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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8.17 [시선의 힘] Show me the Swag (오종희)

 

Show me the swag




오종희

(본 연구소 회원, 한백교회 교인)



1. 솔직


    고딩 시절 내 지갑을 포함 한 학급 여러 명의 돈이 도난당했다. 굳은 표정의 담임 샘은 아이들 모두에게 눈감으라 한다. 그리고 돈을 훔쳐간 사람은 조용히 손들라 한다. 성과가 없자 모두를 책상위로 올라가게 한 다음 무릎 꿇고 눈감으라 한다. 그리고 훔쳐간 사람은 손들라 한다. 그래도 성과가 없자 솔직하게 손만 들면 죄를 묻지 않겠다고 한다. 역시 성과가 없자 우리는 매일 진짜 도둑 대신 책상위로 올라가 무릎 꿇고 솔직하지 못한 자들이 들어야 하는 훈계를 받아야 했다.  

얼마 전 힙합 경연 프로그램인 엠넷의 <쇼미더머니>에서 프로듀서들이 이미 음악 활동을 하고 있는 참가 래퍼에게 왜 굳이 이 경연에 나오게 됐냐고 묻자 ‘돈 많이 벌고 싶어서’라고 말한다. 그리곤 프로듀서들의 칭찬 같은 반응이 나온다. ‘솔직하네!’ 


2. 쇼미더머니


    ‘지 지 지 지’, ‘쏘리 쏘리 쏘리 쏘리’... 고장난 녹음기 같은 아이돌들의 후크송에 비해서 래퍼들의 가사는 사람 냄새가 난다. 써 준대로 만들어 준대로 입혀 준대로 시키는 대로 인형놀이 같은 아이돌 시스템과는 다른 조금은 이질적인 토템이 작용한다고 해야 할까. 래퍼들이 직접 가사를 쓰고 라임을 짜고 개성이 담긴 플로우를 담아낸다.  

    속사포 같은 랩 테크닉만이 중요 한 게 아니라 ‘자기 서사’라는 문학적인 콘텐츠도 중요 자본이 된다. 그리고 ‘욕’과 ‘디스’는 힙합 문화만의 특이 구성물이 된다. 

사실 이 자기서사, 욕과 디스는 힙합이 대기업 인기 TV 음악 채널을 타고 안방으로 전해질 때 사람들에게 생경하게 느껴지는 대표적인 요소이다. 

    하지만 특정 계층의 하위문화로 시작된 대중음악들이 그렇듯이 아프로-아메리칸의 실존적 상황을 담아내고 에너지를 분출하기에 그것들은 최적화된 표현 방법일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한국이라는 환경으로 옮겨 왔을 때 남의 옷을 걸친 듯 어색 하냐 아님 어색 하지 않냐 이다. 당연히 갱스터야만, 흑인이어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다.  

    미국 백인 래퍼 에미넴의 자전적 영화 <8 mile>에서 주인공 버니래빗 역을 맡은 에미넴은 극 중 흑인 래퍼 파파독과 랩 배틀을 한다. 버니래빗이 펼친 선공에 관중들은 열광하고 파파독은 그만 기가 눌려서 랩 배틀을 포기하고 만다. 버니래빗이 한 디스 내용인 즉 파파독이 유명 사립학교에 다녔고 그의 부모님은 잉꼬부부라는 것, 그리고 버니래빗 자신은 트레일러에서 살며 산전수전 다 겪은 백인 쓰레기라는 거다. 흑인이 백인 같고 백인이 흑인 같은 상황이다. 이 영화 장면만 보더라도 힙합 씬에서 그들만의 합의되고 상징화된 토템이 백인 래퍼에게 진정성이라는 힘을 부여 한 게 확실하다. 

 그러나 쇼미더머니에서는 무엇이 디스이고 무엇이 힙합의 에토스인지 알 길이 없다. 느닷없는 자기서사에 맥락 없이 디스한다. 가장 손쉽게 끌어 쓰는 서사는 성공해서 부와 명예를 누리겠다거나 부모님 이야기로 공감을 유도하거나 래퍼로서의 고독감 정도이다. 디스 또한 디스를 위한 디스 일 뿐 상징화된 공연으로서의 수준을 이끌어 내지 못하고 그냥 서로 얼굴 붉히는, 그저 프로그램 흥행을 위한 선정적인 밑밥이 되고 만다.  

