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의 시선으로 본 공공성의 인문학』
   - 위기의 지구화 시대 청소년이 사는 법

▷ 지은이 : 백소영ㆍ엄기호 외 지음
▷ 펴낸곳 : 도서출판 이파르
▷ 기   획 :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우리신학연구소, 한신대 평화와 공공성 센터
▷ 2011년 6월 30일 발행 | 값 12,000원 | 304쪽
▷ 분   류 : 사회>사회비평/비판>한국사회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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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지구화 시대 공공성의 위기와 청(소)년의 삶
지구화, 세계화의 폭력적인 확산으로 근대적 민주주의의 제도들이 도처에서 위협을 받고 있다. 그것은 근대적인 공공성의 위기를 의미한다.
최근 공공성 논의가 부각되는 것은 이런 맥락을 갖고 있다. 이 책은 지구화라는 길고 복잡한 터널에 진입하여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한국사회의 공공성의 문제를 다룬다. 특히 지구화로 인한 공공성의 위기를 가장 격렬하게 몸으로 체현하는 연령적 계층인 청(소)년에 집중하는, 한국적 공공성의 인문학을 모색한다.     

잉여와 잉여짓, 청(소)년의 고통과 저항은?
지구화 시대 공공성의 위기로 청(소)년은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는 불안한 미래에 인생을 저당 잡힌 채 고통과 혼란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는 가운데 많은 청(소)년은 쓸모없는 존재로 낙인찍힌 자, 곧 잉여가 되고 있다. 또한 잉여로 전락하지 않은 청(소)년들도 그들의 많은 행동들이 잉여짓으로 분류되는 고강도 규율 아래 놓여 있다. 
자원화될 수 없는, 쓸데없는 짓으로 낙인찍힌 행동들을 해서는 안 되는, 오직 스펙 쌓기 머신이 되어야 하는 청(소)년, 그들의 고통과 저항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제1부는 이러한 청(소)년의 고통을 다룬다. 청(소)년의 자기 진술을 듣고, 그 배후를 추론하여, 지구화 시대의 공공성의 위기의 맥락과 연결시켜 해석하는 것, 이것이 제1부의 목적이다.
제2부와 3부는 청(소)년의 저항을 다룬다. 제2부에서 다루고자 하는 저항은 잉여짓을 적극적으로 재전유하는 청(소)년의 창조적인 행위들에 관한 것이다. 쓸모없는 것을 쓸모 있는 것으로, 무의미한 것을 의미 있는 것으로 재전유하기 위해 그들은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체제의 질서로부터 탈주를 감행한다. 제2부는 그러한 탈주, 탈주체화의 기록들이다.
제3부는 그러한 저항을 제도화하는 시도들을 다룬다. 즉 재주체화의 기록들이다. 그 과정은 때로는 기성의 제도를 개혁하는 실천의 동력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기성 제도를 더욱 강화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제3부는 이렇게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는 저항의 양면을 점검해보는 글들을 모았다. 

기획 과정
이 책은 한신대 평화와공공성센터가 주최하고,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와 우리신학연구소가 주관하여 2010년 11월에 3회에 걸쳐 진행한 평화와공공성 콜로키움을 발전시켜 단행본으로 펴낸 것이다.
백소영 이화여자대학교 HK 연구교수와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이 기획주관을 맡아, 콜로키움에서 발표된 4편의 글을 수정 보완하고, 추가로 8편의 글을 청탁하였다.
백소영 외에, 인류학자 엄기호, 신학자 구미정, 문화기호학자 김수환 외 10명의 필자가 참여해 12편의 글을 기고했다.
그리고 출간일에 맞추어 필진의 일부가 다시 모여 비공개 집담회를 열어 향후 작업에 관한 논의를 진행하였다. 

