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기원에 대한 하나의 키워드 : 이단



이해청
(성공회대 박사과정 / 탈식민성서해석학)

 


Ⅰ.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초기 기독교 이단 연구에 대한 비판적 읽기


     이단이란 정통종파에서 말하는 것과는 다른 교리나 견해를 주장하는 이들에게 흔히 붙여지는 종교적 용어로서 대체로 불온하고 미심쩍으며 부정적인 이미지를 수반한다. 한 예로, 사전에도 "헬라어 원어 하이레시스의 기본 의미는 선택이나 의견으로서 단순히 분파, 파(벌) 등을 일컫는 경우(행22:22)와 교회 내에서의 편당(고전 11:19)을 뜻하는 경우, 그리고 다른 교리를 주장하는 이단(벧후 2:1) 등 세 가지 의미를 갖는다."고 나온다. 하지만 사회학자 피터 버거에게 이단적 명령은 근대 사회의 전형적 특성에 속한다. "전근대적 인간에게는 이단은 가능성에 불과했고 대개 거리가 먼 가능성이지만, 현대인에게 있어서는 전형적으로 이단이 하나의 필요성이 되었다. 다시 말하면, 근대성은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내는데 이 상황에서 취사선택은 하나의 명령인 것이다."[각주:1] 따라서, 앞서 본 사전적 정의와 달리 새로운 상황에 직면한 해석자로서 권위에 대한 도전을 감행한 개척자라는 긍정적 이미지가 이단에게 부여될 수 있다. 물론, 맥그라스라면 단호히 대처할 것이다. "기독교의 관점에서 보면 이단은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 이단이란 용어는 겉으로는 복음의 모양을 하고 있되 궁극적으로 복음의 본질을 전복시키는 신앙 체계를 가리키는 말이다."[각주:2] 사실, 이단적 명령에 따른 하나의 신학적 프로그램으로 버거는 19세기 자유주의 개신교 신학을 지지하고 있는데, 맥그라스에게 이것은 근대 유럽 초창기 자유지상주의의 열망과 궤적을 같이하는 인간주의적 주장에 지나지 않는 일일 것이다. "이단이 지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해방을 안겨준다는 신념은 1세기의 현실보다는 오늘날 서양의 문화 풍토와 훨씬 더 관련이 깊다."[각주:3]고 쓴 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말이다.

     확실히 이 같은 맥그라스의 비판은 어떤 면에선 꽤 타당한 것처럼 보인다. 알다시피, 해석자란 역사를 자기 시대와 관련해 해석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진 존재이기에 말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초기 기독교의 이단들에 대한 맥그라스의 견해 역시 비판적인 시험대에 오를 수밖에 없다. 솔직히, 맥그라스는 이렇게 말한다. "이단은 경험적 개념이 아니라 평가적 개념이다. 어떤 차원에서 보면 이단은 어떤 공동체의 사상에 대한 판단 내지는 평가가 낳은 결과인 만큼 구성된 개념이라 할 수 있다."[각주:4] 다시 말해, "이단은 역사적 분석으로 정당성이나 부당성을 증명할 수 없는 평가적 개념"[각주:5]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대놓고 "이단에 관한 역사적 연구는 다른 이들이 이미 규정지은 것을 역사가가 묘사해야 하는 일인만큼 어려울 수밖에 없다. 무엇이 이단이고 무엇이 정통인지에 대한 판단은 역사가가 정당한 역사방법론을 활용하여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각주:6]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단을 정의하고 구성하는 그의 방식은 애초에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역사적 작업은 아닌 셈이다. 그 스스로 말한 바와 같이 특정한 신학적 관점이 미리 전제된 작업이고, 그에 따른 평가인 것이다. "사실은 잘못된 견해가 초창기부터 등장했기 때문에 후대가 이를 바로 잡아야 했다."[각주:7]는 말을 아무 거리낌 없이 내뱉을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지 않을까. 게다가, 초기 기독교는 어떤 종류든 획일성을 강요하는 권위구조를 갖고 있지 않았다고 말하면서도 "훗날에 정립된 신학 공식들은 명시적으로 공식화되지는 않았지만 기독교 사상과 예배 속에 이미 내재해 있던 사상과 주제를 점진적으로 펼쳐 보이는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각주:8]는 고어의 말을 자연스럽게 인용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것이 역사적 주장이라기보다는 기독교 교리의 역사를 설명할 때 정통주의자들이 흔히 동원하는 씨앗의 비유와 유사한 주장이란 점은 쉽게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4세기에 정립될 정통주의가 처음부터 존재한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정통주의를 발현할 씨앗은 처음부터 품고 있었다고 보는 주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 당시의 정통은 그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는 중이었다고 말이다. 정통은 기성복처럼 이미 만들어진 상태가 아니라 씨앗처럼 상당 기간에 걸쳐 자라나는 중이었다. 장차 정통의 구조에 편입될 모든 기본 주제들은 처음부터 거기에 있었다."[각주:9]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분자생물학을 전공한 그에게 다윈은 기독교의 역사를 살피는 데에 적격인 인물로 등장한다. "교리의 발전이란 사상은 1859년에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판됨과 동시에 새로운 지적 에너지를 공급받았다. 생물학 세계에서 진화를 얘기할 수 있다면 사상의 세계에서도 그와 똑같은 과정을 유추할 수 있지 않을까?"[각주:10]

