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와인 이야기

 



박여라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는 같은 배에서 나온 이웃종교이지만, 유대교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훨씬 많음을 전제하고 이 글을 시작한다. 그나마 아는 것도 띄엄띄엄 단편적이고 겉핥기 수준이다. 이웃이나 동료들이 지키는 절기를 통해 알게 된 특별한 관습이나, 전해들은 이야기, 영화, 역사로 알고 있는 탈무드, 홀로코스트 정도다. 유대교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와인이 그들의 종교예전과 일상생활 속에서 늘 있어왔다는 점에서 좀 더 들여다보고 싶어서이다.


    이슬람교까지 해서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이 세 자매(또는 세 형제, 혹은 삼남매?) 종교는, 같은 지역에서 뿌리를 함께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와인에 대해서는 각자 아주 다르게 발전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이슬람을 세운 예언자 마호메트(570-632) 당시나 중세에 무슬림이 세차게 영역을 넓혀나가던 때까지도 이슬람교에서 지금처럼 철저히 음주를 금했던 것은 아니다. 꾸란(코란)에 와인이 네 번 언급되는데, 긍정적인 것부터 부정적인 것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중세에 이슬람 점령지에서도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이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들어 마신 기록과 흔적이 있다. 무슨 이유에선지 이후 칼리프 시대를 거치며 철저한 금주로 돌아섰다. (이 분야도 한 번 연구해봐야겠다.) 고대로부터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든 역사적인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중동 아랍에서는 이슬람교의 영향으로 와인소비는 커녕 와인제조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캘리포니아에 가서 신기했던 것 하나는 어지간한 크기의 슈퍼마켓에 가면 유대인을 위한 코너가 꼭 있다는 거다. 미국내 유대인 인구가 대략 6백만명, 전체 3억 인구의 2.2%라고 한다. 뉴욕 주처럼 전체 인구의9% 에 이르는 곳도 있지만, 캘리포니아 유대인 인구는 겨우 3%다. 100명 중 이 3명을 위하여 마치 당연한 것처럼 코셔(Kosher)라 써있는 코너가 따로 있다. 그리고 주류 관련법에 따라 주마다 경우가 다르겠지만, 와인가게에 가지 않고도 코셔 코너에서 케뎀(Kedem)이나 매니셰비츠(Manischewitz) 브랜드 와인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미국 북동부에 정착한 유대인들이 콩코드 포도종으로 만든 와인이라 맛은 대단할 것 없는 그냥 그런 와인이다. 그래도 코셔와인이다. 


    코셔규정은 대략 주후 2세기 정도부터는 지켜왔다고 한다. 히브리 성경에 있는 대로 먹어도 되는 것과 안되는 것에 관한 규정, 이후 탈무드와 랍비 전통에 따라 더 자세한 규정, 논란이 있는 규정 등이 있다. 와인의 경우 ‘이방인'이 만드는 와인은 우상숭배에 쓸 목적으로 만들었거나 그렇게 쓰일 가능성을 지닌다고 여겨, 유대인이 아닌 사람의 손으로 만든 와인은 철저히 금했다. 그러나 향신료를 넣고 끓였다거나 저온살균과정을 거친 와인은 우상숭배에도 쓰일 일이 없음이 분명하니 (우상님께도 신선한 와인을!), 그런 경우에는 누가 만들었는지 상관없이 코셔규정에 합당하다. 코셔와인은 처음 포도가 으깨지는 과정부터 발효, 청징(淸澄, 탁한 성분을 걷어내어 와인을 맑게 만드는 과정), 병입과 유통까지 코셔규정에 합당한 재료를 사용하며 ‘안식일을 지키는 유대인'이 지휘감독하여야 한다. 


    무슬림이 이른바 ‘성지'를 점령한 7세기 이후에는 와인을 만들지 않다가 1880년대에 이르러서야 다시 이스라엘과 요르단 서안지역에서도 와인을 만든다. 최근까지도 이 지역 와인들은 맛으로 알려진 와인은 결코 아니다. 포도재배도 그렇고 와인만드는 기술도 그렇고 모두 다시 일구어야 했으니 맛을 기대하기는 무리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날 이스라엘에는 350개 와이너리가 와인을 연간 6천5백만병생산하고 있다. 2014년 세계 와인생산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3배 가까이되는 규모이고 매해 크게 성장하고 있다. 