책의 외연. 공공성의 인문학이라는 기획에 대하여
공공성에 관한 논의가 학계의 여러 분야에서 심심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이 책의 기획진과 주관 단체인 두 연구소(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우리신학연구소)는 공공성에 관한 여러 논의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이 책의 방향과 향후 공공성 담론의 방향에 대해 잠정적인 논점을 제기한 바 있다. 그리고 그것을 한국적인 공공성의 인문학이라고 이름 붙였다.
기존의 공공성 담론은 지구화 시대의 위기를 공공성의 위기의 관점에서 다룬다.
하지만 우리는 공공성의 위기라는 말은 부정적이면서 긍정적임에 주목한다. 즉 공공성의 위기는 근대 민주주의의적 기획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위기에 빠뜨린다. 그런 점에서 공공성의 위기를 다루는 공공성의 인문학은 근대 민주주의적 기획을 넘어서는 새로운 공공성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탈근대적인 인문학적 시도이다.
한편 공공성 담론은 국가와 종교, 국가와 시민사회 등과 같은 거시적 주제를 중심으로 공공성의 위기와 대안을 물었는데, 우리의 공공성의 인문학은 구체적인 위기의 현상 읽기에서부터 물음을 시작하고자 했다.
이 책이 청(소)년을 말하고, 그들로부터 잉여짓에 관해 청취한 것은 바로 이런 문제의식에 기인한다. 이것은 인류학적 연구나 문화연구 등에서 이미 시도해온 것이다. 하지만 이 논의들은 공공성에 관해 묻지 않았다. 반면 공공성 논의는 미시현장의 소리를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지 않았다. 반면 이 책은 이 두 별개의 논의를 공공성의 인문학적 시각에서 연결시키고자 하였고, 그런 점에서 우리의 공공성의 인문학은 중범위 연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현장의 구체적인 문제에서 한국 사회의 공공성의 위기를 살피는 작업은 우리의 공공성의 인문학이 한국의 지역학적 문제의식과 맞물려 있음을 뜻한다.  
한국적 공공성의 인문학의 문제의식을 우리는 이 책에 한정하지 않고 더 발전시켜 다룰 예정이다. 곧 이 책은 그 첫 번째 모색이다.
향후 계획에 관해 이 책의 기획진은 생각을 다듬고 있는 중이다. 
 
저자 소개(가나다 순)
경동현  우리신학연구소 상임연구원
구미정  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외래교수
김강기명  연구집단 CAIROS 연구원
김수환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 교수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백소영  이화여자대학교 HK 연구교수
유승태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상임연구원
엄기호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위원. 인권연구소 '창'의 연구활동가
연규홍  한신대 교수. 한신대 평화와공공성센터 소장
이규원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객원연구원
정용택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상임연구원

차 례

머리말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제1부   고통

         잠재성을 잉여라 부르는 세상__백소영

         이것은 우리 잘못이 아냐!
                   ―세 청년의 이야기__엄기호


제2부   저항 하나
        제도에 흠집 내기 

         청(소)년의 패러디 문화, 잉여짓 또는 잠재적 혁명성?__백소영

         너희가 병맛을 아느냐?
                  ―웰 컴 투 더 <이말년 월드>__김수환 

         학생들과 무슨 글을 어떻게 쓸 것인가?
                  ―고백에서 증언으로의 전환__엄기호 

         김예슬 선언에 나타난 엑소시즘
                   ―지구화 시대의 시장 귀신 내몰기__ 구미정  

         도시, 청(소)년, 그리고 정치의 한 방식
                   --홍대 앞 두리반과 청(소)년의 집합행동__김강기명

제3부  저항 둘
       제도를 창안하기 또는 포섭하기 

         촛불과 팬덤
                  --팬덤의 정치화 또는 정치의 팬덤화__이규원
        
         단기 선교와 자발적 섬김
                  --지구화 시대 개신교적 주체 형식__유승태
        
         카리스마 운동이 추구하는 신앙과 공공성
                  --지구화 시대 천주교적 주체 형식__경동현

         자기를 이야기하는 청(소)년, 세계와 적대하는 인간__정용택


맺음글   잉여의 시선으로 공공성의 인문학을 꿈꾸다__김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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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사랑한 남자> 출판기념회(2011.6.7) 서평

평등과 해방의 관계로 ‘제국’을 해체하는 예수의 새 가족들

 


백소영
(이화여자대학교 )


저는 성서신학자가 아닙니다.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며 문서비평이나 양식비평적 차원에서의 공감이나 반문을 제기할 기초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성신학적 시각을 가진 기독교사회윤리학자로서, 그러니까 주변자적 시선을 가지고 성서를 읽는 것에 상당히 익숙한 한 지식인 독자의 입장에서 이 글을 읽었고 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저의 소박한 ‘독후감’을 나눌까 합니다.