     그러므로, 기독교의 이단에 대한 맥그라스의 평가는 역사이기보다는 특정한 신학적 이해를 전제한 하나의 해석학적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발터 바우어라면 이러한 신학적 전제는 애초에 성립될 수 없다고 비판할 것이다. 그에 따르면 "2세기 말까지 대다수의 장소에 있었던 주류 기독교는 정통파가 아니라 이단들이었다."[각주:11] 앞서 언급된 맥그라스의 씨앗 비유를 참조하면 "정통은 최초의 원래 견해와 다수의 보편적 견해를 모두 함의하고 있으며 이단은 그러한 정통적 믿음을 고의로 저버리는 타락을 뜻한다."[각주:12]는 에오세비오스의 설명을 맥그라스가 전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와 관련해 얼만은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각주:13]


바우어의 입장은 단순한 주장에 의거한 것이 아니었다. 각 지역에서 입수한 자료들을 정밀하게 분석한 결과 에우세비오스의 기록과는 달리 최초기와 혹은 승리자측이 지배하기 이전에는 대부분 지역에서 이단적 형태의 기독교, 즉 승리자측이 나중에 공격한 기독교의 제형태들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후기의 정통 기독교인들은 승리를 거둔뒤 초기 기독교 교회에서 발생한 내분의 역사에 대한 진실을 감추기에 급급했다.


