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II : 은희경 <새의 선물>에 빚지다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과정)


은희경의 새의 선물과 김형경의 세월을 이야기하면서 서른이었던 나는 당시 스물 넷이었던 김희선을 만났다. 신춘문예 등단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고 허풍을 떠는 나, 그리고 은희경과 김형경을 자기와 함께 이야기하는 나를 바라보며 김희선은 내게 조금씩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고 그때를 회상한다. 그래서 지금도 죽기 전에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신춘문예 등단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늘 마음 한 구석에 빚진 마음으로 있다.

나와 내 아내 김희선을 연결시켜줬던 <새의 선물>(문학동네,1995)은 은희경이라는 작가를 세상에 알린 작품이다. 이 책으로 은희경은 문화동네에서 수여하는 무슨 작가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문단으로 진출하였고, 15년이 지난 지금 은희경은 한국문학의 얼굴이 되었다. 그 무렵 한국 문학계는90년대 이전 분단문학, 이념지향적 사회풍자적 작품으로 넘쳐나던 황금기(?)를 지나 사회주의 붕괴와 포스트 모더니즘의 광풍으로 인한 정신적 공황에 시달리며 심한 가슴앓이를 하던 때였다. 몇몇 전시대의 풍조와는 다른 도발적이고 그 당시로서는 실험적이고 신선한 작가들이 등장했고 은희경 역시 그 중 하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새의 선물>은 성장소설이다. 60년대 말 12살 소녀 진희와 진희와 함께 살아가는 외갓집 식구들,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의 삶과 일상을 12살 소녀의 시선으로, 하지만 전혀 12살 같지 않은 조숙함과 영악함으로 바라본 이 소설은 인간에 대한 진실, 사랑, 거짓, 풍자를 섬세하게 그리고 섬뜩하게 미장센한다. 갑자기 헤겔을 이야기하려는 지금 <새의 선물>에 등장하는12살 소녀 진희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헤겔철학의 체계가 마치 소설 속에 등장하는 12살 소녀가 사람들(타자)을 만나고 이해하고 종합하듯, 헤겔의 그것 역시 근대가 선사하는 온갖 타자적인 것들을 만나고 이해하고 종합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예감에서이다.        

    이 글의 주된 포인트는 <정신현상학> 4장에서 헤겔이 언급하는 자기의식, 즉 타자를 통해 자신을 실현하고 보존하는 주체에 대한 주목이다. 이를 위해 필자는 프랑스 철학자 알렉산드르 꼬제브의 헤겔해석에 기대어 근대적 사유에서 나타나는 주체와 타자의 관계를 추적해 갈 것이다. 글의 후반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헤겔철학의 현재성에 대한 논의를 간략하게 정리할 생각이고, 글의 시작은 칸트와 다른 헤겔철학의 독특성을 열거하는 것으로 문을 연다.

 

 

 

 

 

헤겔을 위한 예비적 지식

 

지난 웹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근대 이전까지 서양철학의 전통적 입장은 유한과 무한, 주체와 대상, 존재와 사유가 빛과 계시에 의해 하나로 이어져 안정적인 구도를 띄었고, 이러한 사회속에 사는 인간은 기본적으로 낙관적이고 명료한 세계관을 지녔다. 근대란 유한한 존재와 무한한 사유를 이어주던 끈이 분리되는 전환점이었다. 영국 경험론(Empiricism)으로부터 시작된 인간의 경험 너머의 것에 대한 의심은 칸트에 이르러 물자체(Ding-an-sich, 物自體)에 대한 판단불가로 선포되었고,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빛의 차단, 계시의 실종, 교회의 추락, 세속화, 주체의 등장으로 명명되는 근대성의 도미노를 낳았다.

 

헤겔 (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

 
헤겔은 근대가 이룩한 성과는 계승하고 좌절은 봉합하고자 했던 인물이다. 근대가 이룩한 성과라 함은 세계가 신적 계시에 의한 완벽한 세계가 아니라 불연속적이고 우발적이라는 것, 결론적으로 인간에 의해 세계가 재구성되는 것이라는 것을 선언했다는 점이고, 근대의 좌절이란 무한과 유한을 이어주던 빛의 몰락으로 인한 전체성의 상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칸트로 대표되는 근대철학이 빛과 어둠을 나누고 빛의 영역을 인식의 영역, 어둠의 영역을 우리가 파악할 수 없는 물자체, 즉 타자로 남겨둔 채 판단중지를 선언했다면, 헤겔은 칸트가 남겨놓은 타자를 다시 정신 속으로 흡수하려했다. 근대철학이 떼어놓은 무한과 유한의 재결합을 다루는 책이 바로 헤겔의 <정신현상학>이다.

