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태의 근본원인은 아직도 얼굴을 감추고 있다

 



양권석

(본 연구소 소장 / 성공회대 신학과 교수)


    뉴스가 드라마 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막장드라마와 리얼리즘의 간격이 일순간 무너진다. 한 두 번만 보면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정확히 예측할 수 있고, 또 마지막 결론까지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고, 대개는 그 짐작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들의 예측을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이 다음 회를 기다리게 만드는 것이 막장 드라마다. 뉴스를 보는 것인지 막장드라마를 보고 있는 것인지, 이미 막장 드라마 같은 뉴스에 충분히 중독되어 버린듯하다.  


    그리고 깊은 의심이 생긴다. 막장드라마 같은 뉴스가 사실로 드러날 때 마다, 오히려 그렇게까지 된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다. 막장드라마를 이해하는 상식이면 충분히 예측 가능했던 것인데, 우리는 왜 몰랐던 것인가? 왜 묻지도 의심하지도 않았을까? 막장드라마가 리얼리즘이 되는 이 상황이 못내 의심스럽다. 최대한 앵글을 좁혀 최순실이라는 막장드라마적으로 과장된 캐릭터에 초점을 맞춘다거나, 아니면 최태민을 연결고리로 해서 박근혜와 최순실이 맺고 있는 관계구도에 모든 원인이 있는 것처럼 만든다거나, 그와 같은 초점의 집중과 시계의 한정을 위해서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이번 일이 벌어지기 전에는 까마득히 몰랐던 것처럼 화들짝 놀란 표정과 목소리와 행동을 나타낼 수 있도록 상황을 구성하고 있는 그 모습이 정말 의심스럽다. 


    어쩌면 “집단 유체이탈 국가”라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박근혜-최순실 커넥션이 국정농단을 할 수 있도록 모든 조건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아니 그들의 국정 농단에 충분히 혜택을 입은 사람들이 당연히 있을 것인데, 아무도 말이 없다. 박근혜와 최순실을 비호하기 위해서 온몸을 던졌던 정치인들, 박근혜 개인에게 권위의 휘광을 둘러 보수와 애국민족정신의 아이콘으로 만들어 온 언론인들, 감시와 사정의 책임을 버리고 박근혜 권력과 재벌의 시녀가 되어 온 판.검사들, 자존심도 책임감도 없는 관료들, 이들 모두가 마치 아무것도 몰랐던 사람들처럼 행동하고 있다. 문제가 되었던 두 재단에 돈을 기부한 기업관계자가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매우 억울하다는 듯이, 자신들은 어둔 밤 길가다가 강도를 당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명박근혜 정권을 복음을 지키는 파수꾼처럼 여기며 노골적으로 이념과 색깔 놀이의 적극적인 주체가 되어 온 기독교 교계가 이제 와서 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은 가짜 목사라고 하면서 일종의 선 긋기를 하고, 자신의 흑역사를 감추는데 급급하고 있다. 사실은 이들, 정치인, 언론인, 법조인, 관료, 종교인, 재벌들은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의 엄청난 혜택을 입은 자들이 아닌가? 아마도 최순실 자신보다 더 많은 경제적 이득을 취한 개인이나 기업이나 집단도 분명히 있을 것인데, 전혀 몰랐다는 표정이다. 


    이 의심스러운 상황전개는 이미 예정된 어떤 결말을 향해서 작동중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수사관이 원하는 완벽한 범죄 서사를 다 구성해 주고, 또 범인에 대한 분명한 논리적.서사적 근거를 다 제공해 주고, 유유히 경찰서를 빠져 나와 사라지는 진짜 범인. 대표적인 반전영화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1995년작 “유주얼 서스펙트”의 이야기다. 우리들에게 그럴듯한 원인과 결과의 서사를 제공하고, 그래서 처벌하거나 응징해야 할 범인을 정해 주고는, 진짜 원인은 슬그머니 얼굴을 감춰버리고 말지도 모른다. 아니 진짜 원인을 교묘히 가리는 정도가 아니라, 박근혜-최순실 커넥션을 가능하게 한 그 프레임 안으로 우리를 돌려 놓으려고 할 것이다. 만약 우리들의 분노가 아직도 박근혜-최순실의 관계구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향한 깊은 탐색이 진행되지 못하고, 문제를 벗어나기 위한 형식적 절차에 매달린다면, 새로운 비젼 혹은 새로운 대안의 형성은 불가능하다. 결국 분노가 창조적 저항이 되지 못하고, 새로운 가치와 질서를 향한 희망을 만들지 못한다면 시민사회와 대중은 다시 현실과 타협하게 될 것이다.


