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가을의 사진일기



신윤주*



9월 9일: 사치 

습도가 낮아지고 하늘이 높아지고 바람이 가벼워지고 볕은 더욱 맑아지는 계절이 책상 앞에 드리운 옅은 그림자 끝에 걸려있다. 그리고 나는 문득, 기쁜 마음으로 고요를 발견한다. 가을볕이 드는 창가를 고요히 누리는 것. 살아있음의 특권이다.


9월 25일: 자녀 

언젠가 너를 사랑하고 미워하고 염려하고 보고 만지고 생각하는 것은 눈을 뜨면 맞이하는 아침처럼 당연한 일이 될 것이다. 일상이라는 교묘한 함정조차 망각한 채 나는 네가 없었던 시간도 없을 시간도 상상하지 못하겠지. 지금 내가 그를 사랑하는 모양처럼 꼭 그렇게. 망각할 숙명이 싫었다. 두려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망각 이후의 애도를 요청 받을 순간까지 꽤나 긴 찰나를 살게 될 거라고, 뜻밖에도 쉽게 끝나지는 않을 거라고, 그러니 그때까진 모른 체 하고 살아볼까 보라고, 한번 그래볼까 보라고 말을 건넨다. 성급히 붉어진 단풍에게, 커다랗게 지는 붉은 해에게, 흙빛 심장이 시샘하는 순간의 흔적이 거기 있음으로 인하여.



9월 29일: 할머니 혹은 거짓부렁 

행복감의, 살아있음의 휘발되지 않은 잔여물이 일으키는 비현실적인 느낌이 있다. 죽음은 그보다 더 거짓말 같은 것이다. 비존재는 언제나 농담처럼 건네진다. 그녀가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말했다. 나는 일이 년 있으면 죽을 거야. 실존의 측면에서 그녀는 나의 과거로부터 존재하나 생활의 측면에서 그녀는 다만 과거에 있다. 그럼에도, 만일, 그녀의 죽음이 도래한다면 그것은 불가피하게 도적 같고 거짓말 같을 것이다. 내 인생의 두 번째 여자. 저무는 인생의 모습이 아름답기를 원하는 나의 욕망은 그녀와 나의 관계만큼이나 오래 묵은 것이다.



10월 14일: 수치 

빛은 지는 빛이었으나 색을 압도했다. 푸른 나뭇잎이 주홍빛 석양을 등에 지고 실루엣으로 변하였다. 존재는 한낱 그림자가 되었다. 가까이 다가가 잎을 만나고 석양의 속임수로부터 존재를 확인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노래 한 소절을 불러보았다. 노래는 하루의 수고를 위로하였다. 숨을 고르고 말해주었다. 나역 때로 나의 존재를 구원하기 위하여 다른 존재의 진실로 다가가지 않는다.



11월 2일: 반성문 

연극 공연이 영화 상영과 다른 점 중 가장 치명적인 것은 아마 그것의 재생 불가능성일 것이다. 일단 조명이 들어오고 무대가 시작되면 의도된 연출이 아닌 이상 준비한 공연이 마칠 때까지 무조건 'go'다. 요리도 그렇다. 예정된 시간에 맞춰 준비하기 시작한 요리는 신호탄과 함께 출발한 단거리 주자처럼 그렇게 앞만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그렇게 완성된 요리는, 상연을 마친 공연처럼, 재생될 수 없다. 요리가 완성된 직후 그것의 온도가 아직 최적의 맛을 선사하는 동안 식사를 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위해 준비한 무대를 보는 것과도 같은 일이다. 특히 어떤 분야의 요리는 더더욱, 데워먹는 경우 방금 만든 음식과 본질적으로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음식 만든 사람은 안다. 오랜만에 남편과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있는 날이었다. 몹쓸 '이것만 끝내고 가야지' 때문에 집에 도착한다고 한 시간이 다 되어 출발하게 되었다. 남편이 요리를 준비하고 있을 거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대체 내가 얼마나 잘못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반성문을 작성하였다. 여보 미안합니다.



11월 10일: 사치 II 

오늘 아침, 세 번째 마주침. 나는 그간 나무가 잎을 떨구는 거라고 대단히 착각을 하고 있었나보다. 가벼운 바람결에도 우수수 지는 잎을 보며 애초에 나무에게는 잎을 떨구고 말고 할 힘이 없었음을 듣게 된다. 가능한 것이 있다면, 놓치는 것뿐이다. 흩어지도록 내버려두는 일뿐이다. 우아한 흩음조차 나무의 몫은 아니다. 앙상해져가는 동안 풍성했던 시절을 추억하는 것쯤은 가능한 옵션일지 모르겠다. 또, 아주 앙상해질 날들을 준비하는 것도. 떨구는 행위인줄 알았던 것이 실은 그저 놓치는 일이었던 거라고 해도 내 손에 쥐어진 아주 작은 몫의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을 가지고 노래하고 싶은 아침.



    * 필자소개  

메모광. 학부에서 국제어문학을, 석사과정으로 비교문학을 공부했으며, 향후 프로이트 라깡주의 정신분석학을 중심으로 연구를 지속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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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허구일지도 몰라, 여성혐오[각주:1]



신윤주*



# 나의 이야기


    지난 세월을 돌이켜 헤아리는 일은 시간의 유속을 왜곡하는 셈법이라지만 그래도 그렇지, 8년차 부부라니! 맘이 그렇지 않다 해도 신혼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시기는 이미 한참 전에 지나버렸다. 낯선 열정이 친숙한 다정함으로 변모하는 동안 동갑내기인 우리 부부는 양가 부모님 네 분의 환갑 기념행사와 동생의 결혼, 그리고 몇 번의 이사를 함께 치렀다. 그리고 서른여덟이 되었다. 서른여덟짜리 여성의 몸은 어떤 것일까. 나는 아이를 가지는 일을 두고 숙고할 때마다 내 몸의 나이를 센다. 그렇게 ‘나 자신’인줄 알았던 몸이 사실은 ‘대상’이었음을 자각한다.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것으로 가정되어 있지만 사실은 통제의 범위를 훌쩍 넘어서는 대상으로서의 육체가 불모를 선언하기라도 할까봐 내심 불안해한다.

    나는 아직 초산을 하지 않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간의 피임은 성공적이었다. 처음부터 아이 없는 삶을 계획한 건 아니었지만 망설임은 유보 혹은 지연으로 귀결되곤 했다. 주위의 사람들은 결혼을 하고 한두 해가 지났을 때부터 본격적으로 아이 소식을 묻기 시작했다. 양가 부모님 역시 순리처럼 아이를 기다렸다. 엄마는 애를 태우기까지 했다. 혹여 며느리로서의 도리를 다하지 않아 쌔한 대접을 받지나 않을까 걱정을 하신 것이다. “시부모님이 뭐라고 안 하셔?” 어느 날 엄마는 무심한 척 질문을 던졌다. 나는 ‘물론 기다리기야 하시지만 재촉하진 않으신다’고 대답했다. 실제로 남편이 부모님을 나름 성공적으로 설득해내고 있기도 했다. “지금 저희 벌이로는 아이 못 키워요. 다른 여건도 어렵고요. 저희 아이는 저희가 키울 거예요.”

    결혼 후 첫 해를 채운 후에 나와 남편은 순차적으로 대학원에 입학했다. 결혼할 당시에 진학을 계획했던 건 아니었지만 출산의 시기 때문에 조금 서둘렀다. 아이가 태어나면 아무 것도 못한다는 말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고 우리에겐 더 해야만 하는 공부가 있었으니까. 마치 사명처럼 우리를 추동한 욕망을 따라 남편과 나는 출산도, 커리어를 쌓는 일도 다음으로 미뤘다.

    물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일과 공부와 육아를 병행할 수도 있었겠지만 결국 한정된 자원의 배분에 관한 문제였다. 육아는 누군가가 무언가를 포기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아이의 부모가 포기하지 않으면 조부모가, 그마저도 어려우면 아이 자신이 포기할 지분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여성으로서의 당위와 기대가 만들어낸 내적 갈등이 한동안 이어졌다. 빨리 아이를 갖지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은 걸까. 자기 몸의 한 자리에 난 방을 작고 여린 생명에게 내어주고, 열 달 즈음 몸 안에서 자라게 하고, 때가 찼을 때 광활한 우주의 어느 공간에 내어놓는 일. 그리고 그가 스스로 자기 몸과 세계를 다룰 수 있을 때까지 여전히 지키고 돌보는 일. 자녀를 만난다는 것은 분명 대단히 특별한 경험이자 엄청난 변화일 것이다. 하지만 한편, 원하지 않는 아이만큼 여성을 괴롭게 하는 것이 또 있을까. 아이와 상황을 원망하지 않을 수 있을지 끝내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남편은 아이를 바라기도 했고 그렇지 않기도 했다. 아버지가 되는 일의 숭고를, 부모님에게 갚아야 할 생명의 빚이 있음을 생각했지만 경제적인 부분에 관한 현실적 우려를 떨칠 수도 없었다. 아이가 생긴다는 건 진로와 사랑 양쪽을 모두 건 모험을 감행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남편의 관심 분야는 모종의 성취와 돈벌이 사이의 연관성이 뚜렷하지 않았다. 또, 아이가 태어나면 어떤 방향으로든 부부의 관계 양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들 하는데 우리는 꽤 만족스럽게 잘 지내고 있기도 했다. 남편에게도 아이의 등장으로 인해 자신이 포기해야 할 수도 있는 것들에 대한 입장을 정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몇 해 전 어느 모임에 참석했을 때였다. 정년이 보장된 직장의 간부급 남성 한 분이 걱정이라는 듯 점잖게 말했다. “요즘 젊은 여자들은 이기적이어서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하는 게 큰 문제에요.” 자녀를 위한 희생을 감당하지 않으려한다는 거였다. 일리가 있는 말씀이기는 했다. 하지만 출산 기피 현상을 그런 논리로 설명하는 것은 입체적인 사안을 너무 납작하게 만들어놓는 일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는 그때 ‘아이를 낳는 일도 자녀를 갖고자 하는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입 밖으로 꺼냈을까? 적어도 이기심과 이타심의 이분법 외에 다른 준거들이 존재할 수 있음을 반문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마도 나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식물처럼 앉아 있었을 것이다.


#자궁은 누구의 것인가


    모성은 당위가 아니지만 어머니가 되는 일에서 발견 되는 숭고가 있다. 한 생명을 온전히 책임지는 실천은 삶의 깊이를 더하고 외연을 넓히는 결과를 낳곤 한다. 그러나 아이를 원하는 이유가 이타성을 훈련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사명 때문이든, 부부의 모습을 닮은 아이를 보고 싶기 때문이든, 부모님이 기다리시기 때문이든, 엄마가 되는 경험이 주는 긍정적인 기억 때문이든, 첫째 아이를 위한 것이든 출발점은 희생이 아닌 ‘욕망’이다.

    새 생명의 삶은 소중하다. 아니,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 그렇다면 생명을 잉태한 이의 생명도 소중하다. 그리고 두 생명이 맺는 관계의 양상도 소중하다. 축복 속에 시작한 결혼이라도 순탄치만은 않듯, 축복 속에 시작한 삶이라도 쉽지 않은 것이 인생이다. 수많은 필요와 장애를 해결할 의지와 기지를 발휘해야 할 때 누군가에게 욕망되지 않는 삶은 쉽게 좌초된다. 욕망하지 못하는 양육자는 죄책감을 쉬 떨치지 못해 괴로워한다. 그러므로 여기에 사회적·도덕적 당위의 잣대를 가져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임신과 모성을 선택할 혹은 포기할 권리와 책임은 일차적인 책임의 주체인 성인 여성에게 있어야 한다.

   임신 중단은 여성이 자신의 삶에 일어난 낯선 사건을 다루는 하나의 방식으로서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 생명을 잉태하는 것은 그 자체로 완성이라기보다 새로운 관계의 시작에 불과하며, 그 관계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양육자의 돌봄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임신과 출산, 양육의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돌봄은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이제 갓 엄마-되기를 시작한 한 여성은 먹어야 할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고 새로운 몸의 신호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자라가는 생명과 더불어 호흡한다. 하나의 흔적이 미미한 박동이 되고, 그 박동이 인간 신체의 형상으로 광활한 세계에 떨어지고, 최초의 폐호흡을 시작하면 비로소 진짜 여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한 덩어리의 숨 쉬는 육체가 사회 속에 자리를 만들고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하나의 인간 개체가 되기까지 복수의 양육자와 공동체와 사회와 국가는 돌봄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회적 지원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단수의 양육자가 아이의 생존을 책임질 길을 상상할 수 없다면 출산하지 않는 선택을 과연 이기적인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 임신 중단으로 인해 가장 큰 상처를 입는 사람은 여성 자신인 경우가 많다.

   지난 해 보건복지부에서는 여성의 자궁을 관리하기 위한 정책들을 내놓았다. 그중 하나로 ‘낙태죄’의 유령을 불러낸 조치로서 여성·사회 운동가들에게 비판을 받은 ‘의료관계 행정처분규칙 일부 개정령안’과, 성경험에 대한 궁극적 책임을 여성에게 귀속하는 접근인 자궁경부암 예방접종사업이 있다.

    우선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대한 처벌 강화의 내용을 담고 있는 ‘의료관계 행정처분규칙 일부 개정령안’이 문제가 된 것은 근본적으로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임신중절수술 조항을 포함시켰다는 데에 있다. 불법임신중절수술에 관한 처벌 조항이었지만 산부인과의사회는 11월 2일부터 모든 병원에서 임신 중절 수술을 거부하겠다는 선언을 발표했다. 한국 사회에서 임신중절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불법이기 때문이다. 합법인 경우는 모자보건법에서 허용하는 유전성·전염성 질환 등의 보건 의학적 사유나 성폭력에 의한 임신 등의 경우에 제한된다. 또 합법적 사유에 해당되더라도 임신 24주 이내에, 그리고 부득이한 사유가 있지 않는 한 ‘(남성)배우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임신 중단은 형법 제27장 ‘낙태의 죄’라는 조항에 따라 불법이며, ‘낙태’를 한 여성도, 시술한 의료인도 형사 처벌의 대상이다. 

    임신의 ‘과정’에 남성이 개입되고 임신 이후의 모든 기간에 사회적 장치들이 개입되는 만큼, 임신 중단의 결정을 여성 개인의 죄로 처리하는 것은 부당하다. 임신 중단에 대하여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은 여성에게 인구 재생산의 사회적 의무를 부과할 때뿐이다. 여성의 삶을 고려하지 않고 여성의 몸을 단순한 인구정책수단으로 바라보는 것은 여성혐오적 접근으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최초의 쾌락과 최초의 수정에 대한 기여도를 감안한다면 준비되지 않은 임신에 대한 도의적 책임과 과오를 모두 여성에게 묻는 것 역시 성평등지수가 낮은 사회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여성혐오적 분위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각종 여성·사회단체의 청원 덕에 임신중절수술에 대한 처벌을 12개월 자격 정지로 강화하려던 개정안의 조항은 현행과 동일한 수준인 1개월 자격 정지로 유지되었고, 복지부는 현행 의료법령에 명시된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대한 대체 용어를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여성의 몸에 대한 책임을 여성 자신에게만 귀속하는 시각은 지난 해 6월에 발표된 사업인 ‘건강여성 첫걸음 클리닉’에서도 발견된다. 건강여성 첫걸음 클리닉은 2003~2004년에 태어난 12~13살 여학생이 자궁경부암 예방접종을 하도록 권장하는 사업이다. 보건복지부는 2015년도에 국회로부터 예산을 배정받아 매해 230억원을 이 사업에 배정하여 무료 접종을 시행할 예정이다. 그러나 주사제의 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대두되어 접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11월에 질병관리본부에서는 ‘자궁경부암 예방접종 ‘동행’ 캠페인’이라는 것을 내놓기도 했다. 무료 접종 대상을 12, 13세의 여학생으로 제한한 이유로 제시된 것은 HPV 감염이 성 접촉을 통해 전파되므로 성 경험 전 예방을 통해 최적의 효과를 내도록 한다는 것, 9∼15세 연령에서 접종 시 그 이상 연령에서 접종한 경우보다 면역반응이 더 높다는 것 등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는 성별을 특정한 근거로 충분하지 않다.

    사실 이 백신은 정확히 말해 자궁경부암 예방 주사가 아닌 HPV 백신이다. 마치 인플루엔자(flu) 바이러스에 대한 예방주사를 플루 백신이라고 하는 대신 독감 예방 주사라고 부르는 것과 유사하다. 그러나 사실상 HPV 예방 주사는 자궁경부암만을 예방하는 주사가 아니다. 이 주사는 항문암에 80%, 자궁경부암에 70%, 여성생식기 계열 암에 60~40%, 그리고 몇몇 구강암에 대한 예방 효과를 기대한다. 또한 성 접촉을 통해 감염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 예방주사를 반드시 ‘여성 청소년’만 맞아야할 이유는 없다. 이미 한국은 캐나다, 호주, 홍콩, 영국, 미국 등과 더불어 남성에게도 이 예방접종을 할 수 있는 승인을 받은 상태이기도 하다.

    하지만 예방접종 대상이 여성으로 제한되기 때문일까. HPV 예방주사 중 하나인 ‘서바릭스’의 홍보물은 학생들 간 대화의 내용으로 인해 여성혐오 논란을 촉발하기도 했다. 


     여학생 A: 우와- 오늘 자궁경부암 백신인가 때문에 병원 간다구? 

