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의 출발점이자 종교간 대화로서의 반유대주의




이해청
(성공회대 박사과정 / 탈식민성서해석학)

 


     해석의 사전적 의미를 뒤지면, 문장이나 사물 따위로 표현된 내용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일이라고 되어 있다. 또한, 텍스트는 기호 가운데 특히 구어/문어 등의 언어로 이루어진 복합체를 뜻하는 것으로 나온다. 따라서 텍스트와 해석을 합치면 언어로 표현된 내용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인간의 활동쯤 될 것 같다. 그리고 텍스트와 관련한 해석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로 취급될 수 있다. 하지만 이때의 텍스트란 좁은 의미에서 정의된 것이다. 좀 더 넓은 맥락, 즉 문화연구의 개념을 통해 본 사전에서 텍스트 개념은 이데올로기 분석 연구, 수용 연구, 또는 담론 분석 연구 등과 관련해 정의되고 있다. 다시 말해, “문화연구에서 텍스트 분석을 통해 텍스트가 어떤 방식으로 이데올로기를 재현하는지에 대한 연구와, 텍스트에 대한 수용 연구, 즉 하나의 텍스트가 해독될 때 독자는 그 텍스트와 어떻게 상호작용하거나 교섭하는지에 대한 연구 등에서 텍스트라는 용어는 빈번히 사용”[각주:1]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텍스트와 관련한 해석은 그리 간단치 않다고 할 수 있다. 텍스트도 해석도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하나의 사물로 덩그러니 놓여 있지 않은 셈이다. 마지막으로, 타자란 자기 이외의 사람 또는 다른 것이라고 나온다. 하지만 타자 역시 하나의 사물처럼 그저 그렇게 놓여 있지 않다. 현상학은 이 문제를 처음으로 중요한 주제로 부각시켰는데, 후설에게 타자란 세계를 구성하는 하나의 지향적 대상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고유한 지각 영역에 속하는 나의 신체와 유사한 하나의 물체'로서 만약 내가 거기에 있게 된다면'이라는[각주:2]”식으로 파악되고 있기에, 그에게 타자란 자아와 유사한 존재 내지는 그 변양태에 지나지 않았다. 즉, 타자가 주체에 의해 언제든 처분될 수 있는 존재로 나타나 있는 셈이다. 이와 달리, 하이데거에게 타자란 단순히 눈앞에 있는 존재이거나 내가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타자는 나처럼 살아 움직이는 존재인 것이다. “나처럼 현존재이며 세계-내-존재로서 도구적인 것을 둘러보는 가운데 고려하며 실존”[각주:3]하고 있다. 때문에 “현존재의 세계는 공동 세계이고, 이 공동세계 속의 우리는 서로 타자이지만 동시에 공동 현존재(Mitdasein)”[각주:4]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므로 텍스트, 타자, 해석을 묶어 하나의 주제로 고찰하는 일은 그리 간단치 않다고 할 수 있다. 텍스트라는 문제 하나만 고찰해도 버거운 일인 것을 텍스트, 타자, 해석을 묶어 하나의 일관된 주제로 고찰하는 일은 어쩌면 무덤을 파는 행위인지도 모른다. 때문에,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아드소처럼 “나는 나 자신에게 유물의 파편에서 떠오르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 때 있었던 이 일련의 사건과 그 사건을 연결하는 시간 사이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 아니,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이야기를 되풀이하면 할수록 나는 여기에서 멀어져 가는 것 같다. 죽음의 문턱에 이른 늙은 수도사에게 제가 쓴 글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많은지 적은지, 있는지 없는지 그것도 모른다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다.”[각주:5]라고 고백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주제를 뽑은 것은 이것이 기독교의 역사에 매우 흥미로운 화두거리를 던져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유대인/교 문제다. 알다시피, 기독교에서 유대교는 해결할 수 없는 타자였다. 그것도 신의 아들을 죽인 살해자이자 개종을 거부하는 타자였다. 그렇기에 중세에 유대인은 악마나 사탄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하지만 홀로코스트 이후 이러한 사태는 변해왔고 마침내 지난 10일 바티칸은 가톨릭은 유대교인을 개종시키려 들지 말라고까지 선언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일까? 한때는 악마나 사탄으로까지 이해되던 인종/종교가 어떻게 개종대상이 아닌 인종/종교로 바뀔 수 있었던 것일까? 정말 우리가 가진 종교 텍스트, 즉 경전인 신약성서는 유대인을 개종대상이 아니라고 혹은 사탄의 자식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을까? 그러니까 어제까지는 살인자 및 사탄이라고 외치던 것에서 오늘에는 개종대상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 현상을 성서라는 기독교 텍스트에 근거해 볼 때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사실, 이 문제는 카톨릭에선 그리 심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카톨릭은 ‘오직 성서만으로’라는 프로테스탄트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듯, 카톨릭에선 성서 이외에 교회의 전통이 또 하나의 중요한 덕목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오직 성서만으로’라는 논제를 금과옥조처럼 받드는 개신교에서는 심각한 도전일 수 있다. 왜냐하면 근대에 시작된 개신교는 다른 어떤 종교보다도 우선적으로 책의 종교로 등장했고, 그것도 우선적으로 문자적으로 이해해보고자 노력한 종교이며, 그렇기에 텍스트적인 종교적 인간형을 산출해낸 특이한 종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텍스트적 인간형은 홀로코스트를 산출하는데 결국 일조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한 예로 미쓰오의 말을 들어보자.[각주:6] 


