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고백


이연화*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 그전날 끓여놓은 국을 데우고, 딱 한컵의 쌀을 씻어 전기 밥솥에다 앉힙니다. 그 시각에 남편은 집을 떠나 회사 통근버스로 향하지요. 운이 좋으면, 딸들의 배웅을 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날엔 곤한 잠을 자고 있는 딸아이들 볼에다 얼굴을 부비부비 하곤 서둘러 나가죠.  

   아이들이 한둘 뒹굴거리다 거실에 나와 나에게 몸을 맡기면서 치대다 잠에서 완전히 깨면 서둘러 아이들 밥을 멕입니다. 먹다가 앞서락 뒤서락 두 딸들이 소변, 대변을 보지요. 6개월전만 해도 애들은 세수, 양치질 하지 않고 어린이집에 갔었는데, 어느날 연차낸 남편이 아침에 애들 챙기다 세수, 양치질 시키지 않는 저에 대해 기본적인 걸 안 한다고 비난했다 그날 한바탕 싸움을 벌였죠. 그 후엔 애들에게 그 기본적인 걸 시키게 되었네요.   

   그러곤 옷입히고 어린이 집 가방 챙기고, 제 출근 준비 대충 끝낸후 애들 엘리베이터에 태우고 지하주차장으로 갑니다. 일진이 좋지 않는 날엔, 차키를 집에 두고 와서 다시 애들을 다 데리고 집에 다녀와야 하기도 합니다. 출근시간이 고작 20-30분 남지 않았는데, 세 살 먹은 둘째 녀석이 양말을 혼자 신겠다 신발을 혼자 신겠다 고집 피우면 순간 열이 확 올라 아이를 거칠게 대하기도 하지요. 언어폭력도 휘두르죠. 아침의 일분은 하루의 십분과 맞먹을 만큼 밀도가 높습니다. 그런 시간의 압박에 아이들은 이리 채이고 저리 채입니다.   

   아이들을 어린이 집에 인계하고 회사로 가는 차안, 하루의 1부를 무사히 마치고 한숨 돌리는 시간. 길어야 15분, 짧으면 10분... 그 짧은 시간이 어찌나 단지요. 그 짧은 단내 나는 시간동안 전 2부의 노동시간을 향해 시속 100킬로미터로 밟고 자유로를 탑니다.  

   회사에 도착한 후 오늘 올릴 결재 기록을 정리하고, 어제 들어온 신건과 보정문건, 담보제공문건들을 검토합니다. 제가 하는 일은 법원의 민사본안 재판하기 전에 채무자들이 재산을 빼돌리지 못하도록 그들의 재산에 가압류가처분을 하는 일입니다. 부동산 가압류할적엔 이렇게라도 자산이 있는 채무자들이 부럽기도 합니다. 자산관리대부, 캐피탈의 이름을 쓴 거대 사채업자들이 원금보다 더 많은 이자를 청구하면서 채무자들의 임금, 임대보증금에 가압류 신청할 때엔 그들의 신청이 매정하고 야멸차고 때론 잔인하기까지 하지만 그들을 대신에 합법이라는 이름으로, 기계적으로, 사무적으로, 일상적으로 집행하는 제가 가끔 무섭습니다.  

   아, 오늘도 진상 민원인이 어김없이 등장합니다. 제가 하고 있는 일은 신청업무지만, 신청과 공간이 부족해 제 자리가 종합민원실에 있어서인지 소란이 끊이지않습니다. 법원은 다 좋지 않은 일로 오는 곳이고, 사회의 갈등들이 최종적으로 모이는 배설구 같은 곳이라 오는 사람들 또한 분노, 스트레스, 우울한 기운의 사람들 태반이죠. 누구하나 건드려 봐라 이런식의 호전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가끔씩 히스테리를 부립니다. 잃을게 없는 사람들이라 두려울 게 없습니다. 그들의 분노와 짜증을 여과없이 받아들이는 접수계장님들의 얼굴엔 표정이 없습니다. 하나같이 똑같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합니다. 그렇게 무표정해야 견딜수 있기 때문이란 걸 알고있습니다. 가진것이 많은 죄로, 지킬것이 있기에, 잃을까 두려워, 모욕을 견딥니다.  