     여학생 B: 아 몰라~!! 지금 우리 나이가 공짜로 놔주는 때라서 엄마가 절호의 찬스래. 


     남학생 C: 너 그거 얌전히 맞는 게 좋을 거야. 신문에서 사춘기 때 맞는 게 좋다고 했어! 

     여학생 B: 이 자식, 네가 뭘 알아? 남자가. 

     남학생 C: 사... 상관있어! 여자가 나중에 내 아를 낳을 수도 있으니까!


# 여성혐오의 정의는 고정되어 있는가


    여성혐오Misogyny에 관한 논의가 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지난 한 해였다. 온라인 서점 내 페미니즘 분야의 도서 판매량이 전전해 같은 기간에 비해 급증했다는 내용이 기사화되었고, ‘여성혐오’는 2016년 누리미디어(dbpia) 에서 선정한 사회과학분야 최다 검색 키워드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깊은 공감과 학습 의욕을 불러일으킨 여혐 논의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대단한 반감의 대상으로 자리하는 일에 그쳤다. 그런데 저마다에게 정의된 ‘여성혐오’는 같은 것일까?

    한국말에서는 Misogyny가 여성혐오라는 번역어로 굳어졌지만, 이 개념어 자체에 대한 정의나 이해는 학자들이나 운동가들 사이에서도 다소간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해석의 여지나 ’혐오‘라는 어휘에 대한 정서적 반응의 문제 때문인지 여성혐오 개념의 적용에 관한 논란은 피할 수 없는 일인 듯하다. 그러던 중 일본의 사회학자인 우에노 치즈코의 저서 《여성혐오를 혐오한다》의 일본어 제목이 주목을 받기도 했는데, ‘여성혐오’에 해당하는 단어가 원어인 ‘Misogyny'의 음가를 그대로 차용한 ‘미소지니(ミソジニー)’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용어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는 뜻일 것이다.

    2012년 10월, 호주의 국회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을 통해 여성혐오 개념에 관한 비교적 최근의 논의 중 하나를 확인할 수 있다. 맥쿼리 사전Macquarie Dictionary은 이 일로 여성혐오의 사전적 정의를 개정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호주의 대학에서, 또한 법률가들이 참조하는 사전으로서의 권위가 인정되는 맥쿼리의 개정은 결과적으로 여성혐오에 관한 가장 최신 버전의 정의로서 회자되기도 했다.

    사건에 달린 표제는 여성혐오 연설Misogyny Speech이다. 사건은 2012년도 당시 국회의장이었던 피터 슬리퍼Peter Slipper가 여러 스캔들에 휘말려 사임을 하는 과정에서 촉발된다. 슬리퍼는 2012년 4월 이후로 여러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었는데 그중에는 보좌관에게 노골적인 성희롱 문자 메시지를 보낸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를 고소한 보좌관은 제임스 애쉬비James Ashby로 서른세 살의 동성애자였다. 당시 총리였던 줄리아 길라드Julia Gillard는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섣불리 판단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견지했는데, 야당의 영수인 토니 애보트Tony Abbott는 (슬리퍼와 같은 성차별주의자를 국회의장직에 남겨 두는 것은) 정부의 수치를 또 하루 더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애보트가 길라드 총리에게 자극적인 발설을 한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길라드는 슬리퍼가 의장직에서 물러난 다음 날인 10월 10일, 작심이라도 한 듯 15분에 걸친 연설을 통해 애보트를 비판한다. 이 연설을 찍은 동영상을 업로드하며 ABC 뉴스는 다음의 제목을 붙인다. “길라드가 애보트에게 여성혐오자라는 딱지를 붙이다.”

    이 연설에서 길라드는 애보트의 발언을 아주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왜 애보트가 성차별주의sexism나 여성혐오에 관한 문제제기를 할 자격이 없는지, 그리고 어째서 애보트 자신이야 말로 성차별주의자이자 여성혐오자인지에 관해 논증한다. 호주 최초의 여성 총리인 길라드가 취임한 후 애보트는 인터뷰 도중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하기도 했다. “만약에 남성이 여성보다 일반적으로 더 많은 권력을 쥔다는 게 사실이라면요, 그게 나쁜 가요?”

    연설이 이어지는 동안 때때로 의사당 내부의 웅성대는 소리가 거세지고, 의장이 저지하다 못해 고개를 가로젓기도 하지만 길라드는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취임 이후로 애보트로부터 들은 모욕적인 언사들, 애보트가 여성의 역할에 대해 구시대적 선입견을 가지고 한 발언들, 한때 가까운 동료였던 슬리퍼와 그의 스캔들에 접근하는 애보트의 이중 잣대, 그리고 의결 과정에 대한 절차적 존중을 성차별 담론으로 퇴색시킨 것에 대한 분노를 꿋꿋이 발화한다.

    이 연설로 길라드 총리는 여성혐오라는 용어 사용의 부적절성과 및 야당 총수에 대한 태도에 관하여 호주 내 언론인들로부터 비판을 받는다. 하지만 SNS상에서 그리고 페미니스트들로부터는 주목을 받는다. 나아가 연설 장면을 담은 동영상의 조회 수는 수백만에 이르게 된다. 이에 맥쿼리 사전은 표제어 ‘여성혐오’에 관한 정의에 새로운 흐름을 반영하여, 기존의 정의였던 “여성에 대한 미움/반감”이라는 의미에 “여성에 대한 확고한 편견들”이라는 의미를 더한다. 여성혐오에 관한 기존의 정의로 담아낼 수 없는 새로운 현상을 수용하고 사전적 정의를 확장한 것이다. 이 용어의 정의에 관한 한 맥쿼리 사전은 옥스퍼드 사전보다 비교 우위에서 논의되었다.

    같은 달 17일, 가디언 지에서는 “성차별주의와 여성혐오: 무엇이 다른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다뤘다. 여섯 명의 페미니스트는 각자의 견해를 내놓았는데 그 중 나오미 울프는 “반유대주의가 유대인을 싫어하는 것이듯 성차별주의란 여성을 싫어하는 것”으로서 줄리아 길라드의 용례는 매우 정확했다고 말한다. 울프는 길라드의 연설 내용 중 토니 애보트가 ‘낙태’를 두고 책임을 회피하는 쉬운 길로 묘사한 것, 선거 운동 중 야당 지지자들에게 마녀를 쫓아내자는 구호를 인용한 것이 있었던 것에서 근거를 찾는다. 한편 줄리 빈델은 성차별주의자가 늘 여성혐오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예컨대 여성은 천성적으로 모성이 있다거나, 기본적으로 운전을 못 한다거나 하는 주장을 한다면 그는 성차별주의자이지만, 이에 덧붙여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거나, 자신의 남편과 아이들에게 봉사하는 존재로 제한한다면 그는 여성혐오자라는 것이다. “여성혐오자들은 반드시 성차별주의자이지만, 성차별주의자들이 항상 여성혐오자인 것은 아니다.” 라일라 굽타는 “성차별주의란 여성혐오를 꽃피우는 우물인데, 물이 하도 탁해서 우리는 가끔 그게 얼마나 실하게 자라고 있는지 볼 수 없을 정도”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성차별주의는 남자들이 당신을 새치기해서 줄에 설 수 있도록 끼워주고 붐비는 버스에 먼저 탈 수 있도록 도와주고는 싫든 좋든, 아 가엾지만, 그들의 손이 “우연히” 당신의 가슴을 감싸며 여성혐오의 광기로 당신을 짓밟는 일이라는 것이다.


#여성혐오라는 허구


    여성혐오의 정의는 언어 표상의 운명을 따라 통시성과 공시성을 지닌다. 개념이 속한 시대와 지역의 특성이 의미를 구성하는 사건들에 차이를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옥스퍼드 사전에서 정의하는 여성혐오의 의미(“여성에 대한 증오, 미움, 편견”) 및 용례들이 19세기의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그렇다면 2017년 현재 한국 사회에서 여성혐오는 어떻게 정의되는가?

    2012년 호주에서의 여성혐오 논쟁을 촉발한 사건이 길라드 총리의 연설이었다면 한국의 경우는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이다.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여성혐오를 둘러싼 페미니즘 이슈는 급격히 일상의 언어 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여성혐오 논의에 의해 계몽된 주체는 ‘여혐’하는 남성보다 ‘여혐’하던 여성이었다. 상품으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아 물질성을 얻은 도서가 다수 출간되었을 뿐 아니라, SNS상의 페이지 혹은 그룹과 페미위키 등을 통한 아카이빙 작업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호주의 사례와는 달리 권위 있는 사전에서 새로운 정의를 내놓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의미가 고정된 기표의 부재는 다성성polyphony을 띠는 운동력의 원천인지도 모른다.

    각자가 이해하는 여성혐오가 동일한 의미를 담아내지 않는 것은 불편한 일일 수 있으나 어쩌면 우리는 조금 불편해져야 하는지도 모른다. 명사의 의미에 대한 하나의 약속 위에서 소통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특정한 맥락 속에서 그 어휘가 소통될 수 있는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여성혐오적 상황에 대한 각자의 고백은 자신의 목소리를 찾고 만드는 첫 번째 과정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나는 이러한 다성적 실천이야말로 무엇보다 여성적인 것이라고 믿는다. 정신분석학자 자끄 라깡이 보편적 명사로서의 여성은 ‘없다’고 말했을 때 그것은 오히려 서로 다른 개별자로서의 여성에 대한 긍정이었다. 일반화된 여성 이미지는 어쩌면 불가해한 여성 혹은 부재하는 집합 명사를 견디는 대안적 허구다. 그렇다면 여성혐오도 허구일지 모른다. 고유한 삶의 역사를 지닌 개별적 인간들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일반화한 여성에 관한 담론으로서의 허구 말이다.

    나와 남편은 전형적인 역할의 틀에 맞추기보다 둘 사이에서 실현되기에 적합한 관계의 양상이 무엇인지를 찾고자 했다. 좀 더 까다로운 필요를 갖고 있거나 이미 유능한 일을 중심으로 역할을 분담하다보니 일반적인 성역할이 분배되는 방식과는 조금 차이가 생겼다. 남편은 언제부턴가 요리 파트를 맡고 있다. 남편이 요리를 잘하게 된 후로는 사람들에게 요리를 해주면서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어가는 요령을 익힌 것 같다. 장을 보는 단계에서부터 식재료는 남편이 고른다. 나는 공산품 담당이다. 상품 패키지에 적혀 있는 원재료를 읽거나 가격을 비교한다. 대신에 나는 처음부터 남자가 돈을 벌어오는 방식으로 가정에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소득이 많진 않았지만 결혼 시기 중 대부분의 기간에 가계 소득 기여도는 내 쪽이 더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남편의 건강 상태나 감정을 살펴서 챙기거나,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고민이 생겼을 때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듣는 나의 태도는 좀더 여성적인 역할일 것이다. 관습적인 성역할을 기준으로 볼 때 현실적인 수행의 부분은 일관되지 않았다. 그런 부분들에 대해 죄책감에 시달린 것은 나였다. 여성적 수행으로 고정된 일들에 대한 죄책이 가부장제의 질서 하에서 형성된 여성혐오적 기준과 무관하지 않음을 깨달은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이제는 나의 역할과 신체를 도구화하는 일을 좀더 비판적으로 인식한다.

    최근에 개정하여 출간된 어느 책의 제목처럼 페미니즘은 사실상 ‘모두를 위한’ 것이다. 페미니즘의 시선을 통해 질문하는 일보다 페미니즘의 시선에 대하여 질문하는 일이 더 익숙한 것은 무엇이 이데올로기인지를 반증한다. 이상적으로 제시된 여성 일반의 특성도, 삼가야할 것으로 제시된 특성도 모두 하나의 통념이다. 통념은 안전하지만 우리를 우물 안의 세상에 가두는 것이기도 하다. 반면 변화는 불편하게 겪어낼 수밖에 없지만 어떤 변화들은 우리가 더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계기로 기능한다.

    우리는 어떻게 환경으로서의 여성혐오를 넘어설 수 있을까. 우선은 여성 각자가 성차를 둘러싼 고정관념에 복무하려 애쓰는 대신 자기 자신을 발화하고 욕망을 찾아가는 일을 통해 균열의 지점들을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여성혐오적 틀의 편리함 대신, 남성들과 여성들이 자신과 마주하고 있는 개별적 여성에 대하여 질문하며 그들 각자와 고유한 관계성을 구성해가기 위해 얼마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통념은 강하다. 하지만 불멸하는 것 또한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 필자소개  

메모광. 학부에서 국제어문학을, 석사과정으로 비교문학을 공부했으며, 향후 프로이트 라깡주의 정신분석학을 중심으로 연구를 지속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 웹진 <제3시대>



  1. <가톨릭평론> 2017년 5·6월호에 송고한 원글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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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에 대항하는 도구로서의 이상 단편소설(2)


: 식민지 조선 근대에 대한 이상의 인식  



신윤주*


    촌과 들은 마치 白晝의 슬픈 점괘에 서버린 채 굳어버린 畵幅이다.

 昏睡와 같은 문명의 魔術에 드디어 꾸벅꾸벅 조는 것일까. 

이 촌에 행복 있으라.[각주:1]


    명백한 담론으로 등장한 적은 없었지만 문인들은 1930년대에 이르러 대중사회 속에서 문학의 자리에 관해 고민해야 했다. 이즈음 독자층은 비약적으로 확대되어 있었고, 문학 작품 뿐 아니라 다양한 잡문을 생산해야 하는 ‘문필가’의 위치를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문인들은 고급과 저급, 문학과 비문학 등의 층위를 벗어나 다양한 텍스트를 통해 일군의 고급독자가 아닌 최소한의 문자해독력만을 가진, 취미와 인식에 있어서도 상대적으로 저급한 수준의 대중을 상대해야 했다.[각주:2]

    이상이 수필을 발표할 당시에 수필은 하나의 장르로서 ‘隨筆’이라는 이름을 부여 받았으되, 시나 소설과 같은 문학적 입지는 갖지 못한 상태였다. 더욱이 이상 자신이 문학에 대해 지니고 있었던 이상[각주:3]이 높았던 만큼 그에게 수필은 대중문예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상의 시에서 나타나는 실험적인 성격과 압축적인 표현, 소설에서 사용된 고도의 은유와 상징 뒤에 가려져 수수께끼처럼 건네지는 작가의 진의와 정서를 짐작하는 일이 수필에서는 한결 수월하다는 면에서 이상의 수필은 그의 문학 세계를 이해함에 있어 중요한 참조점으로 기능할 것이다.

    1934년 6월에「혈서삼태」로 첫 수필 작품을 선보인 이후 『매일신보』에 1937년 4월과 5월에 걸쳐 「공포의 기록」을 연재하기까지 이상은 생전에 15편의 수필을 발표했고, 사망 직후에「권태」와 「슬픈이야기」가 추가로 발표되었다. 이 중 이상이 단편소설 창작에 본격적으로 매진하기 시작한 1936년 6월 이전에 발표된 수필들을 중심으로 앞으로의 논의를 전개하고자 하는데, 이는 이상이 단편소설 창작에 본격적으로 매진하기 시작하기 이전 시점에 발표된 수필들에서 이후 단편소설로 이어지게 될 이상의 문제의식을 발견하고자 함이다.

    이상은 시를 연작으로 즐겨 썼던 것처럼 수필 역시 연작으로 쓰거나 몇 개의 조각으로 나눈 단락들을 시의 연처럼 연결하는 방식으로 수필을 구성한다. 이러한 글쓰기는 후행하는 조각 혹은 연재글에 이르렀을 때 이전에 언급했던 대상에 대한 시선이나 판단을 전복하여 보여주는 데에 매우 효과적이라는 강점을 지닌다. 이상은 다음 단락 혹은 연작 수필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차를 자연스럽게 만들어내고 새로운 서사의 장을 제시한다. 하나의 관점에서 이미 다룬 대상을 후행하는 글에서 다른 관계 속에 배치함으로써 새로운 평가를 유도하기도 하고, 대상의 포지션이 행위의 대상에서 행위의 주체로 바뀌었을 때 드러나는 양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관찰하여 기술하기도 한다.  

    이러한 인식의 방식은 사물의 의미나 속성이 사물들 간의 관계에서 결정된다고 보는 구조주의 언어학의 견지를 빌어 설명하면 좀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이상 수필 속의 대상이나 사건은 의미의 관계망 안에서 사물이 지니는 위치에 따라 다르게 규정된다. 궁극적으로 이상이 쓴 텍스트에서는 그것을 부분으로 삼는 전체 체계와 구조 안에서 대상이 다르게 인식되는 것이 가능해진다. 가령 산촌의 ‘색시’는 도회지의 여인과 비교 선상에 놓였을 때는 가난하지만 무명같이 튼튼한 존재로 인식되었다가, 그 다음 장에서는 뽕잎을 따기 위해 조이삭을 짓밟는 존재로 뒤집힌다. 또 종로 거리를 오가다가 적선을 베풀면서 인간 노릇을 한다고 느끼던 ‘화자’가 다음 순간 자신보다 상위의 누군가에게는 자신이 바로 거지와 같은 존재로서 인식될 수 있음을 깨닫기도 한다. 

   이것은 이상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이자 텍스트를 통해 세계를 제시하고자 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식민지성과 근대성은 이상에게 주변을 둘러싼 모든 물질과 상황으로 파편화되어 존재하며 고정되어 있지 않다. 파편들은 다양한 스펙트럼 속에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대상의 의미는 가변적이다. 또한 대상은 홀로 놓여있지 않다. 어떤 시간과 공간 속에 놓여있으며 다른 대상과의 관계 속에 놓여있다. 그것이 이상이 시와 수필을 연속해서 쓰는 것을 통해 보여줄 수 있는 효과이다.

