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었다 드러나는 선

 

들뢰즈는 “모든 작가는 각자의 방식대로 회화의 역사를 요약한다.”고 했다. 노련한 작가들을 보면 쉽게 수긍이 가는 말이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감상자도 마찬가지다. 노련한 감상자는 자신의 주관을 가지고 작품을 정리한다. 정보의 발달로 요즘은 쉽게 예술작품에 접근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적인 관점이 없으면 예술작품은 소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품을 감상에 앞서 뚜렷한 기준을 먼저 새우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다.


선은 미술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다. 고대 이후 지금까지 어떤 미술에서든 선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선이 모두 같은 위상을 갖지는 않는다. 어떤 작품은 선이 전면에 드러나 분명한 역할을 하고 어떤 작품은 선이 불분명하여 역할이 축소된다. - 선이 선명하고 흐릿한 정도를 선예도라고 한다. - 왜 어떤 작품은 선예도가 강하고 어떤 작품은 선예도가 낮을까. 여러 가지 가설로 설명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원전 2세기경 이집트 벽화는 평면적이고 선이 분명한 반면 그리스 벽화는 입체적이고 선이 흐릿하다. 보링거는 척박한 이집트와 풍요로운 그리스의 자연 환경이 원인이라고 설명한다. 르네상의 예술에서 피렌체와 베네치아는 내륙과 항구라는 경제 환경이 더 결정적인 요인처럼 보인다. 이상적인 고전의 복원을 꿈꾼 피렌체 미술은 외곽선이 비교적 분명하고 낭만적인 항구도시 베네치아는 감각적인 효과 때문에 선이 흐릿하게 보인다. 지금 북경과 상하이의 분위기를 생각해보면 차이를 더 선명하게 상상 할 수 있다.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처럼 개인의 성향에 따라서도 선의 강약은 달라진다. 다빈치는 과학적 태도로 사물을 보았다면 미켈란젤로는 그보다 신비적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다. 다빈치가 300 여구의 시체를 해부하고 기계를 제작하기 위해 많은 드로잉을 남긴 것은 실용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그가 취했던 과학적 태도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선의 차이는 통시적 형식의 변화에서도 포착할 수 있다. 가장 분명한 예시는 르네상스와 바로크다. 르네상스 대표 작가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에 삼미의 신이 등장한다. 여신들은 분명하고 유려한 외곽선으로 둘러져 있다. 반면 바로크 시대 루벤스 [삼미의 신]에 등장하는 여신은 덩어리가 강조되면서 외곽은 어둠에 침식되어 사라진다. 그밖에도 미술가의 예술적 목표에 따라 달라지는 선의 위상도 근대 미술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위, 보티첼리 [프리마베라] 속 여신들의 외곽이 분명하다. 반면 아래, 루벤스 [삼미의 신] 속 여신들의 외곽은 흐릿해 보인다.

방대한 미술의 역사를 보편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선의 드러남과 숨음”과 같은 작은 관점으로 보면 미술사도 누구에게나 의미 있는 여행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백정기 作 (미디어작가)

- 작가소개

홍대회화과를 중퇴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을 졸업했다. 2008년개인전을 시작으로 5회의 개인전을 했고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2012년 홍은예술창작센터, 2013년경기창작센터 입주작가로 레지던시 활동을 한 바 있다. 음악적 청각화를 주제로 “Walkingalone on a clear night: Musical sonification based on cityscape”외 1편을 등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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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멂 예술의 기원

 

  1995년 미술대학 학부 시절, 당시는 하이퍼리얼리즘이 대세였다. (한편으로는 추상이나 비구상 회화가 많았다.) 그래서 학생들의 지상 과제는 사물을 사진처럼 똑같이 재현하는 것이었다. 당시 “L”교수는 과제 검사를 70%, 80%, 퍼센테이지로 평가하기도 했다. 100%는 사진과 같은 상태라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옆 친구하게 물었다. “사물이 이미 저기 있는데 뭐 하러 똑같이 그리는 걸까?” 잠시 뜸을 들이던 친구는 “기숙사에 가서 밀린 양말이나 빨아야겠다.”며 엉뚱한 소리를 했다. 그 후 오랫동안 뾰족한 답을 찾지 못했다.  