1. 식탁 위에 차려진 만찬 즐기기, 예수 전승으로부터의 적극적 독해

예수는 게이였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은 이 질문으로부터 시작하지만 아주 직접적으로 ‘예수가 게이였다’는 것을 설득하도록 구성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저는 이 점이 오히려 매력적이었습니다. 이 책은 ‘예수가 게이라 해도 그의 메시지 전반의 핵심 내용과 위배됨이 없다’ 그리고 ‘오히려 예수가 게이인 것이 주변인들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평등하게 바라보려는 그의 선교사역의 수행성으로 더욱 적합하며 그의 전반적인 메시지에 부합한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 여섯 구절밖에 안 되는 동성애혐오적 텍스트를 가지고 씨름하기보다 복음서에 나타난 전반적인 예수전승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싸움에 나선 개들이 서로 차지하려고 으르렁거리는 바닥에 깔린 몇 개의 부스러기들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무시하고, 그 대신 신약성서 서사라는 식탁 위에 차려진 만찬에만 집중하는 편”을 선택했다는(414) 제닝스 박사의 말처럼 말이죠.

흑인, 여성, 제3세계 민중의 시각에서 전통적 성서해석에 이의를 제기해온 그 모든 해방신학적 전통과 맥을 같이 하며 제닝스 박사는 이 책의 시도가 “‘완전한 해방’을 위한 것”이라고 역설합니다. “다른 것들의 희생의 대가로 얻는 부분적인 해방은 예수 안에서 약속되고 이미 시작된 새로운 창조의 지평 내에서 해방일 수 없”(19-20)으니까요.

때문에 “오늘날의 게이적 또는 퀴어적 감수성의 관점으로부터 텍스트들을 해석하는 전략”(22)을 택한 이 책은 “동성애적 욕망과 관계들을 감싸 안고 긍정하는 많은 증거에 대한 검토에 집중”(23)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제안 받으며 책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얼른 떠올렸던 전제처럼, 제닝스 박사는 제일 먼저 요한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사랑받는 자’에게 주목합니다. “예수의 무릎에 기대어 있고” “예수의 가슴에 등을 기댄 상태로 예수에게 말을 건네는”(49), 그리고 십자가 증인 중 유일한 남자였으며 예수가 죽기 전 자신의 생모 마리아와 그를 가족으로 연결해준 ‘그 남자’ 말입니다. 불트만이 이 사랑받는 자에 대해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한 것, 즉 후대의 추가로서 이방인 교회의 전형으로 풀이한 것에 반대(79)하며 제닝스 박사는 “예수가 제자들 모두를 사랑하지만, 다른 제자들을 사랑하는 것과는 다른 특별한 방식으로 [즉 성애적 의미에서] 이 제자를 사랑했음”을 강조합니다(81). 물론 이 사랑은 예수 사역의 공적 지위에서는 그 어떤 특별함이나 우위를 가지지 않는 사랑입니다.

제닝스 박사는 무엇보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성육신의 메시지가 강한 요한복음에서 예수의 성애는 오히려 그 주장을 강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더구나 당시의 관습적 제도들이 가진 억압성에 반대했던 예수이고 보면 “결혼과 가족적 가치들에 의해 대표되는 관습성으로 되돌아가지 않으면서 다루어지기 위해서는 동성애적 관계의 암시가 하나의 적절한 수단”(139)일 수도 있겠지요. 제닝스 박사는 “예수가 사랑했던 제자에 관한 에피소드들이 예수와 그 제자의 관계가 성적인 표현을 포함하는 것으로 추정될 수 있는 동성애적 관계였다는 가정에 기초할 때 가장 잘 이해”되며, 무엇보다 “텍스트 전체의 전반적인 세계관과 합치한다.”(169-170)고 결론짓습니다.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들과 같이 예수를 모든 면에서 비관습적인 인물로 표상한다. 그의 비관습성 자체가 동시대인들의 신학적-사회적 가정들에 문제를 제기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래서 예수는 경건하고 인격적인 고결함에 들어맞지 않는다. 그는 금식, 정결례, 성전 참배와 같은 경건함을 실천하는 예시적인 인물이 아니다. 그는 성서 해석에 대한 관습들을 수용하지 않는다. 하물며 그는 경건하고 존경받을 만한 사람들이 죄인으로부터 스스로를 구별하는 관습적인 방식들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는 먹보에 술꾼으로 악명이 높았으며, 오로지 (사회에서) 가장 평판이 나쁜 구성원들인 창녀나 (로마 제국의) 부역자들과 함께 한다. 그는 자신의 의례적 정결함에 대해 신경 쓰지 않으며, 문둥병자, 시체, 생리중인 여자를 거리낌 없이 만진다.(181)

