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 이후의 선교 2]



믿는 것과 의심하는 것이 불가능한 시대의 단상




홍정호

(신반포감리교회 목사)




*

    선교가 문제라는 지적이 새삼스러울 리 없습니다. 유럽에서의 선교와 식민주의의 협력관계는 근대의 서막을 여는 교황의 교서들에 이미 잘 나타나 있습니다. 니콜라스 5세가 포르투갈의 알폰소 5세에게 발행한 ‘둠 디베르사스’(Dum Diversas, 1452)와 ‘로마누스 폰티펙스’(Romanus Pontifex, 1454) 등의 교서에는 새로운 식민지들에 대한 포르투갈의 배타적 점유권, 즉 노예무역을 포함한 식민통치의 권리인준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장차 발견하게 될 식민지들에 대한 통치권을 미리 확립한 경우도 있습니다. 알렉산더 6세의 교서인 ‘인테르 카에테라’(Inter Caetera, 1493)는 앞으로 ‘발견’하게 될 식민지들을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분할해서 통치할 것에 대한 교권의 인준을 포함합니다.


    식민 통치권에 대한 인준은 복음화의 책임을 수반하는 것이었습니다. 식민통치는 교회가 수행해야할 복음화 사업의 일환으로 여겨졌으며, 식민통치와 교회의 선교는 점차 불가분리의 관계에 접어들었습니다. 교회로부터 통치권과 복음화 사명을 위임받은 이들의 임무가 ‘선교’(mission)였고, 그 임무를 수행하도록 (제도화된 교회로부터) 파송 받은 이들이 선교사였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선교사들의 관심은 식민지배와 복음화의 유착된 고리를 끊는 대신 협력의 증진을 통한 임무(선교)의 효율적 수행에 자연스레 집중되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식민주의와 선교의 유착을 통해 개인적으로는 흠 잡을 데 없을 헌신적인 이들의 숭고한 실천을 통해 결코 숭고하다고 말할 수 없을, 흠으로 얼룩진 근대 선교의 역사가 비서구세계 곳곳에 새겨졌다는 데 있겠습니다. 오늘날까지 지속되는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여러 국가들에서의 빈곤과 폭력의 문제가 근대 선교의 식민주의적 실천과 과연 무관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근대 선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숙고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식민통치에 대한 교황의 교서들이 발행될 무렵부터 식민주의에 대한 서구의 자기비판담론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 20세기 말엽에 이르기까지 선교는 신학적 반성과 성찰의 주제가 되지 못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세계교회협의회 에큐메니컬 총회들로 대표되는 20세기 그리스도교 선교의 변화와 쇄신을 향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선교는 그 실천의 당위성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재확인하는 역할에 머문 채 근원적 회의의 대상이 되지는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심지어 종교다원주의 신학조차도 존재-신학의 형이상학적 구도 내에서의 관용의 포괄범위를 확장하는 정도에 그쳤을 뿐, 타자로부터 비롯되는 신학적 질문으로부터 선교를 재정의 하려는 시도에는 미치지는 못한 것으로 사료됩니다. 한 마디로, 지금까지 임무를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집중하는 동안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원적 물음은 괄호 안에 들어있어야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20세기에도 선교를 ‘왜’ 지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비판적 물음이 제기되었을 때 선교학 전공자들로부터 만족할 만한 답변을 들을 수 없었던 이유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점에서 “보수적 복음주의 신학계는 물론 자유주의 신학계에서도 오늘날의 선교신학은 갈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각주:1]는 비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왜 그토록 중요한 선교가 현대인들에게는 여전히 하나의 ‘스캔들’로 남을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더 많은 물음과 성찰이 단편적인 형태로나마 전개되어야 합니다.


**

    왜 선교는 여전히 ‘스캔들’로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우리 시대는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신을 믿는 것과 의심하는 것이 모두 불가능한 시대이기 때문은 아닐까요. 어쩌면 이것이 선교가 스캔들로 남을 수밖에 없는 근본 이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에 대한 믿음이 불가능하다는 건 인류가 지금껏 믿어왔던 방식대로 신을 믿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해졌다는 뜻입니다. 낭시(Jean-Luc Nancy)가 그러더군요. “종교적인 의미에서의 하늘은 저 위에 있는 하늘이 아니고, 우리가 두 눈을 통해서, 또는 망원경을 통해 보는 그런 하늘이 아니”[각주:2]라고 말입니다. 이런 정도의 말은 꼭 낭시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당연한 이야기인데, 문제는 이 말이 당연하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시대에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종교가 말하는 하늘이 더 이상 신이 거하는 장소일 수 없다는 사실은 하늘도, 그리고 거기에 거하는 신도 더 이상 (그런 방식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이 거하는 곳은 모든 장소와 다른 어떤 장소, 곧 “장소 아닌 장소”(Nancy, 같은 책, 19)라는 게 낭시의 말인데, 장소와 존재의 불가분리성을 생각한다면 신은 결국 “장소 아닌 장소에 없이 있는” 무엇이라고 말해야 하는 난관에 봉착합니다. 저 어딘가의 ‘장소’에 그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 신이 아니라 ‘장소 아닌 곳’에 ‘없이 있는’ 신이라니요, 발화자도 헷갈릴 각오를 해야 하겠지만, 언어를 통한 사유에 있어 개념으로 고착된 말의 껍질을 깨고 들어가 그것의 새로운 의미와 씨름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을 것 같습니다.