    작년 11월말 ‘뉴욕타임즈’는 이스라엘 토착품종 ‘마라위'로 만든 와인을 상업와인으로 개발 발매한 와이너리를 소개했다. 이 지역 토착품종으로 와인을 상품화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마라위 와인은 이야기거리가 된 이유는, 현지 대학과 협업으로 DNA 검사를 통해 다윗왕과 예수가 마셨을 고대 와인이 무엇이었는지를 알아내고 복원하려는 프로젝트의 생산품이기 때문이다. 바빌로니아 탈무드에 있는 내용으로 마라위라는 와인품종을 주후 220년까지 추적해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뉴욕타임즈 기사 제목은 ‘이스라엘, 예수와 다윗왕이 마신 와인 재창조를 목표 삼다’였는데, 이 기사를 국내 모일간지에서 ‘예수가 마셨던 포도주 복원 성공… 유전공학의 개가'라는 제목을 달고 그다음날 인용보도하여 좀 거시기했다.) 


    이스라엘에서 만든 와인이라고 자동으로 코셔와인이 되거나 모두가 코셔규정에 따라 만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전세계 굵직한 와이너리에서 마케팅 차원에서라도 코셔 규정에 따라 코셔와인을 만들고 있고, 요즘은 미국 와인가게에서 코셔와인을 찾으면 대개 한두 가지 갖춰 놓고 있다. 맛도 꽤 괜찮다. 


    곁가지 이야기인데, 이스라엘에서는 안식년 규정 때문에 오늘날에도 7년째 되는 해마다 포도나무를 다 뽑아버리고 땅을 쉬게 하는 지 궁금했다. 실제로는 포도밭을 남에게 팔아버린다고 한다. 왜냐하면 포도나무는 3년 되는 해부터 와인을 만들 수 있는 포도를 거두기 시작하여 대략 수령 20년까지가 제일 좋은 때인데, 7년째에 나무를 뽑아버리는 일은 경제적으로도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 필자소개_ 박여라

    분야를 막론하고 필요한 스타일과 목적에 따라 한글 텍스트를 영문으로 바꾸는 진기를 연마하고 있으며, 그 기술로 먹고 산다. 서로 다른 것들의 소통과 그 방식으로서 언어에 관심이 많다. 미디어 일다(ildaro.com)에 ‘여라의 와이너리’ 칼럼을 쓰고 있다. 미국 버클리 GTU 일반석사 (종교철학 전공) /영국 WSET 디플로마 과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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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포도주가 전해지다

 



박여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요한복음 14장 6절말씀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정수다. 동시에 그리스도인이라 고백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리고 그리스도교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끊임없이 되묻는다. 예수께서 언급하신 이 ‘길’ ‘진리' ‘생명'은 대체 무엇인가. 어떤 대답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이번 글에서는 ‘길'에 대해 나누려고 한다.


    예수의 출생이나 행적을 담은 이야기로 시작하는 마태, 마가, 누가 이 세 공관복음서에 비해 요한복음은 시작부터 추상적이고 함축적이다. 태초에 말씀(로고스)이 계셨고 그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말씀이 몸을 입었다는 말은, 몸을 가진 존재를 통해 말씀이 이루어졌다는 말인가. 공관복음에도 나오는 표현이라면 비교해가며 앞뒤전후 상황을 살펴볼텐데 그렇지가 않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시다, 라는 표현도 마찬가지로 요한복음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요한복음은 그러하다. 


    하나님께 이르는 길이 예수라니 무슨 길이고 어떤 길인가. 신약성서가 쓰인 그리스어로 트로포스(τρόπος)라는 단어인데, 우리말로 ‘길'을 뜻하기도 하고 ‘삶의 방식'을 뜻하기도 한다, 고 한다. 짧은 지식에 기대어 여기저기 찾아보니 트로포스는 길, 방식이란 뜻 말고도, 일시적 유행, 지나가는 바람, 변화를 뜻하기도 하고, 요령, 재주, 전환 등의 단어와 연관되어 있다. 그러고 보니 정적이며 가만히 있는, 그저 내 앞에 놓여있는, 나와 별 상관없는 그런 길이 아니라, 그리로 내가 나아갈, 나의 방향성과 움직임을 안고 있는 그런 동적인, 살아있는 길을 뜻하는 것 같다. (나는 언어학자도 성서학자도 아니므로 근거있는 이론은 결코 아니다.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는 말이다.) 