     어만의 이런 주장을 다소 과장된 레토릭으로 치부할 수 있겠지만 흥미로운 점은 바우어를 비판하고 있는 맥그라스조차도 바우어의 핵심적인 테제를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바우어가 확실히 옳은 점이 한 가지 있다. 초기 기독교가 당시의 대표적인 일부 인물들이 우리에게 심어준 인상보다 훨씬 더 복합적이고 다양했다는 사실이다. 이 점은 오늘날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더 이상 논란거리나 문젯거리가 되지 않는다."[각주:14]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그라스는 바우어의 주장을 수용한 일부 학자들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받아친다. 한 예로, 영지주의를 페민적인 평등주의 운동으로 보는 페이절스의 주장에 대해 영지주의 저술은 반여성적 진술로 가득하다는 매크라이트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전혀 근거가 없다고 비판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단이 정통에 대해 자신의 합법성을 주장할 수 있었다는 바우어의 주장이 붕괴되진 않는다. 애석하게도, 이 지점에서 맥그라스는 논점을 교묘하게 흩뜨리고, 정통은 비록 원형적 혹은 씨앗의 형태지만 애초부터 존재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초기 기독교 이단들에 대한 맥그라스의 작업을 단적으로 평한다면 발터 바우어를 비롯해 초기 기독교의 이단들을 새롭게 인식하려는 최근의 학문적 작업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각고의 노력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교회가 당면한 진정한 도전은 정통이야말로 강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정서적으로 매력있고, 심미적 감각을 증진하며, 개인적으로 해방감을 주는 것임을 증명하는 일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고대한다."[각주:15]는 그의 말에서도 드러나듯이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각고의 노력이 “이단은 후기 고전 시대의 다원적이고 경쟁적인 세계 안에서 소멸될 수밖에 없는 결함이 있고 무기력하고 진정성이 없는 기독교의 한 부류였다. 반면에 정통은 그 장래를 안전하게 지키는 수단으로 진정성에 대한 추구를 촉진하는 등 이단보다 더 강한 생존력을 갖고 있었다.”[각주:16]는 논리비약인 동시에 일종의 결과론적인 주장으로까지 치닫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안쓰러워 보인다. 어떻게 역사가 맥그라스가 말한 바처럼 씨앗으로 이해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결과론적인 입장에서 역사를 평가하고 마는 것일까? 그렇다면, “한 개념의 역사란 반드시 그의 점진적인 세련화의, 계속 증가하는 그의 합리성의, 그의 추상화의 변화율의 역사가 아니라 그의 구성과 유효성의 다양한 장의, 그의 사용에 있어서 계기적인 규칙들의, 그의 정교화가 추구되고 성취되는 복수적인 이론적 환경의 역사일 수 있다.”[각주:17]는 푸코의 지적은 애초에 상상할 수 없는 것 아닐까? 때문에, “마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에, 전통을 재구성하는 것에, 진화론적인 곡선을 따라가는 것에, 목적론을 기획하는 데에, 그리고 끊임없이 생명이라는 은유에 호소하는 데에 익숙해져 있는 바로 그 곳에서, 차이를 생각하는 것에 대한, 간극과 분산을 기술하는 것에 대한, 동일한 것의 확고한 형태를 해체시키는 것에 대한 어떤 거부감을 느낀 듯이”[각주:18]라는 푸코의 지적을 맥그라스에게도 적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독교에 대한 푸코의 논점이 중세에만 해당된다고 맥그라스가 주장하고 있지만, 이것은 권력이라는 개념을 순전히 정치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맥그라스의 푸코에 대한 오독이다. 푸코에게 권력이란 단순히 정치적인 차원에서만 행사되는 그 무엇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대교와 비교해볼 때 기독교는 믿음체계라는 맥그라스의 주장 자체가 푸코에겐 이미 하나의 권력이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4세기 황제의 정치적 수단에 의한 이단 규정이 2세기와 같은 초기에는 없었다고 할 수 있지만 지식의 형태라는 점에서 보면 권력이 작동하고 있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아무튼, 푸코가 지적한 바와 같이 단일한 기원이라는 신화를 해체하고 복수적인 기원을 상상함으로써 초기 기독교의 이단들을 맥그라스와는 다른 관점에서 해석해 볼 여지를 얻게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이것은 발터 바우어의 논의를 숙고함으로써, 다시 말해 때론 수용하고 때론 거부하고 때론 혁신하면서 초기 기독교의 이단들과 관련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유익이 무엇인지를 따지는 그런 작업일 것이다. 그리고 그 한 예로 맥그라스가 이단으로 낙인찍은 에비온파를 들 수 있다. 하나의 이단적 명령으로서 “타종교와 심각한 대결을 한다면, 적어도 가설적으로 다른 종교 역시 진리라는 명제에 대하여 개방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달리 표현한다면 종교간의 대결에 돌입하려면 자기 자신의 현실관까지도 변화시킬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각주:19]는 버거의 주장을 참조하고서 버메스의 다음과 같은 주장을 경청한다면[각주:20] 다소 비극적이지만 그럼에도 초기 기독교의 한 분파로서, 정통이 이단이라고 낙인찍은 에비온파는 유대교와의 대화에도 생산적인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또한 동정녀 탄생, 그리스도의 신성화 등과 같은 기독교의 부착물 없이 예수의 가르침을 따랐던 토라를 준수하던 유대인들로 구성된 1세기의 수확인 유대-기독교의 쇠퇴와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유대인 진영에서도 잘 알려져 있지 않았고 이방인 교회의 교인들에게도 인기가 없었다. 그들은 예수에게 가장 가까이 남아 있었음에도 유대인들은 그들을 기독교인으로 여겼고 기독교인들을 그들을 이단으로 여겼다. 제롬이 어거스틴에게 보낸 글을 보면 그들은 유대인이면서도 기독교인으로 남아 있기 원했지만 그들은 유대인도 기독교인도 아니었다. 그들은 역사에서 사라져갔고 생존하던 몇몇 사람들은 다시 유대인 진영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와 함께 예수가 전하고 실천했던 종교의 흔적은 마침내 사라져 버리고 비유대인 세계에서 헬라화된 기독교가 승전가를 부르며 승전을 거듭할 수 있게 되었다. 공평하게 말하자면 생소한 교리적, 교회적 특징들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가난한 자를 위해 부를 포기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나 우리의 시대에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람바레네에 있는 병든 자를 위해 초기한 알버트 슈바이처, 그리고 노구를 이끌고 캘커타의 더러운 거리에서 죽어가는 자들을 돌보는 테레사 수녀를 통해 본을 볼 수 있는 동기의 순수성에 대한 강조, 자비의 마음과 같은 예수의 경건의 기본적인 요소들을 아직도 소유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에비온파와 관련한 맥그라스의 이야기 역시 상당히 흥미롭게 들린다. “최근에 유대적인 기독교가 부활함에 따라 예수의 중요성을 유대인의 입장에서 설명하는 일에 새로운 관심이 생겼다. 그들은 예수라는 이름이 헬라어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이유로 그 이름을 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전통적인 방식들이 그리스의 형이상학적인 관념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고 진정한 유대적인 방식으로 다시 진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예수를 선지자로 보는 것이 그런 예이다. 이로 말미암아 유대의 기독교 진영에서는 에비온주의 그리스도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각주:21]