    한편 신을 믿는 것이 불가능해졌다는 사실과 더불어 의심하는 것 역시 불가능해졌다는 사실에 대한 숙고도 필요합니다. 의심하는 것의 불가능성에 관해서라면 아마도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의 논의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전 기록한 일련의 노트들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어떤 종류의 확실성도 앎을 보장할 수는 없다고 보았습니다. 제 아무리 여러 단계의 의심을 거친 확실한 지식인 듯해도 실상 “가정에 대한 모든 검사, 모든 확증과 반증은 이미 하나의 체계 내에서”[각주:3]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의 논의를 두고 노야 시게키(野矢茂樹)가 든 재미있는 예시를 조금 각색해서 소개하겠습니다.


    여기에 고양이가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저것이 고양이임을 의심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한 번 의심해 보기로 합니다. 고양이임을 확인하기 위해 저것(고양이)을 데리고 와 마취제를 놓고, 죽지 않게 신중하게 해부하기로 합니다. 그런데 고양에 앞에 놓인 액체가 마취제가 맞는지부터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마취제가 아닌 마취제와 비슷한 색과 향을 지닌 다른 액체라면 고양이 해부는 시작도 못하고 망칠 테니까 말이죠. 일단 마취제라고 ‘믿고’ 고양이에게 투여하기로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해부용 메스가 맞는지 의심됩니다. 확인을 위해 현미경을 가져와서 살펴봅니다. 이번에는 현미경에 든 렌즈가 해부용 정말로 렌즈가 맞는지 의심이 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렌즈에 관한 권위 있는 연구소에 렌즈를 보내보기로 합니다. 연구소에 보낼 렌즈를 포장하다가 렌즈를 담을 박스가 정말 박스가 맞는지를 의심합니다. 박스 모양의 단단하고 큰 과자는 아닌지 한 입 깨물어 봅니다. 중요한 건 아직 고양이 해부는 시작하지도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박스가 과자가 아닌지 깨물어 보고 있는 중에 고양이는 마취에서 깨어나 도망가 버립니다.[각주:4]


    비트겐슈타인은 의심을 풀기 위한 증거가 또 의심의 대상이 되는 이런 상황, 의심이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상황을 두고 말합니다. “모든 것을 의심하려는 사람은 의심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지도 않을 것이다. 의심하는 놀이 자체는 이미 확실성을 전제한다.”(앞의 책, §115).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의심은 “검사되지 않는 어떤 것을 전제”(앞의 책, §163)로 할 때만 가능한 실천입니다. 시게키의 농담을 또 빌려와야겠습니다만, 축구선수가 ‘이것이 공인가?’라고 묻거나 ‘공 안에 폭탄이 감춰져 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는 동안에는 축구를 할 수 없습니다. 의심을 멈추고 폭탄일지도 모르는 공을 힘껏 발로 차는 순간에 축구는 시작됩니다. 의심은 어느 시점에 이르러 ‘의심하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대한 승인으로 중단되어야 합니다. 이 점에서 “앎은 결국 승인에 근거한다”(앞의 책, §378)는 비트겐슈타인의 지적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

    앎이란, 혹은 ‘안다’는 느낌이란, 자기승인의 결과일 뿐만 아니라 타인의 (무조건적) 승인에 기반을 둔 것입니다. 어느 순간 나에 대한 의심을 거둔 타인의 무조건적 환대와 인정 덕분에 내가 사회 안에 있습니다. 나에 대한 타인의 인정, 혹은 타인에 대한 나의 인정은 의심의 결과가 아닙니다. 그것은 어떤 순간에 이르러 우리가 서로를 그냥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로부터 그냥 받아들여진 존재라는 사실에 있어 예외인 사람은 없습니다. 믿는 것과 의심하는 것이 불가능한 시대에 선교가 여전히 가능하다면, 그것은 이 선언—‘누군가로부터 그냥 받아들여진 존재라는 사실에 있어 예외인 사람은 없다’—의 충실한 매개자가 되는 실천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필자소개

