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레니즘의 Sex & Sexuality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송민원

(시카고 대학 고대근동학과 Ph.D. Candidate)


   6. 헬레니즘의 Sex & Sexuality –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로마서 1:26-27 개역개정) 


      고대 그리스와 로마로부터 시작하여,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를 거쳐 가나안에 이르는 우리의 여정은 사실 바울의 이 단 한 문장을 이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현대 기독교인들에게는 무척이나 익숙한 이 문장이 실은 얼마나 이상한 문장인지, 그리고 이 한 문장 뒤에 숨겨진 세계는 얼마나 복잡한지 설명을 시작하겠습니다.


[Hellenistic World]


       헬레니즘은 단순히 고대 그리스의 문화가 유럽과 고대근동 전역에 퍼져나간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각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이 엄청난 문화적 도전에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켜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으며,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사상을 새로운 언어-문화적 틀 안에서 이해하고 설명해내려 애썼습니다. 유럽의 서쪽 끝으로부터 인도에 이르는 드넓은 지역 어느 한 곳도 고대 그리스의 문화를 얌전히 수용한 지역은 없습니다. 따라서 헬레니즘 시대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사실 거의 불가능한 작업입니다. 이 방대한 지역의 각기 독특한 전통문화가 그리스의 문화와 서로 어떻게 얽히고 설키는지는 한 명의 학자가 평생을 바쳐도 다 연구할 수 없습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살펴본 “얄팍한” 수준에서나마 전반적인 그림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보자면, 우선 그리스 성인 남자가 어린 소년과 성행위하는 것을 보며 “그리스 병”이라고 끔찍해 하는 로마인이 있습니다. 그 로마인이 남녀를 가리지 않고 하층민이나 외국인들과 성행위하는 것을 보며 “야만적”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그리스인이 있습니다. 이런 로마인과 그리스인들의 행위를 보며 싸잡아 “가증스러운 일”이라며 그 “병”이 옮을까 두려움에 떨고 있는 유대인이 있습니다. 그 세 사람을 보며 별 것도 아닌 일에 호들갑을 떤다며 혀를 차는 이집트인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한 데 모여 사는 곳이 바로 헬레니즘이라는 동네입니다.

       이 중에 우리는, 구약시대로부터 내려온 오래된 전통을 가진 유대인들이 이 헬레니즘의 도전에 어떻게 응전했는지에 집중하기로 하겠습니다. 이들이 헬레니즘에 반응하여 자신의 전통을 어떻게 새롭게 이해했는지, 그리고 이것을 어떠한 언어로 표현해냈는지, 그 중 우리의 주제인 Sex & Sexuality라는 한 단면을 살펴보겠습니다. 이를 위한 좋은 예는 바로 창세기 19장의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성적인 이미지와 연결시킨 예 1, 2]


       이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가 언제부터 “동성 간의 성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의 이야기로 읽히기 시작했을까요? 적어도 구약시대까지는 아닙니다.


“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의 딸에게 교만함과 음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아니하며” (에스겔 16:49)  


        에스겔은 풍족한 삶에도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인색한 점에서 소돔의 죄를 찾습니다. 에스겔이 말하는 “가증한 일”(에스겔 16:47, 50, 51, 52)은 동성 간이든 이성 간이든 성적인 관계와는 무관합니다. 이사야가 말하는 소돔의 죄 역시 사람이 자기 민족, 자기 이웃을 학대하는 것입니다(이사야 3:5-9). 유일하게 예레미야만 소돔과 고모라를 성적인 것과 연결합니다만, 이 역시 동성 간의 관계를 의미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내가 예루살렘의 선지자들 가운데서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그들은 간음을 행하며 거짓을 말하며 악을 행하는 자의 손을 강하게 하여 사람으로 그 악에서 돌이킴이 없게 하였은즉 그들은 다 내 앞에서 소돔과 다름이 없고 그 주민은 고모라와 다름이 없느니라.” (예레미야 23:14)  


       이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를 순전히 “손님 환대”라는 고대근동의 풍습의 관점에서만 읽어내려는 성서학자들이 있는데, 위의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의 예만 보아도 고대로부터 이 소돔과 고모라는 상당히 다양한 시각으로 읽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동성 간의 성행위에 대한 징벌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한 것은 없습니다.

       예레미야의 이 구절은 예루살렘의 선지자들이 벌이는 악행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도 소돔과 고모라처럼 망하고 말 것이라는 비판으로서, 하나의 도시(국가)가 멸망하는 것의 예로 소돔과 고모라를 든 것이지, 소돔과 고모라에서 행해진 악행을 묘사하고 판단하려는 의도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 때의 “선지자”라는 표현이 “무자격 비정규직 자칭 신의 대리인”을 뜻하는 좁은 의미로 사용되었는지, 아니면 제사장이라는 정규직 성직자들까지 다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는 불분명합니다만, 출산과 재생산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모든 성행위를 죄악시하는, 따라서 임신시킬 능력이 없는 “고환이 상한 자나 음경이 잘린 자”(신명기 23:1)마저도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는 이스라엘(= 범 가나안) 사회에서 선지자들 사이에 동성 간의 성행위가 있었다고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가치관을 그대로 지금 사회에 옮겨 오자면, 정관수술을 받은 사람은 목사는커녕 교인도 될 수 없겠습니다). 


       문화적 정체성이 뚜렷하여 사회적 금기가 아주 강하게 작용하는 곳에서는 그 금기에 대해 자주 말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전통적 가치관이 외부의 영향으로 심하게 흔들리는 자리에서야 그 이전에는 문제되지 않았던 지점들이 도드라지게 됩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죄를 동성 간의 성행위로 보기 시작한 시점은 고대 이스라엘의 문화적 정체성이 크게 도전 받은 바로 이 헬레니즘 시대부터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이스라엘은 외세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적이 있습니다.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는 이스라엘 민족 자체가 소멸될 극도의 위기를 겪게 만들어서, 고대 이스라엘의 문화적 뿌리 (종교, 언어, 가치관 등)를 통째로 흔들었습니다만, Sex & Sexuality의 문제에 있어서만은 크게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가나안과 메소포타미아의 성 이해가 근본적으로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점은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에 대한 예언서들의 비판에서 동성행위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헬레니즘 문화의 도전을 받기 시작한 신구약 중간기 시대에 헬라화된 유대인들이 작성한 문헌들을 몇 가지 살펴보겠습니다. 성 개념을 다루는 본 주제와 별 상관은 없습니다만 당시의 유대인들이 얼마나 “헬라적”인 언어로 자신들의 전통을 해석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가 있습니다. “시빌의 신탁(Oracula Sibyllina)” 3권에서 최초의 인간 아담을 묘사하면서, “네 문자로된 아담, 그 이름은 동서남북을 아우른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히브리어로 세 글자(’-d-m)로 된 아담은 그리스어로 넘어와서 a-d-a-m이라는 네 글자로 표시되고, 각 글자는 동(아나톨레), 서(두시스), 북(알크토스), 남(메셈브리아)의 두음이라는 것입니다.[각주:1]


[Sibyls by Raphael, 1514]


       “시빌의 신탁”은 헬레니즘 시대의 유대인(그리고 후에 기독교인)이 그리스와 로마의 성 풍속에 어떻게 반응했는지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입니다. 대략 기원전 2세기 경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시빌의 신탁 3권은 남자아이들에 대한 성적 착취나 매춘에 대해 강력히 비판합니다. 이것은 로마인들과 합세하여 그리스의 성 풍속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원후 1세기(말)에 쓰인 4권과 2세기 초에 쓰인 5권에 나타난 성 풍속에 대한 비판은 동성행위 전체로 확장됩니다. 아마도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이 멸망한 후 그리스만이 아니라 그리스와 로마의 성풍속 모두에게 비판의 화살을 돌린 게 아닐까 합니다.

       중간기 문헌인 지혜서(Book of Wisdom)와 12족장의 서(Testaments of the Twelve Patriarchs)[각주:2] 등은 죄와 우상숭배를 연결짓는 구약적 전통을 동성행위에 끌어옵니다. 우상숭배는 죄이고, 동성행위도 죄이므로 동성행위는 곧 우상숭배이다라는 삼단논법입니다. 이것은 당시의 유대인에게서 볼 수 있는 아주 독특한 발상입니다. 그리스와 로마, 고대근동 전역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동성행위 금지법 어디에도 그것이 “우상숭배”이기 때문에 금지된다는 논리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헬레니즘 시대의 유대인들에게 동성행위는 “외래 풍습”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이러한 외세의 “사악한” 풍습으로부터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켜야만 했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위경 중 하나인 Pseudo-Phocylides(기원전후)는 “간음하지 말라”는 십계명의 의미를 동성행위 금지까지 확장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각주:3]

[Philo of Alexandria by André Thévet, 1584]


       플라톤과 모세, 그리스와 유대의 사상과 풍습을 연결지으려 했던 알렉산드리아의 필로(25 BC - 50 AD 경)가 동성행위를 어떠한 시각에서 바라보았는지 살펴보는 것은 로마서 1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상당히 중요합니다. 후에 로마에게 전수되는 그리스의 방만한 음주문화에서 필로는 동성행위의 원인을 찾습니다.[각주:4] 절제하기 힘든 인간의 성적 욕망이 술에 의해 과도히 발현된 것이 바로 동성행위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리스의 흥청망청한 유흥문화는 필로의 머리 속에서 술에 취해 벌거벗고 잠이 든 노아의 이야기(창세기 9:21)와 오버랩 되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 노아 이야기 자체는 동성행위와 아무런 관련이 없음에도 말입니다.

