문을 내어놓게 된다. 비판이나 공격보다는 어떠한 가르침이나 신앙적 양상에 대해 동의하는 것으로 끝마치게 되는 것이다. 이미 성서 자체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성서학은 사전에 차단하고 스스로의 생태계를 만들어 무슨 무슨 학회, 무슨 무슨 위원회등으로 그 생태계를 유지한다. 결국 이제는 아무도 성서학의 결과물들에는 큰 관심이 없다. 기독교 서점의 많은 부분들은 천년이 지나도 크게 변하지 않는 복음에 대한 쉬운 설명집이나 설교문 모음집으로 채워진다. 

    신약을 공부하는 학생에게는 매력적인 주제이자 일세를 풍미했던 예수연구에 대한 무어의 평가 또한 엄혹하기 그지 없지만 그의 책의 주제를 명확하게 해준다. 슈바이쪄가 이전까지의 예수연구를 단순히 근대 연구가들의 '자기 얼굴 그리기'라고 평가하고 예수를 종말론적 예언자라고 하였을때 의도는 하지 않았을지라도 결국 예수의 삶의 윤리적 가치를 무시한 결과를 낳았다고 한다. 슈바이쳐는 예수를 종말론적 예언자로 규정하고 그의 죽음을 새로운 시대로 향하는 역사를 수래바퀴에 자신의 몸을 던지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와 함께 예수의 가르침과 윤리를 종말론적 시대의 윤리라 평하였다. 즉, 예수가 말한 윤리와 도덕, 즉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으로 주고 헐벗은 자에게 겉옷을 벗어주는 윤리에 대해 엄숙하게 고민하기 보다는 현대에는 맞지 않는 종말의 시대의 윤리로 제한해 버린 것이다.[각주:6] 결국 슈바이쳐의 학문적 성과또한 근대 성서학의 숨겨진 목적을 벗어나지 않는다. “예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끊임없이 “예수는 누구였는가?”로, 또는 예수처럼 살기는 현재에는 불가능하지만… 이라는 말로 환원된다.

    결국 처음에 잘못 꿰어진 단추구멍처럼 성서를 과거의 역사에 대한 연구로 제한해버린 것이 오히려 성서의 가르침을 제한해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 무어의 진단일 것이다. 이를 시작으로 무어는 정치적 비평, 문학비평, 구조주의 비평, 해체주의 비평, 3세계 비평 등을 아우르며 모두 역사적 필요성에 의해서 생겨났지만 성서학 안으로 들어오면서는 성서의 도덕성에 대한 질문들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채 성서안에서 과거의 문제들과 씨름하게 되었고, 결국 성서는 과거의 거룩한 책으로 남게 되었다고 말한다. 예를 든다면 문학에 대한 해석에서 독자들을 강조하는 혁명적인 경향은 성서학으로 들어와서는 ‘현재의 독자’보다는 ‘내재적 독자’를 강조하는 경향으로 바뀐다. 아무리 현대적 방법론이 성서학으로 들어와도 결국은 과거의 사건의 재구성이라는 성서학의 기본적인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이것은 성서를 현재적 사건으로 바꾸려는 충동을 무력화시킨다. 이 원인은, 다시 강조하자면, 성서에 대한 보편적 도덕성을 처음부터 묻지 않게 하기 위해 성서를 과거의 기록이자 과거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성서학 안에 윤리학, 정치학, 더 나아가 신학이 설 자리가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고 무어는 말한다.

    그런 와중에 불현듯 새로운 사조가 일어났는데 인종, 젠더, 또는 계급이 인문학을 이끌던 시대에서 갑자기 종교로 담론의 관심이 변한 것과 발맞추어, 알랑 바디우, 아감벤, 지젝, 야콥 타우버스등이 성서를 읽기 시작했다. 무어는 이를 The Second Wave 라고 표현한다. 성서학을 깨우기 위한 첫번째 이론의 물결은 20세기 후반에 시작되었지만 결국 페미니즘을 제외하고는 성서학 자체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스러져갔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두번째 물결이 나타난 것이다. 이전에는 이론을 성서학이 받아들여 해석을 생산하였다면, 이 두번째 흐름의 특징은 해석까지도 성서학 외부에서 이루어졌다.
    이 두번째 흐름들은 성서학 밖에서 다시금 보편성과 역사의 개념을 중심으로 근대에서 생겨난 수많은 분열들, 개인과 공동체, 종교와 정치 사이의 장벽을 허문다. 그리고 역사적 비평이나 성서학의 연구물들과는 별개로 성서를 ‘철학적 또는 이론적’으로 접근하여 근대의 시대에 성서로 부터 퇴출되었던 유령들을 불러모아 성서와 다시 만나게 한다.[각주:7] 이러한 철학적 접근을 무어의 평가를 필자의 논리로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만약에 근대의 시작에 생겨났던 보편적 도덕이라든가 정치와 종교의 분리라든가 이성과 감성의 분리등에 대해 제대로 비판하고 성서를 좀 더 열린 자세로 읽었더라면 성서는 그저 신화를 담은 이야기로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졌을까? 오히려 지례 겁을 먹고 성서의 권위를 보호하기위해 감싸기만한 결과로 성서는 침묵하는 책이 되버린건 아닐까? 그렇다면 다시금 근대가 만들어낸 여러 장벽들을 벗어나 성서를 읽으려 하는 일군의 철학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이 좋은 기회는 아닐까? 그들이 근대의 여러 장벽들을 비판하고 성서를 솔직하게 바라볼때 찾아낸 것들과 성서를 다시 읽으며 새롭게 열리는 종교적 담론에 귀기울여 보는 것이 우리 성서학자들을 다시 돌아보는데 필요하지 않을까?[각주:8] 이러한 권유로 무어는 결론을 맺는다. 그는 지젝이 옳다고도 바디우가 낫다고도 하지 않는다. 다만 왜 우리가 그들에게 귀를 기울여야 하는지 담담하게 논할 뿐이다. 물론 지나칠 정도로 성서학을 몰아붙이기는 하지만.
    원래 무어의 이러한 논지는 하나의 질문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왜 성서학은 인문학의 발전으로 인해 나타난 여러 비평의 관점들과 철학적 담론에 무관심한가?” 라는 질문이다. 보통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후기 자본주의 시대에 자본의 힘에 굴복한 수많은 이론적 성과들, 구조주의, 후기 구조주의, 해체주의, 맑스주의등이 현시대에 이르러 이렇다할 대안을 내어놓지 못하고 있는 것에 찾는다. 강력한 저항을 외쳤던 락과 힙합이 지금은 소수의 뮤지션들에게 부를 가져다주는 상품으로 전락하고, 강력한 비평의 도구로 서구의 철학적 이데올로기를 혁파했던 해체주의가 데리다의 죽음 이후로 텍스트 읽기의 유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맑스가 말하던 새로운 사회가 오기는 커녕 급속한 환경파괴로 인류의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지금, 문화 현상과 텍스트 비평를 통해 새로운 사회와 인간을 꿈꾸고자 했던 이론의 영향력은 그 힘을 잃은 것 같다. 그래서 쉽게 성서학은 이론의 종언과 함께 성서학의 부흥을 외치곤한다. “다시 성서로 교회로 돌아가자!”란다. 무어는 질문한다. “언제 제대로 이론을 수행한 적이라도 있었나?” 스스로 기독교 가치의 보호자를 자처한 성서학은 스스로를 비판하거나 그러한 시선을 놓는 것 자체를 거부해왔다. 그런 성서학에게 이론을 통한 반성도, 대안이 없다는 반성을 위한 반성도 수행한 적이 없는 성서학의 모습이 지금의 성서학이라 말한다.
    긴 호흡으로 보면 어떤 역사이든 냉혹하다. 철학사의 수많은 천재들이 나타났고 세상을 종합화하는 멋진 담론들을 내어놓았지만 이내 역사의 장강속에 그 한계를 드러내며 사라져갔다. 하지만 그러한 이들이 있었기에 냉정한 반성역시 가능했고 새로운 담론의 생산이 가능했었다. 성서학은 과연 스스로를 냉혹하게 반성한 적이 있었던가? 그 반성이 성서학 내에서 가능하지 않다면 (필자의 입장은 가능하다고 보는 입장이지만- 물론 아주 어려울 것이다.) 외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대화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필자가 공부한 Chicago Theological Seminary에서 바울수업을 Ted. Jennings교수에게 들었을때, 수업 첫 시간에 그가 강조하는 것이 있다. 너의 삶의 가장 힘든 순간에 우연히 발견한 어떤 이의 편지를 무심코 넘기면서 읽은 것처럼 바울의 편지를 읽으라… 그말을 들으면서 떠올랐던 것은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한 장면이었다. (스포가 될수 도 있으니 평이하게 설명하면) 감옥에 갖힌 여주인공은 생사가 불분명한 가운데 조그만 감옥의 벽돌 사이에서 누더기와 같은 어떤 편지를 발견한다. 그 편지는 “나는 당신이 누군지 모릅니다…”라고 시작하는 그 이전에 감옥에 갇혀 있었던 한 사람의 이야기와 소망이 담긴 편지였다. 당신이 기독교가 무엇인지 예수가 누군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어떤 선교사나 목사들의 설명없이 “신의 뜻을 따라 예수 메시아의 사도로 부름받은 나 바울이…” 라고 시작되는 편지를 읽는다고 생각해보라. 과연 바울의 말중에 당신은 무엇을 깨닫게 될까?

   다음 웹진부터 지젝을 필두로 이른바 기독교의 눈이 아닌 눈으로 바울을 읽은 사람들을 소개할 것이다. 이들의 글들이 바울신학에 대한 필자의 글의 마지막 부분이 될 것이나 그것이 이들의 글이 다른 성서학자들의 글들에 비해 더 우월함을 뜻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현재의 입장에서 더욱 면밀하게 검토되고 숙고되어야 할 것이다. 대신 안전벨트를 꽉 조이자. 생각보다 어지러운 여행이 될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Stephen D Moore and Sherwood, Yvonne, The Invention of the Biblical Scholar: A Critical Manifesto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11), 47. [본문으로]
  2. Ibid., 52. [본문으로]
  3. Ibid. [본문으로]
  4. Ibid., 58–59. [본문으로]
  5. Ibid., 85. [본문으로]
  6. Ibid., 67. [본문으로]
  7. Ibid., 127. [본문으로]
  8. Ibid., 129–13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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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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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신학가이드12]



바울과 종말론 IV 


- 존 크리스천 베커


 

한수현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박사 과정)




<존 크리스천 베커>


    몇년 전부터 범죄 형사류의 드라마 영화가 인기이다. 근대의 여명기에 소위 탐정소설 장르로 시작되어 그 형태와 스타일이 계속 변화해 오기는 하였지만 기본적인 틀은 이성적 추론에 의한 사건의 해결이다. 주인공인 탐정이나 형사는 “이건 불가능한 현상이야”와 같은 완전 범죄나 불가능할 정도로 우연의 연속인 사건들을 파헤쳐서 하나의 그럴듯한 추론을 완성해낸다. 그리고 용의자에게 말한다. “네가 어떻게 그 사람을 죽였는지 알아냈어!” 위의 사진이 요한 크리스쳔 베커이다. 마치 셜록홈즈와 같이 유능한 사립 탐정처럼 생기지 않았는가? 필자가 베커의 글을 읽으면서 계속 든 생각이 그것이었다. 이사람은 마치 탐정과 같다. 바울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때로 막히는 길은 상상력을 동원하여 뚫어내고 가설과 추론을 동원하여 바울서신과 그 신학을 하나의 일목요연한, 기승전결이 살아있는 이야기로 풀어낸다. 그리고 마지막에 자리에서 일어나며 한마디 던진다. “그랬었어.. 바울... 네가 원한건 바로 이거였어…” 

    이번 웹진에서 베커의 신학을 어떻게 소개할지 나름 많은 고민을 했다. 이 원고는 베커에 대한 새번째 원고다. 이전 원고에서는 어떻게 하면 그의 사상을 골고루 소개할지를 고민했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지면의 한계가 있는 웹진의 원고로는 알맞지 않은 것 같았다. 바울의 이곳 저곳을 자유로이 거닐며 의미심장한 말들을 던지는 베커를 한달음에 정리하는 것은 그의 재기발랄한 글을 외려 지루하기 그지없는 말로 정리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마치 탐정이나 형사가 하나의 사건을 재구성하는 형식으로 글을 적어보려 한다. 이제부터 논하는 사건의 재구성은 바로 베커의 주저인 [사도 바울] 에서 논해지는 바울신학을 하나의 이야기로 재구성한 것이다.


