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지젝을 아느냐? (IV)
: 쫄지마, 이데올로기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 과정)

 

다소 긴 프롤로그

독자들은 이데올로기라는 말을 접하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난 솔직히 숨이 막힌다. 답답해서… 인간과 사회, 인간과 자연, 인간과 세계 사이의 역학 속에서 인간이 품는 현실적이며 이념적인 의식 형태를 이데올로기라 부른다고 사전에는 정의되어 있다. 아울러, 이런 설명들도 추가된다. 이데올로기는 인간 존재의 기반이 되는 가치 체계, 혹은 사회적인 조건에 대한 판단의 선택 체계 등등… 이 얼마나 지루하고 따분한, 김빠진 콜라 같은 말들인가?
이렇게 밍밍한 콜라를 마시고 있던 우리에게 청량하고 자극적인 신상품이 하나 출시되었다. 그가 바로 지젝이다. 감사하게도 지젝의 이데올로기 논의는 21세기 사상계의 전체 지형에서 볼 때 진정 김빠진 콜라에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데올로기 비판을 다시 메뉴판에 당당히 입적시켜 우리로 하여금 간만에 이데올로기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물론, 지젝이 일으키는 요란함으로 인해 간혹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음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젝이 일으키는 이 소동이 좋다.
우선, 온갖 것에 시비를 걸어대는 싸움닭 같은 그의 태도가 나를 매료시킨다. 복서로 따지면 전형적인 인파이터다. 나는 지젝을 읽을 때 마다, 80년대 웰터급의 왕좌를 놓고 토마스 헌즈와 세기의 대결을 연출했던 슈거레이 레너드를 떠올린다. 토마스 헌즈가 큰 키와 긴 리치를 이용하여 날카로운 잽과 강력한 스트레이트를 바탕으로 링 주의를 돌면서 우아한 아웃복싱을 전개했다면, 슈거레이 레너드는 쉴새없이 헌즈를 파고든다. 물론, 레너드의 펀치는 헤비급의 조지포먼 만큼 강력하지도, 미들급 세계챔피언 마빈 헤글러같이 묵직하지도 않았지만, 그 빈도와 펀치가 나가는 다양한 각도만큼은 당대 최고였다. 결국, 학같이 우아했던 헌즈는 레너드의 집요함 앞에 무릅을 꿇고 만다. 지젝의 발언들을 지켜보면서 왜 나는 80년대 전설의 복서였던 슈거레이 레너드가 생각나는 걸까?
내가 지젝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지젝 증후군’으로 나타나는 그가 일으키는 후폭풍이다. 지젝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지젝의 이론에서는 새로운 세상을 향한 실천적 측면을 발견하기 어렵다고 꼬집는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것은 지젝을 오독한 것이다. 자본의 전 지구적 재편이 완료된, 미국식 세계 자본주의가 세계를 덥고 있는 현 시점에서 혁명이 요원하다는 사실을 이제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또한 지젝이다. 그의 책을 읽다보면 이러한 현실의 이 엄연함 앞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지젝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똘아이처럼 지젝은 마치 이 모든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처럼 혁명을 연기한다.
이런 지젝을 지난 시대가 지녔던 혁명의 프레임 안에 집어넣어 바라본다면 불편해진다. 지젝은 혁명 그 자체를 말하려는 것보다는 우리에게 현시대 이념적 지형과 그로부터 야기되는 폭력적 증상과 징후들을 하나씩 보여주고, 거기에 적합한 혁명의 조건들을 맛나게 나열한 후에, 최종적으로 우리로 하여금 이 엄연한 현실속에서 다시금 혁명에 대한 발칙한 상상을 도발케한다. 이러한 ‘지젝 현상’이 지금 시대를 돌파하는 데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런지 아직 실험 중이지만, 그것만으로 나는 지젝이 충분히 본인의 역할을 다 하고 있다고 본다.
사상적으로 지젝이 지닌 특이점은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혁명과 정신분석을 결합시켰다는 점일 것이다. 전통적으로 프로이트로 대변되는 정신분석학은 혁명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왔었다. 지젝은 바로 그 정신분석을 혁명을 이해하는 도구로 끌어들인다. 이 말은 지젝이 혁명을 그 전 인물들과 다르게 해석한다는 말이다. 지젝에게 있어 혁명은 단순히 인민을 굴종시키는 오래된 억압과 착취의 물리적 체제를 전복시키는 행위가 아니다. 전통적 혁명론이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모토 하에, 주체의 투철한 의지와 인식론적인 앎이 조화를 이루는 철인의 혁명론이라면, 지젝의 혁명론은 그 주체의 꿈꾸는 방식에 주목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깨어있는 시민이라 자부하는 우리는 무슨 공청회장에서는 아이들을 입시지옥에서 해방시켜야 된다고, 전인적인 인성교육이 절실하다고 열변을 토하다가도, 정작 집으로 돌아와서는 한글도 모르는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내고, 초등학교 3학년부터 아이들을 특목고 대비반에 몰아넣는 속물적인 우리들이다. 물론, 우리는 이런 자신의 잘못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행동은 계속되는 것인가? 지젝이 혁명을 이야기하면서 정신분석학과 공모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시대의 혁명은 단지 국가를 전복시키는 행위가 아니다. 우리 의식을 마비시키고 있는 자본의 욕망을 건드리지 못하고 그 욕망이 꿈꾸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혁명이 요원하다는 사실을 지젝은 알아차렸던 것이다.
지젝은 이러한 본인 사상의 밑그림을 선보이면서, 그것의 첫 단추를 이데올로기 비판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지젝을 읽는 것은 우선, 지젝식 이데올로기 비판의 화법을 따라 가는 것이다. 그 순서를 거치면서 우리는 지젝이 말하는 실재와 실재의 윤리와 유물론적 믿음과 만난다. 지젝의 발언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외치게 하고, 우리를 어디로 인도할는지는 물론 좀 더 지켜봐야 할 성질이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지젝을 통해 우리는 사상사를 수놓았던 (지젝을 통과한) 철인들을 다시 만나고, 그들이 고민했던 문제와 대안을 벗삼아 오늘의 문제를 다시 다각도에서 반추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저마다의 자리에서 자신의 목소리로 다시 혁명을 이야기 할 수 있다면……그래서, 나는 지젝이 일으키고 이 소동이 유쾌하고 흥미롭다. 이제야 비로소 지젝의 이데올로기 비판으로 넘어갑니다. Are you 뤠디?