 1995년의 나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박정자 저, <빈센트의 구두>에서 발견했다. 요약하면 이렇다, 옛날, 디뷰타드라는 사람에게 딸이 있었다. 딸은 내일 전쟁터로 떠나는 애인과 마주하고 있다. 딸은 애인의 모습을 애타게 바라보다가, 애인의 그림자를 따라서 벽에 금을 그었다. 그렇게 애인의 그림자는 벽에 영원히 각인 되었다.  

쉬베, <디뷰타드 혹은 그림의 기원> 1791


 흔히 “사랑에 눈이 멀었다”는 말이 있다. 그런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못 보면 애타게 그리워한다. 그림을 그리는 이유도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그림자에 테를 두르는 여인의 행위는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 사물을 진솔하게 보는 태도이다. 눈앞에 있다고 해서 똑같이 본다고 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우리는 오늘 낮에 버린 음료수의 실루엣을 기억하지 못한다. 어떤 그림과 어떤 글이 써져 있는가? 음료수 병을 도구로써 취급했을 뿐이지 진솔하게 보지 않는다. 그림자에 테두리를 두르는 것, 즉 그림을 그리는 것은 사물의 도구성을 벗겨버리고 사물 자체를 발견하는 깨달음이다. 

 

이미지 출처, http://9gag.com/gag/3633135


꼭 그림을 그려야만 사물을 진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창 밖 풍경을 보고 상념에 빠져 본적이 없는가? 창 밖 세상은 평소 보아오던 세상과 감이 다르다. 창은 세상 풍경에 테를 두르는 일이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도 사물에 테를 둘러서 관념 너머의 세상을 보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백정기 作 (미디어작가)

- 작가소개

홍대회화과를 중퇴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을 졸업했다. 2008년개인전을 시작으로 5회의 개인전을 했고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2012년 홍은예술창작센터, 2013년경기창작센터 입주작가로 레지던시 활동을 한 바 있다. 음악적 청각화를 주제로 “Walkingalone on a clear night: Musical sonification based on cityscape”외 1편을 등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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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돌아보지 마라

 

  미디어아트는 동어 반복이다. 엄밀히 말해서 모든 아트는 미디어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소위 미디어아트는 어떻게 정의 되어야 할까.  


 새로운 미디어는 고유한 특징을 찾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사진이 초기에 회화의 대용품이던 시절이 있었음을 생각해보라. 새로운 매체는 특질과 표현이 매끄럽게 연결되지 못하는 때가 있다. 이 간극을 채워나가는 예술 활동이 진정한 미디어 아트라고 할 수 있다. 미디어아트는 최전방을 탐지하는 전위부대처럼 아직 탐지되지 않은 미디어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장르다.  


 복제예술을 넘어 바야흐로 디지털 미디어 시대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디지털 속성은 커뮤니케이션과 표현하는 방식을 바꾸어 놓았다. 결국 디지털의 한계가 인간의 논리와 사고를 직간접 적으로 결정 짓는 상황이다. 디지털 미디어를 이해하고 마스터해야할 이유는 여기에 있다. 현재 미디어 아트의 특징이 무엇인지 몇몇 미디어 아트 사례를 통해 탐구해 보고자 한다. 

 

양해의 <영육> 싱글체널 비디오 4분 가변크기 2017


 <영육>의 작가 양해의는 각각 다른 시간에 촬영한 얼굴 영상을 퍼즐처럼 조각해서 다중적인 자아를 표현했다. 디지털 창작물의 미학적 표현은 시간을 오려내고 붙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필름을 잘라 시간을 앞뒤로 배치하는 것은 영화에서도 가능한 표현이지만 디지털은 무한대의 시간을 동시에 배치할 수 있다. 디지털에서의 시간은 불연속적이다.  


조몽월 <DOT> 비디오 설치 20*30cm 2017


 디지털 이미지의 가장 작은 요소는 픽셀이다. 작은 픽셀이 깜빡이면서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조몽월의 작품 는 디지털 이미지의 본질적인 특징을 폭로해서 디지털의 특징을 규정한다. 회화의 본질적인 특징이 평면성이라면 디지털의 본질적인 특징은 픽셀, 더 나아가 0과 1이다. 이러한 특질을 확대해 인식함으로써, 우리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의 가능성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디지털 아트가 자연을 기술로 대체하는 것 같아 낯설고 거북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기술적인 이해가 높지 않은 사람은 더 난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디지털은 지속적으로 진화하는 인간표현의 단계일 뿐이고 우리는 그 흐름 속에 있다. 돌과 철의 특징이 구조물의 특성에 반영되듯이 디지털의 특질은 디지털 세계를 반영하고 우리의 경험을 결정 짓는다.  