    아직도 청산하지 못한 과거가 지금 여기서 현실이 되고 있고, 미래가 될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도 마찬가지다. 청산하지 못한 과거에 그 사태의 뿌리가 있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우리가 청산하지 못하면 또 다시 미래가 되어 나타날 것이다. 87년 이후 어느 정도 형식적 민주주의를 진전시켰다는 성취감을 얻었을지는 몰라도, 사람과 사회와 세계에 대한 새로운 비젼을 만들어 내는 일에서는 턱없이 부족했고, 오히려 기성의 보수적 가치와 타협하고 말았다. 그것이 결국 박정희 신화에 기초한 보수정권 재창출의 명분을 제공했고, 박근혜-최순실 커넥션은 그 박정희 신화 혹은 신드롬 안에서 풍부하게 양분을 섭취하며 자라난 괴물이다. 


    박정희 신드롬은 주린 배를 채워주었고 앞으로도 배불리 먹여줄 것이라는 신화다. 배불리 먹여주기 위해서 한 일이기에 유신체제도 정당했다거나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말할 수 있게 해주는 신화다. 말하자면 배를 채우고 채워주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는 신화다. 배를 채우기 위해서라면 권력자에게 기본적인 인권마저도 포기하거나 양도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신화다. 하지만 예수는 정반대였다. 예수는 배불리 먹여주었다고 해서 자신을 왕으로 세우겠다는 무리를 냉정히 뿌리치고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묵묵히 가셨다. 가난하고 굶주린 배를 채워주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한 순간 특정한 사람들만 배불리 먹여주는 것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어떻게 먹느냐에 딸린 문제, 곧 새로운 가치와 질서의 문제다. 예수는 먹여주는 것을 담보로 자신에게 권력을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과는 다른 미래, 곧 먹고 사는 새로운 길을 향해 나아가도록 요구하셨다. 


    아마도 눈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박정희 신드롬의 흉측한 속내는 박근혜 정권이 충분히 보여주었고 지금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박근혜 정권과 함께 박정희 신드롬도 명운을 다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언제 또 어떤 옷을 입고 다시 등장할지 모를 일이다. 아니 지금도 겉옷만 바꾸고 다시 등장하기 위해서, 박정희 대통령이라면 박근혜 같이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말을 너무도 쉽게 하고 있는 것 아닌가? 박정희 신드롬을 지키기 위해서 박근혜를 버리는 수순에 들어갔는지도 모르겠다. 그와 같은 방어 프레임에 걸려 다시 청산하지 못한 과거를 만들지 않으려면, 박근혜-최순실 사태의 근본뿌리를 직시하면서 새로운 대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자세와 지혜가 정말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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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의 내재화, 그 순박한 열정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40년쯤 전 시리아-이스라엘 연합군의 침공으로 유다국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였다.[각주:1]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궁중모반까지 일어났다.[각주:2] 영토는 예루살렘과 그 남쪽 일부만 남았고, 국론은 분열될 대로 분열된 상황이었다. 그때 아하스 왕은 소름끼치도록 냉정한 결정을 내린다. 아들을 제물로 바치기로 한 것이다. 도성 남서쪽의 힌놈의 아들 골짜기 도벳의 성소에서 아들을 불태우는 제사를 지낸 것이다.