사건의 재구성


    여기 고민하는 한 바리새인이 있다. 그의 이름은 바울. 그는 최근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그것이 과연 어떤 것이었는지는 함구하고 있다. 그것이 무엇이었든지 그의 삶의 자세가 바뀐 것은 명확하다. 예수를 메시아로 따르는 자들을 체포하러 다니던 똑똑한 율법학자가 하루아침에 이방인들에게 예수 메시아에 대해 전하러 다니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의 고민이 무엇이었는지 명확히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그가 이곳 저곳의 예수를 따르는 이방모임에 모낸 글에 따르면 그는 자신이 알고 지낸 예루살렘의 교회 지도자들이나 다른 이방인을 위한 선교사들이 가지고 있는 율법에 대한 모순적 행동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꼭 그런 사람들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하지 않는 쓸데없는 고민을 하는 것 같은 사람. 보통 사람들은 신경쓰지 않는 문제인데도 그것을 머리속에서 수십번 수백번을 되짚어서 그 안에 존재하는 모순을 밝혀내어 문제삼는 사람들. 적어도 바울은 그런 사람이었다. 바울을 괴롭히던 문제는 다음과 같다.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지도자들은 예수 메시아를 믿고 난 다음에도 기본적인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유대인들에게 율법은 삶과도 같은 것이었으니 그것을 반대할 마음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근본적으로 예수의 죽음이 율법과 충돌하는 지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유대적 가르침에 의하면 예수는 나무에 달린 저주받은 자이자 유대 전승과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는 메시야이다. 다른 이방 선교사들도 문제였다. 그들은 아예 율법은 저주 받았으며 버려져야 하는 것이라 떠들고 다녔다. (사도행전 스데반) 그들은 율법을 공격하는 것이 유대의 전승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듯 하다. 예수가 메시야임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메시야와 율법 간의 관계를 명확하게 해놓지 않으면 결국 수많은 문제가 생기게 될 것이라 바울은 생각했다. 바울의 해결책은 다음과 같다. 바울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사이에 있었던 일을 재구성했다. 과연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명확히 설명하는 것이 오해를 푸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음은 바울이 말한 사건의 재구성이다.

    “예수의 죽음이 율법의 저주라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 저주받은 예수가 부활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가장 저주받은 인간을 사랑으로 부활하게 하신겁니다. 예수가 율법에 의해 심판을 받은 것으로 생각했지만 하나님이 예수를 부활시킴으로 예수를 통해 율법을 심판하신 겁니다. 하지만 오해마세요.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것은 유대인이 미워서도 틀려서도 아닙니다. (행 2.23; 2; 15; 17) 율법을 하나님이 스스로 심판하신 것은 바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거대한 계획의 일부입니다. 그리고 예수가 율법의 저주에 의해 죽는 그 순간에 일어난 일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를 위해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갈 3:13)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율법의 효력이 끝나게 된 것입니다. (롬 10:4) 이해하기 어려우세요? 쉽게 말씀드릴께요.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갈 2:20) 그리고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베커의 재구성


    베커가 묻는 질문은 이것이다. “어떻게 바울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놀라운 것은 바울이 저런 추론을 너무도 자신있게 마치 자신이 하나님에게 직접 들은 것 처럼 한다는 것이다. 솔직히 예수의 십자가 사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가 아는가? 바울 이전에는 십자가에 달린 메시야를 믿는다는 것에 대한 순진한 변명같아 보이는 말이 많았다. 그의 죽음이 우리의 죄를 해결해 준다라거나… 그의 죽음은 바로 유대인이 틀렸다는 것은 반증하는 것이라는 (유대의 메시아와는 다른 메시아이므로…) 그런데 뻔뻔하게도 예수의 죽음은 율법의 마침이자 완성!과 같은 이해하기도 어려운 말을 막해대는 것이다. 그래서 베커는 바울의 주위를 탐문수사하기 시작했다. 바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울의 기록만으로는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두가지를 알아내었는데, 바리새인이었던 바울은 다른 보통의 바리새인들이 그러하였듯이 묵시사상에 상당히 심취해 있었다는 것과 보통의 바리새인들에게는 겁없이 전통을 해석하여 나름대로 막 이야기하는 것이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단서를 바탕으로 베커는 바울의 재구성을 거꾸로 탐색한다. 먼저 바울의 율법에 대한 해석은 묵시사상을 해석의 단초로 가지고 왔기에 가능했다는 것이 베커의 생각이다. 묵시사상에서 율법-토라는 존재론적 위치를 가진다. 율법은 단순히 유대인이 품어야할 삶의 방식이 아니라 세계를 지배하는 존재적 위치를 가진다. (에녹서) 율법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인간은 실패했다. 그 인간의 실패를 바꿀수 있는 방법은 바로 율법의 시대가 끝나야 가능하다. 곧 그리스도가 율법의 마침이라는 바울의 확신은 묵시사상을 통해서만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율법의 시대가 끝나는 것으로 (율법의 마침) 세계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예수의 죽음이 우리의 죄 대신이라는 ‘랍비적’ 언어에 만족할 수 없었던 (유대적 시각) 바울은 부활을 통해 새로운 생명의 시작을 말해야 했다. 그저 죄를 사면받는 것으로 해결되는 것은 없다. 바로 새로운 창조가 예수의 부활과 함께 가능하게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바울에게 십자가는 고난의 신학이 아니다. 마가는 고난을 말하는 신학자이며 요한은 십자가가 영광의 길이지만 바울에게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약함의 시간이다. (고전 1:25; 고후 13:4) 바로 “약할 때 강함 주시는”신학이 바울의 십자가 신학이다. 바울 이외의 헬라-유대 기독교 공동체는 예수의 죽음을 강조하여 그의 죽음이 속죄의 죽음이며 이를 고난당하는 의로운 자 (이사야)에 대한 전승과 동물희생제에 연결시켜 예수의 죽음을 희생적 속죄로 이해했다. 그러나 바울에게 예수의 죽음은 묵시적 심판과 갱신이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함께 죄, 율법, 육, 죽음의 세력들이 심판을 받는다. 그리고 부활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태어난다.

모든 추론의 시작은 범죄의 동기


    바울을 무슨 범죄자처럼 보려는 것이 의도는 아니다. 어떤 범죄가 일어났을때 그 범죄를 해결하는 것은 그 범죄의 동기를 알아내는 것부터이다. 범죄 자체에서 그 동기는 숨어있다. 범죄의 현상은 누군가 죽었거나 어떤 물건이 없어진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 범죄의 동기는 숨겨져있다. 범죄의 현상을 통해 그 동기를 밝혀내는 것이 탐정이나 형사가 하는 일이다. 베커와 같은 많은 신학자들이 바울의 서신의 내용이라는 현상을 정리하는 것으로 바울을 이해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런 시도에는 많은 한계가 있다. 바울은 여기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하다가 저기에서는 저렇게 이야기한다. 한마디로 그의 진술이 왔다 갔다한다. 때로는 율법을 씹어먹을 것 처럼 맹렬히 비판하다가 때로는 “아.. 율법? 그거 좋은거야…”라고 열심히 변호하기 시작한다. 그 말의 현상 자체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바울의 진술이 통일성을 찾아내려 무진 애를 썼지만 많은 학자들이 낭패를 맛보았다. 아니 해결한 듯 보이지만 그 학자 (형사나 탐정)들의 보고서를 읽어보면 이해하기 무지 어려운 경우가 허다하다. 베커의 해결책은 무엇일까? 



    우리는 포도를 먹을때 포도의 달콤한 껍질을 먹고 그 중심의 씨는 뱉어버린다. 마치 우리는 원래는 씨를 보호하고 자라게 하기 위한 과육을 즐기고 그 핵심은 버린다. 우리를 달콤하게 하고 즐기게 하는 바울의 율법과 복음의 관계, 믿음으로 얻는 의는 달콤한 과육이지만 그 안의 단단하여 씹을 수 없는 그 씨처럼 바울의 서신의 핵심은 우리가 쉽게 다가갈 수 없다. 더욱이 근대의 시대에 들어오면서 그 단단했던 씨는 근대의 생각과는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신화적 시대의 세계관이란 이름으로,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메시아라는 이름으로 길바닥에 버려졌다. 그것은 묵시라는 세계의 마지막에 대한 꿈이었고 그 꿈의 끝자락의 주인공은 바로 하나님이다. 바울이 처음 예수의 부활로 부터 발견한 것. 그가 처음 율법의 마침이자 완성인 예수 이후에 꿈꾸었던 최후의 승리. 바로 하나님의 정의가 승리하리라 믿는 세계관이 그 단단한 씨속에 숨겨져왔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베커의 독특성에 대해 살펴보자.


묵시와 그리스도-사건: 바울의 일관된 형식


    베커는 바울의 일관된 주제를 이신칭의나 신비주의라는 개념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상징적인 구조로 보았는데, 그는 이를 “바울이 일관성은 그리스도-사건으로 표현한 언어와 묵시적 언어가 이루는 상징적인 구조이다. 그리스도-사건의 원초적 경험은 바울의 전통적인 묵시적 언어를 살찌우고, 강화하며 수정했다.”(35) 불트만에 비교하면 재미있는데, 불트만은 케리그마, 즉 말해진 복음의 핵심을 현대인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화적-묵시적 세계관에서 본문을 벗겨내는 비신화화의 작업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벗겨내야할 껍질이 베커에게는 지켜야할 바울의 일관성이 된다. 나는 이것은 바울서신에 대한 틀과 꼴의 해석학이라 이름붙이고 싶다. 성서해석학에서 오래도록 장르비평이라 불리운 비평학적 방법이 있었는데, 이는 일반 문학비평에서의 장르비평 (원래는 근대 소설의 태동에 대한 연구에서 비약적으로 발전)에서 유대되었으나, 성서비평에서는 문학비평에서만 조금 언급이 되었을뿐, 본격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좀 더 깊게보면 맑스주의라는 것도 하나의 틀에 대한 비평인데, 맑스가 “존재가 사유를 결정한다.”고 하였을때 인간의 사상, 사유라는 체계가 인간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의 틀의 변화가 사상의 변화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베커의 바울 해석학은 이러한 틀과 꼴 (Form and Content)에 대한 이해를 탁월하게 전유하여 바울을 보는 시각을 보여준다 할 수 있다. (여기에 관심이 있다면, 이러한 틀과 꼴의 비평학으로 민중신학에 비평적 시도를 보여준 이경재의 논문이 있다.)