 사실 영향사적으로 봤을 때 예를 들면 마태복음 23장은 중세 말까지는 상대적으로 거의 미지의 텍스트로, 수사본에 기반을 둔 성서 기사의 영향력도 한정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활판 인쇄가 시작되었던 16세기 이후 성서가 광범한 독자를 얻게 되면서 기독교적 바리새파상이 각인되어 갑니다. 유럽 각국의 언어에서 바리새적=위선적이라는 관용어법이 일반화되기에 이릅니다. 이러한 바리새파의 모습이 현대 유대교의 조상으로서 이해되어 근대 이후의 시민적=기독교적 반유대주의와 결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한데 이러한 상황은 단지 서구에만 해당되는 일일까? 다시 말해, 서구는 반유대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반면 서구 이외의 지역은 상관없는 그러한 일일까 하는 점이다. 전혀 그렇지 않다. 흥미롭게도 노만 콘은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뼈아픈 지적을 한 바 있다.[각주:7] 


     절멸적인 반유대주의가 맹렬히 불타오르는 현상은 대중이 유대인이라는 존재가 그들 이외의 인류를 섬멸하고 지배하고자 획책하는 집단적인 악의 화신이라고 상상하는 경우로만 한정된다. 이런 종류의 반유대주의는 유대인이 현실 생활에서 수행하고 있는 사회적 역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실제로 이러한 반유대주의는 한 번도 유대인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 수백 년도 전에 유대인이 사라진 나라들에서도 출현한다. 


     그렇다. 실제로 이러한 일은 일어났다. 일본의 일유동조론은 그 한 예다. 타츠루는 “언제 유대인을 일본에 출현하게 됐는지, 우리는 그 날짜까지 알 수 있다. 그럼 소개하겠다. 일본에 유대인을 존재하게 만든 사람은 스코틀랜드인 선교사 노먼 매클러드라는 인물이다. 그는 일본에서 행한 현지 조사의 결과 일본인은 유대인의 잃어버린 10부족의 후예라는 기상천외한 설을 1875년에 발표했다. 이것이 그 후 현재까지 전해지는 일유동조론의 기원이 되었다.”[각주:8]라고 말한다. 이것은 유대인이 현실 생활에서 수행하고 있는 사회적 역할과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출몰한다고 지적한 콘의 말을 정확히 대변해주고 있지 않는가. 그래서 타츠루도 “낮과 밤, 남과 여, 평화와 전쟁, 이러한 대립은 그 밖에도 얼마든지 열거할 수 있습니다. 이런 대립은 현실적인 세계로부터 도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대립은 현실 세계에 골격과 축과 구조를 부여하고, 현실 세계를 조직화하고, 인간에게 현실이 존재하게 하고, 그 속에서 인간이 스스로를 다시 발견하게 만드는 그러한 대립입니다.”[각주:9]라는 라캉의 말을 적용해서, “유대인과 비유대인이라는 대립은 현실적인 세계로부터 도출할 수 있는 대립이 아니다. 반대로 이 대립은 현실 세계에 골격과 축과 구조를 부여하고, 현실 세계를 조직화하고, 인간에게 현실이 존재하게 만드는 대립이다.”[각주:10]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타츠루의 책을 번역한 역자 박인순의 말은 더욱 흥미롭다. 왜냐하면 이렇게 적고 있기 때문이다.[각주:11] 


     북왕국이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에게 멸망당하면서 10부족은 아시리아로 끌려가 나머지 2부족에 의해 잃어버린 10부족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기록이 남지 않아 이들의 행방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난무하게 되었다. 10부족의 일부가 아프가니스탄, 인도, 미얀마, 중국, 일본, 한국, 영국, 미국, 스키타이, 아프리카 등으로 이동했다는 설이 대표적이다. 


