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협주곡 <기억>(2015) - 멈춰짐의 공간, 나아감의 시간 III



이재구*

 


 

현대음악이 사람들의 아픔을 공감하는 것에 ‘불능’하여 애도함에 있어 적절한 매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슬프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 ‘불능’의 길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속히 ‘가능’의 길로 눈을 돌려야 한다. 가능의 길은 현대음악이 ‘소리’들의 해방공간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재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현대음악이 스스로를 소리들의 해방공간으로서 인식하는 일은 사실 괴롭고 씁쓸한 과정이다. 현대음악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순간은 바로 자기 자신이 단지 자기충족적인 존재일 뿐 자신의 외부 즉, ‘사회’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그저 고립된 존재임이 밝혀지는 순간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하지만 만일 현대음악이 그 고통과 괴로움의 시간을 담담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넘길 수만 있다면 비로소 깨닫게 될 것이다. 차갑고 무뚝뚝해 보이는 외형과는 달리 자신이 품고 있는 해방의 공간이 의의로 넓고 품이 넉넉하다는 사실을. 그래서 자신의 공간 안에 무수한 악음(樂音)들 뿐만이 아닌 모든 ‘무형’의 소리들 마저도 능히 담아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심지어 그곳에는 우리의 아프고 슬픈 ‘기억’의 소리들과 기대조차 하지 못했던 일들이 어쩌면 이루어질 수도 있겠다는 ‘희망’의 소리들까지도 담을 수 있다는 것을. 현대음악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 자신에게도 ‘가능’한 길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땀흘려 힘써야 한다. 모든 불능의 길을 벗어나 가능한 길을 끊임없이 탐색하고 그 길을 끝까지 밟아 나아가기를.


4월 16일 이후 두 달여의 기간 동안 학위작품과 관련된 작업은 중단되어 있었지만, 동시에 내가 학위작품 안에 무엇을 담고 싶은 지는 점점 더 명확해져 가고 있었다. 아이들과 엄마아빠들에 대한 부채의식을 안고 겸손히 엄마아빠들의 아픔과 슬픔에 동참하는 시민들의 모습은 나를 영혼의 골방에서 벗어나 현실을 마주하며 현실 속에서 살아가도록 독려했다.


나의 학위작품이 아이들을 하늘로 떠나 보낸 엄마아빠들에 대한 ‘위로’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을 항상 상기하며 작업에 임했다. 엄마아빠들이 겪고 있는 엄청난 슬픔과 고통이 나의 성긴 ‘위로’로 공허하게 치환된다는 것은 정말이지 상상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다만 나의 음악이 ‘기억의 저장소’가 되었으면 하였다. 그것도 엄마아빠를 위한 기억의 저장소는 될 수 없었다. 엄마아빠들이 왜 기억의 저장소가 필요하겠나? 아픔으로 찟겨진 그들의 몸과 영혼 자체가 이미 모든 것을 간직하고 있는 기억의 저장소일텐데. 나의 음악은 나를 위한 기억의 저장소일 뿐이었다. 나의 음악은 매정할 정도로 쉽게 잊고 무심해지는 나의 영혼이 또 다시 나약한 모습으로 발견될 때마다 항상 돌아가 깨우침을 얻어야 할, 나 자신을 위한 경책의 저장소일 뿐이었다.


나는 그 기억의 저장소를 기억의 내용에 따라 몇 개의 방으로 나누었다. (이 기억의 내용이 피아노 협주곡 <기억>을 구성하는 형식이 되었다. 이 작품의 전체 형식은 크게 6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이 나의 저장소에는 엄마아빠들이 현재 겪고 있는 슬픔과 고통을 담아내기 위한 방들이 주를 이루었다. (작품을 구성하는 여섯 섹션 중 섹션1, 섹션3, 섹션4, 섹션5의 총 네 섹션이 여기에 해당된다. 각 섹션의 내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아래의 각주[각주:1]를 참고하라.) 하지만 그 곳에는 엄마아빠들의 아픔의 기억만을 담아둔 것은 아니었다. ‘추억’이라는 이름의 과거의 기억, 그리고 어쩌면 지금은 상상할 수 조차 없겠지만 ‘소망’이라는 미래의 기억도 꼭 함께 담아두고 싶었다.


‘추억’이라는 이름의 기억은 보통 과거의 경험이 현재의 행복감으로 해석될 수 있을 때 비로소 획득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다. 하지만 여러 미디어 매체를 통해 보고 들었던 엄마아빠들의 추억들은 하나같이 후회와 눈물로 얼룩진, 행복감과는 거리가 먼 추억들 뿐이었다. 엄마아빠들은 한결같이 아이들과 좀 더 자주, 좀 더 함께 하지 못했던 것이 못내 한스럽다고 말하며 흐느끼기만 했다. 가끔씩 엄마아빠들이 자신의 아이에 대한 소중한 기억을 꺼내는 순간조차도 온통 비애감으로 둘러싸인 추억의 파편들만 소환될 뿐이었다. 엄마아빠들이 겪고 있는 현재의 아픔과 슬픔을 경감시키는 일은 나의 음악을 통해서는 전혀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다만 그 한스럽고 후회 가득한 기억들이 나의 음악 속에서 만큼은 가장 행복한 추억들로 환치되길 바랬다. (그 환치된 기억이 저장된 곳이 [음원의 3:52무렵부터 시작되는] 작품의 두 번째 섹션이다.) 그 동안 바삐 지내느라 아이들과 함께 할 시간이 늘 부족했던 엄마아빠들이 꼭 아이들과 이 소리의 놀이 공원에서 행복한 추억을 만들수 있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 기억의 방을 마련했다.


작품 내에서 마지막 부분에 해당되는 ‘소망’이라는 미래의 기억을 담을 방[음원의 19:52 부분에서 시작됨]에 이르렀을 때 아이들은 이미 천사의 날개를 달고 막 하늘로 떠오르려 하던 차였다. 고맙게도, 정말 고맙게도 아이들은 슬픔으로 엎드려 움크리고 있는 엄마아빠들을 하나둘씩 뒤에서 안아 일으켜 세워주고 나서야 비로소 하늘로 힘찬 날개짓을 하며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나직히 아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아이들아, 정말 고맙다… 엄마아빠를 지켜줘서…’

아이들로 인해 실험이 ‘멈추어진’ 음악 공간을 처음으로 경험하였다. 그 멈춰진 공간 속에서 나는 한없이 나약했었다.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게 고요한 음성으로 알려 주었다.


멈춰짐, 그 멈춰짐의 공간이 곧 나아감의 시간이라고.




* 필자소개

시카고대학(University of Chicago)에서 작곡전공으로 Ph. D학위를 받고 현재 가천대, 국민대에서 작곡이론과 음악일반에 대해 강의 중.


ⓒ 웹진 <제3시대>



  1. 슬픔과 고통의 기억을 담아내는 섹션들이 묘사하는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섹션1 - 세월호를 완전히 침몰시켜 버린 진도 앞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망연자실한 가운데 팽목항 부두에 앉아 있는 한 아빠. 아빠는 홀로 슬픈 노래를 부르고 있다;음원의 0:00~3:52구간임. 섹션3 - 4월 16일 당일 아침 세월호가 급변침하며 기울어진 후, 빠른 속도로 가라앉기 시작한다. 엄마아빠들은 급박한 상황진행으로 인해 당혹스러움에 빠져 있다. 배는 점점 더 가라앉기 시작하고, 결국 완전히 침몰한다. ‘전원구조!’라는 뉴스 속보도 나왔다. 하지만 이내 오보임이 밝혀졌고, 4월 16일 오후 세월호 속 아이들에 대한 구조는 완전히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된다. 그렇게 4월 16일 밤이 되었다;음원의 5:55~11:05 구간임. 섹션4 - 배가 완전히 침몰한지 이미 며칠이 지났고, 실오라기 같은 희망이었던 에어 포켓에 대한 기대감도 이내 좌절되었다. 세상은 온통 암흑과도 같았다;음원의 11:05~16:09구간임. 섹션5 - 아이들의 시신이 처음으로 뭍으로 올라온 날. 아이의 차가워진 얼굴을 마주했을 때, 엄마와 아빠의 심장은 멎는 것 같았다. 엄마가 아이의 몸을 뜨겁고 안고 오열한다. 아빠도 오열한다. 아이를 따뜻한 곳에 눕히고 난 후 아빠는 다시 팽목항 부둣가를 찾는다. 그리고 다시 슬픈 노래를 홀로 부르기 시작한다; 음원의 16:09~19:52구간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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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협주곡 <기억>(2015) - 멈춰짐의 공간, 나아감의 시간 II



이재구*

 


 

기본적으로 현대음악은 ‘대중성’이라는 형식과 ’민중성’이라는 내용을 취할 의무를 지지 않는다. 이것은 현대음악이 대중성과 민중성이라는 형식과 내용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현대음악은 존재론적으로 대중성과 민중성을 담아 내는 것에 있어 불능(不能)하기에 그 의무에서 면제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러한 불능은 근대가 던저 둔 ‘예술의 자율성’과 ‘중단없는 혁신’이라는 달콤한 두 유혹 앞에 현대음악이 스스로를 내어 준 순간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자유’와 ‘혁신’이란 매혹적인 포도주가 ‘모더니즘’이라는 세련미 넘치는 유리병에 담겨 배달된 곳은 다름 아닌 20세기 초 빈(Wien)의 음악선생 쇤베르크(Arnold Schöberg)의 작은 작업실이었다. 쇤베르크는 그의 작업실에서 그 매혹의 포도주를 음미하는 가운데 지금껏 음악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가장 소외되고 배제되어 온 한 대상을 대면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불협화’였다. 쇤베르크에겐 불협화의 문제를 직면하지 않은 채 작품의 형식과 규모의 극적인 확대만을 마치 혁신의 전부인냥 외쳐 대던 동시대 주류 작곡가들의 행태는, 그저 위선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는 선율, 화성, 형식 등 음악을 구성하는 중요한 얼개들이 한껏 자유를 구가하고 있던 희망 가득한 새 세기의 초에도, 여전히 억압받고 있던 가장 소외된 존재, 바로 불협화에 주목했던 것이다.


쇤베르크는 근대가 추동해 온 음악해방 운동의 완성은 ‘불협화의 해방’ 없이는 전혀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고 보았다. 그는 결국 음악 해방의 완성에 투신한다. 그의 투신은 불협화가 온전히 주인이 되는 음악 세상, 즉 불협화를 위한 ‘유토피아’ 건설에 헌신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쇤베르크의 뜨거운 열정과 흔들림없는 추진력은 이내 불협화가 온전히 해방된 세상을 탄생시킨다. 사람들은 그렇게 창조된 새로운 불협화들의 음악공간을 ‘무조음악’(atonal music)이라 불렀다.


무조음악은 불협화가 그 어떠한 구속도 없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희열과 환희의 공간 그 자체였다. 하지만 묘하게도 그 희열과 환희의 공간엔 사람들이 들어설 자리는 없었다. 그곳은 낯선 음표들의 해방감만이 충만한 공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처음엔 호기심에 무조음악이 낸 창을 조심스레 두드리며 다가가보려 했지만, 그 때마다 불협화는 뜻 밖에도 차갑고 불친절한 표정과 말투로 사람들을 응대했다. 사람들은 불협화가 보인 불친절함과 무심함에 많이 속상해하며 무조음악이라는 새로운 공간 자체에 대해 크게 실망하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그것이 무조음악에 대한 오해였음을 알게 되었다. ‘무조음악’이 사실 그대로 고백하였다. 자신은 사람들을 위해 탄생한 존재가 아니라고… 자신은 단지 불협화가 소외되는 것을 막아보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일 뿐이라고… 그랬다. ‘무조음악’은 사람들을 사랑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현대음악’은 존재론적으로 사람들을 사랑하는 데 있어 철저히 ‘불능’하다.


