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환의 시대유감

사용자 삽입 이미지박태식
(대한성공회 장애인센터 '함께사는세상' 지도신부)


달포 전에 안경환 교수의 『시대유감』(라이프 맵, 2012)을 선물 받았다. 진부한 표현이기는 하나, 정말 따끈따끈한 책이었다. 갓 출판된 까닭에 따뜻한 감촉이 표지에 남아있기도 해서였지만 글 하나하나 읽을 때마다 시대의 소리가 귀에 살아 들어왔기 때문이다. ‘아, 그래서 이런 일이 있었던 거구나!’ 라며 무릎을 친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게 책장을 넘겨가며 시대를 들춰보니 마지막 장에 도달했을 무렵엔 어느덧 나도 상당히 유식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얻은 지식을 모임자리에서 한두 가지 풀어 놓으면서 친지들의 경탄에 으쓱해지곤 했다. 『시대유감』은 가히 정보 창고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책이다.
   『시대유감』의 가치는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 책에는 시대를 바라보는 지식인의 날카로운 풍자와 부드러운 연민과 놀라운 통찰이 담겨있다. 안경환 교수가 영화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소제목까지 영화제목으로 달은 것은 매력적인 조치였다. 화양연화, 와호장룡, 초콜릿,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만일 영화를 이미 본 독자로서 소제목과 개연성을 염두에 두고 글을 읽는다면 훨씬 풍부한 감성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한 때 인권의식이 형편없는 나라였다. 기성세대는 모두 공감하는 바지만 국가단결이라든가, 경제발전라든가, 반공방첩이라든가 하는 통치 이데올로기에 밀려 인권의식을 저당 잡힌 상태로 반세기를 살아왔다. 하지만 지난 일이십년간 인권은 양과 질에 있어 괄목할만한 성장을 거두었고 이제는 아무리 초라한 처지에 놓인 사람이라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세상이다. 『시대유감』에서는 우리나라의 인권이 어떤 경로를 거쳐 현재 상태에 도달했는지 그 궤적을 잘 추적할 수 있다. 이 책이 가진 또 하나의 가치라 하겠는데, 저자가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직하면서 쌓았던 풍부한 경험이 표출된 결과로 보인다.
    요즘 우리나라는 장차 어떤 인물을 대통령으로 선출할지, 설왕설래 수많은 의견들이 오가고 있다. 매번 대통령 선거 때마다 있었던 현상이다. 우리는 흔히 권력을 가진 이는 그에 합당한 인격까지 갖추고 있으리라는 기대를 한다. 아니면 최소한 자신의 권력을 소중하게 다루어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할 책임 정도는 인식하고 있기를 바란다. 지도자의 자질을 윤리적으로 평가한 탓이다. 그런 까닭에 만일 지도자가 권력을 남용하면 인격에 파탄이 났거나 욕심이 지나쳐 본분을 망각했다고 분노하기 십상이다.
    꿈에도 그리는 사심 없는 지도자! 영국 정치학자이자 철학자인 토마스 홉스는 그런 지도자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못을 박는다. 홉스는 힘을 과시하려는 욕구가 인간의 본능이며 이를 통해 일종의 안정감을 부여받고 그 안정감을 발판으로 새로운 도전에 맞서는 힘이 주어진다고 한다. 자기 개발에 있어 권력이 갖는 긍정적인 측면이리라. 그러나 만일 권력을 쥔 자가 그 힘을 한번쯤 사용해보고 싶은 게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본능이라면 지도자 개인에게 거는 윤리적 기대는 일찌감치 접는 게 옳지 않을까?  
    본성으로서 무한 권력을 추구하는 지도자의 욕심을 제한하는 도구는 성숙한 시민의식뿐이다. 그리고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는 방법은 권력에 대한 끝없는 감시와 견제다. 남의 손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는 객체에서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주체로 탈바꿈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민주시민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끝없는 교육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투표는 민주사회의 주인이 되는 교육과 훈련이다. 선거는 최선이 아니라 차악을 뽑는 의식이다. 자신이 나라의 주인이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105쪽)는 저자의 지적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많이 알았고 많이 배웠고 많이 생각했다. 이 시대를 가늠할 수 있는 지침서로 『시대유감』을 추천한다.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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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육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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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식
(대한성공회 장애인센터 '함께사는세상' 지도사제)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는 말을 주변에서 종종 듣는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경우는 과연 어떤가?

