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의 문제를 주제로 신학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민경석 교수님(미국 클레어몬트대학원 종교학과)을 모시고 강연회를 진행합니다. 이번 강연회는 최근 민경석 교수님의 연구 주제인 세계화로 인한 교회의 총체적이고 근본적인 위기에 대해 함께 토론해 보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의 많은 참석 바랍니다.

* 민경석(Anselm K. Min) 교수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클레어몬트 대학원 대학교 종교학과 석좌교수(Dean and Maguire Distinguished Professor)이다. 밴더빌트 대학교에서 종교학 박사, 포담 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1992년부터 클레어몬트대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헤겔과 아퀴나스, 해방 ․ 종교간 대화 ․ 다원주의 ․ 세계화의 문제, 현대 신학과 아시아 신학 등을 주제로 다양한 논문과 저서를 집필했다. 현재는 세계화와 관련한 신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자문위원이기도 한 민경석 교수는 평신도 신학자로서 교회쇄신을 위한 연구와 활동도 적극적으로 해왔다. 20대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접하고, 1970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면서도 미국 가톨릭교회와 교포 공동체의 일에 관여했다. 1987년부터 4년 간은 미주 한인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으로서 매년 강습회를 열어 사회교리를 전파하는 데 힘썼고, 1992년에는 동료들과 함께 교포 평신도 전국조직인 ‘미주한인가톨릭평신도연합’을 창설하고, 연간지 <만민의 빛 Lumen Gentium>을 출간한 바도 있다. 국내 저서로는 ≪한국교회 2000: 권위주의와 교회중심주의를 넘어서≫(분도출판사, 2000)가 있다.

* 일시 : 2012년 7월 9일(월) 오후 7시~9시
* 장소 : 우리신학연구소(아래 약도 참조)
* 주최 : 우리신학연구소,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 참가비 : 5,000원 (발제자료, 간단한 다과 제공)
* 문의 :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실 (02-2672-8344)
* 연구소 찾아오시는 길
(150-042)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당산동2가 32-2 3층 우리신학연구소
☎ 02-2672-8342~4 / FAX 02-2672-8346 / E-mail: woorith@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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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기 없는 바다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주님께서 그들을 벌하시어 멸망시키시고, 그들을 모두 기억에서 사라지게 하셨으니, 죽은 그들은 다시 살아나지 못하고, 사망한 그들은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이사야서」 26장 14절


알렉산드로스의 마케도니아 제국 이후 지중해와 메소포타미아 사회를 엮는 가장 중요한 고리는 ‘폴리스’였습니다. 이 고대 제국 시대의 폴리스들은 대체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왕성한 국제교역을 매개로 서로 연동되어 있었습니다. 배는 육로를 통한 운송보다 수십 배나의 운임비를 절감할 수 있었고, 또 비교적 안전하며 또한 대량수송을 가능하게 했지요. 하지만 그만큼 배를 소유하고 운용하는 것은 막대한 비용을 필요로 합니다. 해서 지중해를 오가는 국제무역의 시대는 부자들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시대를 활짝 연 것은 바로 프톨레마이오스 제국이었습니다.

이제 바다를 지배하는 나라는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였고, 바다를 이용할 줄 아는 이는 성공을 얻는 신의 축복을 받은 자였으며, 바다는 온갖 생기의 원천이었습니다. 오늘의 언어로 말하면 그 시대의 세계화는 ‘바다화’였고, 그것은 도시들의 폴리스화를 통해 구체화되는 것, 바로 그런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제국과 더불어.
 
제국 내의 여러 식민국가들도 이런 바다화, 폴리스화의 대열에 앞 다투어 나서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유대의 경우, 내륙 한 가운데 있고 고지대에 입지한 도시 예루살렘까지도 폴리스화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세계화라는 게 대개 그렇듯이, 폴리스화란 폴리스간 국제무역을 위해 사회적 제도들이 재구성되는 과정을 수반합니다. 하지만 그것 이상입니다. 폴리스간의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에 정향된 각종 교육, 스포츠, 패션 등이 활성화되며, 국제어인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어법들이 유행처럼 번져나갔고, 그리스풍의 외래어들이 범람하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시대의 대세처럼 보였습니다.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일부 귀족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배층들은 이런 바다화-폴리스화의 대열에 열렬한 추종자였습니다.