생기가 가득했던 4월 16일 오전에는 도통 배 밖으로 나올 수 없었던 아이들이 모든 기운을 소진하고서야 배 밖 뭍으로 하나둘씩 나와 엄마아빠의 슬픈 가슴에 안기기 시작했다. 이미 자신들의 가슴 속은 슬픔과 고통으로 새까맣게 다 타버렸는데도 엄마아빠들은 무슨 힘이 남아 있다고 아이들의 이름을 목놓아 부르고 또 불렀다. 엄마아빠들이 아이들을 품에 안고 절규할 때, 나는 차마 그 외침을 들을 수 없어 귀를 막은 채 영혼의 골방 속에 홀로 움크리고 앉아만 있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외마디의 소리만 되뇌일 뿐이었다.


‘아이들아, 미안하다… 아이들아, 미안하다…’ 

‘엄마아빠들, … 죄송합니다…’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엄마아빠들에게 죄송한 마음에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다녔다. 고개를 들면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 사그라들까 두려웠다. 그래서 더 아래로, 더 아래로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그리고 고개를 아래로 숙일 때마다 또 다시 되뇌었다.


‘아이들아, 미안하다… 엄마아빠들,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함과 죄송함의 빚을 진 많은 시민들이 아이들을 하늘로 떠나 보낸 엄마아빠들의 아픔에 여러 모양으로 동참하고 있다는 소식을 여러 매체를 통해 이곳 시카고에도 듣게 되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비로소 조금은 안도할 수 있었다. 그 안도감은 한없이 움크리고만 있었던 나의 내면을 추스를 작은 여유공간을 마련해주었다. 마음의 빚을 갚을 수 있는 방법을 더듬어서라도 찾아갈 수 있는 여력도 조금은 생긴듯 하였다. 그리고 참으로, 참으로 오랜만에 오선지와 악보들이 놓여 있는 책상을 가만히 다시 마주하였다. 마주한 책상 앞에서 나는 내 자신에게 꼭 확인해 보고 싶은 몇 가지 것들이 있었다.


‘지금 내가 쓰고 싶은 것은 무엇이지…?’ 

‘혹시 내가 써야만 하는 무엇인가가 있는가…?’


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쉽게 나왔다. 내겐 내년 초까지 ‘써내야’만 하는 학위작품이 있었다. 그리고 사실 첫번째 질문도 이전 같으면 그리 고민할 성격의 질문이 아니었는데, 내가 쓰고 싶은 음악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늘 혁신적인 소리에 대한 탐구와 실험을 반영하는 ‘현대적’ 음악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날 내 마음 속을 맴돌고 있는 음악은 분명히 혁신과 실험에 관한 음악은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음악도 아니었다. 내 마음 속을 울리고 있는 것은 소리가 아닌 오히려 이미지와도 같은 어떤 것이었다. 그 이미지 속에서 아이들은 모두가 별이 되어 우리들의 모진 세상을 환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그리고 엄마아빠들은 긴 팔을 뻗어 그 별들을 한아름 안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별이 된 아이들을 꼬옥 안고 한없이 행복해하는 엄마아빠들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혼자 되뇌고 있었다.


‘아, 아이들이 살아있었구나…!’ 

‘아이들아, 엄마아빠를 꼭 끝까지 지켜주렴…!’ 

‘그리고 부족한 우리들도 지켜봐주렴…’ 


내가 쓰고 싶은 음악이 마음 속에서 울리고 있어 다행이었다. 내가 쓰고 싶은 음악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어렴풋이라도 얻고 나니 내가 써야만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로 다가왔다. 학위작품에 내가 쓰고 싶은 음악을 담아내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날 애써 직면하지 않은 것, 아니 어쩌면 내심 그날만은 직면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한 가지 있긴 하였다. 그것은 바로 내 몸과 손 끝에 익숙한 현대음악이라는 재료의 문제였다. 현대음악은 기본적으로 사람들을 사랑하지 못한다. 현대음악 안에는 사랑하지 못하게 하는, 아니 사랑에는 관심없는 불협화들만 가득하기 때문이다. 내가 쓰고 싶은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내가 쓸 줄 아는 재료는 현대음악 뿐이다. 현대음악은 존재 자체로 사랑하는 것에 철저히 ‘불능’한데 말이다. 


(최종회에서 이어집니다.)




* 필자소개

시카고대학(University of Chicago)에서 작곡전공으로 Ph. D학위를 받고 현재 가천대, 국민대에서 작곡이론과 음악일반에 대해 강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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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협주곡 <기억>(2015) - 멈춰짐의 공간, 나아감의 시간 I



이재구*

 


제법 오래전부터 박사학위 작품으로 ‘피아노 협주곡’을 구상해 왔었다. 협주곡의 하위장르로서 피아노 협주곡은 내게 늘 흥미로운 탐구의 대상이었다. 기본적으로 피아노는 여타 협주곡 장르의 독주악기들(예컨대, 바이올린, 첼로 등의 현악독주악기와 클라리넷, 트럼펫 등의 관악독주악기)과는 달리 자신의 대화 상대자인 오케스트라와 음색의 측면에서 이질적이다. 이러한 음색적 이질성은 피아노의 독특한 발음(發音)원리인 ‘타현’(打絃)에 기인하는데, 이때 타현이라 함은 건반을 누름과 동시에 건반과 일대일로 연결된 해머펠트가 피아노 내부의 현을 때려 울림을 만들어 내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대부분의 현악기들이 현을 켜거나(=찰현) 현을 뜯는(=발현) 방식을 통해 소리를 내는 것과는 사뭇 다른 방식인 것이다. 또한 피아노는 건반 터치의 정도에 따라 섬세한 강약조절이 가능하며, 7옥타브가 넘는 넓은 음역안에서 고음, 중음, 저음의 모든 음역을 다채롭게 표현할 수 있기에 다른 무리의 악기들과 함께 연주될 때 그 음색의 독특함은 더더욱 도드라진다. 이러한 음색적 도드라짐으로 인해 피아노는 아쉽게도 18세기 중엽 이래 형성된 근대적 의미의 오케스트라의 일원으로 참여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피아노의 풍부한 음량과 섬세한 표현력은 ‘대비’와 ‘조화’라는 이상 아래 탄생한 협주곡 분야에서 오히려 그 자신을 빼어난 독주악기로서 자리매김 하는데 크게 기여한다. 오케스트라라는 거대한 음향덩어리가 연주회장을 휘몰아 칠 때 굵고 묵직한 화성으로 그것을 능히 뚫고 나갈 수 있는 것이 바로 피아노였던 것이다. 그리고 때때로 오케스트라가 잠시 휴식을 위해 넓고 풍성한 음향의 돗자리를 펼치는 순간, 능청스럽게도(?) 그 위에 올라타서 우아하고 감미로운 선율을 노래하며 주인공 역할을 자처하는 것 역시 다름 아닌 피아노였다.


작곡을 제도권의 틀 안에서 배우기 시작한 2001년 이래로 줄곧 현대음악 공부에 전념해 왔다. 20세기 초 ‘모더니즘’의 발현 이후 대부분의 주류 현대음악 작곡가들이 이념처럼 따르고 있는 ‘새로움’과 ‘혁신’의 가치와 ‘소리’에 대한 탐구는 늘 나를 매료시켜 왔다. ‘새로운’ 음향을 고안하고 생성하는 것, ‘혁신적인’ 작곡 기법과 ‘급진적인’ 형식을 실험하는 것은 현대음악 작곡학도로서의 나의 최우선의 과제였다. 비록 정성껏 준비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까지의 과정은 어김없이 고되고 지난했지만, 연주가 시작되고 음악이 펼쳐지는 순간 찾아오는 희열은 항상 충분한 보상이 되고도 남았다. 물론 나의 이러한 실험지향적 작품이 풍기는 낯설음으로 인해 곤란해 하는 청중들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순간에도 오해(?)를 풀고자 작품의 배경 및 작업의 과정, 그리고 실험의 내용을 가능한 한 자세히 청중들에게 설명하려 애쓰던 기억들이 새삼스레 스쳐간다.


십여 년이 넘는 기간에 걸친 현대음악 이론과 작곡법에 대한 공부를 마치고, 피아노 협주곡을 학위작품으로 제출하겠다고 공식적으로 학교에 알린 것은 2013년 12월 말 경이었다. 학교측에서는 내게 2015년 4월 1일을 초연 날짜로 정하여 통보해주었고, 나는 일 년이 조금 넘는 작업 시간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초연 날짜가 정해진 후, 그 동안 연구하며 수집했던 자료들과 음악사적으로 중요한 현대음악 작품들의 악보를 책상 위에 쌓아놓고 여러 각도에서 피아노 협주곡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나의 목표는 그 동안 훈련했던 현대음악 기법들을 집대성하여, 독창적인 음재료(=화음, 음계 등)를 체계적으로 구성한 후, 혁신적인 ‘형식’구조의 틀 안에 촘촘하고 치밀하게 배치하는 것에 맞춰져 있었다. 그것은 다분히 그 동안 박사과정 학생으로서 시행해 왔던 ‘소리’연구와 ‘형식’실험을 총결산하고자 하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었다. 피아노 협주곡의 준비 과정은 대체로 순조로웠다. 항상 그러했듯 신작 발표에 대한 기대감은 창작욕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더군다나 학위 과정의 마지막 작품을 작업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인해 나의 마음가짐은 남달랐고 작품은 점점 더 세밀하고 꼼꼼하게 구성되어 가고 있었다. 그렇게 학위작품 준비로 바쁘게 하루하루 지내다 보니 어느덧 수개월이 훌쩍 지나갔다. 그리고 어제와도 내일과도 그리 다르지 않은 평범한 하루일 것 같았던 2014년 4월 16일을 맞았다.


시카고에서는 슬픈 4월 16일을 15일 저녁 시간에 마주해야만 했다. 모두를 잠시 안도하게 했던 ‘전원구조!’라는 자막과 함께 송출된 뉴스는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강한 의구심을 불러 일으키더니, 반나절이 못 되어 결국 거짓임이 드러났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지, 왜 못 구하고 있는 것이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무도 주지 않았고, 우리 모두는 다급한 마음에 소리만 치고 있을 뿐이었다. ‘왜 구하는 않는 거야, 왜…!?’


우리의 질문이 ‘왜 구하지 않았던 것이지…!?’로 바뀌기 시작한 시점은 이미 ‘골든 타임’이 훨씬 지난 뒤였다. 처음에는 상황의 긴박함과 혼란스러움으로 인해 그 의미를 다 헤아릴 수 없었다. 하지만 여전한 혼란 속에서도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깨달아 가고 있는 분명한 사실 한 가지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지금 나의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광경들은 내가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일일 뿐만 아니라 나의 작고 투박한 감정의 그릇으로는 도저히 다 담을 수 없는 엄청나게 큰 슬픔과 고통이라는 것. 그리고 이것은 나의 상식과 이해의 수준을 넘어서는 부조리와 비합리성으로 가득차 있는 혼돈 그 자체라는 것.


’왜 구하지 않았던가…? 왜…’

하지만 ‘왜 구하지 않았던가?’라는 질문의 답을 얻기도 전에, 차갑고 싸늘하게 굳어버린 아이들의 몸이 오열하는 엄마, 아빠의 품에 안기기 시작한 후로, 모두가 그러했듯 나는 나 스스로를 깊고 어두운 영혼의 골방 속에 완전히 가두어 버렸다. 골방 밖으로 나오면 안 될 것 같았다. 아니 도저히 나올 수가 없었다. 골방 밖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와 비합리성이 가득한 온통 괴로움 뿐인 세상이었다.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학위작품에 대한 구상은 꽤 오랜 기간 동안 멈춰져 있었다. 다시 작곡에 임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작업을 못하고 있는 것이 그리 속상하지는 않았다. 다만 영혼의 골방 속에 가두어 둔 나의 무기력한 감정의 상태와 내가 열렬히 열망하며 기획하고 있었던 학위작품 사이에 존재하는 알 수 없는 깊고 큰 간극, 그 간극의 의미에 대해 이해하고 싶을 뿐이었다.