     10부족의 일부가 이동했다는 지역으로 언급되고 있는 지역 가운데 우리나라가 들어 있다. 그리고 잃어버린 10부족 중 하나인 단지파가 바로 한국이라고 주장을 하는 이들이 실제로 있다. 들어보도록 하자.[각주:12]  


     삼성기 하편에 의하면 환국의 12국 중 하나인 수밀이국은 단군 족, 곧 백두산족의 일파이다. 기독교의 12지파 중에 단지파가 있다. 체형, 언어, 생활습관이 수메르인과 이스라엘인과 한국인이 유사하다이스라엘이 말하는 선민(選民)은 그 뜻을 선택받은 민족으로 해석하고 있으나 원어는 chosen people로써 말을 그대로 해석하면「조선 사람」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단군 민족이라는 의미다. 세계를 방황하던 이스라엘이 유엔에 청원할 때 만주를 달라고 했다고 한다. 고향이 그리웠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인 아브라함은 수메르 인으로써 함께 천신제(天神祭)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한민족과 이스라엘의 동질적 역사와 문화(文化)를 보면 너무나 유사점이 많이 있다. 


     이러한 말은 분명 누가 봐도 말이 되지 않는 주장이다. 너무나 허무맹랑하여 정신병자가 지껄이는 말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관심을 두고 봐야 하는 것은 이 말이 전하고자 하는 의도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그러니까 “일본인이 이 가상의 유대인을 반복하여 호출하는 까닭은 자신들의 사정 때문이었다. 일유동조론부터 시오텐의 반유대주의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에 공통된 점은 국민국가의 정치적 위기와 국민적 정체성의 동요라는 두 가지 정치적 요인이다.”[각주:13]라는 타츠루의 말을 참조했을 때, 왜 이러한 일이 우리나라에도 일어나는지를 한번쯤은 검토해봐야 한다는 점이다. 일단 지금까지 살펴본 주장, 즉 실제의 유대인이 거의 없는 지역에서 일어난 유대인에 관한 생각들이 반유대주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하고 물을 수 있다. 이에 대해 타츠루는 따끔하게 지적하고 있다. “반유대주의란 꼭 유대인을 배척하라는 명시적인 박해운동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유대인이 일종의 국제적 네트워크를 매개로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설사 현실적인 상황에서는 유대인에 대해 친화적인 태도나 경의를 표한다고 해도, 반유대주의자와 기본적인 세계인식의 도식을 공유한다는 말이다.”[각주:14]라고 말이다. 경제적 성공을 위해 유대인의 지혜를 배우자는 한국 개신교인들의 뜨거운 반응은 성서를 통해 예수를 살해한 사람이 유대인이라고 말해야만 하는 자신의 신앙적 고백과 모순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상기하면 이러한 지적은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어쩌면 한민족이 단지파라는 망상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막강한 힘을 가진 유대인의 기원이 바로 한민족이라고 말함으로써 우리 민족이 가진 힘을 역설하고자 하는 욕망일 것이다. 따라서 유대인에 대한 긍정적 인식은 유대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맞닿아 있는 야누스적 얼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반유대주의는 유럽 및 비유럽을 가리지 않는다는 콘의 지적은 꽤 타당한 것처럼 보인다. 특히, 텍스트적 인간형의 유산을 이어받고 있는 개신교인들에게는 더더욱 그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타츠루가 지적한 것처럼 비유럽 지역의 나라들이 처한 위기와 관련해 유대인이 해석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현실 속 유대인이 아니라 텍스트, 특히 신약의 복음서에 박힌 고정된 전혀 변함이 없이 책을 뒤지면 언제나 특정한 타입으로 등장하는 유대인이 복음서를 읽는 독자가 처한 특정한 상황과 맞물려 어떻게 읽혀지고 있는지를 해석해낼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불행히도, 유럽의 역사에서 유대인은 언제나 약탈하는 경제적 인간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베니스 상인의 샤일록은 그 한 예이다. 사실, 고리대금업자로서의 샤일록은 우연히 탄생한 인물이 아니다. 오한진의 지적을 참작하면, 고리대금업자로 유대인이 등장하는 맥락은 반유대주의와 결부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3세기 이후부터는 유대인들이 고리대금업을 하고 있다는 비난이 점증되었고, 페스트 전염으로 인한 대량사망이 유대인들의 인신제물죄로 유포되면서 유대인들에 대한 적개심은 날로 커져갔다. 그리고 이러한 비난들이 유대인과 적대시하고 있는 승령들이나 신분 낮은 로마카톨릭 성직자들에 의해 설파되고 있었기에 일반 국민들에게는 쉽게 전파되었다.”[각주:15] 약탈하는 경제적 인간으로서의 유대인은 유럽의 역사에서 언제나 하층민에게 불쾌한 반응을 일으켰고 하층민이 돈을 갚지 못할 상황에 이르면 유대인을 폭력으로 응수했다. 이러한 일이 중세 유럽에만 일어났었던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토브는 21세기에도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것도 미국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말이다. “반유대주의자는 흑인과 백인 실업자, 노숙자, 빈민, 하층계급, 엘리트 코스에서 탈락한 중산 계급의 사회적 불만을 희생양인 유대인에게 향하게 만들어 피해 간다. 엘리트들은 반유대주의적 폭력을 저지하기는커녕 유대인, 흑인, 빈곤층 백인 등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괴리의 심화에 가담한다. 그들이 단결하여 엘리트들에게 반격해 오는 것을 막기 위한 고전적인 분열 통치의 룰이다.”[각주:16] 한데, 이처럼 통치엘리트의 분열전략으로 반유대주의가 사용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정의를 위해, 가난한 자를 위한 싸움을 위해 혹은 아나키즘을 위해서도 반유대주의는 동원될 수 있다. 다시, 타츠루의 말을 들어보도록 하자. 