"Ahaz the King of Judah" by Otto Elliger (18c 초) 아하스 왕은 재물로 불타고 있는 아들을 보며 절규하고 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아시리아 제국의 디글랏빌레셀 3세가 쳐들어와 다마스커스를 멸망시키고 이스라엘국도 재기불능의 상황으로 만들어버렸다. 이것은 유다국 백성에게 아하스의 피눈물 흘리는 제사를 야훼께서 들어준 사건으로 기억되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이제 유다국은 전례 없는 초고속 번영을 이룩하게 되었다. 아시리아의 침공을 당한 나라들로부터 대거 유민들이 남하한 결과, 산지인데다 척박하여 인구가 적었던 유다국 영토에 새로운 마을들이 속속 건설되었던 것이다. 이 시기에 새로 형성된 것으로 보이는 수백 개의 주거지가 발굴되었고, 도성인 예루살렘의 크기도 15배 이상 늘어났으며, 도성의 인구도 그만큼 증가했다. 하여 이들이 바친 공납물로 왕실 창고가 가득 차게 되었고, 유다국은 번영의 기틀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또한 아시리아의 침공으로 무력화된 블레셋 영토였던 서부 평야지대로 영토가 확장되어 식량생산이 비약적으로 불어났고, 소읍이던 라기스 성은 예루살렘에 필적하는 도시로 발돋음했다. 또 산악지대에서 생산된 올리브를 압착시켜 추출한 기름을 이집트와 아시리아로 수출하는 등 국제무역도 크게 증대하였다. 이제 유다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팔레스티나의 신흥 강대국 반열에 진입하게 되었다.
백성들은 아하스를 칭송했다. 아하스는 유다국의 진정한 군주로 떠받들어졌고, 아하스적 신앙은 많은 이들의 모방의 대상이 되었다.[각주:3]
한데 아하스 시대의 국가의 번영은 동시에 사회의 위기를 내포하고 있었다. 시골에서 대규모 땅을 소유한 부자들이 등장했고, 땅을 상실한 몰락농민들 또한 속출했다. 조정에는 이들 부자들의 대표들이 관료로 들어와 대지주들의 농민들에 대한 무분별한 착취를 두둔하는 정치를 폈고, 농민들의 희생을 대가로 하는 국가의 성공 정책을 추구했다.
그럼에도 대다수 백성들은 아하스를 칭송했던 것이다. 대지주들 또한 왕을 열렬히 환호했다. 대도시의 시민들과 시골 농민 대다수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도 지역의 성소들이 대지주들에게 장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 성소들의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은 대지주들이 낸 기부금으로 생계를 유지했고, 이들 지주들이 낸 제물 덕에 제사도 드릴 수 있었다. 지역의 성소들은 얼마나 화려하고 풍성한 제물로 제사를 드릴 수 있느냐에 따라 위상이 결정되었고 인근의 작은 마을들의 성소를 복속시키는 유력 성소가 될 수 있었기에 대지주들의 기부능력에 점점 의존적이게 되었다. 이런 방식으로 성소의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의 위계질서도 만들어졌다.
또한 성소에서 드린 풍성한 제물은 그 지역에 대한 신의 돌봄의 정도를 결정짓는다고 믿어졌기에 백성들은 자신들의 행운이 대지주들의 기부 덕이라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 여기에는 그런 식으로 신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예언자들과 사제들의 역할이 지대했다.
채 10년도 안 되는 시간이었다. 그 사이 유다사회는 번영의 기틀을 마련했고, 사회 전 영역에서 빈부격차가 크게 벌어지기 시작했으며 대지주들로 구성된 기득권 집단의 보수주의적 체제가 형성되었다. 이것은 강자 독식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아이러니한 것은 그 체제가 백성의 열렬한 지지를 기반으로 하는 체제였다는 점이다.
히스기야 왕이 아하스를 승계했다. 그런데 새 왕은 왕실을 위협하는 세력으로까지 성장한 기득권세력을 견제하면서 왕실 중심적 개혁을 강력히 추진하였다. 그것은 기득권세력과 연동하여 지배체제를 구축했던 선왕의 정책과는 대비되는 것이었다. 한데 공교롭게도 이 개혁의 기반은 선왕이 구축한 풍요한 왕실재정이었다.[각주:4]
히스기야의 개혁은 농민들의 몰락을 막는 조치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야 왕실을 좌지우지하는 대지주들의 세력을 약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하여 왕실의 개혁이 친 서민정책과 맞물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조치들을 백성은 제대로 알 길이 없었다. 중앙의 메시지가 백성에게 전달되는 주된 통로는 지역 성소들인데, 이곳의 사제들과 예언자들은 그것이 야훼의 노여움을 사서 결국 나라를 망치게 할 것이라고 호도했다.[각주:5]
하여 히스기야의 개혁이 성공하려면 백성을 왕실의 지지세력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암하아레츠’, 즉 민중적 농민정치세력이 개혁세력에 가담했다.[각주:6] 그리고 조정에도 귀족출신임에도 개혁을 지지하는 신주류 인사들도 있었다. 하지만 시골의 대다수 농민들은 여전히 아하스와 그 시절 형성된 구 지배엘리트들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던 것이다. 해서 왕실의 개혁은 지역 성소들을 철거하지 않으면 불가능했다. 이것이 히스기야-요시아 개혁이 지역 성소들을 철거하려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했던 주된 이유다.
그러나 히스기야의 29년간의 재위기간 중 후반기는 아시리아의 침공으로 개혁의 기반이 송두리째 붕괴된 시기였다. 서부 평야지대는 인구가 70%나 줄었고 마을 수는 85%나 사라지고 말았다. 하여 왕실재정은 고갈됐고 그 와중에도 엄청난 전쟁 배상금을 치러야 했다.
그리고 왕이 죽자 무려 55년간이나 재위에 있었던[각주:7] 왕 므낫세가 즉위한다. 그리고 이 왕은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히스기야의 개혁 흔적들을 무자비하게 파괴하였다. 이때 므낫세의 정치는 아하스의 방식을 부활시키는 것이었다. 다시 대지주 중심의 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자식들은 땔감을 줍고, 아버지들은 불을 피우고, 어머니들은 ‘하늘 여신’에게 줄 빵을 만들려고 가루로 반죽을 하고 있다. 또 그들은 나의 노를 격동시키려고, 다른 신들에게 술을 부어 바친다. ―「이사야서」 7,18 (작은 따음표는 인용자가 붙인 것임)