       여기서 아주 흥미로운 것은, 필로가 (히브리 사상에서는 상당히 낯선) “이성과 감정의 이분법”을 그리스 철학에서 가져온 뒤, 그 이분법을 이용하여 그리스 문화를 비판한다는 것입니다. 감정의 통제는 이성이 할 수 있는데, 음주는 이성의 활동을 약화시키고, 그로 인해 고삐 풀린 감정이 사람으로 하여금, 동성이든 이성이든, 성인이든 어린이든 상관없이 그 욕망을 투사한다는 주장입니다. 필로의 동시대 유대인들, 특히 헬레니즘 문화의 한가운데 있는 요제푸스나 바울 같은 사람들은 이 필로의 주장과 궤를 같이 합니다. 바울이 “비정상적” 성적 행위를 “부끄러운 욕심”, “음욕이 불일 듯”한다는 표현으로 “통제되지 못한 감정의 발산”으로 이해하는 뒷배경에는 이러한 사상사적 흐름이 있습니다. 

       바울은 이 고삐풀린 욕망의 원인을 우상숭배에서 찾습니다: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로마서 1:23). 바울은 필로와는 다르게 통제불능의 욕망은 음주와 향락에 있지 않고, 하나님이 우상숭배자들을 정욕에 사로잡히도록 내버려 두었기 때문으로 이해합니다 (로마서 1:26). 지혜서 등에서 연결된 “죄=동성행위=우상숭배”의 등식에 바울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덧붙입니다.

       사실 좀 더 생각해보면, 바울이 이렇게 복잡하고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었을까 궁금해집니다.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결국 3장 23절의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이니까요. 굳이 어떤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만 꼬집어 비판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저는 이 구절이 동성행위를 하는 자에 국한한 비판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 근거는 이렇습니다. 1장과 3장 사이에 2장의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2:1)라는 구절이 놓여 있습니다. 바울이 아주 길게 우상숭배자들의 특징들(동성행위,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교만 등 도무지 우리 시대의 동성애자들을 묘사한다고는 볼 수 없는)을 나열하는 이유는, 이것이 어떤 특정한 사람들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 그 시대의 “헬라인이나 야만인”(로마서 1:14) 전체를 언급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헬라인과 야만인들을 “판단”하는 “유대인”도 마찬가지로 그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논지입니다. 이 물샐 틈 없는 그물망에서 헬라인이자 유대인인 바울 자신 역시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결국 모두가 죄인입니다.

       사족을 하나 덧붙이고 싶습니다. 다시 맨 처음의 소돔과 고모라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예수님은 이 창세기 19장의 이야기를 어떻게 읽었을까요? 소돔과 고모라는 복음서에서 다음의 구절들에 나옵니다: 마태 10:15; 11:23-24; 누가 10:12; 17:29. 이 중 마태복음 11장과 누가복음 17장에서 소돔과 고모라는 예레미야 23장과 마찬가지로 단순히 멸망과 심판의 상징으로 나올 뿐입니다. 마태복음 10장과 그 평행본문인 누가복음 10장은 제자들이 마을에 들어가 그 곳 사람들에게 대접을 받느냐 못 받느냐에 관한 문맥 속에서 소돔과 고모라를 언급합니다. 즉, 이사야와 에스겔과 유사하게 예수님은 소돔과 고모라를 대접/영접/환대의 이야기로 읽어냅니다. 이 구절들에서 동성행위에 대한 조금의 힌트도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얘기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이해에는 필로나 바울과 같은 동시대의 헬라화된 유대인들의 사고방식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이해는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에 훨씬 가깝습니다. 복음서 전체에서 당대에 “그리스 병”이라 불리던 동성행위에 대한 언급 자체가 없는 것으로 보아, 예수님은 마치 헬레니즘의 파도에도 아랑곳 않는 몇 백년된 화석을 보는 듯 합니다. 그가 시골출신이라서 그럴까요?

       왜 바울은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단 한번도 인용하지 않았을까 항상 궁금했습니다. 바울 당시에 복음서가 없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왔다 갔다는 소식만 전해 듣고, 예수님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고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아무런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는 게 잘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예수님과 바울을 나란히 놓고 나니 한편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헬레니즘의 세례를 받고 자신의 유대전통을 헬라화된 시각으로 재구성한 뒤, 그것을 다시 헬라인들에게 설파한 바울이 듣기에, 이 예수님의 말씀이 얼마나 촌스러운 구닥다리로 들렸을까요. 오백년 묵은 화석을 보는 듯 하지 않았을까 하는 발칙한 상상을 해봅니다.


       (이것으로 총 6회에 걸쳐 고대근동의 Sex & Sexuality를 개괄하는 시리즈를 마치고자 합니다. 앞으로 계속 이 주제를 더 세분화해서 나갈 것인지, 아니면 좀 다른 주제를 건드릴 것인지는 잠시 쉬고 생각해보겠습니다. 제 거친 졸고를 시간을 들여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학위논문과는 거리가 있는 주제의 글을 쓰는 게 제게는 머리를 식히는 좋은 휴식이었습니다.)


ⓒ 웹진 <제3시대>



  1. 시빌의 신탁 영역본을 보시려면 http://www.sacred-texts.com/cla/sib/sib.pdf). [본문으로]
  2. 영역본을 보시려면 http://www.earlychristianwritings.com/text/patriarchs-charles.html; 혹은, http://www.sacred-texts.com/bib/fbe/fbe267.htm [본문으로]
  3. 불역본: http://remacle.org/bloodwolf/poetes/phocylide/sentences.htm [본문으로]
  4. “아브라함에 대하여” 133-14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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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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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의 Sex & Sexuality – "알았다, 임신했다, 낳았다"


송민원

(시카고 대학 고대근동학과 Ph.D. Candidate)


 

  5. 가나안의 Sex & Sexuality – "알았다, 임신했다, 낳았다"

  

       이제 성서의 배경이 되는 “젖과 꿀이 흐른다”는 가나안땅으로 가보겠습니다. 어릴 때 읽었던 만화로 된 성경에 사람들이 멧돼지만한 포도송이를 나무에 꿰어 들러매고 가는 장면으로 이 가나안 땅의 풍요로움이 묘사되었는데요, 그 이미지가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는 걸 보면 현대 유전공학도 이루어내지 못한 그 비옥함의 성과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나 봅니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해 보면, 만약 이스라엘의 문화가 그러한 비옥함에 기반하여 형성되었다면,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창3:17)”,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창3:18)” 같은 표현들은 성경에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사실 이 지역을 지도에서 언뜻 보면, 이집트와 히타이트(헷),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라는 네 개의 거대한 강대국 한 가운데 있는데다 왼쪽으로는 지중해가 드넓게 펼쳐 있어서 어떻게 이런 곳에 소규모 국가들이 버텨낼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하지만 지도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황이 이해가 됩니다. 이 넓은 지중해 해안가 중에 실제 배를 댈 수 있는 곳이 몇 군데 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남쪽으로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사막 지대가 자리잡고 있고, 오른쪽과 위쪽은 길게 늘어진 산맥들이 자리잡고 있어서, 이웃 강대국들이 이 지역에 들어올 수 있는 루트가 극히 한정적이고 그 길마저도 상당히 비좁게 되어 있습니다.

       이 지역의 “풍요” 역시 상대적인 풍요일 뿐입니다. 사막과 고산지대를 제외하고 사람이 그나마 살 수 있는 곳은 페니키아 도시국가들이 자리잡은 지중해 연안의 저지대와 이스라엘이 위치한 구릉지대 정도입니다. 이 두 지역에서나 어느 정도 강수량이 있고, 내린 비가 땅 밑으로 가라앉거나 산기슭을 따라 흘러내려가지 않아 겨우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가나안 지도]

       (이 지도에서 푸른색으로 되어 있는 곳이 사람이 살만한 곳입니다. 가나안 지역은 양옆으로 좁고 위아래로 길게 되어 있는 아주 좁은 지역에서만 생존이 가능함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경제적 비효용성과 군사지리적 어려움으로 인해 이 지역은 강대국들 틈바구니 속에서, 때로는 이집트에, 때로는 히타이트에, 때로는 메소포타미아 문명들에 정치-군사-문화적 영향을 받으면서도, 자신들의 고유한 정체성을 아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 지역의 문화를 자세히 살펴보는 게 중요한 이유는 고대 이스라엘의 문화가 이 가나안 땅의 문화와 연장선 상에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속하지 않은 “외부자”로서의 자기정체성을 주장하고 있음에도, 많은 면에서 주변의 강대국들과는 다른, 가나안 문화권의 하나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증거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특히 고고학적 증거자료에 기반해 재구성한 이스라엘의 문화는 근본적으로 가나안문화입니다. 이 글의 주제인 Sexuality의 문제 역시 “범-가나안 문화”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고대 이스라엘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혹자는 주장할 수 있습니다, 고고학적으로는 비슷할지 모르지만 문헌적으로는, 즉 성경은 주변의 어느 문화하고도 다르다고. 기독교 변증가들의 간절한 믿음과 소망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가나안 문화의 가장 오래된 문명 중 하나인 우가릿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시리아 북부의 라-샴라(Ras-Shamra) 지역에서 발견된 고대 우가릿의 문헌들은 성서연구와 고대 이스라엘 문화를 재구성하는 데 있어 필수적입니다. 사실 우가릿은 청동기시대가 막을 내린 기원전 1200년 경 멸망한 국가라, 고대 이스라엘이 국가의 형태를 띠기 시작한 철기시대 초기(기원전 1000년 경)와는 200년 가량 차이가 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와 문학, 언어적 형태에 있어서 성서와 놀라울 정도의 유사성을 보입니다.