    캘리포니아 와인의 아버지라 흔히 부르는 후니페로 세라(Junipero Serra, 1713-1784) 신부는 1769년 샌디에고에 현재 미국 땅의 첫 미션을 세웠다. 그리고 10년 뒤인 1779년에 산 후안 카피스트라노(San Juan Capistrano) 미션에 심은 포도나무가 캘리포니아에 심긴 첫 와인 포도나무로 기록되어있다. 후니페로 세라는 북쪽으로 샌프란시스코까지 미션을 여덟 군데 더 세웠다. (작년 가을 프란치스코 교황이 미국 방문 중에 성인 추대한 그 후니페로 세라 맞다. 캘리포니아에 그리스도교를 전한 공이 클 뿐 아니라 미국에서 이루어진 첫 성인추대식이라 특히 히스패닉 가톨릭 신자에게는 의미가 큰 행사였지만, 스페인제국의 막강한 패권으로 선교지에서 아메리카 원주민을 학살하고 강제노동을 시킨 신부가 성인이 될 수 없다는 강한 반대를 만나 논란이 크게 일었다.) 


    18세기 이후 프란시스칸 수도사들은 캘리포니아 미션에서 재배한 포도로 성례전에 사용하는 와인과 일반 식사 와인을 만들었다. 이 포도종은 곧 캘리포니아 전역에 퍼져 19세기 중반까지도 캘리포니아 와인의 주류를 이루었지만, 이후에 유럽에서 온 이민자들이 가져온 다양한 다른 포도종에 밀려 지금은 산타바바라 지역과 시에라네바다 산기슭 정도에 조금 남아있을 뿐이다. 


    미션에서 재배하는 포도라 하여 포도품종 이름이 ‘미션’이다. 2006년에 발표된 어떤 유전자 연구 결과에 따르면, 스페인 선교사들이 18세기에 아메리카 대륙에 가져온 미션포도종의 원래 이름은 리스탄 프리에토(Listan Prieto)라 밝혀졌다. 리스탄은 스페인 헤레스(Jerez) 지역에서 만드는 셰리 와인의 주요재료인 팔로미노(Palomino) 포도종, 혹은 그와 매우 흡사한 종이다. 그러니까 미션포도종 리스탄 프리에토는 진한 색(prieto) 팔로미노라는 말이다. 


    리스탄 프리에토는 스페인 본토에서는 필록세라 (19세기말 유럽 포도밭을 초토화시킨 병충해) 때문에 거의 사라져버린 포도종이지만, 지리적으로 외딴 곳인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에는 팔로미노 네그로 (Palomino Negro, 까만 팔로미노)로 불리는 같은, 혹은 매우 흡사한 포도종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카나리아 제도는 16세기에 신세계로 향하는 콘키스타도르, 선교사, 무역상 등이 주로 머물던 곳이며, 오늘날까지도 필록세라가 전해지지 않은 전세계 몇 되지 않는 지역이다. 


    유전자 연구는 이 포도종의 여정을 그려준다. 스페인 카스티야-라만차 지역의 고유품종으로 알려진 리스탄 프리에토는 앞서 언급한 아프리카 대륙 북서쪽에 있는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 그리고 스페인 콘키스타도르의 움직임을 따라 칠레와 아르헨티나, 스페인 제국이 멕시코에 세운 수많은 가톨릭 미션, 현재 미국땅인 뉴멕시코와 캘리포니아에서 찾을 수 있다. 


    다시 트로포스 이야기로 돌아가서, 여러가지 목적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스페인을 떠나 대서양을 건너고, 아르헨티나, 칠레에 뿌리를 내리고 멕시코 미션에도 뿌리를 내리고, 또 거기서 캘리포니아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길고 긴 여정이야말로 미션 포도종이 밟아온 길이다. 트로포스는 단순히 선으로 그리는 길 뿐 아니라 수백 년에 걸친 시간, 새로운 땅과 기후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과 실패, 사람의 정성과 눈물, 땀과 숨, 기쁨과 감사, 이 모든 것을 포함한다. 