  19세기 영국의 러다이트 운동과 마찬가지로 아직도 많은 예술가들이 디지털 세계를 경계하면서 디지털 세상의 신화를 폭로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러다이트들의 노력은 산업혁명을 멈추지 못하고 말았다. 우리는 흙이 아니라 디지털을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한다.  

 


 


백정기 作 (미디어작가)

- 작가소개

홍대회화과를중퇴하고한국예술종합학교조형예술과, 중앙대학교첨단영상대학원을졸업했다. 2008년개인전 를시작으로 5회의개인전을했고다수의단체전에참여했다. 2012년홍은예술창작센터,2013년경기창작센터입주작가로레지던시활동을한바있다. 음악적청각화를주제로 “Walkingalone on a clear night: Musical sonification based on cityscape”외 1편을등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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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실타래

 

  2009년 나는 호기롭게 작업 중단을 선언했다. 문학가로 치면 절필 선언이다. 나름 호방한 태도를 뽑내고 즐기기도 했다. 하지만 치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해가 거듭할수록 자존감이 사라지고 불안감이 커졌다. 결국 거창한 명분도 없이 작업을 시작했다.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일명 백지 공포증이다. 그때 실마리로 삼은 것이 선긋기다. 볼펜으로 종이 위에 무작정 선을 그었다. 대단한 작업은 아닐지언정 무언가 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했다. 몇주 동안 안이하게 선을 긋는 와중에 문득 “선”이 눈에 들어왔다. 특유의 구불거림과 점성을 가진 선은 관습과 선입견으로부터 이탈한 선 그 자체였다. 

 이런 과정 속에 탄생한 결과가 <이것이 나의 마지막 말이다>(2012)라는 드로잉 작품이다. 목적 없이 쌓인 선이 예술활동의 새로운 활력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백정기, 이것이 나의 마지막 말이다, 4절 3장, 종이 위에 볼펜, 2012 

 


 


백정기 作 (미디어작가)


- 작가소개

홍대 회화과를 중퇴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을 졸업했다. 2008년 개인전 를 시작으로 5회의 개인전을 했고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2012년 홍은예술창작센터, 2013년 경기창작센터 입주작가로 레지던시 활동을 한바 있다. 음악적 청각화를 주제로 “Walking alone on a clear night: Musical sonification based on cityscape”외 1편을 등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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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 갇힌 도시

 

  목적지 없이 걷기 위해서 도시를 걸어보았다. 백범로에서 이태원로까지 -- 공덕동에서 삼각지를 지나 한남동에 이르는 길을 걸어보니 벽이 많아서 시야도 답답하고 다니기도 번거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1) 공덕역 주변에서 만난 벽은 고층 빌딩이다. 건물은 유리로 뒤덮여 있고 간판(문패)이 줄줄이 걸려 있다. 간판을 보고 용무가 없으면 무심히 지나칠 뿐이다. 고층 건물은 거리를 차가운 복도로 만든다. 2) 서울은 항상 공사 중이다. 효창공원앞역 주변도 공사장을 둘러친 회색 철제 장벽이 몇 년째 서있다. 출입은 말할 것도 없고 시야를 가리는 엄격함은 거리를 삭막하게 만든다. 하필이면 모양도 팔레스타인 장벽을 축소 해놓은 생김새다. 3) 삼각지 역에서 녹사평역까지는 양쪽으로 미군 부대 담장이 길게 늘어서 있다. 고개를 들어도 땅을 걷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종류만 다른 보도블록이 지루하게 이어질 뿐이다. 그나마 담장 너머로 남산이 보이는 것이 다행이다. 4) 한남동에 접어들면 도로와 주택 사이에 방음벽이 나타난다. 방음벽 밑은 언제나 그늘지고 축축하다. 걷는 사람도 덩달아 음산하고 눅눅한 기분이다. 방음벽은 가까이 하지 말아야할 찻길과 주택을 가까스로 갈라놓는 방파제다. 5) 마지막으로, 인도 위에 올라와 있는 자동차는 제일 치명적이다. 마치 수륙양용 자동차처럼 차도에서도 달리고 인도에도 당당하게 올라온다. 인도 위에 주인은 사람인데 사람이 주차된 자동차를 피해 차도로 뛰어 들어야 하는 형편이다.