   그 시간이 지나고 퇴근시간입니다. 5분 빨리 퇴근해야 어린이 집에 빨리 도착해서 얼마남지 않은 아이들 틈에 아이들을 데려올 수 있습니다. 그렇게 눈치봐가며 데리러 가도 큰 애는 엄마 왜이렇게 늦게 왔나며 타박입니다. 여름철 해가 길땐 6시 15분이라도 화해 놀이터에서 놀기 좋던데, 해가 짧아진 요즘 이미 어두워져 놀기가 어려운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놀자며 떼를 씁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 미안해 하면서도 짜증이 납니다. 밖에서 놀고 나면 집에 가서 저녁밥 먹는 시간이 빠듯하기 때문이죠.  

   7시에 가서 밥하고 찬준비하면 7시 반에야 3식구, 4식구가 저녁을 먹습니다. 복직 후 그 시간에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부엌에서 서성이는 절 남편이 옷도 안 갈아 입냐고 뭐라 한적있는데, 순간 열이 났죠. 안 갈아 입은 게 아니라 못 갈아 입은 건데. 설거지는 남편 몫. 설거지 하는 동안 전 애들 씻깁니다. 그 후 잠시 책을 읽거나 놀아주다 9시에 애들을 재웁니다. 애들 재우면서 같이 잠들어 버리는게 부지기수입니다. 재우고 나와 뭔가를 하려고 맘 먹지만, 아침 7시부터 저녁 9시가지 14시간의 노동에 지쳐 애들따라 그냥 자고 싶습니다.  

   남편이 부부관계를 요구할땐, 내가 14시간의 노동하고 성노동까지 해야하나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여성의 성노동 또한 진정노동이라는걸 깨닫습니다.잠자리에서 몇백, 몇천 받았다는 연예인들이 부러워지기까지 합니다. 남성지배사회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성적인 능력을 가지고 자원을 획득하는 그녀들이 대단합니다. 성매매특별법, 고쳐야합니다. 성노동자들에게 정당한 노동의 댓가를 주도록 바꾸어야 합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느라 지쳐 성욕이 없다하니 남편은 내 노동을 줄이고자 나름 노력합니다. 가사노동을 줄이면 성노동하는게 더 수월하지 않을까 하는 계산이겠지요. 마치 가사노동은 자기 일이 아니라는 듯이 대가 없이는 하지 않는 태도에 남편, 그리고 남자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뭐 저 역시도 할 말은 없습니다. 이 가부장 체제를 원했던 건 저였고, 그래서 결혼했고, 이 남자의 경제력에 기대 제 삶을 새로이 건설했습니다. 아이 키우기에 적합한 환경을 줄 수 있어서 감사해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잃어버린 그 무엇에 대해 억울해 하고 분노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미칠듯이 바빠도 공무원이기에 9시까지 출근할 수 있기에 아침밥이라도 아이들에게 먹일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냐... 6시에 칼퇴근 할 수 있어서, 어린이집 눈치 안 보이고 데려올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냐... 남편이 정년까지는 아니더라도 대기업에 다녀서 돈도 상대적으로 많이 벌고, 퇴근시간도 7시나 8시 안이니 얼마나 다행이냐... 니가 60살까지 일 할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하냐...  

   그렇죠. 제 현재 삶의 조건들은 어쩌면 감사해야할 것들이 많기에 불만을 제기하는 것이 사치스럽다는거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사치스럽고 배부른 소리입니다. 누구는 지금 공권력에 맞서 저항하다 희생되었는데... 누구는 비정규직으로 삶의 미래를 포기하는데... 사회는 얼마나 야만스럽고 전쟁같은데 이런 한가한 소리나 하고 앉아있나... 


   14시간의 내 노동이 누군가에겐 소망이고 꿈일거라는 생각에 나는 말을 잃어버립니다.  


