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 : 저자의 죽음과 텍스트의 즐거움을 위하여




이해청
(성공회대 박사과정 / 탈식민성서해석학)

 



    서구의 모든 신념과 믿음은 이 재현에 대한 자신감을 걸고 도박하였다. 

기호는 의미의 심층을 지시할 수 있고 기호와 의미는 서로 교환되어질 수 있으며 

이러한 교환에 무엇인가가-물론 신이-보증을 서준다. 

그러나 만약에 신 자체가 시뮬라크로 되어질 수 있다면 

즉 신 자신이 보증을 서주는 기호들의 하나로 축소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장 보드리야르-  


     전통적으로 저자란 책의 의미를 보증해주는 자였다. 그렇기에 저자보다 저자를 더 잘 알기 위한 노력들이 뒤따랐는데, 책의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 즉 저자가 처한 환경과 맥락을 통해서도 그 의미를 결정하고자 했다. 서구의 낭만주의 해석학은 이러한 시도들의 한 예이며, 특히 사회학적 해석은 적극적으로 외부를 통해 규명하고자 했다. 저자의 의도는 이 해석들에서 주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리쾨르는 하이데거 이후 비평이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작동될 순 없다고 보았다. 때문에, “스토리는 작가에 의해 창조된 장치라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전통에 길들여진 문학비평가는 흐릿한 지평 속으로 사라지는 스토리들 안에서 주체가 수동적으로 뒤얽힌 현상의 연장 선상에 놓이게 될 이야기된 스토리라는 이러한 개념에 그다지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각주:1]고 지적한 바 있다. 한데, 저자와 관련한 문제가 이뿐이랴. 로만 잉가르덴과 볼프강 이저에 따르면 “글로 씌어진 작품은 독서를 위한 스케치이므로 작품을 완성하는 것은 최종적으로 독자”[각주:2]임이 드러난다. 간단히 말해, 저자에서 텍스트로 그리고 텍스트에서 독자로 진행되어온 비평의 흐름은 어떤 한 책에 대한 저자의 의도가 해석의 문제를 주도하거나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깨우쳐 주었다. 

     불행히도, 성서해석에서 이것은 우상파괴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왜냐하면 전통적으로 교회는 사도적 승계를 입증할 수 있는 제자의 계보에 복음서의 저자가 속해 있기에 복음서가 역사적으로 충분히 보장받을 수 있다고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고대뿐만 아니라 현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예수와 그 목격자들』이라는 책을 쓴 보캄은 그 한 예다. 확실히 이것은 글을 쓰는 자 이외에는 어떠한 이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주장으로서, 다시 말해 글과 글의 진실성을 담보하는 유일한 척도가 저자라고 판단함으로써 역사적 연속성과 글의 진실성을 동시에 보장받으려는 노력의 일환일 것이다. 하지만 보드리야르가 말한 것처럼 신이 하나의 기호로 축소될 수 있다면, 다시 말해 신이 전달한 내용을 보증하는 저자가 기호들 중 하나로 축소된다면, 이것은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기에 단일하고 확실한 소통을 가능케 해주었던 바벨탑을 무너뜨리는 일과 같을 것이다. 놀랍게도 바르트에게 이것은 전혀 불행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텍스트의 즐거움이라고 불렀다. 사실, 바벨탑을 무너뜨린 이도 하느님이지 않던가. 아무튼, 그에게 저자란 신의 계시의 확실성을 담보하고자 애쓴 일종의 신학적 변증에 지나지 않았다. 당연히 작품은 더 이상 단 하나의 의미, 즉 모든 다양한 견해들을 수렴하는 일을 가능케 하는 신의 목소리를 드러내기 위한 단어들의 짜임이 아니었다. 차라리 한 작품 안에 다양한 글쓰기가 내재해 있어 서로 간에 충돌을 빚고 모순을 일으키는 다차원적인 투쟁의 공간이었다. 텍스트는 수많은 문화의 온상에서 온 인용들의 짜임이기에 하나의 의미만을 고집할 수 없는 그러한 것이었다. 한 마디로, 저자를 죽이고 텍스트를 돌출시킴으로써 텍스트에 다양한 저자/목소리가 내재해 있음을 밝혀낸 것이다. 그것도 단수가 아닌 복수의 저자를 말이다. "우리는 이제 텍스트가 하나의 유일한 의미, 즉 <신학적인>(저자-신의 메시지인)의미를 드러내는 단어들의 행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 중 어느 것도 근원적이지 않은 여러 다양한 글쓰기들이 서로 결합하며 반박하는 다차원적인 공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텍스트는 수많은 문화의 온상에서 온 인용들의 짜임이다. ……텍스트에 저자를 부여하는 것은 그것에 안전장치를 부과하고, 최종적인 기의를 제공하고, 글쓰기를 봉쇄하는 것이다. 저자의 통치는 역사적으로 곧 비평의 통치였으며 그리고 이런 비평이 오늘날 저자와 더불어 붕괴되어 가고 있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 텍스트에 하나의 <비밀>을, 최종적인 의미를 부여하기를 거부하면서, 이른바 반신학적이라고 할 수 있는 활동을, 진정으로 혁명적인 그런 활동을 분출시킨다. 왜냐하면 의미를 고정시키는 것을 거부하는 것, 결국 신과 그 삼위일체 위격인 이성·과학· 법칙을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각주:3] 

     그렇다면 복음서 역시 바르트가 말한 것처럼 읽혀질 수 있을까? 앞서 잠시 언급한 바 있지만 교회의 전통은 이러한 해석을 지지하지 않았다. 유세비우스의 말을 들어보도록 하자. 특히, 마가복음과 관련한 그의 말을 말이다. 


 장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베드로의 해설자였던 마가는 주님이 말씀하시고 행하신 많은 일들을 비록 순서대로는 아니지만 그가 주목한 대로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마가는 주님으로부터 말씀을 직접 듣거나 혹은 주님을 따르던 제자는 아니었다. 후에 그가 베드로와 동행할 때 베드로는 그에게 주님의 교훈을 기록한 완성된 책을 남겨준 것이 아니라 일화 형식으로 주님의 교훈을 말해 주었다. 그러나 마가는 자신이 전해들은 교훈들을 그대로 기록할 때에 실수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오로지 자신이 들은 사실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그대로 말하고자 하는 그 한 가지 일에 주의를 집중했기 때문이다. 


     베드로의 해설자라고 말함으로써 마가복음서의 저자를 사도적 승계의 관점에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은연중에 저자가 복음서를 해석하는데 있어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또한 “실수하지 않았다. 그리고 집중했기 때문이다.”라는 언급을 참작한다면, 역사 속에 계시된 하느님의 아들에 대한 역사적 복원을 추구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설령 유세비우스가 이러한 의도를 지니고 있었다하더라도, 의도와 상관없이 그의 진술은 마가복음서가 예수의 생애를 가장 잘 나타낸 복음서라는 홀츠만을 비롯한 여러 학자들의 결론에 철퇴를 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적어도 그는 분명 순서대로 적은 것은 아니라고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보수적인 학자 레온 모리스의 말도 흥미롭다.[각주:4] 