    틀 (Form)이라는 것은 겨울에 자주찾는 붕어빵 판매소에 있는 붕어빵틀과 같다. 가게마다 파는 붕어빵의 맛이나 속은 각기 다를 수 있다. 얼마나 굽느냐에 따라 맛도 다르다. 팥이 많이서 맞이 있는 붕어빵이 있는가하면 돈 주고 사먹은 것이 아까울 정도의 맛도 있다. 그러나 그 틀은 거의 비슷하다. 다양한 변화를 낼 수 있지만 그 변화는 하나의 외형에 구속받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붕어라는 모양을 가지고 있다. 왜 붕어모양일까? 두툼한 물고기 모양을 식감을 자극할까? 그저 우연히 그런 모습으로 만들기 시작했을까? 간식 하나의 틀에도 이런 질문이 생기는데, 하나의 문학 장르의 형태에는 수많은 의미들이 숨어있지 않을까? 붕어빵의 유비에 끼워맞춰 설명하자면, 붕어빵 틀은 묵시사상이고 붕어빵에 들어가는 재료들은 그리스도-사건 (십자가와 부활)이며 여러 환경적인 요인 (불의 온도, 가격 경쟁, 날씨등)이 바울과 교회의 상황정도로 생각한 듯하다. 그렇다면 바울의 여러 서신들은 각기 다른 상황에서 같은 사람이 만든 조금씩은 다른 붕어빵들이다.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의 환경이 너무도 달랐기에 붕어빵은 상당히 다른 맛을 가지고 있다. 붕이빵의 맛이 다를만큼 바울은 급격한 변화와 각기 다른 교회의 질문들에 답해야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이런식의 방법으로 바울을 이해하는 것이 왜 필요할까? 서두에서 베커의 방법이 그 이전까지의 바울신학의 각기 다른 두개의 스타일을 종합하는데 이상적인 모델임을 설명하였지만, 무엇보다 바울을 더 잘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거창한 미사여구에 지나지 않는다.
    일전에 유대의 묵시문학을 설명하면서 종말론과 묵시문학의 차이점을 지적한 적이 있었다. 종말론이란 세상의 끝에 대한 담론이다. 묵시문학은 유대교에서 나타난 하나의 문학장르로서 묵시 (Revelation)이란 말이 의미하듯 신의 계시를 드러내는 이야기체의 문학으로서 그 뼈대를 형성하는 장치는 환상과 천상 여행이다. 다니엘서 7장을 보면 벨사살 왕이 꿈에 환상을 보고 다니엘이 그것을 해석하는 장면이 나온다. 꿈에 나타난 환상은 계시를 드러내는 장치이고 다니엘의 해석은 인간 역사의 거대한 흐름에 대한 설명이다. 그리고 이러한 묵시문학의 장치를 통한 해석은 세상의 종말에 관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예외도 있다. 묵시사상의 장치들이 등장하지만 세계의 종말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들이 있다. 특히 에녹 4서) 그러므로 묵시문학에 종말론을 나타내는 경우는 많지만 언제나 그러한 것은 아니며, 특히나 유대의 묵시문학은 각기 다른 종말을 말한다. 이러한 전체적 묵시문학이 가지는 사상을 묵시사상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묵시사상은 종말론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만 그 차이는 명확하게 세계말에 대한 관심을 가진 담론이기 보다는 묵시문학이 가지고 있는 사상적 특징을 모은 것 정도가 된다. 그래서 베커가 묵시사상이 바울 신학의 핵심적 틀이라고 하였을때, 이는 종말론이 바울의 핵심이라고 하는 것과는 구별된다. 그러나 완전히 다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사건이 그 종말론의 핵심이 되는 만큼만 그러하다. 이 말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논해보자.
    바울을 묵시문학의 틀이나 종말론적 틀로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은 학자들은 나름 그들대로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에게 바울은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말하는 사람이지 종말을 외치는 사람이 아니었다. 예를 들면 바울의 중요 서신중 하나인 갈라디아서에는 종말을 의미하는 말이 거의 없다. 데살로니카 전서에서 조금 나오고 (4장) 고린도전서의 부활에 관한 설명에서 조금 (15장) 로마서에서 잠깐(8장)이다. 그들이 보기에는 압도적으로 바울에게는 예수의 믿음으로 (예수를 믿음으로?) 얻는 구원이 바울 신학이 중심이다. 베커는 이에 대해 바울이 묵시적 전통에 서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의인화에 대한 담론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는 논지를 제시한다.
    바울에게는 없고 복음서에는 있는 것이 있다. 바로 ‘기록되었으되… 이루려 하심이라…’라는 표현이다. 복음서가 기록되기전 구전전승을 거치면서 예수에 대한 여러 기억들과 이야기들을 구약의 전승에 대치시켜 예수가 바로 기다리던 메시아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시도들이 생겨났다. 이를 통해 예수가 구약의 예언을 충족시킨다는 것을 강조한다. 예수의 권위를 기록된 성서의 말씀에 의존시킨다. 이 방법은 위험하다. 왜냐하면 예수의 죽음은 당시의 구약성서 전통에 비추어 보면 매우 황당한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 희생제사의 개념은 구약이나 유대교에겐 오로지 동물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다. 구약에도 인신공양이 등장하지만 (이삭, 입다의 딸) 그것은 죄에 대한 구속과는 상관없는 예이다. 오로지 이사야서의 고난받는 종에 대한 본문으로는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합리화할 수 없다. 바울이 말한 것과 같이 나무에 달려 죽은 자는 율법의 저주를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가끔 성서에 대한 대화를 하다보면 “성서에 그렇게 기록되어있다.”라는 말로 모든 논의의 흐름을 단절해 버리는 경우를 보게된다. 성서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토달지 말라는 것이다. 예수를 구약의 연속선상에서 이해하려 한 복음서의 전통은 유대교와의 첨예한 대립의 시대였기에 이해못하는 바는 아니나, 구약시대부터 내려온 하나님의 백성들의 역사는 끊임없는 해석의 역사이지, 문자에 기대어 스스로의 해석학적 전통을 말살시켜온 역사가 될 수 없다. “문자는 죽이지만 영은 살린다.”라는 바울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바로 여기에서 바울은 구약 전승의 문자에 권위를 부여하기 보다 전승에 대한 자신의 해석에 권위를 부여한다. 그리스도-사건이 바울에 의해 해석학적 혁명을 맞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승자체가 아니라 바울은 자신의 해석에 권위를 부여한다. 소명이 가지는 의미는 길에서 부활한 예수를 만나서 짠!하고 생겨난 것이 아니고, 단순히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러 저러하기 복음을 재구성한 것이 아니다.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갈 1,12) 바울의 전승에 대한 해석와 그리스도-사건에 대한 해석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초대 교회 (베드로와 야고보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와 다를 수 밖에 없다. 바울의 해석은 예수 그리스도의 Apocalypse (묵시, 계시)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바리새인인 바울은 유대식의 성서해석에 능할 수 밖에 없었는데, 구전 전승과 해석학적 적용이 모두 경전적 위치를 부여받는다. 바로 해석이 전승자체의 내용에 묶이지 않는다. 바울은 한번도 “성서는 사실이다!” 라든가 “성서는 믿어야 된다.”라고 전승자체에 권위를 주장하지 않는다. 바울은 자유롭게 구약의 내용을 인용하고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때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서의 내용을 고치기까지 한다. (예를 들면 로마서 10장에서 믿음을 강조하여 30장 14절을 인용할때 실천에 대한 말이 있는 14절의 하반절을 생략해 버린다.)
    그러므로 베커는 단언하기를 “바울의 독창성은 그의 교리적 신학이 아니라 해석학이다.”고 한다. 그는 체계적인 조직신학자나 전통의 주창자가 아니라 바로 전통의 해석자임을 강조한다. 복음서가 예수를 유대의 전통을 혁파하고 죽음과 부활을 주인으로 그리는 장르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면, 바울은 안디옥교회에서 받은 교회의 전승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복음안에서 해석한다. 고린도전서 15장 1-11절에 나와 있듯이 바울이 전해 받은 전승은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죽고 부활했다는 것이다. 베커는 바울이 전해받은 복음으로는 그의 독특한 율법의 마침이자 완성인 그리스도에 대한 설명이나 율법의 완성을 통한 새로운 형태의 복음이 탄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그리스도의 부활이 곧 우리의 부활을 말한다는 바울의 선언은 단순히 초대교회의 전승에서 끌어내기에는 부족한 것이라 본다. 그렇다면 바울은 무엇을 통해 그의 복음의 정수를 만들어내었을까? 여기에 답이 바로 바울의 묵시문학적 사상이다.

바울의 묵시사상적 신학


    이전의 웹진에서 유대의 묵시문학에 대한 설명을 했었다. 묵시문학이란 특정한 시대에 유대인들 사이에 유행했던 하나의 문학들이고 묵시사상이란 그 묵시문학들이 공유했던 하나의 생각의 틀을 말한다. 베커는 필립 빌하우어와 클라우스 코흐가 말한 묵시사상의 기본적 구성요소들을 다음과 같이 개괄한다.





    베커는 이 두개의 연구를 바탕으로 묵시사상의 큰 세가지 특징을 말하는데, 먼저 역사적 이원론이 등장한다. 역사적 이원론이란 인간의 역사를 이끌어가는 것은 두 힘의 갈등이라고 생각함을 말한다. 그러나 이는 조로아스터교의 이원론과는 다른데, 이원론이란 신의 세계 또한 선신과 악신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유대교의 역사적 이원론은 하나님만이 유일신이니 세계의 악을 허락한 것은 바로 하나님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이는 이후에 지리한 신정론의 원인이 된다.) 두번째 특징은 보편적이며 우주적 기대가 있다는 것인데, 이는 어떠한 변화가 전지구적으로 나타남을 뜻한다. 한 개인의 변화나 집단의 변화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임하는 변화는 온 지구를 뒤흔든다. 세번째는 종말이 곧 임한다는 생각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생각이 현재의 시한부 종말론처럼 그저 마지막을 목빠지게 기다리는 사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이 없던 시대에 희망을 말하기 위해 필요한 하나의 생각의 틀로써 존재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유대의 묵시문학들은 종말의 시대를 기다리는 신앙의 자세를 강조하고 어떻게 하나님에 반대하는 시대의 사상에 맞설것인지를 말한다. 바로 삶에 정말 필요한 메시지를 담는 틀로써 존재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묵시사상은 묵시문학을 넘어서 당대의 여러 유대교 갱신운동의 사상적 틀이 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베커는 라비닉 유대주의(바리새주의)는 묵시사상적틀을 바탕으로 토라(율법- 원래의 뜻은 ‘가르침’)를 새롭게 해석함으로 하나님의 계약의 갱신을 강조하였고, 젤롯당, 시카리당, 쿰란 공동체등이 동시대에 묵시사상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종교적 정치적 깨달음을 설파하였다. 마치 하나의 거대한 유행처럼 존재했던 묵시사상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기점으로 순화되기 시작하였는데, 그 이후로 유대의 문헌에서 묵시사상을 암시하는 구절들이 점점 사라져 가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공통시대 이후 70년 예루살렘 멸망과 132년 바 코흐바의 혁명이후) 하지만 우리는 바울이 살았던 시대는 이 묵시사상이 최고조로 유행했던 70년 예루살렘 멸망이전이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특히나 바리새인이었던 바울은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신앙의 전통과 유행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음을 기억하자.
    바울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전에 그렇다면 구약의 일부분과 신약의 대부분의 저술들의 틀이 되었던 묵시사상이 왜 지금은 다 사라져 버렸는지 먼저 이야기해보자. 베커는 크게 네 가지 현상에 의해 현대 기독교에서 묵시사상이 무시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신정통주의가 묵시사상적 종말론을 기독론으로 내파시켰다고 생각했다. 신정통주의는 '예수는 마지막 시대에 어떤 역할을 하는가?' 라는 질문을 '예수는 우리에게 어떤 분인가?'라는 질문으로 바꾸었다. 둘째로 근대주의적 역사비평학은 결국 성서를 신화적 저술로 봄으로 묵시사상의 정신이 그저 신화적 저술로 평가절하되었다. 셋째로 결정적으로 불트만이 역사적 묵시를 인간학적 이해로 바꾸고 보편적 역사관을 한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정신적 현상으로 해석했다. 네번째로 신약학자 다드(C. H. Dodd)로 대표되는 학자들이 신약성서의 저술들이 임박한 종말론에서 지연된 종말론으로 더 나아가 실현된 종말론 (“지금 너희안에 하나님 나라가 있다.”라는 식)으로 변화되고 있음을 말함으로 신약성서 안에서 종말론을 무너뜨렸다. 하지만 다드의 해석은 바울에 관해서는 옳지 않는데, 바울의 서신들이 불과 5-6년안에 쓰였음에도 바울이 자신의 종말론을 그의 생각대로 변화시켰다고 보기에 적절지 않다. 결국 마지막 날이 오지 않았으므로 그랬었는지, 아니면 역사적 필요에 의해 그랬었는지 근대이후의 신학에서 묵시사상이 사라져왔음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다시 바울로 돌아가보자. 위의 몇가지 이유를 들더라도 바울에게 묵시사상이 중심이었다는 생각은 학자들 사이에 큰 영향력을 가지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가장 큰 이유는 바울 자신이 유대묵시문학이 자주 썼던 표현들을 쓰고 있지 않다. 예를 들면 묵시적 시간표나 천상의 나라에 대한 설명, 심판에 대한 표현이 명확하지 않고 다가올 시대와 현재의 시대가 대립하고 있지도 않다. 게다가 바울은 자신을 다가올 심판의 날을 기다리며 현재의 고난을 견디는 삶을 사는 것으로 표현하지도 않았다. 이전 웹진 글에도 말했지만 바울이 표현한 현재의 고난은 일반적으로 주어지는 시대의 고난이 아니다. 자신의 사명을 이루기 위한 열망과 목표에 다다르지 못할 때의 어려움이라고 보아야 한다. 결론을 말하면 바울은 자신의 시대에서도 여전히 팽배한 희망과 소망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바울의 낙관적 모습이 유대 묵시문학의 그것과는 매우 차이가 난다. 베커는 이러한 바울서신의 성격을 묵시문학과는 다른 어떤 것이라 보지 않는다. 오히려 바울이 묵시문학의 틀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 사건을 창조적으로 해석했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바울이 율법에 대해서 왔다갔다 (갈라디아서에서는 율법을 맹렬히 비판하다가 로마서에서는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자 완성이라는 말로 율법을 대변하는 것을 말함)하는 것은 바울의 중심이 율법과 복음이 아니라 묵시사상의 틀에서 그리스도 사건을 해석하는 바울의 입장에서 이해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바울이 새롭게 갱신한 묵시사상은 어떤 것일까?
    바울이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역사를 이해하는 틀인 묵시사상을 새롭게 변화시킨 가장 큰 계기는 바로 예수의 부활이었다. 예수의 부활은 마지막 날 재림의 승리를 약속하는 것이고 바울에게는 예수의 부활과 죽은자의 부활이 겹쳐지는 시대는 없다. 이것이 바울 신학이 묵시문학의 틀을 가지고 있는 이유라고 베커는 보았다. 언뜻보면 당연한 이야기아냐? 라고 말할지 모르겠으나 바울서신의 해석사와 서신들을 살펴보면 왜 베커식의 틀과 꼴의 해석학이 필요한지 느낄 수 있다. 일단 먼저 서신들을 살펴보고 다음 바울의 해석사와 근대 신학의 흐름을 살펴보자. 갈라디아서를 보면 묵시적 암시도, 죽은자의 부활에 대한 이야기도 거의 없음을 알 수 있다. 갈라디아서에서 신자는 율법아래 살 것인가 그리스도안에 살것인가를 현실의 삶에서 양자택일해야한다. 중심은 율법을 벗는 것이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하는 것이며 이는 그리스도안의 삶으로 직결된다. (갈 1:19-21; 3:1, 13- 14; 4:5; 6:14) 이른바 슈바이쳐가 말했던 그리스도에 합일되는 신비적인 삶이 중점적으로 등장한다. 이를 끝까지 밀어붙이면 완전한 승리를 위해 신자는 다시올 새시대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이미 종말은 실현되었다는,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는 실현된 종말론이 갈라디아서를 감싸고 돈다. 갈라디아서의 실현된 종말론은 고린도전서나 로마서를 두고 보아도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베커는 이것이 바로 바울의 신학이 맥락적임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즉, 바울은 유대주의자들을 반대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은혜에 대한 논리를 끝까지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의 서신의 표면적 성격이나 신학으로 바울을 제단하는 것은 금물이다. 바울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그리스도 사건을 새롭게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마서로 가보자. 로마서에서 수많은 신학자들이 골몰한 문제는 과연 로마서 9장-11장에 나오는 유대인이 비록 현재는 하나님의 역사속에 부족한 모습이나 결국에는 회복될 것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희망인가? 유대인들을 위로하기 위한 말장난인가? 아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은 결국에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 임박한 종말에 승리를 얻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주권적 의를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정의의 서국이며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된 교회는 그것의 완전한 실현을 기다리는 종말론적 공동체로서 나타난다. (롬 5:8) (150) 갈라디아서와 로마서를 비교해보면 율법관, 종말론적 시각이 파이하게 다른데, 바로 이것이 바울의 해석이 어떤 하나의 신학적 서술에 달린 것이 아니라 상황과 그 상황에 대한 그리스도 사건의 의미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바울 해석의 틀이 되는 묵시사상은 고린도전서에서 명확하게 나타난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부활은 확실하나 그것은 현재에 일어나는 사건이 아님을 분명하게 한다. 여기에서 바울의 대적자는 육체와 영혼을 분리해서 이해하는 그래서 육체의 삶은 지옥이라도 영적으로 구원의 삶을 사록 있다고 생각한 당시의 이원론적 영지주의가 될 것이다. 이러한 영지주의적 실현된 종말론에 대한 반대로 바울은 몸의 온전한 부활과 그리스도의 온전한 승리가 미래의 사건임을 말하고 있다. 결국 갈라디아서와 고린도전서는 각각 다른 종말론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수 있다. 왜 바울은 헬라적 세계관과도 아주 잘 조응하며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삶과 성례전이 이토록 잘 조화되는데, 이러한 헬라적 사상을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왜 예수의 죽음에 율법은 완성되고 모든 것이 예수의 죽음과 함께 사라졌음에도 아직도 해방의 날은 오지 않았으며 그의 죽음은 단지 승리의 날을 상징하는 것이 지나지 않을 거라는 비약의 가능성을 남기면서 까지 부활의 때는 현재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 만약에 바울이 묵시사상이 그의 신학의 핵심적 틀로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위의 모든 질문들이 해결된다. 그러므로 바울의 핵심틀이 바로 그리스도 사건과 묵시사상이라고 베커는 주장한다.

