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아카데믹하지 않아서 더욱 아카데믹한 단상

다섯. <고흐의 방에 아빠를 뉘였으면 좋겠다>




 김정원*


    아빠는 6인실을 선호했다. 싼 이유가 반이고, 사람들과 보다 많은 접촉을 할 수 있음이 그 반이다. 말씀이라고는 없는 양반인데도, 북적거리는 그 곳을 좋아했다. 환자와 그 보호자들, 수시로 드나드는 간호사와 의사들은 물론 방문자들이 한꺼번에 몰리기라도 하면 도떼기 시장이 따로 없었다. 폐쇄적인 울 아버지 성정에는 맞지 않은 곳이었지만, 그의 몸에 주렁지게 달린 주사병과 소변줄 너머 시선을 둘 곳이 필요했기에, 그는 차라리 6인실에 있고자 했다.


    새로 들어 온 옆 침대의 아저씨는 서른 번째 항암 치료를 받는 중이라며 말을 건넨다. ‘신입’들은 다른 환자들에게 통성명, 아니 통병명(通病名)을 하기 마련이다. 아저씨의 ‘말 걸어옴’이 시작되자, 아빠는 내게 침대의 머리맡을 올려 달라한다. 그는 별 대꾸는 하지 않지만, 아저씨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다. 이 침대 저 침대의 환자들의 ‘들음’이 시작되고, 각자의 ‘history’가 붙여지며 대화는 금새 익어간다. 누구는 간암, 누구는 위암, 누구는 임파선암…… 개중에는 병세가 완연한 사람도,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바로 얼마 전에 들어온 고등학생 남자아이는 너무도 말짱하여 침대를 팔짝팔짝 오르락내리락 하였다. 각자가 겪고 있는 ‘암 이야기’가 한창이지만, 그 남학생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릴 뿐 별 대답이 없다. 대신에 그 남학생의 유일한 보호자인 그의 누나가 대화에 낀다. 괴롭기도 지루하기도 한 보호자들의 이야기가 더해지면, 병실에는 훈기가 돈다. 생경한 훈기가 아닐 수 없다. 이이도 저이도 겪고 있는, 말하자면 이 병실에 있는 모든 이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암이라는 상황이 만들어 낸 훈기이다. 담아 온 음식을 나누기도 하고 함께 화장실을 가주기도 한다. ‘오늘 내일’ 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훈기는 그야말로 아프도록 따뜻하다.


    그런데 이것도 낮의 풍경이다. 해 지고 달 뜨면, 낮 동안 숨어있던 죽음의 유령이 암 병동을 배회한다. 어떤 이는 진통제를 달라고 애원하고, 어떤 이는 몸부림하며 고통을 참아낸다. 그리고 어떤 이는 죽는다. 이 때, 환자들이 간절히 바라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 죽음이 제발 ‘우리 방’에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함께 말과 밥을 나누던 이의 죽음이 안타까운 탓도 있겠지만, 바로 앞에서 죽음을 목격하는 것에 대한 공포가 더 큰 이유이다. 죽음을 눈으로 보는 것에 대한 공포. 그렇게 그들은 매일 밤 죽음을 본다.


    그 밤에 죽게 된 환자의 보호자들은 작게 작게 운다. 이미 예상했던 죽음이라서가 아니라, 남은 다섯 명의 환자들과 그 병동에 뉘여 있는 다른 환자들을 위함이다. 오열을 하다가도, 터지는 울음을 이내 타이른다. 죽음의 직전에 살고 있는 다른 환자들을 위한 그네들의 ‘마음 씀’이다. 혹여 애통의 소리가 복도를 타고 흘러, 병동 전체를 죽음으로 흔들어 깨우고 싶지 않은 ‘마음 씀’인 것이다. 그 방에 남겨진 환자들은 더는 그 밤을 그 곳에서 보내지 못한다. 바로 옆, 앞 침대에서 죽음이 시작되면, 나머지 환자의 보호자들은 환자를 뉘인 침대를 채로 끌고 방을 떠난다. 그리고 생각한다. ‘오늘 본 죽음이 내일 이 침대로 찾아오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결코 서로 나누지 않는다. 동틀 무렵 방으로 다시 모인 살아남은 환자들은 울지도 않고, 별 말을 나누지도 않고, 죽음이 비워 낸 그 침대에 더는 시선을 두지도 않은(못한) 채, 늦은 잠을 청한다.