고전적 이데올로기 비판

지젝은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에서 이데올로기 비판의 세 가지 차원을 언급하고 있다.
우선, 고전적 의미의 이데올로기 비판이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맑스의 이데올로기 비판이 아닐까 싶다.[각주:1] 맑스에 의하면, 역사란 이데올로기의 오류인식과정이고, 이데올로기는 계급에 의해 결정되며, 그런 의미에서 다분히 당파적이다. 계급과 당파는 ‘쭉~’ 계속 보편적으로 지속되는 것이 아니다. 변하고 뒤틀리고 역전된다. 그러므로 맑스에게 있어 이데올로기 비판이란 지배자와 피지배자간의 관계와 그 역학을 밝히고, 그 과정에서 작동하는 허위의식과 순진함을 까발리는 일이다. 즉, 체제의 의해 왜곡된 현실과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인민의 순진함을 해부해 보이는 것이 고전적 이데올로기 비판의 주된 임무였다.
지젝은 이 대목에서 냉소주의를 거론하며 고전적 이데올로기 비판이 지니는 나이브함을 역으로 고발한다. 오늘날의 우리는 체제에 의해 자행되는 현실에 대한 왜곡과 모순의 매카니즘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체제는 더 이상 우리를 속이지 못한다. 우리의 집요한 네티즌들과 인터넷 논객들이 그것을 가만두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현실을 거부하지 못하고 오히려 전 시대보다 체제에 편입하고자 더 목을 매는 이유는 무엇인가?[각주:2]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결국 지젝의 욕망과 환상에 대한 이론일텐데, 연재를 거듭하면서 이 부분은 계속 보충되고 증액될 것이다.)


다시, 알튀세를 위하여...

고전적 이데올로기 비판이 지배자와 피지배라는 구조를 전제로 한다면, 이보다 좀 더 진화한이데올로기 비판은 이데올로기가 특정 집단에 의해 작동되는 것이 아니라, 구조와 제도를 통해 작동된다는 원리다. 이것의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가 지난 <웹진 51호>에서도 언급한 바 있는 알튀세의 호명이론이 아닐까 싶다. 
맑시즘과 정신분석학은 각각 걸어온 길이 다르고, 방법론이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이데올로기의 오류인식을 본인들 사상의 발판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를 닮았다. 맑스에게 있어서는 역사가 이데올로기의 오류인식이었고, 프로이트에게는 근대적 이성에 기반하고 중심이 꽉 차 있었다고 믿어왔던 주체가 이데올로기의 오류인식이었다. 왜냐하면 프로이트에게 있어 주체란 명료한 의식이 아닌 불확실한 무의식에 기반한 주체이고, 꽉 차있는 중심이 아닌, 비어있는 중심을 기반으로 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각주:3]
알튀세는 바로 이러한 맑스주의와 정신분석학의 공통점을 알아차리고,[각주:4] 양자의 결합을 시도하여, 맑스주의에는 없는 무의식(타자)의 개념을 정신분석학(라깡)에서 끌어온다. 라깡이 무의식의 영역인 상상계와 상징계를 거치면서 어떻게 개인이 주체로 되어가는지를 분석하듯,[각주:5] 알튀세 역시 무의식과도 같은 이데올로기(대중적 표상체계로서의) 속에서 개개인이 어떻게 주체로 만들어지는지에 주목한다. 
근대적 주체는 타자의 영역을 지우고, 그 타자의 영토에 깃발을 휘날리면서 자신의 주인됨을 입증하려 했던 존재였고, 그런 의미에서 타자란 정복과 제거의 대상이지, 성찰과 관조와 대화의 대상이 아니었다. 맑스주의는 이런 근대적 주체론의 결정판이었고…그런데 맑스주의자 알튀세가 우리안의 타자, 즉 무의식을 맑스주의안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알튀세는 맑스주의 논쟁사에서 이전과 이후를 가르는 중요한 인물이 된다.