     마가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로 그의 복음서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의 복음서의 끝 부분에 가서 그는 백부장이 십자가에서 예수의 죽음을 보고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라고 말한 것을 우리에게 전한다. 즉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이 마가복음서에서 예수에게 사용된 건 처음과 마지막이다. … 제자들은 마가복음서에서 이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예수도 재림의 때에 관하여 아무도 모른다고 말하면서 단 한 번 자신을 아들이라고 말한 것 외에는 사용하지 않았다. 이것이 기독교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유대교의 자료는 그들이 메시야에 관해 말할 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러한 주장은 마가복음서가 다층적임을 보여주는 단서로 간주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초기 제자들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용어를 예수에게 적용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기에 마가복음서 저자는 최소한 자기 이전의 전통과 자신 간에 간격이 있음을 시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고고학적 지층들을 보존하고자 애썼다는 점을 드러내려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지층들을 화석이나 지질학적 단층들처럼 이미 고정된 것으로 간주한다면 곤란해진다. 던이 말한 바와 같이 전승들은 여전히 유동적이었기 때문이다. “원시 교회들은 전혀 예수-전승을 처음부터 확고하게 존립해 있었던 바, 내용과 개요를 함유하고 있는 어떤 고정된 것, 하나의 전승체로 파악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 전승들 자체는 이미 결정적인 형태로, 혹은 최종적으로 권위 있는 형태로 간주되지 않았는데 그 전승들의 권위라는 것은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예언적 영에 의해 제기되는 적용과 해석에 연루되어 있는 것이다.”[각주:5] 

     그렇다면, 텍스트는 수많은 문화의 온상에서 온 인용들의 짜임이라는 바르트의 말이 복음서와 관련해서도 유효하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다시 말해, 자기 이전의 여러 문화에서 온 전승들을 짜 맞추어 하나의 이야기로 풀어낸 것이 마가복음서라고 말이다. 공교롭게도 카독스는 이와 관련해 꽤 시사적인 논지를 던져주고 있다. 우선, 그는 마가복음서의 전승이 구전이 아닌 문헌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기에 어떤 것이 더 원시적이고 그로 인해 권위를 갖는 것인지를 논하는 일은 별 의미가 없다고 지적한다. 디벨리우스 역시 생생하고 우연적인 것처럼 보이는 단화들이 반드시 원시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고 주장한 바 있지 않던가. 그러나 좀 더 흥미로운 대목은 마가복음서에는 3개의 문헌적 층이 보이는데 이 층들은 각각 팔레스타인적, 디아스포라적, 이방인적 색채를 지니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이 층들이 편집을 거쳐 최종적으로 우리가 아는 마가복음서로 정착되었다고 말한다.[각주:6] 또한, 마가복음서가 호머의 서사시를 본뜨고 있다고 역설한 맥도날드의 논의도 눈여겨 볼만 하다.[각주:7] 그는 어리석은 제자들, 천둥의 아들, 배에서 잠자는 제자들, 급식기적, 변화산에서의 변모, 삼백 데나리온의 향유를 부은 여인, 마지막 만찬 등 마가의 이야기에 나오는 여러 이야기들이 호머의 서사시와 매치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이러한 주장은 개론적인 수준에서도 소개되고 있는 일반적인 주장, 즉 마가복음서가 혼합된 청중을 가진 공동체를 배경으로 한 복음서라는 논의를 참작하면 그리 매력을 끄는 주장이 아닐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일반적인 개론수준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마가복음서가 수많은 문화의 온상에 온 인용구들의 짜임이라는 바르트의 주장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바르트의 주장을 구체적으로 예증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 두 연구는 꽤 흥미롭다. 

     한데 지금까지의 주장, 즉 마가복음서가 여러 층들을 지니고 있고 이 층들은 여러 문화의 온상에서 온 색채들을 지니고 있다는 주장은 마가복음서의 저자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명이라는 점을 간접적으로 내비치고 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어쩌면 이러한 물음은 대번에 아주 유치하고 초보적인 것으로 취급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흔히 생각되는 것처럼 마가복음서가 하느님의 영감으로 한 명의 저자에 의해 단번에 작성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 예로, 벤들링은 마가복음서 내에서 최초의 이야기꾼의 이야기, 후대의 이야기꾼의 이야기, 그리고 최종 편집자를 구분해내고 있다.[각주:8] 얼핏 보면, 이것은 마가복음서의 이야기가 자료와 편집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일반적인 주장과 별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자료의 문제만을 말하고 있진 않다. 그러니까 자료의 문제를 넘어 한 이야기꾼에 의해 특정한 줄거리를 갖는 이야기가 마가복음서 내에 잠복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마가복음서의 저자가 요한 마가 하나뿐이라는 전통적인 주장은 그에 따르면 순진한 착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저자의 문제는 아니지만 마가복음서가 두 단계에 걸쳐 작성되었다고 주장하는 크롬의 논의는 마가의 이야기가 단번에 쓰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꽤 유용하다.[각주:9] 게다가 마가복음 16장 8절 이하가 원래의 것이 아니라 덧붙여진 것이라는 벨하우젠의 주장은 너무나 잘 알려진 바다. 하지만 이뿐일까. 얼만에 따르면 마가복음서 1:1의 하느님의 아들은 양자론적 이단들에 대항하기 위해 첨가된 것이다. 그는 여러 중요한 사본들에서 하느님의 아들이란 용어가 등장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각주:10] 그런데 잘 뜯어보면 이러한 논의들 역시 벤들링 못지않게 덧붙인 편집자도 한 명의 저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마가의 이야기가 16장 8절에서 끝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16장 8절로 끝난다면 우리는 여성들이 부활의 이야기를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에게 전해주지 않았다고 여길 것이다. 반면에 첨가된 9절과 10절은 최소한 여성들 중 하나인 막달라 마리아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마가복음서가 16장 8절로 끝난다면 예수를 처음부터 따랐던 유대인 여성들 역시 남성 제자들 못지않게 우둔한 인물로 간주되어야 하겠지만, 첨가된 9절과 10절을 고려하면 적어도 막달라 마리아만은 깨달은 인물로 변신했다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마가복음서 1장 1절에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어구가 없다면, 마가복음서 전체는 예수의 신성과 관련해 일종의 양자론적 견해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어구를 첨가함으로써 양자론적 견해를 취하는 이단적 문헌이라는 혐의는 벗어버리게 되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어구 하나를 첨가함으로써 이 후대의 편집자는 마가복음서 전체의 의미를 결정짓는 사실상의 저자가 되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따라서 "작가는 결코 근원적인 몸짓이 아닌 다만 이전의 몸짓을 모방할 뿐이다. 그의 유일한 권한은 글쓰기를 뒤섞거나 대립하게 하여 그 중 어느 하나에도 의존하지 않게 하는 데에 있다."는 바르트의 지적은 촌철살인적인 논평처럼 보인다. 

     이제 결론적인 물음을 하나 던져보도록 하자. 이처럼 저자들이 뒤섞여 있고 덧붙여졌다면, 어떻게 우리는 마가복음서를 일관된 흐름을 지닌 하나의 텍스트로 읽어낼 수 있었을까를 말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들을 고려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오독이었다고 판단을 내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결국 독자에 의해, 즉 일관된 흐름을 부여하고자 욕망하는 신앙적/신학적 독자에 의해 마가복음서의 사상 내지는 신학이라는 틀이 건져졌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이러한 오독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럼으로써 한 가지는 얻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들뢰즈가 말한 바와 같이 고유명사의 퇴락이다. 저자라는 고유명사를 중심으로 사고해야만 텍스트의 원래의 의미가 얻어진다는 믿음. 신학에서 혹은 경전에서 최종적으로 신의 목소리를 확인하기 위한 중요한 지표로 사용되는 저자에 관한 믿음. 이것은 붕괴되어야 한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라는 동화책을 분석하면서 자신의 논의를 펼쳐 낸 들뢰즈의 지적처럼 말이다.[각주:11] 


     무한한 동일성 속에서 등장하는 이 모든 뒤바뀜들은 엘리스의 인칭적 동일성의 흔들림, 고유명사의 전락이라는 결과를 낳는다. 고유명사의 전락은 앨리스의 모든 모험들을 관통해 반복되는 모험이다. 왜냐하면 고유명사 또는 단수명사는 한 지식의 항구성에 의해 그 동일성을 보장받으며 이 지식은 일정한 고정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정지와 휴지를 가리키는 일반 명사들 속에 구현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칭적 자아는 신과 세계 일반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명사와 형용사가 무너지기 시작할 때 정지와 휴지의 명사들이 순수 생성의 동사들에 연결되고 사건들의 언어로 미끄러져 들어갈 때 자아, 세계, 신 등의 모든 동일성은 상실된다. 