    하나님께 이르고자 하는 나의, 우리들의 트로포스에는 무엇이 담겨있고 무엇을 덜어내고 무엇을 더해야 할까. 지금의 기준으로는 미션 포도종으로 만든 와인은 아주 보잘 것 없다. 풍미가 좋거나 인상깊지도 않다. 그러나 그 포도주가 길따라 전해져 오늘에 이르렀다. 그 길을 새해 아침에 다시 생각해본다. 


* 필자소개_ 박여라

    분야를 막론하고 필요한 스타일과 목적에 따라 한글 텍스트를 영문으로 바꾸는 진기를 연마하고 있으며, 그 기술로 먹고 산다. 서로 다른 것들의 소통과 그 방식으로서 언어에 관심이 많다. 미디어 일다(ildaro.com)에 ‘여라의 와이너리’ 칼럼을 쓰고 있다. 미국 버클리 GTU 일반석사 (종교철학 전공) /영국 WSET 디플로마 과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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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주에 담긴 생명의 기운

 



박여라




    어려서 교회에서 배운 노래 중에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리라'를 참 좋아했다. 히브리민요 곡조에 오소운 작사로 알려진 이 노래는 흔한 서구의 찬송과는 음색이 달라 묘한 매력이 있었다. 되돌이표도 없는데 노래가 무한히 반복될 것같은 느낌이었다. 이십여 년 뒤 미국에서 나의 라틴어 선생 도미니칸 수사에게서 배워 족히 수백 번은 외웠을 주기도문(Pater Noster)처럼 주술같은 기운이 있었다. 곡조도 곡조이지만, 이사야 35장 말씀으로 그린 ‘그 나라'의 모습이 참 좋았다.

    찬송가 중에선 ‘빈 들에 마른 풀같이'를 특별히 좋아했다. 에스겔 34장 26절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고 내 산 사방에 복을 내리며 때를 따라 소낙비를 내리되 복된 소낙비를 내리리라" 말씀으로 만든 찬송이다. 어린 시절 무슨 갈급한 마음이 있어 성령의 단비가 내게 쏟아지기를 기도했던 것 같지는 않고, 지금 돌아보니 메마른 땅에 비가 내려 사방이 촉촉하게 젖고 생기가 도는 메타포가 마음에 와닿았을 것이다. 지금도 비가 내리기 시작할 때 흙냄새가 피어오르면 좋아서 하던 일을 멈춘다. 무언가 이루어진 것 같은 편안함이랄까.

    어른이 되어 꽤 긴 세월을 캘리포니아 북부 (교포들 말로는 ‘북가주')에 살았다. 거기서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었다. 실제로 나를 어른으로 만들어 준 하늘과 태양, 바람과 땅도 그 곳이다. 그 곳은 사계절이 아니라, 일 년이 우기와 건기로 나뉜다. 와인지역에 갈 때면 어느 계절이든 모습이 달라 다 장점이 있다. 포도를 거둬들이고 와인을 만들기 시작하는 때엔 그 냄새가 온통 진동하니 해가 뜨거워도 좋고, 좀 더 지나 가을이 되면 포도나무가 종류별로 화려하게 단풍이 져서 이쁘다.

    난 우기의 끝 즈음이 좋다. 날이 아직 추워 포도나무에 순이 나오기 전이다. 잎이 무성한 여름과는 달리 벌거벗은 나무가 드러나 있다. 하지만 비는 거의 그쳐서 다니기도 크게 불편하지 않고, 줄줄이 늘어선 포도나무들 사이사이로 머스터드 노란 꽃이 가득하다. 비단 와인지역 뿐 아니라 북가주를 관광하기엔 산과 들에 머스터드, 주황빛 양귀비, 싱싱한 들풀까지 더해져 그 때가 가장 아름답다. 건기가 다시 시작되어 6월쯤 되면 풀이 다 말라 구릉의 골에서 자라는 나무들만 푸른 빛이고 온통 건초다. 다시 비가 내리는 늦가을이 되기 전까지는.

