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작은 도시 공동체 이야기 1]


경로를 벗어나기

: 소모적 공간으로부터의 탈출




 

최규창[각주:1]


 


       20여년전 내가 계획했던 학업을 모두 마치면서 나는 먼저 사회에 진출한 선배들의 수 많은 겁박에 시달려야 했다. 편하고 자유로운 학교를 떠나 정글과 같은 직장생활에 들어서면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전쟁과 같은 상황에 시달리게 되리라는 것이다. 자신들은 그래서 어떤 삶을 살게 되었는지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지만, 그들의 말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 다만 내가 직면해야 했던 것은 과도한 업무나 피곤함이 아니라 무의미의 전쟁이었을 뿐이다. 기억해보면 매일이 고민의 연속이었던 20대의 삶이 나에게는 더욱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IMF 구제금융 시기를 통과했던 나의 직장생활은 업무가 과도하기는 했지만 정해진 시간 내에 항상 답이 나오는 일이었고, 나름 성취감도 있었기 때문에 선배들의 말처럼 이곳에서 생존을 걱정해야 할 정도의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메를로-퐁티의 말대로 우리의 의식과 세계는 일종의 '순환적 인과성'을 가지는데, 이는 인간의 의식이 세계에 의해 영향을 받지만, 동시에 세계를 구성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체는 존재하기 위해 다른 대상을 필요로 하지 않아야 하지만, 현상학적으로 우리의 의식은 항상 '무언가에 대한' 의식이기 때문에 자기의존성이나 독립성이 성립하지 않는다. 의식과 세계의 관계는 우리의 경험의 지평에서 거시적, 미시적으로 항상 포착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그런 역동은 쉽게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점점 무뎌져 가는 것을 느꼈다. 말하자면 내가 보기에 주식회사 또는 자영업을 기반으로 소비를 촉진하는 형태로 돌아가는 자본주의 시스템은 구성원의 의식과 세계의 인과성 경험을 극히 일부의 시스템 내로 제한하고 그것을 반복시키는 체계였다.  

       인생의 과제가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의 의미를 추구하는 것이라면 오늘날 대다수가 살아가는 삶의 패턴은 심각한 모순을 안고 있다. 마치 젊은 시절에는 돈을 벌기 위해 건강을 희생하고, 늙어서는 건강을 일부나마 되찾기 위해 돈을 다 써야 한다는 우스개소리처럼, 생업이 결부된 일상이 우리에게 허락하는 의식의 지향성이란 기껏해야 조직이 지시한 과업의 종착점, 또는 보상이나 대가에 대한 기대감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지향성이 미시적 영역에만 머물러 있을때 우리가 기술적 질서가 지배하는 이 지독한 '무의미의 제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한은 그리 길지 않다. 결국 우리는 항상 다른 것, 본질적인 것을 지향하게 되고 그것은 곧 다른 공간에 대한 욕구와 이어진다. 결국 나는 30대 중반의 나이에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경로를 탐색하기로 했다. 그 후 한동안의 방황은 마치 경로를 잘못 들어섰을 때 계속 경고를 날리는 네비게이션 ‘미쓰 김’의 다급한 목소리같은 수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 어린 아들을 키우는 아내가 쌀독에서 쌀이 떨어져간다고 슬쩍 내비치는 목소리에 의해 증폭되어, 나에게 더욱 많은 혼란과 고통을 야기시켰다. 그 때 내가 가장 집중했던 것은 무모하게 목표를 높게 설정한 법인사업과 새로운 개념의 공동체 세우기 작업이었다.   

      일상의 틈을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일상은 존재양식이 굳건하고, 경로가 분명하며, 시간과 공간에 의한 자기 분열을 허락하지 않는다. 일상은 의식의 지향성을 제한함으로써 순환적 인과성의 균형을 허물뿐 아니라, 반대로 의식에 의해 포착되는 것도 거부함으로써 어떠한 의미도 명확히 생성되지 못하도록 만든다. 따라서 인간은 늘 인생의 의미를 생각만 하면서 인생을 다 보내게 된다. 경로를 이탈하지 않으면 틈이 만들어지지 않고, 틈이 없으면 의미도 파악되지 않는다. 그리고 틈이 만들어지는 사건과 사건 사이의 시공간은 다시 하나의 ‘전체’로 인식되어 의미를 소거해 나간다. 대략 우리는 10년 단위로 인생이 화살처럼 지나가는 것을 인식한다. 승진, 이직 같은 사회적 역할수행이 대략 그 주기로 요구되기 때문이다. 어떠한 경로 이탈도 일어나지 않는 그 10년은 사실 '하나의 공간'처럼 인식되고, 반복학습되는 습성 외에는 전후좌우의 구분도 의미가 없어진다. 이전의 나와 이후의 내가 더 이상 동일하지 않은 사건, 나에게 공동체는 그렇게 인식되어야만 했다.   

