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 알린스키(Saul D. Alinsky)와 실용주의적 급진주의(II)

 



서명삼

(University of Chicago, 종교사회/인류학 박사과정수료)




    1. 지난번 글에선 알린스키를 ‘도덕교사’ 혹은 ‘평화의 사도’로 환언해서 소개하려는 일군의 흐름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그의 공동체조직 운동론은 급진적 실용주의 전통과의 연관성 속에 보다 다양/다변한 내용을 담고 있음을 지적했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이번에는 알린스키가 그의 저서, <급진주의자들을 위한 규칙>, 중 ‘수단과 목적’을 다루는 두번째 장을 집중적으로 검토해보기로 하겠다.


    2. 먼저 알린스키가 ‘수단과 목적’이라는 글을 쓴 시점부터 정확히 짚고 넘어가자. <급진주의자들을 위한 규칙>이 단행본으로 처음 출판된 건 1971년이다. 그런데 이 책은 본래 알린스키가 1960년대 중반부터 이곳저곳에서 발표한 강연문이나 기고문들을 엮어놓은 일종의 에세이 모음집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수단과 목적’에 관한 장은 그가 1966년 뉴욕의 유니언 신학교에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시간상으로 볼 때 가장 먼저 씌여진 글이라 할 수 있다.


    3. 이는 곧 다시 말해서 알린스키가 이 글의 초고를 완성한 때와 <급진주의자들을 위한 규칙>이 출판된 시점 사이에 약 5년이라는 시간차가 존재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바로 이 기간 사이에 1968이라는 격동의 시기가 있었음을 감안한다면 이 시간차로 인해 생기는 전후 컨텍스트의 차이를 결코 가볍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지난 번에도 언급했듯이, 알린스키가 <급진주의자들을 위한 규칙>의 서문과 마지막 장에서 함부로 욕설을 내뱉지 말고 섣부르게 폭력행사에 나서지 말라고 충고한 대상은 엄밀히 말해1968 이후의 신좌파 학생운동이었다. 그런데 이 ‘수단과 목적’의 초고는 ’68 이전, 그러니까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로버트 케네디가 차례로 암살당한 후 민주당 전당대회를 맞아 시카고에 모인 대규모의 시위대가 공권력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기 이전, 그리고 이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여파로 신좌파 학생운동이 격렬한 내부 노선 투쟁을 겪다가 결국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그중 일부 분파가 본격적으로 과격해지는 시점 그 이전에 씌여진 글이 되는 셈이다.


    4. 그렇다고 한다면, 알린스키가 1960년대 중반경에 왜 새삼스럽게 이 고전적이다 못해 상투적이기까지 한 ‘수단과 목적’이란 주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는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그의 문제의식은 어디에서 출발했던 것인가? 또 그는 누구를 대화 혹은 논쟁의 상대로 상정해 두고 자신의 입장을 개진했단 말인가?

 

    5. 아쉽게도 알린스키의 텍스트 자체는 이러한 질문들에 명확한 답을 제공해주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가 이 자신의 글에서 펼치고 있는 논지를 당시의 정치-사회적 상황과 연결지어 생각해보면, 알린스키 1960년대 초부터 미국의 좌파 운동판에서 다시금 활발하게 불붙기 시작한 한 논쟁에 나름대로 개입하고자 했다는 점을 그리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다.


    6. 당시 이 논쟁의 핵심 주제가 바로 사회변혁운동에 있어서 수단과 목적간의 괴리와 일치에 둘러싼 윤리성에 관련한 것이었는데, 다소 거칠게 구분해보자면, 이 논쟁은 크게 구좌파와 신좌파간의 노선갈등에서 불거져 나온 것이라 봐도 무방하지 싶다.


    7. 일단 60년대 초 이 논쟁의 포문을 먼저 열어제낀 쪽은 대학가의 젊은 학생 운동가들을 주축으로 한 신좌파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여러 사안에서 — 예를 들어, 인종차별의 철폐, 식민주의 및 제국주의의 종식, 미소 양 강대국을 주축으로 한 냉전 갈등의 해소, 그리고 맥카시즘으로 대표되는 반공주의에 대한 비판 — 구좌파 세력이 공감할 만한 주장을 펼치고 있었다. 그러나 신좌파 운동의 서막을 알린 ‘포트 휴런 선언 (Port Huron Statement)’에서 잘 드러나 있듯이196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신좌파의 주류 세력은 원칙적으로 폭력을 통한 사회변혁에 철저히 반대했으며, 운동조직을 꾸리는 방식에 있어서도 (레닌식의) 전위조직을 정점으로 한 수직적 구조보다는 (일찌기 존 듀이식의 실용주의 전통에서 강조해온) ‘참여 민주주의 (participatory democracy)’의 원리에 따른 수평적 구조를 채택했다. 즉 60년대 초중반의 신좌파 운동은 기존의 마르크스-레닌주의적 좌파 운동과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목적에 대해서는 의견을 같이 했으나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폭력을 배제하고 민주주의적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수단과 방법만을 고집했다는 측면에서는 구좌파와 차별된 행보를 걷고자 했다.