필자의 제자 한 사람이 모 고등학교의 선생님으로 있는데 학생 중 하나가 유난히 말을 안 듣고 수업시간에도 딴청을 부리기 일쑤였다고 한다. 나무라다 지친 선생님이 도대체 네 부모님은 너를 어떻게 키웠는지 모르겠으니 상의를 해보게 전화번호 좀 알려달라고 했단다. 사실 그 정도 되면 덜컥 겁이 나면서 ‘선생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 테니 제발 용서해 주세요.....’ 그렇게 꼬리를 내려야 정상 아닌가? 그런데 사과는커녕 요 맹랑한 녀석이 ‘저도 선생님의 부모님이 선생님을 어떻게 키웠기에 이 모양인지 알아보게 부모님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고 맞받아치더란다. 아마 주변의 친구들 앞에서 우쭐한 기분에 그랬을 테고 여선생이라서 얕잡아 보았을 가능성도 있지만, 아무튼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 선생님은 한 가지 이야기를 또 해 주었다. 체육시간에 시험을 보는데 어느 여학생이 선생님에게 와서 사정이 있으니 순서를 앞당겨 달라고 부탁했다. 형평의 원칙상 그럴 수 없다고 했더니 여학생이 돌아서면서 선생님 들으라는 듯 쌍 시옷이 들어가는 육두문자를 내뱉었고 화가 치민 체육선생님은 출석부로 여학생의 머리를 한 대 쳤는데, 여학생이 즉시 선생님의 뺨을 때렸다고 한다. 이게 무슨 일인가? 많은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선생님에게 엄청난 모욕을 주었다는 뜻 아닌가?

과연 선생님은 이 같은 상황에서 어떤 반응을 보여야 제자들에게 교육적인 효과를 줄 수 있을까? 같이 맞받아쳐야 하는가, 교무실로 따로 불러야 하는가, 아니면 다른 쪽 뺨까지 내밀어야 할까?


‘자녀를 키우면서 가장 바라는 게 무엇입니까?’ 하고 물어보면 아마 대부분의 한국 부모들은 ‘공부 좀 잘했으면 좋겠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몸 튼튼 운동도, 머리 튼튼 독서도, 교양 튼튼 봉사도, 다 부질 없는 짓이고 오로지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용서받을 수 있다. 자식이 설혹 맘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더라도 일단 공부부터 하게 만들자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할아버지가 오랜만에 손자 얼굴을 보기위해 방문했어도 마침 손자가 학원에 가는 길이라면 할아버지는 쓸쓸히 발걸음을 돌려야 하는 게 요즘 이치다. 아니면 며느리의 세모눈을 견디면서 손자가 돌아오는 새벽 1시까지 기다리고 있던지.......

사실 공부에 대해 이 정도 열의를 갖고 있으면 우리나라가 매년 노벨상을 도맡아놓고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실은 무척 다르다.

‘구약성서의 이해’라는 과목을 강의 했던 적이 있다. 기말시험에서 어떻게 하면 창조적인 답안을 유도할까 싶어 다음과 같은 문제를 냈었다.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에게 신앙의 조상이자 민족의 조상이다. 이 한 문장을 30문장으로 늘여보시오.” 그랬더니 대혼란이 발생했다. 혼란의 발생을 어떻게 알았는가 하면 답안지의 수준이 최악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지루하게 반복한 경우도 있고, 불과 열 문장을 못 채운 경우도 있었다. 아마 “아브라함이 이스라엘 역사에서 갖는 다섯 가지 의미를 나열하시오.”라는 문제를 냈으면  비교적 양질의 답안지들이 제출되었을지 모른다. 사실은 같은 문제인데 말이다.

