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진보 신학의 버팀목, 

시카고 신학대학원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각주:1]



이상철
(한백교회 담임목사 / 본지 편집 주간)

 


   프롤로그 : 시카고를 아시나요?


   시카고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시카고 대화재(1871년)와 1920년대와 30년대 시카고를 장악했던 미국 갱의 전설 알카포네, 1990년대 NBA를 장악했던 농구천재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불스, 건축과 재즈의 도시, 바람과 호수의 도시, 그리고 얼마 전 퇴임한 바락 오바마 대통령 까지, 이상은 빅테이터를 돌리면 나오는 시카고 관련 내용들입니다.

    시카고는 미 중부 일리노이주에 있고, 미시건 호수 남서쪽에 자리잡은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입니다. 정치적으로 시카고는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와 더불어 민주당 초강세 지역으로 분류됩니다. 이런 까닭에 마약, 낙태, 총기규제, 반전, 흑인, 동성애와 이민자 정책 등에 있어 시카고는 미국내에서 진보담론의 진원지 같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시카고의 특징들 가운데 빠진 것이 있다면, 시카고는 대학의 도시, 신학의 도시라는 점입니다. 명문 시카고대학, 노스웨스턴대학, 예수회 계통의 로욜라대학, 미국 내 최대 카톨릭 대학 중 하나인 드폴(De Paul)대학, 일리노이주립대학 등이 시카고에 위치하고 있고, 특별히 신학교육에 있어서 시카고는 바티칸 다음으로 가장 크고 내실있는 신학 네트워크가 조성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전미 최대의 신학 도시, 시카고


   시카고의 가장 큰 신학적 특색을 꼽으라면 초교파적으로 구성된 12개의 신학교가 연합체(ACTS: The Association Of Chicago Theological Schools)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입니다.[각주:2] ACTS에 속한 학생들은 어느 학교 수업이든 수강할 수 있습니다. 각기 다양한 신앙전통 속에 존재하는 신학, 예전, 역사들을 배우며 오늘의 신학을 재구성할 수 있는 풍부한 논의를 경험할 수 있는 있다는 말입니다. ACTS에 소속된 전임 교수는 260여명, 학생은 3천여명, 1년에 개설되는 강의는 총 700여 강좌에 육박합니다. 비슷한 형태의 샌프란시스코의 GTU나, 캐나다 토론토와 비교했을 때 비록 공동학위 시스템은 아니지만, 규모와 스케일 면에서는 가히 전미 최대 신학 도시라 할만 합니다.

    매학기 마다 수강신청을 하기 전에 무엇을 들을까 하고 ACTS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350개가 넘는 과목의 실라버스가 뗘 있습니다. 그것만 확인하는데도 일주일 넘게 걸립니다. 예를 들어 저 같은 경우 기독교윤리가 전공이었는데, 학기 시작 한 달전 ACTS에 소속된 윤리학 전공 30여명의 교수가 개설하는 50여 기독교 윤리 과목에 대한 research로부터 학기가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 달 동안 실라버스 확인하여 강의 내용과 일정, Text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큰 공부가 됩니다. 그 과정을 거치고 마지막으로 내가 듣고 싶은 과목 3-4개를 선택하여 수강을 합니다.

    또한 ACTS에 속한 학생들은 수강 신청 전에 사전 협의만 하면 시카고대학, 노스웨스턴 대학, 로욜라(Loyola) 대학, 드폴(DePaul) 대학의 철학과 종교학 수업도 들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책임윤리의 계승자로 알려진 시카고 대학의 슈바이커 교수의 강의를 오전에 듣고, 점심 먹고 노스웨스턴 대학으로 건너가 철학과에서 데리다의 정치신학을 강의하는 도이처 교수의 강좌를 들을 수 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로욜라 대학에 있는 미국 내 레비나스 번역가로 알려진 페이퍼 젝 교수가 개설하는 레비나스의 타자의 윤리학 수업도 수강 가능합니다.

    종합하면, 시카고가 지닌 신학교육의 특징은 Interdisciplinary Studies (학제간 연구)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시카고가 지닌 다인종, 다문화, 다종교의 상황속에서 시카고의 신학은 이러한 시대적 질문에 대해 철저한 제 학문간 연대와 제휴를 통해 신학적으로 다양한 색깔과 무닉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 ACTS가 위치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시카고 지역의 신학적 토양에 대한 전반적인 상황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 미국 진보신학의 버팀목이라 할 수 있는 시카고 신학대학원(Chicago Theological Seminary, 이하 CTS)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 시카고 신학교가 위치한 시카고 남부 Hyde Park[각주:3]


   시카고 신학대학원 길라잡이


   저는 2004년 시카고로 도미하여 2014년 학위를 마치고 10년만에 귀국했습니다. 멕코믹 신학교에서 석사과정(MATS)을 마치고(2007), 바로 CTS로 진학하여 7년 동안 윤리학으로 Ph.D 과정을 이수했습니다. 지금부터 시카고 유학시절 CTS에서 공부하면서 배우고 느낌 점에 대해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CTS는 미국연합그리스도교회(United Church of Christ) 교단 소속의 신학교로서 1855년에 세워졌습니다. UCC 교단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미국내에서도 가장 진보적인 교단으로 이민, 흑인, 반전, 동성애, 여성문제에 대한 선교정책에 있어 전향적인 자세와 실천을 이루어내고 있는 교단입니다. 우리 기장과는 1986년부터 파트너쉽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미국 중서부 지역 회중교회들을 모체로 세워진 시카고신학교는 미국연합그리스도교단 출신 학생뿐만 아니라 개신교 각 교단과 천주교, 동방정교회, 나아가 유대교, 이슬람 계통의 학생까지 모여 공부하는 초교파, 범교단적 신학교입니다. 이름이 비슷해 혼동하기 쉬운 시카고대학 Divinity school과 CTS는 초기에 교수진과 학생 교류, 학교 행정을 같이 하는 관계였다가 1960년 이후에는 단순한 협력관계로 바뀌었습니다. 그렇지만 수업과 도서관은 여전히 함께 공유하고 있습니다.

