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疏通)이냐 불통(不通)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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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미강
(한백교회 담임목사 | 본 연구소 운영위원)

얼마전 모 시사주간지 팀장으로부터 한통의 메일을 받았다. 내용인즉슨, 특별호를 기획하면서 합리적 보수로 대표되는 사람들을 추천해달라는 내용이었다. 평소 그의 면모를 알고 있었던 터라, 가능하면 그의 기획에 동참하고 싶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학술 담당 기자로서 뉴라이트 진영을 취재하면서, 저는 보수 담론의 일부에서 '역 영감'을 얻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합리적 진보-합리적 보수가 손을 잡아야 한다는 식의 '대연정'의 정치공학이 아니라, 혼돈의 시기를 넘어서는 새로운 비전을 창출하기 위해서라도 보수담론이 내장하고 있는 '매력 포인트'를 관찰하고 익혀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가 하고 있는 고민의 깊이가 느껴지기에 나는 기꺼이 합리적 보수를 찾는 길을 함께 하기로 하면서 그가 보내온 문항을 꼼꼼히 살펴봤다. 각 분야에 걸친 합리적 보수를 찾는 문항에서 내가 추천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무리 내 주변을 뒤져봐야 정말 합리적 보수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어려웠다. 참 난감했다. 그 난감함은 내가 맺어온 인간관계의 폭을 알려주는 것이기에 더욱 나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는 누구와 관계를 맺고 살았는가? 지금 생각하면 나와 동색인 사람들과 기꺼이 어울려 살았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같은 색깔의 사람들과 살아가는 것이 나의 존재방식이었고, 그 존재방식만이 옳은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니 당연히 나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홀히 했다. 같은 색깔 속에서 나의 정체성을 찾아온 결과, 내 주변에는 합리적 보수라고 말할 수 있는 다른 색깔을 찾아내지 못한 것이 너무 당연한 이치였다. 난 누가 합리적 보수인지, 합리적 진보인지를 구별하거나 편가르고 싶지 않다. 다만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나와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살아갈 지를 고민할 뿐이다.

최근 한백교회는 두 주 동안 두가지 문제인식이 충돌하고 있다. 한백교회의 장점은 어떤 이야기라도 함께 나눌 수 있기에 하늘뜻을 나누는 설교자들이 부담없이 자신의 소신대로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하늘뜻나누기에서 나온 의제들을 가지고 토론하면서 현 상황을 바라보는 교인들이 갖는 인식의 차이가 드러나고 있다. 단순화시켜 말한다면, 현재 MB정권에 대한 인식이 과거 독재정권과도 같은 것인지, 아니면 과거와는 다른 것인지, 소위 진보진영이라고 말하는 우리 내부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그것 역시 소위 보수진영의 공세에 의해 조작되고 있는 것인지 등등이다.

아직까지 우리는 토론 중에 있다.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결론이 꼭 나야 할 일도 아닌 것 같다. 토론의 과정을 통해서 얻고 싶은 것은 진보와 보수라고 구분짓고 담을 쌓기 보다는, 말과 상식이 통하는 대화의 파트너들을 찾아내고 관계 맺는 일일 것이다. 최근 더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우리 안에 내재된 독선과 배타성이다. 우리 내부의 문제를 성찰하지 못하고 타인을 향해 투사될 때 나타나는 독소의 위험성을 몸소 느끼기 때문이다. 소위 진보 혹은 보수라는 이름으로 자기 의로움에 빠져 자기만이 옳다는 신념을 내세울 때 가장 치명적이다. “내가 이렇게 헌신해왔는데, 내가 이렇게 남들 알아주지 않을 때 몸바쳐 일해왔는데, 내가 이 기나긴 시간들을 투신해왔는데” 등등.... 여기에 도덕성과 청렴성까지 결합되면 어느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자기 의로움의 극치를 달리게 된다. 자신만이 옳다는 절대신념은 어느 누구와도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내어놓지 않는다. 스스로 굴레 속에 갇혀버린다. 우리 주변에는 자기 의로움에 매달려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 시대에 진정 필요한 것은  자기의 의로움보다는 타인의 의로움을 찾아내는 일이 아니겠는가?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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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소통의 단절, 그리고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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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선애
(부모교육/MBTI 강사)


