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의 Sex & Sexuality – 사회적 신분과 성적 역할



송민원
(시카고 대학 고대근동학과 Ph.D. Candidate)


 




  머릿말 - 고대근동의 Sex & Sexuality 연재를 시작하며

  

      “고대근동의 Sex & Sexuality”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단순합니다. 구약과 고대근동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보수신학뿐 아니라 소위 진보신학이라 불리는 진영에서조차 무분별하게 고대근동의 자료들을 전용하는 게 불편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백인의 눈으로 성경을 읽어왔다는 사실을 충격적으로 알려준 해방신학의 기여에 무한한 경의를 표하면서도, “바알 = 맘몬 = 물질숭배 = 제국주의”로 이어지는 해방신학의 도식이, 우가릿어로 된 바알 숭배자들의 글을 읽은 사람의 눈엔 많이 불편해보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은 우리나라의 김제 평야나 남캘리포니아에 비하면 그야말로 척박하기 그지 없습니다. 바알의 “풍요”는 그저 제 때 비가 와 주고, 갓 태어난 아이들이 좀 덜 죽기를 바라는 부모의 간절하지만 소박한 바램에 지나지 않습니다. 바알의 “번영신학”을 20세기나 21세기로 그대로 끌고 올 수는 없습니다. 당시의 “제국”은 이 시대의 제국들의 동의어가 될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요즘 많이 논의되는 퀴어비평이나 동성결혼 합법화 논란 등에서 고대 그리스나 로마, 고대근동의 동성 간의 성적 행위를 21세기의 LGBTQI와 바로 연결시키는 것은 그 고리가 무척 빈약합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와는 시-공간적, 문화적 배경이 많이 다른 성서의 언표들을 지금 시대에 직접 적용할 수 없는 것처럼, 고대근동의 문헌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로부터 헬레니즘과 비잔틴에 이르는 씨줄과, 또한 고대근동과 고대 이스라엘로부터 유대교와 랍비문헌으로 이어지는 날줄 사이에서, 시대별로 얽히고 풀어지는 지점들을 잘 이해해야만 성경을 비롯한 고대 문헌들이 현재 우리에게 어떤 말을 들려주는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고대인들의 여러 다양한 삶의 측면들 중 특별히 “Sex & Sexuality”라는 주제를 정한 이유 역시 단순합니다. 자극적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교회와 신학계에서 진보와 보수의 전선이 (Homo-)Sexuality 문제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시사적”인 자극성에다,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의 삶과 문화 근간에 흐르는 어쩌면 가장 중요하고 보편적인 테마(중 하나)라는 “비시사적/몰시사적”인 형이하학적 자극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연재는 동성애, 여성성, 순결(처녀성), 남과 여 등 고대인들의 인간관을 전반적으로 살펴볼 계획입니다. 최대한 많은 일차자료들을 소개함으로써 앞으로의 신학논의를 좀 더 정교하고 풍성하게 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1. 고대 그리스의 Sex & Sexuality – 사회적 신분과 성적 역할  



“행복하여라, 나체로 운동을 한 후 집에 가서 아름다운 소년과 하루종일 잠을 자는 사람이여”
(메가라의 테오그니스, 기원전 6세기)



      역사의 어느 시대와 문화를 막론하고, “결혼” 혹은 그에 준하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공간 안에서의 성인 남녀 간의 성적 결합을 금기시하는 사회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재생산을 통한 그 사회의 존속과 유지를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이를 제외하고, 한 사회의 성개념에 있어서 사회적으로 혹은 도덕적으로 용인된 “정상”이라는 범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연 그 사회가 무엇에 “비정상”이라는 낙인을 찍었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럼, 다음의 예에 있는 사람들 간에 성적 결합이 있을 경우, 고대 그리스에서 “비정상적인” 성행위로 간주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1) 25세 미혼남성과 15세 소년
      2) 25세 미혼남성과 25세 미혼남성
      3) 35세 기혼남성과 25세 미혼남성
      4) 17세 소년과 13세 소년
      5) 여성과 여성
      6) 그리스 남성과 외국 여성 


      고대 그리스의 세계가 각 도시국가로 나뉘어져 있는데다 시간적으로도 천 년에 이르는 세월에 걸쳐있기 때문에 이 문제에 단순하게 답을 할 수는 없습니다만, 고대 아테네의 경우, 이 여섯가지의 예들 중 사회적 용인된 “정상적인” 관계는 1번뿐, 나머지는 “비정상적”입니다.
       현대적 개념의 소아성애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고대 그리스의 Sex & Sexuality를 이해하려면 두 가지를 알아야 하는데요, 하나는 그리스 남성의 나이에 따른 사회적 위치(status) 변화, 그리고 각 사회적 위치에 부여된 성적 역할입니다.[각주:1] 고대 그리스의 남자 아이는 대략 12세부터 18세까지 “소년”으로 분류되고, 그 이후 18세부터 30세까지는 “미혼 성인”입니다. 보통 서른에 결혼을 해서 “기혼 남성”으로서 그리스 시민사회의 당당한 한 주체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 “주체”로서의 자유시민은 성적 역할에서도 주체적입니다. 그리고 여성이나 소년은 비주체적인 사회적 신분으로, 성적 역할에서도 수동적입니다. 이것을 Kenneth Dover는 “에라테스(ἐραστής)”와 “에로메노스(ἐρώμενος)”라는 용어로 설명하고 있는데요, 에라테스는 우리말로 “사랑을 주는 자” 정도로 번역될 수 있겠고, 에로메노스는 수동형으로 “사랑을 받는 자” 정도 될 수 있겠습니다(K. J. Dover, 1978). 성 관계에서 에라테스는 “삽입하는 자”, 에로메노스는 “받아들이는 자”로 이해됩니다. 