    CTS는 역사적으로 교수와 학생 모두 시민운동에 매우 적극적이었습니다. 신학생들과 교수들은 사회적 문제와 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이런 저런 형태로 현실의 문제에 개입합니다. 이라크 전쟁 반대시위,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Ocuupy Wall Street(월가를 점령하라!)’ 운동 가담, 그 밖에 동성애와 여성, 이민자 문제 등에서 CTS 구성원들은 대외적으로 활발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영향 때문일까요, CTS는 미국 인권운동의 대명사 마틴 루터 킹 명예학위를 주는 최고의 고등기관이기도 합니다. 이 상은 1986년 남아프리카공화국 기독교의 반 인종차별 운동에 앞장섰던 투투주교에 수여되기도 했습니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맨토로 유명한 트리니티 유나이티드 교회(UCC) 전 담임목사 제레미야 라이트 목사가 CTS 출신입니다. 그는 미국의 패권적 외교정책에 대해 “Got damn America! (빌어먹을 미국)” 이라 비난하면서 문제적 인물로 떠올랐습니다. 미국 흑인 인권운동의 상징이자 1980년대 민주당 대통령 경선에도 참여한 제시 잭슨 목사도 CTS 출신입니다. 이들은 CTS에서 행사(졸업식, 각종 기념식)가 있을 때 가끔씩 등장해 연설을 하면서 좌중을 쥐락펴락 하면서 행사장의 분위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하고, 계절 학기 강사로 강단에 서기도 합니다.

       종합하면 CTS는 대사회적 메시지와 참여에 충실한 한신 신학의 학풍과도 매우 유사한 전통을 지니고 있다 하겠습니다. 제가 Ph.D 과정 지원 할 때 SOP(학업계획서) 쓰면서 CTS 지원이유에서 ‘나는 한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신학교인 한신 출신이다. 그래서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학교에 지원하게 되었다’고 적었더니 교수님들이 흡족해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실제로 CTS는 미국 신학계에서 한국 신학계에서 한신이 점하는 위치와 같은 진보적 색채를 지니고 있습니다. 한신이 요즘 안팎으로 변했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데, 여전히 그 색깔을 변치 않고 시대에 맞게 진화하며 꾸준히 진보적 신학담론을 창출하는 CTS에서 공부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습니다.


   시카고 신학대학원의 학풍


   CTS는 앞서 이미 언급 했듯이 미국 내에서도 가장 진보적인 신학교로 각종 사회적 이슈들에서 Radical한 신학적 입장을 견지하는 신학교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CTS는 전통적으로 아웃사이더 신학이 강합니다. 전에는 해방신학, 여성신학, 정치신학의 입장이 강했고, 근래는 Queer Theology (Ken Stone), Postmodern Theology (Jennings, Schneider), Black & Womanist Theology (Butler, Terrell)등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학자들이 포진하고 있습니다.

    CTS는 목회상담 1세대를 대표하는 학자 안톤 보이슨(Anton T. Boisen)에 의해 전미에서 최초로 신학교에서 CPE를 시행했던 학교입니다. 이러한 전통이 CTS를 임상 목회상담의 산실로 우뚝 자리잡게 하였습니다. 특별히 CTS를 오랫동안 대표했던 모어(Moore) 교수는 목회상담과 융과 틸리히를 연결하여 나름 그 분야 학제간 대화의 독보적 인물로 평가됩니다.

    특별히 저같이 데리다, 푸코, 라깡, 들뢰즈, 레비나스, 지젝등 현재 활발히 논의되는 유럽의 탈근대적, 좌파적 철학자들의 사상을 신학적으로 어뗳게 해석하여 운동(윤리)의 차원으로, 해방의 차원으로 승화시킬것인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CTS는 미국내 최상의 학교입니다. Theology, Ethics & Human Science 분야의 전교수가 이 문제를 갖고 연구하는 분들이시고 권위자입니다. 올해 은퇴한 테드 제닝스(Ted Jennings) 교수는 요즘 가장 핫한 바울에 대한 정치신학 비평으로 유명한 학자이고, 서구 정신사를 인문 신학적으로 꿰고 있는 국보급 진보신학자입니다. 레비나스와 지젝을 통해 서구 전통신학에 반기를 들었던 서보명 교수는 근래에는 유영모,함석헌 사상을 바탕으로 서구신학에 대한 대안을 모색합니다. 지금은 벤더빌트로 옮긴 슈나이더(Schneider) 교수도 CTS에서 후학을 가르쳤습니다. 그녀는 본회퍼와 탈근대 사상을 연결하는 학자이자, 차세대 페미니즘을 대표할 신학자로 벌써부터 메이나 층이 형성된 신학자입니다

    CTS의 성서학은 전통적인 역사비평의 틀을 넘어서서 해석학적인 성서비평으로 유명합니다. 포스트콜로니얼의 시각에서 성서를 바라보는 양승애 교수는 리타 나카시마 브럭(Rita Nakashima Brock)과 곽퓨란(Kwok Pui Lan)등과 어깨를 견주는 대표적 아시아 여성신학자입니다. 구약학자 켄스톤 (Ken Stone)의 이름은 앞으로 반드시 숙지하셔야 할 것입니다. 미국내 Queer 관점으로 구약성서를 재해석하는 독보적 학자입니다. 이렇듯 CTS에 포진하고 있는 엣지있는 교수들과 학교자체의 진보적 색채 때문에 전미에 분포하는 개혁적 성향의 신학도들에게 CTS는 여전히 매력적인 신학교입니다.