묵시사상의 핵심 - 역사의 주인공은 하나님


    근대 성서신학의 주인공은 예수다. 구약신학과 신약신학등을 통틀어 연구의 목적과 의미는 예수로 시작하여 예수로 끝나왔다. 베커는 적어도 바울에게 역사를 이끌어가고 인간의 구원을 만들어가는 주인공은 예수가 아니다. 하나님이다. 신정통주의 신학이 예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예수를 마치 하나님의 살아있는 현신으로 강조하였다. 그에 대한 결과로 나온것이 실현된 종말론적 사상이다. 마치 나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한순간에 바뀌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가 된듯한 생각은 교회를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또는 지나치게 염세적으로 만들었다. 이에 대해 베커는 바울의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놓는 신비주의나 신적합일이 아니라 예수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승리를 믿는 믿음이라 보았다.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이 확실히 질 것 같은 신앙인의 싸움은 오로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최후승리를 느낄 뿐이다. 그것은 예수를 통해 나타난 즉흥적인 하나님의 승리의 역사이고 믿음이란 시시때때로 변하는 하나님의 사역을 볼 수 있는 힘이다. 베커에겐 바로 묵시적 시각이야말로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는 시각이며 틀이며 이를 명확하게 보여준 우리의 선배가 바로 바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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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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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수현
    2015.11.04 02:4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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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쓴 한수현입니다. 각주정리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보낸 원고가 각주가 안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본 글은 한국에 장상교수의 번역으로 출간되어 있는 [사도바울]이라는 베커의 저서의 페이지를 기본으로 하였음을 밝힙니다.

[바울신학가이드6]

바울신학과 탈식민주의I

한수현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박사 과정)

  

   왜 탈식민주의(포스트콜로니얼리즘)인가? 그것도 바울에 대해 말하는 와중에 뜬금없이 탈식민주의라는 생경한 이야기를 꺼내들어야 할까? 오늘의 웹진에서 필자는 바울을 말하기 위해서, 또는 성서를 현실사회에서 의미있는 말씀으로 끌어오기 위해서 탈식민주의적 관점이 필요함을 역설해 볼 것이다. 탈식민주의가 아니라 탈식민주의적 관점이라고 말한 것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 그리고 웹진의 전체를 걸쳐 필자가 말하고 있는 것이 어떻게 성서를 현실의 삶 안에서 구체적 메세지로 읽어낼 것인가, 즉 바울신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다시 또한 기억해 주길 바란다.
   해체주의라는 표현을 기억할 것이다. 영어로 Deconstructuralism이라고 번역하는데, 언뜻 해체주의라는 표현이 와닿는 표현이긴 하지만 데리다가 말했던 단어의 의미와는 조금 거리가 느껴지기도 한다. 왜냐하면 데리다가 말했던 것은 해체중심의 어떤 것이 아니라 구축주의(Constructuralism)를 벗어나자는 의지가 더 강했던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필자의 은사님이셨던 이경재의 독법을 따라 해체주의를 ‘탈구축주의’로 이해한다. 왜 ‘탈’이라는 표현에 대해 고민할까?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이라는 표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어떻게 해석할까? 포스트라는 표현이 ‘이후’라는 뜻이 있으니 ‘근대이후주의’라고 번역하면 알맞을 것 같다. 근대이후주의라고 한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것은 근대시대이후에 나타난 모든 ~주의를 망라한 것이라는 표현이 된다. 그러나 리오타르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신조어를 만들 때의 의미가 이러한 것이었을까?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표현 안에 이미 모더니즘에 반하는 또는 모더니즘을 극복하려는 어떤 것이 있다는 표현이 아닐까? 만약 그렇게 이해한다면 ‘탈근대주의’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이러한 ‘포스트’에 대한 해석의 다의성은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이라는 표현에 오면 더욱 심각해진다. 왜 ‘식민이후주의’라고 해석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식민주의가 끝이 났는가? 일본의 식민통치가 종언을 고했고, 이제 우리는 해방을 맞이했으니 식민주의의 시대는 끝이 났는가? 아니면 우리는 아직도 온갖 종류의 식민주의의 잔재들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가? 아니 전세계가 근대주의를 뒤덮었던 식민주의의 그늘아래 있지 않은가? 아니 구세대의 식민주의는 군사력과 땅의 정복을 필두로 하였다면 현대의 식민주의는 금융, 산업, 그리고 정보의 힘을 앞세우고 있지 않은가? 만약에 이러한 끝나지 않은 식민주의의 그늘아래서 현실을 바라보고 이에 대한 메세지를 고민하고 있다면 필자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탈식민주의’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 여기서 ‘탈’이라는 표현은 1960년대 이후, 유럽의 식민주의가 각지의 독립운동에 의해 종언을 고했다는 시각에 대한, 또는 식민이후주의라는 번역에 대한 저항이며 여전히 남아있는 식민시대의 효과적인 대안담론을 모색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언제나 식민주의라는 통치체제의 위에는 제국주의라는 정치이념이 자리잡고 있다. 제국주의와 식민통치의 가장 고전적이고 효과적인 예를 든다면 알렉산더가 이루었던 마케도니아 제국을 들 수 있다. 알렉산더 대왕은(Alexander the Great) 타국이나 타지역의 부족들을 약탈하는 대신에 그리스문명을 소개하고 언어와 문화를 통일하여 그리스문명의 가치에 찬성하는 나라와 부족들을 흡수함으로 효과적으로 또한 짧은 시간 안에 엄청난 팽창을 이루었다. 이를 전격적으로 받아들인 곳이 바로 로마였고 이후 로마가 시저(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공화정 중심의 국가에서 황제중심의 제국으로 나아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제국주의의 역사를 거꾸로 읽어본다면 제국주의는 민중의 자유를 위한 투쟁이 일어났을 때 이에 대한 지배계급의 방어기제로 형성된 정치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각주:1] 과연 대표적으로는 마케도니아, 좀 더 과거로 가면 앗시리아와 바빌론제국, 로마 이후에는 대영제국 등으로 이어온 제국주의의 시대는 끝이났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현재의 시대를 Post-imperialism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로버트 영은 그런 의미에서 제국의 시대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의미하며 식민주의 시대로부터 시작된 압제에 대한 저항의 시대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각주:2] 하지만 제국은 변했으며 세계 또한 급격하게 변화하였다. 저항의 담론은 현실에 대한 바른 통찰이 없으면 공허함에 그치게 된다. 탈식민주의는 변화된 제국과 식민의 시대에서 구체적 저항의 방법과 실천을 모색한다.