1) 빌딩


2) 공사장

3) 미군부대


4) 방음벽


5) 인도 위 자동차


이상 열거한 빌딩, 공사장, 미군부대, 방음벽, 자동차 등은 서울에서 흔한 장애물이다. 그것들이 일부 불가피하거나, 당장 극복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서울은 벽에 갇힌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최근 “서울로7017”이 개통되어서 걷는 도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만큼, 걷기의 관점으로 도시가 꾸준히 관리되어 나가길 바란다.

 

 


 


백정기 作 (미디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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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회화과를 중퇴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을 졸업했다. 2008년 개인전 를 시작으로 5회의 개인전을 했고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2012년 홍은예술창작센터, 2013년 경기창작센터 입주작가로 레지던시 활동을 한바 있다. 음악적 청각화를 주제로 “Walking alone on a clear night: Musical sonification based on cityscape”외 1편을 등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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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창공원앞역

 

  중학교 때 가족을 떠나 서울에서 유학(?)을 했다. 당시 그리움으로 가족들과 살던 집을 일기장에 그렸다. 당시 가족들이 사는 집은 그림과 달리 3층 양옥집이었다. 놀랍게도, 그림 속 집은 새 집을 짓기 위해서 헐어버린 옛 단층집이었다. 어린 마음에 ‘우리 집’은 새로 지은 집이 아니라 추억이 많이 쌓인 옛 집이었던 것이다.


  2013년 까지만 해도 효창공원앞역 2번 출구를 빠져나오면 2~3층짜리 집들이 아기자기하게 모여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철거가 한창 진행 중인 을씨년스러운 풍경이다. 3번 출구는 보도블록과 인공 석으로 새 공원을 조성 중이다. 오래된 도시는 기억이 쌓여있는 곳인데, 때가 타지 않은 인공 석과 보도블록에 누구의 기억도 남아 있을 리 없다. 기억의 장소는 없어지면 다시 되돌릴 수 없다.


  사람은 사신이 잘 아는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새 건물에는 기억이 없다. 멸균 처리된 장소다. 기억이 없는 장소에서 산다는 것은 뿌리를 내리고 산다기보다 부유하는 삶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전면적인 개발은 폭력이다. 때문에, 설령 현실적인 이유에서 개발이 필요하다 할지라도 기억으로써의 도시를 배려하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http://youtu.be/GrJan-49_Xk
백정기_효창공원앞역_비디오_3분58초, 2013



 

 


 


백정기 作 (미디어작가)


- 작가소개

홍대 회화과를 중퇴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을 졸업했다. 2008년 개인전 를 시작으로 5회의 개인전을 했고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2012년 홍은예술창작센터, 2013년 경기창작센터 입주작가로 레지던시 활동을 한바 있다. 음악적 청각화를 주제로 “Walking alone on a clear night: Musical sonification based on cityscape”외 1편을 등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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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말의 지혜

조윤선의 구속에 관하여


 