* CTS 새 캠퍼스[각주:4]


   변화하는 시카고 신학대학원


   2010년을 넘어가면서 CTS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한국의 신학교들도 그러하듯이 미국의 신학교들 역시 재정적으로 많은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특별히 미국 내 진보성향의 신학교들의 상황은 더 심각합니다. CTS의 상황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2012년에 큰 결단을 내려 원래 Hyde Park 55가에 위치했던 덩어리가 컸던 캠퍼스를 정리하고, 한 블록 위에다 새롭게 아담한 캠퍼스를 조성하였습니다.

    옛 건물을 처분하고 캠퍼스를 줄여 옮겨 가는 과정에서 이익이 발생하였고 그것을 바탕으로 장학사업과 그 밖의 교육프로그램을 강화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 신학교협의회(ATS: The Association of Theological Schools)로 부터 인가를 받아 Mainline Protestant Seminary 중 최초로 online으로 M.Div. 학위를 수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학교의 정신과 커리큘럼에 동의하고 흥미를 느끼면서도 거리상 입학할 수 없었던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 많은 신학도들이 CTS M. Div 온라인 프로그램에 등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Eco-Community(생태 공동체) 프로그램과 Interreligious Institute(종교간 센터)를 새롭게 만들어 운영하면서 좋은 평을 듣고 있습니다. 이렇게 새로 기획된 프로그램들은 CTS에 기존에 있었던 LGBTQ Center (Queer theology), Christian-Muslim Studies, Christian-Judaism Studies, Center for Study of Black theology, Center for Study of Korean Christianity 등의 기관과 유기적으로 협조를 합니다. 이러한 커리큘럼 재정비를 통해 다인종, 다문화, 다종교 사회에서 타자를 환대하는 목회자, 타자와 더불어 함께 연대하는 목회자 양성에 매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학교관계자 말에 의하면 M.Div 온라인 과정 신설과 여러 프로그램 개발과 운영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전에 비해 30% 가까이 학생수가 증가했다고 합니다.[각주:5]

    몇몇 CTS의 상징적 교수들이 은퇴를 하거나 학교를 옮겨 교수보강이 시급했는데 좋은 교수들이 임용되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슈나이더 교수 후임으로 2015년 Christoph Ringer 교수가 Public Theology and Ethics 교수로 부임하였고, 불행하게 세상을 등진 모어 교수 후임으로는 작년 2016년에 Zachary Moon 교수가 새로 영입되었습니다. Stephanie Buckhanon Crowder는 womanist(흑인여성신학) 관점에서 성서와 대중문화를 분석하는 독특한 학자인데, 새롭게 CTS의 교수진으로 수혈된 젊은 학자입니다. 특별한 소식을 하나 더 하자면, Bexley-Seabury 성공회 신학대학이 CTS 건물로 이주해 시설과 프로그램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한 캠퍼스에 두 개의 서로 다른 신학교가 협력하여 선을 이루고 있는 셈입니다.


   에필로그


    CTS에서 유학생 하면서 다시 한번 깨달았던 것은 민중신학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입니다. 그것은 민중신학의 빛바랜 과거에 대한 찬양도 아니고, 화석화된 민중신학에 대한 주례사 비평은 더더욱 아닙니다. 단지 미국 와서 신학을 공부한다고해서, 몇 가지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신학이슈들에 발빠르게 대처한다고 해서 호박이 수박이 되는 것은 아니죠. 진보란 열려있음을 전제로 변혁을 꿈꾸는 정신성이고, 부단히 삶의 자리에서 실행되어야 하는 구체성입니다. 또한 진보란 부단히 흘러가면서 새로움을 상상하는 정신이자 그것을 감행하는 실재입니다. 이러한 진보적 유전자가 민중신학 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CTS에서 공부하는 동안 새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CTS에서 배우고 살면서 느꼈던 것은 민중신학이 표방하는 성서 해석학, 예수에 대한 이해,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가 세계적인 신학이었고, 첨단의 신학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해왔던 것이 맞습니다. 그러니 세상이 변했으니 우리도 변해야 한다는 말에 속지 마십시오. 세상은 절대 변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더 악랄하고 집요해졌을 뿐입니다. 다시 한번 민중신학의 자리를 점검하면서 새로운 진보신학의 언어를 발굴하고 적용하며 실천하는 일에 우리의 의지와 상상을 모을 때 입니다.


* CTS 새 캠퍼스 로비에 있는 문익환 목사님 이미지[각주:6]