    해가 뜨면, 새로운 환자가 그 침대에 짐을 푼다. 신입의 클리셰 같은 통병명이 또 지나가고,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 이야기를 역시나 경청한다. 밥도 나누고 말도 나누지만, 누구도 어젯밤의 이야기를 털지 않는다. 누구도 어제 보았던 그 침대에서의 죽음을 말하지 않는다. 그저 다시 밤이 찾아 왔을 때, 내가 그리고 저이가 죽음에 덩핑되지 않기만을 바라며, 새로 온 이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그렇게 몇 날이 가고, 다시 밤이다. 팔짝팔짝하던 그 아이가 낮부터 심상치 않더니, 밤이 되자 앓아대기 시작했다. 죽음이 덮치기 바로 전, 보통의 환자들은 밤 사이 장을 다 비워낸다. 뼈만 남아 있는 그네들의 몸뚱이에서 그 많은 것들이 배설된다는 것이 기이할 정도로 비워내는데, 그 밤에 그 아이가 꼭 그랬다. 그의 누나는 열 두 번도 넘게 기저귀를 가느라 혼이 나갔다.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이 찾아 오기까지 한 것을 보니 영 기운이 좋지 않다. 자정이 넘도록 비워내던 아이는 소리 소리를 지르며 누나와 사람들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한 두 시간이 흘렀나. 사경에 다다랐는지 아이는 입을 다물고 몸부림을 그쳤다. 이제 막 열 여덟이 된 그 아이는 그렇게 가버렸다. 그 날은 병동 환자들 모두가 들썩였고, 죽음에 냉정하던 의사들 마저도 입을 닫았다. 그 어느 밤보다 힘든 밤을 울 아빠도, 옆 자리 아저씨도 보내고 있었다. 


    암만 죽음이 ‘능가할 수 없는 가능성’으로 드러나는 것이라지만, 암 병동의 그것은 이처럼 지나치게 그리고 적나라하게 그 가능성을 드러낸다. 죽음이 ‘존재 상실’이라고 정의한 어느 철학자의 말이 살아오는 공간, 바로 암 환자들의 방이다. 그곳은 환자들과 함께 먹고 자며 고통스러워 하는 보호자들의 방이기도 하다. 이제 더는 자신의 세계 안에 머무는 존재가 아닌, 즉 자신과 절대 관계할 수 없는 아내를, 아빠를, 동생을 예감하며(곧잘 그 예감을 회피하며) 머무는 보호자들의 방이다. 그런 의미로 암 병동은 “임박해 있는 가능성으로서의 죽음” 그 자체의 공간이 된다. 즉, 존재 상실을 기다리는 공간, 존재 완료를 인수하게 되는 공간, 인간 본연의 필연을 마주하는 공간으로서 절실하게, 아주 절실하게 존재한다.