적절한 비유일런지는 모르겠지만, 칸트철학을 수학적으로 비유하면 미분으로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순수이성비판-실천이성비판-판단력비판으로 이어지는 칸트의 비판철학은 인간정신의 역할, 능력, 한계 등에 대한 조밀한 해부라 할 수 있다. 반면, 헤겔은 칸트가 미분해놓은 성과들을 적분하여 다시 하나로 엮어나간다. 그리하여, 헤겔은 인간정신의 가장 낮은 단계라 할 수 있는 감각적 확신에서 오성, 자기의식, 불행한 의식, 이성, 도덕과 양심, 종교 등의 단계를 거치면서 어떻게 정신이 절대지에 이르는지, 즉 소박한 의식수준에서 출발하여 어떻게 성숙한 의식에 이르는지를 설명해냈다.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헤겔을 처음 접했던 시절, 헤겔에 대한 주석서 중 기억에 남는 책을 꼽으라면 단연 프랑스 철학자 알렉산드르 꼬제브(Alexandre Kojeve)가 쓴 Hegel (역사와 현실 변증법, 설헌영 역, 한벗출판사,1981)과 이폴리트(Jean Hyppolite)헤겔의 정신현상학 I,II(이종철 역,문예출판사,1986)이다. 후자가 비교적 원전에 충실했던 해설서였다면, 꼬제브의 책은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해석의 출발점으로 삼은 독특한 헤겔 주석서로 평가 받는다. 이러한 꼬제브의 헤겔 해석은 후에 등장하는 프랑스철학자들의 헤겔 이해에 절대적 영향을 끼쳐고, 특별히 라깡의 욕망이론에 공헌했다고 평가받는다.[각주:1]

꼬제브는 근대적 사유에서 획득되는 타자성이 근대성 전체에서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에 주목하면서, 헤겔이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각주:2]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은 주체와 타자와의 관계였다고 밝힌다. 가령, 여기에 나는 나!’라고 외치는 두 주체가 있다고 가정하자. 둘은 상호인정을 위한 투쟁에 돌입한다. 그래서 싸움이 시작되고, 싸움이 끝나 승자와 패자가 가려지면 승자는 주인이 되고 패자는 노예가 된다. 승자인 주인은 노예를 죽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주인의 목적은 단순히 타자를 정복하고 다스리는 것에 있지 않다. 타자인 노예로 하여금 주인에 의해 본인이 정복되었음을 인정케하는 것이다. 결국, 헤겔은 타자가 주체앞에서 거울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결코 주체는 자신을 자각 할 수 없으며, 주체로 인식할 수 없음을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나는 자 자신을 고립 속에서 절대 파악할 수 없다. 나는 타자를 내 앞에 무릎 꿇게 한 후, 그가 나를 인정하고 주인으로 바라보며 내 말에 귀 기울일 때 비로소 주체로 우뚝 설 수 있다. 주체란 타자와 분열된 주체이고 타자에 대한 욕망을 전제로 한 주체인 셈이다. 이렇듯 헤겔식 근대적 자기의식이란 타자에 대한 배제와 부정, 타자와의 투쟁, 타자로부터의 인정을 통해 획득되는 것이다.[각주:3]

 

 

 

헤겔의 유산

 

1. _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의 관점에서 인간을 바라본다면, 인간은 이기적 욕망과 열정을 지닌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겔의 역사발전의 원리에 따르면 욕망으로 가득 찬 인간은 신의 섭리에 힘입어 신의 자기현현을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된다. 이를 통해 헤겔은 그리스도교의 신개념을 수정한다. 칸트는 이론적 인식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신을 물자체의 영역으로 추방시켰으나, 헤겔에게 있어 신은 인간세계와 동떨어진 저 높은 곳에 초월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구체적 현실속에서 속물 같은 우리의 욕망과 삶 속에서 스스로를 드러내는 내재적인 신이다. 영원불변한 고정되어 있는 신이 아니라, 인간사(세계사)를 통해 인간의 역사와 함께 변화하는 동태적인 신으로 (헤겔에 의해) 신은 거듭난다.