   탈식민주의, 바울과 다리놓기

   이와같이 식민주의와 탈식민주의에 대해 살펴보다 보면 이들이 성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알게 된다. 먼저 이스라엘 신앙의 뿌리 자체가 이집트 종살이의 해방의 경험에서 시작되었다. 해방의 경험은 곧 야웨신앙의 중심이 되었고, ‘우르’라는 고대의 도시제국에을 떠나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아브라함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였다. 많은 학자들이 구약성서의 근간에 오경의 편집연대가 바빌론 포로기라는 것은 바빌론 제국의 종교와 문화적 식민으로서 신앙을 지키기 위한 저항이 바로 구약과 유대교 생성의 근원이라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구약은 바빌론이라는 제국하에서 신약은 로마제국 아래에서 편집되고 기록되었다는 사실은 성서, 또는 기독교의 근본 뿌리가 바로 제국에 대한 저항임을 말하는 것이다. 제국의 시대가 끝나지 않았다면 성서의 저항은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국교화하며 저항의 담론을 뒤집어 지배의 담론으로 만들었고 이는 이른바 제국이라 일컬어지는 대영제국으로 이어져 왔다. 그러므로 ‘식민주의’와 ‘제국주의’라는 코드는 성서를 읽는 여러 관점 중 하나라기보다는 수천년전의 성서와 현대의 우리의 해석을 역사적, 정치적으로 연결시켜주는 ‘마스터 코드’(Master Code)가 된다. 이 이야기가 새롭게 들리는가? 독재하에 한국을 뒤흔들었던 민중신학이 이야기한 민중의 시각에서 성서읽기가 바로 이것 아니었던가? 예수와 로마제국이라는 표현이 바로 이러한 시각이 아닌가? 여성신학, 해방신학, 흑인신학이 지칭하는 ‘압제자’에 대한 비판과 ‘억눌린자’에 대한 이야기가, 아시아신학이 말하듯 서구로부터 이식된 서구적 신학의 카테고리로부터 자체의 문화적 코드로 신앙을 읽어내려 했던 ‘토착화 신학’이 하던 이야기가 아니던가? 결국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서구의 인문학계는 ‘탈식민주의’라는 이름으로 아시아가, 여성이, 그리고 민중이 외치던 방법으로 텍스트를 읽기 시작하였는데, 그 이론적 틀을 ‘탈식민주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성서학’ (Biblical Studies)이라는 학문은 근대의 산물이다. 하나의 거대한 교회, 카톨릭시즘이 지배하던 중세의 교황권이 신학과 성서의 표준이 되던 시대가 종교개혁의 물결에 와해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성서를 읽고 이해하는 기준을 다시 찾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와중에 등장한 것이 바로 ‘해석학’이라는 학문인데, 과연 “어떻게 성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학문으로 시작된 해석학은 근대적 주체로서의 인간관과 함께, 성서의 해석의 단초를 인간에게 놓게 된다. 물론 교권의 권위와 교리주의의 힘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성서해석은 이성의 토대 위에서 이해될 수 있는, 또는 이해되어야만 하는 것으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에 넓은 의미에서 ‘역사비평학’(Historical Criticism)의 시대가 시작되었는데, 이를 쉽게 말하면 바로 성서와 동시대의 다리를 놓는 작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성서가 쓰여질 당시의 상황이나 문화, 언어에 대한 깊은 연구를 바탕으로 성서 텍스트에 접근하여 그 메세지(Message)를 이해함을 통하여 현대에 성서가 말해질 수 있는 의미를 탐구하는 것이 ‘역사비평학’의 목적이라 할 것이다. 쉴라이에르마허에 따르면 이러한 비평적 읽기는 두가지 지평의 가능성으로서 가능해지는데, 하나는 인간의 정신적(Psycological) 지평과 문법적, 또는 언어적(Grammatical) 지평에 의해서이다. 즉, 인간은 텍스트를 통하여 시대와 시간을 뛰어넘어 정신적인 공감대를 저자와 형성하고 언어적 읽기 (문법적, 문학적)를 통하여 텍스트를 이해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믿음은 신비평(New Criticism)- 역사적, 사회적 배경 이해를 전적으로 배재하고 텍스트 자체가 함의하는 뜻을 읽어보려는 다양한 시도-에 와서 와해되기도 하고, 그 이후 새롭게 재구성되기도 하면서 발전 또는 지양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가 성서학에는 남아있다. 적어도 ‘어떻게’ 성서를 읽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답변이 있을 수 있겠지만, ‘왜’ 읽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말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이다. 쉬운 듯하면서 힘든 이 질문. ‘왜’ 성서를 읽어야 할까? ‘왜’ 성서에서 무엇인가를 찾아야만 할까? 성서에 나오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이른바 ‘진리’라는 것을 담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소위 넓은 의미에서 ‘축자영감설,’ 즉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므로 신자는 그 안에서 삶의 표준과 진리를 발견해야 한다라고 현대인들에게 주장할 수 없다고 한다면, 어떻게 성서가 도스토에프스키의 ‘죄와벌’ 또는 현대의 인간의 삶의 군상과 현실을 반영하고 또한 승화시킨 아름다운 예술작품들보다 더 심오한 삶의 진리를, 의미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보통 진보진영에서 이에 대한 질문으로 흔히들 성서는 이미 성스러운 텍스트(Sacred text)로써 때로는 해방의 단초로서, 반대로 억압의 증거로서 사용되기 때문에 성서비평학의 책임은 무한하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필자는 그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서를 현대에서 강력한 진리의 계시로써 읽을 수 있을까?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천년의 시간을 뛰어넘을 수 있으려면 종교적 믿음과는 다른, 시간의 넓디 넓은 틈을 연결시킬 수 있는 주제(Theme)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민중신학이 민중의 역사를 구약의 출애굽에서 찾아서 읽은 것처럼, 갈레아의 예수를 현시대의 민중 안에서 재발견한 것처럼 역사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강한 고리가 성서학에 중요한 주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민중의 관점, 여성의 관점, 흑인의 관점, 노예의 관점, 아시아인의 관점이 성서를 읽을 수 있는 새로운 주제로 근대와 그 이후의 시대에 새롭게 대두되었고 그들을 통해 성서가 새롭게 읽혀지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세상은 짧은 시간에 참으로 많이 변해버렸다. 지배와 압제는 스스로를 은폐하고 변화시켜 과연 누가 지배자이고 누가 압제자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만들어버렸다. 전태일 열사를 장렬한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처참한 환경의 방직공장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쉽게 알 수 없는 저개발국의 어느 곳으로 숨어버렸고, 우리는 값싸고 질좋은 옷을 발견했을 때 횡재한 듯 기뻐하며, 그 옷에 누구의 피가, 아픔이, 그리고 죽음이 숨어있는지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삼성공화국을 욕하면서도 삼성의 신형 핸드폰을 조금이라도 값싸게 사기 위해 밤을 세워 인터넷을 누빈다. 현재에도 우리는 과거에 미국의 누군가에게 당했던 어떤 짓을 필리핀이나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행하고 있다. 언뜻 보면 나뉘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종교, 정치, 경제들이 거대한 하나의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개인들을 수많은 연결고리들 안에 밀어넣고 있으며 우리는 수많은 다른 이름들과 관계들로 규정되고 파편화되고 있다. 결국 세계는 너무나 복잡하여 하나의 관점으로만 해석되기 힘들게 되어버렸다. 그러한 세계에서 아직 식민주의는 끝나지 않았다는 탈식민주의의 사자후는 꽤나 설득력있다. 복잡한 세계를 단순하게 보기보다는 복잡한 관계속에서 간명한 구조를 가지고 세계를 보기 위한 탈식민주의 이론은 더욱 다양해지고 복합해져왔으며, 결국 탈식민주의는 지역적인 담론이기보다는 전지구적 담론의 성격을 띄게 되었다. 그리하여 탈식민주의는 끊임없이 초국가적 사회정의를 지향하면서도 지나치게 이상화된 정의를 지양하는 학문으로 발전되게 되었다.[각주:3] 지금의 세상이 복잡하다면 성서의 시대는 단순했을까? 그 복잡성의 정도를 따진다면 현대를 따라가기 힘들겠지만 성서의 세계 또한 만만하게 볼 상대는 아니다. 예수가 논쟁을 벌이던 바리새인이 누구이던가? 로마제국의 앞잡이였던가? 아니 오히려 종교적 담론을 통해 소박하게나마 혁명을 꿈꾸던 세력이 아니었던가?(톰 라이트에 대한 웹진 참조) 예수의 제자들은 가장 낮은 민중의 정체성을 나누었다고들 하지만 복음서의 여러 여성들이나 군중들에게 군림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가? 훗날 예수의 우편과 좌편을 차지하려고 싸움을 하지 않았던가? 사두개인들은 친일파와 같은 기회주의자들었던가? 아님 유대종교라도 로마로부터 지키려 했던 현실주의자였던가? 과연 그러한 상황에 예수는 어떤 형식의 복음을 말했던가? 그것이 ‘복음’이 되었다면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도 분명 뜻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 이러한 여러가지 질문에 답하려 하는 것이 탈식민주의와 신약성서, 또는 바울신학이라 할 것이다.

   오리엔탈리즘 또는 유대주의라는 허상

   이전의 웹진의 원고들이 이른바 NPP(New Perspectives on Paul), 바울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중심으로 쓰여져왔고, 톰 라이트 또한 이와 먼거리에 있는 학자는 아님을 설명하였다. 필자는 이 새로운 관점들과 탈식민주의 관점이 그 줄기를 함께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자 한다. 새관점주의의 시작으로 일컬어지는 E. P. 샌더스가 말하고자 했던 근대초기의 유대주의에 대한 연구가 유대인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반유대주의(Anti-Semitism)와 기독교적 입장에서 쓰여졌다는 것을 기억해보자. 결국 샌더스는 유대주의에 대한 이러한 여러가지 오해들이 유대주의를 기독교 경전의 뿌리이면서도 기독교교리와는 완전히 다른 종교로 만들었음을 밝혔다. 물론 중요한 논쟁은 ‘이신칭의’나 ‘언약적 율법주의’등에서 불붙었지만, 샌더스의 업적중의 하나는 완전히 객관적인 학문으로 보였던 성서학이 어떻게 지배자의 논리를 정당화 시키고 보호하는지를 밝힌것에 있다. 샌더스의 책이 나온 1970년대말은 시오니즘으로 무장한 일련의 유대인들이 이미 이스라엘이라는 독립국을 손에 넣었고, 자본의 힘을 등에 엎은 유대인들과 우수한 유대계 학자들이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던 시대이므로, 이러한 샌더스의 업적인 나올 정치, 경제적 배경이 무르익었던 때였던것으로 보인다.[각주:4] 이른바 허상으로 만들어진 유대교에서 벗어서 (샌더스에 따르면) 바울을 바라보는 것이 새관점주의라는 엄청난 여파를 낳았다면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또는 지배자의 논리를 가지고 있기때문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허상들은 없을까? 그것을 벗으려할때 가지게 되는 또다른 바울에 대한 새로운 관점들은 없을까? 바로 이러한 통찰이 바울에 대한 새관점과 함께 탈식민주의를 통하여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진리에 대한 탐구의 가능성이라 할 것이다. 우리는 제임슨 던과 톰 라이트의 글들에서 그들이 자신들의 시대에서 바울의 복음이 어떤 의미로 나타날 수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제임스 던에게는 민족우월주의를 넘어서려는 바울의 노력을, 톰 라이트에게서는 제국의 시대에서 새로운 신앙 공동체의 도래에 대한 바울의 목회적 노력이 핵심이었다고 한다면 바야흐로 탈식민주의에서는 제국과 자본주의, 신식민주의 아래서의 신앙공동체에 대한 바울의 메시지가 주안점이 될 것이다. 먼저 탈식민주의는 에드워드 사이드, 가야트리 스피박, 호미 바바라는 탁월한 이론가를 만나게 되면서 샌더스로부터 시작된 지배층의 논리에 대한 더욱 깊은 연구와 이른바 재현(representation)이라는 중요한 주제를 재발견하게 되는데 이를 간단히 살펴보면서 바울과의 관계를 고찰해보자. 
   1970년대가 저물어갈 무렵, 팔레스타인 출신의 사이드라는 학자가 출판한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라는 책이 인문학계를 뒤흔들게 된다. 사이드는 미쉘 푸코의 담론(discourse)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근대까지의 ‘오리엔트’(Orient)에 대한 서구의 연구가 객관적 연구의 결과라기보다는 서구의 중동과 아시아에 대한 일종의 허상에 지나지 않음을 역설했다. 푸코는 그의 유명한 담론에 대한 연구에서 당시까지 일종의 사적 또는 공적인 말하기나 여러 종류의 텍스트를 뜻하던 담론(discourse)라는 표현을 지식(Knowledge)이라는 영역으로 사용한다. 이른바 우리가 당연한 것이라고 알고 있는 ‘지식’이 유통되는 담론이라는 장은 자유롭게 지식들이 생산, 유통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곧 어떠한 것이 지식으로 인정되고 인정되지 않는지 결정한다. 근대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교육기관의 등장은 세계 각지에 흩어져있던 인간이 발전시켜 온 기술과 학문들을 대학이라는 기관이 모으고, 분과학문별로 나누어 독립시키면서 근대적 스콜라쉽(Scholarship)을 발전시키기에 이른다. 언뜻 보면 지식과 학문이 전근대적인 종교와 왕권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립적 개체로 성장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 이면을 보면 근대의 다양한 힘과 권력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거대한 하나의 지식산업을 형성하여 힘의 논리에 종속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의학’(Medicine)을 들 수 있다. 보통 우리는 의학이 하나의 순수한 지식이고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전문분야라고 생각을 하지만 푸코식으로 보면 의학이라는 것은 치료(Healing)라는 것이 무엇이고, 질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관장한다. 더 나아가 우리가 세계와 어떻게 관련맺어야 할지를 규정한다. 무엇을 먹어야 하고, 무엇을 피해야 하며, 어떻게 먹고 생활할지를 조정한다. 놀라운 것이 이러한 엄청난 힘이 규제와 억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설득의 방법을 토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한의학이 대학을 통해 전파되고, 하나의 정치적 힘을 가진 단체로 성장하기 전에는 의학은 한의학을 하나의 미신으로 규정하고 의학의 분야에서 밀어냈었다. 수천년의 역사와 철학을 내포한 인간에 대한 이해를 담지한 학문이 단순한 미신과 질낮은 기술로 치부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단계가 순전히 자연스럽게 근대의 시대에 이루어졌다. 사이드는 이러한 담론이론을 가지고 와서 중동과 아시아에 대한 서구인의 지식이라는 것이 오리엔탈리즘이라는 허상에서 이루어져왔음을 고발하고, 오리엔탈리즘을 통해 서구인들은 오리엔트를 지식의 영역에서 지배하고 자신들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반명제로서 사용해 왔음을 보았다.
   푸코의 이론을 이용한 사이드의 중동과 아시아를 향한 지식담론에 대한 비판은 거의 최초로 서구의 학문이 피지배 국가와 문화에 대한 연구에 대해 스스로 반성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었으며 일견 서구사회에서 주변담론으로 치부되던 중동과 동아시아에 대한 학문들이 다시금 탈구축되는 전기를 마련하였다. 이것이 신약성서학에 끼친 영향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는데, 첫째, 서구성서학이 자신들의 논리와 성서에 대한 해석이 어떻게 피식민지인들의 신앙과 문화에 영향을 끼쳤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둘째, 제국의 그늘아래에 피식민인으로 살아가던 유대인들이 남긴 성서의 전통이 제국과 식민주의의 영향을 감안하여 읽혀져야 한다는 인식을 낳았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웹진에서 설명할 호미 바바(Homi Bhabha)의 이론이 중요한데, 기독교문화를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보는 시각에서 유대문화와 제국의 문화 사이에서(in-betweeness) 생성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셋째,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제국주의와 제국주의 문화에서 성서가 어떻게 응답하는지, 복음은 그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지를 읽는 시도가 더욱 힘차게 개진되었다. 넷째, 근대의 제국주의가 낳은 산물인 인종차별, 여성차별, 계급차별에 대해 열린 눈으로 성서를 다시금 들여다보는 시도가 행해지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웹진에서 다룰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J. C Young, Post-colonialism: An Introduction (Oxford: Blackwell Publishers, 1999), 28. [본문으로]
  2. Ibid., 27. [본문으로]
  3. Ibid., 58. [본문으로]
  4. 유대인이라고 묶어서 부를 수 없음을 유의하자. 시오니즘을 주창하는 유대인들이 있는 반면 그에 대해 엄청난 비난을 퍼붓는 유대인들도 있다. 한국인이 그렇듯이 유대인들또한 무한한 다의성 -Multiplicity-을 가지고 있음을 유의하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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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신학가이드5]