알 수 없는 사고로 침몰한 천안함 병사들 46인의 장례식이 지난 4월 29일에 치러졌습니다. 전국에 분향소가 39개나 설치되었고, 군부대 내에도 220개소가 설치되었습니다. 이 날은 ‘국가 애도의 날’로 선포되었으며, 전국 관공서에는 조기가 계양되었습니다. 그리고 오전 10시에 1분간 사이렌 소리에 맞춰 추모묵념시간이 있었고, 공중파 방송은 장례식을 생중계했으며, 공영방송은 추모모금방송을 편성하기까지 했습니다. 원인 불명의 사고로 죽은 군인들에게, 그것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와 같은 대단한 국가적 애도가 시행된 것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감동적입니다.
  
사망한 병사들은 ‘전사자’가 되었고 모두 국립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북한은 사실상 무력도발의 가해자로 규정된 것입니다. 하여 통일부장관은 타국외교관에게 대북관계를 재고하라는 내정간섭까지 서슴치 않습니다. 당분간 대북 지원 및 교류는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 되었고, 응징의 방법을 둘러싼 논의가 공론의 장을 주도합니다. 그리고 외국 언론들은 한국만의 이 뜬금없는 신냉전주의적 행보에 의아해 합니다.

그 수몰된 병사들이 아직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군이 공식으로 발표하고 대통령은 인명구조에 최선을 다하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실상 정부는 구조에 그다지 힘을 쓰지 않았습니다. 병사들은 사망이 확인되지 않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사실상 죽음으로 방치되었는데, 죽음이 확인된 이후 느닷없이 ‘열렬한 기억’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국가는 그네들의 생명을 기억하고자 하지 않았지만, 죽음은 열렬히 기억하고자 합니다. 국가는 살해 방조자였지만, 그 죽음을 기억함으로써, 전 국민의 가슴 속에 부활하게 하는데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국민이자 군인인 이들의 생명은 국가가 지켜야 할 공적인 생명이 아니었는데, 그 죽음은 ‘공적인 죽음’이 된 것입니다.

그런 이상한 결정의 주역인 청와대 지하벙커 모임은 부랴부랴 안보관련 위기관리센터로 급조되었습니다. 이는 지난 정권 때 존속했던 기관을 폐쇄했다가 다시 재건한 셈이지요. 하지만 이 급조된 기관이 하는 일이 바로 ‘죽음의 국가화’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정부가 진정 관심을 기울인 것은 대북정책이라기보다는 경제관련 위기관리 정책에 있었습니다. 큰 틀에서 얘기하면 이 정부가 치중한 것은 세계화 경제정책이었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구체적인 전략은 ‘전 국토에 대한 토건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대북문제는 이러다 할 기조 없이, 지난 참여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데 몰두하는 듯이 보였을 뿐입니다.

이런 생각의 편향에 사로잡힌 이들이 사건 직후 청와대 지하벙커에 모여 긴급한 대책을 숙의했습니다. 부랴부랴 대북위기관리 모임을 급조했지만, 그것은 장기적인 안보프로그램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안보정치를 중심 기조에 의해 도구화할 우려가 농후합니다.

위에서 보았듯이 현 정부의 정책적 중심 기조는 ‘전국토의 토건화’에 치우쳐 있습니다. 그렇다면 많은 이들이 의심하는 것처럼, 이 죽음의 국가화는 북한을 적대적 대상으로 재구축하는 데 초점이 있는 게 아니라, 최근 위기에 처한 4대강 사업 등, 전국토의 토건화 정책에 대한 반대의 여론을 다른 곳으로 환기시키리는 데 있는 것이라는 얘깁니다. 늘 그렇듯이 냉전주의적 안보논의를 이용해서 정권안보에 활용하고 있는 것이지요.

국가는 종종 국민의 죽음을 도구화합니다. 하지만 국민의 생명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심지어 위기에 처하도록 방조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제 천안함의 병사들은 바로 그런 전형적인 예가 되었습니다.

시민도 그럴 수 있지만 군인은 더 말할 것도 없는, ‘쓸모없는 생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시장이 소모품으로 이용할 뿐인 그런 대상에 불과합니다. 즉 자본주의적 생명력을 인정받지 못한 이들을 국가의 생명관리체계는 결코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이른바 ‘천안함의 용사들’은, 국가가 그 죽음을 독점해 버리자, 이른바 ‘영웅’으로서 대단한 칭찬의 대상이 되는 바로 그 순간에도, 생명으로보다는 죽음으로서만 이용가치가 있는 존재들로 전락해 버립니다. 우리의 생명권력은 그렇게 사람들을 대하고 삶과 죽음을 도구화하고 있습니다. 하여 권력의 시선에서 저들의 삶뿐 아니라 특별한 우대를 받는 죽음도 사실상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 존재에게 부활은 없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적 질서에 영혼이 포박되어 있는 한 말입니다.