* 필자소개

시카고대학(University of Chicago)에서 작곡전공으로 Ph. D학위를 받고 현재 경원대, 국민대에서 작곡이론과 음악일반에 대해 강의 중.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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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우리의 애도는 끝나지 않았다[각주:1]



이상철
(한백교회 담임목사 / 본지 편집 주간)

 


   “세월호 얘기, 혹시 지겨우십니까? 지겹다는 분들도 계시더군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직도 ‘왜?’라는 질문은 넘친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 배가 왜 침몰했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오늘(9월 24일)이 벌써 162일째인데도 말이지요. 지겨워도 직시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믿습니다. 다시, 세월호 사고 당일로 돌아가봅니다…” _손석희, JTBC 뉴스 2014년 9월 24일 오프닝 멘트 중


안티고네를 소환하며


    오늘은 위의 손석희 멘트가 있었던 날로부터도 2년 반 가까이 흐른 날이고, 이제 2주후면 우리는 세월호 3주기를 맞는다. 문득 지난 3년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믿기지 않았던 세월호 침몰과 더 믿기지 않았던 구조과정들, 구원파를 끌어들여 사건 초기에 문제의 핵심을 호도했던 일, 세월호 유가족들의 애끓는 절규와 대통령의 눈물. 유민 아빠 김영호 씨의 목숨을 건 단식, 인상 깊었던 교황의 방한, 세월호 특별법이 통과되었다는 뉴스, 서울서 팽목항까지 세월호 인양을 위한 도보 행진, 팽목항에서 서울까지 유가족들의 삼보일배, 무의미했던 세월호 청문회, 대통령의 사라진 세월호 7시간, 대통령 탄핵 가결과 인용, 그리고 지난주에 있었던 세월호 인양 소식까지, 이상은 지난 3년간 세월호와 관련하여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굵직한 제목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3년이 지나도록 이 배가 왜 침몰했는지조차 모른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것일까?

   세월호 사건이 발생하고 얼마나지지 않았을 때 어느 문인(文人)은“어떤 경우에도 진실은 먼저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으며 정당한 슬픔은 합당한 이유 없이 눈물을 그치는 법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각주:2]글을 쓰겠노라고 밝혔다. 그이의 다짐을 접하고 윤리학자로서 떠올랐던 단어가 진실과 애도다. 윤리는 진실의 윤리학이어야 하고, 윤리는 또한 애도의 윤리학이어야 맞다.

   졸고는 안티고네의 애도를 향한 정신분석학적 접근, 그리고 정신분석학의 윤리에 대한 글이고, 그 윤리가 어떻게 현실의 불합리한 질서를 전복시키는 기제로 작동하는지에 대한 상상이다. 안티고네의 폴리네이케스를 향한 애도는 진실을 향한 투쟁이었고, 그녀의 행보는 시스템의 안녕과 평화를 추구했던 전통적인 윤리학의 지형에 대혼란을 초래하였다. 나는 안티고네의 파국을 지향하는 윤리가 어쩌면 뒤틀리고 왜곡되고 변태적인 세상을 살아가는 21세기 시민들이 지녀야할 윤리적 모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에 대한 판단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넘긴다.


애도의 원형


   맑스주의 철학자이자 미학자인 게오르그 루카치는《소설의 이론》에서 고대 그리스를‘서사시 시대-비극의 시대-철학의 시대’로 구분하였다.‘서사시 시대’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가 대표적인 작품이고, ‘비극의 시대’ 하면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이야기〉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루카치는 고대 그리스가 ‘서사시 시대’에는 인간의 이성과 감성이 하나로 섞여 있었던 시대였고, ‘비극의 시대’는 이성과 감성의 분화가 일어났던 시절, 그리고 소크라테스로 상징되는 ‘철학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감성과 욕망의 영역이 배제되면서 이성우월주의가 자리 잡게 되었다고 밝힌다.

    애도에 대한 고전적인 판본은 고대 그리스 ‘서사시 시대’의 걸작 〈일리아스〉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헥토르에 대한 애도의 장면과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 이야기〉에 등장하는 폴리네이케스에 대한 애도이다. 〈일리아스〉는 기원전 12-13세기에 쓰여진 가장 오래된 서사시로, 브레드피트가 나왔던 영화 〈트로이〉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일리아스〉의 마지막 대목에서는 아킬레우스가 헥토르를 죽이고 헥토르의 시신을 유린하는 장면이 나온다. 헥토르의 아버지가 밤에 아킬레우스를 찾아와 아들의 장례를 치르게 해달라고 애원하고,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시신을 내어주면서 눈물을 흘린다. 다음 날 헥토르의 시신이 트로이로 옮겨져서 그동안 치르지 못했던 애도의 의식을 벌이는 것을 끝으로 〈일리아스〉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일리아스〉 속 헥토르에 대한 애도보다 더 복잡하고 진화된 애도 이야기는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에 등장한다. 사건의 대강은 이렇다. 국가(테베市)를 배신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해 들판에 버려져 들짐승의 먹이가 되어버린 오빠 폴리네이케스의 시체를 거두어 장례를 치르려는 안티고네와 반역자(폴리네이케스)에 대한 응징의 차원에서 애도를 허락지 않는 테베왕 크레온 사이 갈등이 이 비극의 줄거리다.

    폴리네이케스는 테베國의 입장에서 볼 때 역적이다. 국가에 반기를 든 자들에 대한 역사의 형벌은 어느 민족이건 대체로 일치했다. 공동체 성원들 앞에서 공개적이고 잔인한 사형이 집행되고, 그 주검을 마을 어귀에 대롱대롱 매달아 공포의 타산지석으로 삼게 하거나, 혹은 그냥 시체를 들판에 내동댕이쳐 들짐승의 먹이가 되게 함으로써 반역자와 공동체 간의 거친 수직적 결별을 선언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렇듯, 공동체에 심각한 타격을 끼친 인물에 대한 응징과 처벌은 공동체의 이익을 보호하고 공동체 성원들의 결속과 단합을 유지하고 지켜내기 위한 당연한 처사다. 이 지점에서부터 안티고네의 문제의식은 시작된다.


쾌락의 원칙을 넘어서


   사건은 안티고네가 크레온으로 상징되는 현실의 원칙, 상징계의 질서를 거부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현행법을 어기면서까지 안티고네는 오빠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되찾아 장례를 치르겠다는 의지를 꺾지 않는다. 안티고네는 공동체의 운영원리인 쾌락주의적이고 공리주의적인 현실의 원칙이 아니라, 모든 인간은 죽으면 누구나 장례를 치르고, 고이 안장되어야 한다는 생명의 원칙, 진실의 원칙에 무게를 두었고, 그것을 현실의 삶에서 실현하고자 했다.

    내 기억에는 안티고네만큼 ‘쾌락의 원칙’에 충실하지 않았던 인물이 있다. 황석영의 소설 《오래된 정원》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 오현우다. 1970년대 말 군부독재에 반대하는 지하조직 활동을 한 오현우는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수배자가 되어 도피생활을 하는데, 그 과정에서 자신을 도와준 시골학교 미술교사 한윤희와 사랑에 빠진다. 그들은 한적한 시골 외딴 마을에서 3개월 남짓 둘만의 따뜻하고 오붓한 시간을 갖지만, 오현우는 다시 동지들을 규합하여 투쟁의 길로 나서기로 마음을 먹고 길을 나선다.


<오래된 정원> 중에서


    서울 가는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는 두 사람, 비 내리는 시골길에서 한윤희가 오현우에게 이렇게 따져 묻는다. “왜 가니? 집도 주고, 밥도 주고, 몸도 줬는데… 왜 가는 거야? 그곳에 뭐가 있길래… 이 바보야!” 오현우는 한윤희의 이 질문에 아무런 말을 못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다 안다. 그가 죽으러 간다는 사실을 말이다. 왜, 오현우는 집도 주고, 밥도 주고, 몸까지 제공되는 쾌락의 공간과 시간을 거부하고, 그 쾌락에 만족하지 못하고 왜, 죽음을 향해 나가는 것일까? 왜, 안티고네는 공동체가 제공하는 쾌락의 원칙에 머무르지 못하고 죽은 오빠의 시신을 찾아 장례를 지내야겠다고, 아직 나의 애도는 끝나지 않았다며 절규하는 것일까?

    이를 정신분석학적으로 풀어내면 이렇다. 안티고네는 공동체의 타자인 폴리네이케스를 향한 금지된 욕망을, 오현우 역시 민주주의와 정의를 향한 금지된 욕망을 현실 질서(법)의 위협과 협박과 조롱과 공포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관철시켰다. 이것은 프로이트가 말했던 ‘쾌락의 원칙’을 넘어가는 행위다.

       인간의 사회화 과정은 언어의 학습과 병행한다. 어린아이는 언어를 습득하면서 이드(Id)가 지배하던 원초적 자아(상상계적 자아)에서‘아버지의 이름’이라는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 속으로 편입된다. 사회라는 상징계 안으로 진입한 아이는, 사회가 만들어놓은 법과 질서와 전통 안에서 자라면서, 사회가 설정한 기표를 따라가는 것이 생의 목표이고 기쁨이 되는 인간으로 길들여지게 된다.‘쾌락의 원칙’이란, 사회적 기표를 하나씩 따면서 생기는 삶의 기쁨과 보람과 가치를 말하는 것이다.

   쾌락 원칙은 사회적 인정을 추구하는 동시에, 사회적 불안과 소외를 피하려는 속성이다. 그것은 법이 허용한 범위 내에서는 쾌락을 추구하지만, 불쾌를 모면하기 위해서는 사회에서 금지된 대상을 피하려는 성질이다. 이런 까닭에 쾌락의 원칙은 사회적 금기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보수적 성격을 지니게 된다. 그런데, 프로이트가 <쾌락의 원칙을 넘어서>에서, 인간에게는 쾌락의 원칙을 넘어가는 측면이 있음을 밝힌 것이다. 살고자하는 충동인 에로스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삶의 터전인 공동체의 원리를 거부하고, 자기를 끊어내는 죽음충동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실재(the Real)란 무엇인가?


    안티고네와 오현우의 행위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그들의 행위를 가능하게 했던 인간의 욕동에 대한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자크 라캉은 인간의 욕동을 ‘욕망desire’과 ‘주이상스jouissance’로 구분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말하는 욕망이란, 사회적 관습이나 전통, 이데올로기적 학습, 혹은 법률 안에서 형성되고 허용되는 욕망으로, 그것은 사회적 가치, 내지 타자의 시선을 따라가는 욕망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신자유주의라는 상징계(현실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는 좀 더 많은 연봉을 추구하고, 육체마저 상품화하는 소비자본주의 문화 속에서 좀 더 날씬하고 예쁜 외모를 욕망한다. 그것은 사회가 요구하는 기표(상징)를 내가 추구하는 것이다. 연봉 1억, S라인의 몸매, 고급 외제차, 명품 가방 등이 대표적 기표라 할 수 있다. 그 기표들의 연쇄를 따라 우리는 상징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진정 바라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기표들은 사회라는 대타자가 만들어놓은 기준이기 때문이다. 남들이 다 하니까, 남들이 원하니까 내가 하는 것이다. 그래야 내가 인정받으니까. 그러면 내가 편하고 즐거우니까. 그래서 계속 그 기표를 따려고 쫓아다닌다. 결국 상징계속 욕망이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다.

   하지만 안티고네나 오현우는, 이런 식의 상징계 속 쾌락 원칙의 지배하에 있는 욕망과는 다른 욕망을 주장하는데, 그것이 바로 ‘쥬이상스’다[각주:3]. 욕망이 상징계 속 기표를 추구하는 것이라면, 쥬이상스는 상징계로 진입하기 이전 상상계 시절 작동하였던 욕망이다. 이것이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진입하지 못한 채 떠돌다가, 현실의 세계로 귀환하는 것이 ‘실재(the Real)’다.