ⓒ 웹진 <제3시대>



  1. 『세계와 선교』(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실리게 될 ‘세계 신학교 탐방’ 원고입니다. [본문으로]
  2. ACTS (http://www.actschicago.org/) 소속 12개 신학교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UCC,기장과 자매교단), McComick Theological Seminary (미국 장로교, 기장과 자매교단), Meadvill·Lombard Theological Seminary (유니테리안), Luthern School of Theological at Chicago* (루터교), Bexley-Seabury Seminary Federation(성공회), Loyola Institute for Pastoral Studies (예수회), Garreett-Evangelical Theological Seminary* (감리교), Nor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침례교), North-Park Theological Seminary (언약교단),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 (복음적 자유교회 소속), Catholic Theological Seminary (천주교), Mundelein Seminary (천주교) (*가 있는 학교는 Ph.D 학위가 있는 학교임), 이 밖에도 1800년대 중후반 시카고를 중심으로 미국 부흥운동을 이끌었던 무디(Moody)을 기념하는 Moody Bible Institute도 시카고 시내에 있다. [본문으로]
  3. 오바마의 정치적, 사상적 고향이라 할 수 있는 시카고 남부 Hyde-Park은 미국 흑인 인권 운동의 상징적 지역이라 할 수 있다. 살아있는 흑인 인권 운동의 대부인 제시 잭슨 목사, 오바마의 멘토로 유명한 제레마이어 라이트 목사 등이 모두 시카고 신학교에서 신학 수업을 받았다. 위의 사진은 Hyde-Park에 위치하고 있는 시카고 대학과 시카고 신학교 전경이다. 우측 하단에 거대하게 버티고 있는 건물이 시카고 대학을 건립한 록펠러를 기념하여 세운 록펠러 채플이고, 바로 건너편 빨간 벽돌로 높이 솟아있는 탑이 시카고 신학교이다. 2012년 까지 이곳에서 신학수업이 이루어졌다. 사진 중앙을 가로 지르고 있는 길이 University Ave이다. 그 길 건너편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카고 대학이 펼쳐진다. 좌측 중앙에 보이는 회색 건물이 시카고 대학 메인 도서관이라 할 수 있는 뢰겐스타인 도서관이다. University Ave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신학자 폴 틸리히가 자주 갔다는 맥주집이 길 모퉁이에서 아직도 성업중이다. 저 멀리 시카고 다운 타운이 보이고, 사진 상단 파란부분은 남한 땅이 풍덩 빠져도 남는다는 미시건 호수이다. [본문으로]
  4. 새로 옮긴 CTS 캠퍼스. 위에 옥상의 동그란 부분이 채플실. 3층이 도서관과 학생 휴게실. 1,2층에 강의실 및 각종 부속시설이 배치되어 있다. [본문으로]
  5. CTS에는 다음과 같은 학위 프로그램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석사과정에 M.Div, STM, MA, 박사과정에 D.Min, ph.D. 좀 더 자세한 입학정보를 원하시는 분은 아래 학교 공식 홈피(https://www.ctschicago.edu/)에 접속하셔서 바탕화면에 떠 있는 Admission를 누르고 들어가면 됩니다. [본문으로]
  6. 새 캠퍼스 정문을 열고 들어가면 하나님 나라를 이 땅위에 실현하고자 분투했던 신앙인들의 얼굴이 우리를 맞습니다. 본회퍼, Harriet Tubman(노예였으나 탈출한 뒤에 수많은 노예를 해방시킨 '장군'이라고 불리었던 여성), 간디, Millard Fuller(해비타트 운동의 창시자), 마틴 루터 킹, Audre Lorde(흑인 여성주의자였던 시인), 로메로 신부, 마더 테레사 등....그리고 우리의 문익환 목사님도 그 벽화에는 새겨져 있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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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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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에서의 4년을 돌아보며



 

박혜인
(University of Chicago Divinity School, PhD student, Theology)


 


       유학 5년 차에 접어드는 지금, 아직도 무언가를/누군가를 위해 글을 쓴다는 건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왜 항상 마감일 직전까지 골수를 말리고 두뇌가 비도록 나를 짓누르는 두려움과 우울함에 짓눌려 바닥을 맛보기 전까지는 단어 하나조차 두드리지 못하는 걸까요. 추구하는 것은 완전함인데 안타깝게도 제 실존의 전부를 쥐어짜도 여전히 자신의 멍청함과 비루함에 짓눌려, 그저 시간에 떠밀려 의도치 않았던 생각들을 기워나가는 넝마주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형편이 이럴진대 누군가를 위해 글을 쓴다는 건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어떤 인연이든 이 글을 읽게 되는 딱 한 사람의 곁눈질만 상상해도 부담이 밀려옵니다. 이 창피함으로부터 언젠가 자유로울 수 있을지. 눈앞에 수많은 과오들이 스쳐 갑니다. 

       글을 부탁받고 간만에 웹진 제3시대, 우리나라 신문, 잡지 등 갖은 매체를 통해 모국어를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영어라는 우상에 파묻혀 한국말로 편지 한 장 써본 적 없이 4년의 시간을 보냈건만 정작 가슴을 울리고 머리를 잔뜩 긴장시키는 깊은 글들은 내가 그속에 태어나고 자라고 습득해온 언어로 쓰여있습니다. 모국어로 쓰인 글들의 내공 앞에 창피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고, 소통하고 생각하는 법을 되레 잃어버린 건 아닌지, 회의가 밀려오기도 했습니다.  

      해마다 방학 때면 고국으로 돌아가는 선후배들이 묻습니다. 왜 한번도 고향을 방문하지 않았느냐고. 치유되지 않은 열등감, 소통할 수도 구제받을 수도 없는 외로움은 입만 열면 동정을 사고 싶어 발버둥치지만 더 진솔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왜 아직 돌아갈 수 없을까. 차라리 타지에서 특이한 인간으로 사는 게, 23년을 내가 나고 자란 곳에서 존재하지 않는 삶으로 사는 것보다 어쩌면 쉬운 까닭입니다.  


       "시카고로 떠나는 것이 잘된 일일까요?"

       벌써 6년 전이 된 학부 마지막 해 졸업을 앞두고 기대하지도 않았던 시카고에서 목회학석사 학위 프로그램의 입학허가를 받았을 때 진심으로 제 앞길을 축하해준 분들은, 그닥 많지 않았습니다. 워낙 다원주의적 경향이 강하고, 우리나라 주요 교단과의 연계성도 전무한, 공부하기는 까다롭고 졸업은 더욱 쉽지 않기로 악명높은 시카고에 합격했을 때 붙은 저로서는 그저 기적에 감사하며 넙죽 제게 주어진 숙명을 받아들였지만 저를 무척 아껴주셨던 선배님들의 불안과 의심 가득한 그 마지막 한 마디가 아직까지 잊히질 않습니다. “혜인자매, 나중에 귀국해서 직장을 못 구하는 건 둘째치더라도, 과연 그곳으로 가는 게 하나님 뜻일까요?”