다시 성서로 돌아와 봅시다. 바다화-폴리스화의 주인공들은 도시들을 짓습니다. 그리고 그 풍요로운 도시 문화의 적극적 주역입니다. 그들은 부유하고 학식 있으며 지체가 높은 이들입니다. 훌륭하고 멋들어진 옷차림으로 거리를 배회하고, 세련된 말투로 사람을 대합니다. 그들이 가족은 교양 있고, 자녀들은 아름답고 건강합니다. 그들의 삶은 그 세상에서 의미가 넘칩니다.

그뿐 아닙니다. 무엇 하나 부족할 것 없는 그들에게 죽음 또한 예사스럽지 않습니다. 아무렇게나 시신을 유기함으로써 내버려지는 몸이 아닌 존재, 무덤에 안장되고, 숱한 장신구 등이 썩어 사라져버린 몸을 상징적으로 대리하는 존재, 그런 이들의 죽음은 끊임없이 산 자들의 기억 속에 잔류합니다. 무덤을 보며 사람들은 그이를 기억하고, 제사의례를 통해 그이를 기억하며, 그렇게 기억한 이야기 속에서 회자됩니다. 하여 그 죽음은 죽음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이들이 묻힌 바로 그곳에서 마지막 때에 그의 몸이 부활할 것입니다. 바다의 제국, 그 세계 질서 속에서.

그런데 한 익명의 예언자는 도리어 종말의 때에는 그런 이들, 기억에서 오래도록 남겨진 이들이 모두 기억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아울러 그네들의 도시, 바다화의 권력에 사로잡힌 도시는 모두 파괴되고 말 것입니다.

반면 다른 죽음, 버림당하고 이용당하는 죽음들은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죽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날 것이며, 그들의 시체가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무덤 속에서 잠자던 사람들이 깨어나서, 즐겁게 소리 칠 것입니다. 주님의 이슬은 생기를 불어넣는 이슬이므로, 이슬을 머금은 땅이 오래 전에 죽은 사람들을 다시 내놓을 것입니다. 땅이 죽은 자들을 다시 내놓을 것입니다.”(「이사야서」 26장 18~19절)

버려진 생명이 다시 되살아나는 꿈입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제국 아래, 바다화-폴리스화의 대열에서 체제에 의해 존재를 빼앗긴 이들의 부활, 이것이 그 시대 묵시적 예언자들이 외친 새 세계의 꿈입니다.

천안함의 생명들이 국가에 의해 버림받은 곳, 그 주검이 도구화된 곳, 리워야단의 권력, 저 물의 권력이 존속하는 바다는 생기가 없습니다. 한데 예언자는 꿈꿉니다. ‘그 날, 리워야단이 생명을 다하는 그 날’(27장 1절), 생명을 파괴하는 도시들이 잿더미가 되는 날(25장 2절), 주님은 죽음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고.(25장 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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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국방문 답사기
: 거리의 몰락, 기억의 종말, 그리고 MB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과정)


지난 7월 한달 간 한국을 방문했다. 2년 만에 찾은 조국은 정권이 바뀌어 있었다. 용산에서는 사람들이 불타 죽어갔으며, 전 정권의 대통령은 현 정권의 표적수사에 심한 모멸감과 자괴감에 빠져 자살했다고 누군가 내게 귀띔해 주었다. 내가 한국에 체류하고 있던 기간에도 방송법이 국회에서 한 바탕의 볼거리를 제공하며 통과되었고, 쌍용자동차 사태는 파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자살한 전직 대통령의 분향소가 설치되어 있었다는 덕수궁 대한문 앞에도 가보고, 용산참사가 일어났던 그 서글픈 건물에도 가봤는데 사람들은 모여있지 않았다. 옛날 같았으면 이 정도의 메머드급 사건들이 줄줄이 터졌더라면 뭔 일이 일어나도 벌써 일어났을텐데. 너무나도 고요하고 아무일 없다. 그래, 우리는 이제 그렇게 아무일 벌이지 않아도 꾸역꾸역 살 수 있게 되었다. 잘된 일이다. 하지만 한번 물어나 보자, 그 동안 무엇이 달라진걸까? 내가 서울에 와서 던졌던 첫 번째 질문이었다.