* 필자소개 


딸 두명에 남자하나 기르고 있는 30대 중반 아줌마. 개성이 서울보다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 좀더 밝게 살고 쉽게 살고 싶은게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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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적응기



김난영

(한백교회 교인)

 


       지난 가을 우리 부부는 아이 둘을 맡길 기관에 ‘합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했다. 대학입시도 아니고 얼마나 좋은 곳에 보내려고 유난을 떨었나 싶겠지만, 우리의 유별난 노력의 이유는 교사진이 우수하다는 구립 어린이집이나 병설 어린이집도, 다양한 특기활동이 있는 민간 어린이집도, 원어민 교사가 상주하는 영어 유치원에 보내기 위함이 아닌, 오로지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기관을 찾기 위함이었다. 그리하여 집근처 수락산 입구에 자리 잡은 공동육아어린이집을 선택하게 되었다. 등원을 위해 가족소개서를 써서 제출하고, 온 교사진과 부모면접관에 둘러싸여 30여분의 심층면접 끝에 그것도 2년에 걸친 두 번의 도전 끝에 입소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 주 아이들과 부모의 적응이 시작되었다. 부모가 조합원이 되어 운영주체가 되는 이곳에서 아마(엄마아빠의 줄임말로 공동육아에서 부모를 일컬을 때 쓰는 말)는 각자 다른 소위에 소속되어 첫 주에 한 번씩 모임을 갖고, ‘방모임’이라고 해서 아이가 소속된 방의 교사와 부모가 함께 둘째 주에 모임을 갖는다. 그리고 다른 방에 소속된 아이의 부모, 교사와의 교류를 목적으로 하는 ‘통합방모임’이 있고, 아이의 친구 집에 부모가 동원되어 왕래하는 마실문화도 활발하다. 두 아이를 보내는 우리 부부는 방모임도 두 번, 통합방모임도 두 번, 내가 어린이집을 다니는 것도 아닌데 어린이집 사람들을 왜 이렇게 자주 보나 싶다.   

      이번 주는 첫 주라 소위 모임에 다녀왔다. 하루 먼저 다녀온 남편은 고개를 살래살래 젓는다. 안건을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처리해나가는 회사식 회의에 익숙한 남편은 뭔 할 얘기들이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며 푸념을 한다. 중요한 일도 아니라 단순히 찬반의 결정만 해도 좋을 걸 너도 나도 꺼내놓는 이야기들이, 평일 퇴근 후 시간을 할애해 참석하는 그의 피로도를 높이는 듯하다. 두세 시간의 긴 회의 끝에는 한 잔 기울이는 뒤풀이 자리도 꼭 있으니, 소위 모임 첫날 남편은 평소 야근 때보다 더 늦은 시간에 귀가했다.   

       나는 아이들의 적응기를 위해 지난 사흘을 아이들과 함께 어린이집에서 보냈다. 아이들은 마냥 행복하다. 이곳의 별명문화가 낯간지럽고 교사와 어린이간의 평어문화가 낯선 나와는 달리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은가보다. 맨날 산에서 놀고 엄마가 말리는 흙놀이, 물놀이를 추운 계절에도 맘껏 할 수 있다는 게 제일 좋은가보다. 

        사흘의 짧은 경험을 통해 육아공동체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 생각해본다. 아이의 첫 기관 적응, 즉 사회활동의 시작은 ‘곁을 내어주는 것’이라고 한다. 아이의 곁에는 항상 엄마가 있는데 그 곁을 선생님 혹은 친구들에게 내어주는 것, 그게 첫 단계라고 한다. 아이는 엄마 품을 벗어나 사회 속으로의 도약을 위해 자신의 곁을 끊임없이 확인하며 짧으면 며칠 길면 몇 달을 울고불고, 애착자인 엄마가 아닌 다른 이에게 곁을 내어주기 위해 애를 쓴다.. 

        아이가 떠나갈 내 곁, 우리의 곁을 잠시 돌아본다. 지하철에서 잠시나마 편히 쉴 수 있는 내 자리, 밥벌이를 위해 지켜야하는 내 자리만 바라보지 옆에 누가 있는지는 관심이 없다. 지금의 척박한 삶은 곁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다. 고개를 살짝 돌리기 위해서는 내 시간을 내려놓아야하고 내 것의 일부를 포기해야 한다. 아이를 위해 모인 육아공동체의 낯설고 불편하고 귀찮은 모든 만남과 의사결정 과정은 내 아이가 아닌 그 곁의 다른 아이의 삶에 관심을 갖기 위함이 아닐까. 우리도, 우리의 아이들도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는 기꺼이 곁을 품고 가는 좋은 부모,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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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3.22 12:26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내 곁을 내어 준다는 것. 좋은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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