대타자의 호명 앞으로!

알튀세에 의하면, 이데올로기는 지배자와 피지배자간의 허위의식과 순진함을 바탕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같이 구조화되고 내재화된 이데올로기 장치(ex: 국가)를 통해 작동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길을 가는데 전경이 내 뒤통수에 대고 “어이~, 학생, 가방 좀 봅시다”라고 하면서 나를 불러 세운다. 이때, 내가 뒤를 돌아보면서 “저요? 저 아무짓도 안 했는데요...”라고 반응한다면? 나는 아주 충실한 이데올로기적인 주체로 호명당하는 그 주체이다. 내가 전경에게 급 쫄아서 보인 반응은 사고하고 의식하고 학습해서 보인 반응이 아니다. 사고하고 의식했다면 개겼어야 맞다. 이 말은 우리의 의식보다 먼저 작동하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영어로 representation, 번역하면 표상 혹은 재현체계, 즉 구조이다.
본디 의식이란 칸트 이래 인식론적인 전통에서 보면 무엇 무엇에 대한 의식이고, 그 의식은 반드시 표상체계 안에서 일어나는 의식이었다. 그것이 칸트에게는 ‘범주’로, 후설에게는 ‘선험적 의식’으로, 가다머에게는 ‘지평’으로 표현되는데, 이 말들에는 공히 우리의 의식에 앞서 어떤 재현체계가 먼저 선행됨이 깔려있다. 그 ‘선행한다!’는 말의 의미를 달리 표현해 ‘무의식적!’이라 불러도 어느 정도 무방하리라.
이를 종합하여 내가 전경에게 보인 반응을 판단하면, 나의 국가를 향한 말과 태도는 대한민국(이데올로기 장치)이라는 거대한 표상체계 안에서 드러나는 나의 무의식적 반응이라는 말인데. 결국, 알튀세에게 있어 인간 주체란 무의식적 체계를 통과한 이데올로기적 존재이고, 그 이데올로기는 신념과 지식의 차원이 아닌, 재현의 차원, 즉 구조 안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지점에서 작동하는 이데올로기적인 비판이란 체계와 구조에 의해 자행되는 이데올로기적 신화화에 대한 비신화화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겠다. 
지젝 역시 라깡을 정치적으로 전유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알튀세 계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젝은 알튀세를 넘어간다. 알튀세가 라깡의 초기이론 의지했다면, 지젝은 라깡의 후기이론을 차용하여 본인의 이데올로기론으로 나아간다. (이 부분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다음 웹진부터 전개될 것이다) 

예고편: 지젝이 나를 아프게 하는 이유

살짝 짧게 다음 웹진 원고의 시놉시스를 공개한다. (내가) 헛소리 하지 않도록.
지젝에 있어 이데올로기 비판이란 맑스가 말하는 기만적인 허위의식에 대한 비판도 아니고, 알튀세가 지적하는 무의식의 구조화도 아니다. 이 말은 이데올로기가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었던 앎의 차원(인식론적 차원)이 아니라는 말이다. 정녕 이데올로기가 겨냥하는 것은 우리의 행위다. 우리는 왜 그렇게 행동하는가? 왜, 우리는 다 알면서 그렇게 행위하지 않는가? 우리의 행위를 지배하는 그 매커니즘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SNS를 통하여, 페이스북 담벼락에다 이명박과 박근혜를 조롱하고 비난하는 글을 몇 자 끄적이고, 또 다른 그런 류의 글들에 like 버튼을 힘껏 누르는 것으로 우리는 양심적 진보적 개혁적 민주시민으로서의 역할을 다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명박과 박근혜식 논리와 정책을 허락하고 그들에게 한 표를 던진 우리들의 무의식을 들여다 보는 것이다.   
빛나는 계몽이성을 바탕으로 부단히 학습하고 갈고 닦고 조이면 밝혀질 것 같았던 이데올로기의 정체는 기실 우리의 무의식적 환상 너머에 존재하는 그 무엇이었고, 그것을 추동케하는 원리가 바로 욕망이며, 그 욕망에 맞춰 우리는 미친X 널뛰듯 춤을 추고 있다. 그 춤에 대한 연구가, 그 춤을 추게 하는 바람에 대한 연구가 바로 지젝식 이데올로기 비판인 셈이고, 그 비판을 통해 우리는 내 안에 도사린 무의식적 욕망과 섬뜩하게 대면한다. 하여 지젝을 읽는 것은 때때로 불편하고, 그래서 가끔은 아프다.  (다음 호에 계속)