이 구절은 므낫세 시대의 강도 높은 반개혁 현상에 관한 하나의 유의미한 특징을 시사하고 있다. 여기에는 한 평민 가족이 벌이는 가족 제사 장면이 스케치되어 있다. 본문에서 ‘하늘 여신’이란 아스다롯(Ashtaroth)을 말한다. 금성의 신으로 이 시기에 아세라(Asherah)를 대신해서 야훼 신의 부인으로 신앙되던 여신이다. 원래 이 여신은 아시리아의 폭풍우의 신 아닷(Adad)의 부인이다. 즉 아시리아가 지배하던 므낫세 치하의 유다국에서 아닷 신과 야훼가 동일시되면서 아스다롯 여신이 야훼 신의 부인으로 숭배되고 있는 것이다. 한데 이 아닷의 별칭이 멜렉이다. 이하스가 아들을 바친 바로 그 신의 이름말이다.[각주:8] 즉 아하스를 칭송한 백성의 신앙이 므낫세의 반개혁의 기틀이었다는 얘기다.

므낫세는 부왕 히스기야의 개혁 세력을 말살하고자 했다.


묘하게도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다. 독일의 저 유명한 <슈피겔>지(Der Spiegel)는 이번 대선을 “독재자의 딸이 인권운동가를 이기다”(Diktatoren-Tochter schlägt Menschenrechtler)라는 카피로 소개하였다. 이런 결과의 이면에는 지배연합을 지지한 무수한 대중이 있었다. 더구나 그 독재의 시대를 살았던 세대에서 압도적인 지지가 나왔다. 또한 지난 MB 정부를 거치면서 기득권세력에게 바닥까지 털려버린 서민층에게서도 대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렇다면 대중은 독재를 갈망하는 것일까? 확신컨대 그렇다고 대답할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심지어 독재자의 딸도 독재자가 아닐지 모른다. 또한 나의 소견으로는 그녀가 독재자가 되려는 의지가 있다고 해도 지금의 사회적 여건으로는 독재정부가 등장하기란 쉽지 않다. 가장 강력한 기득권 세력인 거대자본들조차 독재정부가 자신들의 이해에 유리하지 않다고 볼 것이기 때문이다. 또 군사쿠데타를 일으킬 정치화된 강력한 군부세력도 없다. 미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메이저 보수언론들이나 법률권력, 그리고 보수지식인들도 통제받지 않는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그러면 <슈피겔>의 카피는 단지 과거사를 들먹이는 야유에 불과한 것일까? 나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 독재정부는 불가능할지라도 이번 선거는 대중의 독재정치에 대한 무의식적 욕망을 가득 품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선거 직후 도처에서 보복이 횡행한다. 한진중공업의 자살한 해고노동자도 그런 보복의 희생자였다. 또 다시 징계를 당한 복직 교사들도 마찬가지다. MBC 노조원들에 대한 무더기 징계도 그렇다. 무수한 영역에서 힘을 남용하는 법률적 혹은 탈법적 폭력들이 속출하고 있다. 일인치하의 독재자는 없지만 무수한 독재자들이 법률적 혹은 탈법적 힘을 남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것을 문제로 보았던 민주주의적이고 인권적인 감수성이 퇴조된 현상이 시민사회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아하스에 대한 대중의 열망이 반개혁적 폭력의 체제를 만들어냈던 것처럼, 발전국가 한국을 이룩한 독재자에 대한 대중의 갈망도 민주화 이후 겨우겨우 세워가던 인권의 질서를 곳곳에서 산산이 부수어버리는 결과를 낳고 있다. 대중은 독재의 영성에 취해 버렸다. 독재자가 보여주었던 힘에 대한 그 순박한 열정이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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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기원전 735~734년 경 시리아-팔레스티나의 패권국은 다마스커스를 거점으로 하여 르신 대왕이 다스리던 아람국이었다. 르신(Rezin)은 이스라엘의 베가(Pekah) 왕과 더불어 아시리아 제국의 침공을 막는 시리아-팔레스티나 군사동맹을 주도했다. 한데 이 동맹에 동참하지 않는 소국들 중 아하스(Ahaz) 치하의 유다국이 있었다. 이에 르신-베가 왕이 이끄는 연합군이 유다국을 침공하였다. 이 연합군은 유다국을 거의 멸망 직전까지 몰아갔으나 아시리아의 디글랏빌레셀 3세(Tiglath-pileser III)가 쳐들어온다는 소식에 철군하였다(기원전 734~732). 본문에서 “40년 전”이라는 표현의 시점은 히스기야 왕이 죽고 므낫세 왕이 반개혁 정책을 펴는 어느 시기를 가리킨다. 즉 이 시점은 반개혁의 시간을 상징한다. 그 시점에서 40년 전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본문으로]