    어느 해엔가부터 매일 사하라 사막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사막에서 정처없이 걸어가는 내 모습을 그리며 잠이 들었다. 아침에 잠이 깨면 다시 주어진 하루를 세어가며 언제고 사막에 가리라 새로 다짐했다. 아침저녁으로 주기도문 챈팅을 몇번씩 읊었다. 무엇이 그렇게 간절했을까.

    나에게 당장 ‘비교적' 가까운 곳은 데스벨리(Death Valley)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어떤 여행지는 좋으면 질릴 때까지 계속 가곤 하는데, 그런 여행지들은 대개 아무리 반복해서 가도 질리지 않는다. 데스벨리가 그렇다. 죽음의 골짜기라니, 이름 참 무섭다. 19세기 중반, 더 나은 삶을 찾아 캘리포니아 금광으로 향하는 무리 중에서 이 골짜기에서 길을 잃고 떼죽음을 맞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살아서 이 계곡을 빠져나간 이들이 뒤를 돌아보며 “안녕, 죽음의 골짜기!” 했다나. 

    이 이야기로만은, 그리고 그 곳엘 가기 전까지는, 왜 거기가 미국의 59개 국립공원 중 하나인지 알 수 없었다. 미국에서 가장 뜨거운 곳이다. 여름 휴가철에 캘리포니아를 찾은 이들이 그곳이 유명하니 가겠다고 하면 늘 뜯어말렸다. “덥고 황량해. 가지 마!”

    사하라사막은 아니지만, 내가 꿈에도 그리던 사막을 데스벨리에서 드디어 처음 만났을 때에야 사람들이 왜 그곳을 찾는지 알 것 같았다. 사막엔 어떤 두려움이 있었다. 나를, 사람을 뛰어넘는, 설명할 수 없는 신비도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죽어있는 땅이 결코 아니었다. 악조건을 버텨내는 생명으로 가득했고, 끝을 알 수 없는 길고 긴 시간을 적막함이 품고 있었다. 이내 그 간절함에 매료되었다.

    하나님의 축복은 여러가지 상황에서 여러가지 모습일텐데, 이 곳에선 비가 하나님의 축복이다. 소낙비처럼 내려주마 약속하신 에스겔 34장 말씀처럼 말이다. 데스벨리의 연평균 강수량 60밀리미터다. 우리나라에서 봄 가을 건조할 때 한 달 강수량이다. 그것도 대부분 우기, 그러니까 11월에서 3월에 내린다. 비가 좀 넉넉히(?) 내린 우기가 지나고 나면, 그 죽음의 사막이 거짓말처럼 들꽃으로 화려해진다. 그 메마른 땅에서 비 몇방울에 간절하게 피어나는 온갖 꽃들은 나에게 자유, ‘스스로 말미암음’을 가르쳐주었다.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포도나무를 좀 괴롭힌다. 물을 너무 잘 주면 가지와 잎이 무성해지고, 나무가 열매맺는 일에는 딴전이다. 너무 비옥한 땅도 좋지 않다. 뿌리가 물과 영양분을 찾아 더 깊게 내리게 하여, 이상적으로는 땅이 지닌 고유함을 포도알에 담아내게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하지만 너무 못 살게 하면 나무가 죽어버릴 테니 ‘약간의 스트레스'라는 발란스가 중요하겠다. 포도나무 뿌리는 대개 땅속 1미터 정도인데, 6미터 이상 뻗어나가기도 한다. 마치 우리 눈에 보이는 빙산은 1할 뿐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 9할이듯, 와인을 만드는 포도송이 하나하나는 포도나무 뿌리가 흙과 자갈 속 깊이 더듬더듬 생명을 찾아 뻗어나간 간절함의 정수다.

    하나님께서 황폐한 이스라엘에 복된 소낙비를 내리시리라는 선지자 에스겔의 예언 뒤에는 에스겔이 본 환상이 나온다. 마른 뼈가 가득한 골짜기에서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 말씀대로 마른 뼈들이 살을 입고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았다. 살아있는 기운(생기)이 바람처럼 불어와 죽은, 완전히 죽어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에 생명을 준다. 지구에서 가장 건조한 곳으로 알려진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 엘니뇨 덕에 비가 넉넉히 내려, 지금 온통 장미빛 꽃으로 물들었다지.