    


[우가릿 1, 2 + 우가릿 아크로폴리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그동안 이 “범-가나안 문화”를 정의해온 단어는 “풍요(fertility)”입니다. 풍요는 곧 “다산(多産)”입니다. 농작물이나 사람이나 할 것 없이 풍성한 재생산을 기원하는 것이 이들의 종교심의 핵심이자 발로입니다. 고고학 발굴에서도 이 지역 전체에 고루 다산과 풍요의 상징들이 발견됩니다. 주로 아나트, 아쉬타르테, 아쉐라 등의 여신상으로 추정되는 이 상징물들은, 그러나 놀랍게도 고대근동의 다른 문화권과 비교해볼 때 성적인 상상력을 거의 자극하지 않습니다. 다른 지역, 다른 시대의 문화권 속에서 많이 발견되는 남근숭배사상 역시 제가 아는 한 이 지역에서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가나안 여신상 1, 2]


       앞의 글에서 살펴보았지만, 20세기까지의 학자들은 이 풍요와 다산을 성전 매춘(Temple Prostitution)이나 성혼(Sacred Marriage)과 연결시켰습니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대부분 고대근동문헌 자체 내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헤로도투스 같은 고전문헌들이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경건한” 학자들의 상상력을 지나치게 자극하여 탄생한 것입니다. 제가 볼 때 기껏해야 15금 정도 되는 메소포타미아 문화도, “정숙함”에 있어서 이 가나안 문화에 비할 바가 못 됩니다. 메소포타미아의 여신들과 비교해봐도, 가나안의 여신들은 거의 성모 마리아 수준입니다.


[메소포타미아 여신상]

       어떻게 “풍요”와 “다산”의 문화가 이 정도 수준의 정숙함을 동시에 가질 수 있을까요? 한 문화권 속에 존재하는 이질적 개념들의 공존, 논리적 불일치는 고대인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들의 풍요와 다산을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에 가나안 문화의 핵심이 풍요와 다산인 이유는, 오히려 이 지역 사람들이 단 한번도 가난과 후세에 대한 걱정을 그쳐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번도 풍요롭지 않았던 지역, 한번도 인구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던 지역, 그 곳이 바로 가나안입니다.

       메소포타미아의 홍수 이야기인 아트라하시스는 홍수의 원인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밤마다 인간들이 너무 시끄러워 신들이 잠을 잘 수 없었다고. 즉, 신들이 홍수의 필요성을 느낀 것은 인구과잉 때문으로 보입니다. 문화유물론적으로 이 구절을 해석한다면, 어느 지역나 시대든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위해 어느 정도 인구증가를 억제하는 장치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정착문화-도시체제는 꾸준한 인구증가를 양산했고, 어느 순간 더이상 시스템을 유지할 수 없는 순간에 다다랐습니다. 유일한 해결책은 천재지변에 의한 인간청소라는 것이죠.


[아트라하시스]


       성서가 그리는 홍수이야기는 이것과 전혀 다릅니다. 인간의 “악함”(창 6:5) 때문이죠. 이 “악함”의 내용이 무엇인지 성서는 구체적인 설명을 주지 않습니다만 인구과잉 때문은 아닌 듯 보입니다.[각주:1] 오히려 성서는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끊임없이 가르칩니다. 사라 이야기, 한나 이야기, 다말과 룻 등, 다른 고대근동문헌에 비해 성경은 놀랍게도 여성들이 주인공인 이야기가 넘쳐나는데요, 그 대부분이 아이 낳기의 어려움에 대한 것들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역시 자손에 대한 것이었죠.

       우가릿에서 발견된 문헌들 중 3대 서사시로 불리는 것이 바로 “바알신화(Baal Cycle)”, “아카트(Aqhat) 이야기”, 그리고 “키르투/키르타(Kirtu/Kirta) 이야기”입니다. “우가릿의 욥”이라고도 불리는 키르투는 이야기 초반에 일곱 아내와 자식들을 모두 잃고서 신 일루(’ilu = 성서의 “엘”)에게 후손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아카트 이야기”의 주인공은 “단일(Dan’il = 성서의 다니엘)”인데, 그 역시 자식이 없음을 한탄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렇듯 이 가나안 지역은 힘들게 땀흘려 일을 하지 않고는 삶을 버텨내기가 힘든 지역이었고, 대를 잇기 위해서는 시동생이든 시아버지든 가릴 처지가 못 되는 곳이었습니다. 후처를 들여서든 이방인 며느리를 친척에게 재가시키든, 자손을 낳을 수만 있다면 모든 게 용서되는 것이 “성서적 윤리관”입니다. 이런 윤리관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 땅의 척박함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가나안 문화의 풍요와 다산에 대한 집착은 바로 그것이 결여되어 있는 현실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척박한 문화권 속에서 “성”은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습니다. 자손번식의 수단이라는 한 가지 기능만을 수행합니다. 따라서 자손번식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모든 성행위는 “죄악”이 됩니다. 인위적이든 자연적이든 피임은 수간이나 동성관계와 마찬가지로 죄악입니다. 생리기간의 여성에게 성서가 “불결”이라는 라벨을 붙인 이유 역시, 가임기간이 아닌 여성과의 성행위로 자손을 번식할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풍요와 다산과 금욕이 서로 연결됩니다. 성경을 비롯한 가나안지역 문헌들은 성행위나 사랑의 감정을 묘사하는 데 극도의 자제력을 보여줍니다. 성서의 “알았다-임신했다-낳았다”, 혹은 “누웠다-임신했다-낳았다”는 극히 간결한 삼단논법 이상을 가나안 문헌에서 발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제가 읽은 문헌들 중 그나마 가장 “야한” 장면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 두 여자는 일루(엘)의 아내가 된다 / 일루의 아내, 영원히 그의 것(이 된다) 

그는 몸을 숙여 그들의 입술에 입맞춤한다 / 그들의 달콤한 입술, 석류 같이 달콤한 

그가 키스했을 때 그들은 임신했다(직역: 임신이 발생했다) / 그가 안았을 때 정열(뜨거움)이 있었다 

그들은 쭈그려 앉아 샤하르(새벽)와 샬림(황혼)을 낳았다 

(KTU 1.23, rear 47-55)



[KTU 1.23] 


       이 장면도 사실 우가릿 원문으로 보면 “키스했다-임신했다-낳았다”에서 단어만 몇 개 더 추가한 수준에 불과합니다.


       오늘 살펴본 가나안은 거대한 남근상들과 다양한 체위의 묘사들이 특징이었던 고대 그리스와 로마,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와는 전혀 다릅니다. 다른 지역과 비슷하게 “풍요와 다산”을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정숙과 금욕”의 문화가 탄생한 것은 “젖과 꿀이 흐르기를 간절히 바라는” 가나안 땅의 척박함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수성 하에서만 성서의 성윤리가 이해될 수 있습니다.


ⓒ 웹진 <제3시대>


  1. 인구가 한 곳에 밀집하는 것의 위험함에 대한 이야기는 홍수사건(창 6-9장)이 아니라 바벨탑사건(창 11장)에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성서가 이 사건이 일어난 지역을 예루살렘 근처로 보지 않고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그려낸 것은 상당히 역사성을 가지고 있는 듯 합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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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소포타미아의 Sex & Sexuality – "결혼은 미친 짓이다."

송민원

(시카고 대학 고대근동학과 Ph.D. Candidate)


 

  4. 메소포타미아의 Sex & Sexuality – "결혼은 미친 짓이다."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라는 말은 “두 강 사이”라는 뜻으로, 지역적으로는 페르시아만으로 흘러가는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와 그 주변지역을 가리킵니다. 두 강이 주는 풍성함으로 이 지역은 현재까지 알려진 인류 문명 중 가장 오래된 문명의 탄생지가 되었습니다. 기원전 500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추정되는 수메르 문명으로부터, 기원전 2000년대에서 시작하는 앗시리아와 바빌로니아 문명이 바로 그들입니다. 남아있는 문헌과 유적의 풍성함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물고기 뼈다귀처럼 생긴 쐐기문자(설형문자)로 된 그들의 문헌은 한 명의 학자가 평생 읽어도 다 읽을 수 없을 만큼 많이 있습니다. 현재 국제정치적인 이유로 이 지역의 발굴과 탐사가 어려워졌지만, 아마도 땅을 파는 족족 엄청난 것들이 계속 출토될 확률이 아주 높습니다.



<Ancient Mesopotamia>


      시기적으로나 지역적으로 우리와 아주 멀게 느껴지는 문명입니다만, 사람 사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그닥 차이가 없는 듯 합니다. 시카고대학에서 바빌로니아 문헌을 배우고 있을 때 교수님은 각 학생들에게 손바닥만한 진흙판 하나씩을 나눠 주었습니다, 조심해서 만지라는 경고와 함께. 그 안에 깨알같이 적혀 있는 글자들을 여덟 시간 안에 해독해내는 것이 기말시험이었죠. 햇볕에 이리저리 비춰보며 글자 하나하나를 종이에 손으로 옮긴 끝에 그 내용을 파악하고는 그만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문헌은 초기 바빌로니아어(Old Babylonian)로 되어 있는데, 시기는 대략 기원전 2000년에서 1600년 경으로, 달의 신을 섬기는 신전의 여사제가 자신의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였습니다. 편지는 이런 저런 신들에게 가족들의 안녕을 비는 극히 전형적인 안부인사로 상당히 점잖게 시작하는데, 본론에 가서 그 톤이 확 바뀝니다. 내가 지금 누구 때문에 여기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는데, 왜 먹을 것을 보내주지 않냐며, 배가 고파 굶어죽을 지경이라고, 너희들 잘 먹고 잘 살려면 내가 여기서 계속 기도를 해야 하니 빨리 먹을 것을 보내달라고.

 

    사실 20세기 말미에 이를 때까지 서구인들이 바라본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문화는 온갖 “비정상”적인 것들로 점철되어 있었습니다. 19세기 말 제임스 프레이저 경(Sir James Frazer)이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특징을 “풍요 숭배(fertility cult)”와 “성전 매춘(temple prostitution)”으로 규정한 이래로 후대 학자들의 상상력이 계속 덧붙여졌습니다. 사랑과 전쟁의 여신 이난나/이쉬타르(Inanna/Ishtar)는 그 상상력을 자극한 핵이었습니다. 메소포타미아의 왕이 이난나로 분장한 여사제와 성적 관계를 맺음으로써 여신과의 합일을 통해 신성을 얻게 된다는 “성혼식(Sacred Marriage rite)”이나, 성적 결합을 통해 신도들을 구원, 혹은 정결에 이르게 하는 성전의 남녀 사제들, 남녀의 성기를 동시에 지니고 있거나 혹은 그 둘의 성적 상징을 모두 갖고 있는 “양성구유”적 사제, 그리고 황홀경 속에서 스스로를 거세하는 의식 등, 그동안 서구학자들은 그들에게 낯선 “동양의 문명”을 더욱 낯설게 만들었습니다.   


