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의 젊은이, 오해를 넘어서

밥상공동체를 만드는 작은 예수 운동의 부활

 


김혜령[각주:1]
(이화여대)


 

          「구별짓기」의 저자 피에르 부르디외에 의하면, 인간사회의 위계적 계급질서는 단순히 자본의 소유여부에 의해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집단에 속한 구성원들은 입는 옷에서부터 시작하여, 음악, 운동, 취미생활 등 비슷한 문화적 취향을 공유하며, 자기집단을 구별 짓는다. 이러한 취향의 차이야말로 인간사회의 복잡하고도 미시적인 사회적 계층들의 분화와 이들 간의 차별을 잘 설명해 내기에 부르디외는 이를 문화적 자본이라 부른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먹는 음식까지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음식을 볶을 때 버터를 사용하는지, 혹은 식용유나 마가린, 돼지기름을 대신 사용하는지, 곡물섭취는 빵을 주로 먹는지, 아니면 쌀과 파스타, 감자를 곁들이는지, 고기는 통조림이나 햄, 소시지와 같은 가공육을 주로 섭취하는지 아니면 고기를 직접 조리하여 먹는지, 고기 중에서도 소고기나 양고기, 말고기 혹은 생선과 같은 특정 고기를 주로 소비하는지, 조금 유치하리만큼 세세하게 조사가 펼쳐졌다. 어떠한 음식을 먹느냐가 한 사람의 계급과 신분, 직종 등을 구별하여 설명해 주는 매우 중요한 정보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 연구의 결과는 우리가 이미 상식적인 수준에서 공유하고 있는 경험이다. 점심시간, 누구와 무엇을 먹느냐가 이미 우리자신이 어떠한 사회적 존재인지를 설명해 주는 매우 신빙성 있는 자료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먹는 음식에 따라 나타나는 인간사회의 구별짓기는 내가 일하고 있는 대학 캠퍼스 안에서도 점점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혼밥(혼자 밥먹기)이란 말이 존재하지 않았던 90년대 중반, 나는 유치하게도 매일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점심을 먹곤 했다. 학생식당이나 학교 앞 분식점 등을 우르르 몰려다니며 같은 밥을 먹었다. 물론 우리 중에도 잘사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음식이 아니라 옷에서나 구분이 될 뿐이었다. 적어도 내 기억에서는 먹는 것으로 차이를 느껴본 적은 많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학교 안에 고급식당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또한 학생들 각자의 시간표가 점점 더 복잡해지면서, 혼밥은 요즘 대학생들의 일상을 설명하는 매우 중요한 키워드가 되었다. 이제 혼밥은 학생들 간의 전공의 구별짓기, 계층의 구별짓기 혹은 우정의 구별짓기 등의 원인이 되었고, 친구들이 무엇을 누구와 먹는지 관심을 갖는 것이 때때로 지나친 간섭처럼 여겨지는 시대가 된 듯하다.  


          문제는 이러한 혼밥 현상 이면에서 경제적 문제로 식사를 해결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부 학생들의 상황이 은폐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래전부터 내가 일하고 있는 대학의 대학교회에서는 장학금의 일환으로 10만원치의 식권을 매학기 100명의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있는데, 이를 원하는 학생이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비교적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계층의 학생들이 많이 다닌다고 소문(?)나 있는 우리대학 안에도 한 끼의 식사를 해결하는 데에 고민을 해야 하는 학생들이 다양한 이유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혼밥 현상은 이들의 존재를 감추며, 이들의 어려움에 무관심하게 만드는 위험이 있다.  


         다행인 것은 이러한 학우들의 문제를 함께 짊어지고 싶다는 학생들이 대학사회에 곳곳에서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바로 2년전부터 시작한 ‘십시일밥’이라는 대학생 비영리봉사단체다. ‘십시일밥’은 학생들 스스로가 학생식당에서 일주일에 한 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 돈을 모아 필요한 학우들에게 학생식당쿠폰으로 되돌려 주는 학생나눔자치활동으로서 한양대에서 시작하여 현재 전국적으로 십 여개의 대학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우리학교에서도 어린 여학생들이 십시일밥 로고가 새겨진 베이지색 유니폼을 입고 점심시간마다 생활관 학생식당의 까페와 한식코너, 교직원 식당에서 일을 한다. 사실 모두 집에서는 설거지 한 번 제대로 안하고 자란 귀한 딸들이기에 아직은 서툴고 힘들어 한다. 그래도 이번학기가 끝날 무렵에는 열 명이 넘는 학우들에게 ‘우리와 같은 밥을 먹자’며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 수 있게 된다는 기대 속에 땀을 흘리고 있다. 물론 이들의 봉사가 한 끼의 식사를 걱정 하는 학우들의 모두의 문제를 말끔히 해결해 주는 대단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은 교내의 다른 학생들과 교수님들, 가족들에게 화려한 대학 캠퍼스 안에도 여전히 따뜻한 관심과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매우 중요한 상징이 되고 있다. 또한 도움을 받게 될 학생들 역시 학점과 취업 경쟁에서 벗어나 그들의 삶을 함께 걱정해주고 지지해 주는 따뜻한 친구들이 같은 캠퍼스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삶의 작은 위로와 용기를 얻을 수도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학자 박재순은 ‘하나님 나라 운동’을 펼친 예수의 사역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이 가난으로 인해 이리저리 찢겨진 갈릴리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하나의 ‘밥상공동체’를 회복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가나안 혼인잔치의 포도주 기적, 오병이어의 기적, 최후의 만찬, 엠마오 도상에서의 식사 모두 이러한 나눔과 회복의 밥상공동체의 실행인 것이다. 가장 물질적이고 일상적인 밥을 나누어 먹는 일에서 인간은 서로의 아픔을 보듬으며 사랑을 가꾸어나간다. 그러한 면에서 볼 때, 나는 ‘십시일밥’이라는 대학생 나눔활동이 우리 대학사회의 가장 외로운 이들과 함께 하는 ‘성만찬’을 세속적으로 부활시킨 작은 예수운동이라고 라고 부르고 싶다.  



십시일밥 누리집 http://www.tenspoon.org/



          물론 개인의 봉사로 가려져서는 안 되는 부분도 있음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5년 전 프랑스 유학시절 대학생 학생식당의 식사 가격은 3유로가 조금 넘었다. 그런데 그 양과 질은 7유로 이상의 가치가 있는 음식이었다. 나머지 차액이 어디서 왔을까. 한 사회의 새로운 구성원들을 건강하게 길러내고자 하는 사회의 구조적 의지가 그 4유로의 차액을 채워 풍성하고 건강하며, 평등하고 행복한 밥상공동체의 잔치로 젊은이들을 초대하고 있었다.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 스스로가 연대하기 위해 자신의 시간과 노동을 쪼개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사회는.. 또 그 사회 구조의 중요한 결정권을 만들어 내는 기성세대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때다. 부끄럽게도 젊은이들 스스로가 어렵게 열어 초대한 잔치에 밭 갈러 간다고, 장가가서 가족을 돌보아야 한다고 핑계대기에는 이제 너무 진부하지 않은가.  



ⓒ 웹진 <제3시대>

  1. 이화여대 기독교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신학박사(윤리)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대 호크마교양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다. 서울 향연감리교회에서 점심봉사를 하며 가끔 설교를 맡기도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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