    전통 형이상학에서 ‘실재’란 현실을 초월해 있는 존재, 혹은 운동의 원칙이었다. 플라톤의‘이데아’가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라캉은 이런 전통적인 실재와는 다른 실재를 언급하는데, 이를‘Das Ding(=the Thing)’이라 불렀다. 지젝은 이를 더욱 발전시켜 ‘the Real’이라 명하면서 ‘실재의 윤리’로 나가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였다.

    잠시 여기서 실재에 대한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어 부연하면, 전기 라깡을 읽다보면 <상상계-상징계-실재계>가 뚜렷하게 경계 지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후기 라깡으로 갈수록 그들 사이 경계는 사라진다. 실재가 어느 특정한 공간과 층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실재계(界)라는 말은 적절치 못하다. 실재는 현실의 오작동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 사회에서 발생한 박근혜의 국정농단,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다원성이 강한 미국에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일이 실재의 귀환을 설명하는 적절한 경우가 아닐까 싶다.

    시민혁명을 통해 높은 민주적 시민의식을 갖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뽑은 대통령 박근혜가 최순실 같은 작자에게 국정을 농단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하다니!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이민자들의 천국 미국에서, 이민자들에 대한 배제와 적대의 메카니즘을 들고 등장한 쓰레기 같은 트럼프가 어떻게 미국 대통령이 될 수가 있나! 지젝이“실재란 상징적 네트워크 자체 내부의 틈”이라고 말했는데, 너무나도 적절한 지적 아닌가 싶다. 박근혜라는 실재, 트럼프라는 실재는 대한민국이라는, 미국이라는 국가의 틈과 균열을 상징한다. 영화 〈에일리언〉에서 괴물의 숙주가 사람의 몸에서 기생하는 것처럼, 실재(the Real)는 세상의 틈과 균열로 존재하면서, 평온했던 상징계에 혼란과 불안을 선사한다.


안티고네와 실재의 윤리


    라캉은 실재를 겨냥하는 쥬이상스가 지닌 전복적인 힘에 주목했다. 쥬이상스는 상징적(세상적) 원칙과 질서로 제한하지 못하는 근원적 욕망이었다. 라깡은 안티고네 이야기를 그것의 적절한 예로 끌어들인다. 왕권을 놓고 숙부 크레온과 경쟁을 하던 폴리네이케스는 패하여 죽임을 당하였고, 크레온은 폴리네이케스의 주검을 참혹하게 유린한 후 성 밖으로 내친다. 그것은 반역자를 향한 합법적인 법집행이었다. 아울러 백성들에게는 폴리네이케스의 주검을 거두어 장례를 치를 경우 가차 없이 처벌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는다. 하지만 안티고네는 그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오빠의 장례를 치렀고, 그 이유로 지하동굴에 갇히고 결국 자살하고 만다.

    안티고네의 행위는 앞서 언급했듯이 쾌락의 원칙을 넘어가는 행위였다. 쾌락의 원칙대로라면 폴리네이케스에 대한 애도는 실행되어서는 안되었다. 법을 어길 경우 짊어져야 할 형벌과 공포와 불쾌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티고네는 쾌락 너머의 원칙을 따라간다. 그것은 보편적인 하늘의 법도에 충실한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장례를 치를 권리가 있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은 자를 향한 애도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는 인륜 말이다. 안티고네는 그냥 사랑하는 오빠의 죽음을 애도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서 장례를 치르고자 한 것이다.

    그것은 어떤 특정한 정치적 이념이나, 윤리적 덕목에 입각해 행동했던 것이 아니다. 아주 원초적이고 보편적인 인륜성에 기반한 행위였다. 이런 보편적 욕망에 충실했기에 안티고네는 체제가 만들어놓은 법 밖으로 걸어 나갈 수 있었다. 안티고네의 행위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불리는 현실의 법과 대립각을 형성하는 것이었기에 감옥에 갇혔고, 그곳에서도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던 안티고네는 찬란하고 슬픈 비극의 주인공으로 남겨지게 된다. 이것이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가 그리스 비극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등극하게 된 연유다.

   하지만 안티고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안티고네의 행위는 크레온으로 상징되는 기존의 체제와 질서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안티고네의 자살은 그녀의 약혼자이자 크레온의 아들인 하이몬의 자살로 이어졌고, 이는 다시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크레온의 아내 에우디케의 죽음을 불러온다. 그리하여 마지막에는 크레온도 모든 것을 상실하는 파국을 맞게 된다. 안티고네의 법 밖의 것을 지향하는 윤리가 크레온으로 상징되는 법의 윤리를 무너뜨린 것이다.

    본래 윤리란 사회의 법규, 전통, 규범 같은 것들을 유지하고 존중하는 태도와 마음의 자세, 그리고 그것을 위한 행위 일반을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실재의 윤리는 사회, 혹은 국가에서 말하는 윤리적인 것, 규범적인 것을 뚫고 나간다. 국가가 제공하고 체제가 허락하는 규범을 따르면 편하고 안락한데, 이 쾌락원칙을 거부하면서 안티고네는 쾌락원칙 너머에 있는 것을 소망하며 나갔다. 그랬더니 옛 질서가 무너지는 결과가 발생했다.

    지젝과 더불어 슬로베니아학파의 얼굴로 떠오른 알렌카 주판치치는 기존 윤리와 다른 실재의 윤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실재와의 조우에 의해 우리에게 강제된 물음-나는 나를 탈구된 상채로 던져놓은 그 무엇에 조응해서 행위할 것인가, 나는 이제까지 내 실존의 토대였던 것을 재정식화할 각오를 할 것인가?-속에서 윤리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바디우는 이 물음-혹은 오히려, 이 태조-을 ‘사건에의 충실성’ 혹은 ‘진리(진실)의 윤리’라 부른다.[각주:4]


    실재의 윤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윤리가 대타자인 공동체가 정한 법규와 규범을 아무 생각없이 따르고 복종하는 도덕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재와의 조우를 통해 진실을 겨냥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시스템의 이면을 들춰내면서, 대타자의 목소리를 의심하고 자신의 쥬이상스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 정신분석석학의 윤리라 할 수 있다.

    정신분석학의 윤리는 진실의 윤리다. 진리와 진실은 같지만 다르다. 뉘앙스 상으로 둘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둘 다 어떤 사물과 사건에 깃든 함의를 드러낸다는 점에서는 같다. 드러나는 것은 사물의 이치이거나, 사람의 진심이거나, 사건의 진상이거나, 혹은 종교적 깨달음이이다. 문제는 그것이 드러나는 방식의 차이인데, 진리는 우리가 그동안 볼 수 없었고 몰랐던 것이 드러나는 것이고, 진실은 우리에게 익숙했고 늘 봐왔던 사물(건)속에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 드러나는 것이다.

    진실의 윤리는 실재가 귀환하는 사건이다. 실재는 예측가능한 상징계의 질서 어딘가에 균열이 생겨, 예상치 않게 그곳을 통해 무엇인가가 융기하는데, 그것이 현실의 모순을 들추게 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법의 모순일 수도 있고, 이데올로기의 광기일 수도 있고, 맹목적인 도착된 믿음일 수도 있다. 실재의 귀환은 이런 상징계의 껍질을 깨면서, 우리로 하여금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우리를 억압하는 대타자의 목소리와 나의 진정한 욕망(쥬이상스) 사이의 괴리와 간극을 포기하지 않도록 한다. 그렇다면 실재의 윤리를 세월호에 대한 애도의 문법으로 전환하면 어떻게 될까?


다시, 애도를 묻다


    안티고네 이야기와 세월호 사건의 예에서 보듯이, 권력은 그들이 보기에 애매하고 재수 없이 발생한 죽음을 둘러싼 진상규명과 애도 과정에 대해 난색을 표시하며, 빨리 그 애도의 기간이 흐지부지되기를 소망한다. 안티고네와 세월호 유가족들은 ‘당신들이 우리의 애도를 가로막는 처사는 옳지 않고, 너무 쪼잔한 것 아니냐?’며, 끝까지 체제가 강제하는 애도의 방식과 대결한(했)다. 그렇다면 왜 이토록 애도에 대한 입장의 차이가 극명하게 다른 것일까?

   애도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사람의 죽음을 슬퍼함’. 그렇다면, ‘애도를 성공적으로 마쳤다’함은 죽음으로 인한 슬픔이 극복되었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성공한 애도는 필연적으로 실패한 애도가 되는 것 아닌가? 본래 애도란 망자에 대한 기억을 유지하고, 망자의 상실로 인한 아픔을 계속 지속시키는 행위여야 되는 것 아닌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애도란 애도의 사전적 의미, 즉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행위를 현재진행의 사건으로 계속 유지시키는 행위다. 그러므로 성공한 애도라는 말은 형용모순이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인터뷰에서 빨리 슬픔에서 벗어나는 것을 꿈꾸는 것만큼이나, 이 슬픔이 완전히 극복되고 잊히는 것이 두렵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애도가 무엇인지를 다시 묻게 만든다.

   안티고네의 폴리네이케스에 대한 애도는 크레온으로 상징되는 현실세계의 법칙을 뚫고 나온 실재(the Real)의 귀환이었다. 이는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진입할 때 배제되었던 ‘그것(das Ding, the Thing)’이 현실의 질서 밑에 숨어 있다가 융기한 사건이었고, 그럼으로써 현실의 법집행에 차질을 초래한 사고였다. 세월호 사건 역시 대한민국이라는 상징계를 뚫고 융기한 실재(the Real)라 할 수 있다. 한국형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국가정의의 이름으로, 경제성장 혹은 경제안정이라는 이름으로 배제되었던 한국 사회의‘그것(das Ding, the Thing)’이 현실의 수면 밑에서 응축되어 있다가 터진 사건이 바로 세월호 참사다.

   안티고네는 그 실재를 끝까지 밀어붙이면서, 오빠 폴리네이케스에 대한 애도를 포기하지 않았다. 크레온이 장례를 막았던 이유는, 애도의식이 망자에 대한 기억을 공동체 내에 유포시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억의 공유는 필연적으로 어느 임계점에 이르러서는 빅뱅을 일으킬 것이다. 그래서 크레온은 안티고네의 애도행위를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의 권력이 세월호에 대한 애도를 서둘러 마무리하려는 이유도 이와 같다. 세월호 참사는 무능하고 탐욕으로 가득 찬 대한민국의 실재가 드러난 사건이었고, 현 정부는 그 모든 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세월호에 대한 애도는 필연적으로 진실을 향한 행위를 경유할 수밖에 없다.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일어날 사건의 파장을 너무나 잘 알기에, 정부로서는 이 애도를 허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애도가 구천을 떠도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미완으로 남겨진 채 배회하는 세월호를 향한 우리의 애도가,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 하지만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제가 있다. 우리의 애도가 미완으로 남겨진 채 이어지고 있지만, 그것으로 인해 우리들의 마음에 생채기가 생겨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는 윤리적 답변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리에서 망자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들을 기억하는 행위를 계속 이어가야 할 것이고, 거기서 죽은 자들과 살아남은 자들 간의 대화와 관계 맺음이 계속 유지되도록 살펴야 할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도래하는(to-come) 변혁의 가능성을 기대하고 전망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될 때, 세월호 애도의 불가능성은 오히려 변혁을 향한 가능성의 지점이자 거점으로 우리 앞에서 살아 있게 된다.