<Babylonian Marriage Market (Edwin Long, 1875)>


    이런 “동양에 대한 서구적 시각”은 그 기원이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매년 한 번씩 각 마을의 결혼적령기의 여성들을 한 곳에 집합시킨다. 남자들은 둥글게 그들 주위를 둘러싼다. 여자들은 한명씩 이름이 불려지며 경매가 시작되는데, 가장 예쁜 여자부터 시작한다. 그녀가 아주 비싼 값에 팔리고 나면 그 다음으로 예쁜 여자가 경매 대상이 된다. 이렇게 모든 여자들이 아내로 팔린다. 바빌로니아의 부유층 남성들은 미모가 빼어난 여성들을 두고 경쟁을 하는 반면, 외모에 별 관심이 없는 서민들은 못생긴 여자들을 금전적 보상(결혼지참금)과 함께 얻게 된다. (경매에는) 원하는 사람 모두가 참여할 수 있다. 아주 먼 시골에서까지 와서 경매를 통해 아내를 맞이한다.” (히스토리아이 I: 196) 


    하지만 실상은, 그 수많은 메소포타미아 문헌들 속에 이런 상상력들을 확증할 만한 자료는 그다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현대인의 시각에서 보기에 어처구니 없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만약 남편이 있는 여자가 바람을 핀 것으로 보이는데,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다면 여자는 “강의 신에게 데려가져야” 합니다. 즉, 물에 빠뜨려서 살면 여자의 무죄가 입증되는 것이고, 죽으면 신의 정당한 형벌을 받은 것이 되는 셈이죠.[각주:1] 하지만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문헌들을 얕게나마 읽은 저의 시각에서는, 배고픔을 호소하던 신전 여사제처럼, 그들의 삶이 4000년 뒤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 보입니다. 출토된 유적들도, 문화관광부가 19금 판정을 내릴 만한 고대 그리스와 로마, 이집트와는 다르게, 대부분 기껏해야 15금 정도입니다. 



<Erotic Plaque 1, 2>


    물론 수위를 좀 벗어나는 것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만(아래는 성행위와 음주를 동시에 즐기는 남녀의 모습입니다. 이 모습조차도 지나치게 자극적이지 않고 상당히 덤덤히 묘사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Old Babylonian Clay Plaque (Israel Museum)>


    심지어 신들마저 우리 시대에도 흔히 벌어질 만한 사랑을 합니다. 


그녀(여신 이난나)는 사랑에 빠진 어린 소녀처럼 그녀의 집을 몰래 빠져나와 애인을 만난다. 그녀 자신처럼 빛나는 별들 아래서 그녀는 그의 애무에 몸이 서서히 녹아든다. 시간이 한참 지나(직역: “밤이 전진하는 것을 보면서”) 그녀는 갑자기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집에서 몰래 빠져나온 것을 대체 어머니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나를 보내줘요. 집에 가야 해요. 나를 보내줘요, 두무지(Dumuzi). 이제 집에 들어가야 한답니다. 대체 어머니에게 어떤 거짓말을 해야할까요? 어떤 거짓말을 어머니 닌갈(Ningal)에게 해야할까요?” 그러자 두무지는 한가지 제안을 한다. 어머니에게 가서, 여자친구들이 춤추러 가자고 꼬셔서 할 수 없이 갔다고 하라고.[각주:2] 


<Inanna and Dumuzi>


    그 시절에도 사람들은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불륜을 저지르고 이혼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메소포타미아의 Sex & Sexuality의 독특성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제가 보기에, “결혼제도”의 중요성과, 그 결혼제도에서 벗어난 사람들, 특히 여성들에 대한 “법적 보호장치”를 들 수 있겠습니다. 


    두 남녀가 한 집에 살면서 시작되는 고대 이집트의 “간략한” 혼례와는 다르게, 메소포타미아 문화에서 결혼은 여러 금전관계가 얽혀 있는 상당히 복잡한 시스템을 갖고 있습니다. 일단 약혼 시에 신부는 친정아버지로부터 받은 결혼지참금을 가지고 옵니다. 이 지참금은 남편의 소유로 귀속되지 않습니다. 혼인관계가 종료된 경우 (사별이나 이혼 등) 이 결혼지참금은 여자가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종잣돈이 됩니다. 여자가 죽고 나면 이 지참금은 남편이 아닌 그녀의 아이들의 재산이 됩니다. 예비신랑은 약혼 시 일종의 “보험금”와 신부 측 부모에게 줄 “혼인비용(보통 “bride-price”라고 합니다)”을 지불해야 합니다. 만약 예비신랑이 마음이 바뀌어 혼인을 취소하고 싶어지면, 보험과 혼인비용 모두 빼앗기게 됩니다. 만약 신부 측 아버지가 약혼을 취소하고자 하면, 신랑이 가져온 혼인비용의 두 배를 벌금으로 내야합니다. 만약 다른 집안 사람들이 신부 측 아버지를 찾아와, 그 남자 말고 우리 아들하고 결혼시키자고 설득해서 약혼이 취소된다면, 신부 측 아버지는 응당 혼인비용의 두 배를 물어줘야 하는 것뿐 아니라, 파혼의 원인을 제공한 집안과의 혼사도 성사될 수 없습니다. 만약 여자가 결혼하지 않고 성전에 속한 여사제가 되기로 한다면, 그녀의 아버지는 결혼지참금만큼의 재산을 그녀에게 주어야 합니다. 사회적 계층에 따라서도 아주 세밀한 차이들을 보이는데, 결혼지참금이나 혼인비용 등을 낼 수 없는 형편의 사람들인 경우, 또 그에 따른 아주 복잡한 계산법이 존재합니다.


    이렇듯,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결혼은 양가 집안뿐 아니라 차후에 생길 후세에까지 이르는,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러기에 더더욱, 이 제도의 바깥에 존재하게 되는 사회구성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섬세한 보호망을 구축하게 됩니다. “최초의 성문법”이라 (잘못) 불리는 기원전 18세기의 함무라비 법전은 “정상적인 가족제도” 속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 특히 여성들의 경우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각주:3] 몇가지 예를 들자면, 


128. 한 남자(“아윌룸”)가 한 여자를 아내로 맞았으나 성관계를 갖지 않는다면, 그 여자는 그 남자의 아내가 아니다. 

130. 한 남자가 다른 남자의, 아직 남자를 알지 못하는 약혼녀를 범했을 경우, 그 남자는 사형에 처한다. 그러나 여자는 죄가 없다. 

134. 한 남자가 전쟁포로로 잡혀간 후 그 집에 먹을 것이 없어서 아내가 다른 집으로 시집을 갔다면, 그 여자는 죄가 없다. 

136. 만약 한 남자가 가출해서 도망가버려 아내가 다른 집으로 시집갔는데, 후에 그 남자가 돌아와 아내를 되찾고자 한다면, 그가 자신의 집에서 도망쳤기 때문에 아내는 (전)남편에게 돌아갈 의무가 없다. 

137. 만약 한 남자가 아내와 이혼하기를 원하는데 그들 사이에 아이들이 있다면, 여자가 아이들을 양육할 수 있도록 그녀의 (결혼 시에 가져온) 지참금에 더하여 남자 자신의 동산 및 부동산의 일부를 떼어주어야 한다. 그녀가 아이들을 다 양육했다면, 아들 한 명에게 줄 유산에 해당하는 만큼의 재산을 여자에게 상속해야 한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남자(직역: “그녀의 마음의 남자”)와 결혼할 수 있다. 

142. 만약 여자가 그녀의 남편에 대해 “당신은 나에게 결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고발한 경우, 그녀는 자신의 말을 입증할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만약 그녀가 옳다고 입증되면 그녀는 아무 잘못이 없다. 그녀는 자신의 지참금을 가지고 자신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Code of Hammurabi 1&2>


    물론 함무라비 법전은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체제를 유지하려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개인의 권리, 특히 여성의 권리는 체제유지를 위해 희생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약혼관계나 혼인관계 파탄의 귀책사유가 여자에게 있지 않는 경우, 고대 바빌로니아 사회는 여성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법적이고 경제적인 보호장치들을 마련하였습니다. 이런 사회보장제도는 남편과 사별한 미망인이나, 의지할 아들이 없는 여성들까지 포함합니다. 또한 결혼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독신의 성전 여사제들에 대해서도 상당히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습니다.


<Code of Hammurabi 3>


    그러면, 이렇게 중요한 “결혼제도” 밖에 존재하는 동성 간의 관계는 어떠했을까요? 보테로는 사회적인 낙인이나 법적 제재를 전혀 받지 않고 아주 자유로이 동성과의 관계가 존재했을 거라 주장합니다.[각주:4] 이렇게 그가 주장하는 근거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법이 이 문제에 대해 거의 침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동성관계에 대한 제재가 없으니 아마 자유로웠을 것이라는 셈인데, 사실 보테로가 찾지 못했을 뿐, 꽤나 근거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마리’라는 고대 바빌로니아의 도시국가의 왕 짐리-린(Zimri-lin)의 아내가 쓴 편지에는, 남편 짐리-린과 함무라비 왕 둘 다 남자 애인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주문 연감(Almanac of Incantations)”이란 문헌에는 각종 다양한 사랑에 대한 기도문이 열거되어 있는데, 거기에는 남자의 여자에 대한 사랑, 여자의 남자에 대한 사랑뿐 아니라 남자의 남자에 대한 사랑도 같은 정도의 중요성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각주:5] 흥미롭게도 여성 간의 동성관계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슘마 알루(Šumma ālu)”라 불리는 문헌은 사람의 성적 행위가 그의 미래에 미치게 될 영향을 예측하는 일종의 지침서인데, 여기에는 다섯 가지 경우의 동성관계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각주:6]


1. 만약 한 남자가 자신의 “친구(동등한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와 성적 관계를 갖는다면 (직역: “뒤에서 성교를 한다면”), 그는 그의 동료들 중에서 으뜸이 될 것이다. 