     그리고 이러한 반신학적 붕괴가 텍스트의 즐거움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가복음서에서 텍스트의 즐거움은 어떻게 추구될 수 있을까? 이것은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자. 하지만 텍스트의 즐거움이 어떠한지를 에코의 말로 대신하면서 마칠까 한다.[각주:12] 사실 지금까지의 논의들도 아래에서 에코가 전하는 즐거움을 간접적으로 보여준 것이나 다름없지만 말이다. 물론, 마가의 말처럼 귀 있는 자는 이미 듣고 깨달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엘레나 코스추코비치는 '장미의 이름'을 번역하기 전에 이 작품에 관한 긴 글을 쓴 바 있다. 어떤 대목에서 그녀는 에밀 앙르와의 브라티슬라바의 장미를 언급하는데, 이 책에는 어떤 신비로운 원고의 추적과 도서관의 최후의 화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이야기의 배경은 프라하인데 나의 소설의 첫머리에서도 프라하가 언급된다. 더구나 내 책에 등장하는 사서의 이름이 베렝가리오인데 그 책의 사서는 벵가르 마르라는 이름이다. 내가 경험적 저자의 자격으로 앙르와의 소설을 읽은 적이 없고 그런 책이 있었다는 사실조차도 몰랐다고 말해 봤자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내가 읽은 평론들 중에는 비평가들이 내가 잘 알고 있는 출처를 찾아낸 것도 있다. 비평가들이 스스로 찾아내도록 내가 교묘하게 감췄던 것을 그들이 교묘하게 찾아낸 것을 보고 나는 아주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나는 출처를 전혀 알 수 없었던 글을 읽기도 했는데, 어떤 사람이 그 출처를 밝히며 그런 책에서까지 내가 인용하고 있다고 지적했을 때 나는 매우 기뻤다. 또 어떤 해설자는 내가 작품을 쓸 때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어린 시절에 읽어서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은 책들을 찾아내기도 했다(내 친구 조르지오 첼리는 옛날에 내가 읽었던 책들 중에는 드미뜨리 메레쥐꼬프스키의 소설도 있었을 거라고 귀뜸해주었는데 나는 그가 옳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 웹진 <제3시대>

  1. 폴 리쾨르, 『시간과 이야기1』, 김한식․ 이경래 옮김, 문학과 지성사, 1999, p.167 [본문으로]
  2. 폴 리쾨르, 같은 책, p.170 [본문으로]
  3. 롤랑 바르트, 『텍스트의 즐거움』, 김희영 옮김, 동문선, 1997, pp.32~34 [본문으로]
  4. 레온 모리스, 『신약신학』, 박용성 譯, 기독교문서선교회, 1990, pp.165~167 [본문으로]
  5. 제임스 던, 『신약성서의 통일성과 다양성』, 김득중․ 이광훈 공역, 솔로몬, 1990, p.129 [본문으로]
  6. Cadoux Arthur Temple, The Sources of the Second Gospel, The Macmillan Company: New York, [본문으로]
  7. Macdonald Dennis R, The Homeric Epics and the Gospel of Mark, Yale University Press: New York, 2000. [본문으로]
  8. Wendling Emil, Die Entstehung des Marcus-Evangeliums, J.C.B Mohr: Tubingen, 1908, pp.214~237 [본문으로]
  9. Crum J. M. C, St Mark's Gospel: Two Stages of its Making, W. Heffer & Sons Limited: Cambridge, 1936 [본문으로]
  10. Ehrman, Bart. The Orthodox Corruption of Scripture, Oxford University Press: Oxford, 1993, pp.72~75 [본문으로]
  11. 질 들뢰즈, 『의미의 논리』, 이정우 옮김, 한길사, 1999, pp.46~47 [본문으로]
  12. 움베르토 에코 외, 『해석이란 무엇인가』, 손유택 옮김, 열린책들, 1997, pp.99~10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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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시뮬라크르, 그리고 제의"_ 텍스트로서의 복음서




이해청
(성공회대 박사과정 / 탈식민성서해석학)

 


    양식비평 연구에서 미학적 의미에서의 ‘작가’라는 개념은 떠오르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연구가 관심을 둔 곳은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였기 때문이다. 한 예로, 불트만은『공관복음전승사』에서 “삶의 자리가 개체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한 공동체의 삶의 전형적인 상황 혹은 행동방식인 것처럼 문학 형태 및 형식은 사회학적 개념이지 미학적 개념이 아니다.”[각주:1]라고 썼다. 그리고 이러한 전제는 전승의 역사뿐만 아니라 그 법칙성까지도 알아낼 수 있다고 자신하도록 만들었다. “마태와 누가의 마가 처리에는 어떤 법칙성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Q는 마태와 누가에서의 재구성에 의존되지만, 그러나 여기서도 마태와 누가를 비교해 보면 가끔 Q에서부터 마태와 누가까지의 어록 자료의 발전이 어떤 법칙 하에 있었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법칙성이 실제로 확인될 수 있다면, 이 법칙성은 마가와 Q에서 확정되기 전의 전승 자료에서 이미 작용했다고 가정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우리 자료의 형태로 확정되기 이전의 전승 단계에까지 소급해 갈 수 있다.”[각주:2] 그러나, 샌더스는 이러한 확신이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비판한 바 있다.[각주:3] 뿐만 아니라, 구테게만스는 형식주의와 구조주의 언어연구에 힘입어 형식과 내용을 분리하는 양식비평의 방식이 과연 옳은 일인지 진지하게 되물었다.[각주:4] 또한 개별적인 전승 자료들의 문제를 넘어 문헌 구성의 문제를 물음으로써, 그는 양식비평이 가진 대부분의 전제를 반박하고자 했다. 다시 말해, 전승의 익명성, 공동체성, 전승의 발전 법칙 등과 같은 양식비평의 여러 전제들에 물음을 제기했던 것이다.[각주:5] 