    이상 수필의 중심에 놓여있는 것은 ‘현대’이고 ‘문명’이다. 또한 이상의 수필에는 이야기가 일어나는 장소가 어디인지를 중요하게 다루는데 즉, 시간성보다는 공간성이 두드러지는 편이다. 그리고 이야기의 주무대는 근대적인 것들이 담겨있는 ‘도회지’이거나 도회지와의 대조 속에서 근대성을 비추는 ‘산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도회지에서 일어나는 전근대적인 일들과 산촌에서 일어나는 현대 문명의 흔적들을 다루며 외떨어진 곳까지 침투해가는 문명과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신화적 무지와 인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인습의 흔적을 다루는 동안에도 이상은 그것과 상응하는 근대의 산물을 떠올리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더러 죽은 어머니를 살리는 수가 있다니 그것을 의학이 어떻게 교묘하게 설명해 줄지는 모르나 도무지 신화 이상의 신화다. 원체가 동양 도덕으로는 신체발부에 창이를 내는 것을 엄중히 취체한다고 과문이 들어왔거든 그럼 이 무시무시한 훼상을 왈, 중에도 으뜸이라는 효도의 극치로 대접하는 역설적 이론의 근거를 찾기 어렵다. …… 일종의 무지한 만적 사실인 것을 부정키 어렵다는 것 외에는 취할 것이 없다. 알아보니 학교도 변변히 못 가본 규중처녀라니 학교에서 얻어 배운 것은 아니겠고 그렇다면 어른들의 옛이야기나 …… 아 전설의 힘이 이렇듯 큼이여. …… 이 양이나 다름없이 부드럽게 생긴 소녀가 제 손가락은 넙적한 식도로 덱걱 찍어내었거니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다. 다만 그의 가련한 무지와 가증한 전통이 이 새악씨로 하여금 어머니를 잃고 또 저는 종생의 불구자가 되게 한 이중의 비극을 낳게 한 것이다. 「조춘점묘 2-단지한 처녀」 중에서


    「조춘점묘 2」의 주인공인 ‘단지한 처녀’는 이상의 막내 동생 옥희의 친구였는데, 그 처녀가 어머니를 여의고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다시 살릴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식도로 자신의 왼손 무명지를 찍어 잘라낸다. 간혹 그렇게 해서 어머니를 살려내는 경우가 있다는 말을 어디서 듣고 믿은 것이다.

   이 글에서 이상은 이토록 독하고 한편 도덕적인 행위의 저변에 깔려있는 “전설”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과 동시에 그녀에게 “학교” 교육의 부재했음을 같은 선상에서 보여준다. 손가락을 잘라내는 효의 실천은 “오늘 우리가 짊어지고 있는 어떤 종류의 생활 시스템이나 사상적 프로그램으로 재어보아도” 안타깝지만 무지하고 미개한 사실이라는 것이다. 이상은, “무슨 물질적인 문화에 그저 맹종하자는 게 아니라 시대와 생활 시스템의 변천을 좇아서 거기 따르는 역시 새로운, 즉 이 시대와 이 생활에 준구되는 적확한 이론적 척도”를 “의식적으로 입법해 내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생겨야 할 것”이라는 말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만들어내자는 것이다. 근대성을 선취하고자 하는 이상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상의 눈에 이 단지한 처녀는 불행히도 “시대에서 비켜선 지고한 효녀”다. 그녀의 효심이 공경받아 마땅한 정성인 것과는 별개로 그녀가 손가락을 잘라냈다는 사실은 미워할 수 밖에 없는 것으로, “오히려 단지를 미워하는 심사 저 뒤에는 아주 근본적으로 미워해야 할 무엇이 가로놓여 있”다. 시대의 흐름에 맞는 지식이 아닌 신화와 전설을 상식으로 삼는 사회의 여전함을 못내 미워하는 마음이 나타난 이 글을 통해 이상은 그가 속한 세계에 결핍된 ‘현대성’을 요청한다.

    그러나 현대성을 성취하는 것이 만병통치약일리는 없다. 현대성의 어떤 면을 어떻게 취하는가 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다. 이상이 ‘골동품’을 소재로 삼아 쓴 수필에서는 특히 “현대 자본주의”와 더불어 부상한 사물의 ‘교환가치’ 덕에 생기는 일들이 그려진다.

    이 글에서 이상은 골동품을 다각도에서 살펴본다. 골동품은 선대와의 연결고리가 될 수도 있고, 예술품으로 인식될 수도 있으며, 고고학적 지식을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고, 거래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나아가 위조하여 거래하는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가끔 아는 이에게서 자랑을 받는다. 내 이조 항아리 좋은 것 우연히 싸게 샀으니 와보시오-다. 싸다는 그 값이 결코 싸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가보면 대개는 예술적 가치도 없는 태작인 경우가 많다. 그야 오늘 우리가 미쓰꼬시 백화점 식기부에서 살 수 없는 물건이니 볼 점이야 있겠지, 하지만 그 볼 점이라는 게 실로 하찮은 것이다. 「조춘점묘 6~7-골동벽」 중에서


    이상의 눈에 그다지 예술적 가치도 없는 이조 항아리를 “얼싸안고 혀로 핥고 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진부한 “커트 글래스 그릇” 하나를 만들어내는 부지런함과 비교되는 나태한 습성일 뿐이다. 그는 골동품이라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이 되려면 “같은 시대 것, 같은 경향 것을 한데 모아놓고 봄”으로써 구체적인 역사지식을 얻을 수 있을 때이며 어느 시대의 “생활양식, 민속, 민속예술”을 알고자 함이 없을 경우에는 골동품의 존재 이유가 소멸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이상이 ‘사용가치’라는 개념어를 사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비슷한 골동품들을 모아놓음으로써 그것이 속한 시대와 경향을 알게 하는 박물관과 병존할 때에 비로소 의미를 얻게 된다고 역설하는 것은 골동품의 쓰임에 주목한 것이므로 사용가치에 제한하여 가치를 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각주:4] 사용가치의 강조는 다음에 이어지는 에피소드에서 골동품이 ‘교환가치’를 지닌 사물로 작동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전혀 오 전에 사서 백 원에 파는 것으로 큰 미덕을 삼는 골동가가 있으니 실로 경탄할 화폐제도의 혼란이다. 모씨는 하루 이런 이야기를 한다-. 요전에 샀던 것 깜빡 속았어, 그러나 오 원만 밑지고 겨우 다른 사람한테 넘겼지 큰일 날 뻔했는 걸-이다. 위조 골동품을 모르고 고가에 샀다가 그것이 위조라는 것을 알자, 산값에서 오 원만 밑지고 딴 사람에게 팔아먹었다는 성공 미담이다. 「조춘점묘 6~7-골동벽」 중에서


    박물관에 기부하기도 애매한 위조 골동품을 유통하는 도회지의 세태[각주:5]는 ‘금융조합 선전 활동사진회’가 열리는 산촌의 어느 밤 풍경과 대조를 이룬다. 산촌의 “시민”들은 ‘금융조합 선전’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활동사진회’에만 대단한 호응을 보인다. 그들의 무지는 그들 자신을 “경탄할 화폐제도의 혼란”에서 구원해주는 역설적 무기가 되었다. ‘금융조합 선전 활동사진회’로 시작한 모임은 “영화 감상의 밤”으로 끝났다.


마당에 멍석을 펴고 전설 같은 시민이 모여듭니다. 축음기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북극 ‘펭귄’ 새들이나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시작입니다. 부산 잔교가 나타납니다. 평양 모란봉입니다. 압록강 철교가 역사적으로 돌아갑니다. 박수와 갈채- 태서의 명감독이 바야흐로 안색이 없었습니다. 10분 휴게 시간에 조합 이사의 통역부 연설이 있었습니다. ……우매한 백성들은 이 이사의 웅변에 한사람도 박수치 않습니다-. 「산촌여정 <6>」 중에서


    ‘성천기행 중의 몇 절’이라는 부제가 붙은「산촌여정」이라는 수필은 이상이 자신의 보성고보, 경성고공 동기였던 원용석이 지방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지역인 성천에 가서 며칠 지내며 겪은 일들을 바탕으로 쓴 글이다.[각주:6] 이상이 ‘도회지’라고 부르는 ‘경성’에서 경험하는 근대성에 비해 산촌인 성천에 들어와 있는 근대성은 얼개가 허술한 채 존재하는 파편의 형태로만 존재한다. 오히려 “세숫비누에 한 겹씩 한 겹씩” 해소된다는 도회의 육향을 이상 자신이 묻혀내지 않았다면 드물게 발견되었을 근대의 파편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특성이 도드라져 보이기도 한다.


옥수수 밭은 일대 관병식입니다. 바람이 불면 갑주 부딪치는 소리가 우수수 납니다. ‘카마인’ 빛 꼬꼬마가 뒤로 휘면서 너울거립니다. 팔봉산에서 총소리가 들렸습니다. 장엄한 예포 소리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 곁에서 소조의 간을 떨어뜨린 공기총 소리였습니다. 「산촌여정<3>」 중에서


    고요한 밭, 바람에 옥수수가 서로 부딪혀 만드는 우수수 소리라야 겨우 적막을 깨는 공간에 장엄한 예포 소리가 들려온다. 산 너머 어딘가에서 흘러온 소리에 작은 새의 간이 떨어졌다. 이상은 작은 새의 두려움을 통해 현대식 무기가 조장하는 공포를 드러낸다. 그것이 아무리 누군가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발사한 공포탄일지라도 여전히 막강한 화력을 보유한 무기인 것이다.

    현대적 이론과 생활 시스템은 신화와 전설의 세계에 빠져있는 무지한 대중을 구원할 수 있는 해법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또한 사물의 사용가치를 가리는 왜곡된 화폐제도나 침입의 형태로 나타나는 공포스러운 무기와 연동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근대성은 이상에게 온전히 추구할 수도 추구하지 않을 수도 없는 양가적인 대상으로 나타나며, 때로는 파시즘적 요소와 뒤섞여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띤다.[각주:7] 근대의 이미지는 다면적이며, 근대는 다면성을 극에 달할 수 있게 하는 ‘위조’에 능하다. 이상은 백화점에서 안내방송을 맡은 라디오를 점원의 대표라고 보았다. 라디오에서 대표로 안내 방송을 하면 점원들은 일일이 손님에게 같은 말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라디오는 점원 개개인의 위조이다. 


비오는 백화점에 적! 사람이 없고 백화가 내 그림자나 조용히 보존하고 있는 거리에 …… 라디오는 점원 대표 서럽게 애수를 높이 노래하는 가을 스미는 거리에 …… 「산책의 가을」 중에서


    「산책의 가을」에는 ‘산보가을예’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이 글에서 이상은 가을의 거리를 산책하면서 마주치는 것들을 하나 하나 나열한다. 근대의 징후들의 예다. 캔음료의 따개를 열면서 시작된 이야기는 장소를 따라 흘러간다. 백화점에서 과일가게로 다시 인쇄소로, 청계천으로, 맨 마지막은 롤러 스케이트장이다.

    백화점에는 사람이 없다. 백화가 ‘나’의 그림자를 보존하고 있을 뿐이다. 점원의 대표는 라디오다. 쇼윈도우 안에는 마네킹이 서 있는데, 마네킹에는 살결이 없다. 마네킹은 모델의 위조다. 유니폼을 입은 소녀들에게 볼 수 있는 피부는 포장지보다 온전한 포장지이지만, 유니폼은 피부보다 온전한 피부다. 유니폼은 피부의 위조다. 윈도우는 백화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과일가게에도 있다. 과일가게의 내부를 들여다보니 과일 호흡이 어린 유리창 너머로 살짝 향초(바나나)와 복숭아가 보인다. 복숭아와 향초, 혹은 복숭아와 바나나다. 인쇄소로 넘어가자 직공들 얼굴이 모두 거울 속에 있고 모든 것이 다 ‘좌’다. 그렇기에 그들과 좌된 지식으로 대화하려 했더니 웬일인지 그들의 서술은 ‘우’다. ‘나’는 이렇듯 방대한 좌와 우의 교차 속에서 졸도할 것 같아 뛰쳐나왔다. 그러자 직공은 일제히 우로 돌아간다. 거울 속의 인쇄소 직공은 나의 위조다. 청계천에 이르렀다. 상공에는 비행기가 광고 삐라를 뿌리고 있다. 향국의 아이들(동해)은 삐라같이 삐라를 주우려고 모였다 흩어졌다 한다. 마지막으로 롤러스케이트장에 이른 이상은 겨울을 위조하는 빙판을 바라본다.


롤러 스케이트장의 요란한 풍경, 라디오 효과처럼 이것은 또 계절의 웬 위조일까. 월색이 푸르니 그것은 흡사 교외의 음향! 그런데 롤러 스케이트장은 겨울- 이 땀 흘리는 겨울 앞에 서서 찌꺼기 여름은 소름끼치며 땀 흘린다. 어떻게 저렇게 겨울인 체 잘도 하는 복사 빙판 위에 너희 인간들도 알고 보면 인간 모형인지 누가 아느냐. 「산책의 가을」 중에서


    내가 너와 비슷하지 않느냐고, 오히려 너보다 낫지 않느냐고 아우성치는 위조들의 틈을 지나는 동안 차곡차곡 쌓인 문제의식은 “너희 인간들도 알고 보면 인간 모형인지 누가 아느냐”는 질문에 이른다. 근대 초기의 징후들이 자연으로부터 존재했던 것들을 대체할 수 있는 위조들을 늘어놓은 가운데 진정성에 대한 질문은 인간 존재에게까지 향한다. ‘너희 인간들도 알고 보면 인간 모형인지 누가 아느냐’는 질문은 인간 존재와 인간의 위조를 구분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지만, 한편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인간은 무엇으로 그 존재의 인간됨을 증명할 수 있을까? ‘인간’은 어떻게 ‘인간 모형’과는 다른 존재가 될 수 있을까?


마꾸닝 회충 구제 그러나 한 동해도 그것을 읽을 줄 모른다. 향국의 동해는 죄다 회충이다. 그래서 겨우 수채 구녕에서 노느라고 배 아픈 것을 잊어버린다. 동해의 양친은 쓰레기라서 너희 동해를 내어다버렸는지는 모르지만 빼빼 마른 송사리처럼 통제 없이 왱왱거리면서 잘도 논다.[각주:8] 「산책의 가을」 중에서


    아이들은 마치 뱃속의 회충처럼 내몰려져있다. 이상은 아이들을 내다버린 부모들을 쓰레기에 비유한다. 가장 약한 인간 존재인 어린이들이 유기된 상황을 통해 인간됨에 관한 질문을 끌어낸다. 인간이 위조한 사물들에 소외된 인간은 또한 서로를 소외시킨다. 「조춘점묘 5-도회의 인심」에서는 그런 도회의 인심이 잘 묘사되어 있다. 이상의 단편소설 속에 종종 등장하는 룸펜 이미지는 흔히 이상 자신의 일상을 그린 것이었다고 읽히지만 「조춘점묘 5」에 묘사되고 있는 개개인의 모습을 바탕으로 고찰한다면, 룸펜 이미지는 도회지에 사는 소외되고 고립된 개인의 이미지를 끝까지 밀어붙인 인물형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조춘점묘 5」는 이상이 전해들은 일화로 시작된다. 상해에서 벌어진다는 이야기다. 상해에서는 아이(보통은 죽은 아이)를 쓰레기통에 내다 버린다고 한다. 새벽이면 쓰레기 치우는 인부가 일을 하는데 휘파람을 불며 쓰레기를 치우다가 죽은 아이를 발견해도 놀라지 않고 오히려 쓰레기만 걷어 가느라 아이의 시체를 이리 저리 비켜놓고 하다가 그냥 놔두고 간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상이 주목한 것은 아이를 버리는 일이 아닌 미화원에 반응, 곧 “다만 이것은 쓰레기는 아니니까 내가 치워 가지 않을 따름 어떻게 되는 걸 누가 알겠소” 하는 듯한 태도다. 쓰레기를 치우는 인부는 쓰레기만 치우면 된다는 식의 사고는 고도의 분업화의 부산물이다. 한편 버려진 아이는 그것이 유기된 사체일지라도 간단히 쓰레기로 분류되기에는 존엄한 인간 존재의 흔적을 여전히 지닌 복잡한 대상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도회의 인심이 “어느 만큼이나 박하고 말려는지 종잡을 수가 없”다는 말로 뭉뚱그려진 문장 속에는,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죽은 아이의 몸처럼 다루기 힘들고 그래서 그저 그렇게 방치되어있는 산적한 도회적 과제들에 대한 복잡한 마음이 숨어있다.