<에라테스와 에로메노스>

      고대 그리스의 남자아이에게 에로메노스로부터 에라테스로 성장해 가는 과정은 사회의 주체가 되기 위한 교육의 과정입니다. 십대 소년은 에로메노스의 수동적 역할을 충실히 배움으로써, 그 이후 에라테스의 주체적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수동적 에로메노스 단계를 거친 십대 소년은 이십대가 되면 에라테스의 역할을 부여받게 되어, 그 자신의 에로메노스를 갖게 됩니다.[각주:2] 이십대 청년의 이 동성 간의 관계는 그 자신이 30대가 되어 결혼하게 될 때까지 지속됩니다. 즉, 고대 그리스의 소년과 청년시절의 동성 관계는 “진정한 남자”가 되기 위한 통과의례에 다름 아닙니다.
      그러므로 에로메노스의 단계를 벗어난 에라테스가 계속해서 에로메노스의 역할을 하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해서 “수동적인” 성적 역할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키나이도스(κίναιδος)”라고 불리웠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남성적 역할을 포기하고 “여성화”된 사람으로서,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별종” 혹은 “타자”로 이해되었습니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주체로서의 자유시민이 될 수 없던 여성은, 성적 역할에서도 결코 에라테스가 될 수 없는 영원한 에로메노스였습니다. 그러므로 여성 간의 관계는 사회적으로 인정 받는 정상적인 관계는 아니었습니다. 어느 누군가는 에라테스의 역할을 해야했기 때문입니다. [각주:3]

      또한 외국인의 경우, 상대가 남성이든 여성이든 바람직하게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에라테스-에로메노스는 그리스의 자유시민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과정이지, 결코 외국인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외국인을 “바바리안”이라 부르며, 그들을 태어나면서부터 열등한 민족으로 규정했기 때문에, 그들과의 동성 관계뿐 아니라 이성 간의 혼인마저도 용납될 수 없었습니다. 만약 그리스 자유시민에게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자신의 신분을 낮추는 일로 여겨졌습니다.
      이렇듯 고대 그리스 세계의 동성 간의 성적 관계는 지금 이 시대의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의 문제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뿐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의 Sex & Sexuality는 바로 다음 이어지는 로마 시대의 그것과도 세밀한 부분에서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고대 로마의 Sex & Sexuality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 문헌>
    Davidson, J. (2001) “Dover, Foucault and Greek Homosexuality: Penetration and the Truth of Sex,” in Past and Present 170: 3-51.
    Davidson, J. (2007), The Greeks and Greek Love: A Radical Reappraisal of Homosexuality in Ancient Greece, London.
    Devereux, G. (1967), “Greek Pseudo-Homosexuality and the ‘Greek Miracle’” in Symbolae Osloenses 42: 69-92.
    Dover, K. J. (1978), Greek Homosexuality. London.
    Foucault, M. (1985), The History of Sexuality, vol. 2: The Use of Pleasure, trans. R. Hurley, New York.
    B. Isaac, “Foreigners, Greece and Rome,” in The Encyclopedia of Ancient History, Ec-Ge: 2708-2710.
    Percy, W. A. (1998), Pederasty and Pedagogy in Archaic Greece.


ⓒ 웹진 <제3시대>

  1. 사회적 역할(status)과 sexuality를 연결하는 관점은 G. Devereux(1967)에서 시작해서 K. J. Dover(1978)를 거쳐 M. Foucault(1984)에 이르는 소위 “도버-푸코”모델에서 빌려왔습니다. 여기에 이 관점을 보다 정밀하게 세분화해서 고대 그리스 세계를 정리하려 한 D. M. Halperin까지도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 이 모델은 고대 그리스의 세계를 지나치게 단순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J. Davidson: 2001, 2007). [본문으로]
  2. 도리안들의 경우 대부분 한 명의 에로메노스를 갖는 반면, 그리스 동부 지역에서는 여러 명의 에로메노스를 갖는 게 보편적이었습니다 (W. A. Percy, 1998: 146-150). [본문으로]
  3. “레즈비언”이란 말을 탄생시킨 레스보스의 사포의 경우나, “삽입”을 전제하지 않은 여성 간의 성행위에 대해서는 이후에 따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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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상철
    2012.01.03 04:53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우리학교 제닝스 선생님과 겐스톤 선생님, 그리고 슈나이더 선생님이 이 소식들으면 좋아라 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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