     물론, 여기서 편집비평에 대한 언급은 빠트릴 수 없다. 막스젠에 따르면 복음서 저자들은 전승 자료들에 변화를 가하지 않고 단지 짜깁기만을 시도한 그러한 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단순한 편집자 이상이었던 것이다.[각주:6] 때문에, 양식비평에서와 달리 복음서 저자들은 전승 자료들을 날것 그대로 보존해서 넘겨준 자들이 아니라 자신들의 관점에 맞게 전승들을 재구성한 하나의 신학적 작가로 취급되기 시작했다. 고로, 미학적 관점에 대한 고찰을 더는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미학적 개념은 신학적 비평에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 왜냐하면 미학적 개념은 자료들의 구성뿐만 아니라 자료들 자체에도 저자의 개성이 개입되었을 수 있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복음서 저자가 단순한 수집가가 아니라 신학적 작가의 지위로 격상된 이상 구성뿐만 아니라 개별적인 전승 자료들의 신뢰성 역시 담보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절단된 개별전승들조차도 각 복음서들의 줄거리에 맞게 주조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노릇이 된 것이다. 사실, 형식과 내용을 분리할 수 없다는 언어연구의 관점에서 보자면 절단된 개별전승들마저도 신뢰성에 있어 문제가 있을 수 있음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지적은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미 불트만은 “편집이 단지 구전으로 전승된 것만을 대상으로 했다고는 볼 수 없다……또 우리의 마가복음서가 처음 문서화된 이후에도 가필되었으리라는 가정을 반대할 아무런 근거도 없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차적인 자료들을 전승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다.”[각주:7]라는 벨하우젠의 말을 기꺼이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여전히 일차적 자료와 이차적 자료가 분리될 수 있고 그렇기에 복음서에서 역사적으로 순수한 일차적 자료를 안전하게 분리해낼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러나 미학적 개념에서는 일차적 자료냐 이차적 자료냐 하는 구분은 사소한 문제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미학적 개념에서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생생한 체험, 즉 일차적 자료가 후대의 공동체의 체험, 즉 이차적 자료를 지배하고 움직이며 나아가고 있다는 가설은 설득력이 없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미학적 개념은 그 반대의 경우를 요구할 수도 있다. 종교적 경험의 측면에서 보자면 부활에 대한 미학적 경험과 같은 것을 말이다. 이러한 점에서 아우얼 바하는 “성서의 화자는 전설의 진실성에 대한 그의 믿음이 그에게 요구하였던 바로 그것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그가 만들어낸 것은 본래 리얼리즘을 지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진실성을 향한 것이었다. 그것을 믿지 않는 자에게 재앙있거라!”[각주:8]라고 썼다. 마찬가지로, 그는 “마가복음을 쓴 필자는 그로 하여금 예를 들어 베드로의 성품을 객관적인 사실로써 그릴 수 있게 할 관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는 일어나고 있는 일의 복판에 있다. 그는 그리스도의 존재와 사명과 관련해서 중요한 것만을 관찰하고 기록한다. 위에든 사건에서는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가, 즉 베드로가 어떻게 도망할 수 있었는가를 말해야겠다는 생각조차 떠오르지 않는다.”[각주:9]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결정타를 날렸다. “성스러운 글들의 전체 내용이 주석에 관련시켜지고 주석은 말하여진 것을 그 감각적 기초에서 떼어내는 일을 했다. 왜냐하면 독자나 청자는 실제 일어난 감각의 사건에서 눈을 돌려 그 의미를 생각하도록 요구받았기 때문이다.”[각주:10] 

     따라서 복음서 연구에서 전승의 신뢰성을 담보하는 기준으로 논의되고 있는 구전이론 역시 미학적 개념의 관점에서 보자면 하찮은 일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바하가 지적한 것처럼 종교적인 미학적 경험은 주석을 요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날 것 그대로의 감각적인 체험은 들어설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주석적 텍스트/이야기를 구성할 사명을 지닌 신학적 작가에게 대체 일차적 혹은 이차적 구분이나 구전과 같은 개념이 어떤 의미를 지녔겠는가? 과연 개별전승들의 신뢰성을 구전이론으로 방어해보고자 노력하는 최근의 보수적인 보컴을 비롯한 여러 학자들의 견해는 타당한가? 역사적인 예수와 가까웠을 수도 있는 특정한 개인들의 원초적인 목소리에 기대어 전승의 신뢰성을 설득하고자 애쓰는 보컴의 노력은 실로 눈물겹다.[각주:11] 하지만 그는 이것이 데리다가 지적한 현전의 형이상학을 추구하는 신학적/철학적 노력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길지만 들어보도록 하자.[각주:12] 


 왜 음소는 기호들 중에서 가장 이념적인가? 소리와 이념성 사이의 아니 그보다는 목소리와 이념성 사이의 이 공모는 어디서 비롯되는가? 내가 말할 때, 이 수행의 현상학적 본질에는 내가 말하는 그때 내가 나를 듣는다는 사실이 속한다. 나의 숨결에 의해 그리고 기표작용의 의도에 의해 혼이 불어넣어진 기표는 내게 절대적으로 가까이 있다. 살아있는 작용, 생명을 주는 작용, 기표의 신체에 혼을 불어넣어 그것을 말하고자 하는 표현으로 변형시키는 생기, 언어의 영혼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자기현전과 분리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 영혼은 세계에 그리고 공간의 가시성에 내버려진 기표의 신체 속에서 죽음을 맞을 위험에 처하지 앟는다. 음소는 현상의 구사가능한 이념성으로 주어진다. 이렇게 영화작용이 자신에 의해 혼이 불어넣어진 것의 투명한 정신성 속에서 자기에게 현전함, 이렇게 삶이 자기 자신에게 내밀함, 이로 말미암아 말은 살아 있다고 늘 일러져 왔던바, 그러한 모든 것은 그러므로 말하는 주체가 현재에 자기를 듣는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리고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에서 데리다는 “기의의 형식적 본질은 현전이고, 소리로서의 로고스와 그것이 인접하는 특권은 현전의 특권이다.”[각주:13]라고 고쳐 썼다. 또한, 우리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이렇게 쓰기도 했다. “자연적 문자언어는 목소리와 숨결에 직접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그것의 본성은 문자학적이지 않고 영기학적이다. 그것은 성직자의 것이고, 신앙고백의 내적인 성스러운 목소리와 아주 가깝고, 우리가 자신 안으로 되돌아가면서 듣는 그 목소리와 아주 가까운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내적 감정에 신의 목소리가 충만되고 진실하게 존재하는 현전이다.”[각주:14]라고 말이다. 신학의 구전에 대한 집착은 바로 이러한 연유때문일 것이다. 신의 목소리는 역사적 두께를 몰아내고 순수한 것을 되찾도록 최초로 믿은 자들의 음성 속에 심어놓은 것이기에 우리가 그 목소리의 목격자를 찾아낸다면 역사적 신뢰성을 충분히 담보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이미 문자로 정착된 복음서에서 때가 끼지 않은 순수한 전승을 찾는 것이 가능한가? 이와 관련해, “문자는 자신의 망각이고 외재화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면화하는 즉 정신의 역사를 여는 기억의 반대[각주:15]”라고 한 데리다의 지적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비록 데리다의 논의를 전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리쾨르 역시 “직접적인 목소리, 얼굴표정, 몸짓 대신에 이러한 매개물들을 이용하는 기록은 그 자체로 하나의 굉장한 문화적 성취이다. 여기서 인간적 사실은 사라져 버린다. 대신 이제 물질적 표식들이 메시지를 전달한다.”[각주:16]고 지적한 바 있다. “담화의 운명이 이제 목소리에서 글자로 옮겨[각주:17]”진 것이다. 하지만 글이라는 것은 이것보다 좀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그것은 바로 “글로 씌어진 담화에서는 저자의 의도와 텍스트의 의미가 더 이상 일치하지 않는다.[각주:18]”는 점이다. “절대적인 지금/여기는 시 공간 안에 있는 모든 위치들의 절대적 원천이었던 화자의 목소리, 얼굴 표정, 몸짓이 외적인 물질적 표지들로 대체되면서 폐기된다. 그리고 텍스트를 작가의 현존과 분리시키며 그것을 미래의 잠재적 독자층에게 열어 놓는 텍스트의 의미론적 자율성이 생겨난다.”[각주:19] 그렇다면, 텍스트란 목소리를 통한 자료들의 신뢰성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살펴 본 작가라는 미학적 개념까지도 파괴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적한 것처럼, 텍스트란 텍스트의 저자가 말하고자 했던 바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개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다른 의미는 영향사를 통해 중개될 것이다. 그렇기에 영향의 불안은 텍스트 내에 잠복해 있는 하나의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이전의 전승들과 해석들을 위협하고 덮쳐버리는 하나의 시뮬라크르로 자신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텍스트로서의 복음서란 개별적인 전승 자료들만의 문제도 그렇다고 저자만의 문제도 아닌 독자가 개입되는 훨씬 더 복잡한 문제임을 알 수 있다.