    이상은 이사한 지 일 년쯤 되어가는 ‘나가야’에서의 생활에 대한 회고로 이야기를 이어간다.「날개」의 33번지 18가구를 떠오르게 하는 이 ‘나가야’의 한 들보 한 지붕 밑에는 박 서방, 김 씨, 이상, 최 주사 등 여러 사람이 칸칸이 산다. 칸마다 크고 작은 문패도 붙었다. 다닥다닥 붙은 옆 방을 옆 집 삼아 지내는 사이이지만 이들은 서로 사귀지 않는다. 특히 직업은 절대 비밀이다. 한 젊은 세대는 여름부터 그칠 줄 모르고 싸우다가 가을 초입 즈음에는 결국 헤어지고 둘다 집을 나갔다. “물론 이사를 하는 경우에도 이웃에 인사를 하는 수고스러운 미덕은 이 ‘나가야’ 규정에 없다.” 그 옆 칸에 사는 젊은 여자는 앓던 이가 빠진 것 같다고 평했다. 이 젊은 여자의 경우 젖먹이를 먼저 저 세상에 보내는 일을 겪었다. 이런 경우에도 부의를 하는 이웃은 없었다.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다. 새해가 되어 이상의 가족이 사는 칸의 반대편 이웃집에서 흰떡을 했다. 그 떡은 그 집 식구들끼리만 먹는다. 이상의 가족 역시 지짐이를 했지만 “흰떡 한 가락 안 주는 걸 뭘, 하고” 혼자 먹었다. 사 남매가 사는 바로 옆집의 경우는 처음부터 나눔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는데, 그 집에서는 애초에 아무것도 부치거나 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혀 흰떡과 지짐이를 그 이웃집에 기대하고 있는 수작이 아닌가” 해서 오히려 얄밉기까지 했을 뿐이다. 혹 누가 굶지는 않는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는 바로 옆 방의 식구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진심으로 마음쓰는 사람은 없다. 다만 ‘나’에게 도움이 되느냐, 거슬리느냐에만 관심을 둘 뿐이다. 이상은 어느 만큼이나 박하려는지 알기 힘든 도회의 인심을 이렇게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도회의 인심이 박해진 것에 이유가 없을 리 없다. 한층 더해진 생활의 중압이 “현대라는 데 깃들이는 사람들”을 짓누른다.


생활이라는 중압은 늘 훤조하며 인간의 부드러운 정서를 억누르려 드는 것이다. 더욱이 현대라는 데 깃들이는 사람들은 이 중압을 한층 더 확실히 감지하지 않을 수 없다. 어디를 보아도 교착된 강철과 거암과 같은 콘트리트 벽의 숨찬 억압 가운데 자칫하면 거칠기 쉬운 심정…… 그가 제철공장의 직인이건, 그가 외과의실의 집도인이건, 그가 교통정리 경관이건, 그가 법정의 논고인이건, 그가 하잘것없는 일용 고인이건, 그가 천만장자의 외독자이건 묻지 않는다. 그런 구구한 간판은 ‘네온사인’이 달린 다방 문간에 다 내려놓고 들어가는 것이다. 「추등잡필 3-예의」 중에서


    “강철”과 “콘크리트 벽의 숨찬 억압”이라는 공간의 느낌이 대변하는 생활의 무게 역시 무작정 지향할 수만은 없는 근대의 단면이다. 이상은 근대에 관한 이러한 성찰과 고민을 모두어 자신이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바, 문학하는 행위로 나아갔다.

    이어지는 장에서는 이상의 수필을 통해 앞서 살펴본 근대를 둘러싼 문제의식들을 그의 문학하는 태도와 함께 고찰함으로써 이상에게 단편소설이 갖는 의미가 무엇이었는지를 구성하고, 나아가 소설의 인칭과 인물들을 통해 그의 단편을 읽는 구심점을 만들어보고자 한다.


    * 필자소개  

메모광. 학부에서 국제어문학을, 석사과정으로 비교문학을 공부했으며, 향후 프로이트 라깡주의 정신분석학을 중심으로 연구를 지속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 웹진 <제3시대>



  1. 이상, 「무제」, 김수영 역, 『현대문학』, 1960.12 [본문으로]
  2. 김승구, 「김기림 수필에 나타난 대중의 의미」, 『식민지시대 시의 이념과 풍경』, 지식과 교양, 2012, 75쪽 [본문으로]
  3. 사신6. “톨스토이나 국지관 씨는 말하자면 영원한 대중문예(문학이 아니라)에 지나지 않는 것을 깜빡 잊어버리신듯 합디다.” [본문으로]
  4. 「날개」에서 ‘나’는 사용가치로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화폐’라는 사물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복잡한 경험을 하게 된다. 자본주의라는 제도와 화폐의 축적과 재생산, 사물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에 관한 고민은 수필「산촌여정」이나 단편소설「지주회시」에서도 나타난다. [본문으로]
  5. 본문에 미쓰꼬시 백화점이 언급되는 것을 보아 도회지의 에피소드임을 알 수 있다. [본문으로]
  6. 나는 그후 갑인출판사에서 발행한 이상수필집에서 성천기행을 읽어보았다. 나는 그가 성천에 와서 머무르고 있는 동안 기진맥진하여 움직일 수도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어느 사이에 글을 쓰고 시를 썼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원용석, 「내가 마지막 본 이상」, 『그리운 그 이름 이상』, 172쪽) [본문으로]
  7. 파시즘 권력에 대한 이상의 인식은 1936년 10월에 매일신보에 연재했던 수필 중 「추등잡필 2-구경」, 「추등잡필 4-기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추가 정리 필요) [본문으로]
  8. 이상이 아이들을 ‘회충’에 비유하거나, 물고기 떼처럼 ‘잘도 논다’고 표현한 것은, 자칫 조소하는 듯한 어조로 읽힐 수 있지만 이상이 어린아이들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태도를 바탕에 두고 읽는다면 조소하는 일말의 정서가 있다고 해도 그것은 직접적으로 아이들을 향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상은 아이들을 돌봐야하는 대상으로 인식하며 긍휼히 여기는 속내를 다른 텍스트 곳곳에서 드러낸다. 가령「조춘점묘」의 ‘동심행렬’ 편이나 완성된 원고의 형태로「권태」에 편입된 「이 아해들에게 장난감을 주라」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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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에 대항하는 도구로서의 이상 단편소설(1)


: 1930년대 단편소설의 위상  



신윤주*


 

    이상이 세상에 내놓은 첫 작품은 장편소설이었다.[각주:1] 그러나 이상 생애의 마지막 작품 목록을 채운 것은 단편소설이었다. 동경 생활의 어려움으로 건강 상태가 악화되었을 때에도 이상은 단편소설 쓰기에 열의를 보였다. 이상이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 김기림은 이상의 숙소에서 그를 만났다. 김기림은 자신이 본 이상의 마지막 모습을 두고 마치 “골고다의 예수” 같았다고 증언한다. 동경 어느 거리 뒷골목의 골방을 찾아온 김기림을 앞에 두고 “상아보다도 더 창백”하고 아무렇게나 자란 수염이 무성했던 이상은 그간 쌓인 이야기를 풀어놓느라 장장 두 시간을 앉아있었다고 한다.


‘엘만을 찬탄하고 정돈에 빠진 몇몇 벗의 문운(文運)을 걱정하다가 말이 그의 작품에 대한 월평(月評)에 미치자 그는 몹시 흥분해서 속견(俗見)을 꾸짖는다. 재서의 ‘모더니티’를 찬양하고 또 씨의 <날개> 평은 대체로 승인하나 작자로서 다소 이의가 있다고도 말했다. …… 시인이면서 왜 혼자 짓는 것을 그렇게 두려워하느냐, 세상이야 알아주든 말든 값있는 일만 정성껏 하다가 가면 그만이 아니냐 하고 어색하게나마 위로해 보았다.[각주:2] 


    김기림에게 이상은 마지막까지도 ‘시인’[각주:3]이었지만, 오랜만에 김기림을 마주한 이상이 정작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는 단편소설에 관한 것이었다. 단편소설에 관한 이상의 생각들은「지주회시(鼅鼄會豕)」를 발표하기 몇 달 전부터 그가 김기림에게 보내기 시작한 편지들에서도 읽을 수 있다. 편지의 본문에서 이상은 ‘우리의 행복을 신에게 과시하는’ 해괴망칙한 소설을 쓰겠다고 선언하거나, 자신이 지금 “문학 천년이 회신에 돌아갈 지상 최종의 걸작”인 「종생기」를 쓰는 중이라거나, “철저히 소설을 쓸 결심”이라고 밝힌다. 한 번은 『조광』에 실린 「동해」에 관해 언급하면서는 단편소설 작품에 대한 일말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다는 듯 자신은 ‘「동해」를 퇴고하면서 당분간 시간을 보낼 계획이고 그 때문에 아마 새로운 작품은 쓰지 못할 것이며, 「동해」는 작년 6, 7월 경에 쓴 작품이니 “그것을 가지고 지금의 나를 촌탁하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하기도 한다. 

    이상은 비록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했지만, 동인들 사이에서는 일문 연작시「이상한가역반응」에서 마지막 국문 연작시「위독」에 이르기까지 분명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다양한 시 실험을 했던 시인으로 이해되고 있었다. 보들레르에 버금가는 시를 썼노라[각주:4]고 자부하기까지 했던 이상이 언젠가부터 굳이 단편소설에 매진했다면 분명히 어떤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상을 그토록 단편소설 쓰기에 몰두하게 만들었을까?   

    이어질 내용을 통해 이상이 소설을 쓰던 시기에 단편소설의 위상은 어떤 것이었으며, 단편소설이라는 양식이 지니고 있는 어떤 특징으로 인해 단편소설이 그의 문제의식을 표현하는 최후의 도구로 채택될 수 있었을지 알아보고자 한다.  


소설 독자층의 형성


    벤야민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꾼의 이야기와 소설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소설이 “근본적으로 책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하며, 소설의 보급과 인쇄술의 발명을 연관짓는다.[각주:5] 한국 근대문학사에서도 소설의 보급과 인쇄술의 발달은 중요한 관계가 있는데, 신활자본 서적의 유통으로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서사를 향유하는 독자층이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한국 근대문학사에 ‘단편소설’ 및 ‘장편소설’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때는 1910년대로 잡지 및 신문에서 최초로 사용했다. 이들 용어가 처음 사용되었을 때에는 각 양식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를 바탕에 두고 있었다기 보다는, 소설 가운데 비교적 길이가 긴 것에 장편소설이라는 이름을,[각주:6] 매체에 한 회 분량으로 실을 수 있는 짧은 소설 혹은 장편소설이 되지 못한 것에 단편소설이라는 이름을 붙인 매우 단순한 개념[각주:7]이었고 새로운 문학의 흐름을 주도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각주:8]

   한편 ‘장편소설’과 ‘단편소설’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했을 당시 주류를 이루고 있던 서사양식은 신소설과 활자본 고소설[각주:9]이었는데 신소설과 활자본 고소설은 독자들의 욕구를 충분히 만족시켜주지 못했다.


知德의 양성에 독서의 필요함은 말할 것은 업거니와 只今 우리 청년은 독서력이 缺乏하야 독서의 미를 깨닫지 못하나니 이것이 취미의 비천한 第一因이라 …… 혹 조선문으로 된 서적이 잇다 하더라도 一瞥의 가치가 잇는 것이 업스니 나는 추하고 꼴 되지 아니한 보기부터 천하고 더럽은 소위 신소설이라는 것에 눈을 더럽히기 보다 옥루몽 슈호지 셔유기 삼국지 가튼 고문학을 닑음이 어문의 발달과 취미의 향상에 썩 有助할줄 밋노라[각주:10]


    위의 글에서는 청년 세대의 지성과 인격을 도야해야 할 필요를 따라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하지만 다양한 제약 조건들로 독서 활동을 하기가 수월치 않은 가운데, 특히 신소설은 자아의 성장에 관한 한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그보다는 고문학을 읽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당시의 문학 환경이 신소설 혹은 활자본 고소설 양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신소설과 활자본 고소설을 유행시킨 것은 신활자본이라는 기술이었는데, 이는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만드는 인쇄술이었다.[각주:11] 서적의 대량생산은 새로운 독자층을 형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잉태한다. 우리나라의 신활자본 서적 출판의 경우 본격화되기 시작할 무렵에 출판법이 공포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독자층의 형성이 충분히 일어났다고는 단언할 수 없다. 하지만 최소한 “독서인구의 저변을 확대했다”[각주:12]고는 볼 수 있다. 이렇게 서서히 확대되기 시작한 독서인구는 소설의 독자층으로 전환되었을 것이다.

    소설을 읽을 만한 독자층이 예비되어 있음을 시사하는 예로 당시 신문과 잡지에서 실시했던 현상문예가 있다. 이들 현상문예는 무엇보다 구독률을 높이기 위한 자구책이었기 때문이다. 일례로 매일신보의 경우 1912년의 2월을 시작으로 네 차례의 현상 문예가 실시되었다. 매일신보는 전신이었던 대한매일신보를 총독부에서 인수하여 관제신문으로 만든 것인데 관제신문이 된 후로 신문의 구독률이 저조해졌다. 이에 기존에 없던 광고란을 새로 만들어서 소설 연재에 관한 광고를 하고, 1면에 있던 소설연재란을 4면에 삽화까지 넣은 독립적인 소설란으로 바꾸는 등의 자구책을 마련했던 것이다. 매일신보에 실린 단편소설의 절반 이상이 현상 문예에서 당선된 작품들이었다.[각주:13]

   소설의 작자들은 신소설과 고소설의 전근대성을 비판하며 대안적 담론으로서의 소설의 입지를 만들어갔다. 신문은 날마다 소설을 연재함으로써 독자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사로잡고자 했고, 그런 까닭에 장편에 더 많은 관심을 두었다. 잡지는 한 달 혹은 몇 달에 한 번씩 발간되었기 때문에 한 회만에 완결지을 수 있는 단편 양식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방식으로 신문과 잡지는 소설을 읽을 수 있고, 소설 작품을 내놓을 수 있는 장으로 자리매김해갔다.


잡지와 문단의 형성


   신소설과 고소설의 전근대성에 대한 비판이 독자들에게 호소력이 있었던 것은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소설에 대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세계와 어울리는 새로운 서사 양식을 필요로 했다.[각주:14] 그런데 이 시기의 소설들은 전범이 없는 상태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바꿔 말하면, 새로운 요구가 존재했으되 그것을 어떻게 구현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막연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난제를 돌파하기 위해 당시의 소설 텍스트는 평론가들의 문학 비평문, 독자들이 투고한 독서 감상문과 서로 매개되고 의존하면서 소설이라는 양식의 체계를 만들어 가게 된다.[각주:15]

    소설 양식의 발전에는 문단의 형성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문단 형성 과정의 핵심에는 문예 동인지가 있었다. 1920년대에는『창조』『폐허』『백조』등의 동인지가 민족 개조운동을 구호로 삼은『개벽』지와 『동아일보』등과 같은 시기에 창간된다. 1920년대 동인지의 문인들은 “우리나라 최초의 자비유학생집단”의 일원이었다. 이들의 선배세대는 민족 지도자 역할을 하고 있었고, 동년배들은 식민지 관료, 은행원이나 회사원, 의사, 변호사, 교사, 언론인 등 지식 전문가 그룹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이중 동인지 문인들의 사회적 지위는 신문기자나 교사였다.[각주:16]

    3.1 운동 이후 지식인들은 “식민지 시기 부르주아 지식인의 당대적 이념이 한번도 대중을, 사회 전체를 장악하지 못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는데, 기왕 하나의 절대적인 이념을 가치로 내세울 수 없게된 상황에서 문인들은 과거의 권위 기준이 상대화되었음을 활용하여 근대적 분화와 전문화의 논리로 “ ‘문학이라는 것’, ‘소설이라는 것’의 전문성을 새로이 권위화”하고자 했다. 이러한 지식인의 세대교체, 부르주아 중간층의 이데올로기적 위상 변화, 지식 정치학의 패러다임 변화라는 정치사회학적 흐름 속에서 문단이 형성된다.[각주:17] 

    동인지 문인들이 근대적 분화로 창출된 지식인 집단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전문작가 그룹”이었던 만큼, 이들은 “문학적 숙련과 기교에 대해 자의식적으로 집단적인 담론”을 이루고 “동종직업 종사자로서의 울타리를 의식”했다. 또 일의 의도나 목적이 아니라 “그 일의 전문적이고 숙련된 성취 여부에서” 자신들의 지위를 가리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에 의해 최초의 “비평논쟁” 이 생겨났다[각주:18]는 사실은 전혀 놀랄만한 일이 아닐 것이다.


단편소설의 양식적 특성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문단의 가장 커다란 관심사는 소설이 현실 제반의 문제를 어떻게 그려내야 하고, 작가는 현실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었다. 창작방법론 논의 및 리얼리즘론, 행동주의 문학론, 휴머니즘론 등으로 이어진 비평의 흐름 역시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의 문제로 집약되었다. 이중 최재서는 소설에 대한 논의를 중심으로 자신의 비평활동을 전개했는데 그의 소설론이 당시 우리 소설이 안고 있었던 과제들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만하다. 더욱이 그는 소설 양식 자체의 특성을 경유하여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당시 평단에서 그의 이론이 주류는 아니었지만 소설의 당면과제를 돌파하기 위해 단순히 현실의 문제(소설의 대상) 혹은 작가의 문제(소설 쓰는 주체)만을 다룬다면, 소설 자체가 지닌 본질에 다가서는 데에 양식적인 특성을 고려하는 것에 비해 제한이 있다는 것은 자명할 것이다.[각주:19]

    최재서는 당시 문단에서 발표되고 있는 장편소설의 통속화 현상과 단편소설의 관념화 현상을 문제라고 보았다. 그리고 소설의 양식에 관한 고민을 바탕으로 이러한 경향성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한다. 이러한 논의는 맨 처음 단편소설과 장편소설이라는 말이 등장할 당시에 장편과 단편을 단순히 텍스트의 길이를 기준으로 가르던 것에서 멀리까지 나간 것이다. 이제 소설쓰기의 주체인 작가는 소설 양식을 선택함에 있어 구성상의 요인을 구체적으로 고려할 수 있게 된다.  

