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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7.30 [시평] 견딤 (김진호)

견딤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사람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하고 말할 그 때에
― 「데살로니가전서」 5장 3절

 

주님이 명령을 내립니다. 천사장이 그 명을 받들어 소리를 내지릅니다. 그러자 좌우의 나팔수들이 거대한 나팔을 힘껏 불기 시작합니다. 하늘에서 울리는 그 소리는 순식간에 세상을 가득 메웁니다. 그러자 죽은 이들이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살아 있는 이들도 하늘로 이끌려 올라갑니다. 하늘을 가득 채운 산 자와 죽은 자들이 좌우로 길을 만듭니다. 주님이 그리로 오신 것입니다. 하여 그들은 거기에서 주님을 영접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에는 마지막 때의 부활이 이렇게 청각적이기도 하고 시각적이기도 한, 한 편의 판타지 영화처럼 그려져 있습니다. 이런 묘사는 바울에게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바울스럽지 않은 바울의 묘사입니다. 오늘 함께 나눌 이야기는 바로 이러한 시청각적 부활 판타지 속의 역사에 관한 것입니다.

지금은 그리스의 제2의 도시가 된 데살로니가는 본래 마케도니아의 유명한 항구도시였습니다. 기원전 4세기, 세계의 대제국이 된 마케도니아의 무수한 폴리스들 간의 국제교역으로 이 도시는 국제무역항으로 발돋움합니다. 해서 이 도시에는 여러 인종이 만나고 다양한 물품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다양성의 도시가 됩니다. 다인종이 드나드는 도시에는 으레 그들의 신전들이 세워지기 마련입니다. 또 그이들의 종교적 결사체들도 세워졌지요. 그중에는 이스라엘인들의 회당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회당들 가운데 어떤 곳은 더 유대적이었고 다른 어떤 곳은 더 사마리아적이었지요.

그리고 기원전 2세기 중반에는 로마에 병합됩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이 도시를 마케도니아의 수도로 지정합니다. 그것은 이 도시가 이 지역 대도시들 가운데 로마에 가장 충성스런 도시였다는 것을 뜻할 것입니다.

「사도행전」 17장 1~9절에 따르면 유대적 성향이 더 강했던 한 회당에서 바울이 활동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회당에서 바울은 시당국에 고소당하게 됩니다. 회당 당국은 시당국과 로마제국에 충성스러웠으며, 시당국은 로마에 적대적인 행동을 할 것으로 보이는 바울과 그의 추종자들을 기소하고자 하였습니다. 다행히 바울 일행은 도시를 빠져나와 피신했지만, 바울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당국에 의해 끌려가 고초를 당했습니다.

이것은 「데살로니가전서」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이 텍스트에서도 ‘유대인들’이 바울과 그의 추종자들을 적대시하고 있습니다. ‘동족에게서 고통을 받았다’는 표현(2,14)을 보면 바울과 그의 추종자들도 이스라엘인임은 의심의 여지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집단은 이방인들에게도 그리스도를 전하였고 그들도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한데 ‘유대인들’은 그런 주장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저들이 바울집단을 괴롭히고 당국에 고소한 이유였습니다.

바울과 그의 측근들은 발 빠르게 그 도시를 빠져나와 남쪽의 오래된 도시 아테네에 당도했습니다. 하지만 일부 동료들은 체포되어 고문을 모진 당하였고 일부는 죽기까지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은 그런 정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해서 다시 데살로니가로 들어가고자 했지만 갈 수 없었습니다.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바울의 측근인 디모데가 그 도시로 잠입해 들어갔습니다. 무엇보다도 ‘유대인들’의 협박과 회유에 고통당하고 있던 예수파 공동체가 전향할까 걱정했던 것입니다. 다행히도 디모데로부터 들은 정보는 공동체는 굳건히 믿음을 지키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아마도 디모데로부터 공동체의 동요에 관해 전해 들었던 모양입니다. 죽은 이들이 하나둘씩 늘어가면서, 산자들은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가 새겨졌습니다. 하여 그이들은 그 참혹함 속에서 기도합니다. ‘도대체 다시 오신다던 주님은 언제 오시나요!’

이것이 바울로 하여금 「데살로니가전서」를 쓰게 했던 이유였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죽은 자들이 곧 일어날 것이라고, 하지만 그때는 알 수 없다고. 사람들이 ‘평안과 안전’을 되뇔 바로 그때라고 말입니다.