ⓒ 웹진 <제3시대>

  1. 루돌프 불트만, 『共觀福音書傳承事』, 허혁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1970, p.4 [본문으로]
  2. 루돌프 불트만, 같은 책, p.7 [본문으로]
  3. Sanders, The Tendencies of the Synoptic Tradi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69, pp.23~24 [본문으로]
  4. Guttgemanns, Candid Questions Concerning Gospel Form Criticism, trans by William Doty, The Pickwick Press, 1979, p.75 [본문으로]
  5. Guttgemanns, 같은 책, p.129 [본문으로]
  6. Willi Marxsen, Mark the Evangelist, trans by Roy Harrisville, Abingdon Press, 1969, p.21 [본문으로]
  7. 루돌프 불트만, 앞의 책, p.2 [본문으로]
  8. 에리히 아우얼 바하, 『미메시스』, 김우창, 민음사, 1987, p.25 [본문으로]
  9. 에리히 아우얼 바하, 같은 책, p.62 [본문으로]
  10. 에리히 아우얼 바하, 같은 책, p.62~63 [본문으로]
  11. 이에 대해서는 리처드 보컴, 『예수와 그 목격자들』, 박규태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5, pp.39~79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12. 자끄 데리다, 『목소리와 현상』, 김상록 옮김, 인간사랑, 2006, pp,118~119 [본문으로]
  13. 자크 데리다,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 김웅권 옮김, 동문선, 2004, p.42 [본문으로]
  14. 자크 데리다, 같은 책, p.39 [본문으로]
  15. 자크 데리다, 같은 책, p.53 [본문으로]
  16. 폴 리쾨르, 『해석이론』, 김윤성․ 조현범 옮김, 서광사, 1994, p.61 [본문으로]
  17. 폴 리쾨르, 같은 책, p.64 [본문으로]
  18. 폴 리쾨르, 같은 책, p.65 [본문으로]
  19. 폴 리쾨르, 같은 책, p.7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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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빠 이야기’ 연구 동향 (3)


정용택
(본 연구소 상임연구원)



1. 구전되고 기억된 역사로서 복음서

영국의 신약학자 제임스 던(James D.G. Dunn)은 복음서의 형성 과정이 “과거를 다시 현존하게 함으로써(Vergegenwärtigung), 정확하게 과거와 현재의 지평을 융합하는 ‘기억함’의 과정이었”다고 말한다.[각주:1] “그렇다면 공관복음서의 최초 이야기들 속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처음 제자들의 기억들이다―즉, 예수 자신이 아니라 기억된 예수인 셈이다.”[각주:2] 복음서의 이야기들이 근본적으로 예수에 관한 지지자들의 기억의 산물이라는 관점을 취한다면, 우리는 이 이야기가 역사적 진실로서 입증되기 어렵다고 해서, 반드시 이 이야기의 ‘모든 것’들이 후대에 갑작스럽게 만들어진 허구라고 간주할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종래의 역사비평적 성서해석이 추구해온 역사적 진실은 역사적 재구성에 바탕을 둔 고고학적 진리, 즉 고고학자들이 유적발굴 작업에서 조각난 파편들을 긁어모아 과거를 그대로 복원하는 것과 유사한 차원의 것을 의미했다. 이러한 고고학적 진리 복원의 작업을 통해 성서학자들은 역사적으로 진실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날카롭게 구분할 수 있다고 자신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바라빠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진실이 아닌 것, 따라서 문학적으로 창조된 허구라고 간단하게 결론 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복음서의 이야기 및 어록들이 애초부터 지지자들의 기억에 기초한 것이라고 한다면, 역사적 진실이 곧바로 고고학적 진실로 환원되고 고고학적 진실이 아닌 것은 문학적 허구로 간주되는 그 모든 작업의 절차들은 전면적으로 재고될 수밖에 없다.
 
복음서라고 하는 텍스트가 기억 속에서 구전된 서사라는 것을 상기할 때, 우리는 복음서가 말하는 역사적 예수의 그 ‘역사적’이라는 말을 새롭게 재규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예수에 대한 기억과 이야기가 지지자들의 자발적/비자발적인 기억 행위, 특히 그 기억행위가 담겨 있는 구술연행에 의해 이루어졌다면, 나아가 그것이 기억주체 혹은 전승주체의 서사적 정체성 수립을 가능하게끔 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고 할 때, 우리는 기억 속의 예수 이야기들을 고고학적 차원의 역사적 진실과 문학적 차원의 허구로 단순 도식화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기억이라고 하는 것이 “과거의 사건을 현재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이고, 기억이 현재의 욕망에 따라 하나의 창조적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복음서와 같이 언어로 기록된 기억, 그 서사적 구성에도 당연히 고고학적으로 완벽하게 복원 가능한 역사적 진실이 들어있진 않은 것이다. 오히려 기억에 기초한 복음서의 기록은 다른 차원의 역사적 진실에 속한다. 우리는 고고학적 차원에 속하진 않지만, 그 기억의 주체에게 있어서는 엄연한 사실로 존재하는 이와 같은 역사적 진실을 기억사적 진실 혹은 서사적 진실로 명명하고자 한다. 그렇기에 필자는 빌라도가 이러한 유월절 사면을, 즉 나자렛 예수와 바라빠라고 하는 이름의 인물을 무리들의 요구에 따라 바꿔준 그러한 사건을 ‘실제로’ 수행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확증하려는 데 두고 있지 않다.

포스트모던 역사학의 관점을 따르자면, 무릇 과거는 복원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하는 시점의 상황과 서술자의 욕망에 따라 (재)구성되는 것이다. 서사 행위는 현재 시점에서 이루어지는, 과거의 ‘사후적’인 재구성 행위라는 이른바 ‘사후성의 원리’[각주:3]에 따르자면, 인간의 이야기를 통해 찾을 수 있는 과거는 '기억사적 진실‘인 동시에 ’서사적 진실‘이다. 욕망과 기억에 의해 구성되는 그러한 ‘서사적 진실’에서 ‘서사의 욕망’ 내지 ‘욕망의 서사’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억된 과거가 이야기하는 당사자와 청자/독자의 현재의 상황 내지 욕망에 의해 재구성된 허구라고 보는 서사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역사도 현재의 상황과 필요에 따른 구성의 결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이야기의 진실성 역시 빌라도에 의해 십자가 처형을 당한 것이 분명한 역사적 예수 자신에게 있(을 수도 혹은 없을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예수 사후부터 구전(口傳)되어 오던 예수운동의 이야기를, 66-74년에 이르는 유대전쟁의 시기 중에, 특히 70년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와 가까운 전후(前後) 시기 어느 시점에서 수집하여 문서화한 후 그것을 다시 ‘새로운 기억 전승’과 결합시켜 구전으로 연행(連行)해 나갔을 마가공동체에 있다고 보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밝혀내야 하는 것도 바로 그러한 마가공동체의 ‘기억의 삶의 자리’이다. 중요한 것은 이 기억 행위의 주체가 누구이며, 그들에게 이러한 기억의 서사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며, 또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이러한 기억의 서사를 창안해내도록 했냐는 것이다. 덧붙여 이 기억의 서사가 단순히 관념적인 차원의 것이 아니라, 실제 현실에서 모종의 행위를 동반한 적극적 실천이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2. 트라우마적 기억의 서사로서 수난사화