    이어질 내용에서는 소설의 양식적 특성에 관한 최재서의 논의 중 그의 단편소설론을 기초로 당대에 단편소설을 쓴다는 것이 지닐 수 있는 의의가 어떤 것일 수 있는지 확인해보고자 한다.  


단편소설은 …… 인생의 전면이 아니고 일면, 실재성의 전부가 아니고 일부인 이상, 작자는 그 효과를 내기 위한 모든 재료를 이용하는 반면에 그 효과를 방해할만한 재료거나 또는 비교적 간접적인 재료는 용서없이 제거할 것이다. …… 작자의 의장에서 벗어나는 사건을 제거한다는 프로세스가 없이는 단편소설은 성립되지 않는다.[각주:20]  


    위의 내용에서 추출할 수 있는 단편소설 양식의 가장 기본적인 특성은 ‘배제의 원리’이다. 장편소설이 어떻게 하면 삶의 총체적인 모습을 형상화할 것인가를 모색하는 양식이라면, 단편소설은 삶을 축소하고 배제함으로써 자신의 의도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것은 ‘배제를 지향하는 작가의 의도’로 확장하여 정리할 수 있다. 작가는 단편을 창작하기 위하여 일차적으로 전체적인 세계의 형상을 배제한다. 인물의 다양성도 배제한다. 단편의 작가는 삶의 다양성보다 ‘통찰의 순간’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자연 배경과 문장, 단어에 이르기까지 배제의 원리를 작동시켜야만 한다. 이로써 작가는 “ ‘효과와 인상의 단일성’을 성취”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즉, 작가는 짧기 때문에 발생하는 다양한 미적 특질을 획득하기 위해 배제를 지향하게 되는 것이다.[각주:21]  

    단편 양식이 짧을 수 있는 것은 “소재 자체가 작기 때문”일 수 있고, 아니면 “소재가 크더라도 작가가 예술적 효과의 극대화를 위해 소재를 삭감”하기 때문이다.[각주:22] 전자는 소설이 다루는 대상에 관한 논의에 연결되므로, 여기서는 양식의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하는 특징인 후자를 다룰 것이다.  

    단편소설의 양식적 특성 중 첫 번째는 단편소설이 삶과 멀어진다는 점이다. 단편소설이 채택하는 ‘배제의 원리’는 하나의 ‘소실점’ 혹은 폭발점과 짝을 이룸으로써 작품의 의도와 효과를 통합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 스프링에 비유하여 이야기하자면 배제의 원리를 잡아당기는 힘에, 튀어오르는 순간을 소실점에 해당하는 것이다. 즉, “배제는 폭발을 위해 행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지점인 소실점은 인물의 전체 혹은 삶의 본질을 포착하고 작품 내 모든 요소의 의미를 실현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신중하게 ‘소실점’을 선택한다 해도 순간을 통해 본질을 통찰하는 행위 자체가 동반하는 오인의 가능성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것이 바로 단편이라는 ‘형식적 준거’가 생의 치밀한 논리를 들어 설득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는 사실, 곧 ‘삶과 멀어질 수 밖에 없는 양식’임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단편이 삶으로부터 자신의 제재를 빌려올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을 제시하는 형식은 빌려올 수 없”는 것이다.[각주:23]   

    이것은 다시 두 번째 특징으로 이어지는데, 단편소설은 삶에서 형식을 빌려올 수 없기 때문에 작가가 형식을 창안해내야 한다. 뒤집어 말하면 작가는 단편소설 양식을 통해 삶을 제시하는 형식을 창안할 권리를 부여받는 것이기도 하다[각주:24]. 작가는 단편양식에는 다양한 형식 실험의 가능성을 얻게 된다. 고정된 형식적 준거가 존재하지 않는 단편의 특성은 세계와 인간에 대한 보편적 해석이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과 함께 출발한 시대인 근대와 닮아있다. 식민지 시대의 작가들은 이러한 “가변성과 폭과 깊이”를 지닌 단편 양식에서 “근대성의 물질적 흔적”을 보았다. [각주:25] 

    셋째, 단편소설은 “저항담론이 ‘이미’ 기존 사회의 부정적 인식에는 도달했으나, 사회 전반에 대한 체계적인 해석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을 때” 작가의 이데올로기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삶을 표현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이는 사회 전반에 대한 통일된 이데올로기를 갖출 것을 요구하는 장편과 대조적이다. 또한 단편은 정상의 순간에 완결을 선언할 수 있으며[각주:26] 표면적 순간을 통해서도 이면적 진실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아이러니적 양식이다. 아이러니는 부정할 수는 있지만 변화시킬 수는 없는 현실을 드러내는 데에 효과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근대와 식민지를 동시에 경험하는 혼란 속에서 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서의 문학 행위에 새로운 삶의 본질을 추출하는 도구로서 유용했을 것이다. [각주:27]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소설이 새로운 시대의 대안적 서사 문학으로 자리를 잡고 소설 ‘양식’에 관한 고민을 하게 되기까지의 흐름을 살펴보았다. 나아가 단편소설이 지니고 있는 양식적 특성과 그것이 식민지 조선의 현실 속에서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에 관하여 확인해보았다. 식민지 조선에서의 단편소설 양식은 글쓰기 주체가 ‘삶을 제시하는 다양한 형식을 실험할 수 있는 장’이자 부정하는 단계에는 이르렀으나 변화시키기에는 역부족인 현실을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하기에 적절한 소설의 형태였다. 문학함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소설을 썼던 작가들은 의식적/무의식적 선택을 따라 자신의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가작 적절한 도구로서 단편소설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의식 과잉에 시달리곤 했던 이상이 세계에 대해 가졌던 주제의식과 단편소설 양식은 어떤 연관이 있을까?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이상의 수필 작품을 통해 이상이 표현하고 싶었던 주제 및 그의 예술관을 구체적으로 고찰해보고, 그것이 단편 양식의 특성과 어떻게 호응하는지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 필자소개  

메모광. 학부에서 국제어문학을, 석사과정으로 비교문학을 공부했으며, 향후 프로이트 라깡주의 정신분석학을 중심으로 연구를 지속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 웹진 <제3시대>


  1. ‘이상(李箱)’이라는 필명으로 1930년 2월부터 12월까지 잡지『조선(朝鮮)』의 국문판에 연재한 처녀작,『12월 12일』은 이상의 처음이자 마지막 장편소설이었다. [본문으로]
  2. 김기림, 「고 이상의 추억」, 『조광』, 1937.6. [본문으로]
  3. 김기림에게 이상이 시인이었던 것처럼 변동림에게도 이상은 시인이었다. “이상은 시인이다. 소설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상의 시 <오감도>는 세계적 수준에 이른 탁월한 시라고 하는 믿음은, 그때나 이제나 변함이 없다. 그러나 이상의 잡문들은 고매한 시 정신에서 대단히 멀어져 있음을 느낀다.” (김향안, 「이상에서 창조된 이상」, 『문학사상』, 1986.8.) [본문으로]
  4. 조용만, 「이상 시대, 젊은 예술가들의 초상」, 『문학사상』(1987.5) [본문으로]
  5. 발터 벤야민, 「얘기꾼과 소설가」, 『발터벤야민의 문예이론』, 반성완 편역, 170-171쪽 [본문으로]
  6. 김영민, 「근대 개념어의 출현과 의미 변화의 계보-식민지 시기 ‘장편소설’의 경우」, 11~13쪽 [본문으로]
  7. 이희정, 「1910년대 매체를 통해서 본 단편소설의 정착과정 연구」, 326쪽 [본문으로]
  8. 무엇이 단편소설과 장편소설 나아가 중편소설을 규정하는가에 관한 논의는 1920년대에 좀더 심도있게 일어나다가 1930년대에 들어선 후에야 소설의 ‘양식’ 자체에 관한 본격적인 비평이 등장한다. 이 부분은 뒤에 좀 더 자세히 다루게 될 것이다. [본문으로]
  9. 이희정, 앞의 글, 322쪽; 박헌호, 「한국 근대소설사에서 단편양식의 주류성 문제」, 『식민지 근대성과 소설의 양식』, 소명출판, 2004, 71쪽 [본문으로]
  10. 작자미상(1915), 「고상한 쾌락」, 『청춘』6호, 1915.2, 54-55쪽 [본문으로]
  11. 당시에 신소설과 활자본 고소설이 유행하게 된 데에는 출판 환경이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출판 시장이 사립학교 수 증가에 따라 교과서 수요가 늘어난 상황에 맞추어 급격히 성장했던 것이다. 개화기부터 공유된 보통교육의 필요는, 1905년의 제2차 한일협약 이후 대항적으로 일어난 교육운동과 함께 전국 각지의 사립학교 설립으로 이어졌다. 학교의 수가 갑작스럽게 늘어나면서 교과서 부족 현상이 심해졌고, 이에 민간단체, 학교, 개화선각자들이 서적 편찬에 뛰어들어 교과서 제작에 힘을 모았다. 1907~1908년 사이에는 집중적으로 신활자본 서적이 출판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만성적인 교과서 부족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지만, 1908년에 일제는 학부령 16호로 ‘敎科用圖書檢定規程(교과용도서검정규정)’을 제정하면서 교과용 도서의 질적 향상을 명목으로 애국적이고 계몽적인 교과서의 사용을 막기 시작한다. 나아가 1909년에는 <출판법>을 제정하여 도서 출판에 앞서 원고를 제출하여 허가 받도록 규정하였고, 법 제정 이전에 발행된 서적일지라도 다시 허가를 받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전국의 사립학교에는 학부 검정이 이루어지지 않은 교과서, 곧 우리의 출판사들이 발행한 교과서는 거의 사용할 수 없게 되고, 이에 따라 대부분의 영세성을 면치 못했던 우리의 출판사는 더 이상 서적을 발행할 수 없게 된다. 이때 출판 시장의 유일한 대안이었던 것이 1907년부터 간행되기 시작했던 신소설이었다. 신소설은 처음에는 강한 계몽성을 띠고 있었지만 출판법으로 인한 검열의 강화로 인해 1910년대에 들어서는 1900년대 후반에 비해 훨씬 통속성이 강화되고, 현실비판적인 면모가 약화된다. 더 이상 현실비판적이고, 애국계몽적인 내용은 발간 자체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더불어 1912년부터는 신활자본으로 고전소설을 대거 간행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출판물이 도서의 대부분을 이루게 된 것이다. (류준경, 독서층의 새로운 지평, 방각본과 신활자본, 290-294) [본문으로]
  12. 류준경, 앞의 글, 295-297쪽 [본문으로]
  13. 이희정, 앞의 글, 323쪽 [본문으로]
  14. 근대문학에 관한 선행 논의를 집대성하는 이광수의 <문학이란 하오>를 통해 간단히 살펴보자면 당시 문학을 둘러싼 고민으로는 “신구 문학개념의 차이, 지, 정, 의에 대한 인식에 바탕한 문하그이 정의, 예술이 삶과 동떨어진 허무맹랑한 것이 아니라는 논의와 연관시킬 수 있는 문학재료의 일상성, 학문과 도덕과 구분되어야 한다는 문학의 독립성, 그 지향은 미(정의 만족)의 추구에 있어야 한다는 자율성, 문학자(작자, 비평가)에게 요구되는 전문성, 조선문학은 과거는 없고 장래만 있을 뿐이라는 근대문학으로서의 선언적 특성” 등을 꼽을 수 있다. (이은주, 「한국 근대 단편소설의 양식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04, 46쪽) [본문으로]
  15. 이은주, 앞의 글, 98-103쪽 [본문으로]
  16. 차혜영, 「1920년대 초반 동인지 문단 형성과정-한국 근대 부르주아 지식인의 분화와 자기정체성 형성과 관련하여」, 121쪽 [본문으로]
  17. 차혜영, 앞의 글, 124-125쪽 [본문으로]
  18. 차혜영, 앞의 글, 132쪽 [본문으로]
  19. 권영민, 「최재서의 소설론 비판」, 150-159쪽 [본문으로]
  20. 최재서, 앞의 글, 338쪽 [본문으로]
  21. 박헌호, 「한국 근대소설사에서 단편양식의 주류성 문제」, 『식민지 근대성과 소설의 양식』, 74-75쪽 [본문으로]
  22. 박헌호, 앞의 글, 76쪽 [본문으로]
  23. 앞의 글, 76-79쪽 [본문으로]
  24. 앞의 글, 79쪽 [본문으로]
  25. 앞의 글, 83쪽 [본문으로]
  26. 박헌호는「B사감과 러브레터」를 예로 들며 “단편은 정상(頂上)에서 멈추는 것이 정상(正常)”임을 제시한다. 뒷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이야말로 작품을 죽이는 실수라는 것이다. 그것은 “종종 반전을 수반하고, 독자의 허를 찌르며, 축적돼왔던 정서의 폭발로 종결”되는데 만일「B사감과 러브레터」를 읽은 독자가 그 후에 B사감이 어떻게 살았을까에 관해 질문한다면 그것은 순진한 독자의 자연스러운 호기심일지언정, 작품의 미학적 질감의 측면에서 본다면 불필요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앞의 글, 86쪽) [본문으로]
  27. 앞의 글, 88-89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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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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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숫제
    2016.12.24 01:3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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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서평 2 


우리 사회의 딜런들을 위하여



신윤주*


 

좋은 양육이라는 신화


    대량살상을 저지른 열일곱 살의 딜런 클리볼드. 그의 어머니 수 클리볼드는 문제아의 부모가 대단히 잘못된 양육 방식을 갖고 있을 거라는 통념과는 달리 20세기의 미국 사회가 제시한 기준에 매우 부합하는 방식으로 아이들을 키웠다. 수는 진보적인 평화주의자로서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두 아들이 약자를 배려하는 삶을 살기를 원했기 때문에 그렇게 가르쳤다. 또 워낙 매사에 조심성이 많은 편이었기에 자녀들이 좋은 버릇을 기를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했다고 한다. 그는 전공 분야 덕에 인간 심리에 관한 지식을 평균 이상으로 지니고 있었으며 그러한 지식을 아이들을 관찰하고 대하는 데 적극적으로 사용했다(119).[각주:1]

    그럼에도 콜럼바인 사건을 피할 수는 없었다. 비극적인 사건 후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수는 우연히 한 육아 잡지를 집어 들었다. 거기에는 “윤리적 육아”에 관한 퀴즈가 실려 있었다. 열 개의 문항 중 아홉 개의 대답이 정답이었다. 단 하나, ‘아이의 사적인 일기를 읽는지’에 관한 질문에는 오답을 냈는데, 그 역시 딜런이 살아있을 때에는 정답으로 맞췄을 법한 질문이었다(322).  

    수 클리볼드는 좋은 시민이었고 자신이 알고 있는 옳음의 기준에 따라 아이들을 양육했다. 그것은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어야 마땅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의 해설을 쓰기도 한 임상심리학과 교수 앤드루 솔로몬이 밝힌 것처럼, 콜럼바인 사건은 마치 쓰나미처럼 예측하거나 대비할 수 없는 성격의 재앙이었다.  


나는 속으로 클리볼드 부부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면 했다. 이 사람들을 좋아하게 된다면 이 일이 두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고 우리 중 누구도 안심할 수 없다는 말이 되니까. 그런데 두 사람은 정말 너무 좋은 사람들이었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설 무렵에는 콜럼바인 학살을 일으킨 정신이상은 어느 가정에서라도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예측하거나 알아본다는 건 불가능했다(9). 


    그러므로 딜런이 저지른 만행의 원인을 부모와 연관 짓는다면 그것은 수 클리볼드의 아들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라기보다, 수의 아들이었음‘에도’ 그렇게 되었다고 말해져야만 할 것이다. 딜런 클리볼드는 범죄자의 부모가 어딘가 따로 있을 것이라는 통념에 맞서기라도 하듯 아니, 어떤 아이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게 될지 ‘당신들은 모른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기라도 하듯 범행에 가담하고 준비하고 실행에 옮겼다.   


양육 주체는 사회화 주체인가


    그런데 우리는 과연 ‘좋은’ 양육을 통해 자녀가 어떤 아이로 성장하기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일까? 오늘날 부모의 역할은 통상 자녀의 성공적인 사회화를 돕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 경우 양육을 돕는 1차적 주체primary agent의 자리에는 ‘사회 공동체’가 놓인다. 부모는 아이들에게 사회가 기대하는 바에 대해 자신이 지니고 있는 신념이나 가치, 관점에 따라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행동이 무엇인지 인식시킨다. 상당히 오래 전부터 부모들은 ‘잘 자란 아이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그들의 역할과 책임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잘 자란 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잘 듣고, 말썽을 부리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고, 학업을 완수하며, 독립적이고 성공하는 어른이 된다. 부모들은 자신이 독재에 가까운 사회적 요구에 복종해왔던 것처럼 아이들도 살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사회 공동체에 대한 강조로부터 시선을 옮겨 더 확장된 생태계에 속한 동등한 주체로서 부모와 자녀를 바라본다면 어떨까? 특히 초기 양육 관계에서 감정적인 그리고 심리적인 측면을 함께-조절co-regulation하는 일에 방점을 둔다면? 그렇다면 양육은 부모가 자녀에게 행하는 것만이 아니라 아동 자신도 발달의 주체로서의 참여하고 상호 작용하는 것이 될 수 있다.[각주:2]  

    딜런의 경우, 콜럼바인 사건이 있기 1년쯤 전에 이미 조금씩 문제 행동을 보이고 있었다. 수가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으로 기억하는 것은 딜런이 주차 중인 차에서 전자장비를 훔친 일로 경찰에 체포된 사건이다. 죄목은 중죄인 1급과 무단침입, 절도, 그리고 경범죄인 범죄성 높은 장난이었다. 