    연세대학교 학부대학 강사,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객원연구원


ⓒ 웹진 <제3시대>

  1. 장왕식,『종교적 상대주의를 넘어서』(대한기독교서회, 2002), 179. [본문으로]
  2. 장-뤽 낭시,『신 정의 사랑 아름다움』(갈무리, 2012), 18. [본문으로]
  3. 비트겐슈타인,『확실성에 관하여』(책세상, 2006), §105. [본문으로]
  4. 노야 시게키, “논리를 행위한다”, 고바야시 야스오 ‧ 후나비키 다케오 엮음,『지의 논리』(경당, 2008), 3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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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용 이후의 선교 1]



새로운 신학 운동의 전위대로서의 선교학




홍정호

(신반포감리교회 목사)




    공부모임에 가면 자연스럽게 전공을 묻는 질문을 받습니다. 보통 신학이라고 짧게 답하고 관심사를 나누는 대화로 이어지지만, 세부전공을 묻는 분들에게는 ‘선교학’이라고 말합니다. 간혹 발음을 잘못 듣고 “신학에는 그런 전공도 있느냐”며 화색(?)을 드러내는 분도 있지만, 대개 반응은 시큰둥합니다. 간혹 선교학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을 보이는 분도 만납니다. 한 마디로 ‘그런 것도 학문이냐’는 것이지요. 심지어 선교학은 식민제국주의의 이데올로기적 도구라는 ‘이데올로기적인’ 말도 듣곤 합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안 나는 법이라니, 선교학을 두고 이런 거친 반응을 보이는 걸 이해하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경험에 의한 편견이 상식으로 고착된 결과일 테니까요.


    학문으로서의 선교학은 종교적 타자와의 만남을 신학적으로 주제화하는 작업입니다. 서양 근대 신학의 분과학문체계가 선교학에 할당한 역할은 주로 방법론적인 실천과 관련된 것이었지만, 선교학은 타자와의 만남이 일으키는 사건에 대한 성찰을 통해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습니다. 종교 신학, 종교간 대화의 신학, 종교다원주의 신학, 아시아신학, 세계기독교 신학, 상호문화 신학 등 연구의 주제와 대상에 따라 조금씩 그 이름과 내용을 달리하는 이들 신학의 바탕은 기실 선교학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학문들은 모두 종교적 타자와의 만남을 신학적으로 주제화하려는 시도, 곧 선교적 실천으로부터 비롯된 타자와의 만남에 대한 성찰과 관련 있다는 점에서 선교학의 연구와 분리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선교학은 그것을 하나의 방법론적 실천으로 제한하려는 근대 신학의 과학적 사유의 한계에 저항하면서, 분과학문의 전문성을 침범하는 통합적 사유를 촉진합니다. 선교학은 ‘모든 것으로서 아무 것도 아닌’ 신학적 정체성을 지향함으로써 근대 신학의 붕괴 이후에 도래할 새로운 신학의 탄생을 알리는 서곡의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아무도 선교학이 그러한 역할을 하리라 기대할 수 없는 그곳에서, 선교학은 그 특유의 잡스러움과 탈경계적 지향성을 통해 하나의 ‘전공’으로 안착하는 데 성공한 근대 신학의 자기 완결적 주체성을 뒤흔드는 탈구축(de-construction)의 사도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합니다. 말하자면, 선교학은 신학(Theology)으로부터 신학적인 것(the theological)으로의 이행을 통해 존재-신학(Onto-theology)의 붕괴 이후의 신학적 사유와 실천을 주제화하는 일군의 새로운 신학 운동의 전위대의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신학 운동의 전위대로서의 선교학의 역할은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지리적 경계를 넘어 타자와 만나는 선교사의 실천과 상응합니다. 선교사가 이미 설정된 지리적 경계 너머의 타자를 향하듯 선교학은 근대 신학의 지리적이고 인문학적인 경계를 넘는 탈구축의 사유와 실천을 지향합니다. 이를 위해 선교학은 지적 세계의 소통의 문법으로 자리 잡은 익숙한 사유의 구조화 방식, 곧 과학주의적 사유의 문법과 결별하고, 그 체계 내에서의 권위를 스스로 반납함으로써만 선교적인 실천에 가 닿을 수 있다는 역설과 마주합니다. 학문성을 추구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는) 학문적이지 않아야 할 이중의 과제에 직면해 있는 것이 신학에서 신학적인 것으로의 이행의 전위대를 자처하고 나선 선교학의 운명입니다.