 

2. 욕망/윤리_ 칸트의 윤리에 있어 욕망은 억압과 배제의 대상이었다. 왜냐하면 욕망은 실천이성(윤리)으로 환원할 수 없었던 이성의 타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헤겔은 칸트와는 달리 욕망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올렸다. 헤겔은 이기적 욕망을 오히려 삶을 구동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보기에 욕망과 개인의 쾌락을 원천적으로 거부하는 칸트의 정언명법을 거부한다. 왜냐하면, 헤겔에게 있어 자기의식은 후에 보편적 자아의식, 즉 이성으로 나가기 위한 전 단계였고, 욕망은 이러한 헤겔철학의 밑그림 속에서 일정구간 헤겔의 법칙을 실현시키기 위한 동력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헤겔의 관점은 후에 하버마스로 대표되는 담론윤리학, 즉 욕망과 개인의 이해관심을 일반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탐구와 대화적 이성(원할한 의사소통)에 입각해 합의를 추구하는 윤리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요약하면 이렇다: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에 드러난 욕망의 주체는 개별적 자아의식을 극복하고 보편적 자아의식으로 성장하여 공존의 윤리를 터득하게 되는데, 이 모든 과정은 이성의 모든 타자적인 것을 변증법적으로 사변의 총체성 안에서 통합시키려했던 헤겔철학의 믿음 위에 서있다.

 

3. 理性_ 우리는 헤겔에게서 근대적 이성의 이중성과 대면한다. 타자를 대상화함으로써 자기를 실현하는 주체의 논리가 첫 번째 근대성의 원리라면, 이성의 남용(무한신뢰)으로부터 야기된 근대성의 문제를 이성으로 해결하려 했던 것이 근대성의 두 번째 원칙이다. 근대성의 문제를 지목하는 학자들의 대안 역시 헤겔철학의 이러한 이중성에 기반한다. 하버마스로 대표되는 이성옹호론자들은 후자에 기대어 근대성이 야기시킨 현대사회의 문제들을 이성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풀어나가려 한다. 하지만 이들이 시도했던 이성에 의한 이성의 자기 극복은 결국 그들이 문제 삼았던 이성을 또다시 긍정해야만 하는 수행적 모순을 되풀이한다는 비난을 (포스트모던 계열의 학자들로부터) 받는다. 반면, 포스트모더니즘 계열 사상가들은 근대적 인식론 자체에 대한 전면적 회의와 해체의 틀에서 문제에 접근한다. 주체의 동일성 안으로 타자를 끌어들이는 헤겔식 사유를 거부하고, 주체의 동일성밖으로 미끄러져 나가는 타자에 주목하는 것이 탈근대적 사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4. 타자_ 헤겔의 타자론은 주체와 주체 사이의 상호인정투쟁에서부터 시작된다. 데카르트적인 주체가 자족적인 코기토를 상정하고, 칸트의 그것이 선험적 주체를 내세우며 타자와 무관한 주체를 말했다면, 헤겔에게 있어 주체란 타자와 상관없는 내적사유 속에서 직관되는 그 무엇이 아니라, 나를 비추는 타자를 통해 비로소 주체성이 획득되는 존재이다. 헤겔은 이렇듯 이기적 욕망뿐 아니라 모든 타자적인 것들을 절대정신에 이르는 과정으로 포섭한다. 소설 <새의 선물>에서 12살 소녀 진희가 성장하면서 만나는 모든 타자적인 것을 섭취하면서 성인으로 되어가듯, 헤겔 역시 모든 이성의 타자를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절대정신을 향해 성장해 간다. 그렇다고 볼 때, 헤겔철학은 정신의 거대한 성장소설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안에 감추어진 헤겔철학의 함의가 아닐까 싶다. 이러한 헤겔의 타자론은 후에 라깡에게 영향을 끼쳐 라깡의 거울단계’, 그리고 욕망이론을 전개하는데 중요한 이론적 토대로 다시 인용된다. 

 

<다음 웹진부터는 프로이트와 라깡으로 대표되는 정신분석학적 타자론이 이어집니다>

 

 

 ⓒ 웹진 <제3시대>


  1. 꼬제브의 헤겔해석이 라깡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는 Mardan Sarup, Jaques Lacan, (Toronto and Buffalo: University of Toronto Press, 1992), 31-34 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2. 헤겔은 주체를 타자와의 관계下에서 다름과 같이 규명한다: “주인은 물론 대자적 의식을 뜻하지만 그러나 이러한 의식을 결코 자기에 대한 개념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의식은 하나의 또다른 의식, 다시 말하면 스스로 자립적인 존재나 물성 일반과 종합, 연계되는 것을 자기의 본질로 삼는 그러한 의식에 의해서 스스로 매개된 자기확인자로서의 대자적 의식인 것이다.” – 헤겔, 『정신현상학』, 임석진 역, (서울: 분도출판사,1981), 264 [본문으로]
  3. Alexandre Kojeve, Hegel , 『역사와 현실 변증법』, 설헌영 역, (서울: 한벗출판사,1981), 27-28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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