     내가 반유대주의자의 저작을 읽고 알게 된 사실은 그 사람들이 꼭 사악한 인간이거나 이기적인 인간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오히려 신앙심이 깊고, 박식하고, 공정하며, 불의를 격렬히 증오하고, 탁상공론을 싫어하고, 싸움의 현장에서 도망치지 않으며, 자신의 주먹에 사상의 무게를 주저 없이 거는 수컷 농도가 짙은 인간이 자주 최악의 반유대주의자가 되었다. 단순한 반유대주의자=인간의 탈을 쓴 악귀라는 설에 기댄다면 분명 역사 기술은 간단해진다. 그러나 거기에 머문다면 지금도 존재하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존재할 인종차별이나 민족차별이나 제노사이드라는 재앙을 막을 수 없다. 


     이러한 지적들, 13세기부터 시작된 약탈하는 경제적 인간으로서의 유대인이라는 것에서부터 불의를 격렬히 저항하며 기꺼이 해방을 도모하는 인간이 반유대주의자일 수도 있음을 말하는 이런 지적을 복음서를 통해 해방을 역설하고자 하는 여러 착한 학자들의 담론과 포개어 놓는다면 어떤 밑그림이 그려질지 궁금해진다. 물론, 이들이 반유대주의자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 자신이 실제적으로 유럽이 반유대주의자들 소굴임을 알지만 그럼에도 텍스트에 나타난 유대인의 이미지를 국가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해방의 담론에 적용코자할 때 자기도 모르게 걸려드는 반유대주의의 여러 유형들, 그것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간에 무의식적으로 접속하게 되는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지적은 무슨 일이 있든지 간에 유대인은 용서받아야 마땅하다는 식의 논지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러니까 유대인이 홀로코스트를 겪었기에 팔레스타인들에 대한 현대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탄압은 눈감아줘야 한다는 식의 발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점이다. 한 예로, 사이드는 이와 관련해 이미 옳게 지적한 바 있다. “레온 폴리아코프는 아리안 신화를 쓴 사람입니다. 가설에 불과한 인도-유럽어족의 특징으로 상정된 석과 이른바 아리안족이라는 관념과 인종주의 사이의 공생관계를 연구해 왔습니다. 그러나 폴리아코프는 유럽에서 셈족을 유대인뿐만 아니라 무슬림까지도 가리키는 말로 쓴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당면 목표와 어울리지 않는 현실에는 눈을 슬쩍 감아버리는 것이 요즘 지식인들의 유행인 모양입니다. 참 아이러니한 것은 폴리아코프의 책이 인종 이론을 공격하면서도 중동 사람과 셈족을 한 데 묶어 말하는 것이 얼마나 광범위한지를 보여줄 역사는 생략한다는 점입니다.”[각주:17] 오히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사이드가 이슬람과 관련해 말한 바가, 다시 말해 서구인들이 이슬람에 대해 가진 스테레오타입적인 이미지가 유대인에 대해서도 적용된다는 점이다. 들어보도록 하자.[각주:18] 


     다른 문제는 이런 것입니다. 대부분의 동양학 연구에서는 아랍 문학을 아주 조금씩만 다룹니다. 아니면 아랍인의 생활을 보여주는 예로만 살짝 다룹니다. 이것은 오리엔탈리즘에서 가장 주목해 볼 만한 부분 중 하나입니다. 제가 오리엔탈리즘을 연구하게 된 것도 이 문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참 재미있는 건, 동양학자들이 아랍을 꾸란의 예시라고 보거나 자신들의 주장이 꾸란에 써 있다는 식으로 말한다는 겁니다. 방법론적으로 보면 이 태도는 미국의 역사를 신약 성서의 예시라고 보는 것과 비슷합니다. 아무도 셰익스피어, 생 시몽 19세기 미국 역사연구를 대신해서 기독교를 연구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동양학에서는 일반화된 일입니다. 