    그 절실한 공간에서의 삼 개월, 울 아빠와 나는 섬처럼 남아있었다. 그는 ‘존재 완료’ 너머의 삶을 꿈꾸는 것 같기도 했지만, 그런 이야기를 입 밖에 내는 일은 거의 없었다. 다만 암 병동의 여느 신자들처럼 일요일이면 침대에 누운 채로 예배를 보러 갔고, 양희은의 찬송가 테이프를 듣곤 하였다. 가끔은 자신이 먹고 싶어하는 음식을 나보고 대신 먹고 오라 일렀고, 그 음식을 먹고 돌아오면 꼭 그 맛을 물어 보곤 했다. 맛이 좋아 밥을 두 공기나 먹었다 말하면 반색하며 좋아하였는데, 그 모습을 보고 싶어 과장된 표현을 더러 하기도 했다. 복수가 가득 찬 배를 해가지고도, 의연하기도 초연하기도 한 그의 태도를 보며, 죽음의 완전한 존재론적 본질을 파악한 사람인가 하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도 ‘능가할 수 없는 가능성’, 곧 죽음이 찾아오고 있었다. 물론 나 역시도 내 세계 속에서 그와 더는 관계 맺을 수 없는 ‘그 때’가 곧 올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아빠는 참 아빠 제 성정대로, 소리 한 번 지르지 않고 조용하게도 갔다. 다만 내가 그와 달랐다. 판옵티콘과도 같았던 그의 관심 아래 자랐던 스물 넷의 여자는 ‘하나의 사건으로서 누구에게나 주어져 있다는 죽음’을 이해하는 것을 순간 그만두기로 한 것이다. 그 사건을 막아내지도 못하면서 야윈 팔에 끝끝내 주사하고 피를 뽑아가던 의사들을 저주했다. 눈덩이처럼 늘어난 치료비를 지우는 병원에 분노했고, 복도에 쳐 앉아 고래고래 우는 날 곁눈질하는 간호사들을 쏘아 보았다. 많은 보호자들이 잦게 잦게 흐느끼던 모습들이 머리에 스쳤지만, 나는 그대로 큰소리로 울어댔다. 암만, 암만 이미 주어져 있는, 그래서 결국 필연적인 사건이라지만, 죽음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할지는 나의 몫이니, 나는 울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아빠가 편히 눈을 감았다고 소곤대는 이들의 귀 속에 내 울음 소리가 박히길 바라며 울었고, 하늘나라로 갔을 것이니 편히 그를 보내주라 말하는 이들의 얼굴에 침을 뱉는 심정으로 울었다. 누구도 죽음을 대신할 수 없듯, 누구도 그의 죽음을 대신 이야기 할 수 없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죽음을 보며 종말과 인간의 전체성을 분석하는 이들을 참을 수가 없었다. 더 이상 ‘내 세계 – 안의 – 존재’로서 있지 않는 그.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으로도 나는 충분히 아팠다.


    몇 주가 흐른 뒤 삼십 차 항암치료를 받던 그 아저씨도 떠나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팔짝팔짝하던 아이의 누나는 병원 빚을 갚기 위해 투잡을 뛴다 하고, 다른 병실로 옮겨 갔던 간암 아저씨는 더는 손 쓸 방도가 없다 하여 집으로 돌아갔다 한다. 나 역시 학교로 돌아갔고, 매 주 설교를 했으며, 친구들과 웃으며 밥을 먹었다.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며 어느새 열 해가 지났다. 십 년이 지나면 강산도 변하고 좋았던 기억도 흐릿해지기 마련이건만, 암 병동에서의 삼 개월은 어제 본 듯 훤하다. 환자들의 신음 소리, 죽음의 낯빛, 의사들의 무성의함, 복도의 형광등 불빛, 알알한 알코올 냄새까지 내 오감에 온전하게 머물러 있다.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6인실 한 켠에 누워있던 아빠의 모습. 창가 옆의 침대, 그곳이 아빠의 ‘마지막 방’이었다.


    그 방에 종일을 붙어있던 아빠를 구원해내어 아름다운 남프랑스의 프로방스로 보내드릴 수만 있다면 참말로 좋겠다. 고흐도 반한 그곳에, 밤을 이기는 강렬한 햇빛이 있는 바로 거기에 아빠를 데리고 가, 고흐의 ‘처음 방’인 아를의 방에 뉘여 드렸으면 좋겠다. 고흐의 고백처럼 절대적 휴식이 있는 그곳에 말이다. 끝도 없이 고독했던 고흐 같은 이가 편히 쉴 수있었다면, 암 환자도 잠들 수 있는 곳이 분명할 테니.


    고흐는 동생에게 적었다.


    "문이 닫힌 이 방에서는 다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아. 