       하나님의 뜻. 하루하루가 구덩이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은 슬픔이었던 학부시절에도 신학을 공부했다지만, 박사과정에 합격한 지금도 저는 저 헤아릴 수 없이 커다란 말 앞에 황망할 뿐 아무런 정립된 개념이 없습니다. 아마도 열번의 성경통독 이후에 왠만한 귀절은 암송하시는 어머니께 여쭈면, 더 시원한 답을 얻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울증 (양극성 장애; bipolar disorder) 진단을 공식적으로 받게 된 2007년 이후 스스로를 죽음으로 내몰지 않은 유일한 까닭은 ‘자살하면 구원받지 못한다’는 엄격한 교리였습니다. 지옥에 갈까봐 두려워하는 유치하지만 너무도 강렬한 그 실재에 대한 믿음 때문에 저는 살았습니다. 대학생활은 참 힘겨웠습니다. 감성좌파 재불작가 목수정씨의 요즘 젊은이들에 대한 일갈— 욕망하는 법을 잊고, 길들여지고, 생존하기 위해 철드는 그 비판의 대상이 오롯이 저자신인 것처럼, 애매한 나의 정체성을 비판하며, 자학하기 일쑤였습니다. 돈도 돈대로 없었지만, 나는 강남좌파도, 감성좌파도 아닌, 그냥 우울한 신학생 1인이었습니다. 자신을 가리켜 당당하게 ‘저는 OO주의자입니다’라고 말할 수도, 할 줄도 몰랐기에 당황스러운 존재감은 곧 진보적인 운동성과 괴리된 삶이었고 노동운동에 헌신했던 아버지의 이름으로 운동권 일선에서 투쟁하고 공부하던 선배들과 통성명은 할 수 있었지만 내 마음과 생각을 제대로 나누지는 못했습니다. “너는 죽고사는 문제를 감당해본 적이 없잖냐,” 이시대 젊은이로 산다는 게 얼마나 힘겹고 치열한 노동인지, 다른 역사를 살아가는 사람끼리 고통을 비교한다는 게 얼마나 역겨운지 볼멘소리로 답하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단한번도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차마. 내 머리, 내 몸뚱이, 나자신의 이성과 감정조차 통제할 수 없다는 선고를 받은 이후 세상은 좌로도 우로도 판가름할 수 없는 기묘하고도 잔인한 무대로 보였습니다.  

       수면제를 먹고 깬 다음날 아침 기계처럼 반복되는 학교의 일상 가운데 내면에 어떤 변화도, 내적 진보를 감지할 수 없어서 서글픈, 이렇게 어디에도 누군가에게도 속하지 못해서 슬픈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정신질환은 하나님보다 피조물을 더 사랑했을 때 필연적으로 인간이 감당해야 할 형벌이라든가, 성경에 근거한 귀신들림, 심지어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암묵적 동의아래 일어나는 악마의 장난질이라는 해석을 끊임없이 교회에서 반복할 때마다 저는 더 비참해졌습니다. 선하고 완벽하신 하나님의 통치에서 나가떨어진 돌쩌귀가 된 기분으로 4년을 채웠고, “너 때문에 제명에 못살겠다” 우시던 아버지를 뒤로하고 저는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시카고는 그렇잖아도 삶이 버거운 제게 편집증, 피해망상, 공황장애, 주의력결핍이라는 덤터기를 씌웠습니다. 전화로 음식을 주문하거나 조금만 당황해도 심장박동이 주체할 수 없을만큼 빨라지며 벌벌 떨기 일쑤였고 이 현상이 세미나 중 발표 때 더 심해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지식생산의 최정점에 있는 교수들에게 자신감 없어보이는 외국학생의 말더듬은 당연히 용인해주기 힘든 사안이었고 어떤 수업에서는 곧장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내나라에서는 죽고플 만큼 우울했어도 나름 똑똑한, 통찰력 있는 신학생이었지만 상황이 이쯤되니 미국대학원에서 관계를 쌓아가는 것에 대한 공포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이 힘겨운 공부를 묵묵히 지원해주시는 부모님에 대한 부채감과 죄책감, 한편으로는 자괴감과 열패감에 시달리면서 하릴없이, 끝이 보이지 않는 지난함에 어쩔 수 없이 할 수 있는 공부만 해나가며 터질 듯한 머리를 재웠습니다.  

       때로는 새 아침을 맞이하며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 도서관을 향해 한 걸음을 떼는 것 자체도 저혼자 우주를 감내하듯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했습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세계가 있다는 것— 지식이 최고의 자산인 학계에서 이해하지/받지 못하고 따라서 소통하지 못한다는 저의 현실에 석사 4년은 좌절로 가득했습니다. 절망이라는 감정은 익숙해지면 좀 덜 아픈 동무가 될 줄 알았건만, 매번 쓰린 것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면역이 되질 않았습니다.  