ⓒ 웹진 <제3시대>

 

  1. “The most elementary definition of ideology is probably the well-known phrase from Marx’s Capital: ‘Sie wissen das nicht, aber sie tun es’ – ‘they do not know it, but they are doing it’. The very concept of ideology implies a kind of basic, constitutive naivete.” – Zizek, Slavoj., 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 (New York: Verso, 1989), 28. [본문으로]
  2. “one knows the falsehood very well, one is well aware of a particular interest hidden behind an ideological universality, but still one does not renounce it.”-Ibid., 29 [본문으로]
  3. 익히 우리가 알고 있듯이, 근대적 인간이란 의지적으로나 이성적으로 꽉 차있는 주체이고, 근대사회는 그 주체가 담지하고 있는 신념과 믿음에 대한 전적 신뢰와 희망에 의지했던 사회였다. 그렇다고 볼 때, 근대적 주체에 대한 딴지와 그 주체가 그려내는 사회와 역사에 대해 조소를 날렸던 맑스와 프로이트는 포스트모던을 열어젖힌 선구자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실례로 20세 중반 이후 거세게 몰아친 포스트모던 백가쟁명이 거의 예외없이 맑스와 프로이트로부터 지적 세례를 받은 후예들에 의해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할 만 하다. 현대사상에서 맑스주의와 정신분석학간의 통섭과 간섭, 그리고 교차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본문으로]
  4. Louis Althusser, Lenin and Philosophy and Other Essay, trans. Ben Brewster,(New Yoor: Monthly Review, 1971), 218-219. [본문으로]
  5. 알튀세는 라깡의 초기이론(무의식의 구조화)을 받아들여 이데올로기를 무의식의 영역에서 작동하는 그 무엇으로 보았다. 라깡의 초기 이론은 크게 거울단계와 상징계로 요약할 수 있다. 거울단계는 아이와 엄마 사이 형성되는 완벽한 2항 관계를 일컫는 말로, 아버지의 존재를 인식하기 전까지 지속된다. 이때 아이의 자기 동일성은 상상적 오인에 의존하고 있다. 상상계(거울단계)에 머물러 있었던 아이는 언어를 습득하면서 상징계로 진입하게 되는데, 이것은 인간의 사회화 과정을 의미한다. 아이는 상징계의 질서로 진입하면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불리는 대타자의 법과 규율과 관습을 받아들이고, 대타자가 제시하는 기표를 따라 살면서 드디어 ‘인간’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렇게 성장한 주체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상징되는 큰 주체의 부름에 “예”라고 화답하는, 즉 대타자의 호명에 응답하는 주체인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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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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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지젝을 아느냐? (III)
: 지금, 여기서 다시 이데올로기를 묻다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 과정)

 