가구를 그린 선이 완강한 것은 침해 받지 않는 절대적 휴식을 표현하기 위해서야."


    이제, 암 병동에 대한 기억의 재생을 그만 멈추고 기억의 공간을 고흐의 방으로 이전해 본다. 


    “나는 고흐의 방에 조심스레 울 아버지를 눕히고- 그가 잠들길 가만 기다렸다. 그가 새근새근 잠이 들자– 그가 깰 까 하여 까치발을 들고 문까지 걸어가,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왔다. 그리고는 방문 앞 복도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제발 그에게 절대적 휴식이 깃들길 기도하며 기쁘게 밤을 기다렸다.”


    다시, 기쁘게 밤을 기다린다.


* 필자소개

         "한신에서 기독교교육을 공부하고, 킹스칼리지런던에서 조직신학으로 석사 과정을 마쳤다. 현재 박사과정을 준비하고 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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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3월 정기포럼은 다큐멘터리 영화 관람과 감독과의 대화 모임으로 갖습니다. 많은 참여 바랍니다.

 

영화 소개_

1997년 12월 18일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 영화는 대구에 살던 한 가난하고 독실한 기독교인 50대 남자(손경화 감독의 아버지)의 이야기다. 
그이를 통해 우리사회의 보수주의와 기독교 신앙이 경상도의 가난과 어떻게 서로를 규정하며 동거해 왔는지를 묻고 있다. 

 

              초청_ 손경화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                   

              일시2013년 1월 28일(월) 저녁 7:30                 

              장소_ 한백교회 안병무홀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1번과 2번 출구. 두 출구 사이 골목 50미터, 좌측 건물의 1층)

              문의_ 02-363-9190, 010-3043-5058(유승태 연구원), 

                        010-4944-2019(정용택 연구원), 3era@daum.net

              참가비_ 3천원(자료집)

 

* 손경화 감독은...
< 그 자식이 대통령 되던 날>로 서울영상위원회와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제작지원을 받는 영화로 선정되었고,

인디다큐페스티벌에서 '심사위원 특별언급'을 받았다.

이후 영화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서울인권영화제 등 다수의 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손 감독의 다른 작품으로는 <개(開)청춘> 등이 있고,

<자, 이제 댄스타임>, <의자가 되는 법>을 제작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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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이름의 지옥과 천국 :  영화 <똥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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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
(영화 프로듀서, 감독)

무엇으로부터의 독립인가?

최근 독립 다큐멘터리 <워낭소리>가 300만 관객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가운데, 1억원에 못미치는 적은 예산으로 고군분투 제작된 <똥파리>라는 독립영화가 해외 영화제에서 연달아 최고상을 받으며 국내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런 유례 없는 성과는 현재 독립영화를 둘러싼 환경에 비추어 볼 때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여전히 극장을 확보하지 못해 개봉조차 할 수 없는 독립영화들도 많은데, MB정권하의 영화진흥위원회는 2009년 들어 '다양성영화 개봉지원사업' 마저 폐지하였다. 80년대 말 영화운동의 차원에서 처음 만들어진 ‘독립영화’라는 명칭은 이제 ‘다양성 영화’라는 신자유주의적 명칭 하에 비상업, 비주류, 저예산, 예술영화 등과 함께 두루뭉술하게 묶여져 불리고 있다. 독립영화제작지원 예산은 몇 년째 6억원으로 고정된 반면, 정부의 지원정책은 '영화산업'으로만 집중되고 있는 현실이다. 멀티플렉스에서의 무한경쟁이라는 배급구조 속에 독립영화가 놓인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물론 독립영화 역시 상업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독립영화는 상업영화와는 달리 자본으로부터의 독립, 국가 이데올로기로부터의 독립, 산업으로부터의 독립 등을 기반으로 하기에 그 기획과 제작, 유통의 과정이 차별적이고 보호되어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불편한 영화, 똥파리