요한복음의 예수가 “정의와 관용 그리고 기쁨이라는 가치들이 표현될 수 있는 새로운 사회적 현실을 정립하기 위해 관습적인 사회생활의 구조들을 전복시키는 사람으로 나타난다”면(181)“사회적, 생물학적, 경제적 필요에 대한 구속으로부터 해방된 성애적 관계를, 그래서 이성애적 관계들 역시 변화시킬 수 있는 그러한 성애적 관계를 예기한다”고 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제닝스 박사의 주장은, 이성애자인 저에게 그 어떤 거부감도 없는,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였습니다.

2. 예수, ‘게이’이거나 ‘젠더제한으로부터 자유롭거나’
 
이어지는 II부에서 제닝스 박사는 1-2세기에 유통되었던 ‘비밀의 마가복음’에서 전해지는 ‘부유한 젊은 관원’ 전승과 정경 복음서에 남아있는 ‘백부장과 젊은 애인’ 에피소드의 면밀한 독해를 통해 이미 제국의 질서 안에 일부 편입되어 있었던 초대 교회가 동성애적 성향을 ‘위험한 기억’으로 간주하고 이를 예수 전승으로부터 삭제하려고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드러나는 흔적들을 주목합니다. 무엇보다 복음서의 예수 전승들이 가지는 체제 전복적 메시지들, 주변화된 사람들이 주된 증거자요 체험자로 등장하는 구성을 고려할 때 동성애자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한 예수의 전승은 충분히 가능한 서사라는 것이죠: “그는 그의 사랑하는 이를 위한 치유와 온전함을 원했고 갈망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걸고 무엇이라도 할 것만 같았다. 이런 욕망으로 그는 행동한다.”(257) ‘욕망’이라는 단어를 읽었을 때 문득 떠오른 것은 주디스 버틀러의 책 『안티고네의 주장』이었습니다. 국가의 법에 의해 범법자로 낙인찍힌 오라비이기에 그 시신을 수습하는 일 역시 역모로 규정되던 상황에서 오로지 사랑하는 오라비의 주검을 고이 묻어주고 싶은 그 욕망에 충실했기에 범법자가 되었던 안티고네 말입니다. 예수 전승에서 백부장은 제도와 규칙의 위반자로서가 아니라 분명하게 믿음의 범례로서 예수의 칭찬을 받고 있습니다. 예수는 법보다 욕망의 지지자이기 때문이겠죠?

이 에피소드는 복음서의 예수 전승들이 담고 있는 ‘젠더해방적인’ 담화들, 즉 기쁜 소식을 전해들은 환관들과 1세기 젠더적 역할 기대와의 근본적인 단절을 선언하며 예수를 따른 여제자들의 이야기, 예수 선교사역의 클라이맥스에 주요한 역할자로 등장한 “물동이를 이고 가는 남자” 또는 ‘전통적으로 여성의 일이던 발을 씻기시던 예수’의 이야기와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커다란 서사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예수가 게이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히 제가 동의하는 한 가지는 “젠더 역할들의 신성함”은 “예수 전승들에 대한 관계를 완전히 은폐하지 않고서는 동성 간의 성애적 행위들에 반대하는 논거로 주장될 수 없다”(302)는 제닝스 박사의 결론입니다.

3. 평등과 해방의 관계로 ‘제국’을 해체하는 예수의 새 가족들

III부는 복음서들에 나타난 결혼 및 가족적 가치들에 대한 예수의 전복적 가르침에 대한 검토를 통해 동성애자들의 상호적 성애가 배제되지 아니하는 예수의 (확대가족)공동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형제자매들의 연합과 연대 말입니다: “그를 맞아들인 사람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그들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욕망으로 나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났다.”(340) 사두개인들의 질문, 즉 형제들이 모두 한 여자와 결혼관계 후 죽고 부활했을 때 그 여인은 누구의 아내여야 하냐는 질문에 “예수는 결혼 및 가족 제도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미래가 없으며, 오히려 죽은 자들의 부활에 의해 폐지될 것이라고 주장”(350)합니다. 사두개인들이 제기한 “문제는 그녀가 누구에게 귀속되는가에 대한” 것이었는데, “그에 대한 예수의 대답은 부활에 의해 소유권이 완전히 폐지된다는 것”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은 그들이 부활할 때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 “인간적인 제도들의 굴레로부터 자유롭게 될 것” “한 사람에 의한 다른 한 사람의 지배 또는 소유가 폐지된다는 것”(350)이었다는 겁니다.