포스트 모던의 바울신학

- 톰 라이트 (N. T. Wright) 를 논하다

한수현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박사 과정)

  

1. 들어가며[각주:1]

    이천년대의 바울신학의 전체영역에서 가장 ‘핫’한 학자를 꼽으라고 한다면, 톰 라이트 (N. T. Wright) 를 꼽을 수 있지 않을까? 필자는 진보진영에 속한다고 하지만, 바울에 관한 수업을 들으면 꼭 라이트의 책을 한 권씩은 필수도서로 읽어야 했고, 복음주의 진영에서는 상당히 환영받는 학자중에 들어있고, 보수진영에서도 비판이건 공격이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자주 읽힌다는 것이니 라이트만큼 골고루 읽히는 바울신학자를 찾는 것도 힘들 것이다. 게다가 라이트의 책은 대부분 한국에 번역되어 있고 그 독자들이 대부분 한국 기존교회 교인들과 신학생들이라는 것은 라이트의 영향력이 얼마만큼 큰지 보여주는 현상이라 할 것이다. 라이트는 성공회(영국 국교회)의 감독, 또는 주교로써 성공회의 캔터배리 대주교도 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졌으나 2010년에 은퇴하였다. 성공회에서는 인정하는 동성결혼과 동성애 자체에 반대하는 보수적 기질과 일목요연하게 예수의 역사적 부활과 재림에 대해 주장하지만, 칭의론 등의 관점에서는 보수교회나 복음주의 진영에 공격을 받기도 하는 현대 신학의 논쟁점에 있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처음에 필자가 바울 신학자라고 소개하긴 하였지만, 엄밀히 보면 신약신학자로서 복음서와 신약성서 전체에 걸쳐 저술 작업을 하고 있으며, 보통의 독자들도 읽을 수 있는 저작들을 활발히 출판하고, 구약과 유대문헌에도 상당한 조예를 가지고 있으면서 교회론이나 해석학 등 신학전반의 작업에도 출판을 하는 그야말로 간학문적 (inter-disciplinary) 신학자라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톰 라이트에 대해 논함에 있어서 그 영역을 바울신학으로 좁힌다고 하더라도 필자에게 상당한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의 전문적인 바울신학 저작들은 그 내용이 바울서신에 대한 문헌학적 연구에 치우쳐서 그의 사상의 큰 그림을 보는 것이 어렵고, 그의 사상의 전반을 볼 수 있는 3권까지 출간된 ‘기독교의 기원과 하나님에 대한 질문’ 시리즈나 그 일천칠백 페이지에 달하는 4권인 ‘Paul and the Faithfulness of God’ (2013년 11월에 출간됨)을 살펴보는 것은 독해에 대한 부담은 차지하고서라도 나름 대가의 압박에 깔려 숨조차 쉬지 못할까 걱정되기도 한다.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목차를 살펴본 바, 톰 라이트는 기본적으로 이제까지 출간된 바울에 대한 저작에서 말한 중요 내용들을 세심한 문헌적 연구를 통해서 강화할 것은 강화하고 첨가할 것은 첨가하는 내용이 아닌가 감히 예상해 본다. 필자는 본 글에서는 그의 저작 중 그리 길지 않은 두개의 단행본에 집중할 것인데, ‘톰 라이트, 바울의 복음을 말하다.’ (What St. Paul really said?)와 아직 번역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Paul: In Fresh Perspective’를 중심으로 톰 라이트의 바울 해석에 대해 논하려 한다. 대부분의 라이트의 저작이 그러하듯 짧은 단행본에 라이트는 자신의 생각을 간명하고도 최대한 쉽게 서술하는데, 이에 대한 질문과 여러 논쟁에 대해서 그는 긴 장편의 책들을 통해 학문적으로 검증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것 같다. 우리는 그러한 첨예한 서술보다는 그의 바울에 대한 생각을 최대한 간명하게 접근하고 그를 통해 그의 생각의 궤적을 따라갈 것이다. 아울러 그의 신학의 한계에 대해서도 논할 것이다. 라이트에 대해서는 생존하고 있고, 발전하고 있는 학자인 바 필자의 시도에 독자들의 아량을 기대한다.

 

2. 바울신학의 전제 

    라이트의 사상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에 대해서는 본 글의 마지막 장에서 논할 것이지만, 그의 글을 충분히 음미할 가치가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지난 글에서 다루었던 제임스 던 (James Dunn)과 같이 바울신학의 효용성의 대해 물은 학자라는 것에 있다. 지난 글의 제목이 ‘바울 신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였는데, 라이트는 제임스 던보더 더 넓고 확실하게 자신이 바울을 읽는 이유를 말한다. 물론 이는 그가 신약성서 전체를 읽는 목적이기도 하다. 이른바 근대의 성서학에서 관심은 텍스트를 통하여 저자의 의식에 접근하는 것이었다. 이른바 텍스트가 말하는 진정한 뜻에 접근함으로써, 자연히 기독교의 정체성과 진정한 종교성에 접근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성서학자에게 왜 성서를 읽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는 것은 전시대에는 불필요한 것이었다. 20세기에 들어와 과학에서는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으로, 철학에서는 니체의 신죽음의 철학으로, 신학에서는 칼 바르트의 신정통주의 신학으로, 비평학에서는 신비평(New Criticism)으로 근대적 해석학과 신학에 종언을 고하게 되었다. 자연히 성서학자들은 조금씩 자신들의 연구의 정당성을 자신의 학문안에서 찾아야 하는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았을 때, 톰 라이트의 신학의 성은 그가 성공회의 주교라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그가 그의 저서에서 밝히듯이,[각주:2] 영국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는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 어찌 보면 기본적인 종교성이 강한 것이요, 달리 보면 교회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것이다. 옛부터 이신론적 하나님 (Deist God)에 익숙한 영국 신자들에 대한 라이트의 관심은 그의 신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이루고 있다. 라이트의 신학담론의 궤적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고 생각하면 너무한 억측일까? 이러한 라이트의 콘텍스트를 염두에 두고 그의 바울신학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자.
    라이트에게 바울은 네 가지의 각기 상이한 환경 속에 살던 인물이었다. 첫째로 바울은 유대인이자, 헬라적 영향을 받은 사람으로 로마제국의 정치적 영향력 아래 살면서 메시아  공동체 (the family of Messiah)의 일원이라고 스스로 믿은 자였다.[각주:3] 유대주의, 헬레니즘, 로마제국, 그리고 메시아 공동체라는 네 가지 요소들을 함께 다룸으로 인해 라이트는 바울신학을 넓고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라이트가 바울신학의 전제로 삼는 몇 개의 요소는 전통적으로 바울신학자들이 바울을 이해하기 위해 염두에 두어온 것들이지만, 보통 복음주의나 보수주의 진영의 학자들은 로마제국 등의 정치적인 요소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라이트는 바울이 의미한 메시아 공동체 (에클레시아)를 로마제국에 대한 바울의 정치적 관점에서 바라봄으로써 바울신학에 대한 균형적인 밑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밑그림 위에 메시아 공동체라는 독특한 비전을 만들 수 있었다.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자.

    1) 유대교 – 단일신론, 언약, 그리고 종말론[각주:4]
    바울이 유대인이었고 그가 유대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영향을 받았냐는 것이다. 라이트의 기본적인 입장은 샌더스가 개진했던 것과 큰 차이가 없다. 바울은 유대사상에 대해 적대적인 입장을 가진 적이 없다. 마치 예수와 같이 유대사상의 근본 의미를 찾고 다시금 갱신하려 했지, 새로운 대안을 찾으려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많고도 많은 유대의 여러 사상의 광맥안에서 라이트는 크게 세 가지 요소, 단일신론, 언약, 그리고 종말론이 바울을 이해하는 밑거름 또는 바울이 받아들인 중요 유대사상이라고 본다.

    단일신론
    단일신론은 이방세계의 압제에서 살아가는 유대인들에게는 파이팅 독트린 (Fighting doctrine)의 역할을 했다.[각주:5] 고대세계의 국가간의 전쟁과 외교는 한 마디로 신들의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우월한 신을 가진 국가가 승리하고 패배하고 사라져 가는 국가들의 신들 또한 그 국가들과 운명을 같이 한다. 히브리 백성들은 특이한 신관을 가지게 되는데, 바로 신은 오로지 하나라는 생각이다. 구약성서를 살펴보면 다른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듯한 이야기들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이미 십계명에서 ‘다른 신’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점점 하나님만이 오로지 신이며 신은 오로지 하나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생각은 국가를 잃어버리고 난 이후에도 유대인들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간직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거꾸로 이야기하면 유대의 단일신론은 그들의 정치적인 환경속에서 만들어진 교리였다. 이러한 단일신론의 영향으로 라이트는 유대사상에는 이원론을 허락할 자리가 없다고 말한다. 세계는 어떤 다른 악의 신에 의해 움직여지지 않는다. 신이 하나이고 그가 선하다면 세계도 선한 것이어야 한다.

    언약
    이후 바울신학에서 칭의론으로 거듭나는 언약사상에 대해 라이트는 샌더스의 입장을 대부분 받아들인다.[각주:6] 언약사상의 핵심은 바로 하나님의 약속은 신실하시다는 것이고 그 약속의 내용은 세계에서 악을 몰아내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이다.[각주:7] 단일신론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유대백성에게 세계는 천국과 지옥, 또는 선한 세계와 악한 세계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너진 나라와 끝없는 제국의 오고감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의 정의를 이 세계 위해 세울 것이냐는 것이다. 이에 대한 질문으로 유대백성들은 세로운 사상을 싹틔우게 되는데 이를 묵시사상 또는 종말론이라 한다.

    종말론 
    바울 서신을 이해하기 위해 묵시전통 또는 유대 종말론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새로운 것이라기보다는 20세기 후반기에는 조금 잊혀져 가던 주제였다. 종말론을 바울 신학의 중요한 주제로 삼은 것은 슈바이쳐 (Albert Schweitzer)였고 이를 새롭게 재조명한 것은 불트만의 제자인 케제만이었다. 히틀러와 나찌독일이 콘텍스트였던 케제만에게 종말론과 메시아니즘은 중요한 주제였다.[각주:8] 하지만 근대주의가 가져온 이상주의의 결말이 전체주의 국가임을 목도한 독일 신학에게 더 큰 문제는 인간의 교만을 꺽으시는 하나님의 준엄한 경고였으며 이는 바울서신에서 다음과 같이 발견된, 의인은 없으니 하나도 없으며 오직 은혜로만 받는 것이 의롭다하심이라는 바울의 이신칭의가 독일 성서신학에서 중요했던 이유는 바로 세계의 물음에 답하기 위한 노력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케제만은 바울의 신학은 모든 인간의 법치주의와 종교적 오만을 부수는 것이며 이를 “Justification of ungodly”라는 말로 표현하였다.[각주:9] 그 이후로 바울신학의 중심이 그의 이신칭의로 넘어가기는 하였지만 종말론이 바울신학의 중요 주제라는 통찰은 여전히 남아있다. 라이트는 이를 창조론과 연결시켜 바울신학의 한 축으로 삼는다. 창조는 단일신론과 함께 이방신들에게 둘러싸인 이스라엘에게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면 다른 신과 다를 것이 없는 지역적인 신이 되기 때문이다.”[각주:10] 선하신 창조의 하나님은 결국 그의 선하심을 새롭게 세우실 것인데 종말론은 메시아니즘과 연결되어 바울신학의 중요한 줄기가 되었다.