  2. 「이사야서」 7,6에 따르면 다브엘의 아들을 왕으로 옹립하려는 궁중모반 사건이 시사되고 있다. [본문으로]
  3. 히스기야-요시아 정부가 자식을 재물로 바치는 제사를 우상숭배로 몰아치는 담론을 적극적으로 유포시킨 것은 아하스 왕의 지지세력을 견제하려는 취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나는 여기서 박정희를 연상하고 있다. 아하스와 박정희, 이 두 인물은 무에서 유를 창출한 인물로 국력을 크게 신장시킨 장본인이다. 동시에 이 둘은 그 성공을 위해 누군가의 희생을 필요로 했던, 아니 적극적으로 그 희생을 활용했던 통치자였다. 그럼에도 백성/국민은 그이들을 칭송해 마지 않았다. [본문으로]
  4. 현대의 많은 국가들의 민주화를 연구한, 폴란드 출신 미국의 정치학자 아담 쉐보르스키(Adam Przeworski)의 가설에 따르면, 사회의 경제적 성장은 그 사회를 민주화로 이행하게 하는 주된 요인이다. 그 경우 전(前) 민주주의적 체제가 축적해 놓은 경제적 기반은 민주화를 위한 제도적 비용으로 활용된다. 한데 흥미롭게도 고대국가인 히스기야의 민중주의적 개혁도 아하스의 귀족주의적 국가가 이룩한 재원을 기반으로 해서 실행될 수 있었다. [본문으로]
  5. 마치 우리사회에서 주류 언론들이 복지가 국가를 망치게 할 것이라고 호도하는 것처럼 말이다. [본문으로]
  6. 고대 시리아-팔레스티나 지역에서 사용된 ‘암하아레츠’에 대한 용례 연구에 따르면 이들은 농민 일반을 지칭한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농경사회가 지역의 대지주에게 예속되어 있으니 이들을 지방토호세력으로 해석했던 종례의 관점도 어느 정도 타당하다. 하지만 「열왕기」에 몇 차례 등장하는 이 용어는 위의 농민 일반을 지칭한다는 용례 해석과는 다르다. 이들은 유다국의 정변 상황에서 등장하며 특히 요시아 개혁의 중심세력의 하나로 묘사된다. 그러므로 「열왕기」의 암하아레츠는 정치화된 농민개혁세력을 의미한다. [본문으로]
  7. 유다국은 물론이고 이스라엘국, 그리고 오랜 식민지를 거친 뒤 수백 년 만에 건국한 하스모니아 왕국이나 헤롯 왕국에도 이렇게 긴 시간을 왕으로 재임한 이는 없었다. [본문으로]
  8. “그는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the Valley of Ben Hinnom)에 있는 도벳(Tophet)을 부정한 곳으로 만들어, 어떤 사람도 거기에서 자녀들을 몰렉에게 불태워 바치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 또 그는, 유다의 왕들이 주님의 성전 어귀, 곧 나단멜렉 내시의 집 옆에 있는, 태양신을 섬기려고 하여 만든 말의 동상을 헐어 버리고, 태양수레도 불태워 버렸다.”(「열왕기하」 23,10~11) 이 구절에서 요시아 왕은 아하스의 제사를 바벨로니아 지역에서 유래였고 암몬의 주신(主神)이기도 한 불의 신 ‘몰렉’ 제사로 해석하면서 우상숭배로 규정한다. 한데 그 다음 구절에서 이것을 ‘나단멜렉’(Nathan-melech)이라는 인물과 연계시키고 있다. ‘멜렉’은 「열왕기하」 17,31에 나오는, 불에 태운 인신재물을 받는 스발와임(Sepharvaim, 아시리아의 지명)의 신 아드람멜렉(Adram-melech)과 관련된 구절로 보인다. 즉 나단멜렉은 아시리아의 아드람멜렉 신과 관련이 있는 아시리아의 내시인 것이다. 여기서 아드람은 아닷 신(Adat)을 가리킨다. 즉 멜렉은 이 시기에 아닷을 가리키는 호칭인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요시아 왕실은 이 구절을 통해 말렉을 몰렉(Molech)과 동일시하면서 말렉에 대한 모독을 꾀하고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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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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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3.29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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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에 대하여