마가복음 14-16장에 이르는 소위 ‘수난사화’(The Passion Narrative)에서는 무리들, 즉 오클로스(οχλος)뿐만이 아니라, 제자들, 그리고 여성 제자들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모든 예수의 지지자들이 예수를 배신하거나 예수를 따르는 데 끝내 실패한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예수를 그 적대자들에게 팔아넘긴 존재가 예수의 열 두 제자 중 한 명이었고, 예수의 제자를 대표하는 베드로 역시 예수를 면전에서 부인했다. 더욱이 제자들과 무리들이 모두 예수를 배신하고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고, 무덤에 안장되었을 때까지도 예수를 따랐다고 하는 여성 제자들(15:40-41, 47; 16:1-8) 역시 빈 무덤을 목격하고 예수의 부활 소식을 접했을 때는 정작 “무덤에서 도망하였”고, “벌벌 떨며 넋을 잃었”고, “두려워서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못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16:8). 그녀들은 예수가 부활할 것이라고 약속한 일이 현실로 이루어졌음에도 그것을 받아들이는데 실패했다.[각주:4]
 
수난사화에서 보자면, 열 두 제자로부터 시작하여 여성을 포함한 보다 넓은 범주의 제자들, 그리고 무리들에게 이르기까지, 예수의 모든 지지자들은 예수를 끝까지 지지하고 따르는 데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무리의 배신 혹은 적대적 태도로의 돌변이 마가복음의 전체적인 서사 구조에서 이탈한 것이라 볼 수 없으며, 오히려 세 차례에 걸친 수난예고와 동반되어 제시된 예수를 지지하고 따름에 요구되는 진정성과 성실성의 철저함(8:34b-37; 9:33-35; 10:42-45)을 확인시켜 주는 문학적 결말이라고 볼 수 있다. 예수는 첫 번째 수난예고에서부터 세 번째 수난예고에 이르기까지 거듭 제자와 무리들을 포괄한 그의 지지자들에게 자신을 따르는 것은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것이며, 예수와 함께 제국의 폭력과 종교적 타락에 대항하여 걷는 것이며, 죽음과 부활을 통과하는 것임을 주지시켰다.[각주:5]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두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를 따르는 데 실패했다. 그리고 그러한 실패가 16장 8절의 여성 제자들에게서도 반복되어 나타나는 것으로서, 마가복음의 청중 및 독자들에게도 예수를 따름에 있어 긴장과 결단을 유도하는 열린 결말의 구조로 남아 있는 것이 바로 오늘의 마가복음이다.[각주:6]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를 추종해온 무리들과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수를 지지하고 보호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무리들의 모습을 종합해보건대, 이 무리를 예루살렘 주민이 배제된 갈릴리의 출신의 무리로만 보는 것은 설득력이 없을 것이다. 마가복음은 예수운동의 초창기부터 이미 예루살렘에서 온 예수 지지자로서 무리들을 언급하고 있다(3:8). 예루살렘의 주민들이 예수의 성전에 대한 태도 때문에 그를 배척했다는 일부 학자들의 주장[각주:7]은 마가복음의 어떠한 본문에서도 근거를 찾을 수 없다. 마가복음 저자의 의도는 이들이 예루살렘의 무리인지 아니면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를 따라온 무리인지를 설명하는 데 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후대의 바라빠 이야기가 첨가되면서, 빌라도의 재판 이야기에 등장하는 오클로스의 정체가 다소 모호해지긴 했지만, 예수의 모든 지지자들의 총체적인 실패와 배신을 강조하고 있는 수난사화 및 마가복음 전체의 문맥으로 보아―물론 이 오클로스가 14:43-50의 오클로스와는 구별되는 것이 분명하지만―기존에 계속 언급되어온 예수의 지지자로서 그 오클로스의 연장선상에 있는 캐릭터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앞서 우리가 살펴본 바라빠 이야기가 만들어진 배경에 관한 많은 논의들이 이 이야기의 컨텍스트를 초기 그리스도교의 변증적 상황이라고 보고, 또한 이 이야기의 청중을 마가공동체 내부가 아닌 외부의 유대인 일반이라고 본 견해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기존의 논의들은 유대인들에게 예수 죽음의 책임을 전가하고 대신에 로마인들의 책임은 면제해주려는 의도에서 바라빠 이야기가 창작되었다는 견해를 되풀이해왔다. 그럼으로써, 마가복음과 마가공동체를 반유대주의적(anti-Semitic) 텍스트 및 집단으로 규정해온 것이다. 그러나 마가복음의 오클로스에 관한 많은 연구들을 참조해보고, 또한 수난사화의 문맥 안에서 오클로스 및 예수의 지지자들 일반에 관한 진술을 살펴 보건대, 마가복음이 상정하고 있는 이 이야기의 ‘저자적 독자’(authorial audience)[각주:8] 혹은 ‘청중’은 공격의 대상으로서 그리스도교 외부의 유대 군중들이 아니라, 마가공동체 안에 남아 있는, 즉 이 이야기의 본래적 상황과 연관된 예수의 지지자였던 유대 군중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마가복음은 예수의 열 두 제자들과 다른 나머지 제자들, 즉 여성 제자들(막달라 마리아,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을 포함한 일반 제자들 중 그 누구도 수난사화 안에서 명예를 복권시켜 놓고 있지 않다. 오히려 수난사화 이전의 본문에서 한 번도 예수의 지지자 중의 일원으로서 부각되지 않았던 이들, 예컨대 무명의 여인(14:3-9), 역시 무명의 백부장(15:39), 그리고 아리마대 사람 요셉(15:43-46) 정도만을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을 뿐이다. 마가복음은 예수운동의 초기부터 그를 지지하며 따랐던, 혹은 적어도 예루살렘 입성을 즈음하여 합류했던 그 많은 지지자들이 예수를 지지하고 보호하는 데 실패했음을 직간접적인 방식으로 도처에서 다양하게 시사하고 있다.