    2) 헬레니즘
    바울의 사상의 기본구조를 당시의 헬레니즘 사상에서 찾는 것은 한때 트렌드를 이루었던 흐름이고 여전히 중요하다고 하나, 라이트에게 있어서 헬레니즘 사상은 오히려 바울에게 딛고 일어서야 하는 장애물이다. 바울 메시지가 향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방주의 (paganism)와의 맞대면 (confrontation)이었고 결국 바울이 의도하는 바는 이방의 세계관을 딛고 서서 그것을 예수를 통해 갱신된 유대적인 것으로 치환하는 것이었다.[각주:11] 라이트는 바울서신을 통하여 당시의 어떤 헬라사상들이 영향을 이용하여 유대주의를 넘어섰는지에 대해서 관심도 없거니와 오히려 그 반대로 기본적인 바울의 사상의 구조는 유대의 그것이었다는 샌더스의 관점을 유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헬라사상이 중요한 이유는 특히 바울이 사도행전에서 여러 헬라의 철학자들과 논쟁을 벌이는 것과 같이 헬라 세계의 신에 대한 관점에 근본적인 비판 위에 바울 사상이 서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라이트의 생각은 그의 바울신학 해석과 현대인에게 보내는 메세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에 대해서는 마지막 장에서 논할 것이다.

    3) 로마제국
    개인적으로 라이트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그가 로마제국을 바울 신학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기반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1997년에 출간된 그의 저서에서는 크게 강조되지 않은 반면에 2006년에 출간된 ‘St. Paul: in fresh perspectives’에서는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로마제국과 제국의 이데올로기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라이트는 1세기의 상황이 정치와 철학, 그리고 종교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며, 당시의 여러 종교적 글쓰기들은 위정자들에 대한 암호화된 비판임을 강조한다.[각주:12]
    로마가 제국황제정을 그 기본정치체계로 받아들이기 전에 로마는 공화국으로서 원로원과 군대, 그리고 시민을 대표하는 호민관 등으로 권력이 분리되어 있었다. 법치주의를 표방하면서 정치의 기본 가치를 정의와 자유에 두었는데, 이는 로마의 태생이 여러 도시국가들의 연합으로 이루어졌음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법과 정의, 그리고 자유라는 가치는 로마가 그 세력을 팽창하여 여러 다른 도시들을 흡수하는 데 중요한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부여하였는데, 단순히 군사력의 힘이 아니라 더 나은 인간적인 삶을 약속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마의 팽창과 그에 따른 많은 이민족들과의 만남은 필연적으로 로마의 군사조직의 힘이 강화되는 결과를 낳았고, 모든 면에서 천재라는 말을 듣기에 아깝지 않은 카이사르 (시이저)로 인해 군사독제의 시대가 시작되었고, 결국 로마는 일인 황제 통치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그러나 원로원의 기능은 남아있었고, 황제도 법과 원로원의 결정을 존중하였으므로 제국이 된 로마는 여전히 자신의 정치적 프로파간다로써 법과 정의를 전면에 내세우게 된다.
    라이트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바울사상에 중요한 부분임을 인정하였는데, 가장 큰 이유는 아마 바울의 메세지가 이방세계, 결국 로마제국으로 재편된 세계로 보내진 것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제국의 통치를 공고히하기 위해 행하여진 각종 황제숭배 (Imperial cult)가 발달되었던 시기에 태어난 바울에게 예수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의가 이와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구약의 예언서에서 나타난 것과 같이 시온의 재건은 온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의 시대의 시작이었다면 인간의 제국을 무너뜨리고 건설된 하나님의 제국을 바울은 소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정치와 종교가 분리될 수 없는 바울의 소망은 라이트의 바울 이해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게 된다.

 

3. 바울신학 - 유대사상의 재고 (Rethinking), 메시아, 그리고 성

    라이트는 그의 바울신학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바울 신학의 이해는 그의 유대사상에 대한 재정의(redefinition) 와 재고 (rethinking) 위에서 메시아와 성령에 대한 그의 사상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각주:13] 필자는 이에 상응하기 위해, 이 챕터를 유대주의에 대한 재고와 라이트가 말하는 바울의 메시아와 성령 이해를 중심으로 말하고자 한다.
   
1) 유대사상의 재고 

    칭의론
    최근 라이트가 한국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 그의 칭의론에 대한 논쟁이다. 그러나 본 글에서 그의 칭의론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라이트에게 칭의론은 그의 바울 신학에 핵심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물론 바울의 칭의론은 그의 전체 신학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인 것이지만 칭의론이 바울신학의 핵심은 아니라는 시각은 스텐달로부터 시작하여, 샌더스 등을 통해 지적되어온 것이다. 라이트는 특별히 칭의론에 대해서 한권의 책을 저술하기도 하였는데 본 글에서는 ‘What Saint Paul really said’ 중심으로 살펴보자.
    칭의에 대해 논할 때 샌더스는 먼저 이 개념이 법정적 (forensic) 개념임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재판관이고 인간은 심판을 언도받는 이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의’ 즉, 재판관이 선하다라는 뜻은 그의 인격의 선함에 달려있다.[각주:14] 하나님은 자신의 선하심을 약속하신 언약과 세계의 창조와 심판 속에서 보여주신다. 그러나 법정에서 의롭다고 인정받는 인간은 그 스스로의 의와는 상관이 없이 그저 죄인으로 선고 받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군가가 어떤 사람을 고소했다면 그 고소에 대해 유죄냐 무죄냐를 선고받는 것은 피고인의 질적인 의와는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라이트는 칭의는 어떤 의로운 속성을 하나님으로부터 얻거나 하나님의 의의 속성에 참여한다는 뜻이 아님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의는 오로지 하나님의 것인 것이다.[각주:15] 그러므로 칭의론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은 제임스 던의 입장과 그리 다르지 않다. 라이트는 말하기를, “칭의는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 되느냐에 대한 것이 아니라 종말론적 사건 이전의 시대에 누가 하나님의 백성에 속하느냐의 문제이다.”[각주:16] 율법을 통해 구원받기를 포기하고 예수에게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에 대한 믿음만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이라는 바울의 선언은 율법이 규정하는 공동체적 삶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것이라는 유대주의를 배격한 것이 아니라 예수를 통해 수정한 것이다.

    종말론
    보통 다니엘서를 그 시작으로 보는 구약의 묵시문학은 신구약 중간 시대 (약 주전 4세기 부터 주후 1세기이전까지)에 그 꽃을 피우게 된다. 이때에 묵시문학에서 발견되는 공통되는 주제 중의 하나는 바로 인간의 제국의 시대가 끝이나는 급격한 변화의 시대가 온다는 것이고, 그 시대는 바로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는 시대이고,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시대이다. 라이트는 유대 바리새인 중 젋은 지도자에 속하던 바울은 다니엘서에 약속되었던 하나님 나라의 오심을 믿고 기다리던 유대인이라고 생각한다.[각주:17] 묵시전통에서는 이스라엘의 바로섬이 곧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뜻하므로 바울은 자신의 소명이 유대인들이 올바른 토라의 전통 아래에서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었을 것이다.[각주:18] 그것은 이방신들과 전통을 배격하고 이스라엘 하나님을 위해 순결을 지키는 삶을 뜻했을 것이다. 이러한 바울의 입장은 필연적으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바울에 대한 콘텍스트 이해는 라이트를 종교적 해석에 치우쳤던 샌더스와는 달리 정치 사회적 맥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에 이르게 한다.
    라이트는 유대의 언약사상의 핵심은 마지막 날에 이스라엘이 의롭다함을 얻는 것이라 보았고, 이는 하나님이 자신의 의를 증명하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종말론은 이러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시기이고 인간 역사의 위대한 전환점이라 본다. 그러므로 라이트에게 종말론이 의미하는 바는 역사의 끝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이고 하나님의 의의 확증이다. 바리새인이었던 바울은 이스라엘이 고통의 시기를 넘어서 (이사야서의 예언과 같이) 마지막에 의롭다 하심을 얻는 시대를 기대하였으나 그가 목격한 것은 부활을 통해 예수를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이었다.[각주:19] 라이트는 예수가 바로 다니엘서 9장에 나타난 ‘인자와 비슷한 이’이며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백성을 의롭다하실 분이라고 믿었다는 것이다.[각주:20] 이러한 바울의 깨달음은 결정적으로 바울이 복음을 이스라엘을 넘어서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로마제국에 의해 죽임당한 예수의 부활은 하나님 나라의 오심을 확증하는 것이고 예수를 통해 세계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 일어난 것이다.

    메시아
    묵시문학에서 등장하는 메시아의 의미가 그러하듯이 메시아의 오심이 복음이라고 한다면 이는 다분히 정치적인 것이다. 유대사상에서 복음이라고 한다면 이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고, 헬라세계에서는 제왕의 귀환과 승리를 뜻한다.[각주:21] 결국 복음이라는 단어안에 유대세계와 헬라세계가 공통적으로 왕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었고, 이스라엘이 얻은 것은 자신들의 회복이 아니었고, 헬라세계의 사람들은 부활한 유태계 신의 아들을 얻게 되었지만, 양쪽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은 아니었다.
    예수의 부활을 통해서 바울은 그의 복음의 메세지를 완성하게 되는데, 십자가에 달린 예수가 부활함으로, 이스라엘의 메시아는 세계의 주(Lord)가 되었다. 라이트는 바울이 예수의 부활이 전세계에 알리는 하나님의 승리라는 것을 확신했다고 생각한다. 이는 유대사상의 단일신론으로부터 시작하여 종말로 연결되는 세계관에 바울이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 듯하다.

    성령 (Spirit)
    라이트의 바울신학에서 성령의 역할은 중요하다. 라이트는 바울이 구약에서 아버지이자 주님이신 하나님도식이 바울에게서 하나님 아버지와 구주 예수라는 공식으로 대체된다고 본다. 구약에서도 하나님은 지혜, 영, 말씀, 또는 쉐키나 (Shekinah-신의 현현) 등으로 나타나듯이 바울이 예수와 영, 또는 성령을 하나님의 임재하심으로 읽는 것은 크게 유대사상에서 벗어났다고 볼 수 없다. 성령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는 예수의 부활과 재림사이의 틈을 메워줄 유일한 신의 현현이라는 것에 있다. “신자는 이미 새로운 시대에 살고 있으므로 그들은 더이상 이방세계의 삶의 방식을 따를 수 없다… 성령이 이미 일하고 있는 것이고, 이것이 종말론적 승리를 보장할 것이다.”[각주:22]

 

4. 삼류 신학생이 톰라이트를 논하다.