     사이드의 이 같은 지적은 유대교와 관련해 기독교 신학이 저지르는 신학적 논의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데, 수 세기 동안 하나의 스테레오타입적인 전통으로 굳어져서 그런지 몰라도 이것이 괴기한 일인지를 모르고 지낸다. 따라서 신학자의 글들에는 부지불식간에 반유대주의적 서사가 기어들어온다. 언제나 유대교는 하나의 화석으로, 그러니까 2천 년 전의 복음서에 나온 상태로 발전 하나 없이 굳어져버린 하나의 원시적 정신을 가진 존재로 취급되고 만다. 유대교를 정의할 때 현재의 살아있는 유대인들이 무엇을 믿는지가 아니라 고대의 유대교 경전을 통해 현대의 유대인들과 그 종교를 규정해내며, 그렇기에 늘 이들의 종교는 예수를 죽인 자들의 종교로 정의된다. 유대인, 그들의 종교는 복음서가 규정하는 바와 같이 무자비한 종교이고, 노력의 종교이며, 결국 은혜는 거부하는 그러한 종교다. 따라서 기독교적 서사에서는 헤롯과 가야바를 비롯해 심지어 바리새인들까지도 1세기의 민중들의 피를 흡혈귀처럼 빨아먹는 인간들로, 반면에 예수는 이들과는 달리 비록 천출이지만 고귀한 정신의 혈통을 지닌 자유의 아들로 그려진다. 그렇다면 이것은 반유대주의의 새로운 버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일종의 사회학적 틀을 빌린 반유대주의 말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러한 이해를 무엇으로 봐야 할까? 솔직하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더구나 이러한 신학적 해석의 궤도 위에서 예수를 자리매김하고자 한다면, 유대교와의 대화가 과연 가능할까?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네이버 지식백과] 텍스트 (문화연구의핵심개념, 2014. 4. 15., 커뮤니케이션북스) [본문으로]
  2. [네이버 지식백과] 타자 [他者, der Andere, l'autre] (현상학사전, 2011. 12. 24., 도서출판 b) [본문으로]
  3. [네이버 지식백과] 타자 [das Andere, others, 他者]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본문으로]
  4. [네이버 지식백과] 타자 [das Andere, others, 他者]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본문으로]
  5.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하)』, 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1994, p.774 [본문으로]
  6. 미야타 미쓰오, 『홀로코스트 이후를 살다』, 박은영․ 양현혜 옮김, 한울아카데미, 2013, p.56 [본문으로]
  7. Norman Cohn, Warrant for Genocide, London: Eyre & Spottiswoode, 1967, p.252 [본문으로]
  8. 우치다 타츠루, 『유대문화론』, 박인순 옮김, 아모르문디, 2011, p.65 [본문으로]
  9. 우치다 타츠루, 같은 책, p.59 [본문으로]
  10. 우치다 타츠루, 같은 책, p.59 [본문으로]
  11. 우치다 타츠루, 같은 책, p.65 [본문으로]
  12. http://www.dailywrn.com/sub_read.html?uid=5775 [본문으로]
  13. 우치다 타츠루, 앞의 책, p.96 [본문으로]
  14. 우치다, 타츠루, 같은 책, p.75 [본문으로]
  15. 오한진, 『유럽문화 속의 독일인과 유대인, 그 비극적 이중주』, 한울림, 2006, p.30 [본문으로]
  16. Lawrence Taub, The Spiritual Imperative: Sex, Age, and the Last Caste, Clear Glass Press, 1995, p.199 [본문으로]
  17. 에드워드 사이드, 『권력, 정치, 문화』, 최영석 옮김, 마티, 2012, p.58 [본문으로]
  18. 에드워드 사이드, 같은 책, p.6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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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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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 5(일) 한백교회 하늘뜻나누기
본문: 마가복음 11:1~11


혁명에서 일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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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청
(신약학 |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석사과정 수료,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석사과정 수료)