2. 만약 감옥에 갇힌 남자가 성적 욕구가 넘쳐 남성들과 관계를 맺고 싶어진다면, 그에게는 불운이 닥칠 것이다. 

3. 만약 남자가 남성 사제와 관계를 가지면, 근심에서 벗어날 것이다(?). 

4. 만약 남자가 궁정관리와 관계를 가지면, 일년동안 근심에 쌓일 것이나, 그 후엔 괜찮아질 것이다. 

5. 만약 남자가 노예와 관계를 가지면, 아주 험난한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각주:7]


    사실 이 정도를 제외하고는 그 엄청난 양의 메소포타미아 문헌들 중 동성관계를 언급한 부분을 찾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이 시대에 동성관계가 일반적이었다는 식의 보테로 같은 해석은, 몇 안 되는 문헌들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한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슘마 알루를 자세히 들여다 보아도, 1번의 경우만 분명히 긍정적이고 나머지는 부정적입니다. 3번의 경우는 해독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사실 중기 앗시리아 시대(기원전 15세기 경)의 법률은 ‘아윌룸’이 동등한 사회적 신분의 다른 ‘아윌룸’과 동성관계를 맺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 외의 경우, 즉 아윌룸이 자신보다 낮은 신분의 사람들과 동성이든 이성이든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언급이 없다는 것이 곧 그런 사회적 관계를 용인하거나, 심지어 널리 퍼져 있었다고 판단할 근거가 되지는 못합니다. 슘마 알루에 나타난 동성관계에 대한 표현들이 대부분 부정적이긴 하지만 법적 처벌의 대상으로까지 취급되지는 않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슘마 알루가 법률문서가 아니라는 장르적 특성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여 더 많은 자료가 나타날 때까지 판단을 보류하는 것이 보다 “안전한” 태도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의 관심은 사회를 유지시키는 근간인 결혼관계에 거의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결혼은 두 개인 사이의 관계를 한참 벗어나, 양가의 모든 구성원들뿐 아니라,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후세들까지 고려해야 하는, 게다가 혼인관계가 중단되거나 파탄나는 각종 다양한 경우의 수를 염두에 두어야 하는 아주 골치 아픈 문제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회의 “노예”들을 생산하기 위해 무조건 아이만 열심히 낳으라는 어느 나라의 미혼 대통령과는 다르게, 이 고대인들은 결혼제도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의 복지까지 걱정을 했다는 것입니다. 


ⓒ 웹진 <제3시대>


  1. 함무라비 법전 132. [본문으로]
  2. Jean Bottéro, Everyday Life in Ancient Mesopotamia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92), 109. 여기서는 보테로의 번역을 의역했음을 알립니다. [본문으로]
  3. 함무라비 법전의 연대를 BC 1726년 정도로 잡는다면, 우룩아기나(Urukagina)의 법전은 그보다 600년 가량 앞선 BC 2375년, 우르남무(Urnammu)는 2100년, 에쉬눈나(Eshnunna)는 1750년 경의 것으로, 함무라비의 법전은 어떤 독창적인 성과가 아니라 그 이전부터 내려오던 성문법과 관습법을 정리한 것입니다. 만약 발굴이 더 진행된다면 우리는 더 많은 증거들을 찾게 될 것입니다. [본문으로]
  4. Bottéro (1992), 100. [본문으로]
  5. David Greenberg, The Construction of Homosexuality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8), 126. [본문으로]
  6. 슘마 알루는 120 여개나 되는 판에, 천 개가 넘는 주문들이 있습니다. [본문으로]
  7. Martti Nissinen, Homoeroticism in the Biblical World: A Historical Perspective (Augsburg Fortress, 1988), 2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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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의 Sex & Sexuality – "그들도 우리처럼"





송민원
(시카고 대학 고대근동학과 Ph.D. Candidate)


 

  3. 고대 이집트의 Sex & Sexuality – "그들도 우리처럼"

  

       “너는 발기를 못할 것이야, 널 고자로 만들어 버리겠어, 오 아포피스여, 태양신 레의 적!” – 이집트 사자의 서


      여태껏 살펴본 그리스와 로마와는 전혀 다른 세계, 고대 이집트에 도착했습니다. 그리스와 로마에서 “사회적 신분”이나 “계급”에 따라 각 사회계층의 Sex & Sexuality가 달라졌다면, 이집트에서는 신분이나 계층에 따른 변화를 찾기 어렵습니다. 굳이 찾자면, 파라오를 비롯한 왕족 일가에 한한 근친혼의 풍습 정도 들 수 있겠습니다. 이 땅에서 신의 대리인을 자처하던 이집트의 왕족들이 신들을 모방하여 근친혼을 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태양신 라의 손주인 땅의 신 게브와 밤하늘의 여신 누트처럼, 여동생 네프티스와 결혼한 세트, 그리고 그를 질투한 오시리스처럼, 이집트 왕실의 계보 역시 복잡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이집트 18왕조 아흐모세 1세는 그의 누이 아흐모세 네페르티리와 결혼해 아이들을 낳았고, 여자 파라오인 하셉수트는 이복형제 투트모세 2세와 혼인하였습니다. 아멘호텝 3세와 그의 아들 아케나텐(아멘호텝 4세)은 둘 다 자신들의 딸들과 결혼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근친혼에 대한 금지나 비판이 이집트 문헌에서 발견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근친혼이 이집트 전체에 널리 퍼져있던 풍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일단 이집트 왕실에서 근친혼이 신화 속에서처럼 실제로 자주 일어난 일이 아니었고, 게다가 이집트의 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한 서구학자들의 무지가 사태를 더 악화시킨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집트어의 “자매”라는 말은 반드시 같은 부모 밑에 태어난 여자형제를 가리키지 않습니다. 아내나 애인을 부르는 호칭 역시 “자매”이고, 심지어 이모나 조카한테도 같은 호칭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라는 호칭 역시, 생물학적 부모 외에도 조부모나 그 위의 조상들에게도 적용되었습니다. 우리 문화에서 남편을 포함해 연상의 남자들을 “오빠”라고 부르는 것, 음식점 종업원을 이모라고 부르는 것처럼,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이에서도 형, 동생, 누나, 언니, 아저씨, 아줌마라 부르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렇게 “가족의 언어”로 사회적 관계를 표현하는 것에 익숙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동양적”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근대 서구학자들이 이러한 상징적인 가족의 언어를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서 근친혼이 이집트 왕실 혼례의 규범인 듯한 오해가 생겼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한 가지 더 고려해야할 것은 이집트 왕실에서 “결혼”의 의미는 남녀가 혼인하여 자녀를 낳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딸과 결혼한 파라오들의 경우, 아버지와 딸이 실제 부부관계를 갖는다는 것이 아니라, 딸들에게 “신의 아내”라는 호칭, 그리고 그 호칭에 걸맞는 대우를 내리기 위한 “정치적 행위”로 보는 게 더 타당합니다.   


<Mummy with a pennis>


    그러면, 고대 그리스나 로마, 다른 고대근동지역의 문화와는 다른 이집트만의 독특한 Sex & Sexuality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우선 죽은 사람들의 성생활까지 염려하던 고대 이집트인의 내세관을 들 수 있습니다. 사실 사람이 죽은 후에 현세의 삶과 비슷한 삶이 내세에도 계속된다는 믿음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이나 메소포타미아 등 고대근동 전역에서 발견됩니다. 제사 때 조상들에게 바치는 먹거리들은 내세에서도 사람들이 먹고 마셔야 한다는 믿음을 반영하죠. 하지만 죽은 후에도 성생활까지 계속된다는 내세관은, 제가 아는 한 이집트가 유일합니다. 이집트인들은 죽은 사람들을 장사지낼 때 이 부분까지 아주 세심하게 배려했습니다. 남성의 성기 모양이나 여성의 가슴 모양을 흉내낸 부속물을 미이라에 부착시키기도 했고, 무덤 안에 요즘의 섹스토이 같은 다산의 상징물들을 넣어놓기도 했습니다. 


<Egyptian Fertility doll>


    이렇게 “노골적인” 상징들 말고도 이집트의 무덤에서는 다양한 성적 상징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무덤에서 발견되는 가장 흔한 그림은 갈대로 뒤덮힌 늪에서 사냥하는 것이나 혹은 잔치상을 벌이는 장면입니다. 이런 그림들은 아마도 “(막대기를) 던지다”라는 이집트어 동사가 “창조하다, 자손을 낳다”라는 의미가 있고, “창을 던지다"라는 동사는 “사정하다, 임신시키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생겨난 일종의 언어유희일 것입니다. 또한 이집트어에서 “갈대 숲을 거닐다”라는 말은 우리나라의 “물레방앗간”에 담긴 성적 상상력과 맥이 닿는, 남녀상열지사를 뜻합니다. 잔치상이 묘사된 무덤 그림에서는 주로 다산의 상징인 거위나 오리, 푸른 수련 등의 그림이 그려져있고,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거나 나체인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이렇듯 “그들도 우리처럼” 죽어서도 성행위를 하며 자손을 낳는다는 믿음은 이집트를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발견되지 않은 이집트만의 독특한 발상입니다.


    또한 난자와 정자의 결합으로 생명이 잉태된다는 의학적 지식이 없었던 이집트인들은 생명의 탄생에는 남성의 정자만으로 충분하다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스스로 있는 자”인 창조신 아툼(아텐)은 자위행위를 통해 쌍둥이 자녀를 얻습니다.