   어쩌면 ‘새로운 선교학’(New Missiology)이라고 명명해야 할지도 모를 이 선교학은 시체 해부나 다름없는 존재-신학과 그 유산의 정리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죽은 신을 두고, 그 구성과 체계를 논하거나, 애도의 담론을 재생산해 내는 따위의 일은 저들의 몫입니다. 선교학의 관심은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의미로 환원될 수 없는 존재와 다른 것으로서의 살아계신 하나님과 날것으로서의 신의 타자성이야말로 선교학이 관심을 기울이는 영역입니다. 그 살아계신 하나님은 대상에 대한 인식으로 환원될 수 없는 타자(the Other)의 모습을 닮았습니다. 그렇기에, 말해진 것(the said)으로서의 ‘존재’와 그것의 ‘의미’로 환원될 수 없는 ‘존재와 다른 것’의 말함(saying)에 대한 탐색, 그리고 의미(로 환원되지 않는 존재와 다른 것)의 총체성을 더듬어나가는 타자성의 주제화야말로 선교학이 관심을 기울어야 할 영역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쯤에서 어떤 분들은 그런 건 윤리나 종교철학이지 선교학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이 새롭다고 말해야 할 선교학이 실천신학의 범주에 오롯이 안착되기를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일 텐데, 그런 분들에게 저는 아도르노(Theodor W. Adorno)의 『미나마 모랄리아』의 한 구절을 읽어드리고 싶습니다. “아카데미라는 사유의 조직체가 갖고 있는 권력은 너무나 커서 그 바깥에 머물고자 하는 사람을 허공을 향해 외치는 불평꾼으로, 자화자찬하는 요설가로, 그리고 결국 백기를 들 수밖에 없는 사기꾼으로 몰아간다.”[각주:1] 이 말을 뒤집어보면, ‘불평꾼’, ‘요설가’, ‘사기꾼’이라도 아카데미라는 사유의 조직체 안에 머무는 한 정통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뜻으로 들리기도 하네요. 나아가 아도르노는 “자기 유지의 정신을 해체하는 것이야말로 철학 본연의 임무”[각주:2]라고 말합니다. 모름지기 학문이라 이름붙일 수 있을 만한 것이라면 자기 유지의 정신과의 싸움은 불가피한 것이겠습니다. ‘선교’ 뒤에 따라붙는 ‘학’이 부끄럽지 않으려면, 선교학은 자기 유지의 정신과 보다 적극적으로 싸워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연재의 제목을 ‘관용 이후의 선교’로 정해보았습니다. 선교가 관용은커녕 배타주의의 수렁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여전히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관용 ‘이후’가 웬 말이냐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관용은 한 번도 ‘제대로’ 실천된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억지로’ 실천될 수 있을 뿐입니다. 관용은 언제든 깨지기 쉬운 주체중심의 윤리, 즉 타자의 타자성을 주체의 효율적 관리 아래 두기 위한 자유주의적 기획의 도덕주의적 구현에 다름 아니기 때문입니다. 관용 담론에서 주체는 한 걸음도 뒤로 물러선 적이 없으며, 타자는 대상의 자리에서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관용 이후의 선교에 관한 논의가 필요한 이유는 관용 담론의 신학적 내면화를 통해 주체 중심의 윤리가 재생산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주체의 지배가 돌이킬 수 없는 현실로 자리매김할 것이 우려되기 때문입니다. 주체의 지배가 일으키는 문제는 (이렇게 말하는 게 가능한 것이라면) 서양적 주체를 한국적 주체로 자리바꿈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문제의 본질이 “자기 유지의 정신”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관용은 이 자기 유지의 정신을 통해 재생산되는 주체의 견고한 자기중심성의 지속을 위한 알리바이일 뿐입니다. 말하자면, 관용이 문제가 아니라, 관용을 통해 재생산되는 주체의 견고한 자기중심성이 문제인 것입니다.


    관용을 통한 주체의 지배가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이른바 ‘종교다원주의’ 신학에서입니다. 자기중심적 배타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배타주의’와 자기중심성의 계기를 드러내는 ‘포괄주의’와 달리, ‘종교다원주의’는 관용을 전면에 내세우기에 그 은폐된 자기중심성을 망각하기 쉬운 기만성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종교에 관한 자유주의적 관용 담론은 개별 종교의 정체성에 각인된 차이를 존재론화(ontologize)하고,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차이를 자연화(naturalize)하는 식민담론을 재생산해 냄으로써, 관용을 통한 주체중심의 통치의 지속에 기여합니다. 이 점에서 관용 이후의 선교에 관한 탐색은 ‘종교다원주의 이후의 선교’에 관한 모색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더 나은 선교는 관용의 이념을 신학적으로 내면화하려는 주체중심의 실천을 넘어서는 선교(학)의 타자 윤리적 전환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앞으로 그 이야기를 조금씩 해 보겠습니다.


* 필자소개

    연세대학교 학부대학 강사,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객원연구원


ⓒ 웹진 <제3시대>

  1. 아도르노,『미니마 모랄리아』, 96. [본문으로]
  2. 앞의 책. 10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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