로보트 태권 V, 광화문 사거리에서 길을 잃다

과연, 서울은 달라져 있었다. 말로만 들었던 현 대통령의 서울시장시절 업적이라는 청계천을 잠시 둘러보고 찾은 인사동은 현대와 고전이 조화된 어울림으로 많은 사람들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아니, 고전과 현대 그 어느 것 하나 살아남지 않은 동떨어짐으로 사람들을 토해내고 있다는 말이 더 적절한 표현인지 모르겠다. 이제는 세계화된 거리 인사동, 그곳 스타벅스 매장 간판은 영어가 아닌 한국말로 쓰여져 있었다. [스 타 벅 스 커 피] 라고 말이다. 전통을 고수하려는 그 피맺힌 절규와 숭고함에 하마터면 눈물이 날뻔했다.

인사동을 끼고 있었던 피막골은 도심정비 사업때문인지 정리중이었고, 창경궁부터 시작해서 인사동 윗길을 지나 광화문으로 이르는 고즈넉한 그 길도 공사중이었다. 광화문 사거리는 무슨 광장을 조성한다는 팻말이 크게 붙어있었는데 머지 않아 완공된다고 한다. 지금쯤이면 완성이 되었으려나. 광화문광장 조성공사를 보며 광장 콤플렉스에 걸려있는 현 정권의 마스터베이션 같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가는 것은 왜일까? 이렇듯 내가 살짝 돌아본 서울은 온통 파헤쳐져 있었다. 도시전체는 뉴타운 열풍으로, 대학은 경쟁력 있는 대학을 모토로, 거리 거리는 세계화된 도시에 걸맞게 요소요소에 스타벅스와 멀티플렉스 극장을 배치시키며 발빠르게 공사중이거나 그 변신을 완성해 가고 있었다.

서울을 돌아보고 난 제주도로 내려갔다. 부모님이 그 섬에 계시기 때문이다. 나는 제주에서 초등학교 2학년까지 다니다가 3학년이 되던 해에 서울로 올라왔다. 30년 만에 찾은 제주도 역시 변해 있었다. 관광코스를 개발하고, 해안을 따라 도로를 조성하며, 한라산 산간에 골프장을 건설하여 관광객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야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 도심은 30년 전과 비교 할 때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는지 2학년이었는지 확실히 기억은 안 나는데, 김청기 감독의 ‘로버트 태권 V’를 보러 갔던 극장이 여전히 남루한 채 보존되어 있었다. 그날 ‘로보트 태권 V’를 보고 하늘을 날아서 집으로 왔던 기억이 지금도 또렷하다. 표준전과와 동아전과를 사러 갔던 동네 어귀 ‘남문서점’도 그대로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는 자식들에게 표준전과나 동아전과 한 권 사주는 것으로 부모님들의 1년 사교육비 지출이 끝이 났던 말도 안 되는 세상이었다.
동네 아이들과 저녁 먹고 나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했었는데, 술래가 손등에 이마를 대고 주문을 외우던 건물 대문 위엔 ‘제주소방공사’라는 간판이 붙어있었다. 그 곳은 아직도 영업중이었다. 아버지에게 ‘제주소방공사’ 끝에 붙어있는 ‘공사’가 ‘한국방송공사’ 끝에 붙어 있는 ‘공사’와 같은 것이냐고 물었던 기억이 있다.  뭐라고 설명해 주셨는데… 내가 이해하기에는 어려웠다.

아버지가 나를 가끔 데리고 갔었던 다방이 도심 한가운데 있었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친구분과 계란이 떠 있는 쌍화차나 다방커피를 드셨고, 내게는 따뜻하게 데운 우유를 시켜주셨다. 난 그곳에 있었던 커다란 어항 속 금붕어 보는 것을 좋아했었다. 여행 기간 중 밤길 제주를 걷다가 발견한 불이 켜져 있는 30년 전 그 다방의 간판이 왜 그리도 나의 마음을 환하게 하던지. 다음날 나는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거리의 몰락, 기억의 종말

처음 질문으로 돌아간다. 조국의 무엇이 달라진걸까?  2년 만에, 아니 미국으로 유학간 지 5년 만에 찾은 서울의 무엇이 달라진걸까?  거리가 달라졌다. 동네가 변해 있었다. 정권이 바뀐 것 보다 내가 놀던 동네와 내가 활보했던 거리가 달라졌다는 것이 내게는 더 어색했다. 무작정 ‘그때 그 거리를 기억하십니까? 그때가 좋았죠’라고 말할 수는 없다. 더 큰 거리로 나가야 하고, 더 큰 세상으로 진출해야 한다. 그래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워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리 씁쓸한걸까?