    대략 간략하게 라이트의 바울해석에 관해 살펴보았지만 이번장에서는 감히 라이트에 대해 논해보려 한다. 이제까지의 웹진에서는 신학자들의 전체적인 신학담론에 대한 인상이나 간단한 장단점 등을 논했었지만, 라이트에 대해서는 심층적인 논의를 개진하고자 한다. 가장 큰 이유는 필자가 보기에 라이트의 목적은 바울신학은 바울에 대한 어떤 새로운 해석을 하려했다기보다는 바울을 이용하여 현대의 독자들과 대화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라이트가 신학도들을 위해 저술활동도 하지만 일반독자들과 끊임없이 대화하기 위해 정열적으로 책을 쓰는 학자중의 한명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톰 라이트의 이름을 모르는 기독 지식인들이 없는 것도 바로 이러한 그의 활동 때문이며, 드물게 미국에서도 일반 대학생들을 위해 활발히 강연활동을 하는 신학자이가 바로 라이트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른바 포스트모던의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에게 라이트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이며, 그는 어떤 대안을 가지고 교회를 변화시키려 할까?
    먼저 현대 사회 문제에 대해서 라이트는 포스트모던의 모던 비판 (탈근대주의의 근대주의에 대한 비판)을 받아들인다. 근대주의를 지배했던 과학기술의 오만함과 경제로 세계를 제편한 제국주의의 문제점에 대한 맑스주의, 니체, 프로이드의 혹독한 비판이 옮음을 인정한다.[각주:23] 돈, 섹스, 권력으로 얼룩진 근대의 끝이 인류 스스로의 멸망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그러나 포스트모던이 이야기하는 다양성이나 해체주의 등이 새로운 대안이 될 것이라 라이트는 믿지 않는다. 오히려 성서가 말하는 인간의 타락의 교리와 이에 대한 대안이 새롭게 현대에 맞추어 해석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라이트가 생각하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대안에는 다음과 같은 요소가 필요하다.
    첫째, 주체를 다시 재건해야 한다. 즉, 인간 자신에 대한 이해를 다시금 명확히 해야 한다. 구조주의 이후의 분열된 자아상을 극복해야 한다. 새로운 주체는 새로운 피조물로서 바울이 말한 것과 같이 ‘사랑’을 통해서 다시 탄생되어야 한다. ‘나는 사랑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올바른 인간 이해가 될 것이다. 둘째, 앎에 대한 재구축이 필요하다. 앎을 위한, 또는 권력을 위한 정보와 앎의 시대의 막을 내리고 사랑을 아는 지식이 필요할 것이다. 새째, 진보와 발전의 역사는 결국 서구 제국주의로 막을 내릴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바울이 말한 것과 같이 ‘약함’을 자랑하는 역사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각주:24] 바울이 말했던 사랑의 공동체가 이에 대한 답이 될 것이다. 이러한 라이트의 대안은 바울이 살던 시대의 제국주의와 제국주의 종교에 메몰된 인류의 상황과 크게 다를 것 없을 것이라는 통찰에서 나오는 것이다. 라이트가 정치적 바울 해석과 로마제국에 대한 역사를 바울 이해를 위한 중요 요소로 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라이트의 이러한 시도는 일견 칭의론에 메몰된 바울해석이 일침을 가하고 현대 교회에서 세계에 대한 희망을 찾으려는 신선한 시각을 제공하기에 이른다. 칭의론에 대해서 라이트는 칭의론을 믿는 것이 구원받는 길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것이 구원의 길이라고 말한다.[각주:25] 칭의 자체는 신자와 하나님의 관계를 일컫는 용어가 아니다. 의롭다 인정받는 것은 하나님을 통해 선해지거나 성화되는 신자의 질적 변화를 말하는 용어가 아니다. 칭의는 종말론적인 언어로써 의로우신 하나님이 죄인들을 그들의 질적 변화와 상관없이 의롭다 인정해 주시는 것을 뜻한다. 바울신학의 핵심은 그러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사람들이 어떻게 세계속에서 그들의 구원을 이루어가느냐에 대한 문제인 것이다. 바울은 새로운 변화의 시대가 곧 올 것이라 믿었으며 그 직전의 시대에 살고 있는 공동체들이 이방신과 종교, 그리고 제국의 돈, 섹스, 권력에 휘말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 어떻게, 또는 무엇을 붙잡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했던 목회자라는 것이다. 이러한 고민과 통찰이 라이트를 교회내의 신자들만이 아니라 교회밖의 이른바 가나안 (안나가 교인) 성도들과도 대화할 수 있는 신학적인 틀을 가능하게 하였다.
    그러나 위와 같은 라이트의 입장을 지젝이 자주 쓰는 말로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it is not radical enough.”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새롭다. 신선하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필자가 감히 판단한다면 라이트는 그의 세계 진단도 옳고, 성서 해석의 전환점도 설득력 있고, 바울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으려는 시도에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러나 그의 해답은 크게 새로울 것이 없다는 것이 필자의 의견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청룡언월도를 꺼내려는 듯하다 단검이 던져주는 느낌이다. 이제 필자는 왜 그러한 충분치 못한 해답에 머무르게 되었는지 말해보고자 한다.
    바울을 이해하기 위한 기초를 말할때, 라이트가 강조한 것은 유대사상의 면면히 흐르는 단일신론, 언약, 종말론이었다. 그리고 그 기저에 다시 흐르는 예언사상과 묵시사상을 말했다. 이 모든 요소들을 관통하는 라이트의 관점이 있는데, 바로 야웨 대 이방신들의 대결구도이다. 라이트가 단일신론, 언약, 종말론을 설명할 때 관심을 두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에 대한 것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국가의 멸망과 제국의 압제 하에 신앙적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준 것들이 이러한 교리들이었고, 그것들이 옳음을 증명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인류의 역사라는 것이다. 그안에서 명확하게 나타나는 경쟁구도는 결국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과 이방신을 섬기는 제국 또는 타국가들이다. 이러한 명확한 신론적 이분법은 라이트를 교회내의 변화와 개혁의 촉구에 머무르게 한다. 현대 시대의 교회가 과연 바울이 말했던 교회와 같은 것이냐의 질문은 무의미해진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어떤 형식으로든 명확하게 구분되는 종교기구가 바로 인류의 희망이 된다. 라이트가 인류의 갱신을 예배의 회복에서 찾는 것은 그런면에서 우연이 아니다.[각주:26] 라이트가 예배(Worship)을 말할 때 이는 넓은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겠지만 이스라엘의 성막전통에서부터 시작된 제사전통을 기독교의 핵심으로 보고 이후 이방신들과의 투쟁을 역사로 보는 관점과 그리 다르지 않다. 문제는 제사와 예배전통, 즉 신정국가와 예배전통에 거슬러 새로운 종교전통을 생산했던 이스라엘의 예언전통은 그와는 다른 방식으 이스라엘 종교의 독특성을 만들어왔다. 필자는 그것을 사회 정의와 평화의 확립이고 생각한다. 분명 반복되는 제사와 예배는 종교적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으나 너무도 쉽게 권력과 금권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온 것이 바로 종교의 역사가 아니었던가? 이사야 1장 11-15절 (새번역)의 목소리에 귀기울여보자.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무엇하러 나에게 이 많은 제물을 바치느냐? 나는 이제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기름기가 지겹고, 나는 이제 수송아지와 어린 양과 숫염소의 피도 싫다. 너희가 나의 앞에 보이러 오지만, 누가 너희에게 그것을 요구하였느냐? 나의 뜰만 밟을 뿐이다! 다시는 헛된 제물을 가져 오지 말아라. 다 쓸모 없는 것들이다. 분향하는 것도 나에게는 역겹고, 초하루와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참을 수 없으며, 거룩한 집회를 열어 놓고 못된 짓도 함께 하는 것을, 내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나는 정말로 너희의 초하루 행사와 정한 절기들이 싫다. 그것들은 오히려 나에게 짐이 될 뿐이다. 그것들을 짊어지기에는 내가 너무 지쳤다. 너희가 팔을 벌리고 기도한다 하더라도,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겠다. 너희가 아무리 많이 기도를 한다 하여도 나는 듣지 않겠다. 너희의 손에는 피가 가득하다. 

    라이트의 부족한 급진성은 현대교회의 변화를 말하는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한계를 보여준다. 바로 교회의 변화가 세계의 변화를 끌어낼 수 있으리라는 순진한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또는 교회내의 변화가 세계 또는 사회에 대한 명확한 변화에 대한 방법론 없이 일루어낼 수 있다는 단순한 생각 또한 마찬가지이다. 현대 사회는 더이상 종교, 사회, 경제, 또는 정치가 독립적으로 변화하는 사회가 아니라는 것이다. 바울 또한 라이트가 말하듯이 그의 에클레시아 (assembly)[각주:27] 또한 사회와 동떨어져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 이천년전의 로마제국의 황제숭배가 제국의 이데올로기와 얽혀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황제숭배가 사라진다고 제국의 이데올로기와 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 것이 현실이다. 오히려 제국의 종교는 제국의 이데올로기의 한 부분일 뿐이며, 현대의 개량주의나 금권주의를 하나의 종교로 상정한다고 하더라도 교회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데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정치를 성서해석에서 말함에 넘어서야 하는 문제점은 성서가 현실정치를 넘어설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할 수있느냐를 묻지 않고 교회내의 갱신의 도구로만 생각하는 것이다.
    결국 라이트는 바울의 종말론의 요체가 예수의 부활이며 재림 예수의 심판자로서의 의미를 만들어준다고 말하고, 그것은 시저와는 다른 하나님의 정의를 세계로 가지고 온다고 하면서, 바로 그러한 것이 교회의 종말론적 윤리, 새로운 삶의 방식을 요구한다고 한다. 그러나 톰 라이트에게 없는 것은 시저의 제국이 단순히 구약에서부터 내려오는 이방신숭배에 대한 유대교의 대항의 맥락에서 이루어진다고 보면서 그것의 중심은 우상숭배라고 맺는 것인데, 이에는 제국에 대한 어떤 명확한 형식의 비판을 성서에서 찾는 것을 등한시하는 것에 있다. 그러다 보니 대안으로 들어서면 바울의 서신은 현실에 대한 큰 울림을 내기보다는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며 즉흥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아 헤메다니는 공동체 정도로 이해된다. 율법을 기반으로한 유대사상에 대한 비판과 법치와 정의를 기본으로한 제국의 정치에 대한 대안이 현실에서 울려나오지 않는 것이 바로 이때문이다.
    그러나 라이트의 시도는 성서신학이라는 학문에 매몰되어 교회내에서 이해될 수 있는 담론만을 생산하거나 몇가지 단어의 뜻에 대한 논쟁에 집중하는 현대의 성서신학에 신선한 관점을 제공하려 했다는 데에 큰 의미를 가진다. 이전 글에서 필자가 강조한 바울신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냐의 질문에 자신의 콘텍스트안에서 솔직하게 접근하는 라이트의 학문에 나름 박수를 보내고 싶다. 

Wright, N. T. Paul: In Fresh Perspective. Minneapolis, MN; London: Fortress Press ; SPCK, 2009.
———. What Saint Paul Really Said: Was Paul of Tarsus the Real Founder of Christianity? Grand Rapids, Mich.; Cincinnati, Ohio: W.B. Eerdmans Pub. ; Forward Movement Publications, 1997.

ⓒ 웹진 <제3시대>

 

  1. 본 글에서 사용된 라이트의 두개의 저서는 모두 영어판을 사용하였다. 이 중 하나는 이미 한국에 번역서가 나와있으나 필자가 사는 곳이 미국이라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독자들의 이해를 바란다. [본문으로]
  2. N. T Wright, What Saint Paul Really Said: Was Paul of Tarsus the Real Founder of Christianity? (Grand Rapids, Mich.; Cincinnati, Ohio: W.B. Eerdmans Pub. ; Forward Movement Publications, 1997), 161. [본문으로]
  3. N. T Wright, Paul: In Fresh Perspective (Minneapolis, MN; London: Fortress Press ; SPCK, 2009), 14–17. [본문으로]
  4. 때로 라이트는 이를 단일신론, 선택, 그리고 종말론 (Monotheism, election, and eschatology)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본문으로]
  5. Wright, What Saint Paul Really Said, 64. [본문으로]
  6. 언약사상에 대해서는 필자의 이전 샌더스에 대한 웹진 원고를 참고하길 바란다. [본문으로]
  7. Wright, What Saint Paul Really Said, 95–96. [본문으로]
  8. Ibid., 13–14. [본문으로]
  9. Ibid., 17. [본문으로]
  10. Ibid., 70. [본문으로]
  11. Ibid., 79. [본문으로]
  12. Wright, Paul, 71. [본문으로]
  13. Ibid., 164. [본문으로]
  14. Wright, What Saint Paul Really Said, 98–99. [본문으로]
  15. Ibid., 101. [본문으로]
  16. Ibid., 119. [본문으로]
  17. Ibid., 30. 톰 라이트는 바울이 샴마이 학파에 속하는 정치적으로 강경파에 속하는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최근 그의 저서에서는 명시적으로 바울을 샴마이 학파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은데, 그의 주장을 수정했는지는 불분명하다. [본문으로]
  18. Ibid., 31. [본문으로]
  19. Ibid., 37. [본문으로]
  20. Ibid., 77. [본문으로]
  21. Ibid., 40–43. [본문으로]
  22. Wright, Paul, 162. [본문으로]
  23. Ibid., 183. [본문으로]
  24. Ibid., 183–185. [본문으로]
  25. Wright, What Saint Paul Really Said, 159. [본문으로]
  26. Ibid., 136–138. [본문으로]
  27. 번역하면 그저 모임이다. 교회라는 표현은 바울서신어디에도 없으며 에클레시아는 당시의 사교모임을 가르치는 단어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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