       그렇게 마음 깊이 새겨진 상처는 아물지 않았지만 서서히 그 상처로 인해, 조울증이라는 의학 진단보다도 중요한 절망의 깊이, 그 자체가 어느덧 제 신학공부의 주제로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조울증을 앓는/(감추지 않아 특이한)아시안/여성’으로 조심스럽게, 아주 느리게, 진득하게 가리지 않고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습니다. 끊임없는 의심과 자기혐오, 학대, 우울은 인종과 성별, 국적을 가리지 않는 질병임을 배웠고 이들과 사랑, 욕망, 가난, 결핍, 좌절, 절망, 젊음의 한계와 덫, 희망, 평안, 용기, 안식, 연대, 위로, 공감에 대해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학교 바깥에서는 침례교 설교자이신 흑인해방신학자 지도교수님 (Dwight N. Hopkins)을 찾아가 저의 진단에 대해 솔직히 말씀드렸고 퇴짜를 맞지 않았습니다 (여태까지는). 목회상담학, 정신의학 관련수업을 자유롭게 수강하면서 내면의 고통을 파고들라치면 사실 뿌리깊은 인종차별, 식민주의 역사, 경제양극화, 가식적인 세월호 인양을 두고 여태 치유되지 못한 피해자 가족들의 상처와 같이 시민을 억압하여 정상인을 병자로 내모는 사회의 부조리, 불의를 함께 따지지 않을 수 없음을 함께 배웠습니다. 내가 자라난, 그치만 떠나온 그 환경에서는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아 던질 수 없던, 뇌리에 깊이 파묻혀 있던 질문들이 머리를 들고 탐구되기를 외치는 것만 같았습니다.  
       미국 지식사회에서는 이미 트라우마, 내적치유나 신경과학을 논함에 있어 불교명상수행과 철학의 깊이와 유용성이 커다란 영역을 차지하고 있어 마음챙김 (mindfulness)에 대해 저또한 선불교 수행자인 친구로부터 아주 조금이나마 배우고 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뜻’이나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생각할 때마다 제가 시카고에서 딛는 걸음이 두려움에 떨립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여기서 늦게나마 참 나다운 내가, 아프지만 태어나고 있는 것을 느낀다는 점입니다. 다른 과에 가서 신학을 공부한다고 하니 마치 원시인을 보듯, ‘쟤가 무엇 때문에 여길 왔나’ 의구심이 가득찬 눈빛도 이젠 지겹지 않습니다. 저같은 부류는 종교성의 미신을 타파한 세속화한 근현대로부터 시간을 영성으로 ‘회귀’시키려는 보수적인 종족인 마냥, 과연 수업에 도움이 될런지 쳐다보아도 괜찮습니다. 신학이 세대를 거듭해 인문학과 과학, 문화와 사회 변화에 응답하며 끊임없이 정체성의 진보를 꾀해왔듯이 저도 배움의 도정에 있는 사람으로서 겸손히 걸을 뿐입니다.  
       워낙 관심분야가 다양하고 귀가 얇아 신학 공부도 체계적 조직적으로보다는 폭식과 잡식에 가깝게 해온 터라 지속적으로 충실한 글들을 거둘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를 지금 여기 있게 한 모든 삶의 부분들이, 우리가 차마 위로하고 회복하지 못한 아픔을 보듬으며 진정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더불어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신학생으로, 신학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던 이유— 희망, 구원, 사랑이라는 단어가 그립고 더 절실해지는 순간들을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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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국신학 체류기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과정)


프롤로그

 

필자는 작년(2009) 6월부터 한 달에 한번 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에서 운영하는 웹진 <3시대>에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 하고 있다. 연구소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며 삐대고 있던 나를 연구소로 끌어들인 김진호 목사의 제안이 결정적이긴 했지만, 그보다 내게 이제 글을 써야겠다는 동력을 제공했던 사건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이었다. 나는 비록 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열렬한 지지자는 아니었지만, 고인의 장례식이 열리는 시간에 맞춰 이곳 시카고에서 신학공부하는 유학생들과 함께 모여 추모예배를 드렸다. 추모예배를 준비하면서,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예배에 참석하면서 몸과 마음이 화석화되고 박제화되어 버린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렇다면 지금 단계에서 내가 현실세계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던 가운데 연구소에 글을 쓰겠노라고 덜컥 말해버렸다. 그것은 <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가 걸어왔던 지난 시간과 공간에 대한 믿음과 신뢰, 그리고 감사에 대한 내 나름의 뒤늦은 표현이기도 했다. 그 후로 지금까지 매월 글을 기고하는 가운데 몇 편의 글을 통해 이루어졌던 독자와의 대화는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일종의 책임감 내지 공공성 같은 것들을 느끼게 해주었다. 또한, 개인적으로 이메일을 보내어 글에 대한 평을 해주었던 분들도 있었는데 그 분들께는 이 자리를 빌어 특별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글이 어느 정도 모아진 지금, 그동안 웹진에 게재되었던 졸고들을 하나씩 읽어보던 중 (물론, 언제나 자기가 쓴 글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민망한 일이다, 마치 전날 밤 술에 취한 상태에서 쓴 연애편지를 다음 날 아침 명료한 정신으로 읽는 기분이랄까) 문득 지금까지 매월 단편적으로 올렸던 글들을 하나로 엮을 수 있는 Key-word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이 생겼다. 비록 내용상으로는 일관되게 흐르는 맥락이 없다손 치더라도 글쓴이로서 의당 지니고 있어야 할 최소한의 심리적 상태 내지, 글에 임하는 심기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아 한동안 곰곰이 생각하던 중에 탈경계라는 말이 떠올랐다. 요즘 많이 쓰이는 용어이다. 탈경계의 문화, 탈경계의 사회학, 탈경계의 인문학 등등…. 그렇다면, ‘탈경계의 신학도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호기심에서 이 글은 시작되었다. 본격적으로 탈경계의 신학에 대한 생각을 나누기에 앞서 21세기 초 미국 신학계의 동향과 필자가 유학하고 있는 시카고의 신학적 분위기를 언급할 필요를 느낀다. 왜냐하면, ‘탈경계 신학이라는 말이 현재 미국 신학계의 전반적 흐름과 고투를 상징적으로 대변하고 있는 용어일 수 있기에 그렇고, 그 체험이 내 글에 녹아있으리라는 예감에서이다.