  요즘 국민들에게 가장 재미있는 볼거리는 뉴스프로다. 무소불위였던 권력이 몰락해가면서 연일 다양한 뉴스를 만들어 내고 있다. 선정성이나 빠른 전개, 카타르시스는 웬만한 드라마 이상이다. 다만 뉴스를 볼수록 국민들이 자괴감이 들고 괴로워진다는 점에서 비극에 가깝다.
  오늘도 전 청와대 비서실장 김기춘과 문체부 장관이 구속됐다. 특검 한 달 만에 벌써 10번째 구속이다. 두 사람 죄의 경중은 언론을 통해서 차고 넘치게 드러났기 때문에 재론할 필요가 없지만 그동안 해왔던 거짓말, 특히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이미지를 가진 조윤선의 호소력(?) 있는 거짓말은 남다른 감회를 불러일으킨다. “의원님, 천번 만번을 여쭤보셔도 제 대답은 같습니다. 결단코 사실이 아닙니다.”
  조윤선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요약하자면, 85년 서울 대학에 들어가서 민주화 운동의 한복판인 시대에서도 좌고우면하지 않고 책만 보다가 고시에 합격하고, 정치판에서 불러주니까 국회의원, 장관, 청와대 비서관, 문체부 장관까지 시키는 대로 하다가 나중에는 범죄까지 시키는 대로 저지르고도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 이다. 객관적인 평가는 아니지만 중론으로 무리가 없는 것 같다. 짧게 말해, 공부 잘하고 성실하지만 자기비판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공부 잘하고 성실하지만 자기비판이 없는 공직자에 대한 우려는 이회창 전 대선 후보를 목격했을 때 가장 강렬했다. 이회창 역시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엘리트 출신으로 판사와 고위 공직을 거치면서 나름 원칙적인 처신으로 대쪽 이미지를 쌓아왔지만 서민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엄한 귀족처럼 보였다. “요즘 고려대 나와도 기자하는가?”라는 발언이 상징적으로 유명하다. 다행히 이회창은 낙선하여 정치계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김기춘 조윤선을 보면, 제 2, 제 3의 이회창들이 아직도 대한민국 공직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같다.
  아래 작품은 당시 이회창 대선후보처럼 자기 세계에 갇혀있는 성실한 엘리트들의 자기비판을 희망하는 마음에서 제작한 작품이다.-<늙은 말의 지혜>(2007)- 책상은 엘리트가 만들어지는 곳이다. 세상과 담을 쌓고 자기 지식에만 천착하는 성실하고 무비판적인 엘리트가 만들어지는 방식이라고 본다. 그래서 백그라이트로 책상을 봉쇄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백그라이트는 청계천 공방에서 노동자들이 사용하고 남은 부산물 중의 하나이다. 때로는 책에서 얻은 고급 지식이 현장에서 체험한 하찮은 지식만 못할 때가 있다. 따라서 엘리트, 특히 공직자는 자신의 지식을 관습적으로 쫒아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기 전에 타인의 지혜를 빌어 수시로 자기를 반성해야 한다.

 

 

백정기_늙은 말의 지혜_백크라이트, 책상, 의자_90*60*144cm, 2007

 

 

2007년 청계천 공방 풍경

 

 


 


백정기 作 (미디어작가)


- 작가소개

홍대 회화과를 중퇴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을 졸업했다. 2008년 개인전 를 시작으로 5회의 개인전을 했고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2012년 홍은예술창작센터, 2013년 경기창작센터 입주작가로 레지던시 활동을 한바 있다. 음악적 청각화를 주제로 “Walking alone on a clear night: Musical sonification based on cityscape”외 1편을 등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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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지수

 

    도시를 이해하는 방식으로써 “5000지수”를 고안해 보았다. 지역 내에서 5000만원으로 구할 수 있는 전셋집을 조사하고 서로 비교하는 방식이다. 5000만원이라는 정량적이고 현실적인 기준을 세움으로써 도시의 본질적인 현상에 접근하고자 했다.

    2016년 7월 군산시에서 5000만원으로 구할 수 있는 전셋집을 조사하였다. 사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5000만 원이면 신혼부부로써 스스로 마련할 수 있는 자금 수준이라고 가정했다.

   결과적으로, 군산 시내인 나운동은 4500만원에 방1개짜리 15층 아파트를 구할 수 있는데, 변두리 옥서면은 2500만원에 방3개짜리 단독주택 2층을 구할 수 있었다. 이 때 방 1개의 가격은 나운동이 4500만원, 옥서면은 833만원인 셈이다. 비율로 따지면 5.4배다. 시내와 변두리의 수준차이가 약 5배 정도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물론 전세 값을 결정하는 요인은 다양하기 때문에 가격대비 방의 개수를 비교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사 과정에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도시의 정보를 파악 할 수 있었다. 

 

 

 

 

 

 


 


백정기 作 (미디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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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회화과를 중퇴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을 졸업했다. 2008년 개인전 를 시작으로 5회의 개인전을 했고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2012년 홍은예술창작센터, 2013년 경기창작센터 입주작가로 레지던시 활동을 한바 있다. 음악적 청각화를 주제로 “Walking alone on a clear night: Musical sonification based on cityscape”외 1편을 등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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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없음


   올해는 군산에 작업실을 얻었다. (군산은 금강과 서해가 만나는 지점에 있는 작은 도시다.) 군산은 전에는 가본 적이 없는 낯선 곳이지만, 좋은 조건에 작업실을 얻을 수 있어서 내려가기로 결심했다.

