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의 기다림: 변화와 희망의 정치




 양권석

(본 연구소 소장 / 성공회대 신학과 교수)


 

          실업과 불황에 허덕이는 개인의 삶뿐만 아니다. 나라의 살림이나 정치가 그렇고, 세계정세 또한 다르지 않다. 불안과 공포와 절망은 오늘 우리 시대 우리 사회를 대변하는 정서다. 문제나 갈등이 있다는 것만으로, 그 사회가 절망 가운데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불안과 공포와 절망의 근원은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희망 혹은 전망을 찾을 수 없다는 느낌에 있다. 이처럼 전망부재의 불안과 공포와 절망의 현실 가운데서, 우리는 어떻게 성탄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 했는데, 어떻게 평화의 새 시대를 향한 희망을 말할 수 있을까?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則變, 變則通, 通則久)라 하였다. 지금까지 지켜 온 삶의 방식이 극에 달하여, 한 사회의 살림이 정체되고, 정치가 소통불능의 상태에 도달하고, 더 이상 미래의 희망을 말할 수 없는 막다른 지점에 도달하면, 이제 그 삶의 방식을 전적으로 변화시켜 내야 하고, 그 변화를 통해 새로운 신뢰와 소통의 길을 만들고, 더불어 함께 새날의 꿈으로 살수 있게 해야 한다는 뜻이리라. 하지만 이 시대 우리 사회는 막다른 골목에 서서 길을 잃는 사람처럼 서 있다. 그 차갑고 어두운 길의 끝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주저 앉아 있다. 분명 막다른 길임을 아는데, 이대로는 삶이 이어질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데, 다시 원점으로 서둘러 돌아가 새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아는데, 뒤돌아 설 줄 모르고 여전히 앞을 향해 넘을 수 없는 장벽을 응시할 뿐이다.  

         정치란 통치권력을 세우는 문제이기 이전에 새로운 삶을 향한 변화의 의지요 결단이어야 할 것이다. 세겜에서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았을 때 요담이 했던 경고(판관기 9:7-15), 왕을 세워달라는 백성들의 요구에 대한 사무엘의 응답(사무엘 상 8장), 그리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자 자신들의 왕이 되어 달라고 달려드는 사람들의 요구를 뿌리치는 예수의 말씀은, 정치가 권력을 세우는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라고 보았던 한나 아렌트의 통찰을 예상하고 있다. 참된 평화의 길을 향해 새로운 삶의 길을 함께 결단하는 일, 그것이 바로 정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의 정치는 막다른 길에서 사람들을 서성이게 하고 있다. 분명 이대로는 갈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결정적인 변화의 필요성을 외면하게 만들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과 가치관은 결코 틀린 것이 아니며, 결국 닥쳐 올 모든 문제들을 다 극복 할 수 있을 것이며, 그래서 현재의 삶은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는 거짓된 믿음을 부추기는 정치, 그 거짓된 믿음 위에 기생하는 정치가 지배하고 있다. 결코 끝이 아니다. 파국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근본적인 변화는 필요 없다. 도끼가 나무뿌리에 닿았다고 말하는 세례자 요한은 과대망상일 뿐이고, 예수가 다시 오셔야 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고 그들은 말하고 있다.

         이 때가 되면 누구나 한 번쯤 떠 올리는 익숙한 그림들이 있다. 차가운 겨울 달빛 아래, 그 추위와 밤을 견디고 있는 겨울 나무와, 혹한을 견디며 단련한 맑고 투명한 정신을 말하는 듯한, 하지만 계절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붉은 과일하나. 또 열매와 잎을 모두 벗어버린 맨몸으로 휘몰아치는 북풍한설을 정면으로 응대하며 겨울 들판을 지키고 선 나무들. 이 겨울 그림들을 통해 우리는 고난과 절망의 한 복판에서 희망을 일구어내는 삶의 길을 상상한다. 그 그림 속에는 막다른 길에 선 자의 변화를 향한 강렬한 희망과 과감한 실천이 있다. 우리를 가두고 길들여 온 가치와 질서에 대한 깊은 반성이 있고, 삶의 불편한 진실을 대면하는 용기와 겸손함이 있다. 모든 거짓과 허위를 벗어버리고 삶의 근본을 붙드는 힘, 곧 사회와 인간이 자신의 진정한 뿌리를 되찾는 모습이 그 안에 있다. 나는 이것이 막다른 길에 선 사회와 인간이 실천해야 할 정치의 참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도끼가 나무 뿌리에 닿았다는 종말과 파국과 변화에 대한 인식이 없다면 성탄의 희망이 들어설 자리도 없는 것이다. 우리가 어디에 살든지 창조 직전의 마지막 순간에 있는 것처럼 살라고 했던 에른스트 블로허의 가르침을 생각한다. 마지막 순간을 창조의 순간으로 아는 사람들, 지금 여기를 마지막 순간으로 알고 삶의 근본적인 변화와 창조의 새 날을 향한 희망의 정치를 세우는 사람들, 그들에게 성탄은 하늘이 그들과 함께하고 있음에 알리는 은총의 메시지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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