이런 답변을 이야기하는 바울의 묘사는, 앞서 보았듯이, 다른 데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시청각적인 판타지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묘사는 하나의 패러디라는 점입니다.

과거 기원전 2세기 중반, 카이사르가 마케도니아를 점령하고 데살로니가를 이 지역의 수도로 삼은 이후 이곳은 이 지방에서 가장 열렬히 로마를 지지하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하여 로마 황제가 다시 돌아올 때를 열망하면서 판타지처럼 묘사된 대중설화가 만들어졌습니다.

‘주’(퀴리오스)가 오신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그것을 사람들은 ‘복음’(유앙겔리온)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용어는 황제의 등극을 묘사하는 표현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 그이가 도시로 되돌아오는 것을 ‘파루시아’라고 불렀지요. 사람들은 도시 밖으로 황제를 마중 나가 그이를 ‘영접’(아판테시스)합니다. 그때 나팔이 울려 퍼지고, 영접하는 도시 주민들은 길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사이를 황제가 들어옵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이런 패러디를 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 이야기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의 도시들은 도시로 들어오는 가도에 길을 따라 공동묘지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거기에는 물론 황제에 의해, 황제의 이름으로 죽임당한 이들의 시신들도 널려 있습니다. 그러니 이 패러디는 하나의 음울한 이미지를 연상시킵니다. 황제에 의해 죽임당한 이들이 황제를 영접한다는...

한데 바울은 이것을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묘사합니다. 음울함은 다시 축제장면으로 역전됩니다. 로마의 황제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돌아올 때에 황제로 인해 죽임당한 이들이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그 구원은 체포되고 고문당하고 신체훼손형벌로 처형된 이들의 몸이 회복되는 모습으로 이루어집니다. 몸의 부활의 상상은 바로 이런 갈가리 찢긴 육체가 깨끗하게 회복된다는 바람과 맞물려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 더 주지할 것이 있습니다. 그때, 그 재림의 때를 바울은 사람들이 ‘평안! 안전!’(에이레네 카이 아스팔레이아)이라고 되뇔 바로 그때라고 합니다.

이것은 제국의 이데올로기를 담은 선전 구호였습니다. 이 말이 도시 곳곳을 울려 퍼지면서 사람들은 로마 황제를, 평화를 선사하는 이, 안전을 주는 이로 갈망하게 됩니다. 이 구호와 함께 사람들은 제국의 질서 속에 확고히 포섭되게 되는 것입니다. 한데 바로 그런 ‘평안, 안전’의 구호가 울려 퍼지는 바로 그 순간, 주의 재림이 있습니다. 그때는 황제로 인해 처철하게 난도질당한 이들의 육체가 되살아나고, 그로 인해 갖은 핍박을 받고 있는 이들이 하늘에 오르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바울은 바로 이 날을 이렇게 강변합니다. 그날, 황제에게 회유당하지 않고 견디는 이에게는 황제가 주는 안전, 평안과는 다른 안전과 평안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로마제국이 아닌 지구화된 자본의 제국이 세계의 평안과 안전을 준다는 메아리가 널리 울려 퍼지는 대도시 서울에서 「데살로니가전서」를 읽고 있습니다. 서울은 지구적 자본의 한 복판인 뉴욕, 런던, 도쿄, 그리고 프랑크푸르트가 아닌, 주변부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하지만 그 대도시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지구적 제국의 논리가 판을 치는 곳입니다.

이곳에는 자본의 질서에 거스르는 이들이 무수히 죽어가고 있습니다. 자본의 추방령에 내몰려 스스로를 살해한 이, 몸이 불이 되어 잿더미가 된 이, 공장의 혹독한 질서 속에서 살해당한 이 등등. 그런 주검들이 도시 가도에 유령처럼 떠돌고 있고, 그 죽음을 기리며 메시아를 갈망하는 이들이 혹독한 자본의 질서 속에서 겨우겨우 숨 쉬며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지구적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아니 그 신적 존재를 영접하기 위해 사람들의 안전과 평안을 희생시키며 제도를 바꾸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궁극에는 평안과 안전이 도래하게 될 것이라고 떠벌렸습니다. 지구제국의 핵심 도시들보다도 더 열렬히 그 지본의 신봉자가 되고 그것을 신격화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도시는 세계에서 가장 살기 어려운 저주의 땅이 되었습니다. 해서 우리는 갈망합니다. 그 끝이 어디에 있나요?,라고. 바울의 「데살로니가전서」는 바로 이런 우리에게 견딤의 지혜를 일깨워줍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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