딜런이 한 행동이 잘못이라는 걸 딜런이 알기를 바랐다. 나는 딜런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려고 하면서 누가 네 물건을 훔쳐 가면 기분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딜런, 살면서 다른 규칙은 따르지 않는다고 해도 적어도 십계명은 따라야 한다. 살인하지 마라, 도둑질하지 말라.” 나는 십계명 가운데 또 어떤 것이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보려고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이쯤해서 그만두기로 했다. “이런 건 반드시 따라야 하는 규범이야.” 딜런이 말했다. “알아요.” 우리는 잠시 침묵 속에 앉아 있었다. 내가 다시 말을 했다. “딜런, 나는 걱정이 되는구나. 어떻게 하면 네가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으리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딜런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자기가 충동적으로 나쁜 짓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놀란 듯했다. 비참한 심정인 것 같았다. 그때에 나는 더 이상 분노를 느끼지 않았고 딜런이 안쓰럽기만 했다(316).


   회고적인 진술은 지나간 상황을 충분히 재현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지만, 그럼에도 이 대목에서 두 사람 사이 발화 비중의 차이는 마음을 복잡하게 한다. 

   부모는 자녀에게 문제가 생기면 책임감과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당면한 문제적 상황이나 미래에 반복될 일에 대한 걱정, 혹은 부모로서의 역할이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에 함몰되지 않을 수 있을까? 만일 자녀가 말하지 못했지만 문제를 통해 전해야만 했던 어떤 메시지가 있다면, 그 메시지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면 부모는 자녀의 삶의 환경을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 설계자로서 그 혼돈스러운 여정을 함께 헤쳐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선도의 형태가 아니지만 무관심이나 태평함과는 다르다. 고등학생 정도가 되면 아이들은 이미 대부분의 정답을 알고 있다. 다만 아직 구성되어 가고 있는 자신의 내면의 힘과 복잡성을 끌어안고 분투하는 것뿐이다.


매뉴얼의 한계


   양육 주체에 관한 문제와 함께 재고할 부분은 양육의 ‘매뉴얼화’이다. 매뉴얼은 우리에게 위험 요소를 상기시키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무탈하기를 바라는 소망을 지지해주기도 한다. 매뉴얼은 개별성과 예외성을 지우고 사태를 단순화하기에 좋은 도구이기 때문에 효율성과 생산성 등의 가치에 주도되는 현대 사회에 친화적이다. 일례로 2015년에 발표된 “동시대적 양육 모델을 향하여”라는 논문에서 저자들은 양육 행위에 관한 포괄적인 평가 지표 개발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오늘날에는 부모들과 자녀들이 각종 광고와 매체, 신기술에 노출되면서 양육에 관하여 서로 모순된 정보와 조언을 접하기 때문에 ‘좋은’ 양육의 정의가 점점 더 모호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오늘날의 아동은 30년 전의 아동들에 비해 여러 방면에서 우수해졌음에도 유아기 우울이나 불안 등의 적응 문제 및 심리 문제를 더 많이 겪고 있다. 저자들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양육에 관한 핵심 요인들을 추출하고 양육 행위에 관한 포괄적 평가 지표를 개발하는 일의 중요성을 주장한다.[각주:3]

    그러나 매뉴얼은 양날의 검이다. 그것은 큰 흐름 속에서 사태를 파악할 수 있도록 돕지만 한편 개별 사례의 특수성을 간과해도 되는 근거로서 작동할 수 있는 맹점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맹점은 양육에 있어서 치명적일 수 있다. 모든 아이, 모든 부모, 그리고 모든 상호작용이 지니는 고유한 성질과 양상이 지니는 중요성 때문이다. 매뉴얼에 대한 과신 탓에 현실 속의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문제의 전조를 발견하더라도 자신의 감각을 바탕으로 판단하지 못할 위험이 있다. 매뉴얼의 유용성을 인정하여 참고하거나 사용할 때에도 일반화의 사각지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간주될 수 있음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매뉴얼의 이용자는 행위 주체인 인간의 한계를 유념해야 한다. 세계는 언제나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범위를 초과하고, 습득한 지식은 실천의 범위를 초과하기 마련이다. 매뉴얼의 이상은 인간의 의지와 실천, 통제의 한계에 종속된다. 양육자 개인의 한계를 고려하지 않은 일반적 이상이 양육 스트레스를 야기하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일지도 모른다. 사실상 무언가 알아야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매뉴얼이라기보다 낯설게 바라보는 법이 아닐까? 우리 자신을 끊임없이 낯설게 배워가고, 자신의 앞에 놓인 타자를 새롭게 배워가는 태도야말로 서로의 주체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함께 나아갈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


   사회화를 돕는 과정으로 양육을 이해하거나 양육 기준의 매뉴얼화를 지향하는 것은 미국의 주류 양육 담론에서 발견되는 특징이다. 딜런 클리볼드를 키운 이러한 양육 담론은 이데올로기로서의 국가주의 및 자본주의와 맞닿아있다. 자본주의는 꾸준히 진화를 거듭해 오늘날의 모습에 이르렀다. 자본주의의 핵심인 자본의 의미는 후기자본주의에서 초기의 그것과는 상당히 거리 먼 것으로, 이제 돈은 더 이상 교환가치가 아닌 ‘동원mobilization’이라는 개념과 연동된다. 동원은 국가가 전쟁 상황에 처했을 때 활성화되는 국가-사회체의 상태인데 후기자본주의는 이러한 군사적 논리를 경제 일반의 영역으로 이식했다. 그 결과 불안정한 일상은 전시의 경쟁이라는 하나의 명령에 복종하게 되고 인간 사회의 에너지는 “살아남기 위해 모든 타인과 싸운다는 목표에 징집”당한다.[각주:4]  

   콜럼바인 고등학교는 이러한 자본주의 사회의 속성을 지닌 곳이었다. 학술 자본의 축적을 추구하고 학원 사회의 기준에 따라 학생들의 계급을 나누며 종교적으로는 근본주의적 성향이 강한 불관용의 사회였다. 그곳에서 딜런은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어릴 적부터 심각하게 수줍음을 많이 타고 불안의 정동을 강하게 느꼈던 딜런은 자라면서 친구들을 사귀었지만 사회 적응에는 여전한 어려움을 겪었다. 머리가 좋은 학생이었지만 열등감을 많이 느꼈고 자기혐오가 심하기도 했다. 딜런의 일기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하고 모욕하는 것 같다는 표현,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들이 자신을 받아들여주기를 바라는 기대 같은 것들이 발견된다. 콜럼바인 사건 2년 전의 일기에서는 자살에 대한 생각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도 한다. “자살을 생각하면 다음 생에 가게 될 그곳엔 내 자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나 자신, 세계, 우주와 치루는 이 전쟁도 비로소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딜런은 심각한 상태의 우울을 겪고 있었으며 자가 처방으로서 몰래 보드카를 마시기도 했다.[각주:5] 학내의 질서를 따라 강자의 대열에 들지 못한 그는 자연히 낙오자로 낙인 찍혔고 이는 콜럼바인에서 곧 속수무책으로 괴롭힘을 당해도 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모든 우울한 사람이나 자살 충동을 느끼는 사람이 테러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딜런도 에릭의 영향이 아니었다면 테러를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딜런과 에릭, 두 사람 모두가 일기를 남겼기 때문에 사건을 맡은 심리학자들은 이들의 일기를 분석할 수 있었다. “딜런의 일기는 에릭의 일기와 내용이나 문체 면에서 뚜렷한 차이가 있다. 에릭은 자기애적 오만과 살기 띤 분노로 가득한 반면 딜런의 일기는 외로움, 우울, 반추, 사랑에의 갈구 등에 초점을 맞춘다. 에릭은 무기, 스와스티카, 군인을 그렸다. 딜런은 하트를 그렸다. ......딜런은 진정한 사랑을 갈망했다”(272). 

(캡쳐 이미지 출처 https://m.youtube.com/watch?v=zHRcF-pFGYI&autoplay=1)


    그런데 자기혐오가 강하고 우울한 청소년이었을 뿐이었던 딜런이 가학적인 성향의 에릭과 함께 움직이면서 증오의 방향을 외부로 틀게 되었다. FBI 조사반 자문이었던 퓨질리어 박사는 사건 당일 두 아이의 심리상태를 이렇게 진술했다. “에릭이 사람을 죽이러 학교에 갔고 그러다 자기가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반면, 딜런은 죽으러 학교에 갔고 그러다 다른 사람도 같이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280). 에릭과 딜런은 심리학적 견지에서 거의 양쪽 극단에 위치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둘은 결국 하나의 욕망을 공유하게 되었기에 함께 행동할 수 있었다. 그것은 죽음에 관한, 곧 죽이고 싶은 욕망, 죽고 싶은 욕망이었다.[각주:6] 


누가 자살 테러를 저지르는가?

 

    딜런과 에릭의 경우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자살 테러범의 유형은 단일하지 않다. 형사 사법 분야의 전문가인 랭크포드 박사는 자살 테러를 크게 네 범주로 분류한다. 이는 가장 전형적인conventional 자살 성향을 보이는 유형의 사람들이 저지르는 테러, 강압적인 집단의 폭력에 시달리다가coerced 가담하는 테러, 절망적인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escapist 자행하는 테러, 처형을 당하기 위한 간접적인 덫indirect으로 기능하는 테러 등이다. 각각의 유형과 사례들에서 고유한 독특성이 발견되지만 그럼에도 전체를 아우르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 이러한 테러가 이미 자살 충동을 느끼던 사람들에 의해 자행되었고, 둘째, 그들이 처한 상황이 매우 절박했다는 것이다. 자살 성향을 보이는 사람들은 외부 현실의 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경우 실행을 지연하지만 고통스러운 정신적 현실에서 벗어날 만한 기회를 찾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들은 똑같이 위험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자신의 삶에 조금 더 애착을 가지고 있는 주체라면 고르지 않을 법한 선택지를 택한다.[각주:7]  

    전형적인 테러의 형태가 아니어도 정신적으로 취약한 인물이 반사회적인 폭력 사태를 야기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아주 많다. 이때 행위화는 촉발의 계기를 전제로 한다. 그러므로 어떤 사회 안에서 문제적인 사태가 자주 발생한다면 그만큼 그 사회가 취약한 이들을 자극할 만한 요인을 많이 가지고 있는 장이라는 뜻일 것이다. 한국 사회는 어떠한가? 취약한 이들에게 얼마나 안전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곳인가? 베라르디는 오늘날의 남한 사회를 경제적 신조가 정체화의 토양인 곳으로, 동시에 완벽하게 고립되고 완벽하게 연결된 개인들로 이루어진 디지털 사회로 진단한다. 한국은 일본제국주의와 한국 전쟁을 겪은 후, 폐허 위에 국가를 재건할 사명을 지니고 있었다. 과거의 정체성이 사라진 아노미 상태에서 박정희 정부는 산업화와 경제성장이라는 시뮬라시옹을 성공적으로 구사했고 이후 남한 사회는 폭발적인 변화를 경험했다. 단 두 세대 만에 서구 사회에서도 가장 선두에 있다는 나라들에 견줄만한 부를 축적하고 또 소비 수준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한국이 치르는 대가는 일상의 사막화, 리듬의 과잉가속, 생애의 극단적 개인화, 노동시장에서의 걷잡을 수 없는 경쟁 같은 것들이다. 젊은 세대는 이러한 고립, 경쟁, 무의미의 감각, 강박, 실패라는 유산으로부터 탈출하고자 시도하지만 고작 10만 명 중 28명만이 탈출에 성공한다.[각주:8]  


모든 구성원에게 자리를


    고백하건대 이 글을 시작할 당시에 나는 딜런 클리볼드의 문제가 누구의 잘못에서 기인한 것인지 밝히고 싶었다. 부모의 실책이었음이 자명할 것도 같았고, 주체 자신의 선택이라는 항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수 클리볼드가 스스로를 증언석에 세우면서까지 말하고자 했던 바를 독자로서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과거를 되짚어보는 일은 중요한 작업이지만 어떤 부분은 순전히 개인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하며 사회 공동체가 함께 고민해야 할 몫이 따로 있다고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의 예수가 소경의 삶을 바라보는 시각을 경유해 글을 맺고자 한다.  

    요한복음 9장은 제자들과 길을 가던 예수께서 소경을 만난 일화로 시작된다. 이 소경은 눈이 먼 채로 태어난 사람인데 제자들은 그이가 누구의 죄 때문에 앞을 볼 수 없게 된 것인지 궁금해 했다. "선생님, 저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입니까? 자기 죄입니까? 그 부모의 죄입니까?"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자기 죄 탓도 아니고 부모의 죄 탓도 아니다. 다만 저 사람에게서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우리는 해가 있는 동안에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해야 한다. 이제 밤이 올 터인데 그 때는 아무도 일을 할 수가 없다. 내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은 내가 세상의 빛이다.”[각주:9]  

    잘못 놓인 결과를 보았을 때 우리는 그것을 야기한 원인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이런 접근은 같은 오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무수히 반복하는 과정이며 무엇보다 예방의 차원에서 유의미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의 접근은 조금 달랐다. 예수는 발화의 시점에 전혀 새로운 패러다임의 명제-다만 저 사람에게서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를 제시함으로써 예기치 못한 미래로 향하는 가능성을 열었다. 공동체의 층위에서 과거를 묻지 않는 행위는 구성원이 우리 안에 존재한다는 것 외에 다른 것을 셈하지 않겠다는 결단이다. “타자를 사람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그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에 대한 질문을 괄호 안에 넣은 채 그를 환대하는 것을 말한다. 타자가 도덕적 공동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이러한 환대를 통해서이다. 타자는 사회 안에 그의 자리를 마련해주는 우리의 몸짓과 말을 통해 비로소 사람이 되고, 도덕적 주체가 된다.”[각주:10]  

    다수의 가해자들은 본디 피해자였던 사람들이다. 애초에 그들이 피해를 입은 것 역시 그들에게 피해를 입힌 사람들이 무뢰한이어서 벌어진 일이라기보다 개인의 한계와 사회의 한계가 일으킨 상승효과가 낳은 비극적인 결과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한계, 인간 세상의 한계 속에서 좀처럼 벗을 수 없는 굴레 같은 것. 한 사회의 성장이 역사와 세월의 무게를 단번에 거슬러 이루어질 수 없는 것처럼 개인의 성장도 그러할 것이다. 우리는 양육자들 개개인에 대하여 그 자신의 역사를 초인적으로 극복해내고 일정한 표준에 해당하는 양육을 해내야 한다는 식으로 요구하거나 기대할 수 없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가닿지 못하는 한계들에 대하여 가혹하게 단죄하는 것은 역시나 해당 구성원의 자리를 없애는 일이 될지 모른다.  

    그러므로 명백한 범법 행위는 법리에 따라 다스리되 우리 사회의 취약한 구성원들이 가해자로 몰락하지 않도록 건전한 사회를 구성해가는 일이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일상이 사막화되지 않도록 고삐를 단단히 쥐고 분자화된 개인의 삶을 랜선 너머로 연결하며 정체성의 바탕을 다원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 모든 성원에게 자리를 만들어주는 일. 다음 생에는 자신의 자리가 있을지 모른다고 되뇌는 우리 사회의 딜런들을 위하여.  


    * 필자소개  

메모광. 학부에서 국제어문학을, 석사과정으로 비교문학을 공부했으며, 향후 프로이트 라깡주의 정신분석학을 중심으로 연구를 지속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 웹진 <제3시대>



  1. 수 클리볼드,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홍한별 옮김 (반비, 2016). 이하 괄호 안에 페이지 번호만 표시하는 경우 같은 책. [본문으로]
  2. Arminta Lee Jacobson, “Contemporary Models for Positive Parenting”, Journal of Family and Consumer Sciences 96(4), 2004. [본문으로]
  3. Carly A.Y. Reid, Lynne D. Roberts, Clare M. Roberts, Jan P. Piek, "Towards a Model of Contemporary Parenting: The Parenting Behaviours and Dimensions Questionnaire", PLoS One 10(6), 2015 [본문으로]
  4. 프랑코 비포 베라르디, 『죽음의 스펙터클』, 송섬별 옮김 (반비, 2016), 38쪽. [본문으로]
  5. Adam Lankford, The Myth of Martyrdom: What Really Drives Suicide Bombers, Rampage Shooters, and Other Self-destructive Killers, Palgrave Macmillan, 2013: 133-136. [본문으로]
  6. Ibid., 133. [본문으로]
  7. Ibid., 125-147. [본문으로]
  8. 베라르디, 『죽음의 스펙터클』, 231-240쪽. [본문으로]
  9. 요 9장 1-5절(공동번역) [본문으로]
  10.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문학과지성사, 2015), 211-212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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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윤주
    2016.10.18 13: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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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글을 너무 편집하시기 복잡하게 해서 드리지요... 죄송합니다 ㅠㅠ 전반부 인용 부분에 지난번에 쓴 글이 약간 묻어있어서 수정을 부탁드려야 할 것 같아요.