강창헌
(신앙인아카데미 사무국장)


성직자나 수도자가 그 신분을 버리고 세칭 ‘환속’했을 때, 우리는 보통 “옷을 벗었다.”는 표현을 쓴다. 어디 성직자나 수도자만 ‘옷’을 입고 벗겠는가마는, 어떻든 이 표현에는 성직이나 수도직이 하나의 ‘옷’이라는 인식이 담겨 있다. 사실 우리도 옷을 단순히 입을 거리로만 인식하기보다는 지위를 나타내거나 멋을 표현한다고 여기기에 기왕이면 ‘좋은 옷’을 입으려고 한다. 좋은 옷이 어떤 옷인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고 논란의 여지가 있겠으나, 그것의 가장 기본적인 요건은 아마도 자기에게 맞는 옷인가 하는 것일 게다.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도 결국에는 알몸의 상태로 와서 자기에게 맞는 ‘옷’을 찾는 과정이며, 종국에는 그 옷의 주인인 육신이라는 옷을 벗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할 수 있다. 어찌된 영문인지 좋은 옷에 열광하는, 이른바 문명사회일수록 동시에 알몸에도 환장하는데, 아마도 이것은 ‘좋은 옷’이라는 포장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인간 욕망의 반영일 것이다. 옷은 아무리 좋아봐야 옷일 뿐이며, 아무리 소중하다 해도 그것은 언젠가 벗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옷을 위해 몸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몸을 위해 옷이 존재하는 것이다. 모든 옷의 기원과 종착지는 알몸이다.