거리와 동네가 사라지고 달라진다는 것은 이름이 없어지고 기억이 상실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이제 예전 거리의 이름과 옛날 동네어귀에서 벌어졌던 사건들을 회상하는 것에 대해 낯설어하고 불편해한다. 그곳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한바탕 싸움을 치르고 미끄러져 들어가 앉은 피막골에서 가뿐 숨을 몰아 그날의 전과를 과장하며 마시던 막걸리와 석쇠 위에서 구워지던 고갈비를 이제는 그 거리에서 먹을 수 없다.

인사동의 혹은 신촌의 어느 선술집에서 김광석이나 해바라기가 불렀던 노래들을 낮게 읊조리는데, 한 친구가 ‘지금이 그런 사랑타령이나 하는 노래를 부를때냐? 너 같은 뿌띠 부르조아는 아무런 필요가 없다’며 나를 몰아친다. 나도 열 받아 ‘변혁에 참여하는 사람은 사랑을 하면 안 돼냐구. 혁명이 식어버린 심장을 가진 사람들의 전유물이라면 난 기꺼이 빠지겠다’며 고래고래 티격태격 각자의 진정성을 알아달라고 우겨대던 철없고 유치했던 그 시절! 그때의 거리와 그 당시 동네가 사라져 버렸다. 그곳에서 함께 놀던 사람들까지도. 그래서 불안하다.

혹시, MB가 민중들이 지니는 기억의 매커니즘을 하나씩 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해마다 4월과 5월 그리고 6월이 되면, 거리와 광장에서 출렁이며 메아리 쳐졌던 민중들의 율동과 함성 안에 감추어져 있는 봉기의 기억과 그 기억의 반복이라는 매커니즘을 말이다. 그것이 지니는 파괴력을 성실히 학습한 후 그것에 대처하는 자세를 MB가 이미 터득한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그가 우선적으로 민중들이 지닌 기억의 연쇄고리를 하나씩 절단하기로 작정을 했고, 그 잘려나간 지면을 잘 다지고 정리하여 새로운 기억의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라면? 새롭게 조성된 광장과 거리에서 제한적으로 뛰어 놀게 하고, 폼 나게 단장된 동네에서 세계시민이 되어 촌티내지 말고 세련되게 그 문화를 향유하라고 다독이고 있다면 말이다.

다시 보자, MB!