    소제목 <양육 주체는 사회화 주체인가> 부분의 인용구 아래 "특히... (250)"은 저번 호에 냈던 부분이더라구요.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 2016.10.19 14:1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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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윤주 필자님.
    수정완료했습니다. 이런 일이 생겨서 필자님께 죄송해요.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3. 신윤주
    2016.10.19 16:0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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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닙니다 별말씀을요 ㅠㅠ 수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서평 1 : 양육 너머의 문제들



신윤주*



   그러므로 죽음 그 자체에 대한 병적 사랑과 새로운 삶을 위한 급진적 자기 포기로서 죽음 사이에 선명한 구분은 존재하지 않는다. ... 한 알카에다 대원은 "부당한 행동을 그만두지 않는다면 더 많은 피를 보게 될 것이다"라고 경고하면서 "너희가 삶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죽음을 사랑한다"고 선언한 바 있었다. 그의 선언 앞에서 죽음충동과 정치적 전략은 나란히 공존하고 있다.[각주:1]

- 테리 이글턴, 『성스러운 테러』 -  


 

    지난 7월 26일, 프랑스 북부의 생테티엔 뒤 루브래 성당에서 이슬람의 이름으로 테러가 자행되었다. 올해로 열아홉 살인 두 청소년이 공모한 테러였다. 이들은 오전 미사를 집례중이던 자크 아멜(84) 신부의 목에 자상을 입혀 살해했고 세 명의 수녀와 한 노부부를 인질로 잡았다. 신고를 한 것은 잡혀있던 인질 중 탈출한 어느 수녀였다. 이후 두 청소년은 당국에 의해 사살되었다. 공모한 청소년 중 아델 케르미슈Adel Kermiche는 지난 2015년에 시리아에 있는 극단주의 그룹에 합류하기 위해 시도하다가 구류되었다가 풀려나면서 보호관찰 하에 전자발찌를 하고 있었고, 반면 동부 프랑스 출신의 공범, 압델-말릭 쁘띠장Abdel-Malik Petitjean의 경우는 관련한 특이사항이 없다. IS의 대표적 선전 매체로 알려진 아마크 통신은 두 청소년이 IS에 충성을 맹세했다는 내용의 증거 동영상을 공개했지만 NBC 뉴스는 이 사건이 IS에 의해 구체적으로 지시된 정황은 없다고 보도했다. 쁘띠장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이 IS에 관해 한번도 언급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각주:2]

    그리고 약 17년 전인 1999년 4월 20일, 미국의 콜로라도 주의 한 도시인 리틀턴에서 일면 유사점이 발견되는 사건이 있었다.[각주:3] 마찬가지로 두 명의 청소년이 공모한 이 사건은 이후 모방 범죄의 모델이 되어 더욱 문제가 되었던 콜럼바인 고등학교의 총격 사건이다. 콜럼바인 사건을 다소 상세하게 정리해놓은 위키피디아 페이지에는 "콜럼바인 고등학교 대량살상"[각주:4] 이라는 표제가 붙어있다. 계획이 모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총기 외에도 폭탄으로 사용할 프로판 가스통, 아흡아홉 개의 폭발 장치, 자동차에 설치한 폭발물의 사용을 시도했으며, 결과적으로 총기를 사용하여 열두 명의 학생과 한 명의 교사를 사살했고 스무 명 이상에게 부상을 입혔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두 명의 사망자가 있다. 바로 이 사건의 두 공모자, 18세의 에릭 해리스Eric Harris와 17세의 딜런 클리볼드Dylan Klebold이다. 이들은 계획한 일을 마친 뒤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올해 2월, 딜런 클리볼드의 어머니인 수 클리볼드는 콜럼바인 사건과 아들 딜런에 관하여 쓴 책을 내놓았다. 그리고 이 책은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A Mother's Reckoning』(반비)라는 제목으로 지난 달에 한국에서도 출간되었다.[각주:5] 출판사 서평에서 소개되고 있는 바와 같이, 올해는 콜럼바인 사건이 일어난 해로부터 17년이 지난 시점이다. 이 기간은 저자의 아들 딜런이 이 세상에 살았던 17년과 동수이기도 하다. 콜럼바인 이후 그날의 참혹한 비극을 애도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이 너무나 잘 안다고 믿었으나 결코 알 수 없었던 아들을 오롯이 헤아리기 위해 저자에게는 열일곱 해의 세월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부모가 그 무엇보다도 받아들이기 힘든 진실, 세상에서 나만큼 더 잘 아는 부모가 없을 진실이 있다. 바로 사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거다. 나는 딜런을 무한히 사랑했지만 그래도 딜런을 지키지 못했고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살해된 열세 명도, 그 밖에 상처입고 고통 받은 사람들도 구하지 못했다. 나는 딜런이 심리적으로 악화되어가는 징후를 파악하지 못했고, 만약 내가 제대로 보았다면 딜런이나 딜런에게 희생된 사람들이 그 길을 가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얼마나 큰 차이가 있었을까.(23)  


   우리는 아이들에게 치아 관리, 영양 균형, 용돈 관리의 중요성 등을 가르친다. 아이들에게 자기 뇌의 건강을 잘 살피라고 가르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자기 뇌건강을 건사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나는 몰랐다. 내 삶에서 가장 큰 후회는 딜런에게 그걸 가르치지 않았다는 것이다.(442)


   위에 옮긴 첫 번째 인용문은 펴내는 글을 통해 저자가 전하고자 한 말이고, 두 번째 인용문은 442쪽의 여정을 지나 마지막 장의 마지막 문단을 통해 해야만 했던 말이다. 특히 마지막 문장에서는 책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회한이 압축적으로 전해지는 듯하다. 이 두 문단에는 어떤 '변화의 결과'와 '변화의 어려움'이 공존한다. 사건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딜런과 에릭의 가정을 의심했다. 딜런의 어머니인 저자 역시 타자의 시선으로 자신의 양육 방식을 의심하고 되짚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대량살상을 계획한 이 청소년에 관한 책임을 단순히 특정 부모의 양육방식parenting에 돌리기에는 상당히 복잡 다단한 사회적 문제들이 한데 얽혀있다.

    나중에야 밝혀진 사실이지만 콜럼바인 고등학교는 학내 괴롭힘의 문제가 심각한 곳이었다. 약한 아이들은 운동부 학생들로부터 모욕적인 언사를 들었고 육체적 폭력을 당하기도 했다. 스스로 도덕적 엘리트임을 내세운 복음주의 기독교 학생들은 일부 아이들에게 으름장을 놓거나 개종을 강요하곤 했다. 한 학생의 아버지는 자신의 자녀가 머리에 불을 붙이는 식으로 괴롭힘을 당해 심하게 화상을 입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복도에서 폭력적인 상황이 일어나더라도 교사들은 못 본 척했다. 딜런의 경우에도 괴롭힘을 당했다는 정황들이 있는데 일례로 게이라는 조롱, 옷에 케첩을 뿌리는 일, 차를 찌그러트려 퓨즈박스를 망가트리는 일 등이었다.[각주:6]  


    학교 폭력 문제 외에도 총기류에 대한 노출의 문제가 콜럼바인 사건에 영향을 미쳤다. 우선 다양한 종류의 영상물과 비디오 게임을 통해 청소년들이 폭력적 장면과 자극에 노출되고 있는데, 특히 미국의 경우에는 만 13세 이상의 청소년들이 총기를 사용하는 폭력적인 장면에 노출되는 경우가 30년 전에 비해 세 배 증가했다고 한다. 물론 폭력적인 영상물에 대한 접근성이 바로 콜럼바인 사건과 같은 일을 초래하지는 않는다.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을 구매하는 비율 자체는 일본의 청소년 사이에서 더 높게 나타나지만 일본에서 대량살상이 일어나지는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총기를 소지할 수 있다는 변인이 폭력에 대한 노출이 비슷한 상황에서 대량살상이 가능한 조건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실제로 미국 내 학교에서 총기사사용건을 일으킨 학생들의 68퍼센트가 자신의 집이나 친척으로부터 총을 입수했다고 한다.[각주:7]  

    그러므로 콜럼바인 대량살상은 특정 지역사회 내에, 한 국가 안에, 현 시대의 문화 속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형성되어 있던 폭력성이 면밀히 상승효과를 만들어냈기에 가능했던 비극적 사건으로 조명해야 마땅하다. 그런 측면에서 부모의 역할은 수 클리볼드가 지적한 바, "치아 관리, 영양 균형, 용돈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에 그쳐서는 안 된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속한 지역사회와 국가와 문화와 매체의 흐름에 주목하고 아이들이 더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연대하고 노력함으로써 자녀들 개인으로서 가정 밖에서도 자신의 삶을 안정감 있게 실험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기 위하여 작은 참여와 실천들에 힘써야 할 것이다. 

    물론 저자가 본문에서 치아 관리나 용돈 관리 등에 관한 것과 더불어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 사회적 연대는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뇌의 건강"에 관한 관심이다. 저자는 아마도 딜런의 일차 양육자로서 가장 직접적인 대답이 필요했을 것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 되었던 것인지 묻고 또 물을 수밖에 없었던 수 클리볼드에게, 뇌과학은 그의 질문에 가장 적절한 길을 열어주었다. 수 클리볼드가 잃어버린 단 하나의 퍼즐 조각을 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만일 "전체 그림을 조망하는 데 다른 어떤 조각보다 큰 역할을" 하는 어떤 하나의 조각이 있었다면 그것은 뇌건강의 문제였다. 물론 뇌건강 문제가 "딜런이 한 행동을 설명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폭력과 광기를 자동적으로 연결짓는 것이 옳다고 믿는 것도 않는다. 다만 정신질환과 폭력의 교집합이 발견되는 적은 비율, 4퍼센트의 경우에 딜런이 해당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는 없다고 여긴다.[각주:8]

    특히 뇌건강 문제와 총기 난사 사건 사이에 접점이 있다. 1999년, 콜럼바인 사건이 계기가 되어 미국국토안전부 비밀경호국과 교육부가 '안전한 학교 계획'을 발표했다. 37건의 학교 총격 사건을 검토하여 재발을 막고자 하는 계획이었다. 연구 과정에서 "범인들 대부분이 자살을 시도했거나 자살 충동을 느낀 이력이 있으며 극도의 불안 혹은 좌절을 경험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렇다면 뇌건강 상태 진단과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폭력을, 그리고 자살, 섭식장애, 약물·알코올 남용 등 십대들이 마주한 여러 위험을 예방하는 데 핵심이 될 수 있다. (250) 

   저자는 '정신질환', '정신건강'이라는 말 대신 '뇌질환', '뇌건강'이라는 용어의 사용을 선호한다. 그 이유를 직접적으로 기술하지는 않지만 "도움을 구하는 사람에게서 사회의 낙인을 벗겨내고", 그러면서도 폭력적 행동을 취할 위험이 있는 사람들을 발견하기 위한 대안으로 적절하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도움을 구하는 사람'이 가정하고 있는 것은 자살로 죽겠다는 욕망을 할만큼 심각한 우울에 빠진 바로 딜런과 같은 사람들을 포함한다. 신경과학자 제러미 리치먼 박사가 수 클리볼드의 접근에 영향을 주었는데,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인 '정신' 대신에 영상으로 보고 측정하고 수량화할 수 있는 물리적 증거가 있는 '뇌'에 집중하여 이해의 범위를 "뇌건강과 뇌질환이라는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세계로" 옮겨가야 한다고 주장했다.[각주:9]

   그러나 정신역동의 개념과 신경과학적 메커니즘을 연결하는 일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정신과 뇌를 통합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학문인 신경정신분석Neuropsychoanalysis이 있다. 일부에서는 신경정신분석을 1985년에 프로이트가 발표한 『과학적 심리학 초고』의 프로젝트를 잇고 완성하는 작업으로 본다. 정신현상과 뇌라는 두 차원을 잇는 매커니즘은 불분명하다. 그도 그럴 것이 정신현상의 신경 상관물을 찾는 것은 언제나 설명되지 않은 부분을 남기며 실재하는 것은 언제나 "일단 한 번 가공된 이후에야 그것을 지각할 수 있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경계의 활성은 '언어'를 통해 가공되어 정신현상으로 변형된다는 사실은 널리 인정되고 있으며 동시에 언어로 가공되지 않은 채 아직 활성화 되지 않은 신경계가 간과될 수도 없다. 약물치료는 이렇듯 비활성화 상태인 신경계를 활성할 수 있다. 하지만 신경계의 활성 자체가 곧장 주체성의 발현으로 이어진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신경정신분석의 입장에서는 약물치료를 통해 기대되는 효과가 증상개선을 위한 하나의 옵션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므로 뇌과학의 발전과 그 결과물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그 적용대상이 인간 주체인 이상 정신분석은 여전히 필요하다.[각주:10]

    향후 이어질 글에서는 수 클리볼드가 뇌과학을 통해 우울의 문제에 접근하고자 했던 것과는 다소간 결을 달리하여 정신분석적 관점으로 우울을 포착해보고, 이러한 우울이 테러리즘으로 이어지는 어떤 경우들에 관하여 논의를 좀더 이어갈 것이다. 도대체 어떤 모호성 혹은 복잡성 때문에 수 클리볼드를 만나거나 그의 글을 읽은 다수의 독자들은 '모른다'는 결론에 이를 수 밖에 없었을까?  


 한때 좋은 삶이라는 게 있었어. 좋은 아빠가 되어 주말엔 피크닉을 가고, 잠자리에서 이야기 책을 읽어주고, 그렇게 아들을 품위있고 충실한 사람으로 키우는 것. 그게 미국이었어. 그리고 당신은 모든 것을 제대로 했지. 그러므로 이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어. [각주:11]

- 라이오넬 슈라이버, 『케빈에 대하여』 -  


    * 필자소개  

메모광. 학부에서 국제어문학을, 석사과정으로 비교문학을 공부했으며, 향후 프로이트 라깡주의 정신분석학을 중심으로 연구를 지속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 웹진 <제3시대>



  1. 테리 이글턴, 『성스러운 테러』, 서정은 옮김 (생각의나무, 2007), 195쪽. [본문으로]
  2. http://m.catholictimes.org/mobile/article_view.php?aid=274168, http://www.nbcnews.com/storyline/isis-terror/france-church-attack-abdel-malik-petitjean-was-known-potential-radical-n618661 [본문으로]
  3. 최근에 있었던 프랑스 성당 테러의 케이스에 관한 조사는 좀더 진행되어야 하겠지만 적어도 이 두 사건은 청소년 가해자 두 명이 짝을 이루어 움직였다는 점, 그리고 둘 중 좀더 주도적인 한 명이 가학적 성향을 보이고 나머지 한 명은 쉽게 영향을 받는 성향인 듯하는 점을 통해 유사성에 대한 의심을 갖게 되었다. 콜럼바인고등학교 사건을 계기로 2001년에 학교 총격 사건의 청소년 가해자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는데, 이 연구에서는 가해자 중 25%가 짝을 이루어 움직였다는 점, 그리고 두 아이 중 한 명은 사이코패스이고 나머지 한 명은 영향을 쉽게 받고 의존적 성향이 있고 우울에 시달린다는 점이 밝혀졌다고 한다. (forensis.org를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에서 인용한 것을 참조) [본문으로]
  4. https://en.m.wikipedia.org/wiki/Columbine_High_School_massacre [본문으로]
  5. 수 클리볼드,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홍한별 옮김 (반비, 2016) [본문으로]
  6. 수 클리볼드, 위의 책, 302-307쪽. [본문으로]
  7. FULL INTERVIEW 20 20 Diane Sawyer Sue Klebold Mother of Columbine Shooter Dylan ABC 2/12/16 (https://m.youtube.com/watch?v=zHRcF-pFGYI&autoplay=1); 더불어 총기소유에 관한 역사적, 신학적 통찰이 담긴 서보명 교수의 글의 일독을 권한다. (제3시대 웹진 87호, [비평의 눈: 미국의 묵시록 6] 총의 묵시록 (http://minjungtheology.tistory.com/m/post/647)) [본문으로]
  8. 수 클리볼드,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249-250쪽. [본문으로]
  9. 수 클리볼드, 위의 책, 251쪽. [본문으로]
  10. 김규호, "뇌과학과 정신분석," 「FiLUM」 3(2015), 19-21쪽. [본문으로]
  11. 라이오넬 슈라이버, 『케빈에 대하여We need to talk about Kevin』, 송정은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2012), 595쪽. 2011년에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던 이 소설은 공교롭게도 콜럼바인 총격 사건이 일어날 즈음에 기획되었다고 한다. 이 책을 출판사에서는, 모성 이야기와 심리 스릴러가 절묘하게 혼합된 "소시오패스 아들을 둔 어머니의 독백"이라는 충격적이고 독특한 설정의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인용한 부분은 서간문으로 써진 이 소설의 화자인 에바(케빈의 어머니)가 수신자인 프랭클린(케빈에 의해 살해된 자신의 남편)을 향해 건네는 말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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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윤주
    2016.08.18 00:3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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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입니다.ㅎㅎ 마지막 단락은 인용문과 인용문의 미주였는데 편집 과정에서 혼동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혹시 편집 간사님께서 댓글을 확인하신다면 수정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수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2. 2016.08.18 00:5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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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송합니다. 수정되었습니다. ^^



더불어 존엄한 삶



신윤주



   창문을 열면 인왕산 자락이 빼꼼히 보이는 집에서 결혼하고 네 해를 살았다. 바다는커녕 개울가로도 둘리지 않은 한 동짜리 아파트였지만 건축할 당시의 유행을 따랐는지 유난히 벽이 희었고 한쪽에는 등대를 닮은 파이프가 기둥처럼 솟아 있었기에, 하늘이 파랗게 맑은 날이면 나는 사진으로만 봤던 산토리니의 풍경 속에 들어있기라도 하듯 황홀해했다. 그리고 언제나 계절은 안방과 거실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널찍한 창 너머에서 바람과 풍경과 소리를 실어 날라주었다.    