한데, 우리는 역사적으로 예수의 열 두 제자와 여성 제자들, 심지어 무리들이 이후에 예수의 부활을 체험하고 그를 다시 따랐다는 사실을 다른 복음서의 부활사화 및 사도행전(1:13-15a), 그리고 바울서신(고전 15:5-7) 등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예수가 죽은 이후에 전에 예수를 지지했던 오클로스의 후일담에 관해 마가복음에서는 직접적으로 어떠한 보도도 찾을 수 없지만, 마가복음보다 후대에 쓰인 것으로 알려진 누가복음은 뜻밖에 중요한 정보 하나를 제공하고 있다. 누가복음 23:44-49은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가 숨을 거두는 장면으로서, 마가복음 15:33-41과 평행하는 본문이다. 시간과 장소가 일치하며, 예수의 운명 당시 정황이 유사하며, 백부장과 여성 제자들의 등장이 일치하는 두 본문에서 한 가지 대조되는 것은 누가가 48절에서 오클로스를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누가는 오클로스가 예수가 죽는 현장에 함께 있었다고 보도하며, 더 나아가 이들 오클로스가 “가슴을 치며” 돌아갔다고 전하고 있다. 누가에 따른다면, 예수를 빌라도에게로 끌고 가서 그를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했다”고 고발했던 그 다수의 무리들 가운데 일부의 무리(눅 23:1, 4)가 나중에 예수가 십자가에서 운명할 때 ‘그 무리들’(23:48, οἱ ὄχλοι)로 다시 등장한다. 브라운은 23:48절의 동사 τύ́πτοντες와 15:19의 ἔτυπτον의 원형이 같은 것(τυπτω)에 주목한다. 로마 군인들이 갈대로 예수의 머리를 치던 행동과 예수 처형을 지켜보던 무리가 스스로에게 한 행동이 같다는 것이다. 만일 누가복음이 마가복음을 참조했다는 복음서 가설을 받아들인다면, 여기서 누가는 오클로스에 대한 마가의 부정적 묘사를 최대한 완화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누가의 오클로스들은 자신들이 예수를 죽이는 데 가담했다는 그 충격적인 사실을 뒤늦게 인식하고, 가슴을 치며 돌아갔다. 자신들이 지지하고 따랐으며, 자신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베풀었던 그 의로운 인물을 죽이는 데 동참했다는 사실은 오클로스에게 이제 트라우마로 남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미 예수가 체포될 당시부터 예수를 버리고 도망쳤던 열 두 남성 제자들(막 14:50), 그리고 예수의 마지막 현장을 지켜보고, 또한 그의 무덤까지 찾아갔지만, 끝내 부활을 믿지 못하고 도망쳤던 여성 제자들(16:8), 그리고 예수를 살리기 위해 빌라도를 찾아갔지만, 결국 대제사장들의 선동으로 인해 예수를 죽이는 동참한 무리들(15:6-15). 이 모든 예수의 지지자들에게 있어 자신들이 예수의 죽음에 공범으로 동참했다는 사실은 ‘통탄스러운’, 혹은 ‘가슴을 칠 수’ 밖에 없는 슬픈 기억으로 남았을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에게 이 사건은 결코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일부는 어떻게든 현실을 살아가기 위해 예수를 애도하고자 했다. 그의 죽음을 현실로 수용하고, 기존에 유지되던 모든 친밀한 인관관계 혹은 공동체를 그대로 놓아둔 채 그의 부재를 현실 안에 통합하려 했다. 예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예수의 지지자들은 그를 잊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이제부터 예수에게 ‘고인’이란 칭호를 붙여줄 것이고, 그 결과 그는 남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계의 지평 안에 안전하게 ‘추억’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물론, 이때 자신들이 예수의 죽음에 어떤 방식으로든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은 망각/은폐될 것이다. 예수의 여성 제자들이 마지막으로 그의 무덤을 찾은 것은 바로 이러한 애도를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을 때, 모든 애도는 중지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이제는 정말 잊고 싶은 자신들의 과거 소행을 상기시키는 ‘놀라움’과 ‘두려움’의 사건이었다. 여성들이 예수의 부활 소식을 기쁨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 그 놀라운 소식을 빨리 제자들에게 알리지 않은 것은 그 사실을 그녀들이 도저히 믿지 못해서가 아니었을 것이다. 차라리 그녀들은 예수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기대하거나 희망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일은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만일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예수를 끝까지 지켜주지 못한 자신들의 과거가 영원히 덮을 수 없는 악몽으로 남을 것이기에 그녀들은 부활의 소식 앞에서 아무 것도 말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예수의 부활은 예수의 죽음 이면에 존재하는 예수 지지자들의 실패와 배신, 그리고 좌절을 결코 망각/은폐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리는 사건으로 작용했다. 그것은 일종의 트라우마였던 것이다. 정신분석학에서 트라우마란 개인이 대상(그것이 자신일 수도 있는데)에 대한 기대가 완전히 무너지는 충격적인 계기인 트라우마적 사건을 겪고 난 후 생기는 증상을 일컫는다. 다른 사건에 의해 본래의 트라우마적 사건 또는 원인적 사건에 관한 기억이 다시 살아날 때, 비로소 트라우마로 느끼게 된다. 이 원인적 사건(에 대한 기억)을 불러오는 “뒤늦은 계기” 혹은 “사후적 사건”이 트라우마를 발생시키는 것이다.[각주:9] 필자는 예수의 실패한 지지자로서 오클로스와 그에 연관된 예수의 남녀 제자들에게 예수 죽음의 트라우마가 반복적으로 경험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것이 단순한 상처나 슬픔으로 남지 않고 트라우마적 기억으로 남은 이유는 예수의 죽음에 예수의 지지자들이, 특히 오클로스와 제자들이 깊이 연루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트라우마를 유발하는, 즉 예수를 배신한 원인적 사건을 불러오는 사후의 사건이 반복적으로 그들을 찾아왔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들에게 그렇게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트라우마의 귀환, 그 “억압된 것의 귀환”(the return of the repressed)으로서 어쩌면 바라빠 예수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다시 말해 오클로스가 예수를 죽이는 데 가담한 근원적인 제1사건이 있었지만, 그것이 당시에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 채, 단지 충격만 주고 그 후 제2, 제3의 예수 사건을 통해 사후에야 비로소 제1의 예수 죽음 사건의 의미가 드러났던 것이 아닐까? 바라빠 예수는 오클로스들의 예수 죽인 트라우마를 발생시키는 그런 예수의 부활, 혹은 억압된 것의 귀환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필자가 그리고 있는 가설은 이런 것이다: 마가공동체는 트라우마 쓰기 즉 ‘외상 후 쓰기’(post-traumatic writing)라고 하는 사후 작용을 경험하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들 당대의 또 다른 예수들 혹은 예수 사건과의 조우를 통해 과거의 트라우마적 사건을 개작(working over)하고, 심지어 어느 정도까지는 해제(working through)의 과정까지 나아가게 된다.[각주:10] 이러한 트라우마 다시 쓰기를 사후 작용에 의해 촉발시킨 계기가 바로 예수 사후부터 70년 유대전쟁에 이르기까지 반복적으로 출현한 바라빠 예수와 같은 그런 인물들, 즉 테러리스트, 강도, 젤롯데 같은 이들과의 조우였던 것이다.[각주:11]  

3. 오클로스의 역사적 트라우마로서 ‘바라빠 이야기’

마커스 보그(Marcus J. Borg)와 존 도미닉 크로산(John Dominic Crossan)은 기억된 역사로서 바라빠에 관한 이야기를 70년경 마가의 역사적 상황과 확고하게 연결시킨다. 그들은 먼저 이 이야기에 묘사된 무리들과 마가복음의 저자 마가 혹은 마가공동체를 분리시켜 사고한다. 마가복음이 그리고 있는 무리는 예수 시대의 무리인 동시에 유대전쟁을 전후한 마가공동체 당시의 무리이기도 하다. 마가는 그 무리에 대한 비판적 입장에서 이 이야기를 창작해낸 것이며, 이때의 바라빠는 말 그대로 하나의 메타포일 뿐이다. 즉, 70년 전쟁 발발 전까지 유대 군중들이 나자렛 예수 대신에 선택해왔던 다른 많은 혁명적 지도자들을 상징하는 인물인 것이다. 보그와 크로산은 바라빠 예수와 그리스도 예수가 모두 혁명가들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두 사람 다 로마제국에 도전했지만, 바라빠 예수는 폭력에 호소했고, 나자렛 예수는 비폭력에 호소했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적어도 66년까지 예루살렘 무리들은 (혹은 유대 땅에 살고 있는 많은 다른 사람들은) 예수의 방식이 아니라 바라빠의 방식을 선택했다는 것이다.[각주:12] 이들의 논의는 간략한 스케치에 그치고 있지만, 바라빠 이야기를 해석하는 데 있어 중요한 전환점을 이루고 있다. 그들은 이 이야기의 컨텍스트를 66-70년의 유대전쟁과 결부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크로산은 자신의 독자적인 연구에서 바라빠 사건, 즉 공개적이며 미리 예장된 유월절 특별사면은 역사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마가의 창작임에 분명하다고 일단 전제하고 논의를 전개한다. 빌라도이건 아니면 다른 어느 로마 총독이건 간에, 그런 축제일에 군중이 요구하는 죄술를 풀어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마가의 서사 전략에서 이 특별사면은 매우 훌륭한 해결책이라고 보고 있다. 왜냐하면 마가에게 있어서 그 특별사면이 상징적으로 그 이전 기간들의 사건을 요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백성들은 한 사람의 의적과 예수 가운데 선택받도록 ‘늘’ 요청받았다. 그리고 그들은 항상 평화주의자 예수보다는 바라빠 예수와 같은 폭력적 혁명가를 선택하곤 했다. 마가가 보기에는 그래서 66년의 로마에 대한 전쟁이 시작되었던 것이다.[각주:13] 크로산에 따르면, “바라빠 사건은 실제로 그 사건이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 과정으로서는 진실한 것이다.”[각주:14]
 