성적을 학교에 제출한 다음 날 어느 남학생이 손 전화를 걸어왔다. 자신이 C+를 맞은 이유가 몹시 궁금하니 교수님이 답안지를 찾아 자신의 잘못을 하나하나 짚어준 후 어떻게 하면 앞으로 좋은 점수를 맞을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자세히 써서 이메일로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어, ‘도대체 누가 교수인가? 자네인가 나인가? 그런 일은 절대 할 수 없다네!’라고 답을 했더니 ‘다음 학기에 군대를 가니까 군대 갔다 와서 다시 보자’는 말을 남기고 그 학생은 전화를 끊었다. 그런 통화가 있은 지 2년이 지난 요즘은 슬슬 겁이 나고 있다.


얼마 전부터 정부의 학원 정책이 오락가락하고 있다. 학생에겐 혼란을, 일선교사에겐 낙담을, 학부모에겐 분노를, 학원에겐 희소식으로 다가오는 정책들이다. 하지만 진짜 겁나는 일은 교육현장이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혼란에 빠진 상황이다.

학생들의 윤리의식이 통째로 사라지고 있다. 최소한의 예의나 스승에 대한 존경이나 청소년으로서 가져 마땅한 겸양의 덕은 ‘대학부터 보내놓고 이야기하자.’는 입시논리에 파묻혀 버리고 말았다. 심지어 “어차피 교실에서 잠이나 자는 게 공교육이라면 잠이라도 실컷 자게, 아예 공교육을 밤에 하고 사교육을 낮에 하면 어떻겠는가?”라는 제안마저 나오고 있단다. 거꾸로 가는 교육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예다.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 청소년 시절에 심하게 망가지면 회복불능이라는 사실을 빤히 알면서도 대학 이후로 모든 것을 미루어 넘긴 학부모거나, 학부모들을 부추겨 가능한 한 복잡한 교육구조를 부채질 한 사교육 학원이거나, 사교육 현장에 끼어들어 줏대 없이 흔들리는 정부거나, 자신도 할 말 있다며 일선행정에 나선 대통령이거나, 아무튼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언젠가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에서 배워야 한다.’고 미국 교육계에 으름장을 놓은 적이 있다. 그 양반 한국의 교육현실을 몰라도 한참 모르기에 그런 소리를 한 것이다. 2009년 7월 현재 우리 교육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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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7.08 20:1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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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신부님. 저는 성공회 교회를 다니고 있는 평신도입니다. 신부님께서 쓰신 특히 성공회신문에 연재하시는 성서이야기들을 진지하게 잘 읽고 있는데, 이렇게 제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 웹진에도 글을 올려주시니 반갑습니다.
  2. 김근옥
    2009.07.16 21:56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교육의 미래를 염려하시는 글, 잘 읽었습니다. 하지만 신부님의 글을 읽으면서 학생들의 태도도 잘못되고, 그런 상황을 겪은 선생님들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두 분 선생님의 경우 접근방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의 잘못을 부모님과 상의하는 것은 좋지만 "네부모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지... " 그런 식의 표현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체벌, 일면 필요하기도 하지만 여학생의 머리를 출석부로 때리는 일 또한 학생에게 심한 모욕감을 줄 수 있는 일이므로 역시 다른 방법으로 학생을 지도하셨어야 되지 않을까 싶네요. 성적 때문에 전화를 걸어 온 학생 역시 그의 요구가 잘못된건지 잘 이해가 안되네요. 태도가 얼마나 불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e-mail comment가 본인의 교수방법이 아니라면 기분이 좀 언찮으셨다더라도 '권위'를 앞세우시는 듯한 표현보다는 그것이 본인의 option이 아니라는걸 말씀하시는게 훨씬 낫지 않았을까 싶고... 저도 사십대 중반으로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니 아무래도 아이보다 어른들의 입장을 이해하는게 쉽고. 요새 애들 무섭다는 소리도 많이 듣기도 했고 위와 같은 상황에서 감정처리가 쉽지 않다는 걸 알지만 예로 드신 학생들이 잘했다는게 아니라 선생님들께서도 이제는 좀 다른 방식으로 학생들을 지도하셔야 되지 않을까 싶어 조심스럽게 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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