지난 <49호>, <50호> 웹진에서 필자는 라깡을 경유한 지젝식 주체에 대한 해설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고, 이를 위해 나는 지젝을 세상에 알린 책이자, 지젝 사상의 근거가 되는 <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에 나와 있는 라깡의 욕망그래프 하단에 대한 지젝의 해설을 인용하였다. 이번 웹진부터는 지젝 사상의 백미이자, 가장 중요한 이론적 틀이라 할 수 있는 실재(the real)에 대한 부분이 전개된다. 지젝식 ‘실재’가 사상사에서 어느 지점에 위치하고, 그것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이러한 지젝식 실재가 어떻게 정치학, 윤리학, 신학과 관련을 맺게 되는지? 그리고 최종적으로 그것들이 함의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이 앞으로 남은 과제들이다.
우선, 이번 웹진(51호)을 포함하여 앞으로 3회에 걸쳐 지젝의 실재에 대해 검토해 보기로 하겠다. 하지만, 그것은 지젝이 말하는 이데올로기 분석을 통해 그 진상이 서서히 드러나는 마치 스무고개와도 같은 지난한 작업이다. 그곳에 다다르기 위해서 우리는 맑스주의 사상사에서 등장하는 백가쟁명에 대해 빠르게 살펴봐야 할 것이고, 알튀세와 라깡도 지나야 하며, 숭고의 미학과 헤겔 변증법 사이의 관계도 살펴야 한다. 이런 전체적인 틀 속에서 이번 웹진과 다음 웹진은 ‘이데올로기의 계보학’이라는 주제로 지젝의 이데올로기론에 주로 초점을 맞출 것이고, 그것은 알튀세와의 만남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지젝 시카고 강연사진: 지젝은 몇 차례 걸쳐 시카고에 방문했었다. 위의 사진은 가장 최근 2011년 10월에 있었던 시카고에 위치한 일리노이 주립대 강연 후 청중과 대화하는 장면이다. 지젝은 이날 ‘modern culture and its problem’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괴물, 지젝의 탄생!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지젝의 생애에 대해 간략히 돌아볼 필요를 느낀다. 지젝이 중앙무대로 진출하기 전까지 그가 겪었던 부침에 대해 잠시 살펴 본 후, 그 끝에 등장하는 <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1989)가 갖는 의미가 무언인지를 밝히면서 서서히 이 글은 본론으로 진입하게 될 것이다.     
지젝은 1949년 구 유고 연방 슬로베니아에서 태어났다. 유고의 공산주의는 소련의 휘하에 있었던 다른 동구 공산권과는 형태가 매우 달랐다. 티토라는 걸출한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된 유고식 공산주의는 1948년에 공산권 내에서 민족주의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 스탈린이 주도했던 ‘일국혁명론’에 반기를 들었다. 이는 국제공산주의 운동 사상 최초의 항명사태로 기록되었고, 이를 계기로 유고는 소련에 의해 코민테른에서 제명당한다. 스탈린 사후에 유고와 소련이 겉으로 화해의 제스처를 취했다고는 하나, 양국 사이 공산주의 주도권을 둘러싼 자존심 경쟁은 티토가 사망한 1980년까지 계속되었다..
지젝은 이렇듯 체제 경쟁에서 소련과 대립각을 세웠던 유고식 공산주의 시스템속에서 성장하고 자랐다. 교조적인 소련식 공산주의에 비해 상대적으로 널널한(?) 유고 분위기속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서구사상을 흡입하였던 지젝은 슬로베니아 수도에 위치하였던 류블냐나 대학에서 공산권 학자로는 드물게 라깡과 데리다, 쥴리아 크리스테바, 들뢰즈 같은 프랑스 사상가들의 이론을 정리해 <프랑스 구조주의의 이론적, 실천적 타당성>이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1975년), 하이데거로 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1981). 후에 지젝은 당시 공산권출신 학자로는 거의 유일하게 파리 8대학에서 라깡의 사위이자, 라깡의 모든 학문적, 물적 토대를 계승한 자크 알랭 밀레 밑에서 라깡의 정신분석학을 주제로 본인의 두 번째 박사학위를 받는다.(1985년).
공산권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탓에 유물론적 인식을 마치 공기처럼 받아들였던 지젝!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유물론이 아닌 독일관념론의 완성이자 해체론의 발단이라 할 수 있는 하이데거를 주제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는다. 이는 후에 지젝의 거의 모든 저작에서 칸트와 헤겔에 대한 탁월한 독해를 가능케 했던 원동력이 되었다. 자크 알랭 밀레와의 만남은 어쩌면 지젝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는지 모르겠다. 지젝은 그를 통해 라깡을 만났고, 마침내 라깡을 넘어선다. 지젝은 자신의 거의 모든 지식체계가 그 무렵 파리에서 완성되었다고 당시를 회고한다.
하지만, 지젝이 한창 지적 흡입을 하던 60년대 말부터 80년대 중반까지 당시 세계는 미.소의 냉전체제가 팽팽히 지속되었던 시기로, 미국에서는 반공사상이 팽배하였고, 이에 맞서 동구권에서는 체제유지 차원에서 정통 맑시즘이 강조되던 시기였다. 물론, 유고가 소련식 공산주의와는 달랐다고는 하나 맑스와 레닌에 대한 숭배에 있어서는 별반 다르지 않았던 공산권 분위기 속에서 지젝은 정통 맑시즘을 전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강단권력으로부터 제외되었다. 이것이 오히려 지젝에게는 결과적으로 전화위복이 되었지만…
이렇듯 무척 특이한 지적 이력을 거듭하면서 점차 괴물로 성장한 지젝은, 마치 무협영화에서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15년 동안 산속에 쳐박혀 무술을 연마한 주인공이 하산하여 강호를 누비듯, 현대 사상계에 혜성처럼 등장하여 지적 이단아로서의 이름을 휘날리기 시작한다. 그 영웅의 출몰을 알린 책이 바로 <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1989)이다. 
지젝이 쓴 대부분의 책들이 그렇듯이, <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 >역시 제목부터 난해하고 자극적이다. 어떻게 ‘이데올로기’와 ‘숭고’가 한 제목 안에 있을 수 있을까? 그것은 마치 내게는 이런 낯설움이었다. 태양이 중천에 떠 있는 한 여름 오후 12시, 그날따라 웬일인지 고속도로에는 지나다니는 차 한대 없었다. 쫙 뻗은 고속도로를 100마일로 주행하고 있는 나!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전방에 검정색 물체가 놓여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급 브레이크를 밟고 속도를 줄여 천천히 그 물체 앞으로 가까이 가 확인해 보니 검정색 시장 비닐봉지가 덩그란히 고속도로 한복판에 놓여있는 것이 아닌가! 차문이 잠겨있는지를 재차 확인하고, 차창너머로 그것을 다시 똑바로 응시하였다. 작열하는 태양빛을 받아 녹아 흘러 넘칠 것 같은 아스팔트 위에 또렷히 놓여있는 검정 봉달이! 언뜻 보아도 물컹하고 질퍽한 질감이 피부로 전달되는 것이 느껴지고……차에서 내려 그 검정 봉지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확인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지나쳐야 할까? 독자들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갑자기 내 눈앞에 펼쳐진 이 낯선 풍경 앞에서 나는 어쩔 줄 몰라한다. 고속도로에서 차를 몰고 가는 행위와 시장에서 순대와 내장과 간을 사서 검정 봉달이 안에 넣고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이 우리에게 얼마나 익숙한 광경인가! 그런데 너무나도 일상적인 고속도로와 시장 검정 봉달이를 조합시켰더니 낯선 효과가 나타났다. 정말 이런 느낌이었다. ‘이데올로기’와 ‘숭고’를 한 권의 책 제목 안에서 동시에 접했을 때……갑자기 나는 고속도로 위에 놓여있는 검정색 시장 봉달이가 생각났다. 