 

미국 신학의 지형도[각주:1]

 

작금의 미국 신학계 흐름을 간략히(거칠게) 정리하자면, 전시대의 보혁구도에서 탈피하여 Mainline진영과 Evangelical 진영으로 재편된 채, 전 시대보다는 양자의 신학적 입장이 서로에 대해 좀 더 개방적이고, 호환 가능한 구도로 전환되었다는 점이다. 근본주의(Fundamental) 진영도 존재하는데 그 부분은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기로 한다. 미국 내 학문적 영역의 장에서 논의의 주체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이할 만한 사실은 복음주의 진영의 놀라운 진화라 할 수 있다. 즉 전시대 보수주의 진영이 지녔던 경직되고 편파적인 대상에 대한 인식의 틀이 많이 무너지고 유연해 졌다는 말이다. 단적인 예로 보수와 진보의 경계를 가늠했던 과학과 종교의 문제, 타종교와의 대화문제, 인종과 문화에 대한 개방도 등에 있어 복음주의 진영은 Mainline 진영 못지않은 열린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경계의 허물어짐의 결과인지는 몰라도 Mainline 진영 신학교에서 Ph.D 과정을 밟고 있는 상당수의 학생들이 석사 과정 때 복음주의 진영에서 신학수업을 받은 학생들이라는 사실은 미국 신학계의 섞임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현상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이렇듯 경계가 허물어진 것처럼 보이는 양 진영 사이에도 2%의 차이는 상존한다. 그 차이란 누가 얼마만큼 더 미시적인가? 하는 문제이다. 달리 표현하면 누가 더 소수자에 대한 구분을 조밀하고 치열하게 해내고 그에 반응하는가? 예를 들어, 성과 인종, 계급의 문제, 문화와 종교의 문제, 요 근래 예민하게 논의 되는 동성애 문제에 이르기까지 그 동안 주류담론에 소외되고 외면당했던 약자들의 아픔을 날카롭게 분석해 내고 신학적 진단과 예단을 해낼 수 있는 기민함의 차이가 여전히 남아 있는 그 2%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Mainline 진영에 속한 신학교들은 여전히 복음주의 진영의 학교들에 비하면 이러한 이슈들에 더 적극적이고 도전적이라 하겠다.[각주:2]  

 

 

미국 신학의 광맥, 시카고[각주:3]

 

<시카고 남부 Hyde-Park에 위치한 시카고 대학과 시카고 신학교 전경[각주:4]>

 

시카고는 미국에서도 대표적인 다인종, 다문화, 다종교 사회이다. 시카고 경제의 3D 업종은 (불법) 멕시코 이주노동자들과 흑인들에 의해 굴러가고 있고, 한국인을 비롯한 수많은 아시안 이민자들은 택시운전, 세탁소, 음식점, 슈퍼마켓, 주유소 등지에서 고된 일상을 책임진다. 그 밖의 세계 각국에서 온 이민자들이 저마다의 영역에서 자리를 잡고 각자의 특성을 발휘하며 협력과 경쟁을 통해 시카고는 지금껏 발전해왔고 앞으로도 그럴것이다. 이런 이유로 당연히 각 인종별, 국가별 문화적 특색이 형형색색으로 분포된다. 뿐만 아니라, 시카고는 종교적인 분포도 다양하여, 그리스도교는 말할 것도 없고, 운전을 하다 보면 이슬람 사원(모스크)을 보는 것도 다반사이다. 또한 백인들 중에는 적지 않은 수가 유대교를 신봉하여 금요일 오후에 가족들끼리 유대교 회당으로 걸어가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아울러, 시카고는 미국에서도 대표적인 흑인인권 운동의 도시이자, 동성애 옹호의 목소리가 강한 도시 중 하나이다. 마틴루터 킹 제시 잭슨 목사로 이어지는 흑인인권 운동의 계보가 시카고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고, 각종 게이, 레지비언 단체들이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면서 레인보우를 형성하고 있는 곳이 또한 시카고이다.

 

시카고의 신학은 이러한 사회적 풍토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시카고에 있는 신학교들은 저마다 실천신학 분야에서 Urban Ministry를 모토로 다원화되고 세계화된 도시 시카고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이민신학, 세계화 시대의 도시 빈민을 위한 복지신학, 다원화된 시대에 걸맞는 예배 예전 발굴과 회중의 효율적 조직화를 위한 여러 실험들에서 그와 같은 성과들을 목도할 수 있다.[각주:5]

 

특별히 이웃종교에 대한 이해와 대화를 위한 노력은 아주 구체적이다. 이슬람권 학생들을 신학교에서 장학금을 주어 유치하여, 코란과 성경, 예수와 마호메트 등의 과목을 개설하기도 하고, 유대교 랍비를 신학교 교수로 임용하여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하는 3대 종교간 (이슬람, 유대교, 그리스도교) 분쟁에 대한 연구와 대화모색을 위한 노력을 경주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시카고 신학교내의 LGBTQ 센터는 Queer theology 담론 생산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시카고 루터란 신학교 내에는 미국에서도 과학과 종교간 대화에 있어 그 권위를 인정받는 Zygon Center가 있다. 이 밖에도 신학과 인접학문, 신학과 사회적 이슈들을 연결하는 다양한 센터들이 시카고에는 산재한다. 이러한 영향으로 시카고 신학계는 쟝르와 경계를 넘나드는 대화와 공방으로 일년 내내 떠들썩 하다.

 

종합하면, 시카고의 신학은 학제간 연구(Interdisciplinary Studies)로 요약될 수 있다. 시카고가 지닌 다인종, 다문화, 다종교의 상황속에서 시카고 신학은 이러한 시대적 질문에 대해 철저한 제 학문간 연대와 제휴를 통해 신학적으로 다양한 빛깔과 무닉를 연출하고 있다는 말이다. 서두에서 언급했던 탈경계의 신학을 위한 단초는 위에서 언급한 시카고의 신학적 토양과 깊은 연관이 있다. ‘, 탈경계의 신학인가?’에 대한 물음, 이를 위한 방법론에 대한 논의는 다음 번 숙제로 미룬다.