   세월호에 대한 진정한 애도는‘세월호 문제는 종결되었다!’고 선언하는 세상의 음성에 파열음을 내는 것이다. 그것이 세월호 문제를 이대로 덥고 지나가려는 세력들에게는 부담과 불편으로 작동할 것이고, 그것은 세월호라는 엄청난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변화가 없는 우리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계기로 작동할 것이다. 그렇게 거짓된 현실을 삐딱하게 바라보고, 진실을 감추는 자들을 향해서는 쫄지말고 정당한 목소리를 내면서 우리의 애도를 유포하다 보면, 우리 앞에 불가능했던 현실의 파국이 가능성의 형태로 우뚝 솟아올라와 있을 것이다. 그때야 비로소 우리의 애도는 완성된다. 아니, 그때가 비로소 우리 애도의 출발점이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4. 10일 에큐메니안에 동일한 제목으로 실린 글입니다. http://www.ecumenian.com/news/articleView.html?idxno=15065 [본문으로]
  2. 신형철 외, 『눈먼 자들의 국가』, (서울: 문학동네, 2014), 231 [본문으로]
  3. Jacques Lacan, “The Paradox of Jouissance” in Seminar VII, The Ethics of Psychoanalysis 1959-1960, trans. Dennis Porter(W.W. Norton & Company, Inc. 1992), pp.167-240. [본문으로]
  4. 알렌카 주판치치 지음, 이성민 옮김,『실재의 윤리』, (서울: 도서출판 b, 2004), 359. [본문으로]
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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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뜻


박정상

(IT 관련 직장인, 아파트 동대표, 한백교회 교인)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매일 매일 최순실 비선 실세가 대한민국의 모든 화제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드라마에 나올 듯한 사실들이 밝혀 지며, 대한민국 국민들이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공주가 사는 세상에 자의든 타의든 모두가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직장에서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식탁 위에 다양한 가십거리가 되어 오르내리는 사실에 씁쓸한 우리들의 자화상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변의 51.6%가 뽑은 대통령, 가까이는 박정희/육영수 초상화 핸드폰 고리를 달고 다니시는 부모님, 박근혜에 대한 연민의 정을 표현하신 친지 분들, 대구가 고향인 외가 친지들...  박근혜를 지지한 이분들에게만 원망과 비난의 화살을 던질 수 있을까요? 나는 48.4프로 편에 있었기에 오늘의 사태에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제가 태어난 1979년은 박정희 독재자가 그리고 2016년 그의 딸, 박근혜 불통령과 한 시대를 살았던 이 역사의 현장이 마치 운명의 장난인 듯 싶습니다.


  뒤돌아보면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에서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까지 반세기 동안 존경할 만한 대통령이 손에 꼽을 정도 입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지지리도 복이 없는 건지..


  2008년 한미 FTA로 촉발된 촛불집회 흔적이 남아 있는 곳,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이순신 장군이 내려다 보는 곳, 백성들이 올바르게 살려면 왕과 관료들이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백성들을 다스린 세종대왕 앉아있는 그 곳, 2016년 11월 5일 어제입니다. 아이러니한 그 곳, 광화문 광장에 다시 한번 성난 촛불 20만의 민심이 한 곳에 모였습니다. 고사리 손, 갈라진 손 가리지 않고 들려진 촛불 하나하나는 이내 거대한 물결로 변해 청계천과 광화문을 에워쌌습니다.    


    어제 그 시간 저는 아파트 내 작은 도서관 개관식을 진행하느라 역사의 현장인 광화문에 가지 못했습니다. 지난 한달동안 많은 시간을 거기에 할애했고, 아파트 내 첫 공동체 행사이었기에 그만큼 준비도 많이 해야했기 때문입니다. 작은 도서관은 주로 이용하게 될 아이들에게 올바른 생각과 바른 역사의식의 싹을 틔우는 곳입니다. 때문에 비록 저는 광화문 그 역사의 자리에 있지 못했지만, 광화문에 모인 그분들과 함께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음이 탄이, 우리 아이들이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 대통령, 비정상적인 세상을 만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자그만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학교를 정정당당 경쟁이 아닌 빽을 통해 뒷문으로 들어가는 세상, 

 같은 일을 하지만 비정규이라 당연히 차별받아도 되는 세상, 

 시민을 죽여놓고 유족에게 그 원인을 넘겨도 분노하지 않는 세상, 

 아이들이 세월호와 함께 수장되어도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세상, 

 독재자의 자녀가 다시 독재하는 당연한 세상, 

 비정상의 정상화를 박근혜 대통령이 외치는 세상  


  이렇게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순수, 본심, 아름다운 마음을 생각하며, 제가 어제 도서관 개관식 축시로 낭송했던 워즈워드 시의 무지개를 읽으며 마치겠습니다.  



무지개                             

워즈 워드 


 하늘에 무지개를 바라보면 

 내 마음 뛰노나니, 


 어린 시절에도 그러했고, 

 어른이 된 지금도 그러하니 

 나 늙어서도 그러하기를 

 아니면 차라리 나의 목숨 거둬 가소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바라건대 내 인생의 하루하루가 

 자연의 경건한 마음으로 이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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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결단식 앞에서

 



양권석

(본 연구소 소장 / 성공회대 신학과 교수)


    4.16 세월호 유가족 협의회가 지금 광화문에서 “사생결단식”을 하고 있다. 사생결단(死生決斷)이라는 말과 단식(斷食)이라는 말이 합쳐 사생결단식이라 했으니, 살든지 죽든지 끝까지 가서 결말을 보고야 말겠다는 각오로 단식하겠다는 뜻이다. 왜 세월호 유가족들은 "사생결단식"이라는 엄청난 표현을 써가며 단식해야 할까? 효과적인 단식이 되려면, 희생자들을 포함한 많은 보통 사람들의 공감의 바탕 위에서, 그 공감하는 많은 사람들을 대신해서, 권력자들이나 억압자들을 향해서 호소하고 저항하는 방식이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단식의 과정에서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진실을 향한 공통의 인식이 얻어지고, 끝내 화해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출구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하는 것이 단식이다. 하지만 "사생결단식"이라는 타이틀을 만나면서 드는 생각은 희망보다는 염려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가슴 속에 자신들이 공감을 얻고 있다는 확신이 흔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실을 볼 수 있으리라는 믿음과 끝내 소통하고 화해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마저 멀어지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사생결단식이라는 이 무거운 이름을 내걸어야 했던 것은 아닐까?  


    유경근 4.16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 단식을 시작하면서 페이스북에 올린, <사생결단식을 시작하며>라는 글을 몇 번이고 읽었다. 사생결단식을 감행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 배후가 하나 둘 그려진다. 온갖 방법으로 진실을 감추려고 하고, 진실을 찾으려는 모든 노력을 집요하게 방해하는 이 시대의 권력들이 있다. 뿐만 아니라, 진실보다는 권력이 중요하고 백성을 진실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먹고 사는 것을 원할 뿐이라는 민중 개돼지론도 버젓이 활개치고 있다. 더 나아가 진실로부터 힘이 나오는 것이 아니고, 힘과 권력으로부터 진실이 나온다고 강변하면서, 먼저 권력을 잡고 난 이후에 진실을 문제 삼겠다는, 그래서 먼저 권력을 달라고 외치는 소위 국민이 뽑은 대표들도 있다. 그리고 먹고 살기에도 바쁜데 진실이 뭐 그리 중요하냐며 말없이 힐난하는 눈빛들이 그 성명서의 배경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사람들의 관심과 공감의 확산을 애써 가로막고 서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어찌 세월호 유가족들의 단식뿐이겠는가? 노동현장 곳곳에서, 내가 일하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우리 서로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서 이야기 해보자는 외침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공감과 메아리는 그 어느 때 보다 적다. 착취하고 억압하는 자가 들어주지 않고 공감하지 않는 문제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정치와 언론의 관심은 점점 멀어지고, 바라보고 듣는 사람들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마치 인정 받지 못하는 증언이나 순교처럼, 어쩔 수 없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나 대가처럼, 메아리도 없이 바람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도 줄 수 없도록 철저히 차단되어 있다. 


    자신의 인간됨을 주장하면서 그리고 사람 대 사람의 진정한 만남과 대화를 요청하면서, 지금 거리에 서 있는 저 사람들이 이 무관심과 무공감의 시간을 얼마나 오래 견뎌야 하는 것일까? 참으로 호된 시련이다. 그들이 우리를 향해 묻고 있다. 정말로 이 세상이 인간이 살만한 세상이라 할 수 있는가? 아니 이런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당신들이 정말로 인간일 수 있느냐고 우리에게 묻고 있는 듯하다. 관심과 공감의 능력을 잃어버린 우리들의 무기력 앞에서, 탈출구를 찾지 못한 채 속으로 까맣게 타 들어간 이들의 분노가 지금 절망으로 기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생결단의 단식에 몸을 던지는 저들이 세계와 공동체와 인간 삶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들의 진실을 향한 염원에 연대하는 길뿐이다. 하지만 이 공감과 연대의 길은 우리 자신이 지금 맺고 사는 모든 관계들의 변혁을 통해서 가는 길이다. 지금 우리는 모래 알처럼 뿔뿔이 흩어져 살면서, 그렇게 고립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기 위해서 수 많은 연결 다리를 놓고 있다. 하지만 그래 보아도 잠시 스치듯 만날 뿐, 결코 서로를 향해 인격적으로 참여할 수 없는 매우 간접적이고 사물화된 접촉이 있을 뿐이다. 그처럼 간접화되고 사물화된 관계를 넘어, 직접적이고도 긴밀한 인격적인 만남의 가능성을 향해 자신을 개방하지 않고서는, 서로 간에 진정한 공감과 연대를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변명 같이 들리겠지만, 공감과 연대를 가로막는 엄청난 힘들 앞에서 우리는 지금 허우적거리고 있다. 나찌즘, 피시즘, 종교와 같은 신념의 체계들은 그 신념이 만들어 내는 불타는 증오심으로 수 백만을 살해했지만, 자본주의는 그 차가운 무관심과 탐욕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지금도 살해하고 있다고 보는 유발 하라리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부와 권력으로 일컬어지는 사물을 향한 탐욕은 우리를 눈 멀게 하고 귀 멀게 하고 우리의 모든 감각을 마비시키고 왜곡한다. 만물을 생명과 인격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사물로 바라보게 하고, 공약 가능한 수나 양으로 바라 보게 만든다. 그래서 김포 공항 청소 노동자들은 온갖 수모와 착취를 견디다 못해 그저 "인간대접을 받고 싶다"라고 하였다. 임금 얼마에 모든 것을 포기한 노동기계가 아니라, 사람으로 보아 달라고 하였다. 사람 대 사람으로서 서로 공감하고 소통하며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을 뿐이다. 


    사물에 대한 욕망이, 우리들로부터 관심하는 능력과 공감하는 능력을 빼앗아 버린 그 결과를 나향욱 기획관은 숨김없이 증언하였다. 그는 구의역에서 컵라면도 못 먹고 죽은 아이가 어떻게 자기 자식처럼 생각될 수 있냐고 반문하였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위선이라 하였다. 그에게 관심과 공감은 위선이다. 그에게는 사람과 사람이, 인격과 인격이 모든 장벽을 뚫고 서로 간절하고도 긴밀하게 만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인간과 인간이 만나서, 생명과 생명이 만나서, 새로운 삶의 공동체, 곧 우리가 이야기하는 코이노니아나 코뮤니온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자본주의 질서 하에서 우리들의 마비된 관심능력과 공감능력의 실상을 숨김없이 보여주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나 다른 생명들과 함께 기쁨과 고통을 함께 나누는 공감능력을 마비시키는 또 하나의 질서가 오랜 동안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인간의 유한함, 불완전함, 혹은 다 알지 못함이 가져다 주는 불안과 두려움은 그 자체로 반드시 나쁜 것도 아니고, 언제나 인간의 삶을 억압하고 왜곡하는 것도 아니다. 그와 같은 두려움과 불안은 오히려 보다 높은 의미와 지혜를 추구할 가능성, 서로간에 보다 긴밀한 만남과 협력을 이루어낼 가능성을 열어주기도 한다. 코이노니아, 코뮤니온, 페리코레시스 등과 같은 우리 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인간관계나 공동체에 대한 이상들은 바로 그와 같은 유한함의 두려움과 불안이 만들어내는 건강하고도 창조적인 생산물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억압적인 권력이 조장하는 두려움과 공포는 그 백성들을 끊임없이 노예로 만든다. 그리고 그 노예들 사이에 인격적 공감과 연대가 자라 날 수 있는 가능성을 처음부터 차단한다. 전제정치 이데올로기나 분단체제의 이대올로기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지배를 벗어나면 곧 죽음이 있을 뿐이라는 협박이 만들어내는 공포와 두려움이 지배하는 체제다. 분단의 적대관계는 우리들의 이성적인 판단을 마비 시킬 뿐만 아니라, 때로는 사람을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도 포기하도록 만들어 왔다. 사드 배치가 전쟁을 막는 수단인지 전쟁위험을 높이는 수단인지,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할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이 애국이다. 더 나아가 그것이 한반도를 살아가는 인간과 생명들을 위해서 무슨 도움이 되는 것인지 아무도 설명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우리가 애써 모르는 척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반도는 사람이 사는 땅이 아니라, 국제적 헤게모니 쟁탈전을 위해서 언제든지 전쟁터로 만들 수 있는 땅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자본주의 시장의 물신주의와, 분단체제의 적대주의가 서로 돕는 가운데서, 우리는 사람을 사람으로 생명을 생명으로 볼 수 있는 힘을 점점 잃어 왔던 것이리라. 이데올로기적 강제와 무절제한 경쟁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자폐적 각자도생의 길을 있는 힘을 다해 찾아야 했고, 그러는 사이에 사회적 책임, 공감, 죄책감등을 때때로 표현하기는 했어도, 그것들이 본심에서 우러난 것이 아니라고 자신을 은밀하게 세뇌하였다. 그래서 도덕적 윤리적 책임의식에 구애되지 않고, 모든 사람과 사물과 사태를 자기 중심적으로 해석하는 능력을 발전시켜왔다. 어쩌면 그것이 지금 과대망상으로 치달아, 어떤 공감능력도 없이 세상을 자기 멋대로 심판하는 사이코패스적 단계로 나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이미 공감 능력을 잃어버린 세상이고 삶이라면, 사생결단식이라는 말이 오히려 위태롭고 불안하게 들리는 것이 당연하다. 