마가복음 11장 1~11절은 전통적으로 교회가 종려주일, 즉 사순절의 여섯째 주일이자 고난주간의 시작을 알리는 본문으로 채택하는 본문이다. 한 마디로 교회는 예수가 예루살렘을 입성하는 시점을 종려주일의 시작으로 잡은 셈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우리는 마가복음11장 1~11절의 각본과 유사한 일련의 일들을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다. 예수가 당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왕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에 사람들은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를 외친다. 이 사람들의 환호는 금방 무엇인가 일어날만한 사건이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 같다. 그러나 마가복음을 자세히 살펴보면 실제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다른 복음서, 예를 들면 마태와 누가에는 예수가 성전으로 바로 들어가 성전을 뒤엎는다. 하지만 마가복음에는 때가 이미 저물어 성전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일종의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진다. 마가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시나리오, 즉 종려주일 날 성전에 들어가 장사꾼들의 판을 뒤엎는 일을 묘사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예수가 예루살렘에 너무 늦게 도착해 아무 일도 벌일 수 없었다는 이상한 이야기를 전한다.

왜 마가는 종려주일 날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을 이러한 식으로 설정했을까? 역사적 예수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는 학자들은 이에 대해 별 말을 하지 않는다. 이들은 어느 날이건 상관없이 성전에 들어가 판을 뒤엎은 것에 만족한다. 그러나 마가에 따르면 성전체제와의 충돌이 교회가 설정한 종려주일 바로 그 날에 일어났느냐 일어나지 않았느냐가 중요하다. 확실히 마가에 따르면 그 날에 일어났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왜? 이것은 나의 판단에 따르면 마가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는 사람들의 환호성이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마태나 누가에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는 말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점은 마가는 자신의 다른 본문에서 예수와 다윗을 엮으려는 시도들에 대해 비판을 가했다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비판은 종려주일 이후에 일어날 일이기 때문에 마가를 처음으로 읽는 독자는 이러한 비판을 알지 못한다. 마가복음 12장 35~37절은 그리스도와 다윗의 자손에 관한 논쟁을 소개하는 장면인데 여기서 예수는 다윗과 자신을 엮으려는 것에 대해 비판을 가한다. 그러나 마가의 이야기를 처음 읽는 독자라도 종려주일 이전에 일어난 베드로의 고백에서 이 점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예수는 당신은 그리스도라는 베드로의 고백을 흔쾌히 받아들이지만 수난을 당한다는 자신의 고백에 대한 베드로의 꾸짖음에 대해서는 불편해 한다. 이러한 비판들을 고려해볼 때 우리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는 사람들의 환호에 대해 마가가 일종의 불편함을 가졌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래서 어쩌면 마가는 그 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설정했는지도 모른다.