   처음에는 지도를 보면서 서울과 군산 사이에 굵직한 도시 이름이 하도 많아 걱정스러웠는데, 실제로 버스 한번만 타면 갈 수 있어서 별 부담이 없이 다닐 수 있었다. 실제 거리가 얼마든, 내 감으로 군산은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내 작업실은 구 도시 3층 건물의 3층이다. 주변은 일본식 옛 건물과 현대 건물이 뒤섞여 있고 자동차 소음이 잔잔하게 들린다. 주말에는 일본식 건물과 맛집을 찾는 관광객들로 제법 요란하다. 나는 군산의 특별한 볼거리와 분위기를 즐기며 타지 생활을 즐겼다.  

   지금은 군산에서 지낸지 어림잡아 반년 지났다. 내가 유난히 무심한 탓인지 몰라도 이제는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지형과 역사 따위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오래된 건물에 쌓인 흔적은 어느 도시나 비슷하다. 삶의 흔적을 두껍게 뒤집어쓴 건물에서 는 오히려 사람의 보편성이 느껴진다.

   이번에 보여주는 드로잉 작업은 오래된 도시에 쌓인 흔적, 어느 도시나 다름없는 도시의 흔적을 보여주는 작업이다.  



백정기, 핑크6, 40*17cm, 종이위에 연필, 2016



백정기, 핑크8, 40*17cm, 종이위에 연필, 2016



백정기, 핑크2, 40*17cm, 종이위에 연필, 2016 



백정기, 핑크9, 40*17cm, 종이위에 연필, 2016



백정기, 핑크1, 40*17cm, 종이위에 연필, 2016


 


 


백정기 作 (미디어작가)


- 작가소개

홍대 회화과를 중퇴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을 졸업했다. 2008년 개인전 를 시작으로 5회의 개인전을 했고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2012년 홍은예술창작센터, 2013년 경기창작센터 입주작가로 레지던시 활동을 한바 있다. 음악적 청각화를 주제로 “Walking alone on a clear night: Musical sonification based on cityscape”외 1편을 등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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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도시 



                           


백정기, The Palimpsests Of The City, 비디오, 가변크기, 10분, 2014


   선릉역은 아침마다 출근길 인파로 수선스럽다. 특히, 계단을 좁게 빠져 나온 사람들이 지하철역 입구에서 한꺼번에 터져 나와 장관을 연출한다. 이런 풍경은 도시가 있는 한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다. 출근길 인파는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사실 인간성 이라는 것은 전혀 담겨있지 않다. 인간성뿐만 아니다. 자유의지와 전혀 상관 없는 몸뚱이가 질량(mass) 운동을 위해서 팔다리를 흔들다가 멀리 사라져 버린다. 그렇다고 여기에 비관적인 감상이 들지는 않는다. 어쩌면 비인간적인 인간상은 이미 자연스럽고 익숙한 현상이다. 인간적인 진보, 이성, 도덕, 자유의지처럼 추상적인 가치야 말로 간헐적으로 인간의 그림자 위에 떠오르는 환상일 지 모른다. 이 환상은 인간이 다른 동물들 보다 우월하다는 신화를 만들고 인간을 세상의 중심으로 사고하게 만든다.   


   시리즈는 도시에 존재하는 사람이 지워진 풍경을 보여준다. 작품 속 인간은 몸의 경계 조차 분명하지 않다. 그래도 작품 속 세상은 평화롭다. 사랑도 원한도 과한 의지도 없이 누구나 자연의 법칙대로 흘러간다. 인류의 종국적인 목표를 단정하는 사람들은 무기력하고 비관적으로 보이겠지만, 실은 인류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일지 모른다.  


                     

백정기, Palimpsests_announcement, 비디오, 가변크기, 12분, 2014




 


 


백정기 作 (미디어작가)


- 작가소개

홍대 회화과를 중퇴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을 졸업했다. 2008년 개인전 를 시작으로 5회의 개인전을 했고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2012년 홍은예술창작센터, 2013년 경기창작센터 입주작가로 레지던시 활동을 한바 있다. 음악적 청각화를 주제로 “Walking alone on a clear night: Musical sonification based on cityscape”외 1편을 등재하였다. 


 


 

 

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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