* 필자소개_ 박여라

    분야를 막론하고 필요한 스타일과 목적에 따라 한글 텍스트를 영문으로 바꾸는 진기를 연마하고 있으며, 그 기술로 먹고 산다. 서로 다른 것들의 소통과 그 방식으로서 언어에 관심이 많다. 미디어 일다(ildaro.com)에 ‘여라의 와이너리’ 칼럼을 쓰고 있다. 미국 버클리 GTU 일반석사 (종교철학 전공) /영국 WSET 디플로마 과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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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와 와인, 그리고 나

 



박여라



들어가며


    와인 공부를 시작한 뒤 서가에서 여러해 만에 성서를 꺼내들었다. 와인에 관련된 단어들을 주석책에서 찾아보기도 하고, 그 단어들이 나오는 성서본문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예전엔 생각해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의미로 본문이 가깝게 다가왔다. 와인이 성서를 읽는 새로운 렌즈가 되어준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도 되어주겠구나 하며 와인공부가 더 재미있어졌다.

    그러고 나서 보니 흥미로운 점이 있었다. 경건하거나 근본주의거나 또 다른 어떤 이유로든 술을 죄악으로 여기는 개신교 신앙인들 중에서 꽤 많은 사람들이 와인 한 잔에는 너그럽다. 구세주 예수도 제자들과 포도주를 나눠마셨으니까. 그런가 하면, 성서 본문에 예수가 마셨다는 그 포도주는 우리가 아는 와인이 아니라 알콜이 없는 포도즙이라고 애써 주장하는 문헌이 적지 않다. 신학논문도 꽤 있다. 그래도 그 와인이 무알콜 포도즙이면 신앙이 무너질 것만 같은 그들의 주장하는 이유에 귀기울이는 것은 그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나의 신앙과 삶을 새로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다.


성서와 와인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샌프란시스코 근교에 살며 알게 된 사실은 그곳이 성서에 나오는 지역과 기후가 아주 비슷하다는 점이다. 한 해는 건기와 우기 두 계절로 나뉘어 일년 강수량의 대부분은 10월에서 4월 정도에 몰려있고, 나머지 기간에는 비가 아주 드물게나 온다. 샌프란시스코 지역은 낮에 해가 뜨겁지만 공기는 건조하다. 그래서 한여름에도 그늘에만 있으면 전혀 덥지 않다. 비가 오지 않아도 저녁이면 안개가 몰려와 공기와 땅을 적신다. 남부 내륙 캘리포니아같은 사막이 아니다. 그에 비해 이스라엘은 여름이 좀 습하다고 들었다.

    신명기는 이스라엘이 밀, 보리,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 올리브 나무와 꿀(대추야자)이 있어 부족함이 없는 땅이라고 적었다.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이 모두가 오늘까지도 그 지역 특산농산품이다. 비슷한 기후라 캘리포니아에서도 포도, 올리브, 무화과, 겨자 등 성서에 나오는 나무와 과실을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고 음식재료로도 흔하다. 자주 접하다보니 성서가 씌여진 지역의 자연과 문화가 한국에서보다는 가까이 느껴진다.

    성서 언어인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에서 ‘포도주'라고 번역할 수 있는 단어가 여럿이라서 기준에 따라 통계가 좀 다르지만, 포도주는 성서에 대략 220회 정도 나온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물과 빵, 그리고 올리브유나 무화과 등 다른 음식에 비해서도 훨씬 빈번하다. 그리고, 올리브유와 포도주는 음식 이상의 용도와 의미가 있었다. 와인의 역사는 수메르, 이집트, 페니키아 등 고대 근동부터 기록이 남아있다. 포도주가 자주 언급되는 성서 역시 지리, 자연환경, 인류학적으로 이 맥락 속에 있다. 비유와 이미지, 율법 등에 포도밭, 포도원 일꾼, 포도나무, 포도열매가 자주 등장하는 것에 비해 아쉽게도 교회에서 포도주가 주인공으로 이야기하는 대목은 대략 세 가지 정도 뿐이다. 갈릴리 가나에서 벌어진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첫번째 표적 (요한복음), 그리고 제자들과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나눈 ‘최후의 만찬'에서 앞으로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실 때마다 당신을 기억하라 하신 장면, 그리고 바리새인들과 금식논쟁 중에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으라는 가르침이다. 그래서 와인의 역사를 공부하며 성서와 겹치는 지점들은 더 다양하고 깊게 파고 들고 싶다.