독립영화는 관객에게 불편하다. 거친 화면, 지루한 전개는 독립영화 하면 늘상 떠오르는 이미지다. 한마디로 완성도가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나처럼 영화를 제작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영화 그 자체보다도 영화를 만들어가는 현장의 총체적 모습까지 함께 읽혀 묘한 감흥을 일으키기도 한다. 상업영화를 볼 때는 제작사, 투자사의 입김이 감독의 초심을 어떻게 변질시켜 나갔는지, 감독이 어디쯤에서 타협했는지 읽힌다면, 저예산 독립영화를 볼 때는 서투른 아마추어리즘 속에서도 빛나는 주제의식을 발견하며 때로는 제작비의 곤궁함 속에서도 꿋꿋하게 완성해낸 감독의 뚝심을 읽을 때 박수를 쳐주고 싶은 것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영화 <똥파리>가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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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영화진흥위원회 독립영화 제작지원과 CJ-CGV 인디펜던트 프로모션 제작지원을 받아 촬영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스탭 전원의 노개런티에도 불구하고 막바지에서는 감독이 전세방을 빼 제작비로 써야 할 만큼 힘든 상황에서 완성되었다. 30여편의 독립 장,단편영화에 출연하며 배우로서 이름을 먼저 알린 양익준은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쓰고 연출함으로써 장편영화 감독이 되었다.

물론 여러 가지 픽션이 가미되었지만 자신의 문제, 자신의 가족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독하다. <똥파리>의 주인공 상훈을 꼭 양익준 감독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웬만한 용기가 없이는 힘든 일이다.

글쓰기든, 영화 만들기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정신분석을 경험하게 된다. 여기서 분석가는 작가가 될 것이고, 분석주체(환자)는 주인공이 될 것이다. 그 분석가는 제대로 기능을 못할 수도 있다. 작가이자 배우로 이중의 역할을 한 양익준은 어떠했는가?

주인공 상훈은 똥파리다. 더러운 똥을 먹고 사는 똥파리로서 그는 용역업체에서 일한다. 용역업체에서 하는 일이란 사채 빌려쓴 사람 찾아가 온갖 협박과 폭력으로 수금해오는 일, 노점상 철거 용역깡패, 대학에서 농성하는 학생들 구타하여 해산시키는 일 등 다양하다. 자본사회에서 누구나 그렇지만 그에게도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노동과 생산의 댓가로 주어지는 돈이 아닌, 내몰린 자들을 폭행하고 갈취하는 돈이기에 그 돈은 더러운 똥이 된다.

똥파리는 웽웽거리며 듣기 싫은 소리를 내듯이, 그의 언어의 대부분은 욕이다. 그는 좀체로 웃는 법이 없다.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무표정으로 남자건 여자건 가리지 않고 욕과 함께 주먹이 나간다. 그에게는 법이 없다. 일정한 궤도 없이 요란스레 비행하는 똥파리다. 그의 욕설과 폭력 앞에서 수많은 약자들이 무릎을 꿇지만 그래봤자 똥파리의 운명이다. 파리 목숨이란 말이 있듯이 파리채 한 방이면 쭉 뻗어버리고 마는 신세. 그 똥파리는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죽기 위해서 그렇게 온 몸으로 절규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트라우마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아니 그것이 온통 자신을 옥죄고 있다. 술만 마시면 가정폭력을 일삼던 아버지, 그가 중학생 때 목격한 여동생과 어머니의 죽음. 그들은 가족 내 약자로서 폭력의 희생자이다. 그의 아버지가 살인죄로 15년 감옥살이를 한 기간은 그 소년이 성인이 되는 시간으로서, 영화 속에서 그려지지는 않았지만, 그는 피해자, 희생자임에도 이 사회에서 아무런 보살핌 없이 성장하여 어떤 사유도 하지 않고 오직 자신이 당한 폭력의 수행자로 자리바꿈했을 뿐이다. 그리하여 이제는 살았으나 죽은 거나 다름없는 존재인 늙고 힘없는 아버지를 ‘생각날 때마다’ 찾아가 짓밟는 게 일상이 되었다.