이데올로기와 숭고, 그 어울리지 않는 조합

그것은 분명 잘못된 만남이었다. 이데올로기라는 정치. 사회적 용어와 숭고라는 미학적 용어가 어떻게 어울릴 수 있는가? 책 제목을 접하고서 나는, 맑스 이후 레닌을 지나 알튀세가 등장하기 전까지 맑스주의 발전과정에서 다양하게 등장했던 이데올로기론의 전사가 일단 빠르게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갔다. 레닌과 함께 시대를 같이 했던 베른슈타인, 카우츠키, 트로츠키의 실패한 이데올로기론이 떠올랐고, 불꽃 같은 의지로 살다가 장렬히 전사한 로자 룩셈부르크도 생각났다. 그녀는 ‘철의 여인’이라 불리며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과 함께 신자유주의의 초석을 놓았다고 평가받는 80년대 영국 수상 마거릿 대처보다도 수 십년 앞서, 인간해방과 혁명의 기수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진정한 철의 여인이었다. 그람시와 루카치는 맑스주의의 외연확장과 이데올로기론에 대한 논의를 다양하게 이끌었던 장본인들이었고, 나중에 등장하는 맑시스트들에게 풍부한 영감을 제공하는 인물들이었다. 위에서 간략히 언급한 인물들과 그들의 이데올로기론은 사실은 하나하나가 세미나 제목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중요하다. 이렇게 복잡다단하게 전개되는 이데올로기론의 역사속에서 각각의 이데올로기들은 먼저 등장했던 이론에 대한 비판과 대안의 노릇과 후에 등장하는 이론에 대한 암시와 징후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반면, ‘숭고’는 어떠한가? 숭고는 미학적 용어이다. 우선, 칸트가 그의 감성론과 미학을 다룬 <판단력비판>에서 미와 숭고를 대비시키며 전개시키는 대목이 생각나고, 포스트모더니즘을 대표하는 리오타르가 내세웠던 현대예술 안에 깃들어 있는 숭고미에 대한 찬양도 떠오른다. 요즘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는 발터 벤야민은 기술복제 시대의 세계관을 미리 예단한 학자였으나,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의 언어철학에는 숭고에 대한 집착이 강하게 베어있다. 복제(요즘 유행하는 폼나는 말로 시뮬라크르)와 숭고가 아찔하게 교차하는 매력이 그에게 있다는 말이다. 바로 이점이 근래에 등장하는 사상가들이 벤야민에게 훅 가는 이유일런지 모른다. 이렇듯 숭고에 대한 논의 역시, 물론 이데올로기론에 대한 논쟁만큼 피비린내 나지는 않지만, 다양한 지적 지형 위에 위치한다.
그렇다면, 왜 지젝은 전혀 다른 계열상에 존재하는 이데올로기와 숭고를 결합시키는 것일까? 혹 그 결합 안에 숨어있는 무엇, 아니 그 결합의 방식 내지는 서술의 형태가 지젝이 실재를 드러내는 패턴이 아닐까? 이러한 질문을 갖고 지금부터 지젝의 이데올로기론으로 진입할 텐데, 그 전에 우리는 알튀세를 경유해야 한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알튀세를 걸고 넘어지는 이유