오늘날에는 성직자들이나 수도자들이 입는 옷 속에서 청빈을 읽어내기가 쉽지 않지만, 알다시피 그들의 옷이 가리키는 바는 겸허함과 가난이었다. 천주교 사제들이 입는 검은 수단은 자신의 봉헌과 죽음을 의미하며, 수도자들의 수도복에는 청빈의 의미가 담겨 있다. 이러한 사정은 불교의 경우에도 별반 다르지 않은데, 스님들이 입는 가사는 본래가 똥걸레라는 뜻이다. 사람들이 옷을 입다가 떨어지면 기워 입고, 그 다음에 걸레로 사용하다가 더 이상 걸레로도 사용할 수 없게 되면 똥을 닦아서 버렸는데, 초기 수행자들이 그런 것을 주워서 기워 입었던 게 가사이다. 역설적이지만, 몇 십 만원을 호가한다는 가사는 본래 무소유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맥락을 고려해보면, 아무래도 오늘날 종교인들이 입는 옷은 종교의 본래 의미를 왜곡하고 포장해버리는 기득권자들의 도구로 전락해버린 것만 같다. 종교인들의 옷에서 묻어나는 어떤 특권이나 차별성은 종교의 타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는데, 종교인들의 옷만큼 “존재를 배반한 삶”을 잘 보여주는 예도 별로 없을 것이다. 하기는 그렇게 비싼 옷을 걸치고 있으니 옷을 벗어 알몸으로 세상과 만나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닐 터이다. 거룩한 장소에서만이 아니라, 예토(穢土)에서도 ‘신발’을 벗는 겸허한 종교인을 만나기란 이제 영영 틀려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김수환 추기경이 육신의 옷을 벗은 지 한 달이 지났다. 명동성당과 추기경이 묻힌 성직자 묘지에는 그를 추모하는 발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추모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추기경을 따라서 장기를 기증하겠다고 서약한 사람이 급격히 늘었고, 천주교회의 예비자들도 많이 늘었다고 한다. 국장을 방불케 했던 추기경의 장례식에 이어 엄청난 추모예식과 그에 따른 천주교회의 ‘성공’ 소식을 접하고 있자니, 천주교 신자로서 불편한 마음이 쉬이 가시지 않는다. 추기경에 대한 평가는 역사와 하느님께서 알아서 하실 일이지만, 그를 추도하는 방식이 꼭 앞에서 이야기한 종교인의 ‘옷’과 빼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죽은 자와 산 자에 대한 예의는 과연 지켜질 수 있는 것인가?

정황이야 어떻든 결과적으로 추기경의 죽음에 대한 기념은 용산 철거민들이 당한 죽임을 덮는 데 크게 작용했다. 기념은 죽임을 상당부분 은폐시켜 주었다. 천주교회가 추기경의 죽음을 통해서 좋은 이미지를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고 장례를 성공적으로 조성해가면서, 그리고 그의 죽음을 이용해 사람들의 기억에서 용산참사를 제거하려는 시도들 앞에서, 용산에서 희생된 철거민들은 점점 빠르게 잊혀져갔다. 초호화판 거대 신전을 짓기에 앞서 정부와 토건재벌과 용역깡패가 철거민을 상대로 벌인 우발적(?) 희생제의는 너무도 쉽게 망각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이러한 기념과 망각을 통해서 이득을 보는 이들은 누구일 것인가? 그들은 장례식에서 예를 갖춘 다음 뒤돌아 나와서 음흉한 웃음을 짓고 있다.

추기경은 박정희의 장례식장에서 “이제 대통령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주님 앞에 선 박정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기도를 남겼다고 한다. 이 기도문은 추기경 자신을 포함해 ‘옷’을 걸치고 살다가 간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기도이다. 우리도 그를 따라서, “이제 추기경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알몸’으로 주님 앞에 선 김수환을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기도드릴 수 있을 것이다. 추기경과 용산에서 죽임을 당한 철거민들은 이제 옷을 벗고 알몸으로 그분 앞에 서 있을 것이다. 알몸으로 그분 앞에 서 있는 그들의 마음, 우리의 가련한 마음은 아마도 시인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여행을 떠나듯
우리들은 인생을 떠난다.
이미 끝난 것은
아무렇지도 않다.

지금,
이 시간의 물결 위
잠 못들어
뒤채이고 있는
병 앓고 있는 사람들의

그 아픔만이
절대한 거.” (신동엽의 금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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