    “오 아툼이여, 그는 온(헬리오폴리스)에서 자위행위를 하였다. 자신의 성기를 움켜쥐고서 절정을 맞이하였다. 그리하여 쌍둥이 슈와 테프누트가 탄생하였다.” 

(피라미드 텍스트 1248-1249)[각주:1]


    생명을 창조하는 힘이 정액에 있다고 믿는 고대 이집트에서는 따라서 남성의 성적 능력이 특히 강조됩니다. 기원전 4천년대부터 존재했던 가장 오래된 신들 중의 하나인 창조신 “민”의 상징은 거대한 남근입니다. 보통 이렇게 오래된 신들은 신화 속에서 사라지거나 이름만 남아 그야말로 유명무실하게 되는데 반해, 이 신은 다른 젊은 신들과 계속 융합하여 헬레니즘 시대까지 그 놀라운 생명력을 유지합니다.[각주:2] 이렇게 남성이 강조되는 사회에서는 발기불능이야말로 가장 큰 저주이겠습니다. 사후세계의 안내서인 이집트 사자의 서에 따르면, 죽은 자들은 이집트 버전의 지옥의 신인 아포피스(아펩, 혹은 아페피)를 만나면 그를 발기불능으로 만드는 주문을 외워야 합니다.[각주:3] 




<Egyptian deity Min>


    마찬가지로 여성들 역시 임신, 출산, 다산이 강조됩니다. 지혜와 용기로 죽은 아들 호루스를 살린 어머니 여신 이시스야말로 고대 이집트 여성들의 롤모델이었습니다. 반면 이시스의 자매이자 전쟁의 신 세트의 아내인 네프티스(네베트-헷)는 아이를 낳을 수 없었습니다. 이시스가 생명과 재생의 여신이라면 네프티스는 죽음과 사막의 여신이었습니다. 구약성서에서 많이 등장하는 장면들처럼, 이집트 사회에서도 자녀가 많은 여자들이 복받은 여성으로 여겨졌습니다.


    남성의 생산능력과 여성의 출산능력이 강조되는 사회에서 혼외정사는 당연히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두 형제의 이야기”라는 문헌을 보면, 간통을 저지르다 발각된 여인이 살해당하여 그 시체가 개에게 던져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람이 죽기 전에 자기 일생을 뒤돌아보며 적은 “고백문”들에는 “나는 혼인한 여성의 집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라는 대사들이 나오기도 하죠.[각주:4] 이 고백문들은 “부정적 고백(Negative Confessions)”라 불리는데, 그 내용이 “나는 무엇 무엇을 하지 않았습니다”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도둑질, 살인, 간통, 신성모독 등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 내세에서 더 나은 삶을 얻기 위한 전제조건이었던 듯 합니다. 하지만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라는 고백도 나오는 것을 보면, 고백자들이 반드시 사실대로 고백한 것만은 아닌 듯 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고대 이집트 문헌에서 혼외정사를 법적인 차원에서 다루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혼인예식이나 결혼생활 전반에 관한 법률적 문헌이 발견되지 않은 것을 보면, 이집트에서 결혼이란 법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 다루어지는 문제로 보여집니다. 결혼이란 두 남녀가 한 집에 같이 살게 되면서 시작되고, 둘 중 하나가 집을 떠나면 그 관계는 종료됩니다. 결혼이라는 것 자체가 법적인 문제가 아니므로, 혼외정사 역시 법적인 문제가 될 수 없었습니다. 후대의 신왕국 시대에 오면 혼외관계에 관한 법률적 문제를 다루는 파피루스들이 발견되긴 합니다만, 대부분 강간이라든가 강도 등 법률적 문제들과 연관된 경우들입니다.[각주:5]


    그렇다면 생산-출산과 관련이 없는 동성 간의 성적 관계는 어땠을까요? 사실 이집트 문헌에서 이 부분에 관한 자료는 극히 적습니다. 일단 신화에서는 세트와 호루스의 일화가 유명한데요, 세트의 꾀임에 빠져 세트와 호루스 두 남신들 간에 성관계를 갖게 되는데, 이 때 호루스의 기지로 세트는 자신의 정액을 먹게 되어 임신하게 됩니다. 정액만으로 임신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계로 내려오면, 중왕국 시대의 문헌 “네페르카레와 사세네트 이야기”에서 네페르카레 왕은 그의 장군들 중 한명과 밤에 몰래 성적 관계를 갖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다른 사람들이 이 사건을 엄청난 스캔들로 여긴 것을 보면 이 시대에 동성 관계를 부정적으로 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앞에 언급한 “부정적 고백문”에서도 “나는 다른 남자와 성적 관계를 갖지 않았습니다”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여성들 간의 동성 관계에 관한 이집트 문헌은 거의 없습니다. 거의 유일한 문헌이라 할 수 있는 P.Carlsberg XIII는 꿈 해몽에 관한 텍스트인데, 여성이 다른 여성과 잠자리를 갖는 꿈은 불길한 징조라고 되어있습니다. 이렇듯 이집트 사회에서 동성 간의 성적 관계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이 역시 법적 처벌의 대상은 아니었습니다. 이집트의 Sex & Sexuality는 법률적 차원의 문제가 아님을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이불 속의 일을 국가가 처벌할 수 없다는 이유로 21세기나 되어서야 간통죄를 폐지한 대한민국에 비한다면, 반 만년 이상 고대 이집트가 앞서 있는 듯 보입니다.


<Niankhnum>


    고대 이집트의 동성애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두 사람이 바로 니앙크눔과 크문호텝입니다. 사카라에서 이 두 남자의 합동묘를 처음 발견한 고고학자들은 이 두 남성이 마치 부부처럼 묘사된 그림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곧 이 둘에 관한 다양한 이론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이 둘이 형제다, 쌍둥이다 등등 호모포빅한 해석들이 제기되었습니다. 이 둘은 이집트 왕실의 매니큐어 담당자들이었는데, 파라오의 손톱을 직접 손질하는 꽤나 고위직 공무원이었습니다. 이 무덤에 그려진 그림들과 상형문자들을 통해 이 둘 모두 각기 아내와 자녀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둘의 관계가 정말 무엇이었냐 하는 것은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무덤까지 함께 쓰는 두 동성의 친밀함을 묘사하는 것이 고대 이집트에서는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Turin Erotic Papyrus>


    이렇듯 고대 이집트는 신화나 일상생활에서 다양한 성적인 표현을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점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바로 튜린 파피루스라 불리는 파피루스 55001입니다. 기원전 12세기 람세스 시절에 만들어진 이 파피루스에는 각종 다양한 체위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이렇게 성적으로 개방적이고 노골적일 리가 없다고 믿었던 초기 이집트 학자들은 이 그림을 인간이 아닌 괴물들의 묘사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학자들의 오랜 노력 끝에 복원된 그림을 보면 아주 선명하게 남녀의 모습이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생명과 성, 죽음과 내세를 아주 자연스런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인 고대 이집트인들이 문화적으로는 현대인들보다 훨씬 앞서 있던 게 아닌가 라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 웹진 <제3시대>

  1. 출처: Ancient Egyptian Worldview Expressions: http://web.archive.org/web/20131116121410/http://www.albany.edu/faculty/lr618/we4.html [본문으로]
  2. 이집트 중왕기 때는 호루스와 융합하여 민-호루스가 되고, 신왕국 때는 아문과 융합합니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그리스신화의 목동의 신 판과 동일시되어 살아남게 됩니다. [본문으로]
  3. R. O. Faulker and O. Goelet (1994), The Egyptian Book of the Dead, 104. [본문으로]
  4. 이 부정적 고백문들의 예들을 보시려면, http://www.touregypt.net/negativeconfessions.htm. [본문으로]
  5. C. J. Eyre (1984), “Crime and Adultery in Ancient Egypt,” Journal of Egyptian Archaeology 70, 9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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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의 Sex & Sexuality – 계급(Class)과 성적 역할



송민원
(시카고 대학 고대근동학과 Ph.D. Candidate)


 

  2. 고대 로마의 Sex & Sexuality – 계급(Class)과 성적 역할

  

      지난 시간 살펴본 고대 그리스의 Sex & Sexuality를 이해하는 키워드는 “사회적 신분(Social Status)”과 “교육”이었습니다. 어린 남성이 사회의 주체인 성인이 되기 위한 과정의 각 단계 속에서 그에 걸맞는 성적 역할이 주어지고, 한 명의 개체에게 있어 그 역할은 나이에 따라 변화합니다. 오로지 그리스 시민사회의 남성에게만 이 역동적이고 주체적인 성적 역할이 주어지고, 그 외 여성이나 외국인에게는 고정되고 수동적인 성역할이 주어집니다. 물론 이러한 규정은 고대 그리스의 여러 도시국가들의 차별성을 간과한 지나친 단순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수천년에 이르는, 거리로 따져도 수천킬로에 다다르는 엄청나게 복잡한 고대 근동 전체의 전반적인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단순화의 오류를 범할 수 밖에 없음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고대 폼페이의 사창가>


    고대 로마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는 제목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계급(Class)”입니다. 로마에서는 출신계급이 자유시민이냐 아니냐가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즉, 자유시민만이 능동적인 성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뿐, 그 외의 계급은 수동적인 성 역할을 부여받습니다. 사실 고대 로마의 계급은 근대사회의 유산계급, 무산계급 등에서 말하는 계급과는 많은 차이가 있고, 오히려 그리스의 “사회적 신분”에 많은 부분이 겹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여기서 계급이란 용어를 쓰는 것은 그리스의 “사회적 신분”이란 용어와의 약간의 뉘앙스 차이를 보다 극명히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리스의 “사회적 신분”과 로마의 “계급”이 성적 역할에 있어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예를 들어 설명해볼까요? 고대 그리스의 성인남성은 자신보다 아래의 신분을 가진 남성 혹은 여성과 성적 관계를 갖는 것이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았습니다. 즉, 하층민이나 외국인과의 성적 접촉은 자신의 신분을 낮추는 행위로서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반면에, 로마에서는 자유시민(free-born)계급이 아닌 어떠한 대상도 성적인 상대로서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특히 노예는 자유시민의 “소유물”이기 때문에 주인 마음대로 언제든 성적 대상물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각주:1] 물론 다른 사람의 노예의 경우 함부로 다룰 수는 없었습니다. 다른 자유시민의 사유재산을 침해하는 것이니까요.  