그리스도교와 와인


    성서가 기록으로 남은 역사지리적인 현장이 포도주와 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포도주는 그리스도교와 함께 전세계로 퍼졌고, 포도주 연관기술도 그리스도교와 함께 발전했다. 4세기 말 그리스도교는 로마제국에서 공식종교가 되었고, 로마시민의 삶 속에 깊이 들어가있던 와인은 제국의 세력을 따라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로 퍼졌다. 로마제국이 쇠퇴한 뒤에도 와인을 위한 포도재배지지역에선 포도재배와 와인제조가 계속했다. 역병과 온갖 혼란 속에서 일어난 수도원운동은 중세를 지내며 근대에 이르기까지 결과적으로 포도재배와 와인생산에 관련된 모든 과정에서 획기적인 공헌을 하게 되었다. 

    유럽국가들이 근대 이후 식민지를 만들며 전세계로 마구 뻗쳐나갈 때에는 오늘날 와인 신세계로 불리우는 아프리카, 아메리카, 오세아니아로 포도나무와 와인기술을 가져가 무역을 했다. 미사를 위한 와인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와인은 삶의 일부였다. 캘리포니아만 해도 와인은 그렇게 전해졌다. 스페인이 가톨릭을 전하기 위해 18세기 말 식민지 샌디에고(지금은 캘리포니아 최남단)에 미션을 세웠다. 거기서부터 북쪽으로 약 1천km에 걸쳐 50km마다 총 21개의 미션을 세웠다. (50km라는 거리는 짐을 진 당나귀가 하루 이동할 수 있는 거리라고 한다.) 이 길을 지금도 ‘왕의 길(El Camino Real)’이라고 부른다. 로스엔젤레스, 산타 바바라, 산 루이스 오비스포, 카멜, 샌프란시스코 등 미션이 세워진 곳이 오늘날 도시가 되었고, 유명 와인산지의 중심지다. 가장 북쪽에 있는 캘리포니아 미션은 나파 옆 소노마에 있다.


포도나무를 키우다


    몇 년 전에 와인을 만드는 포도품종 묘목을 우연히 얻어 마당에 심었다. 올해 처음으로 잎이 돋는 과정부터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달리고, 포도가 익어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책에서 배운대로 가지치기도 하고, 아침저녁으로 변화를 지켜보며 거미줄도 걷어내고 습기에도 바람이 잘 통하라고 잎도 좀 정리하고, 또 열매가 익어갈 때에는 햇볕을 잘 받을 수 있게 했다. 풀지 못한 수수께끼처럼, 혹은 내게 내려진 선문답이나 화두처럼 포도나무에 관한 말씀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고 있다. 포도나무를 키우는 농부 하나님과 참 포도나무인 예수, 그리고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라는 말씀. 그 뜻을 알 것 같기도 하고,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런데, 새싹을 내고 가지가 뻗어나가고 열매가 맺는, 살아있는 포도나무가 말씀에 생명을 주는 것은 분명하다.

    올해 포도는 여섯 송이 달렸다. 소량이라도 와인을 만들어 볼까 생각이 없진 않았는데, 그 꿈이 물건너 가고 있다. 죽 쒀서 새 주고 있다. 포도알이 하나씩 익는 대로 새들이 다 먹어치우고 있다. 마당에 하릴없는 고양이도 한 마리 상주하건만, 새가 포도를 쪼아먹을 때 쫓기는 커녕 그저 새가 뭐하나 지켜본다. 이번 주에는 포도를 따야겠다.


* 필자소개_ 박여라

    분야를 막론하고 필요한 스타일과 목적에 따라 한글 텍스트를 영문으로 바꾸는 진기를 연마하고 있으며, 그 기술로 먹고 산다. 서로 다른 것들의 소통과 그 방식으로서 언어에 관심이 많다. 미디어 일다(ildaro.com)에 ‘여라의 와이너리’ 칼럼을 쓰고 있다. 미국 버클리 GTU 일반석사 (종교철학 전공) /영국 WSET 디플로마 과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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