난데없이 지젝을 이야기하다 말고 알튀세를 끌어들인 이유는 분명하다. 지젝의 이데올로기비판은 몇 가지 단계를 거치는데, 특별히 지젝과 마찬가지로 라깡의 욕망이론에 의지했던 알튀세의 이데올로기론과의 대결을 통과하면서 그 윤곽이 확실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번 웹진에서는 지젝 사상 이해의 중요한 정거장이라 할 수 있는 알튀세를 회고하는 시간을 잠시 갖도록 하겠다. 
알튀세는 맑스주의 진화과정에서 이전 이데올로기론과 이후 이데올로기론을 구분짓는 변곡점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맑스부터 68혁명 때까지 전개된 맑스주의는 범박하게 표현하자면 근대적 주체가 지녔으리라고 사려되는 보편적 이성에 대한 신뢰를 밑에 깔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근대정신에 기반한 맑스주의는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와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대변되는 이론적 혼종성으로 인해 그 약발이 예전만 못하고, 이에 대한 타개책으로 탈주체적 사유를 내적 동력으로 내세우는 새로운 맑시즘이 등장하게 되는데, 그 도화선이 되었던 인물이 바로 알튀세였다. 그가 던진 패는 맑스주의 안에서 맑스주의 이론을 수정하고 쇄신하려는 시도들 중 사실상 마지막 카드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 과정에서 알튀세는 항상 현실적 문제의식 위에 자신의 사유를 위치시키려 했던 사상가였고, 이후 등장하는 많은 후학들에게 현실에 적합한 철학적.정치적 문제의식과 그에 걸맞는 비판적 무기와 이슈가 될만한 개념들을 지적 유산으로 남긴 20세기 맑시즘의 마지막 거목이었다. 알튀세로부터 바디우, 랑시에르, 발리바르가 나왔고, 지젝 역시 알튀세의 이데올로기론에 자극을 받아 본인의 이데올로기론을 예각화시킨 경우다. 둘은 공히 라깡의 이론을 교집합으로 삼고 각자의 이데올로기론을 전개시키고 있다. 하지만, 알튀세가 라깡의 초기이론에 근거한다면, 지젝이 관심하는 부분은 라깡의 후기이론이라는 점에서 양자간에는 분명한 간극과 갈등이 상존한다.