카프카의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

41세에 죽은 카프카가 죽기 5년 전, 36세에 45장에 걸친 장문의 편지를 아버지에게 쓴다.
철옹벽 같은 아버지에게 드리는 항의며 호소며 절규였으나 결국 부치지 못한 편지다.
아버지로 부터 겪은 것은 소소한 일상에서의 좌절이지만 상처 받은 카프카에게는 존재의 문제가 된다.
물론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와 끊임없이 아버지의 인정을 받고자 하는 노력이 불후의 명작들을 낳았지만 그 주제는 불통 속의 절망적인 실존이다.
자신을 한낱 벌레로 표현한 '변신'을 읽으면 카프카가 아버지로부터 받은 느낌을 짐작할 수 있고 평생을 통해 자신을 지배하는 아버지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반란이 결혼이었으나 3번의 약혼과 파혼만 되풀이 하며 자신에 대한 확신을 얻을 수 없었으니 가족-특히,부모와의 관계에서 겪는 불통은 단지 고통을 넘어 파괴적이다.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어느 날 갑작스레 맞은 아내의 죽음. 남편은 당황한다.
눈 앞에서 사라져 버린 아내의 자취는 옷과 사진첩.
"부토(원폭이후 일본에서 발생한 현대무용, 칠흑같은 어둠의 춤이란 뜻)"를 추며 찍은 사진 속의 아내는 너무나 생소하다.
아내 생전, 자신이 보기엔 낭비처럼 보여, 아내의 취미인 부토를 막아 버렸던 남편은  재산을 정리하여 아내가 가고 싶어했던 일본으로 떠난다.
아내를 위하여.
이런 아버지를 자식들은 이해하지 못하며 일상의 리듬이 깨지는 것이 싫어서 부담스러워 하기까지 한다.

작가와 감독은 가족간 단절의 숨통을 일본의 가족애에서 찾으려 한다.
벚꽃이 만발한 일본의 공원에는 나들이 나온 가족들로 가득하고 남편은 공원에서 부토를 공연하고 있는 소녀를 만난다.
소녀는 분홍 전화기를 들고 부토를 추며 그림자인 자신과 만나고 저승의 엄마와도 만나 행복한 얼굴이다.
이 소녀만이 주인공 남편과 소통한다.
남편과 소녀는 후지산으로 떠나, 자신의 모습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후지산을 기다린다.
아내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몇 날이 지나고, 드디어 안개가 걷혀 환한 밤, 후지산은 선연히 자태를 드러내고, 남편은 달 빛 아래서 부인의 옷을 입고 부토를 춘다.
후지산 앞에서, 부토의 춤 속에서, 드디어 아내를 만나고 남편은 쓰러진다.
엔딩 자막이 다 올라가고도 한참동안, 어느 한 사람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사랑은 소통이다
그러나 어렵다.
때때로 칠흙같은 어둠 속에 빠진 느낌이다.
그래서 고통스럽다.

당연히 사랑한다고 믿고 있었지만 사랑의 상대가  눈 앞에서 사라졌을 때 상대에 대해 아는 것이 없음을 알았을 때 느끼는 당혹감이 가슴에 와 닿는다
또 얼마나 사랑의 상대를 좌절시켰나를 깨닫고 좌절한다.
우리는 사랑하는 내 가족, 연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 사람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무엇을 아파하고 있는지!

사람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인 가족, 특히 부모로 부터 상처를 받는다.
사랑받고 싶은 욕구와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좌절되어서.
그리하여 내가 받은 좌절과 상처에만 급급하여 내가 사랑해야 할 상대에게 상채기를 내며 보복을 하기도 하며 많은 이들이 한생을 적개심과 분노로 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상처에 메여 사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기도 한다.
 
불통-다름과 차이
 
사람들은 누구나 내 잣대로 판단한다.
나와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할 때 오해하고 상대가 잘못 되었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태어 날 때 기본적으로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태어난다.
이미 갈등의 소지를 안고 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얘기다.
흔히 성격 차라고 말하며 극복하기에 벅차들 하는 부분이다.
이 다름과 차이는 타고 난 것이기에 바꿀 수 없으며 그냥 그대로 받아 들여야만 하며 이 근본적인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할 때 갈등은 해소되고 소통이 가능해진다.

소통은 받아들임이다
사람은 있는 그대로, 존재 자체로 받아들여질 때 사랑받는다고 느끼게 되며 사랑하는 이로부터 받는 인정과 수용은 오늘과 내일을 살아갈 양식이 되고 특히 유아기와 아동기에 받는 부모로부터의 인정과 사랑은 한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된다.

남편은 아내의 옷을 입고 후지산 앞에서 부토를 추며 아내를 만난다.
우리도 사랑하는 이의 옷을 입고 춤을 추며 사랑하는 이와  만나자.
물론 살아있는 오늘, 지금!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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