   그 널찍한 창 너머에서 들려오는 여자의 목소리를 들은 건 이사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어느 날 정오 무렵에 여자는 왕복 이차선 너비의 골목 쪽으로 난 창가에 서서 삼십분 이상 욕설을 퍼부어댔다. 쌍시옷이 잔뜩 들어간 말들로, 분노를 담아 힘껏, 세상을 향해 자신의 남편과 남편의 내연녀에 대한 험담을 쏟아냈다. 아랫집 여자였다. 적잖이 거슬리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서 경비 아저씨에게 내려갔다. 아랫집 여자 아무래도 좀 이상한 것 같다고, 어떻게 조치를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상의를 할 요량이었다. 하지만 아저씨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오히려 여자를 안타까워했다. “남편이 바람이 나는 바람에 저렇게 됐다나봐. 그냥 놔 둬.”   

    또 하루는 문 밖 복도 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우리 집보다 위층에서부터 씩씩대고 중얼중얼하며 계단을 내려가는 아랫집 여자의 소리였다. 옥상에는 왜 갔을까. 얼마 뒤에 보니 인터넷이 되지 않고 있었다. 전화 상담을 통해 할 수 있는 조치를 해보았지만 해결이 되지 않아 결국 서비스 기사분을 불렀다. 그는 옥상 위에 전선이 다 끊어져 있다고, 처음 있는 일은 아니라고 했다. 누군가 전선에 일부러 가위질을 해놓는 것 같다고 했다.  

    여자의 맞은편 집에 사는 302호 부부도 황당한 일을 겪었다. 앞집에서 이상한 전파 소리가 들린다며 무작정 쳐들어가 소리를 추적하려 한 것이다. 우리 집에도 올라온 적이 있다. 아기 소리가 난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우리 부부 사이에는 아기가 없다. 여자는 막무가내였다. 장롱에 아기를 숨겨 놓았을 거라며 집에 들어오려는 걸 겨우 문간에 세워두었다. 지나치게 확신에 찬 여자를 보며 확실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반응들은 어떤 소리 혹은 응시에 대한 반응 같았다. 그런 가설을 세운 뒤로는 여자와 여자의 딸이 외출하는 시간에 복도나 계단에서 마주치게 될 경우에 되도록 두 사람이 보이지 않는 듯이 행동했다. 그러던 중에 여자가 어린 딸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러 외출하는 시간과 내가 집에서 나서는 시간이 이틀 연속으로 비슷한 때가 있었다. 내려가던 계단에서 멈춰서는 것도 애매해서 최대한 둘을 쳐다보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나는 다시 경계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여자는 딸에게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아니 저 여자는 왜 자꾸 우리가 나가는 시간에 나와? 미쳤나봐. 확실히 미쳤어.” 

    그때는 정신병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이런 증상들은 DSM의 진단 체계를 따라 조현병(정신분열증)으로 분류되거나, 다른 분류법에 의거하여 편집증으로 진단되기도 하는 정신 질환에서 흔히 확인되는 양상이었다. 정신의학에서 말하는 ‘정신자동증mental automatism'에 걸린 사람은 늘 어떤 목소리가 자신에게 뭔가 말한다고 느낀다. 들리는 말의 내용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끊임없이 중얼대는 목소리가 있고 나중에는 그 목소리에 적대감이 서려 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각주:1] 환청이나 환각과 더불어 망상은 정신병에 걸린 사람들에게서 어렵지 않게 발견되는 증상으로 꼽힌다. 환청이나 환각이 떨어져나가지 않은 충동의 대상인 목소리나 응시가 출현하는 순간에 발생하는 증상이라면, 프로이트-라캉주의에서 망상은 이러한 현실적인 것the real과 대면하는 당황스러운 상황에 의미를 고정하는 자가 치료 기제로서 의미를 지닌다.[각주:2]  

    자서전적 기록에 의한 프로이트의 분석 사례 중 편집증 환자 슈레버에 관한 것이 있다. 슈레버는 42세에 처음으로, 51세에 두 번째로 발병을 했다. 슈레버가 두 번째로 발병 했을 때 그는 항소심 법원의 재판장으로 임명된 상태였다. (나중에 라캉은 슈레버가 재판장으로 호명된 사건을 두고 부성 은유 혹은 상징적 은유 기능의 잠재적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된 계기로 보았지만,) 당시 슈레버 자신은 과중한 업무 때문에 병이 생겼다고 믿었다. 불면증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증세로 고통 받던 슈레버는 첫 번째 발병 시에 치료를 받았던 병원에 재입원을 결정하고, 이후 증세는 급격히 악화되었다. 프로이트는 슈레버가 입원했던 존넨슈타인 요양소의 보고서를 인용하며 슈레버의 증상이 악화되는 과정을 전한다. 


    ‘즉 그는 뇌가 물러졌다거나 혹은 자기는 곧 죽을 것이라는 등의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환각을 근거로 한 피해망상이 이미 증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비록 초기에는 가끔 나타나기만 했지만 말이다. 동시에 감각 과민증이 심하게 나타났다. 후에 시각적인 환각과 청각적인 환각이 점점 자주 일어났고 동시에 일반 감각도 혼란스러워졌다. 이런 환각이 그의 감정과 생각을 지배했다. ...... 그는 목욕탕에 빠져 죽으려고 몇 차례 시도했고 “그를 위해 준비되어 있는 청산가리”를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그의 망상은 점점 신비적이고 종교적인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신과 직접 대화한다고 하였고 혹은 자기는 악마의 놀이감이라고도 했고 ...... 나중에는 자기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고 믿게 되었다.’ 그는 또 자기를 괴롭히고 다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여 그들에게 욕을 퍼부었다.[각주:3]  


    이러한 과정이 지속되는 동안 슈레버는 고문에 가까운 목소리에 끊임없이 시달렸고 결국 그 목소리의 메시지에 순종하듯 자신의 망상 체계를 완성했다. 처음에는 여자로 변하는 환각이 든다는 것이 괴롭기만 했지만 점차 이러한 생각과 화해해 가면서 자신의 몸으로 느낀 여성적 포지션의 흥분을 권리이자 의무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는 결국 새 인류를 낳는 소명을 맡은 여자가 되기로 한다. 슈레버에게 이 서사가 받아들여야만 하는 운명 혹은 현실에 해당하는 것이었다면 완전히 다른 현실 감각 위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 서사는 정신병자의 망상 체계일 뿐이다. 어떤 정신병자의 망상 체계는 실제로 타자를 공격하는 방식으로 귀결되기도 하기 때문에 망상을 환자 스스로의 회복을 꾀하는 일종의 서사 체계로서 이해한다고 해도 인식 기반의 차이 이상의 불안과 공포를 유발할 수 있다.  

    보름쯤 전에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있었던 살인 사건의 범인 역시 정신병을 앓는 주체였다. 경찰은 피해자의 상처 부위가 깊고 잔인했다는 점을 보아 이 사건은 면식범에 의해 저질러진 일일 것이라고 추측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사실 둘은 원한 관계가 없었다. 원한 관계 뿐 아니라 어떤 종류의 관계도 맺은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살해된 젊은 여성은 범인에게 어떤 잘못을 할 수 있는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그런 그녀가 그를 무시하고 공격했다는 여성 일반(에 관한 망상)에 대한 죗값을 치렀다. 그녀에게 ‘희생양’이라는 말 외에 어떤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그러나 여성에게 적절한 이름을 붙이는 일에 서투른 한국 사회의 몰지각한 호명 방식을 따라 그녀를 ‘화장실녀’라고 부르는 해프닝이 발생했다. 부적절한 호명은 그녀에게 꽂힌 두 번째 비수였다. 아니, 어쩌면 살아있는 동안 무수히 반복된 공격의 연장이었을지 모른다. 한국 사회의 여성혐오 현상은 강남역 살인 사건을 대하는 대중의 반응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확연히 얼굴을 드러냈다.  

    2006년도에 신조어와 유행어 1위를 기록한 ‘된장녀’라는 단어의 등장을 기점으로 여성들은 ‘~녀’로 손쉽게 호명되기 시작했다. 희화화되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 모르겠다. 사회적인 현상으로서 범주화될 수 있는 여성들은 ‘된장녀’, ‘김치녀’, ‘건어물녀’ 등 주로 먹을거리와 연관된 이름들로 시작되어 ‘취집녀’, ‘무개념녀’, ‘오크녀’ 등으로 무수히 이어지고 그 외의 단발적 사건 속에서조차 언론의 주도로 가십성 ‘~녀’들이 생산되었다. 

    신조어는 기존의 어휘들로는 담아낼 수 없는 어떤 사물이나 개념을 가리키기 위해 새로 만들어내는 말이다. 일군의 ‘~녀’ 시리즈를 한 범주의 신조어군으로 분류할 수 있다면, 특히 최근 10~15년 사이에 기존의 이데올로기로 해석할 수 없는 새로운 유형의 여성이 출현했다는 뜻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 시리즈의 첫 주자인 ‘된장녀’에 관한 묘사를 표본적으로 살펴보면 몇 가지 키워드가 발견되는데, 명사(구)로는 ‘외국계 커피전문점’, ‘뉴요커’, ‘패밀리 레스토랑’, ‘남자 탤런트’, ‘남자 선배’, ‘비싼 밥’, ‘문자메시지’ 등이, 그리고 용언에 해당하는 구문으로는 ‘착각하다’, ‘수다를 떨다’, ‘빌붙다’, ‘얻어먹다’, ‘의미없는 ...... 작성하다’, ‘시간을 허비하다’ 등이 나타난다.[각주:4] 기존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보았을 때 (반대 성의 연예인에 관해 평가하고 시시덕거리는 것은 남자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인데) 여자가 남자 탤런트를 두고 평가의 잣대를 들이미는 일은 가당치 않으며, 스타벅스로 대표되는 외국계 커피전문점에 밥값에 준하는 돈을 지불하고 커피를 향유하는 것은 스스로 뉴요커라는 착각하며 사치하는 것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한 소비 주체가 여자라는 이유로 여전히 남자 선배에게 빌붙어 비싼 밥을 얻어먹으려고 하는 것은 기회주의적인 행동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남자’이고 ‘선배’이기 때문에 밥을 사줘야할 것 같은 압박감이 그들을 괴롭게 한다. 이것이 십여 년 전의 인식이다.  

    이 딸들의 어머니들은 자신들을 길러낸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순응했으나 반감도 가지고 있었다. 가족 내 남성 형제들에 대하여 박탈당했던 권리를 딸에게는 회복시켜주고 싶지만 동시에 성 역할에 관한 한 아직 일정한 혼란을 겪는다. 이 아들들의 아버지들은 자신의 아내가 자신의 어머니 세대와는 다르다는 것에 대하여 일정한 불만을 지니기 쉬우며 산업의 역군으로서의 자부심과 급변하는 산업 구조에서 파생되는 변화 속에 불안을 느낀다. 이들 부모 세대의 욕망 속에 전근대적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포섭될 수 없는 여성과 남성이 출현했다.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교육을 받고 경쟁했으며 사회에 진출했다. 이제 남성들은 공적인 장에서 양적으로 배가된 대상들과 경쟁해야 하고 사적인 장에서 이전보다 까다로운 타자들에게 구애해야 하게 되었다. 새로운 여성은 남성의 선택을 기다리는 대상에 머무는 대신 유혹하고 선택한다. “ ‘선배 졸려염 ㅠㅠ’ 같은 의미 없는 문자메시지를” 전송하고 난해한 해석의 문제를 야기하는 주체인 것이다. 만일 이러한 여성 주체를 ‘~녀’라는 이름으로 호명하는 것을 통해 고정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이야말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시대착오적 망상일지 모른다.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산업화 세대의 정상성이 더 이상 유효할 수 없는 시대에 수정되지 않은 여성적 정상성을 요구하는 이들에게서 발견되는 정조가 여성혐오다. 그러나 산업화 세대의 도덕규범은 이미 영토를 초월한 교류를 통해 세계적 보편을 상당히 공유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현상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성 역할, 성적 취향, 성 정체성, 나아가 혼인, 출산, 성매매 포르노 등에 관한 도덕규범과 법규범이 제시하는 정상성은 한국 사회에는 더 이상 정상적인 여자, 정상적인 성, 정상적인 결혼, 정상적인 인간이라는 것이 없음을 시사한다. 정상성은 신화일 뿐이다. 정상성의 경계를 완전히 허무는 것은 쉬운 과제가 아니겠지만 기준을 조정해나가는 일은 상대적으로 가능한 접근이다. 가령 범죄에 대한 규정과 접근을 달리함으로써 범죄율이 감소하고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다시 사회에 복귀하고 사회 안에서 생산적인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의 비율이 늘어나는 효과를 낸 네덜란드의 사례가 있다. 결과적으로 교도소 운영에 필요한 예산은 절감되었고 대신 범법자들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은 늘어났다.[각주:5] 이 사례의 시사점은 한국 내 범법자를 처우하는 법제도를 변경하는 일에 있다기보다는 사회적 약자들의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에 있어서의 변화에 있다. 지금껏 한국 사회가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방식이 격리하거나 못 본 체하고자 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그들을 사회 안으로 끌어안고 더불어 지낼 수 있는 장치들을 마련해야 한다. 약한 것은 근절해야 하는 질병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개인과 우리 사회를 이루고 있는 구성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강남역 살인 사건의 가해자는 3월 말 경에 가출을 하고 한동안 한 지하철역의 남자화장실에서 노숙을 했다고 한다. 만일 그가 가출을 하지 않았거나, 가출을 했더라도 좀더 안정적인 사회적 보호 시설에서 머물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과연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까? 또한 애초에 그가 가출한 동기는 아버지가 그를 다시 병원에 입원시키려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각주:6] 만일 그의 아버지가 관리 불가한 자신의 아들을 강제로 병원에 입원시키는 대신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병을 앓고 있는 환자의 가족이 가정 안에서 모든 경제적, 정신적 비용을 부담하고 돌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살인 사건의 가해자가 처했던 사연을 들었을 때 한때 아랫집에 살았던 여자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에게 허락된 삶의 조건이 무엇이었든 그녀는 상대적으로 존엄을 지키며 일상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정신분열증 연구자인 실바노 아리에티는 치료를 받지 않는 “평범한” 정신병자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그들은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모르며 미묘하고 절제된 광기를 가지고 있는데 이를 “백색 정신병,” “평범한 정신병”, “일상적 정신병”, “비밀스러운 정신병” 등으로 일컬어졌다. 대리언 리더는 이러한 정신병은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되며 우리는 미치지 않고도 미친 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리더는 우리가 정신병의 편재함을 알아야 하며, 정신병의 구조를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광기가 촉발된 사람을 돕기 위해서다.[각주:7]  

    정부는 강남역 사건의 대책으로 공중 화장실을 개선하고, CCTV의 수를 늘리며, 조현병 환자들을 전수 조사하여 행정 입원시킬 수 있도록 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이것은 이 사회로부터 여성을 안전하게 보호하겠다는 말만큼이나 문제의 핵심과 무관한 듯이 보인다. 애초에 여성혐오는 여성을 계속해서 대상의 위치에 두고자 하는 욕망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여성의 안전과 여성혐오의 연관성을 간과하지 않는다면 주체성과 욕망을 지닌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한 남성과 여성 모두의 이데올로기적 거부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관한 고민을 바탕으로 이슈를 다뤄야 한다. 마찬가지로 조현병 환자들을 전수 조사하여 병원에 몰아넣는 것은 방법이 될 수 없다. 그들은 불안해 보이는 방식으로 세계를 대하지만 여전히 존엄한 인간 주체이다. 그들이 태어나고 자란 환경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국가는 이 영토에 머무는 인간 주체들의 존엄을 지켜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남성은 여성을, 신경증자는 정신병자를, 이성애자들은 LGBT를, 국적을 소지한 자들은 외국인 체류자를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동등한 욕망을 지닌 주체일 수 없는 것처럼 취급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이젠 더불어 존엄하게 살 길을 모색하자. 언 발에 다시 오줌을 누기에 한국 사회는 너무 춥다.  


    * 필자소개  

메모광. 학부에서 국제어문학을, 석사과정으로 비교문학을 공부했으며, 향후 프로이트 라깡주의 정신분석학을 중심으로 연구를 지속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 웹진 <제3시대>



  1. 대리언 리더, 『광기』, 배성민 옮김 (까치글방, 2012), 60-61쪽. [본문으로]
  2. 대리언 리더, 위의 책, 29, 96쪽. [본문으로]
  3. 지그문트 프로이트, 전집 9권 『늑대 인간』, 김명희 옮김 (열린책들, 2003), 112-113쪽. [본문으로]
  4. 백승찬, “ ‘된장녀’가 어쨌다고...”, 「경향신문」 2006년 8월 6일. [본문으로]
  5. True Activist, “Netherlands Closing 19 Prisons Due to Lack of Criminals”, True Activist, April 12, 2004 <http://www.trueactivist.com/netherlands-closing-19-prisons-due-to-lack-of-criminals/> [본문으로]
  6. "검거된 미제사건-강남역 살인 사건의 전말", <그것이 알고 싶다>, SBS, 2016년 6월 4일 방송분. [본문으로]
  7. 대리언 리더, 『광기』, 22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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