ⓒ 웹진 <제3시대>



  1. 피터 버거, 『이단의 시대』, 서광선 옮김, 문학과 지성사, 1981, p.36 [본문으로]
  2. 알리스터 맥그라스, 『그들은 어떻게 이단이 되었는가』, 홍병룡 옮김, 포이에마, 2011, p.291 [본문으로]
  3. 알리스터 맥그라스, 같은 책, p.20 [본문으로]
  4. 알리스터 맥그라스, 같은 책, p.59 [본문으로]
  5. 알리스터 맥그라스, 같은 책, p.103 [본문으로]
  6. 알리스터 맥그라스, 같은 책, p.103 [본문으로]
  7. 알리스터 맥그라스, 앞의 책, p.48 [본문으로]
  8. 알리스터 맥그라스, 같은 책, p.45 [본문으로]
  9. 알리스터 맥그라스, 같은 책, p.125 [본문으로]
  10. 알리스터 맥그라스, 같은 책, p.112 [본문으로]
  11. 정용택, 『교회에서 알려주지 않는 기독교 이야기』, 자리, 2012, p.45 [본문으로]
  12. 정용택, 같은 책, p.43 [본문으로]
  13. 바트 어만, 『잃어버린 기독교의 비밀』, 이제, 2008, p.365 [본문으로]
  14. 알리스터 맥그라스, 앞의 책, p.123 [본문으로]
  15. 알리스터 맥그라스, 같은 책, p.343 [본문으로]
  16. 알리스터 맥그라스, 같은 책, p.134 [본문으로]
  17. 미셸 푸코, 『지식의 고고학』, 이정우 옮김, 민음사, 1998, p.21 [본문으로]
  18. 미셸 푸코, 같은 책, p.33 [본문으로]
  19. 피터 버거, 앞의 책, p.169 [본문으로]
  20. 게자 버미스, 『유대인 예수의 종교』, 노진준 옮김, 은성, 1995, p.262 [본문으로]
  21. 알리스터 맥그라스, 앞의 책, p.170 [본문으로]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BLOG main image
by 제3시대

공지사항

카테고리

웹진 <제3시대> (835)
특집 (8)
시평 (96)
목회 마당 (61)
신학 정보 (139)
사진에세이 (41)
비평의 눈 (59)
페미&퀴어 (25)
시선의 힘 (139)
소식 (154)
영화 읽기 (34)
신앙과 과학 (14)
팟캐스트 제삼시대 (12)
연구소의 책 (15)
새책 소개 (38)
Total : 381,784
Today : 79 Yesterday : 2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