이와 관련한 또 하나의 팁은 마가가 유대전쟁 이후에 자신의 글을 쓰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는 점이다. 마가는 자신의 글을 씀에 있어 로마라는 제국의 눈을 의식해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유대전쟁 이후 바리새인들은 로마와 적극적인 화친을 모색하는 방식으로 랍비 유대교를 건설했고 이전의 젤롯당 운동들과의 관계도 거리를 두었다. 마찬가지로 이제 유대회당에서 쫓겨날 운명에 처해 있었고 동시에 로마에 대한 반란죄로 죽은 예언자를 믿는 공동체로 바리새인들에 의해 로마에 고발당할 처지에 놓여 있는 마가공동체도 랍비 유대교의 방식으로 자신의 이전의 전투적인 메시야적 전통들과의 단절이 필요했다. 우리는 이 점을 마가복음 13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13장에서 마가는 적그리스도들이 끊임없이 예수의 이름으로 와서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게 한다는 본문을 제시한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면  앞서 말한 베드로의 고백과 종려주일 예루살렘 입성 때에 사람들의 환호 그리고 그리스도와 다윗의 논쟁에 관한 이야기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보여준다. 확실히 앞서 보았듯이 마가는 다른 복음서들처럼 종려주일에 예수가 성전으로 바로 들어가 성전을 뒤엎는 사건을 전개하지 않는다. 종려주일 그 날 성전에 바로 들어가 성전을 뒤엎는 것은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는 유대전쟁 이전에 예루살렘 군중들이 가졌던 혁명적 메시야에 관한 꿈에 동조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서술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계속 지적했듯이 유대전쟁을 확실히 제압한 로마로 인해 마가는 랍비 유대교처럼 혁명적 메시야 상을 추종하는 자들과 거리를 두어야 했고 그래야만 그의 공동체가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여기서 잠시 마가의 이러한 전략 때문에 종려주일 날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관한 문제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게 별로 없다는 입장을 개진하고 싶다. 역사적으로 종려주일 날 그 날에 예수가 성전으로 바로 들어가 성전을 뒤엎었는지 혹은 그렇지 않았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복음서의 저자들은 각각 자기들 나름대로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서술하기 때문에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그리고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과 관련해 이 입성이 마가의 말처럼 딱 한번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우리는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이와 다른 방향으로 설정되어 있다. 또한 이외에도 당나귀를 타고 입성한다는 시나리오는 구약의 예언서에서 빌려온 모티프이지 실제로 예수가 당나귀를 타고 입성했는지에 관해 우리는 알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몇몇 학자들은 당나귀를 준비해두었으니 그것을 가져오라는 예수의 말은 기적과 예언에 속한 서술이지 역사적 서술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이 마가복음 1장 1~4절에 제시된 것처럼 예루살렘 성전의 주인으로 예수가 사원에 입성한다는 신학적 모티프와 관계된 것이지 역사적 사실과 관계된 문제는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싶다. 다시 말해, 유대전쟁으로 인해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 이후 성전과 관련해 자신의 공동체적 정체성을 새로 설정해야 하는 마가에 의해 설정된 이야기라는 점이다. 마가에 따르면 예루살렘 성전에 입성하는 사원의 주인은 다윗이 건설한 유대인이라는 혈통적 유전적 성격을 나타내는 성전과는 더 이상 관련이 없는 이방인을 포함하는 손으로 짓지 아니한 성전과 관련된 주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마가의 예수는 종려주일 날 이후에 성전에 들어가 뒤엎는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이 일이 이방인의 뜰에서 일어난 것임을 알 수 있다. 물론 나는 마가가 말한 대로 예수가 이방인의 뜰에서 이러한 성전정화 작업을 벌였는지에 대해서도 의심을 품는다. 어쨌든 이러한 역사적 문제와 달리 내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종려주일과 함께 시작되는 마가의 이야기는 대체로 역사적 사실의 문제가 아닌 마가의 신학적 구성물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마가의 이야기에 예수는 유대 문화에 동화된 인물이 아닌 다른 인물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예로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은 유대 전쟁 당시 예루살렘에 입성한 젤롯당과는 다른 입성, 즉 유대교의 정결법과 관련한 최후의 전투를 벌인 입성으로 설정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어쨌든 마가가 이러한 방식으로 예수를 설정했던 이유는 다수의 학자들이 말하듯 마가가 점차적으로 형성되어가는 랍비 유대교와 투쟁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유대전쟁 이후 마가의 이러한 복잡한 상황은 마가로 하여금 로마나 랍비 유대교와는 다른 방식으로 예수에 관한 이야기를 전개하도록 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그로 하여금 중심부에 속한 인물들이 아닌 주변부에 속한 인물들을 끌어들이는 쪽으로 나아가게 했다. 실제로 그가 설정한 이야기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한 사회의 문화적 지위에 기대에 자신의 삶의 정체성을 꾸려나갈 수 있는 중심부적 인물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우리는 마가가 이상적으로 그리는 공동체는 플라톤에게서 나타나는 이상적 인물이 공화국을 통치해야 한다는 명제를 지향하는 공동체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마가가 그리는 공동체의 성격은 플라톤과는 다른 차원, 즉 한 사회의 주된 문화적 권력을 향유하는 계층에서 벗어난 인물들에 의해 구성되는 공동체에 관한 논의라고 할 수 있다. 