       보통 기독교인이 일상의 균열을 만들기 위해 시도하는 노력들은 정기적 모임이나 기독교 외부 활동으로 이루어진다. 나 역시 매 주 두 세 군데의 성경공부 모임과 종교/시민사회 영역의 모임, 교회 활동 등에 참여해 왔다. 그러나 ‘모임’ 수준의 활동은 삶의 변화를 가져올만한 충분한 밀도를 제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모임 자체의 유지를 위한 에너지가 너무 과다하여 쉽게 지치고 오래 지속되지도 못했다. 더군다나 구성원들의 삶을 죄어오는 삶의 이슈들은 모두가 나누고 공유하기에는 너무 무거웠다. 이 밀도의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으로 생각한 것이 바로 주거를 함께 하는 공동체였다.

       처음에 우리는 같은 동네에 모여사는 공동체를 생각했다. 하지만 가정간의 물리적 거리는 공동체의 목적 달성과 반비례한다는 점을 금방 인식할 수 있었다. 서로 길 건너편에 사는 가정들이 모이기 위해서는 매우 중요한 이슈가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애초에 우리가 계획한 방식이 아니었다. 먼길을 가기 위해서는 천천히 가야 하는 법이다. 결국 우리는 목적의 경중을 떠나 서로 밀접하게 얼굴을 볼 수 밖에 없는 구조를 선택했고, 급기야 땅을 사서 함께 들어가 살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아무런 경험도 없고 모두 각자의 직장 일로 정신없이 바쁜 이들이 추진하는 일이 순조롭게 될리도 없었거니와, 건축주가 종일 감독을 해도 스트레스로 10년 늙는다는 집짓기를 우리 여섯 가정이 기한 내에 해 낸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 대가로 우리는 매우 혹독한 시련을 맞았고, 꽤 큰 재정적, 시간적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수 차례 공사가 중단되고, 모두가 전재산을 날릴뻔한 위기를 여러 번 맞이했다. 하지만 이 경험은 반대로 서로 굳건한 연대를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합리적 대안이 도저히 만들어지지 않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집단적 무의식 속에 어떤 공통적인 경험을 가지게 된다. 일종의 체념이나 비움의 경험인데, 이것을 함께 겪는 사람들이 가지는 연대는 특별한 것이었다. 그 절정에 있었던 것이 바로 분양 사기를 당한 일이었다. 공동체 구성원 여섯 가정이 살 집을 제외한 나머지를 분양했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들마저도 속일 수 있는 고도의 심리술을 가진 이들에게 주택을 몇 채 넘겨줘버리는 실수를 범하게 되었다. 진정한 사기는 언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황과 맥락을 이용하여 신뢰의 공간을 만들고 입체적으로 대상을 공략하는 기술에서 나온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말은 맥락과 증거로 분석할 수 있지만, 입체적인 공간을 분석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한번 만들어진 신뢰의 공간은 말에 의해 허물어지지 않기 때문에 사기는 여지없이 성공하게 된다. 결국 뒤늦게 정신을 차린 우리는 이 사건을 복구하기 위해 2년간 기나긴 법정 싸움을 하게 된다. 결국 공동체는 '시작이 미약했던’ 수준이 아니라 마이너스 상태로 출발하게 되었다. 나중이 ‘창대하게’ 되리라는 보장 역시 전혀 없었다. 우리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 