루이 알튀세는 근대 이전과 이후 공히 중요한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로서 ‘가족’을 들고 있다. 가족이란 인간들 사이의 가장 원시적인 위계질서가 성립되는 곳이다. 가족적 질서란 인간만이 만들 수 있는 독특한 질서로 동물적 야만성을 ‘인륜’으로 배우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상훈의 가족은 그 위계질서마저 무너져 있다. 그의 상징계는 일찍이 붕괴된 셈이다. 하지만 그가 그토록 괴로워하는 건 여전히 눈 앞에서 현존하는 아버지의 존재다.

용역업체 사장이기도 한 친구 만식은 “이런 말하면 뭐하지만 어쨌건 하나 남은 피붙이 아니냐? 나 같은 고아새끼는 그런 아버지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잘해드려 임마!” 라고 말하며 아버지에게 갖다드리라고 돈을 쥐어주곤 한다. 그럴 때마다 상훈은 냉소하며 아버지에게 찾아가 보란 듯이 짓밟아버린다. 그리고 절규한다. “왜 그랬어! 왜 그랬냐구! 왜 그랬어?” 상훈은 결코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다.

하지만 똥파리로 살아가는 지금의 상훈에게 그런 아버지는 결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자살하려고 손목을 긋고 쓰러져 있는 아버지를 병원으로 업고 가며 “죽지 마...지금 죽으면 안 돼..지금 죽으면...난...뭔데? 난 왜 이렇게 산 건데?” 라고 외치는 것이다. 그리고 만식의 말대로 하나 뿐인 피붙이 아버지에게 자신의 피를 나누어 살리고 나서, 비로소 새로운 삶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똥파리로 살아가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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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훈에게 지옥이었던 가족이지만 그는 자기도 모르게 천국으로서의 가족을 꿈꾸어 왔다. 그 구성원은 상훈과 마찬가지로 가정폭력의 상처를 안고 있는 자들이다. 혼자 예닐곱살 된 아들을 키우며 힘겹게 살고 있는 이복 누나와 어린 조카, 그리고 알 수 없는 동질감 속에서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여고생 연희. 상훈은 꼬마 조카에게 찾아가 자기 나름대로의 아빠 역할을 해주곤 한다. 연희와 꼬마 조카와 함께 맘껏 웃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낼 때 그는 천국 같은 가족을 경험한다. 그는 죽어가면서도 이런 환상 속에서 미소 짓는다. 거기엔 누나와 조카, 연희, 그리고 상훈을 따라 용역업체를 접고 식당을 차린 친구 만식이 새로운 가족이 되어 함께 모여 있는 모습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며 어머니와 제자를 새로운 가족으로 맺어주고 떠나듯이 말이다.

영화 <똥파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가해자나 피해자나 할 것 없이 모두 이 사회의 희생자들이다. 인간적인 삶을 담보해주지 못하는 세상,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서로 물고 뜯기는 소외된 자들, 무력한 자들, 살려고 발버둥치지만 끝내 파리 목숨이 되어 죽고 마는 자들...모두 똥파리 같은 존재들이다. 사회가 변하지 않는 한 똥파리는 계속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스로 자신에게 부여된 상처를 적극적으로 극복해 나가야 한다. 우리를 둘러싼 억압적인 장치들에 대항하면서 진정으로 능동적인 주체로서 살아남아야 한다.

후일담이지만, 영화가 만들어진 후 불편했던 양익준 감독의 가족 관계가 좋아졌다고 한다. 자신의 실재와 맞닥뜨리는 고통스런 과정을 통과해낸 듯하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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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ineluna
    2009.03.24 11:53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스로 자신에게 부여된 상처를 적극적으로 극복해 나가야 한다. 우리를 둘러싼 억압적인 장치들에 대항하면서 진정으로 능동적인 주체로서 살아남아야 한다...

    마지막 문단에서 힘을 얻고 갑니다.결국 자신의 문제는 자신의 몫으로 남아있을 수 밖에 없겠지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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