마가복음의 수난사화는 마가공동체의 트라우마가 재현되고 ‘반복’되는 이야기의 공간이자 그것을 그들이 어떻게 극복해나갔는가를 보여주는 치유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바라빠 이야기가 결합된 빌라도의 재판 이야기이다. 마가복음의 저자가 빌라도의 재판에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오클로스의 이야기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은 아직까지도 그들에게 그 문제가 트라우마로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한편으로 그 이야기 안에 현재적인 바라빠 이야기가 결합되어 있다는 것은 그들이 치료를 위해 과거의 기억을 재구성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들은 예수를 죽이는 데 오클로스가 가담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즉 과거의 고통스러운 사건을 과거의 자리에 그대로 위치시키고 현재와 미래를 과거로부터 구분하면서도, 그 이야기 안에 바라빠라고 하는 가공의 상징적 인물을 예수의 대조인물로(foil)로 만들어 넣고, 자신들이 지금 따라야 할 길이 누구의 길인지를 상기하고 있다. 그것은 분명 지난날의 실패의 고통을 반복하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억압된 기억들을 회피하지 않고 그것을 몸으로 겪어냄으로써 극복하려는 적극적인 실천이기도 한 것이다. 실패를 반복함으로써, 실패를 극복하는 것. 그것이 마가공동체가 다시 쓰는 오클로스의 역사적 트라우마로서 ‘바라빠 이야기’인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제임스 던/차정식 옮김,『예수와 기독교의 기원』(서울: 새물결플러스, 2010), 197-198[James D. G. Dunn, Jesus Remembered (Michigan: Wm. B. Eerdmans Publishing Co. 2003), 130]. [본문으로]
  2. 제임스 던, 앞의 책, 198. [본문으로]
  3. ‘사후 작용’(differed action) 혹은 ‘사후성’(differed)의 원리는 프로이트가 “심리적 시간, 인과성의 개념과 관련하여 자주 사용한 용어”로서, “경험, 이상, 기억 흔적은 사후에 새로운 경험과 관련을 맺으면서 수정되어 다른 차원으로 발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후 작용에 의해 원초적 외상의 사건은 새로운 의미와 심리적 효과를 부여받는 것이다. 즉 외상의 흔적이 계속해서 잊혀 지지 않은 채로, 또 그 의미를 비밀에 부친 채로 연기되다가 후에 다른 사건을 계기로만 사후적으로 기능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사후성이란, 거꾸로 된 인과율을 내포하고 있다. [본문으로]
  4. 막 16:8에 묘사된 빈 무덤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부활 소식에 대한 두려움과 침묵을 제자도를 실천하는 데 실패했다는 관점에서 해석하는 논의들로는 다음의 글들을 참조할 것: John Dominic Crossan, “Empty Tomb and Absent Lord (Mark 16:1-8),” in The Passion in Mark (ed. Werner H. Kelber; Philadelphia: Fortress, 1976) 135-52, 특히, 149; Malbon, “Fallible Followers Women and Men in the Gospel of Mark,” Semeia 28(1983), 29-48, 특히, 44-45; Andrew T. Lincoln, “The Promise and the Failure: Mark 16:7, 8”, JBL 108/2 (1989), 283-300, 특히, 293-295; Susan Miller, “‘They Said Nothing to Anyone: The Fear and Silence of the Women at the Empty Tomb (Mk 16.1-8),” Feminist Theology 13.1(2004), 77-90, 특히 88-90. [본문으로]
  5. 마르쿠스 보그(Marcus J. Borg) & 존 도미닉 크로산(John Dominic Crossan)/오희천 옮김,『예수의 마지막 일주일』 (서울: 중심, 2007), 142-143. [본문으로]
  6. Malbon, “Disciples/Crowds/Whoever: A Markan Narrative Pattern,” 126. [본문으로]
  7. F. Belo, A Materialist Reading of the Gospel of Mark (New York: Orbis Books, 1981), 224-225; E. P. 샌더스(Sanders)/이정희 옮김,『예수운동과 하나님 나라: 유대교와의 갈등과 예수의 죽음』 (천안: 한국신학연구소, 1997), 526. [본문으로]
  8. 김학철, “마태공동체 연구사에 관한 비판적 고찰과 전망,” 『신학논단』47(2007), 31-32. 김학철에 따르면, “저자적 독자란 저자가 글을 쓰면서 마음에 품고 있는 독자를 말한다. 저자는 이 청중이 본문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사회문화적 지식과 해석적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전제한다. ‘저자적 독자'는 하나의 ‘이상적 독자’(ideal reader)이지 실제 독자(real reader)는 아니다. 저자적 독자와 실제 독자는 서로 겹치는 부분이 많을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다 저자적 독자가 된다는 것은 하나의 특정한 사회/해석적 공동체에 소속된다는 의미이다. 저자와 그가 기대하는 독자들이 서로 공유하는 사회적으로 구성된 하나의 특정한 방식으로 독서하도록 저자가 초청하는 그 초청을 받아들이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본문으로]
  9. Dominick LaCapra, Soundings in Critical Theory (Ithaca: Cornell Univ Pr, 1989), 34-35. [본문으로]
  10.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이덕하 옮김, “기억하기, 되풀이하기 그리고 훈습하기,”『끝낼 수 있는 분석과 끝낼 수 없는 분석』(서울: 도서출판b, 2004), 104-121. [본문으로]
  11. 물론 프로이트는 트라우마적 기억의 계기를 제공하는 원초적 사건이 정말 사실적으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허구적 환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왜냐면 그것은 환자의 순수한 기억이었다기 보다는 분석가 프로이트가 여러 상황들을 바탕으로 하여 재구성한 일종의 가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트라우마적 기억 속에 간직된 원초적 장면이라는 ‘근원’은 ‘있었던’ 근원이 아닌 ‘부재’의 근원이 되어버리며, 담론 혹은 서사가 만들어 낸 허구적 산물일 수도 있는 것이다. ‘정신적 시간성과 인과성’에 있어서 기억이 ‘새로운 경험’에 맞추어 수정될 수 있다고 하는 사후성의 논리는 결국 전이의 개념과 마찬가지로 과거는 현재에 의해 다시 써지고 다른 것으로 대치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근원이 더 이상 근원이 아니고 실제가 더 이상 실제가 아니라는 말이며 역사적 진리를 전복시키는 효과를 가져 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트라우마적 기억을 적용하고 있는 대상은 개인이 아니라 마가공동체 안에 속한 집단이거나, 마가복음으로 편입된 수난전승 배후에 있으면서 오클로스로 지칭되는 예수의 지지자 집단이다. 개인적 기억에 있어서는 트라우마적 사건의 실제성 여부가 중요한 문제일 수 있지만, 집단적 기억에 있어서는 그 기억의 ‘사회적 틀’, 즉 그러한 기억을 가능케 한 사회적 동인이 무엇인가가 더 중요하다. [본문으로]
  12. 보그 & 크로산,『예수의 마지막 일주일』 (서울: 중심, 2007), 205; Marcus J. Borg, Jesus: uncovering the life, teachings, and relevance of a religious revolutionary (San Francisco: HarperSanFrancisco, 2006), 265. [본문으로]
  13. 존 도미닉 크로산/김준우 옮김,『역사적 예수』(서울: 한국기독교연구소, 2000), 619-20. [본문으로]
  14. 크로산,『역사적 예수』, 62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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