    8. 이에 반해 구좌파측에서는 인간해방에까지 도달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계급투쟁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는 가설을 상정해 윤리적 문제를 역사적 발전 법칙의 종속 변수 중 하나로 취급했다. 예컨데, 1965년 미국의 사회주의 이론가 조지 노박 (George Novack)은 그보다 약 30년 전 마르크스주의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와 (Leon Trotsky)와 실용주의 철학자 존 듀이 (John Dewey)간에 있었던 논쟁을 다시 소환해 내 마르크스주의 입장에서 실용주의를 비판하는 글을 발표했다. 거기서 노박은 한 시대의 지배적인 윤리적 규준이라는 건 기실 당대의 계급 관계를 반영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이는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따라서 운동의 수단과 방법을 선택하는 기준이 되는 것은 그것이 각각의 역사발전 단계에서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얼마나 효과적이냐에 달려있을 뿐이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마르크스주의가 추구하는 목적의 타당성을 상당 부분 수긍하면서도 그것을 이루는 과정에서 끝끝내 자유 민주적인 윤리성을 버리지 못하는 듀이식의 실용주의는 결국 ‘중산층 지식인’의 계급적 이해를 대변한 것에 지나지 않게 된다. 다시 말해, 노박은 과거의 논쟁을 60년대로 소환해 듀이의 입장을 (암묵적으로) 계승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68이전의 신좌파 운동을 간접적으로 비판하려고 했던 것이다.


    9. 그렇다면, ’68 이전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알린스키는 구좌파와 신좌파간에 벌어지고 있던 이 수단과 목적에 대한 논쟁에 과연 어떤 태도를 취했는가? 기본적으로 알린스키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가?”라는 공허한 질문 대신 늘“이 특정한 목적이 저 특정한 수단을 정당화하는가?”라고 질문을 바꿔 물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항상 구체적인 상황을 설정해 놓은 상태에서 알린스키는 (단기적) 목적 뿐만 아니라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모든 수단들 역시 항상 가변적이고 대체가능한 것으로 취급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그는 전쟁같은 상황 속에서, 특히나 아군에 비해 적군의 화력이 월등하게 앞서 있을 경우, 윤리적 선악의 구분을 따지기 이전에 일단 적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방법을 찾는 것이 최우선 과제일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를 변화시켜 나감에 있어 운동의 역량이 점차 축적되어 가용한 자원이나 채택할 수 있는 수단이 점점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 새로운 상황에 걸맞게 윤리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과 고려도 점차 증가시켜 나가라고 권유하고 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보면, 당면한 상황과 피아의 역학관계에 대한 고찰 없이, 어떤 고정된 이데올로기— 그것이 마르크스주의든 참여 민주주의든 상관없이 —에 근거하여 원리원칙적으로 일관되게 폭력 투쟁만 일삼거나 혹은 비폭력 저항만 고집하는 건 둘다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운동 방식이 되고 만다. 즉, 알린스키는 다분히 전략전술적이고 급진적 실용주의적인 입장에서 주어진 상황에 따라 사회변혁 운동의 전략과 전술을 유연성있게 변화시키고 적용시켜야 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했던 것이다.


    10. 결론적으로, 알린스키는 이 ‘수단과 목적’에 대한 논의를 통해 당시 구좌파와 신좌파의 입장을 나름대로 변증법적으로 종합해 보려는 시도를 하고자 했다고 할 수 있다. 이 논쟁에 참여한 모든 당사자들 사이에서 인간 해방에 대한 궁극적 목적에 대해선 어느정도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고 할 때,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운동의 수단을 선택하는 문제에 있어 계급투쟁에 의한 역사 발전 법칙에 따르려했고, 반면 듀이식 실용주의와 60년대 초의 신좌파 운동은 ‘지금 여기’에서부터 모든 인간의 자유와 해방을 철저히 존중해야 한다는 다소 유토피아적인 운동방식을 옹호했다. 알린스키의 경우, 그는 이 양측의 입장을 어느 한편으로는 받아들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거부하면서 이 둘의 조화를 꾀했다고 할 수 있다.


ⓒ 웹진 <제3시대>


<참고문헌> 

알린스키, 사울 D. 1968. “수단과 목적.” 기독교사상 12 (11): 73-82. 

Alinsky, Saul David. 1971. Rules for radicals; a practical primer for realistic radicals. New York: Random House. 

Dewey, John, and Jo A. Boydston. 1987. The later works: 1925-1953 11 11. Carbondale u.a: Southern Illinois Univ. Press. 

Dewey, John, Larry Hickman, and Thomas M. Alexander. 1998. The essential Dewey. Volume 1, Volume 1.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SDS, “The Port Huron Statement,” 1962. 

Trotsky, Leon, John Dewey, and George Edward Novack. 1966. Their morals and ours; Marxist versus liberal views on morality. New York: Merit Publis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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