분명 마가의 이야기는 유대전쟁 때 나타난 젤롯당의 뜨거운 혁명에 관한 이야기도 또한 이 전쟁에 살아남은 랍비 유대교에 속하는 중심부 인물들에 관한 것도 마지막으로 이 전쟁을 지배했던 로마인들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 전쟁 이후 일상에서 삶의 아픔을 겪고 있는 주변부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다시 말해, 마가의 이야기는 유대 전쟁 이후 공동체의 재건을 위해 정결법으로 사람들을 묶어 갔던 랍비 유대교와 제국의 힘을 과시해 자신의 세계를 건설한 아우구스투스의 평화와는 다른 방식, 즉 정결법에서 제외되었거나 제국의 조세를 떠안고 하층민으로 멸시받고 살아야 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공동체의 재건을 논했던 이야기로 설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결국 종려주일 첫 날에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는 군중의 환호에 대해 부정적 판단을 내린 마가의 이야기는 전쟁 이후 국가라는 거대담론을 중심으로 국가를 재건한 중심부 인물들에 관한 영웅적 이야기가 아니라 전쟁 이후 국가를 구성하는 일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관점을 지녔다는 이유로 밀려났던 주변부 인물들 혹은 일상을 견디며 살아냈던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분명 이 인물들은 국가체제의 전복이나 혁명을 논하는 인물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본의 이해의 틀에 따르면 이들은 자본주의에 포섭되었지만 자본주의를 무너뜨릴 수 있는 혁명적 힘을 소유한 노동계급이 아니라 노동에서 밀려난 인간들 그래서 혁명을 제기하기는커녕 노동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인해 끊임없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랑자로 지탄을 받는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은 마가가 표현하고 있는 예수의 모습에서도 드러난다. 마가에 따르면 예수는 혁명적 전사가 아니라 부랑자들과 함께 하고 부랑자들을 비판하는 세상의 권좌들에 대한 심판을 하나님께서 행하실 거라는 묵시적 사상을 충실히 따른 인내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를 추종하는 무리들은 세상에 속하지 않은 떠돌이로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라 믿고 인내하면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무리들이다. 그러므로 마가의 이야기에 나타나는 이러한 인간군상은 뜨거운 혁명을 논했던 전쟁이었지만 패배한 로마와의 전쟁에서 살아남은 그것도 랍비 유대교에 속한 중심부 인물들이 아닌 주변부 인물들이 펼치는 일종의 비겁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앞서 본 것처럼 랍비 유대교와 로마 제국사이에서 살아야 했던 마가의 생존의 신학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일종의 문화적 부랑자들에 대한 혹은 노동하지 못하는 부랑자들에 대한 관점의 이동으로 인해 마가는 뜨거운 혁명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 즉 생활권력 혹은 규격화 권력의 문제를 논한다. 그의 이야기는 국가라는 거대담론이 펼치는 정치권력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이 정치권력이 하부적인 차원에서 펼치는 생활권력 혹은 국가 내부의 하위문화들을 국가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지배적인 문화의 틀에 따라 일일이 감시하고 획일화시키고자 하는 규격화 권력에 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이야기다. 실제로 마가의 이야기에는 감시병처럼 끊임없이 엿보고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인물들, 즉 바리새인, 율법학자, 그리고 헤롯당원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마치 파놉티콘처럼 예수의 일상적인 삶의 영역으로 파고들어와 일일이 감시하고 비판한다. 그리고 이들의 감시로 인해 마침내 예수가 죽임을 당한다는 이야기가 마가복음 2장~3장 초반부에 나온다. 따라서 이러한 점에서 보면 예수를 죽음으로 몰아간 하나의 원인은 정결법을 중심으로 욱죄어 오는 생활권력 혹은 규격화 권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나는 이러한 마가의 설정이 역사적 예수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이해하는 예수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마가가 생활권력 혹은 규격화 권력에 관한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그 자신의 공동체가 무엇을 의제로 놓아야 할지를 분명히 밝혀 놓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종려주일 첫 날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 이후 예수가 겪게 되는 고난과 투쟁은 정치권력이 아닌 생활권력 혹은 규격화 권력에 관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예수의 수난에 관한 마가의 이야기에서도 확인된다. 마가는 로마에 반기를 든 자들을 무자비하게 처형한 잔혹한 인물이었던 빌라도를 아주 온화하게 그리고 우유부단한 인물로 설명한 반면에 예루살렘의 고위층 지도자들은 확고한 의식을 가지고 예수를 처형한 장본인들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마가복음 14장 이후에 나타나는 대제사장을 비롯한 예수를 죽이라고 말했던 예루살렘의 지도층 인사들은 마가복음 2장과 3장 초반부에 나타난 바리새인들, 율법학자들 그리고 헤롯당원들의 연장선상에 있는 인물들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항상 마가에 따른 예수의 고난과 투쟁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명심해야 하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예수의 죽음에 관한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와 상관없이 예수가 유대교의 정결법을 어긴 인물이자 성전파괴를 예언한 인물로 고발당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예수의 죽음은 결코 로마와 관련된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정치적 차원이나 대의와 같은 거대 담론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일상의 차원에서 삶을 파고드는 권력에 관한 문제였다는 점이다. 분명 마가의 이해에 따르면 예수는 랍비 유대교의 삶의 규율화 혹은 규격화에 대해 저항을 벌인 인물이지 로마와의 투쟁이라는 거대 담론의 차원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우리의 이야기와 다소 다른 맥락이지만 학자들이 복음서에서 반유대주의적 시선을 잡아내는 것도 예수에 대한 마가의 이러한 서술 때문이다. 확실히 마가는 이방인을 포함한 어떤 의제 설정을 해야 했기 때문에 예수를 철저하게 랍비 유대교의 삶의 권력의 문제에 대해 도전한 인물로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에 학자들이 판단하는 것처럼 다른 복음서의 저자들에게 반유대주의적 시선을 강화시켜주는 길을 터주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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