결혼은 예수 전승에서 “하나님 나라의 윤리(행동양식)를 구현하는 자유롭게 선택된 충실성을 나타내는 것”(365)이나 “두 사람이 욕망과 환희 내에서 연합하는 것”(370)으로서는 옹호되지만, “분리와 지배를 특징으로 하는 세상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가치들의 기초적인 생산 단위 내에 인간들을 얽어매는”(371) 제도로서는 거부되고 폐기됩니다. 때문에 이런 서사 속에서 “제도화되지 않은 성애에 대한 긍정”은 “동성애와 동성적 관계”라는 주제와 연관될 수 있다고, 제닝스 박사는 말합니다, 예수와 그가 사랑했던 남자 사이의 관계는 동성애라는 젠더적 특성보다는 ‘종속과 지배로부터 자유로운 상호적 사랑’이라는 데 방점이 찍힌 채 읽혀져야 하니까요. 

“창세기 1장에 등장하는 생물학적 재생산이라는 개념이 신약성서에서 선교적인 재생산이라는 개념으로 교체된다”는 제닝스 박사의 독해, 그래서 “창세기 1장에서의 ‘열매를 많이 맺고 증식하라’는 명령은 ‘선포하고 제자들을 만들라’는 명령으로 전환된다.”(375)는 그의 읽기방식이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홍수 때 동물들의 생명을 구하는 방식과 비교하며, 제자들을 둘씩 짝지어 내보낸 예수의 에피소드를 해석하는 방식 역시 재미있었습니다: “예수에게서 실현된 새로운 약속은 새로운 민족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 내에서 완성에 이르게 될 새로운 운동이다. 이 맥락에서 우리는 예수가 어떻게 열두 명의 아들이 아니라 열두 명의 제자를 두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이에 이어 땅 위의 모든 민족들로부터 제자들을 만들라는 명령을 받는다.”(381) 사랑하는 두 사람을 연합시키는 욕망이 “자손에 대한 약속의 도구”가 아니라 “믿음의 새로운 창조의 시작을 위한 도구가 되는 것”(382)이라면, 그 ‘연합에 동성애적 성애를 배제할 이유가 없다’는 제닝스 박사의 말에 동의합니다.

전통적으로 바울에게 저작이 돌려지는 일부 서신들에서 여성억압적이고 반동성애적 언급들이 나오지만, 현대의 신학자들은 이를 후기바울적인, 그리고 종종 반바울적인 텍스트임을 밝히고 있는 마당입니다. 복음서와 동시대적으로 편집되었을 이 서신들은 기독교 초기 전통 안에서 예수 전승에 반하는 뚜렷한 한 흐름, 즉 기존질서를 유지하고 그 구조를 신성화하려는 ‘제국적’ 의도를 보여줍니다. 제국은 ‘동질화’와 ‘보수화’를 그 핵심가치로 하는 시스템이니까요. 결론으로 가면서 저자가 분명히 하듯이 문제는 ‘두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게이를 긍정하는 독해는 성서상의 모든 구절에 대해 폭력을 행사하도록 강요하지 않음”(415)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한 특정 시스템을 위협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두려움’ 말입니다. 그들은 근대・자본주의・가부장적 시스템의 유지를 위해 이성애적 결혼과 가족제도의 ‘신성화’가 필수불가결하다고 믿고 있으니까요. 제국의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교회 전통의 시각에서는 여성의 진정한 해방을 추구하는 ‘페미니스트’들이 ‘페미년’으로 읽히고 거부되듯이, 동성애와 동성애자들을 향한 교회의 알레르기 반응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음을 우리는 압니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가 제국의 중심 예루살렘이 아니라 주변인 갈릴리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커다란 상징성을 가진다고 봅니다. 또한 그 여정이 점차로 예루살렘을 향해 갔던 것 역시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의 십자가 아래, 그 모든 차이들의 위계화와 분리가 해체된다고 고백하는 신앙인이라면, 이 책의 주장과 이 책이 선택한 읽기방식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그(녀)가 제국의 옹호자, 예수의 반대자가 아니라면 말이죠.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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