       정말 중요한 문제는 당시에도 너무나 흔했던 공동체라는 말의 의미를 우리는 어떻게 규정하는가 하는 점이었다. 공동체 자체가 하나의 공간이지만, 공동체란 구성원들이 각자의 공간을 점유하는 상태를 말하기도 한다. 인간에게는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고 거기서 인간으로서 인정을 획득한다. 그리고 그것이 공동체안에서 이루어지면 그 공간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괴테의 유명한 싯구처럼 우리에게는 '들판과 숲과 바위와 정원이 언제나 공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대가 그곳들을 장소로 만든다.’ 각자가 가진 자기 몫의 ‘공간'은 공동체를 통해 ‘장소'로 전환된다. 따라서 우리는 당시 사람들이 선호하던 급진적 형태의 경제 공동체를 지양하고, 각자의 공간을 존중하고 공통점을 찾아가는 작업을 거치기로 결정했다. 보통의 기독교 공동체가 가지는 정언적 질서와 분명한 목적의식을 일단 소거하는데는 많은 고통과 불안이 뒤따랐다. 우리는 경로를 벗어나 다른 길을 만들어보기로 한 이상 이 작업을 '언젠가는 다시 큰 도로와 합류할’ 성격의 안전망 안에 두는 것도 포기하기로 하였다. 각자의 공간과 삶의 여정을 존중한다는 것은, 어떤 구체적인 정체성에도 귀속되지 않으면서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임의적 특이성’(아감벤)을 불러내는 일이기도 했다. 굳이 윤리적이거나 신학적, 정치적이지 않아도 각자에게 주어진 길로 ‘참 인간됨’을 성취해 갈 수 있는 기반으로서 공통의 장소를 제공하는 (루소의 이상과 같은) 유기체적 소시민 사회로서의 공동체를 생각했던 것이다. 분명 우리 개개인은 각자에게 주어진 윤리적 명령에 나름 충실했다고 생각하지만, 공동체의 목표가 명확하게 ‘선교’를 향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부담을 주었다. 정말 벤야민이나 아감벤이 말한대로 ‘세속화’(적극적으로 교리적 삶을 노정하지 않는다는 면에서)와 메시야적인 것이 긴밀한 관계를 맺어갈 수 있다면, 각자가 자기의 존재방식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담아낼 수 있다면, 이것이 공동체의 새로운 경로가 아닐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생각이 반드시 정당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기존의 공동체들이 지속적인 모델로 남지 못하는 한계는 분명해 보였기 때문에 우리는 일단 서로를 존중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규칙이나 강령이 없이 공동체를 시작해 보기로 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각자의 존재방식을 존중하면서도 모두 공유하고 있는 교집합 지점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세워가야했기 때문에, 결코 큰 규모를 지향할 수 없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서로를 연결하는 느슨하고 질긴 끈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어쨌든 공동체는 우리가 모두 사람이라는 점 외에, ‘공동’하는 무엇이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운동의 중요한 요소인 구현 가능성, 지속 가능성, 재현 가능성의 문제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공동체 기획은 ‘연대’를 통한 가능성의 문을 여는 것이었다. 흔히 기독교인의 중요한 정체성의 하나를 세상과 타자에 대한 '무조건적 환대'라고 가정하지만, 이것은 사실 가능하지 않은 이상이다. 보통 환대를 사적 공간의 포기와 연결짓기 때문에 이러한 의지에는 한계가 명확히 설정된다. 김현경(<사람, 장소, 환대>)이 말하듯, '사적 공간의 개방'과 '공공성의 창출'은 혼동되어서는 안된다. 공공성의 창출은 오히려 사적 공간을 보호하고 확장시킬 수 있다. 따라서 개인이나 한 가정은 진정한 환대와 용서를 하나의 이상으로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공동체는 그 이상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마치 기독교 신앙이 현실과 무관한 ‘종말'을 현재의 실존적 판단의 기준으로 삼도록 하듯이, 무조건적 환대의 불가능성도 공동체라는 구조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이며, 원칙론적 규범에서 실천 가능한 규범으로의 전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임의적 특이성’을 추구하는 나의 공동체에서, 나는 실재로 한 가정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 심리적, 정치적, 사회적 차원에서 공동체가 구현해 내는 것을 목격하였다. 이것은 현재 우리의 생활세계가 쳇바퀴로 고정되어 있는 거대한 체계 속에서, 일종이 균열과 새로운 가능성이 도출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것은 일종의 플렛폼으로서의 공동체 개념이다. 마치 컴퓨터의 운영체계(OS)나, 휴대폰에 내장되는 미들웨어처럼, 일단 구동되면 어떤 기능이든 어플로 해결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지는 그런 상황과 비슷하다.   

       이렇게 우리는 주거공동체를 짓고 13년을 넘게 살았다. 사실 삶은 이론보다 훨씬 강력하고 실증적이다. 심지어 삶에서 귀납적으로 구축된 이론 역시 (칼포퍼가 논리실증주의를 비판하듯이) 앞으로의 상황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보장이 없다. 복잡한 이론들도 대부분 단순한 사례에서 비롯되고, 그것을 검증하는 방식으로 체계화되어 갔다. 프로이트도 (이후 많은 수정을 거쳤지만) 몇 명의 아이들을 분석한 자료로 그 유명한 '유아의 성욕에 관한 이론들'을 만들어 냈다. 나는 공동체에 대한 현대 맑스주의자들의 이론들이 복잡한 체험에서 나왔다고 보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을 참고하거나 용어를 빌릴 수 있을 뿐, 반드시 실천의 기준으로 삼아야 할 이유는 없다. 보다 근본적인 것은 구체성의 체험이지 이론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 글에서는 공동체가 지속되어 온 과정을 중심으로 내가 경험한 공동체의 동력과 삶의 이야기를 담아 보려고 한다.  


ⓒ 웹진 <제3시대>

  1.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그 곳에 오래 매여 있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그 수치가 세상변혁이라는 불가능성에 대한 부담과 지나친 민감함에서 나온 혼란이었음을 깨달은 후에 나는 비로소 자연스럽게 세계를 움직이는 거대 톱니바퀴로부터 일탈하여 나의 공간을 만들어 가는 소박한 대안적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십여년간의 직장생활을 마친 후 시작된 법인사업과 생활대안운동은 아직 고전을 면치 못하는 과정 중에 있지만, 그 속에서 날마다 새로운 가치들을 생성해가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웹진을 통해 앞으로 4차례에 걸쳐 그 가치생성의 과정을 일부 나눌 예정이다. (주) 포리토리아 대표, <고통의 시대, 광기를 만나다> 저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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