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데모'의 어제와 오늘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거리의 관제데모 중 단연 발군의 실력을 발휘해왔던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이 참가자에게 일당을 주는 ‘알바데모’를 벌여왔다는 게 밝혀졌다. 많은 이들이 추측해왔던 것이 사실임이 드러났다. 그들에게 용역을 준 곳들이 전국경제인연합회, 재향경우회, 심지어 국가정보원, 청와대 등이었다는 의혹도 점점 사실로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단체는 평균 한 해의 절반가량을 거리데모로 채웠으니, ‘동종업계’ 최고의 ‘수주 능력’을 자랑하는 단체였던 듯하다. 실제로 다양한 이슈들을 소화해내는 능력도 놀라웠고, 비교적 저렴한 일당임에도 알바 동원력에서 탁월한 실력을 보여 왔다. 심지어 좌파 단체들의 시위공간을 선점해서 벌이는 이른바 ‘알박기 데모’라는, 데모의 신상품을 활용해내는 창의력과 정보력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한데 여기서 나의 관심이 꽂힌 것은 이 단체가 아니라 이 단체에 고용된 ‘알바 참가자’다. 알려진 바로는 그들 중 상당수는 탈북자들이다. 비교적 저렴한 일당으로 고용할 수 있고 반공적 편향이 매우 강한 이들이니 대한민국어버이연합에 고용되기에 안성맞춤의 대상이겠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일년에 거의 절반을 이 단체가 주도한 데모에 참가해서 일당을 받아왔다면 그들의 직업을 ‘거리의 데모자’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1946년 말에 결성되고 그 이듬해에 가공할 족적을 남긴 서북청년단은 해방정국에서 활동한 가장 강력한 극우적 관제데모 단체였다. 이 단체가 주도한 데모의 참가자들 거의 대부분은 북한 공산주의자들에게 적개심을 품고 남한으로 월남한 서북(평안도와 황해도) 출신 청년들이었다. 이들은 공산주의에 대한 적개심이 매우 강했고, 혈기왕성한 청년들이었다. 또한 그들 대다수는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강성의 근본주의 신앙의 본거지였던 평안도와 황해도의 장로교도였다. 근본주의적 신앙은 편집증적인 신념으로 무장한 행동주의자를 만들어내기에 더없이 적합한 종교적 성향이다. 하여 그들은 제주 등지에서 거의 살인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무자비한 민간인 학살의 가해자로 둔갑했다. 그들이 처음부터 잔혹한 살인마는 아니었다. 물론 공산주의에 대한 적개심을 품고 월남을 선택한 자들이지만, 그렇다고 그 증오심이 그들의 잔혹한 살인마적 행동을 충분히 설명해주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들이 남한에서 처음 직면한 감정은 증오라기보다는 ‘막막함’이었다. 먹을 것, 입을 것, 잠잘 곳, 어느 하나도 갖지 못한 채 무인도로 떠밀려온 난파선 선원처럼 낯선 곳에 내던져진 유민에 다름 아니었다.

    그들이 하나둘씩 ‘월남자교회’로 찾아가고 서북청년단 같은 월남자 청년단체에 가담했을 때 그들은 비로소 임시거처가 생겼고 일당받는 일을 할 수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극우 관제데모였다. 이들을 고용한 자들은 미 군정에 소속된 경찰책임자인 조병옥과 장택상, 반공적 우익 지도자인 이승만, 그리고 친일경력의 기업가들 등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관제데모에 참가한 직업으로서의 데모자들은 얼마 안 가 증오의 사도로 주체화되어 갔고, 멸공주의 신념으로 무장한 잔혹한 극우 행동주의자가 되어갔다. 

    오늘의 탈북자들도 북한을 떠난 뒤 ‘막막한 유민’의 현실에 직면했다. 그런데 그들 중 많은 이들이 근본주의 성향의 개신교계 선교단체에 찾아가게 되면서 막막한 현실을 헤쳐 나가는 특정 경로로 초대된다. 그 경로에는 반북한, 반공주의적인 격한 언행을 드러냄으로써 일당을 받는 이른바 이념형 알바의 피고용자가 된 것도 포함된다. 또 그중에는 증오와 공격성이 가미되면 더 좋을 만한 일거리, 가령 반공적 거리데모 같은 것도 포함된다. 그런데 그런 증오와 공격성을 드러내는 강성 이념적 연기는 무수히 반복되면서 신념으로 돌변할 가능성이 많다. 하여 일용직 알바의 피고용자들이 벌이는 관제데모는 조금씩 그들을 오늘의 서북청년단으로 변신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불행한 체제의 이탈자들을 초대한 남한 사회는 1940년대나 오늘이나 이렇게 그들을 사회 속에 잘 정착한 행복한 존재가 되게 하기보다 사회의 위험분자로 살게 하고 또 사회를 위험하게 하는 자로 만들어 가고 있다. 

    최근 시민사회에는 탈북자들에 대해 편견과 배척의 담론들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우리 사회가 만들어낼 ‘괴물들’을 우리가 미워하고 배척하는 담론이다. 1940, 50년대에 그랬던 것처럼 또다시 우리는 그 괴물의 인큐베이터가 바로 우리 사회 자체임을 성찰하지 않는 담론이 번져나가는 것이다. 그런 괴물들은 탈북자들 사이에서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무성찰을 자양분 삼아 사회 도처에서 다양한 얼굴로 잉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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