알튀세를 통해 바라본 맑스주의 논쟁사

앞서도 언급했듯이 알튀세는 맑스주의 전개과정에서 독특한 지점에 위치한다. ‘양날의 칼’과 같은 존재라고 할까? 여전히 스탈린적 교조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소련의 정통 맑스-레닌주의를 향해서도, 이에 대한 반론으로 등장하는 서구 맑시즘, 소위 휴머니즘적인 맑시즘에 대해서도 알튀세는 동일한 비판을 가한다. 이를 통해 알튀세가 궁극적으로 제시하고자 했던 맑시즘은 ‘탈향(脫鄕)적 맑스주의’ 내지 ‘반목적론적 맑스주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알튀세적인 의미에서 역사란 하나의 원형으로 환원불가능하고, 하나의 목적으로도 통분불가능한, 오히려 아이러니컬하게도 反-역사적 시각을 가질 때야 비로소 그것의 전체적인 조망이 확보되는 그런 역사이다. 이를 위해 알튀세는 우선, 근대(성)의 획득이라 할 수 있는 주의(主意)주의, 진화론적 역사주의, 인간주의로부터 과감히 결렬한다.
이러한 시도들을 통해 알튀세가 노렸던 바는 분명하다. 우선은 헤겔이 완성한 근대철학의 주체론에 대한 비판이었고, 그 연후에는 헤겔과 맑스의 연결고리를 차단하는 것이었다. 이런 차원에서 알튀세는 유명한 “맑스로 돌아가자!”라는 구호를 제창하는데, 여기서 돌아갈 맑스는 헤겔의 영향 아래에 있었던 맑스, 즉 <1884 경제철학수고>를 썼던 당시 청년 맑스가 아니다. 우리가 돌아갈 맑스는 <자본론>을 쓴 성숙한 맑스, 즉 헤겔주의에 오염되지 않은 맑스이다.
자본주의 전개과정에서 발생하는 주체의 역할, 즉 ‘우리는 왜, 무엇 때문에, 어떻게 투쟁을 해야 하는가?’ 에 대한 논의는 엄격히 말해 맑스가 썼던 <자본론>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맑스는 <자본론>에서 주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상품분석, 교환가치, 잉여가치, 노동의 사회적 성격 등 자본주의 운동법칙에 대해서만 이야기 했을 뿐이다. 맑스는 오히려 역사적 변혁의 주체로서의 개인보다는 체계(구조)에 우위를 두고 과학적으로 전체를 분석하려 했던 인물이었다. 알튀세는 이런 맑스, 즉 휴머니스트 맑스가 아닌 사이언티스트 맑스에 방점을 두었고, 이를 위해 라깡의 구조주의적 정신분석학과 공모한다.
이러한 알튀세를 향해 휴머니즘적인 맑시스트 루카치는 ‘자본주의 운동법칙에 대한 천착도 중요하지만, 그 법칙을 변형시킬 전망과 비젼이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닌가?’ 반문한다. 그런 다음  루카치는 알튀세와는 반대로 <1884 경제철학수고>로 돌아가자고 제안한다. 맑스가 이 책에서 주체의 의지와 실천에 대해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루카치는 알튀세와는 다르게 휴머니스트 맑스를 주장하면서, <1884 경제철학수고>를 쓴 청년 맑스와 <자본론>을 쓴 성숙한 맑스가 다르지 않다고 보았다. 하지만, 알튀세는 바슐라르가 썼던 “인식론적인 단절”이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헤겔주의에 경도되었던 청년 맑스와 헤겔로부터 벗어난 성숙한 맑스를 서로 다른 맑스로 간주한다.
이상의 논의에서 보이듯 알튀세는 소련식 스탈린주의로 상징되는 공식적 맑스주의와 대결했을 뿐 아니라, 비공식적 맑스주의 (서구맑스즘 혹은 휴머니즘적 맑시즘) 진영과도 거리를 두었다. 그는 ‘전환시대의 맑시즘?’이라는 문제의식 속에서, ‘무엇이 맑스주의인가?’라는 질문에 정직하고 치열하게 온몸을 던져 답하려 했던 우리시대 사상가였고, 그 정신적 가위눌림으로 인해 (진짜로)미쳐버릴 수 밖에 없었던 비운의 사상가였다.  

에필로그

맑스주의의 과학성을 재건하려는 알튀세의 노력은 무의식을 구조로 파악한 라깡의 초기이론(상상계-상징계)에 기대면서 전개되었고, 그 흐름속에서 알튀세는 본인의 이데올로기론, 즉 이데올로기의 호명이론을 고안하였다. 하지만, 알튀세의 이데올로기론은 이론 자체의 정합성보다는 그것으로 인한 파장 때문에 더 유명해진 케이스다. 실례로 알튀세와 동시대 혹은 이후에 등장하는 맑스주의자들, 예를 들어, 데리다, 바디우, 랑시에르, 발리바르, 지젝, 라클라우와 무페 등이 맑스주의의 현재성에 대한 논의를 알튀세에 대한 계승과 극복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다는 점만 보아도 알튀세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이 어떤 관점과 얼마만한 간격에서 알튀세를 받아들이고, 어느 지점에서 알튀세와 결별하는지를 따지는 것이 현대 맑시즘의 경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알튀세의 이데올로기론은 흠모의 대상이자 동시에 ‘공공의 적’이다. 그 한 가운데 지젝이 있다.

(다음 웹진에서 알튀세의 이데올로기론과 지젝이데올로기론 사이의 차이를 밝히면서 지젝의 실재개념으로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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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상철
    2013.03.12 23:4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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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젝이 경희대에 온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 불온하다는(?) 철학자가 이제는 과다노출에 벌금을 때리겠다고 선언하기까지 이른(그냥 빨갱이라고 하지), 온통 '불온'히스테리에 젖어있는 땅으로 환영을 받으며 들어가네요. 지젝이 불온한 철학자가 맞는지? 아니면, 한국사회는 그 어떠한 불온에도 흔들림없는 안전한 사회는 아닐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백년동안 '불온'이라는 단어는 어쩜 이리도 강력히 작동하는지? 갑자기 '볼온'이라는 말이 옆집 똥개 처럼 느껴지네요.
  2. 2013.03.21 08:39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다행히도 그들은 지젝이 누구인지 모르는 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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