    가장 초기의 로마 극작가 중의 한명인 플라우투스(Titus Maccius Plautus, c. 254-184 BC)의 “쿠르쿨리오(Curculio)”라는 작품을 보면 이런 점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포주 카파독스에게는 플라네지움이라는 아리따운 여자노예가 있었는데, 자유시민인 파에드로무스가 그녀를 보고 사랑에 빠집니다. 다른 사람의 노예이기 때문에 합법적인 댓가를 지불해야 해서 파에드로무스는 돈을 빌리려고 합니다. 하인 쿠르쿨리오의 기지로 돈을 빌리게 된 파에드로무스는 포주 카파독스와 노예매매 계약서를 작성하는데, 이 계약서의 조항은 “만약 플라네지움이 자유시민으로 판명이 되면 계약은 취소되고 돈은 원래 주인에게 돌려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연극의 결말은, 결국 플라네지움이 자유시민 출신임을 알게 되어, 파에드로무스는 플라네지움과 주인과 노예 관계가 아닌 남편과 아내로서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는 해피엔딩입니다.[각주:2]


    대표적인 19금 추천미드인 “스파르타쿠스”를 보면, 검투사들의 주인인 바티아투스와 그의 아내 루크레티아가 노예와 검투사들과 자유로이 성행위를 하는 장면들이 (자주!) 나옵니다. 물론 아내의 경우 남편 몰래 검투사와 바람을 피웁니다만. 이런 장면들은 꽤나 역사적인 고증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와 비슷하게 로마에서도 사회의 주체는 자유시민 남성입니다. 자유시민 남성의 몸은 침해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때려서도, 육체적인 징벌이 가해져서도 안 됩니다. 만약 자유시민 남성이 강간을 당할 경우 살인에 해당하는 범죄로 여겨져서 가해자에게는 사형선고가 내려졌습니다. 이것은 자유시민 아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동에 대한 성범죄를 금지하는 고대 로마의 법인 lex Scantinia에 따르면, 자유시민 남자아이와 성관계를 가질 경우 사형에 처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 경우 상대방이 로마의 자유시민인 경우 실제 사형이 언도되지는 않았던 듯 합니다. 이 lex Scantinia라는 법의 존재 때문에 고대 로마는 그리스와 다르게 동성애를 엄격히 금지했다는 식으로 잘못 이해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이 법은 동성애 금지법이 아니라, 자유시민 남성 (아동) 보호법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합니다. 자유시민이 아닌 노예나 외국인과의 동성관계에 대해서는 아무런 금지조항이 없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그리스와 로마는 크게 갈라집니다. 교육 차원에서 (서로 나이 차이가 있는) 동성간의 성적 관계를 장려하던 그리스와는 달리, 로마의 남자아이들은 자신의 몸이 침범당할 수 없다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배웠습니다. 또한 노예나 외국인과의 성관계를 바람직하지 않게 보던 그리스의 관습과는 다르게, 로마의 자유시민에게는 노예나 외국인을 마음대로 처분할 권리가 있었습니다. 또한 동성간의 관계를 보자면, 로마 자유시민 남성이 성행위에 있어서 수동적인 입장을 보이는 경우만을 제외한 나머지 경우는 사회적으로 문제시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자유시민 여성들은 어떠했을까요?


    자유시민 여성의 경우 노예와 마찬가지로 수동적인 성적 역할만을 부여받았습니다. 하지만 타인의 아내에 대한 강간이나 불륜은 철저히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여성의 몸을 사회적으로 보호한다기 보다는 남자의 “재산/소유물”을 보호하려는 것이었죠. 미혼 여성의 경우 소유권은 아버지에게 있고, 기혼인 경우 남편에게 있었습니다. 기원 전 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최초의 로마법인 leges duodecim에 따르면, 여성이 불륜을 저지르는 경우 불륜상대자 두 명 모두 사형에 처하는데, 이 때 사형집행은 여자쪽 집안사람들에 의해 행해집니다. 일종의 “명예살인”인 셈이죠. 나중에 이 법은 많이 완화되는데, 기원전 1세기의 아우구스투스가 제정한 법에는 불륜이 발생할 시 경우에 따라 다른 형벌이 주어집니다. 유배나 재산압류, 혹은 이혼. 물론 사형에 처해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만약 불륜이 벌어진 장소가 미혼여성의 아버지 집이거나 기혼여성의 남편 집일 경우, 로마 자유시민 남성의 사유재산에 대한 심각한 침해로 여겨져서 사형을 언도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여성들 사이에서 동성간이든 이성간이든 자유로운 성관계가 이뤄졌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드라마 스파르타쿠스의 루크레티아처럼 남편 몰래나 가능했을 듯 합니다.


    방만한 그리스문화와는 다르게 로마는 훨씬 검소하고 엄격한 이미지가 있긴 합니다. 세네카 같은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이 자기절제를 주장하면서 결혼제도 내에서만의 성행위를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갈레누스(Claudius Galenus, 129-216 AD)나 소라누스(Soranus of Ephesus) 같은 의사들은 극단적인 금욕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금욕이 남자를 더 강하게 만들어준다는 믿음에서요. 하지만 이러한 일부 문헌들로부터 고대 로마의 성풍속을 금욕적이었다고 규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대중적인 문화를 잘 드러내 보여주는 고고학적 유물들로 살펴보자면 고대 로마는 성을 아주 자연스런 삶의 한 부분으로 여겼음에 분명합니다. 일단 사창가가 상당히 발달했습니다. 국가에 의해 경영되는 공창제도로까지 보기는 어렵지만 여러가지 법률적 규정에다 세금까지 부여한 것을 보면 말입니다.[각주:3] 사창가 벽에는 로마의 포르노에 해당하는 아주 노골적으로 성행위를 묘사한 벽화들이 있었습니다. 또한 “스핀트리아(spintria)”라 불리는 동전들이 서기 1세기 경을 중심으로 많이 발굴되었는데, 각 동전의 뒷면에는 1부터 16까지의 숫자가 새겨져 있고, 앞면에는 각기 다른 체위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이 동전이 사창가에서 통용되던 화폐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황제의 얼굴이 새겨진 화폐를 가지고 사창가에서 매음을 하려다 사형당한 경우도 있었거든요. 하지만 이 학설은 좀 문제가 있는 게 이 스핀트리아라는 동전이 사창가에서 발견된 게 아니라 주로 공중목욕탕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여 이 동전들이 아마도 당시 어떤 종류의 게임에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암튼 이 동전들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동전 : 스핀트리아(Spintria)>


    또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그리스 신화에서 그리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 않았던 풍요와 남근의 신인 프리아푸스(Priapus)가 로마시대에 굉장히 널리 숭배되었다는 점입니다. 프리아푸스에게 헌액된 성전 중에 현존하는 것은 없지만, 여러군데 있었다는 문헌기록은 남아 있습니다. 소아시아와 이탈리아 본토의 가정집, 특히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거대한 남근을 가진 프리아푸스의 상이 많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풍요의 상징으로서 프리아푸스가 고대 로마의 대중문화/민중종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듯 합니다. 고대로마가 멸망하고 기독교화된 한참 이후에도 이 프리아푸스의 거대한 남근은 여전히 대중들에게 사랑 받았습니다. 13세기 북영국과 스코틀랜드의 역사를 기록해놓은 “라너코스트 연대기(Lanercost Chronicle)”에는, 어느 농부가 소들이 떼죽음을 당하자 질병을 막기 위해 프리아푸스 신상을 세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각주:4] 캐나다의 몬트리올에는1980년대에 세워진 Église S. Priape (St. Priapus Church) 라는 교회가 있기도 합니다.



<프리아푸스>


    이렇듯 고대 로마는 그리스와 다른 자신만의 Sex & Sexuality를 발전시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 로마와는 또 다른 성개념이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발견됩니다. 다음 시간에는 고대근동지방의 Sex & Sexuality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문헌>

Bonnefoy, Y. (1992), Roman and European Mythologies, Chicago. 

Clarke, J. R. (1998), Looking at Lovemaking: Constructions of Sexuality in Roman Art, 100 BC – AD 250. Berkeley.. 

Gaca, K. L. (2003), The Making of Fornification: Eros, Ethics and Political Reform in Greek Philosophy and Early Christianity. Berkeley. . 

Kiefer, O. (2000), trans. G. & H. Highet, Sexual Life in Ancient Rome, New York. . 

Skinner, M. B. (2005), Sexuality in Greek and Roman Culture, Malden, MA. . 

Williams, C. A. (1999), Roman Homosexuality: Ideologies of Masculinity in Classical Antiquity. New York. . 