그래서 힙합 음악이 추구하는 힙합성의 부재 그리고 힙합만의 고유한 콘텐츠가 무엇인지에 대한 상징화 과정의 부재와 어색함을 메우려 손안대고 코 풀 수 있는 키워드로 내 놓은 것이 ‘솔직함’이란 암묵적 부유물이다. 

내 안에서 끓고 있는 욕구와 질투를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 자체로 뭔가 용기 있고 자유를 향유하는 거라고, 그것이 힙합의 진정성인양 몰아가는 듯하다. 하지만 솔직함은 진정성이 아니다. 그것은 손만 들면 도둑질을 없던 것으로 해 주겠다던 고딩 시절 기억만큼이나 벌어진 상황과는 매치되지 않는다. 

 개인의 의미, 공통의 가치체계에 대한 성찰이 동시에 전제 되어야 진정성이다. 말 그대로 솔직함 자체는 무색무취하다. 성찰이 따르지 않는 솔직함이 어떻게 진정성이 될 수 있으며 무슨 콘텐츠가 될 수 있을까. 그런 식의 솔직함 위에 자신의 찌질함에 대한 막무가내 식 긍정, 혹은 타인에 대한 무시와 혐오가 담겨지면 영락없는 일베 식 폭력이 되는 거다. 쇼미더머니 출신 래퍼 블랙넛의 랩은 자신의 열등감의 도를 넘은 표현이 타인을 향한 흉기가 되는 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자신의 욕구를 숨기지 않고 까발려서 자유와 권력을 얻는 것? 개콘 식 유행어를 빌리자면 그건 순 ‘기분 탓’이다. 기분 상 자유롭고 기분 상 파워맨이 된다. 하지만 실상은 시스템의 노예일 뿐이다. 

    철학자 한병철에 의하면 ‘기분은 합리성을 대신하여 자유로운 주체성의 표현으로 환영 받는다. 신자유주의적 권력의 기술은 바로 이러한 자유로운 주체성을 착취한다. 사물은 무한히 소비할 수 없지만 기분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기분 탓에 자유로워진 존재는 감성 경영의 지휘아래 놓여지는 감성 소비자가 될 뿐이다. ‘신자유적 심리정치는 이러한 반성 이전의 층위에서 행위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기분을 장악한다. 심리정치는 기분을 통해 인격 깊숙한 부분에 까지 개입한다.’ 

    자유로운 기분, 권력을 얻은 기분의 통로는 필연적으로 탈정치로 이어져 있다. 

    그리하여 힙합이 갖는 이질적 반항성, 직접성과 즉흥성, 배틀과 디스라는 용광로급 에너지를 블링블링한 금도금 목걸이나 만들고 인신공격 정도의 찌질 험담으로 디스를 채우는 것 이상을 상상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철저하게 장내에서 치고받고 경쟁한다. 힙합문화의 특징인 크루 간의 음악적 조화를 지향하는 대신 실력이 떨어지는 래퍼, 실수를 연발하거나 멘탈이 약한 동료 래퍼에 대한 혐오를 조장한다. 뜬금없는 사적 디스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선택이라는 약육강식 포맷으로 래퍼들의 자존감을 소진 시킨다. 

    아마도 쇼미더머니는 힙합의 사회적 에너지를 탈진 시키려 고안된 프로그램이 아닌가 싶다. 철저하게 모래알 래퍼로 만들기 ... 

    하지만 어쨌거나 집단 왕자, 공주병 환자 같은 보이 그룹, 걸 그룹보단 래퍼들의 스웨그에 희망을 걸고 싶다. 부와 명예와 섹스를 숭배하는 랩이 넘쳐나도 흑인 게토에서 태어난 힙합이라는 질긴 모태성은 언제고 발현될 수 있으니까.  

    락이 저항성을, 포크가 민중성의 콘텐츠로 사람들 맘속에 각인 되어 있듯이 말이다.  

    Show me the swag! 


* 좌파 티를 입은 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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