점점 발전하는 터미네이터나 에어리언처럼 MB정권은 많은 실험과 시행착오와 학습을 거쳐 이제는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트랜스포머와 같이 진화한 정권일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한국 방문 기간 내내 스멀스멀 올라와 기분이 엿 같았다. 한국에 오기 전까지는 MB 정권을 향해 실소와 비웃음, 격멸에 찬 발언을 주저하지 않았는데, 한 달 가까이 그가 다스리는 땅을 밟으면서 그의 진정성을 느끼며 그가 결코 호락 호락한 상대가 아님을 깨닫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원칙과 소신을 강조했는데, MB는 노무현보다 훨씬 더 자신의 원칙과 소신에 철저하다. 노무현이 걸어갔던 정치·문화적 행보와 경제적 측면간의 행보가 갈지자였다면, MB는 정치, 경제, 문화적 정책 어느 것 하나 흔들림 없이 수미일관 하다. 그 누가 뭐라고 하든 전혀 동요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MB는 노무현 보다 훨씬 더 자신의 원칙과 소신에 철저하다. 무엇보다 이 정권이 악한 이유는, 그들이 우리의 숨겨진 욕망을 깨우고 부추긴다는 점이다. 마치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는 뱀과 같다. 우리의 ‘이드’와 우리 ‘에고’의 가치를 존중해주는 MB에게, 당신의 리비도에 충실해도 괜찮다고 국가가 그것을 보장하겠다고, 그러니 당신의 욕구를 구태여 ‘슈퍼 에고’를 작동하여 다스리려 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해주는 MB의 속삭임 앞에 우리가 모두 못 이기는 척하면서 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제는 우리를 멈춰 서게 했고 모이게 했던 ‘민주’와 ‘통일’, 우리를 춤추게 하고 고함지르게 했던 ‘평등’과 ‘인권’, 우리를 울게 하고 웃게 했던 ‘정의’와 ‘자유’라는 강력한 ‘슈퍼 에고’가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한다. 그 하나하나의 기억이 서려있는 우리의 거리와 광장과 동네를 MB가 집요하게 파헤치고 뒤엎어 고쳐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공사들은 지금도 진행중이고 앞으로도 계속 지속되어야 한다. 사람들의 욕망의 눈덩이를 끊임없이 증폭시켜야 한다는 압박이 MB정권을 유령처럼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뉴타운이라는 환상을 심어주어 사람들의 ‘이드’을 한껏 부풀리고, ‘영어공교육’이다 ‘특목고’다 하면서 자식들을 볼모로 부모로서의 ‘에고’에 어떻게 하면 충실할지를 고민하게 한다 (차라리 표준전과와 동아전과 하나로 자녀교육이 모두 해결되던 우리 부모 세대가 더 행복했는지 모르겠다). 세계화된 경제시스템 아래에서 전통적인 고용정책과 경제운영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이다. 기업마다 구조조정하고 비정규직을 늘리면서 노동시장을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경제가 살아난다. 그러니 언제 잘릴지 모른다. 미리미리 자기 앞길, 자기 밥벌이 잘 챙기고 미래를 위해 긴 안목으로 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 잠시 한눈 팔면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그러니 열심히 뺑이쳐라. 그래야 살아남는다. 명심하란다. 그것이 이 시대의 정언명법임을.

에필로그

다시 시카고로 돌아왔다. 악몽에서 깨어난 느낌이다. 이명박이 다스리는 땅에 내가 없다는 안도감과 이명박이 다스리는 땅을 내가 떠나있다는 면목없음이 널을 뛰는 요즘이다. 몇 년후 내가 돌아갈 때쯤이면 서울은 어떻게 변해있을까? ‘로보트 태권 V’는 지구를 잘 지키고 있을까? 제주에 있는 ‘남문서점’과 ‘제주소방공사’는 무사할까? 우리가 정말 대단한 놈을 만난 것일까? 별것 아닌데 내가 너무 오바하나? 어쨌든…

두 눈 똑바로 뜨자.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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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진양
    2009.09.08 14:45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거리의 목락" "기억의 상실" 대단히 묵직한 화두입니다. 이번 한국 방문이 아마 큰 충격이었나 봅니다. 정신이나 이념보다는 물질적 풍요를 위해 내 달리는 한국의 현실을 꿰뚫는 화두인 것 같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121차 월례포럼 (제4회 맑스 코뮤날레 세션 참여로 대체합니다.)

세계화 시대의 '이주'와 사회적 고통
- '결혼 이주'를 통해 보는 한국 사회의 감성적 경계의 재영토화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는 그동안 신학의 경계를 넘어 인문.사회과학과 대화하려는 시도를 지속해왔습니다. 그 일환으로 이번 제4회 맑스 코뮤날레에서 본 연구소는 주관단체 세션에서 민중신학적 관점으로 현대사회를 읽는 시도를 하고자 합니다. 민중신학자 안병무 선생의 '오클로스론'을 발판으로, 현대 한국사회에서 세계화로 인해 교란되고 재영토화되고 있는 경계가 무엇이며, 포섭/배제는 어떤 기제를 통해 이뤄지고 있는지 밝혀보고자 하는 의미있는 시도가 될 것입니다.

▲ 일 시 : 2009년 6월 25일(목) 오후 4시 ~ 7시
▲ 장 소 : 서울시립대학교 법학관 103호 (찾아가는 방법 안내 클릭)
▲ 주 제 : 세계화시대의 '이주'와 사회적 고통
― 발제1. 결혼이주자의 '경제주체 되기'
              - '타자' 재생산을 통해 구성되는 '다문화 자본주의'의 꿈
           발제: 유승태_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상임연구원
           논찬: 김현준_CAIROS 회원, 서강대 사회학과 석사 수료
― 발제2. 대중매체의 결혼이주자 재현과 상징폭력
           발제: 정용택_한신대 신학과 Th.M 과정 신약학
           논찬: 김민아_한국기독청년학생연합회 간사
▲ 문 의 :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02-363-9190) / yminjung@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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