    현재의 상황을 참으로 위태롭다고 느끼는 내가 어쩌면 과도한 상상에 사로잡힌 것인지도 모르겠다. 민중들에게 가해지는 억압과 그것으로부터 오는 분노는 자기 파괴적 폭발의 가능성과 자신과 세상의 삶을 변혁하는 새로운 힘으로 솟아 오를 가능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배웠다. 사실 민중은 자기파괴적인 폭발의 가능성을 억제하여 보다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서 지금도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자신들을 사람으로 대접해 달라고 외치는 그분들과, 사생결단의 단식을 하고 있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이미 그와 같이 자신의 고통을 뜬 눈으로 직시하면서, 지금의 고난을 새 희망의 밑거름으로 삼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나찌의 억압하에서 아무도 들어주지도 공감해 주지도 않는 유대인들의 고통과 분노를 바라보면서, 마르틴 부버는 억압의 반대는 자유가 아니라 코뮤니온이라고 하였다. 억압과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각자도생의 삶으로 도피하는 길이 아니라, 끝내 사람과 사람 생명과 생명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이루어 내는 길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미 민중은 그 길을 가고 있다. 각자 도생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를 향하여 우리를 부르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향하여 진정으로 공감하고 연대하며, 진실을 향해 가는 길을 향해 우리를 부르고 있다. 그러므로 문제는 이제 응답해야 할 우리다. 이미 길들여진 무관심과 무공감의 삶으로부터 벗어나, 적극적으로 함께 공감하고 연대하는 삶으로 나아가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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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과 대안을 향해 투표하고 싶었다.

 



양권석

(본 연구소 소장 / 성공회대 신학과 교수)


    나만 그랬을까? 투표일이 다가오면서 점점 무기력증이 더해졌다. 기적을 바라면서도, 기적을 바라는 내가 너무 싫었다. 사실은 투표장에 가서까지도 망설였다. 언제까지 어처구니 없는 이 나라 정치의 프레임에 갇혀있을 것인가? 언제까지 이 말도 안 되는 선거 프레임에 나를 가둘 것인가? 그리고는 희망이나 기대 같은 것은 일단 주머니 속에 접어두기로 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셈을 해 가면서 표를 찍었다. 이게 마지막이다. 다시는 내 표를 낭비하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하면서 잊어버리고 싶었다.  

    개표 방송은 보지 않겠다고 작정하고 있었다. 또 다시 속을 끓이며 참담함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을 맞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보고야 말았고, 새벽이 다 되도록 그 결과를 되새겨야 했다. 제 1당의 순서가 바뀌는 순간, 방송국 기자들이나 패널들도, 믿기지 않는 듯, 무엇인가 잘못된 것을 바라보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 때쯤은 환성을 터뜨리거나, 가슴을 쓸어 내리며, 오래 묵은 분노와 스트레스를 날려 버려도 좋았을 것인데. 마음이 그렇지가 않았다. 아니, 이런 일도 일어나는구나 했지만, 감동이 물밀듯 밀려오고 그러지 않았다. 

    분명히 주어진 선거 프레임을 마음껏 즐기며 타고 놀았던 많은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선거의 결과가 승리와 패배에 대한 분명한 판정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이번 선거의 결과를 결정했다고 생각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유권자들의 표심을 대변한다고 보지도 않는다. 나는 이번 선거를 결정한 사람들, 이번 선거를 통해 진실을 말하고 있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간절한 마음들과 진심들을 나눌 수 있는 정치적 장을 허락 받지 못한 사람들. 분노와 절망을 공개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정치적 통로를 허락 받지 못한 사람들. 선거결과를 바라보면서 아니 선거 기간 내내, 내가 떠 올릴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은 바로 이런 사람들이었다. 

    유권자들로부터 세월호 진실에 대한 물음을 박탈하는 정치, 유권자들로부터 역사에 대한 판단과 반성의 능력을 빼앗는 정치, 유권자들의 도덕적 의식과 지적 판단 능력을 빼앗는 정치, 테러방지를 위해, 기본적인 권리와 존엄마저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정치, 그것이 지금의 정치다. 모든 것을 먹고 사는 문제로 환원시키면서, 정작 어떻게 먹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말라고 하는 정치다.

    정말로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가?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주권은 통치자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통제하고 배제하는 만큼 얻어지는 것 아닌가? 그리고 지금의 여당과 야당, 그리고 모든 정치적 계파들은 바로 이 불량한 권력을 나누고 있는 것 아닌가? 이런 정치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이, 정말로 표심을 알 수 있을까? 주권을 회복하려는 국민의 요구를 정말로 알 수 있을까? 자신들의 생명과 존엄을 지키는 공동체의 권력을 세우기 위해, 신성한 한 표를 행사하는 국민의 마음을, 대통령 존영 운운하는 자들이 알기나 할까? 이들이 선거 결과를 놓고 견강부회하고 공과를 평가하게 될 것을 생각하면, 유권자로서 나는 너무나 참담하다.  

   한 표 한 표에 담긴, 국민들의 분노와 절망과 냉소들을 읽어낼 수 있는 혜안은 정말 없는 것인가?국민을 섬기는 정치, 유권자를 섬기는 정치는 정말 불가능한가? 이번에 선택된 사람들에게 유권자들이 던지는 질문 혹은 간절한 소망은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닐까? 현재 정치의 틀을 바꾸어내고, 다시 국민에게 주권을 돌려주어, 국민의 양심과 진실과 정의를 향한 요구에 봉사하는 정치를 해 달라는 주문을 정말로 귀 기울여 들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유권자들이 더 이상 분노와 미움으로 표를 던지지 않게 했으면 좋겠다. 보다 나은 내일을 향해 그리고 희망과 대안을 향해 유권자들이 참여하는 선거와 정치를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 헛된 기대였음을 확인하게 될지 모르지만 다시 희망을 걸어 본다. 이미 분노와 미움으로 던져진 수많은 냉소의 표심들을 희망과 대안을 향한 소망으로 바꾸어 내는 일 역시 이 번에 선택된 사람들에게 맡겨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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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생각하며...


 

배근주
(Denison University 종교 윤리 교수, 성공회 사제)


 

          부활절이 지나고, 교회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말이 “할렐루야”와 “평화”이다. 예배형식과 교회 절기, 그리고 거기에 담긴 신학적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공회에서는, 사순절 기간 동안 예수의 부활을 의미하는 “할렐루야”를 입밖으로 내지 않는다. 40일 동안 침묵 속에 묻혀 있던 할렐루야는 부활절 새벽 (또는 부활절 직전 토요일 일몰 후)에, 말 그대로 부활한다. 부활절부터 오순절 성령 강림 주일전까지, 교회에서는 일곱번의 주일을 부활절로 기념한다. 이 기간 동안 읽혀지는 각기 다른 복음서 대부분은 부활한 예수가 그의 제자들에게 “평화”를 기원하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예수의 죽음 후에, 일상이 파괴되고, 두려움과 절망감에 사로잡힌 제자들에게, 현실의 상황과는 동떨어진 “평화가 너희들과 함께 하기를” 하고 기원하는 예수의 인사는 무언가 황당한 것 같으면서도, 시기적절한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많은 경우에 있어서, 인간은 평화에 대한 경험을 통해 이를 알게 되고, 그 소중함을 갈망하기 보다는, 전쟁과 폭력 등 평화가 없는 상황과 반평화를 경험하면서, 평화를 상상하게 되고 지향하게 되기 때문이다. 평화에 대한 존재론적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진 베스케 엘쉬타인 (Jean Bethke Elshtain)은 전쟁과 평화에 대한 신학적 고전이 된 “여성과 전쟁 (Women and War)”이란 책에서, 평화는 전쟁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정의되고, 상상되어 왔다고 주장한다. 평화 운동은 반전운동으로, 마치 전쟁이 존재하지 않으면 평화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Elshtain, 1995).  


          반면에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폭력을 사용한 가해자가 무슬림이거나 이슬람과 연관이 있는 경우에는, 논리가 달라진다. 즉 이들의 정신 상태나 통제하지 못하는 개인적인 분노가 문제가 아니라, 이슬람이란 제도화된 종교가 이들에게 끼치는 영향이 문제이다. 이슬람이 폭력을 조장하는 비윤리적인 종교이기 때문에, 이 종교에 심취한 무슬림들은 테러리스트들이거나, 잠재적 테러리스트들이다. 더 나아가 무슬림들은 테러리스트가 될 가능성이 다른 종교인들이나, 무신론자들 보다 높다고 본다. 이러한 논리는 반이슬람 정서를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는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슬람이 테러리스트의 종교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만약 이슬람이 테러리스트의 종교라면, 기독교, 불교, 유교, 힌두교, 등등 세상의 모든 종교들이 테러리스트들의 종교가 될 수 있다. 같은 논리로, 비종교인들도 충분히 테러리스트가 될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테러리스트는 종교 논리 보다는, 정치, 사회, 문화 환경 때문에 생겨나는 경우가 더 많고, 인간들의 본질적인 폭력성이 해결되지 않는한, 테러는 항상 일어날 수 있다. 더구나 극단주의적 이슬람 교도들이 (또는 극단적인 기독교, 유대교, 불교 등등의 신봉자들) 테러리스트가 될 확률이 높다고 주장하기 전에, 이들이 처한 사회적 상황, 또는 정신 상태, 가족과 친구들의 관계 등등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면, 종교는 테러리스트들을 행동화시키는 여러 가지 요인들 중 하나라는 것이다.  