ⓒ 웹진 <제3시대>


  1. 미국신학의 지형도와 시카고의 신학적 분위기를 소개하는 대목은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발행하는 계간지인 『세계와 선교』 195호(2008년 봄호, 90~95쪽)와 196호(2008년 여름호, 82~89쪽)에 기고했던 필자의 졸고 「세계 신학교 동향: 미국신학의 광맥, 시카고지역 신학교 소개」를 수정, 보완한 내용임을 밝힌다. [본문으로]
  2. 미국에는 천 개가 넘는 신학교와 종교관련 학과가 있다고 한다. 그 중 대부분은 복음주의 혹은 근본주의 계열의 학교들이다. 반면, Mainline 진영에 속한 학교들은 손으로 꼽는다.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진보진영에 속한 신학자중 미국에서 유학한 대부분의 학자들은 Mainline진영에 속한 학교들에서 신학수업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참고로 미국에 있는 Ph.D 학위를 수여하는 Mainline 진영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 학교들은 다음과 같다. (제가 미처 몰라 누락된 학교도 있을 수 있으니 이것이 절대적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유명한 보스톤 컬리지, 노틀담, 로욜라 같은 카톨릭 대학들은 빠져있습니다) - 동부: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뉴욕 유니언 신학교, Drew, 보스톤 /중부: 시카고, Garrett 신학교, 시카고 신학교, 시카고 루터란 신학교 /서부: GTU, 클레어몬트 /남부: 에모리, 듀크, 벤더빌트, SMU [본문으로]
  3. 시카고는 전미 최대의 신학 인프라를 갖추고 있으며 단일지역으로는 가장 많은 신학생들이 배출되는 고장이다. 시카고 지역의 가장 큰 신학적 특색은 초교파적으로 구성된 11개의 신학교가 연합체(ACTS: The Association Of Chicago Theological Schools, http://www.actschicago.org/) 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ACTS에 속한 신학교의 모든 학생들은 어느 학교에서든 수업을 들을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노스웨스턴대학, 로욜라대학, 드폴대학, 위튼대학, 시카고대학 등에 있는 종교학, 철학과와도 연관을 맺어 필요에 따라 언제든 수강이 가능하다. ACTS에 소속된 학교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Mainline진영(진보적)의 학교와 Evangelical 진영(보수적)의 학교, 그리고 천주교 학교에 이르기까지 신학적 스펙트럼도 다양하다. ACTS에 소속된 전임 교수는 400여명, 학생은 3천 여명, 1년에 개설되는 강의는 총1000여 강좌에 육박한다. ACTS는 또한, 11개의 멤버 학교 외에 Zygon Center (Religion & Science), LGBT Center (Queer theology), Christian-Muslim Studies, Christian-Judaism Studies, Center for Study of Black theology, Center for Study of Korean Christianity 등 신학과 각 분야 연구를 위한 10여 개가 넘는 센터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 연구소들을 중심으로 쟝르와 주제를 넘나드는 신학적 대화와 공방이 일년 내내 현기증 날 정도로 펼쳐지고 있다. – 위의 각주는 지난 웹진 "제3시대" 제23호에 게재되었던 ‘신학, 시대와 통하라!: 데리다로 신학하기를 위한 서론’ 중에서 인용하였음. [본문으로]
  4. 오바마의 정치적, 사상적 고향이라 할 수 있는 시카고 남부 Hyde-Park은 미국 흑인 인권 운동의 상징적 지역이라 할 수 있다. 살아있는 흑인 인권 운동의 대부인 제시 잭슨 목사, 오바마의 멘토로 유명한 제레마이어 라이트 목사 등이 모두 시카고 신학교에서 신학 수업을 받았다. 위의 사진은 Hyde-Park에 위치하고 있는 시카고 대학과 시카고 신학교 전경이다. 우측 하단에 거대하게 버티고 있는 건물이 시카고 대학을 건립한 록펠러를 기념하여 세운 록펠러 채플이고, 바로 건너편 빨간 벽돌로 높이 솟아있는 탑이 시카고 신학교이다. 사진 중앙을 가로 지르고 있는 길이 University Ave이다. 그 길 건너편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카고 대학이 펼쳐진다. 좌측 중앙에 보이는 회색 건물이 시카고 대학 메인 도서관이라 할 수 있는 뢰겐스타인 도서관이다. University Ave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신학자 폴 틸리히가 자주 갔다는 맥주집이 길 모퉁이에서 아직도 성업중이다. 저 멀리 시카고 다운 타운이 보이고, 사진 상단 파란부분은 남한 땅이 풍덩 빠져도 남는다는 미시건 호수이다. [본문으로]
  5. 이를 통칭해서 ‘congregation ministry’라 부른다. 이 개념은 교회 운영과 관리, 목회자와 교인 사이의 다이나믹을 둘러싼 갈등해소와 관련해서 한국교계에 통상 ‘leardership’ 분야라 알려진 것과 혼동이 될 수도 있다. leardership 분야가 근본주의 진영의 목회 스타일, 즉 목회자와 교인간의 수직적 관계를 강조하고 지탱하는 전략적 목회전술의 개발에 포커스가 가 있는 반면, congregation ministry 분야는 기본적으로 시카고와 같은 다인종, 다문화, 다종교 상황을 전제한다. 미국내에서 양자는 지역적으로나 이념적으로도 뚜렷한 대비를 보인다. 리더쉽 분야는 미국 남부 바이블벨트라 불리는 지역들에서 발전하는데, 이는 부시로 상징되는 미국 기독교우파에게 신앙적 토대를 제공한다. 반면, congregation ministry 분야는 이와는 반대 진영에 있는 입장을 대변한다. 다원화된 사회속에서 전시대의 획일적 리더쉽과 이를 바탕한 교회운영이 아닌, 각각의 개체들, 즉 다양한 교회회중들의 움직임과 전통과 발상이 무언가에 의해 통제되고 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두가 다 살아 움직이는 교회를 위한 모색과 연구가 바로 요즘 미국 mainline 진영 실천신학분야의 새로운 이름인 congregation ministry인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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