ⓒ 웹진 <제3시대>

  1. 노예들에 대한 처우는 하드리아누스(76-138 AD) 황제의 법률개정 때 좀 나아집니다. 그는 노예제도 자체는 인정했지만, 주인이 함부로 노예들을 죽이거나, 검투사나 창녀로 만들 수 없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아는 한, 주인이 노예를 성적 대상으로 삼는 것에 대한 금지는 없었던 듯 합니다. http://spartacus-educational.com/ROMhadrian.htm 참조. [본문으로]
  2. https://en.wikipedia.org/wiki/Curculio_(play) [본문으로]
  3. 사창가에 세금을 부여한 최초의 로마 황제는 그 유명한 칼리굴라(Gaius Julius Caesar Augustus Germanicus, 12-41 AD)입니다. [본문으로]
  4. Yves Bonnefoy, Roman and European Mythologies (139-142),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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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Sex & Sexuality – 사회적 신분과 성적 역할



송민원
(시카고 대학 고대근동학과 Ph.D. Candidate)


 




  머릿말 - 고대근동의 Sex & Sexuality 연재를 시작하며

  

      “고대근동의 Sex & Sexuality”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단순합니다. 구약과 고대근동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보수신학뿐 아니라 소위 진보신학이라 불리는 진영에서조차 무분별하게 고대근동의 자료들을 전용하는 게 불편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백인의 눈으로 성경을 읽어왔다는 사실을 충격적으로 알려준 해방신학의 기여에 무한한 경의를 표하면서도, “바알 = 맘몬 = 물질숭배 = 제국주의”로 이어지는 해방신학의 도식이, 우가릿어로 된 바알 숭배자들의 글을 읽은 사람의 눈엔 많이 불편해보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은 우리나라의 김제 평야나 남캘리포니아에 비하면 그야말로 척박하기 그지 없습니다. 바알의 “풍요”는 그저 제 때 비가 와 주고, 갓 태어난 아이들이 좀 덜 죽기를 바라는 부모의 간절하지만 소박한 바램에 지나지 않습니다. 바알의 “번영신학”을 20세기나 21세기로 그대로 끌고 올 수는 없습니다. 당시의 “제국”은 이 시대의 제국들의 동의어가 될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요즘 많이 논의되는 퀴어비평이나 동성결혼 합법화 논란 등에서 고대 그리스나 로마, 고대근동의 동성 간의 성적 행위를 21세기의 LGBTQI와 바로 연결시키는 것은 그 고리가 무척 빈약합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와는 시-공간적, 문화적 배경이 많이 다른 성서의 언표들을 지금 시대에 직접 적용할 수 없는 것처럼, 고대근동의 문헌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로부터 헬레니즘과 비잔틴에 이르는 씨줄과, 또한 고대근동과 고대 이스라엘로부터 유대교와 랍비문헌으로 이어지는 날줄 사이에서, 시대별로 얽히고 풀어지는 지점들을 잘 이해해야만 성경을 비롯한 고대 문헌들이 현재 우리에게 어떤 말을 들려주는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고대인들의 여러 다양한 삶의 측면들 중 특별히 “Sex & Sexuality”라는 주제를 정한 이유 역시 단순합니다. 자극적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교회와 신학계에서 진보와 보수의 전선이 (Homo-)Sexuality 문제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시사적”인 자극성에다,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의 삶과 문화 근간에 흐르는 어쩌면 가장 중요하고 보편적인 테마(중 하나)라는 “비시사적/몰시사적”인 형이하학적 자극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연재는 동성애, 여성성, 순결(처녀성), 남과 여 등 고대인들의 인간관을 전반적으로 살펴볼 계획입니다. 최대한 많은 일차자료들을 소개함으로써 앞으로의 신학논의를 좀 더 정교하고 풍성하게 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1. 고대 그리스의 Sex & Sexuality – 사회적 신분과 성적 역할  



“행복하여라, 나체로 운동을 한 후 집에 가서 아름다운 소년과 하루종일 잠을 자는 사람이여”
(메가라의 테오그니스, 기원전 6세기)



      역사의 어느 시대와 문화를 막론하고, “결혼” 혹은 그에 준하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공간 안에서의 성인 남녀 간의 성적 결합을 금기시하는 사회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재생산을 통한 그 사회의 존속과 유지를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이를 제외하고, 한 사회의 성개념에 있어서 사회적으로 혹은 도덕적으로 용인된 “정상”이라는 범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연 그 사회가 무엇에 “비정상”이라는 낙인을 찍었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럼, 다음의 예에 있는 사람들 간에 성적 결합이 있을 경우, 고대 그리스에서 “비정상적인” 성행위로 간주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1) 25세 미혼남성과 15세 소년
      2) 25세 미혼남성과 25세 미혼남성
      3) 35세 기혼남성과 25세 미혼남성
      4) 17세 소년과 13세 소년
      5) 여성과 여성
      6) 그리스 남성과 외국 여성 


      고대 그리스의 세계가 각 도시국가로 나뉘어져 있는데다 시간적으로도 천 년에 이르는 세월에 걸쳐있기 때문에 이 문제에 단순하게 답을 할 수는 없습니다만, 고대 아테네의 경우, 이 여섯가지의 예들 중 사회적 용인된 “정상적인” 관계는 1번뿐, 나머지는 “비정상적”입니다.
       현대적 개념의 소아성애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고대 그리스의 Sex & Sexuality를 이해하려면 두 가지를 알아야 하는데요, 하나는 그리스 남성의 나이에 따른 사회적 위치(status) 변화, 그리고 각 사회적 위치에 부여된 성적 역할입니다.[각주:1] 고대 그리스의 남자 아이는 대략 12세부터 18세까지 “소년”으로 분류되고, 그 이후 18세부터 30세까지는 “미혼 성인”입니다. 보통 서른에 결혼을 해서 “기혼 남성”으로서 그리스 시민사회의 당당한 한 주체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 “주체”로서의 자유시민은 성적 역할에서도 주체적입니다. 그리고 여성이나 소년은 비주체적인 사회적 신분으로, 성적 역할에서도 수동적입니다. 이것을 Kenneth Dover는 “에라테스(ἐραστής)”와 “에로메노스(ἐρώμενος)”라는 용어로 설명하고 있는데요, 에라테스는 우리말로 “사랑을 주는 자” 정도로 번역될 수 있겠고, 에로메노스는 수동형으로 “사랑을 받는 자” 정도 될 수 있겠습니다(K. J. Dover, 1978). 성 관계에서 에라테스는 “삽입하는 자”, 에로메노스는 “받아들이는 자”로 이해됩니다. 


<에라테스와 에로메노스>

      고대 그리스의 남자아이에게 에로메노스로부터 에라테스로 성장해 가는 과정은 사회의 주체가 되기 위한 교육의 과정입니다. 십대 소년은 에로메노스의 수동적 역할을 충실히 배움으로써, 그 이후 에라테스의 주체적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수동적 에로메노스 단계를 거친 십대 소년은 이십대가 되면 에라테스의 역할을 부여받게 되어, 그 자신의 에로메노스를 갖게 됩니다.[각주:2] 이십대 청년의 이 동성 간의 관계는 그 자신이 30대가 되어 결혼하게 될 때까지 지속됩니다. 즉, 고대 그리스의 소년과 청년시절의 동성 관계는 “진정한 남자”가 되기 위한 통과의례에 다름 아닙니다.
      그러므로 에로메노스의 단계를 벗어난 에라테스가 계속해서 에로메노스의 역할을 하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해서 “수동적인” 성적 역할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키나이도스(κίναιδος)”라고 불리웠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남성적 역할을 포기하고 “여성화”된 사람으로서,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별종” 혹은 “타자”로 이해되었습니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주체로서의 자유시민이 될 수 없던 여성은, 성적 역할에서도 결코 에라테스가 될 수 없는 영원한 에로메노스였습니다. 그러므로 여성 간의 관계는 사회적으로 인정 받는 정상적인 관계는 아니었습니다. 어느 누군가는 에라테스의 역할을 해야했기 때문입니다. [각주:3]

      또한 외국인의 경우, 상대가 남성이든 여성이든 바람직하게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에라테스-에로메노스는 그리스의 자유시민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과정이지, 결코 외국인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외국인을 “바바리안”이라 부르며, 그들을 태어나면서부터 열등한 민족으로 규정했기 때문에, 그들과의 동성 관계뿐 아니라 이성 간의 혼인마저도 용납될 수 없었습니다. 만약 그리스 자유시민에게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자신의 신분을 낮추는 일로 여겨졌습니다.
      이렇듯 고대 그리스 세계의 동성 간의 성적 관계는 지금 이 시대의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의 문제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뿐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의 Sex & Sexuality는 바로 다음 이어지는 로마 시대의 그것과도 세밀한 부분에서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고대 로마의 Sex & Sexuality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 문헌>
    Davidson, J. (2001) “Dover, Foucault and Greek Homosexuality: Penetration and the Truth of Sex,” in Past and Present 170: 3-51.
    Davidson, J. (2007), The Greeks and Greek Love: A Radical Reappraisal of Homosexuality in Ancient Greece, London.
    Devereux, G. (1967), “Greek Pseudo-Homosexuality and the ‘Greek Miracle’” in Symbolae Osloenses 42: 69-92.
    Dover, K. J. (1978), Greek Homosexuality. London.
    Foucault, M. (1985), The History of Sexuality, vol. 2: The Use of Pleasure, trans. R. Hurley, New York.
    B. Isaac, “Foreigners, Greece and Rome,” in The Encyclopedia of Ancient History, Ec-Ge: 2708-2710.
    Percy, W. A. (1998), Pederasty and Pedagogy in Archaic Greece.


ⓒ 웹진 <제3시대>

  1. 사회적 역할(status)과 sexuality를 연결하는 관점은 G. Devereux(1967)에서 시작해서 K. J. Dover(1978)를 거쳐 M. Foucault(1984)에 이르는 소위 “도버-푸코”모델에서 빌려왔습니다. 여기에 이 관점을 보다 정밀하게 세분화해서 고대 그리스 세계를 정리하려 한 D. M. Halperin까지도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 이 모델은 고대 그리스의 세계를 지나치게 단순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J. Davidson: 2001, 2007). [본문으로]
  2. 도리안들의 경우 대부분 한 명의 에로메노스를 갖는 반면, 그리스 동부 지역에서는 여러 명의 에로메노스를 갖는 게 보편적이었습니다 (W. A. Percy, 1998: 146-150). [본문으로]
  3. “레즈비언”이란 말을 탄생시킨 레스보스의 사포의 경우나, “삽입”을 전제하지 않은 여성 간의 성행위에 대해서는 이후에 따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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