          전쟁의 역사는 항상 거대 담론으로 기록되어 왔다.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은 알지만, 왜 일어났는지, 누가 전쟁을 결정했는지, 병사들은 어떻게 조달되었는지, 병사들의 가족들은 어떻게 전쟁을 견디었는지, 일반 사람들은 전쟁을 어떻게 버텼는지, 전쟁이 끝난 후에 병사들은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등등에 대한 이야기와 기억들은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평화 담론도 전쟁 담론과 마찬가지로 거대 담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평화 담론이 전쟁이나 전쟁 가능성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란 암묵적 전재하에 이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군사전략, 군대 재배치, 전쟁 무기와 국경 안보 등등이 평화와 안전을 위한다는 정치 담론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들일 것이다. 시민 평화 운동권에서 들리는 언어들도 대부분, “전쟁없는 세상을 만들자,” “군비 감축하자,” “군대 축소하자,” “군사시설을 줄여라,” “주한미군 감축” 등등 군사화되어 있다. 평화에 대한 논의, 언어가 군사화가 되어 버리면, 평화를 위한 정치적 결정들이 일반 시민들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생각하기 어려워진다. 여기서 발생하는 윤리적 딜레마는 평화를 위한다는 이유로 희생을 강요당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고, 희생양이 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사회적 약자들이다. 즉 전쟁의 피해자들도, 평화의 피해자들도 같은 그룹의 사람들이 되는 아이러니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쟁을 결정할 때, 누구를 위한 전쟁이며, 누가 이익을 얻게되고, (또는 여성주의 관점에서) 전쟁이 사회 구성원들 (또는 여성과 남성)의 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면밀히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 평화 정책과 평화 담론 또한 비슷한 방식의 분석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평화 유지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군사정책에는 더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이 글에서 내가 하고 싶은 질문은 ‘전쟁 담론에서 자유로운 평화는 어떠한 평화일까’이다. 어떻게 전쟁과 군사화에서 자유로운 평화 담론을 상상해 볼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음을 스스로 깨달으면서, 부활한 예수께서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를 너희에게 주겠다”라고 하신 말씀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란 단순히 개인의 믿음과 영성 차원에 머무르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관상 기도와 묵상, 통성 기도 등등의 영성 훈련을 통해 얻게 되는 깨달음과 기쁨, 평안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인 종교체험은 중요하다. 그러나 도로테 죌레 (Dorothee Soelle)가 기독교 신비주의의 연구를 통해 주장하는 것처럼, 기독교 영성가들은 깨달음을 통해, 하느님의 나라를 체험하고, 세상의 불의와 부조리를 제대로 보고 맞서고,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통해, 화를 화로 다스리고 악을 악으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지혜로 다스려 평화로운 인간 관계, 사회 관계를 체화하려고 하였다 (Silent Cry, 2003). 즉 인간은 혼자 사는 존재가 아니라, 셀 수 없는 수많은 관계 속에 사는 존재이며, 정의롭고 평화로운 관계의 회복이야 말로 우리의 영성이 향하는 방향인 것이다. 소중히 여기는 관계가 깨어질 때 겪는 상실감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만큼 감정적 고통이 크다. ‘나’의 고통에서 벗어나 ‘타인’의 고통을 공감할 수 있는 능력, 보이지 않는 세상의 관계를 볼 수 있는 능력은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영성 훈련을 통해 연마된다. 그런데, 이 관계성과 영적 훈련으로써의 자기 성찰은 ‘일상’을 배제하고는 생각할 수 없다.

  
          몇 해전 경기도 평택의 햇살사회복지원을 방문해서, 우순덕 원장님께 평화에 대해 정의해 달라고 부탁드린 적이 있다. 햇살사회복지원은 평택 기지촌에서 양공주라 손가락질 받으며 일생을 보내신 할머니들이 세상과 소통하고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쉼터도 제공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식사도 제공하고, 힐링 프로그램도 제공하는 작은 공동체이다. 원장님이 말씀하신 평화에는 미사일도, 군대도, 한미 관계도, 국경 봉쇄도 없었다. “할머니 한분 한분이 진정한 인간으로써 존중받는 것, 따뜻한 밥 한끼를 매일 드실 수 있는 것, 죽을 때 혼자 죽지 않는 것이 평화입니다.” 십년도 더 지난 예전에 뉴욕 무지개 집을 방문했을 때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무지개 집은 국제결혼 여성들의 쉼터로 출발한 공동체인데, 이 여성들의 대부분이 미군과 결혼하여 한국을 떠난 기지촌 출신 여성들이다. 문화적 차이, 경제적 어려움, 언어 장벽, 가정 폭력, 미군 남편의 외상 후 스테레스성 장애 등으로 인하여, 많은 여성들이 미군 출신 남편과 이혼하거나 버림을 받고, 다시 성매매를 하거나 걔 중에는 홈리스로 전락하기도 한다. 무지개 집에서 만난 한 여성은, 마약에 중독되어 살다가,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무지개 집을 찾아왔다고 했다. 그녀가 생각하는 사람답게 사는 법은 “남들처럼 밤에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일하고, 저녁에 집에 와서 쉬고, 친구와 가족들과 함께 식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라고 했다. 이들이 생각하는 평화는 어떻게 보면, 우리가 지극히 일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회복하는 것인데, 폭력과 전쟁으로 파괴된 일상을 되돌리는 것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와 같다. 폭력은 그것을 행한 사람과 겪은 사람들, 폭력으로 가족을 잃어 버린 사람들, 그것을 지켜본 사람들 모두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한 번 무너져버린 일상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처럼 멀리 존재하는 것 같다.  

  
          지금 이글을 쓰고 있는 4월 16일은 세월호가 침몰하여 304명이 수장된지 2년된 날이다. 작년 세월호 1주기때,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지인이 한국에서 보내주었다. 책에 실린 세월호 유족들의 글은 소중한 가족 구성원들을, 자본주의 탐욕과 버무려진 재앙으로 잃고 난 후에, 무너진 일상, 바뀌어진 일상 속에서 겪는 고통의 기록이였다. 이 고통 속에서 유족들은 예수가 누구인지에 대해 질문을 하고, 교회의 역할을 묻고, 사회 지도층의 책임감에 의구심을 던지며, 무엇보다 명백한 희생자들이 있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사회 부조리를 자신들의 이야기를 통해 드러내고 있었다. 세월호는 유족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전체의 일상에 영향을 끼쳤다. 이제 우리의 일상은 세월호 전과는 달라졌고,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세월호 이전의 세월이 좋았다는 것은 아니다. 세월호 이전에 일어났던 여러가지 사건들을 생각해 보면, 세월호 사건은 이미 예견된 인재였는지도 모른다. 재작년 마지막으로 방문한 강정 평화 운동지에서, 평화 운동가들이 이런 의견을 나누어 주었다. 미군 기지 건설을 위해 평택 대추리를 밀어버리고 원주민들을 이주시키는 과정에서, 기지 건설과 원주민 이주 반대시위를 강압적으로 진압한 대추리 사태 (2006), 용산 재개발 과정 중 무리한 강경 진압으로 철거 반대를 주장하는 주민들을 화재로 죽게 만든 용산 화재 사태 (2009), 강압적인 강정마을 해군 기지 건설은 모두 하나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자본주의와 결탁한 군사주의, 생명보다 개발 우위의 논리, 위로 부터의 의사결정 방식, 이념으로 분리된 사회 구성원들, 그리고 이 비극적인 세가지 사건을 깊이 분석해 보면 “주한 미군”이란 연결 고리도 찾을 수 있다. 이 사건들의 결과만 놓고 본다면, 일상이 무너진 시민들, 일상이 바뀐 시민들의 얼굴을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월호 사건과 이들 사건들과의 상관관계는 무엇일까? 방산 비리로 인하여 싸구려 무기를 지급받고, 군생활 중 사고로 죽은 젊은 군인들과, 세월호 사건 사이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상관관계가 반드시 있다고 본다. 정부 고위 관계자들의 비리 뿐만 아니라, 군사문화에 기반한 사회 전반에 퍼진 위계구조, 계층과 성별 사이의 갈등 등등. 모든 억압적인 사회 문제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강정마을 평화 운동이 세월호 기억과 진실 운동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며, 세월호 운동이 다른 종류의 평화 운동과 다르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들은 오리무중인 한국 사회에서 평화란 무엇이며, 예수의 평화는 어떻게 상상되어질 수 있을까? 우선 나는 평화란 “일상”을 지키는 행위라고 본다. 나와 내 가족만의 일상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폭력과 억압에서 벗어난 “일상”을 살 수 있는 사회구조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또한 폭력과 전쟁, 억압으로 인하여 일상이 무너진 사람들이 다시 일상을 살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고, 힘들어도 폭력의 역사, 거대 담론이 아닌 일상이 무너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억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지난 3월 시카고에서 Pacific Asian North Asian American Women in Theology and Ministry모임이 있었다. 이번 모임은 특별히 시카고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시안 사회 운동가들을 초청해서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들 중 한 명이 시카고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온 통계학자 김지인님 이였다. “만약 세월호 사건이 없었다면, 저는 사회 운동에 관심조차 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세월호 모임에 동참한 후부터는 시카고 지역의 다른 사회 운동에도 연대 차원에서 참여하고 있습니다.” 김지인 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세월호를 직접 겪지 않았지만, 더이상 방관자가 아닌 참여자로 살기 위해서, 나의 일상을 회복하고, 세월호 유족들의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유족들이 원하는 것을 지지하고, 세월호 사건과 피해자들의 이야기들을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세월호 유족들과 함께 이들의 일상도 변하였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함께 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일상 중에 존재하는 평화의 씨앗을 볼 때, 우리는 예수가 이야기한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의 가능성을 보게 되고, 서로의 일상을 지켜주고, 이 일상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함께 기울이면서,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에 참여하는 것은 아닐까? 또한 이 평화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일상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기억해 주는 노력일 것이다. 마포구 정신대 대책 협의회 아래층에 위치한 전쟁과 여성 박물관, 강정마을의 평화 도서관, 세월호 기억의 숲, 제주 4.3. 평화 박물관 등등. 한국에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의 노력과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곳이 많이 있다. 의식적으로 찾고, 기억하고, 일상화 시키자. 우리도 다른 일상을 살 수 있다. 노란색의 일상,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의 노란색을 찾아볼 수 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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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영성 - 세월호 이후에도 ‘삶’은 가능한가


지은이 : 김진호 | 엄기호 | 백소영 | 김응교 | 황진미 | 자우녕 | 정경일 | 정용택 | 박정은 | 조민아 | 최형묵 | 김신식 | 이택광 | 신윤동욱

펴낸날 : 2014-11-30
페이지 : 307쪽
정  가 : 15,000원
펴낸곳 : 현암사


             * 책 소개 보러가기


 

책 소개

 

사회적 영성이란 무엇인가. 14인의 비평가와 신학자들이 지은 <사회적 영성>은 우리 사회 감성의 흐름에 대한 성찰을 시도한 책이다. 이성의 영역에서 성찰을 이해 혹은 의사소통이라고 한다면, 마음 · 감성의 영역에서 성찰을 공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바로 이 공감 행위에 관한 신학적 · 인문학적 성찰이 바로 ‘사회적 영성’이다. 


이미 우리 주위에는 치유와 배려, 희생과 배품을 말하는 ‘윤리적’ 언설들이 가득하다. 지은이들은 그 안에서 영성에 대한 선입견으로 인해 망각해온 공동체적 · 관계적 영성을 찾아내고 그 효과를 새로이 읽어내고자 한다. ‘영성’의 이름을 아직 부여받지 못한, 하지만 더 심층적이고 넓은 영적인 사건들, 가령 세월호 사건이나 밀양 송전탑 사건 등에서 ‘사회적 영성’의 흔적을 찾아내고 증언하며 기억하자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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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ay Before The Sewol[각주:1]

이상철
(한신대 외래교수)
 


Intro: 제작의도 & 당부의 말

10년 만에 돌아온 한국에서 100일 가까이 보내고 있다. 갓난 아기가 태어나 100일을 넘기면 100일 잔치를 열어 이 아기가 100일까지 살았고, 그것으로 미루어보아 앞으로도 이 거친 세상을 능히 잘 살아낼 수 있으리라 축복하는 세레모니를 가지는데, 다시 돌아온 한국에서 100일 가까이 지나고 있는 나는 갈수록 이 사회가 묘연하고 심지어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이런 현실에 치여 있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질문이 생겼다. 도대체 지난 10년 동안 무슨 일이 이곳에서 벌어졌던 것일까? 그 시간들을, 그 세월 속에 있었던 사건들을 이역만리 떨어진 미국 시카고에서 하나하나 음미하지 못하고 지나갔던 내게서 이런 질문이 나왔다는 것은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 본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이 글에서 2014년 오늘의 한국 사회를 말하기보다는, 외부자의 시선에서, 이방인의 관점에서 유학을 떠나기 10년 전 대한민국과, 10년이 지난 지금 고국으로 돌아와 100일 동안 살면서 느꼈던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후기를 쓰려고 한다. 이 글을 읽으며 독자들도 당신들의 지난 10년이 어떠했는지? 그리고 대한민국의 지난 10년이 어떠했는지? 괴롭겠지만 잠시 회고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S# 1. 정권교체

우선, 10년 만에 돌아온 고국에서 가장 달라진 장면을 하나만 꼽으라면 정권이 바뀐 것이다. 내가 미국으로 떠날 때 한국의 대통령은 노무현이었다. 그리고 미국에 있는 십 년 동안 이 나라는 정권이 두 번 바뀌었다. 노무현 정권에서 이명박 정권으로, 이명박 정권에서 박근혜 정권으로. 그리고, 내가 미국에 있는 십 년 동안 두 전직 대통령이 죽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살했고, 얼마 후에 노무현의 장례식에서 울부짖던 김대중 대통령도 그의 명을 다하였다.
이 모든 사실을 시카고에서 인터넷을 통해 접하면서 나는, 내부에 있었던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한국 현대사가 이렇게 저무는구나!’ 라는 씁쓸하고 애통한 마음에 한동안 빠졌었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은 다 살아있는데,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이 사라진 것이, 내가 그 두 분에 대한 열렬한 지지자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로 하여금 “우리사회를 지탱하는 한 축이 무너졌구나!”라는 생각을 직감적으로 들게 만들었다. 그것을 한 마디로 어떤 이는 '87년도 체제의 종말'이라고 말하고, 또 누군가는 '잃어버린 10년'이었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 기간을 이데올로기(시대)의 종말이라 부르고 싶다.


S# 2. 이데올로기 시대의 종말

2.1 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

지금은 슈퍼스타가 된 지젝의 영미권 진출작이 바로 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1989)이다. 그 후로도 지젝은 왕성한 필력으로 수많은 단행본을 출판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 책이 지닌 의미와 함량만큼의 그것을 담고 있는 책은 몇 권 되지 않아 보인다. 이 책에서 지젝은 이데올로기가 무엇인가에 대해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The Sublime Object는 번역하면 숭고한 대상이다. 그럼 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를 번역하면 어떻게 될까? 2002년 ‘인간사랑’에서 나온 한국어 번역본(역자: 이수련)의 제목은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이었고, 2013년 ‘새물결’에서 나온 개정판(역자:이수련) 제목은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이었다. 이렇듯 해석상의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중간에 있는 전치사 ‘of’ 때문이다. 영어사전에서 of 용법을 찾아보면 수 십가지 용례가 나오는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동격의 of’와 ‘소유의 of’, 그리고 ‘주격관계의 of’이다.
첫 번째 한국어 번역본 제목은 이데올로기와 ‘숭고한 대상’을 동격으로 처리한 경우다. 그렇게 되면, 이데올로기 자체가 숭고한 대상이 된다. 개정판 번역본은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으로 제목이 바뀌었는데, 이 경우 ‘of’를 ‘소유의 of’로 해석을 할지, 아니면 ‘주격관계 of’로 해석할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소유의 of’로 해석하면, 이데올로기 안에 있는 숭고한 대상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주격관계 of’로 해석하는 것이 지젝이 의도하는 이데올로기에 적합하다.
‘주격관계 of’의 쓰임새는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the works of 은희경’이라고 할 때, 은희경이 쓴 작품들을 뜻한다. 은희경의 작품들, 예를 들면, <새의 선물>, <타인에게 말걸기>, <비밀과 거짓말> 같은 소설들 말이다. 그렇다면 ‘주격관계 of’를 갖고, 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를 해석을 하면 어떻게 될까? 이데올로기가 숭고한 대상을 만들었다는 의미가 된다. 은희경이 그녀의 작품들을 생산했듯이 말이다. 바로 이 대목에 이데올로기에 대한 관전포인트가 있다.

2.2 이데올로기 작동방식

이데올로기는 절대 자기 스스로가 숭고하지도, 그렇다고 이데올로기 안에 숭고한 측면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데올로기 하면, 어떤 장엄하고 숭고하고 거시적이고 무엇인가 유의미한 것이 이데올로기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이데올로기가 주는 환상이다. 하지만, 이데올로기는 그런 것이 아니다. 이데올로기는 자기가 작동을 해서 별볼일 없었던 그 무엇을 숭고한 대상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런 관점으로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을 바라보게 되면, ‘숭고한 대상’은 이데올로기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된다.
한국 현대사에서 ‘숭고한 대상’이라 할 수 있었던 것이 무엇이었나? 온갖 정치적 선전들이 그 숭고한 대상들 아니었던가!  4대강, 뉴타운, 부국강병, 정의사회구현, 경제강국, 보통사람들의 시대…등등 얼마나 많은 ‘숭고한 대상’들이 이데올로기에 의해 만들어졌던가! 이렇듯, 이데올로기는 사람들에게 허위의식, 즉 환상과 착각과 오해를 계속 만들어내는 주문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명품백을 사면 내가 명품인간이 되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것이 자본주의 상품 이데올로기의 특징인 것처럼, 내가(혹은 우리가) 그렇게 지금 된 것인 양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 이데올로기의 특징이다.
이런 이유로 80년대 운동의 1차적 목적은 체제가 주입하는 이데올로기적 환상과 거짓과 기만을 폭로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였다. 명석한 현실분석과 각종 날카로운 이론을 근거로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계몽하고 깨닫게 하는 것이다. 이런 이데올로기 시대는 90년 동구권의 몰락, 97년 IMF체제, 그리고 김대중, 노무현의 상실과 2007년 이명박 정권의 등장이라는 3단계의 과정을 거치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렸고, 그 무렵 한국사회는 ‘냉소의 시대’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었다.


S# 3. ‘냉소의 시대’가 오는도다!

3.1 Welcome to 냉소

앞서 우리가 살펴본 이데올로기 시대에는 무엇을 몰라서 문제가 발생했었다. 그런 까닭에 당시 운동은 체제가 억압하고 강요하고 기만하는 이데올로기의 거짓을 밝히고 드러내고 폭로하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절정에 다다른 신자유주의 시대는 운동의 성격을 달리해야 한다. 이데올로기 시대가 뭘 몰라서 문제가 생기는 시대였다면, 신자유주의 시대, 이 냉소의 시대에는 모든 것을 다 알기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다 안다’ 라는 뜻이 무슨 뜻일까?
냉소주의(Cynicism)가 본격적으로 역사의 수면으로 올라온 것은 근대 자본주의의 등장과 시기를 같이 한다. 자본주의는 모든 질적인 차이, 즉 사용가치를 교환가치로 바꿔 버린 시스템이다. 우리들에게 얼마나 많은 서사의 구조들이 있는가? 그것이 사랑일 수도 있고, 신앙일 수도 있고, 역사일 수도 있고, 전통과 개성일 수도 있는데, 그런 서사의 구조들을 비웃으며, 이제 현대인은 이렇게 말을 한다. “그런 것들 얼마면 돼?” 이렇게 말해버리는 것이 자본이 지닌 냉소의 법칙이다. 예전의 사람들은 당신들의 속마음을, 그 진실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부터는 서슴없이 그 속내들이 곳곳에서 분출되고 있다.

3.2  냉소의 토착화

현재의 냉소주의가 시작된 것은 90년 사회주의 붕괴부터라고 말할 수 있지만, 엄밀히 말해 냉소주의가 한국 땅에 고착화된 것은 IMF이후다. 공교롭게도 한국사회에서 냉소주의 전개되던 시기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지던 민주정부 10년과 겹친다. 그리고 그것의 완성은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는 현 집권세력이다.
한국 현대사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집단 무의식 속에는 일종의 원죄의식 같은 것이 있었다. 인권의 문제, 민주주의의 문제, 분단의 문제, 정의의 문제 등등. 이러한 부채감들이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일종의 면죄부를 받은 감이 없지 않다. 이런 원죄의식으로부터 해방되면서 한국사회는 급격하게 자본의 원칙에 충실하게 된다.
옛날에는 사회적으로 “돈, 돈, 돈” 그러는 사람을 천박하게 바라봤다. 설사, 마음속으로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그것을 대놓고 말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돈을 향한 우리의 탐욕을 거리낌없이, 여과없이 드러내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더 이상 우리사회는 꿈, 이상, 이념, 종교, 대학의 가치, 인간에 대한 예의 그런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왜, 이야기하지 않을까? 우리는 이제 다 안다. 그런 것들이 다 거짓이라는 사실을, 오직 시장의 논리만이 유일한 삶의 법칙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제 다 알아버렸다. 이것이 저 냉소의 요체다.

3.3 이명박은 나빴다

이명박 정권의 등장은 ‘돈, 돈, 돈’만 외치는 이러한 시대적 조류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사건이었고, 우리의 뻔뻔함과 우리의 파렴치함을 집단적으로 공유케 하는 사건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도 예전에는 대통령이 되려면 어느 정도 자기희생이 있어야 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역감정이라는 넘을 수 없는 벽을 향해, 계란으로 바위 치는 심정으로 선거 때마다 부산으로 달려갔고 예상대로 멋지게 낙선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온몸으로 지켜냈던 인물이었다. 심지어 김영삼 대통령 마저 박정희때 군부독재에 맞서 야당 총재시절 목숨을 걸고 단식을 감행했던 인물이다. 어쨌든 우리 국민들은 지도자의 덕목으로 일정부분의 자기 희생과 확고한 자기 철학을 대통령의 자질로 요구했었다.
그러나 이명박은 달랐다. 대선직전 BBK 사건이 터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은 압도적인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당시 유권자들의 표심은 이런 것이 아니었나 싶다: “이제 이데올로기의 시대는 지났다. 이제 민주, 통일, 정의, 인권, 자유…그런 이야기는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 지난 10년 동안 충분히 과거 역사에 대한 살풀이를 했다고 본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탐욕과 욕망을 실현시켜 줄 정권이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이명박 이후 이번 세월호 침몰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우리는 모두 테네시 윌리암스가 말했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공동으로 탑승했었다. 술에 취한 기관사가 운전하는 열차를 타고 고속주행을 하다 탈선한 형국이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별로 놀라워 하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으며, 죄의식도 이제는 별로 느끼지 않는다. 이런 복원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아니, 이런 뻔뻔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에피소드: 세월(sewol)호에 갇힌 대한민국을 위한 레퀴엠

미국에 있는 친구들이랑 가끔 소식을 전하거나 전화할 기회가 있다. 지금은 덜하지만 CNN에서도 한동안 세월호 사건을 중요하게 다루었다고 한다. 그런데 자꾸 친구들이 세월호를 발음할 때 ‘쎄울’로 발음을 할 때가 있다. 서울과 발음이 비슷하게 들린다. 미국 친구들의 어눌한 세월호 발음이 공교롭게도 서울로 들리는 것이 나에게는 굉장한 상징적 의미로 다가왔다. 세월호가 침몰한 것은 서울의 침몰을 의미하고, 서울은 침몰은 결국 대한민국의 침몰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리고 그 침몰이 이루어졌던 시기가 고난주간이었다는 것,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의 부활을 2014년 부활절에는 말하지 못하게 하였다는 것 또한, 한국 교회와 한국 신학을 향한 사형선고처럼 들린다. 아도르노는 홀로코스트 이후에 詩가 사라졌다고 했는데, 포스트 세월호 이후 우리는 무엇을 잃어야 할까? 우리는 삶과 인간을, 세상을, 그리고 신을 다시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우리시대는 아마도 오랫동안 그 답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고통의 세월을 사는 수 밖에.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속죄의 도구이고 애도의 방식이다.

 

ⓒ 웹진 <제3시대>

 

 

  1. 굳이 번역하자면 “세월호 전에 우리는…” 쯤 되지 않을까 싶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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